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1. 7. 25. 02:38
SM엔터테인먼트 도입부분에 들었던 서태지 계보에서 갈라져나온 세 가지 세력이 있었다는 말씀을 드렸었죠? 그의 음악을 인정하고 필요한 부분을 취했던 쪽이 SM엔터테인먼트 쪽이었다면 이번에 다루게 될 JYP 엔터테인먼트 (이하 JYP)는 서태지의 음악을 극렬히 비판하며 좋게 말하면 독자적인 노선, 나쁘게 말하자면 그의 음악과 반대되는 성향만을 골라서 간다는 식으로 자존심을 지켜왔던 기획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서태지가 '일본통'이었다면 JYP는 자칭 '미국통'이었기 때문에 에초 흐름의 급이 달랐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난 노는 물이 달라!


JYP는 이른바 1인 기획사로 시작하여 간간히 태흥기획이나 싸이더스를 통해 프로듀서로 소속, god를 기획,배출하는 등 프로듀서로서 명성을 쌓은 뒤 별도의 기획사로 독립하게 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지금도 그는 그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기보다는 프로듀서로서의 활동을 쌓고 기획사는 그의 명성에 의존하여 기획사명을 바꾼 형태가 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어떤 회사로서의 체계는 잡혀있다고 하더라도 박진영이 실무이사급은 될지언정 직접적인 경영 즉 CFO에 간섭받을 가능성이 있는 권한을 갖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돈에 욕심이 없었다거나 하는 부분은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리만큼 경영실권을 회피하는 행보를 보이며 기획 그 자체에 집중했던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Post Seotaji

이런 이유로 JYP는 스타들로 인해 브랜드 가치가 높아진 것이 아닌 이미 'JYP'라는 스타 프로듀서의 브랜드 가치를 등에 업고 탄생한 기획사라는 점에서 기존 기획사들과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물론 이는 JYP의 독립기획사 설립이나 경영권 참여를 최대한 배제하고 자신의 이름을 적극적으로 내세운 전략이 있었는데요. 물론 일개 가수가 새로운 가수를 만들어낸다는 단순한 이슈만으로는 그다지 주목을 받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람들이 박진영을 단순히 좀 지저분한 스타일의 댄스 보컬리스트가 아닌 음악적 조예가 깊은 아티스트로 인정하게 된 게기가 하나 있었는데요. 다름아닌 음악 대통령 '서태지'를 공개적으로 디스한 거의 최초의 가수라는 이력입니다.
 

서태지가 우리나라에 들여온 (당시의 표현 그대로) '랩'이라는 장르는 국내 음악계에 혁명이라 일컬어질만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이 서태지의 음악을 비판한 비평가나 음악 전문가들은 박진영 이외에도 제법 있었는데요. 그런데 그들이 주장하는 비평의 내용을 살펴보면 '악보도 없는 음악이 무슨 음악이냐', '컴퓨터 음악은 인간미가 떨어진다' 같은 지극히 보수적인 시각에서 새로운 것을 무조건 거부하고 배척하는 식의 비판이 대부분이었습니다만 박진영은 단순한 거부감 표출이 아닌 서태지의 음악 장르 자체 완성도에 대한 비판 시각을 가지고 접근했다는 점이 이들의 비판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던 것이죠.

1995년 11월 1째주 SBS 인기가요 1위 후보 발표장면, 서태지 4집 활동 당시 이렇다할 가수들은 전부 활동을 미루거나 자취를 감추었던 것과는 달리 박진영은 '청혼가'를 내놓으며 서태지와 대등하게 맞서는 쪽을 택했다. 그는 결과를 떠나 서태지를 피하지 않았다는 이미지를 남기는데 성공하며 서태지 은퇴 이후 박진영이 그 반사이익을 누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가 모 방송에 나와 서태지의 '난 알아요'부터 쓰인 랩뮤직 라임들이 거의 대부분 '랩'의 장르적 룰을 어겼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 대표적인데요. (무려 이에 대해 대학 논문까지 내려고 했다는 첨언까지 덧붙였었다) 사실 이 비판의 내용이 정확했는지 아닌지를 떠나서 서태지가 하는 음악은 지금까지 없었던 음악이었기때문에 무조건 그가 하는 음악에서 태초의 신비만을 느꼈을 뿐 그가 틀렸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대중에게 있어 박진영의 이러한 '학구적'인 모습은 그를 일개 '댄스가수'에서 어쩌면 서태지 이상의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티스트로 대우해주게 만들어주는 배경이 됩니다. 다만 당시 음악계는 서태지가 틀렸는지 아닌지조차 판단할 수 없을정도로 이 '랩'이라는 장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전무했던 상황에서 '박진영'이 날린 서태지의 음악에 대한 비평이 정말 맞는 말인지 판단할 수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겠지만 말입니다.


신이 될 수 없었던 아이들...

이런 박진영이 키우는 아티스트, 게다가 서태지가 떠난 공백의 충격파를 흡수하기엔 단순히 음악적 한계가 분명한 아이돌로 매워지고 있었던 그 공백을 대놓고 노린 그룹 god는 음악적 재능이나 맴버들의 가치 이전에 박진영이라는 네임벨류로 먼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음악적 색깔에서 그의 느낌이 묻어나온다는 평가에서부터, 김태우와 박준형이 균형을 맞춰주는 R&B와 정통랩의 조화까지, 그동안 컨셉이 맞추는데 급급해 불안한 음악적 완성도를 용인할수밖에 없었던 SM의 음악에 점차 질려가고 있을 무렵 등장한 god의 타이밍은 정말 절묘했습니다. 이들은 아이돌은 무조건 키크고 잘생겨야 성공한다는 편견을 벗었음은 물론 대형 전문 기획사의 버프가 없이 프로듀서 한 명의 능력과 명성만으로 아이돌 그룹의 궤도진입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컸다고 평가할 수 있었죠.

god는 당대 아이돌 중 가장 슬로우스타트를 한 사례에 손꼽힌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god의 기획사였던 싸이더스는 복합 엔터테인먼트 그룹이었던데다가 god를 전후해서 가수는 고사하고 이렇다할 연예인을 키워내거나 소속 운영한 전례가 손꼽힌다는 점에서 더욱 그럴수밖에 없는데, 이런 점은 god이후 싸이더스의 행보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그런데 당시 god를 박진영이 기획하고 곡을 주고 키워냈다는 인식 때문에 싸이더스의 역할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만, 사실 god가 국민그룹이 되기까지 싸이더스가 했던 역할을 무시하기 힘듭니다. god가 실질적으로 국민그룹이 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god의 육아일기까지 god를 이끈 건 박진영의 버프가 아닌 싸이더스의 인맥과 역량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기 때문이죠. 실제로 싸이더스는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MBC 예능국과의 라인을 매우 탄탄하게 이어오고 있기 때문에 지금으로 치면 칸무리프로그램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만한 (지금도 지상파에서는 상상도 할수없는) 그룹 이름을 내건 주말 가족시간대 버라이어티 편성을 안겨다주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싸이더스는 단순히 가수 매니지먼트사가 아닌 영화, 음악, 공연예술, 방송연예에 이르기까지 성역이 없는 복합엔터테인먼트사를 표방했기 때문에 가수를 직접 육성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만, 이미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신인을 집중투자 후 적절히 자금을 회수하는 능력이 매우 탁월합니다, 물론 이에 대한 노하우도 풍부하죠.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이바닥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점과 소속 연예인들의 근속기간이 업계 평균 이상이라는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즉 소속 연예인이 어떻게 해야 '회사'차원에서 이익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경영수완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러나 이런 싸이더스의 성향은 아무래도 전문 가수 매니지먼트사의 개념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던데다 그만큼 음악에 대한 가치를 홍보 소모품이나 상품 요소 정도로 치부하는 식의 보여지는 가치관 때문에 SM을 비롯한 많은 음악 전문 매니지먼트사의 갖은 비판과 견제를 받기 시작하는데, 이는 싸이더스에 협력하고 있는 박진영이라고 해서 불만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싸이더스가 시총 2천억의 위엄을 자랑했던 당시 시총 300억에 불과했던 SM의 싸이더스를 향한 극렬한 디스는 그들의 영업수완에 대한 질투심의 발로였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러던 SM이 이제는 싸이더스의 스타들 막굴리는 시스템에다 노예계약 옵션까지 도입하며 6년만에 시총 2천억을 달성하는 아이러니한 역사를 쓰고 있는 중이라는 점은 또 다른 이야기...


god의 활동 중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 중에서 크게 두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잇따르는 교통사고', 또 하나는 '리더 박준형의 그룹 제외 시도 스캔들'이 될 텐데요. 무리한 스케줄 편성으로 인한 과속 탓에 벌어졌던 잇따른 교통사고는  '벌때 바짝 벌자'는 싸이더스의 성향과 연관을 안지을수가 없는 노릇이었고, 리더 박준형을 god에서 제외하고자 하는 움직임 역시 상품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관련 부가가치 상품 매출만 봐도 답이 나오니까) 맴버를 사전에 제외함으로서 향후 재계약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측면이 없었다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실력파를 선호하는 박진영으로서는 김태우와 함께 god의 음악적 중심을 잡아주는 박준형의 탈퇴를 그냥 두고볼 리 없었고, 때마침 팬들 역시 박준형의 맴버 제외 시도가 있을때마다 반대 여론을 만들어준 덕에 박준형은 god의 마지막까지 함께할 수 있게 됩니다만, 잊을 때마다 나왔던 교통사고와 주기적으로 꺼냈던 박준형 맴버 제외 카드는 싸이더스와 박진영의 관계를 좋지 않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일이 반복되는 가운데 가수 보호를 내세웠던 박진영이 자신의 이름을 건 기획사를 직접 설립하고 god를 이적시키는 것으로 일단락되는데요. 그런데 이때 아주 묘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다름아닌 JYP의 설립과god의 이적이 맞물리는그  시점에 윤계상의 군입대가 결정, god에서 이탈하게 된 것입니다. god는 인기 구심점이었던 맴버를 잃은 충격을 극복하지 못했고, JYP체계에서는 이렇다할 성과 없이 4인 체계로 한 장만의 앨범과 뒤이은 전국투어 콘서트의 흥행 참패 충격을 뒤로 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윤계상은 군복무 뒤, 보란듯이 싸이더스에 남아 각종 드라마, 영화의 주연을 따냈음은 물론 연기자로서 거품이 아닌 착실한 내공을 쌓아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가수 출신 연기자로서는 보기 드문 롱런을 기록하고 있다. 싸이더스와는 2009년 말 결별했지만 그는 싸이더스 소속으로 군 제대 이후만 따져도 크고 작은 영화 4편에 주연급 캐스팅을 해내며 연기자로서 충분한 기회와 가능성을 부여받았다는 평가다.

god가 이렇게 좋지 않은 뒷맛을 남긴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박진영이 당시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신했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습니다. 아이돌이나 가수를 육성하는 데에는 단지 좋은 곡을 쓰고, 좋은 능력을 갖춘 맴버를 모으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음을 자각하지 못했다는 것, 다시말해 싸이더스라는 기획사의 능력과 수완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god가 박진영이라는 스타 프로듀서의 버프를 받았다는 것, 그러나 그 박진영을 스타 프로듀서로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던 근본적인 홍보 전략 자체조차 싸이더스의 능력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것이죠.

하지만 이를 단지 싸이더스의 능력 부재만으로 치부하기에는 다소 개운치 않은 결과론이 자리잡고 있는데요. 이들이 god로서 활동을 끝내고 각자 홀로서기를 할 때 어느 누구 하나 JYP에 남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국민그룹 god의 아쉬운 마지막 모습이 과연 박진영이 역량부족을 드러낸 결과였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100% 자신의 계획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그룹에 대한 미련을 전혀 남기지 않은 의도된 부분이 있었는지가 지금까지도 알 수 없는 의문으로 남고 있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SM엔터테인먼트가 동방신기를 데뷰시키기 전에 기존 유망주들을 정리하듯 박진영이 어떤 변화를 감지하고 그의 성향을 대폭 수정하는 가운데 기존 전략에 맞춰 육성되었던 가수들을 정리했다는 추측이 가능합니다만, SM보다는 내부적인 치부를 드러내는 헛점을 잘 노출하지 않았던 그의 전략 탓에 아직까지는 이 당시의 변화에 대한 답을 내리기가 애매한 것이 사실입니다.
 

활동중인 가수들을 대상으로 한 앙케이트에서 다시 보고 싶은 그룹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god,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HOT가 각각 해체와 활동 중지를 선언했을 당시 사회적인 파장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이들의 쓸쓸한 퇴장은 많은 점을 시사하게 만들고 있다.


다만 아쉬운대로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조금이나마 대신해주고 있는 듯한 JYP발 최종병기가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god의 쓸쓸한 퇴장과 동시에 전혀 다른 스타일로 포텐셜을 폭발시키며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던 누군가가...


中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