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1. 4. 9. 13:49
우리는 흔히 만취한 사람이 행패를 부리면 그의 지인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다며 듣는 이야기가 '이 사람 원래는 참 좋은데 술만 마시면 이러니까 이해해요'라는 말이다. 뭐 워낙에 술에 관대한 문화다보니까 이런 말도 나오고 실제로 이런 말 들으면 용서가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결국 이 사람은 '어쩔 수 없다'라고, 즉 '술 기운'에 '원래 좋은 사람'이 '원래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힘들어졌음을 어필하고 싶어하는 것이 이 말의 핵심인데, 이 말에는 사실 상당한 모순점이 있다.


술을 마시는 경우는 거의 대부분 '자의적'이다. 물론 사회적 분위기 상 거부할 수 없는 것도 알고 사회생활하다보면 개인주의적 의견보다는 어우러짐을 중시하는 우리네 술자리 문화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술을 마신 자신'을 '자신'의 일부분이 아니라며 면책부를 주는 식의 발상은 '원래는 좋은 사람'이라는 수식어와 더불어 모순의 극을 보여준다. 원래 좋은 사람이 술을 마시면 그렇지 않게 된다는 것을 그 원래 좋은 사람이었다는 당사자는 정말 모르고 있었을까? 그렇게 민폐를 끼친 사례가 한두번일까?, 무수히 많은 사례 속에서도 그렇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은 '그 원래 좋은 사람'으로서의 이미지나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술을 마신 뒤까지 지킬 생각이 없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란 수식어는 '어떤 시간대에만 좋은 사람'도 아니고 '어떤 시간대에는 좋은 사람이 아니게 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 사람의 인생, 사람 됨됨이 전체를 평가하는 단어다. 만일 누군가가 '원래는 좋은 사람인데 술을 마시면 개가 된다'는 건 그 사람은 이미 '좋은 사람'이길 포기했다는 거다. 누구 하나 단점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단점을 장점이 반드시 커버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특히나 '생판 모르는 남'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냥 지인들에게는 그런 그의 장단점을 감당할 수 있으니까 그의 주변을 감싸고 돌 수 있다. 그러나 공공장소에서의 민폐에 대한 변명으로 저런 말을 늘어놓는 것은 상당한 에러다. 지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변명이 납득이 될 리도 없고, 이미 그 전제조건이었던 '좋은 사람'이라는 건 그 사람이 '자의적'으로 술을 마셨고 '자의적'으로 주량을 초과해서 이미 '자신이 술을 취했을때 어떤 모습인지를'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지인도 자기 자신도 충분히 알고 있는 이상 그 사람은 '생판 모르는 타인'에게는 결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술을 마셨다고 그 사람 이름이 '술'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술을 마신 당신도 당신 맞다.
운전대 잡은 당신도 당신 맞다.

그게 좋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고 해도 결국 당신을 나타내는 일부분이다.
제대로 사과하고 살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도망치며 살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