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0. 2. 28. 00:35
이 글은 국가적인 관점을 접어두고 (검색해보면 김연아가 아사다 마오를 이겨야 하는 이유를 일제침략기와 관련되어 서술하신 분도 계십니다만) 현재 한국 언론들이 쏟아내는 경기력과는 전혀 관계없는 인신공격성 기사에 보충해 많은 분들의 알 권리 차원에서 쓰여지는 글입니다. 전 아사다 마오의 팬도 아니고 김연아 선수를 아주 좋아하지도 않으며 피겨에 대한 조예가 깊지도 않은 비전문가입니다. 참고 자료로서 봐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과잉 보호 및 지나치다싶을만큼 자녀 교육열이 높은 것에 비해 일본은 그 다양성에 있어서는 자식의 미래에 대해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철저하게 자식의 인생은 자식의 인생으로 내버려두는 쪽이 이들의 스타일인데요. 아이의 인생을 먼저 앞서나가 컨트롤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방식이라면 한발짝 물러나 있으면서 쓰러지면 뛰어가서 잠시 일으켜주거나 상담을 들어주는 식이 일본식입니다. 따라서 어릴때부터 신동을 만들어내기 위해 조기교육을 시키거나 하는 풍경은 '진성 일본인'이라면 좀체로 보기가 힘든데요.

아사다 마오는 이 부분에서 조금 달랐습니다. 5살 때부터 자의였든 타의였든 피겨 부츠를 신게 된 그녀는 부모의 지독한 교육열에 의해 다소 혹독한 유년기를 거치는데요. 물론 이런 조기교육시스템은 피겨 자체는 물론 일본 사회 전반에 있어 지극히 보기 드문 시스템입니다. 부모가 직접 나서서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고 컨트롤하는 문화 자체가 생소하기 때문이죠. 아무튼 이러한 부모의 적극적인 관심과 조금은 타고 났다고 볼 수 있을 운동신경으로 아사다 마오는 같은연령대의 실력을 멀찌감치 추월하며 월반행진을 이어나갑니다. 연령별 국내대회 재패는 물론 에초 스타트 지점 자체가 달랐던 마오는 이제 막 진로를 정하기 시작한 초보 티를 못벗은 동연배들이 상대가 될 턱이 없었을테니까요.

이런 쾌속행진에도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던 아사다 마오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점은 역시 세계대회였습니다.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것은 어린 나이에 국내를 재패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니까요. 때마침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피겨 선수들을 육성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던 일본은 마오의 급성장과 그에 따른 눈부신 성과에 반색합니다. 쥬니어 대회의 우승이긴 했지만 피겨 대회의 특성 상 한번 만들어진 세대에서 최강자가 된 이상 그 세대는 고스란히 황금세대가 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미셸 콴처럼 한 사람의 선수가 그 세대 자체를 꾸준히 지배한 사례는 피겨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으며 대부분 같은 세대에 태어났던 2인자들은 그들을 현역 내내 뛰어넘지 못했으니까요.

이제 초등학생 티를 겨우 벗기 시작한 그녀에게 쏟아지는 언론의 관심은 실로 엄청났습니다. 건전한 이미지에 광고 요청이 쇄도했고 그런 와중에서도 성적은 꾸준히 이어졌었죠. 당시 김연아가 등장합니다만 당시 수준으로서는 아직 마오를 넘지 못했었기에 일본이 마오에게 거는 기대는 거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피겨의 신 세대를 만들어낼 뉴에이지 세터가 등장했다고 말이죠.

그런데 이런 승승장구 속에서 김연아라는 존재가 무섭게 성장하며 추격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걸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일본에게 갑자기 얻어맞은 마지막 쥬니어 대회에서의 역전패는 정말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일본이 믿고 있던 시나리오는 향후 10년간 마오의 독무대가 될 절대강자 마오의 모습이었지 도중에 한국에게 그 행보를 발목잡히게 될 것은 계산에 없었던 일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첫 시니어 대회였던 2006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마저 김연아에게 패배하자 일본은 6년여간 마오 전담 코치였던 야마다 마치코를 대신해 미셸 콴의 전담 코치로 이름을 알린 라파엘을 전담 코치로 앉히고 피겨계의 전설로 통하는 타라소바를 음악, 안무 담당에 배정하는 등 이른바 '마오 최강자 개조'프로젝트에 착수합니다. 일본의 안좋은 풍토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겠는데요 자식을 길러낼때에는 철저하게 후견인으로서 일관하더라도 이미 아이가 성장하여 일정 수준 이상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어이의 포텐셜을 단 1포인트라도 잃지 않기 위해 직,간접적인 설레발을 통해 당사자에게 부담감을 가중시키게 되는 것이죠.

다시말해 그 선수의 미래 달성 목표를 그 선수가 정하는 게 아닌 언론과 여론이 이미 정해버리고 그에 맞춰 국가는 그 선수를 억지로라도 그 위치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갖은 지원을 퍼붓는 것입니다. 일본은 책임을 지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는 사회 풍토가 자리잡고 있어 원인이 어떻든 일단 여론이 원하는 정도까지 그 선수가 도달하지 못하면 누구든 그 책임을 져야하며 만일 지지 않기 위해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는 걸 증명해야만 합니다. 마오의 TV CM 출연 등으로 적지 않은 이득을 본 후견인들은 이미 '공공재'가 되어버린 마오가 기대치만큼 성정하지 못할 것에 대한 화살이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을 우려했던 것이죠.

이런 항생제같은 특별 과외는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듯 싶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거의 같은 시기였던 2006년 7월 김연아의 전담 코치로 영입되었던 브라이언 오서에 비해 러시아의 선진 피겨 기술을 주입시킨 마오의 기술은 다시금 시대를 압도하기 시작했으니까요, 트리플 악셀은 빠르고 날카로웠고 고난도 기술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김연아와의 차이를 확고히 합니다. 김연아는 당시 고질적인 부상에다가 새로운 코치의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피겨 방식을 아직 완전히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죠.

그런데 운명이란 참 오묘하게도 김연아의 부상이 회복되고 차츰 오서 코치와의 호흡이 맞아가는 와중 마오의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합니다. 트리플 악셀이 성공한다면 고득점은 확실하지만 성공하지 못할 경우 그냥 안뛰니만 못한 감점을 각오해야 했으니까요. 여기에 오랜 기간 말도 잘 안통하는 외국인 코치들과 거의 개인교습에 가까운 외로운 생활이 계속되자 멘탈리즘에도 서서히 문제를 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트리플 악셀 성공율이 좀체로 높아지지 않고 김연아가 무섭게 뒤를 추격하자 라이벌의 존재보다는 마오의 독주가 필요했던 일본은 라파엘 코치를 대신해 안무, 음악을 담당해 왔던 타라소바를 새로운 코치로 부임시킵니다.

당시 일본은 마오가 선진 피겨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음악과 안무를 담당하는 타라소바가 직접 담당하지 않아서 생기는 라파엘 코치와의 코드 차이에서 오는 갭이 있었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만, 이런 상황에서도 마오의 멘탈 상태를 문제삼거나 우려하는 목소리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코치 타라소바는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인데다가 자신의 경력에 대한 상당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화려한 경력에 대한 자부심과 편견이 매우 심했는데요. 이것이 두고두고 마오의 선수생활을 망가뜨리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타라소바는 코치가 된 이후에도 마오를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모습을 자주 보이지는 않았으며. 대부분의 연습 과정 밎 교육을 부코치에게 위임한 채 자신은 이전과 다름없이 음악과 안무 작성에만 열중합니다.  문제는 이 '코치'라는 직책이 타라소바에게 가져다준 마오 팀 내에서의 입지인데요. 일단 치프 코치이다 보니 다른 부코치들은 이 타라소바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고 여기에 타라소바 특유의 아름답지 못한 성격에 비뚤어진 편견까지 결부되어 자신이 정말 완벽한 곡과 안무를 만들어주었는데 그 아름다운 곡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마오와 코치진을 다그치는 것 이외에 이렇다할 가르침이나 노하우 전수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타라소바가 만드는 안무와 음악은 이전 10점 만점제가 시행되던 기술 피겨의 시대에 걸맞는 어려운 기술을 가능한 많이 구사하고 강력한 카리스마로 관중을 압도하는 무겁고 음울한 분위기의 이른바 '최강자 포스'를 내뿜는 작품들이 많았는데요. 이런 피겨 스타일은 동양인 체형의 자유분방하고 발랄한 이미지와 그에 걸맞는 피겨를 해왔던 마오에게 소화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오의 이러한 어려움은 여론의 기대감에 묻혀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죠. 이미 마오로 인해 많은 돈을 벌었던 후견인들은 이른바 '마오로 인해 얻은 지분' 즉 주가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마오에 대한 안좋은 기사나 소식들은 최대한 밖으로 세어나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은폐 관리했던 것입니다.

코치진은 코치진대로 타라소바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마오를 타라소바가 만든 안무에 맞춰 낼 수 밖에 없었는데요. 트리플 악셀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평소의 회전 속도보다 더 빠르고 점프도 훨씬 높아져야만 하는데다가 뛴 다음에 재대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근지지력, 그리고 그 뒤에 다른 점프를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의 강인한 체력이 필요했습니다. 마오는 이들에 의해 강도높은 체력훈련을 받으며 트리플 악셀의 성공력만을 높이는 데에 전념하게 되죠.

이렇게 정체되는 동안 김연아는 오서 코치가 의도한 만큼의 포텐셜을 서서히 폭발시키며 시대를 지배해나갑니다. 그러나 언제나 결정적인 그랑프리 파이널이나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마오에게 간발에 차로 밀리거나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죠. 이 당시 마오는 적어도 자신에게 걸린 기대감을 무너뜨릴 우려가 있는 큰 대회에서만큼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이 버텨내기 힘들 만큼의 무리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으며 이는 정상적인 플레이로는 도저히 김연아를 이기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마오의 몸이 남아날 리가 없었죠. 결국 부상에 신음하며 올림픽을 목전에 둔 2009 그랑프리에서 마오는 최악의 연기로 김연아에게 완패합니다. 패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경기력 역시 현저히 떨어져 있었죠. 이를 사실상 처음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 일본 국민들은 경악했습니다. 밴쿠버 올림픽을 향한 순항이 계속되고 있다고만 생각했던 일본은 마오의 드러나지 않았던 불안 요소가 일시에 폭발하자 원인조차 제대로 찾지 못한 채 허둥댔으며 언론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죠.

마오가 무너진 데에는 무리한 체력 훈련에 따른 부상이라고 알려져있긴 했습니다만 사실 부상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보다는 마오의 멘탈 문제가 가장 크지 않았나 하는데요. 마오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타라소바의 가르침에 이렇다할 반기를 들지 않은 채로 묵묵히 최선을 다 해 왔습니다. 그녀를 견디게 할 수 있었던 건 다름아닌 '타라소바'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제대로 된 학창시절을 겪었다고 보기 힘든 그녀에게 있어 정신적 성장은 또래들에 비해 지극히 느릴 수밖에 없었고 그녀에게 있어 '코치'의 존재는 절대적이었습니다. 언제나 최고라고 인정받고 칭찬받으며 그것을 위해 피겨를 해 왔던 그녀에게 있어 타라소바에게 인정받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없었을테니까요.

그런데 타라소바가 2009년 무렵부터 당뇨를 이유로 아에 연습장조차 나오지 않게 되는 일이 잦아지자 그녀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던 마오의 멘탈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나마 칭찬은 거의 나올리가 없을 성격의 타라소바였겠습니다만, 아직 심적으로 나약할 수밖에 없었던 마오에게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될 의지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녀가 무너진 시점은 타라소바가 건강을 이유로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시기와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사태가 이쯤 되자 마오를 이용해 돈을 벌었고 앞으로도 많은 돈을 벌어야 할 마오의 후견인들은 이른바 똥줄이 타기 시작하는데요. 투자한 것도 있지만 만일 마오가 이대로 무너진다면 국민적인 책임론 저항에 자신들 역시 크게 휘말릴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여기에 쇄도하던 광고 요청이 뚝 끊기고 동시에 개런티도 급락했으며 언론 역시 마오에게 서서히 등을 돌리는 등 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그야말로 파토 직전까지 몰리는데요. 이들은 정말 최후의 수단으로 이른바 항생제를 주사하듯 마오의 대외 활동을 철저하게 제한한 채 마오의 경기력 향상에 거의 모든 것을 걸게 됩니다. 반년 남은 올림픽에 거의 모든 것을 걸겠다는 심산이었죠. 물론 이 처방도 그리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그냥 계속 이 상태로 대회를 내보내서 멘탈을 망가뜨리기보다는 은둔시켜서 제대로 몸이 만들어질때까지 대회 출전을 시키지 않는 것 뿐이었고 주안점은 여전히 트리플 악셀 등 고난도의 기술을 소화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죠.

그 뒤 약 반년만에 돌아온 마오는 이전의 불안한 모습을 완전히 벗고 트리플 악셀을 실전에서도 완벽하게 소화하는 등 마침내 완성형 '병기'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만, 말 그대로 점프 뛰는 병기가 되었을 뿐 밝고 명랑한 이미지의 마오는 점차 입에서 그 특유의 밝은 미소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체형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으며 경기 스타일 역시 선이 굵은 연기를 스크립트 대로 망설임 없이 소화하는 모습을 보이며 다시금 일본 내 여론을 반전시키는 데에 성공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타라소바의 안무와 음악에는 정말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었습니다만, 그것은 마오의 안무 소화 여부를 떠난 '캐릭터 파악'부터 빗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마오의 얼굴은 턱이 거의 나오지 않고 전체적으로 얼굴선이 가는 아직 소녀 티를 벗지 못한 전형적인 일본식 여성의 캐릭터, 한마디로 '동안'이었습니다만, 그녀의 프로그램은 강인한 여전사를 연상시키는 의상과 이를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안무, 그리고 그에 걸맞는 고난도의 점프가 주를 이루었던 것이죠. 그 결과는 이번에 올림픽에서 여러분들이 지켜보신 그대로입니다.

이른바 숙명의 라이벌이라 불리는 두 명의 천재 피겨스케이터의 운명은 시니어에 데뷰한 2006년부터 2010년 밴쿠버 올림픽까지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걷게 된 것 같습니다. 김연아는 오서라는 그녀에게 더할 나위없는 파트너를 만나 그 꽃을 정말 화려하게 피워낼 수 있었던 반면 마오는 그녀를 위한 그 어떤 것도 운으로서 주어지지 못했던 결정적인 갈림길이 있었던 것이죠. 단지 운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다른 인생을 걷고 있는 그녀들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마오가 걷는 길이 평탄해보이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실력 외적인 부분까지 마녀로 치부되고 있는 아사다 마오입니다만, 그냥 선수로서는 누구보다 피겨에 대한 열정이 강하고 순수한 선수일 뿐이었죠. 너무 순수했기에 일련의 불합리한 조건 속에서도 오히려 그 속에 순응하며 타라소바 코치에게 인정받기 위해 맞지 않은 옷을 입고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내 이번 올림픽에서 폭발시켜낸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피겨의 트랜드는 타라소바의 고지식한 20세기 피겨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현대적인 '예술적 아름다움'과 '물 흐르듯 부드럽게 이어지는 연기의 자연스러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김연아는 이러한 트랜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오서라는 최고의 파트너를 만나 자연스러운 연기와 부드러운 표정으로 장내를 압도한 반면 마오의 연기는 아무런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은 짜여진 대본에 의한 그것이었고 마오 역시 패턴을 소화하는 데에 그쳤을 뿐 자연스럽게 연기에 동화되지 못했죠. 게다가 그녀의 소녀틱한 이미지를 전혀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보여주는 카리스마 연기는 화려한 불협화음을 야기하며 심판진의 마음을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일본에서는 '김연아의 심판 매수설' 이 나오고 있다고 한국에 보도되고 있는 걸로 압니다만, 실제로 신문,TV같은 메스미디어의 반응은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알려진 것과는 반대로 '김연아는 어떤 변수로도 어떻게 하지 못할 절대 범접할 수 없는 최강포스'라는 걸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죠. 이는 김연아를 재빨리 새로운 피겨계의 상품으로 만들려는 것과 동시에 아사다 마오의 패배를 정당화하려는 포석이 깔려 있습니다. 즉 마오가 못해서 진 게 아니라 김연아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졌다고 말이죠. 우리가 축구에서 브라질에 3:2로 패배했다고 한다면 아무도 선수들을 질책하지 않듯이 일본은 김연아를 지나칠 정도로 띄움으로서 마오에게 가는 타격을 줄이는 데에 열심히입니다.


마오 인터뷰를 자세히 들어보면 주목할만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제 연기는 트리플 악셀 두 번....그것뿐이었습니다' 와 '2014년 소치 올림픽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인데요. 마오 역시 올림픽이 끝난 시점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피겨가 자신에게 맞지 않았음에 대한 의사를 처음으로 표현하는 한편, 2014년부터는 자신만의 피겨를 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마오의 이번 올림픽 은메달 이상의 성적이 소치에서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급격한 성장을 보여준 한국의 곽민정과 미국의 나카스 미라이 등 유망주들이 즐비한데다가 다시 스타트 지점부터 재시작하다시피해야하는 마오에 비해 너무 멀찌감치 앞서가 있는 연아를 따라잡기에는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죠.

마오가 결코 나쁜 성적을 거둔 건 아닙니다만 일본 여론의 기대치, 즉 '목표가'에 못미친 주식이 되어버린 마오는 정말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점차 주류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의 신성들은 지금도 쑥쑥 크고 있고 어디에선가 불쑥 제 2의 마오라도 등장한다면 캐릭터가 겹치는 마오는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리게 될 것이 분명해보이니까요. 하지만 이후 어떤 성적으로 어떤 선수 인생이 되더라도 자신에게 있어 후회가 없는 선수 인생을 남길 수 있는 길을 가기를 바래봅니다. 적지 않은 재능과 피겨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충만한 선수 아사다 마오, 그녀만의 피겨 연기를 다시금 은반 위에서 볼 수 있기를 기다려봅니다.



posted by RushAm 2009. 11. 28. 05:54
으악 이게 뭐야! 라는 말이 정말 오랫만에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지금까지의 일본이라면 전혀 이상하게 생각할 게 없지만 역시 지금으로서는 한국이 짱먹고있는지라 이들도 어디까지 세상을 속일 수는 없었던 것이겠지요 (94년도에 나왔던 축구 게임을 생각해보면 참...) 아무튼 이쪽 세계에서는 정말 저어어어엉말! 좀처럼 보기 드물게 모에 계열 게임에서 한국인이 등장하는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2009년 12월 10일 발매를 예정하고 있는 닌텐도 DS 대응 게임 소프트웨어 'くるくるプリンセス’(굳이 번역하면 빙글빙글 프린세스) 시리즈의 최신작 ~ ときめきフィギュア☆めざせバンクーバー~(두근두근 피겨 노려라 밴쿠버!)가 그 주인공입니다. 피겨 스케이팅을 주제로 한 게임으로 직접 피겨 스케이트 선수를 조작해 프로그램별로 기술을 구사해 점수를 얻는 형태인데요. 한국에는 김연아 외에는 아직 국제 무대에서 알려진 선수가 많지 않은데에 반에 일본은 오래 전부터 국제 무대에 도전하기 위해 유소년들을 대거 육성해왔고 지금은 남,녀를 막론하고 국제 무대에서 일본 선수들의 성적이 괜찮은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피겨의 인기도 '선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스포츠 자체로서 즐기는 팬층이 이미 다수 형성되어 있을 만큼 일반화된 인기스포츠로 자리잡고 있기에 이런 게임이 나오는 것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만!


그런데 이 게임에 김연아를 모델로 하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이름은 '김 소연' 초상권 문제도 있으니 가명을 쓰고 실물을 완벽하게 재현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캐릭터를 딱 봐도 누굴 모델로 했는지 바로 알아차릴만큼 아주 노골적으로 그려놓고 있습니다. (다른 3명의 캐릭터들이 특별한 모델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게다가 캐릭터 설명을 보면 '올림픽에서 금매달이 가장 유력시되고 있으며...' 라든지 '한국의 절대강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는데요. 타이틀 화면도 그렇지만 이건 누가 봐도 최종보스급이네요 ^^; (사실 보스 캐릭터는 아닙니다, 직접 골라서 조작이 가능하지요, 먼치킨 캐릭터쯤 되는 것 같습니다)

시리즈 최신작이라는 소개문구에서 눈치를 채셨겠지만 이 게임은 전작이 두 편 존재합니다. 2007년 3월 15일에 발매된 くるくるプリンセス ~フィギュアできらきら☆氷のエンジェル~(빙글빙글 프린세스 ~ 피겨로 반짝반짝 은반 위의 천사 ~) 와 2007년 12월 13일에 발매된 くるくるプリンセス 〜夢のホワイト・カルテット〜 (빙글빙글 프린세스 ~ 꿈의 화이트 콰르텟)이 있는데요. 이 두 게임에서는 김연아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때는 아직 아사다 마오가 라이벌로서 건재했을 시절이었고 둘 중 누가 위에 있는지 확실하게 말하기 힘들었을 시기였기에 굳이 김연아를 등장시킬 필요가 없었던것이죠. 사실 전작 어디에도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했다는 느낌을 주는 캐릭터 자체가 없었으니 처음으로 실존 모델을 연상시키는 캐릭터가 등장했다는 점에서도 한층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게임 자체만으로는 그냥 평범합니다만...(중간에 나오는 김소연 연습 복장에 주목)>

이 부분은 보기보다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큽니다. 사실 캡콤이나 코나미에서 발매되는 게임에서 김연아가 나온다면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아무리 그들이 극우적 성향을 가지고 있더라도 지금 짱먹는 선수를 빼먹을리가...) 에초 메이저 제작사는 '리얼리티'를 강조하기 때문에 실존 선수의 라이센싱과 현 세계 랭킹을 대거 반영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일본 내에서만 팔 생각이 에초 없을테니 한국에서도 팔리게끔 김연아를 넣는 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위닝이나 피파에서 이제 듣보잡 선수가 나오던 시절은 머나먼 추억이 된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이 게임을 제작한 스파이크라는 제작사는 꽤 많은 작품을 만들어온 중견 제작사임에는 분명합니다만 그 작품들을 살펴보면 국내에 거의 소개된 작품이 없습니다. 대부분 일본 내에서 소화가 가능한 '일본 로컬'제작사라는 것이죠. 더구나 이런 마이너한 작품이라면 더더욱 구매층은 제한적일수밖에 없고요. 그런 제작사를 통해 김연아를 모델로 한 게임이 등장했다는 것은 피겨 분야에서 일본 역시 김연아를 '지존'으로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가 이미 굳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상식화되는 것이죠. 예전에는 아사다 마오의 라이벌로 몇몇 피겨 팬들에게만 기억되던 김연아가 이제는 일본에서도 여자 피겨의 '고유명사'로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그것도 최강자로서, 오랜 기간 세계 최강을 목표로 절치부심하며 피겨 선수를 키워왔던 일본에서 자국 선수가 아닌 대한민국 선수가 말입니다.

마오의 부진과 더불어 그 뒤를 이을 이렇다할 수준급 강자가 당장은 등장하기 힘든 상황에서 (일본은 아라카와 시즈카의 금매달 이후 아사다 마오, 안도 미키, 나카노 유카리가 황금세대를 만들어줄 것으로 잔뜩 기대했었죠) 김연아의 독주가 일본으로서는 반갑지만은 않겠습니다만 이미 일본의 피겨팬들은 국적을 떠나 피겨를 즐기고 있는 마당에 그 팬들에게 언제까지고 애국심에 호소할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어쩔 수 없이 김연아를 인정하고 상품화 시키는 움직임을 속속 보이고 있습니다. 피규어 뉴스는 김연아에 집중되어 있고 중계진 역시 마치 육상의 우사인 볼트를 보듯 김연아가 얼마나 더 대단한 연기를 보이는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월드컵, 축구 야구, 이번엔 피겨까지 ...정말이지 일본으로서는 돈은 돈대로 들여서 열심히 만들어놓으면 어느새인가 거저먹듯 (일본입장에서는 분명 그렇게 보일) 자신들이 일궈놓은 걸 가로채가버리는 한국이 얄미울 법도 하겠네요.

끝으로 당구장에 걸려 있는 문구 하나를 인용해볼까 합니다.
'억울하면 승리하라'
posted by RushAm 2009. 11. 16. 18:50
2006년 무렵 방영된 포키 CM이 대박을 치며 일약 국민여동생의 반열에 이름을 올린 '아라가키 유이'(애칭 각키)가 최근 본인은 물론 소속사, 방송 제작진들까지 고민에 빠뜨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유는 다름아닌 멈출줄 모르고 자라는 '키'때문인데요. 대체 얼마나 크고 있길래 싶기도 하고 '아니 키가 크면 늘씬하고 좋지 않나?' 싶지만 그렇지만도 않나봅니다.


현재 그녀의 키는 정확한 프로파일로 발표되지는 않고 있습니다만 같이 출연한 사람들의 신장을 고려해볼때 최소 175cm는 되지 않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인데요. 때문에 최근 방영된 드라마 '스마일'이나 영화 '발라드'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 있는 씬이 거의 없고 최근 나오는 CM들도 대부분 단독 출연입니다. 가장 최근에 모습을 드러낸 소니의 워크맨 브랜드 CM에서의 모습을 보면 더욱 명확해지는데요 아래의 동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전 포키 CM에 비해 풀샷이 단 한컷도 없다는 점, 지속적으로 사이드 뷰 방식만을 고집스럽게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유난히 눈에 띕니다. 감독의 연출 성향이 유별날수도 있겠습니다만, 조금 의도적인 부분이 있다는 생각은 지우기 힘드네요.


이미 일본 내에서 영향력이 커질 만큼 커져있는데다가 어느 정도 연기력을 갖춘 이렇다할 전문 여자 연기자가 태부족한 일본 연예계에서 각키의 이런 예상치 못한 리스크에 업계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앳되고 청순한 이미지로 정상급 연기자의 입지를 구축한 그녀를 쓰지 않을수도 대체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그래서인지 '발라드'의 다소 시원찮은 흥행 성적 이후 각키에 비해 다소 쳐지는 감이 없지 않은 '아야세 하루카'가 이곳 저곳 맹활약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띕니다. 각키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중 적어도 '청순함'만큼은 커버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죠. 최근 TBS의 간판 드라마 'JIN'을 비롯하여 각종 CM이나 영화 작품, 성우에 이르기까지 각키의 원치 않은 공백으로 인한 혜택을 충실히 보고 있습니다. 그녀 역시 열심히 노력하는 배우고 나름 괜찮은 이미지를 구축해나가고 있었기는 했지만 최근의 곳곳에서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그녀의 캐스팅은 그녀 혼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해보이네요. 각키의 누구도 원치 않는 급성장(?)은 이처럼 연예계 전반에 크고 작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키가 커서 슬픈 짐...아니 국민여동생의 이후 행보를 우려 반 흥미 반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만 본인도 그렇고 의도하지 않은 현실도 그렇고 이래저래 '여동생'이미지에서 탈피하려는 의지를 꾸준히 피력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여동생은 고사하고 '배우'로서의 활동 영역까지 위축될지도 모를만큼 문제가 심각해보이는데요. 키 크고 늘씬하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가늘고 길다는 것을 유난히 강조하는 카피의 포키 CM은 함부로 찍으면 안되는 것이었을까요? ^^
posted by RushAm 2009. 10. 14. 23:01
하토야마 정권이 출범한 이후 이런 저런 굵직굵직한 마스터플랜들이 공개되고 있는데 그 중 최근 주목받고 있는 안건이 '허브공항'에 대한 필요성 안건입니다. 마에하라 국토교통상 (건설교통부 격) 이 제안한 이 안건은 나리타 공항이 건설된 지 벌써 30여년이 지난 지금 포화상태에 이른 수요 문제를 떠나 24시간 운영 불가 조항 탓에 생기고 있는 환승 문제 등 갖가지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데에 대한 불만이 산적하고 있는데다가 무엇보다 인천이나 상하이도 가지고 있는 허브공항이 일본 도쿄에만 없다는 사실이 다소 억울하게 느끼고 있는 듯한 분위기인데요.

여기에 모리타 치바현 지사측이 펄쩍 뛰며 '지방자치를 죽일 셈이냐!'며 마에하라 국토교통상을 맹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반대를 무릅쓰고 나리타 공항을 유치해서 겨우 치바 현 경제가 그럭저럭 유지되고 있는데 다시 모든 권력을 수도집중형으로 바꿔 지방경제를 말살시키려하냐는 것이죠. 그런데 나리타 공항은 허브공항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아주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다름아닌 건설 당시 주민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약속했던 '야간 이착륙 금지'조항 때문인데요. 그래서 나리타 공항은 심야 12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는 운영을 중지하고 모든 비행기 이착륙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리타를 경유하고 싶어도 가까운 인천을 중간 경유지로 택할 수 밖에 없는 항공편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아시겠지만 국제선 항공편은 시차 문제로 인해 반드시 낮 시간대에 착륙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공항 운영이 재개될때까지 공항 주변을 빙빙 돌며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최근 노후화가 심해진 하네다 공항 국제선 청사를 새로 짓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2010년 완공을 목표로 허브공항 규격에 걸맞는 3500미터 이상의 활주로 2면을 새롭게 건설하는 등 하네다 공항이 향후 참의원 회의에서 허브 공항으로 추진될 가능성에 대비한 포석으로 보이는데요. 물론 동북아시아를 하나로 잇는 홍차우, 김포, 하네다 라인의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에 향후 노선이 변경되더라도 손해볼 게 없는 입장입니다.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하네다 공항 국제선 청사는 무슨 미주지역 사막 한복판에 있는 공항 수준의 규모입니다)

당연하겠지만 이시하라 신타로 영감님께서는 말로는 그냥 두고 본다고는 하지만 입가에 미소를 못 감추는 모습인데요. 도쿄와 하네다 인근 도카이도쪽 연고를 가지고 있는 참의원들은 대체로 하네다의 허브화에 찬성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하네다는 건설 당시부터 지금까지 인근 주민들과 맺은 시간대 관련 조항이 없기 때문에 허브공항이 될 수 있는 제 1의 조건 '24시간 운영'이 가능하다는 가장 큰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치바 현측은 억울하지만 나리타를 허브로 만들 방법이 없으니 할 수 있는 거라곤 '허브공항 무용론'을 주장할 수 밖에 없는 형국이어서 상당히 모양새가 안좋게 되고 있습니다.

모리타 지사는 오늘 오후 마에하라 국토교통상을 만난 자리에서 '나리타가 지난 30여년간 도쿄의 관문으로 전 세계에 인식되고 있는 상징성'을 높게 평가해달라며 안건 추진에 있어 유연함을 발휘해줄 것을 호소했고 비공개 회담 이후 모리타 지사는 '마에하라 국토교통상의 안건의 내용에 오해가 있었다'고 밝힌 뒤 '현행 나리타 공항의 편성을 빼앗지 않고 동북아 네트워크 노선을 비롯한 단거리 노선만을 하네다에 집중시킬 계획에 있음을 확인했다'며 나리타 공항의 현 위상이 크게 훼손되지 않는다고 발표,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일본이 이처럼 뒤늦게 허브공항의 필요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본 스스로도 예측하기 힘들었던 허브공항 수요의 폭발적 증가에 기인합니다. 여객 수요만을 토대로 계산했던 예측이 중국 경제의 한발 빠른 성장과 더불어 크게 상회했고 여기에 인천공항이 운영을 개시하면서 동북아 물류기지의 종점이 나리타에서 인천공항으로 대거 옮겨가게 되는데요. 이전에는 동부 유럽과 중국, 러시아와 북미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던 나리타 공항의 역할이 인천공항으로 인해 크게 축소되면서 허브공항에 대해 콧방귀만 뀔 수 없게 된 것이죠. 그래서인지 일본 정부 각료들은 이번 허브공항 안건에 인천공항의 성공 사례를 적극적으로 곁들이는 모습입니다. 방송에서도 중국 상하이 공항과 함께 인천공항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보도하며 일본의 허브 공항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죠.

이런 한국의 인천공항은 사실 완공되었던 김대중 정부 당시만 하더라도 언론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었습니다. 주로 홍콩의 책랍콕 공항과 비교를 당하며 뭐가 불리하네, 실제로 수요 예측이 잘못되었네, 애물단지가 될거네 말이 많았죠. 일부 사실입니다. KTX, 새만금과 더불어 노태우 정권의 정책공약으로 추진된 인천공항은 초기 기획된 예산의 약 4배가 추가 투입되고 공기기간 역시 잦은 설계 변경으로 인해 (여기에는 도중에 터진 IMF와 정권교체의 영향도 있습니다) 공기 역시 당초 예측된 1997년보다 4년이나 늦은 2001년에 1단계 개항이 이루어지는 등 병폐가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실 주민들과의 환경영향평가 등의 마찰을 일으킨 새만금이나, 프랑스와의 협정 위반을 당한 KTX의 굴욕외교에 비하면 노태우 정권 공약 중에서는 가장 준수하게 이루어진 편에 속했으며 세 가지 공약 중 가장 바람직한 흑자 노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허브공항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이미 레드오션이라 폄하하며 나리타 공항의 효율성을 찬양했던 일본의 극우언론들조차도 고개를 끄떡이게 만든 게 다름아닌 인천공항이라는 게 재미있지 않나요? 언제나 일본의 발전 발자취를 뒤따르기 바빴던 우리가 비록 내부적 마찰을 겪었지만 한발 앞서 성공사를 쓰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일본조차 부러워하는 인천공항, 앞으로 가능성이 더 남아있고 수요는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허브공항을 현정부는 왜 민영화하지 못해 안달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일본은 뒤늦은 판단 착오를 만회하고자 맹추격중인데 어째서 우리는 겨우 하나 이길 만 하면 아래에서 잡아끌어내려 패배를 기어코 만들어내려 하는 걸가요? 그분이 일본 출신이어서 그런걸까요? 일본이 뒤늦게 인천공항 좀 능가해보겠다고 허브공항 짓는다고 하니 그분은 차마 대한민국이 그분의 조국을 앞서가는 걸 보기가 힘드신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만일 일본이 지금의 인천공항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나라가 나리타를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어떨까요? 과연 공항이 건설될 당시 주민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리타의 24시간화를 포기하고 다른 공항의 허브화를 추진했을까요? (참고로 나리타 공항 주변지는 항공사 관련 시설 이외에는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인구가 채 1만명을 넘지 못합니다.) 아니면 국가발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며 약속을 깨고 나리타 주민들의 강제 이주 정책을 꾀했을까요?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당연히 국가와 주민간의 약속은 몇십년이 아니라 몇세기가 지나도 깨지지 말아야 하는게 기본 상식이거늘 이런 당연한 상식조차 당연하게 어겨지지 않고 '우리나라라면?'이라는 꼬리표를 달아볼 수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이 참 개탄스럽기만 합니다.

다음 대선에서는 미국에 가서 원정출산하는 사람이나 일본 출신이 아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대한민국인이 뽑히길 바래봅니다.
한국인이 아닌 사람이 대한민국 국민을 감싸주길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이겠죠?
posted by RushAm 2009. 9. 13. 01:45



해체설과 갖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는 동방신기가 다시 한번 그들의 일본 내 인기를 증명하는 결과가 일본의 TV 방송을 통해 발표되어 화제를 낳고 있다.

일본 TBS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음악 앙케이트 프로그램 '카운트다운 TV' (CDTV)에서 800회를 맞이에 실시한 특별 앙케이트 '라이브를 보고 싶은 가수'에서 동방신기가 'EXILE' 'KAT-TUN'등 일본의 인기 절정의 그룹들을 제치고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같은 결과는 동방신기의 그간 '음반 판매량'등으로 가늠되던 일본 내 인기 척도를 새롭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나 동방신기의 최근 해체설이 일본 내에서도 크게 화제가 되었다는 점을 감안해볼 때 일본의 인기가 흔들리지 않고 유지될 만큼 고정 지지층이 이미 단단해졌음을 시사하고 있어 주목할만하다.

특히 이번 앙케이트는 가수의 직접적인 상품 가치를 가늠하는 '라이브'라는 주제로 조사한 것이어서 음반 판매량과는 다른 시점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음악 자체적인 가치는 물론 맴버 각자 따로 또는 같이 활동이 가능할 만큼의 인지도를 확보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향후 있을 '해체'나 맴버들의 각 분야별 활동의 충분한 가능성을 증명한 셈이어서 해체설 이후 행보에 한층 부담을 덜게 됐다. 일본에서는 이미 믹키유천과 영웅재중이 새로운 유닛을 결성하여 착신음악 디지털 싱글을 내놓는 등 해체 이후의 활동에도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라이브를 보고 싶은 가수 1위에는 '아라시'가 선정되었다.

[카운트다운 TV : TBS에서 매주 토요일 심야 1시에 방영되는 오리콘 챠트 베이스의 음반 판매량 앙케이트 발표 프로그램으로 16년여간 꾸준한 시청율과 오리콘을 베이스로 한 신뢰도가 특징이다.]
posted by RushAm 2009. 9. 4. 11:35


우선 이 방송에 대해 소개해드리자면 후지 TV에서 프리미엄 뉴스 컨셉으로 만든 TV형 사설 프로그램 포맷의 '신보도 프리미어 A'라는 프로그램입니다. 2008년 6월 22일부로 방송 종영했고, 현재 돌고 있는 해당 동영상은 2007년 7월 1일 방송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단 이 동영상이 돌게 된 경위 자체가 궁금합니다. 저는 이 동영상을 한겨레신문사에서 보았는데요 (정식 기사는 아니지만 한겨례는 독투란도 기사처럼 링크 접근이 쉽게 되어있다보니) 아직 많이 유포가 되지 않았지만, 일단 돌고는 있고 반응도 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은 왜 2007년 7월 1일 방영분 그것도 해당 프로그램은 이미 1년여 이전에 종영했는데 그 동영상이 이제야 돌고 있느냐는 겁니다. 아무리 물 건너 국가라곤 하지만 길어도 이틀 후면 드라마 립버전이 뜨게 된지가 결코 최근일이 아닌데, 이게 이슈화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이슈화가 되었겠죠.

그런데 지금 이슈화가 되고 있고 그걸 시도하려는 모습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언론들의 행보도 조금 미묘하고요. 너무 과장되게 해석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최근 '일본정권교체'와 맞물려 몇 가지 현안들이 각 언론사들에 의해 보도되는 모습이 조금 이채로운데요. 한겨례, 문화, 경향신문 등은 민주당의 승리와 그에 따른 일본의 상승효과를 조명하는 반면 조중동은 가급적 이번 선거에 대한 기사 자체에 대한 비중을 생각 이하로 줄이거나 주로 '자민당'의 허탈한 모습을 조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자민당의 패배 모습을 집중 조명하는 조중동인데요

당선 후 민주당의 행보 기사는 거의 없는 가운데 타이틀에 '자민당'은 반드시 넣습니다.


결국 일본의 이번 정권교체에 대한 진보와 보수진영의 해석이 제각각인 것을 알 수 있는데요. 한나라당이 백날 '이기는편 우리편'이란 식으로 오바마와 하토야마를 재빨리 우파로 색깔을 칠해버리든 말든 언론쪽에서는 사태파악이 빠르게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동영상이 돌고 있는 모습을 포함해서 일본에 대한 여론을 흔드는 모습도 앞으로 자주 캐치될 것 같고요. 예컨데 주로 인용되는 기사는 극우 산케이가, 방송쪽에서는 후지TV의 보도쪽이 많이 이용될것으로 보입니다.

동영상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아닙니다. 롯데를 제외한 한국 제과,음료 회사들의 R&D에 투자를 안하는 모습은 충분히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며, 그렇다고 저 방송을 마냥 옹호할 수만도 없는게 '산케이'계열의 후지TV이기때문이니까요. 방송 내용을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한국을 단순히 비판하는 것만 아니라 '일본의 과거사를 옹호'하는 것도 병행하는 모습을 보이죠. 다른 방송사와는 다른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그걸 굳이 퍼다가 나를 이유는 특별히 없다는 게 제 생각이죠. 그것도 1년 전에 종영한 프로그램의 2년 전 방송분을 말이죠.

이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사견을 넣고 싶지 않아서 처음으로 단순 자료만을 제시하는 글을 올려봅니다만 확실한 건 한국의 보수, 진보 진영 그리고 각 계파를 담당하는 언론들과 일본의 언론들이 이번 정권교체 그리고 그 이후의 정치적 흐름에 대단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외교관계가 진행될지 주목해보겠습니다.
posted by RushAm 2009. 8. 31. 22:14
여러분들은 '일본'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이젠 더 이상 가깝고도 멀지만은 않은 나라 일본이 되었습니다만 아직 일본에 대한 잘못된 상식, 특히 과거에 쓰여진 서적이나 구전으로 전해지는 잘못된 상식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이러한 상식은 여행을 다녀오거나 단기간 유학을 다녀오는 것으로 깨어지기는 쉽지 않지요 (유학생들은 실제로 한국인들과 친분을 쌓는데에 주력하고 일본 사회 전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과연 어떤 상식들이 오해이고 또 진실은 무엇인지 일본에 대해 빠삭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 연구해보고 직접 느낀 바를 서술해보고자 합니다. 금번은 그 첫 번째로 '친절한 일본인'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일본인이 '친절하다', '상냥하다', '과도하게 자신을 낮춘다', '피해자가 민망할 만큼 사과를 한다'는 등의 이미지는 아직도 건재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전해져오는 상식은 물론이거나와 최근까지도 여행을 다녀온 젊은층들에 의해 그러한 상식이 아직 유효하다는 것을 꾸준히 증명해내고 있으니까요? 그것이 가식적이든 아니든 분위기 자체가 한국의 친절함과는 다른 뭔가 '민망할 만큼'상대방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부분에서 한국 사회와는 좀 다른 부분을 느끼고 충격을 받는 것 같습니다. 컬쳐 쇼크는 사살 그리 좋은 의미를 내포하는 것은 아니어서 쇼크상태에서는 절대 객관적인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판단이 신뢰성을 갖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인의 친절함은 다소 거품이 좀 있습니다. 게다가 잘 알려진것처럼 본성을 최대한 감추기 위해 만든 가면과도 같아서 그 본성을 걷어내기까지는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년이 걸릴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 좀 살다 왔다는 사람도 이러한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일본인들은 친절하다'는 상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요. 여기에는 부족한 일본어 실력과 네이티브들만의 문화를 완전히 습득하기에 시간적인 한계와 외국인이라는 제한적 요소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하겠지만 여행으로 이쪽에 대해 알 수 있는 확율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우선 왜 이런 거품이 생겼는지에 대해서 설명해드리자면 절반 정도는 '여행객'들이 만들어낸 거품입니다. 여행객들이 여행을 하면서 쓰는 블로그, 여행기 등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일본의 친절'인데, 이 친절이 사실 길 안내같은 일상적인 친절이 아니라 작은 잘못에도 사과하는 자세 특히 그들의 사과 문장 자체가 '번역'을 하면 정말 심각하게 사과하는 듯한 뉘양스를 풍기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도 잘못을 사과하는 표현이 정말 다양합니다만, 일본은 정말 이렇게까지 자신을 낮춰 표현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만큼 심각한 사과 문장이 즐비합니다. 아시겠지만 '미안합니다'(すみません)은 말을 걸 때나 엘레베이터에 들어올때 거의 습관적으로 입에 붙어있을 만큼 이제 사과용 단어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데요 보통은 죄송합니다 (ごめんなさい)는 기본이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申し訳ございません),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ご迷惑をかけてしまいました) 등 한국에서는 어지간히 잘못한게 아니면 거의 쓰이지 않는 표현이 '일상처럼'쓰입니다. 자 여기에서 눈치채셨겠지만 이 '일상처럼'쓰인다. 에 함정이 있는데요. 쉽게 말해 '사과문' 인플레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갑자기 왠 뜬금없는 경제 용어가 튀어나오냐고 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들어보세요.

이러한 사과 문장들은 '남성'들의 경우 계급사회, 즉 지금으로 말하면 '직장'이외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자영업이라면 점원과 손님의 관계, 직장이라면 상사와 부하의 관계에서만 쓰이며 영업직일 경우 클라이언트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 밖에는 쓸 일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남성들은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잘못이 아니면 일상생활에서는 절대 먼저 사과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이러한 사과문장들은 주로 여성들, 특히 30대 이상의 나이 많은 여성들에 의해 쓰이는데요. 이는 '남편'을 '주인'으로 부를 만큼 계급차원에서 이미 남자보다 한 단계 아래로 치부받는 사회계급적 약자 위치에 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먼저 사과를 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진심'을 담은 사과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해석이 달라집니다. 작은 잘못에도 무슨 대역죄를 저지른마냥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라는 A급 표현을 써버리니까 그것보다 더 잘못했을 때에는 그저 '스미마센'의 반복이나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를 콤보로 섞어 연발하는 문자 그대로 몇 번이고 사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미상으로는 '상당히 깊은 사과의 의미'를 담은 말이지만 너무 많이 쓰이다보니 일본 사회 내에서는 그 의미가 다소 가볍게 치부되는 것입니다. 즉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가 우리나라에서는 100의 잘못 중 90정도를 감해주는 정도의 사과 위력이 있다고 치면 일본에서는 10도 채 되지 않는 셈이죠. 다시 말해 완전히 용서받으려면 저 표현 한번으로는 부족하고 최소 열 번은 연발해야 사과의 의미가 '본인 자의적인 해석'으로 충족되는 것입니다. (상대방 기분이 풀리는지 어떤지를 이들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콜 센터 직원이 뭔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정말 죄송합니다 고객님'이라는 말을 듣게되죠?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아 이 처자가 정말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있구나'라고 느껴지십니까? 아니면 '에휴 귀찮은 콜이니까 얼른 사과하고 끝내야겠다'라는 회피성 발언이라고 느껴지십니까? 대체로 후자로 느끼시는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이른바 영업용 미소가 있는것처럼 콜센터계에도 '영업용 사과'가 있는 셈입니다. 일본의 경우도 이와 비슷해서 전 국민이 '콜센터 직원'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하실텐데요. 다시말해 그들은 '정말 내가 잘못해서 미안한 감정을 전하기 위해'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이 내가 잘못한 게 맞는 것 같긴 한데 얼른 사과를 하고 내 책임이 조금 경감되거나 아니면 책임을 지지 않는 방향으로 도망쳐야겠다'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일본인들의 '사과'입니다. 그렇기에 절대 이들이 쓰는 사과 문장들을 우리나라식으로 해석하고 우리나라식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한데요. 조금 예가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과 문장 중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가 정말 죽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닌 것처럼 그 정도에는 분명 차이가 있고 일본의 경우는 그 정도 차가 무척 심하다는 게 핵심이 되겠습니다.

흔히 '친절하다'는 의미를 주는 '국민성'이라는 부분도 이와 다소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한데요. 일본은 가장 최근에 일어난 큰 전쟁의 '가해자'라는 이미지가 전 세계적으로 아직 강하게 남아 있다는 것을 잘 알고있기 때문에 국민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 꽤나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는 얼마 전 있었던 한일 월드컵과 최근 유치전이 뜨거운 '도쿄'의 올림픽 유치 노력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 자체'로는 국가적 이미지 재고가 쉽지 않지만 '국가적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이벤트'를 유치하는 데에 있어서는 국민들의 친절도만이 '전쟁 가해국'아라는 '평화'에 걸맞지 않는 불리한 상황을 극복할만한 유일한 열쇠가 되고 있기 때문이죠. (관련기사 문화일보 ) 어떻게 보면 국민적인 친절함은 만들어지긴 했어도 진실로 볼 수 있겠습니다만, 이 부분도 사실 '뒷담화'를 죽을 정도로 싫어하는 일본 특유의 국민성에 기인하고 있어 진심에 가깝다기보다는 이쪽 역시 자기방어적 자세에서 나오는 이른바 (裏切り)방지 라고 할 수 있죠. 흔히 '배신자'로 번역되는 저 단어가 직역을 하면 '뒤돌아선 상대를 뒤에서 베어버린다'는 지극히 사무라이틱한 단어라는 사실 알고 계실련지요?

유학생들처럼 일본에 조금 오래 살고 있는 분들이 상대적으로 느끼는 '경찰'의 친절함은 시스템적인 문제에 기인합니다. 지갑 분실이나 길 안내 등 사소한 부분을 등한시하는 우리나라 파출소에 비해 이러한 부분이 상당히 친절하게 이루어지는 일본의 '코반'을 인상적으로 느낀 분들이 많으신데요. 이건 사실 국가 시스템과 더불어 국민적 시각차가 양국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차이점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일본은 지역치안과 소소한 민원을 담당하는 코반과 강력범죄를 담당하는 경찰 시스템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 상호 업무가 연계되지 않는데다가 인력도 인구수 대비 부족하지 않도록 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 부담이 적정 수준으로 배분됩니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동네치안센터가 본 취지와는 다르게 본청 업무가 하달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구획 배분에 있어 업무량이 다소 과다하게 책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소한 민원'을 등한시할수밖에 없는 (일의 중요도를 따질 수 밖에 없게 되는) 딜레마가 생깁니다. 인격적인 문제를 탓할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죠. 여기에 보다 구획을 촘촘히 하려다보니 그만큼 인력도 많이 들어가고 법적으로 8시간 이상을 근무할 수 없게 규정되어있기 때문에 최소 일일 3교대 근무체계 등 한국의 '고생하는 경찰'과는 이미지가 사뭇 다릅니다. 문제는 그만큼 이들에게 들어가는 세금이 많아집니다만 이 부분에 있어 일본인들은 관심이 없거나 특별히 불만이 없는 반면 우리나라는 일본의 코반같은 인력이 지금보다 늘어난다면 바로 언론에서 '낭비되는 공무원 인력으로 인한 근무태만, 세금낭비 현장'등의 꼭지로 기획기사가 나갈 가능성이 높죠. 국민들도 '세금낭비'에는 꽤 민감한 편이기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여행객'이나 '단기채류객'이 접하기 거의 어려운 '은행', '구청 단위 관공서', '학교', '입국관리국' 등 '방문자들에게 영리적인 부분을 직접적으로 얻지 않는' 기관의 친절도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조금 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 역시 '직접적으로 손님에게 돈을 받지 않는'일의 경우 특별히 친절도를 철저하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며 은행의 경우 특히 '권위'적인 부분에 있어 불쾌감을 느낄 정도입니다. 입국관리국이야 말할 것도 없고요. 학교야 실제로 돈을 받는 곳이긴 하지만 직원들이 그 돈을 적접 눈앞에서 수수하는 역할은 아니기때문에 의사 결정을 따를 필요가 없는 사무국의 불친절함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떠세요? 물론 오해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이러한 이미지가 실제로는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한 자기보호방법'에 기인했다니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극히 인간답다고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인간이라면 그렇게 자기 내장 다 꺼내놓고 사과하면서 평생을 살 수 있는 사람들만 모여있는 나라라니 있을 수가 없지요. 일본의 인구가 1억 3천인데 그 대부분이 친절한 DNA를 가지고 태어날 이유도 없고 아무리 일본의 치안이 안정되었더라도 '친절하지 않은'사람으로 인한 사회문제는 어김없이 일어납니다. 이제부터는 일본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그 나라, 그 나라 사람을 바라볼때 그 나라의 이미지만으로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며 글을 마칩니다.

다음 시간에는 일본의 성문화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posted by RushAm 2009. 5. 6. 22:45
롯폰기는 우리나라로 치면 위치상으로는 양천구 목동, 도시 기능적으로는 고양시 일산동구 발산동 인근을 연상하시면 되겠습니다. MBC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 TV아사히가 롯폰기 힐즈에 위치하고 있는건 잘 알려진 사실이며 TBS,TV도쿄 NHK까지 약 여의도 면적 정도의 이동 거리 내에 위치해 있습니다. 즉 롯폰기는 지금의 신주쿠 가부키쵸같은 예전 이미지를 완전히 타파하고 1990년대 이후부터는 완전한 방송, 연예의 노른자위로 자리잡고 있죠. 땅값이 비싸진 이유에도 이 쪽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초상권 문제로 이번 포스트에서는 글과 관계없는 사진들이 채워지게 됩니다 양해 바랍니다.


위치상으로 요미우리신문사옥과 가까워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니혼테레비를 제외하고 TV아사히, 도쿄방송, TV도쿄 그리고 도쿄타워의 삼각 구역에 자리잡은 롯폰기는 그래서인지 주변에 크고 작은 스타 매니지먼트사, 프로덕션, 엑스트라 인력 수급 회사 사무소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바는 없지만 유명 기획사들 역시 본사는 시부야나 하라주쿠 등 다른 곳에 두더라도 비공개적으로 롯폰기에 별도 활동 본부를 갖추고 있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인지 롯폰기의 거리는 신주쿠나, 도쿄, 우에노처럼 유동인구가 많지 않고 상당히 차분합니다. 구획 자체가 '방송관련 용도 이외의 상권이 전혀 발달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가 있죠. 간간히 편의점만이 보일 뿐 식료품을 구할 만한 마땅한 상점이 없는 것도 단지 건물 임대료 문제만은 아닌 셈입니다.

사람이 돈으로 구입한 집과 돈이 사람으로 구입한 집은 의미가 다르겠죠?


이런 이유로 롯폰기 거리에는 연예인, 방송 관계자 연예인을 지망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연예인들은 자신이 연예인이라는 것을 최대한 감추려 드는 것이 기본 섭리이고 지망생들은 그 반대겠지요 연예인들이 직접 발품을 팔아서 거리를 걷는 일은 없을 테니 지망생쪽이 비율면에서 압도적일수밖에 없습니다. 화려한 옷차림이나 짙은 화장을 하고 있으면서 주변을 지속적으로 의식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불편한 구두와 옷을 입고 바쁘게 이건물 저건물을 수시로 들락날락 하거나 같은 거리에서 몇 번이고 마주칠 만큼 별다른 목적지 없이 인근을 배회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연예인 지망생의 확율이 높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연예계라는게 아쉽게도 로또성 그리고 이른바 끗발이라는 게 예술적 재능을 능가하는 업계이다보니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끗발이 높은 사람에게 신임을 얻고 그들을 발판 삼아 더 높은 곳, 더 나은 방송, 더 나은 시간대에 출연하고자 하는 직업군 연예인, 그 1차 격전지가 되고 있는 곳이 롯폰기인 셈인데요. 이곳에서는 뒷걸음질이 곧 추락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들의 표정에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영업용 미소와 두꺼운 화장 속에서 피어나는 비장함을 읽을 수 있습니다.

비슷한 의미를 가진 장소라면 역시 도쿄드림의 상징 도쿄역!



연예계에 대한 선호도가 여성 비율이 높은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일본은 특히 그런 성향이 심한데다가 점차적으로 오키나와 액터스 스쿨처럼 기획 단계부터 유망주를 직접 발굴해 내는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길거리 캐스팅에 의한 데뷰는 점차 과거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키타노 키이'처럼 길거리 캐스팅에 의한 성공 사례가 속속 보고되고 있기 때문에 이쪽 인재풀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그걸 증명해주는 것이 롯폰기 거리의 지망생들이라고 할 수 있죠.

이들에게는 이미 소속되어 있는 회사도 몇 군데 있겠습니다만, 현재의 소속사에 결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무소에서 의뢰받은 방송 활동도, 모델 활동도, 캠페인 걸 활동도 모두 결과적으로는 유명 기획사의 눈에 들기 위한 전초전인 셈이지요. 이곳에서는 단계적으로 밟아나간다는 개념보다는 서커스의 그네릴레이처럼 어느 정도 접점이 있을때 뛰어올라 다른 그네로 옮겨타지 않으면 오랜 시간을 허비하며 제자리에 머물거나 심지어 뒤쳐지게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뒤로 가거나 떨어지거나, 제자리에 맴돌거나...



처음부터 유명 기획사에 소속되어 시작되는 이른바 '선택받은 자'들은 극히 일부이며 이들 역시 그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액터즈 클럽같은 곳에서 피나는 트레이닝을 거친 검증된 유망주들이기에 스타트 지점이 지금 롯폰기의 지망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길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일본의 연예계는 끗발 못지 않게 로또같은 부분도 크게 작용하고 있으니까요. 어딘가에서 뚝 떨어진 듯한 스타가 나오는 것도 그냥 뚝 떨어진 게 아니라 확율이 높을 시기를 알고 로또에 올인해 당첨이 된 셈입니다.

내일은 롯폰기가 가지고 있는 도시적 기능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오늘보다 더 냉정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 RushAm -
posted by RushAm 2009. 5. 6. 00:42

도쿄미드타운은 바깥쪽의 활기차고 밝은 모습과는 다르게 안쪽에는 매우 엄숙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감돕니다. 일반적인 쇼핑몰과는 조금 차이를 보이는 부분인데요. 북적이진 않지만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다른 쇼핑몰이나 할인마트와는 다르게 소란스럽다는 느낌이 없습니다.

마치 시공조감도같은 모습이죠?


롯폰기 힐즈와 분명한 차별성을 두려는 것인지 이곳에서는 유명 브랜드를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저가 브랜드가 많냐면 그것도 아닌데요. 주로 미드타운쪽에서는 직접 판매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쇼룸으로서 홍보를 하기 위한 목적의 매장이 많았습니다. 물론 그런 쇼룸이 유명 메이커에게는 딱히 필요가 없기떄문에 대체로 고급화전략을 추구하는 가구, 인테리어, 보석 가공 업체들이나 브랜드 자체를 홍보하기 위한 후지제록스 등의 업체들이 입점하고 있습니다.

한쪽에는 에스테 위주의 업체들이 모여있는 복도가 있습니다. 매우 아기자기하죠?



그 중에서도 압권은 역시 TIME&STYLE 미드타운 쇼룸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단지 보여지는 것에서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만 꼼꼼하게 살펴보면 가구를 단지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닌 어떻게 배치했고 어떻게 움직이는 동선을 배려했는지가 느껴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반드시 이 회사의 가구를 사야만 그렇게 꾸밀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이런 식으로 배치하면 어떤지, 식탁이나 소파는 어느 정도 크기가 이상적인지를 참고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식물과 삶이 어떻게 조화롭게 배치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특히 이 회사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집의 삼림화입니다. TIME & STYLE FOREST 라는 별도의 캠페인까지 할 정도로 열정적인데요 자세히 보시면 대부분의 가구 높이 고도를 사람의 상하시야 바깥쪽에서 끝마치도록 구성하고 있습니다. 소파, 침대 등은 물론이고 식탁이나 부엌에 쓰이는 가구들 역시 눈에 잘 띄지 않도록 모두 빌트인하거나 최대한 눈에 띄는 범위를 줄이도록 디자인되어있습니다.

오디오는 비디오 기기와 별도로 구성, 음악을 들을때는 미술품과 관엽식물이 함께하도록 합니다.


사실 이들이 시도한 건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아주 혁신적이거나 높은 심미성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만, 앙드레김 패션쇼에서 나오는 옷들처럼 일상 생활에서 활용이 불가능한 혁신보다는 작은 생각의 변화에서 시작되는 디자인 컨셉이 우리 생활을 바꾸는 영향력은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이 회사에서는 보통 비용 절약을 위해 한 개의 룸으로 꾸며지는 오디오 룸과 비디오 룸을 각각 분리해서 꾸며놓고 있는데요. 단지 상품을 다양화하기 위해 ALL IN ONE이 가능한 오디오와 비디오 룸을 분리시켰을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를 생각해본다면 이 회사가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 쉽게 감지할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들었더 샤워실입니다


사실 TIME & STYLE은 실제 가격표를 보면 침대가 70만엔대, 소파 테이블이 30만엔대정도이기 때문에 (사실 쇼룸을 갖춘 다른 메이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입니다만)  구매하고 소장하는 즐거움과는 거리가 있죠. 반면 현실적인 가격으로 소장의 즐거움을 주는 상점들도 소규모이지만 다수 입점하고 있는데요. IDEA DIGITAL CODE도 그 중 하나입니다.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상점 이름이네요.


상점 이름은 '특이한 디지털 제품'을 파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기발한 아이디어 위주의 제품보다는 인테리어 혹은 패션 소품으로서 존재하는 디지털 제품들을 모아두고 있습니다. 물론 원 제조사들도 오디오 테크니카, 필립스 등 유명 제조 업체이니 성능면에서도 부족함이 없고, 오픈에어 덕트 부분에 큐빅장식을 한 이어폰, 맥주 서버 모양의 스피커 같은 특정 상황에 필요한 소품형 디지털 제품들이 가득한데요. 언제나 인테리어에서 천덕꾸러기였던 디지털 제품들이 이 곳에서는 인테리어의 든든한 한 축으로 어겨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드타운에는 그밖에도 유명한 산토리 미술관이라든지 가든 테라스에 있는 유명한 레스토링들이 즐비합니다, 산토리 미술관은 일본 내에서도 손가락에 꼽할 만한 명소로 매번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기획전을 열고 있죠. 다만 일본까지 와서 미술관을 굳이 찾아서 볼 필요는 없겠습니다. 미술관은 관광지가 아니라 생활 속 문화공간이니까요. 상설 전시가 아닌 기획전시를 하는 산토리 미술관은 특히 그렇습니다. 물론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지만 관광 명소는 아니라는 것이겠지요.

산토리 미술관은 기획전시에 따라서 이벤트 숍 상품도 함께 바뀌는 듯 합니다.


대형 마트와 명품을 파는 명품관 모두를 가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명품관이라고 해서 딱히 마트보다 조용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잘 아시는 것처럼 한쪽은 어느쪽이 더 싼 지에 대한 논란, 한쪽은 어느 쪽이 더 비싼지 혹은 비싸 보이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언제부터 물건이 싸고 비싸고, 혹은 비싸 보이고의 문제만으로 남았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가끔은 가격으로 매기는 가치보다는 자신만이 매길 수 있는 물건에 대한 또다른 가치 판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부 시설에 대해서 다른 분들이 많이 다루어주신 내용은 많이 배제를 했음에도 포스트 가 길어져버렸네요. 내일은 도쿄 미드 타운의 정 반대에 서 있는 롯폰기의 그림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죠.

- Rusham -
posted by RushAm 2009. 5. 5. 00:49

롯폰기의 이미지는 매년 바뀌는 게 추세인 듯 합니다. 처음 제가 롯폰기를 방문했을때는 한국의 서래마을을 연상하는 듯한 세계 각국의 음식점들 (유럽의 각국 국기들이 휘날리는 음식점들의 행렬)들이 인상적이긴 했지만 특별히 깊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는데요. 이유는 물론 한국에서 관광을 오는 분들이 느끼는 그것입니다.

'한국이랑 다를 게 없잖아!'

일본관광 코스 중 롯폰기의 문제점이라면 사실 일본에 오면 이미 이국이기 때문에 굳이 일본 내에서 유럽의 정취를 찾을 필요가 없는데도, 단지 유명한 관광 코스라는 이유로 롯폰기를 찾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다녀간 롯폰기힐즈라든지, 서래마을을 연상시키는 식당가, 사실 롯폰기 힐즈를 능가하는 명품관은 한국 강남에도 넘쳐나고 있고 신세계첼시의 여주아울렛이나, 양재 하이브랜드가 폼은 좀 떨어져도 훨씬 쾌적하거든요. 쇼핑몰 그 자체를 즐기고 싶다면 오다이바의 비너스포트를 능가할 순 없고요.

그래서 감히 주장하지만 관광을 오시든 어쨌든 '롯폰기'에 '놀러'오는 분들이라면 과감하게 롯폰기 힐즈를 제끼길 권장합니다. 중심 시선을 도쿄미드타운으로 옮기기만 하셔도 전혀 새로운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죠.

도쿄 미드

롯폰기 힐즈보다 이 녀석이 요즘 대세입니다.


사실 롯폰기 힐즈도 그렇지만 도쿄 미드타운도 키만 높지 모든 층에 다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롯폰기 힐즈와 다른 점은 주변 개발을 철저하게 제한해서 도쿄 미드타워 앞 공지를 하나의 휴식 및 관광 명소로 만들었다는 점이죠. 물론 건물 내에 있는 시설들도 매력적입니다만, 숨막히는 도심 속 마천루보다 훨씬 쾌적하고 친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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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타워 동쪽 출구

건물 앞 공지에서는 저녁 6시까지 매 시간별로 다양한 테마 공연이 벌어집니다.


사실 높은 건물 주변에서 이같은 공연이 이루어지는 모습은 그리 낮설지 않습니다. 동대문운동장역이라든지 그밖에 세계 곳곳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이지요. 다만 이 곳의 공연이 조금 다른 부분은 어떤 영리적인 부분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는점입니다. 동대문운동장이나 명동은 특정 의류상가의 홍보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만, 이곳은 가능한 그런 냄새를 완전히 제거하고 문화 그 자체가 주역으로 있게끔 만들어줍니다. 물론 도쿄미드타운의 미츠이부동산이라든지 여타 업체들의 후원이 있습니다만 그 흔한 경품 추첨 행사라든지, 어떤 기업도 이 행사에 관여한 흔적이 없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각 도구를 활용한 다양한 기예가 참 멋졌습니다만 사진으로는 한계가 있네요 ^^;


물론 공연의 종류는 철저하게 건물 앞 공지 공연과 건물 바깥쪽 공원에서의 공연이 완전히 다른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건물 앞에서는 가능한 소리가 많이 나지 않고 보여지는 위주의 마임이나, 기예, 무용 등의 공연이 이루어집니다. 수준도 높은 편이고 무료로 제공되는데다가 뒷맛까지 개운하니 일석이조입니다. 공짜라는게 없다는 일본이지만 이런 공연들은 확실히 만족스럽습니다. 흔히 지하철이나 역 앞에서 하는 음악공연처럼 시간을 동정하는 느낌을 주지도 않으니까요.

수정구슬 기예가 특히 인상적이었던 공연자입니다. 공연이 끝나고 특별히 포즈를 취해주셨어요


공연은 공지, 공원 모두 도쿄미드타운에서 관장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공원쪽 공연과 공지쪽 공연 모두 지켜보는 사람들 중에 후지테레비를 비롯한 방송관계자들이 다수 섞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단지 대중 앞에서의 공연뿐만이 아닌 프로 데뷰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길 건너편에 조성된 녹지

본의아니게(?)관광 명소가 되어버린 공원입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곳이 문제의 '쿠사나기 사건'이 일어난 곳이라고 하네요.


공지와 공원 사이에는 편도 1차로의 찻길이 존재합니다. 이 찻길에는 무려 시내버스까지 다니지만 그밖에는 교통량이 그리 많지는 않기때문에 신호등 대신 관리 직원 두 명이 차량을 통제하며 철저하게 보행자위주로 안내하고 있는데요. 아무튼 이 길을 건너면 코끝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집니다. 풀내음과 꽃내음이 적절하게 섞여있는 기분좋은 산들바람이 반겨지는 공원이 있는데요. 골든위크라서 그런지 월요일 오후임에도 사람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사실 이것도 적은 편이라고 하네요)

레토리버 님께서 특별히 포즈를 잡아주셨습니다. 사진은 참 잘나왔는데, 이 개 상당한 정서불안입니다 ^^;


롯폰기답게 관광객이 아닌 서양권 거주자들이 대다수입니다.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혼잡하지 않게 저마다의 정취를 즐기고 있습니다. 하나미처럼 술판을 벌이는 사람도, 취사를 하지도 않고 그냥 가만히 쉬는...지극히 슬로우라이프적인 모습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요크셔테리어 종입니다 유모차에 데리고 나온 걸 보니 이 부부도 아이 대신 강아지를 키우고 있나봅니다.


물론 이곳에 모여있는 일본인들도 우에노 공원이나 다른 공원에서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입니다. 롯폰기 인근에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만 제법 먼 곳에서 일부러 나들이를 온 가족들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무척 조용하고 무례하게 뛰어노는 아이들도 없었으며 강아지로 인해 지저분해지거나 트러블이 발생하는 일도 많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사실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주변에 폐를 끼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이곳만큼은 지극히 알려진 대로의 일본인으로 보여지게끔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오늘의 공연 스케줄표

건물 앞 공지, 공원 등 각 장소에 따라 시간대별로 오늘의 공연 내용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일주일 간격으로 변동이 있는 것 같습니다.


건물 앞 공지와는 반대로 이곳에서는 음악 공연이 이루어집니다. 물론 무대는 건물과 좀 많이 거리를 두고 있기때문에 이곳에서 음악 공연이 이루어져도 건물 내부는 물론 건물 앞에서 하는 조용한 공연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쉬는 분들을 고려해서 앰프 음량을 넘치듯 크게 하지 않고 록 공연이라도 베이스 부분을 최대한 약하게 하는 배려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공연이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이지만 확실한 것은 이들의 공연이 특별히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롯폰기의 밝은 면이라면 밝은 면일수도 있는 부분인데요. 이런 공연을 이어나가면서 빈부에 상관없이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정책적 지원과, 상업적인 부분을 철저하게 분리시킨 이같은 행사들이 공연을 보는 사람과 하는 사람 모두에게 인생에 있어 의미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미드타워 안에서 본 모습입니다.


일본 제1의마천루라인과 그에 걸맞게 도내 수위를 다투는 건물 임대료를 자랑하고 있는 롯폰기지만 이곳이 '압구정'이나 '청담동'처럼 그들만의 놀이터가 아닌 이유는 역시 그것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소외감과 우월감이 아닌 그곳을 보며 꿈을 키워 나갈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가 되어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행복은 과시가 아니라 뛰지 않고 걷기 위해 지금 뛰고 있다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이곳에서는 명품을 휘감은 재벌 2~3세 대신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누워있는 사람들과 대중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빛이 나는, 행복한 꿈을 가득 머금다 못해 철철 흘러 넘치는 문화인들만이 있을 뿐이죠.

내일은 도쿄 미드타운의 내부를 간단하게 (이미 내부는 많은 블로거들이 다루어주셨기 때문에) 소개하고 일면 연예인 지망생들의 치열한 격진지가 되고 있는 롯폰기의 냉정한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 Rush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