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0. 4. 25. 12:33
시작부터 뜬금없이 프로 스포츠를 예로 들어보자. 구단이 있고 선수가 있다. 둘은 계약을 하고자 한다. 선수는 그 구단의 팜 시스템에서 유소년시절을 보낸 프랜차이즈 유망주일수도 있고 타 구단에서 데려오게 될 이적생일수도 있다. 물론 선수는 그 구단과 계약을 할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적생이라면 해당 구단에 적절한 보상금을 지급하면 데려올 수 있고 구단에서 보유한 유망주라 할지라도 반드시 소속 구단에 입단할 의무는 없다. 구단은 키워낸 보상금을 지급받는 대신 선수를 넘겨줄 수 있다. 유소년은 유소년일 뿐 1군 시스템에 계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선수라고 해서 반드시 자유롭게 이적할수는 없다. 계약에 묶여 있다면 철저하게 계약 기간을 이행해야 하며 이행하지 못할 경우 정해진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지금 언급한 시스템은 프로스포츠 업계의 '이적료', '유소년 육성 보상금' , 'FA보상금' 등에 관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업처럼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정사원체계가 아닌 전원 계약식 인력수급체계의 경우 이와 같은 업계 내 인력 이동에 대비한 각종 업계 내 시스템을 정해두고 서로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피계약자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를 막고 돈을 풀어 영세한 단체로부터 인재를 무자비로 빼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계약 보호 장치와 피계약자가 실력에 맞는 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일정 기간 이후 자유롭게 자신의 가치를 요구할 수 있도록 만든 자구책인 셈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기획사를 포함한 현 아이돌 업계 전체를 통틀어 이러한 시스템 자체를 갖추기는 커녕 그런 노력 자체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기획사들이 운영하는 시스템을 살펴보면 일단 기본적으로 아이돌을 외부에서 영입하는 사례는 없다. 아니 그보다 빼앗기지 않도록 이미 유소년 육성 때부터 성인이 될 무렵까지 두 자릿수 이상의 다년 계약으로 묶어두기 때문에 에초 이적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 여기에 상호 경쟁관계에 있는데다가 당초 그 파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은 거대 기획사 몇몇이 나눠먹는 좁은 시장이다보니 이적을 결심하기도 쉽지 않다. 업계 자체가 겉으로는 적대적이면서도 상호 이익을 위해서는 철저하게 뒤를 봐주는 더럽기 그지없는 업계라서 기획사를 뛰쳐나온 유망주를 다른 기획사가 받아주는 일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각 기획사들은 컨셉이라는 이름으로 점철한 각자만의 분명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기획 방식은 별 차이가 없을 지 모르지만 육성 단계에서는 거의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만큼의 온도차를 느끼게 된다. 즉 A기획사에서 이미 2년여간 연습한 연습생이 B기획사로 이적해서 2년간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거의 불투명하다. 계다가 대부분 사춘기가 막 시작된 민감한 감성의 나이대인 연습생들의 미묘한 신경전은 이적생이 적응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만드는 환경을 제공하는데, 작은 일에 상처받고 깊게 고민하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이러한 급격한 환경 변화는 본인의 잠재력 발휘에 심각한 장애물로 작용함은 두말할것도 없다.

고작 열 몇살짜리가 자기미래를 설계할 제대로 된 능력이 갖추어질리 만무하며, 이는 부모 대리 계약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음악을 제대로 가르쳐줄 기획사를 내가 제대로 찾아온 것인지 판단하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기획사들은 오디션에 통과한 직후부터 다년 계약을 맺고 독자적인 시스템으로 연습생을 묶어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에 앞서 충실한 소속 연예인으로 만드는데 전력을 쏟는다. 다소 고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아이들의 예민한 감수성을 휘어잡아 마치 군대의 상하관계를 만들듯이 선후배 관계, 사장님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 등의 내부 계급체계를 갖추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연습생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시간적 여유를 주는 것은 고사하고 이 곳에서 나가면 인생 끝장난다는 식의 강압적인 분위기 조성에 여념이 없으며 이는 연습생들의 평균 나이대와 연예계 지망생 특유의 연약한 감성을 생각해볼때 상당히 효과적인 모양이다.

다년 계약에 대한 기획사의 변명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죽쒀서 개 주기 싫은 마음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여기에 붙는 1차적인 문제는 '계약'편에서 언급한 대로 연습생 스쿨과 기획사가 분리되지 않은 일원화된 승강구조 탓이지만 그 전에 업계 자체가 상당히 폐쇄적이고 비상식적인 운영을 하고 있으며 자신의 이익만을 보는 데에 급급해 장기적인 이익을 놓치는 우를 범하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계약 사원 체계가 일반화된 업계임에도 상호 인력 교환에 대한 어떤 규약도 정해져 있지 않으며 (이적료, 보상금, FA 등) 유소년 육성 단계부터 장기계약으로 인재를 묶어놓고 자유로원 선택권을 박탈하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

연습생이 잘못된 판단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과 동떨어진 음악을 하는 기획사에 얼떨결에 들어올 수 있다. 대부분 작정하고 오디션만 줄기차게 쫒아다니지 않는 한 연예계 데뷰 비화는 '얼떨결에 됐다'는 식이니까,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선진화된 음악을 하는 것처럼 보여 들어왔더니 막상 내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면 분명 연습생은 자신의 미래가 걸린 일이므로 실망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는 소속사를 탈퇴하고 다른 곳을 갈 방법이 거의 없다. 업계 자체에서 찍혀버리면 향후 어디를 가더라도 파벌에 밀려 제대로 무대에 설 수 없게 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여기에 군대로 치면 이등병부터 시작해 겨우 상병 달았는데 다시 다른 부대로 전출되어 훈련병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하면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적을 생각하는 연습생들의 처지가 딱 그렇다.

그러면 왜 기획사들은 이런 문제점을 직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습생 시스템과 불공정한 다년 계약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이미 코스피에 상장된 SM을 비롯한 수많은 기획사들이 스스로의 자금력이 아닌 외부 투자에 의해 자금 조달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자금은 대부분 연예계와 전혀 관계없는 업계에서 조달되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투자를 받은 기업은 적은 돈으로 많은 수익을 내야만 한다는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여기에 정기적인 수익을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이 큰 연예기획사일 경우 투자금 상환에 대한 부담 역시 한층 가중될수밖에 없다.

여기에 투자자들에 의해 선출된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이사진들이 대부분 연예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비전문가들이다보니 일방적인 투자금 회수만을 강요하는 것 이외에 어떤 경영적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과 이들 투자자 대부분이 20세기 말 HOT와 서태지 그리고 김건모가 만들어놓은 밀리언 셀러 시대에 대한 환상만을 가진 채 당시의 수익성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부분도 기획사로 하여금 자금적 압박을 가중시키고 있다. 연예계는 큰 돈이 된다는 점을 기대한 투자자들이 경영권을 가지고 무조건적으로 목표 수익만을 회수할 것만을 생각하다보니 업계 내부의 특수성이나 여타 민감한 상황들을 고려할 여유를 줄 리 만무하며 실제 업계를 이해하는 중간 실무자들의 고충은 늘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투자자들의 문제점은 벌써 10년 전의 수익구조를 추구하고 있는 점도 그렇지만 그 당시 일방적으로 기획사들이 많은 수익을 가져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인 '데뷰 당시부터 불합리한 수익배분을 강요한 장기계약'덕분이라는 사실과 업계 자체가 가진 거품이 완전히 빠진 현실을 전혀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디지털 음원을 포함한 음원 수익은 거품기 이전의 1/3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이미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스타급 연예인들은 그만큼의 대우를 충분히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기에 사실상 많은 수익을 제대로 기대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검증된 스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 비용 대비 고소득이 가능한 유망주가 그 계약 조건 그대로 남은 기간 내에 포텐셜이 폭발해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음악업계는 절대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업계가 아니라는 점을 실무자는 물론 투자자들 역시 확실히 인지해야 한다. 지금처럼 불필요하게 덩치만 거대한 기획사 시스템을 코어화시키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소모되는 예산 규모를 축소해 결과적으로 연예계 수입 이상의 외부 투자를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 기획사들의 독창적인 육성 시스템을 버릴 필요는 없겠지만, 과도한 장보기로 인해 야채가 썩어버리듯 모순된 시스템 탓에 재능있는 연습생들이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맞지 않은 옷에 괴로워하다 사라지는 참사를 막아보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보이는 것이야말로 연예계에서 밥벌이하고 있는 업계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기획사들이여, 환상을 깨고 현실을 보라. 연예계, 아니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결코 안정적으로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우량사업이 아니다. 어쩌면 업계에 대한 애정으로, 한편으로는 일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몇 안되는 업계로서의 가치가 있을 뿐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가치를 부여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점이 분명하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투자하고자 하는 투자자도, 이제 막 기획사를 설립하려는 신생 기획사도, 화려한 생활에 눈을 반짝이며 겁없이 덤벼드는 연습생 지망생들도 이를 분명히 명심하도록 하자, 정말 즐겁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견디기 어려운 업계가 다름아닌 연예계라는 진부하면서도 마취제처럼 잊으려 애쓰는 불편한 진실을...

3부에서 계속됩니다.

4부작 기획 '대한민국 아이돌 산업을 말한다' 목차

제 1부 : 계약
제 2부 : 기획사
제 3부 : 2PM, 동방신기
제 4부 : 쟈니즈, 에이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