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1. 5. 11. 04:55
나가수에 대한 포스팅을 곰곰히 살펴보면 묘하게 '대호평'과 '극단적 비판'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건 이 두 극단적인 문맥갈림이 거슬러올라가다보면 결국 '나가수의 시스템'이라는 원류를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한 가지의 시스템을 두고 이렇게 극단적으로 갈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우선 대호평쪽의 이유와 근거로는 일요일 저녁 5시라는 상당히 보기 편한 시간대에 지금까지 상당히 보기 불편했던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었던 높은 가창력의 가수들이 속속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생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반 이상의 페이지를 칭찬으로 소비한다. 거기에 이 프로그램에 대한 가수들의 태도가 곁들여진다. 지금까지 이 '아티스트라 불리웠던 자들'은 언제나 그 가창력이라는 이 나라에서 참 유지하기 힘든 생존수단 만으로 생존했다는 것만으로 음악팬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음악 팬들은 그들이 행여 이 나라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끊임없이 걱정해주고 있었으며, 그들의 콘서트에는 언제나 그들의 음악을 들을 생각이 충만하다 못해 넘처 흐르는 사람들만으로 가득채웠다. 이런 무대에서만 서 왔던 그들은 언제나 '헛기침'만 해도 열광해주는 무대에만 익숙해져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지금까지 관객을 만족시키려는 음악을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의 음악'을 만족하며 들어주는 사람들 앞에서만 노래를 부르는 일종의 '현실도피'를 음악적 자존심이라는 이유로 당연시해왔다.

그러던 그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노래를 무조건 추앙해줄 거라는 보장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무대에 섰다. 당연하겠지만 그들은 이제 '엄마'앞에서의 응석부림이 아닌 진짜 자기 음악을 그냥 그렇다고 보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음악을 인정받아야만 한다. 당연히 최선을 다하는 그 이상으로 속에 있는 무언가를 전부 내던져야만 했다. 그들의 이런 버닝하는 모습을 이끌어내는 방송 더구나 그런 방송이 수요일 심야 1시가 아니라 일요일 저녁 5시에 방송된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을 그렇게 모든 걸 던지게 만드는 주체가 '시청자'라고 말해주는 방송, 그들이 호평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극단적 비판을 하는 포스팅의 경우 이를 역순으로 뒤집는다. 처음에는 가수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되지 않는 '가수 중심이 아닌 시청자 중심이 된' 무대를 만들어 등수라는 게 의미가 없는 그들의 제각각 다른 개성강한 음악 세계에 등수를 매겨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무리를 시킨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 포스팅들은 점점 후반부로 갈 수록 프로그램 전체를 비판하던 목소리에서 점점 한쪽 귀퉁이로 좁아지게 되는데, 주로 특정 1인을 지정하며 그 가수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 그 가수가 원래 잘 부르는 가수인데, 쥐뿔 모르는 관객들 앞에서 인정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무리를 하게 만들어 이미지가 훼손되어 안타깝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곤 한다. 주로 이런 쪽으로 좁아지는 대상은 '김연우', 'BMK', 간혹 '임재범'이 그 대상이 된다.

대상을 지칭한 이후 이들의 비판은 상당히 그 논리가 분명해지는데, 이들이 지칭하는 가수들은 주로 '낮은 순위의 결과'가 나왔거나 '블로거 자신'의 기준으로 인정하기 힘든 사람들보다 '순위가 뒤졌다'라는 점을 든다. 김연우의 경우를 예로 들면 김연우의 특징이 주로 절제된 감정 표현 속에 맑은 목소리로 호소하는 스타일이라며 이걸 제대로 듣지 못하는 시청자들의 평가로 인해 김연우 본인이 본인의 모습을 잃고 오버버닝을 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주저앉을 정도로 힘들어하는 모습에 마음아프다는 식의 '팬으로서의 감상'을 근거로 덧붙이는 자의적 판단에 따른 객관화의 오류를 범하곤 한다.


극단적 비판을 하고 계신 몇몇 블로거들이 착각하고 있는 첫 번째는 이들에게 '나가수'의 출연을 그 누구도 강제한 적도 없고, 출연 전에 '나가수'의 포멧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출연의 판단은 그들이 했으며 이런 무대의 특성이나 기획 의도 역시 전반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했음에는 두말할여지가 없다. 그런 그들이 반드시 '자신이 가진 개성'을 인정받아가며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환경 속에서 노래를 부를 것을 충분히 각오한 그들의 마음을 애써 대변한다며 쓰는 포스팅이 과연 그 가수의 팬 이외의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두 번째로는 자신이 가진 기준이 반드시 '정설'에 가깝다는 편견에서 불러온 나가수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다. 아직 잘 지켜지는 것 같지는 않지만 나가수의 기본 기획 의도는 '음악의 다양성'이다. 필자가 온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정말 숱하게 봐온 음악 커뮤니티에서의 언쟁 중 하나가 A가수와 B가수 중 누가 더 가창력 지존인가 하는 정말 무의미한 논쟁들이었다. 이러한 논쟁은 사실 선동렬, 최동원 떡밥이나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는 소시팬덤과 아이유팬덤의 싸움과 본질적으로는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양한 개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부르짖던 이들의 포스팅은 결국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객관성을 잃는다.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한다면 YB보다 훨씬 잘한 김연우가 왜 YB보다 순위가 낮냐는 식의 끝맺음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게 느껴진다. YB가 가진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심지어 1위 박정현이 어떤 노력을 해서 그 순위를 얻었는지, 이소라가 어떻게 해서 2위를 얻었는지는 그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심지어는 그들이 '시청자들의 취향'에 걸맞게 자신들의 개성을 버려가면서 점수따기로 일관했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이며 자신의 색깔을 지키고 있는 김연우와 BMK가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이소라가 지난 주 무대에서 정말 자기 개성을 다 버렸는가? 오히려 진짜 이소라다운 노래로, 아니 지금까지 보여줬던 것보다 더 대놓고 자기 색깔을 드러내버렸다고 느낀 건 필자 뿐인가? 그런데 2위를 했다는 건 이미 음악적 개성을 드러내고 드러내지 않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하지 않았던가? 1위를 한 박정현은 어떤가? 박정현는 처음 인터뷰에서 조용필 선배님에게 칭찬을 듣고 싶다는 감상을 밝혔고, 음악 극후반부에 이르기 전까지 가능한 자신의 내지르는 창법을 최대한 억제하며 원곡이 가진 음악적 특성을 충실히 표현하려 애썼다. 그리고 곡 후반부에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창법을 시원하게 쏟아낸다.


착각하고 있는 세 번째는 '평가단'과 '시청자'를 너무 바보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가수에는 어떤 절대기준이라는 것이 암묵적으로 생겨져있고 그로인해 그에 속하지 않고 속할수도 없는 김연우가 시스템에 희생당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사랑해마지않는 가수들의 잘 드러나지 않는 개성까지 일반 관객들이 캐치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핸디캡은 비단 일부 가수들만에 한정되지 않고 출연한 모든 가수들이 한 번씩은 거처가도록 공평하게 배분되었다고 생각한다. YB는 잘 알려진 몇 가지 히트곡을 다 제껴두고 부담감이 컸을 나가수 '첫 무대'에서 일반적으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 생소한 노래를 불렀지만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며 중위권을 지켰고, 불과 2주 전에는 박정현이 '전혀 들어본 적 없을' 곡을 선택했다고 고백한 뒤 '이 곡은 제가 너무 좋아하는 곡이어서 꼭 부르고 싶어요, 관객들이 좋아하게 만들거야! 라는 각오를 하며 부를 거에요'라는 포부를 밝힌 바가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내린 평가단들이 정말 음악을 대중성에 비춰 가려듣는 사람들이라고 함부로 단정할 수 있는가?

500명의 심사단은 처음에 누가 출연할지는 전혀 모른 채로 녹화장에 들어온다. 당연하겠지만 그 누구의 팬이 더 많이 섞여 있을거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거다. 게다가 누가 나올지 모르는 가요 프로그램 방송 방청객, 낮녹화에 발걸음을 옮길 사람 정도라면 적어도 음악깨나 듣는 사람이 아닌 이상 그 정도 정성을 쏟기가 힘들다. 특히 이는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더할 것이다. 이들 블로거가 무시해 마지않는 40~50대의 평가단들이 음악 듣는 귀가 닫힌 바보들이라는 평가에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가진 무언가를 다양성이라는 근거를 통해 인정받고 싶거든 먼저 상대방이 가진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나가수의 처음 기획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 몇몇 가수의 팬을 간접적으로 자칭하고 있는 당신들은 오히려 나가수의 이런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당신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가수가 힘들어하고 지쳐하고 아파하는 것을 보다 못해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자신의 다양성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제대로 다양성을 인정받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깎아내리며 프로그램의 공정성까지 들먹이는 건 너무 치졸하지 않는가? 마치 들어본 적도 없는 곡에게 졌다고 분풀이를 하는 걸그룹 팬들과 음악같지도 않은 음악을 하는 걸그룹을 좋아라한다며 그들을 꾸준히 경멸해왔던 당신들이 하는 행동이 그들과 대체 다른 게 뭔지 말해주지 않겠는가?

나가수는 생각보다 가수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가수에서 가수들에게 무언가를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주체를 굳이 꼽자면 평가단과 시청자들이 될 것이다. 그런 시청자들과 평가단이 과연 그들에게 '당신의 음악을 버리고 대중적인 음악을 해!'라고 강요하고 있을까? 이미 지난 결과로서 그렇지 않다는게 너무 잘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몇몇 가수들이 그런 부분에 지례 조급해하며 자신이 해온 음악에 자신감을 잃고 너무 쉽게 대중성에 휘말린다면 그거야말로 한심하지 않은가? 가수라면 자신의 음악이 비주류라 할 지언정 자신이 생각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음악이 어느 정도로 훌륭한지를 자신의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좀 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만 하지 않나?


착각하지 마라, 평가단과 시청자들은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지켜가면서 '내 음악을 좋아하게 만들고 싶다'라는 열망을 무시할만큼 어리석고 바보같지 않다. 당신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그 아티스트의 음악을 좋아하는 만큼 다른 가수들 역시 당신들의 그 사랑에 진배없을 만큼 반대편에 서 있는 그들이 가진 잘 알아채기 힘든 매력을 느끼며 살고 있다. 당신들이 반대쪽에 있는 그들의 숨은 매력이 잘 보이지 않아 그들을 평가절하하는 만큼 당신들이 사랑하는 그 가수의 숨은 매력을 애써 찾아 좋은 평가를 내려주길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나가수는 그들을 비춘 거울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음악의 파이가 지극히 작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걸 홀로 독식하는 식으로 만들어진 영향력 속에 보호받으며 호랑이로 군림해왔다. 사랑해주는 사람들 품에 안주하며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들과 거리를 분명히 두며 자신들의 음악을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왔다.


임재범의 노래, 김연우의 노래, BMK의 노래를 노래방에서 부르는 걸 듣기 싫어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들이 부른 재해석의 의미가 없을 완벽한 노래를 다른 사람이 부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거다. 그 정도로 신격화되어있는 그들이 지금까지 해온 건, 더 늘어나지 않고 늘어날리가 없는 고정 팬들의 지지에 안주하며 자신이 하는 음악의 저변 확대나 같은 음악을 하는 후배들을 위해 장르 대중화에 힘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절대자가 되어버린 그들을 대신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과 같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성장할 여지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는 거다.

그런 그들이 이젠 자신이 하고 있는 음악이 더 저변이 넓어지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창력'이라는 음악의 본질을 인정받기 위해 의기투합하고 모든 걸 쏟아내려 무진 애를 쓰고 있다. 그런 모습이 안스러운가? 자신의 우상이었고 최고라고 생각하는 가수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것이 억울하고 분하신가? 성적지상주의라니, 제대로 매력을 몰라주는 평가단들이 야속하신가?

필자는 일요일 오후 5시에 어떻게든 제대로 만든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기 위해 부득이하게 순위를 매겨 흥미요소를 만들 수 밖에 없었던 나가수 자체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가수의 평가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의 음악을 인정받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한 사람들을 평가절하하고 심지어는 그들을 자신의 가수들보다 높게 평가한 사람들을 바보취급하는 등 '성적지상주의'의 폐해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 그런 당신들의 위선이 필자는 미치도록 부끄럽고 안타깝다.


당신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가수들을 진정 망치고 있는 건
한낱 TV프로그램이 아니라
바로 당신들 스스로가 아닌지를 한번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posted by RushAm 2011. 5. 9. 06:34
진퇴유곡이라는 말이 있다. 이래나 저래나 죽긴 매한가지인 상황을 빗대는 말인데, 사실 나가수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김영희 PD의 야심작이었던 나가수가 기획했던 포텐셜을 채 폭발시키지 못하고 좌초될 위기에 처했던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김영희 PD는 그 오랜 기간 공들여 기획했다는 나가수를 어떤 이유여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준비한 시간의 채 10분의 1도 견디지 못한 채 떠나가버렸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왜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김영희 PD는 완벽주의자이다. 그리고 그 빈틈없이 1인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방송조직의 핵심으로 자리잡을 만큼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능력들 역시 하나같이 준 프로급 이상으로 준비했던 사람이다. 그만큼 자기 작품에 대한 고집이 대단하고 그래서 더 자기 작품에 대해 비판을 받거나 의도했던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공들인 기간이 무색할 만큼 너무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필자는 지금 김영희 PD를 비판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김영희 PD가 나가수를 기획한 의도를 생각해본다. MBC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가요'프로그램에 대한 욕심이 대단했고 어느 정도 노하우도 있었다. 문제는 언제나 '시청율'이었다. **예술무대 시리즈는 정말 수준급 아티스트들이 대거 출연하여 수준높은 공연을 안방까지 전해주었던 '좋은'프로그램이었지만 언제나 제작비 대비 시청율 부족으로 인해 자선사업과 다름없게 운영되며 주말에 가까웠던 프로그램이 주중 한가운데 수요일로, 그나마 프라임 타임에 근접했던 시간대가 점점 까마득한 심야 시간대로 밀리다가 못해 폐지되었다.


TV의 가장 큰 장점은 '무료'다 우리는 '문화'를 얻기 위한 대부분의 수단에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에 살고 있고. 그것은 가요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TV에는 음악성을 느끼기에는 한참 부족한 아이돌의 잔치가 된 음악 프로그램만이 넘쳐났고 제대로 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은 모두 유료 콘서트장에 한정되고 있다. (아이돌 음악이 제대로 된 음악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게 아니다) 물론 좋은 공연에 가치를 지불하는 지금의 시장이 문제될것은 없다. 그러나 그게 정말 (자신의 주관상)'좋은 음악'인지 아닌지를 제대로 구분하기 위한 '트라이얼'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음악이 3사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음악만 있는 게 아닌데, 점점 자라나는 세대들은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그리고 기성세대 역시 그들이 인정할 만한 음악 다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생각에 7080음악을 추억하게되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결국 제대로 음악을 하는 가수도, 그리고 제대로 음악을 하려는 가수 지망생들도, 제대로 된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음악 애호가들도 모두 죽게 되는 세상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김영희 PD가 나가수를 기획하게 된 동기 역시 이와 일치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제대로 된 음악이 나오는 환경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시청자들의 귀'를 틔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좋은 가수들이 제대로 극한까지 가창력을 끌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하지만 KBS의 금요일 심야, SBS의 평일 심야같은 시청율 사각지대에 놓여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이미 귀가 트인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귀가 트이지 않은' 사람들을 트이게 만드는 것이 나가수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귀가 트이지 않은 사람이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시간대에 방영되어야 했는데, 이미 한번 음악여행 라라라의 심야 프로그램 진입이 결국 호평 속 시청율 부진이라는 전통적 언발란스 결과를 도출한 채 실패했던 최근사례가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번 프로그램의 프라임 타임 진입은 기획의 흥망을 결정할 핵심요소였음에 틀림없었다.

시기도 괜찮았다. 때마침 그가 지분을 가지고 있을 일밤이 시청율이 바닥을 기고 있던 상황이다. 일요일 저녁,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간대였다. 그러나 문제는 시청율이다. 수요예술무대와 다를 바 없는 밋밋한 프로그램이 일요일 프라임에 살아남을 만큼 민방의 세계는 만만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영희 PD는 너무 음악만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적절히 버라이어티성을 가미하는 한편, 지금까지 '아티스트'라 불리우며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던 가수들의 지위를 일격에 떨어뜨리는 대변혁을 시도한다. '당신은 지금부터 가수지망생이 되어 관객들에게 오디션을 치루듯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지금까지는 어디까지나 그 가수를 알고, 그 가수의 노래를 들을 생각이 충만한 사람들만을 상대할 수 있는 자기중심의 라이브 무대에만 서 왔던 그들, 그래서 언제나 우러러바라보이는 것에 익숙해왔던 그들에게 주도권을 빼앗아 시청자들에게 돌려준다는 발상까지... 그의 생각으로는 이보다 완벽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그의 기획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잠재되어 있었는데 다름아닌 '포멧이 너무 완벽했다'라는 것이다. 즉 시청자들은 그런 완벽한 포멧을 받아들이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포멧에 담긴 그의 속뜻을 읽어낼 만큼은 소통하지 못했다. 사실 시청자가 PD의 의중을 반드시 읽어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 완벽한 포멧을 가감없이 받아들인 시청자들은 김영희 PD가 그 완벽한 기획을 스스로 깨버리고 재도전을 허용하는 모습에 배신감을 느꼈다. 물론 이유는 포멧이 너무 완벽했기 때문이다.

김영희 PD는 그 완벽한 포멧을 시청자들이 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출연하는 가수들이 더 많이 받아들여주기를 원했을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합법적 압박이다. 강요하지 않은 압박을 가수들이 자기 멋대로 느끼고 자기 멋대로 긴장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노렸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것은 시청자들 역시 그러한 압박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가수들이 이런 자신들의 급작스런 방송상의 신분 변화를 받아들이는데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결국 결과는 다들 잘 아시는 것처럼 나가수의 좌초로 이어지게 되고, 휴방인지 종방인지 알 수 없는 여운만을 남긴 채 한 달이 흐른다.


신정수 PD가 바통을 이어받은 뒤 가장 많이 이야기가 나온 건 나가수의 본질이 훼손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밖에도 김영희 PD혼자 다 하던 것들을 각 분야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집단제작체제로 바꾼 조직의 변화 역시 볼 수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그동안 단지 위협과 자극이 전부였던 프로그램 포멧에 재도전 없는 무조건 탈락이라는 절대적인 긴장감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초콜릿,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며 음악을 즐기던 사람들이 속속 나는 가수다에 대한 기대를 접게 되었다며 아쉬워했던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가수들이 더 좋은 무대를 보여주고 싶다는 순수성을 잃은 채 인기 위주로 흘러 순위에만 집착하게 되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필자는 이들의 의견에 대체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나가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정수 PD가 무엇보다 중점적으로 노력을 기울였던 건 '인적 쇄신'도 아니었고 '자기 입맛대로 포맷을 바꾼 것'도 아닌, 결정적으로 '나가수'가 좌초되지 않게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 했다.라고 보고 있다. 만일 여기에서 나가수가 시청자들에게 다시금 외면받으면 더 이상 이런 기획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음악계의 정파가 살아남을 미래도 없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가수 중심에서 결국 '시청자 중심'이 되었다며 나가수의 지금의 모습에 아쉬워하지만 난 신정수 PD를 비롯한 지금의 제작진들에게 정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디까지나 나가수는 살아남았고 복귀했으며 임재범을 비롯, 갖은 화제를 낳고 있고 시청율도 껑충 뛰어올랐다. 고품격 음악 프로그램을 표방하는 KBS의 심야 라인도, 그와 유사한 SBS 심야 라인도 어디에서도 해내지 못한 '정통 음악 프로그램'의 프라임 타임 안착을 지금 그들이 어떻게든 해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나가수는 여전히 훌륭한 가수가 나와서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훌륭한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그것도 10대부터 50대까지 고른 연령대가 듣고 느끼고 감동하며 즐거워할수 있는 그런 음악 프로그램이 '민방'에서 프라임 타임에 내걸리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본질은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다소 가벼울 수 있을 개그맨들의 애드립을 섞거나 무한도전틱한 편집까지 하면서까지 가능한 시청자들의 요구를 수용해 시청자들이 외면하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노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절절하다.

물론 이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가 트이신 분들이라면 평일 심야 고품격 음악 프로그램에 비해 나가수가 가지는 지금의 모습이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나가수는 수요일 심야에 하던 수요예술무대를 일요일 프라임 타임으로 옮겨오면서 가능한 장수하기 위해 일반적인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게끔 개량하면서도 이미 귀가 트이신 분들의 요구도 가능한 수용하려는 노력을 결코 게을리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일 나가수가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음악적 완성도만을 추구하고 매니아들의 요구와 입맛에 맞추다 보면 결국 이 프로그램은 다시 수요일 심야로 돌아가게된다. 그렇게 되면 일반 시청자들의 '음악을 들을 권리'는 다시 찾아오기 요원해질지도 모른다. 어떻게 얻은 프라임 타임인가, 제작 성향은 다를지언정 김영희 PD와 신정수 PD의 마음은 같다. 나가수는 어떻게든 프라임 타임에 남기고 싶다라는 것, 처음 기획했던 본질은 '일요일 저녁 프라임 타임에 방송되는 수요예술무대'가 아니었던가? 필자는 이 주제 하나만 놓고서라도 정신이 아득해질만큼 앞이 안보이는데 그들은 지금까지의 축적된 경험과 인맥을 총동원해서 여기까지 와 있다.

이제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줘야 한다. 응원의 박수도, 프로그램 잘봤다고 쳐주는 격려의 박수도 아니다. 그들에게는 또 나와달라는 '커튼 콜'의 박수가 필요하다. 하루에도 열번 이상 때려치고 싶은 기분이 들 듯한 그들에게 '다음에 한번 더 해주세요'라는 박수가 필요하다. 그것이 아마도 우리가 할 수있는 그들에 노력에 대한 최대한의 찬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