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04. 11. 27. 03:13
문학계에는 대형 메이저 신문사의 신춘 문예가 있듯이 성우 지망생들이 처음으로 두드리는 등용문도 메이저 방송사가 주최하는 전속 성우 공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실질적으로 성우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넓다고는 하나, 국내 성우 업계 사정상 ‘인지도’라는 부분에 있어서 초반부터 흔히들 기대하는 ‘프리랜서’ 활동을 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사 공채를 택하는 이유는 안정적인 직장으로서의 의미도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프리랜서 활동을 위한 주춧돌을 마련하겠다는 성격이 강하다. 운동선수들의 FA 대박을 노리는 것과 같은 맥략으로 보면 되겠다.

아직까지 성우의 그것은 ‘탤런트’의 그것과는 다르게 별도로 소속사가 관리해주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방송사 소속으로서 다른 방송직 사
원들과 비슷한 성장 과정을 거치곤 한다. 비교대상으로 치자면 아나운서계를 들 수 있는데, 아직 성우계에 대한 소재를 잡은 영상 문화 메체가 나오지 않아서 딱히 예를 들기 어렵지만, 아나운서계라면 몇 년 전 방영된 ‘이브의 모든 것’ 이라는 드라마에서 자세히 보여주고 있으며 김효진씨가 아나운서에서 성우계로 전향하는 모습도 보여주면서 성우계의 방송사 내 입지와 활동 영역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드라마에서 볼 수 있듯, 처음에는 자신의 목소리가 라디오, TV를 막론하고 공중파 전파를 탈 수 있다는 기회를 갖는 것 자체에 주력하는 수준이므로, 성우로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무기’를 갈고 닦을 필요가 있다. 성우계에 대한 방송계의 시각은 막말로 ‘유닛’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필요한 유닛이고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성우가 없다는 것을 충분히 어필해야만 보다 빨리 자신의 목소리를 공중파에 담을 기회가 빨리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아나운서계도 어떻게 보면 대부분 교과서적인 육성 과정에 의해서 기술적인 측면에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인기 아나운서가 정해지고 성공의 정점이라 일컬어지는 9시 뉴스앵커 자리는 아직도 MBC에서 오래 전에 이미 그 자리를 비웠던 엄기영 앵커를 다시 기용할 수 밖에 없는 사내 분위기, 그 속에서 서열이 보이지 않게 정해지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라는 인식이 방송사는 물론 시청자들까지도 함께 공감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우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선배 성우들, 공중파에서 듣기 힘든 비인기 성우들까지 거의 모든 선배 성우들의 목소리와 그들이 어떤 성향을 지니고 있는지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귀가, 좋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좋은 목 이상으로 중요하다. 자신이 어떤 선배 성우의 성향과 닮았는지 생각해보고, 그들보다 얼마만큼 성우계에서 그 이상으로 잘 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판단해보고,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인다면, 충분한 미래계획과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대부분의 성우 지망생들이 기존에 나와있는 유명 애니메이션, 외화의 대본을 입수하여 그 외화, 애니메이션을 보고 그 성우들의 연기를 비슷하게 흉내내거나, 그 캐릭터를 보고 연기를 연습하곤 하는데, 상당히 잘못된 연습 방법이다. 연습을 할 때는 국내에 방영되지 않았던 영화, 애니메이션을 보고 그 영화에 나오는 출연진, 캐릭터들의 스타일을 스스로 이미지화 하는 훈련이 더 중요할 것이다. 성우계는 평생직업이다. 정년퇴임을 기대하다가는 본인이 늙어버리기 때문에, 운동선수들처럼 은퇴 후 빈자리를 대신한다는 생각으로 그들을 따라가서는 자신의 입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스타일을 가지는 선배들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들을 뛰어넘거나, 아니면 아직 국내 성우계에 없는 목소리, 자신이 아니면 이 캐릭터를 누구도 제대로 소화해낼 수 없다고 확실히 판단되는 캐릭터가 적어도 3명 정도는 있어야 하며, 이는 추후 성우별 분석에서 보다 충분히 다루어질 부분이기도 하다.

성우가 되려는 사람들은 많고, 많으며, 이미 성우가 된 사람도 그 수만큼 많다. 문화 컨텐츠에서 필요한 배역은 한정되어 있고, 사람들이 매년 수많은 지망생들이 공채되는 탤런트 중 극히 1%만 기억하듯이 성우를 쓰는 문화컨텐츠 제작자들, 그리고 그들의 문화를 향유하는 문화 소비자들 중 성우에 대한 존재를 인식하고 즐기는 사람은 0.1%에도 미치지 못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치열한 경쟁을 의미한다. 타고난 목소리를 지녔다고 해서, 모두 100% 성우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탤런트들은 쇼 프로그램에 나와서, 춤을 추거나 화려한 입담을 펼쳐서 대중의 인기와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지만, 성우가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아직까지는 그렇게 많지 않다. 따라서 성우가 되려는 사람들이라
면, 자신이 성우로서 가질 수 있는 가치, 어떤 영화배우의 목소리는 지금 하고 있는 성우보다 확실히 내가 더 잘 할 수 있다거나, 애니메이션, 게임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의 컨셉에 맞는 목소리를 캐스팅된 현 성우들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자신이 있어야만이 그나마 치열한 성우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말을 하고는 있지만, 오히려 성우 지망생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자아도취증이다. 자신이 그들보다 실제로 잘하는지를 자신과 영향력이 없는 제 3자의 판단에 맡기고 보다 냉정한 평가를 받는 것이, 자기 자신이 자신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 보다 만족도도 높고,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보다 더 빨리 찾을 수 있다. 목소리가 좋다는 주변의 칭찬만으로 성우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한해에도 정말 수백 수천씩 쏟아지는 게 성우계이다. 목소리가 좋다는 개념을 ‘듣기 좋은 목소리’라는 기준으로 잡는다면 그것이 가장 위험한 발상이며, 문화컨텐츠에는 듣기 거북한 목소리를 내는 캐릭터가 듣기 좋은 목소리를 내는 캐릭터 못지 않게 많다는 것을 항시 기억해야만 한다. 지금부터라도 목소리에 대한 개념적 가치관을 성우 지망생이라면 본인 스스로 바꿀 필요가 있다. 가수 선배들이 ‘아 생각해보면 가수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힌 후배들에게 가수 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것은 믿을 필요가 없는 거짓말이지만, 성우 선배들이 ‘목소리 좋다고 성우 하는 거 아니에요’라는 말은 몇 백번을 곱씹고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성우는 연기자이다. 연기자라면 누구나 주인공을 꿈꾸듯, 성우도 주연급, 비중있는 역할, 보다 많은 대사를 맡아 연기하기를 원한다. 성우 지망생들도 항상 머릿속에서는 공중파에서 대 활약을 펼치며,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메이저급 성우가 되는 것을 꿈꿀 것이다.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성우의 모습을 뒤따르려는 성향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성우는 프로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역할, 자신이 좋아하는 연기, 자신이 좋아하는 목소리만을 추구해서는 흔히 하는 말로 ‘밥그릇’ 지키기 어려운 것이다. 수많은 선배들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보여야만 하고,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상상만 해도 두려운 실력파 후배들보다 자신이 더 낫다는 것을 방송사에 어필할 수 있을 만큼의 개성, 독자성을 가질 수 있다면, 흔히 말하는 ‘평생 직장’, ‘프리랜서의 매력’ 을 향유할 수 있는 꿈 속의 성우 모습을 갖춘 자신의 모습을 어느 정도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일, 특히 방송 관련해서는 ‘자신이 유리하다’라는 판단은 통하지 않는다. 방송만큼 완벽주의가 팽배한 곳은 없다. 그야말로 완벽함, 그것을 꾸준히 생활처럼, 언제나 하던 것처럼 유지시킬 수 있는 사람만이 방송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 받는 것이다. 이러한 필자의 생각 때문에 주변에서 방송 일, 성우를 하겠다고 하면, 그건 제대로 성공해도 수명을 깎고, 성공을 못해도 수명을 깎는 진퇴유곡의 길이라고 늘상 강조하곤 하지만 그것을 알고서도 한 발자국 내딛으며 그런 지옥 같은 무한경쟁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는 만족감에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 또 인간이라는 동물이 아닐까? 인간의 본능적 고소공포를 극복한 자만이 그 짜릿한 번지점프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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