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4. 1. 2. 11:18

새해부터 사회교과서 속 코너 '쪽대본'을 연재합니다. 주 3~4회 연재되며 분량은 A4한장 정도의 분량으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분량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주제는 '사회 현안'입니다. 

본 내용은 70%정도의 신뢰수준의 표본오차는 ±11.4%입니다.


외촉법 통과


외국인투자촉진법입니다. 이 법의 뜻까지는 사실 알 필요가 그닥 없습니다. 뉴스에서 설명을 해도 손자 회사가 증손회사가 어쩌고 저쩌고는 다른 세상 이야기잖아요. 몇 가지 팩트만 정리하겠습니다.


- 재벌들은 대부분 군 문제나 그렇게 해도 국내 경제활동에 큰 패널티를 주지 않는 현행법을 파고들어서 자식들을 대부분 해외로 보내서 그 나라 국적을 따게 했는데요. 이게 지금 와서 문제가 되는게 이건희 회장도 늙었고 슬슬 승계 구도를 해야 하는 시기가 왔단 말이죠? 근데 손자들이 다들 외국인이니 우리나라 기업 경제 참여 제약만큼은 아직 존재하고 있었단 겁니다. 예를 들면 외국인이 회사를 함부로 단독지분참여를 통해 꿀꺽할 수 없도록 몇 가지 보호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는 거죠. 물론 외국자본에 의한 시장잠식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근데 이 장치를 풀어버리는게 이번 외촉법의 골자라고 할 수 있죠.


왜 뜬금없이 풀어버렸냐면 하나는 앞서 말씀드린 이미 '외국인'이 되어버린 자녀 손자 며느리에게 무사히 경영승계를 해줘야만 하거든요. 좀 더 깊게 들어가면 지난해 한창 떠들썩했던 페이퍼컴퍼니 논란이 있었는데 이런 자산도피처에 있는 재산들을 사실상 우리나라에 들여오기가 지금까지는 어려웠지만 이제 이 법으로 우리나라에 무혈입성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네요. 사실 재벌들이 의무는 안지키고 혜택만 받으려는 식으로 자녀들을 무분별하게 해외로 보내거나 원정출산까지 해가며 국적을 따는 것이 이 법이 없었다면 족벌승계의 종말로 자승자박이 될 뻔했지만 이걸로 무사히 해외에 있는 페이퍼컴퍼니 자산도 손쉽게 국내로 회수할수도 있고 자신들의 경영권도 아들손자며느리에게 무사히 인계되겠지요. 


이제 이런 짓 더이상 안해도 된다는거죠.


- 자 그건 그렇고 정치권은 왜 갑자기 이런 친재벌적인 성향의 법을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통과시켰냐면 안타깝게도 이명박이 싼 똥 때문입니다. 4대강 사업이 이미 지난 해 감사에서 대차게 까이고 올 여름에도 또 한번 녹조대란이 일어날텐데 아시다시피 세수는 부족하고 4대강 보 철거 예산은 안드로메다거든요. 근데 이 외촉법 내용 중에 잘 알려지지 않는 부분이 바로 '친수법 연계'입니다. 


친수법은 친수구역 활용에 대한 특별법, 다시말해 강 주변 개발 규제를 완화한다는 내용이 골자거든요. 대부분의 4대강 사업구간은 상수원개발제한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이명박의 생각대로 강변 파라다이스를 만들 수가 없었는데 이 친수법이 통과되면서 개발 규제가 풀렸습니다. 근데 풀린게 2010년인데 건설경기도 침체되고 수요예측도 엇가나면서 아무도 강 주변 땅에 투자를 하지 않고있거든요. 건설사들은 어음 막기도 바쁜데 강 주변에 팔릴지 아닐지도 모를 타운하우스를 지을 리가 없지요.



근데 지난해 7월 (일단은 본회의에서 부결되긴 했지만 그때부터 외촉법은 발의되고 있었습니다.) 외촉법 내용에는 외국인이 참여할 수 있는 수위계약 범위에 친수법이 포함되었습니다. 이번 외촉법에서 그 부분이 빠졌는지는 확인이 필요합니다만 만일 이게 빠지지 않고 그대로 통과되었다면 결국 이 정부는 4대강 보 철거보다 어떻게든 4대강 주변을 더 개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네요. 이명박이 지난해 여름에 자전거 타고 한강변 달린 게 단지 쇼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국내 건설사가 아무도 참가를 안하니 상수원 강변 개발 규제 완화에 외국인들까지 참여시키려는 거죠. 


무슨 약점을 그렇게 잡혀있길래 이명박이 싼 똥을 이리도 정성스례 치워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외촉법 생각보다 우리의 도덕 기준을 크게 변화시킬것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내일 또 뵙죠.

posted by RushAm 2013. 12. 27. 14:18

도가니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의 소재가 매우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그 소재가 매우 충격적이도록 느껴지게 만드는 데에는 무엇보다 감독의 역량과 배우의 연기, 각본과 편집이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영화는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영화 그 자체의 완성도가 확보되어야만 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 변호인에 높은 평가를 내릴 수가 없다.



이런 영화는 '공감대'라는 것을 반드시 밑바닥에 깔고 들어간다. 노무현이라는 한 인간의 의로운 삶에 대해 조명하고 그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 영화가 도가니와 다른 점은 변호인의 경우 이미 노무현에 대한 '감동'을 어느 정도 안고 가고 있었던 반면 살인의 추억이나 도가니같은 사회 고발 영화의 경우는 사전에 관객들이 그 사건에 대해 인지하고 보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변호인은 굉장히 많은 잇점을 가지고 개봉한 작품이다.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공감대를 파고들었을 때 터질 수 있는 흥행 효과의 집대성을 우리는 최근 개봉한 '써니'의 흥행에서 볼 수 있었으니까.


서태지가 오랜 공백을 깨고 솔로 1집을 내놓을 때 당시 음반사였던 '삼성뮤직'이 내놓은 캐치카피는 '태지가 듣고싶다'이다. 결국 변호인도 '노무현이 보고 싶다'라는 캐치카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부림사건이 얼마나 질이 안좋은 사건인지보다 노무현의 개인적 일대기를 더 많이 부각시키려 애썼고, 당시 서슬퍼런 전두환 정부의 학생 탄압 배경과 그의 부당함을 부차적으로 전하고 있다. 중요한 건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에 대한 전제조건 즉 '메시지 자체의 무결성'을 제외한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높냐는 질문에 변호인은 딱히 '그렇다'라는 답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에 있다. 서태지의 1집이 그 시끌시끌한 화제성과 판매량에 비해 곡 자체에 대한 평가가 좋았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노무현이라는 꺼풀을 하나 벗겨놓고 보면 이 영화는 영화 자체로서 감독이나 그외 스테프에게 좋은 평가를 줄 수가 없는 작품이다. 



디 워가 개봉할 당시에도 그랬다 사람들은 조금 최면에 걸린 듯이 마치 의무적으로 봐야 한다는 듯이 영화 한 편을 보는 데에 '나라를 위한다는' 목적과 사명을 가지고 영화를 경건한 마음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결국 그 당시 디 워에 대한 영화에 대해 예술적인 평가절하를 했던 진중권은 집단최면에 걸린  자들에게 집중포화를 맞고 한동안 구설수에 시달린 바 있다. 필자는 변호인이라는 영화에 '디 워 보다 나을 것이 없는 영화'라는 평가를 주고 싶다. 디 워가 그랬던 것처럼 마치 처음 이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처럼 실화 그리고 노무현 그리고 민주주의 그리고 지금의 국민적 열망을 모두 담아내기에는 영화적 완성도는 턱없이 부족하기 짝이 없다. 노무현이라는 재료는 매우 훌륭해서 아무 요리를 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으며 민주주의와 반공에 대한 반감성 그리고 현 정부에 대한 간접적 비판이라는 요리 레시피는 굳이 요리를 하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훌륭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훌륭한 재료들을 요리로서 망쳤다고 보는 편이 합당할 것 같다.




충무로에 탄압받았던 인간 심형래를 위해 디 워를 보던 사람들과 지금 변호인을 보는 사람들의 심리는 소소한 부분을 제외하면 큰 틀에서 많은 공통점을 가진다. 그들은 영화가 주고 있는 너무나도 훌륭한 재료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기회에 감동하고 있다. 영화가 그 재료를 정말 훌륭히 담아낼 수 있는 그릇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어서 지금의 좋은 결과를 내고 있느냐면 그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 영화로 인해서 사람들이 작금의 현실을 인지하고 지금의 정부에 비판적 시각을 조금이라도 견지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영화는 영화 자체의 평가는 저 먼 곳으로 가 있고 오직 정치적 기준만으로 평점이 오락가락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굳이 변호인 영화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리는 이유는 지금의 흥행이 진정 '영화를 잘 만들어서'라고 영화 관계자들이 자평할 수도 있다는, 따라서 앞으로의 영화계가 은밀하게 위대하게나 7번방의 선물처럼 영화의 완성도는 뒤로 하고 클리셰의 파괴력에만 집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영화다. 천만 관객이 들어서고 영화 산업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에 좋은 재료빨로 거둔 성적에 자뻑하는 영화사 및 관계자들에게 일침이 분명 필요하다. 변호인의 흥행이 영화계가 그리고 제작자들이 샴페인을 터뜨릴 일로 자평하게 된다면 곤란하다. 변호인은 영화 그 자체로서 거둔 흥행 성적은 지금의 성적의 1/10도 될까말까하다는 것을 인지해야만 한다.




26년, 화려한 휴가같이 현 기득권에 맞서내는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변호인도 지금 많은 숙제를 남기고 있다. 실제 사건과 인물에 대한 감정과 평가를 벗겨낸 다음 영화만이 남았을 때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가 그것이다. 물론 기득권들이 아무도 영화에 참가하지 않았을 때 만들어지는 한계는 명확하기에 26년이나 화려한 휴가는 주어진 조건에 비례해서 평가할 수 있겠지만 정작 변호인의 경우는 국내 최고의 흥행배우와 국내에서 제일 핫한 배급사를 끼고 스크린 수 확보도 충분했으며 소문 역시 제대로 나 있었다. 변호인은 이렇게 잘 깔려진 멍석에 걸맞는 완성도를 보여줄 의무가 있었다. 감독은 인생 작품을 만든다는 각오로 임했어야 했고, 구성작가도 조금만 더 집중해서 만듦새를 다듬었어야 할 작품이다. 영화는 천만 관객을 말하고 있지만, 앞으로 이런 영화는 대충 만들어도 천만은 깔고 간다는 인식이 굳어진다는 현실이 무섭다. 앞으로의 영화판이 영화로 승부하는 게 아니라 소재싸움과 클리셰 전쟁이 될 거라는 생각, 그것은 결국 한국 영화의 일본 방화화를 의미하는 것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일수록 더 잘 만들어야 한다.

비단 영화만이 아니라 어떤 사명을 가진 미디어일수록

그 사명에 의존해서 흥행을 기대하는 짓은 매우 위험하다.


손석희 뉴스는 '공정한 뉴스'에 앞서 '잘만든 뉴스'이다. 공정한 뉴스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공정하면서 잘 만든 뉴스'는 없었다. 만일 손석희 뉴스가 그저 공정하기만 했다면 지금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영화일수록 그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몰입하는 사람들은

흥행으로 거둘 수 있는 모종의 정치적 목적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영화에게 맡기는 것도 좋지만

영화에 대한 평가 자체는 별도로 두고 냉정하게 나누는 문화가 자리잡았으면 한다.

 



posted by RushAm 2013. 11. 9.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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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를 정해야 할 때라고 다들 말해요. 어떤 대학 어떤 전공을 들어가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겠고, 저는 학교에서 지금까지 내신 관리하라면 관리했고, 수능 공부하라면 맞게 수능 공부를 해왔거든요. 다 끝나니까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진로 상담을 해도 그냥 점수 맞춰서 가라거나 취업율 높은 대학이나 학과를 권하고 있어요. 그냥 선생님이나 부모님 말씀 계속 들어도 되는 걸까요? 그러면 정말 세상에 필요한 인재가 될 수 있을까요?


<!>

네 그러면 세상에 필요한 인재가 될 수 있어요...끝



...은 농담이고 질문의 주객이 전도되었네요. 친구의 질문은 마치 '내가 지금 뭘 하고 싶은지 맞춰볼래요?'라고 묻고 있는 것 같거든요, 친구가 잘못했다고 탓을 하려는 게 아니에요. 사회교과서잖아요. 어쩌면 친구에게 제일 필요한 이야기를 오늘 해드리게 될지도 몰라요. 그러기 위해서 쓰고 있는 교과서거든요.


친구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누군가가 자신의 진로를 대신 정해주고 그 뒤를 따라가고 싶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마 이유는 무엇이 옳은 길인지 지금까지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죠. 선생님과 학부모들의 대표적인 수험생 달래는 패턴 '그런 건 수능 끝나고 생각해' 라는 말은 술 마시기나 다른 유흥에는 충분히 통용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친구의 진로에는 통용되지 않을수도 있어요. 내가 뭘 할지에 대해 생각하는 건 잉여시간 6개월만에 확립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아니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10년도 걸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죽기 직전까지 깨닫지 못하기도 하는데, 하루이틀 조차 자기 시간을 갖지 못했던 수험생들에게 이제부터 1,2개월간의 다시오지않을 시한부 휴식기간동안 머리 싸매고 진로를 생각해보라고 세상에 던져놓는다고 해서 그게 가능할 턱이 없어요.


태풍따위 부러워하지 말고


다시 말하지만 사회교과서에서는 그런 여러분들에게 '무능하다'라고 책망할 생각이 없어요. 어쩌겠어요. 당장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지금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어떻게든 짧게는 1개월 안에 여러분들이 가능한 더 많이 생각해보고 진로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뿐일거에요. 수능 대비 지문 읽는 연습으로 인해 많이 피곤하시겠지만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라


우리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선생님으로부터 배우는 즐거운 생활이었나 바른 생활이었나 교과서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아무튼 그 시간에 선생님은 이제 막 자라나서 12년동안 학교에 정 붙이고 살아야 할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던졌어요.


여러부~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어요, 1.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 2. 있으나 마나 한 사람, 3. 세상에 필요가 없는 사람, 자 어린이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나요?


아이들은 모두 손을 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자신있고 칭찬을 갈구하는 눈빛으로 선생님에게 '네 전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라며 선생님을 기쁘게 하는 데 여념이 없었어요.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한 부흥회는 결국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의 간증을 끝내고 선생님의 얼굴에서 만족감이 흘러 넘쳐 뚝뚝 떨어져야 비로소 끝나곤 했죠. 그런데 그 와중에 분위기를 깨는 아이가 한 명 있었어요


'네 선생님 저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어요. 그리고 애써 쓴웃음이라도 보이며 아이에게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얼마나 안좋은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어요. 차마 손발이 사라질 것 같아서 그녀의 말투를 묘사하지 못하는 점은 양해를 바랄게요. 아무튼 그녀의 노력은 결국 마지못해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고쳐먹은 시늉을 한 아이의 입장 정정이 있고 나서야 겨우 끝났죠.


...


그 아이의 대답은 결코 철부지의 그것이 아니었어요. 그 아이는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수동적 타의성'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가졌던 것이죠. 사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도 결국 누군가에 의한 상대평가일 뿐이지 자기 자신이나 그 외의 사람들에 의한 절대평가가 아니라는 건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은 내가 꼭 필요한 일을 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어요. 적어도 내가 뭘 하는지에 대해 오지랖 간섭질은 하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을거라는 이미지가 그 8살 아이의 머릿속에 떠오른거죠.


학교 교육 12년동안 여러분들은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 하에 육성되어왔어요. 사실 이 말이 얼마나 무섭냐면 사회가 잘 되기만 한다면 꼭 필요한 사람만이 육성되어야 하고 필요없는 사람은 응당 도태되어야 한다는 이분법을 내포하고 있거든요. 이미 교육 단계에서 낙오자에 대한 배려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는 거에요. 이런 분위기는 고스란히 교육 현장의 압박감을 조성해서 꼭 필요한 사람, 반드시 타의적으로 평가받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며 길라잡이로 하여금 인정받을 수 있는 그들의 마음에 들 수 있는 길을 가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전파시켜요. 지금 막 수능을 본 여러분들은 그 압박의 터널을 끝까지 완주한거에요. 여러분들에게 축하를 건네고 한편으로는 위로를 건네며 또 한편으로는 측은지심을 보이는 이 모든 시선들은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달려온 길이 오롯이 여러분들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거에요.


1등급++이네요 '소'가 참 기뻐하겠죠?


12년만에 햇빛을 본 여러분들에게 눈부셔죽겠는데 이제 빛을 줬으니 얼른 눈앞에 있는 수많은 옷들 중 하나를 골라서 입으라고 해요. 여러분들은 단 한번도 옷을 입어본적도 없는것은 물론 옷 자체가 있는줄도 몰랐는데 그냥 밝아졌으니까 이제 눈이 보이기 시작하게 해줬으니까 서둘러 입고 가라고 재촉해요. 여러분들은 우왕좌왕하는게 당연하고 옷을 잘 못입는 주변 친구들이 그런 것처럼 스스로 옷을 고르는 데에 실패하고 누군가가 골라주길 원하게 되죠. 자신의 선택에 대한 두려움과 남이 내 선택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공포심이 함께하고 있는거에요. 뒤에서는 빨리 입고 가라며 재촉하고 미처 옷을 챙겨입지 못한 사람들은 부랴부랴 그 중 많이 선택하는 옷을 입거나 많이 남아있는 옷을 고르거나 둘 중 하나에요. 미처 옷을 입지 못한 채로 알몸으로 우두커니 서서 고민만 계속하는 사람들은 이미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죠. 


'나이가 몇살인데 아직도 알몸이야?'



...


우울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려 한다거나 어떤 현실을 미화하려는 생각은 없어요. 다만 여기에서 이제 막 수능을 끝낸 여러분이 하셔야 할 첫번째는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탈출하셔야 해요. 이거 굉장히 보수적이고 수동적인 관념인데다 12년동안 새뇌까지 당한 여러분들에게 단박에 벗으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지금 여러분들이 주어진 시간에서 가장 빠르게 진로를 선택하려면 적어도 누군가에게 내가 인정받고 평가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부터 나오셔야 할 거에요. 물론 여러분들 대부분이 회사에 들어가서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일을 하는 피고용인이 된다면 제 이야기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때 하셔도 늦지 않는다는 거에요. 적어도 자신의 진로를 생각할때까지 그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처음부터 그런 생각으로 만들어진 자기 인생은 아주 오랫동안 스스로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박탈하게 될 지도 모르거든요.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사회에서도 여러분들을 신경쓰지 않고 여러분들도 주변 사람들이 뭘 하는지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 크게 관심을 두지 마세요. 그리고 다시 한번 가야할 길을 보시는 겁니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에게 들리는 조롱에는 귀를 닫으세요. 적어도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특별히 간섭을 하려 들지는 않을테지만 나처럼 살라며 얼른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새뇌시키는 사람은 있을 수 있으니까 조심하시고요. 핵심은 여러분들이 영원히 있으나 마나 한 사람으로 살다가 죽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시기부터 '꼭 필요한 사람'을 목표로 인생을 정할 필요는 없다는 거에요. (몇 번을 강조해서 미안하지만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라 그래요)


기업 성패를 남탓으로 돌리고 싶은 사장님들이 많이들 읽는 책이에요.


...


있으나 마나인 분들 환영합니다. 여러분들은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강박관념에서 탈출하신 분들이에요. 적어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될 위험은 조금 덜게 된 거죠. 이것만으로 절반 이상은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제가 하는 이야기도 약간은 모순된 것일지도 몰라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따르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으면서 저 자신은 교과서에다가 제가 말하는 대로 하라고 또 강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다만 가능한 지금 주어진 여러분들의 환경은 지금 당장 바뀔 수도 없고 바뀐다고 해도 여러분들에게 바로 소급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저는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여러분들에게 지금 할 수 있는 한의 최대한이 될 수도 있는 어떤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쓰고 있으니까요.


이제부터는 스스로를 평가할 시간입니다. 물론 공부만 똑같이 열심히 하던 사람들에게 어떤 개성이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고 그 개성을 스스로 찾을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은 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뭐하지만 아무튼 본인의 능력치나 스펙 뭐 이딴 게 아닌 리트머스 종이를 입에 물고 색깔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듯 성분분석을 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거에요.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오래 해도 질리지 않는 쪽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아요. 아주 추상적이어도 상관없어요. 가령 난 세계 최강이 될꺼야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치면 사슬이 돌고 돌아 결국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세계 최강이 되는 길이 보이게 되거든요.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될 거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해질거야, 뭐 이런 것도 마찬가지일거에요. 꿈이라는 건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꿈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마치 인생이 재미없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말동무같은 존재가 되어주어야해요. 많은 자기계발자들이 꿈이라는 존재에 대한 강박관념때문에 자신을 채찍질하고 결국 몸이 골아버리는 경우를 너무 흔하게 봐왔는데, 꿈이라는 존재조차 남에게 보여지는 악세서리 취급 가치관의 세상에 살고 있어서 그래요. 굳이 꿈을 너무 갖는 것 자체에 집중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인생은 꿈조차도 간섭할 권리가 없어요.



방향이 정해졌으면 이제 세상과 타협할 시간이에요. 내가 어떤 걸 이 세상에 지불하고 내가 생각한 그것을 따낼 수 있는지 진지하게 포커 게임을 해보는 거에요. 흔하게 대학등록금이 들어갈수도 있고 어떤 스쿨의 수강비용이 될수도 있고 어쩌면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지만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긴 시간이 필요할수도 있어요.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무지무지 많이 만나러 다니며 자신을 알려야 하는 기회가 더 많이 필요할수도 있는거고요. 제각각 지불해야 하는 것들의 형태도 다르고 그 결과도 천차만별이에요. 그렇게 주판을 튕겨보는거죠. 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떤 것도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된다는거에요. 돈이 많이 들어가면 진로를 바꾸지 말고 우회로를 찾으시고, 담금질의 시간 동안 주류에서 멀어진 것에 대한 소외감이 걱정된다면 굳이 담금질을 계룡산에 처박혀서 도닦듯 할 필요는 없으니 대학 들어가서 대학생 생활 해보면서 준비해도 괜찮다는 거에요. 


수능 보고 오신 분들에게 너무 길고 지루하면 안될텐데 이미 길어졌지만 아무튼 이 단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는 거에요. 젊어서 바싹 벌어서 노후가 초라하지 않게 대비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지금 당장 반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진짜 오싹하겠지만 우리 중 누군가의 인생은 그 열심히 준비했던 노후라는 것을 겪어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수도 있어요. 그게 인생이거든요. 그러니까 지금의 고통을 견디고 나중을 즐기라는 식으로는 절대 접근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의 인생은 종착역에 가는 과정 1년 1개월 1시간 1분 1초 하나하나 모두 소중하게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야 후회가 없거든요. 준비가 고통이면 완성되었을때의 쾌감은 완성 그 자체에서 오는 게 아니라 고통에서의 해방에 따른 것이라는 걸 여러분들은 수능으로 충분히 아셨으리라 믿어요.



가는 길이 굳이 고통일 필요가 없어요.


...


마지막으로 당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여러분들의 인생은 컨티뉴, 리벤지는 있어도 리셋은 없다는 거에요. 어떤 길을 가더라도 돌아오는 길은 반드시 잊지 마시길 바래요. 되돌릴 수 없는 일은 하는 데에 정말 많은 생각을 하시고 시간을 들이세요. 혹자는 주저없이 순간 미친사람처럼 내지를 수 있어야 인생에 진정 미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한 사람들은 리셋이 이미 필요가 없는 사람들일 뿐이잖아요. 인생 언제든 어느순간에든 실패할 수 있어요. 당장 수능도 그렇잖아요. 수능에서 실패했다고 벌써 어떤 여학생이 또 올해도 이번에도 어김없이 죽었어요. 리셋 버튼이 필요한데 리셋 버튼이 없으니 그게 너무 좌절스러웠던 거죠. 길을 오는 데 돌아오는 길을 봐 두지 않았으니 막다른 낭떠러지에 다다르니까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뒤에서 몽둥이 들고 쫒아오는 선생님 부모님이 무서워 뒷걸음질치다 저도 모르게 떨어진 타살과 뭐가 다른가요? 


여러분들은 수능이 참 무서웠을거에요. 뒤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기대의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이 벼랑 끝에서 여러분들에게 극딜을 남발하고 여러분들은 뛰어내리느냐 마느냐만 남긴 채 이판사판인 심정으로 시험을 봤을 거에요. 앞으로는 그러지 마세요.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기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부칠 필요가 없어요. 항상 가던 길은 뛰어가더라도 젊은 헐기로 대쉬하느라 주변 풍경이 흐려지더라도 언제든 뒤로 돌아갈 수 있다라고 스스로에게 믿음을 줄 수 있도록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외워두자구요. 그렇다고 무슨 저축이나 보험 같은 걸 들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해서 언제든 넘어졌을때는 컨티뉴, 막다른 길에 부딪히면 언제든 리벤지 할 수 있다고 자기 자신에게 믿음을 주라는 거에요.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지 내 자신의 목숨과 인생을 지킬 수 있을 거에요. 이제 그걸 스스로 해나가야 하는, 롤러코스터에 타고 올라가는 딸깍소리를 들으며 언제 끝나는지 얼마나 크게 떨어질지에 대한 불안과 환희가 동시에 함께하는 바로 그 시기인거에요. 아무리 무서운 롤러코스터라고 해도 결국은 제 자리로 돌아오는 길이 분명히 있잖아요. 불안하다고 무섭다고 중간에 뛰어내리지 말라는 거죠.



여러분들에게 참 쉴 틈을 안 주는 세상이에요. 수능 끝났더니 진로 정해라, 면접 준비해라, 대학 눈치싸움 해라, 재수할지 안할지 결정해라, 여태 하라는 대로 다 했더니 이제와서 이런식이라니 참 힘빠지고 지치는 일이에요. 뭐 그리 하라는 게 많은지 모르겠죠? 지금은 그냥 ㅗㅗ 날려주시고 조용히 자신의 입에 리트머스 종이를 하나 물고 며칠이든 몇주든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잊고 '내가 나한테 필요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네요. 내가 나한테 필요한 사람이 되면 인생을 후회없이 살고 쓰러져도 일어날 수 있으며 떨어져도 절벽에 매달릴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을거에요. 어쩌면 수많은 돈을 모으고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그럴싸한 회사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좋은 노후대비 방법일수도 있어요. 


...


꿈은 포기해도 되요.

근데 인생은 포기하지 마세요.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어요. 

그리고 어디라도 갈 수 있어요.



여러분이라면....충분히





공화국 사회교과서 제 7장 - 수능도 끝났는데 이제 뭘 해야 하죠 를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3. 10. 2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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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학교다닐때는 말이죠.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우리는 누구나 평등한 권리를 가진 자유민주주의평등국가라고 제일 처음에 배운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제가 정작 사회에 나와 살아보고 주변 친구들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도 지켜보자면 그때 배운 게 맞나 싶기도 해요. 우리는 정말 직업에 귀천이 없는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에서 살고 있는 게 맞나요? 왜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굽실거려야 하고 그 화풀이를 꼭 누군가에게 해야 하는 폭탄돌리기를 하며 살아야만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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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이 거짓말한게 그것 뿐이라고 생각하세요?


공화국 사회교과서 1장에 보시면 학교가 절대 정직한 집단이 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너무 순진하셨어요. 하기야 그때 순진하지 않으면 언제 또 순진해봅니까? 꼭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긴 하지만, 그걸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세대들의 시각에서 재해석할 여지 자체를 주지 않는다는 건 좀 우리만의 문제이긴 해요.




흔히 대통령이 국민 아래에 있고 모든 권력 국민에게서 나온다 뭐 이런 이야기가 헌법에 쓰여있잖아요. 근데 그걸 체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이고 그 사람들이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자신들의 사유재산을 챙겨먹기도 하죠. 그럼 왜 이 헌법이 존재하느냐, 명목상인거에요. 사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것 자체가 에초에 과거 봉건주의 사회와 관료주의 사회의 모델에서 전혀 발전하지 못한 모양새거든요. 당연히 시행 초반에만 반짝 컨벤션 효과를 냈었겠지만 고무줄 돌아오듯 금새 사람 사는 사회는 예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채로 회귀하고 있는 거에요. 


왜 이 사회는 평등하지 못할까요? 그리고 앞으로 정말 평등한 사회란 올 수가 있을까요? 당장은 해답을 드리지 못하겠지만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


나랏님 탓


흔히 하는 착각중에 하나가 지금의 공화정에 비해 절대왕권봉건주의 사회에서는 왕의 권력이 절대적이며 백성들은 결코 이 권력에 저항하지 못한다고 믿고 있다는 거에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에요. 봉건주의 사회는 그만큼 계급화가 명확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각 벼슬이나 왕권이 지금의 공화정제 관료들보다는 훨씬 공고하고 표면적으로는 영구집권과 세속이 가능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요. 근데 진짜 그랬을까요? 그리고 지금 공화정이 영구집권과 세속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긴 한가요? 


공화정 하에서 정권을 잡은 자들


대통령과 일개 시민이 평등하다고 교과서에서 늘 배우지만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죠? 대통령이 가진 국가 권한은 너무나도 막강해서 국가를 개인 사적 감정으로 패망시키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요. 과거 조선의 왕들이 군사를 일으킬 때 백성들 중 건장한 청년들을 차출하는 것처럼 대통령 산하 국가조직 역시 젊은이들에게 명목상으로는 '자율적'이지만 헌법상의 의무라고 못을 박아둔 채 병사를 차출하고 또 이용하는 모습은 전혀 다를바가 없잖아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서 몸 아픈사람 빼주고 부양가족 있는 사람 빼주고 그런다고요? 조선시대라고 그런 거 없었던 게 아니에요. 조선시대에는 심지어 '결혼'만 하면 애를 생산해야한다는 의무를 지기 때문에 전쟁에 차출되지 않기까지 했어요. 다친 사람이나 지병 있는 사람은 말할것도 없죠. 지금 병역 면제 기준 한번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마 면제를 받는 것이 조선시대에 비해서 과히 민주적이고 간단하지 않다는 건 징병대상자가 되어본 남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부분이에요.


지금은 민주주의라서 대통령이 뭐 잘못하면 국민들이 힘을 모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니 왕권주의보다 낫다고 보는 분들도 있어요? 근데 그게 반드시 공화정이 되고 나서야 겨우 생겨난 특권일까요? 정말 왕권주의때에는 그런 일이 없었을까요? 적어도 우리나라에 한해서는 그게 아니었어요.


조선왕조 500년 실록을 보면 우리나라 왕 중에는 종이나 조로 끝나는 사람도 있는데 드물게 '군(君)'으로 끝나는 사람도 있어요. 연산군이나 광해군이 대표적이죠. 그들이 폭군이라서 그렇게 기록되었다고 알고 있는게 일반적이에요. 그런데 이상하죠? 왕권이 절대적인 왕권주의국가에서 폭군이었다고 해서 한낱 서기관따위가 임금 역사를 그따위로 기록한다니 말이에요. 그리고 에초에 폭군이라고 평가를 한 주체가 있었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기본적으로 왕이 자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 하나 좌지우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렇게 쉬운 걸 왜 못해?


...


연산군의 기록을 보면 이런 얘기가 있어요.


- 조선 연산군은 매사냥을 경기도 청계산으로 다녔는데 매번 한강에 부교를 설치하는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고 한다. - 


매사냥이 뭐냐, 당시 동시대 유럽 귀족들의 필수 교양이라고 할 만큼 가진 자들의 평범한 취미 정도였단 말이죠. 왕이 문제가 아니라 흔히 부르는 공작 백작 남작, 우리로 말하면 고을 원님들도 흔히 즐기던 수준이었다는 거에요. 그런데 왕이 그거 좀 한다고 백성들이 무려 '원성'씩이나 냈다라는거죠. 이건 당시 왕권이 약하고 강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조선의 봉건주의가 일반적인 유럽의 봉건주의와는 그 궤를 달리했다는 이야기가 되요. 



우리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봉건주의 자체에 대해서는 유럽의 그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강한 왕권과 정복자, 지배자, 피지배자로 나뉘어지는 복잡한 유럽의 역사에서 생겨날 수 밖에 없었던 그 봉건주의 말이죠. 그런데 역사 교과서 주장대로라면 침략을 수도 없이 당하기만 했을 뿐 어디 하나 침략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순둥이 국가 대한민국의 봉건주의가 이들과 성격이 같다는 건 분명 모순일 거에요. 한마디로 지금 현대의 많은 국가들은 봉건주의에서 공화정으로 바뀌는 역사의 수순을 밟고는 있지만 그 공화정 자체의 성격이 어떤 나라에서 만들어진 획일화된 기준으로 모든 나라에 적용시키기에는 그 한계가 분명 있다는 거죠.


유럽의 봉건주의는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데. 기본적으로 지배와 피지배, 타민족과의 경쟁, 그리고 전쟁 수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몇십배에 달해요. 전쟁이 많다는 것은 무엇이냐. 그만큼 체재 전복에 대한 위협을 왕이 깊숙하게 느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며 지배와 피지배 타민족과의 경쟁이 반복된다는 것은 전혀 뜻을 같이 하고 있지 않은 민족들과 국경 속에서 합의 하에 같이 살아가야만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단일 민족이었고 삼국 시대 뒤엔 고려가 생기고 그 뒤엔 조선이 생기고 그 뒤엔 일제침략기를 거쳐서 대한민국이 생기는 사슬 구조의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많이 달랐다는 거에요. 


이런 환경에서 왕이 과연 백성들을 믿고 백성들을 위한 선정을 펼칠 수나 있을까요? 내일 당장 전쟁이 벌어져 순식간에 나라가 망할 수도 있고 외부 민족들이 공존하는 백성들 중 그들이 진정 우리 편이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불투명한데 그들을 모두 백성으로 인정하고 나라의 안정을 꾀할 틈이냐 있었겠냐는거에요. 게다가 공작, 백작, 남작 이런 단어에서 알 수 있겠지만 당시의 왕 제도는 중앙집권체계가 아니라 암묵적으로 군소 국가들이 연합해서 연방을 구성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각 지역 영주들의 권력은 그 지역 내에서는 왕에 필적했어요. 유럽 중세 소설을 보면 사실 왕이 와서 행패를 부리는 모습은 별로 없고 백작이나 남작, 후작 같은 사람들이 악역으로 많이 등장하잖아요. 그만큼 그들의 권력이 그 지역 내에서는 절대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하죠.



사정이 이런데 과연 왕이라는 존재가 온 백성을 아우르는 성군이 될 수나 있었을까요? 당연히 각 영주들보다 더 위에 있으려면 더 많은 권력과 권세를 누리지 않으면 안되었던거죠. 왕은 일반 백성들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일반 백성들은 각 지역 영주들이 사실상 그들의 왕이나 다름없었어요. 각 지역 영주는 이변이 없는 한 대물림되며 세습되었고 왕이 특별히 문제를 삼지 않는 한 세습을 트집잡을 수도 없었던거죠. 우리나라는 어땠나요? 부패한 관리가 있다는 탄원이 중앙정부로 접수되면 암행어사가 떠서 싹 쓸어버리는 장면 익숙하시죠? 유럽에서 이 장면을 보면 눈이 휘동그래질거에요. '아니 어떻게 감히 영주한테 개길수가 있지?'



우리나라는 이미 조선시대때부터 영주는 물론이고 왕조차도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면 폭군으로 기록되며 유럽에서는 남작 나부랭이도 하는 매사냥조차 백성들 눈치를 봐야하는 그런 봉건주의를 가진 나라였어요. 물론 왕권이 강력하다는 것은 이견이 없지만, 그 왕권자체의 강력함과는 별개로 백성들이 느끼는 삶의 질과 정치적 참여에 대한 권리는 유럽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는거죠. 대부분의 민란들도 결국 범국민적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한건 조선 후기의 그 악명높은 허수아비 선조 시대 안동 김씨 세력들이 득세할 때 본격적이었지 실제로 중국의 통일국가 역사에 비추어보아도 이렇게까지 반란에 대한 기록이 적은 나라가 또 없어요.


이런 백성친화적인 봉건주의 사상을 일찍부터 가지고 있던 우리나라가 왜 민주주의 국가에 이르러 이모양이 되었는지에 대해 궁금하실거에요. 그 해답은 그다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일본을 공격해야 해요.


...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뿌리를 찾기가 참 애매해요. 우리나라는 입헌군주제 국가가 아니라 대통령제 국가이기 때문에 굳이 가져오자면 미국의 민주주의를 표방해야 하죠. 그런데 미국처럼 연방제국가가 아니기때문에 단일국가의 민주주의 모델로 개량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이 개량 작업을 해야 할 시기에 딱 일제강점기가 겹치게 되요. 뼈대는 미국식 민주주의인데 속살은 일본식 민주주의라는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잘 감이 안오시겠지만 일단 들어보세요.


일본은 입헌군주제국가이므로 당연히 왕이 있어요. 따라서 일본의 민주주의 하의 정치적 최고권력자는 총리대신이 됩니다. 그런데 이 왕의 존재 자체가 일본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신'과 같은 위치에 있거든요. 일본 여행을 하다보면 신사(神社)가 있고 데라(寺)가 따로 있다는 것에 의야해보신 분들이 있으시겠지만, 일본은 그 동네, 혹은 그 지방의 큰 어르신이나 그 지방을 개척한 토호를 신으로 모시는 데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어요. 이런 문화는 중국에도 있는데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나 조자룡이 출생지역 상산 등지에서 신격화되고 참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물론 일본쪽이 훨씬 더 맹목적인 구석이 있지만요.



이런 문화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섬나라이다보니 불교 문화가 태동되기 전까지는 이렇다할 종교가 침투될 여지가 없었고 그렇다보니 토착 종교 즉 토템이 발전을 거듭하여 된 모양새가 조상신을 넘어선 그 마을, 더 넓게는 나라의 국왕을 신으로 모시는 풍토가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겠죠. 이건 사회교과서 5장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예전 이집트에서나 볼 수 있는 굉장히 원시적인 종교 문화에요. 그만큼 교류 자체가 적을 수밖에 없었던 섬나라의 폐쇄성이 만들어낸 특이점이라고 보는 게 맞을거에요.


이런 토착 종교 문화는 국가 문화를 극도의 보수성으로 옭아묶게 되요. 일본은 도요토미히데요시가 통일을 하기 전까지는 4개 국가에 수십개의 크고 작은 통치 지역으로 나뉘어져서 통치되었는데, 중앙정부가 존재했고 일왕도 계속 명맥을 잇고 있었지면 아무도 그들의 권력에 별로 관심을 보이진 않았고, 일왕 역시 각 지역 구석구석까지 자신의 힘이 닿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시대였죠. 대부분 각 통치 지역에 있는 영주 (일본으로 치면 쇼군) 들이 자신들의 통치 영역만을 얌전히 통치하면서 지냈어요. 이른바 센고쿠 다이묘 시대인데 일본의 사극 대부분은 이 시대부터 시작하고 있어요. 그만큼 일본 역사는 그 이전 역사가 제대로 갖춰진 역사라고 보기에는 너무 원시적이었다는거죠.



그렇게 다 제각각 나라를 갈라먹고 평화롭게 오랫동안 살다 보니 나라가 굉장히 오래 갔고, 각 지역별로 우리나라로 치면 '단군할아버지'급의 인물들이 한 명씩은 존재했어요. 물론 우리의 천도교처럼 하나의 종교로서 고착되었음은 물론이고요. 특징이 있다면 그들은 그 혈통을 보존해서 계속 왕으로 모셔 오고 있다는 거에요. 한마디로 한번 지도자로 모신 혈통은 계속 세습하여 지도자로 모신다는 북한의 3대 세습은 울고갈 유구한 역사의 세습문화가 일본에 정말 상상도 못할 기간동안 오래 지속되었다는 거에요. 그러다보니 죽은지 너무 오래 되어 그 위대함을 해아릴수없는 지경이 되면 그 지도자 혈통의 시조급은 이른바 '신격화'가 될 수밖에 없죠.



일본 대기업의 역사는 수백년을 아우르는 곳도 있는데 대부분 이런 명문 가문이 기업화된 곳들이 많다. 미쯔비시그룹의 마크도 원래 가문의 상징을 회사 심볼화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의 카스트는 정치계뿐만 아니라 경제계에도 이처럼 깊숙히 박혀있다.



이런 나라가 통일이 되었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상상만해도 끔찍한것이 각 지역별로 신이 있는데 그 두 지역이 싸워서 이긴 지역이 진 지역을 흡수해버리면 사실상 그 지역의 토호 혈통이 끊어진다는 건데, 이미 그 혈통이 깊숙히 신격화되어있는 국민들이 이를 가만 둘리가 있었을까요? 이미 다른 지역의 토호로 갈아탄다는 차원을 뛰어넘는 더 뼛속 깊은 트러블이 예고될 수밖에 없었어요. 일본은 그만큼 통일이 쉽지 않은 나라인거죠.


아무튼 통일은 통일임


그러던 와중에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국을 통일시키는데 성공했으니 실제 그 내부 진통은 어느정도였는지 예상이 되시나요? 물론 도요토미는 이를 타파하고 일본을 결속시키기 위해 전쟁 카드를 꺼내서 우리나라를 괴롭혔는데, 실제로 우리 나라를 먹겠다는 목적보다는 일본 각 지역, 특히 시코쿠와 큐슈 지역의 토호 세력들의 '전투력 소모'의 목적이 더 컸어요. 중앙 정부가 있는 혼슈와는 다르게 바다 건너 있는 시코쿠와 큐슈에까지 단기간에 통치력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통일빨이 다 하기 전에 그들의 전력을 소비시킬 필요성이 있었던거죠. 한마디로 그는 통일은 했지만 각 지역의 토호들을 모두 잠재웠다고 보기는 어려웠어요 여전히 도요토미는 물론이고 중앙정부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국민들이 대다수였을정도니까요. 도요토미 사후에 즉위한 도쿠가와 역시 중앙집중안정책을 취하긴 하지만 토호들의 권력을 완전히 빼앗는게 아닌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충성을 유도하는 유화책으로 평화를 이끌어내는 선에 그쳤어요. 한마디로 어느 쪽도 완전한 하나의 국가로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일본은 공화국이 되어서야 지금의 일본이라고 불릴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데, 이때 일본의 입헌군주제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한 것이 왜 기존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했는데, 새로운 왕이 탄생하지 않고 제국이 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볼 필요성이 있었는데요.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의 일본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 지역 토호 위주의 '신'을 모시는 문화를 모두 타파하고 통일된 하나의 신을 모시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은 그때까지 실질적으로 혈통만 존재할 뿐 어떤 권력도 없었던 일왕 혈통을 이용하기 시작하는데, 막부 시대에는 궁핍하여 즉위식은 커녕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했던 일개 몰락 귀족 혈통에 불과했던 일왕은 그 유구한 역사와 정통성으로 인해 일본에서 가장 오랜 가문으로 모셔지기에 충분했어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들어 일본 제국을 세운 자들은 이를 일본 전국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에는 일본 유신을 완성한 자들의 스스로의 권력다툼으로 인한 죽음을 걱정한 나머지 누구 하나 1인 권력을 쥐는 것을 원치 않았던 이유로 이들은 일왕 가문을 내세워 일왕 가문을 보호하는 내각총리 체계를 완성하게 되요. 이런 내각총리 체계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고 패전의 쓴맛을 보며 입헌군주제로 변할 지언정 그 체계는 지금까지 무너뜨리지 않고 이어오고 있죠.



일본의 초대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 일왕의 직할 통치론을 최초로 주장하며 일본의 제국화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때부터 일본의 정치인은 국민이 뽑은 봉사자가 아닌 완전한 각료, 관료, 벼슬아치가 되었으며 이는 지금의 일본 사회가 가진 신 카스트의 기본 토대가 된다



일본 제국이 일왕을 얼마나 신격화하는데 성공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모습, 일본 제국군인들은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일왕처럼 신으로 받들여 모셔질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자살폭탄공격을 기꺼이 수행했다. 그리고 일본은 놀랍게도 그 약속을 아직도 지켜나가고 있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일본 건국 이념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니까.



...


일본 이야기는 저도 많이 하기 싫으니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할 것 같군요.


왜 이렇게 싫은 얘기를 길게 했는지에 대해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일본의 전국시대부터 일본 제국, 입헌군주까지의 역사가 지금의 일본 내에 미친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에요. 일본은 그 나라 크기에 비해 각 지방이 가지고 있는 독립적인 경제권과 자치권이 다른 어느 나라에 비해 높고, 표준어 구사율이 경제규모에 비해 상당히 떨어지며, 지방분권이 어느 나라보다 잘 되어있는 나라가 되어있죠. 그들에게 있어 일왕은 단순한 왕이 아니라 일본의 신이며 그들의 통치를 받는 것은 응당 당연한것이죠. 각 지방에서 선출되는 국회의원들이 아들 손자 며느리까지 3대 세습은 우스울정도로 세습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도 전국시대부터 이어져온 토호 세력의 제왕적 봉건주의가 뼛속까지 스며 제대로 된 자발적 민주주의가 꽃필 토양 자체가 아예 생길 여지가 없는 한계가 있고, 총리대신을 국민이 아닌 각 지역 토호들이 선발하는 문화 역시 에도시대와 일본 제국을 거치면서 생긴 중앙집권화의 잔재인 것이죠. 한마디로 일본은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거에요. 그들에게 있어 민주주의란 아직도 너무 먼 이야기일 뿐이고 그것은 그들 스스로 자초한 문제에 지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토호 세력들이 공포정치를 펼친 적도 없고 왕은 일찌기 중앙집중화를 이룩해내어 중앙 임명식 봉건제를 완성시켜 지역 토착 세력이 자리잡을 여지 자체가 없었으며, 통일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의 건국과 멸망은 결국 관리들의 부패로 인해 민심이 등을 돌리면서부터 시작되었을 만큼 나라의 흥망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 백성들의 역할이 매우 컸던 나라에요. 그런데 이런 나라에서 태동된 민주주의가 지금의 이 모양이라면 답은 하나밖에 없죠. 바로 일본 탓이에요.



우리나라는 입헌군주제가 아닌데도 정치인들은 어떻게해서든 정치권력을 자식들에게 세습화하고 놀랍게도 국민들은 이를 당연하다는 듯 문제인식 없이 용인하죠. 지역 출신 대통령을 신처럼 모시는 의식이 각 지역별로 횡횡하고 있고, 중앙집중체계가 잘 이루어졌던 조선으로부터 이어진 나라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역주의가 팽배한 나라가 되고 말았어요. 민주주의 하에서의 관료들은 마치 봉건주의의 그들처럼 권위의식이 높아져만 가고 놀랍게도 그런 권위의식에 대해 마치 봉건주의 귀족들을 보듯 당연시어기는 국민들이 아직도 많아요. 심지어 이런 계급사회의 체계는 굳이 정치판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회사 내 심지어는 우리가 사는 이웃의 소득 격차에서도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를 좀 더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도 있어요. 민주주의는 국민에게서 권력이 나오는 체계인데 오히려 조선시대보다 못한 국민권력을 가지고도 지금의 민주주의 권력이 오히려 과잉이라며 스스로를 책망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아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꽃을 피워야 할 때 하필 그 뿌리를 다져야 할 때 일제강점기가 있었어요. 그들은 일제강점기 동안 일왕을 섬기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기는 이른바 제국주의 계급사회 체계를 뿌리박았어요. 해방 후 우리나라는 그 잔재를 청소하는 데 실패했고 그 계급주의의 혜택을 듬뿍 입은 자들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 초대 정권을 잡으면서 그들에게는 한없이 유리하고 행복하며 영원불멸할 수 있는 일본의 입헌군주제식 민주주의를 뿌리박는데 성공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헌법 제 1조가 존재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체감권력은 한없이 약하게 느껴지는 기형적인 나라로 지금에 와 있는 거에요.


이같은 패배의식이 남아있고 입헌군주제식 민주주의 잔재가 남아있는 한 아무리 1인 1표제, 직선제 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민주주의에 의한 정치적 결실을 얻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봐요. 토호 세력이 신을 섬기듯, 우리나라는 자기 지역 출신 정치인을 섬기고, 그가 임기를 마치고 나서도 그 권력을 계속 유지하는 영주와 같은 역할을 하는 반쪽 이하의 민주주의는 그들이 지금 당장 부패한 거와는 관계없이 우리 어르신들 세대에서부터 뿌리박혀 있는 이상 진정한 민주주의 하에서 나올 수 있는 사회체제가 확립될때까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을 정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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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언제 평등할 수 있나?


우리나라 현대사를 완전히 망가뜨렸다고 봐도 무방할 일본의 입헌군주제가 정치체계적으로 전혀 호환되지 않은 우리나라에 녹아들었다는 점이 사뭇 납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두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는 태생부터 사상까지 분명한 대척점에 있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그런데 말이죠. 사실 민주주의가 정말 봉건주의 사회와 완벽한 대척점을 지니는 정치 혁명이었다면 지금처럼 입헌군주제를 표방하는 국가가 나올 수가 없지 않겠어요? 아무리 껍데기뿐이라고 해도 공화정 혁명이 왕권이랑 호환성을 보이는 것 자체가 원론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거겠죠. 다시말해 지금의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쓴 봉건사회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양새만 다르게 한 채로 결정적 투표권을 줬다는 것 하나로 헌법 제 1조를 만들어 국민들을 착각하게 만들고 있어요. 입헌군주제냐 완전한 민주주의냐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 사상만으로 모든 국민들을 민주주의에 최적화시키도록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거에요.


일본의 근현대사를 소개해드린 부분을 읽으시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결국 뿌리깊은 봉건주의로 인해 자리잡아 있는 카스트 제도는 그 형태만 달리했을 뿐 이른바 일본식 민주주의로 그 색깔을 그대로 유지한 채 굳건히 자리잡고 있어요. 이들은 결코 낮은 카스트들을 위한 정책을 펼칠 생각이 없어요. 행여 그런 정책을 취한다고 해도 국민들은 그 부분이 자신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일 바에야 그냥 예전 영주들처럼 국민들 피나 왕창 빨아먹자는 게 일본의 관료주의 하에 놓여있는 상위 카스트들의 생각인거에요. 



일본인들은 대체로 이런 정치판에 큰 불만이 없어요. 그들은 민주주의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죠. 그들은 정치판이 내게 뭘 해줄지를 기대하기보다 그저 황국 신민으로서 내 위치에서 묵묵히 열심히 회사를 위해 나라를 위해 일왕을 위해 내 위치에서 내 역할 내 일을 열심히만 하다가 죽는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죠. 일본인들의 이런 특성은 외부에서는 우직함과 성실함으로 비추어지지만 실은 오랜 카스트에 익숙해진 뼈에 사무친 패배감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없다는 F1레이싱이 일본에서 인기가 있다는 점, 각종 헐리우드 스타들이 폭넓게 인기가 있는 이유 그들이 특별히 범세계적인 문화 소비 성향에 눈을 떴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냥 유명하니까 의무감으로 봐야 한다'라는 느낌이 강하다. 마치 유럽 여행에서 에펠탑을 반드시 봐야 하듯이 그들은 일본에 온 유명인이라면 별 관심이 없어도 콘서트의 자리를 꽉꽉 채우곤 한다




그들은 어느 정점에 다다른 연예인을 '신'이라 부른다. 그들에 대한 대우가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들이 F1경기장에 몰리고, 우리나라에선 생소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예인이 일본을 방문하면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그들이 진짜 좋아서라기보다 그들을 이미 '신'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종교적 행위와 다르지 않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이미 그렇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는데 일본의 그런 모습이 점점 보이고 있다는 거에요. 정치인을 신격화하고, 무언가 나라를 위해 직접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권력에 기가 눌려 묵묵히 살다가 죽는 것을 택하는 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자신들을 위한 정책이라곤 눈꼽만큼도 내지 않은 자들에게 표를 던지고 그들에 의해 온갖 불이익을 받아도 묵묵히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데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어요. 회사 면접에서 인격적인 조롱을 당해도, 회사 내의 봉건주의 잔재에 변화를 요구하기보다 그에 순응하는 쪽을 택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단순히 일본 탓만 할수도 있지만, 그것을 뿌리뽑을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린 책임도 분명하다는 점이 이 나라를 사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울 따름이에요. 


결국 민주주의는 그 자체만으로 결코 만능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에요. 그것이 입헌군주제에 의해 더럽혀지건 더럽혀지지 않건 결국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생각이 오염되지 않아야 본격적으로 자유로우며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토대로 제 역할을 해줄 테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무엇부터 어떻게 얼만큼 해야 하는지를 정해야 할 시기를 이미 지나쳐버린 지 오래지만 아직 늦지 않았어요.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 겠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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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대한 답을 드릴 차례네요.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평등해질 수 없어요. 그것은 입헌군주제의 영향을 받았던 받지 않았던 그 사상은 말 그대로 법이든 뭐든 '최소한'이에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군락을 이루고 그들이 함께 세력으로서 잘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어떤 합의체가 그들이 살아온 역사와 사회적 형태를 단박에 특정 나라가 발전시키고 만들어온 이론울 바로 적용시킬 수 있을 만큼 녹록할리가 없을테니까요.


우리나라는 애석하게도 일본의 입헌군주제에 의해 오염되어 버린 민주주의를 갖고 살고 있어요. 그래서 만인이 평등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굽실거려야하고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뒷목에 힘이 들어가는 먹이사슬같은 귀천체계 공화국 카스트 제도가 자리잡고 말았죠. 우리 민족은 왕한테도 개기던 자존감이 강한 민족이라 누구한테 당하면 꼭 그 분노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누군가에게 갚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탓에 갑을관계가 생기고 또한 사회문제가 되며 직장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는 자기보다 낮은 카스트라고 생각하는 서비스업종에게 풀어내는 보기 안좋은 사회문제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있어요.



우리는 늘 직장상사보다 낮은 등급의 차를 사야만 해요. 우리 회사가 처우가 좋지 않은건 갑의 회사보다 나은 처우나 직원복지를 하면 갑의 회사가 불쾌해하기 때문이죠. 을의 회사가 더 나은 처우를 하고 싶어도 갑의 회사가 그 처우에 미치지 못하면 항상 그보다 낮은 처우를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은 전혀 민주적이지도 자유경제주의적이지도 않은 악습에 지나지 않는데도 아무도 이것을 고치려 들지 않아요. 


임대아파드 사는 주민이 자기 집 앞을 지나가는게 싫어서 바리케이트를 쳐요. 그리고 어떻게든 정말 어렵게 모으고 그 가치를 더 많이 인정받는 돈이라는 물건으로 자신의 카스트를 증명하려 애쓰죠. TV에는 더 좋은 옷, 더 좋은 음식, 더 좋은 집이 늘 부각되고 카스트를 상징하는 지표로서 광고하고 사람들은 어떻게든 가짜로라도 자신의 카스트를 돋보이게 하려 애써요. 자신의 본질적인 성격이나 내적인 아름다움은 고리타분한 선비들이나 하는 얘기로 핀잔을 듣기 일쑤에요.



돈으로 카스트를 과시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목표가 되다보니 그 밖의 가치들은 모두 하대를 당해요. 문화 공연은 그 내용보다 얼마나 제목이나 작품 자체가 돋보이고 역사가 깊느냐가 중요해요. 작품 내용을 하나도 이해를 못하면서도 그 작품을 봤다는 상징 자체에 집착하죠. 해외여행, 자동차, 명품백, 처음 들어가는 직장, 부모들의 직장 .... 지금의 민주주의 사회라 불리는 대한민국은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어요. 민주주의는 내가 주인공이고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사회인데도 말이에요.


이건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부터 직시해야 해요. 다행이 우리나라가 아직 일본보다 나은 점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그 끊임없는 개김성으로 인해 결코 독재나 봉건식 민주주의에 굴복하지 않고 나라가 큰일이 날 때마다 사람들이 힘을 합쳐 나라를 바로세워온 결과 우리 손에는 적어도 투표용지 한 장씩은 아직 골고루 갖고 있게 되었잖아요. 총리대신 하나 스스로 못 뽑는 옆나라가 결국 그 봉건주의로 파국을 맞는 걸 보면 아직 가능성이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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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그 권력으로 무엇을 해야만 할까요? 


다른 건 다 필요없고 이거 하나만 기억하세요



지금에 만족하는 사람은

결코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살 수 없어요.


왕족, 재벌, 현직 정치인, 셀레브레이트, 고액 재산가들...

모두 지금에 만족하고 지금의 카스트를 누리는 데 거리낌이 없어요

이들이 진정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


당신이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표를 던지세요.


만족하지 않는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더라도


단 하나라도 만족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위해 자기 인생을 바칠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표를 던지시는 것


그리고 지금의 민주주의가 뭐가 잘못되었으며

진짜 우리 몸에 맞는 우리 민족이 해왔던 우리들만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늘 생각하고 행동하고 깨달아가는 것...


저는 그것이 민주주의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화국 사회교과서 제 6장-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정말 평등한가요 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3. 10. 7. 14:59

키코사태가 터졌을때 중소기업들은 '약자'임을 내세우고 금융기관이 상품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손실이 발생했다며 대대적인 소송을 걸었으나 최근 패소했다. 하우스 푸어라는 말이 얼마 전부터 뜨기 시작하는데 말 그대로 집을 은행빚까지 내서 비싼 값에 샀는데 집값이 떨어져 금융비용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아파트 역시 팔지를 못하는 '집 가진 가난뱅이'라는 이상한 신조어다. 지난 저축은행 사태 당시에는 예금자보호 한도를 넘어선 5천만원 이상의 예금자들이 '서민을 울린다'는 키워드로 정부의 대대적인 보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번 동양증권 사태에 대한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 물론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도 있을 수도 있고 증권사직원이 설명을 누락했을수도 있다. 필자는 수많은 금융기관의 창구직원을 상대하면서 필자 이상으로 금융상품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즉석에서 전화찬스를 쓰지 않는 한) 직원을 본 적이 없다. 필자가 알면서 물어본 것이 아니라 이미 이러저러한 상품이 이러저러한 약관으로 적용되므로 이러저러하게 신청하겠습니다. 라는 의사표현이었는데 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사례였다. 때문에 금융기관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이들의 주장은 일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지금 뉴스 보도와 여론의 변화 추이는 뭔가 좀 이상하다. 아무튼 동양증권이 잘못했으며 동양증권을 감리관할하는 금융감독원의 책임도 있으니 나라가 물어내라는 식이다. 키코사태, 저축은행 사태, 최근의 하우스 푸어들의 주장들과 일치하다 어쨌든 자기잘못은 아니고 정부가 책임이 있다는 식이다 왜 이런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들의 주장이 정말 정당하기는 하나?



그들이 '설명이 제대로 못들었다' 라는 주장은 '보편적 상식'에 근거한다. 바로 필자처럼 수많은 금융기관의 창구직원을 상대해봤을 때에 비로소 알 수 있는 정보라는 것이다. 즉 알 수 있는 사람은 알 수 있고 그것에 대해서 클레임을 걸 수 있는 요건이 되지만 모르는 사람은 정보력 자체에서 밀린다는 거다. 쉽게 말하면 '설명을 제대로 못들었다' 라고 '금융회사를 고소'할 수 있을 정도의 소양을 가진 정도의 사람이 '해당금융상품의 설명을 제대로 못듣거나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고 투자할 가능성'은 그만큼 낮다는 이야기가 된다.


근데 뉴스에는 이런저런 사례가 나오고 있으니 진짜 금융기관이 설명을 못해서 그럴수도 있겠다 싶을 것이다. 그런데 뉴스를 잘 보면 '통계적' 사실을 말하지 않고 '사례적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양증권의 개인투자자 중 한 명이 실제로 '설명을 못듣고' 혹은 '적금이라고 속여서'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이 있다는 보도와 함께 동양증권의 개인투자자는 5만여명에 이른다는 통계적 사실을 덧붙인다. 언뜻 보면 5만명이 모두 이런 사례를 겪고 있는 걸로 보일 수 있도록 보도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5만명 CP투자자 전원을 '적금'으로 속이고 가입시켰단 말인가? CP에 투자할 의사를 가지고 '증권'사에 방문할 만큼 적극투자성향의 개인투자자 5만명 중 단 한명도 이런 불완전판매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 자체에 대한 클레임이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진정 불완전판매를 했던 일부 투자자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구제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일부를 이용하여 자신들을 피해자 대열에 포함시키려는 투자자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동정의 여지가 없다. 과연 그들이 CP투자까지 하면서 정말 그 위험성에 대해 모르고 투자를 했을까? 정말 5만명에게 모두 불완전 판매만을 했을까? 그리고 그 불완전판매라는 것으로 항의를 할 정도로 금융지식이 빠삭한 사람들이 과연 CP투자의 리스크를 인식하지 못한 막무가내성 투자자라고만 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이 여론을 자극하는 식으로 그들이 진정 개인투자자= 약자 라는 등식을 만들어낼 자격이나 있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질 생각이 이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떼를 쓰고 있다. 이미 각오한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지를 하고 있으니 이들에게는 최악의 사태가 와도 손실을 감수하면 그만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떼를 써 보는 거다. 어차피 져도 손해가 아닌 게임이니까, 여론만 제대로 타면 정부가 어쩌면 약간이라도 보상을 해줄거고 아예 못받는 보상에서 약간이라도 챙기니 그게 어디냐는 식으로 그들은 피해자 코스프레를 남발하고 있다.



진짜 '저축'으로 속아서 투자를 하고 정보가 부족해서 투자 원금을 날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동양증권'부도 자체를 모르고 있어야 맞지 않을까? 어떻게 투자할때는 바보였다면서 동양증권 망할 징조는 귀신같이 알아서 따지고 드는가, 심지어 아직 망하지도 않았다. 동양증권은 아직도 하락장이긴 하지만 상폐되지 않았고 금융감독원의 감사도 아직 진행중에 있다. 이런 정보는 평소에 뉴스라도 보고 적어도 그 어렵다는 뉴스 경제 용어는 척척 알아듣지 못하면 캐치할 수 없는 정보다. 과연 그들이 정말 '저축'으로 속아서 가입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거둘 수가 없다.


물론 동양증권 사태는 그룹 총수 일가의 부도덕하고 방만한 경영이 촉발시켰다. 그러나 투자 손실과 그들의 범법행위는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연결고리가 희박하다. 국가는 총수 일가를 배임으로 처벌할 권리가 있을 뿐 투자 손실이 그들의 행위에 의해 일어났다고 해서 투자 위험성까지 면책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총수는 총수대로 처벌하면 된다. 불완전 판매가 있었다면 '불완전 판매'한 사례만 골라서 처벌하면 그만이다. 그것에 편승해서 '나도 구제하라'는 식의 시위는 제발 좀 그만하자, 언제까지 진짜 피해자를 이용해 내세우며 동냥질을 할 참인가?


안되면 나랏님 탓을 하듯 하면 되는 일이 아니다.


키코때도, 저축은행 사태때도, 하우스 푸어때도 그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재벌이, 정부가 서민을 죽인다' 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서민은 정작 그 판에 낄 힘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집값이 떨어져도 집을 팔 생각을 못하는 사람들이다. 키코는 커녕 가게 임대료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서민이다. 예금자보호 5천만원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바로 당신들이 코스프레하고 있는 서민의 진짜 모습이다.


무거우면 집을 파시오.


하우스 푸어는 '집을 팔면' 된다. 9억 집이 6억이 되었고 9억 빚때문에 이자 감당하기 버겁다면 6억에 집을 팔아서 3억 빚을 갚아나가면 될 일이지 그걸 가지고 9억으로 다시 돌려놓으라며 정부에게 떼를 쓰는 사람들이 과연 약자이고 서민이며 '푸어'일까? 그리고 그들이 정말 정부를 탓할 만큼 어리석었을까? 진짜 어리석고 묵묵하게 정부에게 당하는 사람들은 정부에게 개길 줄조차 모른 채 지금도 묵묵히 세금을 뜯겨가며 노예처럼 살고 있다. 당신들의 서민 운운 코스프레짓하며 한푼이라도 더 챙기려 떼를 쓰는 모습이 역겨운 이유다.



키코, 하우스푸어, 저축은행, 동양증권 사태 모두

뉴스에 나오고 목소리를 내는 자들 중에 진짜 서민은 없다.


다 큰 어른들이면 이제 떼를 그만 쓰고 

자신의 투자 실패를 책임지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posted by RushAm 2013. 6. 25. 16:55

앞서 인터넷 그리고 인간 마지막 편에서는 젊은 극우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린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원인 분석에 치중하고 사회 베이스에 대한 문제 제기를 중점적으로 이끌어내다보니 독자분들이 요즘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이번 글은 어떤 연재글도 아닌 단편으로 일베로 대표되는 젊은 극우들이 왜 그렇게 종북을 외치고 북한을 적대시하는 극우들과 코드를 나누게 되었는지 그들을 움직이게 만든 힘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는지 짤막하게 짚어보고 넘어가보도록 해보죠.



꿀알바



젊은이들은 시작부터 너무 뒤쳐져있습니다. 이 세상은 스타트지점을 저 먼 뒤로 더 밀어내기만 할 뿐 조금이라도 보편적인 스타트지점 앞당기기 정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TV 광고에서 나오는 알바 정보 사이트 광고 타이틀이 '꿀알바'라는 타이틀이 있을 만큼 아르바이트는 이제 더 이상 젊은 시절에 모으는 배낭여행 자금의 목적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생계 그 자체를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띄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말 재미있고 경험이 될 수 있는 아르바이트보다는 몸이 힘들건 뭐하건 그저 시급이 100원이라도 더 많이 주는 곳만을 찾아 혈안이 되어있는 것이죠. 아르바이트 수요는 한정되어있는데 취업 포기자들을 비롯한 아르바이트로 먹고 사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는 공급 팽창이 멎지 않고 있으니 아르바이트 시급은 오를 리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최악의 악순환에 놓여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들을 고용하는 고용주들의 태도는 꽤나 차갑습니다. 아르바이트 생들에게 '젊을때 힘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주자'는 선배 세대의 자비를 기대하기 어려움은 물론이고 오히려 어떻게하면 자신들도 자영업자로서 힘드니까 아르바이트 비용을 더 깎고 더 오래 더 알찌게 부려먹을 까를 고민합니다. 분명 젊은이들에 비해서는 절대 가난하지 않고 분명 아르바이트 비용을 더 준다고 해도 영향이 거의 없을 대기업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지요. 그들은 최저임금을 준수했다는 미명 하에 어떻게든 젊은이들에게 돈이 가지 않도록 옭아맵니다.



그러다보니 젊은이들은 말라버린 강줄기를 보듯 돈줄이 되는 곳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그렇게 거마대학생과 인터넷 댓글에 무수히 달려있는 재택근무 홍보 알바들이 줄을 잇게 되죠.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사실 지금같은 상황 바로 직전에 있었던 이 두 가지 현상은 지금의 극우들이 어떻게 젊은이들을 이용해먹고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거든요.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거마대학생의 다단계방식과 인터넷 댓글로 퍼뜨리는 허위정보로 인한 재택알바를 합쳐놓은 것이 지금의 극우들이 취하고 있는 젊은 극우 만들기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의 결말은 결국 댓글알바를 고용하고 고용된 사람이 다시 하청고용하는 극악의 갑을관계구조였다는 것이 드러났고요. 그들은 그런 댓글을 달기 위해 극우들의 정치사상을 반드시 숙지해야 합니다. 마치 취업과 인턴쉽에 합격하기 위해 토익을 배우는데 익숙해져있던 그들이 언제나처럼 그래왔듯이 살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그렇게 배우고 댓글을 달고 많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새로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또 돈을 받아왔던 것입니다. 극우는 그렇게 목마른 자들에게 냉수 한잔을 주듯 아무도 열지 않았던 꼰대들의 지갑 중 유일하게 극우만이 젊은이들에게 돈줄을 열어주었고 꿀알바라는 이름 하에 젊은이들을 고용했으며 젊은이들은 목말라 죽어가는 자신에게 얼음물 한 잔을 제공한 극우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탓이 아냐!




극우의 사상은 매우 간단합니다. 변희재가 말하는 것을 잘 들어보면 그 속에 생각보다 쉬운 답이 있거든요. 결국 극우의 생각은 대한민국 헌법이 이북 5도를 우리나라 영토로 규정하고 있고 그 곳에 새로운 정부랍시고 또아리를 틀고 있는 3대 세습중인 김정은 일가는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헌법에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원래 우리 것이여야 했던 것을 빼앗은 그들은 나쁜새끼들이며 당연히 터부시해야 마땅하다는 거죠. 



즉 통일 자체에 대한 열망은 오히려 극우들이 더 많이 갖고 있습니다. 통일의 방식이 원래 우리 땅이었기 때문에라는 명분이 분명히 서 있다는 점이 약간의 차별성을 두고 있는 것이죠.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원래 한반도 전체였는데 3대 세습중인 김정은 일가가 불법 점유하며 대한민국 정부에 반란을 일으켰고 이것에 6.25라는 내전으로 발전했으며 미국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이 반란은 휴전으로 마무리되어 지금까지 대치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한국전쟁 내용에 대한 정리입니다.


이 코드는 단순하게 말하면


'우리 것을 빼앗은 새끼들이 나쁜거다'

'그건 원래 우리 거였다' 

'그것만 있으면 우린 이러고 살지 않는다' 


등의 키워드로 함축됩니다. 물론 이 내용들은 익히 들어보신 대로 매우 파시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농후합니다. 결국 저기에 반드시 '북한'만 대입을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저 본질적 사상에서 북한이 빠진 상태에서 사회에 대한 염세주의를 바탕으로 재구성되게 되면 문제가 복잡해지거든요.





우리 것을 빼앗은 새끼들이 나쁜거다... 결국 일베에서 지금 가장 핫한 이슈가 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베타적 여론 형성도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원래는 남성들이 사회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성들이 사회적 권리를 주장하며 사회의 절반을 치고 나왔다 근데 아무리 객관적으로 봐도 그여자들은 직장에서 일도 안하고 수다만 떨며 남자 등처먹고 칼퇴근만 하는데데 생리휴가는 꼭 월요일 금요일에만 붙어서 생기고... 등등등 뭔가 모르게 원래 우리가 누렸어야 할 것들을 빼앗고 들어오는 모양새거든요. 당연히 그들은 나쁜놈들이고 당연히 우리 것이었기 때문에 되찾는 것이 응당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성들의 모든 행동을 혐오하며 그들이 사회활동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도록 하는 여론을 지속적으로 형성합니다. 빼앗긴 우리 것을 되찾기 위해서요. 



외국인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저들이 들어와서 취업난이 심각해졌고 절대 일자리 갯수가 줄어들었다 그건 원래 우리 민족이 일군 경제 바탕위에 우리 민족만이 자연스럽게 세습받고 누려야 할 가치인데 이 나라를 세우는 데 한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은 외국인 새끼들이 와서 원래 우리 것에 지나지 않았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취직이 되지 못하고 이러고 있는 것이다. 라는 불만대입과 함께 자연스럽게 다문화 정책 반대 여론이 생기게 됩니다. 이 역시 그들이 와서 우리 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한다는 식의 '팩트'를 제시하며 파이를 키워나가게 되죠.



원래 내 것이었는데 ...



종북 문제야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친일파 DNA


일본의 극우와 우리나라의 극우가 많이 비교되는 분석을 가끔 보게 됩니다. 아마 하는 짓이 똑같아서 그렇겠지요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키워드가 일치합니다. 북한에 대한 타도적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탄압도 마찬가지거든요. 여성에 대한 혐오는 약간의 온도차가 있지만 그건 아무래도 사회적인 여성 지위 문제와 민족적 특성에 기인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본 극우들이 주장하는 키워드들은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을까요? 일본 역시 젊은 극우들을 키워내고 있고 이 극우들을 키워내는 밑바탕에는 젊은이들의 스타트지점이 기성세대들과 심각한 격차를 드러낸다는 점에 있습니다. 일본의 꼰대들은 그나마 한국의 꼰대들보다는 조금 낫지만 여전히 젊은이들을 이 나라의 미래로 챙겨주기보다는 그저 캐시카우로밖에 보지 않는 저자세를 취한다는 점도 한국 사회의 현실과 무섭도록 닮아있죠.



일본인들의 주적은 '재일 한국인'입니다. 그리고 혐한류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에 대한 베타적 태도에 기인하죠. 그들은 극우에 한정에서는 우리나라를 북한과 거의 동급으로 혐오합니다. 이런 배경이 어떻게 일본 젊은이들에게 먹혔는지 살펴보면 재미있는데요. 결국 그들 역시 이 나라의 극우들처럼 '원래 우리 것' 이었고 '그것을 빼앗은 놈들은 나쁜 놈들'이며 '그것만 있으면 우린 이러고 살지 않는다'라는 동일한 베이스를 깔고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 사회에서 자이니치는 우리나라에서의 종북 빨갱이나 다를바가 없는 취급을 받는다


그들에게 있어 한반도는 원래 '지들 것'이었습니다. 왜냐 '식민지'였고 100년 전만 해도 일본 영토였다는거죠. 그런데 우리나라가 '반란'을 일으켜서 '불법 점거'를 하고 있는거고 말이죠. 그뿐만 아니라 그 당시 넘어왔던 재일한국인들은 어땠냐 일본 굴지의 광고회사 덴쯔, 일본 제과업계의 슈퍼갑 '롯데'의 신격호, 일본 최고의 돈줄이자 지금은 이동통신업계까지 씹어먹고 있는 손정의까지 일본 산업 핵심 곳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어지간히 잘 한다 싶은 스포스 스타들은 얼마 못가 재일교포라는 커밍아웃으로 일본 국민들의 뒷통수를 후려갈기기 일쑤였던 것입니다. 원래 일본인들이 경영했어야 할 기업이었고 일본인이었어야 할 스포츠 스타 자리를 그들이 빼앗아서 지금 일본의 젊은이들이 패배자로 살 수 밖에 없다라는 것이 일본 극우들의 젊은 층 선동 방식이죠.


일본 관광객들은 우리나라를 예전 일본의 영토였다는 의미에서 방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국내선 항공료보다 더 저렴하게 한일 노선이 펼쳐져 있다. 말 그대로 공기수송에 지나지 않는 아키타 노선같은 곳들도 꾸준히 운항하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원래 '지들 영토'였다는 논리이므로 국내선 운항하듯 의무적으로 운항해야 한다는 논리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원래 지들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게 그들 입장에서는 이상할 게 없을 독도


그냥 닮은 것이 아니라 뼛속까지 닮아있군요. 원래 우리 것이었으니 그곳에 불법으로 정부를 세우고 점거하고 있는 새끼들은 나쁜 새끼들이며 그것만 있으면 우린 이러고 살지 않는다는 논리를 현 사회에 공유하고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에게 이를 이용하여 다른 쪽에 책임을 두고 그들을 공격하라고 시키는 형태까지 모든 것이 닮아있습니다. 이건 마치 극우의 본질적 바탕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들의 논리 그대로라면 일본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지 않으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우린 원래 우리 땅이었던 북한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을 정당화할수 있다면 일본 역시 독도는 고사하고 한반도 전체가 원래 지들 땅이었으니 당연히 지들 거라는 주장을 해도 반박할 거리가 없어지게 되겠죠? 


친일파의 후손들인 지금의 극우들은 자신들이 늙어가며 자신들의 사상을 이어줄 젊은이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이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그들의 사정과 극우 사상의 본질적 키워드를 절묘하게 배합하여 그들에게 먹였고 굶주린 젊은이들은 돈을 주면 뭐든 한다는 자세로 그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현실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이죠.


...





이러다가 나라 팔리겠습니다. 그려...

posted by RushAm 2013. 5. 9. 12:01

남양유업 전화 녹취록이 요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남양유업 영업팀장이 상당히 심한 수준의 욕설로 대리점 점주를 깔아뭉개는 대화내용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다음은 해당 사건에 대한 남양유업측의 사과문 전문입니다.


...


이 두 가지 자료를 두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은 저 '영업팀장'이라는 사람의 인성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미친놈임에는 확실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일을 저질렀을까요? 사람이 저 정도로 욕하면서 핏대올리고 협박하기도 상당히 쉬운 일은 아닐텐데 말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어떤 댓가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잃을 수 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었던지요. 사실 생각해보면 이 두 가지가 아닌 이상 사람이 그 정도로 정성껏(?) 욕설을 할 수 있을 리 없잖아요.


...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라고 합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해서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합리에 대한 풍자가 공감대를 얻으며 카타르시르를 주고 있다고 하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비호감 캐릭터로 꼽고 있는 '장규직'은 회사를 위해서 자신을 버리고 뭐든 회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는 캐릭터로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상사에게는 딸랑거리지만 부하직원들은 조금도 존중해주지 않는 전형적인 자기중심적 캐릭터, 이런 인물들은 실제로도 많은 미움을 사고 있는데요. 그런데...




사회에서는 그를 더 많은 연봉과 더 높은 지위로 대우해줍니다.


...


같은 드라마에서 나오는 무정한과는 다르게 왜 장규직은 상사에게만 충성하고 아랫사람을 깔아뭉개는 사람이 되었을지는 분명하죠?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처럼 이미 연봉과 더 높은 지위로 대우를 받기 위해서 사람들은 윗 사람들에게 충성합니다. 그것이 진심이든 진심이 아니든, 아랫사람들에게 어떤 욕을 먹든지 말이죠. 


그럼 이들은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여러분은 장규직과 무정한 중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그리고 어떤 사람처럼 안 될 자신이 있으신가요?




지금은 연재가 중단된 어떤 일간 만화에 나온 소재입니다.


신입사원때 도가 지나친 야근과 과도한 강제 음주 회식 등으로 상사에게 시달리던 신입사원이

10년 후 그 상사의 위치에 들어가니까 똑같은 방법으로 신입사원들을 대하고 있더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겐 고 을 로 운 가 될 고'

'내 겐 록 는 이 될 야'


...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여러분들은 이렇게 안 될 자신이 있나요?




의외로 답은 되게 간단합니다.

부하직원은 나한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잘 해줘봐야 뭐 하나 나한테 남는 게 없어요.

그러나 상사에게 잘 보이고 잘 해드리면 확실하게 내 수중에 남는 게 생깁니다. 


잘 해줬을 때 보답해주는 건 부하직원이 아니라 상사라는 겁니다. 이 사회는...


...


근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가 언제부터인가 '잘 해주는 것', '잘 대해주는 것'에 모두 댓가를 바라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아무 댓가도 바라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이야기는 애들 장난같은 얘기가 됐고

투표 때 이 나라를 위한 사람을 뽑는 사람은 내 집값을 올려줄 댓가를 바라고 뽑는 사람에게 바보취급을 당합니다.



돈과 인생을 구분짓지 못하고

인생을 돈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행동을 모두 재화가치와 맞바꾸는데에만 열심히인 사람들이 있는 한 


여러분들의 취업 후 삶은 괴롭기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살던 사람들은 결국 돈에 배신당하거든요.

허무맹랑한 소리같지만 지금 남양유업 영업팀장이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행동에 댓가를 바라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자들을 무시하며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에게만 아부했던 사람들은


미움받아도 자신이 돈만 많이 벌면 잃어버렸던 인생이 모두 만회될거라고 믿었겠지만

결국 이렇게 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원래대로 돌아오게 되어있어요.

사람은 원래 그런게 아니거든요.





특별기획 취업을 읽는 취업준비생분들이나 이미 취업을 하셨던 분들

당신의 모든 인생을 댓가성으로 만들지 마세요.


필요없는 사람들이겠죠. 돈도 안되고 도움도 안되요. 힘도 없죠.

부하직원, 하청업체 사원들 ...


필요할거에요. 당신의 승진과 연봉상승을 위해서

직장직속상사, 사장님, 갑회사 직원들...


근데 진짜 장담하는데요.

그렇게 돈을 열심히 모아도 돈으로 못사는게 분명 있어요. 진짜 

그건 되돌린다고 해도 되돌려지지도 않아요. 정말...


댓가를 바라기만 하고 살아온 인생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라고 해서

당신마저 그렇게 되지 마세요.



인간은 원래 안 그래요. 

아무리 사회가 인간적이지 않아도 

인간이 원래 안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사회가 사필귀정으로 회귀할수밖에 없어요.


남양유업 사태를 보시면 알잖아요.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그 팀장의 행동이 정당했다고 말하는 사람 

남양유업 사람 빼고는 거의 없잖아요.





알아요. 당신이 특별히 어마어마한 부귀영화를 누리려는게 아니라는거

단지 평범하게 살기에도 그런 인격포기를 요구하는 미친 인플레 사회가 되고 있다는거 알아요.


그래서 변해보자는 거에요.

인플레라는건 공급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거니까,

결국 이 나라에서 우리의 인격이 저렴한 취급을 받게 된 건 

인격을 팔아서라도 돈을 벌겠다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져서 그런거거든요.


우리가 도둑질을 하면서 돈을 벌고싶지 않다는 저항감이 있는것처럼

인생의 모든 것에 대가성을 바라는데에도 

남의 것을 아무런 대가성 없이 함부로 하는데에도

어느 정도의 저항심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진짜 댓가를 바래야 할 곳에는 확실한 댓가를 요구하셔야 해요

댓가를 바라지 말아야 할 곳에서는 인간으로 살 수 있어야 하고요.


그뿐이에요. 

물론 안하셔도 되요


세상은 다들 지금 그 반대로 살고 있잖아요.




단지 조금만 변하기를 바래요

그리고 변하지 마세요.







특별기획 '취업'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3. 5. 4. 23:12

H사는 참 독특한 회사입니다.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계열사가 정말 거의 없다시피 한 대기업이다보니 규모에서만큼은 L사에 결코 뒤지지 않음에도 존재감이 L사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H사는 하나의 그룹에서 각 사업부별로 갈기갈기 찢어진 다음에도 그 각 계열사가 초반의 어려움을 딛고 각자의 분야에서 또다시 굴지의 대기업으로 모두 성장하고 있는 희안한 기업이기도 하죠. 그래서일까요? H사는 소비자와 직접 맞닿아있는 자동차그룹의 완성차계열을 제외하고는 대기업치고 굵직한 스캔들이 적은 축에 속합니다.


그렇게 찢어진 세 개의 그룹은 각자 분야에서 시가총액 상위권을 휩쓸고 있는데요. 이들이 독립해서 모두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증거 중 하나는 대기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금산분리법 속 '금융' 계열사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금융 계열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S사의 보험사와 마찬가지로 원활한 자금운용과 슈퍼갑으로서 대규모 투자자금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지위적 우위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침인데요. 공교롭게도 세 그룹 모두 어느 정도 무르익을 시기에 모두 '증권'사 혹은 '카드, 캐피탈' 을 갖추면서 대기업으로서 자금을 이용한 전형적인 대한민국 대기업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이런 특이한 기업 형태가 굉장히 생소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모르고 있던 부분이라면 특히 주의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죠.


본사 계열





자동차 그룹 계열 (이상 2사)



중공업 그룹 계열


H사는 노사분규에 있어서도 제법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H사 자동차 계열의 경우 매번 노사 협상 그 자체가 뉴스화가 되고 있으며 이른바 '귀족노조'라 일컬어질 만큼 노사 협상의 최정상에 서 있습니다. 그만큼 노사 협상에 있어 사측을 압도할 수 있을 만큼 유연한 노사정책을 쓰고 있다는 것이죠. H사는 단순히 노사 협상에서의 유연함에서만 그치기보다 오히려 새로운 근로자 복지 정책이 정부 정책으로 발표되면 가장 먼저 앞장서서 이를 도입하고 사업장에 적용시켜 나가는 데 매우 솔선수범하는 기업 이미지를 보이고 있죠.




철저하게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것을 배제하는 대신 H사는 기업간의 B2B와 정부지원사업 참여에 열을 올립니다. 주력사업은 완성차 분야이지만 자동차그룹의 경우 철강,건설,부품,금융 그리고 중공업그룹의 조선, 정유, 종합상사 그리고 좀 햇갈리게도 본사 종가라고 할 수 있는 H그룹의 경우 북한 관련 관광 개발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습니다. 완성차 계열은 반도체 수출과 더불어 우리나라 수출의 하나의 기준이자 척도가 되고 있는 계열이며 중공업의 경우 최근 전국에 깔리고 있는 철도, 고속도로 광역교통망에서 4대강 사업 전반까지 우리나라 지방 고용의 대부분을 소화하고 있는 실정이며, H그룹의 상선과 아산 계열은 북한과의 화애 교류 무드를 만드는 등 오히려 S사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이 나라는 더 냉정히 말하자면 H사 공화국이 맞지 않나 싶을 만큼 H사는 3개 그룹과 그 계열사 모두 이 나라 깊숙한 곳에 뿌리를 박아놓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민자고속도로를 다 점하고 있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전동차를 독점 생산중


그래서 H사는 내수에 관련된 사업부가 거의 없음에도 국민 여론에 대단히 민감합니다. 완성차사업부는 어쩔 수 없이 내수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사업 구조를 가지고 있어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만, 그 외의 사업부의 기업 이미지 광고는 매우 노골적으로 이 나라는 'H사'없으면 망합니다. 우리는 좋은 기업입니다. 라는 점을 대놓고 말하기도 합니다. 내수와 맞닿지 않음에도 이렇게 이미지 광고에 돈을 많이 쓰는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죠.





S사가 꿈꾸는 것이 S공화국이라고 일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S가 제국주의적인 기업국가를 꿈꾸고 있다면 H사는 노사관계의 특수성인지 노조의 단결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기업 그 자체의 도시국가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S사의 그것과 다른 점은 이 유사국가조직은 철저하게 기업이 의도적으로 조직된 것이 아닌 다수의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네트워크라는 사실인데요. H사의 창업주 J씨때부터 이어진 노사관계의 원만함이 결부되면서 그들의 조직력은 매우 단단하고 친화적이라는 것이 업계 내외의 정설입니다.


국내 등록된 축구팀 중 H사내 조직된 축구 클럽이 절반 이상에 육박한다.


이렇듯 국가적으로도 매우 큰 도움이 되고 있고 노사 관계도 원만하며 타 대기업에 비해 노사문제라든지 근로자들의 복지, 근로조건 등에 상대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H사는 그 자체만으로 타에 모범이 될 만한 기업일 것입니다. 그러나 H사가 왜 이렇게 재벌로서 사회 환원과 국가 정책에 솔선수범하여 법을 준수하는 모습을 애써 강조하고 대외적으로 좋은 기업의 이미지를 쌓기 위해 노력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따를 수 밖에 없는데요. S사는 자신만의 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국가와 대립각을 세우고 국가의 모든 부분을 무시하며 자신들이 국가 위에 있다는 치외법권식 기업문화를 추구해서 빈축을 샀다면 오히려 H사는 국가의 모든 부분을 너무 존중했기 때문에 국가가 직 간접적으로 H사에 대한 채무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악용한다는 것이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대한민국 정부는 한미 FTA나 중국과의 무역교류에 있어서도 H사의 자동차사업부의 해외 판매 가능 여부를 최우선으로 두고 협상에 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언제나 FTA 타결은 자동차 관세 철폐가 최고의 화두이며 이를 위해 우리나라의 전통 중소기업들의 제조업, 농산물 등의 관세를 희생시켜 우리나라의 식량 주권을 지키고 있는 농부들의 가슴을 피멍투성이로 만드는데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정부는 언제나 H사의 자동차 사업부의 수출이 잘 이루어지면 결과적으로 얼마만큼 국민들에게 낙수 효과로서 경제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역설하곤 하지만 H사는 그러한 국민의 희생을 내수 호구 정책으로 되갚아 오면서 H사가 진정 국가를 위한 기업이 될 생각이 있는지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죠. 더 큰 문제는 H사에 대한 정부가 가진 일종의 부채의식과 경제 의존도가 너무 크다보니 H사의 이익이 결과적으로 경상수지 수치에 크게 영향을 끼쳐버리게 되는, 다시말해 자신들의 정권 경제 성적표를 명목상으로나마 흑자로 돌리기 위해 국민의 권익을 빼앗아 특정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꼴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완성차 사업부 뿐만이 아닙니다. 물론 H사 출신의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영향도 있다고는 합니다만 이 나라가 진행한 4대강 사업과 정권안에 벌어진 수많은 민자 도로, 철도, 항만, 제철 사업에서 H 중공업 그룹은 가장 많은 수혜를 받으며 거의 대부분의 사업을 여론화시키지 않은 채로 반 독점적 지위를 행사할 만큼의 이득을 얻기도 했으며 이전 정권의 대북 사업에서는 H 본사 그룹을 통한 금강산 관광 등 다른 기업의 공정경쟁이 가능한 자본주의 나라라는 사실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정부는 정권을 막론하고 H사에게 일감 몰아주기와 일방적 이익을 대변해주는 정책을 남발해오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H사의 업계 최고수준의 연봉과 복지 수준 때문에 H사 입사를 한번쯤은 고려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H사는 고용 자체도 적을 뿐더러 조직 자체에 있어서도 새로운 신입 사원이 조직의 요직에 오르기 매우 까다로운 편에 속합니다. 심지어는 아예 새로운 인원을 받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조직 문화를 대놓고 드러내기도 하는데요. 이런 문제는 바로 국내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H사 노조가 지금까지 자신들이 이룩해놓은 대우에 대한 '보상심리'가 지나치게 발현된 결과 자신들의 찾은 사내 노동 권리를 자신들만의 것으로 사유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인줄 알아요.jpg


물론 다른 회사 노조들에 비해 정말 많은 희생과 선구자적인 노력이 있었고 그 노력으로 인해 지금 노동 환경 개선의 선두주자적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만, 그로 인해 얻어진 것이 온전히 자신들만의 것이라고 믿고 그 권리를 전혀 피를 흘리지 않은 생판 남에게 넘기고 싶지 않다는 족벌적 세습과, 조직 내에서만 이득을 공유하려는 폐쇄적 조직 운용 등은 노조라 할지라도 그 권리가 더해지면 결국 대기업보다 더 한 수준의 이기적 조직 문화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만도 못한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만일 H사에 입사하여 온전히 녹아들기 위해서는 자기만 아는 이기적 조직 문화와 당연한 듯이 이 나라의 젖줄을 빨아먹고 성장해야만 하는 기업, 그리고 그러한 태도의 정부 정책을 지지하고 옹호해야 하는 이념적 숙제가 남게 될 것입니다. 만일 이 세 가지를 모두 동의한다고 할 지라도 쉬운 길은 아닐 테지요. H사 자체든 그 회사를 다니는 노조든지 간에 지금의 H사 그리고 H사에서 누리고 있는 국내 최고의 근무 환경은 모두 자신들이 스스로 이룩한 지분 100%의 보상받아야 마땅할 권리금이라 어기는 사람들 속에 당신은 철저한 이방인이자 그들이 이룩한 권리에 합승하려 하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뚫고 들어가기도 어렵고 들어가서도 살아남기 쉽지 않습니다. 대우가 좋은 곳은 누구나 노리고 있고 그 자리가 좋은 자리라면 있는 사람이 가능한 더 오래 앉아있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요. 이러한 조직에서 내가 아무리 잘 한다고 한들 업무 성과에 따른 승진이나 인사고과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과연 조직 내에서 그러한 행동이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내 능력을 인정하고 회사를 위해 나를 위로 올려주는 상사가 과연 그런 조직 내에 존재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그런 조직 환경에서 버텨낼 확율은 얼마나 될까요?



그들이 제시하는 고연봉은 어쩌면 이 나라에 저지르는 짓거리에 대한 면죄부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떡밥일지도 모릅니다.

...


건투를 빌겠습니다.



특별기획 '취업' - 기업 생태연구 보고서 : H사형 기업 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3. 4. 11. 23:53

어느 정도 문고리 좀 식었죠? 상대가 소녀시대이다보니 쩝...


가능하면 아티스트라고 불러주셨으면 좋겠어요. / 하지만 저는 저를 아이돌이나 아티스트 어느 한 쪽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 아이돌이랑 아티스트는 다르다고 생각하니까


소녀시대가 일본 방송에서 자신들을 이제 아이돌이 아닌 아티스트로 바라바주길 원한다는 발언을 해서 한동안 화제를 낳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발언 취지는 지금 네티즌들이 오해하고 있는 그런 투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소녀시대를 비난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 우리가 아티스트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개념 정립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소식을 맞닥뜨렸을 때에 일어나는 파급력이 불과 10년 전 문희준의 발언 당시와 비교해볼때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에 경악했기 때문에 쓰게 된 글입니다.


자 우선 아티스트란 무엇일까요?


소녀시대 논란에 즈음하여 소녀시대가 아티스트다, 혹은 아티스트가 아니다라는 논쟁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키워드를 몇 가지 살펴보았습니다. 아티스트는 'art+ist' 로 만들어지는 단어인데, 한마디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대명제가 갈리는 것은 여기에서 말하는 '아트'가 과연 '창작'이나 '기술'이냐에 대한 부분으로 소녀시대 아티스트론의 찬반을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핵심 논점이었는데요.


창작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예술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하며 작곡가, 화가, 안무가 등 어떤 작품을 무에서 유로 창조하는 것을 말합니다. '표현'은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안무나 노래, 기타 다른 수단을 통해 표현하는 것을 말하죠. 소녀시대 아티스트론자들은 '피아니스트'나 '김연아', '강수진'의 예를 들며 표현도 충분히 예술의 범위에 들어가기때문에 단순히 만들어진 것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아티스트라 불리울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반면 창작론자들은 보다 원초적으로 아티스트들이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 '감각'이 표현이든 창작이든 녹아있어야 한다는 점을 내세웁니다. 따라서 만들어진 것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재현하기에만 급급한 소녀시대가 아티스트라 불리기 어렵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데요.


양비론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려 죄송합니다만, 

어느 쪽도 아티스트 논쟁에 별로 접근한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티스트는 단지 창작이나 표현 어느 한 쪽만 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며 그 것이 두 가지 수단으로 표현되지만 결국 전해지는 것은 한 가지로 취합되는 것이 예술이니까요. 설명 웃기지 않습니까? 그만큼 이 단어가 이상한 단어라는 이야기입니다. 아티스트는 직업이 아니에요. 그냥 대명제이고 칭찬의 단어일 뿐인거지요. 여러분이 제가 말한 아티스트 설명에서 들은 난잡함이 이 단어에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뭐 하나 정의되지 않는, 또한 그것이 예술이라고 말하는 앞뒤 안맞는 프랑스인의 감성이 묻어나있죠.


우선 김연아는 아티스트가 아닙니다. 강수진도 직업이 '아티스트'가 아니에요. 피아니스트도 직업은 '피아니스트'이지 그들을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김연아 해외 중계를 잘 들어보면 이런 말이 가끔 들리긴 합니다 '오오~ 정말 예술적 (artistic)이네요', 강수진의 발레도 이런 찬사를 들은 적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나 첼리스트들 역시 '예술적'이라는 찬사를 들은 적이 많다는 것이죠.


이분은 연습이랑 실전이 똑같군요 발전이 없네


위에 예를 든 3개 직업군의 모든 사람들은 '창작'을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저런 찬사를 듣죠.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그들을 '아티스트'라고 공식적으로 지칭하는 걸 들은 적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예술의 경지에 오르다'는 찬사는 받았지만 그들을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고 지칭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냥 피겨 스케이터이며 발레이나이고 피아니스트와 첼리스트일 뿐입니다. 아티스트는 직업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주목할만한 부분은 예를 들은 사람들 모두 '스스로'를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라든지 '아티스트'라 불러달라는 식의 인터뷰를 하거나 공식석상에서 그와 같은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티스트라는 단어 자체의 무게감이 엄청나게 숭고하다거나 한 것 같지도 않은 것 같은데 말이죠. 아티스트라는 말은 오히려 프랑스처럼 구분없이 매사 모든 게 예술로 치완되는 사람들을 비웃기 위한 단어라는 설까지 있을 정도이니 자칭하는 것이 어법상 얼마나 어색한지 스스로 잘 아는 사람들의 손쉬운 대처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소녀시대가 스스로 작곡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안무를 하는 데에 있어 위키백과에서 나온 아티스트의 정의대로 어느 수준 이상의 숙련이 되어 있어 일본 아이돌들의 유치찬란한 안무와는 비교당하기 싫다는 취지로 말했을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과 아티스트랑은 크게 상관이 없으며 차라리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면 아티스트라는 표현은 자충수를 둔 감이 있는데요. 대중들이 아티스트에 대한 본질적 지식을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 정도로 반감을 갖게 된다는 것은 그 단어가 가진 시건방짐 여부와는 별로 관계가 없을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족을 달 시간이군요.


자 그럼 작곡가 유영진은 아티스트인가요? 아니요 '작곡가'입니다. 어느 수준을 넘어섰다고요 어휴 그럼 '아주 뛰어난 작곡가'인 거죠. 소녀시대는 아티스트인가요? 아니요 '댄스 보컬 그룹'입니다. 군무도 아주 칼같고 노래도 잘한다고요? 그럼 '아주 뛰어난 댄스 보컬 그룹'인 거죠. 


지금 제가 그들을 폄하하는 것 같으신가요?

아니요 오히려 제가 보기엔 그들이 그들 스스로 자신들을 '아티스트'라 불러달라고 하는 게

스스로를 폄하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데요.


왜 자신들이 기껏 '특정 분야'에서 '숙련되어서' 정점에 이른 것을 평가해주길 바라면서

표현 자체는 뭉뚱그려서 '예술하는 사람'으로 평범하게 마무리지으려 드는 건지 안타까워서 그렇습니다.


왜 꼭 그 분야 최고가 되면 '클레스 체인지'를 하고 싶어하는 걸까요?

성장해서 정상에 오른 그 분야를 지칭하는 것이 부끄러운걸까요? 딴따라라고 놀릴까봐?


소개합니다! 세계 최강 '여성 댄스 보컬 아이돌'그룹 스파이스 걸스입니다.


제가 박지성이나 김연아라면 말이죠.

저는 '스포츠맨' 입니다. 라고 소개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세계 최고의 구단에서 뛰는 축구 선수'입니다. 라던지

저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피겨 스케이터'입니다 라던지...있잖아요


...


자신이 있는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그 분야 자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자신들을 인정해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최고의 아이돌이 '나는 아이돌이라고 불리는게 싫다'라니...이게 무슨



posted by RushAm 2013. 4. 10. 23:49

아름다운 동업으로 대표되던 기업에서 분사 후 제 갈길을 가는 와중에도 별로 쳐지지 않고 굳건히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고 있는 L사에 대한 이미지는 S사에 대한 경쟁심리 때문인지 언제나 2인자의 이미지가 팽배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L사를 단지 회사의 규모나 S사에 비교할만한 대상 기업만으로 치부하기에는 L사가 가진 개성이 너무나도 많기에 구직을 준비하는 분들이 L사나 L사의 기업 마인드를 모방하는 기업에 입사하는 분들이 단순 이분법만으로 입사를 결정하는 것은 조금 위험합니다. 개성이 강한 만큼 인재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운영 방침도 꽤 재미있는 편이거든요.





엔지니어들의 천국


S사와 자주 비교되는 L사의 이미지는 겹치는 사업 분야가 많다는 점 이외에도 L사가 가지고 있는 S사에 대한 피해의식이 상당히 강하게 곳곳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대표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은 단지 2인자의 컴플랙스 같은 게 아니라 뭔가 좀 억울해하는 모습이라고 해야 어울리는데요. 왜냐하면 L사는 계열사의 90%이상이 이공계 엔지니어들만을 위한 사업들을 주력으로 하고 있을 만큼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자부심이란 이들이 '기술력'이 당장 세계를 재패할 만큼 뛰어나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엔지니어로서 남의 손을 빌리거나 기술적 꼼수를 부리는 것을 매우 꺼린다는 부분을 시사합니다.


L사의 대표 계열사를 생각나는 대로 살펴보죠.


화학

전자

생활건강

생명과학

이동통신

반도체


...


물론 그밖에도 계열사는 제법 됩니다만 아무도 이들 이외의 계열사를 L사를 대표하는 계열사 중 한 곳으로 꼽지 않습니다. 물론 S사도 기술산업쪽 계열사를 주력하고 있지만 S사가 자금줄로 활용하고 있는 생활 속 밀접한 관계 '보험회사'가 현 시점에서 그룹 내에 없다는 점이나 무역 마케팅을 주력으로 하는 계열사가 없다는 점을 비추어볼때 L사는 적어도 엔지니어들에게 있어서는 무척 좋은 대우를 기대할 수 있는 그룹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실제로도 S사와 견주어볼때 당장의 임금적인 측면에서는 차이를 보이기 힘들지만 실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구 환경이나 업무 압박 강도 측면에서 훨씬 자유롭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자유로운 환경은 그만큼 독창적인 기술력을 많이 보유하게 되고 그 기술력은 고스란히 기술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때문에 그들은 S사가 부족한 기술력을 마케팅으로 매우는 것에 매우 염증을 느끼기도 하죠. 이러한 열등감은 기술력에 대한 독자적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것으로 오히려 시장이 악화가 양화를 밀어내는 형국을 매우 억울해하는 모습에서 나오는 열등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S사가 디자인 표절로 홍역을 치룰 만큼 아이폰에 급하게 대응하느라 분주할 무렵 L사는 비록 초창기 제품에서 수많은 욕을 먹으며 시행착오를 겪을 지언정 컨셉을 따오거나 비윤리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걸었습니다. 결국 아직 판매량이나 마케팅에서 뒤지고 있지만 제품에 대한 품질을 인정받을 수준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L사 엔지니어들의 우직함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만큼 경영이나 마케팅 등 실제 '만들어진 물건을 팔아야 하는' 부서나 계열사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박한 대우를 받는 그룹 내 분위기가 없지 않다는 전언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무래도 이쪽 업무에 출중한 인재가 L사를 선택할 확율이 적고 이는 고스란히 L사의 마케팅 능력 부재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L사의 경영, 마케팅 인재 부족으로 인한 소양 결핍은 단지 판매 실적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데요. 아무래도 엔지니어들의 대우가 다른 쪽 계열 대우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보니 내부 승진 역시 엔지니어 실무진쪽이 월등히 빠르고 그렇다는 것은 결국 실무적인 부분 이외에 경영 마케팅쪽의 결정권자 역시 경영 마케팅 전문 실무진이 아닌 엔지니어 출신 인재들이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이같은 흐름은 아주 뿌리깊은 부분에서부터 문제를 야기하기 시작하는데요. 바로 업계 내에서는 물론 일반 소비자들도 이미 체감하고 있는 '1차원'마케팅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짓을 하게 만드는 대기업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후진적이죠.


L사는 그 회사 규모에 걸맞지 않게 사원들을 '영업사원화'시키는 작업을 꽤 오랜 기간동안 지속해오기로 유명한데요. 이를 테면 전혀 관계없는 계열사인 화학쪽 계열사에게 이동통신 계열사의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회선 10여개 가량의 판매를 맡기고 주변 지인들에게 이를 팔게끔 하는 대기업답지 않는 네트워크 마케팅을 지금 현 시점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이는 똑같이 엔지니어 중심의 간부 체계로 운영중인 대표적인 통신회사 K사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런 마케팅 방식은 같은 경쟁사인 S사나 기타 대기업들에서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수준에서 그치는 매우 초보적이고 구태적인 마케팅 방식인데요. 심지어 임직원은 물론 협력업체들까지 전개하기도 하는데, 이같은 행태가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그로 인해서 잃을 수도 있는 회사 외적 이미지를 고려할 경험이나 지적 여유가 부족한 엔지니어 중심의 조직 체계가 불러오는 참사일수밖에 없는 것이죠.


계열사별로 실적과 목표까지 할당합니다. 물론 이 할당이 채워지지 않으면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죠. 이에 부담을 느낀 임직원들은 대부분 하청업체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문화까지 이미 정착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밑바탕에서 좋은 마케팅이 나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L사는 비단 이런 부분이 아니더라도 광고나 홍보 마케팅 측면에서 대기업답지 않은 많은 약점을 노출하고 있는데요. 가진 기술력에 비해 엔드 유저들이 피부에 와닿을 만큼 강력함이 없는 밋밋한 마케팅 능력은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면 L사가 그만큼 이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거나 혹은 노력에 비해 결정권자의 무능함으로 인해 나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반증이겠지요. 어떤 결과로든 L사의 기술력 대비 경영 마케팅 능력은 매우 미숙하며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 역시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L사의 사원들에 대한 복지 수준은 대기업다운 수준에서 살짝 부족한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만 반면 노조 설립이나 자율적인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큰 제약을 두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이는 특별히 경영진이 노조에 관대하다기보다는 노조를 먼저 휘어잡을 수 있는 장악 능력 자체, 다시 말해 결국 앞서 언급한 '경영 스킬 부족'이 여기에서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부분이 되는데요.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노조가 상당히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노사 갈등이 심각하지 않다는 이야기인데요. 이는 경영진들의 무능함으로 노조 설립이나 운영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반대급부적인 부분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엔지니어들 중심의 조직 체계에서 노조같은 사회과학적인 측면이 필요한 조직 체계에 익숙하지 못한 임직원 내부 분위기상의 한계도 존재하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한마디로 어느쪽도 치고 나가지 못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임직원들에 대한 복지 수준보다 어쩌면 더 중요할수도 있는 근무 환경 여건 개선 측면에서 L사는 여전히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24시간 3교대 근무 체계가 지금 시점에서도 이미 많은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어서 H사를 중심으로 야간 근무 자체를 폐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와중에 L사는 최근까지도 24시간 2교대 근무를 고수하다가 간신히 3교대로 바꾸는 데에 그치고 있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에 대해 크게 심각함을 느끼거나 부당함을 설파하기보다 그냥 묵묵히 일하는 이공계 엔지니어들의 워커홀릭적인 특성과 더불어 이들이 주요 요직에 승진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근무 환경 여건 개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


엔지니어로서의 삶에 가치를 두고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는 기업으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는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의 위크포인트를 기회로 어기고 L사를 바꿔보겠다는 야심찬 도전을 품고 있는 경영 마케팅 분야의 인재가 계시다면 지금은 좀 말리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바꿀 만큼의 위대한 능력을 가졌는지는 별개로 치더라도 그렇게 바꾼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 그렇게 크지 않을 거라는 점이 그러한 열정을 굳이 꺾어주길 바라게끔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정을 꾸리는 것을 꿈꾸는 사람이라면...글쎄?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매우 뛰어나야만 합니다. 엔지니어들 중심으로 짜여진 조직체계는 매우 남성적이고 여성들이 끼어들 틈바구니가 적으며 그만큼 흔히 볼 수 있는 여성들이 만들어내는 조직 문화는 없지만, 그만큼 요구되는 능력 수준이 높고 외부 조직에서 흘러들어오는 이른바 '굴러온 돌'에 대한 냉혹함도 존재합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L사에 뼈를 묻겠다는 심산으로 들어온다면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어느 정도 직위에서 L사로의 전직은 조금은 말리고 싶습니다. 물론 업계 관행처럼 가져갈 수 있는 직위는 그대로 이어갈 수 있겠지만 조직 내에서 당신의 입지는 충분히 체감할 만큼 한계가 분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L사형 기업은 개성이 강하긴 하지만 유니크하지는 않습니다. 비단 L사 뿐만 아니라 L사처럼 엔지니어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대부분 L사의 기업 문화를 닮아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 말하는 것들은 비단 L사에 입사를 바라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기전자,화학,반도체 등 엔지니어링에 올인하는 중소기업들에게도 거의 동일하게 적용될 것입니다. 물론 L사가 이정도라는 것은 L사가 지금 보여주는 것이 그 조직 체계에서 얻어낼 수 있는 복지나 업무 환경이 가장 극한까지 끌어낸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시길 바랍니다. 아마 그 이하는 있을 수 있어도 그 이상은 있을 수 없다는 점 반드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특별기획 '취업' - 기업 생태연구 보고서 : L사형 기업 편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