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04. 11. 28. 02:33
잠깐!!
꽤 어처구니 없는 논쟁으로 홍역을 치른 작품이라는 것 이외에는 이 작품에 대해서 필자가 아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혹시라도 후기에 흔히 말하는 내용 누설 (예 :스포일러, 네타바레) 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는 필자의 후기 작성 모토이기도 하다.

누구냐!?
지난 여름 SICAF를 다녀오고 난 뒤에 발표된 국내 신작들에 대해서
신랄하게 가했던 비판과 관련해서 아주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다름아닌 윤인완,양경일 원작의 신 암행어사 (당시에는 애니메이션이 아직 논의되기 이전이었다)가 역사를 왜곡하고 위인들의 이미지를 손상시킨다는 의견으로 촉발된 이 논쟁은 결국 미결의 논쟁으로 남았고, 필자도 원작을 보지 않은 관계로 논쟁에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항상 그래왔듯 고전적인 캐릭터의 재창조와 새로운 스토리에 의한 스토리 재구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환영할 만한 매우 고무적인 움직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논쟁이 어떤 생각과 관점에서 그러한 논쟁이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극장판을 감상한 후에도 오히려 좀 더 과감한 수준에서 개연성을 보여주지 못함에 실망했을 뿐, 그 시도와 충분한 결과로서 이어졌다는 점에서 대단히 긍정적으로 본다.
흔히 게임, 애니메이션 등 문화컨텐츠를 즐기는 사람들은 공공의 적으
로 ‘영등위’와 ‘YWCA’를 거론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이 그들의 생각 범위 내에서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창작자들이 괴로워하는 부분은 영등위나 YWCA 때문이 아니라 실질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유저들의 예측할 수 없는 뒤통수치기가 원인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생각과 자신만의 마인드를 갖지 못하고 이리 저리 휩쓸리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기에 급급하기에 문화계의 여론은 제주도의 유채꽃처럼 사방 팔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너무 쉽게 흔들리는 것 같다. 극장에서도 그러한 부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인공의 이름이 실제 들었던 위인들의 이미지와 다르다는 점을 일일히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떤 일이 있어도 극장에서는 조용히 해야한다. (…)

어떻게!?
필자의 관점상 칭찬할 수 있는 부분은 역시 새로운 시도로서 진정한
창작물을 완성시켰다는 것, 극장판에서도 여실히 그들만의 색깔이 느껴지는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관객들의 뒤통수를 치고, 웅성거리게 만들고, 동요를 일으켰다는 점, 관객 수에 관계없이 많은 관객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는 점, 아직 완결이 되지 않은 원작의 스토리를 무리하게 짧은 시간에 담으려 하지 않고 적절한 결말로서 극장판만의 스토리를 마무리 지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실제로 원작 스토리를 맡은 윤인완이 이번 극장판 연출과, 제작에 얼마만큼 감수하고 참여를 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지금까지의 극장판 제작에서 가장 어렵고, 팬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 왔던 ‘스토리의 봉합’을 비교적 이상적으로 처리했다는 부분만큼은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다.
관람 전부터 기대했던 오오타니 코우의 음악도 역시 기대한 대로 자신
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선에서 작품의 분위기를 보다 몰입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었다. 오오타니 특유의 전투화면의 긴박함과 그렇지 않을 때의 음악적 완급 조절 능력은 이 작품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으며, 튀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영상에 동화될 수 있는 음악으로 작품의 무게감을 보다 깊이있게 만들어주었다. 거기에 보는 내내 필자의 눈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던 OLM만이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배경 작화, 이미 Figure17에서 그 역량을 충분히 보여주었던 특유의 수채화풍 배경 작화는 다소 부자연스러울 수도 있을 디지털 난무 효과 속에서도 충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특별히 흠잡을 데 없는 캐릭터디자인과, 자칫 소흘해 질 수 있는 총기 등의 소품 디자인까지, 겉껍데기만으로 치장한 원더풀데이즈의 실패를 곱씹지 않으려는 듯, 그렇게 신 암행어사는 보는 이를 작품 속으로 흡수하고 있었다.

어째서!?
솔직히 시무라 조지 감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어째서 이 사
람이 감독을 맡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의구심이 든다. 제작상에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 사람이 감독이 되었는지도, 얼마만큼 작품에 영향을 끼쳤는지도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일반적인 제작팀에서의 감독의 입지와 영향력을 생각해 볼 때, 이 작품에 투입된 어마어마한 스텝들을 무난히 이끌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정말 프로중의 프로들이 모여 만든 작품이 보여 줄 수 있는 파괴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지만, 신 암행어사는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최저한계선을 간신히 지키는 선에서 가치창조가 마무리되는 느낌이 들어 필자로서는 굉장히 입맛이 쓴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는 원더풀데이즈에서 드러났던 것과는 정 반대의 현상인데, 시무라 조지 감독 본인이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다소 부족했던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작품 전체적으로 느껴진다. 원더풀데이즈가 감독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 과해서 작품을 무너뜨렸다면 이쪽은 그것이 너무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느낌, 물론 기우이며 필자만의 시점으로 본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비슷한 케이스로 최악의 스토리라인을 가진 지구소녀 아르주나를 제작진의 역량과 칸노 요코의 음악으로 평균 이상의 작품으로 그 가치를 끌어올렸던 것처럼, 신 암행어사도 무언가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아래로 처지는 것을 간신히 끌어올려 정상 궤도로 진입시키려는 노력으로 완성된 것이 아닐까 하는, 다소는 쓸데없을 수도 있는 생각이 작품을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해외 진출한 운동선수 경기를 TV중계할 때라도 들어가는 자막만큼은 한국에서 따
로 만들어 로컬라이징에 최선을 다하는데 반해 신 암행어사는 판권이 일본으로 가 있고, 원작자 윤인완의 작품 활동 무대도 일본이라는 것은 자처하고서라도 지나치게 국내 로컬라이징에 성의가 없었던 게 아닌지 모르겠다. 순수 일본 제작 애니메이션이 들어와도 이 정도까지 성의를 느끼지 못할 만큼은 아닐텐데... 특별히 일본쪽 이권을 가진 업체들이 이것 저것 요구를 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대부분 손을 대야 할 부분을 배급사가 손을 대지 않았으며, 보컬 가수의 캐스팅과 테마곡 선정에도 워낙 얽혀 있는 업체가 많아서 그런지,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다. 가장 크게 느껴졌던 부분은 믹싱, 성우의 연기 부분과 배경음악의 톤이 너무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탓에 작품을 몰입하는 데에 있어 효과음과 성우의 연기 속에서 음악의 존재감을 찾을 수 없어 작품 몰입과 흐름 파악에 나쁜 영향을 끼칠 정도로 심각한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작품 사운드를 리샘플링하는데에 있어 자신들이 직접 했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듯이 성우의 연기와 그 외적 요소들의 이질감은 맞지 않는 테트리스처럼 감상 내내 필자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뭘 했지!?
평소에 필자는 국내 3D 애니메이션 업계를 보면서, (어디 3D 게임에
나 나올 법한 3D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서 그게 과연 팔릴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그 증거가 바로 신 암행어사에서 너무 쉽게 드러나고 말았다. 많은 관객들은 그래도 3D 애니메이션만큼은 한국이 꽉 잡고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겠지만, 스텝롤에서 단 한명도 찾아볼 수 없었던 한국쪽 3D애니메이션 제작진과 수많은 일본 3D 애니메이션 외주 제작진들의 명단을 보면서, 괜시리 허탈감이 느껴졌다. 3D를 완전히 2D와 다른 분야로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인식이 무척 아쉽기도 하고, 결국 실용적인 부분에서 우리나라가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는 사실에 슬퍼지기도 했다. 3D로서 자신들만의 색깔을 강하게 추구하는 미국, 2D의 문화 가치를 더 높게 생각하는 일본에 비해 2D와 3D의 차이에만 신경 썼던 우리나라가 남긴 것은 과연 무엇일까? 2D와 3D는 기술적인 처리방식만 다를 뿐이다. 그것이 아무리 리얼리티를 띈다고 해도 인간에 가까워지려면 앞으로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진짜 인간 같은 그림이
나와서 움직이는 영화를 만들어서 성공할 수 있었다면 파이날 판타지 더 무비는 벌써 스테디 셀러가 되고도 남았겠지만, 실제는 그게 아니지 않은가? 3D를 추구하는 데에 있어 기술적인 부분에만 급급했던 우리나라는 결국 실제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에서 활용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고려 청자에다가 밥을 비벼먹을 수는 없었을 테니...
결국 윤인완의 원작을 제외하면 한일합작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작품이 되어버린 신 암행어사, 대한민국이 가장 자신있어했던 3D 분야가 괴멸하면서 정작 이제는 제대로 된 원작이 있어도 스스로는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앞으로 얼마나 계속될지, 문화계를 지원한답시고 TV에서 보고 들은 한류 열풍처럼, 남이 비벼놓은 밥을 떠먹여주기만 줄기차게 기다리는 한국 문화계 수뇌부들의 바보짓은 얼마나 계속될지 모르겠다.

시끄러!
전주비빔밥에는 약 20가지의 재료가 들어간다고 한다. 어떤 재료가 맛
있고 어떤 재료가 맛없다고 해서 한 가지 재료가 다른 재료보다 많이 들어간다면 전주비빔밥의 맛은 사라진다. 무조건 20가지 재료를 밥과 섞는 다른 형태의 음식이 전주비빔밥과 같은 조리법으로 조리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전주비빔밥의 오묘한 맛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하물며 전주에서만 나는 나물과 고기를 쓰지 않고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진 똑 같은 비빔밥이라도 전주비빔밥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 현실 아니던가, 오리지널리티라는 건 이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 속에서 신 암행어사라는 새로운 맛으로 기존 암행어사 박문수, 이몽룡의 고전을 완전히 잊게 해 줄 수 있었다면, 이 작품이 작품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보여준 셈이고, 적어도 필자에게는 충분히 이 작품으로서 일종의 가능성을 보았으며, 이미 소재의 바닥을 드러낸 일본에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우리 고전을 새로운 시각에 맞게 재구성하여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한다면 비단 우리나라가 메인프로듀스에서 주도권을 잃더라도 문화 컨텐츠의 세계적 흐름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주체로서 활약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완전히 메인프로듀스쪽에서 손을 놓는 건 좋지 않다. 쌀 개방에 맞서는 농민들의 주장이 ‘최소한의 식량 자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라는 이유가 있듯이 문화, 애니메이션계에도 남의 도움 없이 우리들끼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낼 수 있는 일종의 자생력 정도는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신 암행어사처럼 거의 모든 부분을 포기하고 프리프로듀스만을 자급하는 형태가 계속된다면 이전 우리나라의 메인프로듀스쪽으로 급격하게 추가 기울어진 반쪽 세계 3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FTA가 되어 수입채소가 들어와도 김치는 역시 강원도 배추로 담아야 제맛이고, 전주에서 나는 나물로 비빈 진짜 전주비빔밥이 더 맛있지 않겠는가? 아무리 피자가 맛있어도 피자 치즈로 밥을 비벼먹지는 말자, 아 참, 고려청자에는 더더욱 …

- Rush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