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4. 10. 10. 14:43

음악에 있어서 서태지는 어떤 존재로 기억되고 있나요? 그의 음악이 매우 완성도가 높았다거나 그의 음악이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역사적인 한 획을 그었다는 점도 그의 평가를 높이고 있지만 아무래도 그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이른바 '마르코 폴로'가 아닐까 합니다. 그는 우리나라에 이제껏 시도된 적이 없는 음악을 가져왔고 그것을 대중들에게 소개했으며 그 소개하는 방법이 우연하게도 별 거부감 없이 먹혀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죠. 사실 이게 매우 어려운 게 뭐냐면 우리나라에 이제껏 없었던 음악이 대중적으로 성공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어떤 마법을 부렸던 서태지는 그걸 해냈고 그래서 지금까지 어쩌면 수많은 음악계의 마르코 폴로가 있었을지언정 서태지만이 그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기억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죠.



제가 서태지를 '마르코 폴로'라고 표현한 것에서 눈치를 채셨겠지만 서태지는 외국에서 보고 배우고 느낀 그 음악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고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오는 도중에 기억에서 소실되었던 부분이 있을수도 있고 어쩌면 그 문화에 완벽하게 동화되지 못한 다소 어정쩡한 감성에 버무려져 이도저도 아닌 말도 안되는 음악이 나왔을 수도 있죠. 이 부분에서 서태지는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표절 문제도 있었고, 장르 자체에 대한 순수성 구현 측면이나 그가 추구하는 패션 코드까지 고루고루 비판을 당했죠. 서태지는 이러한 비판 속에서도 지금까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제법 강력한 힘을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소격동 공개의 화제성을 보면 말이죠. (비록 그것이 음악적인 이슈에 한정된 이야기만이 아니었을지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그의 등장 때마다 그에게 정말 많은 기대를 가져왔습니다. 그의 음악적 재능을 믿고 듣는 그 자체보다는 아마도 이번엔 어떤 '한국에 없던 새로운' 것을 보여줄까' 가 아니었을까요? 그런 이미지는 그에게 있어서 자신의 음악적 가치가 '음악성'이 아닌 '참신성'에 무게를 두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꽤나 큰 부담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사회가 떠밀었던 것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롤, '음악계에 저항하고', '새로운 음악을 소개하며', '그와 동시에 서태지다운 위상을 갖출만한 흥행'까지 해내야 했던 것이죠. 그래서 그는 새로운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한때 표절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고 흥행과 새로움에 대한 벨런스 조절에 간혹 실패하기도 하는 고충을 겪기도 했죠.


서태지도 나이를 먹으며 젊을때처럼 모든 것, 즉 새로움과 저항성, 그리고 흥행성을 모두 갖춰낼 만큼의 역량을 유지하기 힘들어진 모양입니다. 그 시점에서 그가 선택한 길은 저항성과 새로움을 버리지 않고 과거에 묻어두며 내 인생에서 해왔던 그 음악이 옳았고 내 인생은 옳은 길을 가고 있었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분기점이 되는 곡이 바로 이 무렵이 아닐까 합니다.



소격동에 대한 곡 소개에서도 그는 새로움을 일절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내 음악, 그리고 내 삶에 대한 과거로의 여행이라는 의미를 담아냈다고 이야기하고 있죠. 그는 이제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는 젊은이의 우상이기보다 자신의 좋았던 '우리들만의 추억'을 소개하고 내 인생을 노래하는 가수로, 혹은 자신의 음악 인생을 부정당하지 않고 보다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치 왕년에 잘 나갔음을 큰 소리로 떠드는 1호선의 술취한 군복 아저씨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소격동 곡 공개에 있어서도 아이유 버전을 먼저 공개한 이유 역시 아이유가 최근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이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아이유로 인해서 김창완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음악 인생이 다시금 조명받고 인정받게 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런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그녀를 욕심내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공교롭게도 예전에 비해 그가 추구하던 음악 인생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칭송보다는 비판의 말을 더 많이 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의 사적인 생활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수도 없고 사회적으로 그에게 과도하게 요구된 다양한 롤에 치여 벌인 실수들에 의한 당연한 비판들도 산재합니다. 그는 이들에 정면으로 맞서며 이제 자신의 음악 인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로서의 인생을 살게 될 모양입니다. 이는 그가 단순히 음악적 꼰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그 무언가도 있겠습니다만 그에게 요구하는 그의 팬들에 요구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단지 그때를 추억하기 위해서만 존재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서태지 팬들은 사생활 사건을 비롯한 수많은 서태지를 비방 비판하는 사람들과 싸워왔습니다. 서태지의 음악은 훌륭하고 서태지는 여전히 역사에 남을 만한 훌륭한 사람이다라는 반론을 열심히 펼치며 서태지와 아이덴티티를 공유한 자신을 변호하는 데에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서태지는 그들이 이렇게 싸워오고 있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이제 대중보다는 지금까지 함께 해준 팬들을 위해, 더 작게는 우여곡절 끝에 결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된 자기 자신과 그 가족을 위해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음악을 하기 시작햇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서태지는 안티와의 싸움에 지친 팬들에게 '너희들이 내 팬으로서 더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 '내가 더 당당해질게', '내 음악인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너희 대신 증명해줄게' 라고 음악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그와 아이덴티티를 팬들은 그 음악을 듣고 '그래 내가 서태지를 좋아해온 인생은 잘못되지 않았어'라고 더욱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겠죠. 그들 역시 서태지처럼 단지 '서태지를 좋아했던 인생'만이 아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어떤 새로운 힘을 얻으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새로움이 없는 서태지의 이번 음악은 어쩌면 지금까지 가수들이 해오지 않았던 혹은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음악을 음악 자체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좋아했던 사람들을 위해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로서 말이죠. 그는 변했지만 어쩌면 새로운 것을 추구하던 사람이 변해가는 방법으로서 새로운 인생관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이를 먹고 꼰대가 되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말이죠. 그것 또한 새로움이라고, 당신들의 인생에서 더할 나위없이 신선하고 참신한 그 무언가가 되어줄 것이라고...




 

그와 그의 가족 그리고 팬들에게 행복을 기원해드리겠습니다 

 

... 뭐 이미 충분히 행복하시겠지요? :)


posted by RushAm 2014. 6. 9. 13:35

지난 강남스타일이 먹히는 이유에 대해 쓴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북미나 유럽이 강남스타일에 열광한 원인은 노래 자체의 완성도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노래를 받쳐줄만한 다시말해 그 노래를 한번 듣고 싶게 만들게끔 했던 뮤직비디오였죠. 사실 지난 젠틀맨이 강남스타일에 미치지 못했던 이유 역시 젠틀맨 노래 자체 완성도가 아무래도 강남스타일만큼 파괴력이나 신선함이 없었던 이유도 있었겠습니다만, 더 결정적으로는 '강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뮤직비디오에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강남스타일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많이 이야기했으니 일단 젠틀맨 뮤직비디오를 먼저 보시죠.


보시고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뮤직비디오는 어딘가 모르게 섹드립이 너무 많이 들어가있습니다. 한마디로 잘못 짚은거죠.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서는 확실히 미국인들에게 통할 만한 섹드립이 가득했고, 그중 몇 가지가 먹혔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듭니다만, 그렇다고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섹드립만으로 히트한 것은 아니기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내용이 있고 흥미있는 내용에 양념을 치는 용도로 섹드립이 사용된거랑 섹드립 그 자체가 너무 맛있(?)어서 그 섹드립만으로 범벅을 해놓은 거랑은 차원이 다른 결과물을 낳게 되는거죠. 


물론 그렇다고 젠틀맨 뮤직비디오 자체가 내용도 없고 외설적이라는 의미의 포르노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만, 콘텐츠적인 가치로서 젠틀맨 뮤직비디오는 포르노에 가깝습니다. 마치 마요네즈 중독자들만이 좋아할것처럼 마요네즈만 가득한 요리처럼 섹드립에 열광할 사람들만 골라서 좋아할법한 뮤비를 만들었던거죠. 젠틀맨의 유튜브 성적 약 6억은 한마디로 강남스타일 20억 중 약 30%정도의 사람들만이 강남스타일의 섹드립이 마음에 들어서 그것만 메뉴로 내놓은 젠틀맨에 열광했다는 단순 증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 이번 신곡인 행오버 뮤직비디오를 보시죠.


지난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서 무엇보다 제가 힘주어 이야기했던 부분이 있었죠? 바로 '관광책자에는 나오지않는 한국'입니다. 강남스타일에서는 문신한 건달들이 있는 사우나, 장기두는 할아버지들, 아주머니들의 파워워킹, 관광버스에서 춤추는 모습, 어린이 놀이터, 한강 요트, 지하철 등이 있었죠. 등장인물은 어떨까요? 비중높은 조연으로 나왔던 유재석이나 거의 후반부를 지배했던 현아는 생각보다 많이 주목받지 못했고, 정작 잠깐 까메오수준으로 출연한 노홍철이 엄청 히트했습니다. 유재석이야 그렇다치고 현아는 정말 안습이 아닐 수 없죠. 한마디로 강남스타일에서 사용된 현아의 섹시코드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겁니다.


젠틀맨이 강남스타일 요소 중 섹드립이 핵심이라고 오판해서 나온 작품이라면 이번 행오버는 강남스타일의 주요 포인트로 제가 짚어드렸던 '관광책자'에 나오지 않는 관광요소입니다. 다만 이것을 차용할 때 특별히 한국을 알리고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의 관광요소 소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 꽤 어려운데요. 이게 관광요소를 알리는 데에 그 목적을 두게 되면 너무 아름다운 것들만 골라서 차용하려 하고 왠지 보는 이에게 무언가를 주입하려 든다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너무 푸쉬한다'라는 느낌이 들면 사람들은 거부감을 갖게 된다는 거죠.


행오버는 강남스타일의 성공 요소라고 제가 짚어드렸던 것들을 비교적 잘 이해하고 만든 뮤직비디오입니다. 젠틀맨 뮤직비디오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지적을 받았던 이 장면을 생각해보면 명확해지는데요. 우리나라에서 어묵꼬치에 타르타르 소스를 발라 먹지 않는데, 그런 장면을 억지로 섹드립과 연관시켜 연출시키다보니 한국의 문화 중 하나였던 포장마차 어묵꼬치가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했습니다. 


섹드립으로 아시아인이 북미권을 웃기려 드는 건 흑인 앞에서 힙합하기인거죠.


반면 행오버에서는 젠틀맨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한국의 제대로 된 술 문화 (관광책자에는 점잖떠느라 차마 적지 않는 것들) 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술자리에서 시비붙어 패싸움이나, 꺾어 마시기, 굴려 마시기, 러브샷, 폭탄주 제조 도미노, 망가지면서 노는 노래방 문화 등 음지에 가려져있지만 꽤 재미있고 외국인의 시선으로는 흥미롭기까지 한 그야말로 논픽션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심지어 술에 취해서 노숙을 하거나, 술이 너무 과해서 구토를 하는 모습, 편의점에서 술깨는 약을 들이키는 모습 등 우리나라가 항상 뉴스에서 '부끄러운 자화상'이라고 떠드는 것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게 먹힐지 안 먹힐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싸이가 그나마 강남스타일 구성 요소 중 적어도 젠틀맨에서 시도했던 것들보다는 보다 가능성 있는 무언가를 찾아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곡의 완성도 여부를 떠나서 적어도 뮤비 자체의 반향만큼은 젠틀맨을 능가할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한국의 술문화를 너무 희화했다는 선비정신에 입각한 뉴스들도 마구 양산될 것이라고도 예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 그리고 중국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과, 북미나 유럽에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말 굉장히 큰 차이가 있으며 장담컨데 절대 우리가 섣불리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지도 않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니기리스시는 국가적인 푸쉬의 결과이긴 하지만 결국 진짜 개인 대 개인으로 들어가면 일본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아직도 '에로한 나라'입니다. 스시 그 자체가 침투하는 속도보다 여체의 성찬이라고 불리는 이 짤 하나가 가진 파괴력이 국지적으로는 더 컸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일본은 정말 열심히 숨기고 싶어하는 저급한 술자리 문화 중에 하나이지만 오히려 해외에서는 짤처럼 따라해보고 싶어하는 문화가 되고 있습니다.



이 즐거워하는 양놈들을 보세요.



이번 행오버 뮤직비디오는 한국에서 많은 논란을 낳을 것으로 보입니다. 선비짓하는 사람들에게는 '한국의 별로 좋지 않은 모습을 광고해대면 이미지가 어떻게 되겠냐는' 둥의 비난을, 싸이의 음악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는 '강남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려먹기 사골의 결정판이라는 식의 비평을 받을 여지가 충분합니다. 


다만 음악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에 대해 적어도 북미권 시장을 예측하는 데에 있어서 북미권에 태어날때부터 거주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가타부타 이야기하는 것도 웃기는 일인데, 싸이 강남스타일이 뜨니까 외국인 만날때마다 두유노우강남스타일을 외치던 사람들이 이제와서 싸이가 국격을 떨어뜨린다고 힐난하는 것도 더더욱 웃긴 일이랄까요? 혹여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쿨하게 무시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북미는 정말 모릅니다. 아무리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이 음악이 뜬다 안뜬다에 적중할 확율은 고작 10% 남짓 될까말까입니다. 행오버가 어떤 성적을 낼 지는 섣불리 예단하기 힘듭니다만, 적어도 젠틀맨때보다는 더 많은 고민을 해서 만들어낸 것은 틀림없어보이고 젠틀맨의 실패 아닌 실패를 철저하게 약으로 삼았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히트 여부와 관계없이 적어도 젠틀맨보다는 북미권에 훨씬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것이라는 데에 조금 더 많이 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모든 것이 적절히 벨런스를 이룬 강남스타일을 능가하기에는 확실히 부족하겠지만 말이죠. 


...


조금 조심스럽지만 이번 싱글은 조금 기대를 해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싸이 열풍은 식었지만 싸이는 쉽게 망하지 않는 컨텐츠가 될 가능성이 충분해보이네요

posted by RushAm 2013. 4. 11. 23:53

어느 정도 문고리 좀 식었죠? 상대가 소녀시대이다보니 쩝...


가능하면 아티스트라고 불러주셨으면 좋겠어요. / 하지만 저는 저를 아이돌이나 아티스트 어느 한 쪽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 아이돌이랑 아티스트는 다르다고 생각하니까


소녀시대가 일본 방송에서 자신들을 이제 아이돌이 아닌 아티스트로 바라바주길 원한다는 발언을 해서 한동안 화제를 낳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발언 취지는 지금 네티즌들이 오해하고 있는 그런 투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소녀시대를 비난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 우리가 아티스트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개념 정립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소식을 맞닥뜨렸을 때에 일어나는 파급력이 불과 10년 전 문희준의 발언 당시와 비교해볼때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에 경악했기 때문에 쓰게 된 글입니다.


자 우선 아티스트란 무엇일까요?


소녀시대 논란에 즈음하여 소녀시대가 아티스트다, 혹은 아티스트가 아니다라는 논쟁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키워드를 몇 가지 살펴보았습니다. 아티스트는 'art+ist' 로 만들어지는 단어인데, 한마디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대명제가 갈리는 것은 여기에서 말하는 '아트'가 과연 '창작'이나 '기술'이냐에 대한 부분으로 소녀시대 아티스트론의 찬반을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핵심 논점이었는데요.


창작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예술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하며 작곡가, 화가, 안무가 등 어떤 작품을 무에서 유로 창조하는 것을 말합니다. '표현'은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안무나 노래, 기타 다른 수단을 통해 표현하는 것을 말하죠. 소녀시대 아티스트론자들은 '피아니스트'나 '김연아', '강수진'의 예를 들며 표현도 충분히 예술의 범위에 들어가기때문에 단순히 만들어진 것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아티스트라 불리울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반면 창작론자들은 보다 원초적으로 아티스트들이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 '감각'이 표현이든 창작이든 녹아있어야 한다는 점을 내세웁니다. 따라서 만들어진 것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재현하기에만 급급한 소녀시대가 아티스트라 불리기 어렵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데요.


양비론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려 죄송합니다만, 

어느 쪽도 아티스트 논쟁에 별로 접근한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티스트는 단지 창작이나 표현 어느 한 쪽만 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며 그 것이 두 가지 수단으로 표현되지만 결국 전해지는 것은 한 가지로 취합되는 것이 예술이니까요. 설명 웃기지 않습니까? 그만큼 이 단어가 이상한 단어라는 이야기입니다. 아티스트는 직업이 아니에요. 그냥 대명제이고 칭찬의 단어일 뿐인거지요. 여러분이 제가 말한 아티스트 설명에서 들은 난잡함이 이 단어에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뭐 하나 정의되지 않는, 또한 그것이 예술이라고 말하는 앞뒤 안맞는 프랑스인의 감성이 묻어나있죠.


우선 김연아는 아티스트가 아닙니다. 강수진도 직업이 '아티스트'가 아니에요. 피아니스트도 직업은 '피아니스트'이지 그들을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김연아 해외 중계를 잘 들어보면 이런 말이 가끔 들리긴 합니다 '오오~ 정말 예술적 (artistic)이네요', 강수진의 발레도 이런 찬사를 들은 적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나 첼리스트들 역시 '예술적'이라는 찬사를 들은 적이 많다는 것이죠.


이분은 연습이랑 실전이 똑같군요 발전이 없네


위에 예를 든 3개 직업군의 모든 사람들은 '창작'을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저런 찬사를 듣죠.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그들을 '아티스트'라고 공식적으로 지칭하는 걸 들은 적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예술의 경지에 오르다'는 찬사는 받았지만 그들을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고 지칭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냥 피겨 스케이터이며 발레이나이고 피아니스트와 첼리스트일 뿐입니다. 아티스트는 직업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주목할만한 부분은 예를 들은 사람들 모두 '스스로'를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라든지 '아티스트'라 불러달라는 식의 인터뷰를 하거나 공식석상에서 그와 같은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티스트라는 단어 자체의 무게감이 엄청나게 숭고하다거나 한 것 같지도 않은 것 같은데 말이죠. 아티스트라는 말은 오히려 프랑스처럼 구분없이 매사 모든 게 예술로 치완되는 사람들을 비웃기 위한 단어라는 설까지 있을 정도이니 자칭하는 것이 어법상 얼마나 어색한지 스스로 잘 아는 사람들의 손쉬운 대처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소녀시대가 스스로 작곡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안무를 하는 데에 있어 위키백과에서 나온 아티스트의 정의대로 어느 수준 이상의 숙련이 되어 있어 일본 아이돌들의 유치찬란한 안무와는 비교당하기 싫다는 취지로 말했을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과 아티스트랑은 크게 상관이 없으며 차라리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면 아티스트라는 표현은 자충수를 둔 감이 있는데요. 대중들이 아티스트에 대한 본질적 지식을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 정도로 반감을 갖게 된다는 것은 그 단어가 가진 시건방짐 여부와는 별로 관계가 없을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족을 달 시간이군요.


자 그럼 작곡가 유영진은 아티스트인가요? 아니요 '작곡가'입니다. 어느 수준을 넘어섰다고요 어휴 그럼 '아주 뛰어난 작곡가'인 거죠. 소녀시대는 아티스트인가요? 아니요 '댄스 보컬 그룹'입니다. 군무도 아주 칼같고 노래도 잘한다고요? 그럼 '아주 뛰어난 댄스 보컬 그룹'인 거죠. 


지금 제가 그들을 폄하하는 것 같으신가요?

아니요 오히려 제가 보기엔 그들이 그들 스스로 자신들을 '아티스트'라 불러달라고 하는 게

스스로를 폄하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데요.


왜 자신들이 기껏 '특정 분야'에서 '숙련되어서' 정점에 이른 것을 평가해주길 바라면서

표현 자체는 뭉뚱그려서 '예술하는 사람'으로 평범하게 마무리지으려 드는 건지 안타까워서 그렇습니다.


왜 꼭 그 분야 최고가 되면 '클레스 체인지'를 하고 싶어하는 걸까요?

성장해서 정상에 오른 그 분야를 지칭하는 것이 부끄러운걸까요? 딴따라라고 놀릴까봐?


소개합니다! 세계 최강 '여성 댄스 보컬 아이돌'그룹 스파이스 걸스입니다.


제가 박지성이나 김연아라면 말이죠.

저는 '스포츠맨' 입니다. 라고 소개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세계 최고의 구단에서 뛰는 축구 선수'입니다. 라던지

저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피겨 스케이터'입니다 라던지...있잖아요


...


자신이 있는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그 분야 자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자신들을 인정해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최고의 아이돌이 '나는 아이돌이라고 불리는게 싫다'라니...이게 무슨



posted by RushAm 2012. 10. 21. 18:58

다음은 MBC 위대한탄생3 보도자료 중 일부..

 

 

★세 번째, 넘치는 긴장감! '40초의 문'을 잡아라!

 

시즌3에서 새로 도입된 가장 흥미로운 룰은 참가자들이 40초 안에 멘토들을 사로잡아야 하는 '합격의 문'이다. 예선 평가에서 도입된 '합격의 문'은 40초 동안 서서히 양쪽에서 자동으로 닫히는 문 사이로 참가자들이 노래를 부르고, 그 동안 멘토들이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노래에 대한 심사평 조차 듣지 못하고 탈락하게 되는 시스템.

 

40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 멘토들을 사로잡을 만한 매력을 보여줘야 하는 참가자들의 부담은 더욱 커졌지만, 언제쯤 멘토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긴장감과 재미는 한 층 더 업그레이드 될 예정이다. 오디션을 지켜보던 참가자의 가족들 또한 "'합격의 문' 때문에 더 긴장감이 넘치는 것 같다"며 "새로운 오디션 진행 방식이 잔인하면서도 신선하다"고 전했다.

 

(후략)

 

실제 방송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모양이다.

 

 

 

.....

 

다음 동영상은 일본 니혼테레비 방송에서 2005년 4월부터 2010년 3월까지 방송된

우타 스타 방송 중 일부분이다.

 


 

이 프로그램의 룰은 다음과 같다

오디션을 보려는 사람이 등장하고 노래를 시작하는 시점부터 30초를 받는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버튼을 누르면 15초가 가산된다. 물론 시간을 다 쓸때까지 아무도 버튼을 누르지 못하면 곡을 완창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대 뒤로 퇴장해야만한다. 심사평도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없다.

 

참고로 이 프로그램의 완창 기준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1절까지였다.

그리고 뭔가 평가가 애매할 경우 심사위원이 임의로 곡을 지정해서 부르게 하는 일도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대부분 유명 프로듀서와 연줄이 있는 사람들로 '헌터'라 불리며

이들은 노래가 끝난 뒤 이 사람을 '키울 것인지'를 정하게 된다. 일종의 멘토라 보면 될 것 같다.

...

 

MBC 이렇게 창의력 없는 집단이 아니었을텐데,

점점 미쳐가는것 같아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필자가 쓴 관련글

http://rusham.tistory.com/172

http://rusham.tistory.com/69

 

 

posted by RushAm 2012. 9. 22. 14:40

필자는 슈퍼스타K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그 프로그램이 태동되고 히트치기 전에 이미 그런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의 필요성을 역설한 적이 있다. 솔직히 나도 당시에는 슈스케의 필요성만을 역설했을뿐 슈스케가 반드시 뜰 거라는 것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독이 든 성배라고까지 표현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슈스케 제작진에게 새삼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슈스케가 4기까지 이어질줄은 나또한 몰랐다. 매번 참가자가 늘어나고 그 늘어나는 참가자만큼 실력있는 사람들이 많아질거라는 계산, 그리고 그들의 뛰어난 재능이 CJ의 오랜 숙원을 해결해줄 거라고 믿고 있었을거라고 믿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 보여주는 슈스케는 제작진의 역량과는 상관없이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 역량과는 상관없다는 측면에서 억울할수도 있겠지만 단언할 수 있다

 

 

이번 슈퍼스타 K4는 망했다.

 

...

 

1. 슈스케는 심사위원이 주목받아서는 안된다.

 

싸이가 떴다. 역대급으로, 그것도 현재진행형이다. 모든 뉴스는 싸이가 도대체 어디까지 뜰지를 가늠하느라 정신이 없다. 근데 그런 싸이가 역대급으로 뜨기 전에 계약한게 슈퍼스타 K 심사위원이다. 당연히 선약이니까 이쯤은 완주해야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싸이도 그럴 생각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요즘 심상찮은 뉴스가 나온다. 싸이가 인기가 많아서 한국에 도저히 못오니까 생방송이 이루어질 TOP10 심사를 할 수 없게 될 거라는 뉴스다. 대단히 큰 사건이다. 일면 싸이에게 굉장한 비난이 쏟아질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런데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슈스케는 철저하게 심사위원들의 권위를 쩌리화시킨다. 윤미래는 그 위대한 업적에 비해 극도로 심사평을 아낀다. 이승철은 저렴한 말실수를 자주 저지르지만 이를 편집시키지 않는다. 싸이 역시 역대급으로 뜨기 전까지는 실력은 있지만,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은 이미지였다. (여기서 부담이란 일반적인 의미와는 좀 다르다) 이전 싸이의 자리에 있었던 윤종신이 딱 뜨기 전 싸이의 이미지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엄청난 실력파 레전드이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이미지, 그것이 슈스케가 원하는 심사위원이었다.

 

그런데 싸이가 이승철은 고사하고 윤미래와 업적 자체를 공유할만큼 월드스타가 되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이승철의 심사평보다 싸이의 심사평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주목도가 그냥 심사평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사람들은 싸이를 보는 눈이 달라졌고, 싸이가 나오는 프로그램에 대한 가치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는거다. 싸이는 이미 성장중이고 더 성장할 수 있으며 그 성장을 사람들은 지켜보고 싶어하니까...그리고 참가자들은 싸이처럼 되고 싶어할것이고 그의 눈에 드는 것을 더 원하게 될 것이다.

 

언론의 주목도 역시 출연진보다는 싸이에 더 많아지고 있다.

 

슈스케는 그래서는 안되는 프로그램이다. 그건 제작진이 가장 잘 안다. 슈스케는 절대 심사위원이 화제가 되어서는 곤란한 프로그램이다. 정말 조심스럽지만, 만일 진짜로 싸이가 생방송 무대에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싸이 본인의 의사도 있었겠지만, 슈스케 제작진도 이를 분명히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는 의미가 된다. 더 심하게 말하면 오히려 싸이가 그만 둬주기를 은근히 바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2. 슈스케는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슈퍼스타 K를 보는 사람들의 심리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는 사람들의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금요일 밤, 불금에 클럽에 갈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안방의 작은 축제같은 프로그램을 기대한다. 그 축제에는 음악이 빠질 수 없다. 그렇게 사람들은 한주간의 피로를 위로하며 주말을 맞는다. '금요일입니다. 수고하셨어요. 음악을 들어요' 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 슈퍼스타K4에서는 음악을 좀처럼 들을 수가 없다. 예선방송분량이 작년시즌의 거의 절반 수준으로 뚝 잘려나간데다, 참가자 수는 3를 넘어 역대 최고라 광고하지만 예전보다 방송에 나온 출연자는 훨씬 적다. 슈퍼위크가 시작된 첫날 시청자들은 아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것이다.

 

'어? 예선 통과자가 저렇게 많았어?'

 

 

슈퍼패스는 정말 전국을 통틀어 이하늘이 딱 한번 쓴 걸까?

 

기적을 노래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한 취지에서 만들어진 슈퍼스타K가 설마 미리 될 사람을 내정해놓고 예선부터 그 사람들의 분량을 압도적으로 늘리기 위해 전개를 빠르게 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질 타이밍을 불식시키고, 긴장감 넘치는 슈퍼위크 내에서조차 음악을 풀로 들을 수 없을정도로 뭉텅뭉텅 잘라버리는 편집을 했을 리가 없다고 굳게 믿고 싶지만, 지금의 슈스케4에서는 음악을 실제로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1,2,3에 비해서 정말 체감할정도로 적은 게 사실이다. 슈스케는 프로그램의 시청율보다 그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인재의 가치에 더 주안점을 두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던가, 이젠 아닐 수도 있다.

 

그들은 버스커X2의 극적이라고 표현할수밖에 없는 음원판매량에 많이 놀랐다. 그리고 그 정도로 팔 수 있기 위해 지금 너무나도 심한 무리수를 두고 있다. 그들이 점찍은것으로 보이는 4명은 모두 통기타를 주무기로 하는 컨츄리스타일 보컬을 보이고 있으며 이들의 노래는 후반부로 갈수록 거의 편집 없이 풀버전으로 나오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셀프카메라는 대부분 이들에게 주안점이 맞춰져있으며 이들 이외의 참가자는 필자가 기억력이 아무리 나쁘다지만 도무지 누가 누군지 그 개성조차 발휘해주게 기회를 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사진은 위에서 언급한 4인과는 무관함 (?)

 

게다가 그들이 지금 주목하고 있는 4명조차도 예선전에서 그들의 노래를 들려줄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버스커x2가 3에서 그랬던것처럼 자작곡을 시연하는 모습은 더욱 보기 힘들다. 혹시라도 그렇게 믿고 싶지 않지만, 그들이 마치 지금 대형 기획사들을 흉내내는 것처럼 이들 4명의 성공을 확신한 나머지 노래 이미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프로그램 전체에서 음악의 비중을 균등하게 확 줄여버린거라면 정말 최악이지만, 딱히 할 말은 없다. 이 프로그램의 원래 취지는 그들이 가수를 키워낼 수 있는 힘을 보여주고 그 가수들을 토대로 뿌리를 박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 숭고한 본래 취지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3. 슈스케는 프로그램 자체의 성공욕심을 버려야 한다.

 

슈스케4에 이르러서 잦아진 구설수 중에 하나는 강용석과 오룡비무방, 그리고 조앤이었다. 문제는 이들 참가자가 거의 예선전의 클라이막스를 모두 잡아먹었다는것이다. 이게 뭘 의미하는가? 슈스케는 원래 예선 시청율이 그렇게 높지 않다. 그런데 지금 슈스케4는 예선 시청율이 역대급으로 나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물론 다분히 의도된 결과다 이미 슈스케 내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화제를 불러일으킨 사람을 내세워 시청율몰이를 하는 것이다.

 

조앤의 실력이 기대이하여서 실망한쪽은 시청자가 아니라 제작진이었을것이다.

 

슈스케는 철저하게 출연진을 가장 위로 올리도록 만들어진 프로그램이고 지금까지도 그래왔다. 슈스케는 지금까지 케이블 방송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었던 30분컷 중간광고를 거의 넣지 않고 프로그램 말미에 넣는다. 이는 프로그램으로 거둘 수 있는 수익을 최소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예선전에서 어떤 긴장감을 갖고 광고를 보여 기다릴만한 씬이 나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있었다면 그것은 음악이었지 어떤 화제성은 아니었다. 개그캐릭터는 대부분 프로그램 초반부에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을 강렬한 훅을 걸기 위해 나오는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번 슈스케4는 제작진의 과한 욕심이 느껴진다. 아마 책임프로듀서 몇 명을 제외하고 많은 수의 스텝 교체가 분명 있었을 테지만 이번 스텝들은 자신들의 커리어에 대한 과도한 집착만이 느껴질 뿐 프로그램 본질적인 가치관을 이미 공유하고 있는 시청자들과 프로그램 그 자체의 숭고함은 아량곳없는 모습이라는 거다.

 

이미 슈스케는 케이블 프로그램의 전설이다. 여기에서 일했다는 것은 이미 커리어에 화려함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선배들이 이루어놓은 것보다 더 못할 경우 커리어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독이 든 성배가 될 수도 있다. 내가 맡은 슈스케가 마지막 시즌이 된다는 건 정말 악몽이 아닐 수 없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이미 다음 시즌이 어떻게 되는 관계없이 일단 시청율만 높이고 보자라는 식의 프로그램 제작 작태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광고 노출 및 시청율에 대한 집착도 유래없이 심해지고 있다. 시청자들은 뭔가 달라지고 있는 슈스케에 이상함을 이미 느끼기 시작했으니까, 이미 돌이키기는 힘든 지경이다.

 

다들 싫다고 난리를 쳤지만 정작 이거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아름다운 윈윈(?) 연출에 대한 이미지를 단 한 시즌만에 말아먹게 될수도 있다.

 

이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건 프로그램이 이미 시즌 내에서도 점점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당하게 60초후에 공개한다는 식으로 광고주의 사랑을 받았던 광고시청율정책은 이번 주 '다음주에 계속됩니다'로 바뀌었다. 계속되는 지적을 수용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기획이란 어떤 철학이 분명히 있고 그 철학대로 만들어졌다면 그걸 시청자들에게 설득을 해야지 시청자들의 의견대로 바뀔 철학이었다면 이미 개똥만 못하다는 것밖에 안된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반문하더라도 할말 없다. 이미 슈스케는 그런 취급을 받고 있는거다.

 

...

 

매년 반복되는 탈락 후 패자부활전으로 인해 시청자들은 이미 누가 될 거고 누가 탈락할지를 척척 알아맞히는 지경에 이른다. 그들의 변명은 '너무 엄한 심사를 한 나머지 항상 필요한 사람보다 적게 뽑았다'라는 건데, 이승철은 이미 4년째 이 프로그램을 하고 있고 이 프로그램은 아무리 스텝이 계속 교체가 되더라도 이미 같은 방송사에서 4년째 계속하고 있는데, 아직도 시스템적으로 매번 공백이 생길 만큼 허술하도록 놔뒀다는 건 변명으로서의 가치가 없지 않을까?

 

 

시청율을 올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슈스케는 출연진인 가요계의 유망주들이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서 원석이 발견되고 프로그램으로 인해 점점 세공되어가며 빛을 보는 즐거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슈스케가 상업방송인 이상 시청율에 욕심을 내는 걸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슈스케답게 하자. 슈스케 출연진들에게는 신랄없이 빈틈을 지적하고 무능함을 질타하면서 가차없는 탈락을 일삼으면서 그들 스스로는 왜 한보 앞으로 내딛는걸 거부하는가? 당신들의 프로그램 제작 능력을 보여주는 가치는 결국 점점 더 나아지는 모습밖에 없다. 더 많은 참가자 더 많은 실력이 당신들의 만듦새 실력을 가늠해주는 것이 아니라 작년에는 탈락자가 너무 많이 나와서 패자부활전을 해야 했다면 올해는 그런 일이 나오지 않도록 시스템을 더 다듬어서 짜임새를 키우는 것으로 시청자들에게 스스로를 자랑했어야 했다는 말이다.

 

...

 

초등학교 4학년이 10=66-( )에 넣는 답을 실수할 리가 없지 않은가? 있을 수도 있다. 다만 그 4학년은 앞으로 수학을 잘한다고 자랑할 자격을 잃을 뿐...

 

 

 

...

 

이대로 가면 망한다는 경고를 쓰려는 게 아니다

이미 슈퍼스타K4는 망했다.

 

그리고 어쩌면 슈퍼스타K 자체가 망할수도 있을 것 같다.

 

 

posted by RushAm 2012. 8. 4. 13:02

 

 

가끔 빌보드는 이상한 일을 저지른다. 그만큼 순위변동이 심하고 신곡에 대한 열망이 너무 지나치다 보니 생긴 기현상인데. 다름아닌 '제 3세계'음악의 갑작스러운 약진이다. 이들 음악은 정말 어떤 음악 전문가도 예측한적이 없고, 전문적인 프로듀스를 거치지도 않았는데, 어떤 계기 (유명 아티스트가 트위터에 올렸다던지, 어떤 영화 음악으로 쓰였다던지) 가 있고 그 음악이 사람들에 귀에 박혀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면 그 곡은 바로 뜨게 된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으셨을줄 알겠지만, 이렇게 뜬 음악은 거의 대부분 '후크송'이다..

 

우리나라는 후크송에 대해서 그 파급력은 인지하면서도 그 가치에 대해서는 상당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수많은 후크송이 우리나라를 들었다 놨다 국민음악이 된 적이 결코 적지 않음에도 아직 이 후크송에 대해 지갑을 열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빌보드는 좀 다르다. 음원 가격이 좀 싼 편이기도 했지만 후크송 역시 하나의 음악으로 싸든 비싸든 일단 그 한 마디의 반복성이 주는 음악적 가치에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빌보드의 이같은 주기적인 사춘기는 그래서 반복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이와 같은 수순을 밟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건 이 수순이 아직 '역대급'까지는 다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빌보드 뿐만 아니라 각국 챠트에서 고르게 눈에 띄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빌보드의 파급력은 단지 미국 국내시장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팝이 거의 시망하다시피한 우리나라에서도 아마 지금부터 예시로 드는 곡들은 적어도 한번씩은 들어봤으리라 생각된다.

 

 

1. We No Speak Americano

 

 이 곡의 빌보드 차트 기록 

 

2. Macarena - Los del Rio

 

빌보드 챠트 기록은 굳이 볼 필요가 없다.

 

3. Alice DJ - Better Off Alone

 

폴란드랑 영국, 빌보드는 가볍게 씹어먹었던 곡

 

...

 

위 곡을 다 들어보았다면 이제 강남스타일 뮤비 다시 한번 보자

뱀발 : 뮤직비디오를 잘 보면 알겠지만 말타는 춤을 표현하기 위해 말 사육장을 간 것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장소가 '한국'에서만 갈 수 있는 장소들이나 한국에서 볼 수 있는 풍경 (관광버스, 한국 지하철, 강변의 손뼉치며 걷는 파워킹 아줌마, 한강 오리보트, 강변 오리보트, 대중사우나와 문신남들, 대중탕) 들이 주를 이룬다. 전략적인 기획에서 나온 무언가는 아니었겠지만 외국인들이 박장대소를 치며 웃는 이면에는 단지 관광와서는 절대 보기 힘든 이국적인 풍경 (대중탕이나 관광버스 문화) 가 흥미롭고 더 우스꽝스럽게 보이는것이다. 게다가 싸이에다 노홍철, 먹어주는 미모의 현아까지 갖출건 다갖춘 셈

 

...

 

이들 곡들의 공통점은 곡 자체의 흡입력도 있지만 바로 뮤비가 주는 흡입력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엠넷이 아이돌들 철봉오래매달리기 프로그램 채널이 되어버린지 오래지만 아직도 해외에서는 MTV에서 주구장창 뮤비만 틀어주고, 그 뮤비를 보고 음반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래서 이들 곡은 곡으로 귀를 사로잡고 받아든 눈길을 다시금 뮤비로 사로잡아 확실한 광고효과를 거두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물론 마카레나는 아무 전략없는 촌스러움이 역으로 먹힌 사례지만)

 

강남스타일은 이들 곡들보다 출발이 훨씬 더 순조롭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싸이가 가지고 있었던 음악 색깔에 화룡점정을 찍은 유건형의 편곡이 주는 신선함이 해외에서 먹히는 결정적 한방이 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후크송으로 나무랄데없는 곡이고, 반응도 좋다. 무엇보다 곡으로 귀를 사로잡고 뮤직비디오로 눈을 묶어두는 MTV식 전략이 비록 유튜브라는 다른 채널이지만 구사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로비게이의 어시.jpg

 

다만 지금의 상황을 너무 낙관할 필요는 없다. 마카레나의 대성공은 싱글을 내자마자 어마어마한 센세이션을 일으킨걸로 보이지만 사실 이 곡은 나온지 무려 1년만에 빌보드에 진입했다 물론 지금은 유튜브랑 아이튠즈의 시대라서 이보다 훨씬 적은 시간에 폭발할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포텐셜의 극한을 끌어내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그리고 이 곡은 '곡'이 히트를 치고 '뮤비'가 화제가 된 곡이지 '싸이'라는 가수가 인지도를 얻고 있는 상황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인지해야 할 것이다. 물론 YG도 싸이도 이를 모를리 없고, 섣부른 낙관을 할리는 없다. 다만 지금 올림픽이 끝나고 난 다음 단물빠진 SM떡밥을 대체할 문체부에 귀에 들어가버리는 것이 우려스러울 뿐이다.

 

 

정부가 아무 짓거리것도 안해야 지금처럼 중간이라도 갈 텐데

posted by RushAm 2012. 8. 1. 13:50

사카이 노리코라는 일본 아이돌 가수가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우리나라의 아이유급 가수인데, 근 10년간 솔로 아이돌의 한 축을 먹어주며 국민적인 인지도를 갖게 된다. 그런데 그녀가 아이돌을 은퇴한지 한참 지난 시기에 갑자기 '마약관리법 위반'으로 체포된다. 그런데 체포되기 전, 즉 혐의가 확정되기 전까지 그녀에 대해 동정론을 보이던 언론과 여론은 경찰에 잡혀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비춰지자마자 태도가 180도 뒤바뀐다. 그녀가 예전 마약근절운동 홍보대사였던 점부터 뜬금없는 섹스비디오 파문 등 별 시시콜콜한 잘못들까지 봇물터지듯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마약관리법 위반은 사형이 구형되지 않지만 이미 그녀는 사회에서 사형선고를 받은것과 다름없는 처지에 놓인것이다.

 

그런데 사카이 노리코의 이같은 급격한 몰락은 이미 예견되어있었다는 이야기가 많다. 비단 그녀 뿐만 아니라 언론들은 연예인 혹은 사회 주요층 인사들에 대한 블랙 소스들을 늘 수집하고 확보해두고 있으며 사카이 노리코의 캐릭터 스타일은 국민적 아이돌이라는 이면 속에 여성팬들의 안티화를 가속화시키고 있었다. 사카이 노리코는 폭발직전의 이 상황을 성실한 이미지로 근근히 극복해오며 자리를 지켰을 뿐, 안티를 극복해내지 못했기에 결국 단 한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티아라는 그룹 구성원 전원이 여성에 회사 소속 연예인들도 절대다수가 여성이었다. 초창기맴버에서 몇 번의 맴버교체 및 추가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동등한 위치가 아닌 그룹 내 선후배 서열이 만들어지는 상황이 생겼고, 그걸 이끌거나 중재할 구심점을 해줄 리더가 없거나, 있더라도 이런 사태를 초래할 만큼 역량부족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만의 여성사회 속에서 그들만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집단따돌림 (정신적 폭력)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들은 여성 음악팬들을 중심으로 조만간 그룹 전체가 가요계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할 처지에 놓였다.

 

이 설은 왠만한 음주운전 뺑소니 사건보다 훨씬 더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퍼지는 속도는 가히 연습생 포르노비디오 떡밥 못지 않은 수준인데, 이해하기 힘든 건 이 사건에 대한 관심도와 미디어의 기사 양산 갯수가 정도 이상으로 너무 많다는 점이다. 이는 그만큼 티아라라는 그룹이 상당한 수의 여성 안티팬을 보유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집중되고 그 여파가 좀처럼 사그러들줄 모르는 가운데, 몇몇 사람들과 미디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전혀 주목할 가치가 없는 이 사건을 양산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다양한 억측과 개운치못한 뒷맛을 남길 사건이 될 전망이다. 남성 안티가 넘쳐나는 투애니원은 승승장구를 하고 있는데, 남성팬이 적지 않은 티아라가 스캔들 한방에 나가떨어졌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걸그룹 = 삼촌팬'이라는 공식을 단번에 뒤집을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이유가 대세가 된 데에는 삼촌팬의 열렬한 지지도 있었지만 여성팬들이 그녀를 '이쁜척 재수없다고'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 주효했다.

 

 

그런데 이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번 사건은 굳이 티아라만이 아니라 여성이 다수인 집단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여성사회만의 서열구조에서 나오는 흔한 에피소드일 뿐이었다. 단지 그걸 '까발려졌'을 뿐이다. 우리는 이미 사회 속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여성 다수인 사무실이나 학교 등의 타의적으로 조직된 집단에서 벌어지는 여성들만의 서열 싸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것은 분명 범죄에 가까운 일이긴 하지만 그것을 범죄라고 인식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계층은 현저히 적으며 도리어 왕따의 피해자의 원인제공에 의한 자연적 사회 순기능이라는 논리를 들어 그 자체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모순되었고 논리적으로 맞든 맞지 않든 거울처럼 보여지는 티아라의 이번 사건에 여성팬들이 등을 돌리고 돌을 던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들의 행동이 정당하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티아라는 장사 밑천을 지키느라 거래처를 잃어버린 셈이 되고 말았으니까, 티아라는 앞으로의 활동에 있어 표면적인 인기는 유지할지언정 이미 케파를 맞추거나 투자금을 회수할 수준의 히트를 치기 쉽지 않아보인다. 여성팬들은 딱히 이번 사건으로 인해 티아라를 갑자기 미워하게 된 게 아니라 꽤 오랫동안 잠재적으로 그녀들에게 쌓여있던 것이 이번일을 계기로 터져나온, 이른바 준비된 스캔들이라는 것이 필자의 시각이다. 앞으로도 티아라는 꾸준히 여성팬들에 의해 '불매 운동'을 직면해야만 할 것이고, 장사 밑천인 남성팬들을 서서히 잃게 되는 수순에서 크게 벗어나기 힘들듯 싶다.

 

 

이 사건은 사건의 본질이나 그에 따른 여론 재판 수준에 있어 남성들이 이해하기엔 어려운 구석이 많다. 즉 이 사건에서 남성들은 여성들에 의해 설득당하는 입장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아이돌업계 전체에 시사하는 바는 그다지 크지 않을것 같다. 누군가의 악행으로 저질러진 사건이건 그 악행이 범법에 해당할만큼 중죄이건 아니건 관계없다. 그냥 여자아이돌은 여성팬을 늘 신경써주지 않으면 언젠간 패망한다는 너무나도 기본적인 수칙 하나가 반복되었을뿐이다. 각 기획사들은 여자들 세계에서의 싸움을 말릴 수 있는 어떤 특단의 대책을 심리학 자문위원을 초빙해서라도 하나쯤은 마련해두는 것이 어떨까?

posted by RushAm 2011. 10. 15. 13:32

메이저 리그의 전설적인 홈런타자 베이브 루스, 그는 무려 현역시절 포함 50여년간 깨지지 않았던 통산홈런 기록과,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가지고 있던 그야말로 전설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시즌 최다홈런 기록이 1960년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로져 메리스라는 선수에 의해 깨질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베이브 루스의 전설을 광신하던 사람들은 그 기록이 깨지는 것을 환호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것을 시기하며 베이브 루스가 활약했을 당시의 경기 수인 152경기와 똑같은 기준에서 로져 메리즈의 기록을 평가해야 한다는 억지논리를 펴며 그의 신기록 경신을 드러내놓고 반대했다. 이처럼 팬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신이 응원하고 믿는' 무언가보다 더 뛰어난 누군가가 나오는 걸 원치 않는다.



울랄라 세션의 프로 논란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 언제나 그랬던것처럼 출연자 위주로 돌아가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어쩔 수 없이 출연자에 대한 팬덤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이 팬덤은 필연적으로 팬덤의 대상과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동일시하기 때문에 피해의식에 따른 공격적인 행동 패턴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치자, 팬덤들이 그러는 거 하루이틀이겠느냔 말이다. 문제는 그 팬덤들의 초딩짓에 반응하는 일반 시청자들의 동요다. 아마도 이는 일반 시청자들이 '동일하게' 느끼고 있는 어떤 부분을 팬덤의 '허튼소리'가 아주 제대로 찌르고 들어간 모양인데, 모양새로는 정말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울랄라 세션의 프로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울랄라 세션이 이전에 음반을 내고 프로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아마 홍대 같은 소극장 공연에도 섰을 것이란다, 이처럼 충분한 실전 트레이닝이 있었던 만큼 다른 아마추어들과 경쟁하는건 반칙이라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공화국 공식성명이므로 글이 길어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단지 글을 좀 짧게 마무리지으려는 목적으로 지금부터 그 논리를 펴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1. 울랄라 세션이 슈퍼스타K에 출연하기 직전까지 울랄라 세션이라는 그룹 이름을 들어봤는가?

2. 울랄라 세션이 냈다는 음반 인증샷을 직접 인증한 적이 있는가?
     (올리는 본인이 직접 얼굴 드러고 올린 인증샷을 말한다)


3. 프로 가수협회, 가수분과위원회에 정식으로 등록한 등록번호나
   무슨 무슨 정품인증 씰 같은 타진요틱한 인증이라도 해봤는가?

4. 이들이 슈퍼스타 K 이전에 공중파 가요프로그램은 고사하고
   CJ계열은 물론 변방 종교방송에라도 TV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걸 본방사수했던 사람이 있는가? 혹은 나왔는가?

  5. 울랄라 세션이 메인 이벤트 행사 무대는 고사하고 홍대 클럽 같은 곳에서 발견하고
     그들의 활동 모습을 찍은 인증샷을 들이댄 적이 있는가?


홍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들이 TV에 나와서 '우리 홍대에서 음악하고 있어요'라고 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

  프로 가수는 프로복서처럼 따로 라이센스가 있지 않다. 왜냐하면 예술이란 누군가에 의해 그 가치를 재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 논란 전에 있었던 '프로 가수'라는 인증은 어떤 것이었을까? 필자는 대중문화는 '대중'이 인지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프로가 된다고 생각한다. '마니아'들이 아닌 '대중'이 인지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문화적 가치가 냉혹한 평가를 받기 시작하는 시기가 바로 프로다. 언더 음반 시장이 거의 붕괴 측면에 도달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필자는 말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지금까지의 프로의 이미지와 울랄라 세션에게 들이대는 프로의 잣대는 모순되어있다고, 도대체 왜 이렇게 모순된 잣대를 들이밀면서까지 이런 짓을 하는지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설령 울랄라 세션이 음반을 냈고 반칙도 했고, 소문대로 위암 4기도 거짓말이라고 다 드러난다고 해도 우리는 '문화 소비자'로서 매우 부끄러운 줄 알아야할것이다. 심사위원 대중들 모두 '프로'라고 의심할 정도로 시기할 만큼의 메이저급 실력을 가진 그 친구들을 우리는 아마추어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테니까, 실제로 그들이 음반까지 내고 프로가수처럼 활동을 하려 발버둥을 쳤다고 해도, 우리는 그들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들의 몸짓과 율동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랬던 우리가 너무 부끄러워 이제는 이들을 인정하려고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중이 울랄라 세션에게 '반칙'이라고 말하는 이면에는
내가 지금까지 프로라고 생각했던 가수들보다 훨씬 잘하는 친구들을
대중문화의 주인인 대중으로서 발견해내지 못했던 미안함과...

...한편으로는 그들이 지금까지 인정해왔던 프로의 기준을
이들이 깨버리고, 혹은 이들의 실력에도 프로라는 타이틀을 주지 않았던
대중들의 고집스러운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일로 부끄러워 해야 할 사람들은
울랄라 세션이 아니라

필자를 포함한 대중문화의 주인이라는
우리 모두일것이다.
posted by RushAm 2011. 5. 11. 04:55
나가수에 대한 포스팅을 곰곰히 살펴보면 묘하게 '대호평'과 '극단적 비판'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건 이 두 극단적인 문맥갈림이 거슬러올라가다보면 결국 '나가수의 시스템'이라는 원류를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한 가지의 시스템을 두고 이렇게 극단적으로 갈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우선 대호평쪽의 이유와 근거로는 일요일 저녁 5시라는 상당히 보기 편한 시간대에 지금까지 상당히 보기 불편했던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었던 높은 가창력의 가수들이 속속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생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반 이상의 페이지를 칭찬으로 소비한다. 거기에 이 프로그램에 대한 가수들의 태도가 곁들여진다. 지금까지 이 '아티스트라 불리웠던 자들'은 언제나 그 가창력이라는 이 나라에서 참 유지하기 힘든 생존수단 만으로 생존했다는 것만으로 음악팬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음악 팬들은 그들이 행여 이 나라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끊임없이 걱정해주고 있었으며, 그들의 콘서트에는 언제나 그들의 음악을 들을 생각이 충만하다 못해 넘처 흐르는 사람들만으로 가득채웠다. 이런 무대에서만 서 왔던 그들은 언제나 '헛기침'만 해도 열광해주는 무대에만 익숙해져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지금까지 관객을 만족시키려는 음악을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의 음악'을 만족하며 들어주는 사람들 앞에서만 노래를 부르는 일종의 '현실도피'를 음악적 자존심이라는 이유로 당연시해왔다.

그러던 그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노래를 무조건 추앙해줄 거라는 보장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무대에 섰다. 당연하겠지만 그들은 이제 '엄마'앞에서의 응석부림이 아닌 진짜 자기 음악을 그냥 그렇다고 보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음악을 인정받아야만 한다. 당연히 최선을 다하는 그 이상으로 속에 있는 무언가를 전부 내던져야만 했다. 그들의 이런 버닝하는 모습을 이끌어내는 방송 더구나 그런 방송이 수요일 심야 1시가 아니라 일요일 저녁 5시에 방송된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을 그렇게 모든 걸 던지게 만드는 주체가 '시청자'라고 말해주는 방송, 그들이 호평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극단적 비판을 하는 포스팅의 경우 이를 역순으로 뒤집는다. 처음에는 가수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되지 않는 '가수 중심이 아닌 시청자 중심이 된' 무대를 만들어 등수라는 게 의미가 없는 그들의 제각각 다른 개성강한 음악 세계에 등수를 매겨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무리를 시킨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 포스팅들은 점점 후반부로 갈 수록 프로그램 전체를 비판하던 목소리에서 점점 한쪽 귀퉁이로 좁아지게 되는데, 주로 특정 1인을 지정하며 그 가수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 그 가수가 원래 잘 부르는 가수인데, 쥐뿔 모르는 관객들 앞에서 인정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무리를 하게 만들어 이미지가 훼손되어 안타깝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곤 한다. 주로 이런 쪽으로 좁아지는 대상은 '김연우', 'BMK', 간혹 '임재범'이 그 대상이 된다.

대상을 지칭한 이후 이들의 비판은 상당히 그 논리가 분명해지는데, 이들이 지칭하는 가수들은 주로 '낮은 순위의 결과'가 나왔거나 '블로거 자신'의 기준으로 인정하기 힘든 사람들보다 '순위가 뒤졌다'라는 점을 든다. 김연우의 경우를 예로 들면 김연우의 특징이 주로 절제된 감정 표현 속에 맑은 목소리로 호소하는 스타일이라며 이걸 제대로 듣지 못하는 시청자들의 평가로 인해 김연우 본인이 본인의 모습을 잃고 오버버닝을 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주저앉을 정도로 힘들어하는 모습에 마음아프다는 식의 '팬으로서의 감상'을 근거로 덧붙이는 자의적 판단에 따른 객관화의 오류를 범하곤 한다.


극단적 비판을 하고 계신 몇몇 블로거들이 착각하고 있는 첫 번째는 이들에게 '나가수'의 출연을 그 누구도 강제한 적도 없고, 출연 전에 '나가수'의 포멧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출연의 판단은 그들이 했으며 이런 무대의 특성이나 기획 의도 역시 전반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했음에는 두말할여지가 없다. 그런 그들이 반드시 '자신이 가진 개성'을 인정받아가며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환경 속에서 노래를 부를 것을 충분히 각오한 그들의 마음을 애써 대변한다며 쓰는 포스팅이 과연 그 가수의 팬 이외의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두 번째로는 자신이 가진 기준이 반드시 '정설'에 가깝다는 편견에서 불러온 나가수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다. 아직 잘 지켜지는 것 같지는 않지만 나가수의 기본 기획 의도는 '음악의 다양성'이다. 필자가 온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정말 숱하게 봐온 음악 커뮤니티에서의 언쟁 중 하나가 A가수와 B가수 중 누가 더 가창력 지존인가 하는 정말 무의미한 논쟁들이었다. 이러한 논쟁은 사실 선동렬, 최동원 떡밥이나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는 소시팬덤과 아이유팬덤의 싸움과 본질적으로는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양한 개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부르짖던 이들의 포스팅은 결국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객관성을 잃는다.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한다면 YB보다 훨씬 잘한 김연우가 왜 YB보다 순위가 낮냐는 식의 끝맺음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게 느껴진다. YB가 가진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심지어 1위 박정현이 어떤 노력을 해서 그 순위를 얻었는지, 이소라가 어떻게 해서 2위를 얻었는지는 그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심지어는 그들이 '시청자들의 취향'에 걸맞게 자신들의 개성을 버려가면서 점수따기로 일관했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이며 자신의 색깔을 지키고 있는 김연우와 BMK가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이소라가 지난 주 무대에서 정말 자기 개성을 다 버렸는가? 오히려 진짜 이소라다운 노래로, 아니 지금까지 보여줬던 것보다 더 대놓고 자기 색깔을 드러내버렸다고 느낀 건 필자 뿐인가? 그런데 2위를 했다는 건 이미 음악적 개성을 드러내고 드러내지 않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하지 않았던가? 1위를 한 박정현은 어떤가? 박정현는 처음 인터뷰에서 조용필 선배님에게 칭찬을 듣고 싶다는 감상을 밝혔고, 음악 극후반부에 이르기 전까지 가능한 자신의 내지르는 창법을 최대한 억제하며 원곡이 가진 음악적 특성을 충실히 표현하려 애썼다. 그리고 곡 후반부에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창법을 시원하게 쏟아낸다.


착각하고 있는 세 번째는 '평가단'과 '시청자'를 너무 바보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가수에는 어떤 절대기준이라는 것이 암묵적으로 생겨져있고 그로인해 그에 속하지 않고 속할수도 없는 김연우가 시스템에 희생당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사랑해마지않는 가수들의 잘 드러나지 않는 개성까지 일반 관객들이 캐치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핸디캡은 비단 일부 가수들만에 한정되지 않고 출연한 모든 가수들이 한 번씩은 거처가도록 공평하게 배분되었다고 생각한다. YB는 잘 알려진 몇 가지 히트곡을 다 제껴두고 부담감이 컸을 나가수 '첫 무대'에서 일반적으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 생소한 노래를 불렀지만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며 중위권을 지켰고, 불과 2주 전에는 박정현이 '전혀 들어본 적 없을' 곡을 선택했다고 고백한 뒤 '이 곡은 제가 너무 좋아하는 곡이어서 꼭 부르고 싶어요, 관객들이 좋아하게 만들거야! 라는 각오를 하며 부를 거에요'라는 포부를 밝힌 바가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내린 평가단들이 정말 음악을 대중성에 비춰 가려듣는 사람들이라고 함부로 단정할 수 있는가?

500명의 심사단은 처음에 누가 출연할지는 전혀 모른 채로 녹화장에 들어온다. 당연하겠지만 그 누구의 팬이 더 많이 섞여 있을거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거다. 게다가 누가 나올지 모르는 가요 프로그램 방송 방청객, 낮녹화에 발걸음을 옮길 사람 정도라면 적어도 음악깨나 듣는 사람이 아닌 이상 그 정도 정성을 쏟기가 힘들다. 특히 이는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더할 것이다. 이들 블로거가 무시해 마지않는 40~50대의 평가단들이 음악 듣는 귀가 닫힌 바보들이라는 평가에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가진 무언가를 다양성이라는 근거를 통해 인정받고 싶거든 먼저 상대방이 가진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나가수의 처음 기획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 몇몇 가수의 팬을 간접적으로 자칭하고 있는 당신들은 오히려 나가수의 이런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당신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가수가 힘들어하고 지쳐하고 아파하는 것을 보다 못해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자신의 다양성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제대로 다양성을 인정받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깎아내리며 프로그램의 공정성까지 들먹이는 건 너무 치졸하지 않는가? 마치 들어본 적도 없는 곡에게 졌다고 분풀이를 하는 걸그룹 팬들과 음악같지도 않은 음악을 하는 걸그룹을 좋아라한다며 그들을 꾸준히 경멸해왔던 당신들이 하는 행동이 그들과 대체 다른 게 뭔지 말해주지 않겠는가?

나가수는 생각보다 가수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가수에서 가수들에게 무언가를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주체를 굳이 꼽자면 평가단과 시청자들이 될 것이다. 그런 시청자들과 평가단이 과연 그들에게 '당신의 음악을 버리고 대중적인 음악을 해!'라고 강요하고 있을까? 이미 지난 결과로서 그렇지 않다는게 너무 잘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몇몇 가수들이 그런 부분에 지례 조급해하며 자신이 해온 음악에 자신감을 잃고 너무 쉽게 대중성에 휘말린다면 그거야말로 한심하지 않은가? 가수라면 자신의 음악이 비주류라 할 지언정 자신이 생각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음악이 어느 정도로 훌륭한지를 자신의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좀 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만 하지 않나?


착각하지 마라, 평가단과 시청자들은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지켜가면서 '내 음악을 좋아하게 만들고 싶다'라는 열망을 무시할만큼 어리석고 바보같지 않다. 당신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그 아티스트의 음악을 좋아하는 만큼 다른 가수들 역시 당신들의 그 사랑에 진배없을 만큼 반대편에 서 있는 그들이 가진 잘 알아채기 힘든 매력을 느끼며 살고 있다. 당신들이 반대쪽에 있는 그들의 숨은 매력이 잘 보이지 않아 그들을 평가절하하는 만큼 당신들이 사랑하는 그 가수의 숨은 매력을 애써 찾아 좋은 평가를 내려주길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나가수는 그들을 비춘 거울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음악의 파이가 지극히 작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걸 홀로 독식하는 식으로 만들어진 영향력 속에 보호받으며 호랑이로 군림해왔다. 사랑해주는 사람들 품에 안주하며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들과 거리를 분명히 두며 자신들의 음악을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왔다.


임재범의 노래, 김연우의 노래, BMK의 노래를 노래방에서 부르는 걸 듣기 싫어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들이 부른 재해석의 의미가 없을 완벽한 노래를 다른 사람이 부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거다. 그 정도로 신격화되어있는 그들이 지금까지 해온 건, 더 늘어나지 않고 늘어날리가 없는 고정 팬들의 지지에 안주하며 자신이 하는 음악의 저변 확대나 같은 음악을 하는 후배들을 위해 장르 대중화에 힘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절대자가 되어버린 그들을 대신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과 같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성장할 여지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는 거다.

그런 그들이 이젠 자신이 하고 있는 음악이 더 저변이 넓어지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창력'이라는 음악의 본질을 인정받기 위해 의기투합하고 모든 걸 쏟아내려 무진 애를 쓰고 있다. 그런 모습이 안스러운가? 자신의 우상이었고 최고라고 생각하는 가수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것이 억울하고 분하신가? 성적지상주의라니, 제대로 매력을 몰라주는 평가단들이 야속하신가?

필자는 일요일 오후 5시에 어떻게든 제대로 만든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기 위해 부득이하게 순위를 매겨 흥미요소를 만들 수 밖에 없었던 나가수 자체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가수의 평가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의 음악을 인정받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한 사람들을 평가절하하고 심지어는 그들을 자신의 가수들보다 높게 평가한 사람들을 바보취급하는 등 '성적지상주의'의 폐해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 그런 당신들의 위선이 필자는 미치도록 부끄럽고 안타깝다.


당신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가수들을 진정 망치고 있는 건
한낱 TV프로그램이 아니라
바로 당신들 스스로가 아닌지를 한번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posted by RushAm 2011. 5. 9. 06:34
진퇴유곡이라는 말이 있다. 이래나 저래나 죽긴 매한가지인 상황을 빗대는 말인데, 사실 나가수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김영희 PD의 야심작이었던 나가수가 기획했던 포텐셜을 채 폭발시키지 못하고 좌초될 위기에 처했던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김영희 PD는 그 오랜 기간 공들여 기획했다는 나가수를 어떤 이유여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준비한 시간의 채 10분의 1도 견디지 못한 채 떠나가버렸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왜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김영희 PD는 완벽주의자이다. 그리고 그 빈틈없이 1인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방송조직의 핵심으로 자리잡을 만큼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능력들 역시 하나같이 준 프로급 이상으로 준비했던 사람이다. 그만큼 자기 작품에 대한 고집이 대단하고 그래서 더 자기 작품에 대해 비판을 받거나 의도했던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공들인 기간이 무색할 만큼 너무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필자는 지금 김영희 PD를 비판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김영희 PD가 나가수를 기획한 의도를 생각해본다. MBC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가요'프로그램에 대한 욕심이 대단했고 어느 정도 노하우도 있었다. 문제는 언제나 '시청율'이었다. **예술무대 시리즈는 정말 수준급 아티스트들이 대거 출연하여 수준높은 공연을 안방까지 전해주었던 '좋은'프로그램이었지만 언제나 제작비 대비 시청율 부족으로 인해 자선사업과 다름없게 운영되며 주말에 가까웠던 프로그램이 주중 한가운데 수요일로, 그나마 프라임 타임에 근접했던 시간대가 점점 까마득한 심야 시간대로 밀리다가 못해 폐지되었다.


TV의 가장 큰 장점은 '무료'다 우리는 '문화'를 얻기 위한 대부분의 수단에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에 살고 있고. 그것은 가요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TV에는 음악성을 느끼기에는 한참 부족한 아이돌의 잔치가 된 음악 프로그램만이 넘쳐났고 제대로 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은 모두 유료 콘서트장에 한정되고 있다. (아이돌 음악이 제대로 된 음악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게 아니다) 물론 좋은 공연에 가치를 지불하는 지금의 시장이 문제될것은 없다. 그러나 그게 정말 (자신의 주관상)'좋은 음악'인지 아닌지를 제대로 구분하기 위한 '트라이얼'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음악이 3사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음악만 있는 게 아닌데, 점점 자라나는 세대들은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그리고 기성세대 역시 그들이 인정할 만한 음악 다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생각에 7080음악을 추억하게되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결국 제대로 음악을 하는 가수도, 그리고 제대로 음악을 하려는 가수 지망생들도, 제대로 된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음악 애호가들도 모두 죽게 되는 세상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김영희 PD가 나가수를 기획하게 된 동기 역시 이와 일치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제대로 된 음악이 나오는 환경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시청자들의 귀'를 틔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좋은 가수들이 제대로 극한까지 가창력을 끌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하지만 KBS의 금요일 심야, SBS의 평일 심야같은 시청율 사각지대에 놓여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이미 귀가 트인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귀가 트이지 않은' 사람들을 트이게 만드는 것이 나가수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귀가 트이지 않은 사람이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시간대에 방영되어야 했는데, 이미 한번 음악여행 라라라의 심야 프로그램 진입이 결국 호평 속 시청율 부진이라는 전통적 언발란스 결과를 도출한 채 실패했던 최근사례가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번 프로그램의 프라임 타임 진입은 기획의 흥망을 결정할 핵심요소였음에 틀림없었다.

시기도 괜찮았다. 때마침 그가 지분을 가지고 있을 일밤이 시청율이 바닥을 기고 있던 상황이다. 일요일 저녁,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간대였다. 그러나 문제는 시청율이다. 수요예술무대와 다를 바 없는 밋밋한 프로그램이 일요일 프라임에 살아남을 만큼 민방의 세계는 만만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영희 PD는 너무 음악만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적절히 버라이어티성을 가미하는 한편, 지금까지 '아티스트'라 불리우며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던 가수들의 지위를 일격에 떨어뜨리는 대변혁을 시도한다. '당신은 지금부터 가수지망생이 되어 관객들에게 오디션을 치루듯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지금까지는 어디까지나 그 가수를 알고, 그 가수의 노래를 들을 생각이 충만한 사람들만을 상대할 수 있는 자기중심의 라이브 무대에만 서 왔던 그들, 그래서 언제나 우러러바라보이는 것에 익숙해왔던 그들에게 주도권을 빼앗아 시청자들에게 돌려준다는 발상까지... 그의 생각으로는 이보다 완벽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그의 기획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잠재되어 있었는데 다름아닌 '포멧이 너무 완벽했다'라는 것이다. 즉 시청자들은 그런 완벽한 포멧을 받아들이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포멧에 담긴 그의 속뜻을 읽어낼 만큼은 소통하지 못했다. 사실 시청자가 PD의 의중을 반드시 읽어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 완벽한 포멧을 가감없이 받아들인 시청자들은 김영희 PD가 그 완벽한 기획을 스스로 깨버리고 재도전을 허용하는 모습에 배신감을 느꼈다. 물론 이유는 포멧이 너무 완벽했기 때문이다.

김영희 PD는 그 완벽한 포멧을 시청자들이 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출연하는 가수들이 더 많이 받아들여주기를 원했을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합법적 압박이다. 강요하지 않은 압박을 가수들이 자기 멋대로 느끼고 자기 멋대로 긴장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노렸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것은 시청자들 역시 그러한 압박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가수들이 이런 자신들의 급작스런 방송상의 신분 변화를 받아들이는데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결국 결과는 다들 잘 아시는 것처럼 나가수의 좌초로 이어지게 되고, 휴방인지 종방인지 알 수 없는 여운만을 남긴 채 한 달이 흐른다.


신정수 PD가 바통을 이어받은 뒤 가장 많이 이야기가 나온 건 나가수의 본질이 훼손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밖에도 김영희 PD혼자 다 하던 것들을 각 분야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집단제작체제로 바꾼 조직의 변화 역시 볼 수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그동안 단지 위협과 자극이 전부였던 프로그램 포멧에 재도전 없는 무조건 탈락이라는 절대적인 긴장감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초콜릿,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며 음악을 즐기던 사람들이 속속 나는 가수다에 대한 기대를 접게 되었다며 아쉬워했던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가수들이 더 좋은 무대를 보여주고 싶다는 순수성을 잃은 채 인기 위주로 흘러 순위에만 집착하게 되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필자는 이들의 의견에 대체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나가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정수 PD가 무엇보다 중점적으로 노력을 기울였던 건 '인적 쇄신'도 아니었고 '자기 입맛대로 포맷을 바꾼 것'도 아닌, 결정적으로 '나가수'가 좌초되지 않게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 했다.라고 보고 있다. 만일 여기에서 나가수가 시청자들에게 다시금 외면받으면 더 이상 이런 기획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음악계의 정파가 살아남을 미래도 없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가수 중심에서 결국 '시청자 중심'이 되었다며 나가수의 지금의 모습에 아쉬워하지만 난 신정수 PD를 비롯한 지금의 제작진들에게 정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디까지나 나가수는 살아남았고 복귀했으며 임재범을 비롯, 갖은 화제를 낳고 있고 시청율도 껑충 뛰어올랐다. 고품격 음악 프로그램을 표방하는 KBS의 심야 라인도, 그와 유사한 SBS 심야 라인도 어디에서도 해내지 못한 '정통 음악 프로그램'의 프라임 타임 안착을 지금 그들이 어떻게든 해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나가수는 여전히 훌륭한 가수가 나와서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훌륭한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그것도 10대부터 50대까지 고른 연령대가 듣고 느끼고 감동하며 즐거워할수 있는 그런 음악 프로그램이 '민방'에서 프라임 타임에 내걸리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본질은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다소 가벼울 수 있을 개그맨들의 애드립을 섞거나 무한도전틱한 편집까지 하면서까지 가능한 시청자들의 요구를 수용해 시청자들이 외면하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노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절절하다.

물론 이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가 트이신 분들이라면 평일 심야 고품격 음악 프로그램에 비해 나가수가 가지는 지금의 모습이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나가수는 수요일 심야에 하던 수요예술무대를 일요일 프라임 타임으로 옮겨오면서 가능한 장수하기 위해 일반적인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게끔 개량하면서도 이미 귀가 트이신 분들의 요구도 가능한 수용하려는 노력을 결코 게을리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일 나가수가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음악적 완성도만을 추구하고 매니아들의 요구와 입맛에 맞추다 보면 결국 이 프로그램은 다시 수요일 심야로 돌아가게된다. 그렇게 되면 일반 시청자들의 '음악을 들을 권리'는 다시 찾아오기 요원해질지도 모른다. 어떻게 얻은 프라임 타임인가, 제작 성향은 다를지언정 김영희 PD와 신정수 PD의 마음은 같다. 나가수는 어떻게든 프라임 타임에 남기고 싶다라는 것, 처음 기획했던 본질은 '일요일 저녁 프라임 타임에 방송되는 수요예술무대'가 아니었던가? 필자는 이 주제 하나만 놓고서라도 정신이 아득해질만큼 앞이 안보이는데 그들은 지금까지의 축적된 경험과 인맥을 총동원해서 여기까지 와 있다.

이제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줘야 한다. 응원의 박수도, 프로그램 잘봤다고 쳐주는 격려의 박수도 아니다. 그들에게는 또 나와달라는 '커튼 콜'의 박수가 필요하다. 하루에도 열번 이상 때려치고 싶은 기분이 들 듯한 그들에게 '다음에 한번 더 해주세요'라는 박수가 필요하다. 그것이 아마도 우리가 할 수있는 그들에 노력에 대한 최대한의 찬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