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2. 8. 5. 08:02

축구의 인기가 예전만 못했(었)다 2002 월드컵 이후 축구의 인기는 점점 시들해졌고,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국대 경기에 가슴을 졸이지 않게 되었(었)다. 표면적인 성적은 떨어졌지만 한국 축구는 계속 강해져만 갔는데도 말이다. 이제는 한낱 평가전 정도로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기 어려울 정도로 시청율마저 곤두박질쳤다.

 

왜 그랬을까? 예전에는 우리가 참 실력은 좋았는데, 이상하게 큰 대회만 나가면 편파판정을 당하거나 선수들이 몸이 굳어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채 뭔지 모를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왔기에 '도대체 우리나라는 언제 제 실력으로 맞붙는가'라는 탄식 속에서 항상 남들 앞에서 제 실력을 잘 못내는 답답한 아들을 둔 부모 마음처럼 타들어갔었다. 1948년 눈물이 멍든 가슴팍으로 떨어져 젹신 쓰라림부터 시작된 역사가 그랬다. 우린 늘 강하다고 자부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았고, 답답했으며 억울했다.

 

 

그런데 2006년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이같은 평가는 사라졌다. 우리는 스위스전의 그 마지막 편파판정을 끝으로 더 이상 제 실력보다 낮은 평가를 받지도, 강대국의 성적을 위한 정해진 대본의 희생양이 되지도 않았다. 당당히 원정 16강 진출자로서 축구 강국이 되어 있었다. 스타 플레이어도 있었고 팀 전원을 유럽파로 맞춰낼 수도 있었다. 더 이상 이변의 주인공이 아닌 제 실력으로 승부하는 축구 강국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정작 축구 강국이 되니 마냥 안타까워 감싸고만 싶었던 아들이 불쑥 커버린것처럼 더 이상의 보호본능이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른다. 우린 더 이상 승리에 절박하지 않았다. 이기면 즐겁지만 져도 더 이상 억울하지 않았다. 월드컵 16강전 당시 우루과이 수아레즈의 골은 완벽했으며 우린 사력을 다한 후회없는 경기를 펼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우리나라의 패배를 안타깝고 억울해하지 않았고 축구를 외면했다. 더 이상 안타까워해줄 필요가 없었으니까, 불의로운 승부는 더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번 올림픽은 분위기가 심상치않았다. 축구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상하게 각 종목의 몇몇 선수들이 실력에 반하는 억울한 일을 당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분노했다. 이 분노는 금방 식는 듯 했지만 차분하게 사람들 마음속에 쌓여가고 있었다. 식어갈만하면 또 한명의 억울한 희생자가 나왔다. 억울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이제 좀 선진국이 되었다고 믿었던 우리나라는 스포츠 외교에서 여전한 후진성을 보이며 약소국의 기억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만다.

 

 

 

아 우린 억울해도 아직 세계에 당당하게 말해줄 만한 힘이 없구나

우리가 우릴 스스로 못지키는구나

 

 

사실을 알건 알지 못하건 이런 사실은 조용히 그리고 확실하게 쌓여갔다.

그리고 오늘 그 악의 결정체와 약소국의 설움을 기억해낸 울분이 카디프시티에서 맞부닥쳤다..

 

사진제공 : 스포츠조선(www.sportschoson.com)

 

사람들은 전반 초반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설마 영국이, 개최국 영국이, 자존심 강한 그 영국이 그런 짓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영국은 절박했다. 절박함은 사람들을 악마로 만든다. 그들은 무슨 이유를 들어서라도 이겼어야 했던 모양이다.

 

전반 중반 우리나라가 한 골을 넣으며 앞서갈때만 해도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실력으로 승부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던 많은 사람들은 두 번째 패널티킥이 판정되는 순간부터 경기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랬다. 이 경기는 그 순간부터 그냥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니었다. 우리나라가 영국보다 나은지 아닌지를 판단할 이성적 룰이 어긋나버렸다. 영국은 이기려는 마음이 너무 강한 나머지 심판과 선수들을 악독하게 만들어버렸다. 우리는 그 악에 당할 처지였다. 패널티킥을 막아낸 정성룡과 그 정성룡이 부상을 당해 실려나가는 모습을 본 그 순간 이미 이 경기는 축구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번 올림픽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가슴속에 차분히 쌓아둔 국민들의 마음도, 뛰는 선수들의 마음도 똑같았으리라...

 

 

 

 

 

'이 새끼들...이기고 싶다!'

 

 

 

 

 

사진제공 : 스포츠조선(www.sportschoson.com)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한국 관객들의 눈빛도 달라졌다. 아마 티비를 시청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눈빛도 달라졌을 것이다. 이 경기는 더 이상 스포츠로서의 의미를 상실했다. 이미 스포츠로서 누더기가 되어가기 직전인 올림픽, 그걸 알면서도 표면적인 성공을 위해 묵인했던 영국이었다. 우리는 바로 직감했다. 이 경기마저 지면 우린 이 누더기같은 올림픽의 억울한 패전국으로 영원히 기록될지도 모른다고...

 

사진제공 : 스포츠조선(www.sportschoson.com)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손은 떨렸고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가슴은 옥죄여왔고 입은 마르다못해 타들어갔으며 체온이 떨어져 오한이 오기 시작했다. 뛰는 선수도 응원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오랜만에 10년 전의 이탈리아라는 거대한 악을 향해 싸우던 태극전사들을 응원했을때처럼, 우리는 응원에 힘을 주었고 120분동안 그라운드에서 혹은 TV앞에서 모두 함께 뛰었다.

 

악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심판은 언제부터인가 정상적인 판정을 하기 시작했다. 영국 선수들은 급격히 지쳐갔고 스포츠의 세련됨이 사라진 경기는 이미 그 가치를 잃은 채 난투극의 처절함만이 남았다. 그렇게 누군가는 이 승부를 가져가야 했던 그 상황에서 우리는 이 새끼들을 결국 이겼다.

 

사진제공 : 연합뉴스 (www.yonhapnews.co.kr)

 

 







축구는 이래서는 안된다. 어떤 이념적 울분에 대한 대리전이 되어서도 안되고 다른 외부 요인이 승부에 개입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우리나라의 축구 실력은 진보할 수 없고 전 세계에 우리가 강팀임을 어필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이 열기가 식으면 거짓말처럼 축구의 인기는 사그러들지도 모른다.

 













 

사진제공 : 스포츠조선(www.sportschoson.com)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축구인것을...

 

사진제공 : 스포츠조선(www.sportschoson.com)

 

그래서 난 여전히 축구가 좋다.

posted by RushAm 2011. 1. 29. 18:39
왕의 귀환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아시안컵 출정에 나선 태극전사들이 받아든 성적표는 3위다. 51년만에 우승을 노렸던 대한민국으로서는 아쉬운 성적일수도 있다. 아시안컵 우승을 열망했던 박지성을 비롯해 많은 기대를 걸었던 팬들까지 아쉬움은 더할 나위 없다. 그런데 조금 다른 눈으로 대표팀을 바라보면 의외로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목표를 이룬 듯한, 아니 오히려 목표 이상의 무언가를 남긴 듯한 모습이다. 이번 아시안컵은 물론 '우승'에 대한 강한 열망도 좋았지만 그 이전에 경기 하나하나 의미가 없는 경기가 없었고 대회 전체적으로도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이번 대회 슬로건이었던 '왕의 귀환'을 아주 훌륭하게 완수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2007년 대한민국 대표팀은 아시안컵에서 3위의 성적을 기록한다. 그리고 2011년 같은 성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일면 성적이 같기 때문에 그때에서 전혀 진화하지 않았거나 변화를 시도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지난 3위에 대한 평가와 이번 3위에 대한 평가는 질적으로 완벽하게 다르다고 생각한다.

지난 3위 당시 주요 스쿼드를 보자.

GK 이운재
DF 강민수 김상식 오범석 김치곤
MF 김치우 염기훈 김정우 김두현 염기훈
FW 이동국 조재진 이천수 최성국

2006년 월드컵에서 해외파를 빼고 당시 가장 포스가 좋았던 선수들로 구성된 이 팀은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스쿼드가 지금 2011년 아시안컵에 비해서 미드필더와 공격진만큼은 '무척 뛰어난' 수준이었다는 사실이다. 2006년 월드컵을 경험하며 프랑스 감독에게까지 극찬을 들은 조재진, 두말이 필요없는 아시안 킬러 이동국, 여기에 두 번의 월드컵을 경험하며 이미 없어서는 안될 아시안컵 대표팀 에이스 '이천수'까지, 해외파를 안 부르며 처음부터 대회를 '베어백 쫒아내기'로 일찌감치 테마를 내정한 축구협회만 아니었다면 아마 사상 최강의 스쿼드가 탄생할수도 있었다. 그정도로 공격력, 특히 아시아권에서의 공격력 레벨은 최상급에 가까웠다.

훗 가소로운 것들...


그런데 당시 베어백은 골문을 틀어막는 전략을 짜는데, 포백을 모두 내리고 이따금 오범석과 김치우의 오버래핑만을 남겨둔 채 압박 축구가 아닌 '압박 수비'를 선보이며 무려 630분간 무실점 기록을 세우는 한편 630분간 무득점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함께 세운다. 베어백이 지극히 수비적인 감독이어서 그랬을수도 있지만 당시 스쿼드를 보면 그의 총체적 고민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한마디로 '세대교체'를 이미 한 번 실패한 대표팀을 그대로 이끈 채 성적을 내야만 했던 어려움에 직면했던 것이다.

우선 공격진을 보자 선발로 주로 나섰던 조재진, 이천수를 대신할 서브 스쿼드는 누구였을까? 아직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던 이동국과 우성용이다. 조재진, 우성용, 이동국 모두 같은 스타일의 공격수여서 교체에 별다른 변화를 주기 힘들다는 점은 논외로 치더라도 즉 이 당시에는 이들 셋을 대신할 수퍼 서브로 적합한 선수가 없었으며 이들이 혹시 부상이라도 당하면 그나마 기대하기 힘든 공격진에 암울함을 가져다줄 것이 자명했다. 이들이 과연 적극적으로 몸싸움에 임할 수 있었을까? 혹은 그렇게 지시를 받을 수 있었을까?

미들진은 어떨까? 측면 공격 이외에 중원에서 중심을 잡으며 밀어줄 수 있는 선수는 김두현과 김정우 뿐이었다. 이호는 볼란치로 적합하지만 공격 전개 능력은 무척 떨어지는 평가를 받았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염기훈이나 김치우처럼 측면을 빠르게 파고드는 스타일 이외에 그들의 속도에 맞게 패스를 연결해줄만한 선수가 '김두현'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공격 전개가 잘 안될 때, 즉 김두현과 상성이 잘 안맞는 팀을 만나거나 김두현이 지치면 교체 카드는...이호나 김정우밖에 없다는 현실, 그렇다고 중원을 빼고 측면을 보강하면 그나마 불안한 중앙이 시원하게 뚫려버린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체력을 아껴야했으며 젊은 선수들의 오버래핑과 이동국, 조재진에게 맞춰주는 단조로운 뻥축구를 택할 수 밖에 없었던것이다. 왜냐 내 발에 쥐가 나면 팀이 암울해지니까


수비진은 아예 할 말이 없다. 왜 베어백이 욕먹을 각오를 하고 한국판 카테나치오를 전개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절절하게 보여준다. 한마디로 대표팀 붙박이 상징적인 누군가가 없었다. 지금 저 당시 포백을 이루었던 선수들 중 어느 누구도 2011년 아시안컵에 승선하지 못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이런 당시 포백에 수미로 김상식이 들어간 이유를 보면 당시 수비진의 불안감과 세대교체가 얼마나 힘겨웠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 마디로 선수단 전체가 안고 있는 '세대교체 실패'가 팀의 기록 3위, 630분 연속 무득점의 공격력 저하를 '가져올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만들었던 셈이다. 만일 수비가 안정되고 미들진에 변화를 가져올 만한 서브, 그리고 좀 더 젊은 공격 옵션들이 풍부했다면 당시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당시 공격력은 결단코 2011년 대표팀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리듯 수비진의 붕괴는 미들의 실종을 야기시킬 수밖에 없었고 공격진은 전혀 패스를 이어받지 못한 채 자기진영 깊숙히 내려가야만 했기에 특유의 스피디한 공격전개를 펼치기에는 정말 좋지 않은 조건이었다. 게다가 그토록 염원했던 골키퍼의 세대교체는 아예 엄두조차 못내던 상황, 2007년 대회는 우승을 하지 못하면 그대로 실패일수밖에 없었다. 세대교체의 의미도 없었고 그렇다고 대회에 대한 이렇다할 동기부여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4강 이상이 아니면 베어백 짜르겠다고 말한 엄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이런 팀을 다른 나라 팀이 무서워할리가 없다. 당시 아시안컵 대표팀은 마치 성문을 단단히 잠그고 농성을 하는 모양세였던탓에 공격진도 특유의 날카로움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로인해 상대팀에게 마음놓고 공격당해도 상대진영의 뒷공간이 열리지 않았다. 샌드백을 무서워하는 복싱선수는 없다. 가끔 너무 세게 치다가 그 친 반동에 얻어맞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누구도 샌드백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또 무서워해서도 안됐다.



지난 일 얘기는 이쯤 하고 이제 2011년 아시안컵 스쿼드를 보자

GK 정성룡
DF 곽태휘, 황재원, 조용형, 이용래, 차두리, 이정수, 이영표, 홍정호
MF 손흥민, 구자철, 이청용, 김보경, 윤빛가람, 기성용, 박지성
FW 지동원 김신욱

일단 젊어졌다는 건 다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우선 수비진부터 짚어보자
중앙 수비자원이 정말 엄청나게 많다. 아니 아예 이영표와 차두리를 빼면 전원 중앙수비자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번 대회는 곽태휘의 퇴장과 부진도 있긴 했지만 중앙 수비진의 조합을 의외로 굉장히 자주 갈아치웠다. 경험많은 이정수를 기본적으로 고정시킨 뒤 이정수와 호흡을 맞추는 최적의 조합을 찾거나 혹은 우즈백이나 호주같은 장신 공격진을 대비해 제공권이 좋은 센터백 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느냐면 각 센터백들이 파이터형이나 제공권 장악, 안정적인 게임운영, 몸싸움에 능한, 공격전개 능력 등 제각각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기에 어떤 스타일의 팀에도 대응할 수 있는 맞춤형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유래없는 메이저 대회에서의 센터백 로테이션 시스템은 '이 선수가 없어도 된다'라는 팀 내부의 심리적 안정감을 도취시키기 위함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상대에 맞게 스쿼드를 짤 수 있는' 자원을 만들기에 아시안컵만큼 이상적인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장신과 몸싸움에서는 유럽팀 못지않은 호주, 패싱게임으로 뒷공간을 노리는데 능한 일본, 빠른 스피드와 밀리지 않는 떡대로 악명높은 이란 그리고 홈 텃세와 맞먹는 텃세와 압박을 이겨내야 했던 바레인, 다득점을 노려야만 했던 인도전 모두 버릴 게임이 하나 없는 완벽한 시험무대로 부족함이 없었다. 이기는 것은 공격에 의한 골이지만 그 골을 만들기 위한 시작은 상대로부터 수비가 공을 빼앗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조광래 감독은 가장 먼저 상대의 맥을 끊을 수 있는 수비 전술에 골몰하여 고정된 수비의 조직력과 함께 '상대 맞춤형 수비자원'을 골라내는 데에 역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금까지의 고질적인 수비불안을 달고 살았던 한국 대표팀에게는 정말 고무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는데, 특히 이정수가 없었던 대 일본전에서의 조합은 조광래감독이 의도했던 바가 아주 제대로 드러난 일전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역사상 수비진들이 이렇게 주전 자리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 베어벡감독에겐 강민수가, 허정무 감독에게는 조용형이 있었다. 지금 조광래 감독의 수비수 황태자는? 없다. 지금까지 공격과 미들에서만 이루어지던 주전 경쟁이 수비진에서 그 이상으로 불꽃튀기고 있다.

미들은 또 어떤가? 갑자기 포워드에 가있어야 할 애들이 미들에 바글바글하다. 수비형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의 경계를 없엔 탓에 스쿼드 자체는 수가 적은 편이지만 내가 내 포지션을 뱃기면 전혀 관계없는 선수의 다른 포지션을 빼앗아버리는 그야말로 먹이사슬 솥발의 형세(?)가 되고 말았다. 네가 아니면 내가 있다는 것, 수비진에서의 붙박이 경쟁과는 또 다른 경쟁, 그리고 협력을 야기했다. 게다가 기성용이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조금만 시원찮으면 느닷없이 수비수 엔트리의 홍정호와 이용래가 기성용 자리를 노리며 어슬렁거린다. 그런 기성용이 슛같은 패스를 찔러주면 이청용은 이제 혼자 뛰어들어가지 않고 손흥민과 함께 뛰어들어갈 수 있다. 이전에는 박지성의 활동량을 누구도 따라가지 못해 박지성이 휘젓고 다녔지만 이젠 구자철이 같이 호흡을 맞춰준다. 이런 호흡은 선수에게 있어 체력적인 문제를 뛰어넘는 안심감을 선사한다. 몸이 쌩쌩할땐 저 자식이 언제 내 자리를 치고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지만 그 반대로 자신이 몸이 안좋으면 스스로 '자신에 버금가는 라이벌'로서 자기 자리를 매워주는 안심감을 갖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성향의 선수가 함께 호흡을 맞춰줌으로 인해서 '내 플레이를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선수'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예전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정말 수차례 볼 수 있었던 '크로~스....아 근데 아무도 없네요'를 이번 대회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래서 이번 대표팀을 아시아의 스페인이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격진을 과감하게 포기한 것도 특징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표팀 공격진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그리고 하는 족족 욕을 먹었다. 공격수가 패스를 받아서 가능한 빨리 골을 만들어내기 위해 전방에서 기다리면 전방에서 어슬렁거리기만 한다고 욕먹고, 수비를 도우러 가거나 2선이 너무 쳐저있어서 하프라인까지 내려오다가 전방으로 날아가는 뻥패스를 놓치기라도 하면 공격수가 자기자리나 지키지 왜 뒤에서 어슬렁거리냐며 욕을 먹었던 게 우리나라 공격수들의 숙명이었다. 이렇다보니 골 결정력이 높아질수가 없다. 전방으로 들어오는 패스는 가능한 빠르고 정확하게 공격수에게 전달되어야 공격수가 그 정확한 패스를 받아서 더 정확하게 힘을 실어 골문으로 향할 수 있는데 이 말로는 한없이 쉬운 이게 지금까지 안 됐다는 거다.

조광래 감독은 이게 가능하게끔 만들기보다 아예 안하면 안되게끔 만들었다. 이름만 미드필더인 공격수들을 대거 미들로 쳐지게 만들고 공격수 (원톱) 역시 그들과 함께 뒤섞이게 만든 것이다. 이른바 제로톱 전술이라 불리는 이것은 상대에게 엄청난 혼란을 야기하는 반면 최종 화룡점정을 찍는 사람의 부담은 한층 덜해진다. 예를 들어 원톱이 반드시 정해야 하는 경기에서 원톱에게 크로스가 올라오면 원톱은 어떻게든 '내가 제일 앞에 있으니 내가 이걸 슛까지 연결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재대로 발에 맞추지 못하곤 했다. 그걸 조광래 감독은 '자신이 없으면 볼을 돌려라' 는 식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주변에 돌아보면 다들 자기보다 골을 잘 꽃을 녀석들이 주변에서 나한테 패스 달라고 으르렁대고 있는 상황이니 원톱은 볼을 받아도 당황하지 않고 한결 마음이 편해질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백날 이런 전술이 먹힐 리가 없다. 가끔 상성이 안맞는 팀도 있다. 주로 경험많은 볼란치와 센터백이 패스 흐름을 읽고 끊어버리는 식의 플레이에 익숙한 선수가 많은 팀이 그렇다. 이번 일본 대표팀이 대표적인데 이런 팀을 만나면 으르렁댈정도로 신명나던 미들의 분위기가 바로 죽어버리고 경기가 답답해진다. 이런 경우에는 다소 단조롭더라도 확실히 골을 결정지을 수 있는 전술로 수정할수밖에 없다. 그게 가능한 옵션이 '김신욱'이다. 크다는 것 그건 농구선수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물론 좋은 결과를 내진 못했지만 조광래의 이런 공격수 조합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시험무대에 오를 것이고 신기하게도 국내에는 축구 유망주들 사이에 '박지성 붐'이 일어 키가 작고 활동량이 뛰어난 유망주만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풍도여서 이런 아예 대놓고 세워버리는 장대 공격수가 정말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번 아시안컵만으로 김신욱을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장대들과는 좀 격이 다른 것 같다


이런 팀은 상대에 있어서는 공포 그 자체다. 특히 감독에게 엄청난 부담감을 준다. 그 대표적인 경기가 바로 '이란전'이다. 압신 고트비의 자신감은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니었지만 그는 '손바닥 들여다보듯 잘도 들여다보이는' 한국 대표팀에게 단 한골도 넣지 못한 채 끌려다녔다. 제대로 정착도 안된 센터백에게 번번히 막혔고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온 이용래의 커팅에 번번히 흐름이 끊겼으며 느닷없이 후보로 데려왔을 윤빛가람에게 한방을 먹었다. 몸싸움에 자신있는 이란이, 경기 흐름을 끊고 호흡을 괴롭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이란이 이번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패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아시안컵 대한민국 대표팀이 감독으로서는 정말이지 만나기 싫을 만큼 괴로운 상대였다는 것이다. 도무지 예측이 안되기 때문이다.

이는 수비진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공격진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예전에는 대한민국 상대팀들의 전술이래봐야 별거 없었다. 그냥 '이동국을 막아라'였다. 정말이었다. 진짜 이동국만 막으면 어쨌든 됐으니까, 즉 누가 골을 넣을지 대략 정해져있었다. 대략적이긴 하지만 공격도 예측이 되던 팀이었다는 것이다. 2006년 이후 골결정력 부족을 지탄하던 언론들에서 늘상 듣는 이야기가 '대표팀 득점이 공격수보다 미드필더 심지어 수비수가 더 많은 경우도 있다'였다는 것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제로톱이라고 공언을 했다. 게다가 나오는 선수들은 죄다 신인, A매치 득점 기록도 별로 없다. 다들 가슴팍에 MF라고 쓰고 '나 사실 미들이야'라고 기만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러니까 정신이 없다. 그나마 A매치 득점이 제일 높은 지동원을 좀 막다보니 구자철에게 털렸다. 중앙의 구자철을 막다보니 손흥민과 이청용이 싸대기를 쳐댄다. 떡대로 아예 들어올 루트를 막아버리니 뜬금없이 이름만 대따 긴 윤빛가람이 뒤에서 캐논을 쏴댄다. 애들 다 싸잡아 막으니까 오른쪽에서 치이면 최소한 폐차가 확실해질 듯한 덤프트럭 한 대가 밀고 들어온다...우리나라를 상대했던 감독과 코칭스텝은 아마 한국과의 경기 전 미친듯이 골머리를 앓았을거라고 생각한다.

덤프트럭의 위엄.jpg


게다가 이번 대표팀은 세대 교체에 있어서도 대단히 이상적인 방안을 제시했는데 다름아닌 '2014년까지 뛸 선수와 그렇지 않을 선수'를 정확하게 구분해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차두리와 이정수는 동갑내기 황재원은 이들보다 한 살 어리다. 이들의 나이는 각각 30,31살이고 이들이 2014년 월드컵이 되면 각각 33,34살이 된다. 수비수로는 나쁘지 않은 나이다. 즉 이들 셋을 포함해 이들 나이와 +-1,2살 정도의 나이차이가 있는 다소 애매한 노장들은 얼마든지 이들과 주전경쟁을 할 수 있고 그들이 잘만 하면 지금의 강한 세대교체 바람 속에서도 노장으로서 2014년 월드컵을 바라볼 수 있다는 아주 정확한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무조건적으로 나이 많은 선수를 은퇴시키고 장기 플랜이라며 젊은 선수들만 우겨넣었을때의 혼란을 막고 젊은 피와 노장 사이에 끼어버린 애매한 나이대의 선수들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주는 그야말로 안정성과 신선함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세대교체안을 보여준 것인데 이는 비단 수비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소 이정수보다 나이가 어리다면 얼마든지 지금의 젊은 로리로리 대한민국 대표팀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그동안 감독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눈치만 보며 그에 맞는 선수들은 눈에 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던 인재 파이의 편중성을 일거에 넓히는 파격을 암묵적으로 단행한 셈이다.

그리고 '아시안컵같은 하찮은 대회에 박지성을 부르지마!'라는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이영표와 박지성을 불렀다. 여기에서 조광래 감독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소문이더라도 이미 은퇴 의사를 몇 번이고 표명한 이영표와 박지성을 왜 '플랜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안컵에 끼워넣었을까? 앞서 설명대로라면 2014년에 데리고 갈 선수가 아니라면 차라리 넣지 않고 그들이 없을 때 메이저 대회를 어떻게 치뤄내야 하는지를 감독과 선수 스스로 깨우쳐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데 조광래 감독은 그렇지 않았다. 여기에는 박지성과 이영표의 존재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인정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들의 플레이가 이미 대표팀 자체의 상징이 될 만큼 깊숙히 침투해 있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이영표가 없으면 단지 플레이 스타일이 다른 선수일 뿐인데도 '이영표처럼 막지 않는다'며 팬들이 불안해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박지성의 플레이도 마찬가지아다. 그만큼 플레이 이상으로 존재감이 큰 이 둘을 대체하기 위해 아직 이들과 전혀 뛰어본 적이 없는 신인들의 눈과 몸 그리고 직접 맞부딪히며 배우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이들을 이번 대회를 통해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게끔 기회를 주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 둘이 각각 자신의 플레이를 이식시킬 (굳이 이식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배울) 선수를 각각 뽑는데 바로 '구자철'과 '홍정호'이다. 구자철은 말이 필요없는 성장 가능성 무한에 의외로 높은 체력까지 갖춘 복합적 테크니션으로 성장이 기대되는 선수, 홍정호는 수비수 중 가장 젊은데다 중앙, 좌, 우 심지어 볼란치까지 수비진을 아우르는 멀티플레이어이다. 이영표처럼 재빠르게 맨투맨으로 맞붙어 압박을 가중시키는 타입이라는 점, 키가 작고 날렵한 오버래핑도 기대할 수 있다는 점, 나이에 비해 매우 의젓한데다 챔피언결정전까지의 큰 경기 경험도 있는 관록형이라는 점이 이영표의 후계자로 부족함이 없다. 예전 홍명보가 은퇴할 때도 그가 없는 대표팀은 상상할 수 없었고 지금도 이영표가 없는 대표팀은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성장 가능성은 물론이고 어린 나이에 팀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침착함까지 갖춘 홍정호가 앞으로 이영표의 존재감을 어떻게 매워 나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될 정도다. 게다가 여기에 뭐든 가르치면 잘도 흡수하는 떠오르는 대세 '손흥민'까지 가세해 이번 대회를 풀로 소화하며 이들에게 배운 양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경험을 배운 손흥민이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수 있을까? 그들의 은퇴에 대한 충격을 얼마나 순화시켜 줄 수 있을지 혹은 더 뛰어넘는 존재감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벌써부터 이번 대회로 급성장한 그들의 활약상을 볼 기대감을 감추기 힘들다.


왕은 반드시 왕좌에 있어야만 왕이 아니다. 왕이라도 허수아비가 있고 왕이 아니라도 실세를 쥐며 상대국에게 강한 카리스마를 주는 것이 '왕'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메드베제프 대통령으로 바뀐 지 벌써 몇년인데 아직도 푸틴 없는 러시아는 상상할수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왕은 존재 그 자체로 공포여야 하고 강함이 느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왕의 귀환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일본이 우승하던 호주가 우승하던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한국은 어떤 선수가 무서운 팀이 아니라 이미 팀 자체가 '무서운 팀'이라는 이미지를 회복하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팀이 무섭다는 것은 '이번 아시안컵의 팀'이 무섭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저 팀은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는 미래지향적인 공포이기 때문이다. 즉 대한민국은 더 강해질 수 있고 그 강해지는 속도에 발맞춰 안정감도 갖출 수 있는 플랜도 제대로 제시하고 있는 그야말로 '빈틈없는 강함'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아 전역에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것들이 가능할 수 있었단 것은 조광래 감독 혼자만의 능력도 아니고
우연히 좋은 선수가 지금 막 쏟아져 나왔기 때문도 아니다.
조광래 감독도 좋은 전술로 장기적인 플랜을 통해 팀을 강하게 만들 미래지향적인 발상을 가지고 있고
선수들도 그런 감독을 믿고 미래의 대한민국 대표팀에 과감하게 투자하며 몸이 부서져라 뛰었다.


왕의 귀환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이번 왕의 공포정치는 당분간 계속 아시아 전체를 긴장시킬 것 같다는
기분좋은 예감이 든다.

그들의 귀환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앞으로의 더 넓은 세상에서 세상을 호령할 왕의 위엄을 기대해보며 글을 마친다.
posted by RushAm 2011. 1. 26. 14:34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정말 많은 분들이 죽거나 다쳤다. 무려 자국 국민이 죽거나 다친 어마어마한 일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은 시금털털하게도 '다음에 또 그러면 진짜 죽어!' 였다. 이건 뭐 초등학생 싸움도 아니고 그런 협박이 먹힐리가 없다. 이런 시금털털한 대응으로 우리나라는 연평도 희생자에 대한 책임을 북한에게 물어볼 기회를 전혀 얻지 못한 채 북한 정책에서 철저히 배제되는 수모를 당한다. 뭐 하나 속시원히 말 한마디라도 제대로 해서 연평도 주민들에게 '우린 앞으로 국가가 이 정도로 철저하게 해주니까 안심하고 여기 계속 살아도 되겠구나'라는 확신을 주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건 비단 최근의 일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요구할때도, 독도 문제에 있어서도 언제나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라는 저자세를 취하며 국민들의 울화통을 터뜨리곤 했다. 아주 글로벌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었다. 당해도 뭐 하나 속시원하게 한마디 못하는 글로벌 호구, 그걸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지금은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타이틀로 자위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기성용은 젊다. 사실 일제강점기를 거쳤던 세대에 비해 최소 3세대 이상 떨어져있다. 당연하겠지만 일본인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관해서는 그다지 와닿을만한 세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기성용이 그런 세레머니를 했다. 그는 이미 셀틱에서 뛴다. 셀틱은 인종차별로 악명이 높은 클럽이다. 그가 그런 설움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그가 그걸 했다. 그런 그에게 '넌 셀틱에서 인종차별 당해도 싸'라고 말한다고? 그럴 리가...



기성용은 '라이벌'로서 일본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아무 철없는 행동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단 '인종 차별'이라는 게 말이 안된다. 기본적으로 같은 황인종끼리 인종차별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대방을 비하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일 그것이 일본을 비하하는 세레머니였다면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훨씬 더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어야 한다. 이건 '이겼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그런게 아니라, 보도 자체를 할 때 '한국은 이런 식으로 졸렬한 짓을 했는데 우리 선수들은 그걸 참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결국 이겼습니다'라고 보도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거다. 왜냐하면 이들이 그것에 대해 반응을 한다면 스스로 이미 '원숭이'라 불리우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 되니까 누워서 침뱉기가 아니던가? 기성용이 정말 여기까지 계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은 이 세레머니에 한방 먹었어도 이렇다할 말 한마디 못하는 지경이 되고 있다.

그 증거가 바로 지난 한일전에 대한 일본 TV들의 보도 행태이다. 정말 마르고 닳도록 보여주고 있는 하이라이트에서 '기성용'의 패널티킥 골은 단 한번도 재방송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일본 골만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동점골은 제대로 보여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결국 그들은 그걸 보여주면 국민들 모두 '큰 타격'을 받을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금 그 세레모니가 결국 외교문제로 비하될 것이 '두려웠던'것이다. 일본은 지금 그 세레머니 하나로 '우리나라'에게 쫄고 있다. 여태까지 기성용만큼 노골적으로 일본에게 한방 먹인 선수가 있었던가?

기성용의 한 방이 아니라, 몇 수천방을 먹여도 성에 안차는 게 우리나라 역사다. 축구는 국수주의가 아니라지만 한편으로는 자국주의에 기반하기도 한다. 폴란드 선수가 독일에서 뛰면서 자국 폴란드에 골을 넣은 뒤 침울해하는 것, 아르헨티나가 잉글랜드에게 진 뒤 락커룸에서 통곡을 하는 것 모두 자국주의에 기반한다. 즉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우리나라가 더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로 축구다. 이런 축구에서 일본에게 예의를 차리는 것은 사치다. 어느 누구도 전쟁의 직접적인 가해국에게 피해국이 예의를 차리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기회가 있을 때 가능하면 더 비웃어줄 필요가 있다. 그게 아주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원래 축구였고 한일전이었으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한일정기전을 위해 대표팀을 꾸린 이유도 '축구만큼은 일본애들을 확실히 이길 수 있습니다' 라는 자신감에서 나온 게 아니던가?


기성용 잘했다. 정말 잘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누가 뭐래든 기죽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