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3. 11. 9.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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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를 정해야 할 때라고 다들 말해요. 어떤 대학 어떤 전공을 들어가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겠고, 저는 학교에서 지금까지 내신 관리하라면 관리했고, 수능 공부하라면 맞게 수능 공부를 해왔거든요. 다 끝나니까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진로 상담을 해도 그냥 점수 맞춰서 가라거나 취업율 높은 대학이나 학과를 권하고 있어요. 그냥 선생님이나 부모님 말씀 계속 들어도 되는 걸까요? 그러면 정말 세상에 필요한 인재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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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러면 세상에 필요한 인재가 될 수 있어요...끝



...은 농담이고 질문의 주객이 전도되었네요. 친구의 질문은 마치 '내가 지금 뭘 하고 싶은지 맞춰볼래요?'라고 묻고 있는 것 같거든요, 친구가 잘못했다고 탓을 하려는 게 아니에요. 사회교과서잖아요. 어쩌면 친구에게 제일 필요한 이야기를 오늘 해드리게 될지도 몰라요. 그러기 위해서 쓰고 있는 교과서거든요.


친구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누군가가 자신의 진로를 대신 정해주고 그 뒤를 따라가고 싶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마 이유는 무엇이 옳은 길인지 지금까지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죠. 선생님과 학부모들의 대표적인 수험생 달래는 패턴 '그런 건 수능 끝나고 생각해' 라는 말은 술 마시기나 다른 유흥에는 충분히 통용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친구의 진로에는 통용되지 않을수도 있어요. 내가 뭘 할지에 대해 생각하는 건 잉여시간 6개월만에 확립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아니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10년도 걸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죽기 직전까지 깨닫지 못하기도 하는데, 하루이틀 조차 자기 시간을 갖지 못했던 수험생들에게 이제부터 1,2개월간의 다시오지않을 시한부 휴식기간동안 머리 싸매고 진로를 생각해보라고 세상에 던져놓는다고 해서 그게 가능할 턱이 없어요.


태풍따위 부러워하지 말고


다시 말하지만 사회교과서에서는 그런 여러분들에게 '무능하다'라고 책망할 생각이 없어요. 어쩌겠어요. 당장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지금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어떻게든 짧게는 1개월 안에 여러분들이 가능한 더 많이 생각해보고 진로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뿐일거에요. 수능 대비 지문 읽는 연습으로 인해 많이 피곤하시겠지만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라


우리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선생님으로부터 배우는 즐거운 생활이었나 바른 생활이었나 교과서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아무튼 그 시간에 선생님은 이제 막 자라나서 12년동안 학교에 정 붙이고 살아야 할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던졌어요.


여러부~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어요, 1.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 2. 있으나 마나 한 사람, 3. 세상에 필요가 없는 사람, 자 어린이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나요?


아이들은 모두 손을 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자신있고 칭찬을 갈구하는 눈빛으로 선생님에게 '네 전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라며 선생님을 기쁘게 하는 데 여념이 없었어요.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한 부흥회는 결국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의 간증을 끝내고 선생님의 얼굴에서 만족감이 흘러 넘쳐 뚝뚝 떨어져야 비로소 끝나곤 했죠. 그런데 그 와중에 분위기를 깨는 아이가 한 명 있었어요


'네 선생님 저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어요. 그리고 애써 쓴웃음이라도 보이며 아이에게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얼마나 안좋은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어요. 차마 손발이 사라질 것 같아서 그녀의 말투를 묘사하지 못하는 점은 양해를 바랄게요. 아무튼 그녀의 노력은 결국 마지못해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고쳐먹은 시늉을 한 아이의 입장 정정이 있고 나서야 겨우 끝났죠.


...


그 아이의 대답은 결코 철부지의 그것이 아니었어요. 그 아이는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수동적 타의성'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가졌던 것이죠. 사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도 결국 누군가에 의한 상대평가일 뿐이지 자기 자신이나 그 외의 사람들에 의한 절대평가가 아니라는 건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은 내가 꼭 필요한 일을 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어요. 적어도 내가 뭘 하는지에 대해 오지랖 간섭질은 하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을거라는 이미지가 그 8살 아이의 머릿속에 떠오른거죠.


학교 교육 12년동안 여러분들은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 하에 육성되어왔어요. 사실 이 말이 얼마나 무섭냐면 사회가 잘 되기만 한다면 꼭 필요한 사람만이 육성되어야 하고 필요없는 사람은 응당 도태되어야 한다는 이분법을 내포하고 있거든요. 이미 교육 단계에서 낙오자에 대한 배려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는 거에요. 이런 분위기는 고스란히 교육 현장의 압박감을 조성해서 꼭 필요한 사람, 반드시 타의적으로 평가받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며 길라잡이로 하여금 인정받을 수 있는 그들의 마음에 들 수 있는 길을 가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전파시켜요. 지금 막 수능을 본 여러분들은 그 압박의 터널을 끝까지 완주한거에요. 여러분들에게 축하를 건네고 한편으로는 위로를 건네며 또 한편으로는 측은지심을 보이는 이 모든 시선들은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달려온 길이 오롯이 여러분들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거에요.


1등급++이네요 '소'가 참 기뻐하겠죠?


12년만에 햇빛을 본 여러분들에게 눈부셔죽겠는데 이제 빛을 줬으니 얼른 눈앞에 있는 수많은 옷들 중 하나를 골라서 입으라고 해요. 여러분들은 단 한번도 옷을 입어본적도 없는것은 물론 옷 자체가 있는줄도 몰랐는데 그냥 밝아졌으니까 이제 눈이 보이기 시작하게 해줬으니까 서둘러 입고 가라고 재촉해요. 여러분들은 우왕좌왕하는게 당연하고 옷을 잘 못입는 주변 친구들이 그런 것처럼 스스로 옷을 고르는 데에 실패하고 누군가가 골라주길 원하게 되죠. 자신의 선택에 대한 두려움과 남이 내 선택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공포심이 함께하고 있는거에요. 뒤에서는 빨리 입고 가라며 재촉하고 미처 옷을 챙겨입지 못한 사람들은 부랴부랴 그 중 많이 선택하는 옷을 입거나 많이 남아있는 옷을 고르거나 둘 중 하나에요. 미처 옷을 입지 못한 채로 알몸으로 우두커니 서서 고민만 계속하는 사람들은 이미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죠. 


'나이가 몇살인데 아직도 알몸이야?'



...


우울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려 한다거나 어떤 현실을 미화하려는 생각은 없어요. 다만 여기에서 이제 막 수능을 끝낸 여러분이 하셔야 할 첫번째는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탈출하셔야 해요. 이거 굉장히 보수적이고 수동적인 관념인데다 12년동안 새뇌까지 당한 여러분들에게 단박에 벗으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지금 여러분들이 주어진 시간에서 가장 빠르게 진로를 선택하려면 적어도 누군가에게 내가 인정받고 평가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부터 나오셔야 할 거에요. 물론 여러분들 대부분이 회사에 들어가서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일을 하는 피고용인이 된다면 제 이야기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때 하셔도 늦지 않는다는 거에요. 적어도 자신의 진로를 생각할때까지 그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처음부터 그런 생각으로 만들어진 자기 인생은 아주 오랫동안 스스로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박탈하게 될 지도 모르거든요.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사회에서도 여러분들을 신경쓰지 않고 여러분들도 주변 사람들이 뭘 하는지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 크게 관심을 두지 마세요. 그리고 다시 한번 가야할 길을 보시는 겁니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에게 들리는 조롱에는 귀를 닫으세요. 적어도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특별히 간섭을 하려 들지는 않을테지만 나처럼 살라며 얼른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새뇌시키는 사람은 있을 수 있으니까 조심하시고요. 핵심은 여러분들이 영원히 있으나 마나 한 사람으로 살다가 죽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시기부터 '꼭 필요한 사람'을 목표로 인생을 정할 필요는 없다는 거에요. (몇 번을 강조해서 미안하지만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라 그래요)


기업 성패를 남탓으로 돌리고 싶은 사장님들이 많이들 읽는 책이에요.


...


있으나 마나인 분들 환영합니다. 여러분들은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강박관념에서 탈출하신 분들이에요. 적어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될 위험은 조금 덜게 된 거죠. 이것만으로 절반 이상은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제가 하는 이야기도 약간은 모순된 것일지도 몰라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따르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으면서 저 자신은 교과서에다가 제가 말하는 대로 하라고 또 강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다만 가능한 지금 주어진 여러분들의 환경은 지금 당장 바뀔 수도 없고 바뀐다고 해도 여러분들에게 바로 소급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저는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여러분들에게 지금 할 수 있는 한의 최대한이 될 수도 있는 어떤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쓰고 있으니까요.


이제부터는 스스로를 평가할 시간입니다. 물론 공부만 똑같이 열심히 하던 사람들에게 어떤 개성이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고 그 개성을 스스로 찾을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은 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뭐하지만 아무튼 본인의 능력치나 스펙 뭐 이딴 게 아닌 리트머스 종이를 입에 물고 색깔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듯 성분분석을 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거에요.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오래 해도 질리지 않는 쪽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아요. 아주 추상적이어도 상관없어요. 가령 난 세계 최강이 될꺼야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치면 사슬이 돌고 돌아 결국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세계 최강이 되는 길이 보이게 되거든요.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될 거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해질거야, 뭐 이런 것도 마찬가지일거에요. 꿈이라는 건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꿈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마치 인생이 재미없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말동무같은 존재가 되어주어야해요. 많은 자기계발자들이 꿈이라는 존재에 대한 강박관념때문에 자신을 채찍질하고 결국 몸이 골아버리는 경우를 너무 흔하게 봐왔는데, 꿈이라는 존재조차 남에게 보여지는 악세서리 취급 가치관의 세상에 살고 있어서 그래요. 굳이 꿈을 너무 갖는 것 자체에 집중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인생은 꿈조차도 간섭할 권리가 없어요.



방향이 정해졌으면 이제 세상과 타협할 시간이에요. 내가 어떤 걸 이 세상에 지불하고 내가 생각한 그것을 따낼 수 있는지 진지하게 포커 게임을 해보는 거에요. 흔하게 대학등록금이 들어갈수도 있고 어떤 스쿨의 수강비용이 될수도 있고 어쩌면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지만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긴 시간이 필요할수도 있어요.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무지무지 많이 만나러 다니며 자신을 알려야 하는 기회가 더 많이 필요할수도 있는거고요. 제각각 지불해야 하는 것들의 형태도 다르고 그 결과도 천차만별이에요. 그렇게 주판을 튕겨보는거죠. 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떤 것도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된다는거에요. 돈이 많이 들어가면 진로를 바꾸지 말고 우회로를 찾으시고, 담금질의 시간 동안 주류에서 멀어진 것에 대한 소외감이 걱정된다면 굳이 담금질을 계룡산에 처박혀서 도닦듯 할 필요는 없으니 대학 들어가서 대학생 생활 해보면서 준비해도 괜찮다는 거에요. 


수능 보고 오신 분들에게 너무 길고 지루하면 안될텐데 이미 길어졌지만 아무튼 이 단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는 거에요. 젊어서 바싹 벌어서 노후가 초라하지 않게 대비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지금 당장 반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진짜 오싹하겠지만 우리 중 누군가의 인생은 그 열심히 준비했던 노후라는 것을 겪어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수도 있어요. 그게 인생이거든요. 그러니까 지금의 고통을 견디고 나중을 즐기라는 식으로는 절대 접근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의 인생은 종착역에 가는 과정 1년 1개월 1시간 1분 1초 하나하나 모두 소중하게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야 후회가 없거든요. 준비가 고통이면 완성되었을때의 쾌감은 완성 그 자체에서 오는 게 아니라 고통에서의 해방에 따른 것이라는 걸 여러분들은 수능으로 충분히 아셨으리라 믿어요.



가는 길이 굳이 고통일 필요가 없어요.


...


마지막으로 당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여러분들의 인생은 컨티뉴, 리벤지는 있어도 리셋은 없다는 거에요. 어떤 길을 가더라도 돌아오는 길은 반드시 잊지 마시길 바래요. 되돌릴 수 없는 일은 하는 데에 정말 많은 생각을 하시고 시간을 들이세요. 혹자는 주저없이 순간 미친사람처럼 내지를 수 있어야 인생에 진정 미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한 사람들은 리셋이 이미 필요가 없는 사람들일 뿐이잖아요. 인생 언제든 어느순간에든 실패할 수 있어요. 당장 수능도 그렇잖아요. 수능에서 실패했다고 벌써 어떤 여학생이 또 올해도 이번에도 어김없이 죽었어요. 리셋 버튼이 필요한데 리셋 버튼이 없으니 그게 너무 좌절스러웠던 거죠. 길을 오는 데 돌아오는 길을 봐 두지 않았으니 막다른 낭떠러지에 다다르니까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뒤에서 몽둥이 들고 쫒아오는 선생님 부모님이 무서워 뒷걸음질치다 저도 모르게 떨어진 타살과 뭐가 다른가요? 


여러분들은 수능이 참 무서웠을거에요. 뒤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기대의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이 벼랑 끝에서 여러분들에게 극딜을 남발하고 여러분들은 뛰어내리느냐 마느냐만 남긴 채 이판사판인 심정으로 시험을 봤을 거에요. 앞으로는 그러지 마세요.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기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부칠 필요가 없어요. 항상 가던 길은 뛰어가더라도 젊은 헐기로 대쉬하느라 주변 풍경이 흐려지더라도 언제든 뒤로 돌아갈 수 있다라고 스스로에게 믿음을 줄 수 있도록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외워두자구요. 그렇다고 무슨 저축이나 보험 같은 걸 들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해서 언제든 넘어졌을때는 컨티뉴, 막다른 길에 부딪히면 언제든 리벤지 할 수 있다고 자기 자신에게 믿음을 주라는 거에요.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지 내 자신의 목숨과 인생을 지킬 수 있을 거에요. 이제 그걸 스스로 해나가야 하는, 롤러코스터에 타고 올라가는 딸깍소리를 들으며 언제 끝나는지 얼마나 크게 떨어질지에 대한 불안과 환희가 동시에 함께하는 바로 그 시기인거에요. 아무리 무서운 롤러코스터라고 해도 결국은 제 자리로 돌아오는 길이 분명히 있잖아요. 불안하다고 무섭다고 중간에 뛰어내리지 말라는 거죠.



여러분들에게 참 쉴 틈을 안 주는 세상이에요. 수능 끝났더니 진로 정해라, 면접 준비해라, 대학 눈치싸움 해라, 재수할지 안할지 결정해라, 여태 하라는 대로 다 했더니 이제와서 이런식이라니 참 힘빠지고 지치는 일이에요. 뭐 그리 하라는 게 많은지 모르겠죠? 지금은 그냥 ㅗㅗ 날려주시고 조용히 자신의 입에 리트머스 종이를 하나 물고 며칠이든 몇주든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잊고 '내가 나한테 필요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네요. 내가 나한테 필요한 사람이 되면 인생을 후회없이 살고 쓰러져도 일어날 수 있으며 떨어져도 절벽에 매달릴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을거에요. 어쩌면 수많은 돈을 모으고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그럴싸한 회사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좋은 노후대비 방법일수도 있어요. 


...


꿈은 포기해도 되요.

근데 인생은 포기하지 마세요.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어요. 

그리고 어디라도 갈 수 있어요.



여러분이라면....충분히





공화국 사회교과서 제 7장 - 수능도 끝났는데 이제 뭘 해야 하죠 를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2. 8. 23. 17:48

(ex는 예시)

 

시급 : 1시간 단위로 급여를 책정하여 지급

ex > 시급 4580원 , 불어 독해 원어민 수준의 통번역 숙련자 모집

 

일급 : 하루 단위로 급여를 책정하여 지급

ex > 일급 5만원, 근무시간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 (20시)까지

 

월급 : 월 단위로 급여를 책정하여 지급

ex > 노력 여하에 따라 최대 월급 350만원까지 가져가시는 분도 봤어요

 

연봉 : 연 단위로 급여를 책정하여 지급

ex > 연봉 1800, 기본급 100만원, 연장, 주말, 특근 수당 50만원

 

여성 우대 : 여성 지원자를 우대하겠다는 뜻

ex > C,C++ VC,JAVA 안드로이드 경력 개발자 모집,  여성만 지원바람

 

 

 

 

(ps는 채용자의 속마음)

 

급여 추후협의 : 급여를 채용 후 책정하겠다는 의사표시

ps > 내가 보기엔 조뚜 아닌 일인데, 내가 주고 싶은 급여를 그대로 쓰면 아무도 안올거 같고 해서 일단 면접으로 불러내서 애가 절박하면 흥정해서 최대한 내가 원하는 급여까지 깎아야겠다.

 

근무기간 추후협의 : 근무 기간을 채용 후 결정하겠다는 의사표시

ps > 상태 봐서 괜찮은 애 싸게 부리게 되면 오래 묶어둘거고 안그런거면 맘대로 짤라야겠다.

 

근무시간 추후협의 : 근무 시간을 채용 후 결정하겠다는 의사표시

ps > 끝나는 시간이 늦으면, 추가수당 달라고 하면 안되니까 적당히 갈궈서 당연한걸로 만들어야하고 좀 일찍 끝나면 일찍 끝난만큼 시급 깎아서 주고싶다.

 

학력무관 : 채용에 있어 학력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

ps > 학력 높은 머리 굵은 애들 괜히 연봉 많이 달라고 하니까 고졸애들이랑 하향평준화시키고싶다.

 

신입 : 해당 직종 관련 경력이 없는 순수 신입 인력을 뜻함

ps > 데려와서 가르치는 시간동안 수습임금주고 안되면 짜르지 뭐

 

경력 : 해당 직종 관련 경력이 있는 숙련자 인력을 뜻함

ps > 어떻게든 거저먹고싶다.

 

군필자 우대 : 병역을 필한 남성을 우대하겠다는 뜻

ps >  군대갔다온 놈들이 후임부리듯 부려도 군말없지 갈궈도 개념차고

 

 

 

(그밖에 난해한 사례)

 

정해진 이력서 양식을 다운받아 작성해서 이메일로 보내주시오라고 써있으면서 해당 사이트내 온라인 지원을 허용한 경우 = 주로 인력 아웃소싱이나 헤드헌팅 회사들이 벌이는 병신짓 + 자사 헤드헌팅 실적 과시용, 쿵짝을 맞춰주는 것이 필요하나, 전문업체들이라고 해서 피드백이 성실한것은 아님

 

근무 시작일이 오늘부터 말일까지인데 채용기간이 말일까지인경우

(ex : 채용공고 등록일 8월 24일, 근무기간 8월 22일~8월 31일 , 이력서 접수기간 8월 31일까지)

= 근무기간이랑 채용기간을 혼동한 사례로 채용담당자나 업주가 그닥 제정신이 아닐 수 있으므로 주의

 

분명 여긴 알바사이트인데, 정직원만 모집한다고 알바 할 사람은 꺼지라는 내용의 채용공고가 올라온 경우 = 정직원 사이트에 아무리 올려도 도무지 채용이 안되는 직종인데, 조건은 허용범위 이하라서 알바나 전전하는 애들 좀 이용해서 싸게 후려먹으려는 심리이므로 어지간히 급한게 아니라면 정규 취업은 가급적 제대로 된 취업전용사이트를 이용할 것

 

 

 

공화국 사회교과서 4부가 곧! 업데이트됩니다

ps > 당분간은 별 예정없다는거지 뭐

 

posted by RushAm 2012. 8. 21.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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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에 도전중인 취업준비생입니다. 그런데 이 회사라는 곳은 지금까지 제가 있었던 학교와는 좀 다른 것 같아요. 대학을 처음 고르고 공부를 할 때는 제가 직접 학교를 고르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하던 공부를 멈추고 다른 것을 할 수도 있었잖아요. 근데 회사를 보면 짤리지 않으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상사에게 조아리다가 인생이 끝나는 것 같아요. 싫은 소리도 함부로 못하고, 대체 회사라는 곳은 어떤 곳인건가요? 회사에 들어가면 특정 사람들에게 내 인생을 저당잡혀 살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

 

먼저 회사는 한자어에요.

모일 회에 일 사짜를 써서 모여서 일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원래 의미 그대로 회사는 그냥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하는 것을 말해요. 이 단어에는 지금 학생이 지적했던 조직의 상하관계에서 일과 관계없는 불필요한 머리 조아림의 의미도 담겨있지 않고 싫은 소리를 함부로 할 수 없는 억압적인 카스트 관계도 뜻에 포함되지 않아요. 한마디로 지금의 회사라는 곳은 말만 회사지 전혀 다른 조직이 되어있다는 결론이 되죠.

 

공동체 사회에서 회사 즉 모여서 일한다는 개념은 굉장히 중요했어요. 왜냐하면 모여서 일을 하면 보다 큰 일을 같은 목적의식을 가지고 하게 되니까 가내수공업 수준의 일이 뭉쳐저 하나의 산업화를 이루게 될 수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영국 산업 혁명 이전에는 지금의 명품 잡화 브랜드들의 전신이었던 1인 회사 시스템 이른바 자영업 형태가 거의 대부분이었어요.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충분히 사회는 정상적으로 돌아갔던거죠.

 

몇백년에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의 세계적인 명품 잡화 브랜드들도 대부분 이런 작은 가내수공업에서 출발했다는 사실...

 

그런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변화가 닥치듯 벌어진 영국의 산업 혁명은 이런저런 문명의 발달에 의해서 이루어지긴 했어도, 기본적으로는 모여서 대량생산을 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가 없었던 국가적 위기에서 발로된 것이었다고 해도 무방했을거에요. 식민지는 늘어났고 원자재 물자는 늘어났는데, 이 원자재만을 판매하기에는 너무 이해타산이 맞지 않았고 이를 일종의 촉매제라고 판단한 자본가들이 사람들을 모아서 대량생산을 할 수 있는 조직 체계를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한게 현대 회사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근데 자본가에 의해서 회사가 설립되고 그 뒤에 노동자를 모으는 과정 자체, 그리고 본디 왕권주의 국가였고, 수많은 식민지를 노예처럼 거느렸던 영국이 만들어놓은 이 회사 조직의 근간이 건전했다고 보기는 어려웠어요. 공화정이 되었어도 입헌군주제의 반쪽 공화정이 된 영국 계급사회가 뿌리뽑힐리 없었죠. 당연히 자연스럽게 회사를 운영하는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지 않아요. 임금 체불이나, 질 떨어지는 음식을 배식하는 정도는 양반이고 생산 라인 천정 높이를 허리를 펼 수 없는 높이로 맞춰서 쉴 틈을 주지 않는 등의 일화까지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이에 대해서 이렇다할 토를 달 수가 없었어요. 이미 사회는 가내수공업만으로 먹힐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기때문에 이 회사에서 내가 쫒겨나게 된다면 가족을 부양할 길이 막막했던거죠.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면서 아무 기준도 없이 던져진 공화정의 첫 정치적 시험 모델에 의한 희생양들이었던 셈인데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을 가진 사람이 그 자본을 노동력으로 환산해서 노동자에게 나누어주는 역할을 하다보니 당연히 자본을 가진 사람의 카스트가 더 높게 형성될수밖에 없고, 자본을 가지지 않은 노동자들은 이에 대항할 수 없었던거에요.

 

그래서 노동자들은 불만을 가진 다른 노동자들과 모여 한 목소리를 내고 집단 행동을 하는 것으로 자본에게 맞서게 되는데 이게 지금의 노동조합, 즉 노조의 원형이에요. 당연하겠지만 자본가는 자신이 투자한 자본이 노동자들에 의해서 시간에 맞춰 더 불어나지 않으면 엄청난 손해를 보기 때문에 이들의 연합 권력과 같은 눈높이에서 협상을 할 수 밖에 없었던거죠. 노동 조합의 요구는 당연히 자본가가 돈을 버는 데에 우리의 노동력이 더 높은 가치를 평가받기를 원한다는 거에요. 임금 인상 혹은 근로시간 단축이 핵심인거죠. 우리의 노동시간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 지금 주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주던가 지금과 똑같은 돈을 줄 거면 노동시간의 가치가 더 비싸졌으니 우리는 그만큼 더 적은 시간을 일할거라는 주장을 펼치게 되요. 사실 지금 사회에서도 대부분의 노사간 협상 쟁점은 큰 틀에서 보면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인상, 이 두 가지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어요.

 

 

마치 사필귀정처럼 이 산업 혁명 속에서 엽기적인 형태로 희생당했던 영국의 노동자들은 이후 세계 최고의 퍼주기식 보상 복지 정책을 누리게 되요. 국가경제의 발전에 대한 지분 요구가 가능했고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안되었던 불가피한 과거가 있었으니까요. 그 유명한 영국병의 등장 역시 이같은 반인륜적인 지주들의 산업 혁명에 따른 댓가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치룬 어쩔 수 없는 역사였을거에요. 그런데 이 영국병이 생길만큼 복지가 나아졌다고 해서 회사 내의 전통적 계급사회의 잔재가 완전히 걷혔다고 말하기는 힘들었죠.

 

영국병 창궐로 인해 노동자와 지주 계급이 한번 뒤집힌 후에야 간신히 잡힌 양측의 평등 균형으로 모든 게 해결되었을 것 같았지만, 실상은 달랐어요. 세계 금융의 중심인 영국 은행들은 복지 리스크가 심해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는 자국 기업에 더 이상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해주지 않았고 기업은 부실해졌으며, 노동자들은 부실한 기업 속에서 제조업 노동자를 업신어기는 등의 자체적 카스트를 만들어버리고 말죠. 자본가 카스트가 몰락하고 노동자에게 권리가 돌아왔지만 노동자들이 스스로 행했던 건 결국 자기들 내에서의 차별을 통한 우월감 조성이었다는거죠. 한마디로 입헌군주제를 포기하지 않는 전통적 계급사회에서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성공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인지도 몰라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살기 좋다며 칭송받는 유럽의 복지는 끔찍한 희생에 대한 자연스러운 보상이었어요.

 

 

 

영국으로부터 비교적 이른 독립을 완성한 미국의 경우는 영국과는 문제가 조금 달랐어요. 바로 흑인이라는 존재였죠.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의 노동력은 포기할 수 없었는데, 이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해줄 생각은 에초에 없었어요. 18세기 초 진즉에 흑인 노예 해방을 단행했던 서유럽국가들과는 달리 미국은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겨우 표면적인 노예 해방이 이루어졌고 그나마 '공화정'하에서 이루어진 노예 해방 선포가 사회적 강제성을 가질 수가 없었어요. 미국의 거의 모든 산업에서의 '하찮은 일' 즉 노동자 계급은 흑인들 차지가 되어있었고 암묵적으로 공고해진 인종차별은 이들에게 제대로 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거죠. 당연히 미국의 노동운동은 흑인들의 해방운동과 권리 찾기가 될 수 밖에 없었고, 인종차별이라는 거대한 벽과 마주해야했던 어려움이 있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권리 회복이 영국처럼 원활하게 될 리가 없었어요. 에초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가 평등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팽패했죠. 이렇게 한번 떨어진 인식은 자본가들을 기고만장하게 했고 미국에서는 수많은 노동 운동과 노조가 자본가들에 의해 힘으로 탄압을 받게 되요. 노조는 폭력으로 제압당하기 일쑤였고, 법은 이를 제제할 어떤 장치도 마련하지 않은 채 의도적인 방관을 일삼았어요. 처음부터 노동자의 계급을 최하층으로 규정했으니 이들을 구제할 생각이 없던 게 당연했던거죠.

 

생동성 실험 알바 해보신 분 있나요? 그런데 이들이 맞는 건 백신이 아니라 매독균이에요.

 

그런데 미국이 금융위기와 대공황을 거치면서 와그너법이 제정되었고 노동자의 권리가 일면 상승하게 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의 질떨어지는 노동은 흑인들 차지였어요. 이게 영국이랑 다른 점은 에초 영국은 뭐가 어찌되었던 영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리기 위한 노동자의 권리 찾기에 주력했지만 미국에서의 노동자들은 에초 다른 인종이라는 어떤 넘사벽의 신분적 한계를 가지고 출발했기 때문에 권리를 찾는 것도 매우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어요. 처음부터 인종차별이라는 것은 흑인을 탄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흑인이 백인의 영역 즉 '지주'의 영역을 넘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거든요. 흑인은 노동자가 될 수 있지만 사장은 될 수 없고, 도시의 시장도, 대통령도 될 수 없도록 하는, 전혀 다른 세계를 그들끼리 살게 만들었던 게 미국의 인종차별이었어요.

 

임금 문제로 까불다간 태워죽였다네요.

 

미국이 20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마틴루터킹의 공민권과 더불어 짐크로 법이 폐지되면서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이 법으로 금지되었어요. 아니 법으로 인종차별을 허용했던 게 폐지되었다고 보는게 맞죠. 미국은 아예 흑인들의 사회적 차별을 법적으로 허용했던 나라였어요. 그런데 이게 풀렸다고 자본가들의 '그들만의 리그'만들기가 사라진것은 아니었어요. 인종차별이 사라지니까 이제는 인종 차별에 가난까지 더해 아예 가난한 계층이 자신들의 계층과 함께 사회를 구성하는 것을 제한하는 시스템을 구상하기에 이르러요. 한마디로 부자인 사람들은 계속 부자일 수 있도록, 정치와 경제가 유착관계를 벌여 서로 공존할 수 있도록 기부와 혜택을 주고 받게 된 거죠. 금융자본의 독점으로 인한 일하지 않는 자들의 부의 축적, 지금의 99%운동도 여기에서 촉발되었던 거에요.

 

 

 

 

 

왜 이렇게 장황하게 다른나라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는지 아직 잘 모르시겠다고요?

 

그건 우리나라의 회사라는 곳이 애석하게도 이처럼 전혀 다른 노동운동의 과정과 결과를 가진 영국과 미국의 가장 안좋은 부분을 따와서 합쳐놓은 형태가 되어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의 회사는 미국의 시스템을 베이스로 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에초 단일민족이라서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자본가들은 일단 노동자 계층을 만들고 그들이 절대 자본가를 넘볼 수 없는 갖가지 사회적 제한 장치를 만들어두고 있어요. 그리고 그들이 노동자로서 어떤 권리에 대한 요구를 하는 순간 자본가들은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흑인들을 탄압했던 미국의 자본가들처럼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폭력을 휘두르게 되는거죠.

 

그런데 이런 미국 시스템을 베이스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 회사가 롤 모델로 삼았던 기업들은 대부분 일본 기업들인데요. 일본은 입헌 군주제이기때문에 의미적으로 매우 닮은데다, 처음 문물을 받아들인 영국의 기업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영국의 노동자 착취와 그에 따른 보상으로 파격적인 복지 혜택을 내세운 후유증까지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고, 회사 내 자발적 계급사회 구축까지 거의 완벽한 영국식 모델을 정착시킨 나라인거죠. 그런데 이 모델을 이미 미국식 베이스로 사회 문화를 짠 한국에 짜맞추다보니 우리나라는 입헌군주제가 아닌 나라에서 회사 내 계급사회를 볼 수 있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낮은 노동자를 차별하는 미국식 노동자 차별의 잔재가 남아있으니까 계급별로 서로 차별하고 차별당하며 그것을 당연시하는 어처구니없는 회사 문화가 정착되어버리고 말아요. 여기에 그 계급사회의 위에 있는 자본가들은 그 계급사회와 철저하게 선을 긋고 계급사회와 별도의 사회를 구축하며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는 미국의 인종차별에서 촉발된 문화를 정착시키기까지 했어요.

 

 

 

아휴 더러운 비정규직 새끼들과 같은 자리에 앉기 싫어요~!

 

우리나라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가르치면서도 회사 내에서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계급화시키고 비정규직은 일용직, 파견직을 계급화시키고 차별해요. 대학생들이 벌이는 무개념 행동들 중에 학교 청소용역노동자들을 고압적으로 대하는 동영상이 간혹 화제가 되는데 바로 이런 기형적인 문화가 낳은 현상인거죠. 그렇게 차별하면서 얻은 계급의 최정점에서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게 만든 자본가들에 의해 명예퇴직을 당하거나 임금피크제로 더 이상의 계급 상승을 억제당하고 말죠. 그렇게 사회는 반복될거에요.

 

우리나라의 회사들은 미국과 영국 혹은 일본의 자본가와 노동가가 만든 회사 문화 중 자본가에게 유리한 부분만 골라서 섞은 회사 문화를 만들어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한국 회사 문화는 백약이 무효에요. 영국이나 일본은 입헌군주제라는 배경적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회사 내 계급체계를 타파할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 모델을 그대로 가져와서 적용할 수 없는 완전한 공화국 사회이고, 미국의 노동자 권리 상승 모델을 가져오기엔 에초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었기 때문에 인종차별에서 촉발되었던 그들의 사정과는 전혀 다른 상황일수밖에 없어요. 어떤 나라의 모델로도 지금의 노동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 한국 회사 문화가 만든 사회의 우울한 단면인거죠.

 

1960년데 짐크로 법이 폐지되고 노동조합의 권리가 높아지자 미국의 마피아는 이 노동조합들을 장악하며 사회에서의 영향력을 키워나갔어요. 한때 미국 정부는 마피아를 탄압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노조의 활동에는 짤없이 공권력을 투입했고 노동 운동은 인명이 죽어나갈만큼 매우 과격했었던 적도 있었어요.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가 회사 내 갈등에 대해 노동자를 억압하는 자본가들의 불법적인 행동을 사실상 방조하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지도 몰라요. 노동자는 범법자라는 인식도 아마 여기에서 촉발되었겠죠.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인데도 말이에요. 설마 그때 미국의 부패한 경찰들과 자본가들처럼 지금 정부가 자본가들에게 돈을 받고 노조 탄압을 묵인했을리는 없을거에요. 암요

 

 

...처음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회사는 모일 회, 일 사로 만들어진 단어에요 영어로는 COMPANY인데, 이것도 모여서 일한다 혹은 모인다라는 의미 이상을 담고 있지는 않아요. 모여서 일을 하는데에 처음부터 계급이 있고 가져가는 이익이 정해져 있을리는 없어요. 자본의 가치만큼 시간과 인생을 들여 쏟는 노동의 가치도 그에 버금가죠.

 

사람이 모여요. 같이 일을 하기로 해요 제각각 재능이 다르죠. 누군가는 경영을 잘하고 누군가는 힘이 세서 일을 잘하고 누군가는 언변이 좋아서 영업을 잘해요. 이 셋의 능력 중 어떤 게 비싸고 어떤게 싼 능력인지는 누구도 판단할 수 없어요. 당연히 그 셋 중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자신과 다른 두 사람의 능력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고요.

 

수익이 생기면 수익을 배분해야 해요. 당연하겠지만 처음에 돈을 만지게 되는 건 경영쪽을 잘하는 친구겠죠. 그 순간 권력이 생겨요. 이 친구는 다른 친구들에게 지금 100원의 수익을 올렸지만 사실은 10원밖에 수익을 내지 못했다고 속이거나 혹은 100원의 수익을 지금 올렸지만 회사가 조금 더 크기 위해서는 이걸 지금 당장 나누는것보다 일단 회사의 공동자산으로 해두고 나중에 더 크게 불려서 나눠갖기로 해요.

 

 

그런데 이 돈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경영을 담당하는 친구만 알게 될 수 밖에 없으니 경영을 담당하는 친구는 회사 사정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 즉 다른 친구들에게 수익이 잘 돌아가지 않는 쪽으로 꾸며내거나 혹은 서류와 법적인 절차를 통해 회사 자체의 공동 자산에 대한 소유권 지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쪽으로 바꾸기도 해요. 이렇게 되면 다른 친구들에겐 회사에서 나온 이익에 대해 내가 생각한 만큼의 돈만 주면 되지만 나는 회사가 내고 있는 수익 대부분을 먹을 수 있게 되는거죠. 다른 두 친구는 평생 경영하는 친구가 정해놓은 돈만 받으며 살게 되지만 경영하는 친구는 정말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되고, 이 부를 축적한 친구는 다른 친구들이 혹시라도 이런 불공평하고 떳떳하지 못하게 번 돈을 의심할까봐 이 돈 중 일부를 정부에게 나눠주고 이들이 내가 가진 비밀을 알지 못하게끔 하는 한편, 이 친구들이 나한테 반항을 하면 불법적인 수단을 써서 막아도 내가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게 되요. 자신이 일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이 버는 것을 정당화시키고 싶었던거에요.

 

 

...우리나라에서 회사라는 존재는 이미 모여서 일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경영을 하고 돈을 가진 사람이 일방적인 권력을 가지고 모여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평등권을 짓밟는 것이 당연하게끔 시스템을 손본데다가 다른 나라에서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삼았던 파격적인 복지 정책이나 정부 차원의 차별 금지법 신설조차도 자본으로 막는 이기주의의 극이 어디인지를 잘 보여주는 최악의 집단이에요.

 

갑이라는 단어가 유행어가 될 줄이야...

 

...우리나라의 정부라는 존재는 회사가 이런 최악의 집단이 될 때까지 방조했고, 당신의 가족 부양과 노후를 도의적으로 불안하게 만드는 정책을 많이 써가면서 기업이 당신의 가족과 노후를 볼모로 당신을 착취할 수 있도록 꾸준히 어시스트를 하고 있어요. 국민에게 서비스를 한다며 당신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자들에게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서비스 마인드로 당신을 좌절에 빠뜨리는 최악의 집단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콤비에요.

 

 

당신은 취업을 해서 회사라는 집단에 들어가는 동시에

이런 새끼들이랑 평생 싸워야만 하는거에요.

 

...

 

당신은 지금 당신의 생활을 위해서 고맙게도 돈을 주는 자선단체에 봉사를 하기 위해 입사를 하는 것이 아니에요. 당신은 당신이 가진 능력을 응당 필요로 하는 조직과 그 조직의 돈을 필요로 하는 당신 사이에서 그 능력을 두고 거래를 위한 흥정을 해야 해요. 그것이 취업이라는 작업인거죠.

 

대부분의 채용 공고에는 그들이 원하는 당신의 연봉이 쓰여져 있지 않아요. 철저하게 감추죠. 당신은 그 공고에 써 있는 '이력서에 반드시 희망 연봉 기재'라는 항목을 보고 얼마를 기재해야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서는 안되요. 왜 이 녀석들은 자기들 패는 보여줄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내 패는 먼저 보고 사기도박판 장난질을 일삼으려 하나? 이런 회사는 면접 안 봐도 뻔하다라는 당당함으로 맞서야죠

 

 

입사한 뒤에도 언제나 당신은 계약 당시 약속했던 것들이 잘 지켜지는지, 지켜지지 않았다면 어째서 제대로 지키지 않는지, 내가 계약 사항을 위반한 사실이 없는 만큼 당신들도 계약 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내 능력을 받을 권리가 없다고 분명하게 말하세요. 그들은 '인맥'이니 '이 업계는 좁다'는 식으로 자신들에게 어느 정도 봉사를 하지 않으면 업계에서 당신의 평판을 떨어뜨려 이직을 어렵게 만들거라는 협박을 일삼을거에요. 만일 그런 이유로 타사 이직을 제한하고 평판을 떨어뜨린다면 충분한 자료를 수집해서 경찰에 신고하세요. 직장내 협박 공갈로 충분히 처벌받은 사례가 있어서 고소가 쉬울 거에요. 같은 예로 직장 내 계급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정신적 폭력 행위도 충분히 처벌 판례가 있으니까 그런 느낌이 감지가 되는 즉시 권리를 찾으면 될거에요.

 

...라는 생각은 반드시 머릿속에 두고 취업을 준비하세요. 잠시 분위기에 휩쓸려서 회사 조직의 거대함에 잠시 물들어버릴지라도 나는 이 회사에 고용되어 생계에 대한 목숨이 걸린 일을 하는게 아니라 회사와 난 서로의 필요성에 의해 엮이는 관계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매사에 아쉬워함을 버리세요. 회사는 지금 필요없는 인력을 국가가 억지로 강요해서 뽑아놓고 돈 주는 게 아니라구요. 아니 설령 국가가 억지로 강요해서 뽑는다고 해도 그 강요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당신은 꼭 필요한 존재인거에요. 회사는 면접이라는 작업부터 당신의 멘탈을 통째로 갉아먹으며 너 따위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지만 니가 운이 좋아서 이 회사의 녹을 받아먹게 되었으니 고마운줄 알라는 식으로 당신이 가진 능력을 극한으로 폄훼할거에요. 절대 휘둘리시면 안되요.

 

 

 

 

 

끔찍하지만 건투를 빌게요.

 

 

 

당신의 삶에

승리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공화국 사회교과서 제 3장

- 끝 -

 

posted by RushAm 2012. 7. 19. 17:10

이 글은 대한민국에서 정규교육을 이수받고 있거나 혹은 이수받은 이후 이 대한민국 사회의 근간인 민주주의의 시민 권리와 국가 혹은 유관기관 및 기업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왜 여기에 있어야 하고 자신이 왜 지금 이것을 하고 있어야 하며 이걸 하면 정말 제대로 앞길이 트이는지에 대해서 매우 불안해하고 계시는 분들을 위해 쓰여질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회를 살아가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알고 계실만한 내용이기 때문에 특별히 새롭거나 흥미로운 내용이 되지는 않을 것 같으므로 '뭐야 이거! 다 아는 내용이잖아!' 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기쁜 마음으로 구독을 중단하셔도 좋습니다. 가급적 어떤 정치적 성향에도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혹여 이 글이 정치적인 지적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제 글이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니라 이미 정치판 자체가 정상적인 꼬락서니가 아니기 때문이기에 느껴지는 착시이므로 너무 우려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본 상담 중 질문 내용은 실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글 형식에 따라 만들어진 픽션입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

저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내년이면 수능 세대가 되는데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학원에 가서 늦은 밤까지 공부합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뭘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공부는 학원에서 더 먼저 배우고 학교에서는 잠만 잡니다. 솔직히 학교 안 다니면 안된다고들 하는데 왜 그런지도 모르겠고, 공부에도 별로 취미가 없지만 그냥 대학 못가면 안된다고 하길래 학원에서라도 열심히 공부하거든요. 그런데 솔직히 다른 특기라도 있으면 좋은데 그런 것도 없고 그냥 공부해서 대학이나 잘 가야할것 같은데, 솔직히 고등학교도 그렇고 대학도 그렇고 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지 왜 가야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

저도 그랬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늘 생각했어요. 한번쯤은 다들 생각했을 거에요. '학교는 왜 다니는 걸까', '학교에서 다니는 지식이 과연 도움이 될까?', '정말 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인생 나락으로 떨어지고 사람구실 못하는 걸까'라는 생각,

 

사실 학생이나 우리의 고민을 더 깊어지게 만든 건 이같은 질문들에 대한 어른들의 이중적인 태도에요. '학교에서 배운 지식 하나도 쓸모없어'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그래도 학교는 나와야해, 뒷구멍으로라도 나와야해' 라는 모순된 답변을 우린 수도 없이 들어왔고, 이에 최면이라도 걸린듯 어떤 이에게는 정말 지옥같고 어떤 이에게는 이보다 시간낭비일수가 없지만 어떤 이에게는 아주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이 될수도 있는 학교라는 곳을 다니거나 졸업해왔어요.

 

 

 

물론 저도도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대답을 시원스럽게 해줄 수 없어요. 하지만 앞서 예를 든 어른들과는 조금 이유가 달라요. 학교라는 곳은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곳이고 필요없는 사람에게는 1분 1초가 지옥일뿐인 곳이거든요. 필자가 어떤 생각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학교를 다니거나 다니지 말라는 식으로 말해버린다면 필요한 사람에게 악충수를 두거나 필요없는 사람을 지옥에 옭아맬수도 있어요. 한마디로 상투적이며 책임회피적인 이야기로 들려 미안하지만 결국 그 판단은 자기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의 학교, 그리고 그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정부와 그 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화를 공유하며 자라난 이 사회 어느 누구도 학교에서 지금 자라나고 있는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인생에 대한 생각과 고민의 기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있어요. 관심? 그거 대단할거 없지 않나요?. 학교가 뭔지,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인지를 경험론이 아닌 원론으로 설명해주고 스스로 판단하게끔 유도하는 게 전부에요 그 이상을 바라지도 않고요., 그런데 아직 이 세상에서 그런 노력의 흔적을 발견한 적이 없죠? 어느 누군가는 혹시 있는데 찾아보려 노력하지 않는다고 학생을 질책할지도 몰라요. 다만 그정도로 노력을 해야 겨우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 맞을까요?

 

중퇴해서 후회한다는 기사는 많지만 중퇴해서 이렇게 성공했다는 기사는 찾아볼 수 없는데...

 


제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학생에게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스스로 해답을 찾고 결정하는 데에 있어 단 한발자욱만 내딛어도 될 때까지 문 앞으로 이끌어줄 좌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써볼까 해요. 학생이 가진 의문의 본질과 이 사회가 잘 가르쳐주지 않는 부분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학생들에게 지금 소속되어 있는 작은 사회 학교는 물론 그 학교를 축으로 결성된 공동체 사회에 대해 그들 스스로 판단하여 비판받을 수 있도록 있는대로 재료를 다 쏟아주고 싶어요. 그 첫 시간으로 지금 다니고 있는 혹은 다녔었던 학교는 대체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해요.

 

우선 학교를 왜 다닐까에 앞서 생각해봐야 할 것은 지금 학생이 학교를 다니는 것을 과연 누가 원하고 있을까에요. 학부모님도 그렇고, 선생님도 그렇겠죠? 아무튼 학생이 학교에 다녔으면 하고 바래요. 그런데 그 분들이 대체 무슨 이유로 학생이 학교를 어쨌든 졸업이라도 하고 어쨌든 입학이라도 시키려는 걸까요?

 

이 사회는 뭐 대단해보이지만 사실 그 조직의 건실함은 좀 많이 떨어져요. 왜냐하면 정말 단기간에 경제 발전을 급속도로 이륙한 나라가 내부를 건실하게 다져놓을 여유가 있다면 정말 말도 안되는거거든요. 당연히 건실하지 못하면 어떨까요? 그래요 대충 하겠죠. 이 사회 엄청 대단해보이지만 진짜 대충 얽혀있어요.

 

 

당시 신분증인 도민증, 일단 한글도 없고...

 

 

이 나라가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서 진짜 아무것도 없었을때 나라에서 제일 필요한 인력은 뭐였을까요? 물론 건설노동자도 필요했지만 그보다 필요한 건 이 나라의 기본적인 행정 체계를 갖출 수 있는 인력이 정말 많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자릴 원했고요. 문제는 이런 일자리는 지금이야 서류 쓰고 도장 찍고 하는 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글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허다했다는거에요.

 

이런 인력이 충분히 공급되려면 일단 학교가 많이 있어야했고 그 학교에서 공부를 많이 시켜야겠죠? 그런데 당시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10살 전후부터 든든한 인력이 되는 인재를 학교에 잘 보내려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학교는 당시 국민들에게 '아이를 맡는다'는 개념으로 학교의 개념을 바꿔요. 즉 초창기 학교는 배움의 장이라기보다 양육기관으로서의 성격이 강했죠. 아무튼 애들 밥이라도 먹이고 시간이라도 때워주니까 일단 학교 보내는 국민들이 적잖이 늘게 되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그 어려운 시기에 왜 그리도 학교를 열심히 세우고 운영했을까요?

 

분단국가였고 휴전국이었던 우리나라는 정부가 직접 학교를 장악해서 어느 정도 북한과 대립되는 그리고 현 정부에 대한 홍보와 사상을 주입시킬 필요성이 있었던거죠. 그래서 당시 학교에서는 애국가를 4절까지 외우고 국민교육헌장을 토씨 한 글자까지 빼놓지 않고 외우게 했던거에요. 학교가 어떤 목적으로 세워졌는지를 잘 볼 수 있는 사례인거죠. 외우지 못하면 구타나 체벌이 그렇게 극심했다고 하네요. 대체 애국가와 국민교육헌장이 교육적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랬어요.

 

교련 수업도 같은 맥락...

 

 

어쨌든 이렇게 학교를 나오게 되면 싫든좋은 한글이랑 계산 정도는 깨치게 되요. 중학교 고등학교 정도 나오게 되면 적어도 공무원정도는 할 수 있는 정도의 지식을 갖추게 되죠. 믿기 어렵겠지만 예전에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공무원 할 수 있었어요. 물론 지식적인 것 뿐만 아니라 이른바 사상적인 것까지 모두 검증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근데 사회 체계가 제대로 안 잡혀서 그 체계 잡기 위해 뽑는 인력 선발에 그 기준이 뭐가 있겠어요? 에초에 뽑는 사람이 뽑히는 사람보다 학력이 더 낮은 경우도 허다했어요. 당연히 선발시험따윈 꿈도 못꾸죠 (누가 출제하겠어요) 그래서 그때는 그냥 어디 학교 나왔다고 하면 일단 어느 정도 배운 놈이라고 인정해주고 그 학력에 맞는 일자리를 주었어요. 이런 사람들이 만든 사회 체계가 튼실할리가 있나요? 당연히 엉망진창이고 몇 번의 치명적인 시행착오를 거쳐서 지금 그나마 좀 봐줄만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엉망진창이에요.

 

그러니까 학교는 우리가 필요로 해서 다니는 게 아니라 에초부터 정부가 나라에 필요한 인재를 키워내서 자기들이 써먹기 위해 세운 기관이에요. 30년 전만해도 전국 주산대회 열리고 모든 학교에서 주판을 가르쳤어요. 산업혁명이라는 70년대에는 실업계 고등학교가 인문계를 누르고 명문가도를 달렸던 때가 있었어요. 모두 그 당시 정부의 경제 정책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바뀌었어요, 적어도 국공립 학교라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고 보면 될거에요. 대학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 요즘 말하는 갑을 관계에서 학교가 갑이고 학생이 을이 아니라는거에요. 당연하겠지만 선생님들이 여러분들을 학교에 옭아매는 이유도 물론 여러분들을 매우 사랑하고 미래가 걱정되어서도 있겠지만 더 대의적인 부분에서 실 끝을 찾아가면 인사고과가 나오고 그 인사고과의 목적에는 당연히 국가정책상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시켜서 이 사회에서 나오는 부산물들을 소비하고 또 생산하는 일원으로 만들려는 계획이 깔려있는거에요. 이 육성 계획에서 여러분이 이탈하면 선생님들은 정부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죠. 선생님들도 정부한테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니까,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거에요.

 

원하는 쪽이 을이 될 수 밖에 없으니 학교에 가기 싫은 학생이 학교에 다니길 원하는 학교와 그 위의 정부가 을이 되고 학생이 갑이 되긴 했는데, 왜 학교를 억지로 다니는 상황이 되었는지 이상하죠? 학교는 나오라고 하면서 대학교까지 나온 형 누나들이 실업자로 PC방에서 총질하는 모습 보면 뭔가 위화감도 느껴지고 그렇잖아요,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요?

 

 

그건 이 나라가 70년대 후반까지는 정부 주도로 5개년 경제 개발 정책 (사회교과서에서 배웠죠?) 같은 것들을 펼치면서 스스로 일자리나 산업의 흐름을 결정하고 기업들이 따라가는 식으로 해왔고, 그렇기 때문에 최신 경제 트랜드를 읽고 어떤 인력이 어떻게 공급되어야 하는지를 정부가 가장 먼저 꿰고 그걸 조절할 능력이 충만했어요. 그래서 계획에 맞춰 학교도 세우고 인력이 나오면 그만큼의 일자리가 이미 준비가 되는 선순환형태가 되었던거에요. 그러니까 그때는 진짜 학교만 가면 정부나 기업이 다 알아서 일자리 만들어놓고 기다리는 판국이었던거죠. 인력이 귀했고, 그래서 대학만 가도 월급이 엄청 높은 일자리 만들어놓고 모셔갈 지경이니 소 팔아서 서울대 보내도 투자금 손쉽게 회수 가능했던거에요.

 

그런데 80년대부터 근 30년동안 제대로 된 정부 주도 경제정책보다는 대기업이 스스로 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바뀌게되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때 정부는 경제개발정책을 세우기보다는 29만원을 벌기에 더 혈안이 되어있었던 것 같거든요.  암튼 정부가 대기업에 경제개발 주체를 넘겨주면서 대기업들은 정말 막강한 주도권을 갖고 급격히 이 나라에서 세력을 키워나가요. 그런데 그 키워나가는 주체가 국민들을 키워내야하는 의무가 있는 정부가 아니라 그런 의무가 있을 턱이 없는 기업이 되면서부터 문제가 심각해져요.

 

인력은 부족하다는데, 채용은 안되던 시절...

 

정부는 더 이상 학교에서 사회에 맞는 인력을 급하게 키워낼 필요성도 없어졌고, 학교는 실이 끊어지니까 이도저도 아니게 되기 시작해요. 더구나 정치가 몇 번의 ㅄ같은 짓거리를 반복하는 동안 기업은 신나게 돈을 벌어들이며 이 나라에 주도권을 잡아나갔고 경제 트랜드를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죠. 그 ㅄ같은 약 7년간의 시간동안 정부는 이 나라의 경제 트랜드에서 몇 년이나 뒤쳐지게 되요.

 

그러다보니 이 갭만큼 학교도 뒤쳐질수밖에 없죠. 기업은 컴퓨터할수 있는 인재를 원하는데 학교는 학생들이 아직 주판이나 튕기고 있었어요. 기업들은 당연히 이런 인재를 뽑지 않죠. 뽑을 의무도 없고요. 그런데 사실 컴퓨터를 하고 하지 않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더 큰 문제는 이 경제의 주도권을 도덕성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집단이 쥐게 되니까 이 권력을 남용하고 싶은 욕심이 들었는지, 경제와 일자리에 대한 선순환개념을 아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놔요. 필요한 인력을 뽑는게 아니라 뽑고 싶은 인재가 필요했던거죠. 이러다보니 사람들은 기술을 배워서 직업을 갖기보다 고학력으로 고임금을 받는 화이트칼라가 되기 위해 인문계를 택하는 비중이 높아지게 되고, 회사들도 이렇다할 능력을 가진 사람들보다 전공이야 어떻든 고학력자를 많이 뽑는 식으로 바뀌어나가게 되요.

 

앞서 서두에 사회 조직이 진짜 대충 얽혀있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그게 왜그러냐면 바로 이 기업, 더 엄밀히 말해 그 안에 있는 기업 조직이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게 되다보니 필요한 능력에 맞는 사람을 뽑기보다 '사적인 이익'에 필요한 인재를 추구하려는 성향이 생겨버린거에요. 같은 고향이나 같은 학교 출신을 더 우대하는 풍토가 생겼죠. 그런데 이게 같은 학교 나왔다고 하면 그 학교별로 사내에 파벌이 생기게 되고 당연히 어떤 능력제로 뽑은 인력들이 아니다보니 능력들이라곤 다들 고만고만해서 어느 파벌이 더 나은지에 대해서 승부가 잘 나지 않았어요. 원판 불변의 법칙이라고 결국 고등학교때 짱먹던 놈이 동창회에서도 으스대듯, 회사 내에서도 좀 먹어주는 명문학교 출신들이 더 어깨를 펴고 다니게 되요. 사람이라는게 공평함 속에서도 서열을 정하기 마련이거든요. (명문학교 나오면 배우는게 아주 쬐끔 낫긴 하지만) 이렇게 학벌이라는게 생기게 되요.

 

 

그리고 학교들은 점차 학교에서 뭘 배웠는지보다 그 대기업의 주력 파벌에 소속되기 위한 프리패스 발급, (졸업장)을 따기 위한 에스컬레이션의 역할을 하게 되는거죠. 당연히 학교가 뭘 가르칠 생각을 할 리가 없고, 학생도 뭘 배우려고 하기보다 턱걸이로라도 학교에 들어가고 졸업장을 따내서 편하게 취업하려는 생각만 하게 되요. 또 그게 됐다는것도 문제였고요.

 

정부는 경제에 관심이 없고, 기업은 정부에게 어떻게든 더 권리 따내려고 돈먹이고 있고 정치는 좋다고 그 돈 받고 정사에는 똥싸놓고, 기업 내에서는 생산직에는 인력부족에 서류에 도장찍는 일만 하는 화이트칼라만 잔뜩하고 능력있는 사원들보다 파벌좋은 사원이 더 잘나가니 회사가 잘 될 턱이 있을가요? 정부에게 따낸 권리를 이용해서 손쉽게 경제 주도권을 잡았던 회사들은 점점 ㅄ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ㅄ같은 상황이 알려지면 부도나니까 부도나기 싫어서 정부에게 없는 돈 털어서 바치고 정부는 부도나지 않는 방법이나 부도를 감추는 방법을 회사들에게 만들어줬어요. 금가는 벽에 페인트칠한다고 벽수리가 될까요? 결국 빵~ 하고 한국 경제는 무너지고 말아요.

 

 

 

IMF가 터진거죠.

 

그러고보니 증권거래소가 본격적으로 태동된 시기도 1980년대 초반이었네요.

 

벤처 기업이 약진하고 중공업이 속속 몰락했어요. 경제는 어려워졌고 실업자가 속출했으며 회사에서는 이미 파벌로 버텨내지 못하고 개개인의 능력으로 경쟁, 즉 평생직장이 아니라 짤리지 않는 경쟁을 해야 했던거에요. 벤처기업들이 요구하는 인력도 이전과 달랐죠. 문제는 이런 변화를 정부가 기업 스스로가 했다면 정부나 교육 부처가 조금이나마 예측이란 걸 하고 인재육성 차원의 교육제도를 손봤을텐데 유감스럽게도 이런 변화가 우리손이 아닌 외국인 IMF에 의해 몇 년이나 계속되는 바람에 우리 정부는 이 생소한 변화에 감도 제대로 못잡고 해메게 되요.

 

IT산업이 뜬다고 해서 컴퓨터 프로그래머 학과가 난립해요. 게임 산업이 뜬다고 해서 게임학과가 난립하고 애니메이션 학과니 된장학과니 순결학과니 하는 이전에는 거의 볼 수가 없던 학과들이 대학에 잔뜩 생긴 것도 이때부터에요. 왜 이런 학과가 생겼고 그것도 초반에는 반짝이나마 인기를 끌었던 이유가 있어요. 사람들이 불안해했거든요. 대학 간판으로 취업하던 시기가 너무 갑자기 끝나버리니까 뭘 어떻게 할지 감을 못잡고 방황하기 시작했던거에요.

 

대학들이 갑자기 등록금을 산더미같이 올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에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나갈 것을 계획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취업문이 막히기 시작하는 분위기가 되자 대학으로 몰렸거든요. 대학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고등학교 이하 학교가 응당했어야 했던 취업이나 진학 진로에 대한 부분을 직접 맡아 해본답시고 ㅈㄹ하기 시작한거에요. 그런데 국가도 어떻게 못하는걸 일개 대학들이 해봤자 얼마나 할 수 있었을까요? 그 결과가 특이한 학과 개설 경쟁과 취업율 경쟁, 그리고 취업율을 높이기 위한 기업간의 산학제휴에 집중하게 되요. 대학 진학율은 덩달아 급증하게 되고 대학들은 그들의 미래를 볼모로 삥을 뜯듯 등록금을 올려댄거에요.

 

대학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대학을 욕할 필요가 없어요. 사실 이게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면 앞서 이야기했듯이 에초 학교를 산업에 이용해먹으며 정부가 인력 창출을 좌지우지하는 형태로 만들었던 것부터가 문제의 시작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정부주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으면 끝까지 그렇게 가던가, 기업에게 산업 전반을 넘겨주려면 교육제도도 함께 개편을 하던가 했어야 하는데 80년대 대기업으로 경제 주도권이 갑자기 넘어가고 난 뒤에는 돈세느라 교육제도 손보는건 신경도 안썼으니까요. 더 냉정하게 말하면 80년대부터 지금까지 학교는 초, 중, 고등학교 모두 거의 변하지 않았아요. 아니 변화를 거부했죠. 그 결과가 지금의 꼬락서니에요.

 

지금의 학교는 80년대에서 정체되어있어요. 정부에 의해 조종되던 꼭두각시로 잘 작동하다가 80년대 정부가 관심이라는 실을 끊어버리면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어요. 지금의 어떤 정치인들도 민생을 살리니 경제를 살리니, 역사관이 어떻니 하는 이야기는 잔뜩 해도 학교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교육감에게 알아서 맡길 심산인건지 일언반구 말이 없어요. 이야기는 별다를거 없이 정부가 하던 거 마저 책임지라는데 그걸 할 사람이 아무도 없나보죠?

 

 

 

이야기가 너무 길었네요.

 

학생, 학생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거 전혀 이상한 거 아니에요. 유난히 학교에서 사고치는 애들 많아지고 왕따가 많아지고 학교폭력이 심화되는거 그거 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뭘 가르쳐야 할지 아무런 확신이 없이 헛구호만 지껄이니까 생기는거에요. 학생 친구들이 가끔 교사들을 무시하고 대들고 그러는거 분명 그 자체로 잘못된거지만 학생들이 무시하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학교는 변화를 거부하고 있으니까요. 아무리 새로운 선생님들이 들어간들 그게 변하겠어요? 구정물에 깨끗한 물 한두방울 떨어뜨려서 정화가 될까요?

 

왜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지금은 학생이 학교를 거부하고 새로운 학교를 요구한다고 해도, 어느 누구 하나 학생 편이 되어주지 않기 때문이에요. 선생님들은 당연히 자신들 인사고과가 걸려있으니 학생이 어떤지는 관계없이 일단 학교에 묶어두기만 하려고 애쓸것이고, 학생의 부모님, (그러니까 학부모분들)은 지금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에 대한 불안함이랑 자신들이 겪었던 학생때와 사회생활에 대한 경험이 뒤섞여서 매우 혼란스럽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태거든요. 그래서 그분들은 학교를 쉽사리 부정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학교를 신뢰하지도 못하니까 학생을 아침부터 새벽까지 잡들이듯 굴려가며 학원에 보내서 그분들도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대비를 시켜야만 안심이 되는거에요.

 

 

 

학생은 을이 아니에요. 정부는 학생이 학교를 잠자코 다녀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어른들은 그네들도 미래에 대한 답을 모르면서 여러분들을 과거 자신들의 경험에 속박하려 들고 있어요. 여러분들은 이제 당당하게 요구해야 할 때에요. 우리가 왜 학교에서 잠을 자고, 학교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애쓰는지 분명하게 알아줄 것을 요구할 수 있어요. 학생이 정말 다니고 싶고, 다닐 만한 학교를 만들어줄 것을 요구해야 해요. 다닐만한 학교가 아닌데도 다닐 걸 강요하고 다니지 않을 경우의 불이익을 사회적 압박을 빌어 협박한다면 그래서 그것이 불안해 대항하기 힘들 수도 있어요. 그래도 지금의 학교가 뭐가 잘못되었고 내가 그 잘못된 학교를 그만둘 수 있는 권리, 그리고 그만둔 학교를 대신할 제대로 된 학교를 요구할 권리가 분명 있다는거 꼭 기억하고 혹시 졸업하고 난 다음에 후배, 조금 먼 미래겠지만 학생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때에도 항상 머릿속에 두고 있길 바래요.

 

 

 

세상의 터닝 포인트가 반드시 지금이 될 필요는 없잖아요.

 

 

 

 

공화국 사회교과서 제 1장 

- 끝 -

posted by RushAm 2012. 7. 15. 14:03

 

 

많이 보셨을겁니다. 그리고 많이 불편하셨을 자료였을거라 생각합니다.

전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외국인 친구들이 이 자료를 보며 제게 이렇게 묻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헤이 Rusham~  내가 KOREA PR 이랑 REP KOREA는 배웠다고 그런데 KOREA IT는 어딜 말하는거지?'

 

...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문제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어느 누구 하나 이 자연스럽지 못한 삶의 질 양극화를 묵묵히 인정하며 이에 순응하고 적응하려고만 할 뿐 누구 하나 이 상황이 이상하다거나 다른 나라에 비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마치 강제 노역에 동원된 사람들처럼 생계를 꾸려야 한다는 절박함만이 가득한 채 매일 아침 사람들은 풀린 눈으로 삼각김밥이나 토스트 따위로 아침을 때우며 부지런히 지하철이나 버스에 올라 별로 다르지 않은 행선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요.

 

대체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높은 근무시간을 자랑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고도 왜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총생산량이 OECD근무시간 하위권을 맴도는 국가에 한참 못미치는 것일까요? 왜 사람들은 이걸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불만스럽더라도 이 나라에 태어난 게 잘못이라며 애써 관대해지고 있는 것일까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누구의 책임인 것일까요? 설령 사회를 몽땅 뽑아 갈아버리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무엇이 왜 잘못되었는지는 알고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휴가 - VACATION

 

예전에는 여름휴가 겨울휴가로 나뉘던것이 이제는 연차, 월차라는 이름으로 굳이 여름이나 겨울에 몰아쓰지 않고 1년 12달 언제든지 필요한 만큼 자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바뀐 게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하는 사람들 이 휴가 그렇게 잘 쓰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대부분 다 쓰지 못하고 1년을 허비하여 버리거나 이연되는 경우가 허다하죠 (이연이 되긴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요. 일단 일이 바빠서입니다. 대기업들이 프로젝트별로 부서가 나뉘다보니 어느 한 쪽이 결원이 발생하면 프로젝트가 올스톱되는 직렬형 조직구조가 되어 자신이 빠지면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기거나 이후 인사고과나 실적 경쟁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경쟁 심리가 근로자를 옥죄는 점도 한몫하고 있죠.

 

이에 파생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로인해 '휴가'를 윤택하게 자신만의 것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잘 모르고 살게 된다는 점입니다. 휴가는 그냥 쉰다고 쉬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영위하는 취미생활이나 목표 등과 연계해서 활용해야 하는데 1년이래봐야 12일, 이걸 몽땅 한번에 붙여서 쓴다고 해도 12일동안 제대로 된 여행 하나 짜는 것도 힘들거든요. 우리나라 여행사들이 내놓는 상품들이 대부분 주마간산식의 풀어내는 숙제같은 여행 코스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짧은 휴가 기간에 여행이라는 것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죠.

 

 

주.마.간.산

 

 

여행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실 여행이라는 것은 단지 어떤 관광지를 가서 그 관광 명소를 보고 오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현지에 머물면서 현지인들의 삶을 지켜보고 현지인들의 먹고 입고 자는 모습을 익히는 것이 여행의 본질적인 의미라는 것은 우리나라와 몇몇 국가들을 제외하고 공통적으로 통하는 여행의 본질이죠. 우리나라의 여행 사진은 각 관광 명소와 자기 자신이 같이 찍힌 사진이 대부분이지만, 외국의 여행 사진은 대부분 '현지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라는 점이 이를 반증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를 흉내내려고 현지인들과 사진을 찍으려 시도하다가 험한 꼴을 당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나는데요. 당연하지만 그들과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로 친해지려면 최소 한 달 정도는 그들과 어울리면서 그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휴가는 총 12일, 여권을 만들거나 비자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여독을 푸는 마지막날을 빼면 이틀이 날아가서 열흘 남짓입니다. 게다가 모처럼 큰 마음먹고 떠나는 여행이니 가능하면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자랑거리를 가져오고 싶은 마음에 '한 국가' 혹은 '한 문화권 (종교)'이 아닌 주어진 시간동안 정말 많은 나라들을 가보는 것을 목표로 삼곤 하죠. 그렇게 10일간의 유럽일주 계획이 짜여지고 우리는 그 여행동안 여행지에서 단돈 1달러에 살 수 있는 엽서에 나온 명소들에 자신의 모습을 합성한 사진을 몇 장 쥐게 되는 것으로 만족을 강요당합니다. 당연히 이런 여행이 만족스러울리가 없죠.

 

 

비단 여행뿐만 아니라 어떤 여가 활동도 단 12일만에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휴가는 마치 12일동안 전쟁을 치르듯 스파르타식으로 벌이는 또 하나의 전쟁이 될 수밖에 없죠. 여행은 대부분의 시간을 '이동'에 투자해야만 하고, 적어도 석달은 배워야 진정한 참맛을 알수 있는 수많은 레포츠들은 12일이라는 시간적 제한에 걸려 속성, 또 속성이 되어가고 우리는 석 달동안 편하게 즐기며 배워야만 하는 것들을 단 12일만에 배워내는 지옥훈련을 해야만 합니다. 모처럼의 휴가가 아까우니까 뭔가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더욱 이를 악물고 말이죠.

 

 

휴가 다녀왔어요.jpg

 

누가 이 악물고 벌이는 12일간의 유럽일주, 레포츠를 위한 지옥훈련을 하고 싶을까요? 더구나 위 그래프에서 보듯 세계에서 가장 많은 근로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누적 피로량을 고려해봤을때 12일간의 강행군같은 휴가를 견딜 만한 체력적 여유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없어질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휴가를 휴가답게 즐기는 것보다, 일과 속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데에 더 익숙해지고 일과의 피로를 푸는 데에 휴가를 사용하는 비중을 점차적으로 늘려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휴가를 쓰는 법에 점차 미숙해져만 가고, 휴가 그 자체가 일 이상으로 피곤하게 된다면 결국 득을 보는 것은 어디일까요? 삶의 질은 마치 최면에 걸린것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흘러가기만 하는 세월이 될 것이고 우리는 인생을 또 다른 누군가의 뒤치닥거리를 위한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것에 모두 쏟아부어야만 합니다.

 

회사에게 묻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회사, 다시말해 회사에서 돈을 제일 많이 가져가는 사람들을 위해 살라며 강요하고 회사에 쓰기로 한 시간 이상의 시간을 가져가는 걸 당연시할 생각입니까? 언제까지 생존을 볼모로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세상을 바꿔가면서까지 사람들을 쥐어짜서 자신들의 일방적인 잇속 분배를 당연시하는 파시즘적 사고방식을 고착화시킬 생각인가요?

 

휴가는 당신이 회사로부터 따내는 게 아닙니다. 휴가는 당신이 회사에게 지불하지 않은 가치입니다. 회사가 그걸 거저 달라고 한다고 함부로 줄 만한 게 아닙니다. 당신은 그걸 지불함으로 인해서 정말 소중한 순간을 같이 보내는 등의 인생의 추억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도 있고 한계까지 도달한 심신이 결국 망가져 병을 불러올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는 그런 당신에게 어떤 형태로도 잃어버린 추억과 건강을 보상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

 

 

기타같은 현악기는 조율이 끝난 뒤에는 항상 기타줄을 모두 풀어놓고 연주할때마다 매번 번거롭게 다시 조율을 반복한다고 합니다. 팽팽하게 조율해놓은 채로 두게 되면 현이 늘어나게 되고 다음 연주할때는 그보다 더 팽팽하게 조일수밖에 없게 되어 결국 약해져 끊어지기 때문이라는데요.

 

휴식은 단지 잉여나 백수라는 이름으로 손가락질 받을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기계처럼 제 몫을 다 하지 못했다고 해서 폐기될만한 무인격체도 아닙니다.

당신은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일개미가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이며 당신답게 살다 당신답게 갈 권리가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진정한 의미의 휴식과 인생의 밀도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른 사람보다 자기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인정받을 인생을 위해서 말입니다.

 

 

 

휴가 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09. 11. 23. 15:10
취업 시즌입니다. 정부 산하 공기업이나 대기업들의 공개채용을 대가 앞두고 대학 졸업을 앞둔 분들이나 그간 취업을 위해 토익 등을 갖추기 위해 1년 내내 고생하셨던 분들의 승부처가 다가오고 있는데요. 이쯤해서 접할 수 있는 뉴스들은 여전히 '대기업들은 예년에 비해 채용규모를 몇백 명 줄였는데 취업자수는 예년에 비해 오히려 몇백 명 늘어서 경쟁율은 사상 최악이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생각이 있다면 자신들도 쓰면서 '아 정말 내가 읽어도 지겹다'는 생각이 분명 들 텐데 여전히 탄탄한 밥줄 속에 기자들의 프로의식은 독자들의 '어이'와 함께 사라져가는 요즘입니다.
Job Fair Held For Veterans In Los Angeles

생각해보면 대기업에서도 각 부서별로 인원확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부서들은 공채가 아닌 수시채용이 활성화되어 있는데 어째서 아직도 사람들이 공개채용에 몰려드는지 의야스럽기는 합니다. 공개채용이 수시채용에 비해 아주 큰 메리트를 주는 것도 아닐텐데요. 마치 대학의 수시입학과 정시입학의 차이를 보듯, 사람들은 홀로 혹은 몇 안되는 사람에 섞이는 수시채용보다 수많은 인파속에 자신을 묻어가려는 공개채용에 목을 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사람들은 공기업과 대기업의 공채를 마치 판교 아파트 청약이나 로또를 보듯 일단 적은 확율이라도 높은 경쟁율을 뚫고자 발버둥치는 걸까요?

이유는 '수시채용'이 당초 정부가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르게 기업 나름의 자의적 해석을 통해 왜곡되고 있다는 점에 기인합니다. 분명 채용은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기업의 필요에 의해 실시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지금의 취업난을 이용이라도 하려는 듯 '우리는 별로 필요가 없는데 너희들이 너무 힘들어하니까 사회 환원 차원에서 너희를 구제하려는거다'라는 식의 고압적인 자세가 느껴지는 부분이 그것인데요. 이런 일들이 현대사회의 상식으로도, 상호 보완적 사고에도 전혀 맞지 않는 악습임에도 불구하고 취업난이 너무 심각해지고 서민경제가 지나치게 위축되는 탓에 이러한 것들이 은폐되고 용인되며 심지어는 고착화되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어 심히 우려스럽기만 합니다.
Job Seekers Attend Career Fair

우선 기업들의 '채용공고'를 보면 회사가 작던 크던 '연봉'을 기재하지 않는 회사가 상당히 많은데요. 회사쪽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봉을 공개하면 연봉이 적다고 아무도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라거나 '연봉만 보고 회사를 그대로 지나치는'취업자들이 많아서 부득이하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속사정이 있다고 합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회사'의 사정이지 그것이 정당한 방법은 아닙니다. 인터넷상에서 운영되는 '중고장터'만 봐도 '경매를 유도하는 게시물'은 바로 삭제와 함께 영구 제명 대상이죠. 결국 기업은 '자신들이 필요한 인력을 자신들이 부를 수 있는 최저한계선의 연봉을 제시하는 역경매'를 통해 인건비를 줄이고 싶었을 뿐이지 그것이 어떤 잘못된 사회 시스템으로 인해 기업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며. 그들이 말하는 근거 역시 희박합니다. 취업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연봉과 일의 강도'에 따른 정당한 급여 책정에 대해 무지할리도 없으며 하는 일에 비해 무조건 많이 달라는 철없는 취업자들은 극소수입니다. 연봉만 보고 회사의 속사정을 제대로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고요? 그러는 기업들은 취업자들의 '학력'과 '경력'말고 다른 속사정을 볼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요?

고용은 계약입니다. 고용 이후에는 어떤 회사 내 조직 체계를 따라야 하던지 관계없이 취업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기업의 사장'이건 '취업자'이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이득이 되는 쪽의 의견을 고취시켜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취업시장에서는 기업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기 위한 노력이 지나친 반면 취업자들은 지독한 취업난에 기가 눌려 제대로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할 생각조차 못한 채 그저 묵묵히 기업이 하자는 대로 따를 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을 기업은 최대한 이용해 채용시장에서 자신들의 권위를 점점 높여나가며 불합리한 부분을 고착화시키려는 반면 취업이 당장 급한 구직자들은 행여 기업에게 밑보일까봐 이렇다 말 한마디 못한 채 기업이 하자는 대로 끌려갈 뿐입니다.

이런 기업들의 불합리한 병폐를 잘 보여주는 부분 중 하나가 '면접'당시 면접 비용을 구직자들에게 지급하는 회사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면접과 채용은 '기업이 필요로'해서 진행하는 것이지 '구직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적선'의 개념이 아닙니다. 즉 채용 역시 기업의 이익 실현 활동 중 하나이며 면접 역시 어떤 형태로든 기업에게는 이익이 됩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면 모일수록 인재 파이는 넓어지고 더 좋은 인재를 뽑을 가능성이 높아지며 결과적으로 그 좋은 인재가 회사의 이익을 창출해주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이익활동에 있어 기업은 '아무런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분명 많은 구직자들이 지원하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 이익이 되는 부분이고 그것을 위해서 자신의 교통비와 시간을 할애해가며 회사를 직접 방문한 사람들에게 기업이 취한 이익만큼 어떤 보상도 해주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업들은 이에 대해 '최근 취업난이 너무 심해서 묻지마 지원도 심각한데다 그래서 채용과 관련된 심사기간이 배로 늘었고 인력도 많이 투입되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며 아무튼 생각없는 구직자들 때문에 힘듭니다'라는 부분을 기자들에게 적극 어필하는 한편 '기업이 구직자들 때문에 돈이 많이 들고 있음'을 들어 구직자로 하여금 '피의자 의식'을 갖도록 만듭니다. 즉 구직자들은 회사로 하여금 이미 손해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때문에 면접비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구직자가 많아져서 채용 비용이 많이 들건 적게 들건 그건 '회사 사정'이지 서류 전형을 통과해서 면접을 볼 '그들이 고르고 고른 제대로 된 구직자'들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기업들의 불평 대상이었던 구직자들은 대부분 서류전형에서 잘려나갔을텐데, 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제대로 된 구직자들에게 그 책임을 덮어씌워 정당하게 받을 권리마저 묵살하려 드는 것일까요?

면접에서 연봉을 물어보면 탈락의 지름길이라고 하죠? 회사 입장에서는 '건방지게 연봉부터 묻는 녀석은 싹수가 없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신차려야 할 쪽은 구직자가 아니라 기업입니다. 어째서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채용 과정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도 모자라 기업은 구직자의 모든 정보를 알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구직자는 회사로부터 취할 수 있는 자신과 가장 밀접한 관계의 급여조차 물어볼 권리조차 없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급여부터 묻는 녀석은 싹수가 노랗다고요? 상식 이하의 급여로 자신들의 배만 불리려는 기업의 싹수는 이미 뿌리까지 썩어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까?

'요즘 애들은 헝그리 정신이 없다'고들 하는데요. 누구를 위한 헝그리 정신입니까? 기업은 배 두드리면서 구직자들에게 '헝그리 정신'운운하며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당신들이 그토록 싫어해 마지않는 북쪽에 사는 장정구 파마하신 그분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여기는 대한민국이고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평등하게 누구나 자신이 가진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기업이 아무리 나이가 많고 돈이 많고 설령 고용자라고 하더라도 동등한 위치의 고용 계약상에서 부모조차 안하는 '건방짐'을 운운할 자격은 이 나라 어디에도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신차리십시오.

그리고 구직자 여러분들 힘들겠지만 어깨 펴세요. 그리고 당당하게 요구할 것은 요구할 수 있다는 '생각'만이라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만일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을 요구했다고 당신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저평가를 내리는 기업이 있다면 그건 기업이 미친거지 당신이 잘못된 게 아닙니다. 물론 지금 현실에서 생존권까지 걸어가며 요구하고 싶은 것을 바로 요구하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생각만큼은 '이게 정당한 게 아니다'고 인식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고착을 막고 세상을 조금씩이나마 변화시켜줄 것입니다. 향후 지금의 당신들이 이 사회의 주도권을 갖게 되었을 때 그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구직자들에게 대하는 기업의 몰지각한 풍토도 이윽고 뿌리뽑힐 날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모쪼록 '내가 너희 때 고생했으니 너희도 우리처럼 고생해야 공평하지 않겠냐'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이어받지 않기를 아울러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RushAm 2009. 9. 26. 15:54
모두들 지금을 취업난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을'이라는 부분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을' 이라면 그 이전에는 취업난이 아닌 시절이 있었다는 것인데, 그게 언제를 뜻하는 것일까? 일단 대량실직이 시작된 IMF이전이라고 보는 게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IMF 이전에 취업난이 없었다고 말하는 이 시절이 과연 정상적인 상황이었을까? 기억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IMF가 오기 전 우리나라는 마치 노아가 계시를 받기 전의 세상과 다름없었다고, 학력차별이 절정에 달하고 여성취업은 아예 말 자체가 생소했으며 지연에 족벌까지 난장판이 이루어지던 시절로 기억한다. 뭐 하나 건전한 게 없었다. IMF시기가 어둡긴 했어도 더러운 것을 바로볼 수 있는 빛이 되어준 셈이 아닐까 하는 일부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그로 인해서 괴로운 건 그 지연의 족벌로 경제를 썩어문드러지게 만든 장본인들이 아닌 그 아래에서 꼭두각시가 되어준 중산층 서민이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말 저 때가 취업난이 없었을까? 아니 오히려 더 심했다. 차라리 지금은 뭔가 명목상으로는 투명해져서 원서라도 받고는 있지 고졸은 아예 입사 원서 배부조차 거부당하던 시절이 바로 저때다 (저 당시 드라마에서도 종종 고졸로 무시당하는 여자주인공의 모습이 나온다 - 김희선이 대표적) 즉 지금의 취업난은 '학력'이라는 절대키워드가 무시되는 단계에 이르러 이전에는 '대학'문만 넘어도 눈앞에 에스컬레이터가 펼쳐졌다면 지금은 그게 아니니까 고학력자는 고학력자대로 예전에 비해 학력을 인정해주는 사회 가치가 떨어져 에스컬레이터가 되어주지 못하는 지금을 탓하고 저학력자는 저학력자대로 세상이 바뀌었는데 실상은 차별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성토한다. 결국은 답이 똑같다. 마치 박정희 향수가 그리워 독재자 에뮬레이터 이명박을 뽑는 기성세대들이나 그 기성세대들이 에스컬레이터로 밟아온 편리한 과거에 비해 지금이 그렇지 않음을 개탄하는 (혹은 기성세대들에 의해 변하지 않는 교육과정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나 결국 '자신이 지금 취할 수 있는 것만을 생각하고 그로 인해 파괴되는 것은 남의 일'이 되는 이타적 개인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무려 본고사 부활론이 나오고 있는 현실에서는 정말 뒷골이 다 땡길 지경이다. 결국 기댈 게 고작 대학에게 취업 중계를 맡기는 꼬락서니라니

학력보단 능력이 우선시되는 사회가 좋다고 다들 말한다. 그런데 여러분은 입사 지원서에, 면접관에게 말하는 구술에 자신의 무엇을 담아서 보여주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입사 지원서에는 다른 입사 지원서에 써있는 학교보다 높은 등급의 학교를 쓰는 걸로, 면접 구술에는 옆에 앉아있는 사람보다 떨지 않고 영어 질문이면 영어를 좀 더 틀리지 않게 말할 수 있고 시선처리 잘하고, 건방져 보이지 않고...무슨 수학공식마냥 면접을 수능 당일 컨디션 조절하듯이 그 자체에만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가? 그래 이해는 한다. 우리나라 공교육에서 수능까지 사람을 그렇게 안 만들면 병신취급을 하니까 저절로 그게 몸에 벨 수 밖에 없다는 것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다. 언제나 세상이 변할 때 신세대들이 기성세대들의 동의를 구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게 아니지않은가, 언제나 변화의 중심에는 기성세대가 없었고 그 특유의 보수성으로 변화의 태풍을 찻잔으로 스며들게 만들기 바쁘지 않았던가, 변화를 갈구하고 열망하면서 정작 스스로 변화의 흐름에 노를 저을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게 스스로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것인가?

이곳은 공부방인가 도서관인가?


다시 한번 묻는다 당신의 능력은 무엇인가? 남들보다 더 잘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전혀 못하는데 나는 잘하는' 당신만의 능력은 무엇인가? 당신은 그 능력을 키우기 위해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공교육의 피해자라는 건 인정하지만 대학 선택에 있어,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 능력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결단력이 있었는가? 아직 모르겠다면 찾아보려는 노력은 얼마나 많이 했는가? 지금 당신들이 하는 노력이란 서태지와 이이들의 '교실이데아'처럼 '네 옆에 앉아있는 그애보다 더' 토익 점수를 1점이라도 높이고 자격증을 하나라도 더 따고 어쨌든 돈 많이 주고 안짤리며 사회적으로 폼새가 나는 직장을 다니게 될 생각만이 가득하지 않은가? 그곳이 당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직장인지는 따로 생각한 적이 있는가? 그냥 '오 내가 재계 1위 대기업에 들어갈 만한 스팩이 된다니!'라며 자신이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종이 몇 장에 써있는 당신의 인증서만을 디밀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이다.

잠시 뜬금없는 이야기를 좀 하겠다. '마라톤'은 육상 종목 중 가장 많은 인원이 '동시'에 출발해 '동시'에 경기를 진행하는 경기다. 100미터나 200미터 길게는 3천미터 종목처럼 육상트랙을 도는 모든 러닝 종목은 많아봐야 10명 이상이 동시에 뛰지 않는다. 결국 종목이 세분화되어있고 자신이 단거리에 유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100미터에서 9명을 제치고 1위를 먹으면 되는 것이고 장거리라면 적당히 1200미터쯤 되는 종목에서 9명 제끼고 1위 먹으면 된다. 그런데 마라톤은 아니다. 마라톤에서 1위를 하려면 최소 100명 이상은 제껴야 한다. 그것도 제끼는 게 다가 아니다. 그 1위를 끝까지 붙잡고 마지막까지 뛰어야 한다. 아름다운 인간승리?, 인생의 축소판? 그 이전에 자신이 마라톤에 전혀 맞지도 않는데 단지 이게 대세이고 그놈의 아름다운 타이틀에 취해 뛰면서 1위는 고사하고 10위권 안에도 못들어도 (아 그래도 내 뒤에 50명이나 있어, 난 이 사회에서 중간은 가는거야) 라고 자위하며 현실에 만족한다. 이게 지금 취업난을 겪고 있는 88만원 세대들이 겪어오고 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취업이라는 이름의 '마라톤'게임이다. 그중에는 굳이 달리기가 아닌 창던지기나 장대높이뛰기를 더 잘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그런건 소용없나보다. 그냥 주주장창 마라톤만 뛴다. 왜? 사람이 많이 모여있으니까, 대세같으니까, 여기에 안끼면 낙오자같으니까, 소외당하는 소수로 살기 싫으니까, 사회에서 혼자 싸워나갈 자신이 없으니까...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는 옐레나 이신바예바가 키가 점점 커서 체조를 못하게 되었을때 '장대높이뛰기'를 권해줄 코치가 없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지금 사회가 그렇다. 그렇다고 지금 사회가 이러니까 그냥 포기하고 산다? 그러기 싫으니까 88만원 세대라는 말도 만들고 세상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는 게 아닌가? 수능까지 이어지는 공교육 마라톤을 강요받는 거 피할 수 없다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전국 90만명 중 내가 몇십만등인지 나오는 90만명이 동시에 똑같은 시험을 치루는 말도 안되는 미친 시스템이 얼마나 지랄맞은지 이미 고3을 지냈다면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았는가? 이제 그만 좀 뛰자 몇십만명중에서 10위권 내에 들지 못할 바에야 어차피 그 무대는 당신이 아닌 10위 이내의 자들의 것이다. 당신이 전력을 다해 노력한 215082위라는 결과에 만족할것인가? 당신이 10위 내에 들 수 있을수도 있고 조금 더 노력하면 1위도 꿈이 아닌 분야가 분명 있다.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보면서 그런 능력 한 가지라도 없는 사람 본 적이 없다. 다들 자기가 하고 싶은 것과는 관계없이 태어날때부터 타고난 절대능력을 모두 한 가지씩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서 스타트할수도 있고 늦은 스타트에도 무서운 스피드로 역전시킬 수 있는 그런 능력 말이다.

미래가 암울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예 미래를 생각하지도 않고 현재를 즐기며 살고 있는 88만원 세대들도 있다. 그런데 왜 내가 88만원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88만원 이상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나보다 뭘 더 잘해서 그렇게 받고 있는지 지금까지와는 조금 역순으로 생각해보자 (그래 저 자식들은 나보다 토익을 더 잘봐서 저기 들어갔으니까 나도 쪽집게 과외를 받아서 토익을 잘봐야지 / 아 저 자식은 나보다 더 좋은 대학 들어가서 잘 됐나보다 나도 다른 대학교에 편입하거나 재입학해야지 / 아 난 쟤처럼 눈에 쌍커플이 없어서 면접에서 떨어졌나보다 쌍커플수술은 이제 수술도 아니라는데 나도 쌍커플 수술해서 면접 잘봐야지) 처럼 말도안되는 뒤따라가기를 하지 말고 0.1%가 혜택을 보고 있는 세상이라면 내가 0.1%가 되기 위해 다른 사람의 0.1%에 비집고 들어가려고 하지 말고 나만의 0.1%를 찾아내라는 것이다. 당신이 조금 더 쉽게 0.1%가 될 수 있는 방법, 얼마든지 있다. 당신을 알고 세상을 좀 더 알아보자, 어차피 마라톤 금매달이나 투포환 던지기 금매달이나 금매달에 섞인 금 함량은 똑같다는 것 잊지 말자. 올림픽에는 수십가지 종목에서 수백개의 금매달이 걸려있다. 아무리 비인기종목이라서 눈에 잘 안띄더라도 나를 위해 적극적으로 세상을 알고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 됐거든!


남이 만들어진 길만 가는 인생은 의미가 없다. 봤던 영화를 다 본 직후에 되감아서 처음부터 다시 보면 재미있는 영화가 몇개나 될까? 88만원 세대여 당신들은 지금 '취업'이 되느냐 아니냐를 고민할때가 아니다. 지금 취업이 잘 된다고 행복할 것 같은가? 결국 나와 맞지도 않는 일을 억지로 마라톤을 뛴다 한들 몸만 축나고 평생 따라잡지도 못하는 녀석들 뒤꽁무니만 바라보다가 사오정,오륙도의 전통을 계승하는 인생을 선택하려 드는가? 아직 안늦었다. 잠시 그 억지로 뛰던 다리를 좀 멈추고 가만히 생각해보자, 1년이 되도 좋고 2년이 되도 좋다. 지금 아니면 멈춰서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비겁한 세상이니까 지금의 1년을 결코 아깝게 생각하지 마라, 잠깐 소외감 느껴질 수 있다. 수능 때 경험했으니까. 공부하다가 조금 쉴라 치면 '니가 쉬고 있는 그 시간에 다른 애들은 문제 세 문제 더 풀고 있다'라고 선생들이, 부모님들이 되지도 않는 협박을 일삼았었으니까, 잠깐 낙오되는 것 같을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으로 태어나서 213508위만 계속 지키다가, 아니 그나마 지키는 것도 힘에 부친 세상에 계속 몸에 맞지도 않는 마라톤만 그저 '남들이 다 하니까'라는 이유만으로 뛰고 있을 참인가? 사람을 당연히 몇백만명씩이나 한 곳에 모여놓고 장거리 달리기를 시키는데 1위가 수십만명 나올 수는 없지 않은가? 당신 아무리 거기에서 뛴다 한들 100위안에 들 가능성 희박하다. 지금 1위로 뛰고 있는 사람들, 이미 그보다 더 먼저 1위를 맛보고 골인 지점에서 쉬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당신들을 위해 '순위를 내어줄'거라는 착각은 버려라, 뒤따라가지 말고 그대만의 길로 추월하라, 그리고 1위에 도취되어 있는 그들에게 최대한 멋있는 폼을 잡으며 한마디를 던지는 것이다.

'날 너무 쉽게봤어, 세상은 좀 거칠게 다루어줄 필요가 있다구!'
'길은 내가 만든다!' 라고...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필자가 겉멋에만 빠진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현실을 모르고 이상에만 빠져 궤변만 늘어놓는다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세상이 궤변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궤변으로, 모순으로 진실을 만들어내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필자가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그대들이 그대들 스스로의 신분과 주어진 자유에 걸맞지 않게 스스로를 너무 현실에 속박하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이다. 개구리는 가장 멀리 뛰기 위해 가장 몸을 작게 웅크리는 법이다. 이상을 펼칠 수 있을 때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면 그 인생이 의미가 있을까? 또 그런 사람을 기업들이 과연 원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인생의 정점은 공무원이고 그게 아니라면 그저 그렇게 돈이나 벌면서 대충 안락하게만 살아보자는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말이다. 본인들이 인사담당자라면 그런 사람이 회사의 신 주류를 만들 '신입사원'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이 세상에는 이상주의자가 필요하다. 설령 그 이상에 한참 못미칠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을 갖지 않은 사람보다는 더 높게 더 멀리 뛰어올라 있을 것이다. 기업이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기업들이 말하는 창의적인 인재, 별거 아니다. 어차피 기업도 돈이다 당신에게 절대 당신이 벌어주는 돈 이상의 돈을 주지 않는다. 당신이 세상과 싸워 기업에게 돈을 안겨다주는 만큼 기업도 당신에게 88만원 이상의 돈을 줄 뿐이다. 지금 당신이 싸워야 할 상대는 같은 회사에 입사 원서를 내는 사람들도, 면접때 옆에 앉아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렇게 들어간 회사라고 당신이 승리자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은가? 당신은 결국 '탈락자'를 이겼을 뿐이다. 진짜 승부는 결국 당신과 세상과의 싸움이다. 그건 토익점수 990점도 수많은 자격증과 어학연수 경력도 4.5점 만점의 학점도 대신해주지 않은 당신의 포텐셜만을 걸고 벌이는 진검승부다. 회사는 보기에는 치졸할지 몰라도 당신이 거두는 성적 만큼 돈과 그에 따르는 풍요로운 여생을 줄 것이다. 입사에 연연하지 말고 그 다음을 생각하라, 우리가 수능을 지나오면서 수능을 회상해보면 '왜 그때 그렇게 목숨을 걸었는지'혀가 차이듯 결국 한 단계 앞을 내다보고 그에 맞춰 행동한다는 이른바 '앞선 사람'은 거창한 점쟁이가 아니다.

기업들은 '당장의 취업이라는 승부에 모든 포텐셜을 쏟는'사람을 구분해내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당신이 기업과 계약하고 세상과 싸워서 어떤 결과를 낼 것인지 그리고 그 승산을 높이기 위해 어떤 길을 개척해 나갈지를 생각해보고 그 결론을 낸 사람이라면 기업은 단박에 알아본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란 다른 게 없다. 적어도 고작 쪼잔하게 입사라는 승부에 연연해서 모든 힘을 소진하고 입사 후 (아 이제 모든 고비 넘겼으니까 좀 쉬어야지) 하고 발뻗고 자는 사람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지금 당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당신의 그 능력을 돈으로 환산해줄 가장 적격의 회사는 어디인가? 그리고 그 회사에 들어가서 회사가 아닌 나로서 세상과 싸워 이길 승산이 얼마나 될 것인가를 생각하자, 생각하는 사람은 꼭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다. 빌게이츠를 비롯한 수많은 21세기 성공모델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인생을 걱정하지 말고 인생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주길 바란다.


취업...그거 별거 아니다.


4부에서 계속됩니다.

비정규직, 88만원 세대, 청년실신, 취업난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목차

1부 (정부) 편
2부 (기업) 편
3부 (학생) 편
4부 (일본)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