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1. 18. 19:15
평점 : ★★★☆ (7.0)
생일, 데뷰작 : 불명
보이스 타입 : 강한 비음을 바탕으로, 설음, 두음을 함께 구사하는 가성 타입
대표작 : 은하철도 999 (1980): 철이 役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1992) : 쟝 로크 리르티그 役
GOOD: 가성의 단점이 드러나지 않는 완벽한 벨런스
BAD : 지나치게 남성형으로 편중된 보이스 컬러
성우를 지망하는 지망생들의 성비 불균형은 이제 어제 오늘의 일이 아 닌 듯 하다. 2004년 MBC 성우 공채에서도 어림잡아 5:1가량의 비율로 여성이 압도적인 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여성들의 실업 문제를 제처놓고 생각해보면, 별달리 여성에게 유리한 가산점을 주는 부분도 없고 특별히 여성 성우를 더 많이 뽑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성보다 비효율적인 경쟁률을 뚫어가면서까지 여성들이 성우계에 몰리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는 필자가 여성도, 성우지망생도 아니라서 딱히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기에, 종종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지만 딱히 돌아오는 답이 명쾌하지 않다. 사실 자기 꿈이 그렇다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순수성 없는 꿈이 아니라면 그것으로도 좋은 것이니까, 그들은 별 이유없이, 성우를 하고 싶은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새롭게 여자 성우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부분은 ‘연기 영역’측면 에서 비교우위를 가지게 된 변성기 전의 중성적 남자아이 목소리를 거의 독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일본쪽 애니메이션이 차츰 대중화가 되면서, 의인화된 동물캐릭터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캐릭터들이 많아지게 되는데, 이후 애니메이션 주 시청 타킷과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소재상의 제약으로 자연스럽게 등장 캐릭터들의 연령층이 낮아짐에 따라 소년 목소리에 대한 수요가 가시적으로 체감할 수 있을 만큼 커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도 언급했듯 대부분의 남자 성우들이 다소 제한적인 톤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변성기라는 성장 과정상의 변수, 그리고 실제 수요에 걸맞는 목소리의 조건 차원에서 여성 성우와의 음역 차이에서 오는 불리함 등 실제 성우 연령층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남자 성우들의 갖은 취약점 탓에, 일부 소년 목소리를 소화할 수 있는 성우들의 배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년 캐릭터들은 여자 성우들의 몫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보면 남자 성우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에서 여성형 배역을 맡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감안해볼 때 대단히 언벨런스한 현상이라고 생각되지만, 아직까지는 여자 성우들의 성별 초월 캐스팅 이외에는 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는 형국이다.
철이 쇼크
1980년 MBC의 본격적인 컬러 방송이 시작되면서, 일어난 성우계에 길이 남을 만한 큰 사건이 있었다. 다름아닌 ‘철이 쇼크’, 386세대들에게 아직도 진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개구리 왕눈이는 물론 그 이전부터 각종 신파드라마의 남자아이 역을 도맡아 왔던 성우 박영남을 제치고 고작 데뷰 3년차에 불과한 신인이었던 그녀를 전격 주인공으로 발탁했던 MBC의 캐스팅은 비교적 신인들의 깜짝 캐스팅이 빈번한 최근의 관점에서도 이해하기 힘든 모험중의 모험이었다. 명절에 특정 에피소드를 먼저 선행 방송 후 본격 편성한 부분이나, 당시로서는 정말 이색적인 시도였던 현역 가수의 애니메이션 오프닝 참여 등을 감안할 때 MBC가 은하철도 999를 단순한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기획한 것도 아니어서, 특별히 그녀가 데뷰 초기부터 남자아이 배역을 위해 노력했었다든지, 선행방송에서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제작진에게 어필했다든지 등의 추측만 난무한 채 아직도 철이 캐스팅의 파격은 의문으로 남고 있다. 이렇게 당시로서는 거의 넘볼 수 없는 독보적 위치에 있었던 박영남(KBS성우극회 소속)을 제치고 장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철이’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 그녀는 이후 몇 차례 여성향 캐스팅도 있었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으며, 철이 쇼크의 여파와 그에 따른 편견으로 그녀의 명함에 새길 만한 대표작들은 소년형 캐릭터들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흔히 말하는 ‘혼이 담긴 연기’ 를 한 연기자는 배역의 이미지를 벗는데 배우 생명을 건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녀도 지금까지의 성우 인생에서 ‘철이’의 연기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
그녀를 처음 본 사람들은 여성으로서는 상당히 드문 스포츠 스타일의 해어스타일의 그녀를 보고 제법 놀라움을 느낄 지도 모르겠다. 필자 도 그녀의 해어스타일에 대해서는 특별한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특별히 남자 연기를 많이 해 온 그녀의 이력과 관계가 있을거라는 생각보다는, 자기 자신이 일반적인 여자 성우들과는 지극히 다른 인생을 스스로의 선택으로서 개척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다운 해어스타일, 여자성우다운 연기, 어떻게 보면 성우 인생에서 정체성이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할지도 모른다. 성우는 연기하면서 자기 자신을 버리는 직업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지만, 그녀가 만약 여자 성우로서 여성향의 연기를 포기하지 못했다면, 또 ‘철이 쇼크’ 이후 몇 년을 포기해 가면서 철이의 이미지를 벗고 여성향 성우로서 살아왔다면, 필자를 포함하여 성우로서의 그녀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었을까? 그만큼 노력 이상으로 인생의 기로에서 현명한 판단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렇기에 그녀의 노력 이상으로 자신의 성우 인생의 기로에서 선택한 지금 그녀의 모습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감동시킨 배역.
엄마 (Mama) - あたしンち(아따맘마)
『 앞서 그녀의 ‘남성향’ 성우로서의 선택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고서는 여성향 연기에서 감동했다니 꽤 쌩뚱맞아 보일지도 모르겠다. 성우들에게 감동을 느끼는 것은 연기력에서도 느낄 수 있겠지만, 2시간짜리 영화를 보면서 특정 배우의 연기력에 감동을 느끼기보다는 2시간동안 그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가 펼쳐지는 성장스토리와 절정으로 치닫는 스토리와 슬픈 결말에 더욱 감동을 느끼듯이 필자도 같은 맥략에서 그녀의 몇
안되는, 그나마도 최근에서야 겨우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여성향 연기에 더욱 애착이 느껴지곤 한다. 꼭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성우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성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자신의 연령층에 들어맞는 진성연기가 가능한 배역을 맡게 될 확률은 매우 적은 편이고, 특히나 그녀처럼 특정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두각을 나타냄으로 인해서 레코딩 룸의 PD들에게 확고한 인지도를 갖고 있는 경우 더욱 소원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 때문일까? 그녀는 엄마 연기에서 실제 그녀의 모습과는 관계없이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억척스러운 아줌마 연기로서 ‘철이’의 이미지를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다. 연기를 하는 내내 이전 남성향 연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연기의 즐거움이 듬뿍 묻어나는 듯 했으며 목소리에는 항상 힘이 넘친다. 투니버스 데이 아따맘마 라이브 레코딩에서 본 그녀의 모습은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으로서 연기할 때 얼마나 그것이 소중한지를 연기하는 내내 표정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14세 소년보다 40대의 억척스러운 아줌마로서 더 빛나고 있었으니까… 』최근에 이르러서는 많은 여자 성우들이 남자아이 연기에 도전하지만, 실상은 이러한 Cross Gender (이하 CG)로 활약을 펼치는 성우들의 가치를 그다지 높게 쳐주는 편은 아니다. 대부분의 여자 성우들이 남자아이 연기를 일정 수준 이상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PD 입장에서는 제한된 수요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기 마련이고, 가시적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 이상 같은 수준에서 가장 적은 페이의 성우를 기용하는 경우가 잦은 편이다. 그래서 데뷰 당시부터 CG쪽을 전문적으로 표방하며 나오는 성우는 크게 드물다. 성우계에 소속된 사람들은 의외로 보수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자신이 불리할 길이라면 과감하게 버리는 냉정함을 갖는 경우가 많고 또 그렇지 않으면 실제로 살아남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최근 여자 성우들이 관록의 나이에서 목소리 톤의 변화와 안정적인 연기를 위해 자기계발보다는 보다 편한 CG를 택하는 추세가 대단히 걱정스럽다. 페이나 인지도 면에서 수요가 작다는 것을 알면서도 경쟁에 본격 뛰어들기보다는 최저한계선을 지키며 평균적인 위치에 만족하는 식으로 이어진다면 한 일 성우계 비교에서 항상 나오는 국지적 문제점, ‘성우 인프라의 부족’ 현상이 보다 더 심화되어 결과적으로 성우 시장이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며, 이는 최근의 토요명화 사태 등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맥략과 상통하고 있다.
여자 성우들이 연륜이 쌓여가면서 관록이 붙는 만큼 연기폭이 작아진다는 딜레마는 어제 오늘의 어려움이 아니고 어느 누구에게 국한된 고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것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필자가 성우계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입장에서 이야기하기에는 다소 설득력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성우가 평생직업으로서 인식되는 일면에는 시대와 수요에 맞는 충분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며, 자신의 전성기의 인지도를 통해 보다 편한 일로서 성우 인생을 보내는 것은 다소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평생 직업이란 연금제도가 아니다. 자신이 전성기, 그리고 직업인, 프로로서 대접받는 시간 동안에는 꾸준히 자신의 명성에 걸맞는 노력을 아 끼지 말아야 한다. 연기폭이 작아지면 작아지는 대로 자신의 특화된 부분을 좀 더 가다듬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분명 성우로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부분이고 TV 드라마에 전부 2~30대 연기자들만 그득한 것이 아니듯이, 자신의 영역이 좁아졌다면 과감히 다른 길을 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런 위험한 모험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좁더라도 그 영역을 관록으로서 지켜나간다면 충분히 자신의 입지를 굳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때문에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으면 한다. CG라는 분야가 그렇게 얕보일 만한 분야도 아니고, 수요가 적고 많은 사람들이 평균 이상을 구사할 수 있는 상위평준화가 되었다고 해서 A급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넓다는 생각을 해서는 곤란하다. 김치찌개는 우리나라 주부라면 누구나 끓이는 방법은 알지만, 아무나 TV에 나오는 맛집으로 선정될 수 있을 만큼 기막힌 맛을 낼 수 없지 않겠는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자신있는 요리로 승부해보자. 굳이 메뉴가 다양하지 않더라도, 결국 한 가지 요리만 메뉴판에 걸게 되더라도, 언제나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맛집처럼 말이다.
- Rush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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