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9. 03:18
이 글은 '상'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안읽으신 분들은 클릭
전편에서 소개드린 대로 일본 시장에서 보여준 동방신기의 2009년 당시 가치는 이전 보아가 보여줬던 그것과는 실로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판매량만 가지고는 보아가 더 나은 성적을 거두었겠지만 음반 시장의 침체 속에서 '살아남았다'라는 의미는 한층 그들의 위상을 독보적으로 만들어주었고 이는 단지 '한류'로 치부할 정도의 수준을 이미 뛰어넘은 상태였죠. 동방신기의 팬층은 겨울연가를 본 부모 세대를 가진 포스트 한류세대를 포괄하고 있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이들은 이미 한류 매니아로서가 아닌 동방신기의 음악, 맴버 개개인의 매력에 빠져 있었고 이는 2009년 상반기 남성 연예인 앙케이트에서 영웅재중이 1위를 하는 등 동방신기 맴버들이 아라시 맴버를 제치고 상위권을 휩쓸었다는 점이 증명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동방신기의 해체를 둘러싼 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음악계에 있어서 동방신기는 양날의 검이었죠. 일본 가요계가 침체되는 와중에 동방신기가 지금의 페이스대로라면 톱 아이돌 반열에 오른 아라시를 그대로 제껴도 이상하지 않다는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일본 가요계를 한낱 외국 가수에게 점령당한다는 것은 가뜩이나 유력인사의 자이니치 컴플랙스에 오랜 홍역을 치루었던 민족적 열등감의 표본 일본에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냥 동방신기를 처내자니 그나마 명맥을 맞아주고 있는 음반업계가 그야말로 폭삭 주저앉아버릴 수도 있다는 고민이 있었죠. 이도 저도 못하는 진퇴양난이었고 그 누구라도 쉽게 결정내리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여기에 SM의 지분 요구가 맞물리게 됩니다. SM은 사실 기대 이상으로 커진 동방신기가 지금까지의 계약 조건으로 인해 손 안대고 코풀듯 가만히 앉아서 돈을 가져다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음에 분명합니다. 한국 활동에도 그렇게 큰 돈이 들어가지 않았고 일본 활동에서 얻은 수익의 일정 부분은 앉아서 챙기는 셈이니 그걸 놔줄 리가 없었겠죠. 아이돌 주기 5년 그리고 동방신기는 그 주기를 일본 진출의 성공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로 극복해낸 신선한 케이스를 제시하며 SM을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SM은 5년 후 그들이 뜨던 말던 재계약에 있어 매우 인색한 조건을 내놓는 것이 거의 당연시되던 풍토가 만연해있었으니까요. HOT가 그랬고 신화가 그랬습니다. 당시에는 기껏해야 국내 시장에서 놀던 우리나라 아이돌 업계였으니 국내에서는 방송국 쉐어까지 조절하며 제왕으로 군림했던 SM의 견제를 당해낼 수 있을 기획사가 있을리 만무했던거죠.
하지만 동방신기의 경우는 조금 달랐던게 일단 자신들이 가진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 가치를 잘 발휘해줄 쪽이 어느 쪽인지도 확실하게 의견이 정해진 상태였습니다. (여기에서 맴버간의 의견이 갈렸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게다가 무대가 SM이 결코 강점을 보일 수가 없는 '일본'이었기에 사실상 이들이 계약 조건을 저울질할수있는 여건이 마련이 되어 있는 상태였죠.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남은 것은 사실 SM보다 AVEX쪽이 동방신기라는 타이틀을 몹시도 필요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동방신기라는 타이틀을 뺏기는 것은 물론 AVEX로서는 가장 바라지 않았던 팀의 해체와 그간 공들여 쌓아왔던 동방신기에 대한 인지도마저 반토막이 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는 것입니다. AVEX가 흔히 실드를 쳐주거나 거액을 제시해서 JYJ가 돈 때문에 SM소속사를 버렸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고 있습니다만 위에 말씀드린대로 이미 AVEX는 빚더미에다가 사실상 동방신기가 먹여살리는 모습이 되어있는 셈이었으므로 거액을 배팅할만한 여력이 되지 못합니다.
게다가 AVEX는 앞서 든 의혹이 사실일 경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일본 가요계에서 더 이상 동방신기가 동방신기인 채로 성장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방해받았다는 느낌을 감추기가 힘듭니다. 사실상 동방신기가 활동을 중지하고 JYJ로 근근히 활동한 지난해 오리콘이 발표한 2010년 통산 연간 음원 매상 랭킹을 보면 보다 더 확고해지는데요.
1위 아라시 - 197억엔
2위 동방신기 - 98억엔
3위 AKB48 - 70억엔
4위 EXILE - 60억엔
사실상 일본 내에서 동방신기라는 이름이 완전히 사라진 원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방신기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앨범, 싱글 판매 수익이 아라시의 절반에 육박하며 2위를 고수합니다. 올 한해 TV에서 수도꼭지 역할을 톡톡히 하며 한 사람당 몇천장씩 사제끼는 오덕머니 파워를 자랑한 '산 사마의'AKB48조차 이미 사라진 '죽은 제갈공명'동방신기를 이길 수 없었다는 것이죠. 게다가 이 동방신기 음반 매출은 JYJ나 시아준수의 개인 싱글을 포함하지 않은 수치인데다가 바로 해체하기 직전인 2009년 이미 아라시와 불과 몇십억 차이로 좁혔었다는 것을 감안해볼 때 올해 만일 동방신기가 해체하지 않은 채로 활동을 지속했다면 아라시가 두배 가까운 스코어로 독주를 할 수도 없었을뿐더러 심지어는 엎치락뒤치락하는 1,2위 싸움까지 예상해볼 수 있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결과로서 나타난 동방신기의 위력과 그들의 해체로 인해 아라시라는 자존심을 지켜낸 일본 가요계,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AVEX가 과연 자금적인 문제 이외에 다른 압박으로 인해 동방신기와의 제계약이나 동방신기를 원상복귀할 수가 없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다소 위험한 추측을 해봅니다. 일본이 가장 무서워할수밖에 없을 자이니치 컴플랙스, 그들의 경제가 완만한 하향세를 거두고 있는 지금 세계적인 시장을 과시했던 음반 가요계마저 한국에게 추월당할경우 정신적인 타격이 클 거라는 것을 이미 예상했던 것일까요?
이런 내홍을 겪는 와중에 SM과의 동방신기 쟁탈전 분쟁을 능동적으로 처리할만한 역량이 AVEX에게는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정말 공교롭게도 동방신기 분쟁이 일어나는 그 시기에 일본 검찰은 AVEX의 고무로 테츠야 사장을 구속 수감하였으며 동방신기 사태가 결국 팀의 분할로 일단락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무로 테츠야가 일선에 복귀하는 우연치고는 참 구리구리한 일도 일어났습니다. 선장이 없는 상황에서 SM과의 대결이 사실 그리 유리하게 진행되었을리도 없고 AVEX는 이미 5억엔 사기사건으로 인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상태여서 맘놓고 거액을 배팅할만한 능력도 있지 못했던 것이죠.
사실 지금 SM이 소녀시대를 들고 일본에서 마케팅을 할 때 쓰는 자금력을 보면 분쟁 당시 SM이 AVEX보다 자금력이 강하면 강했지 못해보이지는 않습니다. 감히 추측컨데 JYJ를 포함한 동방신기 맴버들은 AVEX보다 SM에서 더 많은 금액을 제시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이미 SM은 상장사로서 기업공개가 되어있고 예전처럼 이면 노예계약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짓기에는 사람들의 관심과 보는 눈이 너무 많아져 쉽지 않은데다가 지금 한창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소녀시대를 붙잡을때를 대비한 회사의 도덕적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동방신기에 대한 권리를 지키는데 돈을 아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이 너무 스트레이트하게 나게 됩니다만 결과적으로 JYJ는 일본에서 지금과 같은 활동이 이루어지길 원했으며 일본 기획사와 계약했지만 종속되지 않는 자유계약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곧 일본 시장에 있어 SM의 매니지먼트를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약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SM과 AVEX 모두 이 업계에서는 큰 손인데다가(채권단 역시 AVEX가 무너지는 걸 원치 않는 한 동방신기의 제계약에 돈을 쓰는 걸 아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동방신기에 대한 가치를 양쪽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돈 몇푼 차이로 양쪽이 갈라졌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거든요. 그럼 정말 현재 동방신기에 남은 두 명은 적은 계약금으로 지금까지 키워준 의리를 생각해서 남은 것일까요? 왜 하필 한국에서는 인기의 중심에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다른 맴버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었던 창민과 윤호 두 사람만이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SM은 지금 사태에 대해 변호해줄 우군이 몹시 필요합니다. 아이돌이 상당한 권력을 쥐게 되는 연예계에서 모처럼 소녀시대를 통해 예전의 주도권을 되찾은 모습의 SM이 지금까지 논란이 되어왔던 노예계약 이미지를 어서 탈피하고 순수한 피해자로서 지지를 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동방신기가 5명인 채로 남길 원했던 건 일본 뿐만이 아니었으니까요 SM은 과정이 어찌되었던 동방신기 팬들에게는 '조용히 있던 5명을 갈라놓은 원인'으로 비추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변명을 한답시고 AVEX가 약아빠진 회사라고 주장하기엔 한국에서 AVEX에 대한 아무런 인지도가 없기에 상대로서 적합하지 못하기에 지금의 JYJ에 대한 SM내외의 수많은 사람들의 디스는 SM이 차마 일본 시장까지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지언정 지금은 소녀시대로 인해 다시 대한민국 연예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힘을 과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음악을 듣고 아이돌을 보면서 문화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은 이런 복잡한 문제를 굳이 일일히 알아가면서 들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문화 산업이 비즈니스적으로 성숙하지 못했음은 물론 우리나라가 과시하던 '한국인의 정'조차 지켜내지 못한 야비하기 짝이 없는 진흙탕 싸움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문화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그때그때 좋은 음악이 나오면 되는 인스턴트 소비만이 아닌. 당장 시장성이 없더라도 내가 학창시절때 좋아했던 그룹, 가수가 20년 30년 후에도 비록 춤을 추지 못하고 그때처럼 몸이 날렵하지 않더라도 그때 그 노래를 느린 노래라도 불러주며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추억하는 기쁨도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일 것입니다.
마치며..
지난해 연말 미국 시카고에서 연말을 보낼 당시 TV에서는 미국의 연말 가요제 같은 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익숙한 가수들이 줄이어 나온 뒤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한 그룹은 다름아닌 결성된지 20년도 넘은 이미 아저씨돌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뉴 키즈 온 더 블록'이었습니다. 보는 관객들은 이 '한물간'아이돌이 보여주는 몸짓과 그때 그 당시 히트했던 '전형적인 아이돌 음악'을 들으며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벌써 4개 이상의 그룹이 세대교체를 할 동안 뉴 키즈 온 더 블록은 여전히 무대에 그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과 음악에 미국의 문화소비자들은 충분히 열광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미국이 신인 그룹이 말라버려서 과거의 그룹을 억지로 부른것일까요? 세계 최대의 음반 시장을 가지고 있으며 위클리 100위 안에 드는 게 경사가 될 만큼 하루에도 수십명의 신인들이 나왔다가 사라지는 세계 제일의 음반 시장을 가진 미국이 뭐가 아쉬워서 '퇴물'을 피날레 무대에 세웠을까요?
박용하의 죽음에 '평생 잊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며 울먹이는 일본 아주머니, 겨울연가 종영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런 활동 없이 인지도를 이어가고 있는 배용준을 좋아하는 일본 아주머니들을 보며 '아 저 분들은 참 한가하기도 하구나'라고 생각할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한번 좋아하면' 그가 '내 눈앞에서 당분간 없어지지 않고 계속 함께 해줄 수 있을' 그런 아이돌이 나와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7080가수들만이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태지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들 god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들, 아이돌 음악이지만 그 곡들 중에서도 국민가요가 되었던 명곡들이 적어도 한두곡씩은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지금의 7080세대가 되었을 때 추억할 수 있는 노래를 불러줄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 지금 7080세대들이 누리는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은 매우 슬픈 일일테니까요.
요즘 세상에는 '오래 되어도 여전히 좋은'음악이 없다고 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자자의 버스안에서, 미스터투의 하얀겨울이 지금까지도 리메이크 되고 있지만 그 곡들이 발표될 당시에는 그저 트랜디 가수들이 부르는 대중가요였을 뿐이었으니까요. 지금 나오는 음악들 중 어떤 게 레전드로 남아서 오랜 기간 사람들 귓속에 남아 그때를 추억하게 만들어줄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음악은 없습니다. 누군가에겐 하찮게 들리는 음악과 가사 한 소절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정말 큰 의미로 다가와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넣으려는 손을 멈추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음악의 가치는 그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정하는게 아니라 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정한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그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좀 더 오래 볼 귄리가 있으며 문화 소비자로서 그것을 가요계에 당당하게 요구해야만 합니다.
5년 뒤에는 사라질테니까 진심으로 좋아해봐야 나만 상처받는 그런 가요계가 아니라..
언제까지고 내 청춘을 들려줄 그런 가수들로 남아줄 것을 약속할 수 있는 가요계와...
그 약속에 부응하여 언제까지고 그들에게 지지를 보내줄 수 있는 오랜 팬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해저 이제 흠 잡을데가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 음악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별기획 4부작 '대한민국 아이돌 산업을 말한다'를 마칩니다.
4부작 기획 '대한민국 아이돌 산업을 말한다' 목차
제 1부 : 계약
제 2부 : 기획사
제 3부 : 2PM, 동방신기
제 4부 : 쟈니즈, 에이벡스
전편에서 소개드린 대로 일본 시장에서 보여준 동방신기의 2009년 당시 가치는 이전 보아가 보여줬던 그것과는 실로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판매량만 가지고는 보아가 더 나은 성적을 거두었겠지만 음반 시장의 침체 속에서 '살아남았다'라는 의미는 한층 그들의 위상을 독보적으로 만들어주었고 이는 단지 '한류'로 치부할 정도의 수준을 이미 뛰어넘은 상태였죠. 동방신기의 팬층은 겨울연가를 본 부모 세대를 가진 포스트 한류세대를 포괄하고 있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이들은 이미 한류 매니아로서가 아닌 동방신기의 음악, 맴버 개개인의 매력에 빠져 있었고 이는 2009년 상반기 남성 연예인 앙케이트에서 영웅재중이 1위를 하는 등 동방신기 맴버들이 아라시 맴버를 제치고 상위권을 휩쓸었다는 점이 증명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동방신기의 해체를 둘러싼 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음악계에 있어서 동방신기는 양날의 검이었죠. 일본 가요계가 침체되는 와중에 동방신기가 지금의 페이스대로라면 톱 아이돌 반열에 오른 아라시를 그대로 제껴도 이상하지 않다는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일본 가요계를 한낱 외국 가수에게 점령당한다는 것은 가뜩이나 유력인사의 자이니치 컴플랙스에 오랜 홍역을 치루었던 민족적 열등감의 표본 일본에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냥 동방신기를 처내자니 그나마 명맥을 맞아주고 있는 음반업계가 그야말로 폭삭 주저앉아버릴 수도 있다는 고민이 있었죠. 이도 저도 못하는 진퇴양난이었고 그 누구라도 쉽게 결정내리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여기에 SM의 지분 요구가 맞물리게 됩니다. SM은 사실 기대 이상으로 커진 동방신기가 지금까지의 계약 조건으로 인해 손 안대고 코풀듯 가만히 앉아서 돈을 가져다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음에 분명합니다. 한국 활동에도 그렇게 큰 돈이 들어가지 않았고 일본 활동에서 얻은 수익의 일정 부분은 앉아서 챙기는 셈이니 그걸 놔줄 리가 없었겠죠. 아이돌 주기 5년 그리고 동방신기는 그 주기를 일본 진출의 성공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로 극복해낸 신선한 케이스를 제시하며 SM을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SM은 5년 후 그들이 뜨던 말던 재계약에 있어 매우 인색한 조건을 내놓는 것이 거의 당연시되던 풍토가 만연해있었으니까요. HOT가 그랬고 신화가 그랬습니다. 당시에는 기껏해야 국내 시장에서 놀던 우리나라 아이돌 업계였으니 국내에서는 방송국 쉐어까지 조절하며 제왕으로 군림했던 SM의 견제를 당해낼 수 있을 기획사가 있을리 만무했던거죠.
하지만 동방신기의 경우는 조금 달랐던게 일단 자신들이 가진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 가치를 잘 발휘해줄 쪽이 어느 쪽인지도 확실하게 의견이 정해진 상태였습니다. (여기에서 맴버간의 의견이 갈렸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게다가 무대가 SM이 결코 강점을 보일 수가 없는 '일본'이었기에 사실상 이들이 계약 조건을 저울질할수있는 여건이 마련이 되어 있는 상태였죠.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남은 것은 사실 SM보다 AVEX쪽이 동방신기라는 타이틀을 몹시도 필요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동방신기라는 타이틀을 뺏기는 것은 물론 AVEX로서는 가장 바라지 않았던 팀의 해체와 그간 공들여 쌓아왔던 동방신기에 대한 인지도마저 반토막이 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는 것입니다. AVEX가 흔히 실드를 쳐주거나 거액을 제시해서 JYJ가 돈 때문에 SM소속사를 버렸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고 있습니다만 위에 말씀드린대로 이미 AVEX는 빚더미에다가 사실상 동방신기가 먹여살리는 모습이 되어있는 셈이었으므로 거액을 배팅할만한 여력이 되지 못합니다.
게다가 AVEX는 앞서 든 의혹이 사실일 경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일본 가요계에서 더 이상 동방신기가 동방신기인 채로 성장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방해받았다는 느낌을 감추기가 힘듭니다. 사실상 동방신기가 활동을 중지하고 JYJ로 근근히 활동한 지난해 오리콘이 발표한 2010년 통산 연간 음원 매상 랭킹을 보면 보다 더 확고해지는데요.
1위 아라시 - 197억엔
2위 동방신기 - 98억엔
3위 AKB48 - 70억엔
4위 EXILE - 60억엔
사실상 일본 내에서 동방신기라는 이름이 완전히 사라진 원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방신기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앨범, 싱글 판매 수익이 아라시의 절반에 육박하며 2위를 고수합니다. 올 한해 TV에서 수도꼭지 역할을 톡톡히 하며 한 사람당 몇천장씩 사제끼는 오덕머니 파워를 자랑한 '산 사마의'AKB48조차 이미 사라진 '죽은 제갈공명'동방신기를 이길 수 없었다는 것이죠. 게다가 이 동방신기 음반 매출은 JYJ나 시아준수의 개인 싱글을 포함하지 않은 수치인데다가 바로 해체하기 직전인 2009년 이미 아라시와 불과 몇십억 차이로 좁혔었다는 것을 감안해볼 때 올해 만일 동방신기가 해체하지 않은 채로 활동을 지속했다면 아라시가 두배 가까운 스코어로 독주를 할 수도 없었을뿐더러 심지어는 엎치락뒤치락하는 1,2위 싸움까지 예상해볼 수 있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결과로서 나타난 동방신기의 위력과 그들의 해체로 인해 아라시라는 자존심을 지켜낸 일본 가요계,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AVEX가 과연 자금적인 문제 이외에 다른 압박으로 인해 동방신기와의 제계약이나 동방신기를 원상복귀할 수가 없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다소 위험한 추측을 해봅니다. 일본이 가장 무서워할수밖에 없을 자이니치 컴플랙스, 그들의 경제가 완만한 하향세를 거두고 있는 지금 세계적인 시장을 과시했던 음반 가요계마저 한국에게 추월당할경우 정신적인 타격이 클 거라는 것을 이미 예상했던 것일까요?
이런 내홍을 겪는 와중에 SM과의 동방신기 쟁탈전 분쟁을 능동적으로 처리할만한 역량이 AVEX에게는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정말 공교롭게도 동방신기 분쟁이 일어나는 그 시기에 일본 검찰은 AVEX의 고무로 테츠야 사장을 구속 수감하였으며 동방신기 사태가 결국 팀의 분할로 일단락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무로 테츠야가 일선에 복귀하는 우연치고는 참 구리구리한 일도 일어났습니다. 선장이 없는 상황에서 SM과의 대결이 사실 그리 유리하게 진행되었을리도 없고 AVEX는 이미 5억엔 사기사건으로 인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상태여서 맘놓고 거액을 배팅할만한 능력도 있지 못했던 것이죠.
사실 지금 SM이 소녀시대를 들고 일본에서 마케팅을 할 때 쓰는 자금력을 보면 분쟁 당시 SM이 AVEX보다 자금력이 강하면 강했지 못해보이지는 않습니다. 감히 추측컨데 JYJ를 포함한 동방신기 맴버들은 AVEX보다 SM에서 더 많은 금액을 제시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이미 SM은 상장사로서 기업공개가 되어있고 예전처럼 이면 노예계약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짓기에는 사람들의 관심과 보는 눈이 너무 많아져 쉽지 않은데다가 지금 한창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소녀시대를 붙잡을때를 대비한 회사의 도덕적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동방신기에 대한 권리를 지키는데 돈을 아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저씨팬들은 주먹을 씁니다.
결론이 너무 스트레이트하게 나게 됩니다만 결과적으로 JYJ는 일본에서 지금과 같은 활동이 이루어지길 원했으며 일본 기획사와 계약했지만 종속되지 않는 자유계약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곧 일본 시장에 있어 SM의 매니지먼트를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약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SM과 AVEX 모두 이 업계에서는 큰 손인데다가(채권단 역시 AVEX가 무너지는 걸 원치 않는 한 동방신기의 제계약에 돈을 쓰는 걸 아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동방신기에 대한 가치를 양쪽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돈 몇푼 차이로 양쪽이 갈라졌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거든요. 그럼 정말 현재 동방신기에 남은 두 명은 적은 계약금으로 지금까지 키워준 의리를 생각해서 남은 것일까요? 왜 하필 한국에서는 인기의 중심에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다른 맴버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었던 창민과 윤호 두 사람만이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SM은 지금 사태에 대해 변호해줄 우군이 몹시 필요합니다. 아이돌이 상당한 권력을 쥐게 되는 연예계에서 모처럼 소녀시대를 통해 예전의 주도권을 되찾은 모습의 SM이 지금까지 논란이 되어왔던 노예계약 이미지를 어서 탈피하고 순수한 피해자로서 지지를 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동방신기가 5명인 채로 남길 원했던 건 일본 뿐만이 아니었으니까요 SM은 과정이 어찌되었던 동방신기 팬들에게는 '조용히 있던 5명을 갈라놓은 원인'으로 비추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변명을 한답시고 AVEX가 약아빠진 회사라고 주장하기엔 한국에서 AVEX에 대한 아무런 인지도가 없기에 상대로서 적합하지 못하기에 지금의 JYJ에 대한 SM내외의 수많은 사람들의 디스는 SM이 차마 일본 시장까지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지언정 지금은 소녀시대로 인해 다시 대한민국 연예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힘을 과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보아의 이런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음악을 듣고 아이돌을 보면서 문화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은 이런 복잡한 문제를 굳이 일일히 알아가면서 들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문화 산업이 비즈니스적으로 성숙하지 못했음은 물론 우리나라가 과시하던 '한국인의 정'조차 지켜내지 못한 야비하기 짝이 없는 진흙탕 싸움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문화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그때그때 좋은 음악이 나오면 되는 인스턴트 소비만이 아닌. 당장 시장성이 없더라도 내가 학창시절때 좋아했던 그룹, 가수가 20년 30년 후에도 비록 춤을 추지 못하고 그때처럼 몸이 날렵하지 않더라도 그때 그 노래를 느린 노래라도 불러주며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추억하는 기쁨도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일 것입니다.
마치며..
지난해 연말 미국 시카고에서 연말을 보낼 당시 TV에서는 미국의 연말 가요제 같은 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익숙한 가수들이 줄이어 나온 뒤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한 그룹은 다름아닌 결성된지 20년도 넘은 이미 아저씨돌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뉴 키즈 온 더 블록'이었습니다. 보는 관객들은 이 '한물간'아이돌이 보여주는 몸짓과 그때 그 당시 히트했던 '전형적인 아이돌 음악'을 들으며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벌써 4개 이상의 그룹이 세대교체를 할 동안 뉴 키즈 온 더 블록은 여전히 무대에 그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과 음악에 미국의 문화소비자들은 충분히 열광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미국이 신인 그룹이 말라버려서 과거의 그룹을 억지로 부른것일까요? 세계 최대의 음반 시장을 가지고 있으며 위클리 100위 안에 드는 게 경사가 될 만큼 하루에도 수십명의 신인들이 나왔다가 사라지는 세계 제일의 음반 시장을 가진 미국이 뭐가 아쉬워서 '퇴물'을 피날레 무대에 세웠을까요?
박용하의 죽음에 '평생 잊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며 울먹이는 일본 아주머니, 겨울연가 종영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런 활동 없이 인지도를 이어가고 있는 배용준을 좋아하는 일본 아주머니들을 보며 '아 저 분들은 참 한가하기도 하구나'라고 생각할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한번 좋아하면' 그가 '내 눈앞에서 당분간 없어지지 않고 계속 함께 해줄 수 있을' 그런 아이돌이 나와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7080가수들만이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태지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들 god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들, 아이돌 음악이지만 그 곡들 중에서도 국민가요가 되었던 명곡들이 적어도 한두곡씩은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지금의 7080세대가 되었을 때 추억할 수 있는 노래를 불러줄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 지금 7080세대들이 누리는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은 매우 슬픈 일일테니까요.
요즘 세상에는 '오래 되어도 여전히 좋은'음악이 없다고 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자자의 버스안에서, 미스터투의 하얀겨울이 지금까지도 리메이크 되고 있지만 그 곡들이 발표될 당시에는 그저 트랜디 가수들이 부르는 대중가요였을 뿐이었으니까요. 지금 나오는 음악들 중 어떤 게 레전드로 남아서 오랜 기간 사람들 귓속에 남아 그때를 추억하게 만들어줄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음악은 없습니다. 누군가에겐 하찮게 들리는 음악과 가사 한 소절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정말 큰 의미로 다가와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넣으려는 손을 멈추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음악의 가치는 그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정하는게 아니라 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정한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그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좀 더 오래 볼 귄리가 있으며 문화 소비자로서 그것을 가요계에 당당하게 요구해야만 합니다.
5년 뒤에는 사라질테니까 진심으로 좋아해봐야 나만 상처받는 그런 가요계가 아니라..
언제까지고 내 청춘을 들려줄 그런 가수들로 남아줄 것을 약속할 수 있는 가요계와...
그 약속에 부응하여 언제까지고 그들에게 지지를 보내줄 수 있는 오랜 팬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해저 이제 흠 잡을데가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 음악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별기획 4부작 '대한민국 아이돌 산업을 말한다'를 마칩니다.
4부작 기획 '대한민국 아이돌 산업을 말한다' 목차
제 1부 : 계약
제 2부 : 기획사
제 3부 : 2PM, 동방신기
제 4부 : 쟈니즈, 에이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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