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1. 10. 21. 17:45

우리나라에서 흔히 '유력 기획사'로 꼽히는 기획사들의 이름을 나열해보면 기본적으로 ***엔터테인먼트라는 형태가 대부분입니다. 더 재미있는 건 쓰이게 되는 영어약자 혹은 한글이 대부분 대표이사, 혹은 핵심 실세의 이니셜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인데요. 물론 자신의 이름의 철자를 딴 기획사를 만드는 건 이 업계 종사자들이라면 한번쯤은 꿈꾸게 될 로망이긴 합니다만,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조금은 치열한 이바닥의 속사정이 숨어있습니다. 바로 '경영권 방어'가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 그것인데요.


여러분도 잘 아시는것처럼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소속 아이돌이 이른바 '대세'가 되었을 경우 벌어들이는 수익이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거의 회사 시가총액을 잠식할만큼의 경제가치를 가지고 있는 아이돌이 나오는 것도 이제 드문 일은 아니니까요. 문제는 이들이 '이 정도'로 컸을 때의 입지입니다. 이미 회사를 먹여살리고 있는 이상 단순히 '노예'가 아닌 그 벌어들이는 만큼의 경영권을 직접적으로 요구하거나 혹은 별도로 외부 자금을 모아 자사주를 매입하여 회사 경영진을 뒤집어엎는 일도 가능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업계는 불공정 계약을 못박고, 재계약에서 경영권 참여를 최대한 배제시키는 것은 물론 재계약에 실패할 경우 그들의 가치를 최대한 떨어뜨리기 위해 방송출연 금지, 활동 제한 압력 등 온갖 수단과 조폭 수준의 끗발을 동원합니다. 여기에 자금력을 무기로 덤벼드는 수많은 신생세력들의 주식매입을 통한 회사 매수 움직임까지 견지해야하니 내우외환을 잠재우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골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죠. 이들 엔터테인먼트사가 모두 창립맴버 핵심인물의 이니셜을 따고 있는 것도 브랜드 가치를 이용한 경영권 방어의 일환인 것입니다. 박진영이 없는 JYP, 이수만이 없는 SM 상상이 가시나요?

제일 첫 편에서 언급했던 이른바 '서태지 계보' 중 그의 음악 세계를 그대로 발전시켜 계승한 세력으로 소개해드리게 될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는 어떻게 보면 경영권 방어에 가장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찌감치 상장을 통해 주식회사의 기틀을 잡은 SM이나 바지사장 체계로 전환시켜 경영권 침탈의 의미를 상쇄시킨 JYP와는 달리 YG는 아직도 흔한 음악 레이블 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YG는 그런 체게를 지금까지도 유지시키는 와중에도 아직까지 소속가수의 계약 분쟁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물론, 경영권 문제에 있어서도 이사진 교체나 내부 승진에 있어 불협화음이 외부로 누출되지 않으며, 소속 가수의 스캔들에 있어서는 역으로 회사가 전면에 나서 케어해주는...지극히 '이 바닥'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사례들을 속속 만들어내고 있기도 합니다. 어째서 이런 기형적인 기획사가 대한민국에 탄생하게 되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죠

말해줘...

본 연구에서 이전에 다루었던 SM이나 JYP의 경우 초창기 데뷰시킨 아이돌들이 대부분 크게 성공을 거둔 반면 YG의 경우 양현석이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후 야심차게 육성하여 발표한 첫 그룹 '킵식스'가 괜찮은 음악적 완성도와 식지 않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버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맙니다. 그 뒤 후속 그룹으로 발표한 지누션 역시 데뷰싱글 '가솔린'이 제목만큼의 폭발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2연패를 거두게 되는데요. 당시 이 두 그룹의 소속사 현기획 (YG의 전신)은 지금의 YG의 운영 체계와는 사뭇 달랐던 것 같습니다. 마치 JYP의 그것처럼 양현석 본인이 직접 기획, 제작, 작곡, 프로듀스까지 모든 것을 해결하는 형태였다고 전해지는데요.


당시 양현석의 제작 능력은 이미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충분히 검증이 되어있었다는 점에서 JYP와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만, 문제는 그가 당시까지 은퇴한지 몇 년째 되어가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다소 정체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킵식스'의 경우 그가 서태지와 아이들 당시에 작곡했던 '이 밤이 깊어가지만' 같은 느낌의 곡들과 큰 색깔적 차이를 보여주지 못했고, 지누션의 가솔린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이 추구하던 힙합 스타일에서 크게 나아진 느낌이 없었거든요. 서태지와 아이들은 언제나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새로움을 추구했기 때문에 가치가 있었지만 그 자체만으로 완성도가 높다기보다는 '당대 최고'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그룹이었기 때문입니다. 차로 따지면 90년대 명차같은 느낌일까요?

이 '90년대 명차' 현기획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반전을 맞게 되는데, 바로 듀스의 이현도가 작곡하고 외부 가수 엄정화의 피쳐링 참여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시도)한 가솔린 후속곡 '말해줘'의 메가톤급 히트입니다. 이전 가솔린 당시의 어두운 조명 속 '신비주의' 틱한 무대에서 밝은 조명과 편안한 옷차림, 그리고 가벼운 안무에 보컬의 피쳐링까지... 양현석이 추구하는 그런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스타일의 이 곡이 바로 대 성공을 거둔 것이죠. 이 곡으로 현기획은 일약 흑인음악 전문 레이블 YG엔터테인먼트로 재편되는 혁혁한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만, '전설'로 치부되는 양현석의 음악 세계가 음악계에서 거부당했다는 점은 대내외적으로 큰 충격이었습니다.

서태지보다 나이가 많았던 아이들...


주목할만한 점은 이 사건으로 인해 양현석이 자신의 음악적 자존심이 짓밟힌 상황에서 기획 능력에 대한 한계를 직감하고 제작 일선에서 영향력을 스스로 축소시켰다는 사실입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외부 작곡가에 의해 엇나간 히트를 했을 때의 대처와는 사뭇 대조적인 부분인데요. 양현석 개인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혼자 모든 능력을 소화한다는 것, 특히 최신 트랜드를 읽어내고 그 트랜드를 반영하는 능력에 한계를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그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남긴 계보를 본격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하는데요. 다름아닌 '음악의 분업화'입니다.

당시 가요계에서는 작곡의 경우 '작곡가의 개인 작품'으로서의 성향이 강했습니다. 그만큼 작곡이라는 영역은 굉장히 아이덴티티가 강할 수 밖에 없어서 분업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것으로 치부되곤 했는데요. 그런데 엄정화, 이현도, 지누션 이 서로다른 3개의 아이덴티티가 어루어진 '말해줘'는 그 짜임새에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곡 완성도와 시장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데에 성공했던 것이죠, 이는 지금까지 한국 가요계가 추구했던 흑인음악의 한계를 한단계 더 극복해냈고, 그 수혜는 입은 YG에 난세를 떠돌던 흑인음악의 인재들이 모이게 됩니다.

 특히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히트곡을 양산해오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perry의 영입은 '말해줘' 이후 달라진 YG의 상징과도 같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는 힙합 R&B전문 작곡가이면서 동시에 크루 작곡 시스템을 이해하고 크루 조직의 어떤 역할이든 소화할 수 있는 전천후 프로듀서였습니다. 그런데 말해줘 이후 많은 수의 분업 시스템을 위한 인재를 모을 것으로 예상했던 YG는 perry 이후 이렇다할 외부 음악 제작 인재를 모으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신인 아이돌 발굴에 매진하는 정책으로 회귀하게 되는데요. 이처럼 연습생 인재 풀을 확대하는 데에는 YG의 이유있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말해줘 이후 현기획에서 재편된 YG는 창립 당시부터 '힙합 전문 레이블'을 표방하며. 말해줘 이후 지누션의 음악 색깔 역시 흑인음악 장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이후 YG에서 나온 수많은 그룹들 중 메인이벤터에 해당하는 그룹들의 음악 성향은 단 한번도 '외도'를 한 적이 없는 완벽한 흑인음악 전문 이미지를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이는 아이돌 연습생을 꿈꾸는 이들에게 상당히 큰 선택적 메리트를 제공하는데요. 바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정확히 골라서' 끝까지 책임지고 그 음악을 할 수 있도록 믿고 연습생 생활을 견딜 수 있다는 신뢰감이 그것입니다.

흑인 음악을 하고싶어서 들어온 연습생들은 연습생 기간동안 다른 음악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게 되고, 지누션과 perry등 그 음악에 잔뼈가 굵을대로 굵은 훌륭한 멘토들이 이들을 키워내는 환경해서 그들은 가창력이나 댄스 실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음악 성향을 새롭게 다듬어나가는 등 아티스트적인 역량까지 함께 배양시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되는 것이죠.

하고 싶은 음악, 그리고 그 음악만을 몇 년 이상 꾸준히 파고드는 집중력을 갖추게 되면 싫든좋든 그 음악을 소화하고 심지어 활용, 재생산하는 데에 있어 자립적이고 독보적인 능력을 갖추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퍼프대디, 넵튠스 등 미국 유명 흑인음악 프로듀서들이 추구하는 육성 방식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무결성이 검증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여기에 YG 전체적인 분위기가 이를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분위기로 가닥을 잡으면서 단단해져왔던 것이죠.

양현석의 '음악적 자존심 폐기' 에서 시작된 이 극적인 변화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게 될지는 당시 그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웠습니다. 서태지와 듀스의 은퇴와 SM, DSP의 득세로 한동안 제한적인 완성도의 아이돌 음악의 음악시장 지배가 예견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이들의 육성 방식에서 탄생한 결과물이 시장에서 완성도만큼의 결과를 바라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조심스럽게 현기획이 아닌 YG사단의 첫 작품이 세상에 등장합니다. 어떤 결과를 낳게 될 지에 대한 긴장감과 환희 속에서...



中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