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2. 8. 5. 08:02

축구의 인기가 예전만 못했(었)다 2002 월드컵 이후 축구의 인기는 점점 시들해졌고,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국대 경기에 가슴을 졸이지 않게 되었(었)다. 표면적인 성적은 떨어졌지만 한국 축구는 계속 강해져만 갔는데도 말이다. 이제는 한낱 평가전 정도로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기 어려울 정도로 시청율마저 곤두박질쳤다.

 

왜 그랬을까? 예전에는 우리가 참 실력은 좋았는데, 이상하게 큰 대회만 나가면 편파판정을 당하거나 선수들이 몸이 굳어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채 뭔지 모를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왔기에 '도대체 우리나라는 언제 제 실력으로 맞붙는가'라는 탄식 속에서 항상 남들 앞에서 제 실력을 잘 못내는 답답한 아들을 둔 부모 마음처럼 타들어갔었다. 1948년 눈물이 멍든 가슴팍으로 떨어져 젹신 쓰라림부터 시작된 역사가 그랬다. 우린 늘 강하다고 자부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았고, 답답했으며 억울했다.

 

 

그런데 2006년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이같은 평가는 사라졌다. 우리는 스위스전의 그 마지막 편파판정을 끝으로 더 이상 제 실력보다 낮은 평가를 받지도, 강대국의 성적을 위한 정해진 대본의 희생양이 되지도 않았다. 당당히 원정 16강 진출자로서 축구 강국이 되어 있었다. 스타 플레이어도 있었고 팀 전원을 유럽파로 맞춰낼 수도 있었다. 더 이상 이변의 주인공이 아닌 제 실력으로 승부하는 축구 강국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정작 축구 강국이 되니 마냥 안타까워 감싸고만 싶었던 아들이 불쑥 커버린것처럼 더 이상의 보호본능이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른다. 우린 더 이상 승리에 절박하지 않았다. 이기면 즐겁지만 져도 더 이상 억울하지 않았다. 월드컵 16강전 당시 우루과이 수아레즈의 골은 완벽했으며 우린 사력을 다한 후회없는 경기를 펼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우리나라의 패배를 안타깝고 억울해하지 않았고 축구를 외면했다. 더 이상 안타까워해줄 필요가 없었으니까, 불의로운 승부는 더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번 올림픽은 분위기가 심상치않았다. 축구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상하게 각 종목의 몇몇 선수들이 실력에 반하는 억울한 일을 당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분노했다. 이 분노는 금방 식는 듯 했지만 차분하게 사람들 마음속에 쌓여가고 있었다. 식어갈만하면 또 한명의 억울한 희생자가 나왔다. 억울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이제 좀 선진국이 되었다고 믿었던 우리나라는 스포츠 외교에서 여전한 후진성을 보이며 약소국의 기억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만다.

 

 

 

아 우린 억울해도 아직 세계에 당당하게 말해줄 만한 힘이 없구나

우리가 우릴 스스로 못지키는구나

 

 

사실을 알건 알지 못하건 이런 사실은 조용히 그리고 확실하게 쌓여갔다.

그리고 오늘 그 악의 결정체와 약소국의 설움을 기억해낸 울분이 카디프시티에서 맞부닥쳤다..

 

사진제공 : 스포츠조선(www.sportschoson.com)

 

사람들은 전반 초반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설마 영국이, 개최국 영국이, 자존심 강한 그 영국이 그런 짓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영국은 절박했다. 절박함은 사람들을 악마로 만든다. 그들은 무슨 이유를 들어서라도 이겼어야 했던 모양이다.

 

전반 중반 우리나라가 한 골을 넣으며 앞서갈때만 해도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실력으로 승부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던 많은 사람들은 두 번째 패널티킥이 판정되는 순간부터 경기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랬다. 이 경기는 그 순간부터 그냥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니었다. 우리나라가 영국보다 나은지 아닌지를 판단할 이성적 룰이 어긋나버렸다. 영국은 이기려는 마음이 너무 강한 나머지 심판과 선수들을 악독하게 만들어버렸다. 우리는 그 악에 당할 처지였다. 패널티킥을 막아낸 정성룡과 그 정성룡이 부상을 당해 실려나가는 모습을 본 그 순간 이미 이 경기는 축구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번 올림픽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가슴속에 차분히 쌓아둔 국민들의 마음도, 뛰는 선수들의 마음도 똑같았으리라...

 

 

 

 

 

'이 새끼들...이기고 싶다!'

 

 

 

 

 

사진제공 : 스포츠조선(www.sportschoson.com)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한국 관객들의 눈빛도 달라졌다. 아마 티비를 시청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눈빛도 달라졌을 것이다. 이 경기는 더 이상 스포츠로서의 의미를 상실했다. 이미 스포츠로서 누더기가 되어가기 직전인 올림픽, 그걸 알면서도 표면적인 성공을 위해 묵인했던 영국이었다. 우리는 바로 직감했다. 이 경기마저 지면 우린 이 누더기같은 올림픽의 억울한 패전국으로 영원히 기록될지도 모른다고...

 

사진제공 : 스포츠조선(www.sportschoson.com)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손은 떨렸고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가슴은 옥죄여왔고 입은 마르다못해 타들어갔으며 체온이 떨어져 오한이 오기 시작했다. 뛰는 선수도 응원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오랜만에 10년 전의 이탈리아라는 거대한 악을 향해 싸우던 태극전사들을 응원했을때처럼, 우리는 응원에 힘을 주었고 120분동안 그라운드에서 혹은 TV앞에서 모두 함께 뛰었다.

 

악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심판은 언제부터인가 정상적인 판정을 하기 시작했다. 영국 선수들은 급격히 지쳐갔고 스포츠의 세련됨이 사라진 경기는 이미 그 가치를 잃은 채 난투극의 처절함만이 남았다. 그렇게 누군가는 이 승부를 가져가야 했던 그 상황에서 우리는 이 새끼들을 결국 이겼다.

 

사진제공 : 연합뉴스 (www.yonhapnews.co.kr)

 

 







축구는 이래서는 안된다. 어떤 이념적 울분에 대한 대리전이 되어서도 안되고 다른 외부 요인이 승부에 개입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우리나라의 축구 실력은 진보할 수 없고 전 세계에 우리가 강팀임을 어필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이 열기가 식으면 거짓말처럼 축구의 인기는 사그러들지도 모른다.

 













 

사진제공 : 스포츠조선(www.sportschoson.com)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축구인것을...

 

사진제공 : 스포츠조선(www.sportschoson.com)

 

그래서 난 여전히 축구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