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6. 6. 25. 12:31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직까지 왼쪽 어깨는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도 다른 곳은 거의 나아졌습니다.


요양중에 할 일이 없으니 관련 연구만 진득하게 계속 해왔던 것 같네요. 

어느 정도 잡다하게 쌓였으니 정리를 조금씩 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냥 두면 아마도 귀차니즘으로 인해 업데이트를 하지 않을 것 같아서

몇 가지 꼭지에 대해 예고를 드리고자 합니다.


1. 아이돌 기획사 열전 part 2


- 벌써 part 1이 퇴고된지도 꽤 오래 지났습니다. 

5년동안 한류는 어떻게 되어왔고 또 어떻게 되어갈까요?, 


선두주자라던 소녀시대와 동방신기는 어떻게 되었는지, 

새롭게 떠오른다는 슈퍼주니어와 예전부터 소문만 무성했던 빅뱅은 대체 뭐하고 있으며 

2ne1을 비롯한 몇몇 아이돌들이 왜 자취를 감추었는지... 

트와이스의 잭팟으로 JYP는 기사회생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들 3사에 도전하는 기획사들에 대한 토막글까지 구성해볼 생각합니다.

물론 앞으로 어떻게 되어갈지에 대한 주제넘은 잔소리도 들어주세요

아울러 부록으로는

- 걸그룹은 왜 타산이 맞지 않는다면서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가?

-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그 속도 그대로 추락해버린 기획사들의 뒷얘기 열전

- 아이돌의 스캔들과 각종 사건사고, 과연 우연인가? JYJ와 AOA... 여론을 짜는 손


등을 준비해봤습니다.

전문성은 기대하지 마세요




2. 공화국 사회교과서 연재 월 1회 주기로 재개


- 가능하면 수능이 끝난 학생들...그리고 그 이후 취업에 고생하는 취준생들

그 시기를 지나 더 이상 유망주의 관용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젊은 분들


그분들에게 잔소리하는 꼰대가 아닌 잠깐 읽어도 한번 더 스스로 생각해보고

스스로 직접 진로, 방향성,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참고서 같은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월 1회인만큼 많은 분량과 넉넉한 스압을 보여드릴테니 믿고 거르셔도 좋습니다.






2016.7.15일 

우선 아이돌 기획사 열전 PART 2 JYP엔터테인먼트

로 찾아뵙겠습니다.

posted by RushAm 2011. 9. 13. 03:15

한류가 난리입니다. 처음에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아리송해하던 사람들도 속속 실물 증거들이 나오자 '오오!'하며 간증을 해버리는 모양새가 이어지고 있고, 실제로도 꽤 실물 자체는 굳건해보이기도 하는데요. 그들은 한결같이 지금 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언젠가는 세계 최대의 음반 시장인 미국을 석권하겠다며 포부를 밝히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미국을 부르짖었던 JYP와 최근 대세를 몰아 미국 진출을 타진하는 SM이 대표적인데요. 완전히 상반된 길을 통해 미국 진출을 노리고 있는 이들 두 회사 중 과연 어느 쪽이 얼마나 미국에 다가서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JYP의 전략은 생각보다 매우 명쾌합니다. 미국에서 팔리는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미국인이 듣는 정서가 있고 그 정서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팝문화'에 기반하며 그 시기 한국에 있는 누구보다 그들의 음악을 많이 들었고, 연구했던 박진영 자신이 미국 진출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음악은 철저하게 미국 색깔에 맞춰나가게 되는데요. JYP의 미국 진출은 임정희, 비, 원더걸스 등으로 대표될 수 있는데 이 중 원더걸스는 아직 현재진행형으로 결론을 유보할 수 있지만 임정희와 비의 경우는 확실한 실패 사례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데요. 미국팝 키드라고 자부하는 적임자에게 무엇이 부족해서 이런 결과를 초래했던 것일까요?

빌보드를 매주 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미국의 음악 유행이라는게 생각보다 꽤 변화무쌍한 편입니다. 첫 주에 복고바람이 불었다가 그 다음주에 갑자기 댄스팝이 핫100 1위를 먹고 전주 1위는 보이지도 않는 현상이 벌어지는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거죠. 이게 이른바 '주류'라고 불리는 빌보드계의 트랜드인데, 이런 주류는 대부분 '세터'와 '리더' 즉 그 트랜드를 만들고 이끌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기획사나 레이블들이 독식하게 됩니다. 주식시장에서 워런 버핏이 투자하는 종목이 오르는것처럼 그들이 어떤 장르를 띄우겠다고 선언하면 업계 판도가 그 장르 위주로 재편되는 것이죠. 당연히 미래를 '아는'것보다 미래를 '만드는'쪽이 훨씬 성공할 가능성이 높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이 분...


그리고 이 트랜드를 만들고 이끄는 리더들 뒤에는 언제나 그 트랜드를 '완벽히' 소화하여 시장의 파이를 키우면서 그 키워진 파이를 먹는 세력 이른바 '대세'들이 있게 됩니다. 이 대세들은 트랜드 정보를 누구보다 가장 먼저 캐치하여 다른 경쟁자들보다 더 빠른 시점에서 제작에 착수, 가장 완벽한 시기에 가장 완벽한 작품을 내놓는 역할을 하게 되는거죠. 이들 역시 성공 가능성이 높고, 돈을 많이 벌게 됩니다. 이들은 주로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을 유력 아티스트들에게 공급하는 공급책 역할도 겸하게 되는데요. A급 팝스타들이 받는 곡들의 장르가 대체적으로 천편일률성을 띄는 것도 바로 여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이 분 정도...


그리고 그들의 뒤를 쫒아 한발 늦은 타이밍에서 떨어지는 고물을 받아먹는 중간세력층이 존재하고, 그들이 먹다 떨어뜨린 먼지를 쓸어담는 하층세력이 존재하는데요. 중간세력이 시작된 시점을 1단계로 봤을 때 하층세력까지 각 단계별로 최소 10단계 이상은 형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런 복잡한 먹이사슬이 왜 가능한지는 두말할필요도 없이 시장이 너무 크기 때문이죠. 우리나라 음반 시장이 아무리 커도 미국 하류 5단계 정도의 떡고물이 최대치라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2위 일본 역시 잘나가던 때에나 겨우 주류 끝자락 정도를 노려볼만 한 수준이었지, 지금은 중간층 2단계 정도에도 못미치는 수준인거죠.

이렇듯 미국 음반 시장에서 메이저라고 할 수 있는 주류 라인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실력은 기본이고, 시장에 대한 이해와 정보전에도 강해야 하며, 결정적으로 운까지 따라줘야만 합니다. JYP는 바로 이 주류 라인에 합류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인데요. 이 라인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안정적인 수익 구조가 정해져있는 만큼 진입 장벽이 매우 까다롭다는 점에 있습니다. 질량보존의 법칙과도 같이 메이저 라인이 먹고 남은 떡고물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고, 그 한정된 시장을 나눠먹는 트리구조가 되어있다면 이미 수익지출 구조가 바늘하나 들어가기 힘들 만큼 꽉 짜여져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세터, 리더, 대세, 중간세력, 하층 할것없이 어느 하나 '새로운' 도전자를 받아들일 상황이 못됩니다. 떡고물이 10이 떨어진다면 그 아래에 있는 세력은 2만으로 케파가 딱 맞춰져 있는 회사 5개가 있는 생태계인데, 만일 여기에 새로운 회사가 끼어들게 된다면 그 회사가 2 이상을 먹던 1도 못먹던간에 원래 있던 회사들은 2에 맞춰져 있는 케파를 수정할 틈도 없이 궤멸하게 되니 저항이 심해질수밖에 없는 것이죠., 특히 미국에서는 제 3세계 음악이라고 하는 (이 부분은 아래에 따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한국계 프로듀서가 이 라인에 끼어든다는 것은 인종, 민족적 보수성에 따른 시장 저항까지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을 초래하게 됩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밟히고...


이런 구조에서 살아남으려면 당연하겠지만, 지극히 불필요한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게 됩니다. 새로 끼어들기 위해서는 그 계층에 있는 다른 회사들의 이해를 구해야 하니까요. 수익보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라인 전체가 등을 돌리지 않도록 많은 로비를 벌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유력 작곡가와 친분을 쌓아야 하고, 적어도 트랜드 세터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중간세력 2단계 정도의 든든한 백은 필수로 있어야만 하죠.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이 아니면 '하류세력' 중 곧 도태될 세력이 어느쪽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고, 그들의 도움이 없이는 도태되는 타이밍에 맞춰 진입하려는 수많은 진입 경쟁자들보다 더 빠른 타이밍에 침투해야 하는 시간싸움에 이길 수 없기 떄문입니다.

원더걸스가 HOT 100위 최초 진입에 눈물짓는 이유, HOT100진입이 쾌거라며 JYP가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인터뷰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 아동복 매장에서 1달러에 팔렸다는 사건은 선뜻 와 닿지 않지만 나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비록 1달러에 팔리는 하류라인이지만 '메이저'에 진입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죠. 이들은 이 라인에 진입한 이상 적어도 그 라인의 그 계층에서만큼은 지속적으로 JYP의 아이돌이나 아티스트를 메이저 본류에 올려놓을 전용 포트를 만들어놓은 셈이 된 것입니다. 물론 그 이상의 라인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또다시 많은 투자 혹은 운이 따라주어야만 하겠지만 적어도 '단계적인 발전 가능성', 그리고 보수적인 투자자들이 좋아할만한 '안정적인 대세 라인'에 소속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용이하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대기업 사원보다 9급 공무원이 대접받는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당연한 이치인 것이죠.



문제는 이들이 반드시 착실하게 '윗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말씀드렸지만, 어디까지나 이 트리구조에서 하위층은 케파를 맞출 수 있는 최소한의 수익만을 나눠먹는 구조이기 때문에 외부적인 자금 유입 없이는 과감한 투자를 통한 성장이 어렵다는 것인데요. 외부 자금의 유입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외환관리법과, 미국의 연방법을 동시에 준수해야하기때문에 세금 부담도 그만큼 많아지며, 현지 노하우가 없는 만큼 다른 기업들에 비해 배 이상의 지출을 야기하게 됩니다. 과연 이런 자금력을 지속적으로 받쳐줄 수 있을 만한 자금동원력이 유지될지가 미지수라는 점을 우선 들 수 있겠고요.

두 번째로는 이들의 트랜드 체이스 능력이 과연 미국 본토에서 활동중인 기획사들에 견줄 수 있거나 비교우위를 보일 수 있을 정도의 경쟁력이 있느냐는 점입니다. 대세의 정보 속도전이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본류에서 JYP가 가질 수 있는 위치, 즉 대세와 독창성의 벨런스를 얼마나 맞출 수 있느냐가 불투명하다는 약점이 작용하게 되는 것이죠. 언어의 장벽은 물론이고 타지인이 가지게 될 어쩔 수 없는 불리함에 대응하는 JYP의 대응은 애석하게도 '유행을 타지 않는 복고'라는 키워드였던 모양입니다. 이걸로 어떻게든 핫100을 맞춘 것은 칭찬받을만한 부분입니다만, 이후 국내 팬들에게 알려진 원더걸스의 활동 모습은 국내 팬들에게는 거부감이 느껴질만큼 현지화된 전략을 취하게 되죠.



사실 제일 큰 문제는 바로 지나치게 미국 라인을 지키려고 노력한 나머지 '국내 시장을 거의 포기'하다시피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다소 안좋은 모습 중 하나가 내수에서 돈을 벌어 해외마케팅에 쓰는 라인인데, 사실 이게 제대로 국내에 회수만 된다면야 딱히 욕할 부분은 아니거든요. 그러나 JYP는 미국 진출에 올인, 그것도 미국 내수 중에서도 하류쪽 컨셉을 맞추려 들다보니 미국 빌보드 1위권 가수들도 국내에서 히트하기 어려운 판국에 이들의 달라진 모습을 신선하게 받아들여줄 준비가 될 리 만무했습니다. 결국 JYP는 내수에서의 활동을 포기한 댓가로 매 활동마다 거의 밑빠진독에 물붓는 식의 투자를 할 수 밖에 없고, 끝이 안보이는 미국 시장 공략의 이같은 출혈 행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SM은 JYP와 완전히 정 반대의 노선을 취합니다. 필자의 지난 글 '대한민국 걸그룹 - 일본의 로리문화가 침투했다고?' 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SM의 전략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죠. JYP처럼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미국 시장에 '도전'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반드시 '조금이라도'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는 한 엉덩이를 떼지 않는 묵직한 대기업의 행보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일 수 있겠죠.

메이저 기획사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정도를 걸을 것으로 보신다면 큰 오산입니다. SM은 국내 활동에 있어서도 실질적 구매층과 객단가가 높은 계층만을 집중적으로 빨아먹는 소수정예 정책을 취하기 때문이죠. 이런 행보는 해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매니아층의 실구매력이 높기도 하고, SM이 표면적으로 유럽 내 인기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유투브 조회수, 광장에서의 플래시몹, K팝 동호회 등을 우리나라에서 서브컬쳐 인터넷 문화가 대중문화에 끼치는 영향이 어느정도인지를 비교해본다면 이해가 쉽게 되실 텐데요.


언제부터인가 걸그룹팬들이 오덕스러워졌다, 아니 그들이 오덕을 필요로 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왜 SM이 매니아 계층의 시장성에 주목하고 그들의 공략에 주력하느냐면, 그들의 활동은 굉장히 가시적으로 잘 드러나고 수치적으로도 굉장히 낙관적인 수치를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제연구소에서도 어떤 제품을 그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한정해서 여론을 분석하지는 않겠죠. 당연히 전국민,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보편적인 선호도를 조사하기 마련입니다. 당연하겠지만, 그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한정해서 마케팅 전략을 짜는 것은, 소들에게 파리채가 필요하니까 모든 동물은 파리채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판단한 일화와 다르지 않게 되갰죠.

이런 매니아층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것은 SM에게 있어 커다란 두 가지 메리트를 제공해주는데요. 하나는 이들의 활동이 가시적이기때문에 그로 인한 전시 치적을 과시할 근거를 제공해주는 것이 첫번째이고 두번째는 앞서 걸그룹 컬럼에서도 밝혔던 것처럼 '소수정예'식 확실한 고정 수익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음반 판매량이 다른 가수들에 비해서 적지만 그 음반 가격을 높게 책정하거나 음반에 어떤 특전을 넣어서 1장 뿐만이 아니라 많게는 4~5장 정도를 살 수 밖에 없는 전략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겠죠.


이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사실 SM이 늘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시장을 정복했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이면에는 한국보다 더한 아시아권의 '돈 안되는 치적성 성과'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SM엔터테인먼트의 2011년 1/4분기 매출 분포를 보면 총 매출 200여억원 중 150억원 가량을 국내에서, 나머지 50억원을 해외에서 벌어들였다고 나와있는데요. 그 50억원 중 40억원 가량을 일본에서 벌어들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중 일본과 국내를 제외한 12억 인구의 중국과 동아시아 전역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고작 10억원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이는 우리나라에 일본 문화가 본격적으로 개방되었던 2000년대 초반의 일본 애니메이션의 DVD, 일본 음반의 정식 수입 판매량과 비견될 정도로 처참한 수준인데요. 이는 SM이 얼마나 '소수정예'의 구매에 지독하게 의지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도의적인 '무상 문화 활동'에 지나치게 묵인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쁘게만 말할 것도 아닐 것이 사실 SM이 노리고 있는 유럽이나 미국의 틈새 시장은 의외로 굉장히 가능성이 풍부한 편입니다. JYP가 미국을 직접적으로, 그것도 메이저 라인만을 노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들은 독립리그에서 '확실히 돈을 챙기는' 스타일인것이죠. 한국을 제외한 동아시아권, 남미, 유럽 미국 모두 사실 '아시아 문화'를 즐기는 매니아층은 예전부터 매우 꾸준히 '고정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 시장을 지금까지는 거의 90%이상을 '일본 JPOP'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만, 최근 몇 년간 일본 시장에 불어닥친 어떤 '심각한 변화'로 인해 음반 시장에 새로운 투자와 신인 발굴에 정체가 벌어지고, 밀리언 스타들이 예전만 못한 기량을 보여주는 부진 속에 해외 시장에서 팬층이 급격히 빠져나가는 대안으로 KPOP이 선택받게 된 것이죠.


다만 이 문화가 미국이나 유럽이라고 해서 메이저로 당당하게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아시아 문화에 심취하는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오덕' 취급 이상을 받기 어려울 만큼 뭔가 '당당하게 드러내기 어려운 취향'인 것만은 분명하고, 이들 문화가 메이저 챠트에 털끝만큼의 영향을 끼칠 만큼의 파괴력을 미국이나 유럽 전역에 어필할 만큼 시장 권력이 강할 리도 없습니다. 아직도 아시아 문화를 즐기는 수많은 사람들은 '아시아 문화' 상품을 구매할 때 아주 부끄러운 취향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SM이 유럽정복의 근거라며 내세우는 공연 순식간에 매진, 추가 공연 요구, 커버 댄스 대회 성황, 유투브 조회수 같은 것들은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라르크라는 록그룹이 내한공연을 했을 때 불과 1시간만에 전 좌석이 매진되었다는 일화도 있었고, 엄연히 일본 캐릭터와 음악 가수들을 흉내내는 동호회가 국내 곳곳에 성황중이며, 음악을 카피하거나 안무를 커버하는 이벤트 역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역시 이를 두고 '일본 문화가 한국을 정복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실제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일본 만화가 한국에서 그렇게 인기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척 많았으며, 라르크의 매진 소식에는 경악을 금치 못해할만큼 이런 소식에 일본 언론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일부 한국인의 활동일 뿐 한국을 정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결정적인 것은 일본 문화 전체가 한국에 스며든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특정 회사', '특정 소속사'의 쾌거를 국가 전체의 경사로 보기 힘들다는 일본 언론의 이유있는 무관심이 있었던 것이죠.

라르크 내한공연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려 SM의 미국 진출에 대한 해석을 내리자면 '일본 JPOP'이 가지고 있었던 이른바 '아시아 오덕들' 시장을 먹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즉 '상륙' 자체는 JYP가 겪었던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유럽에서 했던 '이벤트 쇼'를 미국에서 동일하게 연출해내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문제는 '거기까지'라는 것이죠. 미국의 '아시아 오덕'을 정복한 것이 미국을 정복한 것도 아니니까요. 이미 아시아 오덕은 아시아에서 나오는 문화 콘텐츠를 구매할 의사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계층이기 때문에, 미국 국민들을 상대로 한국 문화 콘텐츠를 당당히 경쟁에서 이겨서 팔아서 국위선양했다는 식의 자뻑은 상당히 무리수가 될 것입니다.

다만 SM은 JYP가 그랬던 것처럼 굳이 미국 메이저 취향에 맞는 음악을 양산하려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으례 듣던 음악을 가사 번역 없이 한글판 그대로 수출하는 전략을 고수할 것임은 분명해 보이는데요. SM이 딱히 음악에 대해 자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 편이 일단 더 잘 팔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시장은 '아시아 오덕'인데 굳이 영어가사로 불러서 어색한 작품이 나오는 것을 그들이 원할 리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일단 한국 가사 그대로 수출해야 국내에 국위선양 드립을 하기도 훨씬 수월할뿐더러 결정적으로 투자자들의 '애국심'을 자극하기에도 더할나위없는 효과를 주니, 그들로서는 돈은 들고 곡 형태를 망가뜨려가면서까지 영어가사를 넣을 이유가 없게 됩니다.

그들의 음반은, CD장이 아닌 침대 밑, XBOX 혹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숨겨져 있다.


정석대로 가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어보이는 JYP, 우회로를 택했지만 미국 정복이라는 실질적 대의보다는 눈가림식 치적에 치중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SM 중 누가 더 미국 진출에서 큰 성과를 거둘지는 속단하기 이릅니다. JYP역시 정석을 유지하기에는 자금력에 슬슬 한계를 드러내고 있고 SM은 아예 시장의 실질적 수익에는 관심도 없으니까요. 만일 두 회사의 미국 진출이 가시화가 된다면 먼저 두각을 나타낼 쪽은 SM이 될 것입니다. 팬 응집력은 오덕파워만한게 없으니까요. 우리는 유럽때 그랬던 것처럼 또 미국이 '한류에 열광한다' 고 보도되는 기사와 특집 다큐를 한동안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 급성장 뉴스 이후에는 이렇다할 소식이 들려오기 힘들 것 같네요. 물론 JYP도 돈만 꾸준하고 충분히 가져다박는다면야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지금도 자금력이 바닥을 향해 돌진하는 마당에 개미 투자자들에게 기대는 시한부 돈줄이 언제 마르게 될지 몰라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결론은 SM,JYP 어느쪽도 'KPOP'을 가지고 '미국을 정복'할 가능성은 참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다만, 미국을 정복했다는 기쁨의 자위만큼은 충분히 누리게 해줄 능력이 충만해 보이니,
우리 모두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공화국 연구소 - 대한민국 아이돌 기획사 열전 JYP엔터테인먼트편 (부록) 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1. 6. 29. 23:12
이 글은 '공화국 연구소 - 아이돌 기획사 열전 : SM엔터테인먼트 1,2,3 편에 이어지는 '부록'입니다.

SM엔터의 유럽 진출과, 동아시아의 한류 바람으로 음악 업계가 난리입니다. 전 세계로 확산되는 한류라느니, 이젠 미국만 남았다는 둥 뭔가 정신이 벙벙한 이야기들이 터저나오고 있는데요. 이게 너무 갑자기 막 성과만 터저나오는 깜짝이벤트성이 강한 나머지 정작 이들이 어떻게 이것을 이루어냈는지에 대한 조명은 없는 채로 성과에 발 하나 걸쳐보겠다는 사람들의 사탕발림만이 미디어에 가득 실려 나오는 것 같아 다소 아쉬운 감이 듭니다. 정말 한국 음악계, 아니 엄밀히 말하면 지금 이미 유럽 평정의 신호탄을 쏘았다고 자평하는 SM의 이같은 해외 공략이 한국 음악계 나아가 한국 전체의 국위 선양을 해준다고 추켜세울 정도로 국가적인 경사인걸까요?


SM의 조직 체계, 그리고 해외 전략...

SM은 그 거대한 규모 답게 많은 수의 전속작곡가 및 전속 매니지먼트 사원, 그리고 수많은 연습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기획사들이 대부분 자금적인 여유가 없어 일원화체계에 어려움을 겪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SM엔터테인먼트는 육성부터 음반 출시 후 활동 매니지먼트까지 모두 일원화되어 움직일수 있는 탄탄한 조직 체계를 갖추고 있는데요. 사실 SM이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이런 대가족을 거닐고 있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이른바 '독식'체계가 그것인데요.

이들은 최근 아이돌이 '스타급 외주 작곡가'에게 곡을 의뢰하는 추세에 거의 따르지 않고 가능하면 유영진 사단 내에서 처리하며 아주 급할 때나 전략상 필요에 의해서만 외부 작곡가를 잠깐 쓰는 형태를 취합니다. 그런데 이런 전략은 대체로 '국내 활동'을 할 때에 국한될 뿐 해외 활동에 있어서는 절대 외부 작곡가의 곡을 푸시하지 않는데요. 그 대표적인 사례가 소녀시대의 일본 진출입니다.


    필자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녀시대의 일본 데뷰 곡으로 'GEE'를 꼽았습니다. 일본에서 분명 통할 것 같은 음악적 색깔과 기획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SM엔터의 소녀시대 첫 싱글은 '소원을 말해봐' 가 나왔고. 정말 미친듯한 푸쉬를 받아 싱글 15만장 판매로 오리콘 4위를 달성하는 데에 성공합니다. 정작 GEE는 바로 1개월 뒤 후속 싱글로 나오게 되는데요. 보통 퍼스트 싱글 뒤에 최소 2개월 이상 판매가 지속될 텀을 주는 것이 관례였지만 GEE는 생각보다 그 텀이 매우 짧았습니다. 여기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GEE는 '소원을 말해봐'만큼의 푸쉬를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20만장을 넘기며 2위를 수성합니다. 결과적으로 푸쉬 여부를 떠나 일본은 '소원을 말해봐'에 반응하지 않았고 'GEE'에 반응했다는 것큼은 분명한데요. 지금도 일본 가라오케 챠트를 살펴보면 '소원을 말해봐'는 보이지 않지만 'GEE'는 언제나 순위권애 랭크되어 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하고 있습니다.


왜 SM이 첫 싱글로 소원을 말해봐를 내놓았던 것일까요? 한낱 유학생들조차 예측이 가능했던 GEE의 성공을 그들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혹은 전략상 소원을 말해봐를 먼저 띄우고 GEE를 발매하는 속사정이 있었던걸까요?, 그럴리가요. 지금 GEE에 반응하는 일본의 추세를 봤을 때 만일 GEE가 소원을 말해봐 정도의 푸쉬를 받았더라면 지금 소녀시대는 훨씬 더 큰 성공을 거두었을거라는걸 SM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핵심은 '소원을 말해봐'는 'SM의 유영진'과 그들과 독과점적인 관계를 맺고있는 유럽의 작곡가 그룹이 만든 곡이었고 GEE는 국내 작곡가 E-TRIBE의 작품이었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GEE는 싱글 발매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위권에 랭크, 그 위에는 발매된지 1년에 가까워지고 있는 KARA의 미스터가 눈에 띈다. (랭크에 곡이 두개인건 가라오케 기계 회사 DAM과 JOY가 제각각 집계를 했기 때문) 참고로 이 랭킹은 2011년 5월 기준이며 200위까지 산정되는데 이 안에 GENIE (소원을 말해봐) 는 랭크되지 않았다. (참조:http://www.pasela.co.jp/karaoke/ranking/month.php)


SM은 가능한 자신들 내부 혹은 자신들만이 연결될 수 있는 독과점적인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매니지먼트 활동을 전개합니다. 이는 자신들이 개척한 과실을 자신들 이외의 자들이 얻어먹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보호정책 같은 것인데요. 이들은 이미 AVEX를 통해 재주는 SM이 넘고 돈은 AVEX가 챙기는 사례를 두 번이나 눈앞에서 당해왔던 전례가 있어, SM이 개척한 해외 진출 루트를 SM이 독점하며 수익을 독식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SM식구가 아닌 외부 스타작곡가가 작곡한 곡이 너무 많이 팔려버리면 SM의 명성보다 해당 작곡가의 명성이 현지에서 더 높아지게 되고 이는 SM의 독과점 노선의 이상이 생기게 되는 것이니까요.

이런 노선은 소녀시대의 최신 싱글 MR TAXI 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이 곡은 소녀시대 곡 중 처음으로 국내가 아닌 일본 현지 선행발매를 한 곡인데,놀랍게도 일본 원곡이다. 물론 예전의 AVEX 때와는 달리 SM의 직계 네트워크 노선으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체계를 이미 완성했을 것으로 추측되고는 있지만


  프랑스, 영국 등지에서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다고 보도되고, 이미 중국과 동아시아는 평정을 한 '슈퍼주니어' 벌써 뉴스에서 열번도 넘게 본 플래시몹에서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쏘리쏘리'죠 물론 이 곡은 유영진 사단의 작품이 맞습니다만, 그 속에 숨겨진 작곡가가 한명 더 있었는데요 바로 미국 보이그룹 출신 DREW RYAN SCOTT입니다. 유럽 발매 버전인 영어 버전의 편곡을 담당하기도 했던 그의 존재가 새삼 중요한 이유는 얼마 전 일요일 저녁 8시에 KBS1을 통해 방영된 특집 다큐에서의 이수만 사장의 발언 때문인데요.

실제로 요즘 SM이 밀고 있는 f(x)의 거의 모든 곡은 외국작곡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해외에서 f(x)의 인지도가 다른 그룹보다 반응이 빠른 이유도 이와 무관치않다



  이러한 SM의 의중은 비단 음악 뿐만 아니라 안무나 매니지먼트 등 거의 모든 전반적인 분야에서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소녀시대의 훗 안무가로 유명한 리노 나카소네를 비롯해 이 아이돌을 만드는 거의 모든 채널이 SM 내부 혹은 외부의 독점 네트워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SM은 스스로의 성과를 통해 자연스럽게 밝히고 있습니다. 당연히 유럽인 음악 취향에 맞는 음악을 만들고 유럽인 음악 취향에 맞는 안무를 만들어낸다면 팔립니다. '팔기만 하는'게 목적이라면야 그걸 가지고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죠. 그들이 지금 '한국 음악'을 팔러 간 게 아니라 '한국 애들'을 데려다 외화를 벌기 위해 단체로 일감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면 말입니다. 

사실 이게 '사기업'이 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들의 홍보 방식입니다. 이들은 SM의 유럽 진출 및 성과가 SM의 일개 개별 회사의 경사가 아닌 국가적인 쾌거라며 당당하게 공영방송 다큐멘터리에 나오고 뉴스에 등장해 당당히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것이죠. 마치 자신들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세계에 드높이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꼭 따라붙는 자료화면은 '현지 교민들의 반응'인데, 그들은 지금까지 국가 이미지에 대해 잘 몰랐다가 이번 내한공연을 통해 한국의 이미지가 향상되었다고 '느꼈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올랐는지 여부가 아닌 '자신들이 알고 있는 한국 가수들에게 열광하는 유럽인들'을 보고 자발적인 결론을 내린 의견을 보도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있음에도 말이죠.


이번 유럽 진출을 성공이라고 말하는 이면에는 철저한 현지화에 대한 노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현지화는 철저하게 '기획사'의 역할에 한정해 '완제품'만을 판매하고 핵심적인 '원곡'에 대한 권리나 매니지먼트까지 거의 대부분 현지 유명 인력들과 손을 잡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게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팔려면 그렇게 해야 하죠. 그런데 그렇게 해서 대체 뭐가 남을까요? 국내 음악의 경쟁력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해외에 진출해서 '외국 작곡가'와 '외국 프로듀서'에게 키워진 '입양아'가 과연 한국 음악계 그리고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경쟁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증거가 되어줄까요? 백청강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나라 유명 가수들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우리나라의 관리를 받으며 연예인 티가 나며 가요 프로그램 상위권에 오르고 있는 지금 현실을 들어 백청강이 태어난 나라 중국의 문화콘텐츠 수준은 이미 한국을 위협할 수준이라고 판단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중국이 낳은 스타가 아니라 한국이 만든 스타가 되었다. SM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유럽인들의 시각도 앞으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일본의 음반 시장을 K-POP이 장악하게 된 일종의 쾌거는 SM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게 아닙니다. 그들이 주장한 대로 K-POP의 음악적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그 수준이 높아진 데에 SM이 끼친 영향이 절대적인 것도 아닐 겁니다. 음반 시장이 너무 뒤늦은 감이 있지만 저작권법이 각자의 권리에 맞게 세분화되면서 그동안 기획사가 보유하고 독식했던 작곡가들과 연주가들의 권리가 제각각 금전적 보상과 배분이 가능해지면서 젊은 감각과 세계적인 안목을 가진 유능한 작곡가들이 꿈을 잃지 않고 음악계에 대거 덤벼들며 경쟁력을 키워왔기 때문입니다. E-TRIBE, 신사동 호랑이, 용감한 형제 등 독립 작곡 레이블의 등장과 더불어 음악이 점차 '틀에 박히지 않은' 영역을 넘나들기 시작했고, 지금 별다른 매니지먼트 없이 음악 자체만으로 승부되는 시장에서는 이들 음악의 성적이 소리소문없는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의 음악이 해외에서 SM 자체생산 음악보다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케이스도 얼마든지 있으며, 실제로 일본 시장에서는 SM의 그룹들보다 카라, 비스트 등 군소 기획사들의 그룹들이 더 나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점이 이를 증명하고 있죠.

코드조차 모르고 작곡한다는 것이 오히려 그의 자유로운 음악 감각을 키웠다고 말하는 '용감한 형제',(사진) 기획부터 음악까지 일본을 배끼기 바빴던 시절부터 풀뿌리 아이돌 음악을 꾸준히 추구했던 DSP의 한재호, 음악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신문배달을 해가며 언더 작곡가부터 지금의 정상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는 노력을 해왔던 신사동호랭이까지, 이들이 다른 업계가 아닌 음악계에 진출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음악업계 전반적인 노력이 있었던 것이 결국 우리나라 음악계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믿어 의심치않는다. 문화산업이란 시대를 역행하며 자신들을 통해서만 해외진출을 할 수 있는 독점루트를 만들려는 자들에게 기회를 주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의 힘은 '기획'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기획사에 소속된 전속 작곡가의 경우 어떤 그룹의 '기획'에 맞춰 곡을 '찍어내야 하는' 창작적 제약이 심할 수밖에 없죠. 기획이 앞선 뒤에 곡을 나중에 작곡해야하는데다가 보컬의 음색이나 그룹 이미지, 가창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완성도에 신경을 쓸 만한 여력이 부족해질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이런 환경에서는 좋은 음악이 나올수가 없죠. 그러나 이들 독립 레이블을 가지고 있는 작곡가들은 곡을 먼저 만들고 수많은 아이돌 혹은 아티스트들 모두를 대상으로 삼을 수 있기에 전속 작곡가들보다 창작적 제약이 훨씬 덜하기 마련입니다. 한국 음악계가 본격적으로 해외에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렇듯 본질적인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지, 그저 애들을 밖에 내보내서 인기를 끌기 위해 외국인 작곡가 프로듀서의 힘을 빌려 진출 그 자체에 의미를 둔다면 발전은 커녕 풀뿌리를 좀먹는 결과 이상을 내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제값은 받고 있나?

우리가 이들의 성과를 보면서 주의해야할점은 '우리의 현실'과 '그들의 현실'을 결코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대비 문화지출비용이 OECD국가 중 최하위권에 속합니다. 그만큼 경제 규모에 비해 문화 콘텐츠 산업에 돈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유럽이나 일본은 다릅니다. 인구나 인근 국가의 접근성 문제도 있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문화를 대하는 자세가 다른데요. 정말 오리콘에 등장해 한 번도 1위를 하지 못하거나 총 판매량이 채 5만장을 넘기지 못하는 아티스트도 얼마든지 전국투어 콘서트를 열 수 있으며 홍보하기에 따라 매진 행렬도 가능합니다. 즉 이미 소득 대비 '문화비' 자체가 다른 겁니다.

  다시말해 우리나라가 100을 벌면 물가가 상승할 경우 문화비와 외식비를 줄이고 생필품비를 KEEP하는 성향을 보이지만 일본이나 유럽의 경우 특별히 문화비와 외식비만 줄이는 게 아니라 모든 분야의 지출을 균등하게 줄이는 성향을 보입니다. 문화비가 선택이 아니라 '생활필수비용'이라는 것이 그들의 인식인것이죠. 우리나라로서는 잘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긴 합니다만, 복지 제도 등 이런 저런 국가적 사정이 얽혀 있는 것을 감안한다손쳐도 아무튼 그들이 지출하는 문화비에 대한 '저항감'은 훨씬 덜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접근해야 합니다.


  여기에 추가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바로 '미디어 접근성'인데요. 음악을 들을 보편적 기회가 정말 많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유럽과 일본은 절대 이 음악이라는 콘텐츠를 '공짜'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일례로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방송국에서 하는 공개방송은 '무료'로 개방합니다. 초대권이 필요한 경우에도 보통 티켓을 무료로 배부하죠. 그런데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라디오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콘서트가 당당히 입장료를 받았고, 그 가격이 일반 콘서트보다 더 비싼 경우도 있었으며, 그나마도 선착순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더 놀라운점은 그냥 순수 방송국 주최가 아니라 '기업 스폰서'를 낀 콘서트였음에도 그런 정책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었죠. 우리나라같으면 상상도 못할 문화 소비 기준이겠지만 해외에서는 당연하게 소화되고 있다는 점도 우리 기준으로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되는 부분인 것입니다.


공급도 넘치지만 수요는 더 넘친다. 그래서 공급을 늘리면 수요도 같이 늘어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 일본과 유럽에서는 현실 그 자체다. 지금 당장 지나가는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일에 돈을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기까지 우리나라는 얼마의 시간을 더 들여야 할까?


우리나라의 경우 '1순위' 즉 '콘서트하면 반드시 가야 할 가수'가 대체로 1명을 넘기지 않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2순위도 있고 3순위도 있습니다만, 그들은 그냥 TV에서 보거나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공개방송에 가는 것으로 타협하죠. 그러나 해외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1순위는 물론이거니와 최소 5순위까지는 절대 가야 할 영역권에 넣어있으며 6~10순위권이라 할지라도 기회가 된다면 간다는 의사결정이 될 만큼 '인식적 시장'이 대단히 넓습니다. 만일 한국의 음악시장 소비층을 10만명으로 계산하고 이들에게 나올 수 있는 수익을 100으로 가정한다면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 같은 10만명이라도 그 10배 이상의 시장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구매력'의 문제가 아닌 '다양성의 수용'이라는 문제로 해석될 수 있는데요.

  아무튼 이렇게 수율이 다르다보니, 지금 유럽인들이나 일본인들이 보이는 저런 반응들이 진짜 우리 K-POP에 1순위로 열광하는 것으로 왜곡되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10순위일수도 1순위일수도 있지만 우리 시각에서 그정도로 오바스럽게 '외국가수를 좋아할정도면 당연히 1순위'라고 우리 기준대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생기는 문제인데요.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에 지금 다른 나라 가수가 내한공연을 했을 때 과연 누가 와야 저런 정도의 플래시몹이나 단체 시위까지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아마 그들이 비교하는 대로 '비틀즈'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 비틀즈도 힘들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유럽인들은 정말 비틀즈와 동급으로 K-POP을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답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확실한건  모인 사람 모두 K-POP을 1순위로 좋아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고, 모인 모든사람들이  눈물을 흘릴만큼 열성적인 사람만 가득하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떼로 통곡할정도면 따로 한 사람씩 편집할 이유가 없었겠죠.

이정도 퍼포먼스는 정말 심하게 말해서 우리나라 인터넷 카페 중 회원수 좀 되는 카페정도라면 얼마든지 개최할 수 있는 정도다. 왜 이들이 하면 그렇게 특별해보인다고 착각을 해줘야하는걸까?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이들의 성과를 성공으로 치부하는 데에 있어 뉴스 보도나 '다큐멘터리'가 제시하고 있는 기준입니다. 1만 7천명 동원, 열화와 같은 성원에 못이겨 추가공연, 전 세게에서 우리나라가 발신하는 유튜브를 보고 있다는 것, 이 세 가지인데요. 일단 이 세 가지 기준을 들어 K-POP이 유럽을 평정했다는 식의 다큐와 보도가 쏟아져나오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어색합니다. 왜냐하면 '구매력'과 정말 직결되었는지를 판단하게 만드는 기준 즉 '상품성'이 어느 정도였는지가 아직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콘서트야 유료 콘서트였다면 얼마든지 시장성으로 검증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유럽 콘서트라는것이 결국 현지 수익 배분을 따져본다면 티켓 가격을 많이 올리거나 더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거나 하는 숙제를 안게 되는데요. 아무리 시장 개척이라는 명분이라고 하더라도 단발성 이벤트만으로 시장을 판단하게끔 하는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선 보다 구체적인 안이 필요한거죠. 즉 공연에 몇 명이 들어왔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공연 수익'이 얼마나 되었느냐를 먼저 밝혔어야 합니다. 물론 회사 대외비라서 밝히기 꺼려질수도 있습니다. 강요는 할 수 없죠. 대신 '국위 선양'따위의 발언도 같이 집어쳐줘야 하는 숙제가 남겠지만요.

투입된 그룹만 5팀, 맴버 수는 30명에 육박할정도면 원정 간 팀은 최소 100명은 넘을것이고, 여기에 현지 운영 팀 인건비에 장소섭외비, 마케팅비까지 포함해서 산정한 게 이 정도라면 이미 공연을 꾸리는 것 자체만으로 비용처리가 끝나버린다는 소리다.


다른 기준을 살펴봐도 애매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는 유투브는 무료 메체이고 정식 음반 발매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판매 실적도 전무합니다. 나온 거라곤 정말 수차례 반복적으로 방송된 파리의 쏘리쏘리 플래시몹이나 공항에서의 마비사태, 추가공연 시위 등이 전부였죠. 경쟁력을 갖추었다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구매'를 이끌어냈다는 어떤 증거를 남겨야 합니다만, 그것보다는 뭔가 '앞으로의 가능성'에 투자와 성원을 보내달라는 식의 '호소성' 활동이 더 많았습니다. 실제 실적보다는 앞으로의 실적을 내세우면서 말이죠. 그리고 지난 월요일 밤 11시에 방영되었던 파이팅 재팬 '서울 오사카'에서는 방송의 거의 절반 이상을 '가수들의 모습'이 아니라 팬들의 얼굴과 피켓, 울면서 환호하는 장면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지난 월요일 23시에 SBS에서 방영된 서울 오사카 파이팅 재팬 주요장면, 어떤 콘서트 DVD도 이딴 식으로 편집하면 반품크리.... 누가 가수보다 관객을 더 많이 보고싶어하겠는가?


게다가 이들 콘서트는 어느 한 그룹의 단독 콘서트가 아닙니다. SM타운 소속 그룹들이 거의 총동원된 컴필레이션 콘서트(?)라고 볼 수 있었는데요. 이런 공연은 대체로 가격이 출연 가수들 수에 정비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한 예로 '마이클잭슨과 친구들' 내한 공연 때는 마이클잭슨 이외에도 정말 수많은 수준급 아티스트들이 함께 공연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비싼 티켓 가격으로 논란이 되었던 30만원 정도의 티켓 가격이 유럽에서는 당연한 수준이라는 겁니다. 다양한 가수들이 나오는 만큼 공연 플레이 타임이 같더라도 돈을 더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죠. SM의 유럽 현지 공연이 과연 이런 특성을 고려해서 가격책정을 했을지 아니면 그냥 일반적인 단독 콘서트 수준의 가격책정을 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후자였을 경우 사실상 '유럽'에서는 '폭탄 세일'수준의 파급력을 가져옵니다. 당연히 '연장 공연'을 요구할 수 있죠. 우리나라에서 '비'공연을 만원에 이틀간 한정 판매한다고 해보세요. 똑같은 시위 일어납니다. 정말 제값을 받고 공연을 했는지, 아니면 보여주기에 급급해 애들을 덤핑 판매했는지도 밝혀야 합니다. 물론 사내 대외비라 밝힐 수 없다고 하면 할 말은 없죠. 대신 앞으로 사내 활동 따위에 대한민국 음악계를 위한다던지 '국위 선양'같은 말을 지껄일 자격도 동시에 사라진다는 것 역시 함께 상기해주셔야함은 물론이고요.

유럽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 경기장 티켓도 이 정도 가격 (물론 좋은 자리는 더 비싸고)이며 공연 티켓 가격이 비싸다는건 공연장 임대, 관련 인력의 인건비도 훨씬 비싸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좋게 봐서 적자를 안봤다고 해도 SM타운 소속 가수들은 거의 노개러로 뛰지 않는 한 수지가 안맞는다는 것, 참고로 유럽의 일반적인 가수 단독 콘서트 티켓은 프레스티지 + CD 기준으로 550 달러 (약 400유로 정도) 대부분 티켓이 없어 인근 국가 투어때 비행기 타고 원정을 가는 것도 일반적이다. 투어 연장 시위할만하지 않겠는가? 한국까지 가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당연히 투어때 들어가는게 싸고, 그걸 생각 안해도 정말 싼 가격이니까 (게다가 출연진도 한 팀이 아니라 거의 종합선물세트 수준인데)


   
SM은 보아의 해외진출과 함께 주식회사로 상장되었으며 국내 음반 시장의 지속적인 침체 속에서도 해외 진출에 대한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어필한 끝에 상장폐지를 면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미는 마케팅의 한계, 일본 시장에서 후발 주자에게 추월당하는 현실 등으로 인해 주가를 관리하기가 어려워졌죠. 중국이나 동남아 진출 떡밥을 지속적으로 전개했습니다만, 실질적으로 음반 수익이나, 공연 수익이 케파를 맞출 수준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 실질적 손익분기결산에서 드러나기 마련이기에 SM은 주가 부양을 위해 투자자들을 자극할 새로운 떡밥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그러던 중 유럽 시장이 조금 움직인 것을 캐치하고 깜짝 이벤트를 열었던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메스미디어, 특히 뉴스 프로그램이나 KBS1같은 주로 30대 이상 경제활동계층에게 보여지는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출연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하고 있는데요. 9시 뉴스데스크는 물론 실질 경제계층 아니면 잘 보지 않는 11시 뉴스라인에까지 출연해서 어필하고 있다는 점, 일요일 저녁 8시 KBS스페셜에서 특집으로 다루었다는 점은 결국 이들이 유럽에 진출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결국 추가 투자를 유도하려는 홍보성 쇼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유럽 시장에 진출하면서 철저히 SM 내부 혹은 SM 독점 네트워크만을 활용하고 외부 작곡가의 곡을 철저히 외면한 점 역시 SM의 회사 가치만으로 유럽에 진출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이지 우리나라 음악이 세계로 진출해서 인정받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기는 어려워보이네요.

왜 하필 뉴스라인이었는가? 왜 하필 보수적이기로 이름난 KBS1이었는가? 왜 중장년층 시청율이 높은 다큐멘터리였는가?


기업, 투자 유치로는 참 배울게 많은 기업입니다만...
그냥 투자 유치 활동을 가지고 '국위 선양'이니 우리나라 음악을 세계에 알린다느니
하는 식의 발언은 삼가해주길 바라는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오히려 SM의 이런 활동들이 결국 해외 진출 루트가 SM 기업을 통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독과점상태가 되어 해외 진출이 아예 제한되어버리는 일이 생겨버릴 가능성도 있을뿐더러... SM이 이런 '한국 음악계의 실크로드 SM'의 독점 체계 고착화를 조금이라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보기도 힘들거니와 처음부터 이들의 목적 역시 대한민국 음악의 세계 진출같은 거창한 대의가 아닌 그 대의를 앞세워 돈을 벌고 싶을 뿐입니다. 그것도 차라리 외화벌이처럼 아예 외국에서 악착같이 돈을 추구하면 그나마 낫겠습니다만, 이들의 최종 목적은 유로, 엔, 달러벌이가 아니라 국내 투자자들의 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별다를게 없죠.

....그들은 언제나 그러고도 남을 만한 회사였고
앞으로고 거기에서 크게 변할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RushAm 2011. 6. 29. 17:55

중 편에서 이어집니다 - 못보신 분들은 클릭

동방신기의 데뷰는 잘 알려진것처럼 그룹명부터 아예 대놓고 동아시아 전반을 공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물론 보아 때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오랜기간 트레이닝을 거쳤고, 이제는 중2병에서 어느정도 탈출한 듯한 유영진 사단의 지금까지의 실패에서 얻은 역량을 모두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그런데 그렇게 많은 주목을 받으며 탄생한 동방신기는 이상하게 국내에서 초반 성적이 매우 좋지 못했는데요. 예상하셨겠지만 역시 동방신기의 초반 '기획 컨셉'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카펠라를 댄스에 접목, 이라는 동방신기 데뷰 컨셉은 많은 이들에게 조롱을 당했는데요. 이 실력파 아이돌이라는 욕심을 아직 포기하지 못했던 음악최우선주의 유영진의 거의 마지막 자존심의 발로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시장의 결과는 매우 차가웠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에는 SG워너비를 필두로 가창력 있는 실력파 보이그룹이 거의 가요계를 장악하고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노래 잘하는 잘생긴 실력파 아이돌'이라는 컨셉을 들고 나와 이들과 부딪혔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미 승산은 저 먼 곳으로 사라진 셈이었죠. 기획이 그닥 좋지 않았던 부분도 있었겠지만 운도 잘 안따른 편이었습니다.

하필 얘들이랑 활동시기가 딱!


그래도 이들이 꾸준히 동방신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건, SM의 고정 팬덤 장악 능력으로 인해 적어도 손익분기점은 넘을 수 있을 만큼의 팬덤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SM의 팬덤은 굉장히 고착화가 되기 쉬워서 음반 판매량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성향을 보이기 때문에, 주로 싱글보다는 앨범 위주의 활동을 해오며 '다작'을 자제했던 동방신기는 음반 하나를 1년에 한 번씩 내는 매우 희소성이 높은 신비주의 전략을 취하며 1년동안 꾸준히 하나의 음반을 팔아서 총판매량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성을 만들어나갑니다. 20만명의 팬이 있다고 해서 그 팬이 매번 음반 나올때마다 다 사는 건 아니지만 1년에 한번 나오는 음반이라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20만명 중 적어도 15만명은 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가요 랭킹에서는 보기 쉽지 않지만 최종 연간 판매 랭킹에서는 수위권을 차지하는 식의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다소 기이한 활동 전략을 추구합니다.(이는 최근 슈퍼주니어의 국내 시장 활동 전략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전략에서도 보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한국 원곡 위주로 전개하는 한편 SM재팬을 본격 설립 AVEX에 의지하지 않은 독자적인 홍보 활동을 전개합니다. 문제는 이들이 너무 처음부터 '멋을 부리고'나오며 초반 기반이 없으니 자금력을 이용한 소위 '돈으로 미는 마케팅' 을 일본에서 전개하게 되는데요. 결과는 다 아시다시피 '실패', 이 전개 방식이 실패한 원인을 따져보자면 다른 기획 하나를 더 써야하기에 간단하게 축약하자면 '일본은 처음부터 멋 부리고 나온 가수'는 그 다음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지지를 보내지 않습니다. 지지를 보내봐야 그 이상 멋있어지지 않으면 흥미를 잃거든요.

일본에서 한국인은 손님이다. 그런데 그게 문화 콘텐츠를 파는 아티스트라면 일방통행이 될 수 없다. 일본인은 자신들에게 묻지도 않고 억지로 뭔가 강요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이다. 초기 동방신기가 딱 그랬다. 그들이 저런 초라한 무대에 섰다는것은 그만큼 인지도가 없어서이지 저게 '돈으로 밀지 않은 밑바닥'마케팅이었다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 동시기에 전국방송 TV 출연 빈도가 이를 말해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 소녀시대가 이를 벤치마킹해서 똑같이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골든디스크에 빛나는 유영진의 야심작 '오정반합' 직전까지 이 대대적인 푸쉬는 이어집니다만, 결국 좀처럼 늘지 않는 싱글 판매량에 한계를 느끼고 동방신기의 독자적 활동 노선을 포기합니다. AVEX에게 바톤이 넘어간 뒤에는 잘 아시는것처럼 시골 로컬 방송에서 농사 짓는 등 이른바 '바닥 긁기'를 하게 되는데요. 이를 두고 해외 나가서 굴욕을 당했다는 등의 비난도 있었지만 사실 일본의 연예계는 '직소퍼즐'과 같아서 다 완성된 걸 팔아봐야 소용이 없거든요. 일단 완성된걸 한번 시원하게 부수고 하나씩 조립하며 완성해나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상품이라는 것을 SM재팬은 몰랐고 AVEX는 알았다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어렵기만 했던 차이가 향후 동방신기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버리고 맙니다.

SM의 곡 위주로 거의 한계까지 푸시하였지만 유영진의 야심작이었던 오정반합까지 싱글판매 3만장을 넘기지 못하자 SM곡 위주의 푸시 전략도 한계에 봉착하게 됩니다. 왜 이들이 돈으로 밀 수 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해보면 결국 SM의 곡으로 어떻게든 일본 시장에서 해보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곡 자체의 호불호를 떠나 이미 접근 방식 자체에 문제가 더 컸었죠. 아무튼 음악부터 매니지먼트까지 거의 전권에 가까운 권리가 다시 AVEX로 넘어오고 AVEX는 철저하게 일본 바닥에 맞게 동방신기를 굴립니다. 이미 돈으로 열심히 밀어서 인지도는 있었지만 '관심도'가 떨어졌던 동방신기는 생각보다 적은 '바닥 구르기'를 거친 뒤 판매량을 급상승시키게 되죠. 아쉽지만 SM은 보아 때 이상으로 죽 쒀서 남 준 결과론이 되고 말았다는 점에서 씁쓸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웅재중의 해어스타일 변신과 함께 음반판매량도 쑥쑥 (?)


그 뒤로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그대로 일본 원곡을 대량으로 푸시받아 불과 2년만에 쟈니즈조차 눈깔고 피해가는 거물로 성장하게 되는데요. 그토록 동방신기를 통해 보아 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했던 SM으로서는 매우 유감스러운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정반합 뒤로 반년이 채 안돼 골든 싱글을 배출한 동방신기는 그 후 꾸준히 10만장 이상 넘기며 순항하는데요. 잠시 한국에 돌아와 출시했던 미로틱이 한국에서 50만장이 넘게 팔리며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때 SM은 이 곡의 일본 성적에도 살짝 기대를 했었던 것 같습니다만, 오히려 10만장 이상 연속 기록을 가로막는 형국인것마냥, 미로틱 싱글의 일본 판매량은 9만장에 그치고 맙니다. 더 굴욕적인 것은 그 다음 싱글에서 일본 원곡으로 11만장을 팔았으며 그 뒤로 한번도 10만장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동방신기의 분열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점점 동방신기는 AVEX 산하에서 전설이 되고 있는데, 그 수많은 골든싱글 중 SM곡은 단 한곡도 없었으니 SM입장에서는 동방신기가 그대로 성장하는 걸 바라보고만 있기 힘들었던거죠. 동방신기가 일본에서 잘 나가면 SM도 돈을 벌 수 있으니 좋은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좀 많이 달랐던 모양입니다. 통상적으로 한국 가수가 일본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 그 일본 활동에 대한 '권리'를 함께 계약하게 되는데요. SM의 지금까지의 관행을 생각해볼때 아무리 좋은 계약을 이끌어냈다고 하더라도, 일본에 저작권이 있는 곡의 저작권수입까지 기대하긴 힘듭니다, 단지 동방신기 5인에 대한 소유권을 통해 그들이 부른 보컬에 대한 권리, 즉 저작인접권만을 받게 되는데, 이게 진짜 누구코에 붙여야 할지 모를 정도로 작다는 말이죠.

이런 식인데, 사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서 설명하자면 끝이 없으니 여기까지만...


즉 동방신기 5인에 대한 인물 초상권 (이들이 움직여서 만들어지는 수익)은 SM이 가지고 있으며 이들을 이용해서 만들어지는 2차 창작물에 대한 권리 (음반, 음악, 콘서트 등)는 AVEX에게 있게 됩니다, 그런데 동방신기의 일본 활동은 흔히 쟈니즈처럼 칸무리 방송 (그룹 이름을 걸고 만들어지는 인지도 방송) 은 고사하고 TV출연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으며 흔한 기업 캠페인 행사나, 하물며 그들보다 훨씬 인지도가 낮은 쟈니즈 그룹들도 4~5개씩은 찍는 CM조차 거의 찍지 않는 등 철저히 신비주의적 아티스트의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식이었는데요. 이게 AVEX의 전략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활동은 SM에게 정말 돈이 거의 안가는 활동 체계였던 것입니다.

동방신기의 분열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SM은 동방신기의 제계약에 앞서, 계약 조건에 적어도 이같은 활동 주체를 앞으로 AVEX보다 SM이 주도하는 (일본 활동에 대한 돈을 더 챙기기 위해) 조항을 넣었을것이고 이에 동의한 측과 동의하지 못한 측이 갈라진거죠. SM이야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한 수순이었지만, 우선적으로 이들의 계약 조건에 동의하지 못한 맴버가 있었고 더 중요한 건 동방신기와 재계약을 한 들 이미 5인그룹 동방신기의 지금까지 쌓아온 인지도에 대한 권리는 AVEX에게 있었기때문에 SM이 협상하기에는 한층 불리한 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SM입장에서는 해체 후 재결성을 통해 아예 그룹을 리셋하고 SM의 소유권한을 더 강화한 계약을 맺고 싶었을것이고 AVEX는 당연히 지금까지 쌓아온 동방신기의 인지도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것이죠.

화장품 사건으로 대표되는 동방신기 분쟁, 사실 이 화장품 사건이야말로 본질에 가장 근접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JYJ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들이 화장품 홍보 행사를 뛴 것이 SM의 '저작인접권' 즉 외부활동행사에 대한 수익배분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이 핵심이었던 것. SM이 일본에 있어 그나마 가지고 있었던 동방신기의 '초상권'을 포기할 리가 없다.


그리고 이 사건의 또 다른 관점에는 리더 유노윤호와 일본 인기 NO.1 영웅재중과의 대립이 있습니다. 영웅재중은 리더형 타입은 아니지만, 데뷰곡 HUG 작곡에 참여한 이력이나, 일본 활동 당시 보여줬던 부분을 보더라도 음악적 감각이 다른 맴버들보다 나은 측면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향후 동방신기가 나아가야할 음악적 방향성을 잘 알고 있었겠죠. 동방신기의 골든 싱글은 모두 일본 원곡이었기 때문에 그는 일본 활동에 있어 일본 원곡 위주로 AVEX나 기타 일본 매니지먼트를 통해 활동을 하는 편이 그룹의 미래를 위해 더 옮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 점이 SM의 향후 동방신기의 음악 저작권을 필요로 했던 부분과 대치된 것입니다. 영웅재중의 이같은 성향은 SM의 음악최우선주의, 즉 유영진 사단의 심기를 아주 불편하게 만들기 충분했죠. '늬들 음악으론 일본 시장에서 안돼!' 라고 대놓고 말하는 소속 가수를 가만 놔뒀을리가요.

이후 2명의 동방신기는 SM 원곡을 들고 당당히 일본 활동에 입성 28만장을 기록한다. 그러나 그 28만장이 과연 동방신기라는 타이틀의 재활용과 컴백효과에 따른 착시인지 아직 판단이 애매한 상황에서 본래 동방신기의 활동 주기였던 (분기별 뉴 싱글) 체계가 무너진 채 5개월이 넘도록 새로운 신보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JYJ의 국내와 일본 활동을 막아가며 그들 방식대로 2명의 동방신기를 부양시키려 애쓰고 있지만, 영웅재중의 예언대로 SM은 일본에서까지 SM일 수 없었던 듯, 갖가지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특히 최근 있었던 오사카돔에서의 '파이팅 재팬' 콘서트에서의 최강창민의 발언이나, 무리하게 한국 가락을 넣은 편곡, 스크린의 태극 마크 등은 이들이 일본 시장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를 꿈꾸는 그대들에게...

SM엔터테인먼트는 음악최우선주의가 기본 모토입니다. 그렇다고 자작곡을 하는 싱어송라이터가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적어도 짬이 지금의 보아만큼 쌓이지 않았다면 자신의 '캐릭터 방향성' 즉 이미지 기획을 스스로 정하지는 않는 것이 좋습니다. 창법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이 어떻게 지금까지 연습을 해왔던지 간에 다 버리시고 SM의 보컬 트레이닝 규칙에 맞게 가다듬을 준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오디션 단계에서 SM식으로 다듬는게 도저히 불가능할정도로 고착화된 창법을 가진 분들은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낙방을 각오하시는게 좋을것입니다. 재능도 재능입니다만, SM에 있어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말 잘듣는 유망주니까요.

댄스 위주의 가수를 꿈꾸시는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팝핀, 브레이크 댄스 일단 다 접고 들어가시고 그냥 그 감각과 운동신경만을 꾸준히 유지시키세요. 음악최우선주의라는 점을 말씀드렸기때문에 댄스에 너무 집중하기보다 보컬을 무리없이 내지를수 있는 선에서 벨런스를 맞추시는 연습을 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다 합쳐서 150밖에 못내신다면 과감히 노래 100에 댄스 50으로 맞추세요. 어차피 연습한 댄스 체계는 메이저 활동하시면 다 버릴 각오하시는게 좋습니다.

 SM는 모든 기획이 '음악'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우선 이 그룹이 어떤 음악을 할 지를 정한 뒤 그에 맞춰 모든 것을 정하죠. 물론 말로는 대단히 당연합니다만, 이게 '스크립트'냐 '스팩트럼'이냐에 따라 매우 달라집니다. 즉 춤을 음악에 맞춰 추느냐, 춤을 인간이 추는 게 아니라 음악에 맞춰 튕겨오르는 '인간 레벨메터'가 되느냐의 차이인거죠. 이런 모습은 예전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살펴볼 수 있는 SM의 기본 성향 중 하나입니다. 이점을 염두에 두시면서 아래 몇 가지 준비한 샘플 영상을 참조해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


SM에 당신이 아티스트로 들어갔건, 아이돌 그룹 맴버를 생각하고 들어갔건, 작곡 편곡 프로듀서 인력으로 들어갔건지 간에 당신이 SM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는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것이 전부라는 것, 알아두세요. 승진이나 그룹 내에 다른 걸 해보고 싶다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걸 버리고 새로 시작할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특히 음악적 가치관에 대한 반발이나, 활동 방향성,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반발하는 법을 아예 잊고 들어가세요. 시키는 대로만 하면 참 평화로운 회사일 것입니다.

뼈를 묻으실 생각으로 들어가시는 분들물론 몇십년씩 있는데도 승진이 안되진 않습니다. 당신은 후배 가수를 둘 수 있고 존경받는 선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존경받는 선배가 될 수 있어도 존경받는 프로듀서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승진을 할 수는 있지만, 보다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지는 않는다는 것, 선배는 될 수 있어도 선생님은 될 수 없다는 점 꼭 알고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공화국 연구소 - 아이돌 기획사 열전 'SM엔터테인먼트'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1. 6. 25. 22:36
상 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 --- 못보신 분들은 클릭

그들이 HOT의 '실패'에서 깨닫게 된 실패 원인은 놀랍게도 '기획의 미숙함'이 아니라 기획은 완벽했으나 그 완벽한 기획을 제대로 소화해주지 못한 유망주들의 실력 부재였습니다. 물론 아무리 지난 이야기라고 해서 당시 SM의 이같은 판단이 반드시 잘못된 결과론을 도출하기도 애매합니다. 사실 문제는 어느 한 쪽의 책임이 아닌 SM, 나아가서는 가요 시장 전반에 있었거든요. 아직 대한민국은 아이돌 시장을 어떻게 소비해야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SM은 그런 아이돌 시장이 이미 안정화되었다는 전제 하에 너무 기획을 완벽하게만 짜내려고 했으며 그런 치밀한 기획을 접해보지 않았던 유망주들이 이를 이해하고 제대로 소화할 리가 없었던거죠. 다시말해 시장, 유망주, 기획사 모두 풋내기에 지나지 않았기때문에 시간을 두고 같이 성장시켜야 했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기획은 완벽하다'라는 SM의 편식성 자아도취로 인해 아이돌 시장은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난 천재니까...


그 한계를 매우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 바로 HOT의 해체입니다. 얼핏 보면 계약분쟁만으로 보이는 이 사건은 사실 일부 SM맴버들이 '회사에 남았다'는 점에서 단순한 계약분쟁으로 치부하기에 어려운 감이 있는데요. 이들 5명이 지금까지 이어오는 행보를 보면 각각 롹커(...), 소프트팝가수 (이상 SM에 잔류한 문희준, 강타) 1인 기획사 창업 후 브리티시 팝, 힙합 음악, 댄스 위주 보컬 (이상 잔류하지 않은 토니안, 이재원, 장우혁) 입니다. 눈치채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잔류하지 않은 3인의 음악적 행보가 SM이 지금 현 시점까지 해왔던 음악적 색깔과 맞지 않았다는 점이 우선적인 문제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만, 단지 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음악을 하게 해준다는 것 이상의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SM은 HOT의 표면적 성공을 기반으로 꽤 빠른 시점에 주식회사로 전환 코스피에 상장을 하게 되는데요. 이 상장이라는게 벤처기업 입장에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만큼 성공 그 자체일수도 있습니다만, 냉정히 보면 결국 '회사'가 완전히 내 것이 되는 게 아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즉 경영상의 간섭을 받게 된다는 것이고 업계에 전문적인 지식이나 애착이 없이도 얼마든지 돈만 있으면 이 회사를 소유해서 내 마음대로 주무르는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경영권 방어'가 안되는 것은 물론 주주들의 수익을 위해 무조건 생산적인 활동만을 해야하고 지출을 줄여 순익을 높이는 활동을 강요받게 되는데요. 바로 이 점이 SM전체 조직의 분위기를 결정해버리고 맙니다.

리더 문희준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사회비판적인 음악 코드와 강한 전사의 이미지라는 HOT의 기획은 문희준의 솔로 데뷰로 이어졌고 HOT의 금전적인 성공을 가져다준 소프트팝 음악을 추구했던 강타의 잔류는 매우 자연스러웠습니다. SM이 지금까지 해왔던 음악과 크게 차이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남은 3인은 일단 당시 시점에서 해오던 음악도 아니었고 그들의 음악을 뒷받침할 기획 인력도 없었습니다. 즉 추가 투자가 필요했던 사안이었다는 것이죠. 여기에 이들이 요구했던 부분은 '가수로서의 재계약'이 아닌 '일정 지위 이상의 승진'이었던 것 같습니다. 즉 가수로서 활동은 하면서 자신들의 음악을 추구하는 후배들을 SM 내에서 키워내는 새로운 파트를 맡고 싶다는 것이었죠. 이들의 요구는 기획사에 소속되어 5년 이상 활동한 가수로서는 지극히 당연할수밖에 없는 요구였습니다만, SM은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즉 그들은 새로운 음악을 기획할 자금도 그들을 중역급에 가까운 대우를 해주며 신인을 키우는 역할을 부여해줄 생각도 없거니와 결정적으로 'SM의 기획 가능한 권리'를 독점하고 싶어했던 경영진을 위시한 실무진들의 몽니가 자칫 아이돌들의 은퇴 후 승진이 당연시되는 풍토가 정착되는 것을 막았던 것입니다.

문희준의 솔로 데뷰가 지속적인 안티팬만 양산하자 SM은 아무미련없이 문희준을 포기한다. 그의 군입대는 안티팬들을 설득시키기 위함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진은 군 제대 후 2008년 싸이더스 소속으로 신보를 냈을 당시...


SM은 돈을 많이 안주거나 노예계약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신인으로 입사해서 열심히 SM이 하라는 대로 기획에 발맞춰 꼭두각시짓 하고 난 뒤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동네 피자집도 3년 이상 배달일 열심히 하면 매니저 승진의 기회가 있기 마련인데, SM은 적어도 가수들에게 있어서 '회사 내부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실무진 참여'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기획은 어디까지나 처음부터 프로듀서를 하던 사람들 즉 유영진 라인이 독점할수밖에 없었고 그 아래에서 아무리 강타나 문희준이 선배급 대우를 받으며 승진을 한 들 독립적으로 자신들의 경험을 살려 새로운 신인을 기획하거나 키워내는 것은 있을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즉 HOT의 해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를 알고서도 그냥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쪽이 SM에 남았고 이에 반기를 든 3인이 박차고 나간 것이 되는 셈인데요, 물론 세간에 알려진대로 불공정한 계약 관행 역시 문제가 되었겠습니다만 그 이전에 사실 이들은 엄밀히 말해 SM 5년차로서 그에 걸맞는 지위 상승과 연봉을 요구했고 승진도 안시켜줄거고 돈도 지금 이상 더 줄 생각이 없다는 SM의 입장이 이들과 대치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자승자박에 가까웠던 SM의 HOT에 대한 오판은 이후 SM의 행보에 있어 갖은 후유증을 남기게 되는데요. 우선 4집부터 과감하게 시행한 실력파 아이돌의 육성을 완전히 포기하게 됩니다. 이는 물론 그렇게 나온 아웃풋이 상품성이 너무 떨어졌다는 점도 문제가 되었습니다만, 더 큰 문제점은 그렇게 키워놓은 결과 자신들의 능력과 경력을 내세워 '상관 대우'를 요구하는 빌미가 된다는 점이었죠. SM은 이후 5년 주기를 꾸준히 지키는 한편,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아티스트형' 유망주를 멀리하는 등 철저하게 아이돌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유닛형 유망주만을 선발하는 풍토가 자리잡게 됩니다. 그냥 기획한 대로 잘 소화해주는 유망주가 필요할 뿐 음악적 역량을 키워 새로운 음악 포멧을 추구하는 한 축으로 자리잡을 아티스트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이죠.

바다 이야기는 좀 하고 넘어가자, SM 소속 가수 중 최초로 유영진 사단에 '개긴'뒤 재계약 불발과 소속사 이적 이후 전설적인 수준의 찌질한 방해공작은 이미 잘 알려져있지만, 그녀가 왜 SM에 개겼는지, 왜 그 개김에 SM이 발끈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위키에도 언급이 안되어있다) 가수였던 아버지에 의해 오랫동안 트레이닝된 그녀만의 독창적인 창법은 흔히 SM창법이라 불리는 그것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으며 이를 유영진 사단이 자신의 기획에 맞게 맞춰나가면서 창법 개조를 거부한 바다측과 트러블이 잦았다고 한다. 자신의 기획과 음악에 대한 프라이드가 하늘을 찔렀던 당시의 유영진 사단에게 있어 이런 행위는 하극상과 다름없게 받아들여졌고, 결국 메인 보컬의 탈퇴라는 흐름을 감수한 채 SES와 바다 모두를 떠나보내는 강수를 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바다 한 사람만으로 SM, 특히 유영진 사단의 성향을 적나라하게 설명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보아!

보아는 이런 어수선한 환경 속에서 기획된 프로젝트였습니다. 당연하겠지만 HOT의 사례에서 굳어져 지금까지 이어져오고있는 SM의 철학이 모두 집대성된 최초의 작품이자 (좋지 않은 의미에서) 거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죠. 당연하겠지만, 보아가 일본에 진출한다는 의미는 SM엔터테인먼트의 일본 진출과 귀결되어 있었습니다. 사잔올스타즈의 300만장 싱글기록 우타다 히카루의 800만장 앨범신기록 등이 팡팡 터저나오며 음반 시장이 급폭발하던 당시 일본 시장은 SM이 소박만 치더라도 한국의 몇 배 이상의 돈을 벌 있다는 꿈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으니까요. 특히 아직도 음반협회에서 MP3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내수 음반 시장의 급격한 침체 역시 그들을 일본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만든 계기로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보아는 '유영진'에 의해 기획되었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분명히 안고 출발할수밖에 없었는데요. 지금으로 치면 중2병이라도 걸린 듯한 유영진의 '사회비판'에 대한 집착은 보아의 데뷰곡 ID PEACE B의 실패로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나고 맙니다. 문제는 유영진이 진짜 10대를 제대로 분석하고 그들의 가슴에 불을 지필 수 있는 가사와 곡을 쓸 수 있느냐면 그렇지도 않았고, 그런 곡이 10대들에게 음악적으로라도 어필이 되었냐면 그쪽은 더더욱 아니었기 때문에 보아는 데뷰때부터 각종 구설수에 시달리며 기획 자체가 좌초될 위기에 처하는 등 분위기가 상당히 심각해집니다. 보아는 후속곡 '사라'로 SM의 거의 사력을 다한 푸쉬를 통해 명예회복에 성공하지만, 예정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일본 진출 준비에 전력을 쏟게 되죠. 준비를 하면서 간간히 국내에서의 신곡 활동을 겸할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보아의 멘탈 손상이 극심하다고 판단했을것으로 본 SM은 외부노출을 극도로 꺼린 채 AVEX와 공동으로 제 2의 육성에 돌입합니다.


이 보아의 육성 과정 역시 SM의 아이돌 육성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요. 1999년 데뷰 이후 2년 이상의 공백기를 거친 2001년 일본 데뷰까지 2년간의 공백기간 동안 이루어졌던 제 2차 트레이닝이 그것입니다. 즉 지금까지의 SM의 육성 기간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널널하게 잡아도 음악적 감각과 댄스 실력, 아이돌 컨셉 소화 능력까지 포함해서 2년을 넘기기 힘들었습니다만, (악명높았던 SES의 트레이닝기간도 2년 전후) 보아의 경우 투자 금액과 트레이닝 기간이 비약적으로 길어져버린 것이죠. 댄스나 음악에 대한 감각 등 기초 트레이닝 과정 2년에 연예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언어 능력이나 예능 개그 연습, 간단한 단막극 정도는 소화할 수 있는 연기까지 복합적으로 손을 대는 과정 2년이 다시 포함되게 됩니다. 물론 이렇게 길어진 트레이닝 기간이 정설이 된 이유는 보아의 기하학적인 성공 사례 때문임은 말할 필요가 없죠.

여기에 보아가 SM의 육성 과정에 끼친 또 하나의 영향은 '아이돌'의 데뷰기준 연령대를 높인 대신 육성시작연령대를 대폭 낮추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물론 10대 초반부터 육성을 시작하는 조기육성이 향후 재능 계발 측면에서 효과적인 부분이 분명 있을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생활 통제'가 가능하다는 점에 있죠. 단체 합숙과 끝없는 연습, 절대적인 서열 체계의 엄격함 속에서 자라나는 유망주들은 상대적으로 외부에서 머리가 굵어지기 전에 서열 체계 속 상하관계에 훨씬 더 익숙해지고 맙니다.

HOT 맴버가 아닌 보아가 서열 1위인 이유...


이는 SM에 있어 두 가지 큰 이득을 가져다주는데요. 우선 육성 과정에서 SM에 절대적인 충성도를 주입시켜 향후 재계약이나 불공정 계약을 강요하는 데에 드는 장벽을 대폭 낮출 수 있다는 것이 잘 알려진 첫 번째이고, 잘 알려져있지 않은 두 번째는 말 그대로 생활 통제, 즉 아이돌의 순수무결성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아이돌 윤리 기준은 매우 엄격하기 때문에 과거 담배를 피우는 사진이나 폭력에 연루된 증거 등 윤리의식에 반하는 과거가 적발될 경우 아이돌로서 살아남기 힘든 풍토가 (당시까지는)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생활 전반을 통제함으로서 데뷰 이후 일어날 수 있는 각종 문제점을 사전 예방하고자 하는 포석이 있었던 것이죠. 일본이야 아이돌이 스캔들을 일으키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시스템입니다만, 에초 계약 자체가 일방적인 육성과 소유권을 주장하는 한국의 계약 조건에서는 그런 조항을 넣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에초 소속 정규직이 아니므로) 처음부터 상품에 손상을 가하지 않는 쪽에 투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보아'의 성공 전후,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SM의 주식시장상장을 전후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SM의 육성 체계가 급작스럽게 늘어난 시기가 보아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뒤라고 가정한다면 2002년 후반 정도가 되는데요. 문제는 이 때까지 정상적인 흐름으로 국내 시장을 노리던 SM의 보이그룹 걸그룹 라인이 급작스럽게 '해외 경쟁력이 있는' 소수정예 라인으로 수정되면서 국내용 아이돌로 키워지던 아이돌이 떨이처리되듯 쏟아져나오게 되는데요. 보아 라인이었던 다나, SES라인이었던 밀크, HOT-신화 라인이었던 블랙비트가 속속 데뷰를 빙자한 '정리'가 되면서 SM의 유망주라인은 새 판을 짜게 됩니다.

SM의 잃어버린 역사로 남아있는 그들...블랙비트


사실 그냥 키우던 애들을 더 키워서 해외진출시키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블랙비트의 경우 이미 5년 이상 육성이 끝난 상태였고 그밖의 그룹 역시 그 시점에서 나이가 20줄을 넘긴 데뷰 시기가 꽉 차버린데다, 그렇게 머리가 굵어진 애들을 추가적인 비용과 시간을 들여 육성시키기에는 매우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이 해외 진출하는 데에 있어 국내용 이상의 포텐셜을 보이지 않았던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 옮은 판단이었던 역사적인 오판이었건 말입니다.

그리고 SM이 가질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고민은 '보아'라는 거대한 떡밥에 비해 SM이 가진 실속이 너무 적었다는 사실인데요. 사실상 AVEX 산하의 이른바 '아무로 - 하마사키 - 코다'라인을 탔던 보아의 후광 탓에 SM이 보아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지분이 거의 없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보아가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곡들은 대부분 일본 원곡인데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곡 역시 스웨덴 리메이크곡 NO.1 .... 음악 최우선주의를 표방했던 SM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음에 분명했을테죠. 게다가 유영진의 곡 메이킹 능력 역시 이전의 불안한 중2병 때와는 달리 보아의 NO.1앨범을 기준으로 점점 완숙함을 보이고 있는 시점이었기때문에 진정 '지분 100%'를 가지고 '자신들이 만든 곡'을 내세워 일본 시장을 공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 했습니다. 물론 속사정을 살펴보면 보아의 성공에도 이렇다할 저작권료 수익같은 것이 대부분 AVEX좋은 일만 시켜버린 상황에서 SM에 돈이 돌지 않으니 주주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해외진출'을 위시한 투자금 추가 유치를 끌어낼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렇게 기존 라인을 다 버리는 모험수를 감행하며 그룹 하나를 데뷰시킵니다. 지금까지 AVEX나 BING을 벤치마킹했던 것과는 달리 지극히 쟈니즈 냄새가 풀풀풍기는 5인조 보이그룹이 ....



하 편에서 계속됩니다.
posted by RushAm 2011. 6. 1. 06:47
대한민국에 이른바 '아이돌 산업'이 본격적으로 태동된지도 벌써 십수년이 지났습니다. 아이돌 주기 5년을 계산하면 벌써 시대가 세 번 바뀐 셈인데요. 10년이 넘어가고, 속속 그 아이돌이 일본에 진출해서 성공 가도를 달릴 만큼 (자기들딴에는) 세계적 경쟁력이 높아졌다고 하는 일면에는 이 산업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아이돌을 아티스트와 동일시한 잣대로 평가하거나 팬덤에 의해 음반 시장이 일부 연령대로 치우처버리게끔 방치하기도 하는 부작용이 산적해있기도 하죠.


그래서 공화국 연구소에서는 지난 '대한민국 아이돌 산업을 말한다' 시리즈에 이어 기획사 개별적인 특징과 속성 등을 가능한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 분석한 '아이돌 기획사 열전'시리즈를 마련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SM엔터테인먼트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오해가 있으실까봐 덧붙입니다만, 이 기획은 특정 기획사를 비난하거나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철저한 개인 연구에 의해 알게 된 내용들을 정리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연구 내용을 인용, 배포하는 등의 문제에 있어 필자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당부드립니다만, 공화국 연구소는 '블로그 기사'가 아닌 개인 연구 자료이므로 다른 포스팅에 비해 텍스트량이 매우 많다는 점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서태지와 '아이돌'

아이돌의 원류는 언제부터인가의 논쟁은 사실 너무 무의미합니다. 그 형태만 달랐을 뿐 아이돌이라는 존재는 대한민국 음악계에 언제든 있었거든요. 다만 그 형태가 조금씩 달랐고 그 형태에 따라 어떤 그룹은 살아남고, 사라지는 '대중의 선택'에 의한 생존전쟁을 벌였을뿐입니다. 일례로 10대 문화의 전설이라 일컬어지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거의 90년대 초반을 양분했던 잼이 결국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밀려 자취를 감추게 되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자체생산'능력이었는데요. 서태지와 아이들은 신아이레코드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사실상 기획사 없는 단독활동, 그러니까 음반 찍어내는 것만 대행했을 뿐, 거의 모든 활동 기획이나 전략, 작사 곡 등의 컴포징에 이르기까지 그룹 내에서 자체생산을 해냈습니다. 실질적인 데뷰무대였던 특종 TV연예에서 이들에게 내린 혹평은 어찌보면 당연했는데요. 이들은 이전 잼이나 소방차등이 보여줬던 아이돌의 계보가 아닌 아티스트의 계보를 아이돌과 섞으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다름아닌 서태지가 혼자 다 해먹을 수 있게 만든 시대적 변화, 1인 작곡, 연주가 가능한 시스템 '컴퓨터 음악(MIDI)'가 있었습니다.


작곡의 상징을 콩나물 던지기에서 신디사이저로 바꾼 혁명의 중심, 기존 밴드들이 이에 반발했던 이유는 지금의 기가샘플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형편없는 미디악기 음질도 있었겠지만, 그들이 가진 아날로그적 노하우와 향후 밴드없는 하드레코딩 환경 변화에 따른 밥줄의 위협에 대한 럿다이드식 저항이 아니었을까?


예전 음반 녹음은 그야말로 라이브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반주를 직접 마스터링 녹음을 처리하는 한이 있더라도 가능한 실제연주를 따오는 게 관례였죠. 언제나 음반사는 실력있는 세션을 보유해야만 했고, 가수들은 그 세션들을 선배로 극진히 모시는 이른바 '딸랑딸랑'을 해야만 녹음하고 음반 낼 수 있는 이른바 '세션의 권력'이 대세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권력을 제대로 보유할 수 없었던 군사정권시절의 핍박에 저항한 저항음악가들의 선택이 바로 '포크송', 즉 1인 연주가 가능한 음악이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합니다. 어쨌든 기타만 칠 줄 알아도 귀하신 몸이었던 시절이라는 겁니다.

서태지의 경우는 이 기타 하나로 먹고 살 수 있는 엘리드 계보를 걸었습니다만, 시나위 출신의 정통파 록 기타리스트가 솔로 데뷰로 꺼내든 게 록이 아닌 빠른 비트의 '컴퓨터 음악'이었다는 점이 기성 가수들에게는 그야말로 기가 찰 일이었습니다. 물론 그가 한 음악이 록 음악과 거리가 멀기도 했습니다만, 무엇보다 그동안 록 음악계는 물론 전통적으로 가창력을 중시한 음악계에서 '랩'이라는 음표없는 음악을 추구한 점과 그 음악 자체가 지나치게 대중성을 의식한 나머지 현지 음악과는 상당히 다른, 한 마디로 장르불명의 조잡스러움이 묻어났다는 점이 그것이었죠. 아무리 서태지가 천재였다 한들 1인 작곡 체계는 상당한 어려움을 야기했고, 아무래도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만 하다보니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음악을 들여오면서 벌어진 '표절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이야 음원들이 웨이브 기반으로 실제 연주와 진배없는 수준으로 높아졌지만 당시의 사운드캔버스로 대표되는 컴퓨터 음악은 시나위 시절부터 아날로그에 익숙해져 있던 서태지의 감성으로서는 창작의 고통을 배가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했죠.

그는 아이돌이 아니었지만, 본의아니게 아이돌 문화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 되었다.


흔히 음악계의 선구자라 일컬어지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뷰가 가져온 센세이션은 생각보다 많은 파생효과를 낳았습니다. 이들의 데뷰, 그리고 그 데뷰에 대한 음악계의 상반된 평가, 그리고 그들의 음악이 끼친 영향은 그들의 은퇴를 전후해 그들이 만들어놓은 밥상을 어떻게 먹는지 혹은 뒤집어 엎는지에 대한 큰 대명제가 갈리게 되는데요. 그가 하는 음악을 인정하고 필요한 일부분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음악에 활용했던 세력과, 그의 음악을 극렬히 비판하며 그가 추구했던 방향성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 쪽 그리고 그의 음악세계 그 자체를 그대로 계승하여 발전시킨 세력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그 당시 추구했던 그들의 방향성을 꾸준히 추구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죠. 오늘 이야기하게 될 SM엔터테인먼트도 그 당시 갈라저나온 커다란 줄기로 자리잡고 있는 하나의 축입니다.

HOT의 위대한 유산

서태지의 음악이 미국, 일본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본다면, SM엔터테인먼트는 그가 추구했던 음악 중 미국적 음악 코드에 한국적 대중화를 위해 입혔던 'JPOP'의 감성코드에 주목합니다. 굉장히 트랜디하면서도 랩과 잘 어울리며 자극적이지 않아 부담없이 귀에 잘 들어오는 음악을 추구하죠. 재미있는 건 이런 JPOP의 감성 자체는 AVEX나 BEING 등 그야말로 90~00년대를 쓸어버리던 기획사에서 나온 코드였지만, 정작 이들이 일본을 통해 들여온 건 그들의 음악적 감성이 아닌 쟈니즈의 아이돌 시스템이었다는 것인데요. 한마디로 음악성을 포기하지 않는 아이돌을 추구했던 것 같습니다.

 

SES가 일본 진출 당시 기술적 자문을 하기도 했던 BEING계열 소속 故 사카이 이즈미


무조건 외모를 중시하던 당시의 아이돌 선발 시스템에서 나름 수준 높은 음악을 추구하고 싶었던 그들의 입맛에 맞는 노래실력을 갖춘 유망주는 생각보다 잘 모여주지 않았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외모와 노래 실력은 상반되는 케이스가 많았고, 좀 실력이 있다 싶은 녀석은 아이돌 그룹에는 관심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했을테니까요. 게다가 그들이 추구하는 음악적 컨셉이 아이돌스러운 POP음악 이라는 난점이 작용하고 있어 그 음악에 걸맞는 보이스 컬러를 찾아내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주 노래를 잘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지만, 지금까지의 '잘 한다'는 기준과 상당히 다른, 그러니까 당시 기준으로 다른 가수들의 창법을 흉내내면서 자라온 가수 지망생들이 아닌 그냥 백지 상태에서 가르칠 수 있는 다이아몬드 원석이 필요했던 것이죠.

사실 예전부터 최근까지 쟈니즈의 보이 그룹에서 '노래 담당'을 따로 두는 경우는 본 적이 없는데요. 아이돌이 노래를 반드시 잘해야한다는 고정관념도 없을 뿐더러, 아이돌이 완성도 높은 음악을 할 필요성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처음부터 끝까지 떼창입니다) 이유는 물론 노래를 잘하는 아이를 뽑으면 '큰 틀'에서의 기획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죠. 원래 아이돌이라는 것은 어떤 컨셉 (미소년 집단, 짐승남, 시크한 도시남자 등) 을 잡게 되면 그 컨셉에 걸맞는 맴버를 모집하고 그 맴버들은 짜여진 컨셉에 걸맞는 활동만 펼쳐주면 그만입니다. 당연하겠지만 이 컨셉의 거의 대부분은 외모와 댄스실력인데요. 그런데 여기에 '가창력'이라는 전제조건을 달게 되면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그냥 외모만 맞춰 오디션보고 캐스팅하는 게 아니라 일단 외모를 맞춘 뒤에 얘가 노래를 잘 못하거나 보컬 색깔이 안맞거나 하면 탈락을 시켜야 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뽑았는데 컨셉에 적응을 못하거나 (가창력 좋은데 춤까지 잘추는 애들은 정말 드물죠) 하면 데뷰 스케줄부터 삐걱거리는 등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 자명하니까요.

그런데 SM엔터테인먼트는 이런 잠재적 불안요소를 떠안아가면서까지 음악성을 갖춘 아이돌에 목을 맸던 것일까요? 그것은 SM엔터테인먼트가 한국의 쟈니즈가 되지 못하게 만들었던 결정적인 존재 '유영진'으로 설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수만 회장과 함께 사내 종신계약 이사로 알려져 있는 그는 '음악최우선주의'라는 방향성을 지금까지의 행보 속에서 숨김없이 드러내곤 했었는데요. 본인 스스로가 싱어송라이터로 음악생활을 시작하기도 했고, 전자음악에 대한 인식이나 수준이 낮을 때부터 꾸준히 밀어봤던 분야일테니, 이에 대한 애착이나 자부심은 상상이상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반드시 음악만을 중시한 나머지 아이돌이 본연의 색깔을 잃은 보컬그룹이 되지 않도록 음악적 완성도는 높이되 가능한 초창기 기획했던 '컨셉'을 최대한 살리고, 그 방향성을 끝까지 고수하는 음악 성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그의 성향은 초창기 SM의 방향성을 결정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요. 이 당시에는 '연습생'이라는 개념보다는 직접적인 캐스팅에 의한 속성 데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연습 기간은 지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었고, 어떤 그룹의 형태를 기획하고 그 그룹의 피스를 몇 개로 나눈 다음 그 조각에 맞는 인재를 찾아나서는 오디션이나 캐스팅 작업을 통해 완성시키는 방식이었죠. 눈치채셨겠지만, 이는 일본의 고전적이고도 정평이 나 있는 아이돌 기획 시스템과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초창기 SM은 사실상 일본 아이돌 생산 시스템을 상당 부분 벤치마켕한 흔적을 곳곳에서 조금씩 찾아볼 수 있었죠.

하지만 조금 아쉽게도 유영진은 그런 음악적 욕심과 더불어 '아이돌 그룹에 대한 이해'를 양립시켜 '작곡'과 '프로듀싱'을 함께 맡아야만 했던 어려움이 존재했고, 이런 초창기의 열악한 환경은 그의 성향을 매우 고지식하게 만들어놓고 맙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SM을 있게 한 그룹으로 꼽히는 HOT의 경우가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부분에서 많은 분들이 의야해하실줄로 압니다만, 일단 들어보세요

HOT 기획 당시 유영진은 HOT를 기성 세대를 비판하는 개김성 강한 5명의 악동으로 컨셉을 잡고 각종 음악 컨셉 등을 기획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컨셉은 데뷰곡 전사의 후예의 예상치못한 초반 대 부진에서 비롯된것처럼 시장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요. 생각했던것만큼 당시의 10대들은 그런 심각한 가사에 공감하거나 열광해주지 않았습니다. 위키에서는 전사의 후예가 표절 시비로 인해 제대로 인기를 얻을 기회가 없었다는 주장도 보입니다만, 이런 문제를 포함한 기획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보는 게 좋겠습니다.

알려진 대로 이들의 학창시절은 폭력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였다고 한다. 전사의 후예는 타이틀에서 가해자의 이야기를 연상시키지만 내용은 피해자를 시사하고 있다. 만일 이들이 가해자의 악동적 이미지를 그대로 곡에 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두말할것도 없이 학교폭력미화라는 이유로 방송금지처분을 먹지 않았을까?


이같은 예상치못한 결과에 대해 유영진은 일단 데뷰 앨범에 대한 기대를 접고 일단 후속곡을 통해 이름을 알린 뒤에 2집을 내놓을 것을 준비하게 되는데요. 아마도 그들은 그렇게 아무 전략없이 내놓은 캔디가 대박을 칠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리더 문희준의 이미지를 보시면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매우 거친 느낌의 그룹으로 기획되었던 그들이기에 이런 말랑말랑한 곡이 어울리지도, 시장에 통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던 모양인데요.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당시의 아이돌 시장은 그야말로 '애들다운' 곡이 더 먹히는 시대였고 그들이 내세운 문희준의 거칠고 와일드한 캐릭터보다 부드러운 보컬의 강타를 중심으로 한 캔디가 더 쉽게 받아들여진 당연한 역사가 쓰여져버린 것이죠.

HOT는 표면적으로는 성공한 것으로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기획사 SM입장에서는 정말 얻어걸렸다 싶을 만큼 기획 차원에서는 완전히 실패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유영진이 내놓은 전사의 후예가 실패하고 SM소속이 아닌 외부 작곡가 장용진에 의해 만들어진 캔디가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그룹 전체 기획이 대중에게 제대로 먹히지 않았음을 반증했던 것이죠. 물룐 표면상의 성공은 기획사에 많은 이득을 가져다주었겠습니다만, 장기적으로 실패한 기획 속에 얻어걸림을 바란다는 것은 기획사 입장에서는 자살행위에 가깝습니다. 시장은 언제나 요행을 바라는 자에게 자비롭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유영진은 HOT의 1집의 실패 원인을 '시장의 미성숙'과 '컨셉의 난해함이 불러오는 소화력 부족'으로 본 것 같습니다. 때문에 그와 SM은 1집의 이같은 빗나간 성공에도 아량곳하지 않고 2집에서는 10대들의 사회적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부각시킨 '늑대와 양'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결과는 방송금지처분 그리고 곡 자체가 가진 난해함 탓에 매우 심각한 수준의 실패를 맛보고 맙니다. 지난 1집의 성공에 의한 엄청난 버프가 있었음에도, 실제 기획 자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냉담함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여기에 후속곡으로 나온 '장용진'의 '행복'이 2집의 포텐셜을 모두 가져가버렸다고 평가될 만큼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SM과 유영진은 HOT의 지분을 장용진 한 사람에게 빼앗기다시피할만큼 기획사로서의 두 번째 실패를 맛보고 맙니다, 이후 장용진은 HOT음반에서 그 이름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는데요. 석연치않은 표절 시비가 있었고 표절 원곡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을 만큼 모호한 부분으로 봐서 사실상 HOT에서 타의적으로 배제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장용진이 직접 보컬로 참가한 듀엣 '동자'


이후 HOT는 이 '행복'의 성공이 남긴 후유증을 제대로 치루며 내리막을 걷기 시작하는데요. 유영진은 두 번의 기획 실패로 이미 모호해질대로 모호해진 HOT의 기획 컨셉을 끝까지 고수한다는 의미였는지 모를 3집 열맞춰를 내놓았지만 어이없게도 행복에서 이미 한번 데인 '표절' 시비가 본격적으로 붙으며 더 크게 데이고 맙니다. SM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미 한번 데인 일을 반복했을 리가 없다는 점에서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며, 무엇보다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유영진의 곡이 이런 일에 휩싸였다는 점은 많은 부분을 시사합니다. 그만큼 HOT가 처음 가진 컨셉을 유지하기 위해 기획사 내부에서도 대단히 무리를 했다는 점이 첫번째이고 유영진 본인 역시 세 번째마저 실패했을 경우 자신의 음악 철학과 지금까지의 경력에 큰 오점을 남길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이 두번째이죠. 그 역시 3집에 이르러 HOT의 초창기 기획을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것에 대해 '성공에 관한 본격적인 의구심'을 가졌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HOT맴버들의 자작곡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인데요. 그의 철학 상으로 기획형 아이돌에게 작곡을 맡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겠습니다만, 완고하게 자신의 철학을 밀어붙였던 1,2집이 연속으로 실패하게 되자 립싱크나 악보를 못 읽는 실력없는 아이돌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조금씩 수용하고 기획에 반영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그러나 결과는 너무나도 처참해서 강타가 작곡한 빛은 이전 장용진의 캔디나 행복에 비해 음악적 색깔만 유사할 뿐 완성도면에서는 합창 교향곡 멜로디 샘플링에 대거 의존한 곡이 된 것을 비롯 자작곡이라고 발표된 곡들이 대부분 음악적으로 평가할 가치가 없을 만큼 불안정한 결과가 나오고 맙니다. 당시 이들이 보여준 '오판'은 3집 직전 다소 애매하게 나온 2.5집격에서 발표된 유영진의 'We are the future'가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한층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는데요. 이 곡은 열맞춰, 늑대와 양, 전사의 후예와 코드를 공유하면서도 음악 감각이 훨씬 부드러워지고 대중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설령 실패했더라도 이미 가지고 있는 '컨셉'을 지킨다는 것이 아이돌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죠..

백청강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곡으로 꼽았던 'We are the future'


이 곡이 어떻게 보면 HOT가 기존에 가진 기획 컨셉을 유지하면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 셈이 될 수도 있었겠습니다만,SM은 이 당시부터 HOT에 대한 기대를 조금씩 접기 시작했는지 아니면 HOT의 원래 기획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 엄두를 못냈던 것인지, 4집에 이르러서는 앨범 수록곡 전곡과 프로듀싱을 맡겨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게 되고 기획의 주체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HOT는 이후 가뜩이나 불안해진 기획 정체성과 함께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맴버들의 아무런 철학이 없는 무미건조한 음악 성향으로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맙니다. 기획 주체가 사라진 아이돌 그룹의 말로는 볼 필요도 없는 당연한 수순이었죠.

HOT가 SM에 남긴 유산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SM 최초의 성공작'이 아닌 '최초의 실패작'이라는 상징입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해서 SM이 정말 오랫동안 벤치마킹했던 일본의 '캐릭터형 아이돌' 시스템이 국내에서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점을 HOT의 실패로 인해 새삼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데요. 이후 SM은 선행 기획 후 해당 그룹에 맞춘 퍼즐 맞추기 형태의 일본식 아이돌 기획 시스템 노선을 대폭 수정하기에 이릅니다만, 문제는 HOT의 기획 실패를 통해 그들이 분석한 실패 원인이 한국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기획 차원의 반성이 아닌 완벽한 기획에 대한 유망주들의 소화력 부족으로 기획이 가진 포텐셜이 제대로 터지지 않았다는 지극히 책임회피적인 결론을 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유영진을 비롯한 SM이 날고 긴다 한들 이제 막 아이돌 시장이 태동하려는 한국 시장에서 당시 그들은 풋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에도 그들이 가진 음악적 능력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한국 시장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일본의 성향과는 상당 부분 차이를 보이고 있었습니다만 SM은 자체적인 기획 노선을 한국 성향에 맞게 최적화하기보다는 그들의 기획 성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유망주들의 육성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는 쪽을 택하게 되죠. 이러한 그들의 이기적인 고집이 향후 SM 그리고 아이돌 시장의 기획 판도를 어떻게 바꾸게 될 지 당시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中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