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1. 4. 22. 14:54
스마트폰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갑자기 그렇게 들어오라고 해도 안들어오던 스마트폰이 아주 봇물이 터지셨다.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아이폰은 구경조차 못해보던 이 나라가 이제 '스마트폰'이 아니면 신규 가입도, 기기 변경도 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스마트폰을 반 강제적으로 손에 쥐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활용할 것을 강요당한다.


딱 10여년 전이 그랬다. 인터넷 붐이 일었다. 그리고 PC가 마구 보급되었고 전국에 인터넷망이 마구 깔렸다. 세상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 처리하게 되었다. TV에서는 인터넷만으로 생활이 가능한지를 테스트하는 다큐멘터리가 연일 방영되었다. 관공서들과 은행, 각종 서비스 기업들은 속속 인터넷 서비스를 앞다투어 개시했다. 그렇게 이 세상은 속속 '인터넷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는 듯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이 '인터넷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으로 속속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인터넷은 '사용 수단'이지 필수 요소가 되어서는 안되는데도 말이다. 이는 인터넷 활용에 적응이 늦은 연배 있으신 분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태초부터 기계치가 있는 것처럼 컴맹, 인터넷맹이 있기 마련인데 이들은 인터넷이라는 세상의 '변혁'에 휘말려 희생을 강요당하고 말았다. '넌 이것도 못하냐'라는 지조섞인 비웃음과 함께...


왜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기까지 국민적인 저항이 별로 없었을까? 그것은 인터넷의 미디어적인 편리성 이전에 '경제성'을 내세워 보급에 속도를 붙였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우선 '공짜'였다. 모든 서비스가 공짜라는 점을 어디에서나 쉽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은 최소한 '오프라인'에서 파는 물건보다 훨씬 싸야만 했다. 안 그러면 팔리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오프라인 서비스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절차에 비해 훨씬 저렴한 '수수료'를 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왜냐하면 인터넷은 생각보다 '매우 불편'했으니까...

IT강국이라는 키워드에 취해 전 국민을 IT화시켜 마치 '젊은 엄마들의 아이자랑'마냥 세계 각료회의에서 인터넷 보급율 같은 범국민적 지표를 자랑하고 싶었던 이 나라는 그러한 수치적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국민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일원화시키기에 급급했다. IT가 잘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는 어디까지나 동등한 이용 권리를 주어야만 한다는 보편적 권리에 대한 개념은 이 나라에 없었다. 나이 든 중역들도 반 강제적으로 페이퍼레스 운동에 동참해야 했고, 그들은 이메일로 보고를 받은 다음 그것을 열지 못해 다시 프린트해서 보고를 받고 다시 그에 대한 답변을 서면으로 작성에 이메일에 옮기는 것을 부하직원에게 시키는 웃지 못할 일을 벌어야만 했다.


인터넷은 편리하지 않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다고 착각하는 이면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말이다. 인터넷 뱅킹을 예로 들어볼까? 우리는 '도장'하나로 모든 게 해결될 수 있었던 예전 송금 방식에서 'ID','패스워드','공인인증서 로그인 패스워드(영숫자혼합8자리 이상)','이체비밀번호','인터넷 이체 비밀번호 (영숫자혼합6자리 이상)'을 '직접'암기해야 한다. 여기에 보안카드 번호를 직접 '틀리지 않게 입력'해야 하는 수고도 들어간다.

다들 직접 방문하는 거리적 수고를 덜었다고 생각하는 이면에는 이런 불편함이 수반된다. 그리고 이같은 IT의 변화는 결국 국민들의 대대적인 손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터넷 쇼핑몰의 개인정보 유출, 인터넷 쇼핑몰 대형 미발송 사기사건, 그리고 최근 발생한 농협의 전산작동불능이 그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인터넷을 쓰고 싶지 않거나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을 싸잡아 우민화시키며 세상을 살아가는 선택권을 빼앗아가면서까지 우선 사지로 내던져 '알아서 살아남아라'는 식의 정책을 주창했던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국가가 있다.

컴퓨터를 못 하는 원숭이가 문제가 아니라 원숭이에게 컴퓨터를 던져 준 사람이 문제가 아닐까?


지금의 스마트폰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으며 쓰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나 막힘이 없다는 응답을 한 사람이 전체 사용자의 16.7%밖에 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 그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에서 특이점을 찾을 수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하고 잇다'라는 것, 미국이나 일본이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스마트폰'을 못쓰게 한 적도 없고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아닌 다른 것을 못쓰게'한 적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지 않을까?

십수년 전 인터넷 붐과 지금의 인터넷의 위상을 보면서 스마트폰 시대의 흐름을 본다. 이제 겨우 휴대폰으로 문자 보낼 수 있게 될만큼 '노력'했던 사람들이 스마트폰 시대로 인해 또 어떤 환경을 강요받게 될까? 이미 그에 익숙하고 배우기 쉬운 젊은 층이나 타고난 얼리어답터들이 아닌 소수일수도 혹은 다수일수도 있는 사람들을 일단 사지로 내던져 '억지로 그 흐름에 편승'할 것을 강요하고 전국민적 '타이틀'을 국가 '상표'로 이용하고자 하는 지극히 '공산주의적 사회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필자 뿐일까?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을 보면서 우리는 '가장 효율적'인 것이 가장 '경제적'일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가 농협 사태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인터넷 뱅킹이 '사람들'의 인건비를 줄이고 교통비를 줄일 수 있는 굴뚝 없는 산업 이라며 효율성을 부르짖었다. 그 끝이 농협의 끝없는 경제 논리로 인한 대형 참사라니 재미있지 않은가? 결국 우리는 그 작은 효율성을 추구한 결과 더 큰 손실을 가져오고 말았다. 그리고 거기엔 그 '효율성'과 'IT강국'이라는 포장지를 위해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생활 패턴을 시대의 흐름이라며 억지로 강요당한 것에 따른 시간적 낭비를 감수할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비효율'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효율성을 추구하다 보면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놓치게 된다. 후쿠시마 사태와 농협 사태는 이같은 공통점이 있다. 사람이 해야 할 일보다 '돈'이 우선시되었다는 것이 그것인데, 결국 피해는 '작은 효율'에 취해 '작은 비용 절감'에 현혹되었던 (전기료 절감, 수수료 절감) 일반 국민들이 모두 떠안게 되고 말았다. 이젠 이런 '작은 효율'을 추구하는 경제논리적 사고방식에 대한 지지도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쯤되면 좀 그 효율성에 발을 맞춰가지 못해 시간과 정신적인 손실을 감수하고 있는 적지 않은 사람들의 고통과 그에 따른 경제적 비효율성도 한번쯤 굽어살필때가 되지 않았는가?

효율이라는 이름 속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비효율의 희생을 수반한다는 것,
우리가 고도성장기에 취해 작금의 경제위기를 돌파하고자 하는 이면에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헌법에는 언제나 '누구나' 라는 말이 항상 들어간다.
누구나, 언제든, 무엇이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