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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정전사태가 왠지 울고 싶은 놈 뺨을 때린 듯한 기분이 든다. 생활이 어렵고 경제가 안나아지고 안좋은 뉴스는 그칠 줄 모르고 정부탓하는 목소리는 그치지 않는데, 때마침 정전이 되어주니 이 모든 화살이 다 '한전'으로 가버렸다. 국정감사에서 팩스 잘못보냈다거나 점심시간에 연락 안닿아서 보고 못받는 시시콜콜하고 도움안되는 질문들만 날려대세는 국회의원들도, 뉴스에 분개하며 고작 엘레베이터 한두시간 갇힌걸 가지고 '시체치우는 줄 알았다'며 호들갑떠는 국민들도 '너 잘 걸렸다'는 식으로 몰아붙인다.

2010년 국감 당시 모습 - 이때는 아무것도 발견 못하시던 분들이 이번 정전때는 입에 모터들을 다셨다.



그런데 사실 그런 시시콜콜한 실수를 제외한다면 한전은 사실 할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여름 비상 근무를 종료하고 발전소를 점검에 들어간 게 그렇게 큰 잘못이었던 것일까?,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핀트를 어긋냈지만 이건 전력 수요 예측 실수가 아니라 기상청의 '기온 변화 분포 예측 실수'가 맞다. 한국전력이 갑자기 9월 중순에 여름보다 낮기온이 더 올라가는것까지 예측할수 있게 기상학까지 복수전공이라도 해야한다는 말인가? 만약 기상청 예측을 무시하고 '가을에도 갑자기 더워질 수 있다'라며 발전기 안끄고 준비상 체제 유지했는데 '안 더웠다', 면 국감에서 더 까이는게 한전이다. 한전은 그래서 '기상청 발표'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만 한다. 비전공자가 나대는 것보다 '전문가'의 의견을 근거하는게 훨씬 나으니까...

기상청이 지난 6월 11일에 예측한 올여름 전력수요


기상청이 틀렸다. 그래서 갑자기 예비전력율이 바닥을 뚫을 기세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도 까다 보니 착각하는게 한전이 신생벤처기업 아마추어들이 운영하는 떨거지기업쯤으로 착각하거나 공기업의 태만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아주 낙인을 찍어버리는데, 당장 검색해봐도 공기업 중 국민 만족도 1위를 몇년 연속 차지했는지 까마득할정도로 건실한 공기업이 한전이라는 걸 이번 정전 사태로 모두 잊어버린 듯 하다. 그들은 이번 정전 이전까지 '단 한번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칭찬받아 마땅한데 말이다.


감이 잘 안온다면 옆나라 도쿄전력의 작태를 보라...


 한전은 아마추어 집단이 아니다. 물론 대응 시스템이야 구식일지 몰라도 그들은 이런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충분히 대응책을 마련했고, 예비전력 위기를 몇십년째 넘겨오며 노하우가 쌓인 베테랑 기업이다. 그런 구식 시스템 속에서 그들이 만들어놓은 자구책이 바로 '절감효과'가 확실한 산업용 전기를 컨트롤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가 싼 이유는 기업들 배 불려주려고 해놓은 게 아니라 이런 '비상사태'때 기업들이 그동안 저렴하게 전기를 쓰고 거기에 '협조 보조금'까지 받아가는 댓가로 '긴급 비상 전력 소비 감축'에 신속하게 협조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정전사태 대응책 중 가장 쓸만했던 이 대책에 협조한 기업이나 관공서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한전은 이들 기업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면서 협조를 약속받았음에도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는 것이 이번 사태를 불러온 결정적 원인 되시겠다.. 


뼛속까지 감탄고토(甘呑苦吐)


그런데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의 결론은 따분해서 하품이 나올 고려짝 시츄에이션 'OECD중 제일 싸다'는 것과 '국민들이 너무 전기를 막쓴다'는 거라니 참 기가 막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전의 시스템이니 운영 방만이니 위기대처 부족이니 한전만 줄기차게 씹어대던 정부가 이제 정전이 '국민들이 방만해서 생긴 인재'란다. 국민들의 생활전기와 산업용 전기 비율이 넉넉잡더라도 4:6일텐데 어느 쪽을 줄여야 하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위기때 어떻게 협조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 시스템을 정비해야 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데, 쿨타임이 되자마자 이걸 '요금 올릴 핑계'거리로 이용하는데에는 기가 찰 지경이다.


저 중에 우리나라보다 서민 실소득 낮은 국가가 있나?


국민들이 전기를 평소에 아낀다고 전력위기상황이 방지될리 없다는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서민들 중 어느 누가 여름에 덥다고 전기를 막쓸 수 있겠는가. 지금도 서민들은 현 요금 체계에서 충분히 부담을 느끼고 전기를 가능한 절약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더 절약하고 싶어도 더 쥐어짤 게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에게 전기료를 인상한다는 것은 그냥 마른 걸레 쥐어짜기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사실 전기를 낭비하고 있는 계층은 '전기 요금 몇천원 오르는걸 가렵지도 않게 생각하는' 고소득층일진데, 과연 그들이 전기료 20%올린다고 무서워 벌벌떨며 에어컨 온도를 올릴 리가 없다는 것에 500원을 건다. 물론 산업용 전기는 행여 기업님들이 삐져서 우리나라에 고용 투자 안하고 중국으로 튈까봐 무서워서 올릴 리가 없다는 것에도 천원쯤 걸 수 있다.


이번 한전 사태는 이번 정부의 친기업주의가 얼마만큼 도를 넘었는지를 잘 시사해주고 있다. 한전이 왜 그들에게 '혜택'이란 혜택은 다 주면서도 비상사태때 전력 감축 요구를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만일 정전 10분여를 남기고 나온 한전의 요청이 씨알이 먹혔다면 과연 이번 정전 사태가 일어났을까? 기업들은 왜 한전에게 혜택을 받으면서 위기상황에 대한 요청을 시원하게 쌩까고 입을 싹 닦아버리는 '지들이 늘 하던 짓거리'를 하면서도 가책없이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일까? 기업들에 의해 정부 직속 공기업이 국가비상사태 때 기업이 참가를 안하는 초유의 '군사재판급' 사태를 두고 정부는 기업들에게 왜 안지켰냐고 다그치기는 커녕 기업들이 행여 이번 정전으로 피해나 보지 않았을까 굽어살피기 여념이 없는 이유가 뭘까? 언론은 왜 이번 사태의 원인을 '기업들이 비상사태에 제대로 참가하지 않았다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지 않는 것일까? 그보다 왜 정부가 삽질하고 기상청이 병신짓한데다 한전 정책까지 시원하게 생까주신 기업들이 벌인 일을 왜 아무 짓도 안하고 피해만 주구장창 본 아무 죄없는 서민 호주머니를 터는 것으로 끝을 맺으려 드는 것인가? 이 정부가 정말 '정부'라고 불릴 자격이나 있는건가? 


이런 나라에는 정부랑 기업만 남기고 국민들이 다 떠나는 게 옮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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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현재 연재중인 아이돌 기획사 열전 시리즈는 현재 JYP편이 조사, 집필중에 있으며 다음주중에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조사에 시간이 걸려 집필에 시간이 소요되고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최근 KTX의 고장 소식이 잦습니다. 항간에는 KTX산천의 무리한 국산화가 화를 불렀다느니 코레일의 무리한 인력 감축에 문제가 있다느니 이런 저런 말이 나오고 있는데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이 정비라는게 불량이 매일 나오는 것도 아니고 (열차 시스템이라는게 생각보다 지금만큼 불량률이 많이 나오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더구나 불이 나고 멈춰서고 이정도의 불량은 정말 장난아닌거죠, 정상적인 로테이션이라면 말입니다) 정비가 소흘했다면 사고 원인이 '추측'이 아닌 확실힌 이유가 잡혀서 정비 인력을 늘이는 발표가 코레일측에서 있어야 하는데 벌써 반년 이상 사고가 매달 몇 건씩 계속 나고 있는데도 코레일이 꿈쩍도 안하고 있거든요. 아무리 공무원 출신이다 업무태만이다 뭐다 해도 눈앞에서 기업 이미지가 깎이고 있는데 아무짓도 안하는 기업이있을리가 없습니다.

수수방관?


그래서 좀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조사를 좀 해봤습니다. 가지고 있는 지식과 현장 지식을 총동원해서 추리를 해봤죠. 일단 한번 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KTX산천, 기존 KTX 승차를 해봤고, 사고 선로 분석도 해봤지만 좀처럼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고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한 '사고 일지'를 보고 머리를 탁 스치는 게 있었습니다.

KTX 사고를 조사하기 위한 시승때문에 예매사이트에 들어가 예매를 하던 도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다름아닌 새로운 60X대 차번호가 존재한다는 것이었고 이 차번호는 묘하게 서울 대전 구간에서 다른 열차보다 약 30분이나 딜레이를 발생시켰습니다. 게다가 정차역은 광명이 아닌 영등포, 수원 등 경부본선을 이용하는 기존선이었죠. 왜 이런 미친 편성을 넣었나 싶어 조사를 해봤는데 이런 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최근까지의 KTX 주요 사고 일지입니다

▲2011년 5월14일 = 천안ㆍ아산역에서 KTX-산천 고장, 20분 지연

▲2011년 4월19일 = 천안ㆍ아산역에서 KTX-산천 고장, 20분 지연


▲2011년 3월20일 = 동대구발 서울행 KTX-산천 통신장애로 18분 지연


▲2011년 2월26일 = KTX-산천 김천구미역 인근서 기관고장..39분 지연


▲2011년 2월11일 = KTX-산천 광명역 일직터널서 첫 탈선사고


▲2011년 2월6일 = KTX-산천 부산역서 배터리 고장, 열차 교체


▲2010년 12월25일 = KTX-산천 논산 연산역서 동력장치 고장‥25분 지연


▲2010년 11월11일 = KTX-산천 천안아산역 인근서 난방기 고장


▲2010년 10월27일 = KTX-산천 천안아산역서 모터블록 고장


밑줄치면 또 허위사실 유포 지랄할까봐 그냥 씁니다.
뭐가 문제인지 감이 잡히시나요?
이제부터 차차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영등포역 경유가 왜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는가?

참고로 영등포역 경유해 본선을 이용하는 편성은 하루 2대 편성, 601과 607편성입니다. 여기에서 생각을 잘 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두 편성이 고정차량배치가 되느냐 아니냐는 것이죠. 다시말해 만일 영등포역 정차를 위해 KTX중 일부 편성을 경부본선에 달리게 한 게 문제의 원인이라면 바로 이 601과 607편성만 지금까지 사고가 났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잘 아시는것처럼 호남선 논산구간에서도 사고가 접수되었고 지금까지 사고 중 거의 대부분은 본선이 아닌 고속전용선에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저 두개 편성이 지금까지의 사고를 일으킨 원인이 되고 있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어보이는데요.

하지만 문제의 601,607의 객차 편성, 동력차 편성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다음은 최근 5일까지의 차량 편성 정보를 볼 수 있는 코레일 제공 물류정보사이트의 객차 편성 정보 검색 화면입니다. 여기에서 최근 5일까지의 601편의 객차, 동력차 편성을 확인해보겠습니다. (검색결과 아래 차호 라고 써있는 6자리 숫자들에 주목해주세요)

7월 14일자입니다.


7월 15일자

7월 16일자

7월 17일 오늘자입니다.



뭔가 감이 잡히시나요? 그렇습니다. 최근 4일간 이 601열차는 단 하루도 같은 열차가 중복된 적이 없습니다. 매번 다른 열차로 쓰이던 열차가 601번을 달고 운행했다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601번이 다른 곳에서 이미 쓰인 열차가 편성되고 또 601번으로 쓰인 편성이 다른 고속전용선 편성으로 다시 빠지는 순환식이 되면 이 601번으로 달렸다는 것이 이번 사고의 간접적 원인으로 지적될 단서가 매우 희박해집니다. 한마디로 영등포역 정차가 지금까지 사고가 난 것에 일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발표하기 위해서는 사고가 난 열차의 대부분이 601번 구간 즉 서울에서 대전까지는 기존선으로 달리고 대전부터 고속선으로 달리는 구간이 되어야 하죠.

17일자 601번에 편성된 객차 중 하나인 101012번은 서울에 도착한 즉시 132편으로 편성변경되어 고속전용선 열차로 투입되었다

마찬가지로 7월 14일에 투입된 동력차 100152번은 오늘 137번으로 편성이 변경되어 고속선에 투입되었다 이런 식으로 교체 투입되는 패턴 역시 어떤 규칙이 있는게 아닌 마구잡이 편성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서울 대전 구간이 문제가 되는지는 많은 철도 매니아 분들의 지적대로 이 구간이 정말 많은 노후화와 타 열차의 공동화로 선로 질이 매우 나쁘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실 광명역이 탄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요. 열차는 서울역부터 신길역까지는 기존선 바로 옆, 새마을 무궁화호 등이 쓰는 본선을 달리다가 도중에 광명쪽으로 방향을 틀어 고속전용선구간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신길역은 영등포 바로 전역인데요. 영등포역 정차를 위해서는 영등포역에 분기점을 하나 더 만들어 지금 신길역에 있는 분기점을 영등포로 옮겨야 하고 그러려면 정말 많은 건물들을 허물어서 새로 철도를 준설해야만 합니다. (약 3~4킬로정도 될 듯합니다) 당연히 영등포 도시 심장부를 지나는 이 플랜은 가능했을리가 없죠.

그래서 영등포역에 정차하기 위해서는 영등포역에서 수원을 지나 당시 기준으로 대전까지는 그냥 기존선을 타고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수원시와 영등포구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을 텐데요. 왜 기존선을 그대로 타고 올 수밖에 없냐면 기존 전철 맨 가장자리를 달리던 신길역과는 달리 영등포역부터는 복복선 중앙을 달리게 되기 때문에 영등포역을 이미 떠난 상태에서 역 터미널 아닌 선로 중간에서 선로변경 공사를 할 경우 기존 인천행이나, 수원행 전철들과 시간계산을 다시 복잡하게 해야하거나 심한 경우 지금도 정체현상이 벌어지는 수원 구로간의 전철들을 KTX의 중간선로변경을 위해 올스톱을 시켜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미 수원까지 온 상황에서는 광명역도 광명역에서 출발한 KTX전용선로도 너무 멀리 떨어져있는 상태기 때문이죠. 백번 양보해서 수원에서 출발해서 고속선으로 합류하는 선로를 깔더라도 고속열차에 '도중합류' 구간이 생기는것은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봐도 자살행위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더 심하게 양보해서 선을 '천안아산'역까지 새로 깐다고 한들 천안아산역은 '터미널'역이 아니기때문에 합류에 많은 설계적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이죠.. 단지 '영등포역'정차라는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려 기존선을 150km이상 달리게 만드는 미친 짓이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미 노후도가 상당한 서울 수원 구간에 다른 열차와의 간격 유지가 지금도 힘든 구간에 장대열차 2배 길이를 자랑하는 ktx가 선로에 갖은 부담을 주며, 기존 열차와 차간을 유지하기 위해 속도 제어해가면서 말이죠. 고장이 안 날리가 있겠습니까?

우연의 일치일까? 코레일은 얼마 전 접근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국철 '1호선 광명역'을 신설해 운행중이며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천안 이남의 수도권 전철을 대전쪽이 아닌 장항선 라인의 온양 신창쪽으로 틀었다. 물론 이 새로 준설된 복복선전철은 천안아산역을 바로 지나게 되는데, 이게 정말 접근성만을 생각한 조치였을까? (사진은 천안아산역 공사 당시 모습, 전형적인 선로형 역사임을 알 수 있다)



KTX 산천의 결함?

최근 KTX의 사고는 KTX산천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근거로 언론들은 KTX산천의 설계 부실을 꼬집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데요. 이 역시 근거로 들기는 매우 희박합니다. 왜냐하면 KTX산천은 처음부터 KTX 2단계 구간 개통에 맞춰 발표될 예정이었던 KTX2프로젝트 (서울부산 2시간)의 일환이었기 때문입니다. 천성산 문제로 완공되지 못했던 대구 부산간 고속전용선이 준설되면서 KTX가 제 속도를 낼 수 있게 되는 환경이 만들어졌지만, 밀양역 정차 등 정계 지자체의 중간정차역 정차 요구가 맞물리면서 이를 지키기 힘들게 되자 KTX의 국산화 프로젝트에 한발 더 나아가 최고속도를 350km도 높이는 프로젝트를 감행했던 것이죠. KTX산천은 이미 350km 테스트 성공은 상용운전 3년 전에 해냈으며 그동안 수많은 테스트 운전을 합격한 차량입니다.

시험운전 당시의 모습, 이게 벌써 3년도 넘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KTX산천이 처음 개발 당시와 테스트 당시의 계획과는 달리 '본선 구간'을 달리는 시간이 너무 많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위에 제시한 의혹대로 영등포역에 정차하는 '601','607'의 차량이 고정편성이 아니게 되면서 KTX산천의 차량이 투입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었는데요. 이 KTX산천의 고장에더 큰 문제는 사실 영등포역이 아니라 12월 15일 완공된 경전선 복선전철화 공사 완료로 인한 KTX 마산 편성의 대폭 증가에 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이 마산 편성은 대구에서 이미 기존선을 이탈하여 삼량진까지 경부선을 운행한 후 경전선으로 가야만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 듯 싶고요. (동일 편성에서 새마을호와 불과 3분밖에 소요시간을 줄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총합 140km를 다시 기존선으로 달려야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KTX산천은 처음부터 2단계 개통에 맞춰 100% 전용선에서 서울부산 2시간 주파를 위해 만들어진 녀석이기 때문에 초기 기존선을 다수 공유해야만 했던 KTX1이 기존선에서의 주행 테스트에 오랜 시간을 들였던 것에 비해 KTX 산천은 기존선 테스트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래야 할 필요성도 없었던것이죠.

이건 물론 결함으로 볼 수 있습니다. KTX산천이 기존선 테스트를 소흘히 했다고 몰아붙일 수도 있는것이죠. 사실상 편성 공유를 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는 문제, 급격한 감원으로 인한 정비 소흘을 야기한 코레일측의 정책 문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과 3년 전까지만해도 계획조차 없었던 KTX의 영등포역 정차와 마산역까지의 기존선구간 연장투입, 그리고 그 열차들이 KTX1만이 아닌 KTX 산천이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은 왜 지금의 언론 그리고 정부가 '코레일'의 정책적 문제만을 지속적으로 거론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합니다. 저같은 아마추어조차 단 한번쯤은 '해당 차량'의 주행 이력 (일반인은 5일밖에 추척을 못하지만 그들은 몇십년전까지 추적이 가능함에도)을 의심해보고 이렇게 조사를 해볼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코레일에 근무하는 베테랑분들이라면 더욱 확실한 원인을 밝히고도 남았을텐데, 왜 매번 사고만 나고 원인 파악과 그에 대한 발표는 속시원히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얼마 전 있었던 무궁화호의 객차 화재 사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당 열차는 2003년 디자인리미트사 (구 해태정공)가 공급한 무궁화호 마지막 신조 차량으로, 당시 디자인리미트사가 이를 공급하면서 철도청에 당부한 운행상의 주의점이 있었는데 (기존 열차와 호환성이 약하므로 가급적 신조만을 단일 편성할 것) 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철도청이 철도공사, 코레일로 속속 민영화 수순을 밟아나가면서 비용절감을 이유로 편성이 신조와 구형이 흔재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고, 이런 편성이 시작된 이후부터 신조 무궁화호는 잦은 흔들림과 더불어 차량환기부시설에서 고무 탄내가 올라온다는 제보가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 해당 사고차량 역시 2003년 신조 무궁화호로 당시에는 흔재편성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코레일이 얼마나 차량에 대한 기술적 정보에 무지하며 현장 관리에 무심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KTX산천의 기존선 운행 결정 역시 엔지니어측의 경고를 묵살 혹은 무시했을것이라는 추측이 나올 수 있는 훌륭한 근거가 되는 사건이기도 했다.



왜 마산역에 KTX가 그렇게 다수 편성될수밖에 없었는지, 왜 갑자기 영등포역에 KTX가 들어올수밖에 없었는지 자세한 정치적 내막은 모릅니다. 하지만 그 편성정책으로 인해 KTX산천의 설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존선을 140km이상 달리게 해야만 하고 그로 인해서 차량이 문제가 생기고 결함이 발생해도 위험을 각오하고 탈 수밖에 없을만큼 중요한 사안인지, 그리고 이런 사고들이 왜 '의혹'만이라도 당시 영등포역 정차와 마산역 정차가 원인이 아닐까하는 의견개진을 하는 언론이나 정부부처가 왜 단 한곳도 없을수밖에 없는지 모든 책임을 열심히 KTX의 국산화에 힘쓰고 주어진 조건에 맞게 개발해놓은 KTX국산화 개발진들에게 쏟아내는것일까요? 

간접적인 원인이라 할지라도 영등포역 정차 탓 아니냐?, 마산 운행 탓 아니냐는 의견이 화제가 되어버리는 순간 이를 공약하고 추진했던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입는 타격은 상상을 초월하겠지요. 이미 현장에서는 알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런 사고들이 단지 정치적 이득을 위해 국민들을 위험으로 내몰고 있음에도 조사결과를 묵살 혹은 쉬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이 나라는 미래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국회의원 권력, 정당의 권력이 국민의 목숨보다 우선시되는 나라에 뭘 바래야 할까요?


제발 오늘도 무사히입니다. ...아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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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글은 '카이스트'를 옹호하고자 하는 글도 아니고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고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카이스트생이 아니며 본 글에 나오는 사례들은 필자가 만난 카이스트생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것으로 지극히 주관성이 가미되어있을수 있음을 밝혀둔다.


카이스트는 원래 자살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빡센 학사일정이 있기도 하고 군 면제 혜택이나 100% 장학금 혜택 등 기존 대학들과 차별화되어있는 장점의 이면에는 그러한 장점을 소위 '개나소나'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정말 부던히도 많은 노력을 해왔던 역사가 있다. 불과 십수년전만해도 학점 내에 B가 한 번 끼어있으면 경고를 받고 그 이후 B를 한번 더 받으면 짤없이 퇴학이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평균 3.0 기준이 아니었고 징벌적 등록금 납부가 아니라 아예 퇴학이었다는 것, 당연하겠지만 이 공부밖에 모르는 학생들은 자신이 카이스트의 엘리트 라인에서 낙오되었다는 좌절감과 더불어 남학생의 경우 퇴학 즉시 군대로 끌려간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그 전설적인 '거푸집 침대'를 뒤로 하고 기숙사 옥상에서 몸을 던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게 너무 비인간적이라는 평가가 지속적으로 나오게 되어 바뀌게 된 게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퇴학 조치는 징벌적 등록금으로 한 과목이라도 B가 나오면 안되던 걸 전체 평점 3.0으로 완화시켰다. 물론 이 완화기준을 만든 계기가 반드시 '인륜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는데, 2000년 이후 이른바 카이스트 1세대들의 아들들이 과학고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에 돌입하는 연령대에 접어들면서 무작위로 뽑기보다 과학고에서의 에스컬레이션을 선호했던 부분으로 인해, 과학고의 '내신'과는 또 다른 객관적 평가를 해야만 했던 카이스트가 이들의 학력 저하를 문제 삼아 퇴학을 결정하게 될 경우 실세를 쥐고 있는 카이스트 1세대들의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웠으리라는 판단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은 파벌에 따른 눈치보기에서 나온 정책이라는게 안타깝지만 아무튼 기준은 이전에 비해 대폭 완화되었다. 이제 학생들은 '등록금'만 내면 학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남학생의 경우는 까딱 잘못하면 군대로 끌려가 인생 막장 태크탈수도있다는 똥줄타기 긴장감을 한층 덜 수 있게 되었다.

이공계 엘리트의 군입대는 곧 '시망'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 와서 자살자가 4명이나 나왔고 학생들이 이를 근거로 카이스트의 정책을 좀 더 완화해야 한다며 들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에 비해 '완화'되었기에 추가 완화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요구는 뭔가 투명성과 연관성에서 심하게 결여되어 있다. 우선 자살한 4명의 자살 동기가 4명 모두 '학업 부담' 이라고 아예 확정적으로 못을 박고 그를 빌미로 징벌적 등록금제도에 대한 부당함과 더불어 팩트에 가미되지 않았던 '영어 강의'문제까지 싸잡는가 하면 검찰은 여태 한번도 드러나지 않았던 카이스트 비리를 밝혀냈다며 연속콤보를 후려치고 있다.

영어 강의는 분명 문제다. 미친 짓임에 분명하다. 이건 개선해야 하는 게 옮지만 '지금처럼 국민적인 관심이 집중되었을 때' 터뜨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끄집어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정말 팩트가 코어에 근접했을때 밝혀내더라도 제대로 된 근거가 나오기 힘든 약자들이 지금처럼 '분위기를 타듯' 싸잡아 문제제기를 할 경우 향후 신뢰성 문제에 있어 후폭풍을 맞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살자 중 한 두명정도는 정말 확실한 관련 팩트를 제시할 만한 근거를 낼 수 있다지만 인천에서 살던 휴학생의 자살까지 끌어들여오는 건 너무 심하지 않았는가?, 관계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은 채 사건에 휘말려버린 카이스트 교수의 자살은 어떤가? 제각각 이유가 다를 수 있는 자살을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로 이용하기 위해 팩트를 싸잡아 일원화시킨 행위가 과연 그 주장에 대한 무결성에 도움이 되고 있을까?

사실 부정적인 의견만 있던 것도 아니었다.


카이스트가 내내 자살이 없다가 갑자기 올해 들어 4명이나 자살했다는 식의 보도 분위기도 그렇지만 그 자살자 4명이 정말 징벌적 등록금의 문제점에 의한 것이며 4명 모두 영어 강의에 반대하거나 수강 자체를 어려워했다는 점이 자살 동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가 지금으로서는 어디에도 없다. 그들의 주장이 부당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살이라는 팩트 하나로 자신들의 처우 개선을 주장하고 있는 카이스트의 주장이 이후 힘을 잃게 될 것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지금 기회를 잃고 싶지 않은 기분은 알겠지만 평소에 그러한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더 치밀하게 준비를 했어야 했고 향후 뒤통수를 맞지 않을 무결한 기회를 엿보았어야 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카이스트의 현행 제도는 '영어 강의'를 제외하고 현역 대학생들에게 공감을 얻기 힘든 주장들이 대부분이다. 카이스트는 '전교생 장학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카이스트는 원래 학비가 무료'가 아니라 '전교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는 학교라는 것이다. 그런 학교가 성적에 대한 잣대를 엄격하게 제공하고 그 성적에 도달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징벌적 등록금'을 내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장학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지금 카이스트생들은 성적에 도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징벌적 등록금'을 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것은 '성적이 낮은 학생에게도 장학금을 줘라'라고 주장하는 것밖에 안되는 것이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것이며 그런 주장이 동세대들에게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장학생의 자격


세상에는 '선택에 대한 책임'이 존재한다. 뮤추얼펀드가 원금손실이 벌어졌다고 증권사 찾아가 내돈 내놓으라며 멱살잡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나라에서 이 '선택적 책임'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인감도 있지만 한마디로 '니가 이것에 대한 허와 실을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타인에 의한 강요 없이 100% 자발적으로 선택한 부분은 전적으로 자기자신의 책임이다'라는 것이다. 100% 영어강의가 문제가 있다는 것, 징벌적 장학금 제도가 문제가 있다는 것 과연 그들이 '카이스트를 지원할 당시'에 몰랐을까? 그들은 그걸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카이스트를 선택했다. 그리고는 지금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근간을 책임질 엘리트들이라는 이들이 보이는 행동 치고는 너무 치졸하지 않은가?

카이스트는 원래 그런 학교다. 그리고 그런 학교여야만 한다. 학생들은 전원 장학금을 받고 있으며 다른 대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런 파격적인 제도에 걸맞은 우수한 학생들을 육성해내야 할 책임이 있고, 그에 걸맞은 우수한 학생이 되어주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학교에서 나오는 장학금은 국가 세금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처우 개선에 대한 주장을 거둔 채 닥치고 따라가라고만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고인의 의중과는 관계없이 그저 '남은 자들'의 편익을 위해 그들의 죽음을 싸잡아 이용하는 행위는 이후 행여 정말 카이스트가 학생들의 목소리를 내야만 하는 일이 생겼을 때의 발언권과 그에 대한 신뢰성을 급격히 떨어뜨린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들은 카이스트의 미래를 이야기하며 학교를 변화시키겠다고 하지만
결국은 지금의 자신들 안위를 최우선시하고 있음에 다름아니며,
이후 들어올 카이스트의 후배들을 위해 노력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현재 안위만을 생각한 나머지
오히려 카이스트에 들어올 후배들의 발언권과 신뢰도까지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그럴 자격은 없어보이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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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을 여성 독자분들에게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일단 하고 넘어가야 하는 이야기라 어쩔 수 없다. 남자들이 흔히 말년 제대를 앞두고 혹은 이미 전역한 군필남성들에게 '군대 개혁'이나 '군 구타 문제', '군 복무기간 단축'에 대해 물어보면 의외의 답변이 돌아온다 '개념없는 신병에게 구타는 필요악', '군 복무기간은 단축이 아니라 더 늘려야할 것', '군대는 지금보다 더 빡세져야 함' 등등 이미 자신은 그 의무에서 벗어났지만 적어도 내가 받은 고통보다는 다음 세대의 후임들의 고통이 조금 더 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자신이 겪었던 고통이 단지 (시기적으로 운이 없어서) 잘못 걸렸다는 억울함이 덜해지기 때문이란다. 자신이 몸소 겪으면서 그 문제점을 충분히 통감하고 개혁을 목청 높여 외쳤던 현역 시절은 간데없고 이미 자신은 관계없는 일이며 적어도 내가 이득은 못보더라도 손해는 보기 싫다는, (그것도 나보다 남이 더 피해를 봐야 한다는 마이너스 사고방식)이 팽배해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이렇게 된 데에는 군대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군대가 지금까지 개혁이 안 되도록 여론이 제대로 모아지지 않았던 원인에는 이같은 '나만 피해보기 싫다. 너는 나보다 더 당해야지 내가 덜 억울하다'라는 지극히 마이너스적 피해망상에서 출발했다는 것도 슬프지만 현실임에 다르지 않다.

철모에 머리 박아봤어?


대체로 지하철에서 이루어지는 이른바 '노약자석 실강이', 필자만 그런 건지 아니면 필자가 들었던 케이스가 특별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다수가 '할아버지'분들이다. 그리고 대체로 이런 할아버지들은 '젊은 남성'에게 시비를 거는 형국이 많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결국 위에서 예를 들었던 이른바 '마이너스적 피해망상'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한 번 들어보시라...

지금의 노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60세 이상, 즉 한국전쟁 이전에 출생해서 아직 '어른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경' 사상이 남아있던 한국의 경제빈곤기와 성장기를 동시에 거친 세대다. 이들의 젊은 시절은 원치 않아도 이미 사회적 분위기가 '어른은 당연히 공경해야 하는' 분위기였고 그래서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무조건 공경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지옥이라는 33개월 군 복무 시절을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그 33개월간의 구타가 만연하고 계급체계가 더욱 공고했던 당시 군대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은 절대적일수밖에 없다. 산업 혁명이라 불리는 60년대 후반 구로공단을 비롯한 각종 공업단지에서 폐병에 걸려가며 좁디좁은 기숙사 생활의 피폐함을 경험해본 그들이다. 물론 그 기숙사 문화는 33개월 군대를 겪어본 자들이 고스란히 와서 내무반과 그닥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음에 지나지 않았을것이다. 즉 그들은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도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인생선배들의 뒤치닥거리를 당연시하면서 살아왔다. 물론 그들의 희망은 사실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는데...

언젠가 나도 선배가 되어 지금 내가 하는 것과 똑같은 걸 후배들에게 시켜먹으며 편하게 지낼 수 있겠지


그런데 의외로 세상은 너무 빨리 변했다. 구로공단은 디지털단지로 변했고 자신들의 경력은 쓸 데가 없어졌으며 자신들 뒤로 '후배'가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들어와도 그들이 자신들이 당한 만큼 후배들에게 되값는다는 생각으로 대하는 후진적인 직장 문화를 젊은이들이 받아들일리 만무했다. 이들이 선배들에게 젊음을 바쳐가며 '쌓인' 걸 풀 데가 없어진 것이다. 그것도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해버려서, 자신들의 설 자리를 이 세상이 빼앗아가버린 탓에, 자신의 젊음을 보상해주지 않는 국가와 그들의 고생한 것을 인정해주려 들지 않고 공경과 존중은 잊어버린듯한 젊은이들이 마냥 야속하고 버르장머리없어보이는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세상에 무언가 요구할수 있는 지위는 아니다. 이미 지위란 지위는 다 잃어버려 설 자리가 없는 그들, 그러나 아직 젊은 시절에 대한 억울함은 다소 남아있어 그 중 일부가 지하철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쏠리는 것이다.

이들이 가진 국가에 대한 불만은 상상을 초월한다. 세상을 억지로 바꿔버려 자신들의 생존권을 빼앗아가면서 변화를 추구했다고 믿고 있다. 국가, 더 엄밀히 말하면 정치권이 이들에게 표를 얻기 위해서는 가능한 이들을 자극하지 않는 게 좋다. 그리고 이들을 법적으로 표가 나지 않는 선에서 달래야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노약자석'과 '무임승차권'이다. 그리고 노약자석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위해 지속적인 캠페인을 벌여 '고생하신 어르신들을 위해 우리가 준비했다'는 것을 열심히 표현하는 것이다. TV 미디어, 심지어는 초등학교 교과서 속에서도 나오는 이런 대대적인 캠페인 속에서는 굳이 노약자석이 아니라도 노인은 꼭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강요하는데 당연하지만 이런 무조건적인 캠페인에 '근거'따위는 없다. 근거를 붙였다간 노인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체면이 삶의 의미 그 자체가 된 그들에게 구차한 이유를 붙인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젊은 시절, 상관, 상사, 선배에게 아무 이유없는 무조건적인 공경을 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어르신이 불쌍하니까 도와줍시다. 혹은 어르신은 노약하시니까 앉게 해드립시다. 이런 식의 캠페인은 역효과를 불러올 것임에 자명할 터, 그래서 국가에서 하는 캠페인은 '닥치고 공경'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겨우 만들어준 '이거'를 노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두말할필요가 없다. 겨우 국가에서 자신들이 했던 고생을 인정해준답시고 만들어준 제도다 (사실 법적인 구속력 아무것도 없는데도) 겨우 인정받는 것 같아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 이 젊은놈의자식들은 이렇게 국가에서조차 인정해준 자신들을 *으로 본다. 당연히 화가 날수밖에 없다. 이젠 국가에서도 인정한 자신들이다. 젊은이들도 자신들을 인정해줘야 하는게 당연하다. 우리가 선배들에게, 상사에게, 상관에게 그랬던것처럼 우리가 헛기침 좀 하면 바로 하던 일 멈추고 벌떡벌떡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이 지금 젊은이들에게 씨알도 먹일리 없고, 그렇다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재판을 걸 수도 없다. 당연히 경찰권력은 이를 터치하기 힘들다. 괜히 터치해서 법적인 문제로 비화되면 판례가 생기고 이는 당연히 노인들의 노여움을 산다. 이는 곧 보수층 집결의 타격과 지지층의 표가 빠져나감을 의미한다.

이들이 주로 입에 달고 사는 말 '5공때도 이러진 않았어!', '박통이 최고야'라는 말은 정말 그 당시가 좋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 그들은 핍박의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만일 박통이 하던 그런 분위기가 계속되었다면 지금 자신들이 '어른'으로서 선배들에게 해왔던 대접을 자신들이 받으며 살 수 있는 토대가 마련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명박을 지지한다. 박정희의 향수를 그리워하며 박근혜에게 기대를 건다, 뭘 기대를 거냐하면 그것이 예전 자신들이 선배들을 봉양했던 그 시대의 '연장'을 이루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명박이 경부고속도로처럼 4대강 건축업 파고 박통흉내내며 5공의 재림을 만들어 언론탄압하는 '시늉'을 내면 이들은 흥분한다. 그리고 짝퉁 박정희 이명박이 내려오면 성골 박근혜가 자신들의 유토피아를 완성시켜줄 것으로 철썩같이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시절로 돌아가면, 자신들은 그동안 잃기만 하고 보상받지 못했던 젊음의 희생을 보상받을 일만 남아있기 때문이고 그동안 자신들을 무시했던 젊은애들이 자신들이 젊은 시절에 겪었던 것과 똑같은 고통과 설움을 당하게 될 것이므로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억울함이 덜해질테니까... 이른바 마이너스 피해망상의 극점이 무엇인지 아주 제대로 보여주는 셈이다.

즉 이걸 보고 노인들은 흥분하는 것이다. '아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그 시절의 상식이 이어지겠구나!' ...그들에게 있어 이명박은 정말 잘하고 있을수밖에 없는것이다.



애석하지만 이같은 젊은이들과 노인 사이의 갈등은 그 역사와 얽힌 사건의 깊이만큼이나 골도 깊다. 정부는 표를 위해 이들을 자극하지 않는 쪽을 택할 것이고 그래서 노약자석 문제와 무임 승차권 문제에 소극적이다. 이는 굳이 노인들의 고생을 알아줘서가 아니다. 아마 지금의 노인세대들의 비율 그리고 그들이 간접 영향을 끼친 2세대들 인구가 줄어들경우 정책은 냉혹하고 매몰차게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릴것이 분명하다. 참 안타깝지 않은가? 젊은이들과의 갈등을 만든 건 노인들이 아니라 결국 하나의 세대를 국익에 쓸모없다고 국격에 안어울린다고 그들의 인생과 삶의 터전을 깡그리 날려버리고 수치적 경제 발전을 위해 희생시킨 국가의 문제임에는 다른 말이 필요없으리라.

그들이 세상을 바로보고 제대로 된 표를 던지는 것도
무의미한 지하철 좌석에 집착하여 자신들의 버려진 젊음을 보상받으려는 것도
지금와서 변화를 바라기에는 아무래도 어렵지 않나 싶다.

지금 이 세상은
거짓말쟁이가 권력을 잡아
자신의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진실을 거짓말로 호도하고 있으니까....

그분들에게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통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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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특별 생방송으로 수재의연금을 걷는다든지 심장병 어린이를 돕는다든지 이웃돕기 성금을 걷는 풍경은 21세기에 이르러서도 과거의 유물에 머무르지 않고 올해도 계속 방송을 타고 지금도 인기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방송하는 TV 한귀퉁이에는 ARS 번호가 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전 세계에 보기 드문' 한국만의 독특한 '복지형 기부 문화'를 한국인만의 '정'을 보여주는 거라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올해는 사랑의 열매, 예전에는 사랑의 빵 ... 정말 수많은 복지단체들이 비리로 얼룩졌음에도 이러한 서민들의 작은 기부 움직임은 그리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나 방송에서는 추운 때일수록 방에 불조차 못때 떨고 있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해야 한다며 많은 사람들의 측은지심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우리나라의 전통으로 몇 십년이 지나 이미 OECD국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이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게 정말 정상적인 것일까요? 기부 방송은 언제나 좀 더 많은 기부를 한 사람의 사진을 제일 먼저 내세우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를 한 사람을 영웅으로 추대하는 등 '이 기부가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점을 역설하고 있는데 조금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기부가 '서민 복지'에 지금까지도 쓰여져야 할 만큼 이 나라의 복지 정책이 지금에 이르러서도 서민들의 기부에 손을 벌려야할만큼 정책이 형편없다는 반증이 아닐련지요?

독거노인들을 돌봐야 하고, 소년소녀 가장을 돌봐야 하는 건 국가의 역할입니다. 그걸 제대로 다 못해서 국민들에게 기부 명목으로 손을 벌리는 상황을 '당연한 듯'이 언제나처럼 예산을 짜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정말 잘 하고 있는 걸까요?

OECD국가 중 유니세프같은 국제 NGO가 경제 규모 대비 가장 고전하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인데 우리나라는 이들 국제 NGO에 기부를 하면 언제나 이런 이야기가 돌아옵니다.

'지금 우리나라 불우이웃도 다 못돕고 있는데 다른 나라 신경쓸 겨를이 있어?'

불우이웃 돕기가 잘 안되고 있어 그나마 오던 복지단체들의 지원도 끊겨 소년소녀가장,독거노인들이 한층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는 방송이 매년 나오고 있습니다. 이 방송은 의도적으로 기부를 하지 않고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은 국민들에게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라'고 강요합니다. 사실 국가 내 국민들이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는 건 국민들이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해당 지방자치단체장, 크게는 보건복지부장관과 대통령이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 할 일인데도 말입니다.

정치계가 무상급식, 무상의료, 이런게 해야 한다 안해야 한다로 의견이 갈리는 것 자체가 창피하고 부끄러운겁니다. 대통령이 골프장 운전 잘 못하는 게 부끄러운게 아니라 어째서 당신 나라는 G20을 개최하면서도 그 작은 나라에서 추위에 떠는 계층이 생기고 있는지 되묻는 해외 정상의 질문에 부끄러워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나라 내부가 아니라 더 어려운 나라를 지원할 만한 경제능력을 갖추었음에도 아직도 내부 불우이웃조차 몇십년째 나라 스스로 해결 못해 국민들에게 손을 벌리는 통해 정작 국제 NGO가 뻘쭘해지는 지금의 상황이 정말 정말 부끄러운 겁니다.

국민들이 유일하게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
연말연시에는 불우이웃에 관심을 가지면서..
투표할때는 뉴타운 이외에는 눈과 귀에 집어넣을 생각조차 안한 결과
이웃돕기 ARS에 의존하는 걸 몇십년째 아예 당연하게 복지 계획에 넣어버리는
한심한 정치가가 이 땅에 활개치가 한 바로 그 부분일 것입니다.



진정 행복한 나라는 '영웅'을 가진 나라가 아닌...
'영웅'이 필요하지 않은 나라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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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곳곳을 여행하면서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고 느꼈던 점은 '식당들'이었다. 맛이나 이런 게 아니라 메뉴판이랑 가격을 당당히 입구에 걸어놓고 있었기 때문인데 언제든 주머니 사정에 맞게 들어가기 전부터 메뉴를 정할 수 있도록 해놓은 점이 그랬다. 우리나라에서는 가격은 고사하고 메뉴조차 들어가기 전에 알 수 있게 해놓은 식당이 좀처럼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혹자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밖에다가 메뉴와 가격을 공개하는 건 경쟁하는 건 요식업으로서 자존심이 상한다'라고,
글쎄? 메뉴와 가격을 밖에 내놓고 메뉴로서 선택을 받는 것과
메뉴와 가격을 모른 채 식당의 어떤 면 (방송 소개, 누군가의 사인, 블로그 포스팅)등을 보고 선택하는 것
어떤 게 요식업의 자존심을 긁고 있을까?


- 스마트폰이 부쩍 많아진 걸 실감하고 있다. TV에서 일반 휴대폰 광고는 이제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우선 '산'다음 그 것이 어디에 필요한지 생각해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혹은 '전혀'쓰지 않음에도 '대세'이기 때문에 휴대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꾸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 휴대폰 제조 메이커들이 스마트폰 이전에 벌여온 행태, 해외 출시 제품과 비교해 성능이 훨씬 떨어지는 제품을 내놓았던 작태가 스마트폰에 이르러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얼마든지 형편없는 성능의 스마트폰을 외국과 같은 가격에 팔아도 잘 팔릴 테니까, 우리가 그런 기업들의 행태를 비난하기 전에 '제품의 소비'의 측면에서 얼마나 '타의적 겉멋'이전에 '자의적 합리성'을 추구한 적이 있기나 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 조용함의 소중함을 점점 모르고 살게 되는 것 같다. 시끄러운 도시에 살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소음은 당연시되고 있고 그로 인해 받는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 도심 속에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새벽 시간에 걷는 걸 참 좋아하는데 이젠 그마저도 기회가 잘 없다. 소음을 빼고 난 도시의 야경은 잔혹할정도로 아름답지만 사람들이 마천루 펜트하우스에서 야경을 보는 심리는 생각해보면 꽤 비겁한 게 아닐까? 야경이 의미하는 것은 밤이 되어서도 쉬지 않는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증거일지도 모르는데, 그것을 '소음'이 완전히 차단된 채로 반짝이는 빛만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안도'한다는 것은 마치 음소거한 스너프 필름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조금은 무섭기도 하다.

오늘도 그 치열하게 반짝이고 시끄러운 밤 속에서
내가 알고 있을지도 모를 누군가가 중병에 걸려 목숨을 잃고 급성 질환으로 별세하고 있다.
누군가는 ... 그 비명에 귀를 기울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측은지심을 발휘하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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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가 상업적이니 뭐니 비판을 받지만 미국 영화가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는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 이외에도 가장 초창기 무성흑백영화부터 지금까지 뭐 하나 '독창성'에 투자하는데에 아무런 인색함이 없었던 '트랜디 세터'의 자세를 한번도 잃으려 들지 않았던 사실입니다. 찰리채플린부터 아바타까지 그들은 '기술'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에는 신흥도상국에 뒤질지언정 그 기술을 어떻게 영화에 녹아들고 그 녹아든 영화를 어떻게 관객들에게 다시 한번 녹아들게 만드는지에 대한 연구를 단 한번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요즘 한층 뜨고 있는 스티브잡스의 '인문학'에서 나오는 제품 개발 철학에도 고스란히 보여지고 있죠. 이는 실패에도 의미가 있다거나 하는 위선적인 것이 아니라 정말 단순하게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 같은 게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헝그리 정신 이딴 게 아니라 의외로 '세계정복'처럼 인류 본연의 '숭고한 본능(?)'같은 동기부여가 작용하고 있죠. 다시 말해 그들은 작은 사과상자에도, 싸구려 캠코더에도 자신의 철학이 다른 사람들의 철학에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함 그대로 세상에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물론 순수함만 유지할 뿐 거기에 고집은 없죠. 먹기 불편한 감식초에 우유를 넣거나 세우기 힘든 달걀을 한쪽을 깨서 세우고 조롱받으면서도 눈을 똑바로 뜨고 세상을 바로보는 고집이 아닌 순수함이 어떻게 보면 미국이 가진 부러울 정도로 강한 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감상문에 서문이 너무 길면 뒤로버튼이 바빠집니다만 '라스트 갓 파더'를 보는 내내 저 양면적인 무언가가 머릿속을 맴돌아서 영화 집중을 너무나도 방해했었기에 굳이 구독율을 무릅쓰고 언급할수밖에 없었던 건 사실입니다. 스트레이트하게 말하면 이 영화는 더 많은 욕을 먹어야 하고 그 욕을 먹고 방어를 하는 건 '네티즌'도 심형래 감독의 '팬'도 아닌 '심형래 감독 본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악플을 찬성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저는 모쪼록 제가 생각하는 것 만큼 심형래 감독이 0부터 시작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기에 0부터 시작하는 것에 전혀 관대함을 가지고 있지 않은 대한민국과 맞서주길 바라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는 한없이 어렵습니다. 개그 코드는 심형래 감독이 오래 전 만들었던 고전 캐릭터를 사용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당시 사용했던 개그 패턴을 전혀 수정하거나 현대에 맞게 개량해보려는 노력이 조금도 없었고, 이게 자신이 활동했던 시기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거였는지, 아니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고전이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신선함이라는 점을 이용한 전략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패션이 돌고 돌아 20년전에 유행한 스키니진을 유행이 돌아왔다고 그걸 당시 디자인 그대로 입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조금의 개량에 대한 노력도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의 활용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운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그 의미 자체를 오해하고 있는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은 '스토리의 완성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토리'를 얼마만큼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고 받아들일 수 있게끔 만드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전달 수단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뭐 의미는 다르겠지만 이번 영화도 이 '스토리 텔링'이 매우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스토리 텔링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 '스토리 전달법'자체를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헐리웃 코미디 영화에서 다수 쓰였던 갖가지 친숙한 패턴 씬들을 가져와 조합하는 것으로 웃음을 유도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영구'를 기억하고 그의 개그에 웃음을 보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개그 코드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여기에서부터 아주 큰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메르헨을 읽어보면 기승전결이 아주 명확합니다. 이는 그걸 읽는 아이들의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머릿속이 난해해지면' 집중을 하지 않기 때문이죠. 생각을 하려 들지 않고 먼저 날뛰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데에 익숙한 살아있는 악마들(?)을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기승전결에 군더더기가 없이 스트레이트하게 흘러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정직'하기 때문에 스토리에 트릭이나 반전, 앞뒤가 안맞는게 있으면 바로 '항의'를 하게 되니까요. (아이들과 같이 처음 메이저 영화를 보게 될 경우 극장에서 아이들 뛰노는 소리 이외에 가장 많이 들리는 게 '엄마 저게 왜 저렇게 되는 거야'라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죠)


코미디 영화는 머릿속을 단순하게 비우고 최소한의 배경 지식만을 가지고도 감성적 집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메르헨과 일치합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최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스토리의 단순화죠. 그리고 군데군데 삐져나온 잡초들을 반드시 제거해야합니다. 만일 간지럼을 태우기 위한 깃털에 물이라도 좀 묻어있다면 그 사람은 간지럼을 느끼기 어려운 법이니까죠. 라스트 갓 파더는 코미디 영화였고 포스터에도 '더 웃기지 못할 바에는 돌아오지도 않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깃털의 질 만큼이나 깃털에 붙어 있는 '웃음을 방해하는 물기'를 제거하는 데에도 좀 더 많은 신경을 썼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혹시 심형래 감독이 이 깃털에 달린 물은 '깃털이 품질만 좋다면 얼마든지 무시될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면 정말 아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걸 무시해줄 만큼 관객이 아직 심형래 감독에게 '거장'이라는 존중을 해주는 단계가 아니고 더 아쉽게도 깃털 역시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깃털을 더 다듬는데에 노력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심형래 감독은 '감독'이기 때문에 그것만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일 뿐이죠. 여기에서 한가지 더 아쉬운 점은 심형래 감독이 아무리 충무로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과 철학을 제대로 공유하는 사람과 어느 정도 분업을 해오는 일에도 조금은 신경을 써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제대로 완성된 기량을 갖추지 못한 미완의 인재에게 각본, 감독, 연출, 주연까지 굵직한 직책만 1인 4역... 부담이 되지 않을 리 없겠죠.


그렇다고 그 깃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 이번 영화에도 마치 김명세 감독이 보여줬던 '순수한 열정'이 보였다면 조금은 만족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번 영화는 그가 도대체 '무슨 철학'을 보여주려고 했는지, 무엇을 지켜오려고 했는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모쪼록 제가 찾지 못했던 것이길 바랍니다) 개그 영화로 그가 시도했던 모든 것들, 화면 구성, 연출, 하다 못해 패러디적 요소 어느 하나도 '독창적'인 부분이 어떤 것인지를 도무지 알수가 없더군요. 영구 캐릭터, 그리고 헐리웃에서 정말 오래 전부터 오랫동안 쓰여왔던 수많은 개그 코드들을 재현하면서 그가 바래왔고 표현하고 싶었던 그 영화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게다가 한 가지 영화나 감독에게 일관되게 영향을 받은 반쪽성 순수성이라면 좋겠습니다만,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감독들의 갖가지 장면들을 버무린건지 모를 만큼 이미 '순수성'으로 말하기조차 민망할정도였습니다.

용가리와 디 워까지 오면서 그에게 지지를 보냈던 사람들의 명분은 '쥬라기 공원'에 대항하기 위해 '컴퓨터를 수입하고 인재를 수입해서'하는 게 아니라 '헐리우드의 처음이 그랬고 스필버그의 데뷰가 그랬듯이' 우리도 가장 '순수하게 우리만의 힘으로' 풀뿌리 영화기술로 헐리우드에 맞서보자 라는 그의 '도전정신'이었습니다. 그의 영화에서 일반적인 영화적 재미가 많은 부분이 결여되어있을지언정 그가 말했듯이 '영화기술'을 추구했던 그 무언가로 우리가 순수하게 우리 기술로 해내보겠다는 열정에 박수를 보냈고 영화표를 구매한 돈으로서 '기부'와 '응원'을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말 그가 '헐리우드'가 처음 '주변에 아무것도 보고 베낄 게 없을 때 백지에서 머리를 쥐어짜내듯 만들었던 풀뿌리 기반'을 추구했기를 바랍니다. 3D를 빼고 단순 영화로서 그가 보여줄 게 단지 헐리우드의 갖가지 장면을 짜집기하듯 만들어내고 거기에 자신의 가장 큰 히트상품인 영구캐릭터를 활용하여 티켓을 끌어모으려는 '불순함'이 아니었길 바랍니다. 그가 단지 한국어로 영화를 만들면 자신이 '영구'시리즈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못했다거나 혹은 발전했더라도 그가 영구아트 브랜드로 영화를 만들면서 충부로부터 당했던 굴욕적 처우에 따른 트라우마로 다시 한번 그 정도의 영화취급을 받을 것을 두려워해 무리해서 영어권 배우들을 대거 기용해 영어로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헐리우드에 맞서는 풀뿌리를 만드는 것이 아닌 단지 '한국이 헐리우드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수많은 헐리우드 실력파 스텝진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미국 활동에 힘을 보탠다는 의미로 원더걸스를 출연시킨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애니메이션이 단지 애들거라는 것에서 출발했지만 거기에 멈추지 않고 애니메이션 그 자체의 순수성을 유지하면서 끌어올릴수 있는 궁극을 끌어내 지금의 누구나 볼 수 있는 가족 문화가 되었던 것처럼 그도 그가 예전에 출연하고 찍어왔던 아동용 히어로 영화에서 배웠던 그 무언가에 대한 순수성을 유지하면서 그 순수성을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헐리우드 영화에서 상식적으로 벌어지는 시나리오 패턴'처럼 각인될 수 있도록 완성도를 궁극적으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그것을 가감없이 관객들이 소화할 수 있도록 책 읽어주는 사람의 역할에 대한 연구 역시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헐리우드 키드'가 아닌 '코리안 어덜트'를 꿈꾸며 'Korean Standard'를 만들 것을 평생의 꿈으로 삼고 있는 사람에게 심형래 감독 당신 한 사람으로 인해 이 나라가 다시는 '헐리우드 키드'가 아닌 사람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제 꿈과 당신의 꿈이 조금의 연결고리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이 글이 10년 후 당신이 만든 '심형래 Film Standard' 를 마침내 인정해준 수많은 당신의 팬들에 의해 악플로 초토화되어 블로그에 사과 포스팅을 게재하게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정말 즐겁게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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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쉰 지 2주가 되어간다. 내가 고집스럽게 아르바이트를 했다가 관뒀다가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없다.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지겹고 쉬고 싶을 때가 있다. 이때 쉬면 진짜 좋다. 이 쉬는게 참 지겹게 느껴지면 그때 다시 아르바이트를 잡고 일을 한다. 물론 생활비는 그렇게까지 쪼들리지 않을 만큼 계획성있게 살면 되니까, 다른 사람들은 무슨 배짱으로 알바를 그만두냐고 묻는데, 사실 알바 그만두는 경험도 필요하다고 믿는 나로서는 내 갈길 가기 바쁠 뿐이다.

근데 내가 보기엔 범어사 사건도 딱히 내 이러한 생활습관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기독교는 인력도 시간도 넘쳐나는데 할 일이 너무나도 없다. 하지만 그냥 조용히 기도만 한다? 열심히 사는 데에 익숙한 대한민국 국민은 그러면 왠지 예수님에게 성의를 덜 보이는 것 같아 불안하다. 그래서 성경에 쓰여 있지 않아도 ...아니 안 쓰여 있으면 비스무리한 구절을 멋대로 해석하거나 심지어는 아예 새 구절을 만들어서라도 뭔가 정당화시킬 거리를 만들어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는 거다. 위험 지역 선교도 그 중 하나인데, 그들에게도 논리가 있다 '성경 읽어보면 이거 안 하면 안되는 거'라는 걸 알게 된다는 거다. 응? 뭐라고?

교회는 사람이 넘친다. 게다가 교회에 주둔하는 시간도 제법 길다. 그냥 교회에서 찬송가부르고,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스케줄이 남아도는거다. 그래서 이들은 팬덤을 강요한다. '무언가 하나님에게, 예수님에게 사랑을 표현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놀랍게도 서로 '예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믿)도록 '경쟁'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이나 예수님은 말이 없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서 종교에서는 '마음속에 있다'라는 것을 강조한다. 모든 원인은 바로 이 '마음속에 있다'에서 출발한다.

마음속에 있다는 것은 결국 '정신적인 부분'이다. 다중인격이 아니라면야 '타인'의 감정이 아닌 100% 자신의 감정이다. 에수님의 소리라고 들리는 것 모두 사실 '자기 자신'의 '이성'이며 '마음의 소리' 인 거다. 즉 자기 자신이 '예수님이 말씀하신다'고 믿는 그 모든 게 사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깨닫고 일깨워져서 행동하는 것에 포장을 씌우는 셈이다. 즉 스스로의 '판단' - 단군 목을 자르면 예수님이 날 좀 이뻐해주지 않을까? - 가 결국 마음의 소리가 되고 그 마음의 소리가 에수님의 소리로 덧씌워져 행동으로 옮겨진다는 거다. - 예수님이 시켜서 목을 자른 것 -으로 철썩같이 믿게 되고 그렇게 믿은 믿음은 전파되기 쉽다. 원래 신앙이라는 이름의 '광기'는 최면같은 임팩트가 강해서 잘 옮기 때문이다.

범어사 사건이 '누군가가 시켰던' 일인지 정말 '스스로의 판단'에 의거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결국 '누군가에 의해서 촉발'된 하나의 '예수님에게 잘 보이기'이론이 다수의 동의를 얻었고 그 중 한 명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선수를 치기 위해 (선생님께 일러바치기 좋아하는 반장같은 존재랄까?) 남들이 망설이던 틈을 타 재빨리 행동으로 옮기는 거다. 그리고 그걸 '인터넷'에 공개한다. (흔히 선수를 치는 성격들은 자신이 한 행동이 정당한지 아닌지에 대해 뒤늦게 확인받고 싶어하는 심리적 불안감이 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잘 했다는 것'을 반드시 인정받기를 바란다. 어린애들이 뭔가 실수를 했을 때 열심히 자기 편 배심원을 만들려 애쓰거나 뭔가 힘이 있는 사람에게 '자기 변론'을 요구하는 행동패턴과 흡사하다 하겠다.

출처 '마린블루스' http://www.marineblues.net/marine/index1.htm


최면에 대한 일설 중에는 '뇌 기능을 저하시켜 초등학생 수준의 뇌 기능으로 나오는 상상력이나 돌발 발언을 유도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어느 한 곳에 집중하다보면 뇌 기능이 단순해지고 경험에 의한 판단력보다는 직관에 의존한다. 근데 이게 '종교'라는 심리적으로 가장 나약한 부분을 공격하는 단계에 이르르면 마치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는 반 최면상태가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보통 '어른들'이 말하는 것에 잘 반항하지 않고, '보는 것'은 열심히 따라하며,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철저하게 복종하는 행동 패턴을 보이는데, 지금의 기독교에서 일어나는 '일부' 사람들의 행동 패턴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겠다.

이 어린아이 상태는 생각보다 매우 기분이 좋다. 뇌가 편해지고 누구나 어린아이들처럼 아무 생각없이 살고 싶어지는 욕구가 있으니까, 성인이 되면 제일 불안한 게 자신을 주도해주는 절대자가 없이 혼자 사회에서 싸워야 하는 부분인데, 이런 약점을 잘 이용해서 절대자를 만들어 어린아이인채로 있게 해주는 종교적 특성이 이와 비슷하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많아지면 행동이 거침이 없고 남을 배려하거나 하는 건 거의 없다. 자기 자신을 욕하는 것에 매우 공격적이 되고 결정적으로 '잘 운다'


그냥 어린아이들로 살게 놔 두면 좋겠지만 교회라는 집단이 그걸 그대로 두지 않는 것 같다. 마치 집에 부모가 없으면 형이 부모노릇을 한다며 동생을 몽둥이로 패는 풍경이 일상적이었듯이 지금의 일부 교회 목사들은 자신이 부모 (예수님이나 하나님이 지금 안계시니) 대신이라고 말하며 '어린아이들을 다스리겠다고 선언한다. 물론 어린아이들이 이를 거역할리가 없다. 당연히 돈은 기본이고 시키는 건 다 하게 된다. 예수님에게 아낌없이 주듯이 목사에게 아낌없이 가진 것과 심지어는 몸까지 바친다. 그들이 말하는 '내가 예수니까 나에게 몸을 주면 천국간다'라는 이 제 3자가 보면 어처구니 없는 썰을 믿는 이유는 당연히 그들이 '어린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는 심리상태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그쪽 사회가 난교를 하던 돈을 갖고 튀건 내 돈이 아니고 내 몸이 아니니까 별 신경은 안쓰지만 단속 안되는 '어린이들'을 좀 어떻게 해보고는 싶다. 근데 이 자칭 부모들은 이들을 어떻게 통제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마치 '애 기죽을까봐' 마냥 감싸고 도는 부모처럼 말이다.

아 그 부모들은 진짜 '애들을 사랑하기라도' 하니 다행이지만...
자칭 부모들은 먹고 땡이니 그것도 문제라면 문제일까나...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정말 그들이 말한 대로 '예수의 부활'을 간절히 바란다.
와서 부모 역할 좀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다.
애가 잘못하면 원래 부모들이 사과를 해고 책임을 지는 게 이 세상의 미성년자법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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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에 가보면 어디 어디 블로그, 누구누구 연예인, 어디어디 방송국이 다 왔다갔다는 팻말을 무진장 걸어두고 있다. 연예인들, 맛집 블로거들, 방송국 요리프로그램 담당 스텝들은 정말 대한민국의 가장 표준화되고 대중적인 '맛있음'을 느낄 수 있는 어떤 지표라도 되는 것일까? 어차피 그들도 자기 입에 맞으니까 오는 것 아닐까? 오히려 담배나 술에 쩔에서 혀가 완전 둔감한 사람이 저 세 부류에 있다거나, 바빠서 평생 식당밥만 먹어서 화학조미료 함량이 제일 높은 식당을 선호하는 사람일지도 모르잖은가?

- 옛날에는 일찍 결혼하고 얼른 어른이 되어서 당시의 14살은 지금의 14살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어른스러웠다고 한다. 현대는 사상 최악의 버릇없는 젊은이들의 천국이 되어가고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옛날 평균 수명이 45세라고 하면 지금의 평균 수명은 적어도 60살은 넘으니까 인생 전체를 100으로 봤을떄 어차피 인생 전체에서 철없는 시기에 대한 비중은 거의 똑같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14살에 철이 드는 옛날이라고 한다면 인생의 1/3을 살아야 철이 든다는 거라면 현대로 치면 적어도 25살은 되어야 철이 든다는 계산이 나오는거다. 의학 기술의 발전이 불러온 내재적 태만이 이런 결과를 불러일으킨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빨리 철들면 빨리 죽는건 도시전설보다 쬐끔 더 신빙성이 있을 정도로 갖가지 케이스가 넘칠정도로 있다는 사실이다. 오래 살려면 좀 늦게 철드는 편이 좋은 것 같다.

- 우리는 지금 남한에 살고 있지만 북한이 지금 전 세계적인 기준에서 얼마나 후진적인 뻘짓을 하고 잇는지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다. 이건 우리나라가 특별히 북한을 많이 깎아내려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국민적으로 꽤나 기밀급의 정보까지 (정말 기밀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보급되는 것 같은데, 반대로 북한의 정치 실정에 대한 정보만큼 우리는 남한 내부의 정보를 정확하게 잘 받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말 우리가 북한을 정말 공정한 눈으로 보는 것만큼 우리나라를 제 3국에서 보는 것과 똑같은 시선과 정보량을 충분히 얻고 있는걸까? 가장 가까운 곳이 가장 멀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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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내건 TV CM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뉴스도 안보는 여자들...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되었던 것인데, 이것이 한나라당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이 아닌 '논란'이 된 까닭은 실제로 여성들의 뉴스 시청율이 상당히 낮았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으로 언론의 소비 주체가 옮겨간 지금에서도 페이지뷰 별로 가장 많이 본 뉴스의 대부분은 연예기사이며 이는 인터넷 뉴스의 경우 TV 뉴스와는 다르게 양성이 비교적 고른 비율로 소비하기 때문이다. 즉 기본적으로 여성들의 뉴스 시청율은 일일연속극에 밀려 언제나 오를 생각을 하지 않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이 광고가 직접적으로 한나라당에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는 것이 항간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왜 TV뉴스는 여성들에게 외면을 받는 것일까? 양쪽 중 먼저 여성의 입장을 살펴보면 '관심이 없기'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 여성들이 늘어났을지언정, 뉴스에서 나오는 누가 대통령이 되었다든지, 누가 정치적 사건을 일으켰다든지에 대한 정치계 뉴스나 대기업들의 지표나 실적 위주의 경제 지표만을 반복적으로 보고하는 경제 뉴스, 여기에 보너스로 스포츠 뉴스에 이르기까지 사회 진출한 여성이 볼만한 섹션은 그다지 많지 않다. 여성들의 뉴스 외면이 먼저인지 방송사들의 편향적 편집 행태가 먼저인지는 몰라도 지금의 뉴스 구성은 지극히 현 주요 시청층인 '30대 이상 남성'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은 분명해보인다.

여기에서 주의깊게 봐야 할 부분이 바로 '남성'이 아닌 '30대 이상 남성'이라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 '30대 이하의 남성'역시 여성 못지 않게 뉴스를 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좀 더 간단해지는데 다시 시점을 뉴스 본질적인 부분으로 옮겨보자, 여성들 그리고 30대 이하 젊은 층들이 뉴스를 외면하게 된 이유를 물어보면 절반 이상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대략 이런 대답이 나오면 주 시청자인 '30대 이상 남성'에게서 이런 일갈이 날아든다

'이런 무식한 **같으니라고'

명쾌한 해답이 나왔다. 즉 30대 이상의 '사회에 진출해서 초년생 티를 벗은' 남성들은 지금의 뉴스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바꿔말해 사회에 진출해서 초년생 티를 벗을 정도의 경력이 쌓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레벨의 뉴스가 지금 현실에서 방영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게다가 이것은 순환적인 집단성을 띄면서 직장 내에서의 대화나 업무 상 반드시 익히지 않으면 정상적인 사회 생활의 커뮤니티가 이루어질 수 없는 압박이 있기에 일반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이나 20대 젊은이라 할지라도 그 조건 자체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음은 물론이다.

모르면 책까지 읽어가며 사회에 섞여야 하는 30대 남성들에 비해 그 밖의 계층은 그 정도의 절박함은 없다. 30대들의 일갈은 '자신들'이 지식을 얻기 위해 했던 고생에 대한 자발적인 고평가에 기인한다.


즉 지금의 TV뉴스는 정말 다양한 시간대의 뉴스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뉴스 포맷에 있어 각 시간대별로 새로 들어온 소식을 갱신하는 것 이외에 어떤 개성도 없는 구성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낮뉴스, 저녁뉴스, 9시뉴스, 마감뉴스 제각각 사람들의 생활 패턴에 따라 가시청층이 다른 것이 엄연한 현실임에도, 각 뉴스별 기사 꼭지는 전혀 차이가 없다. 단지 각 뉴스들이 단순 소식 전달에 그친 것을 9시와 마감 뉴스가 약간의 구체화를 하는 정도다.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30대 이상 남성들이 보기 힘든 낮뉴스, 저녁뉴스까지 이들을 위한 기사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왜 이지경이 되었는지를 설명하자면 방송계 보도국의 어처구니없는 상하관계에 근거해야하기에 이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미뤄두도록 하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뉴스의 내용 구성을 짚어보자 필자도 뉴스를 열심히 보는 편에 속하지만 몇 번이고 갸웃거리게 만드는 단어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등장한다. 대부분 준 전문가급의 학술적인 용어들인데 대부분 경제 뉴스에서 주로 등장한다. 'BIS비율', '분식회계', '재무지표', '채산성악화' (비교적 좀 알려진 단어들만 나열해도 이정도다) 이 단어를 이용해서 뉴스를 하나 만들어보자

'A은행은 재무지표상의 채산성 악화로 인해 BIS비율이 급락한 나머지 결국 분식회계를 하다 금감원에 적발됐다'

꼴랑 저 말 한마디 하고 끝내는 뉴스, 재무지표가 무슨 뜻인지, 채산성 악화가 무슨 뜻인지, BIS비율이 뭐고 이게 떨어지면 뭐가 안좋은건지, 분식회계가 대체 무슨 잘못인건지 한 마디 설명도 없다. 답답하면 인터넷 검색해보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경제 뉴스의 대부분은 저런 전문용어의 나열로 시작해서 그런 단어를 쓰는 기자들의 잘난척으로 끝을 맺곤 한다. 이런 뉴스 내용을 과연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 못한 새내기 사회 초년생 젊은이들과 직접적인 경제 활동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여성들이 바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문제는 더 있다. 저 기사에 나온 전문용어들을 모두 이해해서 경제 뉴스를 전부 알아듣게 되었다고 치더라도 그 뉴스 내용이 젊은이들과 여성들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경제 신문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제 뉴스는 30대 이상의 남성들이 가지는 일종의 레저활동 즉 '직접투자'에 몰려있다. 은행들의 행보, 대기업들의 실적발표, 환율, 부동산 등 30대 이상의 사회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고 실제로 이런 정보들이 주식 투자나 펀드, 부동산 투자에 활용하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이와 큰 관계가 없는 젊은층과 여성들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정보라는 것이다. 이쯤해서 30대 이상 남성들의 일갈이 한번 더 터진다.

'세상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좀 가지란 말얏! 남의 일이 아니라고!'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여성들이 주로 관심을 가지는 소비주체의 생활경제에도 '물가'라는 관점에서 수출입 지표등이 영향을 끼칠 수는 있다. 기업들의 실적에 따른 투자 확대 여부가 취업 시장 활성화에 영향을 끼쳐 젊은이들의 최대 화두인 '취업'에 영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그런데 그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있어 지극히 한쪽에 편향된 전문정보를 단지 그 편향되지 않은 계층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일일히 자신에 맞게 계산하고 해석해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은가? 방송은 공공재이며 민방은 서비스업이다. 30대 이상의 남성들이 필요한 정보를 알기 쉽게 듬뿍 제공하는 수고를 하는 것만큼 그 이외의 계층을 위한 분석, 체계적인 정보 제공을 해줘야 할 필요성도 분명 있는 것이다.

물론 낮 시간에 방영되는 생활경제를 접목한 뉴스 프로그램이 이에 대한 수요를 어느 정도 해소해주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오는 정보들은 지극히 단편적인 '물가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말해 '물가 정보'라고 해서 지금 가락동에서 배추랑 무가 얼마에 팔리고 있다든지 보여준다던지 새롭게 유행하는 계절 상품같은 걸 소개하거나 물 절약 노하우같은 매거진성 기사들이 오히려 뉴스를 와이드쇼화 시켜 기존 뉴스에 대한 거리감만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과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이미 '다 된 밥'을 떠먹여주는 게 아니라, '밥은 어떻게 짓는지', '숟가락은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매번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길라잡이'일 것이다. 단지 '난 잘 하는데 넌 왜 못해'라든지 '다들 잘 하는데 그거 못하면 무식한 것'이라는 식의 우월적 전달이 아닌 치아가 부실하던 튼튼하던 누구나 꼭꼭 씹어 넘기고 피와 살이 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한다.

메스미디어는 학교에서 5년마다 갱신되는 뒤쳐지는 교과서보다 훨씬 빠르고 현실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이러한 정보는 학생 이후로 끝난다는 교육의 개념을 바꾸어 '평생교육'으로서의 기초가 되어주고 있음은 두말할여지가 없다. 뉴스의 장점은 대학과는 달리 남녀노소 신분에 관게없이 누구나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조건에 제공받는 가장 현실에 가까운 지식이라는 점에 있는 만큼 제작 주체에 있는 방송국으로서는 누구나 소화가능한 포맷으로 제작되어야 할 암묵적인 사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방송사당 하루에 편성되는 뉴스 프로그램은 약 6~8개 총 시간으로는 5~6시간 정도, 2시간동안 같은 뉴스를 3~4번 반복하는 아침뉴스를 제외한다면 3~4시간, 한편당 30분이 채 되지 않는 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이런 적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너무 억지로 쑤셔넣으려 하다보니 알기 쉽게 차분히 설명하기보다는 단순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는 '전문용어'의 남발로 이어지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방송국들은 결국 '국민들의 알권리'를 내세우지만 그것을 정작 국민들에게 전달할때는 '귀차니즘'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성들이나 젊은층이 뉴스 보기를 포기한다면 그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서민 경제가 나빠지고 취업이 어려워지는 이유가 결국 이런 어려운 단어를 써가면서 현대적 정보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정보 취약 계층을 노려서 속이고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자들에게 있음은 두말할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제대로 된 여론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국민이 현실정보에 눈을 떠야 한다. 언론의 일방적인 정부편향 대기업편향 보도나 정부의 경제발전과 관련된 언론장악을 통한 억지주장을 바로보기 위해서는 물을 마시듯, 공기를 마시듯 자연스럽게 내 몸에 실시간 정보들이 동화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언제나 세상은 국민들의 옮은 판단과 바로보는 눈 속에서부터 바뀌는 법이니까..

2부에서는 왜 방송국들이 그렇게 시간에 쫒기면서 뉴스를 계속 축약하고 있는지와, 어려운 단어를 남발하고 심지어는 재생산까지 해내고 있는 또 다른 이면, 지방 방송 뉴스의 특징 없는 안정적 시간 배분에 따른 파행, 서울집중적인 불균등화된 알권리 문제 등을 다루어볼까 한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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