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1. 11. 28. 17:08
오늘 문득 정신이 홀린 것처럼, 시계를 꺼내들었다.


시계는 움직이지 않았다.
원래 전기 많이 먹는 시계였으니까, 한동안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베터리를 직접 갈아본 적이 있었기에 직접 갈아볼 요량으로 시계줄을 뜯었다.


시계를 맞추는 휠 부분에 곰팡이가 슬어있었다.
잠깐 돌려보니 시계가 맞춰지지 않았다. 기껏해야 5분 남짓 움직일뿐이다.

시계는 1시에 맞춰져 있었다.


시계용 베터리를 사러 마트에 갔다.
생각해보니, 난 시계 고칠 수 있는 작은 드라이버도 없었다.

그런데 난 이 시계가 어느정도 크기의 베터리가 들어가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했던 적도 있었는데...

확인하려면 뜯어서 꺼낼수밖에 없다.
그런데 드라이버는 포장되어있다.

할 수 없이 베터리를 사러 전자상품점에 갔었다.
그정도로 작은 베터리는 팔지 않는단다.


한마디로 내가 이 시계를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가 내게 말해줬다.
'옆건물에 시계 고치는 곳이 있으니까 가보세요.'


그러나 내 시계를 고쳐줄 것 같은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명품만을 고쳐줄 것 같은 수입시계수리전문점만이 보일 뿐...

시간은 12시 50분,
10분 안에 고치지 않으면 다시 24시간 아니,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용기를 내어 그 가게에 들어갔다.
꽤나 내공있어보이는 여성이 내 눈을 바라보며 나를 맞아주었다...

'저어~'
'네!'
'....시계 수리 되나요?'
'물론이죠^ㅇ^'


난 비싸보이는 시계들이 전시되어있는 유리 진열장 위에
조금은 위축된듯이 내 시계를 꺼내보였다.

예상대로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난 역시 이런 시계는 취급하지 않는건가? 라며 지례 겁먹었드랬다.

'이 시계...돌아갔던건가요"
'물론이죠, 잘 돌아갔..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망설임없이 시계를 받아들고는 나사를 풀기 위해 장비를 꺼내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거 안쪽까지 녹이 슬어버린 것 같은데, 나사가 헛돌면 어쩌지, 플라스틱이라 좀...'

잠시 집중해서 나사를 풀어보던 그녀는 조금 반응이 있는지 금새 반색했다.

'풀릴 것 같아요, 이거로 잠깐 들어내면 열릴거에요'

아래쪽 캡이 조금 젖혀지며 시계 안쪽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한다.

'완전히 열리진 않네요, 잠깐 도와주시겠어요?'

그녀는 덮개를 젖히면서 나에게 시계 드라이버를 건네고는 얼른 해보라는 눈빛을 보낸다.
나는 녹이 슬어버린 나사가 부러지지 않게 가능한 정성껏 드라이버를 돌렸다.

두 사람이 시계 하나에 달려들고 있으니, 시계 나사가 마침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빠지네요 ^ㅇ^'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

그런데 좀처럼 빠지지 않는 나사 하나가 아직 덮개를 단단히 잡고 속을 보여주지 않으려한다.

'일단 덮개를 옆으로 돌려서 안을 봐야겠어요'

그 나사는 자신이 빠지는 대신 시계의 안을 내보이는 쪽을 택했다.


'아~ 정말 심하네, 안쪽까지 녹이 완전히 슬었어, 베터리 갈아도 이거 돌아갈까 모르겠네,'

그런 말들을 중얼거리며 그녀는 끼워져있던 베터리를 빼낸다,
잠시 살펴보더니 서랍에서 같은 사이즈의 새로운 베터리를 꺼내 포장을 뜯는다.
돌아가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수리비 못받는거 아닐까? 하는 표정인걸까? 그녀의 표정이 사뭇 심각하다.


'아, 돌아가네요 ^ㅇ^'

시계가...돌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이 바빠졌다.

그런데 그녀는 풀린 3개의 나사를 다시 박는 대신  철판을 붙들고 있는
나머지 나사 한 개를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애쓰는게 아닌가?

'저기... 그냥 돌려서 다시 닫으시면 안될까요?'
'아~ 그게 여길 좀 보시겠어요?'

그 나사 윗쪽으로 가느다란 검은 실 같은 것이 보였다.

'이게 신경쓰여서...'

그러고는 다시 빼내는 데에 열중이다.

'저기~ 제가 한번 해볼께요, 아까처럼'
'네 그게 좋겠네요'

아까처럼 그녀는 덮개를 젖히고 나는 나사를 돌리기 시작했다.
나사는 조금 움직일 듯 하더니 이내 제자리다. 만만치않다.

'잠시만요, 이쪽을 들어볼게요'

내가 돌리는 쪽 가까이있는 덮개를 다시 젖힌다.
한결 돌아가는 듯 하더니 쑤욱~ 뽑혀나온다.



열렸다...



그녀는 검은 끈을 들어보인다

'이게 시계 안으로 들어오는 물 같은 걸 어느정도 막아줘야 했어요'

자세히 보니 안빠지던 나사쪽 부분이 끊어져있었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아 이래서 안쪽까지 녹이 슬었구나'

고무는 끊어져 이미 모양을 잃었다, 그런 고무를 그녀는 열심히 맞추려 애썼다
그러던 중 한 마디를 던졌다.

'제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이렇게 상처를 입게 되요'

...

얼추 고무가 맞춰진 모양이다. 그녀는 만족한 얼굴을 하며 덮개를 덮는다.
아까 빼놓았던 녹슨 나사를 다시 집어드는 것을 본 나는 그녀를 만류했다.

'이 나사들 혹시 같은 사이즈로 새 거는 없나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물론 있어요, 하지만 여기에는 이 나사만 맞을거에요, 쇠가 아니라 플라스틱이라 한번 패인 홈은 다른 나사가 들어갈 수 없거든요, 맞는 듯 하지만 아주 미세하게 달라요.'

그녀는 결국 몇 번의 시행착오끝에 원래 나사를 단단히 조여서 덮개를 덮는데 성공한다.
그리고는 시계가 돌아가는지 확인하려 시계를 보더니 갸우뚱한다.

'이거 (시각을) 어떻게 보는 거죠?'

내 시계는 일반적인 바늘시계도 전자시계도 아닌 조금 특이한 편이다

'아 이게 분이고 이게 시, 이게 초에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이 시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거네요.'
'그 사람만 알아볼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죠 ^ㅇ^'

....

시계는 정각 12시 55분에 고쳐졌다.
난 재빨리 시계를 5분 전으로 돌렸다. 5분 전까지는 확실히 돌아갔으니까.

12시 55분을 가리키며
시계는 언제나처럼 수줍게 돌고 있었다.

...

그녀는 내게 시계를 건넸고 이윽고 가게문을 나서는 나에게 계속 말했다.

'이 시계는 베터리를 많이 먹어요, 녹도 잘 슬수밖에 없고요,
항상 차고 계세요. 물이 묻지 않게 소중히!'

'항상 돌아가던 시계는 고장나지 않아요'
'돌아가지 않을 때 얼른 눈치채고 베터리를 갈아줘야 해요'


'그러면 오래 오래 시계는 잘 돌고 있을 거에요'





시계를 고쳤다.
이젠 처박아두는 일 없이 오래 오래 내 곁에 두고
이 녀석이 잘 돌아가는지를 꼭 살펴야겠다.



후회없이 언제까지고, 곁에 있어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