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09. 11. 28. 05:54
으악 이게 뭐야! 라는 말이 정말 오랫만에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지금까지의 일본이라면 전혀 이상하게 생각할 게 없지만 역시 지금으로서는 한국이 짱먹고있는지라 이들도 어디까지 세상을 속일 수는 없었던 것이겠지요 (94년도에 나왔던 축구 게임을 생각해보면 참...) 아무튼 이쪽 세계에서는 정말 저어어어엉말! 좀처럼 보기 드물게 모에 계열 게임에서 한국인이 등장하는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2009년 12월 10일 발매를 예정하고 있는 닌텐도 DS 대응 게임 소프트웨어 'くるくるプリンセス’(굳이 번역하면 빙글빙글 프린세스) 시리즈의 최신작 ~ ときめきフィギュア☆めざせバンクーバー~(두근두근 피겨 노려라 밴쿠버!)가 그 주인공입니다. 피겨 스케이팅을 주제로 한 게임으로 직접 피겨 스케이트 선수를 조작해 프로그램별로 기술을 구사해 점수를 얻는 형태인데요. 한국에는 김연아 외에는 아직 국제 무대에서 알려진 선수가 많지 않은데에 반에 일본은 오래 전부터 국제 무대에 도전하기 위해 유소년들을 대거 육성해왔고 지금은 남,녀를 막론하고 국제 무대에서 일본 선수들의 성적이 괜찮은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피겨의 인기도 '선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스포츠 자체로서 즐기는 팬층이 이미 다수 형성되어 있을 만큼 일반화된 인기스포츠로 자리잡고 있기에 이런 게임이 나오는 것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만!


그런데 이 게임에 김연아를 모델로 하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이름은 '김 소연' 초상권 문제도 있으니 가명을 쓰고 실물을 완벽하게 재현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캐릭터를 딱 봐도 누굴 모델로 했는지 바로 알아차릴만큼 아주 노골적으로 그려놓고 있습니다. (다른 3명의 캐릭터들이 특별한 모델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게다가 캐릭터 설명을 보면 '올림픽에서 금매달이 가장 유력시되고 있으며...' 라든지 '한국의 절대강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는데요. 타이틀 화면도 그렇지만 이건 누가 봐도 최종보스급이네요 ^^; (사실 보스 캐릭터는 아닙니다, 직접 골라서 조작이 가능하지요, 먼치킨 캐릭터쯤 되는 것 같습니다)

시리즈 최신작이라는 소개문구에서 눈치를 채셨겠지만 이 게임은 전작이 두 편 존재합니다. 2007년 3월 15일에 발매된 くるくるプリンセス ~フィギュアできらきら☆氷のエンジェル~(빙글빙글 프린세스 ~ 피겨로 반짝반짝 은반 위의 천사 ~) 와 2007년 12월 13일에 발매된 くるくるプリンセス 〜夢のホワイト・カルテット〜 (빙글빙글 프린세스 ~ 꿈의 화이트 콰르텟)이 있는데요. 이 두 게임에서는 김연아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때는 아직 아사다 마오가 라이벌로서 건재했을 시절이었고 둘 중 누가 위에 있는지 확실하게 말하기 힘들었을 시기였기에 굳이 김연아를 등장시킬 필요가 없었던것이죠. 사실 전작 어디에도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했다는 느낌을 주는 캐릭터 자체가 없었으니 처음으로 실존 모델을 연상시키는 캐릭터가 등장했다는 점에서도 한층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게임 자체만으로는 그냥 평범합니다만...(중간에 나오는 김소연 연습 복장에 주목)>

이 부분은 보기보다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큽니다. 사실 캡콤이나 코나미에서 발매되는 게임에서 김연아가 나온다면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아무리 그들이 극우적 성향을 가지고 있더라도 지금 짱먹는 선수를 빼먹을리가...) 에초 메이저 제작사는 '리얼리티'를 강조하기 때문에 실존 선수의 라이센싱과 현 세계 랭킹을 대거 반영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일본 내에서만 팔 생각이 에초 없을테니 한국에서도 팔리게끔 김연아를 넣는 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위닝이나 피파에서 이제 듣보잡 선수가 나오던 시절은 머나먼 추억이 된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이 게임을 제작한 스파이크라는 제작사는 꽤 많은 작품을 만들어온 중견 제작사임에는 분명합니다만 그 작품들을 살펴보면 국내에 거의 소개된 작품이 없습니다. 대부분 일본 내에서 소화가 가능한 '일본 로컬'제작사라는 것이죠. 더구나 이런 마이너한 작품이라면 더더욱 구매층은 제한적일수밖에 없고요. 그런 제작사를 통해 김연아를 모델로 한 게임이 등장했다는 것은 피겨 분야에서 일본 역시 김연아를 '지존'으로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가 이미 굳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상식화되는 것이죠. 예전에는 아사다 마오의 라이벌로 몇몇 피겨 팬들에게만 기억되던 김연아가 이제는 일본에서도 여자 피겨의 '고유명사'로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그것도 최강자로서, 오랜 기간 세계 최강을 목표로 절치부심하며 피겨 선수를 키워왔던 일본에서 자국 선수가 아닌 대한민국 선수가 말입니다.

마오의 부진과 더불어 그 뒤를 이을 이렇다할 수준급 강자가 당장은 등장하기 힘든 상황에서 (일본은 아라카와 시즈카의 금매달 이후 아사다 마오, 안도 미키, 나카노 유카리가 황금세대를 만들어줄 것으로 잔뜩 기대했었죠) 김연아의 독주가 일본으로서는 반갑지만은 않겠습니다만 이미 일본의 피겨팬들은 국적을 떠나 피겨를 즐기고 있는 마당에 그 팬들에게 언제까지고 애국심에 호소할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어쩔 수 없이 김연아를 인정하고 상품화 시키는 움직임을 속속 보이고 있습니다. 피규어 뉴스는 김연아에 집중되어 있고 중계진 역시 마치 육상의 우사인 볼트를 보듯 김연아가 얼마나 더 대단한 연기를 보이는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월드컵, 축구 야구, 이번엔 피겨까지 ...정말이지 일본으로서는 돈은 돈대로 들여서 열심히 만들어놓으면 어느새인가 거저먹듯 (일본입장에서는 분명 그렇게 보일) 자신들이 일궈놓은 걸 가로채가버리는 한국이 얄미울 법도 하겠네요.

끝으로 당구장에 걸려 있는 문구 하나를 인용해볼까 합니다.
'억울하면 승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