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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김태희 반대 시위가 국내 주요 뉴스와 다큐멘터리에 보도되는 등 일본의 젊은 극우들 이른바 ‘넷우익’의 활동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새로 들어온 젊은이들의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신선함 없이 예전에 했던 주장 그대로 ‘독도는 일본 땅’이고 ‘동해는 당연히 일본해’이며 ‘종군위안부는 일본으로 돈벌러 온 매춘부’라는 주장은 무려 40여년이 넘어서까지 그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을 넷우익의 입으로부터 들려오고 있다.


일본 극우들은 어떻게 역사의식이 옅고 과거에 집착하기보다는 세계화에 보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한마디로 극우따위엔 관심도 없을) 일본 젊은이들을 극우화로 구워삶는데 성공했던 것일까? 비결이 있다면 바로 ‘증거’일 것이다. 전 세계에서 일제침략기 당시 관련 서류 등의 증거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쪽은 두말할것도 없이 일본의 극우일 테니까, 그들은 특별히 역사를 왜곡할 필요가 없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거 혹은 유리한 해석이 가능한 증거들만 추려 젊은이들을 간증시키는데 쓰고도 한 트럭은 남을 만큼 증거가 넘쳐난다.

이들은 어떻게 젊은이들을 설득하는 것일까? 어차피 대부분의 역사 기록은 불타 없어지거나 훼손이 심하기 때문에 대략적인 팩트만을 겨우 증명할만한 자료만이 남아있을 뿐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구체적인 정황이 기록된 비디오나 사진 자료가 그렇게 많이 남아있지는 않고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외부로 공개하지 않는다. 다만 이미 알려진 사실과 그에 따른 근거자료에 대해서는 해석하기에 따라 자신들에게 유리한 유권해석이 가능한데,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종군위안부를 모집하는 과정에 일본이 개입하지 않았다’
(일본인은 종군위안부 모집에 있어 관여하지 않았다 = 과정상의 강제에 대한 책임이 없다)

‘종군위안부 모집에 일정 금액 이상의 비용이 해당 위안부쪽으로 지급되었다’
(처음부터 돈을 제시했고 그 뒤에 사람이 왔다 = 돈이라는 조건을 알고 왔다)
(이미 지불된 기록이 있다 =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은 돈을 이미 받았음에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

= 종군위안부는 일본이 직접 모집에 관여하지 않았고, 충분한 대가를 지불했다.
극우쪽 해석 = 종군위안부는 매춘부다.


극우가 늘 그렇듯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단어를 선정해서 외부의 적에 대한 공격과 내부의 결속력을 노리려는 것은 어제오늘일이 아니니 그렇다고 치지만, 일단 극우가 가진 증거들이 모두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면 해석 자체에 대한 논리는 사실상 무결하다. 일본 젊은이들은 이에 빠져든다, 자극적인 단어에 끌려서 들어오면 실제로 그에 연관된 (논리적으로는) 무결한 증거가 나오고 있으니 실제 당시를 살아보지 않은 젊은이들은 마치 오움진리교에 빠지듯 극우의 논리에 매료될수밖에 없는 것이다.

타진요가 생기는 기본적인 매커니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 그렇다면 이들 극우에 맞서는 우리나라의 태도는 과연 어떨까? 유명한 ‘지곤조기’가 사실이든 오해든 관계없이 우리나라는 몇 년 전의 몇 년 정도를 제외하면 단 한번도 일본에게 전범국으로서의 책임을 강하게 요구하는 액션을 취한 적이 별로 없다 국민들에게 언제나 일본을 싫어하게 만들어야 했던 친일파 기득권들이 정작 일본이 어떤 액션을 취하면 그것을 적당히 ‘유감 표명’선에서 봉합하느라 진땀을 빼는 이중적 소극성을 보여 왔다. 어째서일까?

동해

아마도 우리나라 외교쪽이 가장 등한시하고 있고 또 어려워하고 있는 문제라고 한다면 동해와 독도 등 이른바 전 세계 표준 지명 문제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 ‘광고전’의 양상으로 벌어졌던 이 대결구도가 최근에 와서는 역사적 사실관계를 증명하는 고증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오히려 이 ‘증거’대결이 ‘근현대’ 역사쪽의 고증으로 기울어지면서 외교부의 대응이 지나치리만큼 조용한데, 이유는 간단하다. ‘동해’에 대한 증거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일본해에 대한 증거가 없다. 지금 일본이 하는 것은 대대적인 홍보처럼 보이지만 사실 몇십년 뒤를 내다본 일종의 '증거만들기'인 셈이다.


지금의 동해에 과거 명칭에 관련된 자료 중 절반 이상이 조선해로 표기되어있다. 일본은 여기에 조선이 멸망하고 이후 일본의 강점기가 있는 동안 일본해로 정해졌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민국은 왜 조선해 명칭을 주장하며 대응하지 않았던 것일까? 진실은 모른다. 다만 조선해가 되면 조선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나라의 이득이 될 것을 신경쓰는 세계에 둘도 없는 친일파 집단만이 저지를 수 있는 시나리오라는것은 이미 일본 내 재일교포사이에서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이야기다. 사실이라면 덕분에 우리는 분쟁지역이 될 수가 없는 당연한 우리 영해를 일본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며 베타적 경제수역이라는 말도 안되는 조항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등 국민에게 적지 않은 피해와 굴욕감을 맛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들은 일본이 일본해에 대한 발언을 하지 않을까 언제나 노심초사하고 있다. 일본이 만일 일본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순간 그들의 ‘조선해 명칭 포기’ 사건을 증거로 들고 나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정부는 지금까지도 강원도가 아닌 경상북도 행정으로 확실한 남한땅임을 못박을 수 있는 독도 영유권에 대해서는 일본과 줄기차게 이슈화를 만들지만 정작 동해 명칭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말을 아끼고 있다.


종군위안부

친일파들이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관료’였다. 친일파들은 일제 치하에서 자신들이 관직을 얻기를 원했다. 많은 재산을 바치고 관직을 얻은 그들은 일본의 행정 정책을 직접 수행하는 (중앙관료가 아닌 지방자치) 역할을 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일제 치하를 찬양하는 국민적 캠폐인’과 일본의 2차대전 지원을 위한 조선인 병역 차출 등의 인적관리 부분이었다. 지금의 동사무소, 구청 등 마을 단위로 국민을 직접 상대해야만 하는 곳에는 일본인보다 친일을 했던 조선인을 배치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고 실제로도 그랬으니까.

종군위안부가 소집이 된다고 하면 이 모든 사람들이 일본 군사(?)나 일본인들에게 강제로 끌려가는 모양새를 보였을까? 일단 정황을 보면 ‘모든’이라는 전제는 조금 거리가 있는데, 현재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보면 ‘결혼’을 한 여성은 차출되지 않는다 라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제 차출에 ‘결혼 여부 확인’이라는, 조금 모순되는 이 증언은 결국 차출의 주체가 우리가 상상하는 ‘일본군’에게 강제로 질질 끌려가는 위안부의 모습이 아닌 ‘동사무소’에서 도장을 받고 트럭에 태워 출발하는 모습으로 치완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당시 마을 단위 행정을 장악하고 있었던 친일파들의 친일 행각이 혁혁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조용하던 마을에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는 소문이 돈다. 조선인 남자가 마을을 돌며 바람을 잡는다. 아낙들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모집책을 맡은 조선인 남자가 돈을 받고 조선인 여성 모집 인원 할당을 받았다는 소문부터 그 남자에 의해 일본에 건너가면 굶지 않고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까지, 일부는 할당을 채우지 못한 조선인 남자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기도 하고 일부는 감언이설에 넘어가 서류를 작성하기도 했다는 소문들이 떠다닌다. 그리고 그녀들은 너나할것없이 종군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젊음을 희생당하고 말았다. (사진은 목포 친일파 관료들의 청년독립꾼 체포 장면으로 내용과 직접적 관계는 없음)



일본 극우가 주장하는 종군위안부에 대한 표현 ‘매춘부’, 단어 자체에 대한 흥분을 잠시 가라앉히고 살펴보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증거가 가진 파급효과가 어디에 뻗어있는지 알 수 있다. 지금의 친일파들은 당시 각 지역 행정 관료로서 종군위안부를 모집하고, 그녀들을 일본에 넘기는 모든 과정에 개입했으며 기록에 따르면 일본으로부터 그 대가까지 받았음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단지 친일을 했다는 기록 자체를 넘어서 그동안 친일파들이 주장해오며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선택 ‘차악설’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받았던 피해의 원흉을 일본이 아닌 ‘친일파’가 주가 되는 대역전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단순한 인명 사전 편찬이 아닌 일제강점기 피해 자체에 대한 책임을 묻는 타깃이 일본에서 한국의 친일파로 넘어간다는 것은 친일파에게 있어 ‘멸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신대 문제와 종군위안부를 뒤섞어내려는 시도들 역시 이 종군위안부 문제를 전적인 일본의 책임으로 하기 위한 일환이다. 덕분에 우리는 정신대와 종군위안부를 제대로 구분조차 못한 채 뒤섞인 정보로 갑론을박까지 벌여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강점기 당시 마을 단위 행정을 맡았던 친일파들이 일본으로부터 대가를 받았다는 사실과 위안부의 소집과 관리 파병에 이르기까지의 거의 모든 행정 처리에 있어 일본은 스스로의 손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증거는 일본 극우들에게는 ‘자발적으로 온 매춘부’라는 타이틀을 만들어주는 훌륭한 재료로, 친일파들에게는 공개되어서는 절대 안되기에 공론화되는 것을 목숨걸로 막아야 하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일본의 젊은이들은 이 증거를 보고 일방적인 새뇌역사교육에 배신감을 느낀 채 극우가 되어갈 것이다.

처음에 제시한 팩터 항목과 극우쪽의 주장을 이쪽에 대입하여 다시 살펴보자

‘종군위안부를 모집하는 과정에 일본이 개입하지 않았다’
(모집하는 과정에 있어 한국어가 미숙한 일본인보다 조선어에 능한 조선인이 훨씬 나았다. 게다가 일본인은 모집 과정에서 이미 신뢰를 잃어 같은 조선인이라는 믿음을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종군위안부 모집에 일정 금액 이상의 비용이 해당 위안부쪽으로 지급되었다’
(종군위안부 모집 금액의 구체적인 예산 항목이 알려지진 않았다. 적어도 당시 친일파들이 모집하는 데에 있어 ‘자금적 동기’가 없이 했다는건 지금 기준에서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들다. 친일파는 돈과 권력에 환장한 쓰래기들이니까.)

(예산 항목중에 할머니들 몫도 있었을것이다. 그러나 행정에 의해 모집된 그녀들에게 지급될 돈은 당연히 행정기관을 거쳐서 지급되어야만 했기에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그녀들은 지급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촌극은 1970년대 정부에 의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고 국고로 환수하는 사건을 통해 재현되면서 다시금 확인사살을 해준다.)

= 종군위안부는 일본이 직접 모집에 관여하지 않았고, 충분한 대가를 지불했다.
극우쪽 해석 = 종군위안부는 매춘부다.
친일파 해석 = 일제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었다 우리도 피해자며 최악은 일본이다.

이분들은 근로정신대 피해자일까, 위안부 피해자일까?



이런 진실을 알고 있고 그 진실이 증언으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친일파는 지금 어떻게해서는 독립 1세대, 종군위안부 1세대의 사망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리고 가능한 일본 극우와 프랜들리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나가야만 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국민들로 하여금 반일 감정을 부추기면서도 일본과 동반자 형태를 유지해나가며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주장을 전범국 일본이 아닌 친일파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가며 일본을 침소봉대하는 데 주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의 종군위안부 1세대들에게 꾸준한 지원을 해주면서 이 모든 게 일본 탓이라는 개념을 주입하여 공식석상에서 꾸준히 일본을 향한 소송을 거는 액션과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도록 유도해야만 한다. 물론 그러한 액션은 반드시 ‘친일파’에 대해 관심이 쏠렸을때 적절하게 화살을 일본으로 돌리는 데에 활용될 것이다.

왜 뉴라이트들은 손수 일본의 극우를 대표하는 발언이나, 교과서를 편찬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과거를 빨리 ‘정의’해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일본 극우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함으로서 일본 극우와는 긴밀한 친분관계를 통해 ‘증거’를 공개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 한편, 한국에서는 일본에 대한 반발심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친일파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뉴라이트는 그래서 총알받이이며 일본 젊은 극우들의 한국판이다. 그들의 보호 속에 오늘도 진성 친일파, 매국노 새끼(이들에게 후손이란 표현은 사치다) 들은 100년전 그들의 에비어미들처럼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덜 익은 스테이크를 썰며 핏빛 와인을 마시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없다. 우리는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들에 대해 알고 이들을 이 사회에서 어떻게 뿌리뽑아내야할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들에 의해 현재진행형이 되고 있는 국가를 손에 쥐고 벌이는 사리사욕 잔치로 인한 피해를 두고보고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콩 심은데 절대 팥이 나올 리 없다.



친일파 그리고 그들이 했던 갖은 행적과 그 결과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구질구질한 과거를 꺼내는 것도 아니오 미래로 나아가는 데에 발목을 잡는 것도 아니며 정치인들이 대의를 펼치거나 국운이 뻗어나가는 데 방해를 놓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우리 스스로 세계에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도록, 친일파들의 사리사욕에 의해 만들어진 잘못된 역사교육을 바로잡고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당당하게 사과받을 수 있는 것과 요구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할 수 있는 확실한 기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가 세계무대 속 강소국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지진이나 쓰나미 비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뿌리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조금만 더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며 작은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니까…



연속기획 '친일파'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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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의 전설적인 홈런타자 베이브 루스, 그는 무려 현역시절 포함 50여년간 깨지지 않았던 통산홈런 기록과,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가지고 있던 그야말로 전설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시즌 최다홈런 기록이 1960년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로져 메리스라는 선수에 의해 깨질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베이브 루스의 전설을 광신하던 사람들은 그 기록이 깨지는 것을 환호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것을 시기하며 베이브 루스가 활약했을 당시의 경기 수인 152경기와 똑같은 기준에서 로져 메리즈의 기록을 평가해야 한다는 억지논리를 펴며 그의 신기록 경신을 드러내놓고 반대했다. 이처럼 팬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신이 응원하고 믿는' 무언가보다 더 뛰어난 누군가가 나오는 걸 원치 않는다.



울랄라 세션의 프로 논란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 언제나 그랬던것처럼 출연자 위주로 돌아가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어쩔 수 없이 출연자에 대한 팬덤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이 팬덤은 필연적으로 팬덤의 대상과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동일시하기 때문에 피해의식에 따른 공격적인 행동 패턴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치자, 팬덤들이 그러는 거 하루이틀이겠느냔 말이다. 문제는 그 팬덤들의 초딩짓에 반응하는 일반 시청자들의 동요다. 아마도 이는 일반 시청자들이 '동일하게' 느끼고 있는 어떤 부분을 팬덤의 '허튼소리'가 아주 제대로 찌르고 들어간 모양인데, 모양새로는 정말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울랄라 세션의 프로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울랄라 세션이 이전에 음반을 내고 프로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아마 홍대 같은 소극장 공연에도 섰을 것이란다, 이처럼 충분한 실전 트레이닝이 있었던 만큼 다른 아마추어들과 경쟁하는건 반칙이라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공화국 공식성명이므로 글이 길어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단지 글을 좀 짧게 마무리지으려는 목적으로 지금부터 그 논리를 펴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1. 울랄라 세션이 슈퍼스타K에 출연하기 직전까지 울랄라 세션이라는 그룹 이름을 들어봤는가?

2. 울랄라 세션이 냈다는 음반 인증샷을 직접 인증한 적이 있는가?
     (올리는 본인이 직접 얼굴 드러고 올린 인증샷을 말한다)


3. 프로 가수협회, 가수분과위원회에 정식으로 등록한 등록번호나
   무슨 무슨 정품인증 씰 같은 타진요틱한 인증이라도 해봤는가?

4. 이들이 슈퍼스타 K 이전에 공중파 가요프로그램은 고사하고
   CJ계열은 물론 변방 종교방송에라도 TV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걸 본방사수했던 사람이 있는가? 혹은 나왔는가?

  5. 울랄라 세션이 메인 이벤트 행사 무대는 고사하고 홍대 클럽 같은 곳에서 발견하고
     그들의 활동 모습을 찍은 인증샷을 들이댄 적이 있는가?


홍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들이 TV에 나와서 '우리 홍대에서 음악하고 있어요'라고 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

  프로 가수는 프로복서처럼 따로 라이센스가 있지 않다. 왜냐하면 예술이란 누군가에 의해 그 가치를 재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 논란 전에 있었던 '프로 가수'라는 인증은 어떤 것이었을까? 필자는 대중문화는 '대중'이 인지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프로가 된다고 생각한다. '마니아'들이 아닌 '대중'이 인지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문화적 가치가 냉혹한 평가를 받기 시작하는 시기가 바로 프로다. 언더 음반 시장이 거의 붕괴 측면에 도달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필자는 말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지금까지의 프로의 이미지와 울랄라 세션에게 들이대는 프로의 잣대는 모순되어있다고, 도대체 왜 이렇게 모순된 잣대를 들이밀면서까지 이런 짓을 하는지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설령 울랄라 세션이 음반을 냈고 반칙도 했고, 소문대로 위암 4기도 거짓말이라고 다 드러난다고 해도 우리는 '문화 소비자'로서 매우 부끄러운 줄 알아야할것이다. 심사위원 대중들 모두 '프로'라고 의심할 정도로 시기할 만큼의 메이저급 실력을 가진 그 친구들을 우리는 아마추어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테니까, 실제로 그들이 음반까지 내고 프로가수처럼 활동을 하려 발버둥을 쳤다고 해도, 우리는 그들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들의 몸짓과 율동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랬던 우리가 너무 부끄러워 이제는 이들을 인정하려고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중이 울랄라 세션에게 '반칙'이라고 말하는 이면에는
내가 지금까지 프로라고 생각했던 가수들보다 훨씬 잘하는 친구들을
대중문화의 주인인 대중으로서 발견해내지 못했던 미안함과...

...한편으로는 그들이 지금까지 인정해왔던 프로의 기준을
이들이 깨버리고, 혹은 이들의 실력에도 프로라는 타이틀을 주지 않았던
대중들의 고집스러운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일로 부끄러워 해야 할 사람들은
울랄라 세션이 아니라

필자를 포함한 대중문화의 주인이라는
우리 모두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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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정전사태가 왠지 울고 싶은 놈 뺨을 때린 듯한 기분이 든다. 생활이 어렵고 경제가 안나아지고 안좋은 뉴스는 그칠 줄 모르고 정부탓하는 목소리는 그치지 않는데, 때마침 정전이 되어주니 이 모든 화살이 다 '한전'으로 가버렸다. 국정감사에서 팩스 잘못보냈다거나 점심시간에 연락 안닿아서 보고 못받는 시시콜콜하고 도움안되는 질문들만 날려대세는 국회의원들도, 뉴스에 분개하며 고작 엘레베이터 한두시간 갇힌걸 가지고 '시체치우는 줄 알았다'며 호들갑떠는 국민들도 '너 잘 걸렸다'는 식으로 몰아붙인다.

2010년 국감 당시 모습 - 이때는 아무것도 발견 못하시던 분들이 이번 정전때는 입에 모터들을 다셨다.



그런데 사실 그런 시시콜콜한 실수를 제외한다면 한전은 사실 할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여름 비상 근무를 종료하고 발전소를 점검에 들어간 게 그렇게 큰 잘못이었던 것일까?,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핀트를 어긋냈지만 이건 전력 수요 예측 실수가 아니라 기상청의 '기온 변화 분포 예측 실수'가 맞다. 한국전력이 갑자기 9월 중순에 여름보다 낮기온이 더 올라가는것까지 예측할수 있게 기상학까지 복수전공이라도 해야한다는 말인가? 만약 기상청 예측을 무시하고 '가을에도 갑자기 더워질 수 있다'라며 발전기 안끄고 준비상 체제 유지했는데 '안 더웠다', 면 국감에서 더 까이는게 한전이다. 한전은 그래서 '기상청 발표'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만 한다. 비전공자가 나대는 것보다 '전문가'의 의견을 근거하는게 훨씬 나으니까...

기상청이 지난 6월 11일에 예측한 올여름 전력수요


기상청이 틀렸다. 그래서 갑자기 예비전력율이 바닥을 뚫을 기세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도 까다 보니 착각하는게 한전이 신생벤처기업 아마추어들이 운영하는 떨거지기업쯤으로 착각하거나 공기업의 태만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아주 낙인을 찍어버리는데, 당장 검색해봐도 공기업 중 국민 만족도 1위를 몇년 연속 차지했는지 까마득할정도로 건실한 공기업이 한전이라는 걸 이번 정전 사태로 모두 잊어버린 듯 하다. 그들은 이번 정전 이전까지 '단 한번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칭찬받아 마땅한데 말이다.


감이 잘 안온다면 옆나라 도쿄전력의 작태를 보라...


 한전은 아마추어 집단이 아니다. 물론 대응 시스템이야 구식일지 몰라도 그들은 이런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충분히 대응책을 마련했고, 예비전력 위기를 몇십년째 넘겨오며 노하우가 쌓인 베테랑 기업이다. 그런 구식 시스템 속에서 그들이 만들어놓은 자구책이 바로 '절감효과'가 확실한 산업용 전기를 컨트롤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가 싼 이유는 기업들 배 불려주려고 해놓은 게 아니라 이런 '비상사태'때 기업들이 그동안 저렴하게 전기를 쓰고 거기에 '협조 보조금'까지 받아가는 댓가로 '긴급 비상 전력 소비 감축'에 신속하게 협조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정전사태 대응책 중 가장 쓸만했던 이 대책에 협조한 기업이나 관공서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한전은 이들 기업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면서 협조를 약속받았음에도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는 것이 이번 사태를 불러온 결정적 원인 되시겠다.. 


뼛속까지 감탄고토(甘呑苦吐)


그런데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의 결론은 따분해서 하품이 나올 고려짝 시츄에이션 'OECD중 제일 싸다'는 것과 '국민들이 너무 전기를 막쓴다'는 거라니 참 기가 막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전의 시스템이니 운영 방만이니 위기대처 부족이니 한전만 줄기차게 씹어대던 정부가 이제 정전이 '국민들이 방만해서 생긴 인재'란다. 국민들의 생활전기와 산업용 전기 비율이 넉넉잡더라도 4:6일텐데 어느 쪽을 줄여야 하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위기때 어떻게 협조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 시스템을 정비해야 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데, 쿨타임이 되자마자 이걸 '요금 올릴 핑계'거리로 이용하는데에는 기가 찰 지경이다.


저 중에 우리나라보다 서민 실소득 낮은 국가가 있나?


국민들이 전기를 평소에 아낀다고 전력위기상황이 방지될리 없다는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서민들 중 어느 누가 여름에 덥다고 전기를 막쓸 수 있겠는가. 지금도 서민들은 현 요금 체계에서 충분히 부담을 느끼고 전기를 가능한 절약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더 절약하고 싶어도 더 쥐어짤 게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에게 전기료를 인상한다는 것은 그냥 마른 걸레 쥐어짜기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사실 전기를 낭비하고 있는 계층은 '전기 요금 몇천원 오르는걸 가렵지도 않게 생각하는' 고소득층일진데, 과연 그들이 전기료 20%올린다고 무서워 벌벌떨며 에어컨 온도를 올릴 리가 없다는 것에 500원을 건다. 물론 산업용 전기는 행여 기업님들이 삐져서 우리나라에 고용 투자 안하고 중국으로 튈까봐 무서워서 올릴 리가 없다는 것에도 천원쯤 걸 수 있다.


이번 한전 사태는 이번 정부의 친기업주의가 얼마만큼 도를 넘었는지를 잘 시사해주고 있다. 한전이 왜 그들에게 '혜택'이란 혜택은 다 주면서도 비상사태때 전력 감축 요구를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만일 정전 10분여를 남기고 나온 한전의 요청이 씨알이 먹혔다면 과연 이번 정전 사태가 일어났을까? 기업들은 왜 한전에게 혜택을 받으면서 위기상황에 대한 요청을 시원하게 쌩까고 입을 싹 닦아버리는 '지들이 늘 하던 짓거리'를 하면서도 가책없이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일까? 기업들에 의해 정부 직속 공기업이 국가비상사태 때 기업이 참가를 안하는 초유의 '군사재판급' 사태를 두고 정부는 기업들에게 왜 안지켰냐고 다그치기는 커녕 기업들이 행여 이번 정전으로 피해나 보지 않았을까 굽어살피기 여념이 없는 이유가 뭘까? 언론은 왜 이번 사태의 원인을 '기업들이 비상사태에 제대로 참가하지 않았다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지 않는 것일까? 그보다 왜 정부가 삽질하고 기상청이 병신짓한데다 한전 정책까지 시원하게 생까주신 기업들이 벌인 일을 왜 아무 짓도 안하고 피해만 주구장창 본 아무 죄없는 서민 호주머니를 터는 것으로 끝을 맺으려 드는 것인가? 이 정부가 정말 '정부'라고 불릴 자격이나 있는건가? 


이런 나라에는 정부랑 기업만 남기고 국민들이 다 떠나는 게 옮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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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현재 연재중인 아이돌 기획사 열전 시리즈는 현재 JYP편이 조사, 집필중에 있으며 다음주중에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조사에 시간이 걸려 집필에 시간이 소요되고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최근 KTX의 고장 소식이 잦습니다. 항간에는 KTX산천의 무리한 국산화가 화를 불렀다느니 코레일의 무리한 인력 감축에 문제가 있다느니 이런 저런 말이 나오고 있는데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이 정비라는게 불량이 매일 나오는 것도 아니고 (열차 시스템이라는게 생각보다 지금만큼 불량률이 많이 나오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더구나 불이 나고 멈춰서고 이정도의 불량은 정말 장난아닌거죠, 정상적인 로테이션이라면 말입니다) 정비가 소흘했다면 사고 원인이 '추측'이 아닌 확실힌 이유가 잡혀서 정비 인력을 늘이는 발표가 코레일측에서 있어야 하는데 벌써 반년 이상 사고가 매달 몇 건씩 계속 나고 있는데도 코레일이 꿈쩍도 안하고 있거든요. 아무리 공무원 출신이다 업무태만이다 뭐다 해도 눈앞에서 기업 이미지가 깎이고 있는데 아무짓도 안하는 기업이있을리가 없습니다.

수수방관?


그래서 좀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조사를 좀 해봤습니다. 가지고 있는 지식과 현장 지식을 총동원해서 추리를 해봤죠. 일단 한번 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KTX산천, 기존 KTX 승차를 해봤고, 사고 선로 분석도 해봤지만 좀처럼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고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한 '사고 일지'를 보고 머리를 탁 스치는 게 있었습니다.

KTX 사고를 조사하기 위한 시승때문에 예매사이트에 들어가 예매를 하던 도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다름아닌 새로운 60X대 차번호가 존재한다는 것이었고 이 차번호는 묘하게 서울 대전 구간에서 다른 열차보다 약 30분이나 딜레이를 발생시켰습니다. 게다가 정차역은 광명이 아닌 영등포, 수원 등 경부본선을 이용하는 기존선이었죠. 왜 이런 미친 편성을 넣었나 싶어 조사를 해봤는데 이런 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최근까지의 KTX 주요 사고 일지입니다

▲2011년 5월14일 = 천안ㆍ아산역에서 KTX-산천 고장, 20분 지연

▲2011년 4월19일 = 천안ㆍ아산역에서 KTX-산천 고장, 20분 지연


▲2011년 3월20일 = 동대구발 서울행 KTX-산천 통신장애로 18분 지연


▲2011년 2월26일 = KTX-산천 김천구미역 인근서 기관고장..39분 지연


▲2011년 2월11일 = KTX-산천 광명역 일직터널서 첫 탈선사고


▲2011년 2월6일 = KTX-산천 부산역서 배터리 고장, 열차 교체


▲2010년 12월25일 = KTX-산천 논산 연산역서 동력장치 고장‥25분 지연


▲2010년 11월11일 = KTX-산천 천안아산역 인근서 난방기 고장


▲2010년 10월27일 = KTX-산천 천안아산역서 모터블록 고장


밑줄치면 또 허위사실 유포 지랄할까봐 그냥 씁니다.
뭐가 문제인지 감이 잡히시나요?
이제부터 차차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영등포역 경유가 왜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는가?

참고로 영등포역 경유해 본선을 이용하는 편성은 하루 2대 편성, 601과 607편성입니다. 여기에서 생각을 잘 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두 편성이 고정차량배치가 되느냐 아니냐는 것이죠. 다시말해 만일 영등포역 정차를 위해 KTX중 일부 편성을 경부본선에 달리게 한 게 문제의 원인이라면 바로 이 601과 607편성만 지금까지 사고가 났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잘 아시는것처럼 호남선 논산구간에서도 사고가 접수되었고 지금까지 사고 중 거의 대부분은 본선이 아닌 고속전용선에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저 두개 편성이 지금까지의 사고를 일으킨 원인이 되고 있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어보이는데요.

하지만 문제의 601,607의 객차 편성, 동력차 편성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다음은 최근 5일까지의 차량 편성 정보를 볼 수 있는 코레일 제공 물류정보사이트의 객차 편성 정보 검색 화면입니다. 여기에서 최근 5일까지의 601편의 객차, 동력차 편성을 확인해보겠습니다. (검색결과 아래 차호 라고 써있는 6자리 숫자들에 주목해주세요)

7월 14일자입니다.


7월 15일자

7월 16일자

7월 17일 오늘자입니다.



뭔가 감이 잡히시나요? 그렇습니다. 최근 4일간 이 601열차는 단 하루도 같은 열차가 중복된 적이 없습니다. 매번 다른 열차로 쓰이던 열차가 601번을 달고 운행했다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601번이 다른 곳에서 이미 쓰인 열차가 편성되고 또 601번으로 쓰인 편성이 다른 고속전용선 편성으로 다시 빠지는 순환식이 되면 이 601번으로 달렸다는 것이 이번 사고의 간접적 원인으로 지적될 단서가 매우 희박해집니다. 한마디로 영등포역 정차가 지금까지 사고가 난 것에 일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발표하기 위해서는 사고가 난 열차의 대부분이 601번 구간 즉 서울에서 대전까지는 기존선으로 달리고 대전부터 고속선으로 달리는 구간이 되어야 하죠.

17일자 601번에 편성된 객차 중 하나인 101012번은 서울에 도착한 즉시 132편으로 편성변경되어 고속전용선 열차로 투입되었다

마찬가지로 7월 14일에 투입된 동력차 100152번은 오늘 137번으로 편성이 변경되어 고속선에 투입되었다 이런 식으로 교체 투입되는 패턴 역시 어떤 규칙이 있는게 아닌 마구잡이 편성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서울 대전 구간이 문제가 되는지는 많은 철도 매니아 분들의 지적대로 이 구간이 정말 많은 노후화와 타 열차의 공동화로 선로 질이 매우 나쁘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실 광명역이 탄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요. 열차는 서울역부터 신길역까지는 기존선 바로 옆, 새마을 무궁화호 등이 쓰는 본선을 달리다가 도중에 광명쪽으로 방향을 틀어 고속전용선구간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신길역은 영등포 바로 전역인데요. 영등포역 정차를 위해서는 영등포역에 분기점을 하나 더 만들어 지금 신길역에 있는 분기점을 영등포로 옮겨야 하고 그러려면 정말 많은 건물들을 허물어서 새로 철도를 준설해야만 합니다. (약 3~4킬로정도 될 듯합니다) 당연히 영등포 도시 심장부를 지나는 이 플랜은 가능했을리가 없죠.

그래서 영등포역에 정차하기 위해서는 영등포역에서 수원을 지나 당시 기준으로 대전까지는 그냥 기존선을 타고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수원시와 영등포구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을 텐데요. 왜 기존선을 그대로 타고 올 수밖에 없냐면 기존 전철 맨 가장자리를 달리던 신길역과는 달리 영등포역부터는 복복선 중앙을 달리게 되기 때문에 영등포역을 이미 떠난 상태에서 역 터미널 아닌 선로 중간에서 선로변경 공사를 할 경우 기존 인천행이나, 수원행 전철들과 시간계산을 다시 복잡하게 해야하거나 심한 경우 지금도 정체현상이 벌어지는 수원 구로간의 전철들을 KTX의 중간선로변경을 위해 올스톱을 시켜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미 수원까지 온 상황에서는 광명역도 광명역에서 출발한 KTX전용선로도 너무 멀리 떨어져있는 상태기 때문이죠. 백번 양보해서 수원에서 출발해서 고속선으로 합류하는 선로를 깔더라도 고속열차에 '도중합류' 구간이 생기는것은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봐도 자살행위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더 심하게 양보해서 선을 '천안아산'역까지 새로 깐다고 한들 천안아산역은 '터미널'역이 아니기때문에 합류에 많은 설계적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이죠.. 단지 '영등포역'정차라는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려 기존선을 150km이상 달리게 만드는 미친 짓이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미 노후도가 상당한 서울 수원 구간에 다른 열차와의 간격 유지가 지금도 힘든 구간에 장대열차 2배 길이를 자랑하는 ktx가 선로에 갖은 부담을 주며, 기존 열차와 차간을 유지하기 위해 속도 제어해가면서 말이죠. 고장이 안 날리가 있겠습니까?

우연의 일치일까? 코레일은 얼마 전 접근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국철 '1호선 광명역'을 신설해 운행중이며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천안 이남의 수도권 전철을 대전쪽이 아닌 장항선 라인의 온양 신창쪽으로 틀었다. 물론 이 새로 준설된 복복선전철은 천안아산역을 바로 지나게 되는데, 이게 정말 접근성만을 생각한 조치였을까? (사진은 천안아산역 공사 당시 모습, 전형적인 선로형 역사임을 알 수 있다)



KTX 산천의 결함?

최근 KTX의 사고는 KTX산천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근거로 언론들은 KTX산천의 설계 부실을 꼬집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데요. 이 역시 근거로 들기는 매우 희박합니다. 왜냐하면 KTX산천은 처음부터 KTX 2단계 구간 개통에 맞춰 발표될 예정이었던 KTX2프로젝트 (서울부산 2시간)의 일환이었기 때문입니다. 천성산 문제로 완공되지 못했던 대구 부산간 고속전용선이 준설되면서 KTX가 제 속도를 낼 수 있게 되는 환경이 만들어졌지만, 밀양역 정차 등 정계 지자체의 중간정차역 정차 요구가 맞물리면서 이를 지키기 힘들게 되자 KTX의 국산화 프로젝트에 한발 더 나아가 최고속도를 350km도 높이는 프로젝트를 감행했던 것이죠. KTX산천은 이미 350km 테스트 성공은 상용운전 3년 전에 해냈으며 그동안 수많은 테스트 운전을 합격한 차량입니다.

시험운전 당시의 모습, 이게 벌써 3년도 넘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KTX산천이 처음 개발 당시와 테스트 당시의 계획과는 달리 '본선 구간'을 달리는 시간이 너무 많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위에 제시한 의혹대로 영등포역에 정차하는 '601','607'의 차량이 고정편성이 아니게 되면서 KTX산천의 차량이 투입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었는데요. 이 KTX산천의 고장에더 큰 문제는 사실 영등포역이 아니라 12월 15일 완공된 경전선 복선전철화 공사 완료로 인한 KTX 마산 편성의 대폭 증가에 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이 마산 편성은 대구에서 이미 기존선을 이탈하여 삼량진까지 경부선을 운행한 후 경전선으로 가야만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 듯 싶고요. (동일 편성에서 새마을호와 불과 3분밖에 소요시간을 줄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총합 140km를 다시 기존선으로 달려야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KTX산천은 처음부터 2단계 개통에 맞춰 100% 전용선에서 서울부산 2시간 주파를 위해 만들어진 녀석이기 때문에 초기 기존선을 다수 공유해야만 했던 KTX1이 기존선에서의 주행 테스트에 오랜 시간을 들였던 것에 비해 KTX 산천은 기존선 테스트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래야 할 필요성도 없었던것이죠.

이건 물론 결함으로 볼 수 있습니다. KTX산천이 기존선 테스트를 소흘히 했다고 몰아붙일 수도 있는것이죠. 사실상 편성 공유를 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는 문제, 급격한 감원으로 인한 정비 소흘을 야기한 코레일측의 정책 문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과 3년 전까지만해도 계획조차 없었던 KTX의 영등포역 정차와 마산역까지의 기존선구간 연장투입, 그리고 그 열차들이 KTX1만이 아닌 KTX 산천이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은 왜 지금의 언론 그리고 정부가 '코레일'의 정책적 문제만을 지속적으로 거론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합니다. 저같은 아마추어조차 단 한번쯤은 '해당 차량'의 주행 이력 (일반인은 5일밖에 추척을 못하지만 그들은 몇십년전까지 추적이 가능함에도)을 의심해보고 이렇게 조사를 해볼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코레일에 근무하는 베테랑분들이라면 더욱 확실한 원인을 밝히고도 남았을텐데, 왜 매번 사고만 나고 원인 파악과 그에 대한 발표는 속시원히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얼마 전 있었던 무궁화호의 객차 화재 사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당 열차는 2003년 디자인리미트사 (구 해태정공)가 공급한 무궁화호 마지막 신조 차량으로, 당시 디자인리미트사가 이를 공급하면서 철도청에 당부한 운행상의 주의점이 있었는데 (기존 열차와 호환성이 약하므로 가급적 신조만을 단일 편성할 것) 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철도청이 철도공사, 코레일로 속속 민영화 수순을 밟아나가면서 비용절감을 이유로 편성이 신조와 구형이 흔재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고, 이런 편성이 시작된 이후부터 신조 무궁화호는 잦은 흔들림과 더불어 차량환기부시설에서 고무 탄내가 올라온다는 제보가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 해당 사고차량 역시 2003년 신조 무궁화호로 당시에는 흔재편성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코레일이 얼마나 차량에 대한 기술적 정보에 무지하며 현장 관리에 무심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KTX산천의 기존선 운행 결정 역시 엔지니어측의 경고를 묵살 혹은 무시했을것이라는 추측이 나올 수 있는 훌륭한 근거가 되는 사건이기도 했다.



왜 마산역에 KTX가 그렇게 다수 편성될수밖에 없었는지, 왜 갑자기 영등포역에 KTX가 들어올수밖에 없었는지 자세한 정치적 내막은 모릅니다. 하지만 그 편성정책으로 인해 KTX산천의 설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존선을 140km이상 달리게 해야만 하고 그로 인해서 차량이 문제가 생기고 결함이 발생해도 위험을 각오하고 탈 수밖에 없을만큼 중요한 사안인지, 그리고 이런 사고들이 왜 '의혹'만이라도 당시 영등포역 정차와 마산역 정차가 원인이 아닐까하는 의견개진을 하는 언론이나 정부부처가 왜 단 한곳도 없을수밖에 없는지 모든 책임을 열심히 KTX의 국산화에 힘쓰고 주어진 조건에 맞게 개발해놓은 KTX국산화 개발진들에게 쏟아내는것일까요? 

간접적인 원인이라 할지라도 영등포역 정차 탓 아니냐?, 마산 운행 탓 아니냐는 의견이 화제가 되어버리는 순간 이를 공약하고 추진했던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입는 타격은 상상을 초월하겠지요. 이미 현장에서는 알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런 사고들이 단지 정치적 이득을 위해 국민들을 위험으로 내몰고 있음에도 조사결과를 묵살 혹은 쉬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이 나라는 미래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국회의원 권력, 정당의 권력이 국민의 목숨보다 우선시되는 나라에 뭘 바래야 할까요?


제발 오늘도 무사히입니다. ...아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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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수에 대한 포스팅을 곰곰히 살펴보면 묘하게 '대호평'과 '극단적 비판'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건 이 두 극단적인 문맥갈림이 거슬러올라가다보면 결국 '나가수의 시스템'이라는 원류를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한 가지의 시스템을 두고 이렇게 극단적으로 갈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우선 대호평쪽의 이유와 근거로는 일요일 저녁 5시라는 상당히 보기 편한 시간대에 지금까지 상당히 보기 불편했던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었던 높은 가창력의 가수들이 속속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생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반 이상의 페이지를 칭찬으로 소비한다. 거기에 이 프로그램에 대한 가수들의 태도가 곁들여진다. 지금까지 이 '아티스트라 불리웠던 자들'은 언제나 그 가창력이라는 이 나라에서 참 유지하기 힘든 생존수단 만으로 생존했다는 것만으로 음악팬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음악 팬들은 그들이 행여 이 나라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끊임없이 걱정해주고 있었으며, 그들의 콘서트에는 언제나 그들의 음악을 들을 생각이 충만하다 못해 넘처 흐르는 사람들만으로 가득채웠다. 이런 무대에서만 서 왔던 그들은 언제나 '헛기침'만 해도 열광해주는 무대에만 익숙해져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지금까지 관객을 만족시키려는 음악을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의 음악'을 만족하며 들어주는 사람들 앞에서만 노래를 부르는 일종의 '현실도피'를 음악적 자존심이라는 이유로 당연시해왔다.

그러던 그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노래를 무조건 추앙해줄 거라는 보장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무대에 섰다. 당연하겠지만 그들은 이제 '엄마'앞에서의 응석부림이 아닌 진짜 자기 음악을 그냥 그렇다고 보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음악을 인정받아야만 한다. 당연히 최선을 다하는 그 이상으로 속에 있는 무언가를 전부 내던져야만 했다. 그들의 이런 버닝하는 모습을 이끌어내는 방송 더구나 그런 방송이 수요일 심야 1시가 아니라 일요일 저녁 5시에 방송된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을 그렇게 모든 걸 던지게 만드는 주체가 '시청자'라고 말해주는 방송, 그들이 호평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극단적 비판을 하는 포스팅의 경우 이를 역순으로 뒤집는다. 처음에는 가수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되지 않는 '가수 중심이 아닌 시청자 중심이 된' 무대를 만들어 등수라는 게 의미가 없는 그들의 제각각 다른 개성강한 음악 세계에 등수를 매겨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무리를 시킨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 포스팅들은 점점 후반부로 갈 수록 프로그램 전체를 비판하던 목소리에서 점점 한쪽 귀퉁이로 좁아지게 되는데, 주로 특정 1인을 지정하며 그 가수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 그 가수가 원래 잘 부르는 가수인데, 쥐뿔 모르는 관객들 앞에서 인정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무리를 하게 만들어 이미지가 훼손되어 안타깝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곤 한다. 주로 이런 쪽으로 좁아지는 대상은 '김연우', 'BMK', 간혹 '임재범'이 그 대상이 된다.

대상을 지칭한 이후 이들의 비판은 상당히 그 논리가 분명해지는데, 이들이 지칭하는 가수들은 주로 '낮은 순위의 결과'가 나왔거나 '블로거 자신'의 기준으로 인정하기 힘든 사람들보다 '순위가 뒤졌다'라는 점을 든다. 김연우의 경우를 예로 들면 김연우의 특징이 주로 절제된 감정 표현 속에 맑은 목소리로 호소하는 스타일이라며 이걸 제대로 듣지 못하는 시청자들의 평가로 인해 김연우 본인이 본인의 모습을 잃고 오버버닝을 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주저앉을 정도로 힘들어하는 모습에 마음아프다는 식의 '팬으로서의 감상'을 근거로 덧붙이는 자의적 판단에 따른 객관화의 오류를 범하곤 한다.


극단적 비판을 하고 계신 몇몇 블로거들이 착각하고 있는 첫 번째는 이들에게 '나가수'의 출연을 그 누구도 강제한 적도 없고, 출연 전에 '나가수'의 포멧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출연의 판단은 그들이 했으며 이런 무대의 특성이나 기획 의도 역시 전반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했음에는 두말할여지가 없다. 그런 그들이 반드시 '자신이 가진 개성'을 인정받아가며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환경 속에서 노래를 부를 것을 충분히 각오한 그들의 마음을 애써 대변한다며 쓰는 포스팅이 과연 그 가수의 팬 이외의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두 번째로는 자신이 가진 기준이 반드시 '정설'에 가깝다는 편견에서 불러온 나가수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다. 아직 잘 지켜지는 것 같지는 않지만 나가수의 기본 기획 의도는 '음악의 다양성'이다. 필자가 온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정말 숱하게 봐온 음악 커뮤니티에서의 언쟁 중 하나가 A가수와 B가수 중 누가 더 가창력 지존인가 하는 정말 무의미한 논쟁들이었다. 이러한 논쟁은 사실 선동렬, 최동원 떡밥이나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는 소시팬덤과 아이유팬덤의 싸움과 본질적으로는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양한 개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부르짖던 이들의 포스팅은 결국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객관성을 잃는다.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한다면 YB보다 훨씬 잘한 김연우가 왜 YB보다 순위가 낮냐는 식의 끝맺음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게 느껴진다. YB가 가진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심지어 1위 박정현이 어떤 노력을 해서 그 순위를 얻었는지, 이소라가 어떻게 해서 2위를 얻었는지는 그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심지어는 그들이 '시청자들의 취향'에 걸맞게 자신들의 개성을 버려가면서 점수따기로 일관했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이며 자신의 색깔을 지키고 있는 김연우와 BMK가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이소라가 지난 주 무대에서 정말 자기 개성을 다 버렸는가? 오히려 진짜 이소라다운 노래로, 아니 지금까지 보여줬던 것보다 더 대놓고 자기 색깔을 드러내버렸다고 느낀 건 필자 뿐인가? 그런데 2위를 했다는 건 이미 음악적 개성을 드러내고 드러내지 않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하지 않았던가? 1위를 한 박정현은 어떤가? 박정현는 처음 인터뷰에서 조용필 선배님에게 칭찬을 듣고 싶다는 감상을 밝혔고, 음악 극후반부에 이르기 전까지 가능한 자신의 내지르는 창법을 최대한 억제하며 원곡이 가진 음악적 특성을 충실히 표현하려 애썼다. 그리고 곡 후반부에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창법을 시원하게 쏟아낸다.


착각하고 있는 세 번째는 '평가단'과 '시청자'를 너무 바보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가수에는 어떤 절대기준이라는 것이 암묵적으로 생겨져있고 그로인해 그에 속하지 않고 속할수도 없는 김연우가 시스템에 희생당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사랑해마지않는 가수들의 잘 드러나지 않는 개성까지 일반 관객들이 캐치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핸디캡은 비단 일부 가수들만에 한정되지 않고 출연한 모든 가수들이 한 번씩은 거처가도록 공평하게 배분되었다고 생각한다. YB는 잘 알려진 몇 가지 히트곡을 다 제껴두고 부담감이 컸을 나가수 '첫 무대'에서 일반적으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 생소한 노래를 불렀지만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며 중위권을 지켰고, 불과 2주 전에는 박정현이 '전혀 들어본 적 없을' 곡을 선택했다고 고백한 뒤 '이 곡은 제가 너무 좋아하는 곡이어서 꼭 부르고 싶어요, 관객들이 좋아하게 만들거야! 라는 각오를 하며 부를 거에요'라는 포부를 밝힌 바가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내린 평가단들이 정말 음악을 대중성에 비춰 가려듣는 사람들이라고 함부로 단정할 수 있는가?

500명의 심사단은 처음에 누가 출연할지는 전혀 모른 채로 녹화장에 들어온다. 당연하겠지만 그 누구의 팬이 더 많이 섞여 있을거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거다. 게다가 누가 나올지 모르는 가요 프로그램 방송 방청객, 낮녹화에 발걸음을 옮길 사람 정도라면 적어도 음악깨나 듣는 사람이 아닌 이상 그 정도 정성을 쏟기가 힘들다. 특히 이는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더할 것이다. 이들 블로거가 무시해 마지않는 40~50대의 평가단들이 음악 듣는 귀가 닫힌 바보들이라는 평가에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가진 무언가를 다양성이라는 근거를 통해 인정받고 싶거든 먼저 상대방이 가진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나가수의 처음 기획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 몇몇 가수의 팬을 간접적으로 자칭하고 있는 당신들은 오히려 나가수의 이런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당신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가수가 힘들어하고 지쳐하고 아파하는 것을 보다 못해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자신의 다양성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제대로 다양성을 인정받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깎아내리며 프로그램의 공정성까지 들먹이는 건 너무 치졸하지 않는가? 마치 들어본 적도 없는 곡에게 졌다고 분풀이를 하는 걸그룹 팬들과 음악같지도 않은 음악을 하는 걸그룹을 좋아라한다며 그들을 꾸준히 경멸해왔던 당신들이 하는 행동이 그들과 대체 다른 게 뭔지 말해주지 않겠는가?

나가수는 생각보다 가수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가수에서 가수들에게 무언가를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주체를 굳이 꼽자면 평가단과 시청자들이 될 것이다. 그런 시청자들과 평가단이 과연 그들에게 '당신의 음악을 버리고 대중적인 음악을 해!'라고 강요하고 있을까? 이미 지난 결과로서 그렇지 않다는게 너무 잘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몇몇 가수들이 그런 부분에 지례 조급해하며 자신이 해온 음악에 자신감을 잃고 너무 쉽게 대중성에 휘말린다면 그거야말로 한심하지 않은가? 가수라면 자신의 음악이 비주류라 할 지언정 자신이 생각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음악이 어느 정도로 훌륭한지를 자신의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좀 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만 하지 않나?


착각하지 마라, 평가단과 시청자들은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지켜가면서 '내 음악을 좋아하게 만들고 싶다'라는 열망을 무시할만큼 어리석고 바보같지 않다. 당신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그 아티스트의 음악을 좋아하는 만큼 다른 가수들 역시 당신들의 그 사랑에 진배없을 만큼 반대편에 서 있는 그들이 가진 잘 알아채기 힘든 매력을 느끼며 살고 있다. 당신들이 반대쪽에 있는 그들의 숨은 매력이 잘 보이지 않아 그들을 평가절하하는 만큼 당신들이 사랑하는 그 가수의 숨은 매력을 애써 찾아 좋은 평가를 내려주길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나가수는 그들을 비춘 거울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음악의 파이가 지극히 작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걸 홀로 독식하는 식으로 만들어진 영향력 속에 보호받으며 호랑이로 군림해왔다. 사랑해주는 사람들 품에 안주하며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들과 거리를 분명히 두며 자신들의 음악을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왔다.


임재범의 노래, 김연우의 노래, BMK의 노래를 노래방에서 부르는 걸 듣기 싫어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들이 부른 재해석의 의미가 없을 완벽한 노래를 다른 사람이 부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거다. 그 정도로 신격화되어있는 그들이 지금까지 해온 건, 더 늘어나지 않고 늘어날리가 없는 고정 팬들의 지지에 안주하며 자신이 하는 음악의 저변 확대나 같은 음악을 하는 후배들을 위해 장르 대중화에 힘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절대자가 되어버린 그들을 대신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과 같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성장할 여지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는 거다.

그런 그들이 이젠 자신이 하고 있는 음악이 더 저변이 넓어지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창력'이라는 음악의 본질을 인정받기 위해 의기투합하고 모든 걸 쏟아내려 무진 애를 쓰고 있다. 그런 모습이 안스러운가? 자신의 우상이었고 최고라고 생각하는 가수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것이 억울하고 분하신가? 성적지상주의라니, 제대로 매력을 몰라주는 평가단들이 야속하신가?

필자는 일요일 오후 5시에 어떻게든 제대로 만든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기 위해 부득이하게 순위를 매겨 흥미요소를 만들 수 밖에 없었던 나가수 자체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가수의 평가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의 음악을 인정받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한 사람들을 평가절하하고 심지어는 그들을 자신의 가수들보다 높게 평가한 사람들을 바보취급하는 등 '성적지상주의'의 폐해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 그런 당신들의 위선이 필자는 미치도록 부끄럽고 안타깝다.


당신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가수들을 진정 망치고 있는 건
한낱 TV프로그램이 아니라
바로 당신들 스스로가 아닌지를 한번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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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유곡이라는 말이 있다. 이래나 저래나 죽긴 매한가지인 상황을 빗대는 말인데, 사실 나가수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김영희 PD의 야심작이었던 나가수가 기획했던 포텐셜을 채 폭발시키지 못하고 좌초될 위기에 처했던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김영희 PD는 그 오랜 기간 공들여 기획했다는 나가수를 어떤 이유여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준비한 시간의 채 10분의 1도 견디지 못한 채 떠나가버렸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왜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김영희 PD는 완벽주의자이다. 그리고 그 빈틈없이 1인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방송조직의 핵심으로 자리잡을 만큼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능력들 역시 하나같이 준 프로급 이상으로 준비했던 사람이다. 그만큼 자기 작품에 대한 고집이 대단하고 그래서 더 자기 작품에 대해 비판을 받거나 의도했던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공들인 기간이 무색할 만큼 너무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필자는 지금 김영희 PD를 비판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김영희 PD가 나가수를 기획한 의도를 생각해본다. MBC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가요'프로그램에 대한 욕심이 대단했고 어느 정도 노하우도 있었다. 문제는 언제나 '시청율'이었다. **예술무대 시리즈는 정말 수준급 아티스트들이 대거 출연하여 수준높은 공연을 안방까지 전해주었던 '좋은'프로그램이었지만 언제나 제작비 대비 시청율 부족으로 인해 자선사업과 다름없게 운영되며 주말에 가까웠던 프로그램이 주중 한가운데 수요일로, 그나마 프라임 타임에 근접했던 시간대가 점점 까마득한 심야 시간대로 밀리다가 못해 폐지되었다.


TV의 가장 큰 장점은 '무료'다 우리는 '문화'를 얻기 위한 대부분의 수단에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에 살고 있고. 그것은 가요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TV에는 음악성을 느끼기에는 한참 부족한 아이돌의 잔치가 된 음악 프로그램만이 넘쳐났고 제대로 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은 모두 유료 콘서트장에 한정되고 있다. (아이돌 음악이 제대로 된 음악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게 아니다) 물론 좋은 공연에 가치를 지불하는 지금의 시장이 문제될것은 없다. 그러나 그게 정말 (자신의 주관상)'좋은 음악'인지 아닌지를 제대로 구분하기 위한 '트라이얼'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음악이 3사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음악만 있는 게 아닌데, 점점 자라나는 세대들은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그리고 기성세대 역시 그들이 인정할 만한 음악 다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생각에 7080음악을 추억하게되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결국 제대로 음악을 하는 가수도, 그리고 제대로 음악을 하려는 가수 지망생들도, 제대로 된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음악 애호가들도 모두 죽게 되는 세상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김영희 PD가 나가수를 기획하게 된 동기 역시 이와 일치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제대로 된 음악이 나오는 환경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시청자들의 귀'를 틔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좋은 가수들이 제대로 극한까지 가창력을 끌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하지만 KBS의 금요일 심야, SBS의 평일 심야같은 시청율 사각지대에 놓여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이미 귀가 트인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귀가 트이지 않은' 사람들을 트이게 만드는 것이 나가수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귀가 트이지 않은 사람이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시간대에 방영되어야 했는데, 이미 한번 음악여행 라라라의 심야 프로그램 진입이 결국 호평 속 시청율 부진이라는 전통적 언발란스 결과를 도출한 채 실패했던 최근사례가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번 프로그램의 프라임 타임 진입은 기획의 흥망을 결정할 핵심요소였음에 틀림없었다.

시기도 괜찮았다. 때마침 그가 지분을 가지고 있을 일밤이 시청율이 바닥을 기고 있던 상황이다. 일요일 저녁,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간대였다. 그러나 문제는 시청율이다. 수요예술무대와 다를 바 없는 밋밋한 프로그램이 일요일 프라임에 살아남을 만큼 민방의 세계는 만만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영희 PD는 너무 음악만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적절히 버라이어티성을 가미하는 한편, 지금까지 '아티스트'라 불리우며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던 가수들의 지위를 일격에 떨어뜨리는 대변혁을 시도한다. '당신은 지금부터 가수지망생이 되어 관객들에게 오디션을 치루듯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지금까지는 어디까지나 그 가수를 알고, 그 가수의 노래를 들을 생각이 충만한 사람들만을 상대할 수 있는 자기중심의 라이브 무대에만 서 왔던 그들, 그래서 언제나 우러러바라보이는 것에 익숙해왔던 그들에게 주도권을 빼앗아 시청자들에게 돌려준다는 발상까지... 그의 생각으로는 이보다 완벽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그의 기획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잠재되어 있었는데 다름아닌 '포멧이 너무 완벽했다'라는 것이다. 즉 시청자들은 그런 완벽한 포멧을 받아들이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포멧에 담긴 그의 속뜻을 읽어낼 만큼은 소통하지 못했다. 사실 시청자가 PD의 의중을 반드시 읽어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 완벽한 포멧을 가감없이 받아들인 시청자들은 김영희 PD가 그 완벽한 기획을 스스로 깨버리고 재도전을 허용하는 모습에 배신감을 느꼈다. 물론 이유는 포멧이 너무 완벽했기 때문이다.

김영희 PD는 그 완벽한 포멧을 시청자들이 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출연하는 가수들이 더 많이 받아들여주기를 원했을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합법적 압박이다. 강요하지 않은 압박을 가수들이 자기 멋대로 느끼고 자기 멋대로 긴장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노렸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것은 시청자들 역시 그러한 압박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가수들이 이런 자신들의 급작스런 방송상의 신분 변화를 받아들이는데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결국 결과는 다들 잘 아시는 것처럼 나가수의 좌초로 이어지게 되고, 휴방인지 종방인지 알 수 없는 여운만을 남긴 채 한 달이 흐른다.


신정수 PD가 바통을 이어받은 뒤 가장 많이 이야기가 나온 건 나가수의 본질이 훼손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밖에도 김영희 PD혼자 다 하던 것들을 각 분야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집단제작체제로 바꾼 조직의 변화 역시 볼 수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그동안 단지 위협과 자극이 전부였던 프로그램 포멧에 재도전 없는 무조건 탈락이라는 절대적인 긴장감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초콜릿,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며 음악을 즐기던 사람들이 속속 나는 가수다에 대한 기대를 접게 되었다며 아쉬워했던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가수들이 더 좋은 무대를 보여주고 싶다는 순수성을 잃은 채 인기 위주로 흘러 순위에만 집착하게 되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필자는 이들의 의견에 대체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나가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정수 PD가 무엇보다 중점적으로 노력을 기울였던 건 '인적 쇄신'도 아니었고 '자기 입맛대로 포맷을 바꾼 것'도 아닌, 결정적으로 '나가수'가 좌초되지 않게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 했다.라고 보고 있다. 만일 여기에서 나가수가 시청자들에게 다시금 외면받으면 더 이상 이런 기획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음악계의 정파가 살아남을 미래도 없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가수 중심에서 결국 '시청자 중심'이 되었다며 나가수의 지금의 모습에 아쉬워하지만 난 신정수 PD를 비롯한 지금의 제작진들에게 정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디까지나 나가수는 살아남았고 복귀했으며 임재범을 비롯, 갖은 화제를 낳고 있고 시청율도 껑충 뛰어올랐다. 고품격 음악 프로그램을 표방하는 KBS의 심야 라인도, 그와 유사한 SBS 심야 라인도 어디에서도 해내지 못한 '정통 음악 프로그램'의 프라임 타임 안착을 지금 그들이 어떻게든 해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나가수는 여전히 훌륭한 가수가 나와서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훌륭한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그것도 10대부터 50대까지 고른 연령대가 듣고 느끼고 감동하며 즐거워할수 있는 그런 음악 프로그램이 '민방'에서 프라임 타임에 내걸리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본질은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다소 가벼울 수 있을 개그맨들의 애드립을 섞거나 무한도전틱한 편집까지 하면서까지 가능한 시청자들의 요구를 수용해 시청자들이 외면하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노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절절하다.

물론 이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가 트이신 분들이라면 평일 심야 고품격 음악 프로그램에 비해 나가수가 가지는 지금의 모습이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나가수는 수요일 심야에 하던 수요예술무대를 일요일 프라임 타임으로 옮겨오면서 가능한 장수하기 위해 일반적인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게끔 개량하면서도 이미 귀가 트이신 분들의 요구도 가능한 수용하려는 노력을 결코 게을리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일 나가수가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음악적 완성도만을 추구하고 매니아들의 요구와 입맛에 맞추다 보면 결국 이 프로그램은 다시 수요일 심야로 돌아가게된다. 그렇게 되면 일반 시청자들의 '음악을 들을 권리'는 다시 찾아오기 요원해질지도 모른다. 어떻게 얻은 프라임 타임인가, 제작 성향은 다를지언정 김영희 PD와 신정수 PD의 마음은 같다. 나가수는 어떻게든 프라임 타임에 남기고 싶다라는 것, 처음 기획했던 본질은 '일요일 저녁 프라임 타임에 방송되는 수요예술무대'가 아니었던가? 필자는 이 주제 하나만 놓고서라도 정신이 아득해질만큼 앞이 안보이는데 그들은 지금까지의 축적된 경험과 인맥을 총동원해서 여기까지 와 있다.

이제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줘야 한다. 응원의 박수도, 프로그램 잘봤다고 쳐주는 격려의 박수도 아니다. 그들에게는 또 나와달라는 '커튼 콜'의 박수가 필요하다. 하루에도 열번 이상 때려치고 싶은 기분이 들 듯한 그들에게 '다음에 한번 더 해주세요'라는 박수가 필요하다. 그것이 아마도 우리가 할 수있는 그들에 노력에 대한 최대한의 찬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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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박재범이 왜 지금 시기에 뮤뱅에 나왔는지 재미있지 않은가? 타이밍 정말 기가 막히다. 2PM은 국내 활동을 잠시 쉬고 일본에 아예 넘어가있는것으로 보이고 그밖에 JYP계열 그룹들이 일제히 자취를 감추는 이 기막힌 틈새시점에 이른바 '얼리버드 복귀'를 했다. 그런 와중에도 기획사들의 철저한 동업자 정신(?)으로 라디오 및 TV에서는 철저하게 외면받았던 가운데 순수 팬덤만으로 1위에 올려버리는 일찌기 보기 힘든 사례도 탄생시켰다.


놓치고 있는 첫번째는 이같은 특수한 환경이다. 박재범의 1위에 대해 뮤직뱅크의 순위 산정 기준을 들먹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사실 뮤직뱅크의 순위 방식 중 가장 의야스러운 점이 바로 '디지털 음원'이나 '음반 판매량'이 아닌 '시청자 선호도'와 '방송 노출도'다. 음반이나 음원은 얼마든지 수치상으로 확인이 가능하지만, 이 시청자 선호도는 대체 어떻게 분석하는지 데이터도 나와있지 않다. 방송 노출도? SM의 캡숑파워로 거의 모든 TV프로그램 엔딩곡이 f(x)의 피노키오로 도배되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게 과연 '시청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인터랙티브함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을까?

놓치고 있는 두 번째가 바로 이 인터랙티브함의 문제이다. 대한민국에는 애석하게도 디지털 음원 이외에 종합적인 판매량 순위를 확인할 이렇다할 근거가 없다. 여기에 철저하게 비주류 지하돌 팬덤을 구축하고 있는 박재범 팬덤의 타의적 폐쇄성 탓에 도무지 어느 정도의 잠재적인 인기가 있었는지 일반인들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는 박재범 팬덤이 의도적으로 지하돌 활동을 원했던 게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해지는데, 이들이 '팬 활동'이 아닌 '응원'형태의 활동 방식을 추구하면서 다른 팬덤, 특히 JYP계열 팬덤과 자주 부딪혔음은 물론 방송 노출이나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것에 대해 팬 개개인의 활동만으로 미디어 노출을 이루기 어려운 장애물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즉 블로거들은 기획사들의 알력관계를 너무 얕보고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업계 내에서는 그 이상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은 게 그들인데도 말이다.

  세 번째로 놓친 부분은 바로 이들의 '구매 성향'이다. 박재범의 팬덤은 너무 오랜 기간 '지하돌'화 되어 있어 마치 찌르면 걷잡을수없이 폭발해버릴듯한 극도의 코어성이 내재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즉 지금의 박재범 팬덤은 많지 않은 인원 속에서도 구매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이른바 '무조건 산다'는 절대구매층이 다수를 이루고 있으며 이들의 경제력 역시 현재의 아이돌 팬 연령대보다 현저히 높게 형성되어 있는 탓에 충분히 뒷받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의 구매 목적 역시 지금까지의 아이돌 구매 성향과는 크게 다른 '순위'를 높이기 위한 '주식시장'의 작전 세력과 같은 치밀하고 고차원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대중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런 활동이 물론 '실제 인기'를 반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박재범 팬덤이 '실제 인기'라고 우기기 위해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도 보기는 힘들다. 그들은 단 한주만이라도 그를 1위로 끌어올려 뮤직뱅크가 결과를 무시하기 어렵게 해서 박재범을 출연시키고 박재범의 1위 수성을 발표하게 만드는 '짧고 굵은' 응원을 한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은 방송에 나오게 되어 한 번이라도 듣게 되어 아주 조금이라도 그들의 팬덤이 수가 늘어날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중요한 건 이런 활동이 '기획사'가 아닌 '팬덤'이 중심이 되어 움직여진 사례는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희귀한 사건이라는 데에 있다. 당연히 일방통행식 음악 콘텐츠 공급에 익숙해진 대중에게는 매우 생소한 시스템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에는 이런 사례가 꽤 많아서. 가요 프로그램이나 라디오에서는 전혀 들을 수 없는 (즉 일반인이라면 모르는 게 당연한) 정말 매니악한 성우들의 음반이나 지하돌 (언더그라운드 아이돌) 혹은 애니메이션 주제가들이 오리콘 주간 상위권을 확 휩쓸고 다음주에 자취를 감춰버리는 경우를 왕왕 볼 수 있다. 물론 '소수'의 팬덤이 이런 일을 저지른다. 이들은 발매일에 맞춰, 혹은 오리콘이 집계를 시작하는 날에 맞춰 1주일간 집중적으로 사재기 작전을 벌여 점수를 높인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순위는? 처음에는 100% 팬덤의 힘으로 이루어지지만 다음 싱글에는 그 당시 그 순위를 보고 한 번쯤은 그 음악을 들어본 사람들 중 그 음악을 '마음에 들어했던' 사람들이 일부 섞이게 된다. 즉 10:0이었던 팬덤과 일반 비중이 9.9:0.1 정도로 아주 미세하게 확장되는데, 이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이 좋아하고 응원하는 아티스트들을 오리콘에 노출시킴으로서 팬 스스로 '키워내는' 응원을 하게 된다.

약빨떨어졌다고 해도 국민밴드였던 스핏츠와 나카시마 미카를 즈려밟고 애니메이션 음반이 '위클리'1위, 사실 AKB도 시작은 이런 식이었고, 지금의 신한류 일본 정복도 이 범주에서 대부분 벗어나기 힘들다


 박재범은 그 팬덤의 규모에서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음주에 순위가 급락하거나 아예 방송 출연을 다시 하지 못하는 등의 결과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당연하겠지만 블로거들은 다음 주 뮤직뱅크에 그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포스팅이 양산될것이다. 박재범의 팬덤도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겠지만, 아무래도 태동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같은 팬덤 성향에서 아직 어떤 추가적인 작전을 걸게 될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당장의 여론에 대한 아쉬움에 아마도 무모하리만큼 다음 주에도 어떻게든 순위권에 안착시키려고 음반을 다시금 10장, 20장 공동구매하는 식으로 순위를 높여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박재범 팬덤의 이러한 시도가 과연 또 어떤 벽에 부딪히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우 신선한 시도라는 점은 분명하다. f(x)의 피노키오가 1위를 했다고 '국민가요'가 된 게 아닌 것처럼 이미 지금의 '순위'는 전국민적인 공신력을 얻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단지 박재범의 사례는 순위조차 '홍보 수단'이 되는 이런 상황을 대형 기획사가 아닌 '팬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졌다는 점이 특이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블로거들이 놓치고 있는 것,

이미 조직표와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이 바닥에서

'가요순위프로'의 공신력 따위는 에초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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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참 태어나기 힘들고, 살아남기도 힘든 캐릭터를 지닌 노홍철, 지난 무한도전에서 보여준 '거상 노만덕' 캐릭터 당시 정말 많은 여성들에게 어필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가 특별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냥 재미있고 유쾌해서라고 한다면 설명이 부족하다. 그가 무한도전에서 참 재미있고 신기하며 보고만 있어도 유쾌해지는 캐릭터인것은 분명하지만 웃기는 것만으로 여성팬들에게 그런 절대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그렇다고 그가 얼굴이 '매우 잘생겼'거나, 여성들에게 매우 호감이 가는 얼굴인 것도 아닌 것 같다. 키도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여자들이 싫어하는 대표적인 남성들의 특징인 '큰 머리'를 가지고 있다. 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있지만 이런 스타일은 철저하게 호불호가 갈린다. 그런 그가 거리에 나타나면 여성팬들이 구름처럼 몰린다. 그가 내미는 상품을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뭉텅뭉텅 사준다. 국민 MC 유재석이 같은 미션에서 여성팬들로부터 매우 계산적인 처우를 받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비교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건 단지 그가 '연예인'이라서가 아니다. 인지도는 유재석이 더 높은데 어째서 유재석은 그런 구름같은 여성팬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을까? 단지 품절남이라서?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할 것 같다. 유재석과의 차이가 아니라 노홍철만이 가질 수 있었던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그에게 수많은 여성팬들을 안겨줬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그가 무한도전이 본격적으로 안정화되기 시작한 4년여 전 유행시킨 유행어가 하나 있다. 다름아닌 '소녀팬'이라는 단어인데, 사실 노홍철의 인기는 이 '소녀팬'이라는 단어에 거의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소녀팬'이라는 게 단어로서 계속 되뇌이거나, 가지고 싶다고 생각만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면 노홍철은 그렇게 '반 새뇌식' 팬몰이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포인트는 '소녀팬을 계속 되뇌인' 데에 있는 게 아니라 '소녀팬'이라는 단어 자체에 있다.


우리는 만 13살부터 18살까지의 여자 사람들을 흔히 뭐라고 부르는가? 열이면 아홉이 '여학생', 혹은 나이를 통한 현재 학력을 유추해 '여중생','여고생'등으로 부르곤 한다. 이미 우리는 그 단어 자체가 '아직 성장기를 겪고 있는 풋풋한 여자'를 일컫는 대명사가 되어 있다. 그들이 일과 중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끔찍할만큼 긴 것도 사실이고 학생은 공부나 해야한다며 타의적으로 학교에 처박고 학원에 처박고 처박히는 일생을 살아오고 있는 것도 틀리지 않은 현실이지만, 정작 그 '학생'이라는 표현을 그들이 '달가워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다.

그들은 '여자'이고 싶다. 꾸미고 싶고 여성스러워지고 싶다. 더 가슴이 커졌으면 좋겠고 더 다리가 날씬해졌으면 한다. 입술이 더 섹시해졌으면 좋겠고, 머리도 좀 더 길게 길러봤으면 싶다. 다시 말해 특히 '그 나이대 여자'들은 '학생'이라고 불리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성인 여자'로 취급해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우리는 철저하게 '여학생'이라고 불러왔다. 그 여학생이라는 단어가 다시는 못올 풋풋함의 상징이라는 새뇌까지 해대면서 말이다.

이승철의 '소녀시대'가 대히트를 친 건 단지 음악때문만안 아니었다. 그는 '어리다고 놀리지말아요!'라며 그들 대신 기성세대들에게 일갈해준 든든한 '오빠'였으니까...


그들을 노홍철은 처음으로 '소녀'라고 불렀다. '여학생팬, 여고생팬'이 아니라 '소녀팬'이라고 불렀다. 처음부터 그에게 소녀팬이 그렇게 많았을리는 없다. 하지만 그가 부르짓는 '소녀팬'이라는 단어는 응당 '여학생'이 아닌 진즉에 '소녀'라고 불리웠어야 할 '소녀'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제서야 깨닫는다 -그래 우리는 여학생이기 이전에 '소녀'였다고 말이다

민감한 나이대, 어른들로부터 인정받고싶어하는데에 익숙한 이 사회에서, 처음으로 자신들을 '소녀'라고 불러준 '어른'이 있었다. 그것도 그들이 대통령보다 위대하다며 동경하는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말이다. 노홍철이 정말 여기까지 계산하고 그런 말을 만들어 부르짖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가 그들을 부를 때 쓴 '소녀'라는 호칭은 '소녀'들의 가슴에 불을 아주 제대로 지핀 셈이 됐다. 노홍철은 본의아닐수도 있게 소녀팬들에게 있어서는 '자신을 처음으로 여자로 봐 준 남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소녀...라고 불렀다.


홍철은 솔직한 성격이 장점이다. 그는 결코 입바른 소리를 하지 않는 이미지를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소녀'라고 부른 그 한마디는 소녀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소녀'들에게서 '소녀'라는 호칭을 빼앗아간 우리 사회에서 그는 본의아닐수도 있게 잃어버린 '소녀'들의 '소녀'를 그들에게 되찾아주었다. 유행어가 되어 정착된 '소녀팬'이라는 단어는 음악방송 공개홀에서 동경하는 오빠를 향해 부르짓는 여자들을 더 이상 '빠순이'나 '학생팬'으로 부르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학생'은 음악방송 공개홀에서 소리지르면 안되고 공부를 해야 하지만 '소녀'는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이건 학생답지 않은 것이 아니라 소녀답다라고 표현해야 옮다. 극성팬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욕하기 전에 그들이 왜 '소녀'답지 않게 과격해질 수밖에 없었는지 먼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소녀들에게 있어서는 자신을 처음으로 여자로 봐준 사람이 되어버린 노홍철, 그는 예컨데 이를 모두 의도하고 그런 유행어를 만들어냈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그래서 그가 좋다. 이 세상에 어두운 면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밝은 쪽으로 이끌어 낼 것을 너무 의식하고 행동하다 일을 그르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는 아무 생각없이 자연스럽게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렇게 자신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걸 모르고 행동하는 사람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자연스럽게 기쁨을 주는 사람들이 이 나라엔 무척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소녀는 그냥 소녀라고 불러주면 되는 것이다
참 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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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갑자기 그렇게 들어오라고 해도 안들어오던 스마트폰이 아주 봇물이 터지셨다.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아이폰은 구경조차 못해보던 이 나라가 이제 '스마트폰'이 아니면 신규 가입도, 기기 변경도 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스마트폰을 반 강제적으로 손에 쥐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활용할 것을 강요당한다.


딱 10여년 전이 그랬다. 인터넷 붐이 일었다. 그리고 PC가 마구 보급되었고 전국에 인터넷망이 마구 깔렸다. 세상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 처리하게 되었다. TV에서는 인터넷만으로 생활이 가능한지를 테스트하는 다큐멘터리가 연일 방영되었다. 관공서들과 은행, 각종 서비스 기업들은 속속 인터넷 서비스를 앞다투어 개시했다. 그렇게 이 세상은 속속 '인터넷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는 듯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이 '인터넷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으로 속속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인터넷은 '사용 수단'이지 필수 요소가 되어서는 안되는데도 말이다. 이는 인터넷 활용에 적응이 늦은 연배 있으신 분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태초부터 기계치가 있는 것처럼 컴맹, 인터넷맹이 있기 마련인데 이들은 인터넷이라는 세상의 '변혁'에 휘말려 희생을 강요당하고 말았다. '넌 이것도 못하냐'라는 지조섞인 비웃음과 함께...


왜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기까지 국민적인 저항이 별로 없었을까? 그것은 인터넷의 미디어적인 편리성 이전에 '경제성'을 내세워 보급에 속도를 붙였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우선 '공짜'였다. 모든 서비스가 공짜라는 점을 어디에서나 쉽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은 최소한 '오프라인'에서 파는 물건보다 훨씬 싸야만 했다. 안 그러면 팔리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오프라인 서비스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절차에 비해 훨씬 저렴한 '수수료'를 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왜냐하면 인터넷은 생각보다 '매우 불편'했으니까...

IT강국이라는 키워드에 취해 전 국민을 IT화시켜 마치 '젊은 엄마들의 아이자랑'마냥 세계 각료회의에서 인터넷 보급율 같은 범국민적 지표를 자랑하고 싶었던 이 나라는 그러한 수치적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국민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일원화시키기에 급급했다. IT가 잘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는 어디까지나 동등한 이용 권리를 주어야만 한다는 보편적 권리에 대한 개념은 이 나라에 없었다. 나이 든 중역들도 반 강제적으로 페이퍼레스 운동에 동참해야 했고, 그들은 이메일로 보고를 받은 다음 그것을 열지 못해 다시 프린트해서 보고를 받고 다시 그에 대한 답변을 서면으로 작성에 이메일에 옮기는 것을 부하직원에게 시키는 웃지 못할 일을 벌어야만 했다.


인터넷은 편리하지 않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다고 착각하는 이면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말이다. 인터넷 뱅킹을 예로 들어볼까? 우리는 '도장'하나로 모든 게 해결될 수 있었던 예전 송금 방식에서 'ID','패스워드','공인인증서 로그인 패스워드(영숫자혼합8자리 이상)','이체비밀번호','인터넷 이체 비밀번호 (영숫자혼합6자리 이상)'을 '직접'암기해야 한다. 여기에 보안카드 번호를 직접 '틀리지 않게 입력'해야 하는 수고도 들어간다.

다들 직접 방문하는 거리적 수고를 덜었다고 생각하는 이면에는 이런 불편함이 수반된다. 그리고 이같은 IT의 변화는 결국 국민들의 대대적인 손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터넷 쇼핑몰의 개인정보 유출, 인터넷 쇼핑몰 대형 미발송 사기사건, 그리고 최근 발생한 농협의 전산작동불능이 그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인터넷을 쓰고 싶지 않거나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을 싸잡아 우민화시키며 세상을 살아가는 선택권을 빼앗아가면서까지 우선 사지로 내던져 '알아서 살아남아라'는 식의 정책을 주창했던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국가가 있다.

컴퓨터를 못 하는 원숭이가 문제가 아니라 원숭이에게 컴퓨터를 던져 준 사람이 문제가 아닐까?


지금의 스마트폰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으며 쓰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나 막힘이 없다는 응답을 한 사람이 전체 사용자의 16.7%밖에 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 그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에서 특이점을 찾을 수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하고 잇다'라는 것, 미국이나 일본이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스마트폰'을 못쓰게 한 적도 없고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아닌 다른 것을 못쓰게'한 적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지 않을까?

십수년 전 인터넷 붐과 지금의 인터넷의 위상을 보면서 스마트폰 시대의 흐름을 본다. 이제 겨우 휴대폰으로 문자 보낼 수 있게 될만큼 '노력'했던 사람들이 스마트폰 시대로 인해 또 어떤 환경을 강요받게 될까? 이미 그에 익숙하고 배우기 쉬운 젊은 층이나 타고난 얼리어답터들이 아닌 소수일수도 혹은 다수일수도 있는 사람들을 일단 사지로 내던져 '억지로 그 흐름에 편승'할 것을 강요하고 전국민적 '타이틀'을 국가 '상표'로 이용하고자 하는 지극히 '공산주의적 사회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필자 뿐일까?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을 보면서 우리는 '가장 효율적'인 것이 가장 '경제적'일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가 농협 사태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인터넷 뱅킹이 '사람들'의 인건비를 줄이고 교통비를 줄일 수 있는 굴뚝 없는 산업 이라며 효율성을 부르짖었다. 그 끝이 농협의 끝없는 경제 논리로 인한 대형 참사라니 재미있지 않은가? 결국 우리는 그 작은 효율성을 추구한 결과 더 큰 손실을 가져오고 말았다. 그리고 거기엔 그 '효율성'과 'IT강국'이라는 포장지를 위해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생활 패턴을 시대의 흐름이라며 억지로 강요당한 것에 따른 시간적 낭비를 감수할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비효율'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효율성을 추구하다 보면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놓치게 된다. 후쿠시마 사태와 농협 사태는 이같은 공통점이 있다. 사람이 해야 할 일보다 '돈'이 우선시되었다는 것이 그것인데, 결국 피해는 '작은 효율'에 취해 '작은 비용 절감'에 현혹되었던 (전기료 절감, 수수료 절감) 일반 국민들이 모두 떠안게 되고 말았다. 이젠 이런 '작은 효율'을 추구하는 경제논리적 사고방식에 대한 지지도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쯤되면 좀 그 효율성에 발을 맞춰가지 못해 시간과 정신적인 손실을 감수하고 있는 적지 않은 사람들의 고통과 그에 따른 경제적 비효율성도 한번쯤 굽어살필때가 되지 않았는가?

효율이라는 이름 속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비효율의 희생을 수반한다는 것,
우리가 고도성장기에 취해 작금의 경제위기를 돌파하고자 하는 이면에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헌법에는 언제나 '누구나' 라는 말이 항상 들어간다.
누구나, 언제든, 무엇이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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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글은 '카이스트'를 옹호하고자 하는 글도 아니고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고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카이스트생이 아니며 본 글에 나오는 사례들은 필자가 만난 카이스트생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것으로 지극히 주관성이 가미되어있을수 있음을 밝혀둔다.


카이스트는 원래 자살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빡센 학사일정이 있기도 하고 군 면제 혜택이나 100% 장학금 혜택 등 기존 대학들과 차별화되어있는 장점의 이면에는 그러한 장점을 소위 '개나소나'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정말 부던히도 많은 노력을 해왔던 역사가 있다. 불과 십수년전만해도 학점 내에 B가 한 번 끼어있으면 경고를 받고 그 이후 B를 한번 더 받으면 짤없이 퇴학이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평균 3.0 기준이 아니었고 징벌적 등록금 납부가 아니라 아예 퇴학이었다는 것, 당연하겠지만 이 공부밖에 모르는 학생들은 자신이 카이스트의 엘리트 라인에서 낙오되었다는 좌절감과 더불어 남학생의 경우 퇴학 즉시 군대로 끌려간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그 전설적인 '거푸집 침대'를 뒤로 하고 기숙사 옥상에서 몸을 던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게 너무 비인간적이라는 평가가 지속적으로 나오게 되어 바뀌게 된 게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퇴학 조치는 징벌적 등록금으로 한 과목이라도 B가 나오면 안되던 걸 전체 평점 3.0으로 완화시켰다. 물론 이 완화기준을 만든 계기가 반드시 '인륜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는데, 2000년 이후 이른바 카이스트 1세대들의 아들들이 과학고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에 돌입하는 연령대에 접어들면서 무작위로 뽑기보다 과학고에서의 에스컬레이션을 선호했던 부분으로 인해, 과학고의 '내신'과는 또 다른 객관적 평가를 해야만 했던 카이스트가 이들의 학력 저하를 문제 삼아 퇴학을 결정하게 될 경우 실세를 쥐고 있는 카이스트 1세대들의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웠으리라는 판단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은 파벌에 따른 눈치보기에서 나온 정책이라는게 안타깝지만 아무튼 기준은 이전에 비해 대폭 완화되었다. 이제 학생들은 '등록금'만 내면 학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남학생의 경우는 까딱 잘못하면 군대로 끌려가 인생 막장 태크탈수도있다는 똥줄타기 긴장감을 한층 덜 수 있게 되었다.

이공계 엘리트의 군입대는 곧 '시망'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 와서 자살자가 4명이나 나왔고 학생들이 이를 근거로 카이스트의 정책을 좀 더 완화해야 한다며 들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에 비해 '완화'되었기에 추가 완화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요구는 뭔가 투명성과 연관성에서 심하게 결여되어 있다. 우선 자살한 4명의 자살 동기가 4명 모두 '학업 부담' 이라고 아예 확정적으로 못을 박고 그를 빌미로 징벌적 등록금제도에 대한 부당함과 더불어 팩트에 가미되지 않았던 '영어 강의'문제까지 싸잡는가 하면 검찰은 여태 한번도 드러나지 않았던 카이스트 비리를 밝혀냈다며 연속콤보를 후려치고 있다.

영어 강의는 분명 문제다. 미친 짓임에 분명하다. 이건 개선해야 하는 게 옮지만 '지금처럼 국민적인 관심이 집중되었을 때' 터뜨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끄집어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정말 팩트가 코어에 근접했을때 밝혀내더라도 제대로 된 근거가 나오기 힘든 약자들이 지금처럼 '분위기를 타듯' 싸잡아 문제제기를 할 경우 향후 신뢰성 문제에 있어 후폭풍을 맞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살자 중 한 두명정도는 정말 확실한 관련 팩트를 제시할 만한 근거를 낼 수 있다지만 인천에서 살던 휴학생의 자살까지 끌어들여오는 건 너무 심하지 않았는가?, 관계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은 채 사건에 휘말려버린 카이스트 교수의 자살은 어떤가? 제각각 이유가 다를 수 있는 자살을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로 이용하기 위해 팩트를 싸잡아 일원화시킨 행위가 과연 그 주장에 대한 무결성에 도움이 되고 있을까?

사실 부정적인 의견만 있던 것도 아니었다.


카이스트가 내내 자살이 없다가 갑자기 올해 들어 4명이나 자살했다는 식의 보도 분위기도 그렇지만 그 자살자 4명이 정말 징벌적 등록금의 문제점에 의한 것이며 4명 모두 영어 강의에 반대하거나 수강 자체를 어려워했다는 점이 자살 동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가 지금으로서는 어디에도 없다. 그들의 주장이 부당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살이라는 팩트 하나로 자신들의 처우 개선을 주장하고 있는 카이스트의 주장이 이후 힘을 잃게 될 것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지금 기회를 잃고 싶지 않은 기분은 알겠지만 평소에 그러한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더 치밀하게 준비를 했어야 했고 향후 뒤통수를 맞지 않을 무결한 기회를 엿보았어야 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카이스트의 현행 제도는 '영어 강의'를 제외하고 현역 대학생들에게 공감을 얻기 힘든 주장들이 대부분이다. 카이스트는 '전교생 장학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카이스트는 원래 학비가 무료'가 아니라 '전교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는 학교라는 것이다. 그런 학교가 성적에 대한 잣대를 엄격하게 제공하고 그 성적에 도달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징벌적 등록금'을 내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장학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지금 카이스트생들은 성적에 도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징벌적 등록금'을 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것은 '성적이 낮은 학생에게도 장학금을 줘라'라고 주장하는 것밖에 안되는 것이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것이며 그런 주장이 동세대들에게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장학생의 자격


세상에는 '선택에 대한 책임'이 존재한다. 뮤추얼펀드가 원금손실이 벌어졌다고 증권사 찾아가 내돈 내놓으라며 멱살잡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나라에서 이 '선택적 책임'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인감도 있지만 한마디로 '니가 이것에 대한 허와 실을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타인에 의한 강요 없이 100% 자발적으로 선택한 부분은 전적으로 자기자신의 책임이다'라는 것이다. 100% 영어강의가 문제가 있다는 것, 징벌적 장학금 제도가 문제가 있다는 것 과연 그들이 '카이스트를 지원할 당시'에 몰랐을까? 그들은 그걸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카이스트를 선택했다. 그리고는 지금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근간을 책임질 엘리트들이라는 이들이 보이는 행동 치고는 너무 치졸하지 않은가?

카이스트는 원래 그런 학교다. 그리고 그런 학교여야만 한다. 학생들은 전원 장학금을 받고 있으며 다른 대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런 파격적인 제도에 걸맞은 우수한 학생들을 육성해내야 할 책임이 있고, 그에 걸맞은 우수한 학생이 되어주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학교에서 나오는 장학금은 국가 세금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처우 개선에 대한 주장을 거둔 채 닥치고 따라가라고만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고인의 의중과는 관계없이 그저 '남은 자들'의 편익을 위해 그들의 죽음을 싸잡아 이용하는 행위는 이후 행여 정말 카이스트가 학생들의 목소리를 내야만 하는 일이 생겼을 때의 발언권과 그에 대한 신뢰성을 급격히 떨어뜨린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들은 카이스트의 미래를 이야기하며 학교를 변화시키겠다고 하지만
결국은 지금의 자신들 안위를 최우선시하고 있음에 다름아니며,
이후 들어올 카이스트의 후배들을 위해 노력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현재 안위만을 생각한 나머지
오히려 카이스트에 들어올 후배들의 발언권과 신뢰도까지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그럴 자격은 없어보이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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