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0. 7. 31. 17:02
한때 '프라이드 FC'와 'K-1'이 종합격투기업계를 평정했던 때가 있었다. 일본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 여러 국가에서 격투기 붐을 일으켰던 이 단체들은 어느 순간 이런 저런 사정에 의해 몰락하거나 사라졌는데, 그들의 몰락한 이유로는 야쿠자 개입설로 인한 지상파 광고수입 중단, 선수들의 이적 분쟁으로 몸값 거품이 심했던 점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부분은 역시 '격투기'라는 콘텐츠 포멧을 가지고 기존의 문화 콘텐츠 업계의 지분을 빼앗겠다는 시도 때문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섣달 그믐, 일본으로서는 거의 시청율의 최대치를 찍는 시즌에 당당히 도전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로 인해 생겨난 거품성 인기에 대한 판단 착오와 그에 따른 지나친 공격적 경영이 불러온 패착이라는 것이 한결같은 지적이다.
Legend Fedor Emelianenko was defeated by Fabrico Werdum in the Strikeforce Heavyweight fight in San Jose,CA on June 26, 2010.


그렇다고 일본의 양대 격투기 이벤트 단체를 일격에 몰락시킨 미국의 UFC가 격투 콘텐츠적으로 우수했느냐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격투기팬들의 한결같은 평가는 프라이드의 좁은 사각 링보다 넓은 6각형의 옥타곤에서 벌이는 경기가 박진감면에서 떨어지며 마치 지하세게를 연상케 하는 경기장 풍경은 대중화에 크나큰 걸림돌이었다. 그들이 승리한 이유는 '일본의 격투기 단체'보다 콘텐츠가 우수해서가 아닌 결국 '격투기'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인기있는 WWF를 의식해서 선수들에게 대사를 읆조리게 시킨다던지 링 한가운데에서 춤을 추게 하는 등의 퍼포먼스는 없다. 공감대는 없더라도 지극히 UFC다운 무언가를 만들려 애를 쓰고, 오로지 격투기 팬만을 위한 서비스를 고심한다. 결국 프라이드를 잃고 방황하던 '격투기 팬'들은 UFC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일본 게임업계 시장규모 밎 해외실적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게임 시장 매출액 10위권 내 일본 업체로서는 닌텐도가 유일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PS2로 일약 세계 콘솔업계를 주름잡았던 소니는 블루레이의 표준화 선정이 늦어진데에 따른 여파로 그 다음 세대의 주도권을 닌텐도에게 빼앗긴 뒤로 이렇다할 부양책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업계의 전반적인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경제산업성이 분석한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이미 3D위주의 콘텐츠를 추구하고 있는 미국에 비해 일본이 기술적인 트랜드 활용 측면에서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과, 이런 고착화를 가속화시키는 인재풀의 불균형이 그것이다.

경제산업성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게임을 비롯한 영상 콘텐츠 분야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미국 명문 콘텐츠 관련 대학으로의 국비지원 유학, 업계 내 자발적인 프로듀서 육성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 정책 등을 발표하며 프리프로듀스 인재풀에 대한 활성책을 추진하는 한편, 3D기술에 대한 자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가칭 렌더링 공장을 설립하여 업계가 공동으로 이용 가능토록 하는 등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콘텐츠 업게의 품질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정책에 대해 업계는 '업계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은 정부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신뢰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를 내면서도 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정부의 정책적 업계 부흥책의 결과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일본 게임 업계의 해외 전개 지원에 대한 근거로 '1억 3천의 인구와 오랜 시간에 걸쳐 자리잡은 게임 시장에 대한 유연성으로 인해 그동안 별다른 해외 전개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업계의 무관심 속에서도 일본의 게임은 꾸준히 해외에 알려져 왔고 국지적인 보급 속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어 왔다는 점은 일본 게임의 해외 경쟁력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례로 메이지 시대 이른바 '검은 배'로 인한 문화 교류 속에 조금씩 유럽 대륙에 전해졌던 일본의 우키요에가 유럽 역사에 영향을 끼칠 만큼 문화적인 여파를 가져왔다는 점을 들며 일본 콘텐츠의 우수성이 제대로 된 비즈니스 수단으로서 전략적인 성격을 띄게 될 경우 성공 가능성이 충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제산업성의 착각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지금까지 일본 게임 시장은 해외 시장을 그다지 주목하지 않은 채 내수 시장의 우수한 소비력을 바탕으로 성장해왔던 것은 사실이나 그 사실만으로 현재의 일본 게임 업계가 해외 트랜드와 뒤떨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해외 시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지극히 일본적인 내수성에 치우친 작품성 향상이 해외 시장에서 이른바 '밀수' 등을 활용할 필요성을 느끼게 만들 만큼 '일본적'인 문화적 가치가 구매력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인데, 즉 특별히 해외 시장을 의식하지 않고 지극히 일본식으로 일본인을 위한 게임이 해외에서도 자연스럽게 '일본의 게임'으로서 경쟁력을 갖는다는 것이 지금까지 보여준 일본의 해외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제산업성은 이러한 일본적 색깔에 대한 '고집'이 일본 게임계의 해외 경쟁력을 약화시켜왔다며 해외 시장에 맞춘 현지화 전략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면서도, 현재 가지고 있는 게임 업계의 해외 경쟁력에 대해서는 지극히 일본식으로 만들어진 콘텐츠의 성과를 들어 가능성을 논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산업성의 설명 도중 몇 번이고 반복 강조했던 나루토의 유럽 시장 성공사례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선 일본이 과연 어떤 성과를 거둘지에 대해서 예측하기에는 아직 섣부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목표로 삼고 싶어하는 미국의 게임 시장이 과연 일본처럼 해외 각지의 트랜드에 맞게 게임을 만들어 지금의 세계 최대 게임 시장인 미국 내수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일까? 영화는?, 드라마는 어떤가? 결국 가장 미국적인 것을 더 미국적으로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품질좋은 미국적인 게임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재미있고 훌륭한 게임을 만들어낸다는 아주 단순하고도 평범한 논리를 추구하고 있을 뿐이지 않은가? 대한민국은 어떤가? 온라인 게임이 게임성이 떨어지느니, 소재 표절을 밥먹듯 해대고 일본 게임같은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느니 하는 세간의 비아냥속에서도 묵묵히 가장 한국적이고 한국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만을 만들어왔고 그렇게 꾸준히 한국적인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 온 회사들만이 결국 살아남았다. 언제나 성공한 트랜드의 뒤를 쫒아 만들거나 일본 혹은 미국의 게임 모델을 인용해왔던 업체들은 어떤 정체성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거나 이렇다할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그렇다.

일본이 '일본적'인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해외 진출에 집착하게 만든 원인으로는 두말할것도 없이 장기불황에 따른 내수붕괴 때문일 것이다. 내수 붕괴에서 가장 많은 타격을 받는 업계는 여가 선용 업계라는 통설,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이 수반되는 게임업계의 타격은 영화나 음악 업계에 비해 한층 심할 것이 자명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 위기에 대한 타개책을 해외 진출에서 찾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수 시장이 위축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많은 국내의 게임 유저들은 제각각 즐기고 싶은 타이틀에 대한 신작을 기다리고 있고 적지 않은 해외의 일본 게임 유저들 역시 그들만의 취향을 충족해줄 일본산 작품들을 고대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의 작아진 시장을 넓히기 위한 타개책이 지금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새롭게 더 큰 시장에 대한 도전을 '0'부터 시작하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라이드 FC가 사라지고 K-1이 덩달아 예전의 포스를 잃어버린 지금 예전 격투기에 대한 향수를 아직 간직하고 있는 격투기 팬들이 결코 자신의 취향과 타협할 수 없는 UFC를 울며 겨자 먹기로 소비하고 있는 현실이 결코 일본 게임업계에서도 남의 일이 아니게 될수도 있다. 격투기의 인기가 수직상승하자 일본 최대의 시청율집중구간인 섣달그뭄의'대권'을 노리려 한 나머지 스포츠성을 상실한 채 쇼비즈니스를 강화하는 무리수를 두어 자멸한 격투기 단체들과 미국이라는 큰 대권을 노리려는 생각이 가득해 지금까지 쌓아왔던 2D그래픽의 노하우나 순수정통성을 모두 구닥다리로 부정하고 3D를 '이제부터' 기술적, 인력적으로 본격적으로 세공해 나가겠다는 정책이 실효성 여부를 떠나 일본 게임업계가 쌓아온 역사적 정체성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닮아있기에 더욱 그렇다. 물론 이들의 철저한 '미국 현지화'정책이 도요타를 비롯한 자동차업계의 철저한 현지화로 인한 성공사례처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문화는 상품이기 이전에 문화라는 점을, 그리고 그 문화라는 상품은 문화의 본질이 사라지게 된다면 결국 공장에서 생산되듯 영혼이 없는 물건과 다를 바 없게 된다는 것을 상기해주길 조심스럽게 바래본다.


2부에서는 닌텐도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