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1. 8. 4. 05:55
god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만 박진영은 '고생'을 계급화시키는 조직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길고 지겹기로 유명한 JYP의 연습생 기간은 '실력'을 키운다기보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의무고생'이라는 개념이 강한 편인데요. 왜냐하면 SM처럼 음악최우선주의를 표방하거나 특정 국가의 아이돌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는 식으로 회사 체계를 잡아나가는 일관성이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JYP에는 특별한 육성과정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그룹 기획도 대단히 즉흥적이며 보수적이고 어떤 철학이나 컨셉이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기때문에 JYP의 연습생들은 상당히 오랜 기간 이 성향을 파악하는 데 상당히 애를 먹게 되는데요.


이런 생지옥이 따로 없는 JYP에 오래 붙어있으며 이른바 '의무고생기간'을 '비'가 훌륭히 마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물론 불행한 가정사도 있었고 그 이전 첫 데뷰 실패 이후의 생긴 악바리같은 근성 때문이기도 했죠. 아무튼 그가 우여곡절끝에 데뷰를 하고 지금의 월드스타에 반열에 오르게 도는 것까지는 잘 알려진 사실인데요. 그런데 지금은 사실 '비'라는 존재가 꽤나 신화와 같은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긴 합니다만, 의외로 비의 성공은 상당히 얻어걸림성이 강한 편이었습니다.

그의 얻어걸림을 증명할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가 당시 남자 솔로 가수의 극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었던 절대지존 '유승준'의 병역 문제로 인한 급작스런 퇴장입니다. 이미 남성 솔로 가수로서는 최고의 위치에 오르며 가요계와 예능을 지배했던 그의 퇴장으로 인해 이른바 '짐승남'아이콘에 공백이 생기게 되는데요. 유승준이 가졌던 시장은 기존 아이돌 그룹이 10대들의 코묻은돈을 뺏는 시장이 아닌 20대 이상의 실구매층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입니다만 그만큼 진입 장벽이 높고 기준이 까다롭다는 문제가 있었죠. 재능적인 측면에서 거의 완벽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만큼 제대로 된 유망주가 나오지 않는 한 투자 대비 리스크가 엄청나기에 기존 기획사들도 군침만 삼킬 뿐 섣부르게 진입을 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던 것이죠. 유승준의 독주는 이런 이유로 가능했으며, 그의 퇴장 이후 기라성같은 기획사들이 그의 공백을 눈앞에서 지켜보면서도 무주공산의 시장을 가져올 히든카드를 내놓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난리통 속에 (정말 유승준을 대체한다는 생각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비'의 데뷰가 이루어졌지만, 사실 '비'는 '유승준'에 비하면 데뷰 당시의 임팩트가 상당히 부족한편이었습니다. 데뷰 직후부터 유명 통신회사의 CF를 찍고, 박진영이 손수 정성스례 푸시를 해주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만, 안타깝게도 가창력이나 댄스 실력은 물론 20대 이상 여성들을 사로잡을 가장 큰 포인트인 '페로몬'이 너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었으니까요. 일단 나이도 너무 어렸고 딱히 잘생겼다고 말하기 힘든데다, 당시에는 이렇다할 자기만의 스타일이 완성되지 않았기에 가진 포텐셜을 제대로 폭발시키지 못했다고 봐야할것 같습니다. 당시 비의 이미지는 어떻게 보면 동년배인 10대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는 수준에 그치는 수준이었고, 의욕적으로 출연한 드라마 역시 10대 학원물의 성격이 강했으니까요.


그러던 도중 비가 천운으로 얻어걸린 드라마 작품이 바로 '풀하우스'입니다. 이 드라마는 '동거'라는 소재와 순정만화의 대가 원수현 작가의 원작이 가진 성격으로 인해 미니시리즈 방영 시간대 주요 시청 결정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20대 후반 이상의 여성 시청자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게 되는데요. 여기에는 물론 이전 작품 상두야 학교가자의 정극 경험과 음반 시장에서 거둔 어느 정도의 성공을 바탕으로 캐스팅이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베재하지 못합니다만, 사실 풀하우스 제작 당시 남자 연예인의 대대적 병역 비리가 터지며 20대 젊은 남자 배우들이 줄줄이 군대에 끌려가버리는 통에 드라마 업계에 엄청난 남자 배우 기근이 겹친 시점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과연 비의 캐스팅이 이루어졌을지는 의문입니다.

당시 풀하우스의 경쟁작으로 대두되던 '형수님은 열아홉'에는 무려 '윤계상'이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풀하우스의 메가톤급 성공은 드디어 20대 여성 팬층이 비를 '유승준'을 대체할 수 있는 '남자'로서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풀하우스에서 보여준 무수한 상의탈의씬 역시 이러한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요. 그는 풀하우스로 인해 20대 팬층에 거의 완벽하게 안착한 상태였고 이런 변화를 박진영이 놓칠리 만무했습니다. 사실 데뷰 당시부터 풀하우스 이전까지의 앨범이나 활동 컨셉에 있어 어떤 캐릭터를 부여받기보다 단순히 남자솔로가수로서 '음악성'(가창력이 아닌)을 인정받는 수준에 그쳤던 그가 박진영의 집중 관리를 받은 직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색깔의 캐릭터로 돌아오게 되는데요.



2집 태양을 피하는 방법과 3집 It's raining의 뮤직비디오 영상,
음악적으로도 확실한 멜로디 라인이 존재했던 태양을 피하는 방법과는 달리 It's raining은 그야말로 박진영식 '랩'으로 점철되어 멜로디라인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곡을 선보였다. 이전 박진영 본인이 스스로 말한 것처럼 이런 곡은 마음만 먹으면 하루만에라도 간단히 뽑아낼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실제로도 노래 자체보다 그의 호흡 퍼포먼스가 대중들에게 부각되어 각인되었음은 물론 이를 충분히 의도적으로 노린 듯한 뮤직비디오와 더불어 실제 무대에서의 상의 탈의 및 의상의 기본 노출 빈도를 비약적으로 높이며, 풀하우스에서 터진 20대 여성팬층을 흡수하는데 총력을 다한다.



풀하우스 종영 1개월만에 발표된 비의 3집은 그의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는 역사적 의미 이외에도 JYP로 하여금 두 가지 큰 역사적 흐름의 변화를 야기시키는데요. 그 중 하나가 上편에 언급했던 'god'의 5집 실패 직후의 은퇴 해체입니다. 그들의 실패와 동시에 성공을 거둔 비의 사례는 이제 막 탄생한 JYP의 향후 방향성과 색깔을 결정짓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죠. 이는 박진영이 '비'를 통해서 '음반 시장'이 급격하게 음악 자체를 소비하는 것에서 '캐릭터'를 소비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이에 대응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만, 이에 대한 속사정은 조금 복잡합니다.

먼저 god와 비 사이에 있던 박진영을 논하기 전에 그가 가수를 키우기로 결심한 동기, 즉 대의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이른바 '팝송 키드'라고 불린 세대인데요. 때문에 그의 음악은 어딘가모르게 그의 어리고 젊었던 시절 한국 뿐만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던 음악의 감성이 스며있습니다. 그의 음악 패턴은 기본적으로는 '복고'를 추구하지만 '창작'을 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가능하면 국내에서 공전의 히트를 거둔 음악 포멧을 사용하기보다는 이른바 '미국 로컬 시장에서의 복고'를 추구하는데요. 기본적인 줄기는 같으면서도 당시 한국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이른바 '매니악'한 음악을 들여와 리폼하는 형태가 대부분입니다. 흔히 박진영이 표절 시비가 붙는 곡들이 대부분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이라는 점, 그리고 그 표절 시비가 의외로 아슬아슬하게 이슈를 매번 이탈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런데 이 복고라는 키워드와 '팝송 키드'로서의 음악적 감각을 통해 창작된 음악은 그 개성이 분명하고 국내 시장에 한정된 '신선함'을 줄 수 있다는 반면에 레파토리가 매우 제한적이어서 '신선함'을 준 이후를 이끌어나갈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음악이 아무리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이고 우리나라가 그들의 음악 센스보다 몇년을 뒤진다고 해도 어쨌든 옛날 곡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에 아무리 샘플링을 세련되게 리폼한다고 해도 기본 베이스가 구식이라는 한계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좁다는 점도 문제였죠. 한마디로 음악적 변신을 시도하기가 매우 까다롭다는 것인데, 0부터 새로 써내려가는 순수 창작보다 기존에 있는 음악 포멧을 리폼하는 정도로 새로움을 어필하는게 훨씬 힘들고 버거운 일이라는 것을 박진영은 꽤 오랫동안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초반 2집, 3집까지는 가지고 있는 팝송 키드의 레파토리로 신곡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지만 4집,5집까지 점점 롱런하게 되면 '음악 컨셉'만으로 새로움을 보여주기 어려워진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가 비 3집의 가공할만한 성적으로 어찌보면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새로운 자신의 능력과 그에 대한 시장성을 깨닫게 됩니다. 음악적으로는 이미 '순수 창작'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만큼 고지식화가 정착된 그였지만 '퍼포먼스'는 얼마든지 '순수 창작'이 가능할 창작 에너지가 충만했던 것이죠. 여기에는 그가 거의 기본 베이스 이외에 멜로디 라인을 거의 손보지 않은 채 랩으로 떡칠한 날림작 'It's raining'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는 점이 주효했습니다. 비의 3집을 듣는 많은 사람들은 비의 호흡 퍼포먼스에 열광했을뿐 음악이 급조된 날림이었다는 걸 인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그가 만든 안무와 퍼포먼스는 음악 이상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어내며 그 상품성을 입증해냅니다.

비 3집 이후 JYP에 몰아닥친 변화는 박진영의 프로듀스 컨셉의 변화와 일치한다. 이 새로운 컨셉을 잘 보여주는 두 그룹 원더걸스와 2PM은 모두 곡 초반에 거의 모든 승부를 걸듯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내세워 관객기선을 제압하는데 반해 곡 자체는 초반 퍼포먼스에 비해 다소 김이 새는 느낌을 줄 만큼 완성도가 떨어진다. 음악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 자체만으로 뭔가 '새롭다'라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박진영의 이같은 '안무' 혹은 '퍼포먼스' 제작 능력에 의한 성공은 단지 비의 풀하우스 버프처럼 우연히 시장의 흐름에 맞아떨어진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박진영은 음악 제작 능력 이상으로 안무와 퍼포먼스 제작 능력이 뛰어났으며 그것이 음악만으로 인정받았던 가요계의 판도를 바꿀 만큼 엄청난 '상품성'을 가질 수준의 완성도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의 안무는 지금까지 '춤'을 반드시 '음악'에 따라붙는 곁다리에서 음악 없이 안무 자체를 하나의 상품으로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반열에 올릴 만큼 혁신적이었는데요. 실제로 원더걸스의 '텔미', '노바디'에서 보여준 그의 안무 콘텐츠는 [곡 중심/안무 곁다리]의 판도를 적어도 그가 연출한 무대에서만큼은 [안무 중심/곡 곁다리]로 역전시키는데 성공합니다. '음악'없이 출 수 있는 춤, 음악이 없어도 충분히 매력적인 안무, 그가 만드는 안무가 단지 시기적인 운을 타고난 것이 아닌 언제 나와도 성공할수밖에 없는 가치가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한계에 봉착했던 새로움에 대한 과제도 해결했음은 물론 대안으로 내놓은 컨셉이 대박을 터뜨리는 가운데 JYP의 앞날에는 별로 거칠 것이 없어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음악적 감각과 높은 상품적 포텐셜을 가진 그만의 독보적 안무 제작 능력으로 국내 가요 시장을 지배해나가는 JYP에 점차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하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단지 그의 이름을 건 JYP라는 회사 이름 때문에 그들이 위기를 맞게 되리라곤 당시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예상할수도 없었습니다.

下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