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05. 7. 12. 16:22
사람들이 슬슬 인터넷이라는 매우 편리하고 초현대적인 매체에 두려
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원래는 깨끗했던 공중화장실에 누군가의 영향으로 지저분하게 사용한 화장실을 꺼리는 듯한 느낌이다. 누군가는 분명 이렇게 만들었는데, 그렇게 만든 사람의 반성이나 처벌은 없고 그 책임을 잘못이 없는 사람들까지 포함한 모두의 책임이라는 지극히 윤리책스러운 말로 덮어버린다. 법안을 추진한 정치인들이 자본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할 대로 팽배해버린 현대 대한민국에서 이 말이 과연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납득을 유도했을 것이라 생각했다면, 필자는 그들에게 그야말로 정치인스러운 발상이라는 칭찬(?)을 해주고 싶다. 그들은 언제나 국민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대한민국을 머릿 속에 그리며 결과 역시 외면한 채 그들 머릿속에서 성공적으로 그리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그렇게 머리 속으로만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그리고 있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서, 같은 대한민국을 머리 속에 담아 공유하는 사람들이 다시금 그 허황된 두뇌를 가진 그들을 여의도로 보낸다는 것이 문제다. 여담이지만, 보통 정치인들을 탓할 때, 그들이 그렇게 될 것을 알고도 또 이번에는 안 그러겠지 하며 뽑은 국민들 모두의 책임이라고 하는 정치 컬럼니스트들의 위선에 필자는 망설임없이 돌을 던지고 싶다. 그들을 안 뽑은 사람은 죄가 없다. 이후 내내 강조를 하겠지만, 집단의 선택으로 결과가 안좋았다고 해서 그렇지 않았던 선택을 한 사람들까지 돌을 맞아선 곤란하다.

요즘 시끄러운 인터넷 실명제, 뭐든 그렇지만 시끄러운 이유는 논란이 많기 때문이다. 인권 문제부터 시작해서, 인터넷의 기본 정신까
지, 논쟁에 안 나오는 잡지식이란 없다시피 할 정도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상대방을 자신의 의견에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토론강국(?)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토론에 굶주려 있다. 학창시절부터 적극적으로 토론 경험을 쌓아오는 교육 선진국들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선생님에게 들어오는 일방통행식의 교육으로 인해, 학생들은 마치 교도소 독방에 갇힌 듯한 기분을 학창 시절 내내 느끼고,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자신의 의견과 관점을 이야기하려는 욕구가 강제로 억눌려진, 더구나 한창 새로운 지식 베이스를 구축하는 12년간의 학창시절 동안 자신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속 시원하게 피력하지 못한 채 대학 입시에만 모든 것을 올인하는 많은 학생들의 비극적인 성장과정 탓이라고 생각한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다시금 학창시절처럼 국민들의 입을 봉하고 있
으면 언젠간 해결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마치 공산주의국가처럼 자신들이 국민들의 지도자라 착각하는 정치인들이 만든 이 법안에 필자는 찬성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그렇다고 지금의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인터넷의 현실을 그대로 방관하자는 의견을 피력하려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고 국민들이 열망했던 세계 1위라는 패권을 IT라는 하나의 산업형태로서 따냈고, 그것이 지금은 국민들의 자존심 그 자체가 된 상황에서 그것을 생활에서 배제한다는 것은 이제 사회적으로나, 국가 정서에도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을 만큼 우리 생활에 인터넷, 사이버 문화는 별다른 대안이 없을 만큼 깊게 침투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만으로도 사뭇 부담스러울만큼 스케일이 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논객들이 서로 자신의 의견이 옮다며,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이 글이 쓴 취지처럼 매번 허공에 수다를 떠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해결책은 진정 없는 것인가? 언젠가 필자가 강조했던 부분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토론 자체를 어린 시절부터 별로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토론이 해결되는 방법을 잘 모른다. 예를 들어 100을 놓고 논쟁이 일어났다 친다면, 50:50으로 나뉘는 결과를 사람들은 가장 싫어한다. 내가 100을 가져야만 하는 미래만을 상상할 뿐 50을 빼앗기는 미래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100을 가져야 하는데 50을 빼앗겼다고만 생각한다, 물론 100을 모두 상대방에게 주는 극단적인 결과는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다. 미래 예측에 대한 다양성 상실은 경험의 부족에서 나온다. 만일 누군가에게 맞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싸울 때 주먹이 어디로 날아오는지, 그 뒤에 헛점이 생기면 기습을 어떻게 해야 내가 이길 수 있는지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싸움에서 질 확률이 높고, 크게 부상을 당할 위험이 높은 것처럼, 토론 역시 지는 데에 익숙하지 않으면 토론이 끝나는 일도, 토론에서 이기는 일도 없다. 하지만 토론이란 것이 말과 글로서 정상적으로만 간다면, 길게 끈다고 해도 크게 피해가 가는 경우는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서로 자신이 100을 가져간다는 미래 이외의 다른 경우의 수는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그로 인해 토론이 장기화되며, 서로 포기하지 않은 채 상대방을 포기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인신공격과 인격모독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토론에서 결과론적으로 별다른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협상하는 법을 모른다. 자신의 미래가 반드시 승리라고만 생각한다. 그 누구도 그에게 지는 법도, 자신이 다른 사람의 의견에 굴복하게 될 거라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부모들의 책임이 크다.

토론에는 언제나 대안이 있다. 대안이 없는 토론은 토론이 아닌 결정권자에 의해 그대로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미국이 우리나라를 적국으로 규정하고 24시간 이내에 폭격을 해
올 것이라 경고했다면 우리나라의 선택은 모 아니면 도, 즉 항복할것인가, 맞서 싸울것인가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치 모 아니면 도, 즉 이기느냐 지느냐 밖에 결과가 없는 것처럼, 목숨을 걸고서 싸우듯이 토론에 모든 것을 걸고 열변을 토한다. 자신들의 의견이 관철되지 못한 채로 끝나면 시위를 해서라도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때까지 저항한다. 이 부분이 필자는 정말 뼈가 시리도록 안타깝다. 우리나라는 토론의 긍정적인 부분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우리나라의 독특한 토론 문화에서 나오는 양극화 현상에서 승부를 낸 뒤에 승부에 깨끗하게 굴복하지 못하는 추한 모습까지 보이기 때문이다. 토론 문화가 기왕 양극화로 굳어졌다면, 승부 답게 패자가 깨끗하게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그러는 모습을 보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점, 당장 오늘자 9시 뉴스를 보더라도 그런 모습을 1가지 이상 찾을 수 있다.

인터넷 실명제 역시 시행 아니면 부결밖에 대안이 없는 것으로 보이
기 때문에 국민들이 열성적으로 자신들의 입장, 찬성과 반대 의견만을 내세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라면 대부분 정치인들이 무뇌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정작 그들 정치인들이 내놓은 법안에 찬성 반대 이외에 새로운 정책 제안을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초반 수많은 정책 제안이 이루어졌으나, 대부분 자신들 혹은 자신들 집단을 위한 일방적 님비 정책이 대부분이었다는 보고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이 든다. 인터넷 실명제가 과연 시행 아니면 부결이라고 치부될 만큼 그 정책 제안 자체가 쓸모있는 정책인지를 생각해보면 뭔가 어설퍼보이지 않는가? 정말 제대로 된 정책이라면 국민들의 찬반 여론이 이렇게 커질 이유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정책 자체에 대해서는 납득하게 되고, 일부 피해를 보는 집단에 한해 국가적 차원에서의 설득과 정책 설명, 그에 따른 보상을 해주면 되는 일이니까 말이다. 에초에 별다른 학식이 없는 필자조차도 그 정책을 비판하고 모든 여론은 아니지만, 일부 실현 가능한 대안이 떠오를 정도의 정책이라면, 원안에 연연하지 말고 차라리 폐기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이제 토론을 뜯어보는 차원에서 먼저 인터넷 실명제가 왜 반발을 일으키는지를 먼저 생각해보자, 말 그대로 인권이 침해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도 많고, 그런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인터넷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악플러’가 된다는 보장도 없다.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는 자체가 기분 나쁜 사람들도 무시 못할 수준이다. 일부이긴 하지만, 인터넷의 기본 정
신, 즉 국가권력에 구애 받지 않고 족벌언론과 같이 여론을 조장할 수 있는 권력을 함부로 특정 계층에 집중하지 않는 뉴매스미디어의 역할을 인터넷이 계속 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으며, 주로 인터넷 실명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이유를 들고 있다. 찬성론을 살펴보자면, '인터넷의 폐해가 심각하다.' '여론 재판으로 인한 마녀사냥식 인권유린이 위험 수위이다' 라는 등의 의견이 많다. 단편적인 몇몇 집단의 주장이지만 잠재적으로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는 일부 ‘초등학생’들의 철없는 행동들이 기분나쁘다' 라는 의견 역시 상당히 설득력을 얻고 있고, 인터넷이 점차 푸쉬, 즉 1인 미디어화 되어감에 따라 인격 한 명을 집중적으로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사건이 급증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로서 많은 사람들이 찬성론에 동조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뜯어보는 두 번째로 양 쪽이 찬성과 반대를 하는 이유를 우선적으로
인터넷 실명제라는 논제를 완전히 배제한 채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우선 반대론의 대표적인 근거인 인권 침해를 보자, 반대론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 충분한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 ‘사용자 개개인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라는 전제가 붙는다. 물론 ‘개개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는 행위’ 역시 있어서는 곤란하다. 아직 방향성과 개념이 모호하긴 하지만 주장하고 있는 ‘인터넷의 기본 정신과 자율성’ 역시 훼손되어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모든 사람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듯한 정책 역시 이쪽 주장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찬성론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쪽은 반대론자들보다 더 어렵고 복잡하다. 인터넷 실명제가 아닌 다른 정책으로서 그들이 불만스러워하는 ‘인터넷 여론 재판으로 인한 인권 유린 사태’가 일어나서는 안되고 속칭 ‘초딩들의 건방짐’을 제어할 수 있는 적절한 제어장치의 역할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개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정책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지켜보면서 몇 가지 느낀 것은, 굳이 인터넷 실명제가 반대론자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힐 만큼 문제가 많은 정책이라면, 찬성론자들의 사회적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다른 정책적 대안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떠오르는 데에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만큼, 이 문제는 그다지 무겁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실명제의 원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한번 살펴보자, 바로 다름아닌 오프라인, 즉 주민등록증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주민등록증으로 인해 공권력은 국민들의 범죄율을 낮추는 데에 보다 수월해졌고, 국가정책을 수립하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없게 되었다. 국민 역시 낮아진 범죄율과, 보다 체계적으로 평등한 국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만족스럽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민등록증을 가슴에 붙이고 다니면서, 누구나 만나자마자 이름이나 나이를 묻지 않고서라도 알아볼 수 있게 되어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우리나라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논쟁 문화 ‘민증 까!’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만큼 나이를 중시하고, 연륜이 높은 사람을 우대하는 정서가 있다는 점은 좋은 실례이다. 인터넷 실명제는 마치 외출할 때 항상 외투 한쪽에 신분증을 상대방이 식별할 수 있을 만큼의 글자 크기로 항상 붙이고 다니라는 이야기이니 반대론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학창시절에도 교복에 명찰을 달고, 그도 모자라 아예 박음질을 해버리는 자체를 얼마나 싫어했는지 말도 못한다.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부분은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는 오프라인에
서는 인격 모독이나 스토커가 없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이 전부 온라인으로 건너왔을 뿐, 오프라인에서 이미 있었고, 지금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산적 문제들이라는 것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철권정치로 인한 국민들의 서열 규격화 및 독재 이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누구나 여러 사람들이 있고 범죄자가 생길 수도 있으며, 그것이 없어지면 평화로울 것 같지만, 악이 없는 곳은 망한다는 진리는 과거 여러 실례를 통해 입증되었듯이 절대 원하는 세상이 오지 않는다. 이 점은 확실히 각인을 해야 한다. 어떤 정책도 민주적인 방법으로는 찬성론자들이 원하는 온라인 범죄들을 예방할 수는 없다. 오프라인이 그렇게 평화로워서 범죄가 없고 살인이 없는가? 정책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는 정책 만능주의 이전에 우리나라 정부 정책의 편리주의를 꼬집고 싶다. 이 정책이 국가적으로 적극 추진되는 이유는 국민을 위해서라고 떠들지만 언제 그 말을 서두로 한 정책이 그런 적이 있었는가? 우리나라 경찰들은 오프라인 범죄에는 오랜 역사 덕분에 면역이 되었지만 사이버 범죄에 있어서는 아직 제대로 컨트롤은커녕 범죄 예방조차 변변히 못하는 실정이다. 아무도 무능한 사이버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경찰과 국가는 공권력이 공백이 생기는 것을 가장 두려워할 수 밖에 없으므로, 어떻게든 범죄를 컨트롤하고, 자신들의 공권력으로서 국민들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고 그것이 인터넷 실명제라고 생각한다. 즉 자신들의 능력적 한계를 인정하기 싫은 자들이 만들어낸 자구책이 국민들을 위한다는 정책으로 변질되어 공표된 셈인데, 정책의 공정성을 떠나서 그 자체로 어처구니가 없지 않은가?
다시금 말하고 싶지만, 어떤 정책도 이미 사람들이 포화상태에 이른 인터넷의 모든 범죄를 제어할 수는 없다. 차라리 국가권력에 제어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세상이 정화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 싱가포르라는 나라에 가서 한 달쯤 살아보면서 몸소 정책을 체험해보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몇 번을 웃는지를 조용히 세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이야기를 바꿔서 오프라인에서 인권 침해가 인터넷처럼 노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를 한번 살펴보자, 어째서일까? 사람들은 같은데 어째서 사람들은 직접 만나서는 단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들
이 많으면서 인터넷에서는 마치 자신이 엄청난 권력을 가진 듯이 활동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결정적으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차이는 주민등록증, 즉 실명제에 있는 게 아니다. 오프라인에서는 서로 직접 얼굴을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서로 얼굴만 본다면 대략적인 연령대 예측이 가능하다. 이 점이 중요하다. 연령대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 이 점이 연장자에게 함부로 인격모독을 할 수 없는 억제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실명제가 그것을 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까도 말했지만 주민등록증을 가슴에 달고 다니지 않는 이상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게다가 민증은 위조가 가능하다. 금융실명제가 불법적인 정치자금 및 기업들의 불법 상속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자신했던 문민정부지만 지금 어떤가? 과연 금융실명제가 우리나라의 경제를 투명하게 해주었는가? 실명제보다는 다른 정책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이는 육안으로 속일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사회적으로 집단성을 갖지 못하는 억제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착안, 필자는 인터넷 실명제를 대신할 대안으로 ‘인터넷 연령 등급 표시제’를 조심스레 제안해본다. TV에서 많이 본 것처럼 12,15,19등의 연령 등급, 즉 정확한 연령이 아닌 연령 계층만을 표시하는 방법이다. 이 정책이 시행되면 인터넷에 글을 남기게 될 때 자신의 연령대가 함
께 표시가 되어 상대방이 그 사람의 연령대를 식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된다면, 상대방에 대한 인격 모독은 물론, 저연령층들의 무분별한 하극상(?)도 방지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상대방이 어느 정도의 연령층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면, 오프라인에서 만난 것처럼 예절에 기초한 억제책이 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연령대가 자신이 글을 씀으로 인해서 드러나기 때문에, 함부로 상대방을 무시하고, 다소 건방진 어투를 스스로 자제할 수 있는 자구책으로서의 기능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초등학생 이하 저연령층만을 마녀사냥하는 정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요즘의 세태는 건방진 저연령층 못지 않게 나이값 못하는 성인들도 많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오프라인에서 공중도덕을 어기는 각 연령층들에 대한 암묵적인 비난과 양심이 살아날 수 있는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물론 기존 실명제의 반대론자의 관점에서도 ‘나이가 정확하게 표시되지 않는 연령대 표기’의 경우 오프라인에서도 육안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인권 침해의 소지가 적으며, 나이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사회 통념처럼 오히려 나이로서 평가 절하되었던 부분을 인터넷이라는 메채를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보다 확고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요즘 세태에서 인터넷의 자율성이 나이 제한으로 사라진다는 이야기는 아마 없을 것이다.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이 더 많을 정책이니까,

필자가 제안한 정책이 반드시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론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적어도 대안이 나올 수 있는 토론에서는 적극적으로 자신은 물론 상대방을 만족시킬 수 있는 대안을 끊임없이 생각해내지 않으면, 토론은 끝나기 쉽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토론 중에서도 양극적 관점에서 타결이 되는 토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토론을 하는 중에 있어서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만큼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주고 자신이 생각하는 이득 만큼 상대방의 이득도 생각해주어야 한다는 가장 간단한 토론의 기본 정신을 망각해서는 토론이 매번 곤란해지지 않을까?, 인터넷 실명제 토론을 바라보면
서 적어도 토론에 참여하며, 상대방의 의견에 상호 반대만을 하고 있는 모습이 과연 그들이 바라는 인터넷의 순기능을 잘 보여주고 있는지, 그들이 말하는 대로, 인격 모독을 안하고 있는지, 인터넷의 자율성에 의한 장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혹시라도 자기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해 자신을 국가의 권력으로서 컨트롤해주길 원하기에 그런 논쟁을 벌이고 있는 거라면 적극 말리고 싶다. 이제는 정치인들을 찍지 않은 사람들이 그 정치인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불합리하고 억울한 일이 더는 일어나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발전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생명체 인간이 만든 이 세상에서 인간이 더 인간답게 사는 방법은 개개인을 인정하고 자신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소중하다는 아주 작은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자기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이 귀한 줄 알아야지, 하며 싸우시던 어릴 적 어머니의 말다툼이 문득 떠오른다.

- RushAm -
posted by RushAm 2005. 5. 24. 23:57

평점 : ★★★★ (8.4)

- MBC 4기 (1970) -
생일 : 1951년 11월 22일생
데뷰작 : 불명
보이스 타입 : 강력한 후음을 기반으로 비음, 구내음, 설음의 모든 기관을 활용하는 가성, 진성 복합 타입
대표작 : 슬램 덩크 '채소연' 役
유희왕 듀얼몬스터즈 '마사키 안지'(안수진) 役
GOOD: 연기영역 구분이 안될 만큼 명확한 음의 경계
BAD : 특별한 특색이나 강점이 없는 지나친 무난함

얼마 전 모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신인 개그맨이, 말뚝 박
기 놀이를 소재로 한 코너에 참여하다가 십자 인대 부분을 다처 1년 동안 출연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무명 기간 후에, 최근에서야 겨우 자신의 개그가 TV 개그 프로그램에서 중심을 담당하게 될 만큼 인기가 본 궤도에 오르고 있던 와중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은 더했다. 인기가 높은 상태에서 부상을 당했으니 이후에 재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인기가 높아도, 시청자들에게 그는 이제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신인일 뿐이므로, 강한 인상을 준 것과는 관계없이,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가 언제 다시 복귀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그의 복귀와 함께 이전의 입지를 회복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테니까, 흔히 TV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은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보다는 오랫동안 고정적으로 이름을 기억할 수 있도록 무게감, 존재감에 더 신경을 쓰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성우는 흔히 사람들
이 ‘연기자’라고 부르는 탤런트와 영화배우보다, 더 오래 전부터 ‘연기자’ 라는 칭호에 익숙했기 때문에, 지금의 연기자들과 일반적으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성우들 하면 흔히 주연만 많이 맡게 되면 인기를 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탤런트들이 주연을 많이 맡는다고 무조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성우도 무조건 주연을 많이 맡는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성우들에 비해서 인지도가 반드시 향상되길 기대하긴 어렵다. 데뷰 첫 해에 주연을 마구 맡아, 놀라운 성적을 보여줬는데, 이듬해에 주연도 별로 맡지 못하고, 연기력도 예전만 못하다면, 그 사람이 기억에 남을까? 그만큼, 신인 때의 돌풍을 중견 성우로서 안정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이끌어 나간다는 것은 모든 연예인들에게 있어 성취해야 할 목표이며, 자기관리에 따라 사실상의 평생직업이라 불리우는 연기자, 특히 성우게에서는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우계에서도 흔히 통용되는 이쪽 팬들의 속어 ‘메인 이벤터’가 존재한다. 팜 시스템에서 초창기 돌풍을 일으킬 만한 상품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 즉 ‘주연급’을 맡기기 쉬운 연기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에게 일정 기간 동안 주연을 몰아서 주는 성우 육성 단계 중 하나이다. 대부분 이러한 메인 이벤터 과정을 거친 후에는 어느 정도, 입지를 굳히는 편인데, 늘 이렇게 PD와 녹음실 스텦들의 판단과 실제 시
청취자들의 귀는 언제나 일치하는 것이 아니므로, 아무리 그들이 전문가라 하더라도, 실제 이런 전략들이 실패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메인 이벤터의 위험성은 시청취자들의 시각이 그 성우를 주연급으로 인식하다가, 갑자기 전략이 실패했을 때, 그 성우가 주연급으로 나오지 않으면, 그 성우에 존재를 잘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극단적인 부분으로 표출되며, 성공 확률이 높다고 하더라도, 이는 성우로서 분명 도박에 가까운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메인 이벤터, 주연만을 연속으로 맡는 것이 성우로서 성공할 수 있는 척도는 아니며, 조연급, 혹은 엑스트라, 단역이라도 주연을 압도할 수 있는 멋진 연기, ‘유리가면’에서의 비비처럼 짧은 대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는 것이야말로 불확실한 성우 지망생의 미래를 희망차게 만들어주는 데에 더할 나위 없는 묘수일지도 모른다.

송신…그리고,
성우 극회의 모습과 피라미드를 비교해보면 그 이상 잘 어울리는 것
도 없을 것 같다. 대부분 수많은 지망생들 중에서 불과 매년 몇 명만이 성우극회에 등록되고, 인디 성우를 포함하면 그 수는 여성 비율이 훨씬 많지만, 결과적으로 3~40대에 갖가지 이유로 인해 급격히 그 수가 줄어들곤 한다. 과로로 인한 목 기관의 손상, 결혼 후 가정활동으로 인해, 유학, 이민, 연기자로서의 괴리감 등의 이유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이 때문에, 성우계에서 정년(?)을 마칠 때까지 꾸준한 활동을 계속하는 성우 성 비율은 지망생 때의 그것을 역전해버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한다. 그만큼 여성 성우들의 전성기 활동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비교적 짧은데다가, 특히 애니메이션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성 성우들이 소화해야 하는 연령대 폭이 무척 넓기 때문에, 나이가 잘 들지 않는 목소리라고 하더라도 후배 성우들의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 대부분 외화, 혹은 다큐멘터리, 나레이션, CF등 돈이 되고 힘이 덜 드는 업무로 빠지곤 한다. 베테랑 성우들이 애니메이션 참여에 크게 적극적인 편도 아닌데다가, 페이가 높아서 방송사나 프로덕션 모두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애니메이션에서 베테랑 성우들을 캐스팅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고 성우는 성우대로 비교적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기 때문에, 페이가 낮고 어려운 일에 속하는 애니메이션의 경우 초창기, 자신의 입지가 좁을 때를 제외하고 어느 정도 입지가 굳어진 이후에는 선호도에서 점차 멀어질 수 밖에 없는 극회의 3D업종으로 치부되곤 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애니메이션만을 오랜 기간 전문적으로 맡아 오면서, 그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연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아주 희귀하다.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의 특성 상 외화 등의 타 메체와 겸업을 한다는 것이 성우로서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중견 성우라고 해서 5년 이하 경력을 가진 성우들에 비해 제대로 된 연기를 한다는 보장을 할 수도 없고, 애니메이션만을 오랜 기간 하다 보면 외화 녹음 시 적응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극회 내에서 자주 들리는 걸 보면, 애니메이션, 외화, CF, 나레이션, 다큐멘터리, 라디오 드라마를 모두 소화 가능한 멀티플레이어가 나온다는 것, 그것도 그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존재를 시 청취자들에게 분명하게 각인 시킬 수 있을 만큼 가치 있는 연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성우가 등장하기는 쉽지 않다. 맥가이버칼이 여러 가지 기능이 있지만, 품질이 낮은 것은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쓸만한 것이 없는 것처럼, 멀티플레이어 자체의 가치보다, 어떤 매체에서도 평균 이상의 품질을 내어줄 수 있는 성우 쪽이, 흔히 사람들
이 말하는 ‘사기유닛’으로 불리울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필자 개인적으로 그녀만큼 여성의 모습을 가장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성우가 또 있을까 싶은데, 흔히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하는 활동적인 소녀, 차분한 소녀, 사악한 성격, 선한 성격, 머리가 나쁜 소녀와 머리가 좋은 소녀 등, 특별히 아주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지 않더라도, 거의 대부분의 배역을 평균 이상으로 소화해내곤 한다. 이는 애니메이션에 국한되지 않고, 차분하고 편안한 느낌을 표현해야 하는 다큐멘터리, 공익광고 등의 나레이션이나, 성숙하고 단아한 느낌의 외화 배우를 연기할 때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며, 다방면에서 그녀의 이름을 각인 시킬 수 있었던 것도 그녀가 특별히 운이 좋아서라든지, 혹은 시류에 따라 인상적인 배역을 맡아서가 아닌, 분야와 매체를 가리지 않고 일정 수준 이상을 언제나 꾸준히 내어주는 그녀만의 피나는 노력과, 여성으로서 성우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속시키기 힘든 갖가지 요인을 스스로 극복해낸 성우에 대한 애착이 만들어낸 누구도 감히 함부로 폄하할 수 없는 성과라고 생각한다.

나를 감동시킨 배역.
Asuka Sugo - Future GPX Cyber Formula
『 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추억이 많은 사람들이
라면, 누구나 기억할 만한 캐릭터이지만, 사실 이 캐릭터는 연기하기가 꽤 까다로운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 14세라는 연령 설정에다가 상당한 장편, 감정 변화가 심각하며, 아주 조용한 성격도 아주 발랄한 성격도 아닌 애매한 설정, 게다가 시리즈를 거듭하며 나이를 먹고 성장을 하는데다가 나중에는 굉장히 성숙한 느낌의 연기까지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작품 내에서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흐르면서 캐릭터가 출시 시기에 맞게 성장까지 하는 (흔히 말하듯 유저들과 함께 나이를 먹는 캐릭터) 작품이 드래곤 볼 이후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 부분이 팬들에게 크게 어필했던 만큼 제작사 입장에서도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그리 쉽게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원작에서 아스카를 맡았던 성우 미츠이시 고토노의 포지션이 어떻게 보면 미스캐스팅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대단히 애매했던 점도 송도영이 캐릭터를 소화하는 데 상당 부분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추측까지 해 볼 수 있는데, 결론적으로 송도영은 미츠이시 고토노가 표현하지 못했던 스고오 아스카만의 캐릭터적인 매력을 듬뿍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동시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이고, 그와 함께 작품 내 히로인격인 스고오 아스카라는 캐릭터에 대한 팬들의 선호가 높았던 이유도 캐릭터가 가진 매력을 충분히 끌어낸 성우진의 역할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으리라 보고 있으며 당시 저연령층을 대상으
로 했던 작품 중에서는 상당히 몰입도가 높고 진지한 스타일의 연기를 요구했던 작품으로서 송도영의 아스카 연기는 그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캐릭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베테랑답게 기나긴 시리즈 내내 변화하는 캐릭터의 감정, 캐릭터의 성장에 따른 목소리 연출 변화까지, 작품이 흐르는 내내 조금도 그 캐릭터의 존재감이 사라지지 않을 만큼 최상의 연기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외화, 나레이션, CF에서도 작품 도중에 캐릭터가 성장을 하여 연기 변화를 시도해야 할 때에는 성우진을 2중으로 두어 성우의 부담을 줄여주고 작품의 질을 높이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녀는 그녀 스스로 연기 속에서 캐릭터를 성장시키며 진정한 연기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그리고 후배들에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그녀 이외에 그 누가 이렇게 명확히 자신의 연기 폭을 구분해낼 수 있었는지, 그 누가 기폭에서 성장하는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보라는 듯이…그녀는 그렇게 작품 내에서 지금도 빛을 발하고 있다.』

송도영 vs 미츠이시 고토노(성우 비교분석 코너에 대한 설명)
경력이 짧고 경쟁이 그만큼 치열한 일본 성우계에서 데뷰 당시부터 일
약 모든 성우 팬들에 의해 ‘대박 신인’으로 낙점 받을 만큼 실력으로서 인정 받은 미츠이시 고토노는 그렇게 다양한 음역을 갖지 못했음에도 작품마다 대단히 인상적이고 독특한 연기를 펼쳐 인지도를 높이곤 했다. 송도영에 비해서 세일러 문 시리즈, 사이버 포뮬러 시리즈,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 스테디 셀러로 불리우는 장편 시리즈의 주연급을 맡아 왔기 때문에, 비교적 운이 좋은 편에 속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제작진, 특히 감독이 직접 참여하여 몇 차례의 오디션과 제작진 회의를 거치는 일본의 독특한 캐스팅 방식과, 당시까지는 성우 네임 벨류 자체가 시청률에 영향을 끼칠 만큼 성우에 대한 인지도가 지금만큼 되지는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본다면 다분히 실력으로서 따낸 행운이라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다. 음역이 넓지도, 연기 스타일이 대단히 여성스럽지도 않았지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모든 작품에서 최선을 다하는 연기파 기질과, 자신의 인기가 높아져도 작품의 인지도를 가리지 않는 그녀만의 마인드가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다고 봐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경력 초반 8~90년대까지의 MBC가 방영했던 니폰 애니메이션 혹은 마쯔모토와 미야자와 작품들 중 그녀의 성격에 부합된다 싶은 캐릭터, 즉 ‘이 캐릭터에 걸맞는 성우?’라는 의문에 1순위로 떠오르는 게 송도영이라면 십중팔구 캐스팅에 그녀의 이름이 오를 정도로 그녀의 애니메이션 녹음 활동은 지금까지도 큰 변화 없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지금의 경력과 나이에도 그녀가 맡은 캐릭터의 성격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인데, 실제로 그녀는 8~90년대에서도 지금도 14~19세의 소녀 역할을 맡기기에 전혀 무리가 없는 연기 컨디션을 보여준다. 실제 TV연기자를 예로 들자면 4~50대의 중년 여성이 여자 중학생 연기가 가능하다는 것인데, 아무리 목소리가 늙지 않는다는 성우라도, 실제 그것이 가능하기까지는 분명 갖가지 장애물, 다시말해 정신적인 성숙함, 자신을 버려야 하는 프로의 냉정함까지 갖추어야 하기에 대부분의 성우들이 송도영 정도의 나이가 되면 연기폭이 좁아지고, 보
다 편안하게 발성할 수 있는 연기들, 즉 외화에 주력하지만, 송도영은 인지도와, 페이에 개의치 않고 지금도 그녀의 연기를 애니메이션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애니메이션 레코딩 마이크를 잡고 있다. 미츠이시와의 공통점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페이가 높고 인지도가 높은 작품으로 자신의 가치와 부를 가질 수 있는 위치에서도 그녀들은 성우 자체 이외에 다른 부분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연기를 할 수 있는 모든 곳에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다는 각오, 나이가 들수록 환경적인 영향으로 성우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애착이 사라지고 등급에 걸맞는 페이를 가질 수 있는 매체에만 주력하는 많은 성우들과는 사뭇 대조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필요하고, 자신이 연기한다면 좀 더 나은 캐릭터가 될 수 있다면 주저 없이 연기할 수 있는 끊임없는 도전 정신은 아낌없는 존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대회에서 대활약을 펼친 박주영 선수가 대표팀이 아닌 프로에
입단한 이후에도 사람들의 관심이 식을 줄 모른 채 축구 열기 자체를 주도하고 있다. 안양에서 서울로 연고를 이전하면서 안양 서포터즈들은 물론 전국의 축구팬들에게 폐륜팀이라는 악평까지 들으면서 인구 1천만의 서울에 입성하였지만, 별다른 흥행을 주도하지 못했던 FC서울을 일약 전국에서 가장 관객을 많이 동원하는 팀으로 탈바꿈시킬 만큼 박주영의 인기는 대단하다. 하지만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듯, 박주영의 지금 플레이는 사람들을 그렇게 열광시킬 만큼 대단한 편은 못된다. 프로에서 신인 시절 그 정도의 활약을 펼쳤던 선수들은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이동국이 그랬고, 가까워서는 이천수가 그랬다. 이천수는 여러 가지 자유로운 발상에서 나오는 개방적인 발언으로 인해 구설수가 오른 적이 많아 인기와는 크게 거리가 있었지만, 이동국의 경우 신인 시절 관객을 몰고 다닐 만큼의 외모와 그에 따른 골결정력과 한국 축구에서 보기 힘든 훌륭한 하드웨어로 주목을 받았다. 이론대로라면 그들이 프로에서 더 오래 뛰고 활약도 꾸준하니 인기가 많았어야 하지만, 이동국은 20대 이후 잠시간의 해외 진출 실패와 대표팀 탈락의 부진으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며, 인기를 이어가지 못했다는 것이 축구팬들의 중론이다. 그리고 박주영은 이동국의 실패를 반복하지만 않는다면 지속적인 태풍을 일으키며 인기의 핵이 될 수 있을거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사람들이 박주영에게서 본 것은 ‘패기’였다. 프로팀, 대표팀들의 패기와 승부욕 도전정신이 결여된 플레이에, 사람들은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청소년 팀은 어느 세대에서나 패기와 도전정신이 강하다. 사람들은 어려운 경제탓에 자신감이 결여되어 누구도 ‘도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는 어려운 시기에 박주영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도전’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끄집어 낸 것이다. 청소년팀의 도전적인 이미지에 걸맞는 저돌적인 실력을 갖추었으니 인기가 없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까? 하지만, 박주영 열풍, 돌풍, 태풍이 그렇게 오래 가기는 힘들 것 같다. 박주영도 프로가 되었고 언젠가는 보수적으로, 승부에 집착하며, 누군가가 다리를 걸면 그 다리를 피하기보다는 패널티킥을 얻기 위해 다리에 걸려 넘어질 선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선수에게 사람들은 애정을 갖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은 젊은 선수들의 도전적인 모습으로 대리만족을 느끼는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축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도전’이라는 단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언제나 도전하는 정신은 사람을 젊게 만든다. 젊은 사람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언제나 살아있는 느낌이 들며, 우울할 겨를이 없다. 실패하면 좌절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도전을 준비하기에도 인생은 짧다고 생각하는 게 그들이다. 이런 그들에게 ‘그런 일은 돈도 적게 받고 고생만 많이 한다’라는 충고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그 곳에 있고 그 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돈 그 이상의 의미와 만족을 갖는다. 그들에게 보수라는 단어만큼 수치스러운건 없다. 그들은 어른이라는 단어도 싫어하며, 추악하고 자기위주의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며 살아간다. 설령 그들 중에서 일부는 보수적인 어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의 여파에 휩쓸려 그렇게 되기 직전까지 그들의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 성우계를 주목해보면서 이 분야는 대단히 젊은 감각을 요구하는 데에 비해 성우계 자체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많이 느꼈다. 성우 팬들이 말하는 이야기 중 ‘성우의 외모로 실망한 적은 없지만, 그들의 인간성에 실망을 한 적은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들에
게 특별히 공인으로서의 도덕성을 갖추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프로정신을 갖는 만큼, 조금이라도 자신이 성우로 있는 모든 일에 있어 귀천을 구분짓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애니메이션은 제대로 크지 못한 신인들이나 하는 일이고 외화는 베테랑들만 하는 일이다라는 관점은 성우라는 직업 이미지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성우들의 보수성을 탓할 생각은 없지만, 내가 하는 일이 훌륭하다 미천하다 하는 생각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 돈이 성우의 가치를 결정하는 세태를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부디 그렇지 않은 성우가 심적으로 소외감을 느끼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성우는 성우다. 좋고 나쁜 걸로 구분하는 직업이라면 성우뿐만 아니라 어떤 직업인들, 매력적으로 느껴질 리가 만무하지 않겠는가? 외모로서 영원히 젊게 사는 것은 앞으로 생명공학이 발달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젊게 사는 것인지를 연구하는 것은 학자가 대신 해줄 수 없지 않겠는가?, 모든 사람들의 전성기는 살아 있는 동안이며, 은퇴는 죽음 직전에 선언하는 것이라 말했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말처럼, 그녀가 지금의 그 열정과 젊음을 간직한 채 오랫동안 성우라는 직업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주길 바래본다.

- RushAm -
posted by RushAm 2005. 4. 17. 14:59

평점 : ★★★☆ (7.6)

- MBC 11기 (1993) -
생일 : 1970년 2월 19일생
데뷰작 : 핑크팬더 ‘핑크팬더’ 役
보이스 타입 : 의존도가 높은 비음을 기반으로
미묘한 차이까지 조절해내는 미세 기교 가성 타입
대표작 : 이누야샤 시리즈 ‘산고’ 役
미라클 걸즈 (요술소녀) '진유리' 役
GOOD: 구내음 이상의 대역폭을 가지는 강력한 비음
BAD : 비음 이외의 연기 대역폭은 기대 이하.

사람들이 흔히 대화를 할 때 내는 소리를, 목으로만 목소리를 내서 ‘목
소리’라는 단어로 표현되지만 실제로는 좀 다르다. 소리의 색깔, 강도, 세기를 결정하는 약 7가지의 기관이 무리가 가지 않는 한 가장 안정적인 기능만을 발휘하여 중간 정도의 세기로 말하는 것이며 이 중에서 목이 다소 큰 비중을 차지할 뿐이다. 사람들이 흔히 성우를 ‘목으로 먹고 사는 직업’이라고 표현하지만 이건 엄밀히 말하면 정말 잘못된 표현이다. 보통 사람들은 소리를 낼 때 소리의 구심점이 비교적 내구성이 강한 목 쪽에 치우쳐 있고, 목소리의 변형이 일상 생활에서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 구심점이 이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성우는 다르다, 구심점이 목에서 코로, 구내로, 혹은 구외, 배, 머리까지, 필요에 따라, 혹은 내는 목소리의 색깔, 파워, 펄스에 변형을 주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구심점을 움직인다. 물론 목에 비해 배를 제외한 머리, 코, 구내, 구외의 내구성은 형편없이 낮기 때문에, 성우라면 목 이외의 소리를 내는 기관들을 어느 정도 원활하게 활용할 수 있느냐가 성우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 문희준이라는 가수의 발언으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된 보컬 품질의 측정 자료 ‘옥타브’를 많은 사람들이 신뢰하고 있지만, 필자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실 몇 옥타브 올라간다. 라는 부분은, 그 보컬이 얼마만큼 넓은 대역폭을 가지는 척도가 된다는 점에서 가치를 깎아 내릴 생각은 별로 없지만, 몇 옥타브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한 옥타브 내에서 몇 개의 음색을 구사할 수 있느냐가, 더욱 중요한 보컬의 가치가 아닐까 하는데, 실제로 ‘도레미파솔라시’라
는 7음계가 하나의 옥타브이지만,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가 하나의 옥타브 내에서 7가지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 인간의 목소리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이다. 실제 음악을 조금만 공부해 보면 그 사이 사이 저 음계로 표현이 안되는 부분을 표현하기 위한 갖가지 표현 기호들이 있으며, 그 부분도 음악에서 충분히 쓰이고, 일반인들도 구분이 가능한 수준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7음계만으로 자신이 그 옥타브를 정복했다고 보는 것은 오만에 가깝다. 자신이 어떤 옥타브를 완전히 소화할 수 있다라고 주장을 하려면, 적어도 현재 정립되어 있는 기호로서 표현 가능한 대부분의 음계를 그 옥타브 내에서 소화가 가능해야만 하나의 옥타브를 소화한 것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것인데, 막연히 7음계에 집착하여, 대역폭 경쟁으로 가창력을 경쟁하는 모습은 내실 없는 성적지상주의와 너무도 닮아 있는 것 같아 한편으로 진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성우 우정신
90년대 이후 MBC는 지금까지의 ‘범용성’ 위주 인재 채용 스타일을
탈피하고, 세분화된 분야별 전문성을 강조하여, 입사 후에도 그 전문성을 유지하여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의 활용성을 가질 수 있는 인재로 키워나가는 인재 세분화 양성 활용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뉴스, 스포츠, MC, 다큐멘터리 등의 분야별 전문 아나운서진이 채워지기 시작했으며 그 전까지 각 분야를 넘나들며 멀티 플레이어로서 평균이상의 경쟁력을 가지지 못했던 MBC 아나운서국이 전문화된 유닛들이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되면서 지금의 파괴력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추세는 무려 8년만에 공채를 재개하고 이후 2년마다 꾸준히 공채를 이어오면서 자리를 잡게 된 성우극회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이전까지, 나레이션, 외화, CM, 라디오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모두 총망라한 범용형 성우로서 컨텐츠의 품질보다는 대형 베테랑 성우를 통한 비용 절감에 주력했던 정책을 버리고 철저하게 특정 영역과 캐릭터, 컨텐츠 타입에 최적화된 성우들을 대거 채용, 마치 그림 그리는 물감을 다양하게 구비하듯이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자체 성우진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컨텐츠 품질 향상을 꾀한다. 우정신은 이러한 장기적 플랜이 수립된 이후 첫 공채에 이름을 올린 성우로서, 그만큼 당시부터 이어진 애니메이션 위주의 컨텐츠 캐스팅의 전문화에 의해 만들어진 철저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성우이기도 하다. 그녀가 내세우는 강점은, 지금 시점에서도 충분히 그녀만의 영역에서 그녀를 대체할 수 있는 유닛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독보적이며, 또한 내세우는 캐릭터 내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음역을 통한 다채로운 연기력은 그녀가 결코 범용성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충분한 재능을 가진 성우임을 주장하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도록 해주고 있다.

클래식 음악에 특별히 관심이 많다고 보기 힘든 젊은 계층들이 성악 가수 조수미에게 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그만큼 그녀가 들려주는 음역이 다양하면서도 음색 자체가 젊은층의 신경을 자극할만큼 상당한 대중적 지지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음역을 굉장히 미세한 부분까지 표현하면서도 그 영역을 아우름에 어색함이 없이 부드럽게 처리할
수 있다는 점도 그녀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정신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조수미와 닮은 부분이 많은데, 여성으로서 구사할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이고 매력적인 보이스 컬러를 가지고 있음에도 남성 팬 못지 않게 여성 팬들에게도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 그 중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성우로서의 가치는 앞서 설명했던 그 무엇보다 그녀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 타입 그 자체로서 모든 게 설명이 가능하며, 마치 하나의 브랜드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아직까지 대중적으로 공인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성우계의 현실을 감안해본다면, 우정신의 존재는 기본적으로 평가되는 실력과 노련함 그 이상의 무언가가 분명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제법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나를 감동시킨 배역.
Canal Volfied - Lost Universe
『 슬레이어즈 시리즈가 TRY 까지 수입이 끝나고 칸자카의 후속작 로스트 유니버스의 애니화 소식이 들려온지도 한참 지났을 무렵, 당시 PC통신에서는 아주 어렴풋이 SBS의 로스트 유니버스 수입 방영 결정 소식이 나돌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SBS는 로컬방송으로서 인지도를 굳힐 수 있도록 하는 데 피구왕 통키라는 애니메이션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므로 지금까지도 애니메이션 정책에 있어 타 방송사에 비해 다소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편에 속하기 때문에, 당시 10대 초 중반 연령층에게 SBS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던 슬레이어즈 (마법소녀 리나)시리즈에 대한 편성진의 신뢰도는 낮을 이유가 없었으리라, 필자는 당시 PC통신에서 로스트 유니버스의 간단한 시놉시스조차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관련성이 없는 로컬라이징 타이틀 ‘은하탐정 케인’ 이라는 정체불명의 애니메이션이 로스트 유니버스라는 것을 알아채는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 난다. SBS 로컬의 특이할만한 점이라면 자체 성우진이 없다는 이
유 때문인지 지나치게 네임 벨류에 의존한 캐스팅을 일삼는 성향이 짙은데, 특별히 미스 캐스팅이 나지 않는 것은 성우계만큼 투자 대비 효율을 거둘 수 있는 분야도 달리 없다는 게 아닐까? 사설이 길어졌지만, 전작 슬레이어즈 TRY만큼의 호화진용을 갖춘 로스트 유니버스, 등장인물은 많지 않았지만, 칸자카의 스토리라인과 특유의 코믹 이후 급격한 진지함을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을 만큼의 연기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분위기 흐름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주저앉는 성우가 생길 수 있는 대단히 어려운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구성된 성우진이 대부분 애니메이션에서 잔뼈가 굵어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주듯, 전작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연기력을 마지막까지 선사해주었다. 그 중 우정신이 맡은 캐널 볼피드는 캐릭터 특성상 컴퓨터로서 대단히 어려운 단어들과, 논리적이고 속사포 같은 많은 대사, 거기에 감정 이입까지 가능해야 하는 상당히 어려운 캐릭터였음에도 불구하고, 잠시도 어색함을 느낄 겨를이 없이 완벽하게 캐릭터를 소화해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차 레코딩분의 하야시바라 매구미가 일본을 대표하는 성우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다는 것을 감안해본다면, 비록 2차 레코딩에서 개성을 돌출할 수 없는 패널티를 고려하더라도 우정신의 캐널 볼피드는 왜 그녀가 맡은 배역을 대체할 수 없는지가 보다 명확해진다. 이후, 분명 그녀를 대체할 성우는 많겠지만, 그녀의 캐널 볼피드를 대신해줄 성우는 그녀가 현역으로 남아있는 한 아마 없을 듯…』

우정신 vs 아사노 마스미(성우 비교분석 코너에 대한 설명)
필자가 어떤 사정(?)이 있어 개인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성우 아사노
마스미는, 데뷰 기간에 비해 비교적 주연급 배역이 많은 편이다. 이는 물론 21세기에 이르러 에로게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들이 봇물을 이루고, 원작들의 성향이 ‘상업적’ 부분을 기반으로 한 남성향에 많이 치우치다보니, 아사노의 보이스 컬러가 소위 ‘잘 팔리는’ 보이스 컬러로서 인정을 받게 된 것이겠지만, 강력한 비음을 기반으로 보이스 컬러를 캐릭터 속에서도 거침없이 수시로 바꾸어버리는 식의 제한적이면서도 범용적 가치가 있는 그녀만의 특징이 충분히 그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나치게 비음에 의지한 나머지 농도가 흐릿한 감도 있겠지만, 시대의 흐름을 잘 타고난 성우답게, 그러한 부분이 장점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작품들만을 출연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단점을 십분 활용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녀의 연기를 듣고 있으면 마치 목소리 농도가 옅다는 컴플랙스를 만회하려는 듯 캐릭터에 누구보다 심도 있게 몰두하여, 마치 서커스를 보듯이, 대사 내에서 음역이 극한과 최저치를 마치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게 오가는 느낌을 받곤 한다.
강력한 비음을 주 무기로 하는 성우들이 공통적인 애로사항을 공유하고 있는 아사노와 우정신은 서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도 무리가 없을 만큼 강점과 약점에서 너무도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두 성우 모두 자신의 캐릭터를 데뷰 초부터 확실히 정립하여 애니메이션이라는 분야 속 그녀만이 가질 수 있는 시장성 높은 캐릭터를 공략했지만, 훈련되
어 있는 실력 측면에서나, 그에 따른 팬들의 고정관념 탓에, 연기 변신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개인적으로 우정신이 언제까지 음 관련 기관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가능하면 그녀가 닿는 대로 애니메이션계에 남아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성우도 전문화와 특성화가 가능해진다면, 충분히 스스로 그 분야의 전문화를 선언한 이후에도 자체적인 자생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아사노처럼 애니메이션 속에서도 자신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자신의 보이스 컬러와 잘 들어맞는 캐릭터만을 전략적으로 연기한다 하더라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그만큼의 성장을 이루는 데에 우정신이 한 몫을 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어느 누구보다 공통점이 많지만, 10년가량 늦게 데뷰한 아사노의 성우적 가치와 위상이 우정신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 것은 성우계를 뒤돌아봐야 할 만큼 깊이 생각해볼 문제라고 본다.

영어를 처음 배우던 사람들은 누구나 느끼는 부분이겠지만, 영어에는
우리가 흔히 발음하는 발음과는 전혀 다른 음으로서 발음해야 하는 어휘 체계가 많다. ‘B’는 ‘ㅂ’과 근접할 뿐이지 정확한 ‘ㅂ’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 즉 우리나라 방식의 발음 체계와 영어 발음 체계에서 혼란스러워한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특별히 놀라거나,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처음 배운 어휘의 발음 체계만이 익숙할 뿐 이외의 발음을 발성하는 데에 소리를 내는 근육이나, 기관들이 별로 익숙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니까, (마치 늘 집에 가는 길과 조금 다른 방향의 길을 갈 때 익숙하지 않아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지…) 그만큼 어떠한 영역에서 처음 쌓게 되는 운영 체계는 배경지식이라는 이름 하에 고정관념으로서 굳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장 우리가 도레미파솔라시, 이외에 도# 혹은 솔♭같은 음을 별다른 연습 없이 일반적인 ‘도’와 ‘솔’을 발성하듯 할 수 있을까? 혹은 ‘도’와 ‘시’까지의 음을 부드럽게 이어서 음계와 음계 사이에 구분이 가능한 느껴지지 않도록 발성할 수 있을까? 글을 보는 분들은 한번씩 해보실 지도 모르겠지만,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도’에서부터 ‘시’까지를 부드러운 곡선처럼 이어서 발성할 수 있다고 머리로는 느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각 음계에 구분이 지어지게 발성 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워하곤 한다. 분명 생각해보면 이론상으로는 절대 불가능하지 않은데 어째서 일까? 목 기관은 물론이고 소리를 내는 기관은 우리가 늘 쓰는 근육처럼 가장 많이 쓰는 톤에만 익숙해진 채로 발달하게 된다. 우리가 앞으로 걷는 것보다 뒤로 걷는 것이 배 이상 힘든 것처럼 음을 내는 기관들도 익숙치 못한 음을 내는 것이 연습 없이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수의 의견은 쓸만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많은 지지를 받지 못한 의견일 뿐이다. 민주주의 사회를 배우며 필자가 가장 큰 의문을 가졌던 것은 바로 ‘다수결이라면 다수의 의견을 원칙으로 해야 하는지, 아니면 소수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건지’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는 것인데, 도대체 다수결에 대해서 한참 설명해놓고, 그 뒤의 단원이 ‘소수 의견을 존중하라’ 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아직 어른들도 정립하지 못한 불완전한 이론을 도대체 왜 싣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선생님을 아직 만난 적도 없었고, 지금도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벌써 10년도 넘었는데 그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배우는 학생을 찾기 힘든 것을 보면, 확실히 쉽게 정립을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필자는 그들에게 다수결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 보다, 소수의 의견에 대한 판단력을 기르게 하는 편이 좀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넓고 좁은 시각의 정도는 무지개를
그릴 때 7가지 색깔만을 쓰느냐, 아니면 빨강과 주황 사이의 색과 또 그 색과 색 사이에 있는 또 다른 색을 더 쓸 것인가의 차이를 가져온다. 실제로 무지개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것처럼 색경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우리는 누군가가 그려놓은 경계가 뚜렷한 무지개만을 강요하곤 한다. 다들 그렇게 그리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한쪽 무릎을 꿇고 꽃다발을 건네는 프로포즈 이외에 다른 형태의 프로포즈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프로포즈는 상대에게 더욱 가치 있는 추억이 될 것이며 그 프로포즈를 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상대에게 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으로 다가설 수 있듯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부분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어떤 분야든 특별한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 RushAm -
posted by RushAm 2005. 3. 21. 23:33

평점 : ★★★☆ (7.3)

- MBC 9기 (1983) -
생일 : 1960년 5월 5일생
데뷰작 : MBC라디오드라마 ‘여인’ 役
보이스 타입 : 가성구내음과 진성 비음을 조화시킨
진.가성 동시 복합 발성 타입
대표작 : 이누야샤 시리즈 ‘싯포’ 役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 '마리' 役
GOOD: 특화된 음역이 부담없이 소화하는 유연함
BAD
: '목소리 깔기 되게 힘들다' 는 음역적 한계

미국 메이저리그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 ‘앤드류 존스’ 라는 선수가 있
다. 성적이 꾸준하고 언제든 홈런을 날릴 수 있는 뛰어난 파워를 가지고 있어, 많은 팬층을 가지고 있는데, 이 선수가 대중들에게 많이 화자되다보니, 이 선수에 얽힌 재미있는 농담이 많다. 그 중에서도 오랫동안 같은 팀에서 같은 중심타자 역할을 맡은 ‘치퍼 존스’라는 선수와 형제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가장 유명한 편인데, 사실 치퍼는 백인이고, 앤드류는 흑인 혼혈이기 때문에 에초에 의미 없는 농담임에도, 아직 그 부분을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 단지 이 둘은 성이 비슷할 뿐인데, 같은 팀에서 각각 3,4번을 맡고 있는 중심타자이고, 둘 다 비슷한 스타일의 타격 스타일을 보여주다 보니, 혹자는 ‘부모님 중 한 명이 흑인이 아니냐’는 논리까지 내세우며 이 둘을 끝까지 형제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굳이 존스 형제(?)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흔히 우리는 성이 같은 공인이 뭔가 비슷한 스타일의 직업관을 보여준다면 매우 민감한 가족사라는 점을 잊은 채 그들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된다. 사생활 침해라는 부정적인 부분이 없지 않겠지만, 공인이라면 특히 자신의 직업 세계에서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거의 통과의례처럼 스캔들 아닌 스캔들을 치루는 것도, 이미 국민들이 그에 익숙해진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되어버렸는데, 워낙 다른 충격적인 스캔들이 많아서 그런지 요즘은 심각한 가족사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인기를 실감하는 정도에서 웃어넘기곤 한다.

아직까지는 여러 가지 부분을 종합해볼 때 대중들로부터 ‘공인’이라는 인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성우계지만, 무언가 특수성이 있는지 비슷한 이름과 연기 스타일로 처음 성우계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는 경우가 생각 외로 많다는 점은 참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역사에 비해 아직 큰 규모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성우계지만, 성문 (聲紋)이 있는 인간의 특성 상 얼굴을 닮기보다 목소리, 말투가 비슷한 경우는 드문 편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좁은 성우계에 모인 사람들이 닮은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건, 우연 치고는 보기 힘든 모습이기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특별히 선배로서 후배들이 자신의 연기를 보고 영향을 받아 비슷한 연기 스타일을 가지는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같은 신인 시절을 보냈던 동기라면, 한편으로는 동료애가 진해질 수도 있겠고, 혹은 라이벌로서 스타일이 같다는 부분 때문에 서로를 의식하며, 혹은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야만 하는 성우의 숙명(?) 탓에 다소 손해 보는 느낌이 들 지도 모르지만, 팬 입장에서는 두 사람의 경쟁을 지켜보며, 일종의 어부지리를 얻는 기분이 들어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난형난제
무려 6년만에 성우 공채를 재개했던 MBC는 이후의 방송 성향과 프로
그램의 버라이어티성을 의식했는지, 공채 기준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달라지게 되어, 8기 이후부터는 좀처럼 보기 힘든 성우들이 기수를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물론 6년이란 시간은 무시 못할 부분이긴 하지만, 컬러 방송이 시작되고 그때까지 타 방송사와의 별다른 차별성을 보이지 못했던 MBC가 여의도 스튜디오를 준공하는 등 자사의 방송 색깔을 위해 과감히 투자하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려져 있어 쉽게 간과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좀 더 젊은 색깔을 강조하며 멀티플레이어보다는 각각의 유닛 별로 개성 있는 색깔을 가지게끔 성우진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도 당시부터 시작된 정책으로서 비교적 후발주자였던 MBC극회가 지금처럼 KBS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된 것도 당시의 과감한 정책적 시도가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듯 거센 개혁의 바람 속에서 새로운 스튜디오와 함께 성우계에 발을 딛은 이선호 역시 대내외적으로 조금은 색다른 의미의 성우로서의 역할을 요구 받았겠지만, 활동 초반에는 그녀의 존재를 확실하게 느끼기엔 82~83년에 함께 데뷰했던 동기들의 개성이 너무나도 강했던 탓인지, 눈에 잘 띄지 않는 선에서 두드러지지 않게 조용히 정석대로 경력을 쌓아가는 평범한 성우로서 당시의 이선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데뷰 초기부터 자신의 색깔과 개성을 가진 채로 섹션형 성우를 표방했던 동기들과 다르게 한동안은 자신의 무기에 대한 혼란기를 겪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할 만큼 필자 역시 그녀의 데뷰 초창기 연기는 그녀의 이름 석 자를 확연히 각인시킬 만큼 두드러지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그녀가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기점으로 다소 뒤늦은 변신을 시도하게 되는데, 본인에게 있어서는 어떤 가능성이 보였는지는 모르지만, 10년째에 접어든 성우생활에 있어 가능성보다는 오히려 어떤 한계를 먼저 느끼고 변화를 시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당시 ‘마리’의 연기는 현 시점에서 이후 그녀의 여자 연기를 좀처럼 듣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자처하고서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혼신의 힘
을 다한 모습이 지금도 느껴지곤 한다. 물론 이후 그녀의 연기 변신이 대성공을 거두며 지금의 MBC 소년 스타일 성우 3강 체제를 구축하게 되지만, 아무리 성우가 평생 직업이라고 하더라도 10년차 성우가 연기변신에 신무기 장착을 한다는 것은 평균 이상의 스텟을 찍어주던 투수가 서른 살에 느닷없이 타자로 전향하는 것과 맞먹을 정도의 위험성이 있다는 점에서 다소 결과론적인 관점이지만, 충분히 박수를 보낼 만큼 멋진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전 작품에서 충분한 연기성장을 통해 연기 경험을 쌓아 왔고, 그에 따른 평가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만일 연기변신을 시도하지 않았더라도 안정적인 성우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의욕이 분명 있었겠지만, 만일 그녀가 앞서 선발주자로서 입지를 굳힌 소년형 스타일 성우들에게 데뷰 이전의 초심으로서 도전장을 던진 과감함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이선호로서 가능할 수 있었던 멋진 연기들을 팬들이 즐길 기회를 갖을 수 있었을지... 새삼스럽지만, 항상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은 무언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생일만큼이나 항상 신선하고, 거짓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주곤 한다.

나를 감동시킨 배역.
Manta Oyamada - Shaman King
『 비슷한 연기 컨셉을 가지고 있는 성우 이선주 역시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성우들에게 있어 어린아이 컨셉의 연기 스타일은 언제나 성별을 불문하고 성우들의 목을 혹사시키는 주범이 되곤 한다. 최근 치명적인 부상으로 활동을 잠정 중단한 박영희 역시 같은 문제가 원인으로, 비교적 남자아이 연기는 펄스 변화가 적어 부담이 덜 하지만, 활달한 스타일의 여자아이나, 악동 컨셉의 남자아이 캐릭터는 연기 스타일을 갖추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성역이 가장 극한으로 쥐어짜는 기교형태의 발성을 하면서도 톤을 일정하게 안정화시켜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여자 성우들에게 있어 남자
아이 캐릭터는 성우 생명을 늘려주기도 하지만, 캐릭터에 따라 성우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성향 컨셉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굳힌다는 건 그만큼 위험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연기 경력을 편중되지 않고 여성향 캐릭터를 섞어 고른 활동을 해 왔던 이선주와는 다르게 이선호의 경우 92년도에 연기 변신을 시도한 후 대부분의 배역을 남자아이 캐릭터에 편중되는 활동을 해 왔기 때문에, 연기 생명에 있어 이제 조금씩 한계를 드러낼 때가 왔으리라, 인식되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이선호는 그러한 필자의 우려 섞인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오야마다 만타로서 잠시간의 공백을 깨고 멋지게 복귀, 그녀의 남자아이 연기 10년 후 또다시 한계를 느껴 연기변신을 시도했을거라던 필자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는 순도 높은 연기를 팬들에게 선사해주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필자가 강력추천하는 그녀의 샤먼킹 예고편 시리즈는 팬이 아니라도 필청 가치 120%! 진정한 프로페셔널의 여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

에반게리온으로 유명한 안노 히데아키가 에반게리온이 한창 히트를 친 이후에 가졌던 수많은 인터뷰들 중에서 항상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저는 언제까지나 소년으로서... 물론 외모를 어떻게 소년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만 (웃음) 적어도 외모에 어울리지 않다는 이유로 억지 어른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 어른이 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통념을 깨고 저는 죽을 때까지 소년으로서 작품 활동에 임할 것입니다. 그것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죠.’ 〕

흔히 사람들이 성공을 한 뒤에 그 성공한 사람에게 성공 비결을 묻거나 혹은 묻지 않더라도 제 3자가 그의 성공비결을 조사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다름아닌,‘철저한 프로정신’… 대부분 규칙적인 삶을 추구하고, 철저하게 자기 노선을 걸으며, 다른 곳은 처다도 보지 않는 소신 있게, 그리고 장인정신으로 한 우물만 파는 사람들의 감동적인 성공담이 우리에게 다큐멘터리로 보여지며 마음속에 서사된다. 이 때문에 당시 안노 히데아키의 인터뷰는 지금까지도 매니아들 사이에서 해석이 분분하다. 그의 끝없는 창작적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 것인지, 아니면 애니메이션을 어린아이의 전유물로서 본 것인지는 본인만이 알겠지만, 그 중 유일하게 한 목소리가 나오던 부분은 다름아닌 ‘프로가 할 말은 아니다’라는 반응이었는데, 이는 사람들이 평소 얼마만큼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프로의식을 강요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에피소드라고 생각한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를 흔히 ‘자신의 능력을 어느 정도의 보수로서 지급 받는 능력 보상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마추어는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의 가치를 페이로서 보상 받지 않는 사람들을 말하며, 프로는 그와 다르게 자신의 능력 보상 페이로서 생계를 연관지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교적 아마추어에 비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데에 있어 지독히 보수적이다. 아마추어는 이러한 부분에서 자유롭기에, 무언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든지, 혹은 어떠한 부분을 동경해서 새롭게 처음부터 다시 공부한다든지 하는 인생의 변신에 거리낌이 없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곤 하는 ‘젊어서 좋구만’ 이라는 말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적어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매 시간마다 생존을 위
해,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의 책임감이, 새로운 도전에 대한 욕구를 가로막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셀러리맨들이 마음 속으로 하루에 사표를 스무 번 이상 썼다가 찢어버리는 것도, 정리해고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젊은 우리의 생각으로 볼 때 그냥 새로 시작하면 될 일이지만, 그 나이대의 사람들 입장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만큼 어느 정도 자신의 인생에서 투자한 시간 만큼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를 갖게 된 이후에 백의종군으로 새로 시작하는 도전을 한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며, 도전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완성된 레고 블록이 아무리 잘 만들어졌다고 해도, 자신이 좀 더 멋지게 조립할 생각이 들면, 만들 때의 힘들었던 기억을 뒤로 하고 과감히 부수지 않는다면, 추후 당신의 손에서 언젠가 완성될지도 모를 지금보다 훨씬 더 멋진 조립 완성품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를 테니까...

- RushAm -
posted by RushAm 2005. 3. 6. 23:36

평점 : ★★★ (6.4)

- MBC 11기 (1993) -
생일 : 1968년 1월 3일생
데뷰작 : MBC라디오드라마 격동 30년 ‘군중’ 役
보이스 타입 : 복음을 거의 섞지 않은 구내음과
강한 비음을 혼합한 설교식 가성 타입
대표작 : 왕도둑 징 ‘징’ 役
바람의 검심 시리즈 '사가라 사노스케' 役
GOOD: 부드럽고 담백한 느낌의 보이스 타입
BAD : 저음 영역을 소화하기 힘든 제한적 성역

이상한 사람에 대해서 언급한 어떤 만화동인의 코믹 강좌도 있었지
만, 인간이 풍기는 어떤 이미지는 만들어간다고 해서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행여 만들어졌다고 해도 그 만든 기간만큼 화장 혹은 가면이 짙고 두꺼워질 뿐이며, 그래 봐야 지워지지 않을 화장이나 벗겨지지 않는 가면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이론상으로 물론 불가능한건 아니지만, 지워지지 않을 화장이나, 가면이라면 이미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본래의 이득과는 상당히 먼, 오히려 당사자를 대단히 피곤하게 만드는 개체가 될 뿐이니까, 뼛속까지 *** 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은 따로 있는 법이다. 도끼나, 회칼 같은 연장보다는 내뱉는 말 한마디에 살기를 담아 상대를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사람이 진짜 무서운 법이며, 투수가 타자에게 느끼는 압박은 비단 작년 시즌의 홈런 기록이라는 수치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듯, 풍기는 느낌이라는 것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바꾸려 해도 성형수술처럼 잘 안 되는 점이 참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아주 어렸을 적 TV에 나오는 개그맨들의 개그들이 전부 리얼 애드립인줄로만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적어도 개그맨이라면 사람들을 웃기는데 있어서 설마 대본을 따로 받아서 웃음을 주는 식의 편리주의는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제법 거리가 있어 개그맨이라는 직업에 다소 실망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그 대본만 있으면 누구나 다 사람들을 웃길 수 있을 텐데, 어째서 저 사람들은 편하게 밥을 벌어
먹을까? 한동안은 이것이 필자의 가장 큰 미스터리였으나 이후 같은 대본이라도 어떤 사람이 그것을 연기하고 이야기해주냐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철저하게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고는 대단히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때까지 필자는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줄 알았으니, 노력과 재능 이외의 요소가 편협적으로 직업관에 작용한다는 점은 상당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어쨌든 말 그대로 직업관 자체에 대단한 편견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히 어떤 직업이든 그 직업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타고난 재능과 노력 이외에 DNA(?)라는 게 분명 작용한다고 그렇게 믿게 되었다. 저 사람은 정말 연기를 열심히 하고 객관적, 이론적으로 봤을 때는 완벽한데, 가슴에 차 오르는 게 없는, 흔히 말하는 2% 가 부족한 것 같은 연기자가 있는가 하면, 여타 연기자들에 비해 특별히 잘한다고 보는 부분이 없는데도, 연기, 대사 하나하나가 인상적인 사람이 분명 있다. 마치 신만이 알고 있을 듯한 이런 부분이 존재한다는 건 아무리 문명으로 밀어부처 인간복제를 한다고 떠드는 인간들이 아직 신에게 도전하려면 한참 멀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조금은 복잡한 생각들이 들기도 한다.

성우 최원형
80년대 이전 신파극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그 시절에는 진지하고 목소

낮은음 연기의 대명사 박일

리를 분위기 있게 내지 못하면 성우로서 명함도 제대로 못 냈었고, 이후 이인성을 시발점으로 대대적 변혁기를 이루긴 했지만, 최근까지도 남자 성우를 평가하는 기준에 있어서 풍부하고 부드러운 저음 발성은 필수적으로 지녀야 할 기본이었다. 남자 성우 지망생들은 목소리가 가늘고 펄스 파형이 제대로 높아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배를 마시기 일쑤였고, 덕분에 남자 성우들 중 기교형 성우가 지금도 눈에 잘 띄지 않는 편이다. 기수별로 몇몇 성우들이 타고난 가벼운 목소리 톤을 극복하고 성우극회의 이름을 올린 적은 있지만, 현 시점을 기준으로 오랜 기간동안 꾸준히 활약해온 성우로서는 최원형이 첫 테이프를 끊은 셈인데, 그가 어느 정도 노력파인지, 아니면 타고난 천재형인지 알려진 바는 없지만, 목소리가 진하게 나오지 않는 일종의 패널티를 감안하면서도, 나름대로 창안한 독특한 캐릭터 연기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굳혀 나가고 있다는 점이 필자가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소위 히딩크의 파워축구가 대세를 이루던 시절, 몸이 약한 태크니션들이 찬밥을 받고 있는 와중에 파워가 약하다는 단점을 조금도 고치거나 하지 않고 자신의 장점만을 강조하며 뛰어든 셈이니, 성우계 자체로서는 나름대로 신선한 부분을 부각시키려 했는지도…) 아무튼 가시적인 활약 측면에서는 꾸준한 출연과 치우치지 않은 다양한 연기폭으로 확 눈에 들어올 만큼 눈에 띄는 대작을 맡지는 않았지만, 충분한 조연 경력과,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진정 놀란 것은 그가 타고난 천재라거나, 특별히 노력한 흔적 없이 다른 성우와는 다르게 평범한 연기 속에서 사람을 흡입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목소리가 얇다는 것은 그만큼 강렬하지 못해 뇌리에 남기기 어려운 패널티를 갖지만 최원형의 연기는 분명 얇고 가벼운 목소리임에도,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는 무언가를 주곤 한다. 굳이 연기로서가 아닌 그 이외의 무언가로서 캐릭터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것처럼, 필자가 생각해도 정말 말이 안 되는 말이지만, 그를 바라보는 필자의 느낌은 확실히 연기력 이외에 그가 승부하는 무언가가 따로 있는 양 착각하게 될 정도인데, 왠지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가볍게 툭 내뱉듯 나오는 대사들이라도 그 속에 상대를 얼어붙게 만드는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즉 풍겨지는 이미지만으로 캐릭터를 제압하는 타입의 인간이 성우계에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그는 직접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구자형의 이미지로 굳어져버린 슬레이어즈의 제로스 연기를 대단히 훌륭하게 소화해 낸 점을 생각해본다면, 필자의 이런 생각도 전혀 기우가 아님을 인식하게 되곤 하는데, 무한경쟁사회의 극을 달리는 성우계에서 이미 평범함은 무기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대단히 필사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최원형의 무기는 지금의 그 무엇보다 색다르긴 해도 결코 무디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를 감동시킨 배역.
카스칼 선생님 - 赤ずきん チャチャ
『 소년 기사 라무와 함께 주중 애니메이션으로 야심차게 준비한 빨간망
토 차차, 앞서 컬럼에도 이야기를 꺼냈었지만, 무언가 연속되는 스토리로서 지구를 구한다는 식의 로봇메카물 라무보다는 가볍고 편한 소재를 다룬 집단개그물이었던 차차쪽이 필자에게는 더 잘 맞았던 것 같다. 특히 이 작품은 MBC에서 최대한 자사 극회 성우들로서 배역을 꾸린 애니메이션들 중 가장 화려한 성우진을 기용한 작품으로 팬들 사이에서 최근에까지 손꼽히곤 하는데, 당시 외화에 주력하던 중견 성우들과, 이제 막 신인 티를 벗기 시작한 신인들의 절묘한 조화는, 특별히 튀지 않고 이어질 수 있는 4쿠르 이상의 장편 시리즈를 무난히 소화할 수 있는 하나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필자가 최원형에 대한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 작품도 바로 이 작품부터인데, 카스칼 선생님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개성이 워낙 강하다보니, 일반적으로 그 캐릭터에 자신을 맞추거나, 혹은 이미 레코딩 된 1차 레코딩에서 연기하는 감정 스타일을 흉내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어느새 그의 카스칼은 추후 듣게 된 1차 레코딩 버전과 SBS방영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최원형만의 캐릭터가 되어 있었다. 한 작품 내에서 성우의 연기력, 아니 그 이외의 부분이 캐릭터를 기억하게 만드는 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으로 인지하게 만들어준 것도 그의 카스칼 연기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상적인 연기란, 목소리를 심하게 내려깔면서 분위기를 잡는 무겁고 허스키한 목소리도 아니고, 외계에서나 들을 수 있을법한 서커스 같은 발성도 아니라는 것을 그는 그렇게 카스칼이라는 캐릭터 뒤에 숨어 우리에게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나를 좌절시킨 배역.
Pseudo - Bastof Lemon
『 사실 우리나라 성우들에게 있어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은 아킬레스건이다.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이 그만큼 많지 않았다는 것도 그렇지만, 성우들은 대부분의 레코딩 작업을 자신이 받아 든 대본에 의존하기보다는 1차 레코딩된 애니메이션 성우 혹은 영화배우들의 목소리, 말투 타입에 의존하여 연기를 펼치는데 오랫동안 너무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에, 흔히 드는 예로 NG라는 방어막이 있는 TV 드라마 탤런트들의 연기가 연극 극단 출신 배우들의 연기 내공을 따라갈 수 없다는 이야기처럼, 라디오 드라마보다는 애니메이션, 외화 더빙이 성우 스케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요즘 성우들의 스케줄 수첩을 생각해본다면, 성우계 스스로 더 높은 곳을 향해 간다는 노력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며, 보다 오랫동안 성우계에 남아 안정적으로 직업을 유지하겠다는 다분히 보수적인 부분이 내포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곤 한다. 이야기가 잠시 샛길로 빠졌지만, 90년대 이후에 데뷰한 성우들의 창작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주는 실질적 연기력은 한숨이 나올 정도였으며, 당시까지만 해도 최원형에 대해서 위와 같은 이유로 다분히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배역진에 포함된 다른 베테랑 성우들 (송도영, 구자형, 이현선, 한인숙, 김희선) 속에 주연으로 포진하고 있는 최원형이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방영 전부터 심하게 든 것 같다. 특별히 요점 없는 총평을 내린다면 잔뼈가 굵은 베테랑 성우들 속에서 비교적 무난하게 잘 해낸 셈이지만, 평소 그의 색
깔을 조금도 발휘하지 못한 채로 캐릭터를 제대로 살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캐릭터의 색깔을 잊은 채 자신의 페이스로 캐릭터를 묻어버리는 식도 아닌 그저 그런 평범한 연기로 일관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 그에게는 필자가 기대한 그 무언가를 해내기에는 좀 무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제작사들이 캐릭터 컨셉에 맞지 않는 부분을 감수하고, 3배 이상의 페이를 지불하면서까지 A급 성우들을 창작 애니메이션에 투입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닌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신인들의 패기 있는 연기를 작품 속에 녹이려는 바람은 제작자, 팬 모두 같은 마음이겠지만, 아직 제대로 된 양성 체제가 자리잡지 못한 우리나라 성우계에서 창작 애니메이션 배역의 베테랑 선호 현상을 개선할 여지는 아직 찾기 어려워 보인다. 그나마도 지금과 같은 일부 Big Unit 들의 커리어 집중 현상이 계속된다면,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창작 애니메이션의 소재 자체에도 국내 성우계의 현실적 제약이 적용될지도 모른다. 특히 최원형은 데뷰 초기부터 지금까지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일본식 청년 캐릭터를 잘 소화할 수 있는 가볍고 청량한 타입의 성우로 평가하면서 나름대로 기대를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성급한 판단이지만, 실전에 약한 그의 현 모습에 아쉬운 기분은 지우기 어려울 듯 』

최원형 vs 세키 토모카즈(성우 비교분석 코너에 대한 설명)
열혈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세키 토모카즈, 젊은 나이에 목을 너
무 혹사시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목소리가 깨지는지 어떤지는 조금도 개의치 않은 채 캐릭터가 처하는 이벤트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연기 스타일을 보여주곤 한다. 그의 데뷰 시점과 일본 애니메이션 트랜드 흐름이 비교적 잘 맞은 탓인지, 데뷰 시기에 비해 주연급 경력을 대단히 많이 쌓을 수 있었던 운 좋은 성우이기도 하다. 일본쪽 성우계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라서, 쏟아지는 수요에 비해 10대 중 후반 소년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성우들의 수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여성들의 소년연기로서 커버가 불가능한 캐릭터들을 몇몇이 독식하고 있으며, 세키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그 때문인지, 창작 애니메이션에 대한 연기력 저하는 없지만,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 중 약 80% 정도가 열혈 소년 캐릭터이다보니, 실제로 내면 연기(?)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곤 한다. 특히 대본이 다소 부실하거나,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특이한 설정의 캐릭터, 조연급 중에서 베테랑급 성우진이 포진되어 있지 않은 채 자신이 이야기 자체를 이끌어가야하는 책임을 지게 될 경우 마치 애니메이션 작화가 갑자기 떨어지듯, 연기력이 급하락하기도 한다.
세키는 전체적으로 성량이 좋은 편에 속하지만, 최원형은 그 부분이 다소 불리한 조건이기 때문에 역시 공정한 조건에서의 비교 자체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주연 연기에 약하거나, 애매한 캐릭터 설정에서 자신의 페이스를 찾지 못한다는 점, 목을 아끼지 않고 (최근에는 다소
목을 사리기도 하지만) 자신이 그 캐릭터를 지배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공통점을 지닌다. 10대 중 후반의 쾌활한 타입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 보이스 타입을 가졌다는 부분이라든지, 주,조연 배역 중에서 극을 이끌어나갈 베테랑 성우 연기자가 없을 때 연기 페이스가 흔들리는 점도 닮아 있는 부분 중 일부분, 1차 레코딩에 있어서 배역이 겹치는 부분은 아직 거의 없지만, 우선적으로 세키가 맡은 캐릭터는 최원형에게 있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캐릭터 배역이 많다. 무엇보다, 일 자체를 좋아하고 즐기면서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하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최원형의 성우 예찬론은 다른 그 어떤 부분보다 세키와 닮았다고 필자가 확신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작곡의 제일 첫 작업으로 드럼 파트 제작을 한
다. 그 뒤 베이스를 넣고, 피아노 등으로 그 음악의 색깔을 표현하는데, 이러한 음악 공정은 어린 시절 이름이 잘 기억 나지 않는 클래식 음악 작곡가가 강의한 음악 작곡 강의와 일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랫동안 음악을 만드는데 철칙으로 굳어진 바이블로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흔히 음악 요소에서 베이스를 무시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실제 실생활에서 간단히 해볼 수 있는 실험으로 듣고 있는 MP3플레이어의 이퀼라이저 제일 왼쪽에 있는 저역 주파수를 최저치로 내려보면 음악이 얼마나 어색해지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악일지라도 그렇게 저역을 없엔 상태로 듣게 된다면, 그 음악이 과연 인상에 깊이 남을까? 최근 현대음악들이 네티즌들로부터 음악성에 대한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특별히 그들이 음악성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한다기보다는, 베이스를 단순화시키거나 혹은 무시하고, 듣기 좋은 대역폭에서 보컬이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의 제한적 음악만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뇌리 속에 깊게 남지 못하고, 예쁘게만 부르려는 여자 보컬들과, 깊고 힘차게 부르지 않고 마디마디가 굉장히 짧게 끊어지는 신화 같은 남성보컬들이 특별히 인상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도 그 주장에 대한 근거로서 한 몫 하고 있으며, 그만큼 대중들에게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조건 하에 자신을 각인시킨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필자의 이런 이야기들이 정설이라면, 가요 프로그램 1등을 하는 가수들은 인기도면에서 도토리 키재기가 될 만큼 하향평준화가 되어야 옮지만 알다시피 현실은 좀 다르다. 위에서 언급한 임팩트 없는 보컬 스타일의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는 가수 ‘비’, 최근까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비의 보컬은 앞서 필자가 언급한 것처럼 그렇게 인상에 깊게 남을 만한 보컬은 아니지만, 그는 그가 가수로서 무대에 오를 때 그 무대를 지배하고 그 자신이 노래를 부르는게 아닌, 노래를 자기 자신의 일부로서 지배해버린다. 그래서 비의 보컬은 특별히 감정을 표현하지도 않고, 음의 높낮이도 다양한 편도 아니고, 언뜻 들으면 곡의 두서가 없게 들리기도 한다. 때문에 그의 보컬 스타일은 꽤 간단
해 보이지만, 많은 개그맨들이나, 가수들이 마치 유행어처럼 그의 보컬 스타일을 따라하면서 간혹 아주 비슷하게 흉내내는 사람이 있더라도, 비의 오리지널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노래인데, 그냥 노래 중간에 숨소리를 들려줄 뿐인데, 그가 들려주는 숨소리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듯이, 노래 자체는 아량곳 하지 않고 비가 풍기는 무대 위의 카리스마에 많은 사람들이 매료당하곤 한다. 이런 부분들은 일반적인 통념 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분명 아니더라도, 베이스 없는 유로비트 음악이 정통 록을 주창하는 일부 뮤지션들에게 한때 날림 음악이라 혹평을 받았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하나의 주류 음악으로서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그 사람만이 가진 DNA의 힘이 타고난 재능과 꾸준한 노력이라는 성공의 교과서를 가볍게 부정할 수 있다는 부분 역시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개성’이라는 것과 더불어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 자신을 지배하고 자신의 일을 지배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진정 매료시킬 수 있는 법이니까...

- RushAm -
posted by RushAm 2005. 2. 19. 17:26

평점 : ★★★☆ (7.5)

- MBC 8기 (1982)-
생일 : 1959년 11월 27일생.
데뷰작 : 천사소녀 새롬이 ‘새롬이(유리) 엄마’役
보이스 타입 : 부드러운 비음과 깨끗하고 고른 구내음을 복합한 진성 타입
대표작 : 꼬마 마법사 레미 ‘레미’役
시간 탐험대 ‘샬라라 공주’ 役
GOOD: 연령별 캐릭터별로 고르고 깨끗한 성량과 음질
BAD : 범용적이지만 명확하지 않은 캐릭터 영역

성우 공채 시험을 보러 가면 우선적으로 방송사 건물 앞 광장(이라고

상기 사진은 본문과 관계없음

하기에는 대부분 좁은 수준, 그냥 주차장 정도)에 모여 수험표를 배정 받고 수험번호에 따라 순서를 기다린다. 약 1시간, 길게는 2~3시간정도 대기시간이 주어지는데 남녀비율이 넉넉잡고 2:8정도 되는 지망생의 성 비율은 둘째로 치더라도 각자 그 시간 동안 자신이 가장 잘 낼 수 있는 미성을 가다듬는데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목을 풀어주는 허브티를 가져와 마시는 사람 (KBS공채는 겨울에 있기 때문에 이런 모습이 흔하다) 목을 풀기 위해 날달걀을 깨먹는 사람은 기본이고, 목청 맛사지, 복식 호흡법, 한방요법까지 온갖 진풍경이 벌어지곤 한다. 필자가 이전 컬럼에서 늘 강조했던 부분과는 상반되긴 하지만, 실제 공채 시험장에 가 보면 심사 기준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붙어있는데 1번 평가 기준이 바로 ‘미성’ 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다 보니 제한된 짧은 시간 안에 그 사람의 모든 연기 성향을 제시된 예문만으로 다 파악할 수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의 연기력 발전 가능성까지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1차적인 심사는 우선적으로 미성, 즉 흔히 성우들이 말하는 어느 정도 타고난 ‘목욕탕 소리’ 에 얼마나 가까운지를 보는 것이다. 탤런트시험에서 아무리 예쁜 얼굴의 지망생이 있더라도 카메라테스트에서 화면발이 받지 않으면 탈락하듯이 자체적인 미성도 중요하지만, 얼마만큼 마이크 등의 음향기기와 상성이 잘 맞는지를 유심히 들어보는 것이 심사위원의 역할이다. 이 부분은 2차 3차 면접에 가서 실제 성우들 앞에서 연기를 할 때도 대부분 우선고려대상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열심히 하는 것도 나름대로 이해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남성들과는 다르게 여성들은 실제로 마이크 앞에서 연기를 하기 시작하면 펄스 진폭이 확연하게 떨어지는 차이를 보인다. 그 차이가 크지 않다면 보통 음색 차이로서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마이크별로 증폭을 다르게 하더라도 해결이 안 되는 정도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목소리는 직접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대역에서 가장 이상적인 증폭을 해주어야 하는데 그 성우만을 위해 따로 믹싱을 거쳐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여성 성우들이 목소리를 예쁘게 내는 데에 급급한 나머지 쥐어짜는 식으로 목을 과도하게 혹사시켜가면
서 서커스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발성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가 증폭이 제대로 되지 않는 대표적인 경우로 대부분의 지망생들이 이 부분에 걸려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미성과 증폭의 상관관계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것은 성량이 남성에 비해서 약한 여성들에게는 분명 쉬운 일은 아니며, 사실상 얼마만큼 일정 이상의 성량을 낼 수 있다는 조건 하에 가능할 수 있는 캐릭터와 연기 스타일이 얼마나 다양하게 이루어지느냐가 성우로서 가치향상을 가져올 수 있는 변수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상 현직 성우들 중에서도 대부분 음의 기교와 다양한 캐릭터 연기를 소화할 수 있으면서도 성량이 약하거나 음의 깨짐으로 인해 음폭이 불안정하여 역할에 제한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지망생들이 한번쯤 유념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성우 박영희
82년 이미자와 입사 동기로서 이미자가 주로 열혈 소년물을 맡으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면 박영희는 그와 정 반대로 여성적인 성향을 십분 활용하여 변신 소녀물이나 소년용자물의 히로인 등 다분이 소녀팬들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과 소년물의 감초격인 공주형태의 히로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당시로서는 닛폰 애니메이션과 토에이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들이 미래소년 코난을 필두로 시청률면에서 쏠쏠한 히트를 거두고 있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도 외화보다는 애니메이션쪽에 어울릴 법한 보이스컬러를 가지고 있었던 박영희의 실력을 조용히 키울 수 있었던 환경적인 요소가 다분히 이상적으로 타고 났다고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영역에서 연령대별로 어린 유아틱한 소녀부터 성숙한 숙녀까지 모든 연령층을 성량의 변화 없이 고르고 안정적으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은 많은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고, 이후 외화와 애니메이션을 오가며 자신의 영역을 점차 굳혀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작품 내에서의 비중 있는 역할이나, 출연 작품 수에서 동기들에 비해서 다소 쳐지는 느낌은 없지 않지만, 그만큼 확실히 각인될 수 있는 알짜배기 작품들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주로 들을 수 있으며 다른 성우들에 비해 출연 작품 대비 비중 면에서는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녀는 추후 프리랜서 선언을 한 이후에도 MBC 이외의 방송사에서는 좀처럼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몇 안 되는 MBC극회 주력자인데, 이는 MBC의 방송스타일... 즉 사운드의 해상도를 강조하는 방송 설비의 특성에 따라, 펄스가 부드럽고 목소리 시작과 끝에 노이즈와 스크래치가 끼지 않았던 성우가 그만큼 많지 않았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성우들은 목을 관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성우도 연기이니 만큼 어느 정도 감정을 몰입하다 보면 울부짖는 신에서는 어김없이 원음이 깨지거나 찢어지듯 나오게 되어 NG를 내거나 OK사인이 나와도 굉장한 포스로서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들 지는 몰라도, 듣기에 과히 좋은 음색이 나오지는 않는다. 성우들은 이 부분을 얼마만큼 능숙하게 잡아주고 자신이 무리하지 않는 성량과 진폭을 적절히 조절하여 그 속에서 연기 품질을 끌어올리는 것이 경험과 연륜 그
리고 타고 난 재능의 차이라고 말한다. 연습으로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안정성…이라는 것은 역시 타고난 성역과 풍부한 연기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박영희가 가질 수 있는 성우로서의 가치가 높게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녀와 비슷한 연기 성향을 가진 성우는 비교적 많은 편이고 그 중에는 경력이나 명성 측면에서 박영희보다 더 나은 성우도 존재하기 때문에 데뷰 후부터 지금까지 많은 작품에 참여하지 못했고 지금도 우선 고려 대상에서는 아직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지만, 그것도 2시간 정도의 분량을 가지는 영화나 2쿨 이하의 단편 애니메이션 정도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이며, 한번 만들어진 목소리를 장기적인 캐릭터로서 오랜 기간 변함 없이 소화해야만 하는 TV 외화 시리즈나 2쿨 이상의 장편 애니메이션에서 경쟁 상대로 거론할 수 있는 성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만큼 안정적으로 목소리를 오랜 기간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내어준다는 것은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을 다른 성우보다 많이 갖게 된다는 점을 볼 때 성우의 경력 측면에서는 보다 긍정적인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감동시킨 배역.
Cocoa & Drum - VS騎士ラムネ& 40 炎
『 개인적으로 필자는 로봇메카물을 싫어한다.
물론 필자라고 해서 로봇메카물에 열광하던 어린 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애니메이션을 지금까지 꾸준히 봐 오면서 어느 정도 기울어진 성향 속에 로봇메카를 소재로 한 소년용자물에서는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MBC에서 이래적으로 뻑적지근하게 예고광고를 몇번씩이나 때리면서 거창하게 방영을 시작한 소년기사 라무도 처음에는 메카물이라는 이유로 외면하던 필자였으나, 여타 메카물에서 강조하던 메카닉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개성적인 캐릭터와 전생물이라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소재스토리라인에 빠져 초반 어수선한 1기 중반을 제외하고는 모두 빠지지 않고 시청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필자를 열광시킨 것은 웅장한 스토리라인 속에서 소화
하기 힘든 캐릭터를 120% 소화하고 있는 성우들의 열정이 느껴질 듯한 연기였다. 박영희도 그 중 하나로서 다소 엉뚱하고 가벼운 느낌의 코코아 공주라는 캐릭터와 2기에 이르러 등장하는 차분하고 슬픈 느낌의 캐릭터 드럼 공주를 한 작품 내에서 동시에 아무런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실로 그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작품 분위기가 한없이 진지해지고 무거워질 때, 매우 슬픈 결말 속에서 작품에 몰입하여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드럼 공주의 연기는 당시 청소년기를 보내던 필자를 경악하게 했으며, 아직도 머릿속에 강한 자극으로 남아있다. 애니메이션에서 감정을 몰입하여 슬픈 연기를 하는 것은 필자의 기억으로 아직까지 시도해서 성공적으로 그 연기를 이끌어낸 성우가 지금은 활동 중지중인 최덕희를 비롯하여 몇 명 되지 않지만, 필자는 그 중 박영희의 드럼을 주저 없이 최고의 캐릭터 연기라 주장하고 싶다. 단언코 그녀는 소년기사 라무 최종회에서 빛날 수 있는 최고의 빛이었으니까...』

박영희 VS 이노우에 키쿠코 (성우 비교분석 코너에 대한 설명)
아앗 여신님의 베르단디로 대표되는 이노우에 키쿠코는 많은 출연작
품수에 비해서 목소리의 기교가 그렇게 다양한 편은 아니다. 출연작 대부분이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까지,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에서 주연급을 맡기 힘든 연령대를 주로 소화하기 때문에, 그녀의 출연작들을 보면 언제 이렇게 많은 작품에 출연했나 싶을 정도로 확 들어오는 대표작이 적은 모습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과감하게 극소녀층이나 극노년층의 연기를 함부로 시도하지 않고 자신이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연기 영역에서 연기의 감성적인 부분으로 승부를 하며, 그 때문에 단역이건 주연이건 모든 역할에서의 보이스 퀄리티가 높은 편으로 많은 PD들이 선호하는 성우이며, 많지 않는 대표작들이지만, 그 작품들의 인지도가 비교적 높기 때문에 성우 팬이 아닌 일반적인 게임, 애니메이션 팬들의 지지도도 높은 편이다.
박영희는 이노우에 키쿠코처럼 보이스 퀄리티를 중요시 하는 스타일의 성우로서 특별히 고연령층만을 타킷으로 잡지는 않지만, 자신이 소
화 가능한 연령층에서 펼쳐보일 수 있는 감성적인 역량을 십분 활용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주역을 맡을 수 있는 범위가 적기 때문에 대표작이 많지 않은 편이지만, 그 대표작들의 인지도로 인하여, 자신의 존재가치를 각인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범용적인 측면에서 다소 한계가 있어, 출연 빈도수가 높지 않으나, 국내의 애니메이션 인프라와 실제 방영된 작품 수를 감안해볼 때 게임계에서의 활약 측면에서 보면 비중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실제로는 대단히 넓은 활동폭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보이스 컬러를 비교하기에는 연기를 소화하는 연령폭 측면에서 이노우에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객관성에는 다소 문제가 있겠지만, 박영희가 이노우에의 연기 연령층을 소화하는 모습을 보면, 보이스 컬러나 연기 스타일이 상당 부분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실제 양쪽 팬들의 연기 이미지에 대한 평가도 고급스럽다, 차분하고, 단아한 느낌이다. 라는 평가가 많다는 점도 이를 반증하고 있다.

화장을 하는 여자들에 대해서 흔히 여성들의 인식과 남성들의 인식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은 그것이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인생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반면 남성들은 흔히 나오는 유머에서 자주 활용되는 것처럼 화장빨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하며, 화장기 없는 얼굴에 대한 가치를 대단히 높게 매기는 편이다. (이에 대한 이유를 들어보자면, 생명공학과 유전학적 지식이 동원되어야 하는데 필자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므로) 하지만 사실 미의 대한 기준과 척도는 하나의 기준으로서 평가할 만한 부분은 못 된다고 생각한다. 화장하는 것이 어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장을 하면 안 어울리는 스타일, 즉 맨 얼굴이 좀 더 나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화장을 한다면, 우선적으로 그 화장이 얼마만큼 어울리는지, 그 사람이 화장이 어울리는 사람인지 아니면 맨 얼굴이 어울리는 사람인지를 보아주어야지, 맹목적으로 화장기 없는 순수미인을 찾는 것은 단순화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자신이 가장 아름다워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에 인생의 대부분을 소비하는데, 모든 여성이 맨 얼굴로서 승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많은 지망생들이 공채 시험을 준비하면서 주로 시도하는 연습 방법에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자신의 스타일이 목소리의 기교를 통한 다양한 연기폭을 가지는 식의 멀티플레이어형인지, 하나의 포지션에서 연기 기량 측면을 폭넓게 가져가는 품질 중시형인지를 파악하지 않은 채로, 대부분의 지망생들이 초반 입지에서 선호되는 다양한 연기폭을 갖기 위해 목을 혹사하면서까지 넓은 연령대의 연기를 소화할 수 있도록 연습하곤 하는데, 자신의 스타일에 이러한 연습 방법이 적합한 사람도 있으므로 반드시 나쁜 연습법이라고는 할 수 없고, 실제 PD
들이나 국내의 제한적인 인프라 탓에 팔방미인형 멀티플레이어가 선호되고 있기는 하지만, 굳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스타일을 고수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보다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택하여 훈련하는 것이 당장의 기회 측면에서 다소 불리하게 가져가더라도 보다 내실 있는 경력을 쌓아가는 데에 좀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연기폭이 넓지 않아도 자신이 가장 최상의 연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다면 분명 좀 더 나은 기회가 올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투수가 다양한 구질로 절묘하게 타자를 속이는 컨트롤형이 있는가 하면 강력한 직구로서 타자를 윽박지르며 속시원하게 삼진을 잡아내는 투수도 있지 않은가? 어느 쪽이 좀 더 멋져 보이는지는 지금 생각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미래에 당신의 연기를 즐길 팬들의 몫일 테니까...

- RushAm -
posted by RushAm 2005. 2. 15. 10:30
우리들은 초등학교 때 배우는 기초 인성학문들 중 얼마나 진실이 있고 얼마나 거짓이 담겨 있는지를 잘 모르고 있다. 박정희 정권 때는 박정희 대통령이 하는 정책이 다른 어떤 나라에 비해서 민주적이고, 당연히 대통령은 그 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박정희가 해야 하는 걸로 배웠으며 간첩 반공은 무조건 때려잡아 바로 사형시켜도 인권에 어긋나지 않는 걸로 알았다. 5공때도 초등학교 교사들에 의해 왜 광주사태가 정당했고, 그들은 왜 빨갱이인지를 수차례 들어오며, 한문 학습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권장하던 조선일보를 읽으며 사회에 대한 편향적인 가치관을 갖게 되어 지금에 이른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초등학교 때에 생기는 사회 가치관의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중학교 입시가 없다는 유일한 장점으로 인해 학과 수업보다는 사회 전반적인 이슈나, 사회 문제등을 중심으로 교사들의 수업이 가끔 이어질 때가 있는데, (중등교육 이상부터는 꿈도 못꾼다. 만일 그런 교사가 있다면 학부모들이 나서서 그 교사의 생명은 끝날 것이다. 황금 같은 수능 예비 공부시간을 쓸데없는 데에 할애한다는 이유로) 이 시간에 교사들은 객관적인 시각으로서 사회 문제를 짚어주고, 학생들이 그들의 눈으로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메스컴을 보고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직설적으로 주입하는 데에 그친다는 점이다. 필자가 지금 사회 전반적으로 일어나는 많은 가치관 충돌 및 계층간의 갈등의 원인을 바로 이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야기가 잠시 샛길로 새어버렸지만, 아무튼 대부분의 가치관 확립과
그나마 인성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이 초등학교때 배우는 사회적 가치관과 규범 등이 실제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은 제법 큰 문제라고 본다. 아직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교과서는 5년마다 개정판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5년 전의 국회 모습, 5년 전의 정책을 배울 수도 있고, 교과서를 만들던 시기를 포함한다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으며 실제로 필자는 그것을 실감하며 자라 왔다. 교과서를 집어던지고 도서관의 과거 신문 열람실과 전문자료를 탐독하는게 이해안가는 단어가 많았던 초등학생 신분으로서도 사진의 정확성 측면에서 더 나은 결과였으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 아무튼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도덕적 대표어 중에 필자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는 말을 가장 크게 왜곡된 언어로서 봉하고 싶다. 초등학생들은 그 말을 정말 진심으로 믿고 자라나지만, 메스컴에서 연일 벌어지는 각종 비리와 혼탁한 돈 문화들은 그 말에 대한 설득력을 갖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로서 가치를 갖고 있는 교육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실제 배우고 자라면서 그 말이 얼마나 거짓말인지를 느끼고 반대편으로 튕겨나가는 힘이 직접 던지는 힘보다 더 크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Episode.1
얼마 전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 ‘이
성재’ 씨가 나온 적이 있다. 성에 관련된 에피소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토크쇼 형태의 프로그램에서 그는 솔직담백한 언동으로 출연자들에게 큰 공감과 전체적인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떤 여성 출연자가 자신과 관련된 에로비디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자, 문득 이성재씨가 끼어들며 한마디를 던진다.
- 에로가 나쁘니? -
그 프로그램은 심야 프로그램이었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타킷을 던진 프로그램이 아니며 출연진 역시 갓 20대를 넘긴 것도 아닌 20대 중반 이상으로 출연진을 꾸린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이성재씨의 저런 주장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으며 엄밀히 따지면 우스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출연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의 위트로서 받아들이고 폭소를 터뜨린다. 그 폭소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사회적 통념에 묶여 있던 끈을 조금이나마 느슨하게 해줌과 동시에 전혀 속박되어 살고 있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 이성재씨에 대한 무언의 부러움이라는 감정이 복합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아이들을 길러내는 수 많은 부모들과 그 아이들의 첫 번째 스승이 되어줄 우리나라 수많은 초등학교 선생님들에게, 제발 부탁이니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눈에 자신의 시각을 대입시켜서 역으로 색안경을 끼우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들이 보는 세상은 분명 당신들이 보는 세상과 다르다. 뉴스에서 도둑이 남의 집 물건을 털었다는 소식을 전할 때, 그 도둑질이 나쁘다는 식으로 가르친다면 십중팔구 아이들은 되묻는다 ‘도둑질이 왜 나쁘죠?’라고 그럼 십중팔구 부모들은 말한다 ‘부모들이 나쁘다면 나쁜거야!’ 라고, 자 그럼 그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가 되어서 9시 뉴스를 보고 정치인들이 세금 도둑질을 하고서도 면책 특권을 통해 사면 복직하고, 국민들은 그 사람에게 정치 잘했다고 재선으로서 다시금 국회의원직을 안겨주는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같은 도둑질임에도, 수십억을 착복한 사람들은 도둑질이라는 천박한 단어가 아닌 착복이라는 단어로 표현되었다는 이유
로 조금도 처벌받지 않은 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가진 재력 앞에 그들에게 온갖 위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고, 생계가 어려워 아이들 분유값을 위해 몇만원을 절도한 일당에게는 도둑놈이라며 온갖 나쁜놈이라는 나쁜 놈 단어는 다 가져다 붙이는 것을 보고 아이들은 어떻게 느낄 것인가? 굳이 이렇게 먼 예를 들지 않아도, 자신보다 집안이 더 좋고 선생님의 아들이 시험 문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유출시켜 성적이 잘 나와 좋은 대학에 가고, 자신이 의사가 되고 싶은데, 자신보다 훨씬 낮은 성적의 아이가 아버지가 의사라는 이유로 자신을 누르고 의대에 합격한다면 그런 일을 겪게 되는 아이들은 우선적으로 지금까지 굳게 믿고 있던, 직업의 귀천에 대한 자신들의 가치관부터 의심하게 될 것이다. 이게 아닌데, 선생님은 분명 저 국회의원들과 일반인들과 같은 직위로서 평등하다고 했는데 왜 저들은 잘 살고 있는 거지? 왜 그럴까?, 수 많은 호기심에 휩싸여 있지만 중고등학교때 사회 인성 교육을 해주는 선생님이나 학부모는 없다. 오로지 6년간 대학입시를 위해 그러한 생각은 ‘잡생각’이라는 것으로 치부되어 잠시동안 잠재 시켜 두어야 하는 쓸데없는 것들일 뿐이다.

Episode.2
필자가 초등학교시절 학생들에게 직업에 대한 귀천을 어떻게 생각하
냐는 것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발표를 시키면서 ‘귀천이 있다’ 라고 말하는 학생들에게는 교실 전체 학생들의 이상한 시선을 받게 하고, 교사가 마치 거짓 진술을 한 죄인을 다루듯이 계속적으로 학생을 추궁하여 결국 원하는 답을 이끌어내는 식으로,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는 것을 거의 반강제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교사에게 필자의 발표 시간을 이용하여 약 3분여동안 어째서 귀천이 없는지에 대한 설명을 교사에게 부탁한 적이 있었다. 필자의 기대와는 달리 교사의 대답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옛날 관료주의시대때는 직업의 귀천이 있었지만 지금은 현대이며 만인이 평등한 민주주의 시대이기 때문에 귀천이 없다’ 라고 말한다. 항상 이런 말 뒤에 붙은 흔한 질문들이 필자 뒤로 계속 이어진다. ‘그럼 대통령도 우리랑 같이 평등한 직위인가요?’, ‘국회의원은요?’, ‘장관은요?’, ‘할아버지는요?’ … 생각해보면 참 순수한 발상이다. 교사는 모두 다 평등하다는 말을 웃으며 학생들에게 전한다. 물론 이후에도 그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모든 직업에 대한 편견을 갖지 말라는 도덕적 당부도 잊지 않는다. 아이들의 웅성거림과 교실 분위기의 위압감으로 인해 필자의 두 번째 질문 ‘그럼 어째서 선생님은 주임 선생님을 그렇게 무서워하죠?’라는 소리는 목구멍에서 채 나오지 못했다.

아이들은 반항기를 겪으면서 비뚤어진다고 하지만 반항기에 대한 정
의를 필자는 다소 다르게 내리고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사춘기가 시작되고 사회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이 정말 순수하게 확립이 되지만, 자신이 배웠던 그 아름답고 깨끗하고 정직한 사회가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음을 알고 크게 좌절하기 때문에 그 좌절감과 세상에 대해서 처음으로 느끼는 비관적 사고, 그리고 불만요소들이 인성이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표출이 되는 것을 실상은 전혀 다름에도 우리는 사춘기의 반항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무서운 10대들의 범죄행각이 질풍노도의 시기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하는 부분인데, 필자가 감히 주장하지만, 절대 사춘기의 반항은 사회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반항 심리는 실제로 찻잔 속의 태풍이다. 자신이 성장하면서 자신이 인격적으로 성장했음을 남자라면 아버지, 여자라면 어머니에게 보여주는 정도에 그친다. 여기에는 그 당시 항상 있게 되는 진로상담 같은 부모와의 대화에서도 충분히 촉발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것이 가정의 관리 소흘로 사회 문제가 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물론 관리 소흘이야 있겠지만, 에초부터 가정에 책임을 돌리기 이전에, 당신들이 사회에 대한 얼마나 큰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었고, 그리고 그 가치관에 맞는 사회를 보여주었는지 부터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진정 세상은 살기 아름다운 세상인지, 자식 서랍에서 에로 비디오를 빼앗으면서 자식을 두드려 패면서 왜 에로가 나쁜지, 실질적인 부분을 얼마만큼 현실적으로 가르쳐 주었는지를 말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그렇게 가르쳐주지 않은 어른들의 이중적 행태와 그 어른들이 가식적인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추악한 뒷모습에 직설적으로 대립할 뿐이다. 아이들에게만큼은 그런 세상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충분히 이해가 가고, 그런 세상을 너무 빨리 알게 됨으로서 일어나는 부작용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아이들의 입장에서 진정 아이들을 위해서 그렇게 가르치는건지 아니면 어른으로서 자신만은 그런 세상에서 자신만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위선인지는 깊이 생각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지금 가는 길이 멋진 낙원이라고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멋진 낙원이 펼쳐질 거라고, 거짓말을 해주는 것이 결코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믿고 있던 그곳이 낙원이 아닐 때 자신들에게 그렇게 가르쳐 준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이중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큰 배신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만일 의도대로 정말 아이들이 밝은 세상만을 보며 진심으로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어째서 청년 실업자들이 자신의 백수라는 직업에 수치심과 좌절감을 느끼고 아파트 옥상에서 하늘을 날고 있는지를 한번 대답해보라는 거다.

직업에 대한 가치관을 굳이 귀하고 천하다는 두 가지 극단적 성향으
로 보게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세상에 직업이 얼마나 많은데, 그 두 가지로 큰 대분류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귀천이 없다고 말하는 것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직업이 있는지, 그리고 그 직업들이 가질 수 있는 어떠한 이상적인 가치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지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 초등학생들 어느 누구에게나 되고 싶은 직업을 물어보면, 대부분 의사, 선생님 등 부모들이 강요하는 학벌주의와 사회에서 좀 더 대접받는 직업들만이 잔뜩 나오는데 이래서는 곤란하다. 여기에서는 소질이 있고 없고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마냥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이라고 가르치는 부분이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의사라는 직업은 필자가 보기에 과히 추천할만한 직업은 못 된다. 돈은 많이 벌 수 있을지 모르고, 그 만큼 사회적 지위가 높을지도 모르겠지만, 진정 자신이 그 일로서 얼마만큼의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인생 중후반기에 가서 그 직업에 대한 얼마만큼의 회의감을 가질 수 있는지, 그런 세세한 부분을 알고 있지 않으면서 자식에게는 자신이 겪어보지 못했던 부분을 모두 무시하고 사회적으로 보여지고 동경하는 부분만을 강요한다면, 그건 크나큰 모순이다. ‘의사는 돈 잘 벌고 좋은 사람이고 멋진 사람이니까 넌 의사가 되어야 해!’ 가 아니라 ‘의사는 자신이 사명감을 갖지 않은 이상 사람이 죽어 나가는 스트레스와 자신이 생명을 다룬다는 생명존중적 사고가 필요하며 생명이 죽어나갈때의 죄책감과 스트레스, 과로가 수반되기 때문에 수명이 짧아질 수도 있다. 성형외과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돈만 알게 되면 특히나 성형외과처럼 가식적인 부분의 온
상이 되는 직업은 더욱 사람이 진실해지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라는 식으로 직업 하나 하나에 대해서 보다 현실적으로 높은 판단을 할 수 있을 객관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수백번 귀에 못이 박히도록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고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아이들에게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기 쉬울 것이며 나중에 성장한 이후에도 그 생각이 별로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모든 직업들이 전부 장단점이 있으니까, 지금처럼 많은 서민들이 ‘재벌은 나쁜 놈’ 이라고 말하는 부분도 사라질지도 모른다. 재벌은 재벌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재벌은 절대 때려죽여도 서민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정과, 정약결혼으로 인한 진정한 사랑을 맛보지 못하는 인생을 겪게 된다. 그 가치는 어느 쪽이 크다고 할 수 없다. 최근 잘 알려진 탤런트 고현정의 이혼 사례를 보면 많은 여성들의 신데렐라 컴플랙스가 얼마나 비뚤어져 있는지를 잘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은 욕심이 많지만, 이 세상에 어떤 인생도 자신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의 선택에서 어떤 인생이 보다 더 재미있고 보다 더 가치를 느낄 수 있는지를 선택할 수 있게끔 도와주어야 한다. 그 아이가 평생 백수로 살게 되더라도, 백수로 살면서 다른 직장인들이 전혀 느끼지 못하는 자유롭게 사회를 보는 발상과 백수만이 가질 수 있는 자
유로운 여행, 틀에 박힌 삶이 아닌 자기 주관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장점을 분명하게 인식시켜 준다면 과연 백수가 나쁜 직업일까? 백수가 무조건 나쁜 직업이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그들을 ‘사회 부적응자’로 몰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어째서 사회가 멋대로 정한 규범으로 귀천을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만들어가느냐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통념에 휘둘려 구애 받기 보다는 자기 자신이 지금의 가질 수 있는 직업, 거지가 될 수도 있고, 노숙자가 될 수도 있고, 백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자기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현재 위치에 대해서 결코 부끄럽거나 남들보다 손해보는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백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그것이 가치를 가질 수 있는 부분을 찾으면 백수로서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결코 흉이 될 리는 없다.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15년동안 TV만 보는 백수생활을 했지만, 그가 과연 흔히 사회에서 경고하듯 말하는 인생 폐인이 되어있던가? 그는 TV를 통해 지식이 누구보다 많아졌고, TV에서 나오는 무술을 보면서 자신의 무예를 닦아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싸움 실력과 운동 실력을 익혔다. 작문 실력도 그가 15년동안 갇혀 있지 않았다면 그렇게 잘 다듬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을 보다 정확히 직시하자, 그리고 그 가치를 한쪽으로 폄하시켜서 과도하게 어느 한쪽을 높게 매기지 말자, 의사와 국회의원들은 돈과 명예를 얻었지만, 콘솔 게임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 게임을 하면서 백수들이 느끼는 그런 감정을 평생 느끼지 못하고 항상 스트레스만 받다가 인생을 끝마칠수도 있다, 얼마나 억울해보이는가? 그들은 이 재미있는 게임의 재미를 자기만큼도 못 느끼고 죽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재미있는게 얼마나 많은데 스트레스만 받다가 죽는가? 물론 돈을 많이 벌겠지만, 돈을 많이 버는 만큼 그것을 쓰는데 그 쓰는 것으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고작 하는 인생의 재미라는게 룸싸롱에 가서 호스티스들을 성적으로 괴롭히는 것에서 재미를 찾는 것이 얼마나 불쌍한 인생인가? 게임에서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돈으로 살수 있겠는가? 그들이 돈을 아무리 써 본 들 당신들이 백수로서 할 수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다시금 같은 기분
으로 해 볼 수 있겠는가? 절대 무리다. 자신이 가진 부분을 돈에 가치보다 낮게 판단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어떤 직업이든 간에 다른 누구보다 어떤 것을 많이 가진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덜 가진 것도 분명 있다. 지금 추앙받는 수많은 귀한 직업들이 좋은 것만 잔뜩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게 절대 아니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가보자, 누구나 백수가 될 수 있고, 언제 그들이 돈을 많이 버는 레벨크로스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 말이다. 하느님이 대홍수를 일으켰을 때 많은 동물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노아의 방주에 올라탔지만, 방주에 올라타지 못했다고 해서 불행할 필요는 없고, 자신이 보다 떳떳해지며 오히려 노아의 방주에 타고 있는 용기 없는 사람들을 한껏 비웃으며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길 권해 본다. 누구도 태어날때부터 귀한 직업은 아니며, 죽은 후에까지 귀하게 대접받는 직업은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 RushAm -
posted by RushAm 2005. 1. 20. 22:20
이 작품을 보기 전에 필자가 생각했던 것은, ‘과연 미야자키가 이 작품을 얼마나 손댔을까?’하는 단순한 의문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광고 카피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 3년’이라고 써 놓았지만, 사실 고양이의 보은에서도 홍보할 때 단지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리타 히로유키보다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마케팅에 더 많이 써먹었던 전력(?)이 있는 배급사이기 때문에, 실제로 미야자키씨의 근황에 대해서도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던 터라 별다른 선입견 없이 편하게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오해...
미야자키 감독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옛날 할머니가 전해
주시던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전해주던 이야기꾼이 아니다. 그의 작품들이 그런 분위기가 풀풀 풍겨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필자의 지난 글에 있는 미야자키에 대한 언급에도 나와있듯이 그가 진정 만들고 싶었고 그의 색깔이 가득 담겨있는 작품은 다름아닌 97년작 모노노케 히메부터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사실 그의 작품을 꾸준히 보아 온 사람들이라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평성너구리전쟁 폼포코, 붉은 돼지에서도 충분히 그가 표현하고 싶은 키워드를 읽을 수 있었겠지만, 진정 그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표현한 작품은 모노노케 히메였다고 본인 스스로가 밝혔던 전례가 있고, 결과적으로 번복한 셈이 되었지만 그 작품 발표 직후 마지막 작품으로서 은퇴를 발표하기도 했던 만큼 그의 작품 세계관은 최근에 들어서야 그의 작품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가 왜 은퇴를 번복했을까? 이미 그가 은퇴를 선언한지도 8년이 다 되어가는데 은퇴작이라 공언했던 모노노케 히메 이후 공식적으로 작품이 두 개나 더 나왔다. 그가 우유부단한 성격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주변에서 은퇴를 만류했나? 답은 의외로 쉽다. 필자의 지난 오세암 포스트에서도 언급했듯 애니메이터들은 보통 자신이 만들고 싶은 작품 (좋게 말해서 실험적인 작품)의 경우는 흥행성에 대해서 큰 기대를 걸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실제로 미야자키도 모노노케 히메 개봉 전 인터뷰에서 그러한 점을 충분히 강조하며 본인은 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만족한다는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관객들은 언제나 제작자의 생각과 반대로 움직인다고 누군가가 말했듯, 모노노케 히메는 미야자키의 극장판 작품 중 첫손에 꼽힐 만큼 대단한 흥행 성적을 거두게 되는데, 의미상으로 당시 전세계적인 흥행 열풍을 일으키고 있던 타이타닉과의 흥행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는 쾌거를 거두자 이래적으로 일본 국내 뿐만 아니라 미국 등 전 세계에서 미야자키를 주목하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건 국제적 수상을 거두기 시작한 것도 모노노케 히메 이후부터라는 점인데, 미야자키는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자신이 만들고 싶었던 작품이 대중성, 작품성으로서 크게 인정을 받기 시작한 후로, 은퇴를 번복하고 제 2의 제작자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은 듯 이전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스타일의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때문에 특별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하 하울)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두고 미야자키의 본래 작품관이 훼손되었다고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는 원래 그랬으니까...

과연...
명예가 크게 실추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은퇴를 번복하게 만들 만큼 그에게는 아직 그의 애니메이션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다. 게다가 지금까지 만든 작품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으니 그
자신감이야 따로 설명이 필요 없었으리라,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작품관으로서 그것이 인정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졌다는 것은 특히나 데즈카 오사무를 바라보며 그에게 가장 큰 반감을 가진 채로 성장해왔던 애니메이터 미야자키에게는 더욱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모노노케 히메 이후의 작품들부터는 대중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작품성의 초점을 작품 자체가 아닌 미야자키 본인의 생각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광고 카피에서 나왔듯 베니스 영화제가 원래 김기덕 감독의 ‘빈 집’에 감독상을 준 것으로 비추어 볼 때 대중적인 흥행성보다는 감독이 말하는 작품의 키워드를 잘 이해한 후 작품성을 평가하는 평가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딱히 수상이 이상할 것도 없지 않을까? 하울...은 미야자키의 그 어떤 작품보다 미야자키다운 작품으로서 세상에 공개되었고, 그 부분을 감수하고 본다면 충분히 키워드 전달에 있어서 매우 이상적인 작품으로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스타일의 영화들이 대부분 평론가들의 ‘밥’이 되곤 하는데, 그만큼 평가가 다양해지고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가지의 결론이 나오게끔 만들어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작품성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각종 장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은 실로 당연할지도 모른다. 아직 사람들은 미야자키를 잘 몰랐으니까, 아니 그 전에 미야자키가 착각을 심하게 한 측면이 있다.

착각...
그렇다고 미야자키가 어떤 분의 말처럼 갑자기 ‘오시이 마모루’가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시이 마모루가 처음부터 자기 생각대로 작품을 만들어 오면서도 비주얼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자신의 키워드를 사람들로 하여금 읽을 수 있도록 작품 활동을 펼쳤다면 미야자키는 비
주얼의 아름다움보다는 비단 자신의 키워드와 맞지 않더라도 대중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 형식에 자신의 키워드를 느낄 듯 느끼지 못할 듯하게 섞어 내놓았다. 마치 한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오시이 마모루는 시각적인 부분을 강조한 순수 양식 요리를 내놓았다면, 미야자키는 한국식 굴비구이를 내놓으면서 스리슬쩍 일본식 고추냉이를 함께 내온 격, 사실 오시이 마모루의 경우는 필자 개인적으로 특별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두 감독의 현재까지의 행보에 대해서 섣불리 어느 쪽이 잘하고 있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실제 결과론적인 측면에서 살펴본다 해도 공각기동대로 대표되는 오시이 마모루의 키워드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적극적인 매니아층과 이번 작품 ‘하울’의 모든 키워드를 이해할 수 있는 미야자키 골수팬의 수는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만큼 자신이 만들고 싶은 작품에 하고 싶은 키워드를 담아서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애니메이터 인생을 걸만큼 값진 일이겠지만, 한편으로 그 값어치만큼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사실은 꽤나 회의적인 부분일 것이다.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들이 평론가들로 하여금 ‘제멋대로식’의 키워드 해석을 낳았듯이 ‘하울’도 이제는 미야자키식의 키워드를 읽어보는 재미를 즐겨보면 어떨지 싶다, 필자도 미야자키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않지만, ‘하울’을 보고 이후 수많은 감상문을 보면서 필자의 생각과 많이 다른 해석을 내놓으시는 분들이 많았기에 굳이 필자의 해석이 정확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읽을 거리 정도로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이후부터는 필자의 키워드 분석이므로 내용 누설이 치명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내용누설 주의보는 여기까지입니다. 클릭만 안하시면 괜찮습니다.

갓길...
많은 사람들이 하울…을 비판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캐릭터의 성장 과정을 담아서 좀 더 깊은 감동을 이끌어낸다든지, 마법의 세계관을 좀 더 심오하게 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보다 많은 생각을 갖게끔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얼마든지 캐릭터성을 살려서 훌륭한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 텐데 미야자키 본인이 너무 기고만장한 나머지 ‘이래도 볼거냐!’라는 식으로 던져놓고 관객들을 우롱했다는 등의 평가가 많았다. 항간에는, 최악의 졸작을 만회하려면 빨리 차기작을 내놓은 후에 은퇴하라 라는 식의 인신공격까지 있는 것으로 봐서 그 실망감이 그가 이전에 받았던 스포트라이트와 지지율만큼 대단한 듯 한데. 사실 쓰신 분들께는 대단히 죄송한 말이지만 필자는 그 감상문들을 읽으면서 조금 웃었다. 새로운 것, 새로운 것 항상 주문을 외우듯이 그것을 찾으면서도 정작 가장 큰 범주 내에서의 새로운 것에는 베타적이고 지독한 보수성을 보이는 사람들의 작품관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야자키의 의도와는 다르게 많은 관객들은 결과적으로 월트디즈니가 만들어 놓은 가장 큰 틀 안에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작품’을 추구하려 했고 그것에 부합되지 않으면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작곡을 예로 들자면 이미 만들어놓은 드럼 베이스 내에서 이미 만들어진 장르의 형태 (록이라든지 R&B, 발라드 등) 내의 규칙에 부합하여 만든 곡들도 물론 창작곡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그것에 부합하지 않은 새로운 음악의 형태가 비교대상격인 인기장르를 기준으로 삼을 때 음악적 흐름이 지저분하다든지, 음악적 운율이 살지 않는다든지 하는 비판을 하는 것과 같은 이
치라 할 수 있다. 새로운 작품은 새로운 작품으로서 창작자의 눈을 버리고 보아야만 한다. 나라면 저렇게 안 만들고 이렇게 저렇게 만들면 더 재미 있을 텐데, 라는 평가는 평가가 아니라 창작 간섭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창작자로서의 비판이 아닌 관객으로서의 비판을 해줬으면 한다. 전문가 비평이라는 타이틀은 깊이 있고 보다 일반 관객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함께 직시해주는 날카로운 부분임에 분명하지만 커다란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일반인들보다 조금 더 넓은 범주의 시각만을 가진 사람들일 뿐이니까, 요리는 맛보는 사람마다 맛이 다르고 미식가들이라고 싫어하는 요리가 없는 것도 아니며, 요리의 대가들은 자신이 만들고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맛 이외의 맛은 전부 맛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게 실제 요식업계에서 일어나는 우물 안 행태이지 않는가, 진정 새로운 맛과, 새로운 볼거리를 찾고 싶다면 보는 사람들이 생각의 넓이를 보다 넓히고 실질적인 고정관념이 없는 눈으로 작품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해외 여행을 다니면서 현지 음식에 적응하지 못해 서둘러 김치봉지를 꺼낸다면 그 순간 당신은 반쪽 여행을 한 셈이나 다를 바가 없을 테니까...

- RushAm -
posted by RushAm 2005. 1. 18. 19:15

평점 : ★★★☆ (7.0)

- MBC 8기 (1982) -
생일, 데뷰작 : 불명
보이스 타입 : 강한 비음을 바탕으로, 설음, 두음을 함께 구사하는 가성 타입
대표작 : 은하철도 999 (1980): 철이 役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1992) : 쟝 로크 리르티그 役
GOOD: 가성의 단점이 드러나지 않는 완벽한 벨런스
BAD : 지나치게 남성형으로 편중된 보이스 컬러

성우를 지망하는 지망생들의 성비 불균형은 이제 어제 오늘의 일이 아
닌 듯 하다. 2004년 MBC 성우 공채에서도 어림잡아 5:1가량의 비율로 여성이 압도적인 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여성들의 실업 문제를 제처놓고 생각해보면, 별달리 여성에게 유리한 가산점을 주는 부분도 없고 특별히 여성 성우를 더 많이 뽑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성보다 비효율적인 경쟁률을 뚫어가면서까지 여성들이 성우계에 몰리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는 필자가 여성도, 성우지망생도 아니라서 딱히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기에, 종종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지만 딱히 돌아오는 답이 명쾌하지 않다. 사실 자기 꿈이 그렇다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순수성 없는 꿈이 아니라면 그것으로도 좋은 것이니까, 그들은 별 이유없이, 성우를 하고 싶은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새롭게 여자 성우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부분은 ‘연기 영역’측면
에서 비교우위를 가지게 된 변성기 전의 중성적 남자아이 목소리를 거의 독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일본쪽 애니메이션이 차츰 대중화가 되면서, 의인화된 동물캐릭터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캐릭터들이 많아지게 되는데, 이후 애니메이션 주 시청 타킷과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소재상의 제약으로 자연스럽게 등장 캐릭터들의 연령층이 낮아짐에 따라 소년 목소리에 대한 수요가 가시적으로 체감할 수 있을 만큼 커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도 언급했듯 대부분의 남자 성우들이 다소 제한적인 톤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변성기라는 성장 과정상의 변수, 그리고 실제 수요에 걸맞는 목소리의 조건 차원에서 여성 성우와의 음역 차이에서 오는 불리함 등 실제 성우 연령층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남자 성우들의 갖은 취약점 탓에, 일부 소년 목소리를 소화할 수 있는 성우들의 배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년 캐릭터들은 여자 성우들의 몫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보면 남자 성우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에서 여성형 배역을 맡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감안해볼 때 대단히 언벨런스한 현상이라고 생각되지만, 아직까지는 여자 성우들의 성별 초월 캐스팅 이외에는 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는 형국이다.

철이 쇼크
1980년 MBC의 본격적인 컬러 방송이 시작되면서, 일어난 성우계에
길이 남을 만한 큰 사건이 있었다. 다름아닌 ‘철이 쇼크’, 386세대들에게 아직도 진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개구리 왕눈이는 물론 그 이전부터 각종 신파드라마의 남자아이 역을 도맡아 왔던 성우 박영남을 제치고 고작 데뷰 3년차에 불과한 신인이었던 그녀를 전격 주인공으로 발탁했던 MBC의 캐스팅은 비교적 신인들의 깜짝 캐스팅이 빈번한 최근의 관점에서도 이해하기 힘든 모험중의 모험이었다. 명절에 특정 에피소드를 먼저 선행 방송 후 본격 편성한 부분이나, 당시로서는 정말 이색적인 시도였던 현역 가수의 애니메이션 오프닝 참여 등을 감안할 때 MBC가 은하철도 999를 단순한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기획한 것도 아니어서, 특별히 그녀가 데뷰 초기부터 남자아이 배역을 위해 노력했었다든지, 선행방송에서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제작진에게 어필했다든지 등의 추측만 난무한 채 아직도 철이 캐스팅의 파격은 의문으로 남고 있다. 이렇게 당시로서는 거의 넘볼 수 없는 독보적 위치에 있었던 박영남(KBS성우극회 소속)을 제치고 장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철이’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 그녀는 이후 몇 차례 여성향 캐스팅도 있었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으며, 철이 쇼크의 여파와 그에 따른 편견으로 그녀의 명함에 새길 만한 대표작들은 소년형 캐릭터들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흔히 말하는 ‘혼이 담긴 연기’ 를 한 연기자는 배역의 이미지를 벗는데 배우 생명을 건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녀도 지금까지의 성우 인생에서 ‘철이’의 연기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

그녀를 처음 본 사람들은 여성으로서는 상당히 드문 스포츠 스타일의 해어스타일의 그녀를 보고 제법 놀라움을 느낄 지도 모르겠다. 필자
도 그녀의 해어스타일에 대해서는 특별한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특별히 남자 연기를 많이 해 온 그녀의 이력과 관계가 있을거라는 생각보다는, 자기 자신이 일반적인 여자 성우들과는 지극히 다른 인생을 스스로의 선택으로서 개척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다운 해어스타일, 여자성우다운 연기, 어떻게 보면 성우 인생에서 정체성이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할지도 모른다. 성우는 연기하면서 자기 자신을 버리는 직업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지만, 그녀가 만약 여자 성우로서 여성향의 연기를 포기하지 못했다면, 또 ‘철이 쇼크’ 이후 몇 년을 포기해 가면서 철이의 이미지를 벗고 여성향 성우로서 살아왔다면, 필자를 포함하여 성우로서의 그녀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었을까? 그만큼 노력 이상으로 인생의 기로에서 현명한 판단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렇기에 그녀의 노력 이상으로 자신의 성우 인생의 기로에서 선택한 지금 그녀의 모습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감동시킨 배역.
엄마 (Mama) - あたしンち(아따맘마)
『 앞서 그녀의 ‘남성향’ 성우로서의 선택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고서는 여성향 연기에서 감동했다니 꽤 쌩뚱맞아 보일지도 모르겠다. 성우들에게 감동을 느끼는 것은 연기력에서도 느낄 수 있겠지만, 2시간짜리 영화를 보면서 특정 배우의 연기력에 감동을 느끼기보다는 2시간동안 그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가 펼쳐지는 성장스토리와 절정으로 치닫는 스토리와 슬픈 결말에 더욱 감동을 느끼듯이 필자도 같은 맥략에서 그녀의 몇
안되는, 그나마도 최근에서야 겨우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여성향 연기에 더욱 애착이 느껴지곤 한다. 꼭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성우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성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자신의 연령층에 들어맞는 진성연기가 가능한 배역을 맡게 될 확률은 매우 적은 편이고, 특히나 그녀처럼 특정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두각을 나타냄으로 인해서 레코딩 룸의 PD들에게 확고한 인지도를 갖고 있는 경우 더욱 소원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 때문일까? 그녀는 엄마 연기에서 실제 그녀의 모습과는 관계없이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억척스러운 아줌마 연기로서 ‘철이’의 이미지를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다. 연기를 하는 내내 이전 남성향 연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연기의 즐거움이 듬뿍 묻어나는 듯 했으며 목소리에는 항상 힘이 넘친다. 투니버스 데이 아따맘마 라이브 레코딩에서 본 그녀의 모습은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으로서 연기할 때 얼마나 그것이 소중한지를 연기하는 내내 표정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14세 소년보다 40대의 억척스러운 아줌마로서 더 빛나고 있었으니까… 』

최근에 이르러서는 많은 여자 성우들이 남자아이 연기에 도전하지만,
실상은 이러한 Cross Gender (이하 CG)로 활약을 펼치는 성우들의 가치를 그다지 높게 쳐주는 편은 아니다. 대부분의 여자 성우들이 남자아이 연기를 일정 수준 이상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PD 입장에서는 제한된 수요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기 마련이고, 가시적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 이상 같은 수준에서 가장 적은 페이의 성우를 기용하는 경우가 잦은 편이다. 그래서 데뷰 당시부터 CG쪽을 전문적으로 표방하며 나오는 성우는 크게 드물다. 성우계에 소속된 사람들은 의외로 보수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자신이 불리할 길이라면 과감하게 버리는 냉정함을 갖는 경우가 많고 또 그렇지 않으면 실제로 살아남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최근 여자 성우들이 관록의 나이에서 목소리 톤의 변화와 안정적인 연기를 위해 자기계발보다는 보다 편한 CG를 택하는 추세가 대단히 걱정스럽다. 페이나 인지도 면에서 수요가 작다는 것을 알면서도 경쟁에 본격 뛰어들기보다는 최저한계선을 지키며 평균적인 위치에 만족하는 식으로 이어진다면 한 일 성우계 비교에서 항상 나오는 국지적 문제점, ‘성우 인프라의 부족’ 현상이 보다 더 심화되어 결과적으로 성우 시장이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며, 이는 최근의 토요명화 사태 등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맥략과 상통하고 있다.

여자 성우들이 연륜이 쌓여가면서 관록이 붙는 만큼 연기폭이 작아진다는 딜레마는 어제 오늘의 어려움이 아니고 어느 누구에게 국한된 고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것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필자가 성우계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입장에서 이야기하기에는 다소 설득력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성우가 평생직업으로서 인식되는 일면에는 시대와 수요에 맞는 충분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며, 자신의 전성기의 인지도를 통해 보다 편한 일로서 성우 인생을 보내는 것은 다소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평생 직업이란 연금제도가 아니다. 자신이 전성기, 그리고 직업인, 프로로서 대접받는 시간 동안에는 꾸준히 자신의 명성에 걸맞는 노력을 아
끼지 말아야 한다. 연기폭이 작아지면 작아지는 대로 자신의 특화된 부분을 좀 더 가다듬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분명 성우로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부분이고 TV 드라마에 전부 2~30대 연기자들만 그득한 것이 아니듯이, 자신의 영역이 좁아졌다면 과감히 다른 길을 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런 위험한 모험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좁더라도 그 영역을 관록으로서 지켜나간다면 충분히 자신의 입지를 굳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때문에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으면 한다. CG라는 분야가 그렇게 얕보일 만한 분야도 아니고, 수요가 적고 많은 사람들이 평균 이상을 구사할 수 있는 상위평준화가 되었다고 해서 A급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넓다는 생각을 해서는 곤란하다. 김치찌개는 우리나라 주부라면 누구나 끓이는 방법은 알지만, 아무나 TV에 나오는 맛집으로 선정될 수 있을 만큼 기막힌 맛을 낼 수 없지 않겠는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자신있는 요리로 승부해보자. 굳이 메뉴가 다양하지 않더라도, 결국 한 가지 요리만 메뉴판에 걸게 되더라도, 언제나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맛집처럼 말이다.

- RushAm -
posted by RushAm 2004. 12. 13. 03:25

평점 : ★★★★ (8.2)

- MBC 7기 (1976) -
생일 : 1950년7월 27일생
데뷰작 : 불명
보이스 타입 : 비음과 구내음을 복합한 진성 타입
대표작 : 보거스는 내 친구 ‘보거스’ 役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고길동'役
GOOD : 진성의 한계를 극복한 극한의 범용성
BAD : 주연급과는 거리가 있는 보이스 컬러
현역 성우들에게 있어 데뷰 때부터 지금까지 선배들로부터 정말 귀가
따갑게 들어오던 조언 중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목소리 좋다고 성우 한다는 생각은 집어치워’ 일 것이다. 실전에 돌입해보면 활동 하에서 목소리 자체로서 메리트를 갖는 한계는 분명 있으며 데뷰 후의 후천적인 자기계발이 보다 큰 가치향상을 가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임하지 않으면 흔히 생각하는 ‘평생 직업’으로서 살아남기가 어렵다는 냉엄한 현실을 담고 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굳이 성우계를 들먹이지 않아도, 외모로서 승부하는 가수나 탤런트가, 정작 본업인 가창력과 연기력이 늘지 않으면 시청자는 매몰차게 그들에게 등을 돌려 버리고 기억속에서 잊혀진다. 생각보다 흔히 쓰이지 않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라는 말처럼, 자신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진 재능으로서는 두 번 이상 사람들에게 관심을 이끌어내기 어려울 뿐더러, 갖추어진 능력은 언젠가는 쇠퇴하고 인간인 이상 신체조직은 변하기 때문에, 가수도 탤런트도 충분히 평생직업이라 불리울 만한 가치가 있는 직업임에도 마치 인스턴트로 끓여먹는 라면처럼 쉽게 등장했다가 강한 자극만을 주고 쉽게 사라지곤 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탤런트와 가수가 되려면 잘 생긴
얼굴이 필수적이라 생각하고, 성우가 되려면 목소리가 좋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은, 정말 선천적인 재능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신의 선물로서 무한경쟁의 치명타를 피해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살면서 누구나 고생을 싫어하고 요행을 바라지 않던가,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노력을 덜 들이기 위함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 특별히 어떠한 사회적 문제가 그것을 야기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태어나면서부터 흔히 표현하는 ‘타고 난’ 능력으로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기에, 사람들은 쉽게 그 가치관에 대한 포기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다. 지망생들은 당장 눈에 들어오는 그들을 동경하고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하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성공하는 사람들이 그 확률을 0%로 만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성우 이인성
76년 MBC 7기 성우로서 발을 내딛은 그는 70년대 후반까지 성우의 밥
줄과도 같았던 신파형 멜로영화, 격동 30년류의 라디오 정치드라마의 영향으로 당시 남자 성우들이라면 필수적으로 가져야 했을 낮고 차분하고, 무게감 있는, 목소리만 들어도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목소리를 가진 그런 성우는 분명 아니었다. 장난끼 많고 아무리 진지하게 목소리를 깔아도 그 속에 코믹함이 묻어나는 목소리... 만일 그가 70년대에 활약했던 성우 중 한 사람으로 남았다면 그는 크게 알려지지 못한 채로 사장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후 80년대에 들어 컬러 방송의 시작으로 인한 컬러 TV의 보급의 영향으로 메스컴을 비롯한 성우들의 활동 영역 측면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방송사들은 애니메이션, 쇼 오락 프로그램 등 희화적인 부분들에 어울리는 연기와 목소리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자, 이러한 수요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성우들을 중심으로 성우의 역할을 재편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6,70년대를 주름잡았던 수많은 남자 성우들의 활동이 점차 위축되는 일종의 과도기 속에서 지금까지의 성우들과는 확연히 다른 희극적 목소리 컬러를 가진 그의 가치가 새롭게 인정 받을 수 있었다. 흔히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도 역사가 바뀌었다고들 하지만, 이인성의 데뷰가 몇 년만 빨랐더라도 우리나라 성우계의 판도가 뒤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필자의 오버 섞인 예상도 결코 억측은 아닌 셈인데, 어쨌든 낮고 무거운 목소리의 주축을 담당했던 70년대 신파극형 성우로부터 시대적, 문화적 급변으로 이루어진 급격한 세대교체의 중심에 그가 있었고 타고난 재능에 반쯤은 운이 더해진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커다란 시대적 행운을 움켜잡을 수 있었다.

애드립의 대가라는 별명에서도 드러나듯, 동료 성우들이 평가하는 그의 모습은 이미 나이를 잊은 ‘영원한 소년’의 모습이다. 애니메이션에서나 영
화에서 그는 맡은 캐릭터가 아무리 소화하기 어렵고 독특한 연기를 요구할지라도, 별다른 연습 없이 직설적으로 거침없이 연기를 소화한다. 하지만 그의 그런 연기는 그가 들인 시간의 크기만큼 결코 가볍지 않다. 오히려 항상 팬들과 담당자들을 크게 만족시키며 그의 가치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주곤 한다. 보통 성우들이 보통 캐릭터의 스타일 컨셉을 잡는데 길게는 몇 주까지 걸린다는 현실과, 성우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목소리와 성격이 바뀌어 가성과 변성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실제 성우들의 경험담도 경력 20여년의 베테랑 이인성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그는 철저한 진성형 성우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의 연기에는 가식과 가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것 자체가 연기이고 하나의 작품이 되니까... 굉장히 구태의연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진정 타고 난 성우' 인데, 특별히 캐릭터마다 다른 소리를 내지 않아도 그 캐릭터에 잘 스며들 수 있는 하나의 목소리로서 수 만가지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이론적으로 설명이 어려운 아주 절묘한 톤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를 감동시킨 배역.
니콜라스 D 울프우드 (Nicholas D Wolfwood) - Trigun
『이인성씨의 연기패턴은 고 장정진씨와 더불어 '진지함'과'코믹함' 으로 구분되곤 한다. 특히 장정진씨가 '홍두깨 선생' 역에서 진지함과 코믹한 모습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서 찬사를 받았다면, 이인성씨 역시 이러한 면에선 별반 다를것이 없는데, 이는 어찌보면 80~90년대를 거쳐온 남자 성우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다못해 너무나도 자주 나오는 90년대 대표성우인 강수진씨 등도 같은 부류이다.) 하지만 주관적인 평가를 내리자면 이인성씨의 목소리는 장정진씨나 동류의 성우들에 비해 반톤이나 한톤정도 가볍다는 느낌이 들며, 그때문에 비교적 코믹함 쪽에 비중이 있는 역할을 많이 맡아온 것이 사실이다. 트라이건 역시 완전 성인 취향이라기보단 청소년 취향의 액션물에 가까운, 조금은 오버랩된 코메디가 가미되긴 했지만 꽤나 진지한 분위기의 세계관에, 이인성씨가 맡은 캐릭터 역시 기존에 맡았던 배역에 비해 비교적 진지한(특히 주인공캐릭터에 비하면... 하긴 이십보 삼
십보지만...) 모습이 부각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이인성씨의 울프우드는 극중 전개와 템포와 비슷한 느낌으로 설렁설렁 흐르다 어느 한순간 갑작스레 터져버리는 폭탄처럼 그의 끼를, 바로 진지함과 코믹함을 별다른 갭 없이 수시로 넘나들며 진정한 베테랑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세기말을 지나면서 TV애니메이션에서 케이블등의 전문채널의 득세와 더불어 투니버스등의 애니메이션 전문채널의 전속 혹은 프리랜서 성우들이 자주 등장하곤 하는데, 덕분에 언제나 주 비교대상이 되어왔던 일본 원어판과의 비교에 있어 엇비슷해졌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적어도 향후 5~10년간은 과거 1인다역 등의 악조건들 속에서도 무언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혼이 느껴지던(캐릭터만이 아닌 성우의 존재까지도 느껴지던) 소위 80년대를 거쳐온 성우들의 매력은 당분간 느끼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국내에서 비디오로 먼저 출시되었던 트라이건은, 그리고 이인성씨의 울프우드는 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캐릭터이고, 작품이다. 』

- 이번 '나를 감동시킨 배역'은 특별히 JAKGA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흔히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성우를 보는 제작진들의 시각은 방송 구성 요소, 즉 유닛의 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다소 인간적이지 못한 표현이지만, 성우로서 저 성우를 대체할 수 있는 성우가 있느냐를 따져 지금 이 컨텐츠에서 필요한 능력치를 판단, 제작비를 절약할 수 있는, 즉 페이가 비교적 싼 성우를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보통이며, 성우들에 대한 이런 식의 가치관 탓에, 이쪽 업계에서는 ‘넘을 수 없는’ 보다는 ‘대체할 수 없는’ 이라는 말이 좀 더 많이 쓰이곤 한다. 즉 저 성우가 필요한 능력치 대 비용 비율에서 가장 최적의 인물인지를 계산하고, 그를 대체할 좀 더 페이가 싼 성우가 없는지에 대한 검토에 들어간 후, 하위 대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경우 비로소 컨텐츠 제작에 활용하는, 굉장히 보수적인 캐스팅 방식이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고, 최근 성우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가장 큰 활동 무대인 방송국의 이러한 정책을 수긍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성우계는 데뷰 후 3년 길게는 5년 후 프리랜서를 선언한 이후에도 활동 범위가 대부분 방송국에 종속되다 보니, 자신이 소속되어 있었던 방송국의 캐스팅에 항상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남게 되는데, 바로 방송국에서의 활동이
자신의 페이를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페이가 올라갈수록 군대에서의 호봉별 등급이 나누어지는 것처럼 성우들도 극회 내에서 부여하는 비공식적인 등급이 정해지고, 등급별로 페이기준이 나누어지는데, 이것은 다시 말해 같은 등급 내에 있는 비슷한 성향의 성우들끼리는 언제는 서로를 대체하고 대체 당할 수 있는 암묵적 경쟁관계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인성은 아마도 이러한 경쟁 체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으로서는 거의 유일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그가 지금까지 맡았던 캐릭터들을 다른 성우들에게 맡긴다는 건 팬으로서도 기획, 제작을 맡은 방송사 입장에서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을 정도로 최소한 그의 목소리로 표현하는 그 영역에서만큼은 그 어느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자신만의 가치를 그는 충분히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맡았던 역할과 비슷한 캐릭터의 수요가 있다면, 제작진은 주저없이 그를 택한다. 이는 그가 오랜 기간 제작진과 함께 호흡해오면서 느끼게 해 준 안정적인 신뢰감도 작용했겠지만, 돈 몇푼을 아끼기 위해 대체인력을 찾는 성우계에서는 그보다 그를 대체할 어느 누구도 선택하지 못한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을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그를 지켜본 필자의 결론이다.

천재라는 단어에 심히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그 뜻이 상
당 부분 왜곡되고 잘못된 자아도취적 이미지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단어의 무게감에 비해 대단히 남발되고 있는 천재라는 단어, 또한 사람들 사이에서 구전되면서 천재라는 단어는 ‘엘리트’와 같이 쓰이는 실수를 범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사람과 사람에 대한 평가가 인색한 우리네 정서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특별히 칭할 명분적 근거가 없는 극단적인 표현에 쓰일 정도로 천재라는 단어가 무게가 가볍지도, 그렇다고 대단한 뜻을 가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필자는 지금의 ‘천재’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직업 세계관 속에서 다른 사람에 비해서 특별한 노력이 필요 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직업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사람, 다시 말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눈에 확 띄게 두각을 보이거나 하지 않고 보통 사람들 속에 조용히 숨어 있고, 아주 평범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사람이 그 능력을 가지기 위해 들인 노력을 거의 들이지 않은 과거를 가진 사람을 필자는 천재라고 부른다. 천재라고 해서 아무런 노력 없이 정상에 오를 수는 없다. 다만 그 노력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조금 덜 들이고 높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른 것이다. 뒤집어 보면 누구나 태어나면서 정상인이라면 어떤 특정 분야 하나씩은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인생을 살면서 그 능력에 맞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확률은 1%밖에 안될 뿐이며, 그 1%를 택할 수 있는 건 다른 능력이 아닌 운이다. 따라서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특별히 책망하거나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1/100의 확률싸움에서 진 것이 흉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어떤 분야가 안 그런 분야가 있을까마는, 성우계만큼 자기관리와 노력이 필요한 분야도 없는 것 같다. 당장 필자가 떠오르는 명퇴 없는 직업이라고 하면 공무원과 성우밖에 떠오르지 않지만, 순차적인 승진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 자신의 관리보다는 주변 관리와 시기적 문제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공무원과는 다르게 성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변의 간접적인 영향력은 있을 지 모르겠지만, 입사 후부터 은퇴까지 홀로 자신을 채찍질해야 하는 몇 안되는 직업이기에, 데뷰부터 은퇴까지 꾸준한 활약을 하기 위해서는 건강 관리는 물론 목소리 관리 등 자기 직업으로서 발휘할 수 있는 무기를 아끼고 기름칠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실제 그의 삶 속에서 많은 운이 따르기도 했지만, 천재
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타고난 능력의 수혜자라고 해서, 성우로서는 최고의 위치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그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똑같아 보이는 땅콩들이 아주 조금씩 제각각의 모양과 개성을 가지고 있고, 꼬부라진 독특한 모양의 신품종 땅콩이 그 모양으로서 가치를 인정 받기도 하는 것처럼, 성우들도 누구나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개성으로서 승부할 수 있지 않을까? 페이를 많이 받고 높은 등급의 성우로서 인정 받기를 원하는 성우와 그들을 동경하는 성우지망생들이라면 눈먼 장님이 방안의 좁쌀을 찾는 듯한 무모한 도전보다는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무기를 더욱 날카롭게 갈아서 제작진의 목에 들이대고 협박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사각의 단단한 쇠를 날카롭게 가는 것보다 이미 날카로운 형태를 갖추고 있다면, 그 중에서도 가장 날카로운 것을 골라서 날카롭게 다듬을 수 있다면,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이 될 것이며 어디에서나 가장 먼저 쓰일 수 있고 가장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무기가 될 것이다. 전쟁터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것은 단단한 방패보다는 날카로운 창일 테니까…

- Rush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