posted by RushAm 2013. 4. 23. 06:19

원래는 마지막회로 '대행녀 그것이 궁금하다'를 하기 위해 다 써놓고 읽어보니 이건 시기상 아청법으로 인해 글을 올린 다음날부터 매일아침을 블랙빈테라피가 가능한 식사로 하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득이하게 봉인하고 대체 특집을 내걸게 됨을 양해바랍니다. 사실상의 인터넷 그리고 인간 편의 마지막회가 될 것 같습니다.




이전 연재에서 일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보았습니다만, 사실 일베 내에서의 현상을 분석하느라 가장 중요한 것을 빼먹었더군요. 그들의 선택이 결국 일베의 극우성향으로 치우칠수밖에 없는지 왜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의 논리를 막연하게 맹신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보니 아마 조금은 반쪽짜리 글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왕 마지막회답게 화끈하게 일베와 그들을 이용해먹고 있는 우리나라의 암적인 극우세력들의 속셈을 신랄하게 뒤집어까발려드려볼까 합니다. 제가 얼마만큼 몸을 사릴지는 모르겠지만 가급적이면 제 이전 글과는 다르게 사전 설명 없이 단답형으로 밀어붙일 생각입니다. 이미 서문이 길어져서 신빙성이 떨어져 보이시겠지만 일단 들어보시죠.


...


왜 젊은이들은 겪어보지도 못한 역사에 편향적 시각을 갖게 되는가?


돈이 없어서입니다.


먹고 살기 편하면 역사에 편향적 시각을 갖게 되는 게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어지니까요. 따라서 지금 극우화되고 있는 정말 많은 젊은이들은 흔히 말하는 취업이 잘 안되어서 백수로 살아가는 청년실업자들이나 돈의 전쟁이 되어버린 학원교육에서 자금부족으로 낙오된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학력에 대한 열등감과 우월감, 근거 없는 연봉 경쟁 등이 화제가 되는 분위기, 물론 대부분은 거짓(컨셉)이다


왜 이들은 우익을 택했을까요? 자신들이 겪어보지도 않은 역사를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반납한 채 극우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앵무새가 되기를 자처하는 것일까요? 1차적으로 학원교육 정책의 실패입니다. 자본이 이기는 학원교육사회에서 이미 동떨어지고 낙오된 그들의 좌절감은 고스란히 지금의 학원 교육에 대한 불신과 경멸의 화살로 날아들게 되는데요. 그런데 그들은 딱히 배운 게 없다보니 학원 교육에 피해자로서 뭐라고 반격할 만한 껀수가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익은 그들에게 한 마디를 던지죠.


'대한민국 교육은 썩었고 잘못된 것을 가르치고 있어!'


대의적으로 보면 그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근거가 문제죠. 결국 국사 교과서가 문제라는 논리를 대의명제를 통해 주장하는 것 뿐인데요. 이 불쌍한 학생들은 여기에 넘어갑니다 암튼 '대한민국 교육은 잘못되었다'는 대의명제에 '국사'도 포함된다는 지식을 주입받은 그들에게 있어 그들의 피해의식을 사회에 발현시킬 유일한 무기를 쥐어준 셈이 되기 때문이죠. 그들은 그들을 자본이라는 불공정한 방식으로 낙오시킨 학원교육을 비판할 무기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게 대의명제가 같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국사교과서'를 쥐어주는 것이 또 우익이거든요.


대한민국 교육은 잘못되었다. 

= 따라서 대한민국 국사교과서도 잘못되었다

= 선생들도 (전교조) 잘못 가르치고 있다.


뭐 이런 식의 논리는 그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팩트'와 함께 곁들여서 보기에는 완벽해보이는 논리로 학생들에게 손쉽게 주입됩니다. 그들이 이렇게 쉽게 흡수하는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필요성'때문이겠죠. 사회에 대한 불만, 특히 학원교육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데, 본질적인 부분을 알 기회가 없으니 반격하지 못하고 끙끙대다가 어쨌든 한국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명제로 공격할 명분이 생기니 그것을 이용해서 사회에 집중 포화를 가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당한 깊은 빡침을 모두 에너지화해서 말이죠.



...


자 학생은 그렇다 치고 젊은이들은 뭘까요 대학물까지 먹어서 머리 좀 굵은 사람들이 왜 극우들의 주장을 되뇌이는 오토리버스 카세트테이프화 되는 걸까요. 간단합니다. 이들도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용도가 아닙니다. 이들은 이미 성인이고 마땅히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죠.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자를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그들을 이미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있고 그들로 하여금 영혼을 팔아서라도 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 스스로를 옥죄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 놓인 젊은이들은 극우 세력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죠.



이들에게 우익들이 바라는 것은 보다 본격적입니다. 이들은 참정권이 있고 경제권이 있죠. 따라서 그들이 원하는 기업, 정치가, 세력에게 본격적으로 개미레벨의 힘을 몰아주는 것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지시하는 것은 그쪽에서 말하는 '산업화'나 '민주화'처럼 단순히 특정 커뮤니티에 간접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그 주변까지를 극우화시키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마치 다단계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들은 각종 행사에 자연스럽게 동원되며 트위터 등지에서 봇이 아닌 실제 활동하는 사람들로 여론을 형성합니다. 이들이 여론을 형성하는 결정적 무기는 취업의 어려움, 집값 상승, 여자들에 대한 베타적 태도 등이 있는데요. 이 세 가지는 젊은 층 특히 정치엔 별 관심이 없지만, 현실적으로 위의 세 가지에 대한 어려움과 불만을 내재하고 있는 계층들에게 적극적으로 파고듭니다. 그리고 극우는 여기에 소스를 하나 던지죠


'여성부 만든 정부가 누구더라?'

'집값 어느 정부때 제일 많이 올랐게?'

'늬들이 취업을 못하는 이유가 외국인 노동자 때문인건 알고 있니?'



취업난에 대한 원인을 그들 스스로에게 한정시키기 않고 누군가에게 탓을 해줄 수 있는 매개체를 쥐어줌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논란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략인것이죠. 많은 커뮤니티에서 직장 내 무개념 여성의 작태, 외국인 노동자들의 범죄 (주로 오웬춘이 이용됨) 등의 자료를 활용하며 네오파시즘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데요. 현 세태를 직시하는 시각보다는 어느 한 쪽 세력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극우들이 이렇게 해서 무슨 이득이 있냐고요? 물론 이득이 있죠. 젊은층들은 지금까지의 선거에서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피해를 본 것에 대한 반발심리를 표출해왔습니다. 그래서 야당 지지율이 항상 높게 점쳐지고 있었죠. 왜냐하면 자신들이 지금 이렇게 고생하고 힘들게 사는 것은 정론적으로 보면 분명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나 주택수급대책 들이 모두 실패하고 경기부양책마저 제대로 일궈내지 못했으니까 벌어진 일인데, 문제는 지금 여당이 계속 정권을 잡거나 도중에 레임덕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이같은 여론을 잠재워야 하거든요? 그래서 지금의 사태를 정부 탓이 아닌 외부의 세력에 의한 문제라는 점을 여론화시켜 젊은층에게 설파시키는 것입니다. 젊은층이 취업을 못하게 된 이유나 결혼이 힘들어진 이유, 집세가 비싼 이유는 모두 정부 탓임에 분명함에도 자신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 이같은 작태를 벌이는 것이죠.



만일 이들이 가난하지 않았다면, 이들이 별 무리없이 공공임대주택 제도의 혜택을 볼 수 있었다면, 그리고 이같은 분위기가 지속되어 사회적 안정이 이루어졌다면 과연 이같은 극우들의 공작이 먹히기나 했을까요? 정부의 정책 실패는 자연스럽게 여론의 반발을 가져왔을테지요. 지금 정부는 그런 자연스러운 순기능을 막아주는 이들이 너무나도 절실히 필요할겁니다. 극우 성향을 이용해서라도, 네오 파시즘을 일으켜서라도, 할 수만 있다면 구닥다리 반공이라도 총동원해서라도 말이에요. 그들도 그만큼 시대의 변화에 한계까지 맞서고 있다는 겁니다.


...


자 그럼 이쯤 해서 극우들이 이렇게 판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극우가 아닌 자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왜 이들이 극우가 아닌 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극우의 말만 듣는지, 그리고 극우는 왜 그리도 잘 증식하고 충성도가 높아지기만 하는지도 말이죠. 간단합니다. 극우는 돈을 풀고 있고 극우가 아닌 자들은 돈을 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흔히 지금 사회를 양극화 사회라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과 잘 사는 사람의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만 있고 그 중간층이 벌어가야 할 자금을 소수의 상류층이 싹쓸이한 결과가 이렇다는 거죠. 그런데 지난 부동산 버블때 돈을 좀 쥐고 있던 사람들은 죄다 부동산 버블에 크고 작은 투자를 해서 적어도 지금은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큼의 자산을 뿔려 놓은 상태입니다. 한마디로 40대 이상은 지금 그닥 돈 걱정을 하는 계층이 많지 않다는 거에요. 대부분 직장도 안정적이고, 직위도 높고 월급도 많습니다. 최근에는 정년까지 연장해준데다, 퇴직금도 챙겨받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어요. 그들은 그 자금으로 아파트를 쥐고 있고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아무것도 쥔 게 없습니다. 그들이 아파트를 쥐고 자영업에 뛰어드는 동안 아파트값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창업시장은 레드오션으로 전락했으며 정부는 친기업주의 성향으로 기업을 키웠지만 정작 기업은 그 돈으로 돈잔치만을 할 뿐 채용을 늘리겠다는 약속이나 성과만큼의 임금인상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은 늘어나고 있고 비정규직과 정규직과의 격차는 또 벌어지기만 합니다.


한마디로 젊은이들이 돈을 쥘 수가 없는 사회구조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이 만든 물건이나 젊은이들의 재능을 구매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성세대끼리만 서로 신뢰하며 돈을 주고받을 뿐입니다. 젊은이들의 재능이나 물건을 구입하는 쪽은 같은 젊은이들이지만 그들 사이에서 도는 돈은 전체 경제의 불과 10%안팎이니 재능있는 사람은 넘치는데 그들에게 돈을 지불해줄 사람은 없는 현상만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기성세대들은 그들의 재능이 극도로 헐값이 될 때까지만 기다릴 뿐 누구 하나 나서서 그들이 쥔 자본 패권의 길을 젊은이들에게 개방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번 돈의 소중함만을 생각하고 그 소중함을 공감해줄 같은 기성세대들하고만 거래할 뿐이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는 기업들이 과연 젊은이들의 신규 채용을 늘릴까요? 마치 자신들이 벼슬이라도 얻은 양 젊은이들을 압박면접이라는 이름으로 조롱하는 것으로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며 의기양양해하는 재미로 세상을 사는 딱한 사람들만 있을 뿐 어느 누구도 그 재능에 제대로 돈을 지불하기 위한 길을 터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와중에 슬쩍 자본의 통로를 젊은이들에게 터준 쪽이 바로 극우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자본에 목말라하는 젊은이들이 목마름에 무르익을때까지 기다려 왔고, 이제서야 그 시기가 왔다고 판단했던 거죠. 젊은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헐값에 내던지고 있고 아무도 그들의 재능이 값어치있다고 칭찬하지 않으니 인정받을 수 있다면 취업할 수 있다면 토익이든 뭐든 사납게 달려들 의지가 충만한 그들은 극우에게 있어 더 할 나위 없는 먹잇감입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돈과 기회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속삭입니다.


'거 면 도 고 네 회 도 일 수 어'


우왕~ 친일한 사람들은 다 잘됐네?


'미 이 를 고 는 저 을 구!'



젊은이들은 마치 토익에 달려들듯 극우가 던지는 사상에 매달립니다. 빈곤한 그들에게 유일하게 돈의 길을 터준 자들의 말을 안 들을 리가 없는거죠. 사막 한가운데 목마른 자에게 물을 건넨 사람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을까요? 결국 지금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극우화되고 있는 것은 극우들의 추악함에도 그 문제가 있지만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나라가 어떻게 병신이 되어가든 내 집값만 떨어지지 않고 내 자영업에 투자한 권리금만 회수하면 장땡이며 젊은이들은 그저 게임이나 야동만 보는 잉여새끼들이고 그들이 만드는 재능은 가치없고 가능성도 없는 쓰래기 취급을 했던 기성세대 전체에게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젊은이가 돈을 만지려면 극우외엔 방법없다


일찌기 일본의 극우는 이렇게 젊은이들을 극도의 가난에 몰아넣은 다음 극우쪽에서만 돈을 풀어 젊은이들이 극우로 가는 것만이 유일하게 돈을 만질 수 있는 길이라는 상식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네토우요라 불리는 젊은이들은 그 젊은 헐기로 극우 사상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고 그에 참가하지 않은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가난을 당연시화하기에 이릅니다. 아무런 도전도 취업도 경제활동조차도 의미가 없다는 자포자기 세대가 이미 고착화되어 일본은 온갖 경제 부흥책에도 이전과 같은 에너지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극우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꾸준히 설파하며 정권창출을 통해 나라 전체를 좀먹으며 배때기에 마블링을 치는데 여념이 없죠. 당연히 이런 나라가 망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젊은이들의 에너지가 없는 나라가 안 망하는게 이상하죠.



우리나라는 이미 일본이 보여준 위와 같은 국가 경제 기반 붕괴의 초입에 들어가려 하고 있습니다. 극우들의 사상은 결국 니가 뭘 하든 극우만 찬양해주면 된다는 식이고 그 에너지는 고스란히 극우의 정당화 즉, 지금 우리나라에서 만연하고 있는 재벌들의 경제독식, 정치가들의 매국노 행위 등이 젊은이들에 의해 저지될 여지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라의 에너지가 특정 몇몇에 의해 쪽쪽 빨리고 빈 껍데기만 남은 나라에 살게 될 우리 후손들은 어떤 에너지를 기반으로 이 나라에서 꿈을 펼쳐야 하는 것인가요? 


...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할까요?


젊은이들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게 아닙니다.

갈 수 있는 길을 당신들이 다 막았을 뿐...


그리고 잘못된 길로 갈 수 밖에 없도록 몰아세웠을 뿐

아무도 그 길로 가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말로는 스스로의 행동을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떠들던 당신들은 

단 한번도 이 나라를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당신들이 이 말에 코웃음을 치는 한 영원히...


...



공화국 연구소 - 인터넷 그리고 인간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2. 12. 9. 08:53

무덤에서 버려둔 기획을 파내려니 세월이 지나 더이상 디씨만을 분석해서는 완성되지 않는 기획이 되어버린 관계로 일베를 추가합니다. 이 기획은 극히 일부에 국한한 편중되고 단편적인 시각으로 분석되었으며 실제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는 분들과의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

 

대선을 앞두고 새롭게 '뜨고'있는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일간베스트 저장소' 흔히 '일베'라고 불리는 곳으로 주 목적은 개그사이트들에서 이른바 '오늘의 베스트'라고 불리우는 글이나 이미지, 동영상 등을 따로 모아서 서비스하기 위한 목적의 사이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베라는 곳은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개그나 유머 게시물을 올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성지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아무 게시물이나 이 곳에 올 수 없고, 주로 양질의 자료,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이나 웃음을 준 자료들이 이 곳에 모이게 되죠. 자연스럽게 이 곳은 '적어도 다른 개그사이트들보다 웃기다'라는 브랜드 가치를 갖게 되고 사람들은 그 브랜드 가치를 신뢰하면서 모여들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신뢰'라는 것은 굉장히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요. 유머나 개그를 테마로하는 사이트들이 으례 그렇듯, 항상 최신의 화제를 이용하여 자료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연예인의 스캔들이나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카테고리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을 이용하는 패러디물이야 말로 가장 오래되었으면서 가장 보편적인 공감대와 웃음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테마이기 때문이죠. 어찌되었든 일간 베스트라고 한다면 결국 그 자료가 양질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 자료를 재미있다고 혹은 그 자료의 코드에 공감을 표시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 함정이 있는데요. 바로 '폐쇄적 여론형성'입니다.

 

 

커뮤니티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그런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이 발현되는 사회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분명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성향은 이런 커뮤니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나는 'A자료'가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만 A자료는 '많은'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소수취향의 자료라고 한다면 당연히 베스트에 올라가지 않고 커뮤니티 특성상이 베스트에 올라가지 않는 자료는 사람들이 잘 올리지 않게 되는것이죠. 자연스럽게 'A자료'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커뮤니티를 떠나 'A자료'가 베스트에 오르는 곳을 찾아 나서게 되거나 혹은 그냥 입을 다물고 방관자 시점에서 눌러 앉는 경우도 있죠. 때문에 일간 베스트에는 '베스트 자료'에 동의하고 공감하며 웃음 코드를 공유하는 사람들만이 '활동자'로서 보이게 되는 여론의 편중성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비단 일베뿐만 아니라 다른 커뮤니티들이 제각각 게시물이나 성향의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촉발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특별히 베스트를 차지한다고 해서 어떤 금전적인 보상이나 가시적인 명예 수단이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갖는 아주 특별한 것이 하나 있죠, 바로 '다수에게 내 행동이 인정받았다'는 만족감입니다.

 

이 사회는 끊임없이 누군가에 의해 인정받아야만 한다는 것을 주입시킵니다. 유치원때부터 좋은 성적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는 압박감은 십수년간 그들의 인생을 짓누르며 학교는 수도없이 그 경쟁에서 이긴 자들을 칭송하며 너희들도 이 칭송을 받으려면 열심히 하라는 식의 채찍질을 그치지 않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그들은 응당 '태어나면서 당연히 받아야 할 축복'이라는 인권적인 문제를 걸고 한 가지 종목에 한정해서 랭킹 전쟁을 벌어야만 하죠. 이런 사회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당연히 '1등지상주의'밖에 없는 것입니다. 베스트는 그들에게 있어 학교에서 얻을 수 없는사람들이 '만족'을 충족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전쟁터인 것이죠.

 

 

그리고 이들은 고스란히 그 '또 하나의 만족'을 걸고 (어쩌면 응당 누리고 살아야 할 것을 가지고 싸우는게 참 어처구니가 없지만) 베스트가 되기 위해 전력투구를 합니다만, 문제는 이들이 위에서 예를 든 학교 교육의 부작용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재진행형 세대라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모두 진리이며 선생님 말 대로만 하면 난 성공할 수 있다고 믿어야만 하고 그래야만 선생님과 부모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주입받은 아이들에게 스스로의 생각을 담아낼 수 있는 능력을 기대하기란 어렵죠. 그래서 그들은 일베에서도 학교에서 그랬던것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노력을 하게 됩니다. 이른바 베스트게시물에 대한 '공부', 그리고 '우등생 따라하기'가 그것이죠. 문제는 이게 무척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유머든 패러디든 현실 세계를 베이스로 한 풍자형 게시물들은 필연적으로 원작자의 '성향' 이 스며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일간지들에 나오는 '만평'이 모두 같은 코드를 갖지 않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예를 들어 베스트 게시물에 특정 연예인을 비방하는 게시물이 올라오고 이 게시물이 수많은 추천을 받아 베스트가 되었다면 이 사람들은 '아 이런 게시물을 올려야 베스트가 되는구나'라는 것과 동시에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이들의 말이 분명 맞을거야' 라는 식으로 어떤 이들에게 특정 사건에 대한 신뢰의 근거를 마련해주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베스트 게시물이 특정 코드를 담고 그 코드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는 '확률적' 이론이 정립된 경우 아무래도 특정인의 게시물이 해당 커뮤니티에서 베스트가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지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요. 이들은 해당 코드에 대해 자신만의 가치관이 완전히 정착되어 누구에게도 휩쓸리지 않고 또 어떤 반대 의견에도 자신만의 반박이 가능할만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이슈'에 대한 비판을 할 만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다각도로 증명하려 하며 그 증명들은 대부분 논리정연해 보이고 실제 근거도 빈틈이 없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이런 게시물은 사실 학원교육에 찌든 99%의 학생들은 절대 스스로 만들어내기 힘든 그 무엇이 되는 것이죠. 그들은 에초 그 분야에 대해 '아무것도' 배운 게 없기 때문에 이런 논리정연하고 근거도 빈틈이 없어보이는 게시물을 이른바 '교과서'처럼 가장 첫 번째 지식으로 정착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부분을 스스로 생각하고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는 기능 자체를 죽여버리고 썩혀버리는 대한민국 교육계가 낳은 사생아들은 이렇게 자신이 알고 싶어하는 지식을 특정인의 편중된 사상으로 채워버리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들은 마치 '교실 내'처럼 누가 더 이 편중된 사상을 많이 배우고 이해했는지에 대한 '그들만의 배틀'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베스트' 작성자의 '칭찬'을 갈구하죠. 마치 선생님에게 칭찬받으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처럼 그들은 그들에게 있어 해당 분야의 가장 첫 지식을 가르쳐준 '베스트 작성자'에 대해 선생님과 동급의 지식적인 신봉이 이루어집니다. 그들의 말은 다 옳으며 그들이 생각대로 이 세상을 읽으면 이 세상의 알 수 없는 것들을 모두 볼 수 있을거라 생각하게 되죠. 이런 것을 이른바 '팔로우 문화'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다른 생각을 표출하지 않고 세상에 인정받고 세상을 보는 방법을 특정 몇 가지의 사상에 의존하여 해당 사상을 가장 그럴듯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따르는 것만으로 의사 표시를 마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사실 민주주의의 근간이면서도 가장 큰 맹점이기도 하죠.

 

 

팔로우 문화는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하는 모든 국가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수밖에 없다. 결국 내 마음에 100% 쏙 드는 후보가 없다면 차라리 내가 그 후보를 100% 마음에 들게 되는 사상이 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것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네임드를 앞세워 누가 더 옳은지 싸우게 한다. 그들이 그들 스스로 내세운 네임드가 이기길 바라는 이유는 다른 것이 없다 그래야만 '내가 지금까지 믿고 신봉했던 것들이 정당화'되고 바보취급받지 않으며 역으로 그 상대를 바보취급할 수 있는 권리에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더라도 상관없다. 그들은 결국 우리의 이 위대한 논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바보들일 뿐이니까, 이것이 이른바 정신승리라는 것이 생기는 배경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토론 이벤트에서 간결이라는 트위터리안이 상대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반복하며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부정당하는 가운데에서도 그것을 인정하는 것을 수차례에 걸쳐 망설였던 것, 자신이 지금까지 믿고 신봉해왔던 것을 부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그 논리를 믿고 랭크업을 해왔던 사회적 위치를 부정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기반합니다. A회사 부장급이 갑자기 해고되고 B회사의 더 낮은 직급으로 이직을 강요해야 한다면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죠.

 

또한 간결이 보이는 태도는 '유학파'이고 '미국 현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 가질 수 밖에 없는 다양성의 취약함을 그대로 안고 있다는 점에서 설명이 가능한데요. 미국은 가르쳐주는 그대로 주입받기보다는 보다 다양한 의견 (설령 그것이 국가관에 반하는 의견일지라도) 을 존중하고 그에 대해 함께 토론하며 배워나가는 열린 교육방식을 지향하고 있지만, 필연적으로 국가는 해당 국가주의에 기반한 사상을 가르칠수밖에 없고 애석하게도 미국은 패권주의를 지향하는 국가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테러리스트 개념과 테러를 당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주입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간결을 포함한 모든 후천적 해외 이민, 유학파들은 바로 이런 국가관에 대한 부분을 새로운 지식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우리나라의 현실과 융합하여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내게 되고 이것이 일베가 가지는 우익 성향의 기본 베이스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마치 종교와 같은 수준으로 변질됩니다. 지금 한국의 개신교가 교파 내에서만 공유되어야 하는 논리를 무리하게 그와 관계없는 사람들까지 설득하고 동의시키기 위해 갖은 무리수를 두는 것처럼 이들 일베 역시 최근 자신들의 논리가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외부로부터 또 다른 사상을 주창하는 '네임드'들에게 속속 맹점을 비판받게 되자, 그 논리의 정당성을 보존하고 신뢰에 대한 간증을 위해 일베 밖으로 속속 나오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들은 기독교가 비판받는 것과 똑같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 내에서 특정 사상에 의해 숭배되고 주창되어온 사상과 논리를 들어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시키려 들고 있지만, 해당 논리는 그들 세계 내에서만 완벽할 뿐이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모순 투성이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흔히 '위인이 나오기 힘든'사회라고 합니다. 전현직 대통령들은 모두 업적과 과오가 동시에 구설수에 오르고 있고 어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그 위대함을 칭찬하기보다 '자신이 그렇게 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따른 '흠결 잡기'에만 몰두하기 때문이죠. 항상 정치인이나 헐리웃 스타를 만나는 인터뷰를 보면 인터뷰어가 하는 말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라는 점을 강조하는 멘트가 그것이죠. 결국 이 나라는 어떤 위대한 업적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방식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업적을 남긴 이후에 우리와 똑같은 수준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역설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감스러운데요.

 

그렇게 사람들은 그 사람의 업적보다는 자신의 기준에 맞는 '흠결' 이 없는 것에 맞춰지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누가 봐도 위대한 업적을 거둔 사람이 음주운전 한 번에 최악의 인간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물론 전과 14범에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치적인 배경에서 완벽한 간증이 되어있다면 높은 지지율로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아이러니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잘못된 이론이라도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자신의 결점을 커버하는 사람이 추앙되고 존경받는 세상을 만들고 그 밑에서 그 논리를 바탕으로 또 다시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노력하며 줄을 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 역시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라면 응당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위인전을 읽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될거야'라며 말하는 아이들에게 그 사람이 태어난 고장, 다녔던 학교, 먹었던 식품까지 모조리 흉내내는 것만으로 그렇게 될 거라 맹신하는 부모들을 수도 없이 봐 왔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위인들은 물론, 사상과 논리를 설파하는 사람들의 극점에 있는 사람 어느 누구도 누군가를 흉내내고 따라가는 것으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베 현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나도 네임드가 될 수 있다'는 그릇된 망상에서 나오는 집단적 사회현상인 것입니다.

 

 

 

 

그들이 옳은지 그른지는 잘 모릅니다.

의외로 그들 말처럼 지금 지나가는 이 시간이 만들어내는 역사가

그들의 옳고 그름을 증명할지도 모르죠

 

사람은 멍청할 수 있지만 세상은 멍청하지 않으니까요.

 

 

인터넷 그리고 인간 - 디씨&일베인 그들이 궁금하다 편을 마칩니다.

 

 

인터넷 그리고 인간 시리즈 회차

1화 : 악플러 그들이 궁금하다.
2화 : 셀카녀 그들이 궁금하다.
3화 : 디씨&일베인 그들이 궁금하다.
4화 : 대행녀 그들이 궁금하다.

 

posted by RushAm 2010. 3. 27. 01:37
저는 굳이 따지자면 PC통신의 막차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딱 제 세대 뒤부터는 PC통신을 모르고 대부분 웹을 시작했으니까요. 당시 텔넷 프로그램을 통해서 학교 컴퓨터에서 PC통신을 접속하고 있으니 후배들이 '형 지금 해킹하는 거에요?'라고 묻던 게 생생하네요. 아무튼 이 PC통신을 기점으로 현재의 넷상에는 세대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합니다. 과거 통신에서의 낭만과 추억을 기억하는 PC통신 세대와 모든 게 갖춰진 인터넷 세대로 말이죠.


이 PC통신 세대들이 생겨난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인구가 대거 이동할 당시 PC통신의 매력을 포기하지 못하고 인터넷에 적응하지 못했던 계층이 상당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의 인터넷은 무개념에 악플 문화, 상호 비방 문화, 비뚤어진 카폐지기의 권력 남용 등 실생활의 활력소가 되기에는 너무 실생활과 닮아 버렸다고들 하는데요. 특히 이들은 PC통신을 거치지 않고 인터넷에 바로 입성한 이른바 '초딩'세대들을 혐오합니다. 네티켓을 먹는 거라며 우걱우걱 먹어버린 그들의 예의없는 행동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 충분했으니까요.

어쨌든 지금의 인터넷에는 예전 PC통신에서 느꼈던 재미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의견인데요. 이를 단순히 네트워크 세대차이라고 보기에는 지금의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이전과는 너무 다르게 (특히 한국이) 변해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트워크였기에 혹은 네트워크만이 가능했던 강력한 개성들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미 생활 필수품이 되어있고 너도 지금 인터넷으로 글 쓰고 있는 주제에 무슨 헛소리냐! 라고 하실수도 있으시겠습니다만, 일단 한 번 들어보세요.


인터넷 주로 어디에 쓰시나요?

아침에 일어나서 PC를 켜는 건 이미 당연한 일과가 되었습니다. 켜서 바로 하시는 건 보통은 웹브라우저를 로딩하시죠.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컴퓨터는 아무것도 못하는 깡통으로 인식하는 분들도 많은데요. 그만큼 첫 일과는 부팅이 아닌 웹브라우저 접속입니다. 모든 용도는 우선 여기까지의 공통점을 지닌 채 세분화됩니다. 메일을 읽는 분, 뉴스를 읽는 분, 쇼핑을 하는 분, 인터넷 뱅킹으로 돈을 보내는 분 메신저에 접속하는 분, 게임을 바로 로딩하는 분, 업무 파일을 다운로드해서 일을 시작하는 분들 등 여러 가지 쓰임새를 보이는데요.

특별히 이상하다고 트집잡으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세히 보시면 굳이 인터넷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즉 지금의 인터넷은 마치 휴대폰에 달린 손톱깎이처럼 우리가 움직이는 동선을 줄여주거나 시간적 비용적 절감을 해주는 (대체 수단)으로서의 가치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죠. 인터넷만이 가능한 게 아니라 마치 예전에 교과서에서 배우듯 '전화가 없으면 얼마나 불편할까"라는 것처럼 '인터넷이 없으면 얼마나 불편할까?'라는 식의 역할 부여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예전 PC통신과는 다르게 심히 다양한 연령대가 대거 참여하는 범국민 네트웍이 된 인터넷은 점차 현실의 그것을 닮아가고 있는데요. 모르는 사람과 벽이 없는 솔직한 교류가 가능했던 것에서 이제는 각종 사이버 범죄로 인해 점차 '아는 사람들끼리'의 제한된 네트워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초창기 네트워크에서 선보였던 ICQ나 넷미팅 등 인터넷이 처음 내세웠던 '전 세계인을 내 친구로 만들자'는 구호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됐죠. 지금은 누군가가 나를 친구로 추가하면 아는 사람이 아닌 경우 대화조차 걸지 않은 채 바로 삭제되는 것이 현실이며 국제적 교류는 이미 관심밖으로 멀어진 지 오래입니다.

사이버 범죄 탓일까?

물론 인터넷에서 지금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사이버 범죄, 매춘 등이 사람들의 열린 마음을 닫히게 만들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이런 사이버 범죄는 PC통신 시절이라고 해서 없었던 것은 아닌데요. 당시에는 이런 '사기' 행각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가 많지 않았고 간간히 뉴스에 등장하는 정도에서 사건이 더 커지지는 않았습니다. 즉 인터넷 사기나 범죄 등이 많아지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이에 흥미를 보이는'사람도 인터넷에 덩달아 늘어났기 때문이며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인터넷 자체의 정화 활동에 지나치게 무관심한 채 양적 팽창에만 전념해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를 보인다는 것은 결국 '돈'이겠지요.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은 '돈'이 되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시간 대비, 노동력 대비 결코 효율적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는 인터넷이 조금이나마 돈이 된다면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모습이 지나치리만큼 자주 보여지고 있는데요. 노력에 비해서는 정말 하찮을 정도로 푼돈입니다만, 많은 사람들은 그 금액에도 만족스러워하죠. 아 내가 '놀면서'도 돈을 벌었구나, 라고 말입니다.

여기에는 장기화되고 있는 청년 실업 문제와 더불어 부모 세대들의 몰이해로 인한 보수적 시선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있습니다. '게임'을 포함한 컴퓨터로 하는 모든 것들은 이미 '공부'에 방해가 되는, 혹은 '돈도 쌀도 나오지 않은 무생산성의 폐인짓'으로 규정하는 것이 거의 공통화되어 있죠. 이에 새뇌당한 지금의 인터넷 2,3세대들은 인터넷이 '생산성이 없다'라는 것을 뒤집을 만한 작은 것에도 집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결코 '노는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인터넷을 하면서 편하게 돈을 벌수 있는 법을 찾는 데에 집착했고 기업들은 이를 악용하여 여러 가지 병폐를 낳는 수단들을 만들어 냅니다.

블로그는 이미 돈을 받고 쓴 상품평, 이벤트 참여 포스트로 도배가 되어가고 있고 쇼핑몰의 상품평은 신뢰도가 점점 하락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나 댓글 알바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게임 업계의 성공 요인으로는 '환금성'이 '참신성'을 능가한지 오래이며 양질의 포스트를 양산하는 블로거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계약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애드센스를 달아놓습니다. 그리고 그 애드센스를 위한 포스팅 재생산, 자극적인 제목, 흥미 위주의 포스팅 남발 등 기존 언론사들의 병폐로 지적했던 것들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죠. 결국 언론사들의 기준없는 상업화를 지탄했지만 정말 아주 약간의 돈 관계가 들어가자 블로그계가 그보다 한술 더 뜨고 있는 모습은 아쉽다 못해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렇듯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댓가'를 지불받는 것에 집착한 문화는 비단 '금전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데요.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면 늘 볼 수 있는 '방명록 홍보 - 글 잘 읽었습니다. 시간나시면 제 블로그에도 들러주세요 -라든지 인기 블로거들끼리 의리 추천으로 추천수를 서로 올리기,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방문자수 집착, 트위터의 '맞팔로' 문화 (내가 너한테 아무 관심이 없지만 내가 팔로우해줬으니 너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팔로워해야한다)등 자신의 인간적 평가기준을 지나치게 인터넷 수치 평가에 의존하는 데에서 파생된 반드시 준 만큼 받아야한다는 '제 몫 챙기기'심리가 인터넷을 점점 재미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돈'이 되지 않으면, 준 만큼 나한테 되돌아 오지 않으면 '재미'도 없다는 식의 논리가 자발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하고 일원화된 흐름을 고착시키고 있죠.

자신이 쓴 시간을 인정받기 위한 것이 반드시 당장 돌아오는 금전적 혹은 인간관계적 수치평가에 기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에 집착하면 할수록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정말 헛된 시간이 될 수밖에 없는데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시간적 금전적인 부분에 지나치게 집착한 결과가 현실사회에서는 입을 닫은 채 굳은 표정으로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으로, 인터넷에서는 베타적 인간관계, 금전만능주의, 보상심리에 근거한 병폐로서 보여지고 있습니다. 현실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서 등장했던 인터넷이 점차 그 기능을 잃어가고 현실의 악랄함을 닮아가고 있는, 아니 오히려 한술 더 뜰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습니다의 기쁨을 앗아가버린 것은 기업들의 홍보메일매거진과 스팸메일이었던 것처럼 즐거움과 '돈'은 결코 일치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결과는 이루어졌을때의 기쁨이 아닌 이루어지지 않았을때의 '배신감'만이 남게 되죠. 지금의 인터넷이 보여주고 있는 현실, 그것은 마이너스 이론처럼 '당연히 얻어야 할 것을 얻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불만입니다. 이것이 플러스 이론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는 조건에서 '돈'과 '수치적 평가'를 제외하면 되는 것이죠.

블로그 방문자수를 늘리기 위해, 팔로워수를 늘리기 위해, 추천수를 늘리기 위해 '영업'을 뛸 필요 없이 자신의 글 그리고 자신의 면면만을 보고 방문해주는 방문자 그리고 추천은 영업에 의한 그것에 비해 몇 배의 가치와 기쁨을 안겨다줄 것입니다. 인터넷에서든 현실에서든 결국 인간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인간 본연의 본질적인 가치에 기인할 뿐 수치적인 데이터는 전면의 통과의례에 불과합니다. 자신이 인터넷에서 쓴 시간을 어떻게든 보상을 받고 싶다면 인터넷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요?

인터넷은 예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쓰는 사람에 따라 식도가 사람을 찌르는 범죄도구가 되는 것처럼 변한 것은 인터넷이 아니라 그것을 쓰는 사람들의 생각에 있음은 두말할필요가 없겠지요. 인터넷은 여전히 재미있고 유익하며 그 문은 여전히 활짝 열려 있습니다. 돈은 반드시 인터넷으로만 벌어야할 필요도 없고, 자신이 가진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한낱 팔로워수, 방문자수, 추천수가 아닙니다. 인터넷을 다시 재미있는 곳으로 그리고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인간적 매력을 느낄수 있는 장이 되기를 희망해보며 인터넷 그리고 인간  번외편 '인터넷이 즐겁지 않게 된 이유' 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0. 1. 9. 17:51
우선 여기에서 말하는 '셀카','셀카녀'라 함은 여러분들이 이 단어를 보고 느끼는 그것입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그 수위가 달라질 수 있으며 받아들이는 분들에 의한 자의적인 수위 판단이 가져오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는 하등 책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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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국어사전에도 등재되려 하고 있는 단어 '셀카'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요? 누구나 자신의 독사진을 남기고 싶어하지만 예전 필름카메라 시절에는 독사진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찍고 싶어하는 성향이 강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사진 한 장 대비 지불하는 비용이 크기 때문에 비용절감상의 이유가 가장 컸다고 할 수 있겠죠. 여튼 적어도 필름카메라 시절처럼 사진 촬영에 자본적 책임을 져야하는 당시에는 셀카의 개념이 지금만큼 대중화되지는 않았음이 분명해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했기 때문에 없던 셀카의 본능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닐것입니다. 주부들이 시장을 볼때 저렴한 것만을 선호하는 이유가 돈을 쓸 줄 몰라서가 아니라 돈이 풍족하지 않기 때문인것처럼 셀카 역시 확실히 꽤 오래전부터 인간의 본성 속에 잠재되어 있는 '자아실현'욕구 중 한 가지였고 그것이 사진 촬영 대비 단가가 급격이 낮아진 디지털카메라에 이르러 폭발했다고 볼 수 있겠죠. 필연적으로 셀카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 확율이 높기 때문에 필름카메라에서 대중화가 되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니까요.

셀카를 찍는, 그리고 찍고 싶어하는 이유는 잘 알려진 것처럼 '자아실현'욕구에 의거합니다. 이는 최근 30년간 TV의 영향력이 거대해지고 대중가수나 텔런트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표현 방법이 비주얼적인 측면으로 대거 쏠린 탓인데요. 즉 자기자신의 자아를 다수에게 인정받는 방법론이 점차 심화되고 있는 학생들의 고된 학습고문으로 인해 급격히 단순화되고 있는 것이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방법, 사람들에게 내 존재, 내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현대사회에서 오히려 일원화되고 단순해지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아이러니합니다.

지금도 어떤 다른 형태로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보통 초등학교 시절에는 보통 자신의 자아를 대신하는 수단 중 하나로 '딱지'형태의 물건이 각광을 받곤 합니다. 이 딱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암묵적으로 높은 지위를 갖게 되고 적으면 적을수록 낮은 지위를 얻게 되죠. 점심시간만 되면 서로의 딱지를 차지하기 위한 배틀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이른바 '올인'을 당한 사람은 슈퍼마켓에서 빵 봉지를 무단으로 뜯어 스티커를 훔쳐내는 등 막다른 행동을 보이면서까지 자신의 자아를 지켜내려는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이런 딱지가 배틀 카드 게임이나 인터넷 게임의 레벨, 훈장 등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과 역할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네요.

뜬금없이 왜 딱지 이야기가 나오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의 셀카는 딱 이 수준에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외모는 누구나 어떤 특정한 사회적 기준에 모두 완벽히 부합해서 나올 수는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등급(?)이 생기게 되는데요. 어떤 형태의 얼굴이 대세인 사회에서 그 얼굴에 100% 부합되는사람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며 그 관계는 냉혹할 만큼 부합 정도에 정비례합니다. 그 얼굴이 사회적 대세라고 해서 대세에 부합하지 않은 얼굴이 분명 예쁘지 않은 건 아니건만 (분명 근미래 혹은 과거에 그 얼굴 형이 대세가 되는 혹은 되었었던 때가 있었음에도) 부합되지 않는 쪽은 철저하게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특히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소외감을 견디기 어려워할수밖에 없는데요.

예전에는 이러한 관심의 카스트가 네트워크에 부재로 인해 넓어봐야 약 1천명 안팎에서 이루어지던 것이었다면 최근에는 인터넷의 발달과 소셜네트워크의 대중화 그리고 셀카 문화의 정착으로 인해 그 범위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넓어졌습니다. 셀카 하나 잘 찍어서 연예인 되었다는 소문이 나돌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적 추세에 부합하는 얼굴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셀카 사진을 소셜네트워크 혹은 더 넓은 공간에 공개함으로서 네트워크 상의 지위와 관심을 확보하는 활동에 적극적인데요. TV미디어의 연예인들에게 추앙받는 대중권력을 지켜보며 자라온 그들에게 있어 대중의 관심은 곧 권력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다는 것은 곧 소외되는 쪽이 있다는 이야기가 되죠. 자신이 반드시 외모에 강점이 있는 것은 아닌데, 아니 지금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미적 기준을 가진 게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현실과 네트워크 모두에서 소외를 받는다는 것, 현대사회에서는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법적인 하자가 없는 왕따 정도로 설명이 되겠군요) 카스트 사회가 아닌 자본주의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카스트로 고통받는 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을테니까요. 이들의 선택은 상당히 절박합니다. 포토샵 보정도 해보고 그나마도 안되면 진짜 얼굴을 뜯어고치기도 합니다. 심한 경우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PC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알몸을 촬영, 공개하면서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만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결코 희귀하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네요.

이처럼 네트워크 상의 권력이 더 이상 무형의 그것이 아니라는 관점이 사회적으로 정착된다는 것은 곧 그 수단 자체에 자아를 몰입하는 정도가 점차 깊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셀카사진을 대량으로 양산하여 불특정다수의 대중들에게 평가를 받기를 원하고 그 평가에 일회일비하며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디지털 혹은 리얼 성형을 통해 보완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짙어집니다. 이른빠 뽀샵질이 대중화된 것도, 근 10년 내 성형산업이 폭발적으로 증가세를 보인 것도 디카 혹은 폰카의 보급과 관계가 적지 않을텐데요. 거울의 발명이 반드시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준 것만은 아닌 것처럼 셀카 역시 불편한 진실로 인한 불행을 자초했다고 보는 것도 과장은 아니겠죠.

내가 가장 자신있는 분야에서 다수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비단 그것이 외모냐 아니냐를 떠나서 상당히 중요한 인간의 본능적 감성이니만큼 현상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의 셀카 문화에서 벌어지는 갖은 문제들은 단순히 젋은 세대, 어린 학생들의 도덕적 태만으로 보기에는 지금의 사회가 지나치게 자신들이 벌여놓은 상황에 대한 책임회피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과연 이들이 외모 이외에 자신이 타고 난 특별한 개성을 스스로 존중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 단순히 시대적 흐름에 의한 어쩔 수 없는 변화의 바람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요? 카메라 앞에서 화장하고 성형하고, 사진을 뭉개고 빛나게 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인정을 받지 못하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치부까지 드러내면서까지 사람들의 눈길과 껍데기뿐인 관심이나마 얻고 싶어하는 현대인들, 누가 이들을 이토록 외롭고 단순하며 어리석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요?


공화국 연구소 특별기획 '인터넷 그리고 인간' 제 2화
'셀카녀 그들이 궁금하다' 편을 마칩니다.


인터넷 그리고 인간 시리즈 회차

1화 : 악플러 그들이 궁금하다.
2화 : 셀카녀 그들이 궁금하다.
3화 : 디씨인 그들이 궁금하다.
4화 : 대행녀 그들이 궁금하다.


posted by RushAm 2009. 11. 27. 09:33
인터넷이 오랜 역사가 흘러 미래에 어떤 발전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는 알 수 없지만 PC통신이 지금 세대에게 어필하는 모양새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인터넷도 미래를 사는 그들에게 있어 아주 오랜 세대차이를 느끼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합니다. 요즘 세대들에게 다이얼업모뎀은 생소하기 짝이 없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아마 인터넷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에피소드는 예나 지금이나 혹은 근 미래에 있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지금의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저런 일들은 사실 그 형태만 달리했을 뿐 맥락적으로는 PC통신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었던 일들이니까요. 악플, 사이버 테러, 명예훼손, 번섹 등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흑막은 결국 '인터넷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이용하는 그 어떤 것이라면 어디에서나 표본 오차 하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실명제를 해야한다, 인터넷을 제한시켜야 한다는 둥 그 해결책을 '인터넷을 폐쇄시키는' 데에 중점을 두고 찾고 있습니다만, 사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리얼월드가 절대적으로 평화롭지만은 않은 것처럼 인터넷 역시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합류해있는 이상 다양한 군상들의 면면이 드러나는 것이 결코 이상한 게 아닌 것이죠.

정치권이 실명제같은 어처구니없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이유도, 거기에 국민 반수 이상이 동의하는 상황도 모두 인터넷이라는 공간,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맹목적으로 리얼 월드의 통제 방식을 그대로 적용시키는 데에 따른 거부반응과 역효과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고 때문에 해결책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더 음지로 숨어들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공화국 연구소의 새로운 연구 주제 역시 사실 이를 완전히 이해하고 반듯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는 보장할 수 없겠습니다만, 제대로 된 정공법을 쓴 논문이 사실상 전무한 실정에서 하나의 참고 자료로서 활용될 수 있는 정도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오늘은 첫 시간으로 '악플'을 쓰는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 패턴에 대해 연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화국 연구소에서 발표된 모든 연구 내용은 학술적으로 검증, 발표되지 않은 개인 연구 결과로 관련 내용을 응용, 활용하는 데에 있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는 글쓴이와 해당 블로그에 책임이 없음을 밝혀둡니다.

새로운 컨텐츠가 매일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인터넷의 속도만큼이나 악플 컨텐츠(?) 역시 지속적인 다양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이전 아무 의미없이 '욕설'을 써대던 것에 비하면 정말이지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 유형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원시형 : 단순히 욕설만을 쓰는 것이 아닌 해당 콘텐츠 (인물 등)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지칭하는 타입
2. 배틀형 : 해당 콘텐츠가 아닌 해당 콘텐츠를 옹호하는 다른 덧글 이용자들을 타깃으로 지칭하는 타입
3. 사상형 : 콘텐츠의 종류를 막론하고 모든 사건을 특정 계파, 색깔로 일원화시켜 주장하는 타입
4. 생떼형 : 콘텐츠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지 않았음에도 고객으로서 존중받아야 함을 주장하는 타입
5. 허영형 : 해당 콘텐츠를 비하하는 것으로 자신이 그 콘텐츠보다 위에 있음을 주장하는 타입

이밖에도 다양한 타입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다만, 직접적으로 어떤 목적에 의거하여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눈살을 찌푸려지게 만드는 타입들은 저 정도 선에서 충분히 구분이 가능합니다. 물론 눈살이 찌푸려지는 덧글들은 '광고'를 비롯해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광고덧글은 사람이 쓰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사회현상이라고 보기는 다소 무리가 있겠지요.

우선 위에 제시한 다섯가지 악플 패턴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키워드는 '자아'입니다. 자기 자신이 '악플'로서 상대방을 공격할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데요. 이른바 사회적인 자격이라 불리우는 이것은 실제 현대 사회에서는 누릴 수 있는 계층이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특히 신 카스트 제도라고 할 수 있는 회사나 학교 등지에서 볼 수 있는 암묵적 계급 체계로 인해 하위 게급에 속한 사람들은 거의 상대에 대해서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니까요. 그래서 사실상 가장 하위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초등학생 계층의 악플 비율이 압도적인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욕설'에 별 거리낌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요 (오후 3시경 PC방에는 초등학생들의 욕설로 떠들썩합니다) 특히 초등학생 계층의 경우 사회적 하위 계급인 점도 그렇지만 핵가족화되는 가정에서 제대로 된 예절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 자녀가 상대방을 가차없이 비난할 경우 '기를 살려준다'는 명목으로 그러한 행동을 적극 장려하고 있는 부분이 이러한 현상을 낳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잘못된 가정교육이 지나친 자아성장을 야기하고 상대방을 무시하고 깔보는 감성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되는 것이죠.

청소년이나 20대 초반의 젊은층의 경우 개체수는 적지만 활약 빈도에 있어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데요. 이들은 대체로 성장하면서 부모가 커버하지 못하는 거대한 사회 조직에 점진적으로 합류하여 자신의 힘이 보잘것없음을 처음으로 절감하고 무너진 자아에 대한 보상심리가 악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청소년기에는 특정 우상이 자신의 자아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들은 상대방의 우상을 비난하는 것으로 자신의 우상의 위상이 높아진다고 믿고 있으며 그 우상의 위상이 높아지는 만큼 그를 우상으로 삼고 있는 자신의 가치 역시 상승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80년대 초까지 흔히 유행했던 '1진'이라는 계급체계에서 이른바 '실세'에 붙기 위해 스스로 카스트를 만들어내던 고교생들의 심리가 인터넷상으로 표출이 되는 셈인데요. 대부분 이 우상에 자신의 자아를 거는 정도가 지나치다싶을 만큼 심하기때문에 실제로 서로 다른 우상을 가진 쪽과의 물리적 충돌을 빛는 경우도 잦고 우상의 행보에 따라 '자살'같은 충동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20대 초반부터 30대 초반까지 비교적 젋은 층에 있어서는 주로 사회적 시스템이 자신의 자아를 펼치는 데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자신이 가진 사상이나 자아가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사회적 부조리로 인해 자신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자아 침탈형' 패턴이 주를 이룹니다. 즉 이들에게 있어 공격해야 할 대상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성공'한 계층이 되는 것인데요. 자신의 자아가 인정받지 못한 사회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이 문제가 있는 사회에서 성공한 그들은 당연히 내가 누려야 할 그것을 사회의 덕으로 빼앗아간 약탈자 정도로 어깁니다. 때문에 이들의 배틀은 현 사회에서 부와 명예를 얻은 사람들에게 집중되는데 어떻게 해서든 자신보다 못하거나 사회적으로 평균 이하의 부분을 찾아내어 집중적으로 그들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데에 열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들의 소비가 인터넷 전체의 흐름을 좌우하는 현실에서 언론은 본연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입맛에 맞춰 그들의 사사로운 사생활부터 과거사까지 끊임없이 이슈화를 시키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으며 이에 만족하지 못한 일부는 언론이 미처 꺼내지 못한 민감한 부분까지 적극적으로 캐내 인터넷에 공표하는 모습도 보이는데요. 여기에는 앞서 언급했던 자아 침탈과 더불어 '동반자 심리'가 작용합니다. 즉 이런 사회에서 너만 성공하는 건 불공평하니까 우리 다 같이 불행해져야 억울한 사람이 없어지고 공평해진다는 하위 평준화 마이너스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죠.

최근 들어 상당히 흥미를 끄는 계층이 예전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30대 후반부터 60대까지 이어지는 '기성세대'계층입니다. 이들이 인터넷을 배우고 적극적으로 인터넷 사회에 동참하면서 예전에 볼 수 있었던 '인터넷 내'와 '외'의 세대 차이가 지금은 모두 '인터넷 내'의 여론으로 거의 통합되어가는 분위기입니다. 이들의 악플 패턴은 현 사회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20대의 그것과 흡사하지만 그 지칭 대상이 '젊은 세대'나 '지역 주의','특정 정치 사상'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상당히 낡은 논제임에도 이들은 아직 그 논제가 유효함을 설파하며 그 논제에 있어 조금이라도 반하는 사건이 일어날 경우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특정 사상을 근거로 자의적인 해석을 내리는 패턴을 자주 보이는데요. 때문에 급변하고 있는 국제 정세에 맞지 않고 특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 정론이라 굳게 믿는 일종의 '고집'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거의 듣지 않는 폐쇄적인 성향을 낳게 되어 토론조차 되지 않은 채 일방통행식의 주장 설파만을 지속하는 것도 이들의 특징입니다. 흔히 '알바'라고 오해를 받는 것도 이들의 이러한 성향에서 나오는 부분인데요. 각 상황에 맞는 논리보다는 자신의 주장이 관철될때까지 연역 논리를 내세우며 꿋꿋한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 꿋꿋함이 자신의 자아를 상징한다고 믿고 있으며 그 주장이 반박당하거나 혹은 그 주장에 어긋나는 정치, 사회적 사건이 일어날 경우 사상적인 연역법을 들어 모든 논제를 일원화시키기도 합니다.

개별적으로 살펴보면 주로 10대 초반부터 20대까지는 원시형과 배틀형 악플 패턴이 많습니다. 이는 이런 악플 패턴이 그들의 목적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어리고 젋은 층일수록 한국의 교육 현실상 특정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 자기만의 논조를 갖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1부터 10까지 창작을 해내기보다는 완성된 콘텐츠에 기초하여 그것에 덧붙이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것이 악플이 되고 각종 블로그에서 보이는 사회 현상들 (루저 논란 등)에 대한 의견과 비난 여론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사회를 관찰하여 스스롤 논제를 찾아내는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보니 악플조차도 까일 대상이 명확하지 않으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하는 빈약한 창작력을 감추지 못하며 때문에 이들을 상대할 수 있는 건 같은 20대 중에서도 자신의 의견과 상반되는 계층이 될 수 밖에 없으며 여기에 '우상'이 결부되게 되면 이른바 '콘텐츠'가 아닌 '다른 악플러'를 비난하는 '배틀형'으로 발전되는 것이죠.

30대에서 60대까지의 기성세대가 보이는 패턴이 '사상형' 되겠습니다. 이미 논리적으로 완전히 자리잡은 주관을 토대로 적어도 어떤 한 분야에 사상에 있어서는 스스로 논리를 창작해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다만 이들에게 있어 각 이슈에 걸맞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이미 큰 줄기가 잡혀 뿌리가 박혀버린 주관 탓에 그 주관에 맞지 않게 보이는 모든 것들이 일관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주관이 대체적으로 현대사회에서 그 입지 자체가 비좁은편이다보니 다양한 분야에 대한 악플들이 내세울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상당히 부실하지만 이들은 그 부실한 근거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으며 자신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진리임을 굳게 믿는 편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들의 책임감을 근거로 자신의 의견에 맞지 않는 의견을 '사상적 논리'로 일원화시켜 싸잡아 비판하거나 도의적으로 배틀을 유도하는 도발적 모습도 보입니다만 이는 배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기성세대로서 '그들 위'에 있고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우직함입니다. 즉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이 기성세대의 위엄을 보여줄 수 있다는 그릇된 발상과 현 사회에서 젊은 계층에게 밀려 변화되고 있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사회에서 점차 퇴출되고 있는 자신들을 직접 변호하고 자신들이 전성기를 누렸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억지로 조성하고자 하는 일종의 아집으로 볼 수 있죠.

생떼형 패턴은 자아가 지나치게 강하거나 혹은 부모의 과잉보호로 인해 사회 역시 자신을 보호하고 존중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고 있는 계층이 주를 이룹니다. 흔히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까지의 연령대가 주를 이룹니다만 핵가족화의 영향으로 이 연령대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점차 인터넷에 대기업 자본이 자리를 잡으면서 대고객 서비스에 있어서도 '무조건적인 친절'이 주를 이루다 보니 이로 인해 '피제공자는 존중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런 패턴이 비영리적 콘텐츠에도 이어져 문제를 양산하는 것입니다. 주로 개인 블로그나, 인터넷 신문, 무료 제공 콘텐츠 (웹툰 등) 가 그 대상으로 이들은 자신들이 그 콘텐츠를 공짜로 취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는 콘텐츠 제공자에게 이익을 주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심지어는 해당 콘텐츠의 존폐나 방향성에 대해서도 명령할 수 있다는 다소 월권적인 개념을 보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재미있는 유형 중 하나인 '허영형'입니다.(허경영 아닙니다) 이 '허영형'이 자신의 신분이나, 재산 정도를 과장되게 표현하는 '거짓말'에서부터 출발했는데요 지금은 대부분 인터넷의 발달(?)로 개인의 신분 정도가 드러나는 것이 용이해진데다 그것이 대부분 허세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어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에 있습니다. 대신 새롭게 등장한 형태가 어떤 완성된 콘텐츠나 성공한 인물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가함으로서 자신이 그들보다 '위'에 있음을 어필하는 패턴인데요. 연예인이나 그밖에 주요 공인에 대한 비판보다는 주로 자신과 큰 사회적 신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블로거'나 '웹툰'등에 집중되곤 합니다. 이것을 조금 재미있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만화 슬램덩크'의 영향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곳에서는 실제 뛰는 선수보다 옆에서 '비유적인 쓴소리'를 내뱉는 사람이 훨씬 더 위대해보이는 착시현상이 있습니다. 해남의 이정환이 관중석에서 한 말 '이 승부 윤대협의 승리다!'라든지 도미가 어떻고 가자미가 어떻다는 등의 이야기를 내뱉는 변덕규가 대표적이지요. 즉 이들은 뭔가 있어보이는 말로 축약적인 비판을 가하면 그 콘텐츠의 훌륭함을 딛고 자신이 그 훌륭함 위에 있다고 어겨지는 것입니다. '난 지금 초인기 파워블로거에게 쓴소리를 가할 만큼 위대하다'라는 착각이 바로 그것이죠. 특히나 개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의 경우 이런 악플에 동요하는 즉각적 반응이 있기 때문에 이들은 그것이 자신이 그 블로거를 단 몇줄의 답글로 이겼다는 쾌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들은 분명 자신들이 그 정도의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한다는 능력적 한계에 대한 불만을 다른 사람이 가진 콘텐츠의 수준과 얻은 명예를 빼앗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죠. 이른바 '남 탓' 잘 하는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떠세요 다소 수박 겉핥기식의 연구가 된 듯하여 개인적으로는 개운치않습니다만, 아직 악플의 세계는 종잡을수가 없는 게 현실인것 같습니다. 악플을 달 수 밖에 없는 유전자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 악플이 또 다른 악플러를 낳는 것을 보면 인간 본연적으로 내재된 잠재의식이 원래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러나 인터넷은 이제 인터넷 하나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진 만큼 집전화를 완벽하게 대체해낼 기세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인터넷에 소속되어 있는 한 '인터넷'으로 인해 사람들이 병들어간다기보다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병들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옮은 답이겠죠. 인터넷을 규제하느냐 사람을 규제하느냐는 토씨 하나 다를 뿐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단지 국가관리체계의 편리성 때문에 대다수의 국민들이 불편을 감내해내는 것이 정당한 일인지, 아니면 불편을 막기 위해 해당하는 사람들만을 규제해내는 데에 집중할 것인지를 말이죠. 전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것은 리얼 월드의 주민등록번호만으로 이제 지겹지 않으신가요? 국가경영의 편리를 위해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침해하는 일은 지금 시대에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제 1화 악플러 그들이 궁금하다 편을 마칩니다.



인터넷 그리고 인간 시리즈 회차

1화 : 악플러 그들이 궁금하다.
2화 : 셀카녀 그들이 궁금하다.
3화 : 디씨인 그들이 궁금하다.
4화 : 대행녀 그들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