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3. 5. 9. 12:01

남양유업 전화 녹취록이 요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남양유업 영업팀장이 상당히 심한 수준의 욕설로 대리점 점주를 깔아뭉개는 대화내용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다음은 해당 사건에 대한 남양유업측의 사과문 전문입니다.


...


이 두 가지 자료를 두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은 저 '영업팀장'이라는 사람의 인성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미친놈임에는 확실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일을 저질렀을까요? 사람이 저 정도로 욕하면서 핏대올리고 협박하기도 상당히 쉬운 일은 아닐텐데 말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어떤 댓가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잃을 수 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었던지요. 사실 생각해보면 이 두 가지가 아닌 이상 사람이 그 정도로 정성껏(?) 욕설을 할 수 있을 리 없잖아요.


...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라고 합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해서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합리에 대한 풍자가 공감대를 얻으며 카타르시르를 주고 있다고 하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비호감 캐릭터로 꼽고 있는 '장규직'은 회사를 위해서 자신을 버리고 뭐든 회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는 캐릭터로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상사에게는 딸랑거리지만 부하직원들은 조금도 존중해주지 않는 전형적인 자기중심적 캐릭터, 이런 인물들은 실제로도 많은 미움을 사고 있는데요. 그런데...




사회에서는 그를 더 많은 연봉과 더 높은 지위로 대우해줍니다.


...


같은 드라마에서 나오는 무정한과는 다르게 왜 장규직은 상사에게만 충성하고 아랫사람을 깔아뭉개는 사람이 되었을지는 분명하죠?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처럼 이미 연봉과 더 높은 지위로 대우를 받기 위해서 사람들은 윗 사람들에게 충성합니다. 그것이 진심이든 진심이 아니든, 아랫사람들에게 어떤 욕을 먹든지 말이죠. 


그럼 이들은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여러분은 장규직과 무정한 중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그리고 어떤 사람처럼 안 될 자신이 있으신가요?




지금은 연재가 중단된 어떤 일간 만화에 나온 소재입니다.


신입사원때 도가 지나친 야근과 과도한 강제 음주 회식 등으로 상사에게 시달리던 신입사원이

10년 후 그 상사의 위치에 들어가니까 똑같은 방법으로 신입사원들을 대하고 있더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겐 고 을 로 운 가 될 고'

'내 겐 록 는 이 될 야'


...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여러분들은 이렇게 안 될 자신이 있나요?




의외로 답은 되게 간단합니다.

부하직원은 나한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잘 해줘봐야 뭐 하나 나한테 남는 게 없어요.

그러나 상사에게 잘 보이고 잘 해드리면 확실하게 내 수중에 남는 게 생깁니다. 


잘 해줬을 때 보답해주는 건 부하직원이 아니라 상사라는 겁니다. 이 사회는...


...


근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가 언제부터인가 '잘 해주는 것', '잘 대해주는 것'에 모두 댓가를 바라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아무 댓가도 바라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이야기는 애들 장난같은 얘기가 됐고

투표 때 이 나라를 위한 사람을 뽑는 사람은 내 집값을 올려줄 댓가를 바라고 뽑는 사람에게 바보취급을 당합니다.



돈과 인생을 구분짓지 못하고

인생을 돈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행동을 모두 재화가치와 맞바꾸는데에만 열심히인 사람들이 있는 한 


여러분들의 취업 후 삶은 괴롭기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살던 사람들은 결국 돈에 배신당하거든요.

허무맹랑한 소리같지만 지금 남양유업 영업팀장이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행동에 댓가를 바라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자들을 무시하며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에게만 아부했던 사람들은


미움받아도 자신이 돈만 많이 벌면 잃어버렸던 인생이 모두 만회될거라고 믿었겠지만

결국 이렇게 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원래대로 돌아오게 되어있어요.

사람은 원래 그런게 아니거든요.





특별기획 취업을 읽는 취업준비생분들이나 이미 취업을 하셨던 분들

당신의 모든 인생을 댓가성으로 만들지 마세요.


필요없는 사람들이겠죠. 돈도 안되고 도움도 안되요. 힘도 없죠.

부하직원, 하청업체 사원들 ...


필요할거에요. 당신의 승진과 연봉상승을 위해서

직장직속상사, 사장님, 갑회사 직원들...


근데 진짜 장담하는데요.

그렇게 돈을 열심히 모아도 돈으로 못사는게 분명 있어요. 진짜 

그건 되돌린다고 해도 되돌려지지도 않아요. 정말...


댓가를 바라기만 하고 살아온 인생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라고 해서

당신마저 그렇게 되지 마세요.



인간은 원래 안 그래요. 

아무리 사회가 인간적이지 않아도 

인간이 원래 안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사회가 사필귀정으로 회귀할수밖에 없어요.


남양유업 사태를 보시면 알잖아요.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그 팀장의 행동이 정당했다고 말하는 사람 

남양유업 사람 빼고는 거의 없잖아요.





알아요. 당신이 특별히 어마어마한 부귀영화를 누리려는게 아니라는거

단지 평범하게 살기에도 그런 인격포기를 요구하는 미친 인플레 사회가 되고 있다는거 알아요.


그래서 변해보자는 거에요.

인플레라는건 공급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거니까,

결국 이 나라에서 우리의 인격이 저렴한 취급을 받게 된 건 

인격을 팔아서라도 돈을 벌겠다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져서 그런거거든요.


우리가 도둑질을 하면서 돈을 벌고싶지 않다는 저항감이 있는것처럼

인생의 모든 것에 대가성을 바라는데에도 

남의 것을 아무런 대가성 없이 함부로 하는데에도

어느 정도의 저항심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진짜 댓가를 바래야 할 곳에는 확실한 댓가를 요구하셔야 해요

댓가를 바라지 말아야 할 곳에서는 인간으로 살 수 있어야 하고요.


그뿐이에요. 

물론 안하셔도 되요


세상은 다들 지금 그 반대로 살고 있잖아요.




단지 조금만 변하기를 바래요

그리고 변하지 마세요.







특별기획 '취업'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3. 5. 4. 23:12

H사는 참 독특한 회사입니다.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계열사가 정말 거의 없다시피 한 대기업이다보니 규모에서만큼은 L사에 결코 뒤지지 않음에도 존재감이 L사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H사는 하나의 그룹에서 각 사업부별로 갈기갈기 찢어진 다음에도 그 각 계열사가 초반의 어려움을 딛고 각자의 분야에서 또다시 굴지의 대기업으로 모두 성장하고 있는 희안한 기업이기도 하죠. 그래서일까요? H사는 소비자와 직접 맞닿아있는 자동차그룹의 완성차계열을 제외하고는 대기업치고 굵직한 스캔들이 적은 축에 속합니다.


그렇게 찢어진 세 개의 그룹은 각자 분야에서 시가총액 상위권을 휩쓸고 있는데요. 이들이 독립해서 모두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증거 중 하나는 대기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금산분리법 속 '금융' 계열사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금융 계열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S사의 보험사와 마찬가지로 원활한 자금운용과 슈퍼갑으로서 대규모 투자자금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지위적 우위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침인데요. 공교롭게도 세 그룹 모두 어느 정도 무르익을 시기에 모두 '증권'사 혹은 '카드, 캐피탈' 을 갖추면서 대기업으로서 자금을 이용한 전형적인 대한민국 대기업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이런 특이한 기업 형태가 굉장히 생소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모르고 있던 부분이라면 특히 주의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죠.


본사 계열





자동차 그룹 계열 (이상 2사)



중공업 그룹 계열


H사는 노사분규에 있어서도 제법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H사 자동차 계열의 경우 매번 노사 협상 그 자체가 뉴스화가 되고 있으며 이른바 '귀족노조'라 일컬어질 만큼 노사 협상의 최정상에 서 있습니다. 그만큼 노사 협상에 있어 사측을 압도할 수 있을 만큼 유연한 노사정책을 쓰고 있다는 것이죠. H사는 단순히 노사 협상에서의 유연함에서만 그치기보다 오히려 새로운 근로자 복지 정책이 정부 정책으로 발표되면 가장 먼저 앞장서서 이를 도입하고 사업장에 적용시켜 나가는 데 매우 솔선수범하는 기업 이미지를 보이고 있죠.




철저하게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것을 배제하는 대신 H사는 기업간의 B2B와 정부지원사업 참여에 열을 올립니다. 주력사업은 완성차 분야이지만 자동차그룹의 경우 철강,건설,부품,금융 그리고 중공업그룹의 조선, 정유, 종합상사 그리고 좀 햇갈리게도 본사 종가라고 할 수 있는 H그룹의 경우 북한 관련 관광 개발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습니다. 완성차 계열은 반도체 수출과 더불어 우리나라 수출의 하나의 기준이자 척도가 되고 있는 계열이며 중공업의 경우 최근 전국에 깔리고 있는 철도, 고속도로 광역교통망에서 4대강 사업 전반까지 우리나라 지방 고용의 대부분을 소화하고 있는 실정이며, H그룹의 상선과 아산 계열은 북한과의 화애 교류 무드를 만드는 등 오히려 S사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이 나라는 더 냉정히 말하자면 H사 공화국이 맞지 않나 싶을 만큼 H사는 3개 그룹과 그 계열사 모두 이 나라 깊숙한 곳에 뿌리를 박아놓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민자고속도로를 다 점하고 있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전동차를 독점 생산중


그래서 H사는 내수에 관련된 사업부가 거의 없음에도 국민 여론에 대단히 민감합니다. 완성차사업부는 어쩔 수 없이 내수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사업 구조를 가지고 있어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만, 그 외의 사업부의 기업 이미지 광고는 매우 노골적으로 이 나라는 'H사'없으면 망합니다. 우리는 좋은 기업입니다. 라는 점을 대놓고 말하기도 합니다. 내수와 맞닿지 않음에도 이렇게 이미지 광고에 돈을 많이 쓰는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죠.





S사가 꿈꾸는 것이 S공화국이라고 일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S가 제국주의적인 기업국가를 꿈꾸고 있다면 H사는 노사관계의 특수성인지 노조의 단결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기업 그 자체의 도시국가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S사의 그것과 다른 점은 이 유사국가조직은 철저하게 기업이 의도적으로 조직된 것이 아닌 다수의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네트워크라는 사실인데요. H사의 창업주 J씨때부터 이어진 노사관계의 원만함이 결부되면서 그들의 조직력은 매우 단단하고 친화적이라는 것이 업계 내외의 정설입니다.


국내 등록된 축구팀 중 H사내 조직된 축구 클럽이 절반 이상에 육박한다.


이렇듯 국가적으로도 매우 큰 도움이 되고 있고 노사 관계도 원만하며 타 대기업에 비해 노사문제라든지 근로자들의 복지, 근로조건 등에 상대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H사는 그 자체만으로 타에 모범이 될 만한 기업일 것입니다. 그러나 H사가 왜 이렇게 재벌로서 사회 환원과 국가 정책에 솔선수범하여 법을 준수하는 모습을 애써 강조하고 대외적으로 좋은 기업의 이미지를 쌓기 위해 노력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따를 수 밖에 없는데요. S사는 자신만의 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국가와 대립각을 세우고 국가의 모든 부분을 무시하며 자신들이 국가 위에 있다는 치외법권식 기업문화를 추구해서 빈축을 샀다면 오히려 H사는 국가의 모든 부분을 너무 존중했기 때문에 국가가 직 간접적으로 H사에 대한 채무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악용한다는 것이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대한민국 정부는 한미 FTA나 중국과의 무역교류에 있어서도 H사의 자동차사업부의 해외 판매 가능 여부를 최우선으로 두고 협상에 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언제나 FTA 타결은 자동차 관세 철폐가 최고의 화두이며 이를 위해 우리나라의 전통 중소기업들의 제조업, 농산물 등의 관세를 희생시켜 우리나라의 식량 주권을 지키고 있는 농부들의 가슴을 피멍투성이로 만드는데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정부는 언제나 H사의 자동차 사업부의 수출이 잘 이루어지면 결과적으로 얼마만큼 국민들에게 낙수 효과로서 경제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역설하곤 하지만 H사는 그러한 국민의 희생을 내수 호구 정책으로 되갚아 오면서 H사가 진정 국가를 위한 기업이 될 생각이 있는지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죠. 더 큰 문제는 H사에 대한 정부가 가진 일종의 부채의식과 경제 의존도가 너무 크다보니 H사의 이익이 결과적으로 경상수지 수치에 크게 영향을 끼쳐버리게 되는, 다시말해 자신들의 정권 경제 성적표를 명목상으로나마 흑자로 돌리기 위해 국민의 권익을 빼앗아 특정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꼴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완성차 사업부 뿐만이 아닙니다. 물론 H사 출신의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영향도 있다고는 합니다만 이 나라가 진행한 4대강 사업과 정권안에 벌어진 수많은 민자 도로, 철도, 항만, 제철 사업에서 H 중공업 그룹은 가장 많은 수혜를 받으며 거의 대부분의 사업을 여론화시키지 않은 채로 반 독점적 지위를 행사할 만큼의 이득을 얻기도 했으며 이전 정권의 대북 사업에서는 H 본사 그룹을 통한 금강산 관광 등 다른 기업의 공정경쟁이 가능한 자본주의 나라라는 사실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정부는 정권을 막론하고 H사에게 일감 몰아주기와 일방적 이익을 대변해주는 정책을 남발해오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H사의 업계 최고수준의 연봉과 복지 수준 때문에 H사 입사를 한번쯤은 고려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H사는 고용 자체도 적을 뿐더러 조직 자체에 있어서도 새로운 신입 사원이 조직의 요직에 오르기 매우 까다로운 편에 속합니다. 심지어는 아예 새로운 인원을 받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조직 문화를 대놓고 드러내기도 하는데요. 이런 문제는 바로 국내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H사 노조가 지금까지 자신들이 이룩해놓은 대우에 대한 '보상심리'가 지나치게 발현된 결과 자신들의 찾은 사내 노동 권리를 자신들만의 것으로 사유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인줄 알아요.jpg


물론 다른 회사 노조들에 비해 정말 많은 희생과 선구자적인 노력이 있었고 그 노력으로 인해 지금 노동 환경 개선의 선두주자적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만, 그로 인해 얻어진 것이 온전히 자신들만의 것이라고 믿고 그 권리를 전혀 피를 흘리지 않은 생판 남에게 넘기고 싶지 않다는 족벌적 세습과, 조직 내에서만 이득을 공유하려는 폐쇄적 조직 운용 등은 노조라 할지라도 그 권리가 더해지면 결국 대기업보다 더 한 수준의 이기적 조직 문화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만도 못한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만일 H사에 입사하여 온전히 녹아들기 위해서는 자기만 아는 이기적 조직 문화와 당연한 듯이 이 나라의 젖줄을 빨아먹고 성장해야만 하는 기업, 그리고 그러한 태도의 정부 정책을 지지하고 옹호해야 하는 이념적 숙제가 남게 될 것입니다. 만일 이 세 가지를 모두 동의한다고 할 지라도 쉬운 길은 아닐 테지요. H사 자체든 그 회사를 다니는 노조든지 간에 지금의 H사 그리고 H사에서 누리고 있는 국내 최고의 근무 환경은 모두 자신들이 스스로 이룩한 지분 100%의 보상받아야 마땅할 권리금이라 어기는 사람들 속에 당신은 철저한 이방인이자 그들이 이룩한 권리에 합승하려 하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뚫고 들어가기도 어렵고 들어가서도 살아남기 쉽지 않습니다. 대우가 좋은 곳은 누구나 노리고 있고 그 자리가 좋은 자리라면 있는 사람이 가능한 더 오래 앉아있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요. 이러한 조직에서 내가 아무리 잘 한다고 한들 업무 성과에 따른 승진이나 인사고과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과연 조직 내에서 그러한 행동이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내 능력을 인정하고 회사를 위해 나를 위로 올려주는 상사가 과연 그런 조직 내에 존재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그런 조직 환경에서 버텨낼 확율은 얼마나 될까요?



그들이 제시하는 고연봉은 어쩌면 이 나라에 저지르는 짓거리에 대한 면죄부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떡밥일지도 모릅니다.

...


건투를 빌겠습니다.



특별기획 '취업' - 기업 생태연구 보고서 : H사형 기업 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3. 4. 10. 23:49

아름다운 동업으로 대표되던 기업에서 분사 후 제 갈길을 가는 와중에도 별로 쳐지지 않고 굳건히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고 있는 L사에 대한 이미지는 S사에 대한 경쟁심리 때문인지 언제나 2인자의 이미지가 팽배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L사를 단지 회사의 규모나 S사에 비교할만한 대상 기업만으로 치부하기에는 L사가 가진 개성이 너무나도 많기에 구직을 준비하는 분들이 L사나 L사의 기업 마인드를 모방하는 기업에 입사하는 분들이 단순 이분법만으로 입사를 결정하는 것은 조금 위험합니다. 개성이 강한 만큼 인재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운영 방침도 꽤 재미있는 편이거든요.





엔지니어들의 천국


S사와 자주 비교되는 L사의 이미지는 겹치는 사업 분야가 많다는 점 이외에도 L사가 가지고 있는 S사에 대한 피해의식이 상당히 강하게 곳곳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대표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은 단지 2인자의 컴플랙스 같은 게 아니라 뭔가 좀 억울해하는 모습이라고 해야 어울리는데요. 왜냐하면 L사는 계열사의 90%이상이 이공계 엔지니어들만을 위한 사업들을 주력으로 하고 있을 만큼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자부심이란 이들이 '기술력'이 당장 세계를 재패할 만큼 뛰어나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엔지니어로서 남의 손을 빌리거나 기술적 꼼수를 부리는 것을 매우 꺼린다는 부분을 시사합니다.


L사의 대표 계열사를 생각나는 대로 살펴보죠.


화학

전자

생활건강

생명과학

이동통신

반도체


...


물론 그밖에도 계열사는 제법 됩니다만 아무도 이들 이외의 계열사를 L사를 대표하는 계열사 중 한 곳으로 꼽지 않습니다. 물론 S사도 기술산업쪽 계열사를 주력하고 있지만 S사가 자금줄로 활용하고 있는 생활 속 밀접한 관계 '보험회사'가 현 시점에서 그룹 내에 없다는 점이나 무역 마케팅을 주력으로 하는 계열사가 없다는 점을 비추어볼때 L사는 적어도 엔지니어들에게 있어서는 무척 좋은 대우를 기대할 수 있는 그룹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실제로도 S사와 견주어볼때 당장의 임금적인 측면에서는 차이를 보이기 힘들지만 실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구 환경이나 업무 압박 강도 측면에서 훨씬 자유롭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자유로운 환경은 그만큼 독창적인 기술력을 많이 보유하게 되고 그 기술력은 고스란히 기술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때문에 그들은 S사가 부족한 기술력을 마케팅으로 매우는 것에 매우 염증을 느끼기도 하죠. 이러한 열등감은 기술력에 대한 독자적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것으로 오히려 시장이 악화가 양화를 밀어내는 형국을 매우 억울해하는 모습에서 나오는 열등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S사가 디자인 표절로 홍역을 치룰 만큼 아이폰에 급하게 대응하느라 분주할 무렵 L사는 비록 초창기 제품에서 수많은 욕을 먹으며 시행착오를 겪을 지언정 컨셉을 따오거나 비윤리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걸었습니다. 결국 아직 판매량이나 마케팅에서 뒤지고 있지만 제품에 대한 품질을 인정받을 수준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L사 엔지니어들의 우직함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만큼 경영이나 마케팅 등 실제 '만들어진 물건을 팔아야 하는' 부서나 계열사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박한 대우를 받는 그룹 내 분위기가 없지 않다는 전언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무래도 이쪽 업무에 출중한 인재가 L사를 선택할 확율이 적고 이는 고스란히 L사의 마케팅 능력 부재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L사의 경영, 마케팅 인재 부족으로 인한 소양 결핍은 단지 판매 실적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데요. 아무래도 엔지니어들의 대우가 다른 쪽 계열 대우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보니 내부 승진 역시 엔지니어 실무진쪽이 월등히 빠르고 그렇다는 것은 결국 실무적인 부분 이외에 경영 마케팅쪽의 결정권자 역시 경영 마케팅 전문 실무진이 아닌 엔지니어 출신 인재들이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이같은 흐름은 아주 뿌리깊은 부분에서부터 문제를 야기하기 시작하는데요. 바로 업계 내에서는 물론 일반 소비자들도 이미 체감하고 있는 '1차원'마케팅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짓을 하게 만드는 대기업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후진적이죠.


L사는 그 회사 규모에 걸맞지 않게 사원들을 '영업사원화'시키는 작업을 꽤 오랜 기간동안 지속해오기로 유명한데요. 이를 테면 전혀 관계없는 계열사인 화학쪽 계열사에게 이동통신 계열사의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회선 10여개 가량의 판매를 맡기고 주변 지인들에게 이를 팔게끔 하는 대기업답지 않는 네트워크 마케팅을 지금 현 시점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이는 똑같이 엔지니어 중심의 간부 체계로 운영중인 대표적인 통신회사 K사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런 마케팅 방식은 같은 경쟁사인 S사나 기타 대기업들에서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수준에서 그치는 매우 초보적이고 구태적인 마케팅 방식인데요. 심지어 임직원은 물론 협력업체들까지 전개하기도 하는데, 이같은 행태가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그로 인해서 잃을 수도 있는 회사 외적 이미지를 고려할 경험이나 지적 여유가 부족한 엔지니어 중심의 조직 체계가 불러오는 참사일수밖에 없는 것이죠.


계열사별로 실적과 목표까지 할당합니다. 물론 이 할당이 채워지지 않으면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죠. 이에 부담을 느낀 임직원들은 대부분 하청업체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문화까지 이미 정착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밑바탕에서 좋은 마케팅이 나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L사는 비단 이런 부분이 아니더라도 광고나 홍보 마케팅 측면에서 대기업답지 않은 많은 약점을 노출하고 있는데요. 가진 기술력에 비해 엔드 유저들이 피부에 와닿을 만큼 강력함이 없는 밋밋한 마케팅 능력은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면 L사가 그만큼 이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거나 혹은 노력에 비해 결정권자의 무능함으로 인해 나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반증이겠지요. 어떤 결과로든 L사의 기술력 대비 경영 마케팅 능력은 매우 미숙하며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 역시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L사의 사원들에 대한 복지 수준은 대기업다운 수준에서 살짝 부족한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만 반면 노조 설립이나 자율적인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큰 제약을 두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이는 특별히 경영진이 노조에 관대하다기보다는 노조를 먼저 휘어잡을 수 있는 장악 능력 자체, 다시 말해 결국 앞서 언급한 '경영 스킬 부족'이 여기에서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부분이 되는데요.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노조가 상당히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노사 갈등이 심각하지 않다는 이야기인데요. 이는 경영진들의 무능함으로 노조 설립이나 운영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반대급부적인 부분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엔지니어들 중심의 조직 체계에서 노조같은 사회과학적인 측면이 필요한 조직 체계에 익숙하지 못한 임직원 내부 분위기상의 한계도 존재하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한마디로 어느쪽도 치고 나가지 못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임직원들에 대한 복지 수준보다 어쩌면 더 중요할수도 있는 근무 환경 여건 개선 측면에서 L사는 여전히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24시간 3교대 근무 체계가 지금 시점에서도 이미 많은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어서 H사를 중심으로 야간 근무 자체를 폐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와중에 L사는 최근까지도 24시간 2교대 근무를 고수하다가 간신히 3교대로 바꾸는 데에 그치고 있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에 대해 크게 심각함을 느끼거나 부당함을 설파하기보다 그냥 묵묵히 일하는 이공계 엔지니어들의 워커홀릭적인 특성과 더불어 이들이 주요 요직에 승진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근무 환경 여건 개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


엔지니어로서의 삶에 가치를 두고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는 기업으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는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의 위크포인트를 기회로 어기고 L사를 바꿔보겠다는 야심찬 도전을 품고 있는 경영 마케팅 분야의 인재가 계시다면 지금은 좀 말리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바꿀 만큼의 위대한 능력을 가졌는지는 별개로 치더라도 그렇게 바꾼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 그렇게 크지 않을 거라는 점이 그러한 열정을 굳이 꺾어주길 바라게끔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정을 꾸리는 것을 꿈꾸는 사람이라면...글쎄?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매우 뛰어나야만 합니다. 엔지니어들 중심으로 짜여진 조직체계는 매우 남성적이고 여성들이 끼어들 틈바구니가 적으며 그만큼 흔히 볼 수 있는 여성들이 만들어내는 조직 문화는 없지만, 그만큼 요구되는 능력 수준이 높고 외부 조직에서 흘러들어오는 이른바 '굴러온 돌'에 대한 냉혹함도 존재합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L사에 뼈를 묻겠다는 심산으로 들어온다면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어느 정도 직위에서 L사로의 전직은 조금은 말리고 싶습니다. 물론 업계 관행처럼 가져갈 수 있는 직위는 그대로 이어갈 수 있겠지만 조직 내에서 당신의 입지는 충분히 체감할 만큼 한계가 분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L사형 기업은 개성이 강하긴 하지만 유니크하지는 않습니다. 비단 L사 뿐만 아니라 L사처럼 엔지니어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대부분 L사의 기업 문화를 닮아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 말하는 것들은 비단 L사에 입사를 바라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기전자,화학,반도체 등 엔지니어링에 올인하는 중소기업들에게도 거의 동일하게 적용될 것입니다. 물론 L사가 이정도라는 것은 L사가 지금 보여주는 것이 그 조직 체계에서 얻어낼 수 있는 복지나 업무 환경이 가장 극한까지 끌어낸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시길 바랍니다. 아마 그 이하는 있을 수 있어도 그 이상은 있을 수 없다는 점 반드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특별기획 '취업' - 기업 생태연구 보고서 : L사형 기업 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2. 11. 21. 00:26

취업시장에 던져지게 되면, 여러분들은 곧 상품이 됩니다. 내 능력을 돈과 맞바꾸는 작업을 기업과 하게 되죠. 그런데 이 취업시장이 너무 얼어붙다보니까 기업들은 으례 덤핑세일을 당연시하게 되고 취업준비생들은 마치 쌀값떨어진 해의 추곡수매를 앞둔 농부들처럼 체념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 추곡수매는 돈이 얼마든 일단 100% 사준다는 건 있는데, 취업은 그나마도 없군요. 인력이 쌀알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에 대한 가치를 상대방에 의해 평가절하당하는걸 당연시화해서는 안되요. 여러분들이 돈을 가지고 물건을 살때 이곳 저곳 가격비교를 하듯이 여러분들의 능력을 팔 때도 어떤 기업이 더 많은 값을 쳐주는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죠. 다행이도 최소한 '금전적'인 부분이나 복지 등등은 꼼꼼히 챙기는 분위기가 점차 정착이 되는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많이들 간과하고 있는 점이, 회사 혹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미래가치입니다. 여러분들은 언제나 고용이 되어 시키는 대로 일을 하게 되는 수동적인 삶이 회사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들어가보면 그렇지만도 않거든요. 기업들은 대부분 기업을 경영하는 데에 있어 특정한 철학이 있고 그 철학은 단순한 영리적인 차원을 뛰어넘어서, 국가주의, 법치에 대한 양심까지 타협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니까요.

 

요즘은 기업공개가 잘 되어서 어떤 기업이 연봉을 얼마 더 주고, 대우도 더 잘 해주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아서 대처하고 계시리라 믿고 이번 특별기획 '취업'시간에는 연봉이나 복지 혜택 등의 공개된 공통분모로는 잘 나타나지 않는 기업들의 생태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여드릴까 합니다. 어떤 내용이 담겨질지, 그 내용이 여러분들에게 정녕 도움이 될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은 이제 기업에 들어가서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하게 될 것이고 그 기업에 따라서는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이 가진 능력 이외에 여러분들의 사상이나, 양심, 혹은 가족관이나 가치관까지 기업에 맞춰 따를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므로 만일 이런 사실을 모른 채 단순히 연봉만이 마음에 들어 기업에 들어갔다가 추구하는 바가 묘하게 마음에 들지 않아 괴로워하거나 결국 취업에 실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번 기획이 모쪼록 취업준비생분들의 이런 실패사례를 줄이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S사형 기업의 생태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기업 생태연구 보고서 : S사형 기업

 

S사면 S사지 S사형 기업은 또 뭐냐 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우리나라 취업자들이 모두 S사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 S사같은 회사에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S사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실적을 내고 있는 대기업이고 그런 성공에는 수많은 협력사들과, 그 회사의 (성공 방정식에 대한) 영향을 받거나 혹은 S사에서 조기 퇴직하고 자신만의 사업장을 펼친 S사출신들이 이끌고 만들어낸 조직 문화가 녹아있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있게 됩니다. 이들 대부분은 내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독립적인 기업 철학을 갖추기보다는 S사의 일거수일투족을 흉내내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고 오히려 더 세세한 부분에서까지 닮으려 애쓰고 있다는 것이죠. 약간씩은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큰 틀에서는 같고 또한 이번 기획이 그런 세세한 차이까지 모두 담아내기에는 스케일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큰 줄기만을 설명한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연구내용은 S사의 기업 생태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다른 회사들이 얼마만큼을 차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이 연구를 기준으로 대입하여 직접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S사형 기업을 거두절미하고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독립된 국가'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기업이 크든 작든 이 나라 법과는 별개로 이 나라 속에서 별도의 가치관과 이데올로기를 구현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일종의 로망으로 경영 철학에 반영되게 되죠.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이건 혹은 드러나지 않고 잠재적으로 만들어지는 것들이건 결국 모든 활동의 종착지는 단 한가지 '나만의 국가' 인 것입니다.

 

 

S사에 입사하는 방법은 조금 특별합니다. 협력업체들은 필수적으로 S사의 내부 룰과 그에 따른 처벌 내용을 담은 '자체 교육'을 반드시 이수해야만 S사에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정규 임직원들은 S사 바깥 세상에서 인정하는 시험 점수와 더불어 S사에서만 통용되는 또 하나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귀화, 아니 S사에 입사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죠. 협력 업체는 자신이 교육을 받았다는 씰을 항상 지니고 다녀야 하며 이 씰은 6개월 간격으로 재교육을 통해 반드시 갱신을 해야만 합니다.

 

 

 

 

사실 모든 회사들이 다 그렇습니다만, S사만큼 출입 통제에 신경을 많이 쓰는 회사도 없습니다. 마치 출입국심사를 떠올리게 하는 시스템과 공항을 방불케하는 검색 시스템이 우리를 반기는데요, 우선 S사에 단순 방문을 하기 위해서는 '사전 예약'을 해야만 합니다. 물론 이 사전 예약이 그냥 되는 것은 아니고, S사에 있는 정규 임직원에 의해 그들의 출입 권한과 목적, 신분 등을 보장한 신청서가 접수되어야만 가능합니다. 신분이 확실한 사람만이 입국, 아니 들어올 수 있고, 그 사람의 신변에 대해 연대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만 관광, 아니 회사 구경이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연하겠지만, 이들 보안 검색 및 출입국 심사, 아니 방문 심사를 맡는 자들은 매우 권위적입니다. 보안검색대에 가방이 말려들어가 찢어진다고 해도 그들은 당당합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입국, 아니 방문할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당신이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이 보안검색은 이곳의 룰이다. 원치 않으면 나가라고 당당히 외칩니다. 물론 돈이 많고 관광지, 아니 회사에 돈을 많이 쓸 수 있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방문할때, 그리고 정규 임직원들이 방문할때의 대우는 전혀 다르죠. 때에 따라 검색대를 거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회사 내 모든 촬영은 금지되며, USB 등의 데이터 통신 장비 반입도 엄격하게 제한합니다. 북한 취재를 가면 딱 이런 느낌이죠.

 

회사 안에는 정규 임직원과 단순 방문객, 그리고 외국인노동자, 아니 S사와 협력/하청 관계에 있는 회사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정규 임직원들은 유리로 장식된 아주 깨끗한 외면을 자랑하는 건물 쪽에 들어가 '사람용'엘레베이터를 타고 자신의 자리로 출근하며 협력업체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갈때는 화물 반입용 입구로 들어가 한번에 수십명씩 화물용 엘레베이터를 타고 출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화물용 엘레베이터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죠.

 

왜 이런 문구가 붙어있음에도 지키지 않느냐고 물으신다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것은 S사의 법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법이기 때문이죠. 다른 나라의 법을 따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식사 시산에도 정규 임직원과 외국인노동자, 아니 협력/하청업체 직원들은 함께 식사하지 않습니다. (귀찮으므로 앞으로는 그냥 내국인, 외국인노동자로 부르겠습니다) 약 30분간의 갭을 두어 내국인이 외국인노동자들로 인해 기다리는 일이 없도록 하죠. 식사 요금도 정규 임직원은 무료, 외국인노동자는 유료입니다. 똑같은 금액을 내 오다가 내국인들의 반발로 인해 무료화 되었고 그 인하분 만큼 외국인노동자들의 밥값이 인상되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외국인노동자들의 돈으로 내국인을 먹여살리는 시스템인 것 같습니다.

 

내부에서는 여러 가지 행동 수칙들이 많습니다, 금연같은 부분도 있고 내부적으로 행위와 관련된 제약 사항들이 있는데 이를 위반할 시에는 즉시 추방 (퇴출) 및 입국, 아니 일정 기간 출입 금지 처분을 받게 됩니다. 내국인들의 처벌은 다소 약한 편이죠. 회사 바깥으로 나간다고 해서 즉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엄연히 울타리 바깥임에도 불구하고 울타리에는 '이곳은 (준 사업장) 지역이므로 울타리쪽 인도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문구가 붙어있죠. 일종의 니땅내땅 개념인데, 이런 태도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차도에서도 이어집니다.

 

공장 인접 지역 내 차도에는 '패트롤 카'가 돌아다닙니다. S사 소속 패트롤카이죠. 이들은 도로 바깥쪽에 주차된 차들을 단속합니다. 차를 빼라고 방송을 하다가, 차 유리쪽에 스티커를 붙이죠. 스티커에는 이곳은 주차가 금지된 지역이므로 향후 다시 적발될 시 견인 조치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준 사업장 지역이라며 흡연을 막던 인도와 이 도로가 정말 S사가 모두 매입하여 준설한 사유 시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런 걸 당당하게 하고 싶었던 겁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S사는 또 하나의 국가를 꿈꾸고 있어'라고 말하면 '에이 그건 좀 아니다'라는 반응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부득불 이렇게 직접적인 사례를 들어 보았는데요. 글로는 표현이 조금 부족할 수 있을텐데, 해외에서 1년 안팎으로 채류를 해보신 분들이라면 어떤 부분이 국가 시스템과 닮아있는지 조금은 눈치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S사는 마치 별도의 국가를 운영하는 것처럼 회사 내의 조직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일까요? 이렇게 운영해서 보안이나 기술 누출에 대비한다는 것 이외에 행동들은 선뜻 어떤 이익을 보고 있다기에는 그 운영 비용 측면에서 비효율적일수밖에 없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은 유무형적인 금전적 이득과는 관계없는 어떤 다른 것을 얻기 위해 이같은 시스템을 운영한다는 결론에 봉착하게 되는데요. 다름아닌 '국가 시스템에서의 독립적 사법권력'입니다.

 

S사는 정규 임직원에게 다른 회사 대비 좋은 조건의 근무 환경을 제공하는 한편 이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법보다 S사의 내규를 더 우선적으로 준수하도록 정말 많은 근무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교육에 매진합니다. 교육 내용은 언뜻 건전해보이지만, 이 회사가 어떤 룰에 의해 돌아가는지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인 일종의 '사상 교육'이 대부분이죠. 그리고 그들은 업무에 있어서도 월권없이 '자신의 맡은 일'과 '만들어야 할 것들' 만을 만드는 인격을 가진 기계로 운용됩니다. 그들은 경력이 쌓인다 한들 해당 직무에서 견문이 넓어지거나, 해당 경력을 토대로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점차 잃게 되죠. 그들은 그렇게 S사에서만 그들의 능력을 인정받고 일을 할 수 있다는 인생의 유일한 선택지로서 인지된 채 인생을 끌려가게 됩니다.

 

쌀값이 떨어지면 다른 농사를 지으면 된다는 생각을 이 분들은 하지 못합니다. 이분들이 바보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살아올수밖에 없었던거죠.

 

그들이 노조가 없는 이유는 이런 새뇌교육에 기인합니다. 그런데도 가끔 옥석가리기에 실패해서 삐죽 튀어나온 불순분자로 인해 노조가 생길 뻔하거나, 내부적인 약점이 공표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는데요. 이들이 이렇게 결사적으로 노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노조가 회사의 이익을 저해하는 것도 있겠지만 더 결정적으로는 S사의 경영 방침 자체가 '국가'이다보니 이들에게 '노조'란 국가전복세력, 즉 쿠데타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그들에게 부여한 독립적인 권한 하에서 마음껏 노조 설립을 방해하거나, 내부적인 약점을 누설하는 것을 억누릅니다. 마치 일본 방사능 누출 은폐나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연상되듯이 말이죠.

 

기업을 운영하는데에는 많은 목적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이 나라 혹은 이 세상에 어떤 큰 족적을 남기고 싶다. 등등이 있는데 그 중에는 이 나라의 흥망과는 별개로 내가 내 나라를 직접 세우고 싶다는 야망을 이루기 위해 기업을 세우고 운영하는 일도 있죠. S사가 바로 회사라는 매개체를 통해 독립적인 국가를 경영하는 만족감을 위한 기업 형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돈을 그렇게 많이 벌어서 어디다 쓰는지 궁금하셨겠지만 결국 자신의 만족, 로망을 위한 거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그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숭고하거나 철학적일거라는 것은 역시 착각에 지나지 않는것 같습니다.

 

 

S사의 가장 중요 계열사이자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계열사 이 곳이 바로 S사가 꿈꾸는 로망의 결정체인것이죠. 세속에 이용되는 주요 계열사가 이쪽인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

 

그들이 북한이나 일본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이런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버는 돈을 족족 '이러한 권력을 가질 수 있는 방법'에 아주 오래 전부터 투자해왔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 수단적인 부분은 불법과 합법을 모두 동원하는데요. 불법적인 부분은 잘 알려져있지만, 합법적으로 이들이 이런 운용이 가능한 방법이 뭐가 있을까 라고 생각해본다면 지금 S사가 출자하고 있는 주요 계열사 전자, 중공업, 디스플레이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이들 사업체들은 대부분 국가 주력수출산업, 핵심기술보유 사업체, 국가기반시설 구축사업 등 국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며 이들의 존폐가 즉 국가의 주요 세수 및 국가 경제지표산업에 긴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산업들입니다. 전자는 반도체, 중공업은 선박, 디스플레이는 수출주력사업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죠. 이들 모두 산업기밀을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1급 기밀 시설로서 사업장을 독립적인 보안 기준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들의 권력은 바로 여기에서 나오죠. 국가가 인정한 일급 보호 시설을 자사의 영리사업장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보호시설에서는 국가의 경제 흥망을 좌우한다는 보안을 명목으로 마음껏 독자적 기준의 사회 통제가 가능하도록 허가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이 이들 사업에 집착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들의 목적은 회사의 이윤도 있지만, 더 궁극적으로는 그런 사회 통제를 할 수 있는 왕권적 권한에 있으니까요.

 

 

이들이 그토록 원하던 자동차 사업 역시 수출을 목적으로 하는 권력을 부여한다는 점, 국가가 허가를 내준 기업만 참가할 수 있는 허가제 사업이라는 점이 S사의 구미를 당기게 만든 포인트일 것입니다. S사는 결국 적자 끝에 실패했지만, 그들이 적자를 볼 것을 감수해가며 무리하게 뛰어든데에는 이윤 이상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

 

그들이 당당하게 실정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 상속세, 증여세 포탈에도 당당한 것, 얼마든지 법정에서 자신은 죄가 없다고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것도 모두 '자신들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 않고 대한민국 법을 따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S라는 국가를 만들었고 S의 법을 우선시하니까요. 당연히 S의 법에 저촉되지 않으면 그들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고, 이들을 이렇게 만든 건 그들 스스로가 아닌 S의 그러한 노력에 화답하여 국가 내에 또 다른 국가 건국을 용인하는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를 한 정부임에 다르지 않죠.

 

 

S사가 해외에서 최고의 기업으로 맹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자부심을 갖어야 한다고 그들은 광고한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한국 기업임을 내세우는 적이 없다. 한국기업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그러고 싶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 그들에게 있어 애국심은 S사라는 나라에 국한되는 감정이다. 얼마든지 일본 기업으로 취급받던 미국 현지 기업으로 취급받던 관계가 없다. 그들은 일본 기업도 미국 기업도 한국 기업도 될 생각이 에초부터 없다 그들이 각국의 내수에서 어떤 거짓말을 하던 아마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런 S사의 경영철학은 그 성공의 규모와 누리는 패권의 탐스러움으로 인해 많은 기업들의 롤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대부분 갖은 제약으로 인해 흉내만 내는 수준에 그치고 있어 뱁새의 가랑이가 치킨집 닭다리가 되는 결과를 낳고 있지만, 엄연히 현실이고 이런 현실은 계속되고 있지요. 여기에는 전직 S사 임직원들이 퇴사 후 독립하여 창업을 하거나 S사 출신 직원들이 주요 요직으로 들어가있는 모든 기업들이 포함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살았던 S국가의 생활 습관을 절대 버리지 못하기에 그들의 생활을 그 회사에 어떻게든 녹이려 지금도 노력하고 있죠. 물론 그 언벨런스에 대한 피해는 어느 쪽이 보고 있는지는 여러분들이 보고 계신 그대로입니다. 

 

 

자료화면이며 특정 기업, 인물과는 무관함.

 

해가 지지 않는 국가가 되고 싶었던 나라의 국기 (자료사진으로 연관성 없음)

 

 

여러분들에게 이 모든 것에 대해 수긍도 저항도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글머리에 있듯이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고 여러분들이 취업할 때 뿐만이 아닌 10년이고 20년이고 이 회사에 얽히며 인생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입장에서 보다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나아갈 더 먼 곳을 바라보는 데에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S사형 회사가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말하기 힘듭니다. 엄연히 저런 정해진 규칙을 잘 지키고 시키는 대로만 잘 하는 데에 충실한 인재는 많고 이런 인재들을 육성해내는데에 너무나도 최적화된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이들을 무한정 성적순대로 양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기업에 너무나도 잘 적응하고 아무런 불만 없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그렇지 않은'사람들이 억지로 그런 회사에 들어가서 자신을 깎아가며 먼저 간 사람의 엉덩이를 얼굴로 받쳐가며 인생을 낭비하고 후회하며 슬퍼하고 허탈해하며 결국 아무 의미없는 톱니바퀴로 사는 자신을 자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생각해낸 이상향을 기업을 통해 이뤄내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대단한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여러분들이 들어가려는 회사가 혹시 S사형 회사는 아닐까요?

그리고 여러분들은 정녕 S사형 회사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입니까?

 

선택지가 없더라도,

세상이 강요하더라도

 

한번 더 자신과 그 회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기업 생태연구 보고서 : S사형 기업 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2. 8. 2. 10:22


급여, 흔히 월급이라고 하죠. 이 급여라는 것에 대한 의미를 혹시 제대로 알고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급여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죠.

 

급여給與

1 .
돈이나 물품 따위를 줌. 또는 그 돈이나 물품.

2 .
[북한어] 동물에게 사료를 줌.

 

뜻 자체로 급여는 그냥 돈이나 물품 따위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댓가성에 대한 내용이 없죠. 뭐 다른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월급, 주급, 시급에 들어가는 給자는 공급하다는 의미로 어이없지만 대단히 공산주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번 뜻이 더 현실적이군요. 이 단어대로라면 우리는 북한의 배급에 의존하는 국민들처럼 회사의 급여가 아니면 '생존 자체가 안되는' 가축같은 의미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반면 영어의 경우는 어떨까요? 영어로 급여는 'pay'라고 합니다. 친숙하죠? 영어권 국가에서 물건을 살때도 이 단어를 분명 써본 경험이 있을겁니다. 이쪽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이들에게 월급은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넘겨주고 받은 '대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급여에 비교하면 엄청난 의미적 차이가 아닐 수 없네요.

 

...

 

우리 사회에서 백수 즉 무직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습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자'라는 것은 '소비만을 하는 자', '생산하지 않는 자'라는 의미를 넘어 '밥버러지', '시간을 낭비하는 자 (잉여)'라고까지 불리기도 하는데요. 그런데 이 생산하지 않는 자, 시간을 낭비하는 자를 잉여라 부르며 괄시하고 심지어 사회 암적인 존재로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여러분들은 과연 무엇을 얻고 계십니까? 오늘 특별기획 취업 시간에서는 바로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자들과 그 사회분위기로 인해서 이득을 얻는, 또한 손해를 입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우리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자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원론적으로 돌려보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시간'은 '무의미한 시간' 이며 '경제활동을 하는 시간'은 매우 의미있고 가치있는 시간이라는 인식이 깔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같은 인식 속에서 시간을 경제활동에 쏟지 않는 사람이나 조금 덜 쓰는 사람을 깔보거나 조롱하며 자신이 가진 경제적 가치를 경제시간과 환산하는 식으로 우월감을 표출하곤 하죠. 아마 이와 같은 사회 분위기가 유지되는 이유에는 이 우월감을 누리기 위한 방편적 기준이라는 점도 내면에 깔려있을지 모릅니다.

 

http://quadue.wordpress.com/

 

그런데 이와 같은 사회 분위기가 계속되는 것을 원하고 또한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쪽은 과연 어디일까요? 모든 논리는 이득을 보는 쪽과 그 이득을 보는 쪽을 위해 희생하는자, 그리고 손해를 보는 자로 나뉘어집니다. 여기에서 이득을 보는 쪽을 위해 희생하는 쪽은 '백수'가 되겠고요. 그리고 그로 인해 손해를 보는 쪽이 바로 경제생활자가 됩니다. 물론 이득을 보는 쪽은 회사가 되겠죠. 왜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결과적으로 회사에 이득을 가져다주는걸까요? 그건 바로 '근로자의 시간에 대한 가치 절하'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경제활동에 쓰는 시간은 비싼 시간이고, 경제활동에 쓰이지 않는 시간은 싼 시간이다라는 논리는 결국 비싼 시간에 대한 급격한 수요를 야기합니다. 비싼 시간을 원하는 사람이 많고 그 비싼 시간을 주는 사람 (기업)이 적으면 자연스럽게 물가가 올라가게 되죠. 그러면 이 시간을 주는 사람은 얼마든지 더 낮은 가격에 많은 시간을 주는 사람에게 팔고 싶어할것이고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더 낮은 가격을 부를 것입니다.

 

여기에 기업들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있지 않은 시간을 더 끼워주지 않으면 원래 사려고 했던 시간도 사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게 되는것이죠. 여기에서 당신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고민의 주체는 당신이 가치없는 시간을 가치있는 시간으로 바꾸는 대신 얻을 수 있는 것, 바로 '사회적 우월감'이고 또 하나는 당신이 원래 팔려고 했던 하루 8시간 정도의 시간을 팔 수 없게 되었을 경우 그 '사회적 우월감'을 잃게 될 것을 우려하게 됩니다.

 

이같은 거래가 계속될 경우 당신은 당신의 시간을 사회적 통념상 가치있는 시간으로 보내지 않으면 돈이 술술 나가는 듯한 불안감에 몸을 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시간을 판 댓가를 받은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우월감에 대한 중독성도 더욱 심각해지게 되겠죠.

 

이 기회를 시간을 사는 자는 놓치지 않습니다. 더 낮은 가격에 더 많은 시간을 사려는 것은 물론, 당신의 시간 말고도 살 수 있는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며 당신과의 거래를 얼마든지 끝낼 권리가 있다는 점을 어필하며 당신을 압박합니다. 당신은 이미 그 사회적 우월감이 주는 마약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유지하는데에 더 많은 시간을 더 저렴한 가격에 그들에게 넘기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을 갖지 않게 됩니다. 거의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에 주는데에도 당신은 손해를 보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아무런 가치가 없는 시간을 아주 조금이나마 가치있게 쓰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기뻐할 것입니다.

 

 

우왕 이제 키스도 할수 있네, 어썸!!

 

 

...

 

이런 과정에 의해 탄생하는 것이 야근과 연장근무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쓸 수 있는 비근로시간에 대한 가치를 스스로 아무 의미 없거나 지나치게 낮은 가치를 매기는 것으로 옭아맵니다. 기업은 이러한 분위기를 환영하는 것은 물론 도의적으로 조장하기에 주저함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는 편이 훨씬 기업에게 이득이 될 것이기 때문이죠.

 

야근과 연장근무, 그리고 그 연장근무로 인한 댓가가 형편없이 낮은 것에 분노하고 불합리함에 분통을 터뜨리고 계십니까? 안타깝게도 그 책임은 모두 회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우리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스스로가 '회사에 주는 시간'이외의 시간에 대한 가치를 너무나도 떨어뜨렸음은 물론 그 시간을 회사에게 너무 싼 값이 주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참극입니다. 회사입장에서는 특별히 도덕성을 가질 필요도 없고 당신들이 손해를 보는 것에 대해 하등 인도주의적인 관점을 가져야 할 의무도 법규정도 없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우리를 먹어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도 회사를 먹여살리기 위해 존재하지 않고요. 그러기에 회사가 우리에게 돈을 주는 고마운 단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회사와 우리는 거래를 하는 관계일 뿐입니다. 우리가 회사에게 그들이 필요한 시간과 그 시간 안에 해낼 수 있는 업무 능력을 보여주는 댓가를 정당하게 받는 거래 관계입니다. 혹 그들이 더 많은 시간과 능력을 정당한 댓가 없이 지불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응당 거부해야 하며 거부까지 갈 수 없다고 해도 응당 이게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불합리한것인지를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일하지 않는 시간'과 '일하지 않는 자'에 대한 가치절하를 중단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퇴근 후'에는 누구나 백수가 됩니다. 그 백수가 되기 싫어서 회사에 남는 시간을 '기부'까지 해가며 억지로 나는 '열심히 일하는 사회 구성원이야'라며 자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어필하며 '우월감'을 느낄 가치는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 사실을 응당 창피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호구'라는 단어처럼 당신은 회사에게 호구처럼 당신의 시간을, 인생을, 능력을, 존재 가치를 덤핑세일로 빼앗긴것과 다름없으며 그걸 우두커니 지켜보기만 하는것도 모자라 바보처럼 그것을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회사들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의 하는 작태는 비단 우리가 연장근무에 관대한 사회분위기를 자초했다고 하더라 할 지언정 너무나도 치졸하고 비겁합니다. 그러한 사회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주도하며 자신들의 거래를 유리하게 이끌어나가는 것은 이윤창출로는 완벽할지도 모르지만,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을 처음부터 거부했다는 점에서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최악입니다. 굳이 윤리까지 들먹일 필요조차도 없을것입니다.

 

 

연장근무와 야근은 법적으로 규제할 수 없습니다. 근로계약상에 추가근무에 대한 조항이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기업은 그래서 야근과 연장근무를 거리낌없이 시킵니다. 그리고 그 야근과 연장근무에 투입되는 자신의 인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는 미친 나치시대 파치즘적인 이념같은 병신논리를 설파합니다. 그리고 이 논리에 의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야근과 연장근무에 대한 정당한 수당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고 있습니다.

 

 

야근과 연장근무에 대한 지불은 법적으로 반드시 지불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처음부터 야근수당을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 우리가 기업에 던지는 추가근무시간에 대한 가치를 최대한 떨어뜨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이없게도 추가 근무 수당으로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아이구 우리 잉여시간 남아서 드린 것 뿐인데 돈까지 주시다니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라며 머리를 조아리며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기업은 당신의 시간을 더 싼 값에 사고 싶어하는 거지근성들로 가득한 놈들일 뿐이라는 점을 알아야 하며, 그러기에 우리는 그들에 맞서 절대 우리의 시간을 덤핑으로 넘기지 않아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 스스로 '일하지 않는 시간'에 대한 가치를 높이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시간이 싸다고 생각하는데 기업이 우리 시간을 비싸게 사줄 리가 없을테니까요.

 

 

당신의 시간은 기업이 생각하는 그것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잊지 마세요

 

 

특별기획 취업 - 누가 워커홀릭을 만드는가 : 야근 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2. 7. 15. 14:03

 

 

많이 보셨을겁니다. 그리고 많이 불편하셨을 자료였을거라 생각합니다.

전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외국인 친구들이 이 자료를 보며 제게 이렇게 묻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헤이 Rusham~  내가 KOREA PR 이랑 REP KOREA는 배웠다고 그런데 KOREA IT는 어딜 말하는거지?'

 

...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문제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어느 누구 하나 이 자연스럽지 못한 삶의 질 양극화를 묵묵히 인정하며 이에 순응하고 적응하려고만 할 뿐 누구 하나 이 상황이 이상하다거나 다른 나라에 비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마치 강제 노역에 동원된 사람들처럼 생계를 꾸려야 한다는 절박함만이 가득한 채 매일 아침 사람들은 풀린 눈으로 삼각김밥이나 토스트 따위로 아침을 때우며 부지런히 지하철이나 버스에 올라 별로 다르지 않은 행선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요.

 

대체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높은 근무시간을 자랑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고도 왜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총생산량이 OECD근무시간 하위권을 맴도는 국가에 한참 못미치는 것일까요? 왜 사람들은 이걸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불만스럽더라도 이 나라에 태어난 게 잘못이라며 애써 관대해지고 있는 것일까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누구의 책임인 것일까요? 설령 사회를 몽땅 뽑아 갈아버리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무엇이 왜 잘못되었는지는 알고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휴가 - VACATION

 

예전에는 여름휴가 겨울휴가로 나뉘던것이 이제는 연차, 월차라는 이름으로 굳이 여름이나 겨울에 몰아쓰지 않고 1년 12달 언제든지 필요한 만큼 자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바뀐 게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하는 사람들 이 휴가 그렇게 잘 쓰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대부분 다 쓰지 못하고 1년을 허비하여 버리거나 이연되는 경우가 허다하죠 (이연이 되긴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요. 일단 일이 바빠서입니다. 대기업들이 프로젝트별로 부서가 나뉘다보니 어느 한 쪽이 결원이 발생하면 프로젝트가 올스톱되는 직렬형 조직구조가 되어 자신이 빠지면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기거나 이후 인사고과나 실적 경쟁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경쟁 심리가 근로자를 옥죄는 점도 한몫하고 있죠.

 

이에 파생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로인해 '휴가'를 윤택하게 자신만의 것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잘 모르고 살게 된다는 점입니다. 휴가는 그냥 쉰다고 쉬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영위하는 취미생활이나 목표 등과 연계해서 활용해야 하는데 1년이래봐야 12일, 이걸 몽땅 한번에 붙여서 쓴다고 해도 12일동안 제대로 된 여행 하나 짜는 것도 힘들거든요. 우리나라 여행사들이 내놓는 상품들이 대부분 주마간산식의 풀어내는 숙제같은 여행 코스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짧은 휴가 기간에 여행이라는 것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죠.

 

 

주.마.간.산

 

 

여행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실 여행이라는 것은 단지 어떤 관광지를 가서 그 관광 명소를 보고 오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현지에 머물면서 현지인들의 삶을 지켜보고 현지인들의 먹고 입고 자는 모습을 익히는 것이 여행의 본질적인 의미라는 것은 우리나라와 몇몇 국가들을 제외하고 공통적으로 통하는 여행의 본질이죠. 우리나라의 여행 사진은 각 관광 명소와 자기 자신이 같이 찍힌 사진이 대부분이지만, 외국의 여행 사진은 대부분 '현지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라는 점이 이를 반증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를 흉내내려고 현지인들과 사진을 찍으려 시도하다가 험한 꼴을 당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나는데요. 당연하지만 그들과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로 친해지려면 최소 한 달 정도는 그들과 어울리면서 그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휴가는 총 12일, 여권을 만들거나 비자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여독을 푸는 마지막날을 빼면 이틀이 날아가서 열흘 남짓입니다. 게다가 모처럼 큰 마음먹고 떠나는 여행이니 가능하면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자랑거리를 가져오고 싶은 마음에 '한 국가' 혹은 '한 문화권 (종교)'이 아닌 주어진 시간동안 정말 많은 나라들을 가보는 것을 목표로 삼곤 하죠. 그렇게 10일간의 유럽일주 계획이 짜여지고 우리는 그 여행동안 여행지에서 단돈 1달러에 살 수 있는 엽서에 나온 명소들에 자신의 모습을 합성한 사진을 몇 장 쥐게 되는 것으로 만족을 강요당합니다. 당연히 이런 여행이 만족스러울리가 없죠.

 

 

비단 여행뿐만 아니라 어떤 여가 활동도 단 12일만에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휴가는 마치 12일동안 전쟁을 치르듯 스파르타식으로 벌이는 또 하나의 전쟁이 될 수밖에 없죠. 여행은 대부분의 시간을 '이동'에 투자해야만 하고, 적어도 석달은 배워야 진정한 참맛을 알수 있는 수많은 레포츠들은 12일이라는 시간적 제한에 걸려 속성, 또 속성이 되어가고 우리는 석 달동안 편하게 즐기며 배워야만 하는 것들을 단 12일만에 배워내는 지옥훈련을 해야만 합니다. 모처럼의 휴가가 아까우니까 뭔가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더욱 이를 악물고 말이죠.

 

 

휴가 다녀왔어요.jpg

 

누가 이 악물고 벌이는 12일간의 유럽일주, 레포츠를 위한 지옥훈련을 하고 싶을까요? 더구나 위 그래프에서 보듯 세계에서 가장 많은 근로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누적 피로량을 고려해봤을때 12일간의 강행군같은 휴가를 견딜 만한 체력적 여유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없어질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휴가를 휴가답게 즐기는 것보다, 일과 속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데에 더 익숙해지고 일과의 피로를 푸는 데에 휴가를 사용하는 비중을 점차적으로 늘려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휴가를 쓰는 법에 점차 미숙해져만 가고, 휴가 그 자체가 일 이상으로 피곤하게 된다면 결국 득을 보는 것은 어디일까요? 삶의 질은 마치 최면에 걸린것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흘러가기만 하는 세월이 될 것이고 우리는 인생을 또 다른 누군가의 뒤치닥거리를 위한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것에 모두 쏟아부어야만 합니다.

 

회사에게 묻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회사, 다시말해 회사에서 돈을 제일 많이 가져가는 사람들을 위해 살라며 강요하고 회사에 쓰기로 한 시간 이상의 시간을 가져가는 걸 당연시할 생각입니까? 언제까지 생존을 볼모로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세상을 바꿔가면서까지 사람들을 쥐어짜서 자신들의 일방적인 잇속 분배를 당연시하는 파시즘적 사고방식을 고착화시킬 생각인가요?

 

휴가는 당신이 회사로부터 따내는 게 아닙니다. 휴가는 당신이 회사에게 지불하지 않은 가치입니다. 회사가 그걸 거저 달라고 한다고 함부로 줄 만한 게 아닙니다. 당신은 그걸 지불함으로 인해서 정말 소중한 순간을 같이 보내는 등의 인생의 추억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도 있고 한계까지 도달한 심신이 결국 망가져 병을 불러올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는 그런 당신에게 어떤 형태로도 잃어버린 추억과 건강을 보상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

 

 

기타같은 현악기는 조율이 끝난 뒤에는 항상 기타줄을 모두 풀어놓고 연주할때마다 매번 번거롭게 다시 조율을 반복한다고 합니다. 팽팽하게 조율해놓은 채로 두게 되면 현이 늘어나게 되고 다음 연주할때는 그보다 더 팽팽하게 조일수밖에 없게 되어 결국 약해져 끊어지기 때문이라는데요.

 

휴식은 단지 잉여나 백수라는 이름으로 손가락질 받을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기계처럼 제 몫을 다 하지 못했다고 해서 폐기될만한 무인격체도 아닙니다.

당신은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일개미가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이며 당신답게 살다 당신답게 갈 권리가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진정한 의미의 휴식과 인생의 밀도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른 사람보다 자기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인정받을 인생을 위해서 말입니다.

 

 

 

휴가 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0. 5. 8. 11:26
앞서 글에 일본의 아르바이트 시급에 대한 부분을 언급했습니다만, 실제로 우리나라의 아르바이트 시급은 최근 몇년간 조금씩 오르면서 간신히 최저생계수준에 도달했을 뿐 여전히 '살만한' 수준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최저임금제도를 손보는 분들의 문제일수도 있고 이를 잘 지키지 않는 중소자영업자들의 문제일수도 있습니다만, 어째서 이게 본격적으로 표면화되어 해결책이 모색되지 않는지는 좀 다른 관점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4부작 88만원 세대에 대한 책임 시리즈에서 기업과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충분히 언급했기 때문에 이번 연재물에서는 '왜 아르바이트 시급이 현실화되지 않고 지켜지지 않는지'에 대한 보다 다른 관점에서 본 문제점과 해결 방안'에 대해 몇 가지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의 아르바이트 수요 증가

근 10여년간 아이돌 가수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고 의류나 휴대폰,게임기 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상품들이 범람하면서 청소년들이 주요 소비 계층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이런 사정 뒤에는 충분한 용돈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어떻게든 그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용돈 이상의 돈이 필요하게 되는 이른바 청소년 빈곤 현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부모로부터 용돈을 더 이상 받지 못할 경우 급식비를 횡령하거나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하지만 대부분 일시적인 방편에 그치는데요. 그래서 이들은 결국 적지 않은 돈을 정기적으로 손에 쥘 수 있는 아르바이트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노동법이 이들 청소년에 대해 매우 애매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18세 미만의 아르바이트를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부모 동의서라는 제약을 통해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원래는 허용하지 않지만 부모 동의서를 받으면 제한적으로 허용할 수도 있다'는 예외조항으로서 이들의 아르바이트를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말해 부칙 예외조항이니만큼 기본적으로 '금지'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허용'하에서 적용받는 모든 노동법의 사각지대가 될 수 밖에 없게 되는데요. 대부분의 자영업들이 자유업종으로 등록없이 자율신고제로 운영되고 종업원들의 노동권 침해 실태조사 및 처벌 역시 공무원들의 현장 단속에만 전적으로 의지하다보니 제대로 실태파악이 될 리가 없습니다. 즉 업주는 종업원 수가 몇 명인지 실제로 지금 얼마만큼의 임금을 지불하고 있는지 국가에 정확하게 의무적으로 보고할 필요가 없고 국가 역시 이를 거짓으로 적어냈는지를 확실히 파악할만한 어떤 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죠.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부모님들의 허락을 제대로 받고 부모동의서를 확실하게 제출해서 서로 두 장씩 사본을 교환해 근로계약서를 보유하는 절차를 정확하게 밟으면 좋겠습니다만, 일부 청소년들의 경우 부모동의서를 얻지 못하는 경우 부모동의서를 위조하거나 아예 가지고 있지 않은 채로 면접에 나서기도 하는데요. 이런 경우 채용까지의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철저하게 일방적인 약자의 자세로 근로계약을 맺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대부분 근로계약에 대한 상식을 잘 모르는데다 이미 자신이 위조 혹은 미첨부 등 현행법 위반의 신분에서 채용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치 '불법채류자'와 다름없을정도의 불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유리한 상황에서 업주가 이들에게 제대로 된 임금을 제시할 리는 만무합니다만, 이 상황에서 청소년들은 어른과의 협상이라는 상황적 제약과 자신이 법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받아준다는 호의에 대한 가치판단, 자신들의 소비 목표에 특별히 모자라지 않는 금액이라는 판단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정말 말도 안되는 계약조건이라 할지라도 채용에 응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소년소녀가장이 아닌 이상 이들이 필요로 하는 자금은 대부분 일시적인 금액 즉 어떤 물건을 사기 위한 정도가 대부분이며 그 금액 역시 많아야 몇십만원 수준을 초과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불리한 시급 조건을 수용하는 배경에는 생계에 대한 절박함이나 등록금이나 공과금 등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대학생들이나 기타 취업 준비생과는 그 사정의 절박함에서 상당 부분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죠. 물론 이들의 사정도 나름 절박한 건 사실인지라 아르바이트에 대한 맹목적인 부분은 대학생들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낮은 시급도 기꺼이 수용할 자세가 되어있는 이들을 업주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지금의 사정에서는 손해 볼 게 없고 법적인 위협도 크지 않기 때문에 채용에도 소극적이지 않게 되는 것이죠. 당연하겠지만 청소년들의 아르바이트 수요는 계속 늘고 있고 이들이 제한된 아르바이트 일자리에서 대학생들과 공급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특별히 중 고등학생들 써도 별 차이 없는 일의 경우 중고등학생을 채용하는 사례가 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죠.

낮은 시급에도 기꺼히 일하겠다고 나서는 계층들의 대규모 유입, 이들을 채옹해서 낮은 시급을 주는 업주를 제지할 제도장치의 미비 등은 결국 공급 과잉으로 인한 단가 하락을 불러오게 됩니다. 더 낮은 시급을 받아도 일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널려있는 이상 제대로 된 임금을 요구하는 사람을 채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아르바이트에 대한 지나친 의존

부모님 세대가 대학교를 다닐 때에 아르바이트는 대부분 지금의 중. 고등학생들의 케이스와 별반 다를게 없었습니다. 용돈으로 해결하기 힘들지만 비싸봐야 지금 가치로 몇십만원 정도의 물건을 살 경우라든지 대부분 일시적인 이유에 그쳤죠. 그런데 지금은 그 이유가 상당히 복잡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생활비 정도는 애교에 가깝고 부모님들에게 부담이 되기 싫어서 학교 등록금을 자신이 일부 혹은 전액을 책임지기 위한 이유라든지, 몇백만원 심하게는 몇천만원에 가까운 자동차, 명품, 유흥비, 성형수술 등을 이유로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드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문제는 이런 이유들이 과연 아르바이트로 해결 가능한 이유들이냐는 데에 있습니다.

이렇듯 아르바이트로 얻어야 할 금액 자체가 어마어마하다보니 대부분 한 가지 아르바이트에 그치지 않고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데요. 한 사람이 두 세가지 아르바이트 자리를 차지하게 되다보니 아르바이트 일자리 공급이 부족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부분의 이유들이 일시적인 자금 확보가 아닌 정기적인 납부를 위한 장기계획인 경우가 대부분이다보니 아르바이트답지 않은 장기간 근무가 일반화되고있는 것도 공급 부족을 부추기고 있죠. 명품이나 성형수술 역시 1회성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유행이나 유지 보수 등의 이유로 지속적인 자금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보니 등록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로 장기근무나 여러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와중에 업주들이 시급 인상에 적극적이 될 이유가 없는 것이죠.

공급 과잉은 디플레를 부른다.

등록금이 사립대 기준 연 1천만원 수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만 대학 진학율은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혹자는 대학에 들어가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는게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인간의 덕목인것마냥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인생을 체계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 치고 대학 선택은 지극히 타이틀적이고 주관성이 결여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자신의 재능이나 추구하는 미래청사진조차 가지지 않은 채 앞으로 유망하고 취업 잘되는 학과를 선택하거나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학과를 선택한다는 명목으로 입학에만 사교육업게에 많게는 수천만원을 갖다바치고 대학 입학 후에는 또 수천만원 가량의 돈으로 재단의 배를 불려주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죠. 명품이나 성형수술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안하면 시대에 뒤떨어지고 낙오자가 된다는 이야기를 하며 적지 않은 돈을 의사의 호주머니에 찔러줄 준비를 하고 있죠.

택시에는 4명밖에 탈 수 없는데 너도나도 버스나 지하철을 타려고 하지 않고 택시만을 타길 원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죠. 그러면 택시는 대수를 늘리거나 해야 하는데 택시 대수를 늘리면 수입이 줄어드니 택시업계는 대수를 조절하고 가격을 쉽게 쉽게 올리게 될 것입니다. 택시 업계는 택시의 승차감이 어떻다느니 택시를 타는 사람은 특별해진다느니 과장된 광고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택시를 타려 하게되죠. 타본 사람들은 생각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택시를 타고 있으니 광고처럼 그렇게 특별한 기분을 느끼지도 못하고 인생이 더 새로워졌다는 실감도 안나며 주변에 누구나 다들 한번씩은 타봤으니 어디가서 자랑도 못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차도 많이 막히고 버스도 전용차로 덕에 빨라져서 도착시간이 별 차이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택하는 것은 몇 안남은 '타보지 않은 사람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식으로 자신들의 무의미한 선택을 정당화하는 마이너스적 사고방식입니다.

그렇게 만든 사회적 분위기를 탓하기 이전에 그 사회 구성원인 자신들이 얼마나 주관이 없이 흘러가는 대로 인생을 설계해왔는지부터 생각해보는게 어떨지 싶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보이는 것에 얼마나 자신이 없었으면 대학, 성형수술, 명품 등에 자신의 가치판단을 의존할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다들 하는 것이기 때문에 즉 '표준'이나 '기초 조건'이 될 정도로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할수도 있겠습니다만, 좀 더 원론적으로 생각해보면 기초 조건이 될 이유가 전혀 없는 것들을 사회적으로 기초 조건으로 만들어낸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사회 구성원 자신들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힘듭니다. 자신의 주관 없이 대세에 자신의 주관을 맡기는 식의 무책임성이 지금의 어려움을 자초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작은 그룹부터 변해나가지 않으면 큰 틀에서의 해결책은 영영 보기 어려울지도 모르죠.


변하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변해주세요.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posted by RushAm 2010. 5. 4. 04:19
취업이 됐느냐 안 됐느냐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게 그 취업의 '질'이라고 합니다. 우선 어떤 회사에 들어갔는지가 중요하고 어떤 조건으로 계약되었는지를 다음으로 중요시하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취업의 형태를 묻습니다. '정규직'이냐 아니냐인것이죠. 월급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익히 알려진것처럼 회사 내부에서도 취급받는 수준 차이가 극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정규직에 목을 메고 무조건 정규직이라는 신분을 얻기 위해 이른바 취업 재수도 마다하지 않는데요.


이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만 할까요? 정말 노동계의 요구대로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만 해결될까요? 무려 잡셰어라는 말까지 나오는 마당에 코스트 증가가 확연히 보이는 정규직의 양산은 역으로 회사의 부실과 인재 순환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가져올 것이 자명합니다. 단순히 정규직을 양산하는 단계에서 그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자 그럼 해결책은 어떻게 찾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우선 젊은이들이 반드시 취업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봅시다. 첫 번째는 역시 금전적인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은 파트타임 즉 아르바이트에서 지급받을 수 있는 시간 대비 페이가 너무나도 저렴합니다. 이른바 취업을 했을 때의 시간 대비 노동시간을 생각하면 형편없는 수준의 급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스스로 모든 생활고를 감당할 만큼의 금액을 번다는 것이 에초 불가능합니다. 일례로 일본의 예를 들어보면 도쿄 지역 보통 수준의 파트 타임 시급 1000엔을 1일 8시간 주 5일 월 22일 근무로 계산해보면 17만 6천엔이 나오는데요 이는 일본 대졸 취업자들의 평균 희망 월급 20만엔 정도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며 물가를 감안해봐도 혼자 사는데에 지장을 받을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정규직 근로자와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근로자의 임금 격차가 평균 더블 스코어 심하게는 트리플 스코어 이상으로 차이가 나고 있고 여기에 대한민국의 물가 수준이 '정규직 근로자'조차 간신히 인간다운 삶이 턱걸이로 가능한 수준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현 경제 수준에 맞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두 번째는 이 글을 쓰게 만든 계기, 즉 사회적인 대우입니다. 여기에는 자존심 같은 심리적인 문제도 작용합니다만, 일단 그보다 더 큰 범주, 즉 그 자존심을 상하게 만드는 사회적인 시스템을 지적해볼까 하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금융 서비스'를 받는데에 너무나도 큰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부분입니다. 부모 품에서 떠나 혼자 독립해서 살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거주지인데 현 대한민국의 시스템은 보증금을 반드시 걸지 않으면 안되게끔 만들어져 있지요. 그 보증금은 한두달 일해서는 절대 모아지지 않는 수준의 금액이기 때문에 대부분 대출을 알아보게 되는데 여기에서 은행을 포함한 금율권이 이들에게 보이는 태도가 문제가 됩니다. 즉 당신은 수입이 일정하지 않고 일자리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이 돈을 회수할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대출을 거부당하기 일쑤죠.
          Allianz Feature


재미있는 것은 이들 금융계가 파트 타이머와 비정규직자들에게 아예 창구를 닫아놓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당신의 경제 능력을 믿을 수 없으니 대출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며 대출을 거부했던 금융권이지만 더 비싼 이자를 지불해야 하는 고수익성 상품은 아주 자연스럽게 문을 열어놓고 있죠. 똑같이 월 100만원을 버는 사람이 10만원을 빌릴 때 정규직은 값을 가능성이 높아서 한 자릿수 이자 상품을 구매할수 있고 비정규직은 두 자릿수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는 부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경제 능력을 믿을 수 없다면 이자를 두 배 준다고 해도 빌려주지 않아야 할 텐데 이들은 높은 이자를 매긴 상품은 비정규직에게도 아무 거리낌없이 팔고 있다는 점이 말입니다.

에초 논리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정규직이라고 해서 돈 관리를 체계적으로 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카드회사들은 매달 월급의 세 배 이상의 한도를 쥐어주고 대출은 연봉의 몇 배에 달하는 금액을 비교적 저렴한 금리에 제공합니다. 그들이 빚을 값지 못했을때 회사가 대신 지급보증을 해주는 것도 아닐텐데 단지 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조금 지나치리만큼 금율 제한을 일시에 풀어버립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정보라고는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영수증 정도가 전부일텐데 무슨 배짱으로 타이틀 하나에 사람을 이다지도 철썩같이 믿어줄 수가 있는지 혀가 내둘러질 정도죠.

금융계로부터 만들어지는 근거부족의 차별대우가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카스트, 그리고 그 카스트가 사회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쳐 생활 수준의 격차를 야기합니다. 더 싼 이자, 더 좋은 금융대우를 받은 정규직 취업자들은 그만큼 지출이 줄어 더 많은 돈을 모아 생활 수준을 조금씩 높여가는 것이 가능하지만 비정규직은 더 적은 소득에 더 높은 이자를 지불하고 불리한 금융대우를 받아 돈을 모으거나 생활 수준을 개선시킬 여력 자체를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죠. 당연히 사회적 커뮤니티상에서의 존재적 가치도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런 악순환은 반복될수록 격차를 벌리고 더욱 깊어질 뿐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모로부터 독립해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젊은이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한 곳은 지금의 취업난 속에 일단 비정규직으로 취업해 많지 않은 수입을 얻어가며 보증금을 빌리는 대신 내는 높은 이자와 적지 않은 월세을 제외한 금액으로 근근히 먹고살아가며 다른 기회를 노리던지 아니면 언제 될지도 모를 정규직 취업이라는 좁은 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배를 주려가며 보장없는 시간싸움을 계속할것인가를 말입니다.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이러한 암묵적 신분 차이로 인해 비정규직 계층에서는 일관되게 정규직이라는 타이틀 자체에 연연하고 집착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되고 이것이 사측과의 마찰을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 비정규직은 내외적으로 지나치게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왔기 때문에 정규직이라는 타이틀이 마치 수험생들의 서울대처럼 하나의 탈출구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되어버린 것이죠. 실제로도 마치 서울대생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안정적 사회진심이 되던 것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에게 있어 정규직이 가진 그것은 선망의 대상이 될 만큼 막강하기 때문이죠.

다만 이 상태로는 접점 자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문제 자체가 비정규직의 사회적 불리함보다는 정규직이 지나치게 막강한 사회적 권리를 누리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사실 정규직은 발빠른 변화를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 그닥 적합한 제도가 아닙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해고를 할 수 없도록 법적인 보호를 받고 있고 월급은 능력제가 아닌 경력제로 업무 능력에 관계없이 나이와 부양 가족, 직급에 의해 결정됩니다. 사오정이라는 말도 생겨납니다만 사실상 명예퇴직에 지급하는 금액 역시 미래에 지급할 연봉을 미리 지급하는 수준으로 회사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며 눈에 보이는 월급 이외에도 한 사람을 고용하고 운용하는 데에 있어 공동으로 책임져야 하는 의료보험 등의 국가 세금, 1인당 필요한 기자재, 공간 대비 임대료 등 적지 않은 코스트를 고정 비용으로 지출해야 하죠. 지출은 많지만 현대 사회에서 회사의 성장 속도를 받쳐주기에는 고용 제도 자체가 상당히 전근대적이고 낡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규직이라는 안정감이 가져다주는 자기계발, 업무능력 향상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회사 조직 전체의 업무 효율성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니까요.


그런데 이런 문제투성이 정규직을 왜 없에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 없에는 것보다 어째서 비정규직과의 격차를 실감할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부여하는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복불복 정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미 정규직의 범주에 들어와 있고 그 정규직 내에서 어느 정도 카스트를 높여놓은 사람들이 적어도 자신이 남은 경력, 아니 남은 여생동안에는 지금 앉아 있는 상위 권력의 달콤함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안락한 보호장치를 만들어놓고 있기 때문이죠. 말년 병장이 제대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나 애써 1위까지 올려놓은 캐릭이 있는 서버가 초기화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진배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들은 단지 놀고 먹지만은 않습니다. 자신들이 권력을 누릴 수 있는 돈을 벌어줄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일해줄 사람도 필요하고 그 일을 해주는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해줄 수 있는 실무진들도 충분히 필요하니까요. 다만 그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하면 자신들이 가진 신분에 인플레가 생겨 가치가 떨어지는데다가 자신들이 먹고 있는 것을 줄이지 않는 한 회사가 부실해질 것이 자명할테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법적인 허용치 내에서 비정규직을 다수 뽑고 최소한의 실무진으로 구성된 정규직을 포진하는 식의 인력 구성을 점차 늘려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TO를 비정규직으로 잔뜩 만들어놔도 조건이 워낙 열악하다보니 사람들이 좀처럼 선호하지 않게 되자, 기업들은 설비 투자 자금을 묶어두고 해외 자본 투자를 통한 이른바 '고용없는 성장'을 통해 몇 년간 비정규직을 포함한 전체 TO자체를 현저하게 떨어뜨립니다. 당연히 그 해에 졸업하는 대졸자들의 실업율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게 몇 년째 지속되게 되면 이른바 취업 재수생, 삼수생 등이 생겨나게 되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취업난'이 완성되는 것이죠. 물론 1년간의 공채 공백을 견디기 힘든 경제 사정을 가진 대다수 사회 초년생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비정규직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이렇듯 자연스럽게 사측이 의도한 대로 일자리의 질적 가치는 급락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걸 정부 도움 없이 기업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되긴 힘들겠죠.

그렇다고 정규직이 마냥 태평하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특근보조비를 폐지하는 회사가 늘어난 것과는 대조적으로 어느 업계에서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야근을 당연시화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데요. 여기에는 에초 필요 이하의 최저치로 구성된 정규직 실무 비율에서 오는 경영상의 무리수가 있었고 소수의 정규직 그룹에서 낙오되고 싶어하지 않는 정규직의 불안감이 더해져 이러한 다분히 불합리하고 불법적인 부분들이 조직사회에서의 권력 불균형으로 인해 묵인되고 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윗선은 이들을 결코 자신들의 그룹으로 올라오도록 놔두지는 않겠죠. 에초 나눠먹기 싫어서 시작된 결과가 나눠먹기로 끝날리가 없으니까요. 10명분의 일을 1명에게 배분하는 무리수를 쓰면서도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심리적인 압박을 가해 자신들이 가진 몫을 제외한 많지 않은 인건비로 회사를 운영하는데 아무도 다치지 않을 리는 없습니다. 당연히 과로로 쓰러지고 사오정이 되는 것은 일하는 정규직들 뿐이겠죠.


지금 해야 할 일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정규직이 가진 권한과 권리를 향상시키는 동시에 정규직이 가진 권리를 줄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권리 평준화라고 불리는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글 마무리 부분에서 설명한 작금의 정부, 사측, 사회 분위기 상에서 바꿔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첫걸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선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격차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금융권의 차별 해소, 급여 수준 격차 등을 순차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정부, 사측, 근로자 모두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제시할 시간도 여지도 많지 않을 텐데요. 우선 정부부터 단지 수치적 취업율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소인배적 생각에서 벗어나 일자리의 질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국가가 쥐고 있는 금융제도부터 적절히 손봐주는 서포트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실의 대부분은 사실 그들이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았던 법인들과 고위정규직들이었을텐데 아직도 그들에게는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고 돈을 값는다는 증거도 없지만 값지 않는다는 증거도 없는 비정규직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현 금융계의 모순부터 바로잡는다면 그것이 첫 단추가 되어 맹목적인 정규직 러시로 인한 혼란도 잦아들고 젊은이들이 보다 냉정하게 자신의 미래를 계획할 여유를 가져다줄 것이며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전체의 경제적 건전성과 효율성을 가져다주는데에 지대한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특별기획 취업 - 정규직만 대접하는 더러운 세상 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09. 11. 23. 15:10
취업 시즌입니다. 정부 산하 공기업이나 대기업들의 공개채용을 대가 앞두고 대학 졸업을 앞둔 분들이나 그간 취업을 위해 토익 등을 갖추기 위해 1년 내내 고생하셨던 분들의 승부처가 다가오고 있는데요. 이쯤해서 접할 수 있는 뉴스들은 여전히 '대기업들은 예년에 비해 채용규모를 몇백 명 줄였는데 취업자수는 예년에 비해 오히려 몇백 명 늘어서 경쟁율은 사상 최악이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생각이 있다면 자신들도 쓰면서 '아 정말 내가 읽어도 지겹다'는 생각이 분명 들 텐데 여전히 탄탄한 밥줄 속에 기자들의 프로의식은 독자들의 '어이'와 함께 사라져가는 요즘입니다.
Job Fair Held For Veterans In Los Angeles

생각해보면 대기업에서도 각 부서별로 인원확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부서들은 공채가 아닌 수시채용이 활성화되어 있는데 어째서 아직도 사람들이 공개채용에 몰려드는지 의야스럽기는 합니다. 공개채용이 수시채용에 비해 아주 큰 메리트를 주는 것도 아닐텐데요. 마치 대학의 수시입학과 정시입학의 차이를 보듯, 사람들은 홀로 혹은 몇 안되는 사람에 섞이는 수시채용보다 수많은 인파속에 자신을 묻어가려는 공개채용에 목을 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사람들은 공기업과 대기업의 공채를 마치 판교 아파트 청약이나 로또를 보듯 일단 적은 확율이라도 높은 경쟁율을 뚫고자 발버둥치는 걸까요?

이유는 '수시채용'이 당초 정부가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르게 기업 나름의 자의적 해석을 통해 왜곡되고 있다는 점에 기인합니다. 분명 채용은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기업의 필요에 의해 실시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지금의 취업난을 이용이라도 하려는 듯 '우리는 별로 필요가 없는데 너희들이 너무 힘들어하니까 사회 환원 차원에서 너희를 구제하려는거다'라는 식의 고압적인 자세가 느껴지는 부분이 그것인데요. 이런 일들이 현대사회의 상식으로도, 상호 보완적 사고에도 전혀 맞지 않는 악습임에도 불구하고 취업난이 너무 심각해지고 서민경제가 지나치게 위축되는 탓에 이러한 것들이 은폐되고 용인되며 심지어는 고착화되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어 심히 우려스럽기만 합니다.
Job Seekers Attend Career Fair

우선 기업들의 '채용공고'를 보면 회사가 작던 크던 '연봉'을 기재하지 않는 회사가 상당히 많은데요. 회사쪽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봉을 공개하면 연봉이 적다고 아무도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라거나 '연봉만 보고 회사를 그대로 지나치는'취업자들이 많아서 부득이하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속사정이 있다고 합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회사'의 사정이지 그것이 정당한 방법은 아닙니다. 인터넷상에서 운영되는 '중고장터'만 봐도 '경매를 유도하는 게시물'은 바로 삭제와 함께 영구 제명 대상이죠. 결국 기업은 '자신들이 필요한 인력을 자신들이 부를 수 있는 최저한계선의 연봉을 제시하는 역경매'를 통해 인건비를 줄이고 싶었을 뿐이지 그것이 어떤 잘못된 사회 시스템으로 인해 기업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며. 그들이 말하는 근거 역시 희박합니다. 취업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연봉과 일의 강도'에 따른 정당한 급여 책정에 대해 무지할리도 없으며 하는 일에 비해 무조건 많이 달라는 철없는 취업자들은 극소수입니다. 연봉만 보고 회사의 속사정을 제대로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고요? 그러는 기업들은 취업자들의 '학력'과 '경력'말고 다른 속사정을 볼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요?

고용은 계약입니다. 고용 이후에는 어떤 회사 내 조직 체계를 따라야 하던지 관계없이 취업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기업의 사장'이건 '취업자'이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이득이 되는 쪽의 의견을 고취시켜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취업시장에서는 기업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기 위한 노력이 지나친 반면 취업자들은 지독한 취업난에 기가 눌려 제대로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할 생각조차 못한 채 그저 묵묵히 기업이 하자는 대로 따를 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을 기업은 최대한 이용해 채용시장에서 자신들의 권위를 점점 높여나가며 불합리한 부분을 고착화시키려는 반면 취업이 당장 급한 구직자들은 행여 기업에게 밑보일까봐 이렇다 말 한마디 못한 채 기업이 하자는 대로 끌려갈 뿐입니다.

이런 기업들의 불합리한 병폐를 잘 보여주는 부분 중 하나가 '면접'당시 면접 비용을 구직자들에게 지급하는 회사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면접과 채용은 '기업이 필요로'해서 진행하는 것이지 '구직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적선'의 개념이 아닙니다. 즉 채용 역시 기업의 이익 실현 활동 중 하나이며 면접 역시 어떤 형태로든 기업에게는 이익이 됩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면 모일수록 인재 파이는 넓어지고 더 좋은 인재를 뽑을 가능성이 높아지며 결과적으로 그 좋은 인재가 회사의 이익을 창출해주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이익활동에 있어 기업은 '아무런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분명 많은 구직자들이 지원하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 이익이 되는 부분이고 그것을 위해서 자신의 교통비와 시간을 할애해가며 회사를 직접 방문한 사람들에게 기업이 취한 이익만큼 어떤 보상도 해주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업들은 이에 대해 '최근 취업난이 너무 심해서 묻지마 지원도 심각한데다 그래서 채용과 관련된 심사기간이 배로 늘었고 인력도 많이 투입되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며 아무튼 생각없는 구직자들 때문에 힘듭니다'라는 부분을 기자들에게 적극 어필하는 한편 '기업이 구직자들 때문에 돈이 많이 들고 있음'을 들어 구직자로 하여금 '피의자 의식'을 갖도록 만듭니다. 즉 구직자들은 회사로 하여금 이미 손해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때문에 면접비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구직자가 많아져서 채용 비용이 많이 들건 적게 들건 그건 '회사 사정'이지 서류 전형을 통과해서 면접을 볼 '그들이 고르고 고른 제대로 된 구직자'들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기업들의 불평 대상이었던 구직자들은 대부분 서류전형에서 잘려나갔을텐데, 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제대로 된 구직자들에게 그 책임을 덮어씌워 정당하게 받을 권리마저 묵살하려 드는 것일까요?

면접에서 연봉을 물어보면 탈락의 지름길이라고 하죠? 회사 입장에서는 '건방지게 연봉부터 묻는 녀석은 싹수가 없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신차려야 할 쪽은 구직자가 아니라 기업입니다. 어째서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채용 과정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도 모자라 기업은 구직자의 모든 정보를 알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구직자는 회사로부터 취할 수 있는 자신과 가장 밀접한 관계의 급여조차 물어볼 권리조차 없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급여부터 묻는 녀석은 싹수가 노랗다고요? 상식 이하의 급여로 자신들의 배만 불리려는 기업의 싹수는 이미 뿌리까지 썩어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까?

'요즘 애들은 헝그리 정신이 없다'고들 하는데요. 누구를 위한 헝그리 정신입니까? 기업은 배 두드리면서 구직자들에게 '헝그리 정신'운운하며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당신들이 그토록 싫어해 마지않는 북쪽에 사는 장정구 파마하신 그분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여기는 대한민국이고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평등하게 누구나 자신이 가진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기업이 아무리 나이가 많고 돈이 많고 설령 고용자라고 하더라도 동등한 위치의 고용 계약상에서 부모조차 안하는 '건방짐'을 운운할 자격은 이 나라 어디에도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신차리십시오.

그리고 구직자 여러분들 힘들겠지만 어깨 펴세요. 그리고 당당하게 요구할 것은 요구할 수 있다는 '생각'만이라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만일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을 요구했다고 당신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저평가를 내리는 기업이 있다면 그건 기업이 미친거지 당신이 잘못된 게 아닙니다. 물론 지금 현실에서 생존권까지 걸어가며 요구하고 싶은 것을 바로 요구하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생각만큼은 '이게 정당한 게 아니다'고 인식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고착을 막고 세상을 조금씩이나마 변화시켜줄 것입니다. 향후 지금의 당신들이 이 사회의 주도권을 갖게 되었을 때 그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구직자들에게 대하는 기업의 몰지각한 풍토도 이윽고 뿌리뽑힐 날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모쪼록 '내가 너희 때 고생했으니 너희도 우리처럼 고생해야 공평하지 않겠냐'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이어받지 않기를 아울러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RushAm 2009. 9. 29. 13:25
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친구들끼리 싸움이 나거나 어느 한 쪽이 집단괴롭힘을 당했을 때 피해자 학생이 학교라는 조직 내 위협을 무릅쓰고 선생님에게 이 사실을 고하면 선생님의 대처는 크게 두 가지였다. 괴롭힌 가해자를 불러와 피해자 눈앞에서 체벌이나 구타를 하고는 갑자기 억지로 화애를 시키고 평화롭게 마무리시키는 것과, 일단 전후 사정을 듣고 (가해자를 따로 불러서 그쪽 이야기도 함께) 무자격 법조인이 되어 자기 가치관대로 판단하여 '니가 맞을 짓을 했다'는 식으로 무려 '교사'가 자의적 판단에 의해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음을 가르치는 어이없는 상황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교사에게 불만을 가진다 한들 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아직 학생의 권한으로 교사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교권침해'에 대한 우려로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라면 이유없는 전학 정도가 전부인데 전학생이 늘 환영받는 것도 아니고 타지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어려움과 더불어 '결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전학 자체가 해결책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중립적인 입장에서 '서포트'라는 역할은 그 자체가 사실 쉬운 역할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준비가 너무 소흘한데다가 에초 '인식'자체가 '중립'은 반드시 착한 결론이 나와야 한다고 '이솝우화'에서 새뇌시켜놓은 탓인지 언제나 '실리적'인 해결책보다는 '도덕적'인 해결책에 집착한 나머지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잦다. 문제는 이 도덕적인 부분이 사회적으로 거의 매장당하다시피 천대받고 있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이미 도덕적인 무엇도 실리적인 근본도 없이 그저 자신의 입장에서만 일을 판단하고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식의 이타적 개인주의가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까운 예로 '군대'문제를 보면 그 이기심이 극에 달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분명 자신이 그 군대라는 비효율의 극치인 시스템을 겪었음에도 그 부당함이 사라지기를 바라기보다는 '내가 마지막 희생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비율이 훨씬 많다. 분명 도덕적으로는 없어져야 할 것이 '나만 당하는 건 억울하다'는 식의 감성이 결부되어 '우리 모두 다 같이 똑같은 불행을 맛봐야 공평하다'라는 마이너스적 사고방식이 팽배해있는 것이다. 서스펜스 드라마에서 범인이 마지막에 되뇌이는 대사 '왜 너희들만 행복하게 웃는 거야? 세상은 너무 불공평해!'라는 지극히 사이코패스적인 정서가 생각 이상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 정부, 기업 그리고 취업 당사자들의 제각각의 문제점을 짚어보면서 느낀 것은 '이 문제는 절대 어느 한 쪽의 이해관계는 물론 삼자대면을 하더라도 끝이 안보일 문제가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것이다. 정부도, 기업도, 취업 당사자들도 이 문제를 접점에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오직 '자신들만의 입장'만을 되뇌이고 있어 이 문제의 구심점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기가 참 힘들어보이기 때문이다. 대체 누가 피해자이며 누가 가해자란 말인가? 이 문제는 대체 누가 희생을 하고 누가 이득을 봐야 해결이 된다는 것인가? 필자가 여기에서 어떤 결론을 낸다 한들 그 결론이 모든 사람들을 납득시키기에는 사실상 가능한 일일까?

그래서 4부에서는 같은 취업난을 겪고 있고 사회적인 시스템과 정치적 상황이 많이 닮아있는 '일본'의 사례를 소개해볼까 한다. 지금부터 보여드리는 것들은 '일본'이 이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있다라는 성공 사례가 아니라 (일본 역시 취업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현재진행형 상태) 어디까지나 반면교사로서 참고하고자 하는 취지일 뿐이므로 '일본'을 특별히 찬양하거나 일본의 사회 시스템이 무조건 옳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의 사례를 통해 적어도 1,2,3부를 읽으시면서 많은 분들이 의문을 가지셨으리라 생각한 '아니 그럼 대체 누가 잘못했다는 거야!'라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자신의 가치관에 의해 결론이 지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일본의 취업난은 기본적으로 '학력'중심의 사회가 아직 파괴되지 않고 건재함에 따른 '사회적 비효율성'이 가져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좋은 대학을 나오기만 하면 그 대학의 레벨이 평생 달고 다닐 레벨이 되어버리므로 능력에 관계없이 '나이'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는 시스템이 아직도 많은 기업에서 운영되고 있다보니 장수국가답게 정년이 길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에게 주어지는 연봉이 결국 1인당 약 3~4명의 취업을 제한시킬 만큼의 인건비 낭비를 가져오고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비중을 더 이상 늘리기 어렵게 되는 딜레마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짤리지 않기 위해' 나이가 들면 연봉이 깎이는 고용 유지 시스템은 이들에게 있어서는 있을 수가 없다. 일본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돈이 들어갈 곳이 많아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수반되는 비용을 책임져야만 하는 기업과 정부의 의무가 존재한다. 즉 젊을 때 박봉으로 나라와 기업에게 많은 이득을 안겨다 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오또나'세대들의 요구이며 기업이나 정부 역시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적절한 보상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사회에서는 젊은층 못지 않게 '오또나 세대'의 소비가 대단히 중요한데 일본 오리콘 챠트에서도 '엔카'의 판매량이 결코 젊은 음악에 뒤지지 않는 수준을 가지고 있고 디즈니랜드나 JR히가시니혼 등 소비, 서비스 업계는 물론 식품, 생활 업계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오또나'라는 상품명을 대거 채용하여 이들의 소비력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 '오또나'세대들의 경제력이 결과적으로는 일본의 '취업난'을 가중시킨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회사나 정부로부터 요구하고 있는 '나이에 걸맞는 높은 급여'에 대한 근거가 '가장'으로서 '자신은 물론 아내와 가족'들의 소비까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4인분의 인건비가 필요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들은 4인분의 급여를 한 사람에게 지급하다보니 인건비 대비 채용 수를 줄일 수밖에 없고 표면적인 취업난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함정이 있는데 결국 4인분의 인건비에 대한 근거가 자녀들이 이미 만으로 20살이 넘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오또나'세대들의 경제적인 안정으로 인한 여유자금이 자녀들의 경제적 여유로 이어져 20대들이 '경제적 위기감,절박함'을 갖지 못하는 '자아태만'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일본 젊은이들은 계층별로 차이는 있겟지만 결국 부모세대들로부터 자신이 소비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돈을 원조받을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에 특별히 취업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자격증이나 기술을 취득할 동기부여를 갖지 못함은 물론, 이전처럼 대학에 레벨에 맞는 에스컬레이션이 이루어지지 않는 실용적 사회로 급격한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적 요구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는 그저 젊기만한 '인간'일 뿐인 게층이 점점 늘고 있고 이로 인해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이나 시장 개척에 따른 인력 수요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인적 자원 수준이 이에 따라가지 못해 '인력난'을 겪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일본의 게임 IT업계에는 최근 '한국'이나 '중국'쪽 젊은이들이 대거 취업비자를 받고 '프로그래머'나 '플래시 애니메이터'등 국내에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분야의 인력들이 속속 취업되고 있으며 심한 곳은 거의 절반에 이르는 개발진들이 외국계 인력으로 구성될 만큼 일본에서는 이미 자국 젊은이들만으로는 세계흐름에 걸맞는 국가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극우신문들은 '외국계 인력이 자국 내 젊은이들의 취직 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식의 논평을 게재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기업들이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일부러 외국인을 뽑을 리가 없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일본'의 취업난은 시장경제에서 유럽식 복지분배정책을 혼재함에 따른 부작용으로 인해 탄생한 '니트'와 '히키코모리'같은 '취직 포기자'들의 양산이 불러왔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반드시 저같은 극단적인 표현에 속하는 계층이 아니더라도 결국 일본 젊은이들의 자기개발이나 삶에 대한 정산력의 평균치가 크게 높지 않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벌써 사회적으로 '쓰래기'로 분류되어 격리 차별되고 있을 이들 계층이지만 일본 정부와 기업은 결코 이들을 포기하려 들지 않는다. 지금은 경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외국인들을 쓰고 있지만 결국 지금처럼 '젊은이'들의 태만이 계속될경우 지금의 '오또나'세대처럼 사회를 주도하게 될 주도층의 국적이 대거 바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결국 자신들 위에 외국인이 군림하고 심한 경우 정계까지 외국인이 진출하는 것만큼은 막고 싶을 테니까, 결국 지금의 오또나 세대들이 은퇴하고 그 주도권을 지금의 젊은이들이 이어받아 일본이라는 나라의 혜택과 자긍심을 상속받아주어야만 하는데 에초 이들이 사회 자체에 합류되기를 거부하고 있으니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일본의 이른바 '하프'세대들을 대거 일본 국민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와(이전에는 일본 역시 하프 세대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는데, 이는 선진국 출신 하프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후진국 하프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기 아이돌 그룹 속에서도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하프를 찾기 어렵지 않다.) 1세대와는 달리 다소 국가 정체성이 모호할 수 있는 재일교포 2~3세들의 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보면 과거 경제성장기, 일시적으로 사회 주도권을 '자이니치'에게 빼앗겼던 '자이니치 컴플랙스'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일본 사회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일본 젊은이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니트나 히키코모리처럼 극도의 의지박약자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미 최저점 기준이 '상식의 바닥을 뚫고' 지나갈 만큼 낮아진 시점에서 사회 분위기 상 인정되는 '평균치'가 높을 이유가 없는 만큼 일본 젊은이들의 이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낮을 수밖에 없고 특히 타국의 젊은이들과 비교해볼 때 더욱 명확해진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 진작에 '자국의 미래'가 젊은 세대들에게 있음을 급격한 노령화 사회와 학벌위주의 파벌사회에서 가져온 패착을 겪으며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에, 하토야마 정권에 이르러 더욱 파격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출산 장려 정책과 우리나라 비정규직에 해당하는 파견직 사원 제도 단계적 철폐, 실질적 인력 수준을 높이기 위한 전문학교 (우리나라의 2년제 대학에 해당)의 권한 확대 및 지원 강화, 지금의 젊은 층들에게 좀 더 많은 혜택을 가져다 줄 '연금 제도 개편' 등 젊은 세대가 사회에 진출하는 데에 있어 정부가 할 수 있는 가능한 많은 유인책을 쏟아내고 있다. 재미있는 건 정부가 '취업 유인책'은 다수 쓰고 있으면서도 직접적인 '취업 촉진책'을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어떤 문제에 있어서 '정부'가 해야할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선을 분명하게 그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게 채용을 늘릴 것을 정부 입장에서 압박한다던지 무조건 정부 실적을 위해 실업율을 수치상으로 줄이기 위한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사실상 '일자리가 없어서'취업이 안되는 게 아닌 인력의 질적 문제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이미 약해질대로 약해진 젊은층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데에 있어 불안함을 느끼는 요소들 (비정규직 문제, 출산에 따른 자녀육성비용, 학력차별)을 없에주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즉 이들의 역할론은 '책임 회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문제 해결에 있어 주도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를 구분시켜 보다 효율적이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인 것이다.

기업은 기업대로 일본 젊은이들의 '능력'향상에 기대하기 보다는 선진국형 인재 육성 시스템을 속속 도입하여 '완성된 인재를 운용하는'게 아닌 '인재를 키우는'회사로 개념을 탈바꿈하는 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다른 능력은 없더라도 이른바 '야루키'라 불리우는 '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다 높게 평가하는 문화가 점차 자리잡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인재 채용 시스템 역시 기존의 서류전형 위주에서 벗어나 다양한 생각을 서술하도록 자체적인 '문항'을 제시하거나 기존의 주먹구구식 위압적인 면접 분위기를 탈피,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면접을 볼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매년 새롭게 기획하여 반영하고 그 결과를 분석 계승시키는 등 제한된 파이 안에서 보다 효율적인 인재 발굴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어차피 네가 다른 곳에서 무엇을 배웠던지 우리 회사에 들어오면 전혀 새로운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나가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네가 과거에 뭘 했는지보다는 지금부터 뭘 해나갈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는 게 이들이 새로운 인사 철학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학벌 위주와 파벌 중심의 시스템이 바뀌기까지는 워낙 새로운 것에 대한 변화가 느리기 진행되는 일본의 사회 시스템 상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기업들은 언젠가 세대교체가 완료되고 이러한 가치관이 뒤바뀔 것을 지금부터 하나 하나 천천히 준비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국가적으로 강제하는 최저임금 제도를 마련하지 않고 따로 위원회를 만들어 그 지역의 물가와 지역 세금 등을 종합해 어디까지나 경제 지표의 일환으로서 공표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처럼 전국적으로 일원화시키는 것이 아닌 지역별로 차등화된 최저임금이 존재한다. 그러나 일본에서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을 찾기도 이에 대한 불만을 갖는 것을 보기 힘들다. 일본의 물가를 생각해볼 때 물론 10년간의 장기불황을 거치면서 전혀 오르지 않은 시급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가 다니고 있는 대학의 한학기 등록금은 약 40만엔 정도인데 일본에서 매일 8시간씩 주 5일 근무로 받을 수 있는 평균적인 아르바이트 월 수입이 22만엔 정도이므로 흔히 도쿄 도심지역에서 혼자 살 때 드는 월세 5만엔과 식비 등을 생각해 볼 때 조금만신경을 쓰면 매월 10만엔 가량은 저축이 가능하다. 물론 일본과 한국과의 환율과 물가 차이를 감안해야겠지만 일본의 높은 물가는 대부분 특정 산업 (외식업과 택시 등) 즉 삶에 있어 '대안'이 있는 부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관리에 따라 체감물가는 훨씬 낮아질 수도 있는 시스템이므로 물가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즉 길어도 한 학기와 방학기간동안 투잡 쓰리잡처럼 무리를 하지 않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등록금을 내 힘으로 해결하는 게 결코 어렵지 않다.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일본은 이처럼 '젊은 층이' 부모의 도움 없이 사회에 진출할 수 있고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책임지는 것이 가능한 사회라는 것이 한국과 다른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최저임금 제도 자체보다는 아르바이트 임금 저하의 원인이 되는 부실한 자영업은 즉각 퇴출될 수 있는 정부측의 강력한 규제시스템과 더불어 '수고'에 따른 지불이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사회적 인식이 있기에 시급에 대한 정부의 강제안이 없더라도 자연스럽게 유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전문학교 등 이른바 이름값이 없는 학교들의 노력으로 기업들의 '학벌'에 대한 인식이 엷어지고 있다는 점과 정부가 주도적으로 지방의 특성화된 대학을 집중 육성하여 도쿄 중심의 명문대 권한을 전국으로 분산시키려는 노력을 오래 전부터 거듭해오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한국에서는 한국 내부의 시스템을 일본에 그대로 투영하는 잘못된 관점으로 인해 '일본으로 유학을 가려는 사람'이나 '유학을 다녀온 사람을 채용하는 기업'이나 모두 한결같이 '도쿄대', '와세다대', ' 케이오대' 등 명문 대학들만을 선호하고 그 이외에는 지잡대로 치부하는 성향이 짙은데 일본 내부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와세다나 게이오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지 않고 콧대만 높은 나머지 시대에 역행하고 있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놈아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처럼 서울대라면 듣보잡학과마저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아닌 철저하게 학과별로 특화된 명문들이 전국 각지에 존재한다.

생물학계 관련 논문 수에서는 도쿄대가 따라올 수 없는 위상을 확보한 큐슈 대학과 황우석 박사가 관련이 있어 잘 알려진 홋카이도 대학, 그리고 도쿄에 있지만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아 지잡대로 치부되고 있는 히토츠바시 대학은 에초 도쿄대 경영학부가 독립하여 만들어진 세계적인 권위의 경영 대학이다. 당연하겠지만 일본 내 해당 분야에서는 이들 대학들이 와세다나 게이오같은 명문 대학의 그것을 한참 앞지르고 있기 때문에 해당 기업 역시 이를 충분히 인정하고 있으며 위 사례 이외에도 전국 각지에 각 분야별로 도쿄 인 대학들 못지 않은 명성을 날리고 있는 지방대학들이 즐비하다. 이로 인해 도쿄의 인구는 1천 400만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편이지만 전체 인구 1억 4천만에 비하면 10%안팎에 불과하다. 도쿄와 상당히 멀리 떨어진 홋카이도나 큐슈 지방의 인구는 평균 500만을 넘고 있고 각 현(우리나라의 '도'에 해당하는 행정단위) 별로 인구 200만 이상의 대규모 도시를 인접 도시 포함 최소 2~3개 이상 보유하고 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전체 인구의 30%가 서울에 몰려 있는 비중적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이런 저런 사례들을 살펴보았지만 결국 이들이 공통적으로 취하는 키워드는 한 가지, '결국 이 사회는 사람이 만들어가고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이므로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인식 하에 자연스럽게 파생된 부분들이라는 것이다. '인간'을 중시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는 같은 시작점에서 각도가 조금이라도 어긋나게 되면 결국 엄청나게 멀어지게 되는 직선처럼 작은 시작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인간을 중시하지 않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정부, 기업,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나가는 사회는 결국 서로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서로 낮은 곳을 향해 끌어내리고 밟아 떨어뜨리기만을 반복하게 될 뿐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사회, 국가는 결국 내부에서의 싸움이 아닌 전 세계 국가 경쟁력을 동반 하락시키는 나비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결코 단순한 집안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젊은이들을 보고 있으면 드는 생각은 한 가지 '아 저들은 아마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사람 취급도 못받을 녀석들이겠구나'라는 것 뿐이다. 실제로 그렇다 우리나라는 히키코모리를 구제할 생각보다는 사회로부터 낙오지로 낙인찍고 격리하는 데만 열심히니까, 책임은 그들 가족에게만 있을 뿐 나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에초 정부조차 사회의 패배자들에게는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데, 사회가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려 들까? 그런데 일본은 '자국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들이 어떻게든 사회로 나와 국가의 주축이 되어주도록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춰주는 데에 많은 예산을 할애하고 있다. 국가는 '자국민'을 무조건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집단이니까, 어느 누구는 좀 성공하고 돈도 좀 벌었고 사회에 적응도 잘 했고 세금도 그만큼 내주니까 정부로서 인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어느 누구는 '노력이 부족해' 사회에 진출하지 못하고 빈곤층으로 살아가고 있으면 이들은 그저 패배자로 정부조차 '자랑스러운 자국민'이기보다는 그저 '사회적 패배자'로만 대우해주고 있으니 사회적 인식이 바뀔리가 만무하지 않겠는가 결국 '윗물이 썩은 탓'이다.

일어나 있는 사람을 목말 태워주는 사회가 아니라 쓰러진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워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얼마나 많이 줄 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국가와 그 국가를 이루는 사회적 가치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인생 누구나 운이 좋아서 한방에 성공하는 운명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패배 후 재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나도 좁다. 다운 당했을 때 일어서도록 응원은 커녕 그냥 쓰러진 김에 그대로 죽으라는 듯 위에서 찍어 누르는 듯한 느낌마저 드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카드빚 남발해서 신용불량자 된 사람의 부채를 탕감해주자는 게 아니라,(일본도 개인의 빚은 국가가 보증을 대신해줄 뿐 결국 평생을 걸쳐 수입의 일정 부분 이상을 채무 탕감을 위해 써야 한다) 신용불량자가 되면 채용조차 되지 않고 아예 패배자로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결국 한강다리에 오르고 팔목을 긋고 승합차에 연탄불을 피우게 만들도록 사지로 몰지 말라는 이야기다. 수능에 실패한 학생이 학교에서 뛰어내리고, 신입사원 제한 연령을 넘어선 구직자가 강물에 투신하고, 사오정 정리 해고된 실직 가장이 서울역 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현실을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그들에게 '재기'대신 '끝'이라는 절망감을 안겨준 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의 일이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일본 젊은이들에 비하면 우리나라 젊은이들 정말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노력이 정말 대단하다. 비록 그 노력이 다소 빗나가고는 있지만 적어도 삶에 대한 의지와 정신력, 자기 개발에 대한 열정만큼은 어느 나라 못지 않다. 그런데 그런 젊은이들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의 정부와 사회는 어느 나라보다 뛰어난 젊음의 에너지가 넘처흐르는 이들을 독려하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들보다 위에 있는 돈을 숭배하도록 전도하고 있다. 일본 정부나 기업에 비한다면 행복해서 각기춤이라도 추고 있어야 할 이들이 결국 행복에 겨운 나머지 본연의 역할도 잊고 머릿 속에 자신들의 욕심만이 가득한 채 젊은이들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앞서 예를 든 '선생님' 처럼 우리 의지대로 정부와 사회를 바꿀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돈 이상으로 가장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다른 나라에 가서 그와 동등한 가치를 부여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빠를 것이다. 어딜 가든 '자국민'이상으로 이방인을 우대하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맞을 짓을 햇건 뭘 했건 어떤 이유로든 폭력이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사회에서 패배했다는 이유로 재도전할 기회를 박탈당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4부작 비정규직, 88만원 세대, 청년실신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의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여러분에게 제시하고 싶은 키워드는 'challenge' 다. 언제든 도전할 수 있는 국가, 사회, 그리고 스스로가 도전에 인색하지 않은 인생을 만들어 가길 희망한다. 물론 사회 역시 사회 초년생의 첫 도전이든 한번 쓰러졌던 사람의 리벤지이건 이를 색안경 없이 수용해주는 사회가 되어주어야 하며 국가 역시 이미 사회에 진출해서 동력으로 활동중인 사람 못지 않게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다시금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재도전할 기회를 줄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수능을 볼 때도 20대에 입사 시험을 볼 때에도 고 3이라는 신분, 30대를 목전에 둔 '신입사원 연령 제한'이라는 칼날에 가로막혀 '다음은 없다'는 절박함 속에 매회 모든 것을 건다. 자신의 꿈에 먼저 도전한 다음에 생각해봐도 좋을 사람들까지 '나중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할 것'을 걱정한 나머지 젊은 시절을 모두 취업 활동에 바친다. 지금의 취업난은 절박함을 강요당한 이들의 누구도 원치 않은 필요 이상의 공급이 빚어낸 참극이다.

이 척박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88만원 세대 젊은이들이여 힘들겠지만 그래도 도전해보자, 그리고 언제든 그 도전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회를 만들자, 그리고 그 도전을 응원하고 좌절하지 않도록 북돋아주는 정부가 되어주길 기대해보자,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지 않은가? 대한민국이지 않은가? 우리가 우리를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여러분은 일본을 비롯한 그 어느 나라 젊은이들보다 훨씬 열정적이고 뜨거운 젊음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까...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대들의 식지 않는 젊음이 아름답다!
힘내라 대한민국 젊은이들이여~!

- 끝 -

비정규직, 88만원 세대, 청년실신, 취업난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목차

1부 (정부) 편
2부 (기업) 편
3부 (학생) 편
4부 (일본)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