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4. 1. 3. 10:02

이쯤 되면 거의 왕따 수준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교학사 교과서는 지금으로서는 거의 선택되지 않았고 선택되더라도 사람들이 거부하고 있다는 모양새로 시끄러웠던 논란을 잠재우고 있네요. 그런데 과연 교학사 그리고 역사학자 유영익이 이런 상황을 몰랐을까요? 정녕 국민적 반발이 있을 것을 모르고 우리가 '교과서'만 찍으면 어린 학생들 생각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교과서를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너무 순진합니다. 애석하게도 그들은 정말이지 '소정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죠.


얘들이 그렇게 멍청할리가 없다 진짜 이 교과서가 마구마구 퍼지도록 채택되게 하고 싶었다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으리라 지금처럼 대놓고 사람들에게 공개적인 망신을 당하는 방법까지 필요한 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니라면...


교학사는 '악역'을 자처했습니다. 그리고 논란의 중심에 놓이는 것을 원했죠. 교학사는 사실 '역사교과서'가 아니더라도 다른 걸로 잘 먹고 삽니다. 굳이 역사 교과서 하나 채택 안되더라도 회사가 망해먹지는 않는다는거에요. 게다가 역사교과서는 약간의 블루오션 성격이 남아있어서 채택하던 교과서를 계속 채택해나가는 풍토를 감안해볼 때 기회도 있었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있다고 봐야 하거든요. 많은 투자를 했는데 채택이 되지 않았을 경우의 후폭풍도 분명 감안을 하고 들어갔어야 한다는 거죠.


북한이 요즘 이슈가 거의 없는 가운데 또 다시 지겹게 들려오는 뉴스가 다름아닌 '아베노믹스', '아베정권의 개헌',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같은 뉴스들입니다. 국제뉴스가 마치 그것밖에 없다는 식으로 연일 보도가 되고 있죠. 북한때도 마찬가지지만 주적이라고 부르짖는 대상을 그토록 심도있게 보도하고 나쁘다며 까는 보도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연일 보도가 되는 형태는 마치 '기사 꼭지가 떨어진 보도국의 고민'을 엿보게 합니다. 뭔가 이유가 있지 않는 한 그런 보도가 계속될 리가 없다는 거에요.


징용피해자 명부가 발견된 것이 정말 우연일까? 일본은 왜 그걸 순순히 넘겨준걸까? 그리고 왜 정부는 그걸 조사한다고 들고 들어가서는 여태 무슨 내용인지 소식조차 없는 것인가?


어쨌든 교학사는 '뉴라이트 역사교과서'로서의 목적을 훌륭히 완수한 걸로 보입니다. 사람들은 일본에 대한 적대심이 굉장히 높아졌고 또다시 정신대,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니까요. 아베정권을 비롯해 일본이 우익화가 되면 될수록 지금의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혁혁한 공적의 친일파들이 쫄리는 자료들이 일본 내 극우단체들에 의해 공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이 공개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답은 하나죠. 일본 자체를 적화시켜서 일본이 공개하는 모든 자료를 '거짓'으로 만드는 것이 최선입니다. 교학사는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싣고 또 그것으로 하여금 국민적 거부감을 조성하는 것으로 턴을 마친 것이죠.


많은 학교에서 교학사가 선정되지 않았고 교학사를 거부하고 있는 학생들의 개념있음은 칭찬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이끌어내고 그들의 행동을 칭찬하는 분위기를 누가 왜 조성했는지, 왜 굳이 당연해야 하는 걸로 '칭찬하고 안도해야만 하는' 분위기를 꼭 만들어내야만 하는지, 그 필요성과 그에 따른 혜택은 누가 얻어내는지를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끝에는 일본의 주둥아리 놀림에 제일 후달릴수밖에 없는 정치인생을 살아온 한 군인 출신 정치가와 그 일족이 있다는 것이죠. 


이승만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과연 반일주의로 자기방어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아사다 마오는 또 스포츠 뉴스에 얼마나 많이 등장할까요?



그리고 교학사는 일본의 후소샤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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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뵙겠습니다.

posted by RushAm 2013. 6. 25. 16:55

앞서 인터넷 그리고 인간 마지막 편에서는 젊은 극우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린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원인 분석에 치중하고 사회 베이스에 대한 문제 제기를 중점적으로 이끌어내다보니 독자분들이 요즘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이번 글은 어떤 연재글도 아닌 단편으로 일베로 대표되는 젊은 극우들이 왜 그렇게 종북을 외치고 북한을 적대시하는 극우들과 코드를 나누게 되었는지 그들을 움직이게 만든 힘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는지 짤막하게 짚어보고 넘어가보도록 해보죠.



꿀알바



젊은이들은 시작부터 너무 뒤쳐져있습니다. 이 세상은 스타트지점을 저 먼 뒤로 더 밀어내기만 할 뿐 조금이라도 보편적인 스타트지점 앞당기기 정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TV 광고에서 나오는 알바 정보 사이트 광고 타이틀이 '꿀알바'라는 타이틀이 있을 만큼 아르바이트는 이제 더 이상 젊은 시절에 모으는 배낭여행 자금의 목적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생계 그 자체를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띄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말 재미있고 경험이 될 수 있는 아르바이트보다는 몸이 힘들건 뭐하건 그저 시급이 100원이라도 더 많이 주는 곳만을 찾아 혈안이 되어있는 것이죠. 아르바이트 수요는 한정되어있는데 취업 포기자들을 비롯한 아르바이트로 먹고 사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는 공급 팽창이 멎지 않고 있으니 아르바이트 시급은 오를 리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최악의 악순환에 놓여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들을 고용하는 고용주들의 태도는 꽤나 차갑습니다. 아르바이트 생들에게 '젊을때 힘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주자'는 선배 세대의 자비를 기대하기 어려움은 물론이고 오히려 어떻게하면 자신들도 자영업자로서 힘드니까 아르바이트 비용을 더 깎고 더 오래 더 알찌게 부려먹을 까를 고민합니다. 분명 젊은이들에 비해서는 절대 가난하지 않고 분명 아르바이트 비용을 더 준다고 해도 영향이 거의 없을 대기업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지요. 그들은 최저임금을 준수했다는 미명 하에 어떻게든 젊은이들에게 돈이 가지 않도록 옭아맵니다.



그러다보니 젊은이들은 말라버린 강줄기를 보듯 돈줄이 되는 곳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그렇게 거마대학생과 인터넷 댓글에 무수히 달려있는 재택근무 홍보 알바들이 줄을 잇게 되죠.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사실 지금같은 상황 바로 직전에 있었던 이 두 가지 현상은 지금의 극우들이 어떻게 젊은이들을 이용해먹고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거든요.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거마대학생의 다단계방식과 인터넷 댓글로 퍼뜨리는 허위정보로 인한 재택알바를 합쳐놓은 것이 지금의 극우들이 취하고 있는 젊은 극우 만들기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의 결말은 결국 댓글알바를 고용하고 고용된 사람이 다시 하청고용하는 극악의 갑을관계구조였다는 것이 드러났고요. 그들은 그런 댓글을 달기 위해 극우들의 정치사상을 반드시 숙지해야 합니다. 마치 취업과 인턴쉽에 합격하기 위해 토익을 배우는데 익숙해져있던 그들이 언제나처럼 그래왔듯이 살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그렇게 배우고 댓글을 달고 많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새로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또 돈을 받아왔던 것입니다. 극우는 그렇게 목마른 자들에게 냉수 한잔을 주듯 아무도 열지 않았던 꼰대들의 지갑 중 유일하게 극우만이 젊은이들에게 돈줄을 열어주었고 꿀알바라는 이름 하에 젊은이들을 고용했으며 젊은이들은 목말라 죽어가는 자신에게 얼음물 한 잔을 제공한 극우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탓이 아냐!




극우의 사상은 매우 간단합니다. 변희재가 말하는 것을 잘 들어보면 그 속에 생각보다 쉬운 답이 있거든요. 결국 극우의 생각은 대한민국 헌법이 이북 5도를 우리나라 영토로 규정하고 있고 그 곳에 새로운 정부랍시고 또아리를 틀고 있는 3대 세습중인 김정은 일가는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헌법에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원래 우리 것이여야 했던 것을 빼앗은 그들은 나쁜새끼들이며 당연히 터부시해야 마땅하다는 거죠. 



즉 통일 자체에 대한 열망은 오히려 극우들이 더 많이 갖고 있습니다. 통일의 방식이 원래 우리 땅이었기 때문에라는 명분이 분명히 서 있다는 점이 약간의 차별성을 두고 있는 것이죠.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원래 한반도 전체였는데 3대 세습중인 김정은 일가가 불법 점유하며 대한민국 정부에 반란을 일으켰고 이것에 6.25라는 내전으로 발전했으며 미국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이 반란은 휴전으로 마무리되어 지금까지 대치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한국전쟁 내용에 대한 정리입니다.


이 코드는 단순하게 말하면


'우리 것을 빼앗은 새끼들이 나쁜거다'

'그건 원래 우리 거였다' 

'그것만 있으면 우린 이러고 살지 않는다' 


등의 키워드로 함축됩니다. 물론 이 내용들은 익히 들어보신 대로 매우 파시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농후합니다. 결국 저기에 반드시 '북한'만 대입을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저 본질적 사상에서 북한이 빠진 상태에서 사회에 대한 염세주의를 바탕으로 재구성되게 되면 문제가 복잡해지거든요.





우리 것을 빼앗은 새끼들이 나쁜거다... 결국 일베에서 지금 가장 핫한 이슈가 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베타적 여론 형성도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원래는 남성들이 사회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성들이 사회적 권리를 주장하며 사회의 절반을 치고 나왔다 근데 아무리 객관적으로 봐도 그여자들은 직장에서 일도 안하고 수다만 떨며 남자 등처먹고 칼퇴근만 하는데데 생리휴가는 꼭 월요일 금요일에만 붙어서 생기고... 등등등 뭔가 모르게 원래 우리가 누렸어야 할 것들을 빼앗고 들어오는 모양새거든요. 당연히 그들은 나쁜놈들이고 당연히 우리 것이었기 때문에 되찾는 것이 응당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성들의 모든 행동을 혐오하며 그들이 사회활동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도록 하는 여론을 지속적으로 형성합니다. 빼앗긴 우리 것을 되찾기 위해서요. 



외국인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저들이 들어와서 취업난이 심각해졌고 절대 일자리 갯수가 줄어들었다 그건 원래 우리 민족이 일군 경제 바탕위에 우리 민족만이 자연스럽게 세습받고 누려야 할 가치인데 이 나라를 세우는 데 한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은 외국인 새끼들이 와서 원래 우리 것에 지나지 않았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취직이 되지 못하고 이러고 있는 것이다. 라는 불만대입과 함께 자연스럽게 다문화 정책 반대 여론이 생기게 됩니다. 이 역시 그들이 와서 우리 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한다는 식의 '팩트'를 제시하며 파이를 키워나가게 되죠.



원래 내 것이었는데 ...



종북 문제야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친일파 DNA


일본의 극우와 우리나라의 극우가 많이 비교되는 분석을 가끔 보게 됩니다. 아마 하는 짓이 똑같아서 그렇겠지요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키워드가 일치합니다. 북한에 대한 타도적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탄압도 마찬가지거든요. 여성에 대한 혐오는 약간의 온도차가 있지만 그건 아무래도 사회적인 여성 지위 문제와 민족적 특성에 기인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본 극우들이 주장하는 키워드들은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을까요? 일본 역시 젊은 극우들을 키워내고 있고 이 극우들을 키워내는 밑바탕에는 젊은이들의 스타트지점이 기성세대들과 심각한 격차를 드러낸다는 점에 있습니다. 일본의 꼰대들은 그나마 한국의 꼰대들보다는 조금 낫지만 여전히 젊은이들을 이 나라의 미래로 챙겨주기보다는 그저 캐시카우로밖에 보지 않는 저자세를 취한다는 점도 한국 사회의 현실과 무섭도록 닮아있죠.



일본인들의 주적은 '재일 한국인'입니다. 그리고 혐한류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에 대한 베타적 태도에 기인하죠. 그들은 극우에 한정에서는 우리나라를 북한과 거의 동급으로 혐오합니다. 이런 배경이 어떻게 일본 젊은이들에게 먹혔는지 살펴보면 재미있는데요. 결국 그들 역시 이 나라의 극우들처럼 '원래 우리 것' 이었고 '그것을 빼앗은 놈들은 나쁜 놈들'이며 '그것만 있으면 우린 이러고 살지 않는다'라는 동일한 베이스를 깔고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 사회에서 자이니치는 우리나라에서의 종북 빨갱이나 다를바가 없는 취급을 받는다


그들에게 있어 한반도는 원래 '지들 것'이었습니다. 왜냐 '식민지'였고 100년 전만 해도 일본 영토였다는거죠. 그런데 우리나라가 '반란'을 일으켜서 '불법 점거'를 하고 있는거고 말이죠. 그뿐만 아니라 그 당시 넘어왔던 재일한국인들은 어땠냐 일본 굴지의 광고회사 덴쯔, 일본 제과업계의 슈퍼갑 '롯데'의 신격호, 일본 최고의 돈줄이자 지금은 이동통신업계까지 씹어먹고 있는 손정의까지 일본 산업 핵심 곳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어지간히 잘 한다 싶은 스포스 스타들은 얼마 못가 재일교포라는 커밍아웃으로 일본 국민들의 뒷통수를 후려갈기기 일쑤였던 것입니다. 원래 일본인들이 경영했어야 할 기업이었고 일본인이었어야 할 스포츠 스타 자리를 그들이 빼앗아서 지금 일본의 젊은이들이 패배자로 살 수 밖에 없다라는 것이 일본 극우들의 젊은 층 선동 방식이죠.


일본 관광객들은 우리나라를 예전 일본의 영토였다는 의미에서 방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국내선 항공료보다 더 저렴하게 한일 노선이 펼쳐져 있다. 말 그대로 공기수송에 지나지 않는 아키타 노선같은 곳들도 꾸준히 운항하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원래 '지들 영토'였다는 논리이므로 국내선 운항하듯 의무적으로 운항해야 한다는 논리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원래 지들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게 그들 입장에서는 이상할 게 없을 독도


그냥 닮은 것이 아니라 뼛속까지 닮아있군요. 원래 우리 것이었으니 그곳에 불법으로 정부를 세우고 점거하고 있는 새끼들은 나쁜 새끼들이며 그것만 있으면 우린 이러고 살지 않는다는 논리를 현 사회에 공유하고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에게 이를 이용하여 다른 쪽에 책임을 두고 그들을 공격하라고 시키는 형태까지 모든 것이 닮아있습니다. 이건 마치 극우의 본질적 바탕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들의 논리 그대로라면 일본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지 않으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우린 원래 우리 땅이었던 북한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을 정당화할수 있다면 일본 역시 독도는 고사하고 한반도 전체가 원래 지들 땅이었으니 당연히 지들 거라는 주장을 해도 반박할 거리가 없어지게 되겠죠? 


친일파의 후손들인 지금의 극우들은 자신들이 늙어가며 자신들의 사상을 이어줄 젊은이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이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그들의 사정과 극우 사상의 본질적 키워드를 절묘하게 배합하여 그들에게 먹였고 굶주린 젊은이들은 돈을 주면 뭐든 한다는 자세로 그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현실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이죠.


...





이러다가 나라 팔리겠습니다. 그려...

posted by RushAm 2012. 3. 20. 02:41
얼마전 김태희 반대 시위가 국내 주요 뉴스와 다큐멘터리에 보도되는 등 일본의 젊은 극우들 이른바 ‘넷우익’의 활동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새로 들어온 젊은이들의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신선함 없이 예전에 했던 주장 그대로 ‘독도는 일본 땅’이고 ‘동해는 당연히 일본해’이며 ‘종군위안부는 일본으로 돈벌러 온 매춘부’라는 주장은 무려 40여년이 넘어서까지 그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을 넷우익의 입으로부터 들려오고 있다.


일본 극우들은 어떻게 역사의식이 옅고 과거에 집착하기보다는 세계화에 보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한마디로 극우따위엔 관심도 없을) 일본 젊은이들을 극우화로 구워삶는데 성공했던 것일까? 비결이 있다면 바로 ‘증거’일 것이다. 전 세계에서 일제침략기 당시 관련 서류 등의 증거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쪽은 두말할것도 없이 일본의 극우일 테니까, 그들은 특별히 역사를 왜곡할 필요가 없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거 혹은 유리한 해석이 가능한 증거들만 추려 젊은이들을 간증시키는데 쓰고도 한 트럭은 남을 만큼 증거가 넘쳐난다.

이들은 어떻게 젊은이들을 설득하는 것일까? 어차피 대부분의 역사 기록은 불타 없어지거나 훼손이 심하기 때문에 대략적인 팩트만을 겨우 증명할만한 자료만이 남아있을 뿐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구체적인 정황이 기록된 비디오나 사진 자료가 그렇게 많이 남아있지는 않고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외부로 공개하지 않는다. 다만 이미 알려진 사실과 그에 따른 근거자료에 대해서는 해석하기에 따라 자신들에게 유리한 유권해석이 가능한데,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종군위안부를 모집하는 과정에 일본이 개입하지 않았다’
(일본인은 종군위안부 모집에 있어 관여하지 않았다 = 과정상의 강제에 대한 책임이 없다)

‘종군위안부 모집에 일정 금액 이상의 비용이 해당 위안부쪽으로 지급되었다’
(처음부터 돈을 제시했고 그 뒤에 사람이 왔다 = 돈이라는 조건을 알고 왔다)
(이미 지불된 기록이 있다 =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은 돈을 이미 받았음에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

= 종군위안부는 일본이 직접 모집에 관여하지 않았고, 충분한 대가를 지불했다.
극우쪽 해석 = 종군위안부는 매춘부다.


극우가 늘 그렇듯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단어를 선정해서 외부의 적에 대한 공격과 내부의 결속력을 노리려는 것은 어제오늘일이 아니니 그렇다고 치지만, 일단 극우가 가진 증거들이 모두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면 해석 자체에 대한 논리는 사실상 무결하다. 일본 젊은이들은 이에 빠져든다, 자극적인 단어에 끌려서 들어오면 실제로 그에 연관된 (논리적으로는) 무결한 증거가 나오고 있으니 실제 당시를 살아보지 않은 젊은이들은 마치 오움진리교에 빠지듯 극우의 논리에 매료될수밖에 없는 것이다.

타진요가 생기는 기본적인 매커니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 그렇다면 이들 극우에 맞서는 우리나라의 태도는 과연 어떨까? 유명한 ‘지곤조기’가 사실이든 오해든 관계없이 우리나라는 몇 년 전의 몇 년 정도를 제외하면 단 한번도 일본에게 전범국으로서의 책임을 강하게 요구하는 액션을 취한 적이 별로 없다 국민들에게 언제나 일본을 싫어하게 만들어야 했던 친일파 기득권들이 정작 일본이 어떤 액션을 취하면 그것을 적당히 ‘유감 표명’선에서 봉합하느라 진땀을 빼는 이중적 소극성을 보여 왔다. 어째서일까?

동해

아마도 우리나라 외교쪽이 가장 등한시하고 있고 또 어려워하고 있는 문제라고 한다면 동해와 독도 등 이른바 전 세계 표준 지명 문제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 ‘광고전’의 양상으로 벌어졌던 이 대결구도가 최근에 와서는 역사적 사실관계를 증명하는 고증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오히려 이 ‘증거’대결이 ‘근현대’ 역사쪽의 고증으로 기울어지면서 외교부의 대응이 지나치리만큼 조용한데, 이유는 간단하다. ‘동해’에 대한 증거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일본해에 대한 증거가 없다. 지금 일본이 하는 것은 대대적인 홍보처럼 보이지만 사실 몇십년 뒤를 내다본 일종의 '증거만들기'인 셈이다.


지금의 동해에 과거 명칭에 관련된 자료 중 절반 이상이 조선해로 표기되어있다. 일본은 여기에 조선이 멸망하고 이후 일본의 강점기가 있는 동안 일본해로 정해졌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민국은 왜 조선해 명칭을 주장하며 대응하지 않았던 것일까? 진실은 모른다. 다만 조선해가 되면 조선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나라의 이득이 될 것을 신경쓰는 세계에 둘도 없는 친일파 집단만이 저지를 수 있는 시나리오라는것은 이미 일본 내 재일교포사이에서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이야기다. 사실이라면 덕분에 우리는 분쟁지역이 될 수가 없는 당연한 우리 영해를 일본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며 베타적 경제수역이라는 말도 안되는 조항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등 국민에게 적지 않은 피해와 굴욕감을 맛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들은 일본이 일본해에 대한 발언을 하지 않을까 언제나 노심초사하고 있다. 일본이 만일 일본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순간 그들의 ‘조선해 명칭 포기’ 사건을 증거로 들고 나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정부는 지금까지도 강원도가 아닌 경상북도 행정으로 확실한 남한땅임을 못박을 수 있는 독도 영유권에 대해서는 일본과 줄기차게 이슈화를 만들지만 정작 동해 명칭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말을 아끼고 있다.


종군위안부

친일파들이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관료’였다. 친일파들은 일제 치하에서 자신들이 관직을 얻기를 원했다. 많은 재산을 바치고 관직을 얻은 그들은 일본의 행정 정책을 직접 수행하는 (중앙관료가 아닌 지방자치) 역할을 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일제 치하를 찬양하는 국민적 캠폐인’과 일본의 2차대전 지원을 위한 조선인 병역 차출 등의 인적관리 부분이었다. 지금의 동사무소, 구청 등 마을 단위로 국민을 직접 상대해야만 하는 곳에는 일본인보다 친일을 했던 조선인을 배치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고 실제로도 그랬으니까.

종군위안부가 소집이 된다고 하면 이 모든 사람들이 일본 군사(?)나 일본인들에게 강제로 끌려가는 모양새를 보였을까? 일단 정황을 보면 ‘모든’이라는 전제는 조금 거리가 있는데, 현재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보면 ‘결혼’을 한 여성은 차출되지 않는다 라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제 차출에 ‘결혼 여부 확인’이라는, 조금 모순되는 이 증언은 결국 차출의 주체가 우리가 상상하는 ‘일본군’에게 강제로 질질 끌려가는 위안부의 모습이 아닌 ‘동사무소’에서 도장을 받고 트럭에 태워 출발하는 모습으로 치완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당시 마을 단위 행정을 장악하고 있었던 친일파들의 친일 행각이 혁혁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조용하던 마을에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는 소문이 돈다. 조선인 남자가 마을을 돌며 바람을 잡는다. 아낙들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모집책을 맡은 조선인 남자가 돈을 받고 조선인 여성 모집 인원 할당을 받았다는 소문부터 그 남자에 의해 일본에 건너가면 굶지 않고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까지, 일부는 할당을 채우지 못한 조선인 남자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기도 하고 일부는 감언이설에 넘어가 서류를 작성하기도 했다는 소문들이 떠다닌다. 그리고 그녀들은 너나할것없이 종군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젊음을 희생당하고 말았다. (사진은 목포 친일파 관료들의 청년독립꾼 체포 장면으로 내용과 직접적 관계는 없음)



일본 극우가 주장하는 종군위안부에 대한 표현 ‘매춘부’, 단어 자체에 대한 흥분을 잠시 가라앉히고 살펴보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증거가 가진 파급효과가 어디에 뻗어있는지 알 수 있다. 지금의 친일파들은 당시 각 지역 행정 관료로서 종군위안부를 모집하고, 그녀들을 일본에 넘기는 모든 과정에 개입했으며 기록에 따르면 일본으로부터 그 대가까지 받았음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단지 친일을 했다는 기록 자체를 넘어서 그동안 친일파들이 주장해오며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선택 ‘차악설’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받았던 피해의 원흉을 일본이 아닌 ‘친일파’가 주가 되는 대역전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단순한 인명 사전 편찬이 아닌 일제강점기 피해 자체에 대한 책임을 묻는 타깃이 일본에서 한국의 친일파로 넘어간다는 것은 친일파에게 있어 ‘멸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신대 문제와 종군위안부를 뒤섞어내려는 시도들 역시 이 종군위안부 문제를 전적인 일본의 책임으로 하기 위한 일환이다. 덕분에 우리는 정신대와 종군위안부를 제대로 구분조차 못한 채 뒤섞인 정보로 갑론을박까지 벌여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강점기 당시 마을 단위 행정을 맡았던 친일파들이 일본으로부터 대가를 받았다는 사실과 위안부의 소집과 관리 파병에 이르기까지의 거의 모든 행정 처리에 있어 일본은 스스로의 손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증거는 일본 극우들에게는 ‘자발적으로 온 매춘부’라는 타이틀을 만들어주는 훌륭한 재료로, 친일파들에게는 공개되어서는 절대 안되기에 공론화되는 것을 목숨걸로 막아야 하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일본의 젊은이들은 이 증거를 보고 일방적인 새뇌역사교육에 배신감을 느낀 채 극우가 되어갈 것이다.

처음에 제시한 팩터 항목과 극우쪽의 주장을 이쪽에 대입하여 다시 살펴보자

‘종군위안부를 모집하는 과정에 일본이 개입하지 않았다’
(모집하는 과정에 있어 한국어가 미숙한 일본인보다 조선어에 능한 조선인이 훨씬 나았다. 게다가 일본인은 모집 과정에서 이미 신뢰를 잃어 같은 조선인이라는 믿음을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종군위안부 모집에 일정 금액 이상의 비용이 해당 위안부쪽으로 지급되었다’
(종군위안부 모집 금액의 구체적인 예산 항목이 알려지진 않았다. 적어도 당시 친일파들이 모집하는 데에 있어 ‘자금적 동기’가 없이 했다는건 지금 기준에서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들다. 친일파는 돈과 권력에 환장한 쓰래기들이니까.)

(예산 항목중에 할머니들 몫도 있었을것이다. 그러나 행정에 의해 모집된 그녀들에게 지급될 돈은 당연히 행정기관을 거쳐서 지급되어야만 했기에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그녀들은 지급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촌극은 1970년대 정부에 의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고 국고로 환수하는 사건을 통해 재현되면서 다시금 확인사살을 해준다.)

= 종군위안부는 일본이 직접 모집에 관여하지 않았고, 충분한 대가를 지불했다.
극우쪽 해석 = 종군위안부는 매춘부다.
친일파 해석 = 일제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었다 우리도 피해자며 최악은 일본이다.

이분들은 근로정신대 피해자일까, 위안부 피해자일까?



이런 진실을 알고 있고 그 진실이 증언으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친일파는 지금 어떻게해서는 독립 1세대, 종군위안부 1세대의 사망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리고 가능한 일본 극우와 프랜들리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나가야만 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국민들로 하여금 반일 감정을 부추기면서도 일본과 동반자 형태를 유지해나가며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주장을 전범국 일본이 아닌 친일파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가며 일본을 침소봉대하는 데 주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의 종군위안부 1세대들에게 꾸준한 지원을 해주면서 이 모든 게 일본 탓이라는 개념을 주입하여 공식석상에서 꾸준히 일본을 향한 소송을 거는 액션과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도록 유도해야만 한다. 물론 그러한 액션은 반드시 ‘친일파’에 대해 관심이 쏠렸을때 적절하게 화살을 일본으로 돌리는 데에 활용될 것이다.

왜 뉴라이트들은 손수 일본의 극우를 대표하는 발언이나, 교과서를 편찬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과거를 빨리 ‘정의’해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일본 극우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함으로서 일본 극우와는 긴밀한 친분관계를 통해 ‘증거’를 공개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 한편, 한국에서는 일본에 대한 반발심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친일파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뉴라이트는 그래서 총알받이이며 일본 젊은 극우들의 한국판이다. 그들의 보호 속에 오늘도 진성 친일파, 매국노 새끼(이들에게 후손이란 표현은 사치다) 들은 100년전 그들의 에비어미들처럼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덜 익은 스테이크를 썰며 핏빛 와인을 마시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없다. 우리는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들에 대해 알고 이들을 이 사회에서 어떻게 뿌리뽑아내야할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들에 의해 현재진행형이 되고 있는 국가를 손에 쥐고 벌이는 사리사욕 잔치로 인한 피해를 두고보고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콩 심은데 절대 팥이 나올 리 없다.



친일파 그리고 그들이 했던 갖은 행적과 그 결과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구질구질한 과거를 꺼내는 것도 아니오 미래로 나아가는 데에 발목을 잡는 것도 아니며 정치인들이 대의를 펼치거나 국운이 뻗어나가는 데 방해를 놓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우리 스스로 세계에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도록, 친일파들의 사리사욕에 의해 만들어진 잘못된 역사교육을 바로잡고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당당하게 사과받을 수 있는 것과 요구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할 수 있는 확실한 기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가 세계무대 속 강소국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지진이나 쓰나미 비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뿌리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조금만 더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며 작은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니까…



연속기획 '친일파' - 끝 -


posted by RushAm 2011. 2. 28. 19:37
우리나라는 언제나 해외에서 좀 잘나간다 싶으면 혈통주의를 내세워 우리편으로 만들면서도 그냥 평범한 사람들은 같은 혈통임에도 철저하게 다른 사람 취급을 하는 것이 거의 일상화되어 있는 것 같다. 이충성, 추성훈,하인스워드, 김초롱까지 잘하면 내편 못하면 남의 편이라는 식의 모순된 논리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면 생각보다 매우 단순한데. 결국 이들 교포들은 거의 대부분 '언론'에 의해 띄워졌고 또다시 '언론'에 의해 사그러들었다는 것이다. 왜 이들은 몸소 지면을 할해해가면서까지 이들을 띄웠다가 떨어뜨리고 또 다시 띄울 한국계를 물색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들이 교포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온도차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여기에는 아주 치졸하고 비겁한 이유가 있었다.

재미교포와 재일교포 우린 누구를 더 의식하고 있었는가?
지난 1,2,3부를 통해서 친일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역시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 행적'과 그 행적이 결국 국민들의 흑역사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증거와 증언이라는 것을 여러차례 강조한 바 있다. 이들은 국내 정권을 직, 간접적으로 휘어잡고 친일 언론들의 지원사격을 받아가며 대한민국 여론이 겨누는 화살의 방향을 자신들이 아닌 쪽으로 바꾸는 데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대한민국 땅에서 그들은 언제까지고 무적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정말 오랜 기간 공들여 만들어왔고 그 효과는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아무리 권력이 쎄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국경 밖까지 영향력을 끼치긴 힘들다. 대한민국의 외교통상부 수준은 매년 그 바닥을 뚫고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 후진적인 수준을 보여주고 있고, 이는 다시말해 그들이 아무리 대한민국에서 철권을 휘둘러도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국적, 혹은 한국 국적이었던 사람들에게까지 자신들의 역사적 진실을 은폐할 북풍이나 일풍 같은 수단을 이용해 여론조작을 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백날 북한의 위협이 어쩌고 해도 국내 밖에 있는 사람들이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는 국제 미디어에 견줌을 당하게 되면 신빙성을 잃기 십상이었으니까...

이집트 혁명에 있어 무바라크의 언론통제가 먹히지 않았던 이유도 마찬가지...
그 중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다름아닌 '재일교포'다. 재일교포의 원류는 바로 한국전쟁 이전 일제침략기 당시 '강제이주'를 당하며 일제침략기를 몸소 겪은 세대들 중에서도 가장 고생을 많이 했다고 볼 수 있는 침략기 1세대다. 이들은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의 이주를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유는? 당연하겠지만 정권이 이미 친일파에게 장악된 상황에서, 이들이 한국에 들어올 경우 이미 반민특위를 비롯 독립유공자 입을 꿰매놓은 정국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북한 주민들이 남한에 와서 자신들의 정권이 지금까지 남한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듯이, 재일교포들의 보다 생생한 증언들은 친일파들에게 있어 그야말로 목줄기를 찌르는 칼끝과 다름없었으리라.

재일교포는 이후 이승만정권의 일풍과 더불어 그냥 '일본이 좋아서 한국을 버린 매국노'정도의 이미지로 취급당하며 대한민국 사회 본류에서 철저히 배척당한다. 이런 핍박 속에서도 그들이 한국 국적을 버리지 않았던 이유, 그리고 2세대 3세대까지 이어지면서 그들의 애국심이 이상적으로 높게 형성될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연하겠지만 재일교포 중 대부분은 일제시대 당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거나 혹은 그들을 지원했던 계층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일본에 거주하면서 일본 정부의 이후 행보와 북한의 움직임, 일본이 전쟁 물자를 대면서 이어지는 미국의 의도 등을 제 3자의 눈으로 정확히 꿸 수 있었던 입장에 있었기도 했다. 물론 이승만의 거짓 일풍, 북한의 도발 등의 원인 역시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으로 바라볼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지금도 거의 모든 북한 관련 보도는 일본 언론을 인용한다. 물론 모든 보도를 다 인용하지는 않는다.
일본에 당시 거주하고 있던 재일교포 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기십만명에 이른다. 동시기 대한민국의 인구 분포를 생각해보면 적어도 원내 의석은 확보할 만큼의 세력을 얻을 수 있는 적지 않은 인구다. 그래서 이들이 '일시'에 대한민국으로 귀국하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야만 했다. 진실을 알고 있는 계층이 만 단위가 넘어간다는 것은 정말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으니까, 물론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이들의 개별적인 입국까지 제한할 수는 없었지만, 대부분 입국 자체의 인원수를 고의적으로 제한하거나 이들이 귀국을 하더라도 사회적 활동을 하기 힘들 정도로 도의적인 '차별'이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여 이들이 원내는 물론 사회 전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들게끔 보이지 않는 손을 작동시킨다. 물론 국민적인 캠페인을 통해 이들 재일교포에 대한 '반민족적 감정'을 고취시켜왔을 것이다. 물론 추성훈과 이충성이 당했다고 하는 그 암묵적인 차별 역시 이에 의한 잔재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던 와중 매우 이례적인 사례가 생겨난다. 바로 '롯데그룹 신격호'라는 존재, 사회적 활동이 극도로 제한적이었던 당시 일본에서 벌어들인 자금력이 아무리 세다고 한 들 정부에서 대놓고 막기 시작하면 출자는 고사하고 구멍가게 하나 못내게 만드는 것이 가능했음에도 롯데는 이미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아무 무리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당시 박정희 정권의 이른바 '외회모으기'전략에 편승, 사업자금 명목으로 외화를 합법적으로 유통시킬 수 있는 창구역할을 할 기업이 필요했던 정권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부분도 큰 영향을 끼쳤지만 그가 재일교포 출신으로 한국 롯데를 설립할 수 있었던 데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그가 이미 '일본'국적을 취득한 '일본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재벌을 논할때 언제나 '깜빡'할 만큼 존재감이 미미한 '롯데', 왜 존재감이 미미할수밖에 없었는지, 혹은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정권이 매번 의도적으로 막았는지, 아니면...역시 돈이었는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른바 '재일교포'의 제한적 입국 조건은 다름아닌 '재일한국인'이 아닌 '일본 국적을 취득한 한국계 일본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에도 이어지고 있는데, 최근에는 정권 자체적인 터치가 그다지 없어 입국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손 치더라도 적어도 사회적 본류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한국 국적을 버려야만 한다. 추성훈이 유명해진 건 사실 유도협회의 석연치않은 판정이 있었던 당시가 아니라 이미 국적을 바꿔 부산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딴 직후였고, 이충성이 아직 재일교포였을 당시에 실력을 떠나 그를 주목했던 언론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풍토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게다가 이들이 '재일교포'였을 당시 이루어졌다던 교묘한 '알력'과 '차별'그리고 그러한 차별 사실이 이루어지던 당시가 아닌 그들이 이미 일본 국적으로 귀화한 일본인이 된 이후 밝혀진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일본 국적의 일본인이 아니면 사회 본류에 합류할 수 없는 이 개같은 환경이 만들어질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참정권'과 이승만 정권부터 시작된 친일파들의'일풍공작'과 깊은 연관이 있다. 사실 이들이 재일교포로서 한국에 들어올때와 일본 국적을 취득한 뒤에 한국에 돌아올 때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완전히 엇갈릴수밖에 없는데, 즉 재일교포는 말 그대로 '한핏줄'이 되지만 일본 국적을 취득한 이상 '일본인'이고 남의 나라 남의 시민이라는 여론이 팽배해지게 되며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어도 언제든지 그들에게 등을 돌릴 수 있는 여론적 약점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게 된다. 한마디로 찍소리만 내면 쏴버리겠다는 상황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같은 의미로 한순간에 애국자에서 돈벌러 온 외국인으로 전락한 추성훈
이 정도의 패널티를 감수하고 한국 사회의 본류에 합류한다고 해도 절대 합류할 수 없는 불가침영역이 생긴다. 아직 우리나라는 국내거주 외국인의 참정권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투표나 출마는 고사하고 심지어는 특정 후보에 지지를 표명하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깝다. 만일 이들이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재일교포인 채로 한국에서 활동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다면 어떨까? 당연히 한국 국적을 가진 이들은 얼마든지 투표는 물론 선거운동과 출마까지 가능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친일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가 그것이다. 겨우 백년대계를 거치며 독립운동가1세대들을 싹쓸이하는데 성공했는데 그 명맥을 해외에서 꾸준히 이어온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애국심) 세대들이 정치판에서 새 바람을 일으킬 경우 겉잡을수가 없게 된다. 겨우 잠재워놨던 친일파 색출 여론이 들끓게될것은 물론이고 이들에 의해 그간 벌여왔던 일풍과 북풍이 깡그리 거짓이었다는 것이 까발려지는데다가 이후 그들이 기댈 수 있는 일풍과 북풍을 활용할 어떤 근거도 만들 수 없는, 즉 당장의 패배는 물론이고 이후 재기를 모색할 수 있는 역전의 가능성마저 남김없이 빼앗겨버리는 최악의 사태를 각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친일파 세력은 이같은 '사회 전반적인 참여 제한'과 더불어 재일교포와 국민들과의 교류로 인해 발생되는 새로운 여론이 확산되지 못하게끔 만드는 일종의 보험을 들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그들의 '국적' 이른바 '쪽바리 이미지'다. 이미 일본 국적을 택한 사람은 대한민국 국적을 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한민국을 침략한 역사가 있는 일본 국적을 택해 일본을 위해 산다는 식의 이미지를 심는다. 그런데 이미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일풍이 먹혀들지 않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는 지금에서 쪽바리 드립으로 그들을 쥐어잡기에는 역부족일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은 또 하나의 보험을 들게 되는데...

국민 누구도 북한 출신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만큼은 막고 싶어할 것이라는 걸 친일파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친일파들은 그렇게 자신들을 '차선'이 아닌 '차악'이미지로 집권을 계속해왔으니까...
재일한국인을 포함한 일본 거주 외국인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자이니치'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일본에 살고 있는 모든 외국인을 통칭한다. 일제침략기 당시 일본에 강제이주한 재일교포들은 한반도 전국 각지에 적을 둔 사람들이었는데 바로 이 부분이 친일파가 이들의 돌발행동에 대처할 보험으로 활용될 이른바 '출신 성분'론의 기초가 된다. 다시말해 니가 진짜 남한 출신인지 북한 출신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이는 아주 포괄적인 북풍을 일으킬 재료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재일교포 출신 기업가가 정치에 참여한다고 치자 대중적인 인기도 높고 당선 가능성도 높은데다가 공약으로 '친일파의 완전 청산'을 들고 나와 여론으로 친일파 행적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게 된다면? 이미 일본에 충분히 자리잡을 여건이 되는 그를 친일파가 공격할 건덕지는 별로 없다. 이미 정보력에서 친일파가 한참 뒤지는 데다가 까발리는 쪽이 까발려지는 쪽에 비해 논리적으로 압도적 우위에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를 위한 보험이 바로 '출신 성분', 즉 그런 그를 '북한 출신'으로 몰아붙이거나 심할 경우 '북한과 내통한 조총련계'로 몰아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가 진짜 북한 출신인지 조총련과 관계가 있는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지금의 일본에서 자이니치의 구분법, 즉 남한 북한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일종의 사회적 약점을 역이용하여 공격할 수 있는 건덕지를 만드는 것이다. 성분드립이 시작되면 아무리 그가 친일파 청산을 외친다한들 그의 모든 발언은 신뢰도를 잃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북한의 공작'을 받고 '정권을 무너뜨려 북한의 침략 발판을 마련하는' 공작원의 공작으로밖에 치부되지 않게 된다. 아무리 국민들이 친일파 청산이 급해도 북한과 내통하는 인사를 정치권에 넣어줄리가 없다는 것을 지난 몇십여년간 북풍을 활용해왔던 북풍 종결자 친일파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인 것이다.

모순에는 이유가 있다. 그들이 일본 국적으로 바꾼 뒤에도 여전히 정체성은 한국에 쏠려 있는 이유, 그런 그들을 일본 국적으로 바꾸었다며 매국노라고 욕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는 모순투성이다. 어느 한 쪽이 반드시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는 한 성립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게 확실한데, 그게 과연 누구일까? 확실한 것은 자이니치는 한국에서 매국노라고 불리건 불리지 못하건 별로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지만, 그들을 그렇게 부르도록 만드는 세력은 그들을 매국노로 매도하며 사회의 주류에 합류시키지 않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득을 본다는 것 정도일까?

5부에서 계속....
posted by RushAm 2011. 2. 17. 00:14
1부에서 언급했던 친일파 시조급 인사들의 혁혁한 공로 그리고 그로 인해 일어난 사건들과 피해, 그리고 그 영향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 아니 이어질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누구보다 친일파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가 정말 우울한점이 대한민국 근대사에 대해서 친일파가 아닌 분들보다 친일파 새끼들이 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근대사에 대해서는 예전 박통시절도 아닌 이상 조금만 찾아보면 외국인의 손에 의해 보다 객관적으로 서술된 자료를 정말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친일파는 이에 대한 나름의 동기 부여가 될 만한 이유가 있다. 역사를 충분히 바닥에 붙은 먼지까지 훑을 만큼 충분히 알아야 자신들을 변호할 수 있으니까, 일본이 역사 연구에 천문학적인 돈을 쓰는 이유도, 중국이 동북공정을 위해 역사학자들을 열심히 구워삶는 이유도 다 '뭘 좀 알아야'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역사가 그냥 지나간 이야기일 뿐이라며 역사 교과서를 천대시하는 대한민국 학원계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친일파들은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사실 '일본이 나쁘다'라는 것을 주장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여기에 두 가지의 속임수가 있다는 걸 반드시 인지해야만 한다. 하나는 지난 번 글에서 밝힌 대로 친일파들은 '자신들이 친일파라는 걸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일본을 씹음으로서 '친일'이라는 단어적 의미에 대한 회피와 희석을 노리는 것이 첫번째이며 두 번째는 '역사에 드러나있는 대로 일제의 침략과 그로 인한 전 국민, 국토의 피폐화의 대한 책임이 100% 일본에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이제부터 차차 짚어보도록 하자.

이승만 대통령이 이기봉 부통령과 1954년 월드컵 예선전부터 추진했던 한일전, 그리고 정권 내내 꾸준히 주장해왔던 이른바 '반일 정신'은 그들의 친일 행적에 대해 '개과천선'의 이미지를 가져다주는 데 성공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운동가 경력에 어울리지 않은 광복 이후 친일파와의 정치적 결탁은 누구 하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었지만 (특별히 드러내지 않아도 이미 국민들 대부분이 세대가 같기 때문에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김영삼 대통령의 IMF를 기억하듯이) 의외로 4.19까지 이렇다할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이 정권을 잡은 뒤 열심히 '자신들의 반일 성향'을 어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향은 성골 친일파라고 할 수 있는 박정희 정권 말년까지 이어지는데, 이렇듯 친일파들이 독립운동가 출신 대통령을 지원사격해주면서까지'반일 행동'을 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대표팀 숙소에 삶은 계란 준 에피소드도 있었다. 사실 그렇게 유명해질만한 일화도 아니건만...


우선 앞서 언급한 대로 국민들에게 '친일파'에 대한 이미지를 하루바삐 벗어야 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아쉽게도 정이 넘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러한 거짓 개과천선을 믿어버린 채로 지지를 보내게 되는데 물론 여기에는 그들의 개과천선과 더불어 앞서 언급했던 '북한의 위협'을 언급했던 것이 주효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자신들을 구제해줄 반민특위를 해체하면서 생긴 친일파에 대한 반감을 돌리기 위한 방편, 즉 빨갱이 후보가 당선되면 이북이 다시한번 남한을 공격하게 된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정권을 정당화하며 국민들을 위협하는 양동작전을 펼쳤던 것이다. 그들의 정권이 굳이 투표 조작을 하지 않더라도 지지율이 오를 수밖에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렇듯 계속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한다는 것은 당시 미국 입장에서는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미국은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 재임 시절이었는데 1960년까지 연임하며 한국전쟁으로 벌어들인 각종 국제적인 이득 조항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내수 시장을 팽창시켜나간다. 이른바 미국의 고도성장최전성기라 불리우는 이 시대에 가뜩이나 한국전쟁 휴전협정 성과를 내세워 재선에 성공한 (미국은 어쨌든 임기 내 종전 업적을 남기는게 킹왕짱임) 아이젠하워에게 있어 틈만나면 반동이니 뭐니 북한을 자극하며 자신들의 정권을 지켜나가려는 친일파들이 달가워보일리가 없었을 것이다. 특히나 미국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할 듯한 이 시대 친미파의 교과서 이승만 대통령은 이러한 미국의 헛기침 한방에 바로 쫄아주시는데 공교롭게도 문제의 아이젠하워와 재임 기간을 같이한 이승만은 그 뒤 재임 기간 내내 북풍을 활용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된다.

소련 덕분인지는 몰라도 종전 후에는 나름 ㅎㄷㄷ한 리즈시절도 누렸던 북한..


이승만은 가뜩이나 불안한 내정을 바로잡을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북풍'이 사라지자 정치적 입지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사실 미국의 간섭을 무시하고 멋대로 북풍을 이용할수도 있었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군사력으로는 북한과 단독으로 맞서서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미국이 '나몰라라'하는 상황에서 정말 북한이 재침공이라도 하게되면 정권이고 뭐고 다 끝장나게 생겼는데 어쩌겠는가? 결국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대신할 것을 찾게 되는데 그것이 다름아닌 '일본'이다. 즉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반일 감정이 국민들 사이에서 가장 극도로 심했던 시기는 다름아닌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자신과 반대편에 서 있던 독립운동가 정치세력을 규탄하고 있었던 이승만 정권이었다는 아이러니한 역사적 사실이 존재한다.

일본을 싫어하게 만든다. 우리나라가 일제침략기를 거친 것도, 지금처럼 못살게 된 것도 다 일본 탓이다. 남북전쟁을 부추겨 중간에 무기중간도매로 엄청난 이익을 챙겨 경제부국이 된 야비한 국가다라고 일부 진실을 섞어 일본을 철저하게 호도하기 시작했다. 이는 독립운동가 세력의 '일제침략기에 대한 친일파 책임론'을 회피하고 정면으로 반박하기 위한 포석임에 다르지 않았지만 사실 이승만 정권에는 다른 믿는 구석이 있었다. 군사력으로는 북한이나 일본이나 밀리긴 마찬가지였지만, 좀 건드리면 우리를 바로 작살낼 수 있는 힘을 보유했고 그 힘이 닿는 사정거리에 있던 북한과는 달리 일본은 당시 전범국으로 발이 묶여 아무리 도발해도 우리나라를 공격해오지 않을 거라는 것, 이승만 대통령은 심지어 한국전쟁기간중에도 일본의 침략을 걱정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재임기간 내내 일본의 재침략 가능성을 제시하며 일풍을 아주 적절하게 이용해먹는다.

이승만이 무려 한국전쟁 당시부터 임기말까지 이용해먹었던 일풍의 근거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장면, 내용을 보면 이승만의 일풍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러한 일풍은 윤보선 이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에 의해 다시 '북풍'을 이용하는 쪽으로 변화되며 정말 타이밍 좋게 이승만이 사망한 직후인 1965년부터 미국의 압박에도 거의 진척이 없었던 한일협정이 재개되는 한편 침묵하던 북한이 도발을 즉시 개시하며 박정희의 재임기간 16년간 무려 29건의 진실과 거짓이 섞인 북풍 도발이 기록된다. 정계에 빨갱이 색출 작업이 재개되었음은 물론이다.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북한 도발은 윤보선과 김대중과의 대결이 시작되었던 1967~71년사이에 집중되었다.

이렇듯 거의 1,2,3공화국 대한민국의 경제부흥기 정권의 핵심을 틀어쥐며 대한민국에 뿌리를 박은 친일파와 그의 후손들은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당연하겠지만 이들은 이승만이 그랬던 것처럼 국민들이 가능한 '반일 감정'을 더 많이 가져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들은 잊을 만 하면 일제침략기를 들먹이며 종군위안부 문제를 뉴스에 올린다.(동아일보가 대표적) 그리고 가능하면 일제의 만행이 좀 더 이슈가 되기를 원한다. 물론 그들의 목적은 이승만이 그랬듯, 자신들의 차악과 개과 천선 이미지와 더불어 자신들의 친일 행적이 일제의 만행보다 더 작게 비춰지길 원하며,  그 시기의 모든 국민적 고통에 대한 책임을 일제에 전가시켜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실 부분이 있다. 바로 뉴라이트라는 조직의 존재 의미다.  뉴라이트는 일본의 우익교과서를 지지하며 위안부를 부정하는 등, 그야말로 대놓고 친일임을 과시하는 듯한 행동을 하고 있다. 이들이 친일파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인데, 이들이 지원하는 뉴라이트의 활동을 보면정말 친일파들이 국민들에게 개과천선의 이미지를 심고 있는 것이 맞느냐는 반론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뉴라이트의 주요 먹이 '역사교과서' 문제 그들은 사실 가능하면 일본의 만행에 대한 사실이 적나라하게 적힌 역사교과서가 채택되길 바란다, 사실 역사교과서가 의무교육이 되길 바라는 쪽은 친일파쪽이 더 적극적인데. 단! 가능한 만큼 일제강점기의 만행들은 대부분 일본의 책임이라고 기록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그들은 뉴라이트를 이용해 '일본 강점기를 옹호하고 변론하는' 기자회견을 몇 번이고 갖는 것이다. 이러면 국민들은 발끈해서 국사 교육에 더 신경을 쓰게 되고 가능하면 일제에 대해 더 크게 다룰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들의 친일 행각보다 일제의 악랄함이 더 크게 부각될것임은 두말할필요가 없다.


그런데 사실 뉴라이트는 모로 보나 바로 보나 친일파의 정실(?)이라고 보긴 힘든 구석이 많다 그들의 성분 상 가문 단위의 친일 전력도 별로 없고 일부 맴버를 제외하면 정말 어디에서 뭐하다 나왔는지 모를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그렇다. 의문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들이 대체 지금와서 친일을 해서 대체 무슨 이득을 볼 수 있냐는 것, 아무리 친일파가 빽이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자신들의 이미지가 나빠지면 사회생활하면서 이념이 다른 사람과 섞이기 두고두고 어렵다는 것을 각오한 이들의 무모함은 마치 자살폭탄테러에 뛰어드는 인간폭탄을 연상시키게 만든다.

이 부분에서 답이 이미 나온 셈인데. 그들은 국민들로 하여금 '일본을 싫어하게 만드는' 즉 일본을 주적으로 만들게끔 공작하는 공작원들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이들의 활동 내용, 즉 일본에 대한 생각을 환기시키는 데에 전력을 쏟는다는 것. 바로 이 코드가 일본의 극우랑 맞아떨어져. 일본의 극우들과 연합해 교과서를 만들거나 일본의 극우들의 활약에 동조함으로서 뉴라이트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의 극우 이미지가 되는데, 이로 인해서 뉴라이트가 득을 보는 것은 사실 거의 없다시피한다. 하지만 뉴라이트로 인해 일본을 주적으로 돌려 일제침략기에 대한 책임을 연신 일본으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드는 데에 성공한 댓가로 자신들에게 날아오는 친일파 청산의 화살을 피할 수 있었던 진성 친일파들은 아주 짭짤한 재미를 본다. 이들에게 있어 뉴라이트는 총알받이... 친일파들에게 자금을 받아 알바를 뛰는 소모품일 뿐인 것이다.

친일파는 종군위안부를, 일본 극우는 요코다 메구미를 주기적으로 이용해먹는다.


뉴라이트의 활동은 일본 극우와 맥을 같이한다. 일본 극우 역시 젊고 유능하며 사회적 명망이 있는 인사들을 대거 지원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이어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데, 한국에서는 뉴라이트가 그 젊고 유능하며 친일파들의 스폰서를 받는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세력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역할은 가짜 친일파가 되는 것, 가능하면 과거 친일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지금 와서 당시의 일본을 지지하는 듯한 모양새를 만들어나가는것, 그래서 다시금 일제강점기가 일어나고 당시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등의 저항이 잇따라 실패로 돌아간 원인에 대한 책임을 모두 일제에게 싸잡아 떠넘기는 것, 그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살며 권력을 쥐고 후에 있을 자신들의 후손에게 닥칠 친일파 책임론을 회피하기 위한 친일파들의 중장기 방안인 것이다.


4부에서 계속
posted by RushAm 2011. 2. 11. 16:59
1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승만 대통령부터 시작되는 친일파들로 인한 우리나라 근현대 흑역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굴욕적 일제 전범 보상 판결에서 절정을 이룬다. 중요한 점은 광복 이후의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3년 이상 정권을 잡았던 세력 중 어느 하나 친일파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벌인 행적은 실로 화려하기 그지없어서 무려 친일파로서 '독재'까지 쌍으로 지랄을 해대는 통해 국민들은 둘 중 어느쪽부터 잡아야 할지 감을 못잡았는데, 이에 대해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이른바 '친일파 권력층'은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속삭인다.

(이봐 우리들보다 나쁜 놈들이 훨씬 더 많다구)

그 대상은 다름아닌 공산당이다. 북괴라는 단어보다 공산당이라는 단어가 주적으로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말 한마디 잘못 한 죄로 해괴한 짓을 당했지만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세상에 이름을 남긴 이승복군 덕분이리라, 아무튼 이 공산당의 존재 그리고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라 불리는 한반도 내전, 이 내전 속에서 우리는 북한이라는 주적을 얻었다. 왜 주적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북한의 수장이 저지른 일로 인해 북한 주민 전체를 적시했던 게 불과 20년전 이야기였다. 그만큼 친일파들은 적이 필요했다. 나라가 평화로우면 그동안 평화롭지 않았던 이유에 대한 지도층의 책임을 묻게 되니까... 그들이 정권을 잡고 있을 동안에는 언제나 한국은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여야만 했다. 국민들은 이미 끝난지 한참 지난 전쟁을 아직 종전이 아닌 휴전상태라는 점을 강조하는 국가 지도층 때문에 언제나 북한에 벌벌 떨어야 했다. 친일파 권력층들은 '차악'의 이미지로서 북한을 일단 막고 난 다음에 생각해보자는 식의 정치 키워드를 국민들에게 던졌고 국민들은 그에 철저하게 놀아났다.

군대가 모병제가 되면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건 누구보다 정부 본인들이 제일 잘 안다. 예산 집행을 하는 당사자들이니까, 그런데 왜 안할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공식적으로 줄어든, 혹은 줄어들 것으로 확정 발표한 군 복무 기간은 다 합쳐 10개월이 넘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3년동안 페지안을 포함해 갑자기 늘어난 복무기간이 6개월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전시작전 통제권을 돌려받기로 한 2011년인데 왜 이명박이 미국에게 전작권 받는 것을 4년 연기한걸까? 참여정부 막바지 노무현이 김정일을 만나고 국방부장관들이 활발하게 협의하던 '종전'선언 문제가 왜 갑자기 쏙 들어가고 참여정부 5년동안 아무일 없었던 서해안에 왜 두 번이나 폭격이 있었던걸까?

6.25 당시의 자료사진....이 아닌 2010년 말 연평도


그들은 모병제가 되면 안된다. 군 복무기간도 줄어들어선 곤란하다. 전작권도 미국이 계속 쥐고 있어야 한다. 당연하지만 '종전 선언'이 이루어지면 친일파들은 끝장이다!

군 복무기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국가가 이미 '이 나라는 전쟁의 위험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즉 나라가 평화로우면 내정의 비리, 그리고 과거사 청산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다. 당연히 친일파에게 그 화살이 날아올수밖에 없다. 모병제가 되면 훨씬 위험하다. 지금이야 거의 대부분의 남자, 즉 누군가의 아들이나 오빠 남동생, 가족의 일원이 '군대'라는 것을 감으로서 아직 이 나라가 군대가 필요한 나라라는 점을 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군대라는 키워드는 전국민화되었고, 언제나 시기적절하게 군 관련 가산점같은 팩트에 벗어난 정책을 쥐었다 놨다 하는 식으로 여론을 들끓게 만들어 군대에 대한 관심과 국가 위기 상황을 고취시키는 것이 가능했는데 만일 모병제가 되어 가고 싶은 사람만 가게 되면 전국민적인 키워드 '군대'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하락할 것이고, 그 다음은 뻔하지 않은가? 종전 선언은 아예 '전쟁 끝'이니 친일파들에게는 '인생 끝'이나 다름없다.

전작권 4년 연기는 좀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왜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에게 4년 더 맡아달라고 했을까? 그것도 아주 절묘한 숫자 4년... 이명박의 임기는 2013년 3월에 끝난다 . 그리고 전시작전통제권 종료 시점은 2015년 12월, 원래 환수 예정은 2011년 즉 지금 환수가 되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안된 거다. 참고로 19대 총선은 2012년, 대통령 선거도 2012년, 그리고 다음 지방선거는 2014년에 열린다. 그 다음 총선은 2016년에 열리는데 보통 추세대로라면 4월에서 5월 사이 늦봄에 열린다. 2015년 그것도 12월 끝자락까지 연기한 속사정은 바로 여기에 있다. 2011년에 전작권 환수가 되어버리면 2012년 총선 대선은 당연히 친일파에게 불리할수밖에 없다. 만일 대선에서 지고 총선에서도 패배해서 다시금 친일파들이 정권을 빼앗기게 되면 반격할 만한 근거를 만들어야만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되기까지 채 2년이 안걸렸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떻게든 야당이 껀수를 만들어 대통령을 쳐야만 한다. 전작권은 그에 대한 보험이다. 그리고 그 반격이 성공하는 정점에 2014년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이 있다. 그 뒤로는? 누가 당선되더라도 레임덕 확정적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말년이 어땠는지 생각해보자


전작권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해보자, 북한이 우리나라가 정말 짜증나고 미워서 혹은 심심해서 천안함을 치고 연평도를 포격했다고 하면 크게 오산이다. 그 이후 북한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를 보면 목적이 너무 확연히 보인다. 결국 북한은 '미국'이 목적이었지 한국을 도발해서 전쟁 분위기 고취시키고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더 심하게 말하면 북한 머릿속에 대한민국은 아웃 오브 안중이다. 우리가 북한에 쌀을 몇만톤을 줘도 미국에게 협상 한번 이끌어내는게 북한 입장으로서는 국익이 훨씬 도움이 된다. 북한은 어떻게든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야만 하는데 미국을 자극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보다 별로 없다는 것이 북한으로서는 치명적이다. 미사일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가장 가까운 미국령인 괌까지의 거리 절반에도 못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전시작전통제권, 즉 북한이 우리나라를 공격할 때 군대를 움직일 권한은 '미국'에 있다. 이 전작권덕분에 주한미군의 숫자는 언제나 고정이다. 적어도 작전에 투입될 만한 병력은 주둔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미국 입장에서는 상당히 신경쓰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이 전작권을 쥐고 있는 한 우리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곧 미국을 공격하는 것이 된다. 자국민 군대가 상당수 주둔하고 있으니까 (미군이 가지는 전작권은 60만 육군이 모두 미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북한이 우리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미국을 자극해 미국을 북한이 원하는 협상 테이블로 부를 수 있는 차임벨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친일파는? 전작권을 미국이 계속 갖게 됨으로서 북한이 우리나라를 수시로 필요에 따라 '공격'하게 만들 수 있는 명분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공격당하면? 당연히 그때마다 좀 느슨해질 뻔 한 반공 감정을 일시에 고취시킬 수 있으니까... 전작권은 미국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반대로 북한이 우리나라를 공격할 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해 존재하며 그 효과를 대선과 지방선거, 그리고 총선의 시기에 영향을 끼쳐 향후 정치전략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5년을 연장하기로 합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국 보호는 커녕 오히려 더 위험을 초래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물론 자기 밥줄이 나라의 안녕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가훈을 몇 대째 이어오고 계시는 친일파 입장에서야 그게 아니겠지만 말이다.

지난 6.2선거 직전 조중동 1면보도행태...



이 전작권으로 인해 북한의 공격이 있을까봐 늘상 벌벌떠는 존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이 북한으로부터 공격받을 것을 매우 두려워하는 나라 중 하나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북한의 군사 도발 움직임에 민감하며 일주일이 멀다하고 북한의 별 시덥잖은 동정을 보도한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일단 오키나와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사정거리가 좀 긴 미사일을 개발하면 오키나와를 폭격함으로서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낼 이벤트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첫번째이다. 사실 두 번째가 중요한데, 북한의 이같은 위협, 어찌 보면 단지 전작권이 있다는 핑게로 북한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 '남한이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예로 들어 자국의 자위대 권한을 확대할 명분을 얻는 것이 그것이다. 아직도 일본은 1%의 극우들이 사실상 미디어를 포함한 대부분의 권력을 독식하고 있는 체계가 무너지지 않고 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격상시켜 일본이 예전 다이쇼 시대의 위상을 되찾는 것이다. 그것이 굳이 세계정복 야망의 부활 같은 해석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이들 극우주의자들은 군국주의 부활로 자신들 그리고 자신을 지지하는 지지층과 후손들이 일본 땅에서 더 대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군국주의 부활? 말은 거창하게 해도 사실 밥그릇 싸움일 뿐 얘들도 별거 없다.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는 6.25때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정말 북한이 우리나라를 깡그리 먹고 싶어서 전쟁을 일으켰을까? 정말 북한을 단지 정치적 색깔이 같다는 이유로 소련이 그 많은 대량의 군사물자를 지원해준걸까? UN군중 가장 많은 수가 참전한 미군이 정말 평화유지군의 명목으로 온 걸까?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그는 임시정부에서 그 화려한 사상 덕분에 한번 탄핵당한 경력이 있고 김구 선생 암살 사건으로 민심이 땅에 떨어진데다가 반민특위가 결성되어 친일파들의 색출 작업이 본격화되는 등 자신의 대통령 자리는 물론 정치 생명까지 위협받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6.25 이후 그는 4.19가 있기까지 무려 10년여동안 대통령직을 계속할 수 있었고 그 배경에는 인혁당 사건을 통해 전 국민들에게 종전 대신 전시상태라는 공포감을 심어주어 주적 감정을 북한으로 집중시키는 가운데 반민 특위를 해체함으로서 자신에게 돌아올 칼날을 피할 수 있었다. 최근 무죄 판결을 받은 죽산 조봉암 선생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킨 사건이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죽산 조봉암 선생은 소련의 컨트롤로 북한이 남침을 기획한 것과 이승만을 앞세워 소련과의 대리전을 펼치려 했던 6.25의 진실을 잘 알고 있던 인물로 북한의 위협보다 친일파의 청산을 주장했던 독립운동가 세력의 가장 유력한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겠지만 북한의 남침을 적절히 이용해서 정치생명을 연장하고 친일파 색출을 늦추려는 이승만과 대치할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3부에서 계속...
posted by RushAm 2011. 2. 10. 18:25
지난 기성용의 세레머니로 인해 다시금 화두로 떠오른 '반일 감정'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광복이 된 지 60여년이 지난 지금, 이 반일 감정에 대한 직접적인 증언을 들을 수 있는 분들이 속속 돌아가시고 있는 지금에 와서 새삼 이 반일 감정에 대한 '원천지'에 대해 무척 알아보고 싶어졌다. 정말 이 반일 감정이라는 물건은 일제 강점기 당시 핍박을 받았던 사람들에 의해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일제의 사악함을 잊지 않고 일본을 적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 그러기에는 우리나라의 근대사에 참 석연찮은 구석이 많았다. 그런 반일 감정에 비해 당시 나라를 팔아먹었던 친일파들은 이상하리만큼 청산이 어려웠고 심지어는 친일파 출신 대통령이 10년여간 독재를 지속했으며 일본 이름까지 갖고 있는 사람이 21세기가 한참 지난 지금 대통령을 해먹고 있는 지금 상황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갔다. 그래서 한번 찾아보고 생각해본 것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광복은 '종전'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광복을 '태평양전쟁'의 종전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차세계대전'역사에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일본이 '임진왜란'때처럼 전쟁을 일으켜 우리나라를 침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가 일본에 당한 것 자체는 사실이긴 한데 전쟁에 패해서 식민지가 되었던 2차대전 당시 네덜란드나 폴란드와는 좀 다른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일본은 '조선'을 반드시 칠 필요도 없었고 군사력으로 쳐서도 안됐다. 일본의 목적은 대륙 정벌이었는데, 기본적으로는 당시 조선과 맞짱을 떠서 이길 승산도 없었고 이길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도요토미가 이순신에게 남해안에서 캐작살난 걸 아직 잊고 있지 않고 있었던데다가 그 전에 미국이랑 프랑스가 서해안에서 캐작살나는 걸 똑똑히 봤기때문에 일단 조선이랑 맞짱을 떠서 이길 자신도 없었고 이기더라도 반 이상 작살난 군대로 대륙정벌의 야망을 꿈꾸기엔 찻잔 속의 태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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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전략은 우선 조선을 피 한방울 안흘리고 취하는 것에 모아졌다. 당연히 그러려면 정치 조직을 쥐어잡는 것에 집중할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주목한 쪽이 급작스럽게 10년도 아니고 3대 100년 권력을 갑자기 흥선대원군에게 빼앗긴 안동 김씨 세력이었다. 2인자로 전락한 안동 김씨는 흥선대원군 10년동안 그야말로 좃to the망했는데, 그들이 해왔던 온갖 정권비리 (벼슬을 돈으로 사고 파는) 나 나라에서 하는 고리사채업 (환곡) 제도를 속속 폐지 정비하면서 순조, 현종, 철종까지 이어지며 홍경래의 난, 임술 민란등으로 대표되는 민심 상실을 속속 회복해나가던 중이었기에 민초들의 지지율마저 높았던 흥선대원군 세력을 상대로 그들이 다시 정권의 주도권을 되찾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그들에게 생긴 서포터가 바로 일제였다. 말이 좋아 대연정이지 역사상으로는 정말 대실패에 가까웠던 흥선대원군의 '안동 김씨 며느리 들이기' 는 결국 흥선대원군의 10년 이후 정권을 잡은 명성황후에 의해 개방의 빗장이 풀리며 속속 일제를 비롯한 타국과의 교류 조약이 체결되는 것으로 뒤통수를 맞게 된다.

(사실 명성황후의 개방 정책은 그렇게까지 나쁜 게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 안동 김씨 세력이 정권을 컨트롤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흥선대원군 입장에서는 패착일수밖에 없다. 뭐 원인을 따지자면 흥선대원군 본인의 욕심 탓에 고종 즉위 이후 10년간 실권력을 휘두른 결과 고종의 정치 역량이 제대로 성장할 기회가 없어 결국 흥선대원군 이후 명성황후의 꼭두각시로 될 수밖에 없었던 것 때문이기에 뭐라 하소연할껀덕지가 없긴 하지만)

그 중 일본과의 을사조약은 부당하기 그지없는것으로 유명한데, 뭐 하나 아쉬울 게 없었던 조선에게 왜 이런 조약이 강제될수밖에 없었는지는 두말할필요없이 정권 내 핵심 세력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어놨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다수결은 아니었지만, 신하들이 허위보고를 하더라도 짬이 높고 쪽수만 많으면 대세가 되던 시절이었고, 그걸 누구보다 잘 알았던 일본이 이를 충분히 이용하기 위해 정권 핵심은 놓쳤어도 나름의 세력과 정 2품 정도의 참정권을 유지하고 있었던 안동 김시 세력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 정권을 조금씩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나갔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자신들이 정권을 되찾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 최면술사 일제의 작품이었지만, 그에 놀아나 한치 앞을 못보고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일본이든 뭐든 나라를 팔 작정을 진즉부터 했던 매국노 (당시에는 아직 권력침탈이 완료되지 않았으니 친일파까진 아니었다) 시조 늙은이들의 노망짓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왜 우리나라 첫 개항지가 부산이 아니라 강화도였는지를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지 않은가?
왜 일본이 이렇게 번거로우면서도 장기적인 방법을 택했는지는 당연히 일본이 국제 정서에 더 밝았기 때문이다. 만일 일본이 직접 조선과 전쟁을 선포하면 조선은 당연히 청나라와 연합군을 결성해 필사 저항할것임에 자명했고 청나라가 전쟁에 끼어든다는 것은 당연히 그 청나라와 인접해있는 유럽에도 소식이 전해지는 건 당연했다. 1차 대전으로 전쟁이라면 아주 치를 떨던 유럽에 전범 이미지를 주는 것은 향후 정복계획에 있어 상대국으로 하여금 일본을 필요 이상으로 '경계'하게 만들게 된다. 그리고 이미 한번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은 만국평화의회에서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할수밖에 없을 터, 그래서 그들은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조선 침탈을 어떻게든 '내전'으로 위장할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직접 침탈보다 내분을 유도하는 식의 장기전략을 취했던 것이다.

헤이그 특사의 비극을 모두 잘 배웠을 것이다. 헤이그에 파견된 특사 이상설, 이준, 이위종열사는 본회의에서 유창한 프랑스어로 일제의 부당함을 설파했지만 그에 대한 의회의 반응은 단지 '조선이 불쌍하다' 였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는 헤이그 특사의 실패 원인은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일제가 영국과 짜고 방해공작을 펼쳤다거나 미리 의회를 구워삶았다는 식의 설이 당당히 교과서에 나오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만국평화의회는 조선의 상황, 즉 일본이 연루되어 이는 아주 특수한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없었고 네이티브가 아니었던 이위종 열사가 그걸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다고도 생각하기 힘들다. 결국 이 만국평화의회는 조선의 상황을 단지 '두 가지 정치 세력이 부딪힌 정치 내분 정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었고 이는 일본이 의도했던 바와 맞아떨어진다.(누가 봐도 사실 고종과 안동 김씨의 정치권력다툼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테니, 이는 이후 일제의 비교대상으로 지목되었던 영국과 인도와의 관계가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평가받았는지를 비교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처음부터 이를 계산에 넣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헤이그 특사가 실패하고 일제의 침략을 침략으로 인정받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은 '외세에 국가를 내주면서까지 내 배때기에 기름을 끼게 만들겠다'는 친일파의 시조들이 벌인 초딩짓 때문이었음은 두말할필요가 없다.

(이는 정말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일본이 얼마나 세계정복을 치밀하게 준비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인데, 결국 이 당시 일본 편을 들었던 영국은 일본이 '설마' 4억 인구의 영국을 칠 거라고는 꿈도 못꾼 채 방심했다가 캐발렸다. 만일 일본이 처음부터 조선과의 '전쟁'으로 첫 단추를 끼웠다면 영국은 그렇게 허무하게 당할 만큼 일본을 얕보았을리가 없었을것이다. 만국평화의회에서 발언권이 한층 불리해질것임은 물론이었다.)

이런 이유로 세계사에 대한민국 침략사는 전쟁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8월 15일이 종전이 아닌 해방으로 기록되어 있다, 주권을 빼앗긴 거라고 교과서에도 나와있듯이 말이다. 본격 전쟁은 청일전쟁, 러일전쟁부터 기록되어 있는데, 청나라가 캐발린 이유는 조총 때문도 아니고 청나라가 병신이어서도 아니라 우리나라가 정말 맘먹고 상대국 침략전쟁 일으킨다고 치면 정말 잘나갈수밖는 천혜의 위치이기 때문이다. 옛 고구려의 영토를 보면 알겠지만 수도가 국내성, (즉 지금의 신의주를 기준으로 압록강 상류쪽 꼭지점 부근) 눈앞에는 압록강과 옆에는 백두산을 필두로 한 개마고원이 떡 버티고 있다. 농성에는 이민한 곳이 없다. 이 곳을 베이스로 전쟁을 일으키면 아무리 대군이라도 침략 루트는 제한적일수밖에 없고 상대국은 소모전 빼고는 딱히 답이 없게 된다.(고구려의 후손 발해민족이 옛 고구려의 그 광대한 영토를 되찾는데는 채 100년이 걸리지 않았다 신생국이 불과 1세기도 안되는 기간에 얻은 영토치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러일전쟁은 두만강 끝자락, 청일전쟁은 압록강 끝자락, 바다를 끼고 있으니 옆구리 치기도 안되니까 대군이 아무리 많아도 정체만 될 뿐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천혜의 요지를 일본이 군사로 내리누르려 했다면? 청일전쟁으로 군사력을 전부 압록강 근처까지 대치하던 와중에 가뜩이나 개김성으로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았던 조선 국민들에게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가능한 신중하게 정권을 차츰 침탈해가는 것은 물론 공포 정치를 통해 이렇다할 분란을 일으킬 것을 적절히 차단했어야 했다. 물론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은 친일파의 시조분들의 혁혁한 친일 행적 덕분임은 역사에 너무나도 잘 나와있다.


지금 우리나라가 국제재판소에서 종군위안부를 비롯한 일제의 만행에 대한 보상 판정을 받기가 힘이 든 이유도 이 전쟁의 직접적인 책임에 대한 회피를 충분히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던 각종 증거들을 일본이 속속 심어두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침략전쟁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 첫번째이고 두 번째가 국제법으로 인정될 수 있는 각종 조약 문서 때문이다. 물론 이게 가능할 수 있었던 시발점은 누차 강조하듯 '친일파 시조'분들의 절대적인 공적임에 다르지 않다. 즉 친일파들의 한치 앞을 내다보지 않으신 눈 앞의 권력욕으로 인해 벌써 3대 아니 5대가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이 한 짓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을 못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저 '옛 이야기'일 뿐이라며 애써 후손의 면책을 주장하시는 친일파의 후손분들에게 우린 무슨 말을 해야만 할까?

2부에서 계속...
posted by RushAm 2009. 10. 15. 21:04
얼마 전부터 제법 충격을 받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요. 사람들이 '친일파'에 대한 정확한 단어적 뜻과 그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면서부터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도 이 '친일파'라는 말 자체가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의 흑역사일텐데요. (폴란드에서 나치찬양자를 찾는 게 가능하기나 한지) 그런데 이 말이 남아있고 이 말에 대해 지극히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까지는 좋은데 이 말의 본래의 뜻이 상당 부분 왜곡되어 그냥 '욕의 일부'로 치부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듭니다. 이게 왜 문제냐면 이렇게 친일파라는 단어 자체의 본질이 흐려지는 것이야말로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활개치면서 암적 존재로 남아있는 '친일파'와 그들의 핏줄들이 적극 바라는 바일 테니까요. 우리가 흔히 내뱉는 욕들이 실제는 무시무시한 뜻을 담고 있지만 그 뜻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듯이 친일파가 국민 욕설이 되면 그 단어가 정작 향해야 할 곳으로 제대로 가지 않게 되니까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친일파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일단 인터넷 상의 반응을 보면 몇 가지 패턴을 볼 수 있는데요.

1. 김연아를 응원하지 않고 아사다 마오를 응원하는 사람
2. 일본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일본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
3. 일본에 현재 살고 있으면서 일본 이름으로 바꾼 재일교포
4. 자신의 블로그에 일장기를 달고 한국을 비난하며 식민지 역사를 찬양하는 사람
5. 일본산 제품을 찬양하며 국산제품을 혐오하는 얼리아답터

이 중 누가 친일파일까요? 정답은 '없다'가 맞습니다. 이상하죠? 저들은 모두 뉴스게시판 댓글란이나 그밖에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좀 모여있다는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사람들이고 아주 흔하게 '친일파'로 까이는 존재들인데요.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본질적인 의미의 친일파와는 거리가 멉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친일파의 단어적인 의미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국가라는 개념은 지금에야 유앤이다 평화조약이다 뭐다 해서 전세계게 제법 평화롭게 흐르고 있지만 불과 100년전만 하더라도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가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은 언제나 승자와 패자를 낳게 되고 승자는 침략국, 패자는 식민국이 됩니다. 그런데 대표적인 전쟁식민국 관계로 꼽히는 독일과 폴란드의 경우는 독일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폴란드가 일방적으로 밀린 꼴이었기 때문에 내부적인 문제 없이 발린 셈이지만 19세기말의 후조선과 왜국처럼 만일 두 나라가 호각세에 가까운 군사력을 갖추고 있다면 전쟁이 길어질 우려가 있고 이는 선제공격을 하는 침략국측에는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이른바 내부 문제에 의해 먼저 무너지는 쪽이 지는 '사정관리'가 중요해지는데요. 이미 군국주의의 서막을 알리고 완전하게 하나로 단결되어 있었던 일본과는 달리 후조선은 흥선대원군의 몰락 이후 고종이 이렇다할 조력자를 얻지 못한데다 흥선대원군에게 눌려 기를 펴지 못하던 안동김씨세력들까지 결부되어 사정이 대단히 어지러운 판국이었습니다.

이런 경우 대체로 세력 다툼에서 밀린 쪽이 만회를 하기 위해 기회를 모색하게 되는데 그게 조선의 침략을 위해 정공법보다는 트로이 목마 작전을 택했던 일본의 의도와 맞아떨어지면서 휘말리게 되는 것이죠. 자신들의 권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언제나 어떤 부도덕한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역사의 2인자들은 결국 어처구니없게도 한치앞을 못내다보고 일본의 힘을 빌어 당시 정권에 쿠테타를 일으키게 되는데, 1차가 고종에게 부당한 항복을 강요한 부분이며 2차가 고종의 결정권에 영향을 끼치는 명성황후 암살로 시작되는 것이 이들의 역사입니다. 이후에는 을사조약 등의 굴욕과 고종황제 시해 등이 속속 이루어지는데, 이는 이미 일본이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정권 내부를 속속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기까지에는 후조선의 수많은 실권자들의 친일 행각이 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흔히 우리나라가 전쟁에서 패전해서 일본의 식민지가 된 걸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기 10년 전만 하더라도 프랑스와 미국을 캐박살내던 해군전력을 가지고 있던 조선에게 침략 루트라고는 남해밖에 없던 일본이 승산이 있었을까요? 일본군이 약하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방어 그 자체에만 있어서는 일본이 쉽게 함락시키기는 어려운 조건입니다. 청나라나 러시아처럼 군사력으로 맞짱떠서 이긴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거죠.

엄밀히 말하면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를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내리눌렀던 게 아니라 내부에서 내분을 일으켜 정권 자체를 접수하는 식으로 우리나라를 삼켰다고 볼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가 국가 정치 시스템이 아주 후진적이어서 이들에게 구멍이 많았던 건 분명 아닙니다. 어떤 세력이든 내부 모반자가 있지 않는 한 조직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결국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여 실질적인 속국으로 관리하는 굴욕적인 역사가 있었지만 이를 가능하게 만든 건 일본의 힘이 아니라 내부의 적, 다시말해 자신의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스스로의 나라를 무너뜨리면서까지 자신의 욕심을 챙기려 했던 국가시스템에서 나올 수 있는 최악의 세력들이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일본은 점령군으로서 하지 말았어야 할 위안부 문제 등의 도덕적이지 못한 문제에 대해서는 자유롭지 못합니다만, 적어도 침략 그 자체에 있어서는 오히려 일본보다 내부의 친일파의 역할이 훨씬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이들이 어떤 권력을 누리고 어떤 망언과 망발을 일삼았는지는 잘 알려져 있는 그대로입니다. 정리하자면 '친일파'는 국가 시스템에 대한 결정권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 대표가 다른 구성원들의 동의 없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국가 주권 자체를 다른 국가에게 넘겨주기까지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모든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왜 친일파가 문제이고 지금 친일파의 후손들이 하는 행위들이 문제가 되냐면 이들이 '일본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국가에 소속된 다른 사람들은 아량곳하지 않고 언제든 이 국가에 대한 애정 없이 국가를 팔아서라도 내 배를 불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상이 굳이 일본이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미국이나 그 어떤 다른 국가라도 국가가 가진 그 어떤 권리를 팔아 이득을 챙길 수 있다면 주저없이 그렇게 할 수 있으며 그걸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이 그들에게 이미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위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종전 이후 아직도 당시 친일을 했고 친일에 가담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렇다할 처분이 없습니다. 다른 국가들이 종전 후 침략군에 가담했던 국가배반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멸문을 이루었던 것에 비해서는 형편없을 정도인데요. 시간은 점점 흐르고 있고 당시 3.1운동에 가담했던 1세대들은 차차 세상을 뜨고 있지만 친일세력들은 그 대를 2대 3대 계속 이어가며 여전히 나라의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국가의 이득을 지극히 '자본'적인 관점에서 보는 사상이 지배적인 만큼 반드시 국가 주권적인 코어에 가까운 문제가 아니라도 꾸준하게 국가나 국민을 위하기보다는 다분히 수치적 경제, 자본적 이득에 집착하는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은 자신들 그리고 자신들의 후손들이 '친일'이라는 코드로 인해 지금 가진 권력을 잃을 수도 있음을 우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신들의 친일 역사를 정당화하는 교과서를 속속 만들어내며 미래 자신들에게 힘을 실어줄 세력을 모으는 데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한낱 역사 교과서가 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분들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요. 문제는 이들이 세력을 계속 유지하는 것 이상으로 '국가'가 개인의 이득 아래에 있을 수 있다는 매우 좋지 않은 사상이 그들 이후의 세대들에게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반드시 국가를 팔아먹는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황금만능주의'에 지나치게 물들어 돈 위에 아무것도 없다는 그릇된 사상이 심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데에 있습니다. 돈을 위해 비상식적으로 사람을 착취하고 사람을 죽여서라도 내 배만 부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상식화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국가 주권이 팔리는 것 이상으로 현대사회에 있어서는 공포 그 자체일 것입니다.

우리는 친일파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지금처럼 친일파라는 표현을 남발하지 말고 대체 누가 친일파인지 명확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이 친일파이고 어떤 게 나라를 팔아먹어 죄없는 사람들이 피를 흘리게 만드는 놈들인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기억해야 합니다. 글 서두에 언급한 흔히 친일파로 지칭되는 사람들은 친일파가 아닙니다. 2번과 5번은 국가를 초월하여 '문화'나 '물품'을 소비하는 국제사회의 소비자일 뿐이며 1번처럼 아사다 마오의 플레이나 얼굴이 자신의 취향에 더 맞으면 아사다 마오 응원할 수도 있는 것이 스포츠의 세계입니다. 3번같이 귀화한 재일교포라 할지라도 개인의 이득을 위해 국적을 바꿔도 되는 사회에 살고 있고 그 행동이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지 않으므로 이들은 개인의 이득을 위해 국가를 포기했을 뿐 국가에 해를 끼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요. 4번처럼 블로그에 일장기를 걸고 일본을 찬양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적는 사람은 일면 친일파로 보일 수 있겠지만 세상에 어떤 친일파가 자신이 친일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있는지요? 뉴라이트연합도 온갖 친일행적을 눈에 보이게 노골적으로 일삼고 있지만 늘 그들은 '나라의 미래를 위한'것임을 강조할 뿐 일본이 좋아서 그런다고 입 밖에 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4번은 그저 관심받고 싶은 현대교육의 피해자일 뿐입니다.

친일파라는 표현을 아껴주세요. 그리고 정말 친일파라 불러야 할 사람들에 대해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역사교과서처럼 일본의 만행에 의해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만 서술해서 비난의 화살을 '일본'에만 집중시키지 말고 그런 일이 있기까지 어떤 놈들이 어떤 짓을 벌여서 이렇게 되었는지를 보다 명확히 서술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 어디에 살고 있고 그들이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후손마저 잘못이 있느냐는 논리로 면제부를 주어서는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충분히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관심을 갖고 알아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절대 나하고는 관계가 없는 일이 아닙니다. 친일파의 존재는 일본을 찬양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에전 침략전쟁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들의 것이 아닌 국민 전체의 그 어떤 거라도 그들 개인의 이익을 위해 국민 전체를 아프게 만들어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상을 가진 자들이 지금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에게 두 번 다시 지지를 보내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진정한 친일파일까요?
누가 우리 모두의 대한민국을 개인의 이득을 위해 팔아먹고 있는 걸까요?
어째서 광복으로부터 62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이런 고민을 해야만 하는 건지 씁쓸하기 그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