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이 블로그에서 오래 전부터 줄기차게 주장하는 부분이 바로 '조명을 무대 뒤로 옮기자'이다. 조명은 항상 무대 앞에 있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비추고 결국 그 무대가 잘 되었을 경우에 생기는 가장 많은 것들을 가져간다. 이는 언제나 자본과 노동의 불평등을 야기할뿐더러 그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절망적인데다, 이 절망스러운 상황을 노력으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구조적 환경조차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업계든 그들은 당당하게 우리에게 말한다
'이 바닥 좁으니까 나한테 잘해'
이렇게 영원한 갑과 을의 관계는 공고해지게 된다.
그런 와중에 하나의 타개책이 발견되고 있다. 인터넷에 밀릴대로 밀려버린 한물간 매체인 TV가 그 주인공이다. 소재의 한계와 역량있는 인재들의 영입 실패로 작품성 공동화를 겪고 있는 업계에서 내놓은 방안이 바로 '전문가들의 TV진출'이다. 요즘 TV에는 종편을 포함해서 수많은 전문가와 평론가 그리고 마이스터급 인재들이 나와서 자신의 재량과 지식을 1차원적으로 발산하거나 혹은 역할을 부여받고 엔터테이너로서 활동하는 등 그 자체가 방송 소재이자 액터가 되어 TV 브라운관을 채워나가고 있으며 당연하겠지만 이들을 시청자들이 매우 반기고 있어 이러한 추세는 점차 세분화 지속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가장 먼저 첫 스타트를 끊은 것은 드라마 업계다. 아직 전면에 나오지 않았지만 드라마의 작가 이름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드라마 전체 역사에서 오래 되지 않는다. 이윽고 버라이어티가 이에 가세했다. 나영석, 김태호 PD는 그 자체만으로 브랜드가치를 인정받으며 방송사들 위에 서는 슈퍼갑이 되어있다. 음악 업계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음악 단독으로는 음반사나 기획사의 위상을 실명을 쓰지 않는 작곡가들이 이미 뛰어넘은지 10년째 되어간다 예전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영원한 을로서 업계의 좁음을 직시하고 '가만히 있으라'를 새겨야 했던 그들이 이제는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다. 그것은 결국 대중들에게 집단의 브랜드화가 아닌 개인의 브랜드화가 이루어졌기 때문과 동시에 결국 많은 소비자들이 더 이상 집단적 브랜드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 문제도 크다.
실력이 곧 브랜드
그렇게 사회적 요구와 흐름에 따라 요식업계까지 왔다. 예전 요식업과 방송의 만남은 '업장'그 자체에 있었다. 결국 '맛집'으로 홍보되기 위해 수억의 돈을 들여서 '집단'을 홍보했다. 사람들은 초창기 믿었던 '집단'에 대한 브랜드화에 수없이 배신당하며 점점 지쳐갔고, 더 이상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그 본질적인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즉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망적 매개체는 인간인 이상 사라질 수가 없기 때문에 꾸준히 관심을 받게 되므로 사람들은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식당을 파해치고, 더 확률이 좋은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고픈 욕망을 갖게 되었으며 이러한 욕망에 방송국이 발맞추어 힌트를 주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스타 셰프가 태어났다.
요리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그외에 요리를 직접 시연하는 프로그램에서 셰프들은 때로는 세상의 모든 요리를 통달한 듯한 달인으로 묘사되거나 혹은 따로 묘사할 필요가 없이 직접 눈으로 그 실력을 검증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서 보여준다. 어쨌든 그들은 지금까지 단순히 반찬을 재활용하는지 아닌지를 검증하는 것에 그치거나 혹은 매우 중요한 비법 양념만이 맛을 좌우하는 것으로 표현해왔던 요식업계의 맛의 비결을 셰프 그 자신의 스킬과 안목, 그리고 경험에서 오는 지혜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이는 시청자들의 시각적 검증과 방송국이라는 신뢰성 높은 메체의 특성을 타고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출연했던 셰프들의 식당 혹은 그들이 근무하는 식당은 소위 대박이 나고 있으며 이러한 열풍은 방송에 출연한 셰프에서 끝나지 않고 셰프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관심과 열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본의 중심에 자본 그 자체가 아닌 셰프라는 기능장이 자리를 차지하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보기 힘든 리버럴의 순기능이 이루어지게 되자, 그동안 불합리에 억눌려왔던 것들이 일거에 폭발한것일까? 갑자기 놓여진 이 사다리에 대한 자리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방송 수혜 제 1세대 셰프라고 할 수 있는 강레오가 지금의 제 2세대 셰프라고 할 수 있는 최현석을 디스했다는 풍문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셰프는 아니지만 요식업계가 집단적 브랜드에서 셰프로 방송 소재 주도권이 넘어가는 과도기를 지켰던 황교익까지 이 논쟁에 참전하면서 점입가경으로 흐르고 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이들의 이해관계는 사뭇 다르다. 강레오는 방송의 힘을 빌은 스타셰프 1세대다. 당시 셰프에 대해 방송에서 캐릭터를 부여하고 이용해먹기 위해 만든 그들의 role은 '엄하고 무서운 셰프'다 드라마 파스타에서도, 마스터쉐프코리아에서도 그들은 그렇게 그려진다. 이는 다분히 마스터쉐프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셰프 프로그램들이 미국이나 영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그대로 가져다 쓰다시피 했기 때문이며 특별히 셰프가 무서워야 한다는 어떤 방송 제작 철학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은 말 그대로 리얼리티였기 때문에 주방의 엄격한 분위기를 다큐 식으로 그대로 옮겨놓은 경우가 많았으며 강레오 역시 그 주방의 엄격함을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 일이었기에 특별히 가공할 필요 없이 편하게 연기하는 것이 가능했을것이다. 다만 이런 프로그램들은 말 그대로 다큐를 버라이어티화 시켜야하고 초반의 신선함을 후반부까지 이어나갈만한 지속적 소재공급에 한계가 있다. 한마디로 뿌리가 부실한 방송이었으며 당연하겠지만 이런 방송은 오래 가기 힘들다, 시청자들은 겉모습만 흉내낼 줄 알았던 이같은 프로그램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강레오가 잘못한것도 없고 시청자들이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다. 그냥 시청자들은 엄격한 프로그램만 계속 보는 것을 거부할 뿐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최현석은 이와 궤를 완전히 달리하는 스타셰프 2세대다 그는 그의 대표 출연 프로그램인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지금까지의 셰프와는 전혀 다른 role을 부여받는다. 물론 최현석 본인의 성향과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가 정말 요리할 당시에 허세스러운 액션을 취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일상의 그것보다는 훨씬 재미있게 방송에서 표현할 필요가 있었고, 그렇게 허세라는 캐릭터를 부여받았으며 이것이 시청자들에게 아주 제대로 먹혔다. 더구나 그런 허세만 가지고 있던 캐릭터 (김풍) 과 허세없이 묵묵히 실력으로 보여주는 캐릭터 (샘 킴) 사이에서 이른바 '병신같지만 멋있어'라는 갭모에 캐릭터를 발산하며 재미와 실력 모두를 어필하는 데에 성공한다.
필자가 굳이 비속어를 써가면서 최현석의 캐릭터를 표현한 이유가 있다. 강레오가 지적한 부분은 그의 인터뷰 속에서 나온 분자요리나 기타 장르의 다양성이 아니다. 다름아닌 자신이 했던 스타셰프 1세대의 '위엄'캐릭터를 왜 지키지 않았냐는 일갈이다. 즉 자신은 충분히 셰프의 위엄을 지켜가면서 방송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 위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왜 최현석은 그 위엄을 지키려는 노력 없이 다른 셰프들의 위엄까지 한번에 깎아버리는 악수를 두고 있느냐는 지적인것이다. 이걸 더 쉽게 말하면 이렇다
- 내가 너처럼 광대짓으로 명성을 떨칠 수 있는 걸 몰라서 안한 게 아니다 -
- 근데 너는 무슨 자격으로 요식업 선후배의 명성을 깎으아가며 너 하나 잘 살겠다는 광대짓을 하는 것이냐 -
여기에 황교익이 참전한 것도 매우 자연스럽다. 황교익은 아쉽지만 셰프가 아니며 자기 자신이 요리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요리평론가 사이에서도 정말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다시말해 황교익은 요리가 방송이나 미디어계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먹고살기 힘든 다소 절박한 위치에 있다. 황교익의 강레오 디스는 특별히 최현석을 편들기 위함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강레오 논리에 대한 전면적 비판임에 다르지 않다. 다시말해 방송판이 깨지면 셰프들은 지금 쿡방에서 주목한 극히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다시 깊은 어둠으로 숨어들어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질 것이며, 이는 결과적으로 황교익의 판까지 줄어들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 상황에서 누가 잘했느냐 잘못했느냐는 판단하기 힘들다. 각자 사정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최현석 역시 작가가 준 그 role을 매우 만족스럽게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따른다. 그는 전문 연기자가 아님에도 전문 연기자도 버거워할만한 어려운 캐릭터를 부여받았으며 그 캐릭터를 완전하게 소화하기에는 매우 많은 빈틈을 보이는 역량적 한계를 드러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만큼 매력적으로 기획되었던 허셰프 캐릭터는 당연하다는 듯이 시청자들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지금 그것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의 문제를 판단할 입장이 되지 못한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앞으로 나아가는 천우의 기회를 맞닥뜨린 사람에게 냉정함을 바라는 것은 사치다.
다만 강레오가 말한 '판을 깨는 것'이 과연 누구인지는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정말 셰프들이 받는 지금과 같은 관심이 현장의 분위기와 위계를 그대로 유지해야하는 정당성이 있는 것인지? 예능적인 캐릭터로 성공하는 것이 정말 요식업계 종사자 전체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고려해야 할 만큼 민감한지에 대해서 말이다. 강레오의 말처럼 요식업계의 엄격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성공할 수 있는 극소수의 게임이 되어야만 하는지 그의 표현대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셰프의 희화화라는 치트키를 쓴 최현석이 보여준 요식업계의 전반적 이미지 대중화가 향후 요식업계의 자존심을 말아먹는 것인지를 말이다.
이연복의 이 한마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다리가 만들어졌다. 어찌 보면 사다리는 반칙이다. 그동안은 높은 곳에 있는 사람과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 교류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사회는 어떤 분야이든 인적 자원의 정체를 낳는다. 주방에도 이른 바 서열이 있고 흔히 말하는 똥군기가 있었다. 그렇게 카스트화 되어 있던 그 카스트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강레오다. 그는 사다리가 놓여진 지금 상황에서도 장유유서를 고집했다. 주방의 서열 그대로를 가져가야만 적어도 경험이 적은 셰프들이 셰프의 타이틀을 달고 설치는 일이 없어질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은 것 같다. 마치 뿌리깊은 나무의 정기준과 같은 논리다.
공동화되어 있는 곳에 구세주처럼 내려온 사다리를 타는 데에도 순서가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촉발된 이 논쟁의 끝은 어디일까? 결국 그 논쟁을 마무리짓는 것은 대중일것이다. 물론 그 대중의 판단이 정녕 요식업계에 있어 옳은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굳이 대중이 특정 업계의 흥망까지 고려해가면서 그들을 소비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굳이 이 상황에서 슈퍼갑은 다름아닌 대중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그들에게 말한다. 요식업계의 문제해법은 당신들 스스로 찾으라고, 당신들 싸움에 애먼 대중을 끌어들이지 말라고, 그리고 이 판이 싫으면 떠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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