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1. 2. 7. 16:38
군대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을 여성 독자분들에게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일단 하고 넘어가야 하는 이야기라 어쩔 수 없다. 남자들이 흔히 말년 제대를 앞두고 혹은 이미 전역한 군필남성들에게 '군대 개혁'이나 '군 구타 문제', '군 복무기간 단축'에 대해 물어보면 의외의 답변이 돌아온다 '개념없는 신병에게 구타는 필요악', '군 복무기간은 단축이 아니라 더 늘려야할 것', '군대는 지금보다 더 빡세져야 함' 등등 이미 자신은 그 의무에서 벗어났지만 적어도 내가 받은 고통보다는 다음 세대의 후임들의 고통이 조금 더 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자신이 겪었던 고통이 단지 (시기적으로 운이 없어서) 잘못 걸렸다는 억울함이 덜해지기 때문이란다. 자신이 몸소 겪으면서 그 문제점을 충분히 통감하고 개혁을 목청 높여 외쳤던 현역 시절은 간데없고 이미 자신은 관계없는 일이며 적어도 내가 이득은 못보더라도 손해는 보기 싫다는, (그것도 나보다 남이 더 피해를 봐야 한다는 마이너스 사고방식)이 팽배해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이렇게 된 데에는 군대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군대가 지금까지 개혁이 안 되도록 여론이 제대로 모아지지 않았던 원인에는 이같은 '나만 피해보기 싫다. 너는 나보다 더 당해야지 내가 덜 억울하다'라는 지극히 마이너스적 피해망상에서 출발했다는 것도 슬프지만 현실임에 다르지 않다.

철모에 머리 박아봤어?


대체로 지하철에서 이루어지는 이른바 '노약자석 실강이', 필자만 그런 건지 아니면 필자가 들었던 케이스가 특별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다수가 '할아버지'분들이다. 그리고 대체로 이런 할아버지들은 '젊은 남성'에게 시비를 거는 형국이 많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결국 위에서 예를 들었던 이른바 '마이너스적 피해망상'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한 번 들어보시라...

지금의 노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60세 이상, 즉 한국전쟁 이전에 출생해서 아직 '어른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경' 사상이 남아있던 한국의 경제빈곤기와 성장기를 동시에 거친 세대다. 이들의 젊은 시절은 원치 않아도 이미 사회적 분위기가 '어른은 당연히 공경해야 하는' 분위기였고 그래서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무조건 공경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지옥이라는 33개월 군 복무 시절을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그 33개월간의 구타가 만연하고 계급체계가 더욱 공고했던 당시 군대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은 절대적일수밖에 없다. 산업 혁명이라 불리는 60년대 후반 구로공단을 비롯한 각종 공업단지에서 폐병에 걸려가며 좁디좁은 기숙사 생활의 피폐함을 경험해본 그들이다. 물론 그 기숙사 문화는 33개월 군대를 겪어본 자들이 고스란히 와서 내무반과 그닥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음에 지나지 않았을것이다. 즉 그들은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도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인생선배들의 뒤치닥거리를 당연시하면서 살아왔다. 물론 그들의 희망은 사실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는데...

언젠가 나도 선배가 되어 지금 내가 하는 것과 똑같은 걸 후배들에게 시켜먹으며 편하게 지낼 수 있겠지


그런데 의외로 세상은 너무 빨리 변했다. 구로공단은 디지털단지로 변했고 자신들의 경력은 쓸 데가 없어졌으며 자신들 뒤로 '후배'가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들어와도 그들이 자신들이 당한 만큼 후배들에게 되값는다는 생각으로 대하는 후진적인 직장 문화를 젊은이들이 받아들일리 만무했다. 이들이 선배들에게 젊음을 바쳐가며 '쌓인' 걸 풀 데가 없어진 것이다. 그것도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해버려서, 자신들의 설 자리를 이 세상이 빼앗아가버린 탓에, 자신의 젊음을 보상해주지 않는 국가와 그들의 고생한 것을 인정해주려 들지 않고 공경과 존중은 잊어버린듯한 젊은이들이 마냥 야속하고 버르장머리없어보이는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세상에 무언가 요구할수 있는 지위는 아니다. 이미 지위란 지위는 다 잃어버려 설 자리가 없는 그들, 그러나 아직 젊은 시절에 대한 억울함은 다소 남아있어 그 중 일부가 지하철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쏠리는 것이다.

이들이 가진 국가에 대한 불만은 상상을 초월한다. 세상을 억지로 바꿔버려 자신들의 생존권을 빼앗아가면서 변화를 추구했다고 믿고 있다. 국가, 더 엄밀히 말하면 정치권이 이들에게 표를 얻기 위해서는 가능한 이들을 자극하지 않는 게 좋다. 그리고 이들을 법적으로 표가 나지 않는 선에서 달래야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노약자석'과 '무임승차권'이다. 그리고 노약자석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위해 지속적인 캠페인을 벌여 '고생하신 어르신들을 위해 우리가 준비했다'는 것을 열심히 표현하는 것이다. TV 미디어, 심지어는 초등학교 교과서 속에서도 나오는 이런 대대적인 캠페인 속에서는 굳이 노약자석이 아니라도 노인은 꼭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강요하는데 당연하지만 이런 무조건적인 캠페인에 '근거'따위는 없다. 근거를 붙였다간 노인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체면이 삶의 의미 그 자체가 된 그들에게 구차한 이유를 붙인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젊은 시절, 상관, 상사, 선배에게 아무 이유없는 무조건적인 공경을 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어르신이 불쌍하니까 도와줍시다. 혹은 어르신은 노약하시니까 앉게 해드립시다. 이런 식의 캠페인은 역효과를 불러올 것임에 자명할 터, 그래서 국가에서 하는 캠페인은 '닥치고 공경'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겨우 만들어준 '이거'를 노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두말할필요가 없다. 겨우 국가에서 자신들이 했던 고생을 인정해준답시고 만들어준 제도다 (사실 법적인 구속력 아무것도 없는데도) 겨우 인정받는 것 같아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 이 젊은놈의자식들은 이렇게 국가에서조차 인정해준 자신들을 *으로 본다. 당연히 화가 날수밖에 없다. 이젠 국가에서도 인정한 자신들이다. 젊은이들도 자신들을 인정해줘야 하는게 당연하다. 우리가 선배들에게, 상사에게, 상관에게 그랬던것처럼 우리가 헛기침 좀 하면 바로 하던 일 멈추고 벌떡벌떡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이 지금 젊은이들에게 씨알도 먹일리 없고, 그렇다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재판을 걸 수도 없다. 당연히 경찰권력은 이를 터치하기 힘들다. 괜히 터치해서 법적인 문제로 비화되면 판례가 생기고 이는 당연히 노인들의 노여움을 산다. 이는 곧 보수층 집결의 타격과 지지층의 표가 빠져나감을 의미한다.

이들이 주로 입에 달고 사는 말 '5공때도 이러진 않았어!', '박통이 최고야'라는 말은 정말 그 당시가 좋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 그들은 핍박의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만일 박통이 하던 그런 분위기가 계속되었다면 지금 자신들이 '어른'으로서 선배들에게 해왔던 대접을 자신들이 받으며 살 수 있는 토대가 마련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명박을 지지한다. 박정희의 향수를 그리워하며 박근혜에게 기대를 건다, 뭘 기대를 거냐하면 그것이 예전 자신들이 선배들을 봉양했던 그 시대의 '연장'을 이루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명박이 경부고속도로처럼 4대강 건축업 파고 박통흉내내며 5공의 재림을 만들어 언론탄압하는 '시늉'을 내면 이들은 흥분한다. 그리고 짝퉁 박정희 이명박이 내려오면 성골 박근혜가 자신들의 유토피아를 완성시켜줄 것으로 철썩같이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시절로 돌아가면, 자신들은 그동안 잃기만 하고 보상받지 못했던 젊음의 희생을 보상받을 일만 남아있기 때문이고 그동안 자신들을 무시했던 젊은애들이 자신들이 젊은 시절에 겪었던 것과 똑같은 고통과 설움을 당하게 될 것이므로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억울함이 덜해질테니까... 이른바 마이너스 피해망상의 극점이 무엇인지 아주 제대로 보여주는 셈이다.

즉 이걸 보고 노인들은 흥분하는 것이다. '아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그 시절의 상식이 이어지겠구나!' ...그들에게 있어 이명박은 정말 잘하고 있을수밖에 없는것이다.



애석하지만 이같은 젊은이들과 노인 사이의 갈등은 그 역사와 얽힌 사건의 깊이만큼이나 골도 깊다. 정부는 표를 위해 이들을 자극하지 않는 쪽을 택할 것이고 그래서 노약자석 문제와 무임 승차권 문제에 소극적이다. 이는 굳이 노인들의 고생을 알아줘서가 아니다. 아마 지금의 노인세대들의 비율 그리고 그들이 간접 영향을 끼친 2세대들 인구가 줄어들경우 정책은 냉혹하고 매몰차게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릴것이 분명하다. 참 안타깝지 않은가? 젊은이들과의 갈등을 만든 건 노인들이 아니라 결국 하나의 세대를 국익에 쓸모없다고 국격에 안어울린다고 그들의 인생과 삶의 터전을 깡그리 날려버리고 수치적 경제 발전을 위해 희생시킨 국가의 문제임에는 다른 말이 필요없으리라.

그들이 세상을 바로보고 제대로 된 표를 던지는 것도
무의미한 지하철 좌석에 집착하여 자신들의 버려진 젊음을 보상받으려는 것도
지금와서 변화를 바라기에는 아무래도 어렵지 않나 싶다.

지금 이 세상은
거짓말쟁이가 권력을 잡아
자신의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진실을 거짓말로 호도하고 있으니까....

그분들에게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통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니까...
posted by RushAm 2011. 1. 10. 13:55
방송에서 특별 생방송으로 수재의연금을 걷는다든지 심장병 어린이를 돕는다든지 이웃돕기 성금을 걷는 풍경은 21세기에 이르러서도 과거의 유물에 머무르지 않고 올해도 계속 방송을 타고 지금도 인기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방송하는 TV 한귀퉁이에는 ARS 번호가 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전 세계에 보기 드문' 한국만의 독특한 '복지형 기부 문화'를 한국인만의 '정'을 보여주는 거라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올해는 사랑의 열매, 예전에는 사랑의 빵 ... 정말 수많은 복지단체들이 비리로 얼룩졌음에도 이러한 서민들의 작은 기부 움직임은 그리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나 방송에서는 추운 때일수록 방에 불조차 못때 떨고 있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해야 한다며 많은 사람들의 측은지심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우리나라의 전통으로 몇 십년이 지나 이미 OECD국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이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게 정말 정상적인 것일까요? 기부 방송은 언제나 좀 더 많은 기부를 한 사람의 사진을 제일 먼저 내세우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를 한 사람을 영웅으로 추대하는 등 '이 기부가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점을 역설하고 있는데 조금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기부가 '서민 복지'에 지금까지도 쓰여져야 할 만큼 이 나라의 복지 정책이 지금에 이르러서도 서민들의 기부에 손을 벌려야할만큼 정책이 형편없다는 반증이 아닐련지요?

독거노인들을 돌봐야 하고, 소년소녀 가장을 돌봐야 하는 건 국가의 역할입니다. 그걸 제대로 다 못해서 국민들에게 기부 명목으로 손을 벌리는 상황을 '당연한 듯'이 언제나처럼 예산을 짜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정말 잘 하고 있는 걸까요?

OECD국가 중 유니세프같은 국제 NGO가 경제 규모 대비 가장 고전하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인데 우리나라는 이들 국제 NGO에 기부를 하면 언제나 이런 이야기가 돌아옵니다.

'지금 우리나라 불우이웃도 다 못돕고 있는데 다른 나라 신경쓸 겨를이 있어?'

불우이웃 돕기가 잘 안되고 있어 그나마 오던 복지단체들의 지원도 끊겨 소년소녀가장,독거노인들이 한층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는 방송이 매년 나오고 있습니다. 이 방송은 의도적으로 기부를 하지 않고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은 국민들에게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라'고 강요합니다. 사실 국가 내 국민들이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는 건 국민들이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해당 지방자치단체장, 크게는 보건복지부장관과 대통령이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 할 일인데도 말입니다.

정치계가 무상급식, 무상의료, 이런게 해야 한다 안해야 한다로 의견이 갈리는 것 자체가 창피하고 부끄러운겁니다. 대통령이 골프장 운전 잘 못하는 게 부끄러운게 아니라 어째서 당신 나라는 G20을 개최하면서도 그 작은 나라에서 추위에 떠는 계층이 생기고 있는지 되묻는 해외 정상의 질문에 부끄러워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나라 내부가 아니라 더 어려운 나라를 지원할 만한 경제능력을 갖추었음에도 아직도 내부 불우이웃조차 몇십년째 나라 스스로 해결 못해 국민들에게 손을 벌리는 통해 정작 국제 NGO가 뻘쭘해지는 지금의 상황이 정말 정말 부끄러운 겁니다.

국민들이 유일하게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
연말연시에는 불우이웃에 관심을 가지면서..
투표할때는 뉴타운 이외에는 눈과 귀에 집어넣을 생각조차 안한 결과
이웃돕기 ARS에 의존하는 걸 몇십년째 아예 당연하게 복지 계획에 넣어버리는
한심한 정치가가 이 땅에 활개치가 한 바로 그 부분일 것입니다.



진정 행복한 나라는 '영웅'을 가진 나라가 아닌...
'영웅'이 필요하지 않은 나라일 테니까요.
posted by RushAm 2011. 1. 6. 15:25
- 해외 곳곳을 여행하면서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고 느꼈던 점은 '식당들'이었다. 맛이나 이런 게 아니라 메뉴판이랑 가격을 당당히 입구에 걸어놓고 있었기 때문인데 언제든 주머니 사정에 맞게 들어가기 전부터 메뉴를 정할 수 있도록 해놓은 점이 그랬다. 우리나라에서는 가격은 고사하고 메뉴조차 들어가기 전에 알 수 있게 해놓은 식당이 좀처럼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혹자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밖에다가 메뉴와 가격을 공개하는 건 경쟁하는 건 요식업으로서 자존심이 상한다'라고,
글쎄? 메뉴와 가격을 밖에 내놓고 메뉴로서 선택을 받는 것과
메뉴와 가격을 모른 채 식당의 어떤 면 (방송 소개, 누군가의 사인, 블로그 포스팅)등을 보고 선택하는 것
어떤 게 요식업의 자존심을 긁고 있을까?


- 스마트폰이 부쩍 많아진 걸 실감하고 있다. TV에서 일반 휴대폰 광고는 이제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우선 '산'다음 그 것이 어디에 필요한지 생각해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혹은 '전혀'쓰지 않음에도 '대세'이기 때문에 휴대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꾸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 휴대폰 제조 메이커들이 스마트폰 이전에 벌여온 행태, 해외 출시 제품과 비교해 성능이 훨씬 떨어지는 제품을 내놓았던 작태가 스마트폰에 이르러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얼마든지 형편없는 성능의 스마트폰을 외국과 같은 가격에 팔아도 잘 팔릴 테니까, 우리가 그런 기업들의 행태를 비난하기 전에 '제품의 소비'의 측면에서 얼마나 '타의적 겉멋'이전에 '자의적 합리성'을 추구한 적이 있기나 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 조용함의 소중함을 점점 모르고 살게 되는 것 같다. 시끄러운 도시에 살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소음은 당연시되고 있고 그로 인해 받는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 도심 속에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새벽 시간에 걷는 걸 참 좋아하는데 이젠 그마저도 기회가 잘 없다. 소음을 빼고 난 도시의 야경은 잔혹할정도로 아름답지만 사람들이 마천루 펜트하우스에서 야경을 보는 심리는 생각해보면 꽤 비겁한 게 아닐까? 야경이 의미하는 것은 밤이 되어서도 쉬지 않는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증거일지도 모르는데, 그것을 '소음'이 완전히 차단된 채로 반짝이는 빛만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안도'한다는 것은 마치 음소거한 스너프 필름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조금은 무섭기도 하다.

오늘도 그 치열하게 반짝이고 시끄러운 밤 속에서
내가 알고 있을지도 모를 누군가가 중병에 걸려 목숨을 잃고 급성 질환으로 별세하고 있다.
누군가는 ... 그 비명에 귀를 기울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측은지심을 발휘하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
posted by RushAm 2010. 12. 30. 03:35
미국 영화가 상업적이니 뭐니 비판을 받지만 미국 영화가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는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 이외에도 가장 초창기 무성흑백영화부터 지금까지 뭐 하나 '독창성'에 투자하는데에 아무런 인색함이 없었던 '트랜디 세터'의 자세를 한번도 잃으려 들지 않았던 사실입니다. 찰리채플린부터 아바타까지 그들은 '기술'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에는 신흥도상국에 뒤질지언정 그 기술을 어떻게 영화에 녹아들고 그 녹아든 영화를 어떻게 관객들에게 다시 한번 녹아들게 만드는지에 대한 연구를 단 한번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요즘 한층 뜨고 있는 스티브잡스의 '인문학'에서 나오는 제품 개발 철학에도 고스란히 보여지고 있죠. 이는 실패에도 의미가 있다거나 하는 위선적인 것이 아니라 정말 단순하게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 같은 게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헝그리 정신 이딴 게 아니라 의외로 '세계정복'처럼 인류 본연의 '숭고한 본능(?)'같은 동기부여가 작용하고 있죠. 다시 말해 그들은 작은 사과상자에도, 싸구려 캠코더에도 자신의 철학이 다른 사람들의 철학에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함 그대로 세상에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물론 순수함만 유지할 뿐 거기에 고집은 없죠. 먹기 불편한 감식초에 우유를 넣거나 세우기 힘든 달걀을 한쪽을 깨서 세우고 조롱받으면서도 눈을 똑바로 뜨고 세상을 바로보는 고집이 아닌 순수함이 어떻게 보면 미국이 가진 부러울 정도로 강한 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감상문에 서문이 너무 길면 뒤로버튼이 바빠집니다만 '라스트 갓 파더'를 보는 내내 저 양면적인 무언가가 머릿속을 맴돌아서 영화 집중을 너무나도 방해했었기에 굳이 구독율을 무릅쓰고 언급할수밖에 없었던 건 사실입니다. 스트레이트하게 말하면 이 영화는 더 많은 욕을 먹어야 하고 그 욕을 먹고 방어를 하는 건 '네티즌'도 심형래 감독의 '팬'도 아닌 '심형래 감독 본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악플을 찬성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저는 모쪼록 제가 생각하는 것 만큼 심형래 감독이 0부터 시작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기에 0부터 시작하는 것에 전혀 관대함을 가지고 있지 않은 대한민국과 맞서주길 바라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는 한없이 어렵습니다. 개그 코드는 심형래 감독이 오래 전 만들었던 고전 캐릭터를 사용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당시 사용했던 개그 패턴을 전혀 수정하거나 현대에 맞게 개량해보려는 노력이 조금도 없었고, 이게 자신이 활동했던 시기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거였는지, 아니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고전이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신선함이라는 점을 이용한 전략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패션이 돌고 돌아 20년전에 유행한 스키니진을 유행이 돌아왔다고 그걸 당시 디자인 그대로 입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조금의 개량에 대한 노력도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의 활용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운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그 의미 자체를 오해하고 있는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은 '스토리의 완성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토리'를 얼마만큼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고 받아들일 수 있게끔 만드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전달 수단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뭐 의미는 다르겠지만 이번 영화도 이 '스토리 텔링'이 매우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스토리 텔링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 '스토리 전달법'자체를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헐리웃 코미디 영화에서 다수 쓰였던 갖가지 친숙한 패턴 씬들을 가져와 조합하는 것으로 웃음을 유도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영구'를 기억하고 그의 개그에 웃음을 보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개그 코드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여기에서부터 아주 큰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메르헨을 읽어보면 기승전결이 아주 명확합니다. 이는 그걸 읽는 아이들의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머릿속이 난해해지면' 집중을 하지 않기 때문이죠. 생각을 하려 들지 않고 먼저 날뛰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데에 익숙한 살아있는 악마들(?)을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기승전결에 군더더기가 없이 스트레이트하게 흘러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정직'하기 때문에 스토리에 트릭이나 반전, 앞뒤가 안맞는게 있으면 바로 '항의'를 하게 되니까요. (아이들과 같이 처음 메이저 영화를 보게 될 경우 극장에서 아이들 뛰노는 소리 이외에 가장 많이 들리는 게 '엄마 저게 왜 저렇게 되는 거야'라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죠)


코미디 영화는 머릿속을 단순하게 비우고 최소한의 배경 지식만을 가지고도 감성적 집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메르헨과 일치합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최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스토리의 단순화죠. 그리고 군데군데 삐져나온 잡초들을 반드시 제거해야합니다. 만일 간지럼을 태우기 위한 깃털에 물이라도 좀 묻어있다면 그 사람은 간지럼을 느끼기 어려운 법이니까죠. 라스트 갓 파더는 코미디 영화였고 포스터에도 '더 웃기지 못할 바에는 돌아오지도 않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깃털의 질 만큼이나 깃털에 붙어 있는 '웃음을 방해하는 물기'를 제거하는 데에도 좀 더 많은 신경을 썼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혹시 심형래 감독이 이 깃털에 달린 물은 '깃털이 품질만 좋다면 얼마든지 무시될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면 정말 아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걸 무시해줄 만큼 관객이 아직 심형래 감독에게 '거장'이라는 존중을 해주는 단계가 아니고 더 아쉽게도 깃털 역시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깃털을 더 다듬는데에 노력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심형래 감독은 '감독'이기 때문에 그것만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일 뿐이죠. 여기에서 한가지 더 아쉬운 점은 심형래 감독이 아무리 충무로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과 철학을 제대로 공유하는 사람과 어느 정도 분업을 해오는 일에도 조금은 신경을 써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제대로 완성된 기량을 갖추지 못한 미완의 인재에게 각본, 감독, 연출, 주연까지 굵직한 직책만 1인 4역... 부담이 되지 않을 리 없겠죠.


그렇다고 그 깃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 이번 영화에도 마치 김명세 감독이 보여줬던 '순수한 열정'이 보였다면 조금은 만족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번 영화는 그가 도대체 '무슨 철학'을 보여주려고 했는지, 무엇을 지켜오려고 했는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모쪼록 제가 찾지 못했던 것이길 바랍니다) 개그 영화로 그가 시도했던 모든 것들, 화면 구성, 연출, 하다 못해 패러디적 요소 어느 하나도 '독창적'인 부분이 어떤 것인지를 도무지 알수가 없더군요. 영구 캐릭터, 그리고 헐리웃에서 정말 오래 전부터 오랫동안 쓰여왔던 수많은 개그 코드들을 재현하면서 그가 바래왔고 표현하고 싶었던 그 영화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게다가 한 가지 영화나 감독에게 일관되게 영향을 받은 반쪽성 순수성이라면 좋겠습니다만,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감독들의 갖가지 장면들을 버무린건지 모를 만큼 이미 '순수성'으로 말하기조차 민망할정도였습니다.

용가리와 디 워까지 오면서 그에게 지지를 보냈던 사람들의 명분은 '쥬라기 공원'에 대항하기 위해 '컴퓨터를 수입하고 인재를 수입해서'하는 게 아니라 '헐리우드의 처음이 그랬고 스필버그의 데뷰가 그랬듯이' 우리도 가장 '순수하게 우리만의 힘으로' 풀뿌리 영화기술로 헐리우드에 맞서보자 라는 그의 '도전정신'이었습니다. 그의 영화에서 일반적인 영화적 재미가 많은 부분이 결여되어있을지언정 그가 말했듯이 '영화기술'을 추구했던 그 무언가로 우리가 순수하게 우리 기술로 해내보겠다는 열정에 박수를 보냈고 영화표를 구매한 돈으로서 '기부'와 '응원'을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말 그가 '헐리우드'가 처음 '주변에 아무것도 보고 베낄 게 없을 때 백지에서 머리를 쥐어짜내듯 만들었던 풀뿌리 기반'을 추구했기를 바랍니다. 3D를 빼고 단순 영화로서 그가 보여줄 게 단지 헐리우드의 갖가지 장면을 짜집기하듯 만들어내고 거기에 자신의 가장 큰 히트상품인 영구캐릭터를 활용하여 티켓을 끌어모으려는 '불순함'이 아니었길 바랍니다. 그가 단지 한국어로 영화를 만들면 자신이 '영구'시리즈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못했다거나 혹은 발전했더라도 그가 영구아트 브랜드로 영화를 만들면서 충부로부터 당했던 굴욕적 처우에 따른 트라우마로 다시 한번 그 정도의 영화취급을 받을 것을 두려워해 무리해서 영어권 배우들을 대거 기용해 영어로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헐리우드에 맞서는 풀뿌리를 만드는 것이 아닌 단지 '한국이 헐리우드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수많은 헐리우드 실력파 스텝진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미국 활동에 힘을 보탠다는 의미로 원더걸스를 출연시킨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애니메이션이 단지 애들거라는 것에서 출발했지만 거기에 멈추지 않고 애니메이션 그 자체의 순수성을 유지하면서 끌어올릴수 있는 궁극을 끌어내 지금의 누구나 볼 수 있는 가족 문화가 되었던 것처럼 그도 그가 예전에 출연하고 찍어왔던 아동용 히어로 영화에서 배웠던 그 무언가에 대한 순수성을 유지하면서 그 순수성을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헐리우드 영화에서 상식적으로 벌어지는 시나리오 패턴'처럼 각인될 수 있도록 완성도를 궁극적으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그것을 가감없이 관객들이 소화할 수 있도록 책 읽어주는 사람의 역할에 대한 연구 역시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헐리우드 키드'가 아닌 '코리안 어덜트'를 꿈꾸며 'Korean Standard'를 만들 것을 평생의 꿈으로 삼고 있는 사람에게 심형래 감독 당신 한 사람으로 인해 이 나라가 다시는 '헐리우드 키드'가 아닌 사람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제 꿈과 당신의 꿈이 조금의 연결고리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이 글이 10년 후 당신이 만든 '심형래 Film Standard' 를 마침내 인정해준 수많은 당신의 팬들에 의해 악플로 초토화되어 블로그에 사과 포스팅을 게재하게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정말 즐겁게 기다리겠습니다.
posted by RushAm 2010. 12. 17. 02:52
아르바이트를 쉰 지 2주가 되어간다. 내가 고집스럽게 아르바이트를 했다가 관뒀다가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없다.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지겹고 쉬고 싶을 때가 있다. 이때 쉬면 진짜 좋다. 이 쉬는게 참 지겹게 느껴지면 그때 다시 아르바이트를 잡고 일을 한다. 물론 생활비는 그렇게까지 쪼들리지 않을 만큼 계획성있게 살면 되니까, 다른 사람들은 무슨 배짱으로 알바를 그만두냐고 묻는데, 사실 알바 그만두는 경험도 필요하다고 믿는 나로서는 내 갈길 가기 바쁠 뿐이다.

근데 내가 보기엔 범어사 사건도 딱히 내 이러한 생활습관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기독교는 인력도 시간도 넘쳐나는데 할 일이 너무나도 없다. 하지만 그냥 조용히 기도만 한다? 열심히 사는 데에 익숙한 대한민국 국민은 그러면 왠지 예수님에게 성의를 덜 보이는 것 같아 불안하다. 그래서 성경에 쓰여 있지 않아도 ...아니 안 쓰여 있으면 비스무리한 구절을 멋대로 해석하거나 심지어는 아예 새 구절을 만들어서라도 뭔가 정당화시킬 거리를 만들어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는 거다. 위험 지역 선교도 그 중 하나인데, 그들에게도 논리가 있다 '성경 읽어보면 이거 안 하면 안되는 거'라는 걸 알게 된다는 거다. 응? 뭐라고?

교회는 사람이 넘친다. 게다가 교회에 주둔하는 시간도 제법 길다. 그냥 교회에서 찬송가부르고,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스케줄이 남아도는거다. 그래서 이들은 팬덤을 강요한다. '무언가 하나님에게, 예수님에게 사랑을 표현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놀랍게도 서로 '예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믿)도록 '경쟁'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이나 예수님은 말이 없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서 종교에서는 '마음속에 있다'라는 것을 강조한다. 모든 원인은 바로 이 '마음속에 있다'에서 출발한다.

마음속에 있다는 것은 결국 '정신적인 부분'이다. 다중인격이 아니라면야 '타인'의 감정이 아닌 100% 자신의 감정이다. 에수님의 소리라고 들리는 것 모두 사실 '자기 자신'의 '이성'이며 '마음의 소리' 인 거다. 즉 자기 자신이 '예수님이 말씀하신다'고 믿는 그 모든 게 사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깨닫고 일깨워져서 행동하는 것에 포장을 씌우는 셈이다. 즉 스스로의 '판단' - 단군 목을 자르면 예수님이 날 좀 이뻐해주지 않을까? - 가 결국 마음의 소리가 되고 그 마음의 소리가 에수님의 소리로 덧씌워져 행동으로 옮겨진다는 거다. - 예수님이 시켜서 목을 자른 것 -으로 철썩같이 믿게 되고 그렇게 믿은 믿음은 전파되기 쉽다. 원래 신앙이라는 이름의 '광기'는 최면같은 임팩트가 강해서 잘 옮기 때문이다.

범어사 사건이 '누군가가 시켰던' 일인지 정말 '스스로의 판단'에 의거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결국 '누군가에 의해서 촉발'된 하나의 '예수님에게 잘 보이기'이론이 다수의 동의를 얻었고 그 중 한 명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선수를 치기 위해 (선생님께 일러바치기 좋아하는 반장같은 존재랄까?) 남들이 망설이던 틈을 타 재빨리 행동으로 옮기는 거다. 그리고 그걸 '인터넷'에 공개한다. (흔히 선수를 치는 성격들은 자신이 한 행동이 정당한지 아닌지에 대해 뒤늦게 확인받고 싶어하는 심리적 불안감이 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잘 했다는 것'을 반드시 인정받기를 바란다. 어린애들이 뭔가 실수를 했을 때 열심히 자기 편 배심원을 만들려 애쓰거나 뭔가 힘이 있는 사람에게 '자기 변론'을 요구하는 행동패턴과 흡사하다 하겠다.

출처 '마린블루스' http://www.marineblues.net/marine/index1.htm


최면에 대한 일설 중에는 '뇌 기능을 저하시켜 초등학생 수준의 뇌 기능으로 나오는 상상력이나 돌발 발언을 유도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어느 한 곳에 집중하다보면 뇌 기능이 단순해지고 경험에 의한 판단력보다는 직관에 의존한다. 근데 이게 '종교'라는 심리적으로 가장 나약한 부분을 공격하는 단계에 이르르면 마치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는 반 최면상태가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보통 '어른들'이 말하는 것에 잘 반항하지 않고, '보는 것'은 열심히 따라하며,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철저하게 복종하는 행동 패턴을 보이는데, 지금의 기독교에서 일어나는 '일부' 사람들의 행동 패턴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겠다.

이 어린아이 상태는 생각보다 매우 기분이 좋다. 뇌가 편해지고 누구나 어린아이들처럼 아무 생각없이 살고 싶어지는 욕구가 있으니까, 성인이 되면 제일 불안한 게 자신을 주도해주는 절대자가 없이 혼자 사회에서 싸워야 하는 부분인데, 이런 약점을 잘 이용해서 절대자를 만들어 어린아이인채로 있게 해주는 종교적 특성이 이와 비슷하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많아지면 행동이 거침이 없고 남을 배려하거나 하는 건 거의 없다. 자기 자신을 욕하는 것에 매우 공격적이 되고 결정적으로 '잘 운다'


그냥 어린아이들로 살게 놔 두면 좋겠지만 교회라는 집단이 그걸 그대로 두지 않는 것 같다. 마치 집에 부모가 없으면 형이 부모노릇을 한다며 동생을 몽둥이로 패는 풍경이 일상적이었듯이 지금의 일부 교회 목사들은 자신이 부모 (예수님이나 하나님이 지금 안계시니) 대신이라고 말하며 '어린아이들을 다스리겠다고 선언한다. 물론 어린아이들이 이를 거역할리가 없다. 당연히 돈은 기본이고 시키는 건 다 하게 된다. 예수님에게 아낌없이 주듯이 목사에게 아낌없이 가진 것과 심지어는 몸까지 바친다. 그들이 말하는 '내가 예수니까 나에게 몸을 주면 천국간다'라는 이 제 3자가 보면 어처구니 없는 썰을 믿는 이유는 당연히 그들이 '어린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는 심리상태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그쪽 사회가 난교를 하던 돈을 갖고 튀건 내 돈이 아니고 내 몸이 아니니까 별 신경은 안쓰지만 단속 안되는 '어린이들'을 좀 어떻게 해보고는 싶다. 근데 이 자칭 부모들은 이들을 어떻게 통제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마치 '애 기죽을까봐' 마냥 감싸고 도는 부모처럼 말이다.

아 그 부모들은 진짜 '애들을 사랑하기라도' 하니 다행이지만...
자칭 부모들은 먹고 땡이니 그것도 문제라면 문제일까나...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정말 그들이 말한 대로 '예수의 부활'을 간절히 바란다.
와서 부모 역할 좀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다.
애가 잘못하면 원래 부모들이 사과를 해고 책임을 지는 게 이 세상의 미성년자법이 아니던가?
posted by RushAm 2010. 12. 12. 15:49
- 식당에 가보면 어디 어디 블로그, 누구누구 연예인, 어디어디 방송국이 다 왔다갔다는 팻말을 무진장 걸어두고 있다. 연예인들, 맛집 블로거들, 방송국 요리프로그램 담당 스텝들은 정말 대한민국의 가장 표준화되고 대중적인 '맛있음'을 느낄 수 있는 어떤 지표라도 되는 것일까? 어차피 그들도 자기 입에 맞으니까 오는 것 아닐까? 오히려 담배나 술에 쩔에서 혀가 완전 둔감한 사람이 저 세 부류에 있다거나, 바빠서 평생 식당밥만 먹어서 화학조미료 함량이 제일 높은 식당을 선호하는 사람일지도 모르잖은가?

- 옛날에는 일찍 결혼하고 얼른 어른이 되어서 당시의 14살은 지금의 14살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어른스러웠다고 한다. 현대는 사상 최악의 버릇없는 젊은이들의 천국이 되어가고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옛날 평균 수명이 45세라고 하면 지금의 평균 수명은 적어도 60살은 넘으니까 인생 전체를 100으로 봤을떄 어차피 인생 전체에서 철없는 시기에 대한 비중은 거의 똑같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14살에 철이 드는 옛날이라고 한다면 인생의 1/3을 살아야 철이 든다는 거라면 현대로 치면 적어도 25살은 되어야 철이 든다는 계산이 나오는거다. 의학 기술의 발전이 불러온 내재적 태만이 이런 결과를 불러일으킨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빨리 철들면 빨리 죽는건 도시전설보다 쬐끔 더 신빙성이 있을 정도로 갖가지 케이스가 넘칠정도로 있다는 사실이다. 오래 살려면 좀 늦게 철드는 편이 좋은 것 같다.

- 우리는 지금 남한에 살고 있지만 북한이 지금 전 세계적인 기준에서 얼마나 후진적인 뻘짓을 하고 잇는지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다. 이건 우리나라가 특별히 북한을 많이 깎아내려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국민적으로 꽤나 기밀급의 정보까지 (정말 기밀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보급되는 것 같은데, 반대로 북한의 정치 실정에 대한 정보만큼 우리는 남한 내부의 정보를 정확하게 잘 받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말 우리가 북한을 정말 공정한 눈으로 보는 것만큼 우리나라를 제 3국에서 보는 것과 똑같은 시선과 정보량을 충분히 얻고 있는걸까? 가장 가까운 곳이 가장 멀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posted by RushAm 2010. 7. 7. 21:19
6.2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내건 TV CM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뉴스도 안보는 여자들...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되었던 것인데, 이것이 한나라당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이 아닌 '논란'이 된 까닭은 실제로 여성들의 뉴스 시청율이 상당히 낮았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으로 언론의 소비 주체가 옮겨간 지금에서도 페이지뷰 별로 가장 많이 본 뉴스의 대부분은 연예기사이며 이는 인터넷 뉴스의 경우 TV 뉴스와는 다르게 양성이 비교적 고른 비율로 소비하기 때문이다. 즉 기본적으로 여성들의 뉴스 시청율은 일일연속극에 밀려 언제나 오를 생각을 하지 않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이 광고가 직접적으로 한나라당에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는 것이 항간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왜 TV뉴스는 여성들에게 외면을 받는 것일까? 양쪽 중 먼저 여성의 입장을 살펴보면 '관심이 없기'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 여성들이 늘어났을지언정, 뉴스에서 나오는 누가 대통령이 되었다든지, 누가 정치적 사건을 일으켰다든지에 대한 정치계 뉴스나 대기업들의 지표나 실적 위주의 경제 지표만을 반복적으로 보고하는 경제 뉴스, 여기에 보너스로 스포츠 뉴스에 이르기까지 사회 진출한 여성이 볼만한 섹션은 그다지 많지 않다. 여성들의 뉴스 외면이 먼저인지 방송사들의 편향적 편집 행태가 먼저인지는 몰라도 지금의 뉴스 구성은 지극히 현 주요 시청층인 '30대 이상 남성'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은 분명해보인다.

여기에서 주의깊게 봐야 할 부분이 바로 '남성'이 아닌 '30대 이상 남성'이라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 '30대 이하의 남성'역시 여성 못지 않게 뉴스를 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좀 더 간단해지는데 다시 시점을 뉴스 본질적인 부분으로 옮겨보자, 여성들 그리고 30대 이하 젊은 층들이 뉴스를 외면하게 된 이유를 물어보면 절반 이상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대략 이런 대답이 나오면 주 시청자인 '30대 이상 남성'에게서 이런 일갈이 날아든다

'이런 무식한 **같으니라고'

명쾌한 해답이 나왔다. 즉 30대 이상의 '사회에 진출해서 초년생 티를 벗은' 남성들은 지금의 뉴스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바꿔말해 사회에 진출해서 초년생 티를 벗을 정도의 경력이 쌓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레벨의 뉴스가 지금 현실에서 방영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게다가 이것은 순환적인 집단성을 띄면서 직장 내에서의 대화나 업무 상 반드시 익히지 않으면 정상적인 사회 생활의 커뮤니티가 이루어질 수 없는 압박이 있기에 일반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이나 20대 젊은이라 할지라도 그 조건 자체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음은 물론이다.

모르면 책까지 읽어가며 사회에 섞여야 하는 30대 남성들에 비해 그 밖의 계층은 그 정도의 절박함은 없다. 30대들의 일갈은 '자신들'이 지식을 얻기 위해 했던 고생에 대한 자발적인 고평가에 기인한다.


즉 지금의 TV뉴스는 정말 다양한 시간대의 뉴스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뉴스 포맷에 있어 각 시간대별로 새로 들어온 소식을 갱신하는 것 이외에 어떤 개성도 없는 구성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낮뉴스, 저녁뉴스, 9시뉴스, 마감뉴스 제각각 사람들의 생활 패턴에 따라 가시청층이 다른 것이 엄연한 현실임에도, 각 뉴스별 기사 꼭지는 전혀 차이가 없다. 단지 각 뉴스들이 단순 소식 전달에 그친 것을 9시와 마감 뉴스가 약간의 구체화를 하는 정도다.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30대 이상 남성들이 보기 힘든 낮뉴스, 저녁뉴스까지 이들을 위한 기사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왜 이지경이 되었는지를 설명하자면 방송계 보도국의 어처구니없는 상하관계에 근거해야하기에 이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미뤄두도록 하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뉴스의 내용 구성을 짚어보자 필자도 뉴스를 열심히 보는 편에 속하지만 몇 번이고 갸웃거리게 만드는 단어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등장한다. 대부분 준 전문가급의 학술적인 용어들인데 대부분 경제 뉴스에서 주로 등장한다. 'BIS비율', '분식회계', '재무지표', '채산성악화' (비교적 좀 알려진 단어들만 나열해도 이정도다) 이 단어를 이용해서 뉴스를 하나 만들어보자

'A은행은 재무지표상의 채산성 악화로 인해 BIS비율이 급락한 나머지 결국 분식회계를 하다 금감원에 적발됐다'

꼴랑 저 말 한마디 하고 끝내는 뉴스, 재무지표가 무슨 뜻인지, 채산성 악화가 무슨 뜻인지, BIS비율이 뭐고 이게 떨어지면 뭐가 안좋은건지, 분식회계가 대체 무슨 잘못인건지 한 마디 설명도 없다. 답답하면 인터넷 검색해보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경제 뉴스의 대부분은 저런 전문용어의 나열로 시작해서 그런 단어를 쓰는 기자들의 잘난척으로 끝을 맺곤 한다. 이런 뉴스 내용을 과연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 못한 새내기 사회 초년생 젊은이들과 직접적인 경제 활동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여성들이 바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문제는 더 있다. 저 기사에 나온 전문용어들을 모두 이해해서 경제 뉴스를 전부 알아듣게 되었다고 치더라도 그 뉴스 내용이 젊은이들과 여성들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경제 신문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제 뉴스는 30대 이상의 남성들이 가지는 일종의 레저활동 즉 '직접투자'에 몰려있다. 은행들의 행보, 대기업들의 실적발표, 환율, 부동산 등 30대 이상의 사회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고 실제로 이런 정보들이 주식 투자나 펀드, 부동산 투자에 활용하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이와 큰 관계가 없는 젊은층과 여성들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정보라는 것이다. 이쯤해서 30대 이상 남성들의 일갈이 한번 더 터진다.

'세상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좀 가지란 말얏! 남의 일이 아니라고!'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여성들이 주로 관심을 가지는 소비주체의 생활경제에도 '물가'라는 관점에서 수출입 지표등이 영향을 끼칠 수는 있다. 기업들의 실적에 따른 투자 확대 여부가 취업 시장 활성화에 영향을 끼쳐 젊은이들의 최대 화두인 '취업'에 영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그런데 그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있어 지극히 한쪽에 편향된 전문정보를 단지 그 편향되지 않은 계층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일일히 자신에 맞게 계산하고 해석해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은가? 방송은 공공재이며 민방은 서비스업이다. 30대 이상의 남성들이 필요한 정보를 알기 쉽게 듬뿍 제공하는 수고를 하는 것만큼 그 이외의 계층을 위한 분석, 체계적인 정보 제공을 해줘야 할 필요성도 분명 있는 것이다.

물론 낮 시간에 방영되는 생활경제를 접목한 뉴스 프로그램이 이에 대한 수요를 어느 정도 해소해주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오는 정보들은 지극히 단편적인 '물가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말해 '물가 정보'라고 해서 지금 가락동에서 배추랑 무가 얼마에 팔리고 있다든지 보여준다던지 새롭게 유행하는 계절 상품같은 걸 소개하거나 물 절약 노하우같은 매거진성 기사들이 오히려 뉴스를 와이드쇼화 시켜 기존 뉴스에 대한 거리감만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과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이미 '다 된 밥'을 떠먹여주는 게 아니라, '밥은 어떻게 짓는지', '숟가락은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매번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길라잡이'일 것이다. 단지 '난 잘 하는데 넌 왜 못해'라든지 '다들 잘 하는데 그거 못하면 무식한 것'이라는 식의 우월적 전달이 아닌 치아가 부실하던 튼튼하던 누구나 꼭꼭 씹어 넘기고 피와 살이 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한다.

메스미디어는 학교에서 5년마다 갱신되는 뒤쳐지는 교과서보다 훨씬 빠르고 현실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이러한 정보는 학생 이후로 끝난다는 교육의 개념을 바꾸어 '평생교육'으로서의 기초가 되어주고 있음은 두말할여지가 없다. 뉴스의 장점은 대학과는 달리 남녀노소 신분에 관게없이 누구나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조건에 제공받는 가장 현실에 가까운 지식이라는 점에 있는 만큼 제작 주체에 있는 방송국으로서는 누구나 소화가능한 포맷으로 제작되어야 할 암묵적인 사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방송사당 하루에 편성되는 뉴스 프로그램은 약 6~8개 총 시간으로는 5~6시간 정도, 2시간동안 같은 뉴스를 3~4번 반복하는 아침뉴스를 제외한다면 3~4시간, 한편당 30분이 채 되지 않는 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이런 적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너무 억지로 쑤셔넣으려 하다보니 알기 쉽게 차분히 설명하기보다는 단순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는 '전문용어'의 남발로 이어지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방송국들은 결국 '국민들의 알권리'를 내세우지만 그것을 정작 국민들에게 전달할때는 '귀차니즘'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성들이나 젊은층이 뉴스 보기를 포기한다면 그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서민 경제가 나빠지고 취업이 어려워지는 이유가 결국 이런 어려운 단어를 써가면서 현대적 정보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정보 취약 계층을 노려서 속이고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자들에게 있음은 두말할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제대로 된 여론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국민이 현실정보에 눈을 떠야 한다. 언론의 일방적인 정부편향 대기업편향 보도나 정부의 경제발전과 관련된 언론장악을 통한 억지주장을 바로보기 위해서는 물을 마시듯, 공기를 마시듯 자연스럽게 내 몸에 실시간 정보들이 동화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언제나 세상은 국민들의 옮은 판단과 바로보는 눈 속에서부터 바뀌는 법이니까..

2부에서는 왜 방송국들이 그렇게 시간에 쫒기면서 뉴스를 계속 축약하고 있는지와, 어려운 단어를 남발하고 심지어는 재생산까지 해내고 있는 또 다른 이면, 지방 방송 뉴스의 특징 없는 안정적 시간 배분에 따른 파행, 서울집중적인 불균등화된 알권리 문제 등을 다루어볼까 한다.


2부에서 계속
posted by RushAm 2010. 4. 7. 20:31
바야흐로 해외여행 대중화 시대입니다. 가까운 곳은 속속 저가항공사들이 취항을 시작해 왕복 20만원대를 열어젖혔고 예전에 영업비밀로 여행사들의 뒷주머니를 두둑하게 했던 덤핑항공권은 무한경쟁속에 '땡처리'항공권으로 시장에 풀려 전체적인 항공권 가격을 낮춰주고 있어 경제불황에도 불구하고 해외여행은 크게 줄지 않았는데요. 다만 여행사들의 수익은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자유여행이 선호되다보니 돈이 되던 패키지 여행 상품 판매가 급감한 탓이죠. 토익 평균이 전세계 수위권에 드는 나라라서 그런지 이제는 가이드도 필요없고 시중 서적이나 블로그 검색 등으로 여행정보를 직접 수집해 떠나는 '모험형 여행'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안전하게 휴양을 다녀오는 패키지 여행'보다 여행 본연의 '모험'을 느낄 수 있는 이른바 '배낭여행'을 점차 선호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해외여행을 다녀온 여행 서적, 블로그 등에 올라오는 여행기들을 보면 '이 사람들이 정말 여행을 간 게 맞는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자유여행이 늘었고 스스로 '모험'과 '자유'를 위해 떠나는 여행이라고 자랑하는 여행기들 속에는 지극히 '보신적'인 모습들이 잠재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여행의 목적을 상실한 여행에서 남긴 것은 무엇이었는지 정말 그들은 '여행'으로서 만족감을 남길 수 있었는지 사뭇 궁금해졌습니다.

여행기를 검색해보거나 여행 책자를 보면 마치 결혼식 음식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어딜 보나 다 똑같습니다. 미국에 가면 모두 똑같은 곳을 가서 사진을 찍어 왔고 내용은 '그 곳에 나도 갔다'가 전부입니다. 게다가 여행 목적지는 거의 대부분 대도시 위주로 맞춰져 있으며 여행 계획은 인터넷 혹은 여행기에서 제시해준 '평판 좋은 곳'을 철저하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런 곳들은 대부분 '늦게'갈 수록 감흥이 떨어지기 마련이건만 주구장창 그곳만을 가서 기어이 사진을 찍습니다. 식사는 여행기에서 좋다고 말한 곳 혹은 맥도날드 같은 다국적 체인을 절대 벗어나지 않죠.

말이 자유여행이지 공짜로 가이드를 받은 '패키지 여행'이나 다름없는 이런 여행이 만족도가 높을 리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래서인지 자신에게 최면을 걸듯 가능한 많은 결과물을 남기려 애를 쓰죠. 사진을 아낌없이 찍는 것은 기본이고 그 사진과 함께 쓴 여행기에는 '정말 만족스러웠다는 느낌'을 자랑스럽게 써내려갑니다. '돈 하나도 안아깝고 정말 만족해'라고... 그러고는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사면 비싼 물건들을 잔뜩 사기도 하죠. 여행이라는 건 여행 그 자체에 돈으로 살 수 없는 무한한 가치가 있다고 그들 역시 말합니다만 말과 행동이 지극히 상이합니다.

여행기로 어떻게 생겼고 뭐가 어떻게 되어있고 그 음식은 무슨 맛이고 어떻게 만들어진다는 걸 다 알고 사진으로 다 본 곳을 내가 직접 가서 본 들 무슨 재미가 있을까요? 가서 본다고 그 사람이랑 다른 느낌이 들 가능성은 정말 극소수에 가까울텐데, 사람들은 마치 그 실망감을 애써 부정하려는 듯 다녀와서는 자신만의 여행기를 써내려갑니다. 마치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무리에 합류했음을 자랑스러워하듯 '나도 어디를 다녀온 1인'이 되었음을 세상에 공표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이죠. 명품 핸드백 인증샷과 유명 관광지 인증샷이 과연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성격과 입맛이 제각각이듯이 유명하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관광지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나 어딜 가든 만족도는 제각각일 수밖에 없죠. 패키지 여행을 만든 여행사에 커미션을 주는 거와 국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관광상품'에 돈을 쓰는 거나 기본적으로는 똑같습니다. 그건 여행이라고 부를 수 없죠. 그냥 돈을 주고 상품을 산 것과 다를 바 없으며 그렇게 산 여행이라는 상품을 즐기고 만족하는 방법 역시 비싼 물건을 사서 자랑하는 모습과 거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 일치하고 있거든요.

해외여행 1세대들이 고추장 같은 한국음식을 여행때 바리바리 싸들고 가며 한국 식당만 찾아다니는 모습에 경악하는 젊은이들을 많이 봐왔습니다만 지금의 젊은이들의 여행 역시 1세대에 비해 전혀 나아진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알고 있는 곳만 가고 검증되어 있는 것만 먹는 여행기에 적혀있는 대로 마치 내비게이션마냥 움직이는 그들에게는 여행을 즐길 자격도 그들에 행동에 여행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줄 이유도 없겠죠. 그들에게 필요한 건 여행의 즐거움보다는 돈을 썼다는 것을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에게 인증받고 자랑할 소재거리가 전부일테니까요.


학교 교실의 노스페이스 다운점퍼처럼...
거리를 거니는 여성들의 똑같이 생긴 똑같은 문양의 핸드백들처럼...

그렇게 오늘도 똑같은 장소에 인물만 달라진 사진으로 점철된 여행기...
아니 돈 썼다는 인증샷들이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위한, 미니홈피에 사진을 올리기 위한 여행...
이쯤 되면 주객이 전도된 게 아닐까요?
posted by RushAm 2010. 1. 15. 23:38
1. 삼성전자 실적발표가 한 2주쯤 남은 가운데에서 나온 이야기네요. 하필이면 낸드플래시 실적이 바닥을 치고 약간 올라오던 상황이었고요. 일면 어처구니없지만 이게 은행권 + 정부의 짝짜꿍이라면 이 안건에 기업이 안끼어들어있을이유가 없습니다. 굳이 삼성전자가 아니더라도 뭔가 사돈의 팔촌쯤 뒤지면 업체 하나가 나오겠죠. 곧 공기업에 특정 기업 USB가 대량으로 발주된다는 소식이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2. 진짜 엄밀히 따져서 USB에 공인인증서를 넣지 않는 분들이라면 30대 후반 이상의 고연령대이던가, 은행 혹은 금융권에 관심이 없거나, 컴퓨터 보안에 무지하거나입니다. 그들이 지금처럼 상황이 바뀌면 제일 먼저 어디로 달려갈까요? 용산? 아닙니다. 은행으로 달려갈겁니다. 조만간 은행에서 USB 메모리 (그것도 아주 싸구려 저용량 재고품 - 딱 공인인증서 들어갈만큼의 용량 10메가 미만) 를 시장가격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팔기 시작할거라는 거에 500원 겁니다. 일면 어이없을수도 있으시겠습니다만 공인인증서용 USB는 은행에서 사지 않으면 보안에 문제가 생긴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분이 우리 에상을 훨씬 상회할만큼 많을것이기 때문입니다.


3. 발표가 왜 하필 연초에 났을까를 생각해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보통은 공인인증서를 비롯한 은행의 모든 보안정책은 연말을 지나 연초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래서인지 공인인증서들도 대부분 연말 혹은 연초에 갱신기간이 몰려있습니다. 당장 폐기 후 재발급받는것보다 어차피 기한이 다 되었는데 USB로 해볼까?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 수 있는 적기인 셈이죠. 그런데 결국은 지난 해 아이폰 호환 문제, IE8, 각종 악성코드로 인한 수도 없는 전국적인 네트워크 마비를 경험했으니 뭔가 하지 않으면 욕을 먹을 것 같으니까 보안 대책을 내놓긴 했는데 결국 그게 '정부'가 직접 돈이나 노력을 들이는 게 아닌 이번에도 '국민'들이 100% 직접 해야 하는 수고를 끼치는 방안이 나온 것입니다. 물론 효과는 있으니 평균적인 수치 지표는 내려갈테고 정부는 그걸 자랑스럽게 국민들에게 내보이곘죠.


4. USB에 넣고 다닌다는 것은 또 하나의 신분증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예전에는 극히 일부만 들고 다녔다면 이 정책으로 인해서 이제 은행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USB를 '휴대'하고 다닐것입니다. 정부는 은행에만 공인인증서를 한정하지 않고 전자정부 관련된 거의 모든 부분에서 공인인증서를 이제부터 적극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는 '개인정보보호'라는 명목으로 공인인증서 인증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금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도) 즉 주민카드가 개인정보누출우려로 불식되고, 예산만 디립다 쓴 아이핀을 덮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로 공인인증서의 휴대 보급이 활성화되면 '편리성'을 이유로 이를 적극 도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5. 문제는 이런 흐름이 결코 '편리함'으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지금 정부의 행동을 생각하면 구리구리한데요. 주민등록번호는 이미 본인 확인의 힘을 잃었고 아이핀은 말할것도 없으니 현 정부가 이른바 '불순분자'를 온라인에서 찾아내는게 참 힘든 상황입니다. 아이피 추적도 PC방에서 하면 도무지 답이 없으니까요. (지금의 컴맹 정부로서는 멍석을 깔아줘도 아마 못할 듯) 그런데 이 공인인증서는 '금융보안'과 관련되어있다는 이유로 개인정보의 깊숙한 부분까지 서버와 연동된다는 아주 강력한 맹점이 있습니다. 만일 이 공인인증서가 주민번호를 대체하는 새로운 개인인증방식으로 정착된다면 물론 표면적인 개인정보누출은 많이 줄어들수도 있겠습니다만, 정부의 네트워크 장악은 시간문제가 되겠지요.


이번 정책은 결코 국민을 위한 정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부가 이번 정책에 있어 뭐 하나 하는 게 없으니까요 100% 국민 손에서 이루어지게 만드는 이번 보안 정책 개편은 만일 문제가 될 경우 모든 문제를 '국민'에게 덮어씌우기 위한 포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은행과 정부는 원래 '책임회피'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내공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이래저래 뭐 하나 새로워지는 게 없는 새해 벽두라서 씁쓸하네요.
posted by RushAm 2010. 1. 8. 06:24
은행 자주 이용하세요? 공과금 납부부터 예금 출금, 대출, 부동산에 방카슈랑스까지 은행을 저금하는 곳으로만 생각하는 분은 이제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이걸 좀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그만큼 은행의 수익원이 '기준금리'의 하락으로 인해 예치금의 대출사업만으로는 도무지 운영이 불가능해졌음을 의미하는데요. 이들이 서민을 단지 '자신들의 예치금 유치 수단'이 아닌 '본격적으로 상품을 팔아 돈을 벌어들이는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 불과 10년여전이라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에초 '서민'들에게 은행은 하늘과 같아서 예금은 꼬박꼬박 가져다 주는 것은 당연함에도 대출을 하사받는 건 아예 생각지도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IMF를 거치고 기업경제가 붕괴되면서 언제까지고 서민 이상의 신용도를 줄 것 같았던 기업대출이 서민 이하의 신용도를 갖게 되자 이들은 서민들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주택담보대출부터 카드찍어내기까지 서민들의 빚이 팡팡 늘어나던 시절이죠. 당시 1가구당 부채는 1천만원 수준이었습니다. 지금은 4,470만원으로 4배가 뛰었고요. 은행이 급속도로 붕괴되면서 BIS비율을 높이기 위해 카드와 단기채권을 마구 찍어냈으며, 때마침 정부도 여기에 맞장구를 쳐주며 주택경기를 이용해 자금회전율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하고 대기업 역시 내수 경기 침체를 탈피하기 위한 오토리스, 무이자 장기 카드할부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은행이 서민을 바라보는 관점이 '예금을 유치해야 하는 대상'에서 '직접적으로 돈을 뜯어내야 하는 대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속속 자리잡게 된 것이 ATM과 폰뱅킹, 그리고 인터넷 뱅킹이었죠. 그런데 이들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국민들의 편리성을 증진시킨다는 취지보다는 자동화쪽 수수료를 낮추고 창구쪽 수수료를 높인다는 취지가 있었습니다. 인건비를 줄이고 직원들의 근무 시간을 줄임으로서 업무 회전율을 높이고 진짜 창구가 필요한 고객들의 대기시간을 줄인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결과부터 말하자면 창구 업무는 그때에 비해 전혀 줄지 않았습니다. 기본 예금 온라인 업무는 줄었습니다만 은행원이 보험과 카드 심지어는 펀드까지 팔아야하다보니 이들 업무의 특성상 고객 한 명당 들이는 시간이 결코 적지 않았고 지금도 은행을 가면 대기 시간은 예전에 비해 대기시간이 그닥 줄어든 느낌은 없죠. 결국 이들은 '수수료'라는 것을 정착시키고 효율적으로 뜯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각종 자동화 기기와 인터넷 뱅킹을 만들어 활용한 셈인데요. 당시에는 창구에서 입,출금, 송금 업무를 하던 사람이 많았으니 많은 쪽의 수수료를 무겁게 부과하는 편이 수익창출에 훨씬 효과적이었음은 두말할필요가 없겠죠.

그러던 중 생각보다 국민들이 빠르게 ATM에 적응하고 때마침 은행의 부실이 만천하에 까발려질 IMF라는 사건이 터지니 은행들이 부실을 매꾸느라 정신이 없어집니다. ATM에 투자한 비용은 분명 재무회계상으로 당시 은행의 매출 대비 적자가 나지 않는 선에서 투자가 이루어졌음이 분명하건만 이제와서 ATM의 투자금을 회수하겠다며 ATM에 수수료를 부과하기 시작하는데요. 그러고는 인터넷과 폰 뱅킹은 수수료가 ATM보다 적거나 무료니까 그쪽으로의 이동을 유도합니다. ATM보다 훨씬 사용이 복잡하며 보안의 위험이 있을 수도 있건만 단지 수수료 무료의 수단을 하나 더 만드는 것으로 ATM수수료를 올리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행태를 보였던 것이죠.

은행의 전략은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고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수단에 가장 많은 수수료를 물리는 것으로 수수료 수익을 챙겨왔던 것이죠. ATM도 폰뱅킹도 인터넷 뱅킹도 도입 당시에 늘 있었던 이야기는 '은행측에서도 비용이 절감되는 만큼 고객들에게 그 절감된 비용을 환원해주는 차원'에서 만들었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ATM이 도입되었을때는 창구 수수료가 뛰었고 인터넷뱅킹이 도입되었을때는 ATM의 이체 수수료, 출금 수수료가 갑자기 생겨났습니다. 갑자기 들지 않던 비용이 다른 대체 수단이 생기자마자 마구 생겨나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죠. 늘 주던 월급에서 ATM기 생긴 직후에 창구업무 건별로 수당이라도 생긴 것일까요? 어째서 알 수 없는 은행의 부실한 재무관리로 인한 변명을 고스란히 국민이 감당해야 하는 걸까요? 여기에 공적자금까지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네요.

인터넷 뱅킹이 대중화가 되니 어김없이 인터넷 뱅킹 수수료도 올립니다. 이번에는 변명이 지겨운지 설비 투자비 이야기와 함께 처음에는 계도기간이어서 출혈투자를 감수했지만 이젠 사람들이 잘 사용하니 투자금을 회수하셔야겠다네요. 그런데 그 많은 투자를 했다는 인터넷 뱅킹에 대해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게 만족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데요. 빈번히 일어나는 ACTIVEX 충돌로 인한 컴퓨터 다운은 누구나 한번쯤은 겪은 일이고 오죽 프로그램 완성도가 떨어지면 같은 회사에서 만든 같은 프로그램이 은행별로 버전이 다르다는 이유로 두번 설치해서 지들끼리 충돌하는 일이 일어나는건지, 과연 그 투자했다는 금액이 어디로 어떻게 투자가 되었는지 심히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요. 첫 번재로 은행은 보기에는 최첨단을 달리는 것 같지만 내부를 살펴보면 은행만큼 낡아빠진 개념을 가진 이사진을 꾸리고 있는 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은행이 직접 운영한다는 인터넷 뱅킹을 정작 은행 자신들은 내부 시스템조차 잘 모르고 있는 게 현실이죠. 대한민국 굴지의 은행들의 제법 높은 위치에 있는 실무진들을 직접 만나볼 기회가 적지 않았습니다만 이해는 커녕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은행 내부에 인터넷 뱅킹 보안 팀을 직접 꾸리기보다는 책임을 떠넘길 대상을 만드는 식으로 외주 팀을 만드는 경우가 많으며 정치권의 수혜를 받은 몇몇 낙하산 업체들이 리베이트를 따내 반독점을 벌이고 있는 것이죠.

당연하겠지만 이들은 버전업을 하려는 노력도 소프트웨어 충돌로 인한 기술지원에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이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송금사고만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과 새로운 바이러스나 스파이웨어 보이스피싱 등의 이슈 정도거든요. 이들이 그 뉴스에 관심을 갖는 건 가지고 있는 소프트웨어가 버전업을 해서 해당 바이러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게 아니라 해당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는 또 다른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팔 수 있기 때문입니다. 키보드 해킹 사건 뉴스가 보도되자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이 새로 깔리고, 보이스 피싱 사건으로 떠들썩하자 '노피싱'이라는 프로그램이 깔리더군요. 보이스 피싱을 인터넷 뱅킹으로 하는 멍청이가 어디있답니까. 아니 그보다 그게 보이스 피싱을 어떻게 막는다는 건지 설명도 없더군요.

그런데 이 문제는 '은행 탓'만은 아닙니다. 소수이기는 합니다만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들 중에서도 그렇게 많은 프로그램이 깔려야지만 '안심'하는 분들이 분명 계시기 때문이죠. 기본적으로 우리나라가 IT강국 강국 합니다만 지금도 초등학생들 중 게임을 어떻게 충돌없이 깔거나 핵을 어떻게 기동시키는 지는 잘도 알면서 PC에 대한 기초지식을 아는 인구는 점점 줄고 있습니다.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는다고 해서 컴퓨터를 반드시 잘 아는 건 아니거든요. 아무튼 이렇게 은행이 갖가지 ACTIVEX로 성의(?)를 보이면 '아 이 은행은 이 정도로 보안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구나'하며 은행의 노고를 치하(?)하는 분들도 결코 적지 않기 때문에 아니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꽤 많기 때문에 은행이 아직도 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ACTIVEX가 윈도우 레지스트리를 씹어먹을 수 있다는 아주 간단한 지식을 아는 사람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적다는 것이죠.

은행들은 받는 수수료만큼, 투자했다는 설비만큼 얼마만큼 고객들의 개인정보, 금융자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 그 이전에 책임을 질 생각 자체는 있는 걸까요? 고객의 시간과 그로 인한 기회비용을 너무 당연하게 무시하면서도 자신들이 헛발질로 들인 돈은 철저하게 회수하겠다는 행태는 10년째 이어오고 있는 지금으로부터 몇십년이 더 흘러야 나아지는 걸까요? 우린 언제까지 이름만 다르지 하는짓은 뭐 하나 다를게 없는 은행들로부터 다른 나라 국민들은 전혀 듣도보도 못한 불편과 피해를 겪어야만 하는 걸까요? 자신들이 지금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것인지 그 일이 얼마만큼의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은행들이여 정신차리십시오. 언제까지 그러고 살다가 한방에 훅갈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