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 참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경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좋은 인재가 권력의 반대편에 모이기 참 힘든 부분이 있다. 자신이 돈과 시간을 들여 공부한 것들을 돈이나 권력으로 환산하고 싶어하는거야 인간의 본능이긴 하지만 예전에 민주화 시위를 더 넓은 식견으로 당시의 민주주의가 독재임을 비판할 수 있었던것을 생각해보면 그들의 선택이 조금은 아쉽긴 하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지금의 새누리당에는 정치 경제 사회학 측면에서 제법 알아주는 인재들이 모여있고 이들의 사회전략은 다소 빈약하고 구태스러운 정치인들과 그들에 의한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는 낡은 새누리당이 지금까지 이 사회를 장악하게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들의 정치 지식 수준은 크게 나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의 전략은 마치 4.19나 6.10때 지식인들이 주가 되어 민중을 이끌었던것처럼 당시를 기억하고 당시 수준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새누리당쪽으로 이끌어내고 있는것이다.
- 선별적 무상급식을 시행합니다.-
- 부자들이나 밥값을 낼 여력이 있는 사람들까지 무상급식을 실시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죠. -
굉장히 달콤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뿌리깊게 박혀있는 상위 10% 특권층의 사회 기여도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보편적 무상복지와 대척점에 있는 이 키워드가 가진 파괴력은 비단 새누리당 지지자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새누리당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던 서민층에게도 암묵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준까지 올라와있다. 대체 이 정책의 어떤 부분이 사람들로 하여금 매력있게 보이는 것일까? 2015년 연말 정산 시즌 당시 유리지갑들의 반발과 더불어 뜨겁게 달구어진 바로 이 키워드의 대체제에 있기 때문이다.
- 부자 증세 -
사람들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이 키워드는 그들의 다소 허망한 이유 '우린 증세 없는 복지를 공약했다'라는 변명과 함께 지금까지도 현실화되지 못했다. 사람들 마음 속에는 이 부자 증세로 얻었어야 할 카타르시스를 얻지 못한 욕구불만이 가득하다. 그러던 와중에 다시금 현재 시행되고 있는 무상급식 프레임이 다시 등장하고 새누리당, 아니 홍준표는 이 무상 급식 프레임을 '저소득층의 무상 급식'에서 핀트를 바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 세금을 올리는 데 동의하지 않은 부자들이 무상급식이라는 보편적 복지로 혜택을 받고 있다 -
- 우리 세금으로 부자들의 아들딸들을 먹여살리고 있다 -
전략적으로 짜여진 프레임에 동요될수밖에 없는 서민들은 보편적 무상급식의 키워드 '저소득층 아이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자'라는 부분보다 더 강력한 동기부여 즉 '부자가 이득을 보게 놔둘 수 없다!'가 생기게 된다. 마치 '친일파'보다 더 빨리 때려잡아야 할 '공산당'의 대안 프레임처럼 새누리당은 예전 자유당시절 그대로 자신들의 패러다임을 '차악'으로 상대의 패러다임을 '극악'으로 규정하는 데에 거의 장인 수준이 되어있는 듯 하다.
...자 그럼 이제 슬슬 이 정책의 민낯을 까발려보도록 하자.
1. 부자 증세는 어디로?
사람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부자 증세에 대한 목소리가 잦아들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하도 벽창호처럼 새누리당과 정부가 그에 응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 이때를 맞춰 홍준표가 부자들에 대한 분노를 배출할 수 있는 출구로서 '부자들의 무상급식 금지'라는 키워드를 제시했고 사람들은 급격하게 부자 증세에 대한 욕구를 이쪽으로 대신 배출하고 있는 중이다.
만일 4.29 재보선까지 부자 증세에 대한 요구가 계속되고 혹여 이 재보선이 여당의 완패로 끝날 경우 정부는 이 부자 증세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큰 부담을 느낄 수도 있었다. 증세가 아니라고 하는 정부의 변명과 동떨어진 조세 체감 지수, 그리고 상대적으로 그 부담이 고르게 나누어지지 않고 있는 상위 10%들의 조세 형평성이 지속적으로 주목받을 경우 더 이상 '담배는 상류층도 피우니까 형평성에 맞는다'는 개소리가 통하기 어려워졌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홍준표의 '선별적 무상급식' 론이며 이 조례는 단지 한 광역단체장의 국지적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연일 전국 언론에 대서특필되며 마치 전 국가적 논리인마냥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
자 그럼 그들 말대로 정말 '보편적 무상복지'가 부자들에게 무상으로 밥을 주는 일종의 '혜택'인지에 대해 까발려보도록 하자, 이 프레임에는 꽤나 큰 함정이 있는데 바로 '거울이 없는 방'의 함정이다. 이 기사에 반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말하는 상위 10%도 하위 10%에 속하지 않는 가운데 80%에 속해 있는 말 그대로 극빈층도 극부층도 아닌 평범한 가정을 가진 시민들이다. 그들은 지금 거울을 보지 못하고 있는 함정에 빠져 있다.
2. 거울없는 방의 함정
- 보편적 무상 급식 개요 -
1인당 점심 한 끼 급식 비용 : 6천원 x 등교일 25일 = 약 15만원
상위 10% 극부층이 받는 혜택 : 매월 15만원
중위 80% 서민층이 받는 혜택 : 매월 15만원
하위 10% 극빈층이 받는 혜택 : 매월 15만원
- 선별적 무상 급식 개요 -
1인당 점심 한 끼 급식 비용 : 6천원 x 등교일 25일 = 약 15만원
상위 10% 극부층이 받는 혜택 : 없음
중위 80% 서민층이 받는 혜택 : 없음
하위 10% 극빈층이 받는 혜택 : 매월 15만원
+ 홍준표의 안 : 상위와 중위 90%에서 아낀 돈을 하위 10%의 교육복지에 쓰겠다.
거울이 없는 방에서는 내 주변 사람들의 모습만 보일 뿐 자기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말해 이 문제에 대해 지금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상 하위 10%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은 80%의 서민들은 자신의 좌 우에 있는 상위 10%와 하위 10%를 번갈아 보며 아주 단순하게도 상위 10%에게 돈을 주지 말고 그 돈을 하위 10%에 주자는 주장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이 정책은 '상위 10%'에 쓰이는 돈을 '하위10%'에게 주자는 게 아니라 '상위 10%'와 나 즉 '중위 80%'의 돈을 다 '하위10%'에게 몰아주자는 논지임을 망각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저 '부자들에게 돈을 줄 수 없다'라는 감정적 논지에 휘말려 자기 자신의 손익을 차마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한 채 무심코 이 선별적 복지안에 찬성을 하고 있다는 거다.
혹자는 '뭐 그래도 부자들에게 혜택이 가지 않으니까 나한테 혜택이 가지 않더라도 괜찮아, 하위 10%에게 더 많은 혜택이 가게 하면 그게 진정한 복지 아니겠어?'라고 어쨌든 부자들에게 타격을 입혔다는 것에 만족할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착각들 하고 계시네요
2-1 부자들의 승리
한 때 교통범칙금을 소득위 차등화시키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고소득 고자산가들에게 있어 범칙금 10만원은 서민들이 느끼는 범칙금 10만원에 비해 부담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예방 효과나 교통법규 준수율 재고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논지였다. 물론 이 이야기 역시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무상복지 이야기하다가 교통범칙금 이야기로 돌려가면서까지 필자가 말하고 싶은 이거다
- 그들은 10만원의 교통 범칙금이 모기 물린 것마냥 아무렇지도 않은 위치에 있다 -
부자들이 만약 매달 1자녀당 15만원의 아이 점심 식사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해서 그것에 크게 기뻐할 만한 위치에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에게 15만원은 우리에게 천오백원 정도의 체감 화폐 가치 이하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수준의 혜택이다. 물론 아주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며 그들에게 있어서 어쩌면 다른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데 그건 다음 단락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고
그들에게 더 중요한 논제는 '부자 증세'이다. 이 부자 증세 특히 보유 재산에 과세를 한다던가, 소득분위를 더 세분화하거나 상한선을 더 높이거나 하는 문제는 고작 15만원 정도로 이야기할 수 없는 엄청난 타격을 가져온다. 단순 계산으로 매달 몇천 몇억이 왔다갔다 하는 문제인거다. 당연히 이 정도 끕이 되면 민감해질수밖에 없고 어떻게든 이 논제가 국민여론에 떠밀려 법사위까지 올라가는 것만큼은 막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이들도 '상위 10%' 즉 국민 중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적으로는 (속은 어떨지 몰라도) 영향력이 크지는 않다는게 문제
출처 : '조세'(稅金)일보
그래서 부자들의 권익을 챙겨주는 세력들이 나서서 부자증세에 대한 분노의 화살을 대신 배설하도록 만든 것이 바로 '보편적 복지'논쟁인것이다. 부자들에게 돈을 더 뜯어내는 것보다 부자들에게 가는 혜택을 줄이는 것으로 퉁 치자는 것, 사람들은 실리적인 부분보다 표면적인 키워드에 집착할것이라는 것을 새누리당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이는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보다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부자들은 매달 15만원의 복지 혜택을 잃은 대신 매달 몇천 몇억이 들어갈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부자 증세 논란에서 일시적으로 해방되었다. 당장 이 프레임 전환으로 얻은 순익만 몇 만 %인가? 이에 협조한 의원들에게 크게 룸이라도 쏘고 트렁크 골프백에 두둑하게 챙겨드린다고 해도 그건 일시불이며 이 정책의 고착화는 두고두고 혜택을 본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부자들은 굉장히 남는 장사를 한 것임에 틀림없다.새누리당 정말 대단한 놈들이다. 고객(부유층)우선주의를 정치에 접목시킨 노하우는 어디 가지 않는 모양이다.
2-2 서민들의 패배
저소득 하위 10%들은 아예 점심값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복지로서 아이들의 점심값을 지원해주는 것은 굳이 보편적 복지를 거론하기 전이라 할지라도 이미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이쯤해서 선별적 복지를 찬성한다는 분들에게 묻는다. 여러분들은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매들 급식비 15만원이 부담스럽지 않고 충분히 감내할만한 금액이었나?
서민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중산층 최면에 빠져 있다. 나는 그래도 저소득층이 아냐, (좀 더 과격하게 말하자면 정부로부터 점심을 구걸하는 거지새끼가 아냐)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억지로라도 프레임을 나누고 자존심을 지키려 애쓴다. 어떻게든 나는 하위 10%와 같아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래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혜택마저 '우릴 저소득층 취급하는 거냐!'며 걷어차버리고 있다.
출처 : 인권오름 (http://hr-oreum.net/article.php?id=2132) [그림 :윤필]
야당에서 말하는 '저소득층 아이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사회적 차별'을 누가 하고 있는지가 이제 명확하다. 그들에 속할 가능성이 한없이 0에 수렴하는 상위 10%를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이미 사회적으로 그들에 대한 차별은 그들에 속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중위 80%들이 만들고 있다. (이미 다수라는 측면만으로 확실하지만) 보편적 복지가 가져오는 것들 중 그들 일부가 느끼는 거부감은 '우리가 저소득층이랑 수준이 같다고? 말도 안돼'라는 심정적 저항이 없지 않았으리라...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현실적으로는 절실히 필요한 15만원이라는 혜택을 저소득층과의 차별성이라는 아무런 명분도 실리도 없는 핵존심을 내세우며 걷어차고 '대신 부자들도 우리만큼 타격 입었으니까 그걸로 됐어'라며 만족해하고 있다. 글쎄? 15만원이라는 금액이 그들에게도 우리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는 2-1을 다시 읽어보도록 하고...
2-3 복지수준의 후퇴
새누리당이 궁극적으로 노리고 있는 것은 단지 부자 증세를 막는 것만이 아니다. 애석하게도 새누리당은 현 집권당이기 때문에 마냥 부자 증세 철회를 기뻐하기 힘든 위치에 있다. 왜냐하면 지금 현 정부의 살림을 꾸려나가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증세가 없다면 살림이 팍팍해지는 것은 당연할 터, 그렇다고 당장 줄일 수 있는 예산들을 줄여나가자니 눈에 띄는 복지 예산까지 줄이기에는 국민적 저항이 너무 심해진다. 특히 그들의 고정 지지층이라고 할 수 있는 중장년층 여성들과 노인들의 반발이 두려울수밖에 없다.
이쯤해서 새누리당의 씽크탱크들이 모터를 돌리기 시작했다 '티 안나게 증세를 했던 것처럼 티 안나게 복지 예산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라는 논리다. 여기에서 나온 방안이 '보편적 복지'개념을 깨부수자 라는 것...
대부분 하위 10% 저소득층과 관련된 항목들임을 알 수 있다.
앞서 거울없는 방에서 선별적 무상급식에 대한 설명과 함께 홍준표의 방안을 설명한 바 있다. 즉 90%의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급식 비용을 아낀 약 600억의 비용 예산을 10%아이들에게 집행하겠다는 것, 여기에서도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기존에 교육부에서 하던 정책과 중복된다는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90%로부터 무상급식 예산을 당장 빼앗긴 했고 이를 10%에게 쓰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예산이 과잉집행되고 있다는 것...
바우처 사업 : 418억 - EBS 교재 구입 및 수강료에 사용
맞춤교육지원 : 159억 - 영어 수학 과학 등 맞춤형 진로캠프에 보내는 사업
교육여건개선 : 66억 - 기숙형 학사
일단 교육청의 주장을 뒤로 하고 쓰이는 분야를 자세히 살펴보자, 민간쪽이 하나도 없다. 아주 좋게 보자면 이번 정책은 민간쪽과 결탁해서 이권을 챙기려는 정책은 분명 아닌 것인데, 이게 더 문제다. 이 세 가지 예산 분배에 연관된 곳들이 모두 정부 예산을 받거나 혹은 지원받는 준 공공기관 이상 급이라는 것...
한마디로 600억원의 예산이 중복 집행되던 어쩌건 간에 그 돈은 결국 다시 국가가 쓰는 돈을 줄이는 데에 쓰인다는 결론이 되는 것이다. EBS쪽에 수입이 늘어나면 당연히 EBS쪽에 들어가는 정부지원금이 줄게 된다. 맞춤형 진로캠프가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방향이라면 당연히 정부의 수익사업이 되는 것이고, 기숙형 학사는 말이 필요가 없다. 심지어 교육부랑 예산이 겹친다는 말은 예산이 과잉집행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는 것은 이후 교육부 혹은 경남도 예결산특위에서 잉여예산이 생긴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 남는 돈은 ...
※ 세계잉여금의 처리 순서(국가재정법 제90조)
① 지방 교부세․교부금 정산
② 공적자금상환기금에 출연(① 사용금액을 제외한 세계잉여금의 100분의 30이상)
③ 국채 또는 차입금의 상환 등(①, ② 사용금액을 제외한 세계잉여금의 100분의 30이상)
- 국채 또는 차입금의 원리금
- 국가배상금
- 공공자금관리기금의 융자계정의 차입금 원리금
- 그 밖에 다른 법률에 따라 정부가 부담하는 채무
④ 추가경정예산안의 편성
⑤ 익년도 세입으로 이입
결국 아낀 600억을 10% 저소득층에 쓴다는 명분으로 늘어놓았지만 결국은 그 아낀 돈을 저소득층에게 쓴다는 것은 고도의 트릭을 이용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사실상 국가예산절감 즉 복지예산줄이기인것이다.
새누리당의 노림수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복지 예산을 줄이는 데에 더 큰 동력을 가하기 위해 복지에 대한 개념 자체를 저소득층에게 한정시키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이들이 보편적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거지는 거지처럼 살아야 한다'
학교들이 보편적 무상급식 이후 살림살이가 팍팍해졌다고 아우성이다. 물론 중앙정부로부터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해서 그렇다고들 하는데, 내막을 살펴보면 참 재미있는게 에어컨을 가동을 못한다던가, 시설이 제대로 확충되지 못한다던가 등, 무상급식으로 인해 다른 시설에 대한 투자를 제대로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뿐 본질적으로 '예산이 부족해서 무상급식의 질을 떨어뜨릴 수가 없다'라는 이야기를 입밖에 꺼내는 교육단체장은 한 번도 본적이 없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보편적 무상급식의 가장 큰 장점은 '저소득층의 소외감 해소' 따위가 아니다. 바로 '복지 수준의 상향 평준화'다 학교 무상급식은 부잣집 아이도, 서민 아이도, 저소득층 아이도 모두 똑같은 반찬과 똑같은 질의 식사를 받게 된다. 그렇다면 그 식사의 질적 수준은 어디에 맞춰야 할까? 무상 급식이니까 저소득층의 생활수준에 맞는 식사를 제공한다면? 상위 10% 아주머니들, 끗발 좋은 남편을 두신 우리 잘나신 그분들이 당장 학교 교장실로 뛰어들어와 이렇게 소리칠 것이다
- 아니 어떻게 우리 애한테 그딴 쓰레기같은 음식을 먹일 수가 있죠? -
이미 우리는 어린이집 불량급식 사태 때 이에 대한 예고편을 본 바 있다.
상위 10%의 학부모들이 무상급식의 질이 떨어지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다른 걸 먹일 수 있도록 도시락을 따로 싸주거나 음식을 배달시켜주거나 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의외로 아이들에게 들이는 비용은 아끼지 않지만 시간은 극도로 아낀다. 물론 정말 극한 상황이 되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상류층들은 학교에 더 나은 급식을 요구하지 내 아이에게 따로 다른 식사를 제공하는 정성을 들이는 쪽을 택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상급식에 한해서는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부자일수록 국가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나 내는 세금을 절세하는 데에 더 작은 금액에 훨씬 민감하니까, 있는 놈들이 더하다는 이야기는 정말로 진실이다.
때문에 학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상위 10%아이들이 만족할만한 수준의 급식을 제공해야 한다. 아니 만족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10%의 학생들이 먹고 뱉을 만큼은 아닌 수준까지는 급식의 질을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 아이들은 영양의 불균형이 없이 고르게 질좋은 밥을 학교로부터 제공받고 다닐 수 있다. 필자가 얼마 전에 만나본 학생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문득 떠오르는데 지금의 상황을 잘 대변해줄 것 같아서 소개한다.
'학교 싫어요, 야자 너무 늦게 끝나요. 진짜 밥만 맛있지 않았어도 학교 진작에 때려 치우는건데'
(전남의 모 학교 학생)
...
만일 선별적 무상급식이 시행된다면 학교는 이와 같은 상위 10%의 등쌀에서 해방된다. 저소득층에게 걸맞는 수준의 식사만을 제공해도 되기 때문이다. 1인당 식사 비용은 점점 더 낮아질 것이고 예산은 그만큼 절약될 것이다. 하위 10%는 상위 10%와 같은 소수이지만 그들과 같은 끗발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는 영향력이 없이 계속 묻힐 것이며, 그들이 편의점에서 급식 카드가 먹히지 않거나 주변에 살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지 않거나 야당이 말하는 '차별'을 당해도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제공되는 '차별적'급식 수준은 아무도 클레임을 걸지 않고 관심에서 멀어지는 한 지속적으로 낮아질 것이고 그곳에서 아껴진 복지 예산은 고스란히 예산 절감으로 이어져 펑크투성이 국고를 매우는데 협조할 것이다.
2013년11월 천안지역 초 중 고등학교 저소득층에게 제공된 점심 식사 도시락 메뉴
80%의 서민들은 암묵적으로 이들 하위 10% 저소득층의 이같은 팍팍한 삶에 연민은 보낼지언정 이들의 주장에 심정적 동의를 보내는 사람은 적을 수 밖에 없다. 뿌리깊게 박혀진 '저소득층다운 삶'이라는 계층적 이분법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재되어 있는 신분제에 대한 의식과 자신은 그 쪽에 속하지 않는다는 핵존심이 이들을 본위에서 점점 멀어지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6천원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식사를 제공받으며 상처받는 자존심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인 OECD국가답지 않은 학교 급식을 제공받는 아이들로 남겨질 것이다.
...
3 무상급식과 무상복지가 나아가야 할 길
보편적 무상급식은 단순히 부자들에게 얼마 혜택을 주고 저소득층과 똑같은 혜택을 주는 단순한 열등감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소득층 즉 우리의 낮은 곳의 복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그들과 똑같은 위치에서 그들의 목소리와 같은 것을 내세워야 한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수준의 식사 수준을 해야 하는 것을 '거지들이 어딜 우리처럼 질좋은 밥을 먹으려 해?'라는 마음가짐에 암묵적인 동의를 행한다면 이 나라 복지 수준의 본질적 향상은 요원할 것임에 틀림없다.
복지 수준 향상은 단지 복지 예산을 늘리는 데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복지 예산을 100원에서 200원 늘리는 것으로 저소득층 1명 살릴 것을 2명 살린다는 개념이 아니라 저소득층 1명에게 들어가는 예산이 100원에서 200원으로 늘어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렇게 만드는 것은 저소득층 하위 10%의 힘만으로는 어림이 없다. 보편적 무상복지는 여기에 상위 10%를 함께 합류시킴으로서 그들의 끗발을 통해 수많은 복지 중 가장 시급하다고 할 수 있는 '아이들 먹이는 문제'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을 기대할 것이다. 그들이 '저소득층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지 않는 한 저소득층의 생활 수준은 여전히 1970년대 극빈층의 삶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정부는 극빈층을 이들과 같은 논리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딜 거지새끼들이...'라는 생각으로 그들의 주장을 일축하는 것은 결국 거울 없는 방의 오류를 야기한다. 저소득층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어 80%의 서민과 같은 수준을 영위하면 우리가 저소득층과 같은 생활 수준을 영위하게 되어 90%의 저소득층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이 사회는 신분계급사회가 아니지만 저소득층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는 만큼 80%의 서민 생활이 저소득층으로 하향평준화되도록 시장경제가 가만히 두고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다시 새로운 격차는 만들어질 것이고 80%의 생활 수준도 덩달아 높아질 것임에 틀림없다. 밑에서 밀어올라오면 나 역시 같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여 부자들에게 15만원의 혜택을 주는 것이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게 무슨 복지냐고 생각될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다만 그들이 이득을 얻은 만큼 그들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걷도록 국가를 압박하는 것이 훨씬 낫다. 그리고 그들이 받는 만큼 우리도 받는다는 것을 언제나 잊지 말자 거울이 없는 방에서도 우리는 우리 몸의 절반 이상을 볼 수 있다. 당장 80%의 중위층에게 15만원이 언제부터 그렇게 하찮은 돈이었던가?
반대로 그들을 나한테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 점점 나락으로 밀어낸다고 내가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다고 어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사회는 빈틈을 용서하지 않는다. 저소득층을 저 아래로 떨어뜨려 서민 자신들과 격차를 벌려놓았다고 한다면 그 빈틈은 결국 다시 세분화된 소득분위의 서민들이 채우게 되어 있고 결국 지속적인 하향 평준화는 이쪽이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부자들과 하위 10%가 같은 밥을 먹게 한다는 것 그래서 부자들이 국가에 자신들 수준에 맞는 밥을 요구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무상급식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복지 수준 향상의 가장 큰 지름길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지금 이 사회의 복지 수준을 높일 수 있는 힘은 그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그들을 인질로 옭아매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식생활 수준과 복지 수준이 함께 높아질 것을 기대해야지 아래를 바라보며 하위10%들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에 공분하여 선별적 복지에 동의하며 선을 긋는 하등 도움이 안되는 그릇된 우월감을 가져서는 곤란하다.
무상급식은 우리 나라 복지의 극히 일부분이다. 모든 사람들이 '내 문제'로 인식할 때 이 나라의 복지의 질이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문제가 곧 내 문제가 되는 인식을 가지고 모든 것이 함께 변하는 나라가 우리가 늘 보아오던 북유럽 복지 선진국이 지금의 복지 수준을 완성한 국가 모델임에 다르지 않다.
...
더 이상 북유럽을 부러워만 하지 말고
우리부터 이 나라를 북유럽처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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