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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07 노인들이 젊은이들과 빈자리 다툼을 벌이는 진짜 이유 9
posted by RushAm 2011. 2. 7. 16:38
군대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을 여성 독자분들에게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일단 하고 넘어가야 하는 이야기라 어쩔 수 없다. 남자들이 흔히 말년 제대를 앞두고 혹은 이미 전역한 군필남성들에게 '군대 개혁'이나 '군 구타 문제', '군 복무기간 단축'에 대해 물어보면 의외의 답변이 돌아온다 '개념없는 신병에게 구타는 필요악', '군 복무기간은 단축이 아니라 더 늘려야할 것', '군대는 지금보다 더 빡세져야 함' 등등 이미 자신은 그 의무에서 벗어났지만 적어도 내가 받은 고통보다는 다음 세대의 후임들의 고통이 조금 더 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자신이 겪었던 고통이 단지 (시기적으로 운이 없어서) 잘못 걸렸다는 억울함이 덜해지기 때문이란다. 자신이 몸소 겪으면서 그 문제점을 충분히 통감하고 개혁을 목청 높여 외쳤던 현역 시절은 간데없고 이미 자신은 관계없는 일이며 적어도 내가 이득은 못보더라도 손해는 보기 싫다는, (그것도 나보다 남이 더 피해를 봐야 한다는 마이너스 사고방식)이 팽배해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이렇게 된 데에는 군대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군대가 지금까지 개혁이 안 되도록 여론이 제대로 모아지지 않았던 원인에는 이같은 '나만 피해보기 싫다. 너는 나보다 더 당해야지 내가 덜 억울하다'라는 지극히 마이너스적 피해망상에서 출발했다는 것도 슬프지만 현실임에 다르지 않다.

철모에 머리 박아봤어?


대체로 지하철에서 이루어지는 이른바 '노약자석 실강이', 필자만 그런 건지 아니면 필자가 들었던 케이스가 특별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다수가 '할아버지'분들이다. 그리고 대체로 이런 할아버지들은 '젊은 남성'에게 시비를 거는 형국이 많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결국 위에서 예를 들었던 이른바 '마이너스적 피해망상'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한 번 들어보시라...

지금의 노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60세 이상, 즉 한국전쟁 이전에 출생해서 아직 '어른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경' 사상이 남아있던 한국의 경제빈곤기와 성장기를 동시에 거친 세대다. 이들의 젊은 시절은 원치 않아도 이미 사회적 분위기가 '어른은 당연히 공경해야 하는' 분위기였고 그래서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무조건 공경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지옥이라는 33개월 군 복무 시절을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그 33개월간의 구타가 만연하고 계급체계가 더욱 공고했던 당시 군대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은 절대적일수밖에 없다. 산업 혁명이라 불리는 60년대 후반 구로공단을 비롯한 각종 공업단지에서 폐병에 걸려가며 좁디좁은 기숙사 생활의 피폐함을 경험해본 그들이다. 물론 그 기숙사 문화는 33개월 군대를 겪어본 자들이 고스란히 와서 내무반과 그닥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음에 지나지 않았을것이다. 즉 그들은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도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인생선배들의 뒤치닥거리를 당연시하면서 살아왔다. 물론 그들의 희망은 사실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는데...

언젠가 나도 선배가 되어 지금 내가 하는 것과 똑같은 걸 후배들에게 시켜먹으며 편하게 지낼 수 있겠지


그런데 의외로 세상은 너무 빨리 변했다. 구로공단은 디지털단지로 변했고 자신들의 경력은 쓸 데가 없어졌으며 자신들 뒤로 '후배'가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들어와도 그들이 자신들이 당한 만큼 후배들에게 되값는다는 생각으로 대하는 후진적인 직장 문화를 젊은이들이 받아들일리 만무했다. 이들이 선배들에게 젊음을 바쳐가며 '쌓인' 걸 풀 데가 없어진 것이다. 그것도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해버려서, 자신들의 설 자리를 이 세상이 빼앗아가버린 탓에, 자신의 젊음을 보상해주지 않는 국가와 그들의 고생한 것을 인정해주려 들지 않고 공경과 존중은 잊어버린듯한 젊은이들이 마냥 야속하고 버르장머리없어보이는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세상에 무언가 요구할수 있는 지위는 아니다. 이미 지위란 지위는 다 잃어버려 설 자리가 없는 그들, 그러나 아직 젊은 시절에 대한 억울함은 다소 남아있어 그 중 일부가 지하철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쏠리는 것이다.

이들이 가진 국가에 대한 불만은 상상을 초월한다. 세상을 억지로 바꿔버려 자신들의 생존권을 빼앗아가면서 변화를 추구했다고 믿고 있다. 국가, 더 엄밀히 말하면 정치권이 이들에게 표를 얻기 위해서는 가능한 이들을 자극하지 않는 게 좋다. 그리고 이들을 법적으로 표가 나지 않는 선에서 달래야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노약자석'과 '무임승차권'이다. 그리고 노약자석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위해 지속적인 캠페인을 벌여 '고생하신 어르신들을 위해 우리가 준비했다'는 것을 열심히 표현하는 것이다. TV 미디어, 심지어는 초등학교 교과서 속에서도 나오는 이런 대대적인 캠페인 속에서는 굳이 노약자석이 아니라도 노인은 꼭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강요하는데 당연하지만 이런 무조건적인 캠페인에 '근거'따위는 없다. 근거를 붙였다간 노인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체면이 삶의 의미 그 자체가 된 그들에게 구차한 이유를 붙인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젊은 시절, 상관, 상사, 선배에게 아무 이유없는 무조건적인 공경을 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어르신이 불쌍하니까 도와줍시다. 혹은 어르신은 노약하시니까 앉게 해드립시다. 이런 식의 캠페인은 역효과를 불러올 것임에 자명할 터, 그래서 국가에서 하는 캠페인은 '닥치고 공경'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겨우 만들어준 '이거'를 노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두말할필요가 없다. 겨우 국가에서 자신들이 했던 고생을 인정해준답시고 만들어준 제도다 (사실 법적인 구속력 아무것도 없는데도) 겨우 인정받는 것 같아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 이 젊은놈의자식들은 이렇게 국가에서조차 인정해준 자신들을 *으로 본다. 당연히 화가 날수밖에 없다. 이젠 국가에서도 인정한 자신들이다. 젊은이들도 자신들을 인정해줘야 하는게 당연하다. 우리가 선배들에게, 상사에게, 상관에게 그랬던것처럼 우리가 헛기침 좀 하면 바로 하던 일 멈추고 벌떡벌떡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이 지금 젊은이들에게 씨알도 먹일리 없고, 그렇다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재판을 걸 수도 없다. 당연히 경찰권력은 이를 터치하기 힘들다. 괜히 터치해서 법적인 문제로 비화되면 판례가 생기고 이는 당연히 노인들의 노여움을 산다. 이는 곧 보수층 집결의 타격과 지지층의 표가 빠져나감을 의미한다.

이들이 주로 입에 달고 사는 말 '5공때도 이러진 않았어!', '박통이 최고야'라는 말은 정말 그 당시가 좋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 그들은 핍박의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만일 박통이 하던 그런 분위기가 계속되었다면 지금 자신들이 '어른'으로서 선배들에게 해왔던 대접을 자신들이 받으며 살 수 있는 토대가 마련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명박을 지지한다. 박정희의 향수를 그리워하며 박근혜에게 기대를 건다, 뭘 기대를 거냐하면 그것이 예전 자신들이 선배들을 봉양했던 그 시대의 '연장'을 이루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명박이 경부고속도로처럼 4대강 건축업 파고 박통흉내내며 5공의 재림을 만들어 언론탄압하는 '시늉'을 내면 이들은 흥분한다. 그리고 짝퉁 박정희 이명박이 내려오면 성골 박근혜가 자신들의 유토피아를 완성시켜줄 것으로 철썩같이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시절로 돌아가면, 자신들은 그동안 잃기만 하고 보상받지 못했던 젊음의 희생을 보상받을 일만 남아있기 때문이고 그동안 자신들을 무시했던 젊은애들이 자신들이 젊은 시절에 겪었던 것과 똑같은 고통과 설움을 당하게 될 것이므로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억울함이 덜해질테니까... 이른바 마이너스 피해망상의 극점이 무엇인지 아주 제대로 보여주는 셈이다.

즉 이걸 보고 노인들은 흥분하는 것이다. '아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그 시절의 상식이 이어지겠구나!' ...그들에게 있어 이명박은 정말 잘하고 있을수밖에 없는것이다.



애석하지만 이같은 젊은이들과 노인 사이의 갈등은 그 역사와 얽힌 사건의 깊이만큼이나 골도 깊다. 정부는 표를 위해 이들을 자극하지 않는 쪽을 택할 것이고 그래서 노약자석 문제와 무임 승차권 문제에 소극적이다. 이는 굳이 노인들의 고생을 알아줘서가 아니다. 아마 지금의 노인세대들의 비율 그리고 그들이 간접 영향을 끼친 2세대들 인구가 줄어들경우 정책은 냉혹하고 매몰차게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릴것이 분명하다. 참 안타깝지 않은가? 젊은이들과의 갈등을 만든 건 노인들이 아니라 결국 하나의 세대를 국익에 쓸모없다고 국격에 안어울린다고 그들의 인생과 삶의 터전을 깡그리 날려버리고 수치적 경제 발전을 위해 희생시킨 국가의 문제임에는 다른 말이 필요없으리라.

그들이 세상을 바로보고 제대로 된 표를 던지는 것도
무의미한 지하철 좌석에 집착하여 자신들의 버려진 젊음을 보상받으려는 것도
지금와서 변화를 바라기에는 아무래도 어렵지 않나 싶다.

지금 이 세상은
거짓말쟁이가 권력을 잡아
자신의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진실을 거짓말로 호도하고 있으니까....

그분들에게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통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