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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갑자기 그렇게 들어오라고 해도 안들어오던 스마트폰이 아주 봇물이 터지셨다.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아이폰은 구경조차 못해보던 이 나라가 이제 '스마트폰'이 아니면 신규 가입도, 기기 변경도 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스마트폰을 반 강제적으로 손에 쥐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활용할 것을 강요당한다.


딱 10여년 전이 그랬다. 인터넷 붐이 일었다. 그리고 PC가 마구 보급되었고 전국에 인터넷망이 마구 깔렸다. 세상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 처리하게 되었다. TV에서는 인터넷만으로 생활이 가능한지를 테스트하는 다큐멘터리가 연일 방영되었다. 관공서들과 은행, 각종 서비스 기업들은 속속 인터넷 서비스를 앞다투어 개시했다. 그렇게 이 세상은 속속 '인터넷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는 듯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이 '인터넷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으로 속속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인터넷은 '사용 수단'이지 필수 요소가 되어서는 안되는데도 말이다. 이는 인터넷 활용에 적응이 늦은 연배 있으신 분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태초부터 기계치가 있는 것처럼 컴맹, 인터넷맹이 있기 마련인데 이들은 인터넷이라는 세상의 '변혁'에 휘말려 희생을 강요당하고 말았다. '넌 이것도 못하냐'라는 지조섞인 비웃음과 함께...


왜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기까지 국민적인 저항이 별로 없었을까? 그것은 인터넷의 미디어적인 편리성 이전에 '경제성'을 내세워 보급에 속도를 붙였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우선 '공짜'였다. 모든 서비스가 공짜라는 점을 어디에서나 쉽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은 최소한 '오프라인'에서 파는 물건보다 훨씬 싸야만 했다. 안 그러면 팔리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오프라인 서비스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절차에 비해 훨씬 저렴한 '수수료'를 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왜냐하면 인터넷은 생각보다 '매우 불편'했으니까...

IT강국이라는 키워드에 취해 전 국민을 IT화시켜 마치 '젊은 엄마들의 아이자랑'마냥 세계 각료회의에서 인터넷 보급율 같은 범국민적 지표를 자랑하고 싶었던 이 나라는 그러한 수치적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국민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일원화시키기에 급급했다. IT가 잘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는 어디까지나 동등한 이용 권리를 주어야만 한다는 보편적 권리에 대한 개념은 이 나라에 없었다. 나이 든 중역들도 반 강제적으로 페이퍼레스 운동에 동참해야 했고, 그들은 이메일로 보고를 받은 다음 그것을 열지 못해 다시 프린트해서 보고를 받고 다시 그에 대한 답변을 서면으로 작성에 이메일에 옮기는 것을 부하직원에게 시키는 웃지 못할 일을 벌어야만 했다.


인터넷은 편리하지 않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다고 착각하는 이면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말이다. 인터넷 뱅킹을 예로 들어볼까? 우리는 '도장'하나로 모든 게 해결될 수 있었던 예전 송금 방식에서 'ID','패스워드','공인인증서 로그인 패스워드(영숫자혼합8자리 이상)','이체비밀번호','인터넷 이체 비밀번호 (영숫자혼합6자리 이상)'을 '직접'암기해야 한다. 여기에 보안카드 번호를 직접 '틀리지 않게 입력'해야 하는 수고도 들어간다.

다들 직접 방문하는 거리적 수고를 덜었다고 생각하는 이면에는 이런 불편함이 수반된다. 그리고 이같은 IT의 변화는 결국 국민들의 대대적인 손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터넷 쇼핑몰의 개인정보 유출, 인터넷 쇼핑몰 대형 미발송 사기사건, 그리고 최근 발생한 농협의 전산작동불능이 그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인터넷을 쓰고 싶지 않거나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을 싸잡아 우민화시키며 세상을 살아가는 선택권을 빼앗아가면서까지 우선 사지로 내던져 '알아서 살아남아라'는 식의 정책을 주창했던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국가가 있다.

컴퓨터를 못 하는 원숭이가 문제가 아니라 원숭이에게 컴퓨터를 던져 준 사람이 문제가 아닐까?


지금의 스마트폰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으며 쓰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나 막힘이 없다는 응답을 한 사람이 전체 사용자의 16.7%밖에 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 그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에서 특이점을 찾을 수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하고 잇다'라는 것, 미국이나 일본이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스마트폰'을 못쓰게 한 적도 없고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아닌 다른 것을 못쓰게'한 적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지 않을까?

십수년 전 인터넷 붐과 지금의 인터넷의 위상을 보면서 스마트폰 시대의 흐름을 본다. 이제 겨우 휴대폰으로 문자 보낼 수 있게 될만큼 '노력'했던 사람들이 스마트폰 시대로 인해 또 어떤 환경을 강요받게 될까? 이미 그에 익숙하고 배우기 쉬운 젊은 층이나 타고난 얼리어답터들이 아닌 소수일수도 혹은 다수일수도 있는 사람들을 일단 사지로 내던져 '억지로 그 흐름에 편승'할 것을 강요하고 전국민적 '타이틀'을 국가 '상표'로 이용하고자 하는 지극히 '공산주의적 사회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필자 뿐일까?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을 보면서 우리는 '가장 효율적'인 것이 가장 '경제적'일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가 농협 사태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인터넷 뱅킹이 '사람들'의 인건비를 줄이고 교통비를 줄일 수 있는 굴뚝 없는 산업 이라며 효율성을 부르짖었다. 그 끝이 농협의 끝없는 경제 논리로 인한 대형 참사라니 재미있지 않은가? 결국 우리는 그 작은 효율성을 추구한 결과 더 큰 손실을 가져오고 말았다. 그리고 거기엔 그 '효율성'과 'IT강국'이라는 포장지를 위해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생활 패턴을 시대의 흐름이라며 억지로 강요당한 것에 따른 시간적 낭비를 감수할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비효율'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효율성을 추구하다 보면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놓치게 된다. 후쿠시마 사태와 농협 사태는 이같은 공통점이 있다. 사람이 해야 할 일보다 '돈'이 우선시되었다는 것이 그것인데, 결국 피해는 '작은 효율'에 취해 '작은 비용 절감'에 현혹되었던 (전기료 절감, 수수료 절감) 일반 국민들이 모두 떠안게 되고 말았다. 이젠 이런 '작은 효율'을 추구하는 경제논리적 사고방식에 대한 지지도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쯤되면 좀 그 효율성에 발을 맞춰가지 못해 시간과 정신적인 손실을 감수하고 있는 적지 않은 사람들의 고통과 그에 따른 경제적 비효율성도 한번쯤 굽어살필때가 되지 않았는가?

효율이라는 이름 속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비효율의 희생을 수반한다는 것,
우리가 고도성장기에 취해 작금의 경제위기를 돌파하고자 하는 이면에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헌법에는 언제나 '누구나' 라는 말이 항상 들어간다.
누구나, 언제든, 무엇이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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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귀환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아시안컵 출정에 나선 태극전사들이 받아든 성적표는 3위다. 51년만에 우승을 노렸던 대한민국으로서는 아쉬운 성적일수도 있다. 아시안컵 우승을 열망했던 박지성을 비롯해 많은 기대를 걸었던 팬들까지 아쉬움은 더할 나위 없다. 그런데 조금 다른 눈으로 대표팀을 바라보면 의외로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목표를 이룬 듯한, 아니 오히려 목표 이상의 무언가를 남긴 듯한 모습이다. 이번 아시안컵은 물론 '우승'에 대한 강한 열망도 좋았지만 그 이전에 경기 하나하나 의미가 없는 경기가 없었고 대회 전체적으로도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이번 대회 슬로건이었던 '왕의 귀환'을 아주 훌륭하게 완수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2007년 대한민국 대표팀은 아시안컵에서 3위의 성적을 기록한다. 그리고 2011년 같은 성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일면 성적이 같기 때문에 그때에서 전혀 진화하지 않았거나 변화를 시도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지난 3위에 대한 평가와 이번 3위에 대한 평가는 질적으로 완벽하게 다르다고 생각한다.

지난 3위 당시 주요 스쿼드를 보자.

GK 이운재
DF 강민수 김상식 오범석 김치곤
MF 김치우 염기훈 김정우 김두현 염기훈
FW 이동국 조재진 이천수 최성국

2006년 월드컵에서 해외파를 빼고 당시 가장 포스가 좋았던 선수들로 구성된 이 팀은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스쿼드가 지금 2011년 아시안컵에 비해서 미드필더와 공격진만큼은 '무척 뛰어난' 수준이었다는 사실이다. 2006년 월드컵을 경험하며 프랑스 감독에게까지 극찬을 들은 조재진, 두말이 필요없는 아시안 킬러 이동국, 여기에 두 번의 월드컵을 경험하며 이미 없어서는 안될 아시안컵 대표팀 에이스 '이천수'까지, 해외파를 안 부르며 처음부터 대회를 '베어백 쫒아내기'로 일찌감치 테마를 내정한 축구협회만 아니었다면 아마 사상 최강의 스쿼드가 탄생할수도 있었다. 그정도로 공격력, 특히 아시아권에서의 공격력 레벨은 최상급에 가까웠다.

훗 가소로운 것들...


그런데 당시 베어백은 골문을 틀어막는 전략을 짜는데, 포백을 모두 내리고 이따금 오범석과 김치우의 오버래핑만을 남겨둔 채 압박 축구가 아닌 '압박 수비'를 선보이며 무려 630분간 무실점 기록을 세우는 한편 630분간 무득점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함께 세운다. 베어백이 지극히 수비적인 감독이어서 그랬을수도 있지만 당시 스쿼드를 보면 그의 총체적 고민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한마디로 '세대교체'를 이미 한 번 실패한 대표팀을 그대로 이끈 채 성적을 내야만 했던 어려움에 직면했던 것이다.

우선 공격진을 보자 선발로 주로 나섰던 조재진, 이천수를 대신할 서브 스쿼드는 누구였을까? 아직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던 이동국과 우성용이다. 조재진, 우성용, 이동국 모두 같은 스타일의 공격수여서 교체에 별다른 변화를 주기 힘들다는 점은 논외로 치더라도 즉 이 당시에는 이들 셋을 대신할 수퍼 서브로 적합한 선수가 없었으며 이들이 혹시 부상이라도 당하면 그나마 기대하기 힘든 공격진에 암울함을 가져다줄 것이 자명했다. 이들이 과연 적극적으로 몸싸움에 임할 수 있었을까? 혹은 그렇게 지시를 받을 수 있었을까?

미들진은 어떨까? 측면 공격 이외에 중원에서 중심을 잡으며 밀어줄 수 있는 선수는 김두현과 김정우 뿐이었다. 이호는 볼란치로 적합하지만 공격 전개 능력은 무척 떨어지는 평가를 받았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염기훈이나 김치우처럼 측면을 빠르게 파고드는 스타일 이외에 그들의 속도에 맞게 패스를 연결해줄만한 선수가 '김두현'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공격 전개가 잘 안될 때, 즉 김두현과 상성이 잘 안맞는 팀을 만나거나 김두현이 지치면 교체 카드는...이호나 김정우밖에 없다는 현실, 그렇다고 중원을 빼고 측면을 보강하면 그나마 불안한 중앙이 시원하게 뚫려버린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체력을 아껴야했으며 젊은 선수들의 오버래핑과 이동국, 조재진에게 맞춰주는 단조로운 뻥축구를 택할 수 밖에 없었던것이다. 왜냐 내 발에 쥐가 나면 팀이 암울해지니까


수비진은 아예 할 말이 없다. 왜 베어백이 욕먹을 각오를 하고 한국판 카테나치오를 전개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절절하게 보여준다. 한마디로 대표팀 붙박이 상징적인 누군가가 없었다. 지금 저 당시 포백을 이루었던 선수들 중 어느 누구도 2011년 아시안컵에 승선하지 못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이런 당시 포백에 수미로 김상식이 들어간 이유를 보면 당시 수비진의 불안감과 세대교체가 얼마나 힘겨웠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 마디로 선수단 전체가 안고 있는 '세대교체 실패'가 팀의 기록 3위, 630분 연속 무득점의 공격력 저하를 '가져올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만들었던 셈이다. 만일 수비가 안정되고 미들진에 변화를 가져올 만한 서브, 그리고 좀 더 젊은 공격 옵션들이 풍부했다면 당시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당시 공격력은 결단코 2011년 대표팀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리듯 수비진의 붕괴는 미들의 실종을 야기시킬 수밖에 없었고 공격진은 전혀 패스를 이어받지 못한 채 자기진영 깊숙히 내려가야만 했기에 특유의 스피디한 공격전개를 펼치기에는 정말 좋지 않은 조건이었다. 게다가 그토록 염원했던 골키퍼의 세대교체는 아예 엄두조차 못내던 상황, 2007년 대회는 우승을 하지 못하면 그대로 실패일수밖에 없었다. 세대교체의 의미도 없었고 그렇다고 대회에 대한 이렇다할 동기부여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4강 이상이 아니면 베어백 짜르겠다고 말한 엄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이런 팀을 다른 나라 팀이 무서워할리가 없다. 당시 아시안컵 대표팀은 마치 성문을 단단히 잠그고 농성을 하는 모양세였던탓에 공격진도 특유의 날카로움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로인해 상대팀에게 마음놓고 공격당해도 상대진영의 뒷공간이 열리지 않았다. 샌드백을 무서워하는 복싱선수는 없다. 가끔 너무 세게 치다가 그 친 반동에 얻어맞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누구도 샌드백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또 무서워해서도 안됐다.



지난 일 얘기는 이쯤 하고 이제 2011년 아시안컵 스쿼드를 보자

GK 정성룡
DF 곽태휘, 황재원, 조용형, 이용래, 차두리, 이정수, 이영표, 홍정호
MF 손흥민, 구자철, 이청용, 김보경, 윤빛가람, 기성용, 박지성
FW 지동원 김신욱

일단 젊어졌다는 건 다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우선 수비진부터 짚어보자
중앙 수비자원이 정말 엄청나게 많다. 아니 아예 이영표와 차두리를 빼면 전원 중앙수비자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번 대회는 곽태휘의 퇴장과 부진도 있긴 했지만 중앙 수비진의 조합을 의외로 굉장히 자주 갈아치웠다. 경험많은 이정수를 기본적으로 고정시킨 뒤 이정수와 호흡을 맞추는 최적의 조합을 찾거나 혹은 우즈백이나 호주같은 장신 공격진을 대비해 제공권이 좋은 센터백 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느냐면 각 센터백들이 파이터형이나 제공권 장악, 안정적인 게임운영, 몸싸움에 능한, 공격전개 능력 등 제각각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기에 어떤 스타일의 팀에도 대응할 수 있는 맞춤형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유래없는 메이저 대회에서의 센터백 로테이션 시스템은 '이 선수가 없어도 된다'라는 팀 내부의 심리적 안정감을 도취시키기 위함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상대에 맞게 스쿼드를 짤 수 있는' 자원을 만들기에 아시안컵만큼 이상적인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장신과 몸싸움에서는 유럽팀 못지않은 호주, 패싱게임으로 뒷공간을 노리는데 능한 일본, 빠른 스피드와 밀리지 않는 떡대로 악명높은 이란 그리고 홈 텃세와 맞먹는 텃세와 압박을 이겨내야 했던 바레인, 다득점을 노려야만 했던 인도전 모두 버릴 게임이 하나 없는 완벽한 시험무대로 부족함이 없었다. 이기는 것은 공격에 의한 골이지만 그 골을 만들기 위한 시작은 상대로부터 수비가 공을 빼앗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조광래 감독은 가장 먼저 상대의 맥을 끊을 수 있는 수비 전술에 골몰하여 고정된 수비의 조직력과 함께 '상대 맞춤형 수비자원'을 골라내는 데에 역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금까지의 고질적인 수비불안을 달고 살았던 한국 대표팀에게는 정말 고무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는데, 특히 이정수가 없었던 대 일본전에서의 조합은 조광래감독이 의도했던 바가 아주 제대로 드러난 일전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역사상 수비진들이 이렇게 주전 자리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 베어벡감독에겐 강민수가, 허정무 감독에게는 조용형이 있었다. 지금 조광래 감독의 수비수 황태자는? 없다. 지금까지 공격과 미들에서만 이루어지던 주전 경쟁이 수비진에서 그 이상으로 불꽃튀기고 있다.

미들은 또 어떤가? 갑자기 포워드에 가있어야 할 애들이 미들에 바글바글하다. 수비형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의 경계를 없엔 탓에 스쿼드 자체는 수가 적은 편이지만 내가 내 포지션을 뱃기면 전혀 관계없는 선수의 다른 포지션을 빼앗아버리는 그야말로 먹이사슬 솥발의 형세(?)가 되고 말았다. 네가 아니면 내가 있다는 것, 수비진에서의 붙박이 경쟁과는 또 다른 경쟁, 그리고 협력을 야기했다. 게다가 기성용이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조금만 시원찮으면 느닷없이 수비수 엔트리의 홍정호와 이용래가 기성용 자리를 노리며 어슬렁거린다. 그런 기성용이 슛같은 패스를 찔러주면 이청용은 이제 혼자 뛰어들어가지 않고 손흥민과 함께 뛰어들어갈 수 있다. 이전에는 박지성의 활동량을 누구도 따라가지 못해 박지성이 휘젓고 다녔지만 이젠 구자철이 같이 호흡을 맞춰준다. 이런 호흡은 선수에게 있어 체력적인 문제를 뛰어넘는 안심감을 선사한다. 몸이 쌩쌩할땐 저 자식이 언제 내 자리를 치고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지만 그 반대로 자신이 몸이 안좋으면 스스로 '자신에 버금가는 라이벌'로서 자기 자리를 매워주는 안심감을 갖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성향의 선수가 함께 호흡을 맞춰줌으로 인해서 '내 플레이를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선수'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예전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정말 수차례 볼 수 있었던 '크로~스....아 근데 아무도 없네요'를 이번 대회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래서 이번 대표팀을 아시아의 스페인이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격진을 과감하게 포기한 것도 특징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표팀 공격진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그리고 하는 족족 욕을 먹었다. 공격수가 패스를 받아서 가능한 빨리 골을 만들어내기 위해 전방에서 기다리면 전방에서 어슬렁거리기만 한다고 욕먹고, 수비를 도우러 가거나 2선이 너무 쳐저있어서 하프라인까지 내려오다가 전방으로 날아가는 뻥패스를 놓치기라도 하면 공격수가 자기자리나 지키지 왜 뒤에서 어슬렁거리냐며 욕을 먹었던 게 우리나라 공격수들의 숙명이었다. 이렇다보니 골 결정력이 높아질수가 없다. 전방으로 들어오는 패스는 가능한 빠르고 정확하게 공격수에게 전달되어야 공격수가 그 정확한 패스를 받아서 더 정확하게 힘을 실어 골문으로 향할 수 있는데 이 말로는 한없이 쉬운 이게 지금까지 안 됐다는 거다.

조광래 감독은 이게 가능하게끔 만들기보다 아예 안하면 안되게끔 만들었다. 이름만 미드필더인 공격수들을 대거 미들로 쳐지게 만들고 공격수 (원톱) 역시 그들과 함께 뒤섞이게 만든 것이다. 이른바 제로톱 전술이라 불리는 이것은 상대에게 엄청난 혼란을 야기하는 반면 최종 화룡점정을 찍는 사람의 부담은 한층 덜해진다. 예를 들어 원톱이 반드시 정해야 하는 경기에서 원톱에게 크로스가 올라오면 원톱은 어떻게든 '내가 제일 앞에 있으니 내가 이걸 슛까지 연결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재대로 발에 맞추지 못하곤 했다. 그걸 조광래 감독은 '자신이 없으면 볼을 돌려라' 는 식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주변에 돌아보면 다들 자기보다 골을 잘 꽃을 녀석들이 주변에서 나한테 패스 달라고 으르렁대고 있는 상황이니 원톱은 볼을 받아도 당황하지 않고 한결 마음이 편해질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백날 이런 전술이 먹힐 리가 없다. 가끔 상성이 안맞는 팀도 있다. 주로 경험많은 볼란치와 센터백이 패스 흐름을 읽고 끊어버리는 식의 플레이에 익숙한 선수가 많은 팀이 그렇다. 이번 일본 대표팀이 대표적인데 이런 팀을 만나면 으르렁댈정도로 신명나던 미들의 분위기가 바로 죽어버리고 경기가 답답해진다. 이런 경우에는 다소 단조롭더라도 확실히 골을 결정지을 수 있는 전술로 수정할수밖에 없다. 그게 가능한 옵션이 '김신욱'이다. 크다는 것 그건 농구선수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물론 좋은 결과를 내진 못했지만 조광래의 이런 공격수 조합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시험무대에 오를 것이고 신기하게도 국내에는 축구 유망주들 사이에 '박지성 붐'이 일어 키가 작고 활동량이 뛰어난 유망주만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풍도여서 이런 아예 대놓고 세워버리는 장대 공격수가 정말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번 아시안컵만으로 김신욱을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장대들과는 좀 격이 다른 것 같다


이런 팀은 상대에 있어서는 공포 그 자체다. 특히 감독에게 엄청난 부담감을 준다. 그 대표적인 경기가 바로 '이란전'이다. 압신 고트비의 자신감은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니었지만 그는 '손바닥 들여다보듯 잘도 들여다보이는' 한국 대표팀에게 단 한골도 넣지 못한 채 끌려다녔다. 제대로 정착도 안된 센터백에게 번번히 막혔고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온 이용래의 커팅에 번번히 흐름이 끊겼으며 느닷없이 후보로 데려왔을 윤빛가람에게 한방을 먹었다. 몸싸움에 자신있는 이란이, 경기 흐름을 끊고 호흡을 괴롭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이란이 이번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패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아시안컵 대한민국 대표팀이 감독으로서는 정말이지 만나기 싫을 만큼 괴로운 상대였다는 것이다. 도무지 예측이 안되기 때문이다.

이는 수비진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공격진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예전에는 대한민국 상대팀들의 전술이래봐야 별거 없었다. 그냥 '이동국을 막아라'였다. 정말이었다. 진짜 이동국만 막으면 어쨌든 됐으니까, 즉 누가 골을 넣을지 대략 정해져있었다. 대략적이긴 하지만 공격도 예측이 되던 팀이었다는 것이다. 2006년 이후 골결정력 부족을 지탄하던 언론들에서 늘상 듣는 이야기가 '대표팀 득점이 공격수보다 미드필더 심지어 수비수가 더 많은 경우도 있다'였다는 것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제로톱이라고 공언을 했다. 게다가 나오는 선수들은 죄다 신인, A매치 득점 기록도 별로 없다. 다들 가슴팍에 MF라고 쓰고 '나 사실 미들이야'라고 기만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러니까 정신이 없다. 그나마 A매치 득점이 제일 높은 지동원을 좀 막다보니 구자철에게 털렸다. 중앙의 구자철을 막다보니 손흥민과 이청용이 싸대기를 쳐댄다. 떡대로 아예 들어올 루트를 막아버리니 뜬금없이 이름만 대따 긴 윤빛가람이 뒤에서 캐논을 쏴댄다. 애들 다 싸잡아 막으니까 오른쪽에서 치이면 최소한 폐차가 확실해질 듯한 덤프트럭 한 대가 밀고 들어온다...우리나라를 상대했던 감독과 코칭스텝은 아마 한국과의 경기 전 미친듯이 골머리를 앓았을거라고 생각한다.

덤프트럭의 위엄.jpg


게다가 이번 대표팀은 세대 교체에 있어서도 대단히 이상적인 방안을 제시했는데 다름아닌 '2014년까지 뛸 선수와 그렇지 않을 선수'를 정확하게 구분해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차두리와 이정수는 동갑내기 황재원은 이들보다 한 살 어리다. 이들의 나이는 각각 30,31살이고 이들이 2014년 월드컵이 되면 각각 33,34살이 된다. 수비수로는 나쁘지 않은 나이다. 즉 이들 셋을 포함해 이들 나이와 +-1,2살 정도의 나이차이가 있는 다소 애매한 노장들은 얼마든지 이들과 주전경쟁을 할 수 있고 그들이 잘만 하면 지금의 강한 세대교체 바람 속에서도 노장으로서 2014년 월드컵을 바라볼 수 있다는 아주 정확한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무조건적으로 나이 많은 선수를 은퇴시키고 장기 플랜이라며 젊은 선수들만 우겨넣었을때의 혼란을 막고 젊은 피와 노장 사이에 끼어버린 애매한 나이대의 선수들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주는 그야말로 안정성과 신선함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세대교체안을 보여준 것인데 이는 비단 수비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소 이정수보다 나이가 어리다면 얼마든지 지금의 젊은 로리로리 대한민국 대표팀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그동안 감독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눈치만 보며 그에 맞는 선수들은 눈에 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던 인재 파이의 편중성을 일거에 넓히는 파격을 암묵적으로 단행한 셈이다.

그리고 '아시안컵같은 하찮은 대회에 박지성을 부르지마!'라는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이영표와 박지성을 불렀다. 여기에서 조광래 감독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소문이더라도 이미 은퇴 의사를 몇 번이고 표명한 이영표와 박지성을 왜 '플랜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안컵에 끼워넣었을까? 앞서 설명대로라면 2014년에 데리고 갈 선수가 아니라면 차라리 넣지 않고 그들이 없을 때 메이저 대회를 어떻게 치뤄내야 하는지를 감독과 선수 스스로 깨우쳐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데 조광래 감독은 그렇지 않았다. 여기에는 박지성과 이영표의 존재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인정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들의 플레이가 이미 대표팀 자체의 상징이 될 만큼 깊숙히 침투해 있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이영표가 없으면 단지 플레이 스타일이 다른 선수일 뿐인데도 '이영표처럼 막지 않는다'며 팬들이 불안해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박지성의 플레이도 마찬가지아다. 그만큼 플레이 이상으로 존재감이 큰 이 둘을 대체하기 위해 아직 이들과 전혀 뛰어본 적이 없는 신인들의 눈과 몸 그리고 직접 맞부딪히며 배우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이들을 이번 대회를 통해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게끔 기회를 주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 둘이 각각 자신의 플레이를 이식시킬 (굳이 이식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배울) 선수를 각각 뽑는데 바로 '구자철'과 '홍정호'이다. 구자철은 말이 필요없는 성장 가능성 무한에 의외로 높은 체력까지 갖춘 복합적 테크니션으로 성장이 기대되는 선수, 홍정호는 수비수 중 가장 젊은데다 중앙, 좌, 우 심지어 볼란치까지 수비진을 아우르는 멀티플레이어이다. 이영표처럼 재빠르게 맨투맨으로 맞붙어 압박을 가중시키는 타입이라는 점, 키가 작고 날렵한 오버래핑도 기대할 수 있다는 점, 나이에 비해 매우 의젓한데다 챔피언결정전까지의 큰 경기 경험도 있는 관록형이라는 점이 이영표의 후계자로 부족함이 없다. 예전 홍명보가 은퇴할 때도 그가 없는 대표팀은 상상할 수 없었고 지금도 이영표가 없는 대표팀은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성장 가능성은 물론이고 어린 나이에 팀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침착함까지 갖춘 홍정호가 앞으로 이영표의 존재감을 어떻게 매워 나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될 정도다. 게다가 여기에 뭐든 가르치면 잘도 흡수하는 떠오르는 대세 '손흥민'까지 가세해 이번 대회를 풀로 소화하며 이들에게 배운 양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경험을 배운 손흥민이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수 있을까? 그들의 은퇴에 대한 충격을 얼마나 순화시켜 줄 수 있을지 혹은 더 뛰어넘는 존재감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벌써부터 이번 대회로 급성장한 그들의 활약상을 볼 기대감을 감추기 힘들다.


왕은 반드시 왕좌에 있어야만 왕이 아니다. 왕이라도 허수아비가 있고 왕이 아니라도 실세를 쥐며 상대국에게 강한 카리스마를 주는 것이 '왕'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메드베제프 대통령으로 바뀐 지 벌써 몇년인데 아직도 푸틴 없는 러시아는 상상할수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왕은 존재 그 자체로 공포여야 하고 강함이 느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왕의 귀환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일본이 우승하던 호주가 우승하던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한국은 어떤 선수가 무서운 팀이 아니라 이미 팀 자체가 '무서운 팀'이라는 이미지를 회복하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팀이 무섭다는 것은 '이번 아시안컵의 팀'이 무섭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저 팀은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는 미래지향적인 공포이기 때문이다. 즉 대한민국은 더 강해질 수 있고 그 강해지는 속도에 발맞춰 안정감도 갖출 수 있는 플랜도 제대로 제시하고 있는 그야말로 '빈틈없는 강함'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아 전역에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것들이 가능할 수 있었단 것은 조광래 감독 혼자만의 능력도 아니고
우연히 좋은 선수가 지금 막 쏟아져 나왔기 때문도 아니다.
조광래 감독도 좋은 전술로 장기적인 플랜을 통해 팀을 강하게 만들 미래지향적인 발상을 가지고 있고
선수들도 그런 감독을 믿고 미래의 대한민국 대표팀에 과감하게 투자하며 몸이 부서져라 뛰었다.


왕의 귀환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이번 왕의 공포정치는 당분간 계속 아시아 전체를 긴장시킬 것 같다는
기분좋은 예감이 든다.

그들의 귀환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앞으로의 더 넓은 세상에서 세상을 호령할 왕의 위엄을 기대해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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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1분도 채 안되는 찰나를 아주 잘도 봤던 모양이다. 잘 보니 정말 박지성이 허리를 잡고 말리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근데 실제로 말린 건지 아니면 정말 매국노처럼 일본에게 욕보이는 짓 하니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의도는 사실 박지성이 직접 입을 열지 않는 한 모르는 일이고 입을 연다 해도 그게 진심인지 알기 힘든 일 아닌가?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하다 박지성은 '주장'이다. 팀의 분위기를 추스르고 팀을 대표하며 팀에 어떤 '위해'가 가해지거나 '위해'가 가해질 것 같은'상황이 되면 대표로 나설 수 있는 그라운드 내의 '상관'같은 존재다. 사람들은 이 '주장'의 의미를 한쪽으로만 편중되어서 생각한 것 같다. 즉 박지성이 선배니까 철없는 후배를 가르치기 위해 끌어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말도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주장의 역할은 그것 뿐만이 아니다. 더 멀리 나가든 뭐든 상관없이 주장의 의무는 '팀의 보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1. 주장이기 때문에.

우선 그는 의사 표시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주장은 팀을 대표하는 위치다. 만일 박지성이 그런 세레머니를 했다면 그건 정말 큰일이다. 팀 전체의 의사가 반영되는 셈이 되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 축구의 간접적 의사표시가 될 수 있으니까. 세계 어떤 클럽 혹은 국가대표팀에서도 각 개인의 의사표시로서 세리머니는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주장 완장을 차고 있는 상태에서 그런 세리머니를 하는 경우는 세리에A의 일부 무솔리니 추종자들 이외에는 보기 힘들다.

다시 말해 그 당시 박지성은 말리고 싶든 싶지 않든 말렸어야 한다. 그게 주장으로서 표현하는 좌 우가 아닌 '중립적 의사표현'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박지성은 일본에서는 이미 슈퍼스타다. 박지성이 거기에서 말리는 제스쳐를 취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기성용이 일본에서 벌집이 될 수도 있었을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 말리는 것은 '주장으로서 해야 할 의무'였던 것이지 박지성의 의사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2. 주장이기 때문에 (2)

앞서 주장은 팀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가 최우선된다고 이야기했다. 박지성은 팀의 주장으로서 기성용이 이런 세레머니를 할 경우 우리나라 일부 네티즌들이 과민반응 할 것을 센츄리클럽의 관록으로 잘 알고 있었다. 폭풍까임을 당하기에는 아직 기성용은 젋다. 성장도 빠르고 앞으로 팀의 중심이 될 선수를 마음의 상처를 입어 유니폼을 벗게 되는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주장으로서 해야 할 '팀의 보호' 즉 팀을 주심이나 상대팀 선수뿐만이 아닌 '자국 네티즌'으로부터 보호하는 것도 주장의 의무였다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만일 어떤 의사 표시 즉 나는 기성용과 생각이 다른데 기성용이 철없는 짓을 해서 우리 팀 이미지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는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어야 한다. 기성용을 즉석에서 못하게 더 강하게 뜯어말렸을것이다. 카메라에 안잡히도록 무슨 수단이든 해야 했다. 그런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의사 표시를 할 수 없는 주장이라는 위치, 그리고 기본적으로 의사를 표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의사를 표시하는 게 중요했던 게 아니라 '기성용'을 아끼고 보호하는 게 의무였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그가 걱정하던 대로 됐다. 걱정한 만큼만은 아니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기성용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고 기성용은 트위터에서 맹폭을 당하고 있다. 박지성은 매국노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정한 대인배라고 할 수도 없다. 그가 대인배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장면 하나로 대인배냐 매국노냐를 판단하는것 자체가 에러라는 거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다.
그는 진정 팀 선수의 안위를 걱정하고 보호해주려 했던 '캡틴 박'으로서 책임을 다했다.
우리나라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걱정하기 이전에 자신이 이끄는 선수를 걱정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장면


뭔가 느껴지는거 없는가?
박지성은 카메라 앞쪽 시선에서 봤을 때 그의 등번호가 세계에 중계되지 않도록 했다.
그의 시선은 기성용이 아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옆모습을 보자


말리는 사람이라면 가슴을 잡고 기성용을 끌어내는 스타일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옆에서 보면 그냥 손으로 그의 앞번호를 가리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다.
그가 자꾸 움직여 등번호가 카메라에 잡히려고 하니까
그를 억지로 끌어당기는 것 정도는 보였던 것 같다.


주장은 그런 존재다.

위 사진은 그 순간 절묘하게 찍힌 사진이고 사실 박지성은 가슴쪽 두번 두드리고 금방 갔다.
즉 지금 박지성이 말린다고 매국노니 마니 하는 녀석들은 경기 안봤거나
그 장면을 유심히 보지 못해 기억을 못한 거다.

아무리 그래도 당신들이 정말 우리나라 대표팀 응원하고 박지성 팬이라면
저 사진을 보고 매국노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를 수가 있는건가?
난 저 두 사진을 보고 아무리 봐도 그런 건 생각이 안나더라
오히려 기성용을 보호해준다고 느꼈지 매국노같은 그런 생각까진 안들더라
그 장면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내가 이상한건가? 대한민국 대표팀 주장을 무조건 믿고 있던게 잘못인가?

누가 매국노인지 똑똑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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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정말 많은 분들이 죽거나 다쳤다. 무려 자국 국민이 죽거나 다친 어마어마한 일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은 시금털털하게도 '다음에 또 그러면 진짜 죽어!' 였다. 이건 뭐 초등학생 싸움도 아니고 그런 협박이 먹힐리가 없다. 이런 시금털털한 대응으로 우리나라는 연평도 희생자에 대한 책임을 북한에게 물어볼 기회를 전혀 얻지 못한 채 북한 정책에서 철저히 배제되는 수모를 당한다. 뭐 하나 속시원히 말 한마디라도 제대로 해서 연평도 주민들에게 '우린 앞으로 국가가 이 정도로 철저하게 해주니까 안심하고 여기 계속 살아도 되겠구나'라는 확신을 주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건 비단 최근의 일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요구할때도, 독도 문제에 있어서도 언제나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라는 저자세를 취하며 국민들의 울화통을 터뜨리곤 했다. 아주 글로벌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었다. 당해도 뭐 하나 속시원하게 한마디 못하는 글로벌 호구, 그걸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지금은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타이틀로 자위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기성용은 젊다. 사실 일제강점기를 거쳤던 세대에 비해 최소 3세대 이상 떨어져있다. 당연하겠지만 일본인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관해서는 그다지 와닿을만한 세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기성용이 그런 세레머니를 했다. 그는 이미 셀틱에서 뛴다. 셀틱은 인종차별로 악명이 높은 클럽이다. 그가 그런 설움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그가 그걸 했다. 그런 그에게 '넌 셀틱에서 인종차별 당해도 싸'라고 말한다고? 그럴 리가...



기성용은 '라이벌'로서 일본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아무 철없는 행동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단 '인종 차별'이라는 게 말이 안된다. 기본적으로 같은 황인종끼리 인종차별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대방을 비하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일 그것이 일본을 비하하는 세레머니였다면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훨씬 더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어야 한다. 이건 '이겼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그런게 아니라, 보도 자체를 할 때 '한국은 이런 식으로 졸렬한 짓을 했는데 우리 선수들은 그걸 참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결국 이겼습니다'라고 보도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거다. 왜냐하면 이들이 그것에 대해 반응을 한다면 스스로 이미 '원숭이'라 불리우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 되니까 누워서 침뱉기가 아니던가? 기성용이 정말 여기까지 계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은 이 세레머니에 한방 먹었어도 이렇다할 말 한마디 못하는 지경이 되고 있다.

그 증거가 바로 지난 한일전에 대한 일본 TV들의 보도 행태이다. 정말 마르고 닳도록 보여주고 있는 하이라이트에서 '기성용'의 패널티킥 골은 단 한번도 재방송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일본 골만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동점골은 제대로 보여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결국 그들은 그걸 보여주면 국민들 모두 '큰 타격'을 받을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금 그 세레모니가 결국 외교문제로 비하될 것이 '두려웠던'것이다. 일본은 지금 그 세레머니 하나로 '우리나라'에게 쫄고 있다. 여태까지 기성용만큼 노골적으로 일본에게 한방 먹인 선수가 있었던가?

기성용의 한 방이 아니라, 몇 수천방을 먹여도 성에 안차는 게 우리나라 역사다. 축구는 국수주의가 아니라지만 한편으로는 자국주의에 기반하기도 한다. 폴란드 선수가 독일에서 뛰면서 자국 폴란드에 골을 넣은 뒤 침울해하는 것, 아르헨티나가 잉글랜드에게 진 뒤 락커룸에서 통곡을 하는 것 모두 자국주의에 기반한다. 즉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우리나라가 더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로 축구다. 이런 축구에서 일본에게 예의를 차리는 것은 사치다. 어느 누구도 전쟁의 직접적인 가해국에게 피해국이 예의를 차리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기회가 있을 때 가능하면 더 비웃어줄 필요가 있다. 그게 아주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원래 축구였고 한일전이었으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한일정기전을 위해 대표팀을 꾸린 이유도 '축구만큼은 일본애들을 확실히 이길 수 있습니다' 라는 자신감에서 나온 게 아니던가?


기성용 잘했다. 정말 잘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누가 뭐래든 기죽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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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트의 김현회 독점 컬럼을 읽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일화 천마 축구단을 처음 알게 된 건 아마 1994년 무렵이었나? 가뭄에 콩 나듯 중계해주던건 15년전이나 지금이나 놀랍게도 하등 달라지지 않았던 그때 주말 오후 2시에 중계해주던 울산 현대 호랑이 축구단과 일화 천마 축구단과의 아디다스컵 경기였다. 난 당시 K리그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던 초딩에 불과했기때문에 놀랍게도 마스코트 즉 현대의 호랑이, 와 일화의 '천마'중 누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지에 대해서 잠시 고민한 후 주저없이 호랑이가 제일 쎈 동물이라는 초딩스런 상식에 편승해서 울산의 승리를 점쳤었다. 그것은 커다란 실수였다. 지금도 난 미성년자의 토토 금지를 지지하고 있다.

Mar. 31, 2010 - Beijing, China - (100331) -- BEIJING, March 31, 2010 (Xinhua) -- Players of Seongnam Ilhwa FC celebrate after a group E match between Beijing Guoan and Seongnam Ilhwa FC of the AFC Champions League 2010 at the Workers Stadium in Beijing, capital of China, March 31, 2010. Seongnam Ilhwa FC won 1-0. (Xinhua/Li Ying.


성남은 정말 강한 팀이었다. 한 번도 제대로 망가지는 걸 본 적이 없다. 망가졌다고 해도 중위권 정도다. 사실상 팬층이 얇아서 제대로 목소리가 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도 강하다. 2002년 월드컵 직후에는 K리그판 갈락티코를 구축하고 그 선수들은 명성에 걸맞는 실력으로 리그를 한동안 초토화시키기도 했다. 어쩌다 가게 되는 경기장에 행여 성남이 원정을 오면 한숨부터 나왔다. 모처럼 경기장에 발걸음을 옮겼는데 홈팀이 지는 걸 보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성남은 그런 팀이었다. 1995년 그 전설의 챔피언결정전때 소름끼칠정도로 강했던 포항을 결국 일축시킨 뒤부터 그들의 이미지는 그 색선정에 다분히 문제가 있어보이는 머스타드색 유니폼과 더불어 공포 그 자체였다.

통일교라는 종교를 안 건 그 뒤로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 통일교가 우리에게 친숙한 맥콜 그리고 일화 천마 축구단의 모기업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알려준 사람들은 정말 정성껏 나에게 열변을 토했다. 이단 종교, 사이비 종교 지도자의 팀에 협력해서는 안된다. 물건도 사지말고 경기도 보지 말라, 아무튼 엮이지 말라는 이야기인것 같았다.

그런데 그들이 ...즉 통일교를 싫어하고 통일교가 운영하는 성남 일화 천마 축구단을 싫어하는 그들이 그걸 손수 알려주기 전까지 난 통일교의 존재도 성남 일화가 통일교 후원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전혀 알지 못했다. K리그를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게 그 전까지 7년이 되어가던 시점이었는데도 말이다. 정리하면 난 그들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까지 어딘가의 게시판에서 통일교 떡밥을 우연히 접하고 그것을 정독하지 않는 한 계속 모르고 있었을거라는거다.

맹세코 난 둔하지 않다. 내가 잘하는 것 하나 없어도 내세울수 있는 것 하나가 눈썰미다.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엄청난 페이스로 관찰하고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것까지 캐치해낸다. 성남 일화를 지켜본 지난 십수년간 성남 일화의 경기 그리고 외적인 이벤트에서 '사전 지식 없는' 일반인의 시점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이벤트나 행위, 종교적 키워드를 캐치해낸 적이 없다. 월드컵에서 카메룬 선수들이 골을 넣고 코너플랙 근처에서 하는 종교적 행위가 궁금해서 구글 번역기를 통해 아프리카 종교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도 했던 나였는데도 말이다.

통일교는 일본의 종교 문화와 많이 닮아있다고 느끼고 있다. 일본에 거점을 두고 있는 영향도 있겠지만 일본 사람들 나에게 '혈액형'이나 '생일', '나이'를 물어본 적은 있어도 종교가 뭔지를 물어보는 사람을 단 한명도 본 적이 없다. 가끔 아주 특별한 경우로 외국인을 만날 때도 있는데 미국 국적의 이슬람 종교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 홀로 라마단을 치르고 라마단이 끝난 뒤 모두와 함께 음식을 나누어먹는다. 그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는 것 이외에 자신에 가진 종교를 어필하는 일도, 포교를 하는 일도 하지 않았다. 종교는 '자신만의 것'이라는 생각은 비단 일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인생 중에 몇 번 정도는 통일교 신자를 만났을수도 있을것이다. 그런데 난 통일교를 포교받은 적이 없다. 그 정도로 통일교는 자신들의 존재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자신들의 계율이나 심지어 기도조차 교회 밖에서는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철저하게 자신들이 공유할수 있는 공간 이외에서는 상대의 어떤 부분도 침해하려 들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인생 중에 정말 수많은 기독교 신자를 만났다. 그 중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이야기 도중, 심지어는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부터 종교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기독교는 적극적으로 사회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어필하고 드러내는 데에 열심히다. 김현회기자가 언급한 '할렐루야 축구단'도 그 중 하나리라...

통일교 그리고 성남 일화 천마 축구단은 종교적인 홍보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종교적인 홍보를 애써 대신 해주려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통일교는 오히려 그분들에게 감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난 종교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앞으로도 관심이 없을 예정이지만 통일교에 대해 아주 조금이나마 그 존재 자체를 알게 해준 건 통일교도 주식회사 일화도, 성남 일화 천마 축구단도, 선문대학교도 아닌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규탄할 것을 부르짖는 기독교였다.

기독교의 이미지가 좋아지기 위해서 시급히 해야 할 이단척결대상은 통일교가 아니라 그들 속에서 과로사로 편히 잠은 에어장같은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아내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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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프라이드 FC'와 'K-1'이 종합격투기업계를 평정했던 때가 있었다. 일본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 여러 국가에서 격투기 붐을 일으켰던 이 단체들은 어느 순간 이런 저런 사정에 의해 몰락하거나 사라졌는데, 그들의 몰락한 이유로는 야쿠자 개입설로 인한 지상파 광고수입 중단, 선수들의 이적 분쟁으로 몸값 거품이 심했던 점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부분은 역시 '격투기'라는 콘텐츠 포멧을 가지고 기존의 문화 콘텐츠 업계의 지분을 빼앗겠다는 시도 때문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섣달 그믐, 일본으로서는 거의 시청율의 최대치를 찍는 시즌에 당당히 도전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로 인해 생겨난 거품성 인기에 대한 판단 착오와 그에 따른 지나친 공격적 경영이 불러온 패착이라는 것이 한결같은 지적이다.
Legend Fedor Emelianenko was defeated by Fabrico Werdum in the Strikeforce Heavyweight fight in San Jose,CA on June 26, 2010.


그렇다고 일본의 양대 격투기 이벤트 단체를 일격에 몰락시킨 미국의 UFC가 격투 콘텐츠적으로 우수했느냐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격투기팬들의 한결같은 평가는 프라이드의 좁은 사각 링보다 넓은 6각형의 옥타곤에서 벌이는 경기가 박진감면에서 떨어지며 마치 지하세게를 연상케 하는 경기장 풍경은 대중화에 크나큰 걸림돌이었다. 그들이 승리한 이유는 '일본의 격투기 단체'보다 콘텐츠가 우수해서가 아닌 결국 '격투기'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인기있는 WWF를 의식해서 선수들에게 대사를 읆조리게 시킨다던지 링 한가운데에서 춤을 추게 하는 등의 퍼포먼스는 없다. 공감대는 없더라도 지극히 UFC다운 무언가를 만들려 애를 쓰고, 오로지 격투기 팬만을 위한 서비스를 고심한다. 결국 프라이드를 잃고 방황하던 '격투기 팬'들은 UFC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일본 게임업계 시장규모 밎 해외실적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게임 시장 매출액 10위권 내 일본 업체로서는 닌텐도가 유일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PS2로 일약 세계 콘솔업계를 주름잡았던 소니는 블루레이의 표준화 선정이 늦어진데에 따른 여파로 그 다음 세대의 주도권을 닌텐도에게 빼앗긴 뒤로 이렇다할 부양책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업계의 전반적인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경제산업성이 분석한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이미 3D위주의 콘텐츠를 추구하고 있는 미국에 비해 일본이 기술적인 트랜드 활용 측면에서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과, 이런 고착화를 가속화시키는 인재풀의 불균형이 그것이다.

경제산업성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게임을 비롯한 영상 콘텐츠 분야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미국 명문 콘텐츠 관련 대학으로의 국비지원 유학, 업계 내 자발적인 프로듀서 육성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 정책 등을 발표하며 프리프로듀스 인재풀에 대한 활성책을 추진하는 한편, 3D기술에 대한 자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가칭 렌더링 공장을 설립하여 업계가 공동으로 이용 가능토록 하는 등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콘텐츠 업게의 품질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정책에 대해 업계는 '업계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은 정부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신뢰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를 내면서도 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정부의 정책적 업계 부흥책의 결과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일본 게임 업계의 해외 전개 지원에 대한 근거로 '1억 3천의 인구와 오랜 시간에 걸쳐 자리잡은 게임 시장에 대한 유연성으로 인해 그동안 별다른 해외 전개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업계의 무관심 속에서도 일본의 게임은 꾸준히 해외에 알려져 왔고 국지적인 보급 속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어 왔다는 점은 일본 게임의 해외 경쟁력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례로 메이지 시대 이른바 '검은 배'로 인한 문화 교류 속에 조금씩 유럽 대륙에 전해졌던 일본의 우키요에가 유럽 역사에 영향을 끼칠 만큼 문화적인 여파를 가져왔다는 점을 들며 일본 콘텐츠의 우수성이 제대로 된 비즈니스 수단으로서 전략적인 성격을 띄게 될 경우 성공 가능성이 충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제산업성의 착각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지금까지 일본 게임 시장은 해외 시장을 그다지 주목하지 않은 채 내수 시장의 우수한 소비력을 바탕으로 성장해왔던 것은 사실이나 그 사실만으로 현재의 일본 게임 업계가 해외 트랜드와 뒤떨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해외 시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지극히 일본적인 내수성에 치우친 작품성 향상이 해외 시장에서 이른바 '밀수' 등을 활용할 필요성을 느끼게 만들 만큼 '일본적'인 문화적 가치가 구매력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인데, 즉 특별히 해외 시장을 의식하지 않고 지극히 일본식으로 일본인을 위한 게임이 해외에서도 자연스럽게 '일본의 게임'으로서 경쟁력을 갖는다는 것이 지금까지 보여준 일본의 해외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제산업성은 이러한 일본적 색깔에 대한 '고집'이 일본 게임계의 해외 경쟁력을 약화시켜왔다며 해외 시장에 맞춘 현지화 전략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면서도, 현재 가지고 있는 게임 업계의 해외 경쟁력에 대해서는 지극히 일본식으로 만들어진 콘텐츠의 성과를 들어 가능성을 논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산업성의 설명 도중 몇 번이고 반복 강조했던 나루토의 유럽 시장 성공사례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선 일본이 과연 어떤 성과를 거둘지에 대해서 예측하기에는 아직 섣부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목표로 삼고 싶어하는 미국의 게임 시장이 과연 일본처럼 해외 각지의 트랜드에 맞게 게임을 만들어 지금의 세계 최대 게임 시장인 미국 내수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일까? 영화는?, 드라마는 어떤가? 결국 가장 미국적인 것을 더 미국적으로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품질좋은 미국적인 게임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재미있고 훌륭한 게임을 만들어낸다는 아주 단순하고도 평범한 논리를 추구하고 있을 뿐이지 않은가? 대한민국은 어떤가? 온라인 게임이 게임성이 떨어지느니, 소재 표절을 밥먹듯 해대고 일본 게임같은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느니 하는 세간의 비아냥속에서도 묵묵히 가장 한국적이고 한국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만을 만들어왔고 그렇게 꾸준히 한국적인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 온 회사들만이 결국 살아남았다. 언제나 성공한 트랜드의 뒤를 쫒아 만들거나 일본 혹은 미국의 게임 모델을 인용해왔던 업체들은 어떤 정체성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거나 이렇다할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그렇다.

일본이 '일본적'인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해외 진출에 집착하게 만든 원인으로는 두말할것도 없이 장기불황에 따른 내수붕괴 때문일 것이다. 내수 붕괴에서 가장 많은 타격을 받는 업계는 여가 선용 업계라는 통설,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이 수반되는 게임업계의 타격은 영화나 음악 업계에 비해 한층 심할 것이 자명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 위기에 대한 타개책을 해외 진출에서 찾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수 시장이 위축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많은 국내의 게임 유저들은 제각각 즐기고 싶은 타이틀에 대한 신작을 기다리고 있고 적지 않은 해외의 일본 게임 유저들 역시 그들만의 취향을 충족해줄 일본산 작품들을 고대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의 작아진 시장을 넓히기 위한 타개책이 지금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새롭게 더 큰 시장에 대한 도전을 '0'부터 시작하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라이드 FC가 사라지고 K-1이 덩달아 예전의 포스를 잃어버린 지금 예전 격투기에 대한 향수를 아직 간직하고 있는 격투기 팬들이 결코 자신의 취향과 타협할 수 없는 UFC를 울며 겨자 먹기로 소비하고 있는 현실이 결코 일본 게임업계에서도 남의 일이 아니게 될수도 있다. 격투기의 인기가 수직상승하자 일본 최대의 시청율집중구간인 섣달그뭄의'대권'을 노리려 한 나머지 스포츠성을 상실한 채 쇼비즈니스를 강화하는 무리수를 두어 자멸한 격투기 단체들과 미국이라는 큰 대권을 노리려는 생각이 가득해 지금까지 쌓아왔던 2D그래픽의 노하우나 순수정통성을 모두 구닥다리로 부정하고 3D를 '이제부터' 기술적, 인력적으로 본격적으로 세공해 나가겠다는 정책이 실효성 여부를 떠나 일본 게임업계가 쌓아온 역사적 정체성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닮아있기에 더욱 그렇다. 물론 이들의 철저한 '미국 현지화'정책이 도요타를 비롯한 자동차업계의 철저한 현지화로 인한 성공사례처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문화는 상품이기 이전에 문화라는 점을, 그리고 그 문화라는 상품은 문화의 본질이 사라지게 된다면 결국 공장에서 생산되듯 영혼이 없는 물건과 다를 바 없게 된다는 것을 상기해주길 조심스럽게 바래본다.


2부에서는 닌텐도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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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16강 성적을 거둔 우리나라 대표팀을 반기기 위한 귀국 환영 행사가 얼마 전에 있었던 모양이다. 대표팀에게 꽃목걸이 하나씩 걸어주고 앉혀놓고 걸그룹이라는 걸그룹은 다 초청해서 노래부르게 시켰던 것 같은데...



혹시 선수들이 군대 말년 병장마냥 섹시하고 귀여운 걸그룹에게 침이라도 질질 흘리며 활짝 웃으리라 기대했던건가? 무슨 우정의 무대도 아니고 생각하는게 왜 딱 거기까지인지 알 길이 없다. 언제나 정부나 기업이 주최한답시고 벌이는 '환영식'이나 만찬은 조선시대 기생을 불러다가 '풍악을 울려라!'라는 초 구닥다리 발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자기들이 허구언날 룸싸롱에서 노니까 다들 그렇게 놀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발상에는 혀가 차일 지경이다.

정부의 삽질은 언제나 2연타를 날린다. 이번엔 청와대다.

참고기사
李대통령 월드컵 축구 대표팀 격려오찬 클릭하시면 뉴스 원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참석 인원은 조중연 축구협회장을 포함한 대표팀 선수, 임원진 50여명 허정무 감독 등이다. 안정환, 이정수, 김보경 선수 이외에는 전원 참석했다고 이 기사는 전하고 있다.

...판단은 독자 분들이 더 잘 하실거라 믿고.
어이없게 같은 날 벌어진 일본 총리의 국가대표 격려회 기사를 전해드린다.
정말이지 일본이랑 비교하기는 참 싫지만...

기사 원문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대략 해석해보면
초대된 사람은 오카다 타케시 전 일본국가대표 감독과
하세베 마코토 현 국가대표 주장 ...
둘 뿐이다.

같이 밥을 먹지도 않았고
그냥 선수들 전원의 사인이 쓰여진 유니폼을 선물하는 정도였다.

국민들에게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혼다케이스케를 비롯한 인기 선수들은 단 한명도 부르지 않았다

축구협회장도...임원진도 없다.

한국이 통 크게 전원 소집시킨 게 우리다운걸까?
딸랑 둘만 부른 일본이 쪼잔한건가?

...국민들을 위해 열심히 뛰어준 선수들이 정말 고맙다면
격려를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고 환영회를 국민들과 함께 축제 분위기에서 열고 싶다면
선수들이 정말 뭘 원하는지 선수들이 피곤해하지는 않는지같은 작은 것부터 챙겨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놈의 사심부터 좀 버려야 하지 않을까?
선수들이 그런 걸 모르고 그 자리에 앉아있지는 않았으리라...


작작좀 하자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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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팀의 월드컵 진격이 멈추었다. 많은 사람들은 거리에 나오던 스케줄을 모두 접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국가대표팀 귀국 행사에는 인기 정상급의 걸그룹들이 대거 참석하여 흥을 돋군다. 그것이 정치적인 목적이 함유되었던 아니던 간에 여튼 축구국가대표팀, 특히 월드컵 국가대표팀은 그만큼 국민들에게 있어 아주 특별한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들이 가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그 사람들을 이용한 무언가를 하려는 자들도 꼬이기 마련이니까...

2002년 부터였던가? 선수들이 환영식석상에서 'K리그를 사랑해주세요'라고 대거 발언하고 3,4위전 카드섹션도 CU@K리그 였던 때 사람들은 월드컵 4강의 여운에 젖어 K리그 경기에 대거 몰려 만원사례를 이루었다. 물론 여기에도 축구 그 자체가 아닌 김남일, 송종국 등 꽃미남 스타들의 영향도 있었고 정말 언론에서 하도 떠들어대니 의무감격으로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K리그는 생각보다 그에 걸맞는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프랜차이즈 스타를 제대로 지켜내려는 의지도, 그 프랜차이즈 스타가 떠나가기 전에 또다른 프랜차이즈 스타를 부각시키는 용의주도함도, 혹은 꽃미남 스타플레이어들로 인해 경기장을 찾았을지언정 그들이 경기장을 찾게 되는 몇 번의 기회 속에서 K리그의 가능성과 재미를 보여주려는 의지 역시 보이지 못했다. 그들은 언젠가 떠날 관객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번 터진 붐이 언제까지고 지속될거라 믿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K리그는 당시 느껴진 바로는 '너무 여유를 부렸던'감이 없지 않았다.

이를 증명하는 두 팀이 바로 1998년 수원과 부산이다. 수원은 고종수, 부산은 안정환이라는 당대 인기 급상승중인 스타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 스타플레이어는 개인적인 인기도 실력도 리그 정상급이어서 팀을 우승권에 안착시킬 능력은 물론 그에 어울리는 관객동원능력 역시 갖춘 선수들이었다. 물론 실제로도 수원과 부산은 이른바 르네상스 시대를 열며 99시즌까지 어마어마한 관객동원율과 정상급 성적을 거두며 승승장구하지만, 2000년대 이후 이 두 선수는 각각 '부상'과 '해외이적'으로 팀에서 사라지는데, 이후 두 구단의 행보는 너무나도 판이하다. 수원은 여전히 축구도시로서 매년 최다관객동원팀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반면 부산은 이런 저런 부침을 겪으며 침체기를 겪고 만다. 수원이 1996년 창단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지금의 순조로운 연고정착은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는데, 수원이 대단한 것은 1998년 월드컵으로 인한 스타플레이어 효과를 겪을 당시 그 효과를 그대로 이어나갈 수 있는 경기력과 축구의 재미를 선보이며 관객 이탈율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즉 2002년 수많은 팀들이 하지 못했던 것을 수원은 해냈고 그 결과 짧은 역사속에서도 K리그를 대표하는 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서두에 '월드컵을 이용해먹으려는 자들'이 꼬인다 는 과격한 표현을 썼는데 사실 K리그도 '꼬이는 쪽'에 속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축구팬들도 잘 인지하지 못하는 점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축구협회' 즉 'FA'와 K리그를 주관하는 '축구리그연맹' 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잘 알려져 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역시 'FA프리미어리그'라는 조직이 '잉글랜드 FA'와 별개로 운영된다) 게다가 이 축구협회 (이하 FA)와 축구리그연맹(이하 연맹)은 엄밀히 말해 국가직속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연맹이 FA의 요청에 의해 리그 소속 축구선수를 '강제'로 차출할 수 있는 권한도 없으며 반대로 연맹 역시 FA가 벌이는 이벤트에 대한 기득권 분배를 요구할 수도 없는 관계에 있다.

선수가 K리그를 사랑해주세요.라고 개인적으로 말할 수는 있어도 연맹이 '월드컵에만 열광하고 리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며 국민들을 질책할 자격은 없다. 그리고 그들이 월드컵 특수로 인해서 K리그 경기장을 반드시 찾을 것이라는 기대 역시 무모하다. 엄밀히 말하면 월드컵에서의 선전과 국민들의 관심은 K리그의 성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K리그에서 선수를 차출해가기 때문에 K리그가 그 선수에 대한 지분을 요구하며 성과 분배를 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분배라는 것이 언제나 '차출 후' 혹은 '월드컵 성적이 나온 이후'에 뒷북을 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어째서 차출할 당시에 FA와 좀 더 면밀한 협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연맹이 FA에 차출에 대한 보상으로 요구할 수 있는 부분도 충분히 있을 것인데 요구하는 것이라고는 고작 '차출 시기'와 '기간'에 대한 협상으로 질질 끌다가 여론에 밀려버리는 일만이 반복되고 있는 것인가? 예를 들어 지방 구단들의 흥행을 높이기 위해 차출하는 대신 국내에서 벌어지는 국가대표 평가전을 전국 각 도시별로 분배해서 개최할 것을 요구한다던지 국가대표 이벤트에 K리그 캠페인을 병행할 수 있도록 협상을 이끌어낸다던지 등등 조금만 생각해보면 난색을 표하지 않는 선에서 요구할 수 있는 조건들이 얼마든지 존재함에도 연맹은 FA에 지금까지 이렇다할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언제나 차출이 임박하거나 월드컵 이후 FA의 성과가 나온 뒤에서야 뒷북을 치는 현상이 벌써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월드컵과 K리그는 기본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역사가 그렇다. 축구 국가대표 역사는 이기봉 전 부통령이 제안한 (일본을 이길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한일전을 기점으로 벌써 60년이 되어가지만 프로축구는 1983년 창단 후 그 절반에 못미치는 27년 그나마 제대로 된 리그의 모습을 갖추게 된 건 1996년 아디다스컵을 대체한 K리그가 정식으로 출범한 때이니 더 짧을 수밖에 없다. 야구는 좀 다른데, 에초 월드컵이라는 세계대회도 없었거니와 기본적으로 고교야구라는 '리그전'에 가까운 '지역연고기반'의 대회에서 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기점으로 프로야구로 팬층이 변동 없이 고스란히 이어질 수 있었지만, K리그는 축구 리그로서 흥행 기반 없이 맨땅에 세워진 스포츠 리그라는 점에서 그 기반이 훨씬 열악했을수밖에 없다.

축구팬들이 언제나 반문하는 점 즉 '해외 유럽에서는 국가대표보다 클럽축구'가 더 대우받는다는 논지도 여기에서 힘을 잃는다. 잉글랜드의 축구 역사는 족히 150년이 넘는다. 월드컵이 시작된 것은 1930년, 게다가 잉글랜드는 1938년까지 참가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도 사실 월드컵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오프시즌'이기 때문이지 클럽 축구보다 더 인기가 있기 때문은 아니다. 다시말해 클럽축구의 역사가 국가대항전 역사를 가볍게 압도하는 나라가 대부분인 유럽과의 비교는 에초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얼마나 역사가 깊으냐, 그리고 역사상 어느 쪽이 먼저 선수를 쳤느냐가 중요한 것인데, 유럽은 클럽이 먼저, 그것도 한참 먼저 선수를 치고 국민들 속에 자리를 잡았던 거고 한국은 그 반대였을 뿐이다. 유럽의 예를 들며 K리그를 찾아줄 것을 호소하는 것도 무의미할뿐더러 유럽 축구만을 보며 K리그 경기력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반론을 제기하는 논리 속에 K리그의 경쟁력을 논하기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지금 K리그가 해야 할 일은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 점이다. K리그는 역사가 짧다. 그리고 소속된 팀들의 경기력 역시 상품적 가치가 높지 않다. 이를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이를 인지하지 못한 결과 연맹이 추진하고 많은 K리그 팬들이 주장하는 'K리그는 수준 높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라든지 'K리그는 경기장에 와서 보면 재미있다'라는 식의 지극히 '우월적'인 캠페인'의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결코 효과를 거둘 수 없다. 'K리그는 일단 재미가 없다'라는 생각에서부터 리그의 문제점을 고처나가는 자세가 필요하지 지금처럼 'K리그를 찾지 않는 사람들을 질책'하는 식의 캠페인은 역효과는 물론이고 K리그 내부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조차 막아버리는 '자기위안'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K리그 경기장을 찾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K리그 팬들의 완고함이 리그를 오히려 병들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는 되돌릴 수 없다. 우리는 잉글랜드가 될 수도 없고 국가대표 이전의 클럽이 축구 토양을 만들어낼 수도 없는 나라다. K리그가 없으면 국가대표도 강해지지 않는디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자신이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라에서 이미 '사기 싫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시한 사람들에게 '니가 사고 싶은 것을 사려면 일단 이걸 먼저 사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현행법에도 어긋나는 문제다. 국가대표에 밀린다는 점, 유럽 축구에 밀린다는 점, 우선 순순히 인정부터 하자, 국가대표 축구만큼, 유럽축구만큼 K리그도 재미있어요 라는 것보다 우선 행동으로 보여주자,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재미있게 느껴지는 축구 리그, 옆에서 서포터가 침튀겨가며 설명하지 않아도 한눈에 잘하는 선수가 눈에 들어오고 경기를 이해할 수 있는 대중적인 리그 경기를 만드는 데에 힘썼으면 한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참을성 있게 해나간다면 우리도 멀지 않은 미래에 잉글랜드 못지 않은 리그를 갖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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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민족이라는 말을 쓰지 않은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간간히 CM에서 뒷북처럼 들려오는 걸 빼고는 이제 스스로 백의민족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칭하지 않게 되어있다. 이 백의민족이라는 말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우선 가지는 성격은 '깨끗함', 그리고 '순수함'일 것이다. (역사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제대로 된 침략전쟁 일으키지 않고 언제나 피침략국으로서 시달림을 당하면서도 굳건히 단일민족의 절개를 지켜왔다는 의미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까? 의미 자체가 그렇게 나쁘지 않아서인지 기업들도 잊을만하면 한번씩 써먹고 국민들도 그렇게 큰 거부감을 갖지 않는 키워드다.

그런데 이 백의민족설이 사실이던 아니던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백의가 무엇인가? 말 그대로 흰 옷, 백의를 입었던 민족이라는 점은 한편으로는 순수함을 상징하기도 하겠지만 의례 양반들의 옷이 그러했듯 체통만을 위해 별 쓰잘데없는 데에까지 의미를 부여하고 더러워짐을 싫어하는 자기방어적 결벽증을 의미하기도 했다. 양반들은 자신의 옷이 비라도 맞으면 비가 깨끗하건 더럽건 간에 안절부절 못했으며 마당쇠가 먼지라도 일으켜 옷이라도 더럽힌다면 용서가 없었다고 한다. 옷은 빨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그 옷을 입고 있는 한 그 깨끗함이 자기 자신을 상징하는 그 자체로 동일시했으며 옷이 더러워진다 함은 자신을 더럽히는 의미와 일치한다고 철썩같이 믿었다.

이 백의민족에서의 양반들이 보여준 태도는 사실 '자기 만족'에 근거하지만 더 깊게는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백의라는게 입어보면 알겠지만 얼마나 불편한가?, 더러워질까봐 밥도 제대로 마음편히 못먹고 경직된 자세로 먹어야하고 걷는 자세도 뒷꿈치에 묻은 흙이 종아리 부분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 땅을 성큼성큼 걷지 않으면 안되니 사람이 몸을 보호하고 더 편하게 살기 위한 옷의 수단적 역할이 전도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지는 것이다. 결국 자기 좋자고 흰 옷을 입는다기보다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남들에게 '자신을 더 깨끗한 사람'이라고 인정받기 위해서 입는다는 것이 맞겠다. 특히나 부패한 후조선 관료들은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더욱 극심했으리라...

한국 축구가 16강에 진출했다. 1승 1무 1패, 나이지리아전 후덜덜한 기분을 느끼긴 했어도 결국 나이지리아는 우리를 이기지 못했고 우리는 16강에 안착했다. 그런데 말들이 참 많다. 경기력은 절대 16강 경기력이 아니었는데 운으로 갔다느니, 16강에 갔어도 창피하다느니, 더 속시원하게 올라갈 수 없냐느니 참 말들 많다. 그런데 잘 들어보면 이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같아서 곰곰히 기억을 되씹어보니 2002년 4강 신화때도 이러한 목소리들이 들렸던 기억이 난다. 이탈리아에서 심판 매수설이라며 지들이 자국에서 살기 위해 지들 수준에서 생각한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놓자 우리의 반응은 그들을 당연히 코웃음으로 비웃어주는 승자의 여유가 아닌 '아~! 우리가 떳떳하지 못하게 이겼던건가, 이거 이겨도 나라 망신이구나'하는 반응, 생각보다 많았다.

대한민국이라는 조국을 참 좋아하지만 극복해야 할 부분도 없지 않다. 그 중 하나가 백의민족 컴플랙스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기면 이긴 그대로의 결과를 순순히 인정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생각만큼 많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든 한번 더 무결성을 의심하고 남들이 우리 성적을 어떻게 보는지, 혹시라도 쓴소리를 안하는지 걱정한다. 자기 자신, 자신들의 민족들이 평가해주는 것은 귀에 담을 생각조차 않하고 남의 나라가 헛기침이라도 하면 별 의미도 없는 헛기침에 별별 해석을 갖다붙이며 어떻게든 '무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16강에 올라가더라도 3전 전승으로 올라가줘야 하고 물론 파울이나 심판 어드벤티지는 없어야 하고 역으로 역차별을 당해가면서도 그걸 극복한 인간승리를 보여줘야 '세계 언론'들이 '위기 속에서도 좋은 성과를 낸 한국'이라는 '극찬'을 해줘야만 그제서야 만족을 할 듯한 기세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독도도발을 보면서 느끼는 게 아직도 없단 말인가? 국제 정세에서 우리 나라가 잘 되고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양보와 배려라는 미덕따윈 안통한다. 할 말 속시원히 하고 최대한 쌀 한톨이라도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는 '치졸함'이 훨씬 더 필요하다. 국제적 예의를 지킨답시고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라고 말한다고 일본이 '아 역시 동방예의지국이라 우리나라를 배려해주는구나 우리도 예의엔 예의로 답해야할 터'라고 생각할 것 같은가? 나라를 사랑하고 우리나라가 잘 되려면 국제 정세에서는 예의고 뭐고 집어치우고 무조건 자국민이 잘 되는 방향으로 우기는게 장땡이다. 예의는 나라 안에서 지키는 거지 나라 밖에서 내가 가진 걸 희생하면서까지 지킬 필요는 없고 더우기 우리를 깎아내리면서까지 지켜야 할 미덕도 아니며 그렇게 했다고 우리를 더 우러러보고 인정해줄 나라는 코빼기도 없음은 두말할필요도 없다.

16강 진출했으면 더 콧대 높여서 주변국, 특히 16강 못든 나라를 마음껏 비웃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게 그 멋있다는 '쿨한 비웃음'이 되려면 그만큼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너무 뒷모습의 깨끗함에 집착한 나머지 정작 마음껏 좋아해야할 타이밍에는 침착하게 옷 뒷매무새 만지고 옷을 고쳐입어야 할 타이밍에 어울리지 않는 광분을 하는 언벨런스를 보이고 있다. 좋아할 때 좋아하고 이겼을 때 승자의 여유를 배우지 못하면 '쿨한 대인배'는 머나먼 이야기일 뿐이다. 확실한 건 지금은 '즐길'때이고 주변국 누구도 그 '즐기는 것'에 시기할 지언정 태클을 걸수도 걸 자격도 없다. 게다가 이건 정말 많은 축구계 원로들 그리고 지금 한창 유소년 클럽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유망주들이 염원하고 바라던 '강한 한국 축구'를 성적으로서 역사에 남길 수 있는 '성과'다. 한 두명의 희생으로 이루어질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수많은 원로 선수들과 그들을 지켜보며 함께 그들의 좌절을 느끼고 눈물을 흘렸던 자들이 그토록 바라던 16강이란 말이다.

우리에겐 백의를 깨끗하게 입은 양반이 아니라
백의가 더럽혀지고 누더기가 될 때까지 싸워주는 전사들이 필요하다.

그들의 찢어지고 더러워진 옷이 훨씬 자랑스러움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들의 성과를 바로보려 하지 않고,
단지 입은 옷이 누더기라며 동네 창피하다고 짜증내는
결벽증 환자들은 이제 좀 없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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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대면 일단 결과는 복불복...

기본적으로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축구선수를 20년이나 하고 은퇴 후에도 축구계 안떠난 사람보다 더 축구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축구 사이트에서 나오는 그에 대한 '축구 전술적 관련 비난'은 어찌 보면 헛구호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꼭 우리나라만 감독을 까느냐만 그렇지만도 않다. 잉글랜드 축구사도 그렇고 이탈리아는 뭐 말할것도 없이 냄비근성이 쩐다는 것을 축구문화사를 연재해주고 계시는 필독님께서 최근 가르쳐주고 계시듯이, 현장과 팬들의 정보력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아무튼 첫 경기 결과가 좋았다. 이게 상당히 복불복이었을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허정무 감독은 참 운이 좋다. 기본적으로 실력이 뛰어난 감독이란 없다고 본다. 누구나 가진 경험이나 정보력 전술에 대한 철학적 깊이는 비등비등하다. 다만 그 시기에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가와 당시 얼마나 좋은 선수들이 그와 만날 수 있었는지일뿐...

2. 허정무를 비판하는 마음이 정말 허정무 개인에게로만 향했던 것일까?

조금 논란이 있겠지만 아마 허정무 감독은 선임 당시부터 지금까지 정말 쉴틈없이 단 한번도 호평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필자도 그렇다. 그런데 이 허정무를 좋게 보지 않은 이면에는 '축구협회'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허정무의 선임 과정이 얼마나 공정했는지는 일개 팬으로서의 정보력 부재로 인해 제대로 아는 사람을 찾기 어렵고 대부분 추측에 의거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축구협회는 어떤 이유에서든 국내 감독을 원했다는 것이다.

허정무를 비판하는 이면에는 이러한 축구협회의 전 근대적인 행정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켜도 이상할 게 없을 미숙한 여론 대처 능력이 있었다. 즉 허정무를 옹호하면 축구협회를 옹호하는 것이 되고 결과적으로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련의 한일전을 통한 여론 물타기 오해(?)등을 지지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배경때문에 호평이든 악평이든 제대로 된 순수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감독이 허정무 감독이 아닌가 싶다. 물론 여기에는 그의 화려한 선수시절 커리어도 한 몫을 했으리라...

3. 사람은 변한다, 그리고 허정무도 변했다.

요즘 취업난을 겪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지금의 회사들은 '신입'을 도무지 뽑으려 들지 않는다. 어떻게든 상대 회사의 '잔뼈가 굵은 경력자'만을 즉시전력으로 투입하려는 생각만이 가득하다. 회사라는 곳은 돈이 좀 들더라도 바로바로 성과를 내주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지극히 고리타분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허정무는 한번의 국가대표팀 감독의 실패를 겪었다. 전남에서의 감독 생활에서도 딱히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 힘든 시즌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그 실패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까? 그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특징이라면 '실패'에 대해 너무 저평가한다는 점에 있다. 해외에서는 '실패'한 프로젝트의 경력도 성공한 타이틀 못지 않게 인정해주는 것에 비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아무튼 그는 한국에서 성공보다는 실패한 감독이었고 국대에서도 실패의 행보를 겪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근 10년간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 중 가장 오랜 기간 재임하고 있는 감독이 허정무라는 사실이다. 최근 10년간 국가대표 감독 재임 기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간중간에 있었던 감독 대행 인물은 제외한다)

2000년 12월 ~ 2002년 6월 : 거스 히딩크 (1년 6개월)
2003년 02월 ~ 2004년 4월 : 움베르투 쿠엘류 (1년 2개월)
2004년 06월 ~ 2005년 8월 : 조 본프레레 (1년 2개월)
2005년 10월 ~ 2006년 6월 : 딕 아드보카트 (8개월)
2006년 07월 ~ 2007년 8월 : 핌 베어벡 (1년 1개월)

2007년 12월 ~ 2010년 6월 : 허정무 (2년 6개월)

최근 10년간 외국인 감독들이 대거 이어지면서 보여준 국대감독의 수명은 성공한 히딩크를제외한다면 적제는 8개월 길어야 1년 2개월을 채 넘기지 못한 단명 감독에 가까웠다. 그만큼 축구협회는 외국인 감독에 한해서만큼은 성과는 고사하고 자신의 축구 철학을 녹이는데에 걸리는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외국인 감독은 마치 클럽팀의 외국인 선수처럼 당장의 성과를 내지 못하면 즉각 퇴출되어야 하는 이방인으로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감독직은 다르다. 적어도 두 시즌 정도를 기다려주지 않는 축구 클럽 혹은 대표팀은 변방이 아니고서야 찾아보기 힘들다. 이미 변방을 졸업하고 탈아시아를 선언한지 8년이 다 되어가는 대한민국이 저지르고 있어서는 안되는 짓이었다는 말이다.

허정무 감독은 까일 만한 성적이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월드컵 최종예선을 통과했으니까,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본프레레 감독 시절도 다를 바 없었지 않았던가? 그도 혹평 속에서 월드컵 예선전 보란듯이 통과했다. 그런데 동아시아 대회가 문제였다. 여기에서 졸전을 벌이니까 두말할것도 없이 경질수순을 밟았다. 동아시아 대회 하니 생각나는 경기 있지 않은가? 공한증이 깨진 중국 3:0 패배 사건, 그 사건 당시 경질 여론은 본프레레의 졸전 이상이었지 이하는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축구협회는 넓은 마음으로 받아줬다. 그리고 월드컵까지 절대 안짤릴거라고 약속까지 해줬다.

허정무 감독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정도의 신뢰를 받고 있다면 변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까? 한때 독이 든 성배라고 불리며 비아냥을 받았던 한국 국대 자리를 2년 넘게 계속할 수 있고 그대로 월드컵에도 나갈 수 있다는 보증을 받았는데,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걸 쏟아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그걸 안 하면 정말 문자 그대로 바보가 아닌가, 그렇게 허정무는 지난 국대 감독에서의 실패 그리고 클럽팀 감독으로서의 경험에다가 너무나도 귀중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직 2년 이상의 연임의 경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배울 수 있는 것? 모르긴 몰라도 아마 어마어마할것이다.


2년동안 수많은 실패와 그 실패를 눈감아줬던 축구협회의 전폭적 지원(?)으로 허정무는 어쩌면 이번 월드컵에서 2년이상의 '국대감독 경력'에서 얻은 - 좋은 감독의 능력 -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정무 감독이 원래부터 감독의 능력이 뛰어났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2년 이상의 시간이 주어진 감독이라면 능히 보여줄 수 있을 자신의 최대치를 선보일 기회를 얻었다는 것임에는 분명할 것 같다. 이후 결과가 어떻게 되던 그 결과는 어떤 변명이나 평가절하할 필요도 없는 허정무 감독의 100%라고 생각한다.

허정무 감독의 성적은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성적을 떠나 허정무 감독 본인이 지금까지 어떻게 변해 오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정말이지 해묵고도 해묵은 그리고 기본적이고도 기본적인 그것 '감독에게는 적어도 자신이 가진 전술 철학을 펼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려 10년여동안 되지 않았던 대한민국 국가대표였다는 사실이 씁쓸하고 그게 결코 자발적인 의지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 안타깝지만 아무튼 좋은 선례가 이제나마 겨우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4. 감독은 왜 기다려줘야 하는 존재인가?

허정무 감독이 가진 능력이 '50'이라고 치고 세계적인 명장이 가진 능력이 '100'이라고 가정해보자, 자신이 가진 전술적 능력을 100%기동시키는 데에 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감독은 2년동안 50, 혹은 100을 한달에 2 혹은 4씩 나누어서 현실화시킬까? 그건 아닐것이다. 세계적인 명장이 아무리 100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1년 남짓의 시간을 부여받았다면 채 30도 발휘하지 못할수도 있고 허정무 감독이 2년간 충분한 시간을 받아 발휘한 50만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아주 적절한 히딩크의 명언 하나가 있다.

- 하루에 1%씩 승리 가능성을 높여나갈 것이다 - 월드컵 100일 전 히딩크 감독의 인터뷰

즉 감독이란 무슨 회계 짜듯이 2년동안 정확하게 이길 확율을 한달에 몇%씩 높이는 존재가 아니라 그 목표가 어디에 향해있는지를 직시한다음 그에 따른 충분한 준비를 거친 후 대회 직전에 그것을 현실화시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감독은 자신의 계약 기간을 우선 살펴보고 자신의 계약 기간동안 어느 정도까지 레벨업을 위한 경험치를 쌓을 수 있을지 계획을 짜는데 여기에는 선수 선발부터 선수들에게 자신의 전략을 이해시키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전략에 맞게 개조시키는 작업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기나긴 바탕 작업이 끝난 뒤에 실전을 위한 전술을 시험하는 것으로 실전 대비를 시작하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 히딩크 이후의 외국인 감독들은 이 작업을 채 절반도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결과를 보여주라는 외압으로 인해 설익은 경기력을 선보였다는 죄로 쫒겨났던 것이다. 계약기간이라는 의미는 이미 없었다. 그들에게는 계약기간을 분명히 명시하고 그 계약기간 내에 맞춰 대표팀에 대한 계획을 짤 어떤 시간적 여유도 주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허정무 감독도 자칫 이런 악순환에 휘말릴뻔하기도 했다. 허정무 감독이 동아시아 대회, 즉 다시말해 월드컵 100일 조금 더 남았을때의 국가대표팀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오버랩해보면 답이 금방 나온다. 사람들이 깜짝 놀랐던 것은 국대가 갑자기 다른 팀이 된 마냥 평가전때와 달리 강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무전술 감독처럼 보였던 허정무가 백전노장 오토 레하겔을 수싸움에서 이기는 모습에서 전율까지 느낀 사람도 많았으리라

2년 중 1년 6개월정도는 팀이 전혀 변화가 없어도, 오히려 쇠퇴하는 모습을 보여도 이상할 게 없다는 것, 우리는 이미 히딩크 때 배웠음에도 지난 10년간 이것을 잊은 채로 살았다. 그리고 지금 허정무 감독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그 진실'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허정무 감독이 주는 교훈은 다른 게 없다. 앞으로 국내파 감독이 되던지 외국인 감독이 새로 물망에 오르던 중간에 어떤 개차반 성적을 내던 일단 적어도 자신의 전술 철학을 팀에 녹일 만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면 팀은 절대 강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본인이 직접 결과를 통해 시전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아마 허정무 감독은 아무런 억울함이나 안타까움이 없을 것이라 개인적으로 확신한다. 모든 걸 전력을 다해 쏟아낸 다음 받아들 수 있는 성적표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정직한 자기 자신의 거울일테니까 말이다.


모쪼록 허정무 감독이 가르쳐준 이번 교훈을 축구인들이 오랫동안 잊지 않기를 마음속 깊이 염원해본다. 그리스전이 편안했던 이유, 그리고 앞으로의 경기가 승패를 떠나 너무나도 기다려지게 만든 이유는 다른 게 없다. 그리스전에서 보여준 그것 우리가 언제나 부상에 울고 불운에 울고 감독 교체로 어수선한 상황에 제 실력을 국제 무대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역사가 겨우 바뀌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붙으면 아르헨티나든 나이지리아든 제대로 붙어서 우리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인정받을 수 있는 납득할 만한 성적표가 나올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드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런 팀, 우리가 당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은 100%풀전력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팀이 나오려면 감독을 먼저 신뢰하자, 그리고 적어도 축구에서만큼은 테스트가 아닌 결과로 평가하는 문화를 정착시켜보자,

목적은 단 하나
'대한민국 축구가 강해지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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