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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글에 일본의 아르바이트 시급에 대한 부분을 언급했습니다만, 실제로 우리나라의 아르바이트 시급은 최근 몇년간 조금씩 오르면서 간신히 최저생계수준에 도달했을 뿐 여전히 '살만한' 수준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최저임금제도를 손보는 분들의 문제일수도 있고 이를 잘 지키지 않는 중소자영업자들의 문제일수도 있습니다만, 어째서 이게 본격적으로 표면화되어 해결책이 모색되지 않는지는 좀 다른 관점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4부작 88만원 세대에 대한 책임 시리즈에서 기업과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충분히 언급했기 때문에 이번 연재물에서는 '왜 아르바이트 시급이 현실화되지 않고 지켜지지 않는지'에 대한 보다 다른 관점에서 본 문제점과 해결 방안'에 대해 몇 가지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의 아르바이트 수요 증가

근 10여년간 아이돌 가수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고 의류나 휴대폰,게임기 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상품들이 범람하면서 청소년들이 주요 소비 계층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이런 사정 뒤에는 충분한 용돈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어떻게든 그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용돈 이상의 돈이 필요하게 되는 이른바 청소년 빈곤 현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부모로부터 용돈을 더 이상 받지 못할 경우 급식비를 횡령하거나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하지만 대부분 일시적인 방편에 그치는데요. 그래서 이들은 결국 적지 않은 돈을 정기적으로 손에 쥘 수 있는 아르바이트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노동법이 이들 청소년에 대해 매우 애매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18세 미만의 아르바이트를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부모 동의서라는 제약을 통해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원래는 허용하지 않지만 부모 동의서를 받으면 제한적으로 허용할 수도 있다'는 예외조항으로서 이들의 아르바이트를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말해 부칙 예외조항이니만큼 기본적으로 '금지'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허용'하에서 적용받는 모든 노동법의 사각지대가 될 수 밖에 없게 되는데요. 대부분의 자영업들이 자유업종으로 등록없이 자율신고제로 운영되고 종업원들의 노동권 침해 실태조사 및 처벌 역시 공무원들의 현장 단속에만 전적으로 의지하다보니 제대로 실태파악이 될 리가 없습니다. 즉 업주는 종업원 수가 몇 명인지 실제로 지금 얼마만큼의 임금을 지불하고 있는지 국가에 정확하게 의무적으로 보고할 필요가 없고 국가 역시 이를 거짓으로 적어냈는지를 확실히 파악할만한 어떤 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죠.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부모님들의 허락을 제대로 받고 부모동의서를 확실하게 제출해서 서로 두 장씩 사본을 교환해 근로계약서를 보유하는 절차를 정확하게 밟으면 좋겠습니다만, 일부 청소년들의 경우 부모동의서를 얻지 못하는 경우 부모동의서를 위조하거나 아예 가지고 있지 않은 채로 면접에 나서기도 하는데요. 이런 경우 채용까지의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철저하게 일방적인 약자의 자세로 근로계약을 맺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대부분 근로계약에 대한 상식을 잘 모르는데다 이미 자신이 위조 혹은 미첨부 등 현행법 위반의 신분에서 채용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치 '불법채류자'와 다름없을정도의 불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유리한 상황에서 업주가 이들에게 제대로 된 임금을 제시할 리는 만무합니다만, 이 상황에서 청소년들은 어른과의 협상이라는 상황적 제약과 자신이 법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받아준다는 호의에 대한 가치판단, 자신들의 소비 목표에 특별히 모자라지 않는 금액이라는 판단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정말 말도 안되는 계약조건이라 할지라도 채용에 응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소년소녀가장이 아닌 이상 이들이 필요로 하는 자금은 대부분 일시적인 금액 즉 어떤 물건을 사기 위한 정도가 대부분이며 그 금액 역시 많아야 몇십만원 수준을 초과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불리한 시급 조건을 수용하는 배경에는 생계에 대한 절박함이나 등록금이나 공과금 등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대학생들이나 기타 취업 준비생과는 그 사정의 절박함에서 상당 부분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죠. 물론 이들의 사정도 나름 절박한 건 사실인지라 아르바이트에 대한 맹목적인 부분은 대학생들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낮은 시급도 기꺼이 수용할 자세가 되어있는 이들을 업주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지금의 사정에서는 손해 볼 게 없고 법적인 위협도 크지 않기 때문에 채용에도 소극적이지 않게 되는 것이죠. 당연하겠지만 청소년들의 아르바이트 수요는 계속 늘고 있고 이들이 제한된 아르바이트 일자리에서 대학생들과 공급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특별히 중 고등학생들 써도 별 차이 없는 일의 경우 중고등학생을 채용하는 사례가 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죠.

낮은 시급에도 기꺼히 일하겠다고 나서는 계층들의 대규모 유입, 이들을 채옹해서 낮은 시급을 주는 업주를 제지할 제도장치의 미비 등은 결국 공급 과잉으로 인한 단가 하락을 불러오게 됩니다. 더 낮은 시급을 받아도 일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널려있는 이상 제대로 된 임금을 요구하는 사람을 채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아르바이트에 대한 지나친 의존

부모님 세대가 대학교를 다닐 때에 아르바이트는 대부분 지금의 중. 고등학생들의 케이스와 별반 다를게 없었습니다. 용돈으로 해결하기 힘들지만 비싸봐야 지금 가치로 몇십만원 정도의 물건을 살 경우라든지 대부분 일시적인 이유에 그쳤죠. 그런데 지금은 그 이유가 상당히 복잡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생활비 정도는 애교에 가깝고 부모님들에게 부담이 되기 싫어서 학교 등록금을 자신이 일부 혹은 전액을 책임지기 위한 이유라든지, 몇백만원 심하게는 몇천만원에 가까운 자동차, 명품, 유흥비, 성형수술 등을 이유로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드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문제는 이런 이유들이 과연 아르바이트로 해결 가능한 이유들이냐는 데에 있습니다.

이렇듯 아르바이트로 얻어야 할 금액 자체가 어마어마하다보니 대부분 한 가지 아르바이트에 그치지 않고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데요. 한 사람이 두 세가지 아르바이트 자리를 차지하게 되다보니 아르바이트 일자리 공급이 부족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부분의 이유들이 일시적인 자금 확보가 아닌 정기적인 납부를 위한 장기계획인 경우가 대부분이다보니 아르바이트답지 않은 장기간 근무가 일반화되고있는 것도 공급 부족을 부추기고 있죠. 명품이나 성형수술 역시 1회성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유행이나 유지 보수 등의 이유로 지속적인 자금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보니 등록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로 장기근무나 여러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와중에 업주들이 시급 인상에 적극적이 될 이유가 없는 것이죠.

공급 과잉은 디플레를 부른다.

등록금이 사립대 기준 연 1천만원 수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만 대학 진학율은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혹자는 대학에 들어가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는게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인간의 덕목인것마냥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인생을 체계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 치고 대학 선택은 지극히 타이틀적이고 주관성이 결여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자신의 재능이나 추구하는 미래청사진조차 가지지 않은 채 앞으로 유망하고 취업 잘되는 학과를 선택하거나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학과를 선택한다는 명목으로 입학에만 사교육업게에 많게는 수천만원을 갖다바치고 대학 입학 후에는 또 수천만원 가량의 돈으로 재단의 배를 불려주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죠. 명품이나 성형수술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안하면 시대에 뒤떨어지고 낙오자가 된다는 이야기를 하며 적지 않은 돈을 의사의 호주머니에 찔러줄 준비를 하고 있죠.

택시에는 4명밖에 탈 수 없는데 너도나도 버스나 지하철을 타려고 하지 않고 택시만을 타길 원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죠. 그러면 택시는 대수를 늘리거나 해야 하는데 택시 대수를 늘리면 수입이 줄어드니 택시업계는 대수를 조절하고 가격을 쉽게 쉽게 올리게 될 것입니다. 택시 업계는 택시의 승차감이 어떻다느니 택시를 타는 사람은 특별해진다느니 과장된 광고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택시를 타려 하게되죠. 타본 사람들은 생각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택시를 타고 있으니 광고처럼 그렇게 특별한 기분을 느끼지도 못하고 인생이 더 새로워졌다는 실감도 안나며 주변에 누구나 다들 한번씩은 타봤으니 어디가서 자랑도 못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차도 많이 막히고 버스도 전용차로 덕에 빨라져서 도착시간이 별 차이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택하는 것은 몇 안남은 '타보지 않은 사람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식으로 자신들의 무의미한 선택을 정당화하는 마이너스적 사고방식입니다.

그렇게 만든 사회적 분위기를 탓하기 이전에 그 사회 구성원인 자신들이 얼마나 주관이 없이 흘러가는 대로 인생을 설계해왔는지부터 생각해보는게 어떨지 싶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보이는 것에 얼마나 자신이 없었으면 대학, 성형수술, 명품 등에 자신의 가치판단을 의존할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다들 하는 것이기 때문에 즉 '표준'이나 '기초 조건'이 될 정도로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할수도 있겠습니다만, 좀 더 원론적으로 생각해보면 기초 조건이 될 이유가 전혀 없는 것들을 사회적으로 기초 조건으로 만들어낸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사회 구성원 자신들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힘듭니다. 자신의 주관 없이 대세에 자신의 주관을 맡기는 식의 무책임성이 지금의 어려움을 자초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작은 그룹부터 변해나가지 않으면 큰 틀에서의 해결책은 영영 보기 어려울지도 모르죠.


변하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변해주세요.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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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이 됐느냐 안 됐느냐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게 그 취업의 '질'이라고 합니다. 우선 어떤 회사에 들어갔는지가 중요하고 어떤 조건으로 계약되었는지를 다음으로 중요시하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취업의 형태를 묻습니다. '정규직'이냐 아니냐인것이죠. 월급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익히 알려진것처럼 회사 내부에서도 취급받는 수준 차이가 극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정규직에 목을 메고 무조건 정규직이라는 신분을 얻기 위해 이른바 취업 재수도 마다하지 않는데요.


이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만 할까요? 정말 노동계의 요구대로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만 해결될까요? 무려 잡셰어라는 말까지 나오는 마당에 코스트 증가가 확연히 보이는 정규직의 양산은 역으로 회사의 부실과 인재 순환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가져올 것이 자명합니다. 단순히 정규직을 양산하는 단계에서 그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자 그럼 해결책은 어떻게 찾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우선 젊은이들이 반드시 취업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봅시다. 첫 번째는 역시 금전적인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은 파트타임 즉 아르바이트에서 지급받을 수 있는 시간 대비 페이가 너무나도 저렴합니다. 이른바 취업을 했을 때의 시간 대비 노동시간을 생각하면 형편없는 수준의 급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스스로 모든 생활고를 감당할 만큼의 금액을 번다는 것이 에초 불가능합니다. 일례로 일본의 예를 들어보면 도쿄 지역 보통 수준의 파트 타임 시급 1000엔을 1일 8시간 주 5일 월 22일 근무로 계산해보면 17만 6천엔이 나오는데요 이는 일본 대졸 취업자들의 평균 희망 월급 20만엔 정도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며 물가를 감안해봐도 혼자 사는데에 지장을 받을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정규직 근로자와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근로자의 임금 격차가 평균 더블 스코어 심하게는 트리플 스코어 이상으로 차이가 나고 있고 여기에 대한민국의 물가 수준이 '정규직 근로자'조차 간신히 인간다운 삶이 턱걸이로 가능한 수준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현 경제 수준에 맞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두 번째는 이 글을 쓰게 만든 계기, 즉 사회적인 대우입니다. 여기에는 자존심 같은 심리적인 문제도 작용합니다만, 일단 그보다 더 큰 범주, 즉 그 자존심을 상하게 만드는 사회적인 시스템을 지적해볼까 하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금융 서비스'를 받는데에 너무나도 큰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부분입니다. 부모 품에서 떠나 혼자 독립해서 살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거주지인데 현 대한민국의 시스템은 보증금을 반드시 걸지 않으면 안되게끔 만들어져 있지요. 그 보증금은 한두달 일해서는 절대 모아지지 않는 수준의 금액이기 때문에 대부분 대출을 알아보게 되는데 여기에서 은행을 포함한 금율권이 이들에게 보이는 태도가 문제가 됩니다. 즉 당신은 수입이 일정하지 않고 일자리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이 돈을 회수할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대출을 거부당하기 일쑤죠.
          Allianz Feature


재미있는 것은 이들 금융계가 파트 타이머와 비정규직자들에게 아예 창구를 닫아놓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당신의 경제 능력을 믿을 수 없으니 대출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며 대출을 거부했던 금융권이지만 더 비싼 이자를 지불해야 하는 고수익성 상품은 아주 자연스럽게 문을 열어놓고 있죠. 똑같이 월 100만원을 버는 사람이 10만원을 빌릴 때 정규직은 값을 가능성이 높아서 한 자릿수 이자 상품을 구매할수 있고 비정규직은 두 자릿수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는 부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경제 능력을 믿을 수 없다면 이자를 두 배 준다고 해도 빌려주지 않아야 할 텐데 이들은 높은 이자를 매긴 상품은 비정규직에게도 아무 거리낌없이 팔고 있다는 점이 말입니다.

에초 논리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정규직이라고 해서 돈 관리를 체계적으로 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카드회사들은 매달 월급의 세 배 이상의 한도를 쥐어주고 대출은 연봉의 몇 배에 달하는 금액을 비교적 저렴한 금리에 제공합니다. 그들이 빚을 값지 못했을때 회사가 대신 지급보증을 해주는 것도 아닐텐데 단지 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조금 지나치리만큼 금율 제한을 일시에 풀어버립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정보라고는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영수증 정도가 전부일텐데 무슨 배짱으로 타이틀 하나에 사람을 이다지도 철썩같이 믿어줄 수가 있는지 혀가 내둘러질 정도죠.

금융계로부터 만들어지는 근거부족의 차별대우가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카스트, 그리고 그 카스트가 사회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쳐 생활 수준의 격차를 야기합니다. 더 싼 이자, 더 좋은 금융대우를 받은 정규직 취업자들은 그만큼 지출이 줄어 더 많은 돈을 모아 생활 수준을 조금씩 높여가는 것이 가능하지만 비정규직은 더 적은 소득에 더 높은 이자를 지불하고 불리한 금융대우를 받아 돈을 모으거나 생활 수준을 개선시킬 여력 자체를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죠. 당연히 사회적 커뮤니티상에서의 존재적 가치도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런 악순환은 반복될수록 격차를 벌리고 더욱 깊어질 뿐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모로부터 독립해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젊은이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한 곳은 지금의 취업난 속에 일단 비정규직으로 취업해 많지 않은 수입을 얻어가며 보증금을 빌리는 대신 내는 높은 이자와 적지 않은 월세을 제외한 금액으로 근근히 먹고살아가며 다른 기회를 노리던지 아니면 언제 될지도 모를 정규직 취업이라는 좁은 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배를 주려가며 보장없는 시간싸움을 계속할것인가를 말입니다.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이러한 암묵적 신분 차이로 인해 비정규직 계층에서는 일관되게 정규직이라는 타이틀 자체에 연연하고 집착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되고 이것이 사측과의 마찰을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 비정규직은 내외적으로 지나치게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왔기 때문에 정규직이라는 타이틀이 마치 수험생들의 서울대처럼 하나의 탈출구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되어버린 것이죠. 실제로도 마치 서울대생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안정적 사회진심이 되던 것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에게 있어 정규직이 가진 그것은 선망의 대상이 될 만큼 막강하기 때문이죠.

다만 이 상태로는 접점 자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문제 자체가 비정규직의 사회적 불리함보다는 정규직이 지나치게 막강한 사회적 권리를 누리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사실 정규직은 발빠른 변화를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 그닥 적합한 제도가 아닙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해고를 할 수 없도록 법적인 보호를 받고 있고 월급은 능력제가 아닌 경력제로 업무 능력에 관계없이 나이와 부양 가족, 직급에 의해 결정됩니다. 사오정이라는 말도 생겨납니다만 사실상 명예퇴직에 지급하는 금액 역시 미래에 지급할 연봉을 미리 지급하는 수준으로 회사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며 눈에 보이는 월급 이외에도 한 사람을 고용하고 운용하는 데에 있어 공동으로 책임져야 하는 의료보험 등의 국가 세금, 1인당 필요한 기자재, 공간 대비 임대료 등 적지 않은 코스트를 고정 비용으로 지출해야 하죠. 지출은 많지만 현대 사회에서 회사의 성장 속도를 받쳐주기에는 고용 제도 자체가 상당히 전근대적이고 낡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규직이라는 안정감이 가져다주는 자기계발, 업무능력 향상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회사 조직 전체의 업무 효율성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니까요.


그런데 이런 문제투성이 정규직을 왜 없에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 없에는 것보다 어째서 비정규직과의 격차를 실감할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부여하는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복불복 정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미 정규직의 범주에 들어와 있고 그 정규직 내에서 어느 정도 카스트를 높여놓은 사람들이 적어도 자신이 남은 경력, 아니 남은 여생동안에는 지금 앉아 있는 상위 권력의 달콤함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안락한 보호장치를 만들어놓고 있기 때문이죠. 말년 병장이 제대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나 애써 1위까지 올려놓은 캐릭이 있는 서버가 초기화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진배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들은 단지 놀고 먹지만은 않습니다. 자신들이 권력을 누릴 수 있는 돈을 벌어줄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일해줄 사람도 필요하고 그 일을 해주는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해줄 수 있는 실무진들도 충분히 필요하니까요. 다만 그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하면 자신들이 가진 신분에 인플레가 생겨 가치가 떨어지는데다가 자신들이 먹고 있는 것을 줄이지 않는 한 회사가 부실해질 것이 자명할테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법적인 허용치 내에서 비정규직을 다수 뽑고 최소한의 실무진으로 구성된 정규직을 포진하는 식의 인력 구성을 점차 늘려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TO를 비정규직으로 잔뜩 만들어놔도 조건이 워낙 열악하다보니 사람들이 좀처럼 선호하지 않게 되자, 기업들은 설비 투자 자금을 묶어두고 해외 자본 투자를 통한 이른바 '고용없는 성장'을 통해 몇 년간 비정규직을 포함한 전체 TO자체를 현저하게 떨어뜨립니다. 당연히 그 해에 졸업하는 대졸자들의 실업율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게 몇 년째 지속되게 되면 이른바 취업 재수생, 삼수생 등이 생겨나게 되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취업난'이 완성되는 것이죠. 물론 1년간의 공채 공백을 견디기 힘든 경제 사정을 가진 대다수 사회 초년생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비정규직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이렇듯 자연스럽게 사측이 의도한 대로 일자리의 질적 가치는 급락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걸 정부 도움 없이 기업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되긴 힘들겠죠.

그렇다고 정규직이 마냥 태평하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특근보조비를 폐지하는 회사가 늘어난 것과는 대조적으로 어느 업계에서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야근을 당연시화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데요. 여기에는 에초 필요 이하의 최저치로 구성된 정규직 실무 비율에서 오는 경영상의 무리수가 있었고 소수의 정규직 그룹에서 낙오되고 싶어하지 않는 정규직의 불안감이 더해져 이러한 다분히 불합리하고 불법적인 부분들이 조직사회에서의 권력 불균형으로 인해 묵인되고 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윗선은 이들을 결코 자신들의 그룹으로 올라오도록 놔두지는 않겠죠. 에초 나눠먹기 싫어서 시작된 결과가 나눠먹기로 끝날리가 없으니까요. 10명분의 일을 1명에게 배분하는 무리수를 쓰면서도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심리적인 압박을 가해 자신들이 가진 몫을 제외한 많지 않은 인건비로 회사를 운영하는데 아무도 다치지 않을 리는 없습니다. 당연히 과로로 쓰러지고 사오정이 되는 것은 일하는 정규직들 뿐이겠죠.


지금 해야 할 일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정규직이 가진 권한과 권리를 향상시키는 동시에 정규직이 가진 권리를 줄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권리 평준화라고 불리는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글 마무리 부분에서 설명한 작금의 정부, 사측, 사회 분위기 상에서 바꿔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첫걸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선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격차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금융권의 차별 해소, 급여 수준 격차 등을 순차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정부, 사측, 근로자 모두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제시할 시간도 여지도 많지 않을 텐데요. 우선 정부부터 단지 수치적 취업율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소인배적 생각에서 벗어나 일자리의 질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국가가 쥐고 있는 금융제도부터 적절히 손봐주는 서포트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실의 대부분은 사실 그들이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았던 법인들과 고위정규직들이었을텐데 아직도 그들에게는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고 돈을 값는다는 증거도 없지만 값지 않는다는 증거도 없는 비정규직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현 금융계의 모순부터 바로잡는다면 그것이 첫 단추가 되어 맹목적인 정규직 러시로 인한 혼란도 잦아들고 젊은이들이 보다 냉정하게 자신의 미래를 계획할 여유를 가져다줄 것이며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전체의 경제적 건전성과 효율성을 가져다주는데에 지대한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특별기획 취업 - 정규직만 대접하는 더러운 세상 편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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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시즌입니다. 정부 산하 공기업이나 대기업들의 공개채용을 대가 앞두고 대학 졸업을 앞둔 분들이나 그간 취업을 위해 토익 등을 갖추기 위해 1년 내내 고생하셨던 분들의 승부처가 다가오고 있는데요. 이쯤해서 접할 수 있는 뉴스들은 여전히 '대기업들은 예년에 비해 채용규모를 몇백 명 줄였는데 취업자수는 예년에 비해 오히려 몇백 명 늘어서 경쟁율은 사상 최악이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생각이 있다면 자신들도 쓰면서 '아 정말 내가 읽어도 지겹다'는 생각이 분명 들 텐데 여전히 탄탄한 밥줄 속에 기자들의 프로의식은 독자들의 '어이'와 함께 사라져가는 요즘입니다.
Job Fair Held For Veterans In Los Angeles

생각해보면 대기업에서도 각 부서별로 인원확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부서들은 공채가 아닌 수시채용이 활성화되어 있는데 어째서 아직도 사람들이 공개채용에 몰려드는지 의야스럽기는 합니다. 공개채용이 수시채용에 비해 아주 큰 메리트를 주는 것도 아닐텐데요. 마치 대학의 수시입학과 정시입학의 차이를 보듯, 사람들은 홀로 혹은 몇 안되는 사람에 섞이는 수시채용보다 수많은 인파속에 자신을 묻어가려는 공개채용에 목을 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사람들은 공기업과 대기업의 공채를 마치 판교 아파트 청약이나 로또를 보듯 일단 적은 확율이라도 높은 경쟁율을 뚫고자 발버둥치는 걸까요?

이유는 '수시채용'이 당초 정부가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르게 기업 나름의 자의적 해석을 통해 왜곡되고 있다는 점에 기인합니다. 분명 채용은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기업의 필요에 의해 실시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지금의 취업난을 이용이라도 하려는 듯 '우리는 별로 필요가 없는데 너희들이 너무 힘들어하니까 사회 환원 차원에서 너희를 구제하려는거다'라는 식의 고압적인 자세가 느껴지는 부분이 그것인데요. 이런 일들이 현대사회의 상식으로도, 상호 보완적 사고에도 전혀 맞지 않는 악습임에도 불구하고 취업난이 너무 심각해지고 서민경제가 지나치게 위축되는 탓에 이러한 것들이 은폐되고 용인되며 심지어는 고착화되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어 심히 우려스럽기만 합니다.
Job Seekers Attend Career Fair

우선 기업들의 '채용공고'를 보면 회사가 작던 크던 '연봉'을 기재하지 않는 회사가 상당히 많은데요. 회사쪽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봉을 공개하면 연봉이 적다고 아무도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라거나 '연봉만 보고 회사를 그대로 지나치는'취업자들이 많아서 부득이하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속사정이 있다고 합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회사'의 사정이지 그것이 정당한 방법은 아닙니다. 인터넷상에서 운영되는 '중고장터'만 봐도 '경매를 유도하는 게시물'은 바로 삭제와 함께 영구 제명 대상이죠. 결국 기업은 '자신들이 필요한 인력을 자신들이 부를 수 있는 최저한계선의 연봉을 제시하는 역경매'를 통해 인건비를 줄이고 싶었을 뿐이지 그것이 어떤 잘못된 사회 시스템으로 인해 기업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며. 그들이 말하는 근거 역시 희박합니다. 취업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연봉과 일의 강도'에 따른 정당한 급여 책정에 대해 무지할리도 없으며 하는 일에 비해 무조건 많이 달라는 철없는 취업자들은 극소수입니다. 연봉만 보고 회사의 속사정을 제대로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고요? 그러는 기업들은 취업자들의 '학력'과 '경력'말고 다른 속사정을 볼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요?

고용은 계약입니다. 고용 이후에는 어떤 회사 내 조직 체계를 따라야 하던지 관계없이 취업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기업의 사장'이건 '취업자'이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이득이 되는 쪽의 의견을 고취시켜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취업시장에서는 기업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기 위한 노력이 지나친 반면 취업자들은 지독한 취업난에 기가 눌려 제대로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할 생각조차 못한 채 그저 묵묵히 기업이 하자는 대로 따를 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을 기업은 최대한 이용해 채용시장에서 자신들의 권위를 점점 높여나가며 불합리한 부분을 고착화시키려는 반면 취업이 당장 급한 구직자들은 행여 기업에게 밑보일까봐 이렇다 말 한마디 못한 채 기업이 하자는 대로 끌려갈 뿐입니다.

이런 기업들의 불합리한 병폐를 잘 보여주는 부분 중 하나가 '면접'당시 면접 비용을 구직자들에게 지급하는 회사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면접과 채용은 '기업이 필요로'해서 진행하는 것이지 '구직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적선'의 개념이 아닙니다. 즉 채용 역시 기업의 이익 실현 활동 중 하나이며 면접 역시 어떤 형태로든 기업에게는 이익이 됩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면 모일수록 인재 파이는 넓어지고 더 좋은 인재를 뽑을 가능성이 높아지며 결과적으로 그 좋은 인재가 회사의 이익을 창출해주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이익활동에 있어 기업은 '아무런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분명 많은 구직자들이 지원하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 이익이 되는 부분이고 그것을 위해서 자신의 교통비와 시간을 할애해가며 회사를 직접 방문한 사람들에게 기업이 취한 이익만큼 어떤 보상도 해주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업들은 이에 대해 '최근 취업난이 너무 심해서 묻지마 지원도 심각한데다 그래서 채용과 관련된 심사기간이 배로 늘었고 인력도 많이 투입되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며 아무튼 생각없는 구직자들 때문에 힘듭니다'라는 부분을 기자들에게 적극 어필하는 한편 '기업이 구직자들 때문에 돈이 많이 들고 있음'을 들어 구직자로 하여금 '피의자 의식'을 갖도록 만듭니다. 즉 구직자들은 회사로 하여금 이미 손해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때문에 면접비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구직자가 많아져서 채용 비용이 많이 들건 적게 들건 그건 '회사 사정'이지 서류 전형을 통과해서 면접을 볼 '그들이 고르고 고른 제대로 된 구직자'들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기업들의 불평 대상이었던 구직자들은 대부분 서류전형에서 잘려나갔을텐데, 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제대로 된 구직자들에게 그 책임을 덮어씌워 정당하게 받을 권리마저 묵살하려 드는 것일까요?

면접에서 연봉을 물어보면 탈락의 지름길이라고 하죠? 회사 입장에서는 '건방지게 연봉부터 묻는 녀석은 싹수가 없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신차려야 할 쪽은 구직자가 아니라 기업입니다. 어째서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채용 과정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도 모자라 기업은 구직자의 모든 정보를 알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구직자는 회사로부터 취할 수 있는 자신과 가장 밀접한 관계의 급여조차 물어볼 권리조차 없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급여부터 묻는 녀석은 싹수가 노랗다고요? 상식 이하의 급여로 자신들의 배만 불리려는 기업의 싹수는 이미 뿌리까지 썩어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까?

'요즘 애들은 헝그리 정신이 없다'고들 하는데요. 누구를 위한 헝그리 정신입니까? 기업은 배 두드리면서 구직자들에게 '헝그리 정신'운운하며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당신들이 그토록 싫어해 마지않는 북쪽에 사는 장정구 파마하신 그분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여기는 대한민국이고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평등하게 누구나 자신이 가진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기업이 아무리 나이가 많고 돈이 많고 설령 고용자라고 하더라도 동등한 위치의 고용 계약상에서 부모조차 안하는 '건방짐'을 운운할 자격은 이 나라 어디에도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신차리십시오.

그리고 구직자 여러분들 힘들겠지만 어깨 펴세요. 그리고 당당하게 요구할 것은 요구할 수 있다는 '생각'만이라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만일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을 요구했다고 당신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저평가를 내리는 기업이 있다면 그건 기업이 미친거지 당신이 잘못된 게 아닙니다. 물론 지금 현실에서 생존권까지 걸어가며 요구하고 싶은 것을 바로 요구하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생각만큼은 '이게 정당한 게 아니다'고 인식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고착을 막고 세상을 조금씩이나마 변화시켜줄 것입니다. 향후 지금의 당신들이 이 사회의 주도권을 갖게 되었을 때 그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구직자들에게 대하는 기업의 몰지각한 풍토도 이윽고 뿌리뽑힐 날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모쪼록 '내가 너희 때 고생했으니 너희도 우리처럼 고생해야 공평하지 않겠냐'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이어받지 않기를 아울러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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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친구들끼리 싸움이 나거나 어느 한 쪽이 집단괴롭힘을 당했을 때 피해자 학생이 학교라는 조직 내 위협을 무릅쓰고 선생님에게 이 사실을 고하면 선생님의 대처는 크게 두 가지였다. 괴롭힌 가해자를 불러와 피해자 눈앞에서 체벌이나 구타를 하고는 갑자기 억지로 화애를 시키고 평화롭게 마무리시키는 것과, 일단 전후 사정을 듣고 (가해자를 따로 불러서 그쪽 이야기도 함께) 무자격 법조인이 되어 자기 가치관대로 판단하여 '니가 맞을 짓을 했다'는 식으로 무려 '교사'가 자의적 판단에 의해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음을 가르치는 어이없는 상황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교사에게 불만을 가진다 한들 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아직 학생의 권한으로 교사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교권침해'에 대한 우려로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라면 이유없는 전학 정도가 전부인데 전학생이 늘 환영받는 것도 아니고 타지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어려움과 더불어 '결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전학 자체가 해결책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중립적인 입장에서 '서포트'라는 역할은 그 자체가 사실 쉬운 역할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준비가 너무 소흘한데다가 에초 '인식'자체가 '중립'은 반드시 착한 결론이 나와야 한다고 '이솝우화'에서 새뇌시켜놓은 탓인지 언제나 '실리적'인 해결책보다는 '도덕적'인 해결책에 집착한 나머지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잦다. 문제는 이 도덕적인 부분이 사회적으로 거의 매장당하다시피 천대받고 있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이미 도덕적인 무엇도 실리적인 근본도 없이 그저 자신의 입장에서만 일을 판단하고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식의 이타적 개인주의가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까운 예로 '군대'문제를 보면 그 이기심이 극에 달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분명 자신이 그 군대라는 비효율의 극치인 시스템을 겪었음에도 그 부당함이 사라지기를 바라기보다는 '내가 마지막 희생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비율이 훨씬 많다. 분명 도덕적으로는 없어져야 할 것이 '나만 당하는 건 억울하다'는 식의 감성이 결부되어 '우리 모두 다 같이 똑같은 불행을 맛봐야 공평하다'라는 마이너스적 사고방식이 팽배해있는 것이다. 서스펜스 드라마에서 범인이 마지막에 되뇌이는 대사 '왜 너희들만 행복하게 웃는 거야? 세상은 너무 불공평해!'라는 지극히 사이코패스적인 정서가 생각 이상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 정부, 기업 그리고 취업 당사자들의 제각각의 문제점을 짚어보면서 느낀 것은 '이 문제는 절대 어느 한 쪽의 이해관계는 물론 삼자대면을 하더라도 끝이 안보일 문제가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것이다. 정부도, 기업도, 취업 당사자들도 이 문제를 접점에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오직 '자신들만의 입장'만을 되뇌이고 있어 이 문제의 구심점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기가 참 힘들어보이기 때문이다. 대체 누가 피해자이며 누가 가해자란 말인가? 이 문제는 대체 누가 희생을 하고 누가 이득을 봐야 해결이 된다는 것인가? 필자가 여기에서 어떤 결론을 낸다 한들 그 결론이 모든 사람들을 납득시키기에는 사실상 가능한 일일까?

그래서 4부에서는 같은 취업난을 겪고 있고 사회적인 시스템과 정치적 상황이 많이 닮아있는 '일본'의 사례를 소개해볼까 한다. 지금부터 보여드리는 것들은 '일본'이 이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있다라는 성공 사례가 아니라 (일본 역시 취업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현재진행형 상태) 어디까지나 반면교사로서 참고하고자 하는 취지일 뿐이므로 '일본'을 특별히 찬양하거나 일본의 사회 시스템이 무조건 옳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의 사례를 통해 적어도 1,2,3부를 읽으시면서 많은 분들이 의문을 가지셨으리라 생각한 '아니 그럼 대체 누가 잘못했다는 거야!'라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자신의 가치관에 의해 결론이 지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일본의 취업난은 기본적으로 '학력'중심의 사회가 아직 파괴되지 않고 건재함에 따른 '사회적 비효율성'이 가져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좋은 대학을 나오기만 하면 그 대학의 레벨이 평생 달고 다닐 레벨이 되어버리므로 능력에 관계없이 '나이'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는 시스템이 아직도 많은 기업에서 운영되고 있다보니 장수국가답게 정년이 길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에게 주어지는 연봉이 결국 1인당 약 3~4명의 취업을 제한시킬 만큼의 인건비 낭비를 가져오고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비중을 더 이상 늘리기 어렵게 되는 딜레마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짤리지 않기 위해' 나이가 들면 연봉이 깎이는 고용 유지 시스템은 이들에게 있어서는 있을 수가 없다. 일본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돈이 들어갈 곳이 많아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수반되는 비용을 책임져야만 하는 기업과 정부의 의무가 존재한다. 즉 젊을 때 박봉으로 나라와 기업에게 많은 이득을 안겨다 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오또나'세대들의 요구이며 기업이나 정부 역시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적절한 보상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사회에서는 젊은층 못지 않게 '오또나 세대'의 소비가 대단히 중요한데 일본 오리콘 챠트에서도 '엔카'의 판매량이 결코 젊은 음악에 뒤지지 않는 수준을 가지고 있고 디즈니랜드나 JR히가시니혼 등 소비, 서비스 업계는 물론 식품, 생활 업계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오또나'라는 상품명을 대거 채용하여 이들의 소비력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 '오또나'세대들의 경제력이 결과적으로는 일본의 '취업난'을 가중시킨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회사나 정부로부터 요구하고 있는 '나이에 걸맞는 높은 급여'에 대한 근거가 '가장'으로서 '자신은 물론 아내와 가족'들의 소비까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4인분의 인건비가 필요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들은 4인분의 급여를 한 사람에게 지급하다보니 인건비 대비 채용 수를 줄일 수밖에 없고 표면적인 취업난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함정이 있는데 결국 4인분의 인건비에 대한 근거가 자녀들이 이미 만으로 20살이 넘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오또나'세대들의 경제적인 안정으로 인한 여유자금이 자녀들의 경제적 여유로 이어져 20대들이 '경제적 위기감,절박함'을 갖지 못하는 '자아태만'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일본 젊은이들은 계층별로 차이는 있겟지만 결국 부모세대들로부터 자신이 소비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돈을 원조받을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에 특별히 취업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자격증이나 기술을 취득할 동기부여를 갖지 못함은 물론, 이전처럼 대학에 레벨에 맞는 에스컬레이션이 이루어지지 않는 실용적 사회로 급격한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적 요구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는 그저 젊기만한 '인간'일 뿐인 게층이 점점 늘고 있고 이로 인해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이나 시장 개척에 따른 인력 수요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인적 자원 수준이 이에 따라가지 못해 '인력난'을 겪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일본의 게임 IT업계에는 최근 '한국'이나 '중국'쪽 젊은이들이 대거 취업비자를 받고 '프로그래머'나 '플래시 애니메이터'등 국내에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분야의 인력들이 속속 취업되고 있으며 심한 곳은 거의 절반에 이르는 개발진들이 외국계 인력으로 구성될 만큼 일본에서는 이미 자국 젊은이들만으로는 세계흐름에 걸맞는 국가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극우신문들은 '외국계 인력이 자국 내 젊은이들의 취직 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식의 논평을 게재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기업들이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일부러 외국인을 뽑을 리가 없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일본'의 취업난은 시장경제에서 유럽식 복지분배정책을 혼재함에 따른 부작용으로 인해 탄생한 '니트'와 '히키코모리'같은 '취직 포기자'들의 양산이 불러왔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반드시 저같은 극단적인 표현에 속하는 계층이 아니더라도 결국 일본 젊은이들의 자기개발이나 삶에 대한 정산력의 평균치가 크게 높지 않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벌써 사회적으로 '쓰래기'로 분류되어 격리 차별되고 있을 이들 계층이지만 일본 정부와 기업은 결코 이들을 포기하려 들지 않는다. 지금은 경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외국인들을 쓰고 있지만 결국 지금처럼 '젊은이'들의 태만이 계속될경우 지금의 '오또나'세대처럼 사회를 주도하게 될 주도층의 국적이 대거 바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결국 자신들 위에 외국인이 군림하고 심한 경우 정계까지 외국인이 진출하는 것만큼은 막고 싶을 테니까, 결국 지금의 오또나 세대들이 은퇴하고 그 주도권을 지금의 젊은이들이 이어받아 일본이라는 나라의 혜택과 자긍심을 상속받아주어야만 하는데 에초 이들이 사회 자체에 합류되기를 거부하고 있으니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일본의 이른바 '하프'세대들을 대거 일본 국민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와(이전에는 일본 역시 하프 세대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는데, 이는 선진국 출신 하프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후진국 하프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기 아이돌 그룹 속에서도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하프를 찾기 어렵지 않다.) 1세대와는 달리 다소 국가 정체성이 모호할 수 있는 재일교포 2~3세들의 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보면 과거 경제성장기, 일시적으로 사회 주도권을 '자이니치'에게 빼앗겼던 '자이니치 컴플랙스'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일본 사회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일본 젊은이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니트나 히키코모리처럼 극도의 의지박약자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미 최저점 기준이 '상식의 바닥을 뚫고' 지나갈 만큼 낮아진 시점에서 사회 분위기 상 인정되는 '평균치'가 높을 이유가 없는 만큼 일본 젊은이들의 이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낮을 수밖에 없고 특히 타국의 젊은이들과 비교해볼 때 더욱 명확해진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 진작에 '자국의 미래'가 젊은 세대들에게 있음을 급격한 노령화 사회와 학벌위주의 파벌사회에서 가져온 패착을 겪으며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에, 하토야마 정권에 이르러 더욱 파격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출산 장려 정책과 우리나라 비정규직에 해당하는 파견직 사원 제도 단계적 철폐, 실질적 인력 수준을 높이기 위한 전문학교 (우리나라의 2년제 대학에 해당)의 권한 확대 및 지원 강화, 지금의 젊은 층들에게 좀 더 많은 혜택을 가져다 줄 '연금 제도 개편' 등 젊은 세대가 사회에 진출하는 데에 있어 정부가 할 수 있는 가능한 많은 유인책을 쏟아내고 있다. 재미있는 건 정부가 '취업 유인책'은 다수 쓰고 있으면서도 직접적인 '취업 촉진책'을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어떤 문제에 있어서 '정부'가 해야할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선을 분명하게 그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게 채용을 늘릴 것을 정부 입장에서 압박한다던지 무조건 정부 실적을 위해 실업율을 수치상으로 줄이기 위한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사실상 '일자리가 없어서'취업이 안되는 게 아닌 인력의 질적 문제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이미 약해질대로 약해진 젊은층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데에 있어 불안함을 느끼는 요소들 (비정규직 문제, 출산에 따른 자녀육성비용, 학력차별)을 없에주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즉 이들의 역할론은 '책임 회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문제 해결에 있어 주도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를 구분시켜 보다 효율적이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인 것이다.

기업은 기업대로 일본 젊은이들의 '능력'향상에 기대하기 보다는 선진국형 인재 육성 시스템을 속속 도입하여 '완성된 인재를 운용하는'게 아닌 '인재를 키우는'회사로 개념을 탈바꿈하는 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다른 능력은 없더라도 이른바 '야루키'라 불리우는 '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다 높게 평가하는 문화가 점차 자리잡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인재 채용 시스템 역시 기존의 서류전형 위주에서 벗어나 다양한 생각을 서술하도록 자체적인 '문항'을 제시하거나 기존의 주먹구구식 위압적인 면접 분위기를 탈피,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면접을 볼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매년 새롭게 기획하여 반영하고 그 결과를 분석 계승시키는 등 제한된 파이 안에서 보다 효율적인 인재 발굴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어차피 네가 다른 곳에서 무엇을 배웠던지 우리 회사에 들어오면 전혀 새로운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나가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네가 과거에 뭘 했는지보다는 지금부터 뭘 해나갈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는 게 이들이 새로운 인사 철학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학벌 위주와 파벌 중심의 시스템이 바뀌기까지는 워낙 새로운 것에 대한 변화가 느리기 진행되는 일본의 사회 시스템 상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기업들은 언젠가 세대교체가 완료되고 이러한 가치관이 뒤바뀔 것을 지금부터 하나 하나 천천히 준비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국가적으로 강제하는 최저임금 제도를 마련하지 않고 따로 위원회를 만들어 그 지역의 물가와 지역 세금 등을 종합해 어디까지나 경제 지표의 일환으로서 공표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처럼 전국적으로 일원화시키는 것이 아닌 지역별로 차등화된 최저임금이 존재한다. 그러나 일본에서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을 찾기도 이에 대한 불만을 갖는 것을 보기 힘들다. 일본의 물가를 생각해볼 때 물론 10년간의 장기불황을 거치면서 전혀 오르지 않은 시급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가 다니고 있는 대학의 한학기 등록금은 약 40만엔 정도인데 일본에서 매일 8시간씩 주 5일 근무로 받을 수 있는 평균적인 아르바이트 월 수입이 22만엔 정도이므로 흔히 도쿄 도심지역에서 혼자 살 때 드는 월세 5만엔과 식비 등을 생각해 볼 때 조금만신경을 쓰면 매월 10만엔 가량은 저축이 가능하다. 물론 일본과 한국과의 환율과 물가 차이를 감안해야겠지만 일본의 높은 물가는 대부분 특정 산업 (외식업과 택시 등) 즉 삶에 있어 '대안'이 있는 부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관리에 따라 체감물가는 훨씬 낮아질 수도 있는 시스템이므로 물가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즉 길어도 한 학기와 방학기간동안 투잡 쓰리잡처럼 무리를 하지 않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등록금을 내 힘으로 해결하는 게 결코 어렵지 않다.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일본은 이처럼 '젊은 층이' 부모의 도움 없이 사회에 진출할 수 있고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책임지는 것이 가능한 사회라는 것이 한국과 다른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최저임금 제도 자체보다는 아르바이트 임금 저하의 원인이 되는 부실한 자영업은 즉각 퇴출될 수 있는 정부측의 강력한 규제시스템과 더불어 '수고'에 따른 지불이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사회적 인식이 있기에 시급에 대한 정부의 강제안이 없더라도 자연스럽게 유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전문학교 등 이른바 이름값이 없는 학교들의 노력으로 기업들의 '학벌'에 대한 인식이 엷어지고 있다는 점과 정부가 주도적으로 지방의 특성화된 대학을 집중 육성하여 도쿄 중심의 명문대 권한을 전국으로 분산시키려는 노력을 오래 전부터 거듭해오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한국에서는 한국 내부의 시스템을 일본에 그대로 투영하는 잘못된 관점으로 인해 '일본으로 유학을 가려는 사람'이나 '유학을 다녀온 사람을 채용하는 기업'이나 모두 한결같이 '도쿄대', '와세다대', ' 케이오대' 등 명문 대학들만을 선호하고 그 이외에는 지잡대로 치부하는 성향이 짙은데 일본 내부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와세다나 게이오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지 않고 콧대만 높은 나머지 시대에 역행하고 있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놈아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처럼 서울대라면 듣보잡학과마저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아닌 철저하게 학과별로 특화된 명문들이 전국 각지에 존재한다.

생물학계 관련 논문 수에서는 도쿄대가 따라올 수 없는 위상을 확보한 큐슈 대학과 황우석 박사가 관련이 있어 잘 알려진 홋카이도 대학, 그리고 도쿄에 있지만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아 지잡대로 치부되고 있는 히토츠바시 대학은 에초 도쿄대 경영학부가 독립하여 만들어진 세계적인 권위의 경영 대학이다. 당연하겠지만 일본 내 해당 분야에서는 이들 대학들이 와세다나 게이오같은 명문 대학의 그것을 한참 앞지르고 있기 때문에 해당 기업 역시 이를 충분히 인정하고 있으며 위 사례 이외에도 전국 각지에 각 분야별로 도쿄 인 대학들 못지 않은 명성을 날리고 있는 지방대학들이 즐비하다. 이로 인해 도쿄의 인구는 1천 400만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편이지만 전체 인구 1억 4천만에 비하면 10%안팎에 불과하다. 도쿄와 상당히 멀리 떨어진 홋카이도나 큐슈 지방의 인구는 평균 500만을 넘고 있고 각 현(우리나라의 '도'에 해당하는 행정단위) 별로 인구 200만 이상의 대규모 도시를 인접 도시 포함 최소 2~3개 이상 보유하고 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전체 인구의 30%가 서울에 몰려 있는 비중적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이런 저런 사례들을 살펴보았지만 결국 이들이 공통적으로 취하는 키워드는 한 가지, '결국 이 사회는 사람이 만들어가고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이므로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인식 하에 자연스럽게 파생된 부분들이라는 것이다. '인간'을 중시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는 같은 시작점에서 각도가 조금이라도 어긋나게 되면 결국 엄청나게 멀어지게 되는 직선처럼 작은 시작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인간을 중시하지 않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정부, 기업,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나가는 사회는 결국 서로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서로 낮은 곳을 향해 끌어내리고 밟아 떨어뜨리기만을 반복하게 될 뿐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사회, 국가는 결국 내부에서의 싸움이 아닌 전 세계 국가 경쟁력을 동반 하락시키는 나비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결코 단순한 집안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젊은이들을 보고 있으면 드는 생각은 한 가지 '아 저들은 아마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사람 취급도 못받을 녀석들이겠구나'라는 것 뿐이다. 실제로 그렇다 우리나라는 히키코모리를 구제할 생각보다는 사회로부터 낙오지로 낙인찍고 격리하는 데만 열심히니까, 책임은 그들 가족에게만 있을 뿐 나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에초 정부조차 사회의 패배자들에게는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데, 사회가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려 들까? 그런데 일본은 '자국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들이 어떻게든 사회로 나와 국가의 주축이 되어주도록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춰주는 데에 많은 예산을 할애하고 있다. 국가는 '자국민'을 무조건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집단이니까, 어느 누구는 좀 성공하고 돈도 좀 벌었고 사회에 적응도 잘 했고 세금도 그만큼 내주니까 정부로서 인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어느 누구는 '노력이 부족해' 사회에 진출하지 못하고 빈곤층으로 살아가고 있으면 이들은 그저 패배자로 정부조차 '자랑스러운 자국민'이기보다는 그저 '사회적 패배자'로만 대우해주고 있으니 사회적 인식이 바뀔리가 만무하지 않겠는가 결국 '윗물이 썩은 탓'이다.

일어나 있는 사람을 목말 태워주는 사회가 아니라 쓰러진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워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얼마나 많이 줄 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국가와 그 국가를 이루는 사회적 가치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인생 누구나 운이 좋아서 한방에 성공하는 운명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패배 후 재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나도 좁다. 다운 당했을 때 일어서도록 응원은 커녕 그냥 쓰러진 김에 그대로 죽으라는 듯 위에서 찍어 누르는 듯한 느낌마저 드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카드빚 남발해서 신용불량자 된 사람의 부채를 탕감해주자는 게 아니라,(일본도 개인의 빚은 국가가 보증을 대신해줄 뿐 결국 평생을 걸쳐 수입의 일정 부분 이상을 채무 탕감을 위해 써야 한다) 신용불량자가 되면 채용조차 되지 않고 아예 패배자로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결국 한강다리에 오르고 팔목을 긋고 승합차에 연탄불을 피우게 만들도록 사지로 몰지 말라는 이야기다. 수능에 실패한 학생이 학교에서 뛰어내리고, 신입사원 제한 연령을 넘어선 구직자가 강물에 투신하고, 사오정 정리 해고된 실직 가장이 서울역 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현실을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그들에게 '재기'대신 '끝'이라는 절망감을 안겨준 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의 일이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일본 젊은이들에 비하면 우리나라 젊은이들 정말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노력이 정말 대단하다. 비록 그 노력이 다소 빗나가고는 있지만 적어도 삶에 대한 의지와 정신력, 자기 개발에 대한 열정만큼은 어느 나라 못지 않다. 그런데 그런 젊은이들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의 정부와 사회는 어느 나라보다 뛰어난 젊음의 에너지가 넘처흐르는 이들을 독려하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들보다 위에 있는 돈을 숭배하도록 전도하고 있다. 일본 정부나 기업에 비한다면 행복해서 각기춤이라도 추고 있어야 할 이들이 결국 행복에 겨운 나머지 본연의 역할도 잊고 머릿 속에 자신들의 욕심만이 가득한 채 젊은이들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앞서 예를 든 '선생님' 처럼 우리 의지대로 정부와 사회를 바꿀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돈 이상으로 가장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다른 나라에 가서 그와 동등한 가치를 부여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빠를 것이다. 어딜 가든 '자국민'이상으로 이방인을 우대하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맞을 짓을 햇건 뭘 했건 어떤 이유로든 폭력이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사회에서 패배했다는 이유로 재도전할 기회를 박탈당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4부작 비정규직, 88만원 세대, 청년실신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의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여러분에게 제시하고 싶은 키워드는 'challenge' 다. 언제든 도전할 수 있는 국가, 사회, 그리고 스스로가 도전에 인색하지 않은 인생을 만들어 가길 희망한다. 물론 사회 역시 사회 초년생의 첫 도전이든 한번 쓰러졌던 사람의 리벤지이건 이를 색안경 없이 수용해주는 사회가 되어주어야 하며 국가 역시 이미 사회에 진출해서 동력으로 활동중인 사람 못지 않게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다시금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재도전할 기회를 줄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수능을 볼 때도 20대에 입사 시험을 볼 때에도 고 3이라는 신분, 30대를 목전에 둔 '신입사원 연령 제한'이라는 칼날에 가로막혀 '다음은 없다'는 절박함 속에 매회 모든 것을 건다. 자신의 꿈에 먼저 도전한 다음에 생각해봐도 좋을 사람들까지 '나중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할 것'을 걱정한 나머지 젊은 시절을 모두 취업 활동에 바친다. 지금의 취업난은 절박함을 강요당한 이들의 누구도 원치 않은 필요 이상의 공급이 빚어낸 참극이다.

이 척박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88만원 세대 젊은이들이여 힘들겠지만 그래도 도전해보자, 그리고 언제든 그 도전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회를 만들자, 그리고 그 도전을 응원하고 좌절하지 않도록 북돋아주는 정부가 되어주길 기대해보자,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지 않은가? 대한민국이지 않은가? 우리가 우리를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여러분은 일본을 비롯한 그 어느 나라 젊은이들보다 훨씬 열정적이고 뜨거운 젊음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까...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대들의 식지 않는 젊음이 아름답다!
힘내라 대한민국 젊은이들이여~!

- 끝 -

비정규직, 88만원 세대, 청년실신, 취업난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목차

1부 (정부) 편
2부 (기업) 편
3부 (학생) 편
4부 (일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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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지금을 취업난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을'이라는 부분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을' 이라면 그 이전에는 취업난이 아닌 시절이 있었다는 것인데, 그게 언제를 뜻하는 것일까? 일단 대량실직이 시작된 IMF이전이라고 보는 게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IMF 이전에 취업난이 없었다고 말하는 이 시절이 과연 정상적인 상황이었을까? 기억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IMF가 오기 전 우리나라는 마치 노아가 계시를 받기 전의 세상과 다름없었다고, 학력차별이 절정에 달하고 여성취업은 아예 말 자체가 생소했으며 지연에 족벌까지 난장판이 이루어지던 시절로 기억한다. 뭐 하나 건전한 게 없었다. IMF시기가 어둡긴 했어도 더러운 것을 바로볼 수 있는 빛이 되어준 셈이 아닐까 하는 일부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그로 인해서 괴로운 건 그 지연의 족벌로 경제를 썩어문드러지게 만든 장본인들이 아닌 그 아래에서 꼭두각시가 되어준 중산층 서민이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말 저 때가 취업난이 없었을까? 아니 오히려 더 심했다. 차라리 지금은 뭔가 명목상으로는 투명해져서 원서라도 받고는 있지 고졸은 아예 입사 원서 배부조차 거부당하던 시절이 바로 저때다 (저 당시 드라마에서도 종종 고졸로 무시당하는 여자주인공의 모습이 나온다 - 김희선이 대표적) 즉 지금의 취업난은 '학력'이라는 절대키워드가 무시되는 단계에 이르러 이전에는 '대학'문만 넘어도 눈앞에 에스컬레이터가 펼쳐졌다면 지금은 그게 아니니까 고학력자는 고학력자대로 예전에 비해 학력을 인정해주는 사회 가치가 떨어져 에스컬레이터가 되어주지 못하는 지금을 탓하고 저학력자는 저학력자대로 세상이 바뀌었는데 실상은 차별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성토한다. 결국은 답이 똑같다. 마치 박정희 향수가 그리워 독재자 에뮬레이터 이명박을 뽑는 기성세대들이나 그 기성세대들이 에스컬레이터로 밟아온 편리한 과거에 비해 지금이 그렇지 않음을 개탄하는 (혹은 기성세대들에 의해 변하지 않는 교육과정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나 결국 '자신이 지금 취할 수 있는 것만을 생각하고 그로 인해 파괴되는 것은 남의 일'이 되는 이타적 개인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무려 본고사 부활론이 나오고 있는 현실에서는 정말 뒷골이 다 땡길 지경이다. 결국 기댈 게 고작 대학에게 취업 중계를 맡기는 꼬락서니라니

학력보단 능력이 우선시되는 사회가 좋다고 다들 말한다. 그런데 여러분은 입사 지원서에, 면접관에게 말하는 구술에 자신의 무엇을 담아서 보여주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입사 지원서에는 다른 입사 지원서에 써있는 학교보다 높은 등급의 학교를 쓰는 걸로, 면접 구술에는 옆에 앉아있는 사람보다 떨지 않고 영어 질문이면 영어를 좀 더 틀리지 않게 말할 수 있고 시선처리 잘하고, 건방져 보이지 않고...무슨 수학공식마냥 면접을 수능 당일 컨디션 조절하듯이 그 자체에만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가? 그래 이해는 한다. 우리나라 공교육에서 수능까지 사람을 그렇게 안 만들면 병신취급을 하니까 저절로 그게 몸에 벨 수 밖에 없다는 것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다. 언제나 세상이 변할 때 신세대들이 기성세대들의 동의를 구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게 아니지않은가, 언제나 변화의 중심에는 기성세대가 없었고 그 특유의 보수성으로 변화의 태풍을 찻잔으로 스며들게 만들기 바쁘지 않았던가, 변화를 갈구하고 열망하면서 정작 스스로 변화의 흐름에 노를 저을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게 스스로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것인가?

이곳은 공부방인가 도서관인가?


다시 한번 묻는다 당신의 능력은 무엇인가? 남들보다 더 잘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전혀 못하는데 나는 잘하는' 당신만의 능력은 무엇인가? 당신은 그 능력을 키우기 위해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공교육의 피해자라는 건 인정하지만 대학 선택에 있어,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 능력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결단력이 있었는가? 아직 모르겠다면 찾아보려는 노력은 얼마나 많이 했는가? 지금 당신들이 하는 노력이란 서태지와 이이들의 '교실이데아'처럼 '네 옆에 앉아있는 그애보다 더' 토익 점수를 1점이라도 높이고 자격증을 하나라도 더 따고 어쨌든 돈 많이 주고 안짤리며 사회적으로 폼새가 나는 직장을 다니게 될 생각만이 가득하지 않은가? 그곳이 당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직장인지는 따로 생각한 적이 있는가? 그냥 '오 내가 재계 1위 대기업에 들어갈 만한 스팩이 된다니!'라며 자신이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종이 몇 장에 써있는 당신의 인증서만을 디밀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이다.

잠시 뜬금없는 이야기를 좀 하겠다. '마라톤'은 육상 종목 중 가장 많은 인원이 '동시'에 출발해 '동시'에 경기를 진행하는 경기다. 100미터나 200미터 길게는 3천미터 종목처럼 육상트랙을 도는 모든 러닝 종목은 많아봐야 10명 이상이 동시에 뛰지 않는다. 결국 종목이 세분화되어있고 자신이 단거리에 유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100미터에서 9명을 제치고 1위를 먹으면 되는 것이고 장거리라면 적당히 1200미터쯤 되는 종목에서 9명 제끼고 1위 먹으면 된다. 그런데 마라톤은 아니다. 마라톤에서 1위를 하려면 최소 100명 이상은 제껴야 한다. 그것도 제끼는 게 다가 아니다. 그 1위를 끝까지 붙잡고 마지막까지 뛰어야 한다. 아름다운 인간승리?, 인생의 축소판? 그 이전에 자신이 마라톤에 전혀 맞지도 않는데 단지 이게 대세이고 그놈의 아름다운 타이틀에 취해 뛰면서 1위는 고사하고 10위권 안에도 못들어도 (아 그래도 내 뒤에 50명이나 있어, 난 이 사회에서 중간은 가는거야) 라고 자위하며 현실에 만족한다. 이게 지금 취업난을 겪고 있는 88만원 세대들이 겪어오고 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취업이라는 이름의 '마라톤'게임이다. 그중에는 굳이 달리기가 아닌 창던지기나 장대높이뛰기를 더 잘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그런건 소용없나보다. 그냥 주주장창 마라톤만 뛴다. 왜? 사람이 많이 모여있으니까, 대세같으니까, 여기에 안끼면 낙오자같으니까, 소외당하는 소수로 살기 싫으니까, 사회에서 혼자 싸워나갈 자신이 없으니까...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는 옐레나 이신바예바가 키가 점점 커서 체조를 못하게 되었을때 '장대높이뛰기'를 권해줄 코치가 없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지금 사회가 그렇다. 그렇다고 지금 사회가 이러니까 그냥 포기하고 산다? 그러기 싫으니까 88만원 세대라는 말도 만들고 세상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는 게 아닌가? 수능까지 이어지는 공교육 마라톤을 강요받는 거 피할 수 없다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전국 90만명 중 내가 몇십만등인지 나오는 90만명이 동시에 똑같은 시험을 치루는 말도 안되는 미친 시스템이 얼마나 지랄맞은지 이미 고3을 지냈다면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았는가? 이제 그만 좀 뛰자 몇십만명중에서 10위권 내에 들지 못할 바에야 어차피 그 무대는 당신이 아닌 10위 이내의 자들의 것이다. 당신이 전력을 다해 노력한 215082위라는 결과에 만족할것인가? 당신이 10위 내에 들 수 있을수도 있고 조금 더 노력하면 1위도 꿈이 아닌 분야가 분명 있다.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보면서 그런 능력 한 가지라도 없는 사람 본 적이 없다. 다들 자기가 하고 싶은 것과는 관계없이 태어날때부터 타고난 절대능력을 모두 한 가지씩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서 스타트할수도 있고 늦은 스타트에도 무서운 스피드로 역전시킬 수 있는 그런 능력 말이다.

미래가 암울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예 미래를 생각하지도 않고 현재를 즐기며 살고 있는 88만원 세대들도 있다. 그런데 왜 내가 88만원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88만원 이상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나보다 뭘 더 잘해서 그렇게 받고 있는지 지금까지와는 조금 역순으로 생각해보자 (그래 저 자식들은 나보다 토익을 더 잘봐서 저기 들어갔으니까 나도 쪽집게 과외를 받아서 토익을 잘봐야지 / 아 저 자식은 나보다 더 좋은 대학 들어가서 잘 됐나보다 나도 다른 대학교에 편입하거나 재입학해야지 / 아 난 쟤처럼 눈에 쌍커플이 없어서 면접에서 떨어졌나보다 쌍커플수술은 이제 수술도 아니라는데 나도 쌍커플 수술해서 면접 잘봐야지) 처럼 말도안되는 뒤따라가기를 하지 말고 0.1%가 혜택을 보고 있는 세상이라면 내가 0.1%가 되기 위해 다른 사람의 0.1%에 비집고 들어가려고 하지 말고 나만의 0.1%를 찾아내라는 것이다. 당신이 조금 더 쉽게 0.1%가 될 수 있는 방법, 얼마든지 있다. 당신을 알고 세상을 좀 더 알아보자, 어차피 마라톤 금매달이나 투포환 던지기 금매달이나 금매달에 섞인 금 함량은 똑같다는 것 잊지 말자. 올림픽에는 수십가지 종목에서 수백개의 금매달이 걸려있다. 아무리 비인기종목이라서 눈에 잘 안띄더라도 나를 위해 적극적으로 세상을 알고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 됐거든!


남이 만들어진 길만 가는 인생은 의미가 없다. 봤던 영화를 다 본 직후에 되감아서 처음부터 다시 보면 재미있는 영화가 몇개나 될까? 88만원 세대여 당신들은 지금 '취업'이 되느냐 아니냐를 고민할때가 아니다. 지금 취업이 잘 된다고 행복할 것 같은가? 결국 나와 맞지도 않는 일을 억지로 마라톤을 뛴다 한들 몸만 축나고 평생 따라잡지도 못하는 녀석들 뒤꽁무니만 바라보다가 사오정,오륙도의 전통을 계승하는 인생을 선택하려 드는가? 아직 안늦었다. 잠시 그 억지로 뛰던 다리를 좀 멈추고 가만히 생각해보자, 1년이 되도 좋고 2년이 되도 좋다. 지금 아니면 멈춰서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비겁한 세상이니까 지금의 1년을 결코 아깝게 생각하지 마라, 잠깐 소외감 느껴질 수 있다. 수능 때 경험했으니까. 공부하다가 조금 쉴라 치면 '니가 쉬고 있는 그 시간에 다른 애들은 문제 세 문제 더 풀고 있다'라고 선생들이, 부모님들이 되지도 않는 협박을 일삼았었으니까, 잠깐 낙오되는 것 같을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으로 태어나서 213508위만 계속 지키다가, 아니 그나마 지키는 것도 힘에 부친 세상에 계속 몸에 맞지도 않는 마라톤만 그저 '남들이 다 하니까'라는 이유만으로 뛰고 있을 참인가? 사람을 당연히 몇백만명씩이나 한 곳에 모여놓고 장거리 달리기를 시키는데 1위가 수십만명 나올 수는 없지 않은가? 당신 아무리 거기에서 뛴다 한들 100위안에 들 가능성 희박하다. 지금 1위로 뛰고 있는 사람들, 이미 그보다 더 먼저 1위를 맛보고 골인 지점에서 쉬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당신들을 위해 '순위를 내어줄'거라는 착각은 버려라, 뒤따라가지 말고 그대만의 길로 추월하라, 그리고 1위에 도취되어 있는 그들에게 최대한 멋있는 폼을 잡으며 한마디를 던지는 것이다.

'날 너무 쉽게봤어, 세상은 좀 거칠게 다루어줄 필요가 있다구!'
'길은 내가 만든다!' 라고...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필자가 겉멋에만 빠진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현실을 모르고 이상에만 빠져 궤변만 늘어놓는다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세상이 궤변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궤변으로, 모순으로 진실을 만들어내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필자가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그대들이 그대들 스스로의 신분과 주어진 자유에 걸맞지 않게 스스로를 너무 현실에 속박하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이다. 개구리는 가장 멀리 뛰기 위해 가장 몸을 작게 웅크리는 법이다. 이상을 펼칠 수 있을 때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면 그 인생이 의미가 있을까? 또 그런 사람을 기업들이 과연 원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인생의 정점은 공무원이고 그게 아니라면 그저 그렇게 돈이나 벌면서 대충 안락하게만 살아보자는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말이다. 본인들이 인사담당자라면 그런 사람이 회사의 신 주류를 만들 '신입사원'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이 세상에는 이상주의자가 필요하다. 설령 그 이상에 한참 못미칠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을 갖지 않은 사람보다는 더 높게 더 멀리 뛰어올라 있을 것이다. 기업이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기업들이 말하는 창의적인 인재, 별거 아니다. 어차피 기업도 돈이다 당신에게 절대 당신이 벌어주는 돈 이상의 돈을 주지 않는다. 당신이 세상과 싸워 기업에게 돈을 안겨다주는 만큼 기업도 당신에게 88만원 이상의 돈을 줄 뿐이다. 지금 당신이 싸워야 할 상대는 같은 회사에 입사 원서를 내는 사람들도, 면접때 옆에 앉아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렇게 들어간 회사라고 당신이 승리자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은가? 당신은 결국 '탈락자'를 이겼을 뿐이다. 진짜 승부는 결국 당신과 세상과의 싸움이다. 그건 토익점수 990점도 수많은 자격증과 어학연수 경력도 4.5점 만점의 학점도 대신해주지 않은 당신의 포텐셜만을 걸고 벌이는 진검승부다. 회사는 보기에는 치졸할지 몰라도 당신이 거두는 성적 만큼 돈과 그에 따르는 풍요로운 여생을 줄 것이다. 입사에 연연하지 말고 그 다음을 생각하라, 우리가 수능을 지나오면서 수능을 회상해보면 '왜 그때 그렇게 목숨을 걸었는지'혀가 차이듯 결국 한 단계 앞을 내다보고 그에 맞춰 행동한다는 이른바 '앞선 사람'은 거창한 점쟁이가 아니다.

기업들은 '당장의 취업이라는 승부에 모든 포텐셜을 쏟는'사람을 구분해내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당신이 기업과 계약하고 세상과 싸워서 어떤 결과를 낼 것인지 그리고 그 승산을 높이기 위해 어떤 길을 개척해 나갈지를 생각해보고 그 결론을 낸 사람이라면 기업은 단박에 알아본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란 다른 게 없다. 적어도 고작 쪼잔하게 입사라는 승부에 연연해서 모든 힘을 소진하고 입사 후 (아 이제 모든 고비 넘겼으니까 좀 쉬어야지) 하고 발뻗고 자는 사람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지금 당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당신의 그 능력을 돈으로 환산해줄 가장 적격의 회사는 어디인가? 그리고 그 회사에 들어가서 회사가 아닌 나로서 세상과 싸워 이길 승산이 얼마나 될 것인가를 생각하자, 생각하는 사람은 꼭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다. 빌게이츠를 비롯한 수많은 21세기 성공모델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인생을 걱정하지 말고 인생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주길 바란다.


취업...그거 별거 아니다.


4부에서 계속됩니다.

비정규직, 88만원 세대, 청년실신, 취업난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목차

1부 (정부) 편
2부 (기업) 편
3부 (학생) 편
4부 (일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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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취업을 목전에 둔 대학교 4학년 2학기생이다. 꽤 좋은 스팩이 되어줄 수 있는 대학교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일단 국내 재계 순위 20위권 내에 어떤 회사가 마음에 들어 그 회사의 공채에 참가하고자 한다. 그러나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천천히 살펴보니 막막해진다. 면접 3번에 서류전형, 입사시험, 구술시험, 토익, 적성검사, 인턴, 해외연수경력 인증 등등등, 입사 한 번 하는데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런데 A씨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하다. 전혀 해외에 나갈 일이 없는 전공을 가지고 있고 이번에 지원할 분야도 해외근무와는 거리가 매우 먼 직종이다. 그런데 토익점수를 내놓아야 하고 해외연수 경력이 플러스되어야한다. 문과보다는 이과에 가까운 그의 분야에서 구술시험이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결정적으로 이미 지원 분야와 전공이 일치하고 있는데 적성 검사는 왜 해야하며 수능문제같은 단순 지식형 입사시험은 왜 치르어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인턴은 몇 번 했지만 한 건 차심부름이랑 외부 매장 파견 행사, 사무실 청소가 전부였는데 이게 도움이 되는지도 아리송하다.

일부러 다소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최근 구직활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위의 사레에서 A씨가 가지는 의문 중 적어도 한 가지 정도는 겪었거나 함께 의문을 품었던 부분이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과연 이 입사 시험이 회사 업무 능력을 판단하는데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것인가? 이건 마치 종합평가시험인 수능으로 점수를 매긴 다음에 학과를 선택할 기회를 주는 역순화된 교육시스템과 별 차이가 없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교육계도 마찬가지겠지만 학력 인플레가 심화되고 기업들이 손쉽게 분별할 수 있는 '학력'이라는 요소가 제약을 받으면서 기업들이 갖는 인사 업무에 대한 부담감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휴전 이후 남아있는 유교사상에 의해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공부지상주의탓에 이미 공교육을 포함한 대학교육에서의 실무적 능력을 배양하는 능력에 대해 기업들이 신뢰를 잃은지 오래다. 그런 와중에도 기업들이 인재 선발에 있어 '학력'을 우선시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로 뿌리깊게 남아있는 '학연'이라는 악습 (회사 내부 뿐만 아닌 외부적인 협력 관계를 위해서라도 기득권층이 다수 졸업한 학교 출신을 선호할수밖에 없다)과 그로 인한 대학의 브랜드화에 따른 회사의 동반가치상승을 노린 졸부짓이 두번째다. 즉 자신들의 회사가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높은 학력 소지자들을 우선시함으로서 이유없이 벽을 높게 만들어 새뇌적인 가치선상의 기준을 높이는 것이다. 즉 우리는 기득권층이 주로 다니는 대학의 졸업생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회사니까 대한민국 1%만이 모이는 엘리트 집단이라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는 것이다. 쉽게 정리하면 기업이 대학의 연장선상이 된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학력기준이 학력인플레, 고교평준화, 각종 특차모집으로 인한 이른바 '불순분자들'의 대거 유입으로 그들이 원하는 '회사의 가치를 높여줄 만한 타이틀을 가진 인재'들만의 집합이라는 공식이 깨져버리자 기업은 고민에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기업에게 학력 기준 폐지를 대내외적으로 압박하고 있으니 이전에는 대놓고 '우리 회사는 SKY이하는 원서를 받지도 않습니다'라고 공언할 수 있었던 기회마저 박탈당해버렸다. 여기에 경기불황까지 겹쳐 청년실업이 증가함에 따라 이전 공채처럼 기업이 인재를 모셔가는 풍경은 사라진지 오래인 최근의 공채는 구직자들의 이른바 '1% 합류하기', '노아의 방주 탑승전'이라 불리는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진작에 회사 설립 당시부터 연구했어야 할 회사의 '인재상'이라는 것을 뒤늦게 부랴부랴 만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다들 좋은 말만 써놨다. '글로벌한 인재', '창의적인 인재' 등등 원하는 인재상만 따지만 다국적 기업 부럽지 않다. 그런데 뽑는 과정이 과연 이러한 인재상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회사 설립 초기부터 이미 만들어져 수십년간 깎이고 수정되며 안정되게 자리를 잡았어야 할 인재 선발 시스템이 최근 10년간의 대학 환경 급변으로 급조된데다 그 목적에 있어서도 기업들이 '새로운 환경에 걸맞는 인재'를 뽑기 위한다기보단 '지금까지 쌓아온 기업의 위상'을 깎아먹지 않는 쪽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즉 대학이 이른바 '사회적 등급'을 매기는 수단으로서 기능을 잃었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점수를 매길 수 있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이 사람이 사회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는 수치적/객관적 근거자료) 토익점수나, 사내 시험, 구술 시험 등을 다방면으로 만들어내어 단계를 세분화시키는 것이다. 즉 기업에 들어가는 단계 자체를 어렵게 만들어 기업의 위상을 높이려는 참으로 유치한 짓거리라고 할 수 있겠다.

토익 점수가 객관적인 영어 실력을 검증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기업도 잘 안다. 토익 990점짜리 뽑아놨는데 외국인 앞에서 버벅대더라 라는 걸 기업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국제경쟁력을 갖춰야한다며 토익점수상위자를 입사기준으로 삼는다. 영어 잘하는 사람이 많으면 과연 국제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되는지는 인사담당자도 구직자도 모른다. 그러면 왜 한국 사회에서 이미 무쓸모성이 검증된 토익을 줄기차게 강조하는 것일까? 사실 기업들은 구직자들의 영어 실력에 대해서 실무에서 크게 활용할 수 있다고 어기지 않는다. 왜냐 이미 재계 20위권 대기업이라면 부장급 이상 간부들의 나이가 최소 40줄에 가까워있을텐데 그들 중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미 실무결정권자들의 영어실력이 형편없는데 평사원들이 영어 실력이 좋은들 사내에서 모든 직원의 영어소통화 자체가 가능할까? 에초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조직 사회가 그렇게 간단하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조직사회를 꾸리는 당사자들이 제일 잘 알고 있다.

토익은 점수로 나타낼 수 있는 객관적 자료다. 대학들이 '우리 학교는 수능 480점 이하는 안받는다'는 식으로 대학의 서열을 스스로 결정해 사람들에게 주입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 역시 '우리 기업은 토익 900점 이상의 우수한 인재들만 모이는 초엘리트 기업이니까 그 이하는 안받는다'는 식의 영어 실력과는 별개로 토익이 주는 '점수'라는 구분법을 활용할 뿐이다. 토익이 쪽집게 강사들에 의해 만점자들이 남발되자 토익 자체의 변별력이 떨어진 게 아님에도 토플이나 텝스 등으로 입사 기준을 바꾸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토익 시험은 토플이나 텝스와는 그 역할이나 평가 방법이 다소 차이가 난다는 부분은 이들 기업들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치 치킨 레이스처럼 모이는 사람들의 사회적 레벨을 가려내기 위한 편리성으로 토익과 같은 영어시험을 이용할 뿐이다. 이게 기업 광고에는 그만이니까 '그 회사는 영어 잘 하는 사람만 들어간대'라는 소문은 결국 '그 회사는 이미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대표기업이야'라는 식으로 와전되어 인식될 것을 기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당장 교육계만 보더라도 '수능'이나 기타 시험성적을 입시에 반영하지 않는 대안학교나 사이버대학교가 현재 사회적으로 어떤 등급을 받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실상이 어떻든 일상에서는 주구장창 기업 욕을 하면서도 해외에서 그 기업의 자동차나 뉴욕 타임스퀘어에 걸린 그 기업 광고를 보면서 '기업'이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여주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결국 기업들의 이같은 입사 전형은 결국 '좋은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기능이 아니라 '회사의 대외적 인지도 레벨을 떨어뜨릴 수 있는 낮은 레벨의 지원자'를 탈락시키기 위한 역기능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공개 채용' 에서 채용이 아닌 탈락의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만큼 기업들은 IMF이후 고용없는 성장을 10년 넘게 계속해오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수출 실적을 올리며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듯 보였지만 정작 세계 정세를 이해하고 국제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인재를 뽑는 '방법'에 대한 연구에는 너무나도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구글을 비롯한 외국계 다국적 글로벌 기업의 해외 현지 면접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들은 매년 필요한 인재를 얻기 위해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진화시키고 있다. 면접에서 긴장을 풀고 자유롭게 구술할 수 있는 환경이나,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만드는 프로그램 등 무엇보다 인사 업무 자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사의 오랜 인재상에 걸맞는 채용 프로그램을 매년 새롭게 도입 갱신시키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디에도 실무에 직접 필요한 (다국적 기업이라면 영어 실력이 필요하므로 토익이 들어가는게 이상하지 않다) 최소한의 자료 이외에는 지원자에게 요구하는 부분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즉석에서 나올 수 있는 임기웅변과 창작 능력 등 이른바 현재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미래 가치, 즉 '포텐셜'을 평가하기 위한 평가 과정들이 다수를 이룬다. 오히려 이런 입사 과정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현재'가치만을 '수치'로 증명하고자 애쓰는 국내 구직자들은 낮은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국제사회에서 수출 실적을 거두면서 특정 업게에서 1,2위를 다투는 지경이 되자 해외에 있던 우수한 인재들이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지원하는 유턴 현상이 한때 붐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다. 물론 이들과 더불어 국내에서 내노라하는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인 국내파 엘리트들의 러시는 말할것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들어간 대기업의 6개월 내 조기퇴직비율이 30%를 웃돈다는 뉴스가 나온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들에게 밀려 탈락한 구직자들이라면 더욱 이상하게 생각될 것이다 '아니 저 신의 직장을 왜 마다하고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기업을 왜 나오는 걸까?'하고 말이다. 이것은 기업의 그릇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입사 기준만을 높여 기업의 인식 가치만을 높인 빛 좋은 개살구식 이미지 상승이 불러온 참극이다. 치열한 입사 과정으로 초엘리트만을 가려낼 만큼 위대한 기업에 들어갔는데 정작 들어가보니 기업 내부는 그 선발 과정에 비해 너무도 초라하고 주먹구구식이며 전 근대적이라는 것을 느낀 엘리트들은 한국의 기업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갖은 채로 해외 유수의 기업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이른바 '우수인재'의 '해외 유출'로 인한 국가경쟁력 저하의 여러가지 원인 중 가장 큰 몫을 지금의 대기업들이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이로 인해 괴로운 건 구직자들 뿐만이 아니다. 현재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과장급 이하 실무진들 역시 괴로운 건 마찬가지다. 기업이 눈만 높아서 엘리트들만을 데려오는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그들이 오랫동안 그 회사에 남아서 업무에 적응하고 도움이 되어주는 게 아닌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도 걸리지 않아 자신의 능력에 비해 회사의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는 불평과 함께 해외로 뛰쳐나가버리니 이른바 '국내파'로 회사에 뼈를 묻기 시작한 실무진들로서는 이만저만 격무에 시달리는 게 아니다. 결국 회사의 그릇을 키울 생각은 안하고 우수한 인재가 들어오면 그 이미지만으로 큰 그릇이라 어겨질 거라 믿었던 대기업들의 계속되는 오판은 결국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은 채 고용시장의 악순환만을 주도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회사의 그릇을 키워줄 수 있는 것은 잠시 머물다 언제든 떠나갈 엘리트들이 아닌 그 기업의 그릇을 인식하고 전체적인 발전을 함께 모색하려는 '그릇의 걸맞은 인재들'이라는 점을 간과한 기업의 졸부근성이 결국 회사 내부에까지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 이야기만 했는데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들은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들에게 있어 '이미 정해진 코스트' 즉 '비정규직으로서 줄 수 있는 임금의 최대치'를 이미 정해두고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는 선에서 회계를 짜고 있기 때문에 더 임금이 오를 가능성도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대우를 높여야 할 이유도 그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미래이다. 이런 걸 구직자들이 모를 리가 없는데도, 이런 대우를 해주는 회사에 자신의 청춘과 미래를 걸고 들어가줄 거라고 기대하는 건 그야말로 오판에 가깝다. 결국 이상만을 쫒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중소기업이라고 다를 바가 없으며 인재에 대한 가치판단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중소기업이라는 편견때문에 눈높이를 낮추지 않는 구직자들만을 탓하는 측면에서는 구역질이 날 정도다. 이에 대해서는 구직 당사자분들을 비롯한 다양한 분들에 의해 이미 실상이 알려진 부분이므로 깊게 다루지 않았지만 앞서 언급한것처럼 대기업에 비해 딱히 잘한 게 없다는 점에서 청년실업의 책임을 피해가기는 어렵다고 본다

기업들이여 글로벌 기업이 되고 싶은가?,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되고 싶은가? 물론 이 모든 것을 갖추는 데에 우수한 인재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수한 인재를 우물 안에 가두어둔다고 우물이 넓어질 것 같은가? 그릇의 문제다. 뭐가 원인인지 이미 굳어진 뇌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뽑아놓은 신입 사원들 중 반년 내에 회사를 떠나가는 사원들을 '은혜도 모르는 놈들'이라고 감정적으로 비난하지 말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 우물은 좁다고 느끼지 못하는 개구리에겐 한없이 넓고 풍요롭지만 이미 좁다는 것을 느낀 개구리에게는 불만이 가득한 갑갑한 공간일 뿐이니까, 허울만으로 우물이 바다가 될 수는 없다. 구직자들의 말에도, 회사를 떠나가는 엘리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에게 배울 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배워 개선에 나가야 한다. 토익점수, 대학 학점으로 회사 대외적 레벨을 만드는것보다 이쪽이 그토록 원하는 '글로벌 기업'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포함한 모든 기업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인재'에 대한 '인건비'는 코스트가 아닌 회사의 자산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어떤 기업이라도 그 성공 과정에서 '인재'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인 기업을 찾아보긴 힘들다. 기업 재무 구조를 개선시키는 것은 '인건비 축소'가 아니라 '코스트 감소'라는 것을 잊지 말자, 많은 기업들이 '코스트' 즉 허공으로 사라져 회사에 남지 않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물류비, 원료비, 세금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인재'에 대한 인건비는 다르다. 결코 허공에 날기는 공돈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월급은 회사에게 있어 '코스트'가 아니라 '누적'되는 적립식 펀드다. 많이 적립한 만큼 회사로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 줄 '투자'수단이며 '자산'이다. 이 간단한 발상의 전환만으로 수많은 세계적 기업들이 만들어져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갖가지 사례들이 이를 증명한다. 인간을 우선시하지 않는 기업은 어떤 기업이든 포텐셜이 바닥나게 되어 있다. 중소기업이여, 대기업이 되고 싶은가? 대기업이여 글로벌 다국적 기업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인재에 투자하라, 당신들이 제대로 된 가치판단에 의해 인재를 선발하기만 했다면 왠만한 펀드보다 더 좋은 수익율을 가져다줄 것임에 틀림없다.

3부에서 계속됩니다.

비정규직, 88만원 세대, 청년실신, 취업난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목차

1부 (정부) 편
2부 (기업) 편
3부 (학생) 편
4부 (일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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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공채 시즌이 다가오면서 취업난 기사들이 또다시 재생산되고 있다. 안 봐도 읽혀진다. 대기업 공채 작년에 몇 분의 몇 수준으로 축소되고 어디는 몇십대 몇 경쟁율, 토익시험에 매달리는 SKY도서관 풍경 취재하고, 조중동은 또 높아진 취업자들의 눈과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교차취재할것이다.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 취업난이지만 이미 이쯤 반복되면 전문가가 아니라도 충분히 파악할 법한 취업시장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팩트에 접근한 기사는 하나도 없다. 진짜 들어봐야 할 취업 준비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볼 생각은 안하고 자신들 머릿속에서 인터뷰 다 끝낸 편견 가득한 상식을 기사에 담는데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설문 형태의 20세기적인 단순 데이터 조사도 여전하다.

한국은 '대학'이라는 취업 매개체를 위해 고등학생, 좀 심한 경우 초,중학생때부터 이른바 좋은 라인을 타기 위해 노력한다. 인서울이 반드시 좋은 취업을 보장해주는 시대가 아닌 시대임에도 어쨌든 아직 확율은 미미하게나마 그쪽이 조금 더 있으니까, 일단 학과나 전공과는 상관없이 대학 타이틀을 따내기 위해서 노력한다. 일단 대학에 들어가면 졸업할때 조금이라도 기업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학점을 열심히 따고 B가 나오면 학교에 돈을 좀 더 주는 한이 있더라도 재수강을 신청하며 대학의 배를 불려준다. 토익 역시 실질적인 영어실력이 어떻게 느는지보다는 일단 점수를 잘 내기 위해 쪽집게 학원에 몇백만원씩 투자하고 기업에 따라 봉사활동이나 해외어학연수, 인턴 등의 활동 역시 게을리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 모든 게 '학생 자발적으로 생각한 자기개발' 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학창시절에는 선생님에 의해 대학생때는 교수님에 의해 그리고 기타 취업 준비할때는 기업에 의해 '지시받은 부분'을 수행하는 것이다. 어쨌든 궁극적인 GOAL이 '취업'이 된 현실에서 결국 취업으로 가는 한단계 한단계를 내비게이션 받은 셈인데, 이 내비게이션을 모두 철저히 수행한 학생들조차 '취업 티켓'을 거머질 수 없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째서일까? 왜 정부가, 회사가, 학교가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취업이 되지 않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시작되는 시발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수동적인 자기개발에 익숙해지도록 만든 학교와 익숙해진 학생이 할 수 있는 건 사회가,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밖에 없었고, 이런 내비게이션이 결국 취업 시장의 언벨런스를 가져온 것이다.

우선 정부의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정부가 지금까지 하는 일은 '정부보조 기술교육'과 '노동부'에서 주관하는 취업 촉진 정책, 그리고 교육 정책 정도가 전부인데 이게 모두 손발이 안맞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정부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신의 정권 내에 어떻게든 수치적인 취업율을 높이는'게 문제가 아니라 취업의 질이라는 말을 없에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최근 언론들이 요구하는 '취업의 질적 측면'을 향상시키자는 구호에 따른 것인데, 그 질이라는 부분을 잘 들여다보면 결국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준하는 대우가 되는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논리이다. 즉 정부는 임금 문제를 제외하고 적어도 이 회사에 들어와서 내가 어느 정도 노력만 하면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어도 정부가 뒷받침해줄 수 있는 4대 보험이나 출산휴가, 유급휴가, 임금 문제, 야근수당 문제를 대기업과 중소기업 공기업을 막론하고 모두 일원화시키는 정책적 일관성 유지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내가 직원수 10명 이하의 신생 벤처기업에 들어가더라도 정해진 시간만 근무할 수 있고, 야근을 하게 될 경우 야근수당을 정해진 대로 지급받고, 유급, 출산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한다. 만일 이게 모든 기업에 있어 적용되기 힘든 무리한 정책이라면 정책 자체를 손봐야 한다. 어떤 기업은 정해진 정부안대로 하고 어떤 기업은 무시하는 풍토가 계속되는 지금의 현실이라면 앞으로 정부가 어떤 좋은 정책을 내세우더라도 따르는 기업만 계속 따르게 되고 그 따르는 기업의 사정에 맞는 선심성 정책만을 남발하게 되는 정부와 그 정책을 따르는 기업만을 선호하게 되는 일자리의 질적 가치 악순환이 반복될것임이 자명하다.

정부는 국민과 기업 사이에서 철저하게 중립을 지키고 무엇보다 '인권'적인 문제에서 정책을 만들어야만 한다. 즉 지금의 경제 상황에 맞는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어떤 정책을 써야하는지를 고민하고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취업 문제만을 보더라도 지나치게 중립을 유지하지 못하고 '기업'의 목소리만 귀를 기울이고 있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정부의 '국민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달콤한 정책' 을 따라야 하는 데에 대한 부담을 하소연하고,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대로 지금의 최저임금제도와 비정규직 보호법을 유지하면 기업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정부는 이에 귀를 기울여 아직 노동 환경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대부분 동결시키고 최저임금 제도를 폐지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는 등 '기업의 입맛'을 맞춰주기 위해 열심히다. 왜냐하면 그들 정권은 5년 단임이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건 국제적으로 수치가 드러나는 'GDP', '국가경제순위' 정도일테니까, 정부마저 수치적 성적지상주의를 보여주고 있으니 윗물이 썩었다고 보는 게 옮겠다. 여기에는 아직도 70년대식 '수치적 경제'살리기 떡밥이 먹혀 휘둘리는 서민 유권자들의 무지도 한몫을 하고 있지만 지금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니까 이 이야기는 깊게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즉 정부는 지금 기업에게 끌려가야만 하는 정부의 위상을 역전시켜야 하는 대업을 치루어야 하지만 자신들의 정권 내 성적과 무시할 수 없는 정치자금에 대한 보상 의무감으로 인해 이를 해결하기보다는 '국민의 희생'을 택하여 어떻게든 이 문제를 자신의 정권이 아닌 차기정권으로 넘기고 5년동안 잡은 정권이 누리게 해주는 특혜만 열심히 취하는 체리피커틱한 생각만이 가득하다. 게다가 이 문제를 건드린다고 해서 누구 하나 지지해주는 쪽도 없기 떄문에 더더욱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조중동의 서민들 선동이 한 몫 한다) 그러나 이런 하소연은 '정부'가 할 수 있는 변명조차 되지 못한다. 정부의 위상을 기업 아래에 있게 만든 건 다름아닌 정부 자신들이니까, 해결 역시 전적으로 정부의 몫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 정책에 대해 기업 혹은 자영업쪽에서 예상되는 불평 중 하나가 '형평성'이라는 단어다. 대기업 기준으로 만들어진 복지 정책이 중소기업이나 개인 사업장에 적용되기에는 너무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지키지 못한다는 법규는 대기업이 보장하는 '출산휴가'나 '4대보험'이 아닌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등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운용되고 있는 물가와 OECD에 맞는 삶의 질적 최저한계선'에 맞게 규정된 부분을 못지키겠다는 하소연하고 있다. 그걸 지키면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단다. 정부 말대로 하면 회사 문 닫아야 하고 가게 문 닫아야 한단다. 정부의 반응은 '아 그러면 일단 생각좀 해보겠소'라고 몇개월째 고민만 해댄다. 무려 '삶의 질'을 최우선시해야 하는 정부가 '삶의 질'과 관련된 최저기준법을 가지고 '고민'씩이나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출산휴가나 4대보험 등 정부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만든 몇 가지 법은 현실에 맞게 손질이 가능하다. 기업에 지나친 부담이 될 수도 있고 지나치게 현실에 맞지 않게 노동자들에게만 유리한 법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정부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현 경제 수준과 물가 수준을 수치적으로 분석해 만든 '이 나라에서 살기 위한 최저생활기준'에 관련된 법은 깨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민의 대상조차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만들어놓은 지금의 물가 수준과 경제 수치가 기형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 되니까, 결국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는 경제의 블랙홀로 스스로 끌고 들어가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국가 경영자로서는 최악의 선택이 되는 것이다.

만일 '최저생활기준'과 관련된 '최저임금'과 '비정규직'과 관련된 법을 지키지 못하겠다는 '사업자'라면 기본적으로 '경영'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시장논리에 의해 퇴출되어야 함이 옮다. 이쪽이 경제 전반의 건전성 향상에도 좋다. 정부가 정한 최저생활기준과 관련된 수치는 단지 인권적인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적인 경제 수치 (물가)를 감안해서 정해진 수치이므로 중소기업은 물론 자영업자들이라 할지라도 '경영 상의 패착'이 없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지킬 수 있는 법이다. 최저임금이 높은 만큼 시장의 물가도 그만큼 높기 때문에 자영업자든 중소기업이든 시장에서 벌이들일 수 있는 수익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만큼의 수익을 벌어들이지 못했다면 그것은 경영의 문제이지 최저임금법때문이 아닌 것이다. 물가가 오른 만큼 최저임금법도 오르고 자영업자라면 물가가 오른 만큼 같은 물량을 팔았을 때 돌아오는 수익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은 당연할테니까 즉 그들의 수익이 이전에 비해 줄었다면 그것은 최저임금이 높아진 탓이 아니라 예전에 10개 팔던 게 8개밖에 팔리지 않았거나, 같은 업계에 진출하는 매장이나 공장이 그만큼 늘어 출혈 경쟁이 불가피하게 되었던지 둘 중 하나다. 이는 자연스러운 자유경제체제의 순기능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자영업자들이 '생존권'을 주장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진출은 인정하면서도 퇴출은 인정할 수 없다는 이기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냉정해져야 한다. 생존권은 '자영업'에 있어서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현재의 식당처럼 특정 업계 자영업자나 공장 비율이 국민소득과 인구 대비 너무 방대해져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이들은 자유경쟁 시대에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선택의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정부가 예외없이 인식시켜야 한다. IMF로 인해 현존하는 자영업자들의 대부분은 '자영업에 대한 아무런 연구나 분석, 포부'없이 그저 가진 능력이 없이 퇴직금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이런 경쟁력 없는 자영업자들은 결과적으로 시장경제에서 생존경쟁력이 대부분 저조할수밖에 없다. 게다가 '20세기 기업의 후진적 복지환경'에 익숙해져 있는 세대들이기에 이들이 고용자들에게 대하는 대우는 현실에 맞지 않는 전 근대적인 발상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도 답답한 부분이다.

그들이 고용자들에게 말하는 말 중 대부분은 '우리 때에는...'으로 시작되는데 이것은 결국 자신들이 실직 이전 상사에게 굽실거렸던 굴욕에 대한 보상을 자영업자의 업주로서 고용자들에게 그대로 보상받으려는 이른바 '사장 대우'를 받고자 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에, 이들은 아무것도 안하는 '사장'에 대한 이미지가 굳어져 경영 부실에 대한 책임이나 노력을 거의 하려 하지 않고 IMF당시 실직의 원인을 제공했던 정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생존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계층은 경제의 건전성에도 수치적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만큼 정부는 '최저임금'과 관련된 어떠한 요구도 귀를 기울여서는 안된다. 노동 환경을 희생하여 얻는 수치적 경제 효과는 결국 인력의 질적 저하라는 악순환을 통해 다시금 정부에게로 그 화살이 돌아올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에 대한 배경에는 '세금'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결국 최저임금을 하향조절한다면 세금을 줄이는데에도 손을 대야하는데 지금까지 세금이 줄어들었다는 뉴스는 한번도 들린 적이 없지 않은가?

이는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을 포함한 모든 법인과 사업자들에게 아주 '공평하게'적용되어야 한다. 경영 개선에 대한 노력이나 시장 경쟁에 참여하지 않는 등 경쟁에서 도태되는 기업은 과감하게 퇴출시켜야 한다. 이게 불공평해보이는가? 대한민국은 이게 당연한 국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자유경쟁은 자유에 대한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은 당연할테니까 말이다. 이미 취업 준비생들은 이런 경쟁을 과하다 싶을 만큼 치루면서 시장경제에 부합하는 인재를 생산해내기 위한 자정노력이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주고 있는데 어째서 법인과 사업자들만이 이러한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가? 이미 취업자들은 기업들이 정한 '최저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길을 찾는 등 능동적으로 움직이는데 어째서 법인, 사업자들은 최저기준에 미달되어도 지금 위치에서 꿈쩍도 안하고 먹여 살려달라고 (사업자 자격을 유지시켜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는가? 정부는 이들에게 아주 공평한 절대 기준을 제시하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기업, 사업자는 퇴출시켜 양질의 기업과 우량한 사업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정한 '최저생활기준'가지고 불평하는 기업도 나오지 않을 것이고 정부가 속속 진행하는 '근로환경개선'에도 보다 유연해질것이며 시장의 건전성도 향상될것이다. 결과적으로 시장의 기형적인 포화가 원인인 자영업자들의 경영 환경 개선에 대한 해결책도 이쪽 이외에는 근본적인 답이 전무하다.

정부의 이같은 정책 기조가 유지되고 기업들이 '불평'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선례가 만들어지지 않는 '절대권'의 가치를 갖게 된다면 장,단기적으로 뿌리박혀있는 취업난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노동자의 삶의 질도, 시장경제의 건전성도 모두 잡을 수 있는 보기에는 참 단순한 이것이 안되는 이유가 결국 정경유착에서 나온 패착때문이었다니 한숨이 나오지만 이는 현 정부의 무능함을 탓하기 전에 그런 정부를 택한 국민들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이 최근 50여년만의 정권교체를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젊은 층의 투표율 증가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젊은층에서 '정치'가 결코 자신의 삶과 인생에 무관하지 않음을 지난 정권에서 뼈아프게 절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부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그 정부를 만들어가는 것이 다름아닌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말자, 우리나라 시스템은 어쩔 수 없이 한번 뽑으면 5년동안 국민들이 아무리 불만이 많아도 도중에 결과를 되돌리기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만큼 심각한 문제를 투표일만 가까워오면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뽑을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참가하지 않거나 단지 내가 뽑은 사람이 당선되는 것이 폼새가 난다는 이유로 (이런 이유로 현 정권을 지지하고 현 집권당을 지지하는 젊은 층을 정말 수도없이 많이 봐왔다) 아무 생각없이 투표하는 세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나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이것이 이번 정부편에서 여러분에게 제시하는 '취업난'에 대한 해답이다. 나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생각하고, 그 생각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변화된 사회가 나를 바꾼다는 것 잊지 말아주기를 꼭 당부하고 싶다. 그리고 아울러 '정권 연장'과 '표', '정치 자금'을 위한 정부가 아닌 '나라를 위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되어주길, 그리고 앞으로 그런 정부가 나와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2부에서 계속됩니다.

비정규직, 88만원 세대, 청년실신, 취업난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목차

1부 (정부) 편
2부 (기업) 편
3부 (학생) 편
4부 (일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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