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09. 5. 5. 00:49

롯폰기의 이미지는 매년 바뀌는 게 추세인 듯 합니다. 처음 제가 롯폰기를 방문했을때는 한국의 서래마을을 연상하는 듯한 세계 각국의 음식점들 (유럽의 각국 국기들이 휘날리는 음식점들의 행렬)들이 인상적이긴 했지만 특별히 깊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는데요. 이유는 물론 한국에서 관광을 오는 분들이 느끼는 그것입니다.

'한국이랑 다를 게 없잖아!'

일본관광 코스 중 롯폰기의 문제점이라면 사실 일본에 오면 이미 이국이기 때문에 굳이 일본 내에서 유럽의 정취를 찾을 필요가 없는데도, 단지 유명한 관광 코스라는 이유로 롯폰기를 찾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다녀간 롯폰기힐즈라든지, 서래마을을 연상시키는 식당가, 사실 롯폰기 힐즈를 능가하는 명품관은 한국 강남에도 넘쳐나고 있고 신세계첼시의 여주아울렛이나, 양재 하이브랜드가 폼은 좀 떨어져도 훨씬 쾌적하거든요. 쇼핑몰 그 자체를 즐기고 싶다면 오다이바의 비너스포트를 능가할 순 없고요.

그래서 감히 주장하지만 관광을 오시든 어쨌든 '롯폰기'에 '놀러'오는 분들이라면 과감하게 롯폰기 힐즈를 제끼길 권장합니다. 중심 시선을 도쿄미드타운으로 옮기기만 하셔도 전혀 새로운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죠.

도쿄 미드

롯폰기 힐즈보다 이 녀석이 요즘 대세입니다.


사실 롯폰기 힐즈도 그렇지만 도쿄 미드타운도 키만 높지 모든 층에 다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롯폰기 힐즈와 다른 점은 주변 개발을 철저하게 제한해서 도쿄 미드타워 앞 공지를 하나의 휴식 및 관광 명소로 만들었다는 점이죠. 물론 건물 내에 있는 시설들도 매력적입니다만, 숨막히는 도심 속 마천루보다 훨씬 쾌적하고 친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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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타워 동쪽 출구

건물 앞 공지에서는 저녁 6시까지 매 시간별로 다양한 테마 공연이 벌어집니다.


사실 높은 건물 주변에서 이같은 공연이 이루어지는 모습은 그리 낮설지 않습니다. 동대문운동장역이라든지 그밖에 세계 곳곳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이지요. 다만 이 곳의 공연이 조금 다른 부분은 어떤 영리적인 부분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는점입니다. 동대문운동장이나 명동은 특정 의류상가의 홍보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만, 이곳은 가능한 그런 냄새를 완전히 제거하고 문화 그 자체가 주역으로 있게끔 만들어줍니다. 물론 도쿄미드타운의 미츠이부동산이라든지 여타 업체들의 후원이 있습니다만 그 흔한 경품 추첨 행사라든지, 어떤 기업도 이 행사에 관여한 흔적이 없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각 도구를 활용한 다양한 기예가 참 멋졌습니다만 사진으로는 한계가 있네요 ^^;


물론 공연의 종류는 철저하게 건물 앞 공지 공연과 건물 바깥쪽 공원에서의 공연이 완전히 다른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건물 앞에서는 가능한 소리가 많이 나지 않고 보여지는 위주의 마임이나, 기예, 무용 등의 공연이 이루어집니다. 수준도 높은 편이고 무료로 제공되는데다가 뒷맛까지 개운하니 일석이조입니다. 공짜라는게 없다는 일본이지만 이런 공연들은 확실히 만족스럽습니다. 흔히 지하철이나 역 앞에서 하는 음악공연처럼 시간을 동정하는 느낌을 주지도 않으니까요.

수정구슬 기예가 특히 인상적이었던 공연자입니다. 공연이 끝나고 특별히 포즈를 취해주셨어요


공연은 공지, 공원 모두 도쿄미드타운에서 관장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공원쪽 공연과 공지쪽 공연 모두 지켜보는 사람들 중에 후지테레비를 비롯한 방송관계자들이 다수 섞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단지 대중 앞에서의 공연뿐만이 아닌 프로 데뷰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길 건너편에 조성된 녹지

본의아니게(?)관광 명소가 되어버린 공원입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곳이 문제의 '쿠사나기 사건'이 일어난 곳이라고 하네요.


공지와 공원 사이에는 편도 1차로의 찻길이 존재합니다. 이 찻길에는 무려 시내버스까지 다니지만 그밖에는 교통량이 그리 많지는 않기때문에 신호등 대신 관리 직원 두 명이 차량을 통제하며 철저하게 보행자위주로 안내하고 있는데요. 아무튼 이 길을 건너면 코끝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집니다. 풀내음과 꽃내음이 적절하게 섞여있는 기분좋은 산들바람이 반겨지는 공원이 있는데요. 골든위크라서 그런지 월요일 오후임에도 사람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사실 이것도 적은 편이라고 하네요)

레토리버 님께서 특별히 포즈를 잡아주셨습니다. 사진은 참 잘나왔는데, 이 개 상당한 정서불안입니다 ^^;


롯폰기답게 관광객이 아닌 서양권 거주자들이 대다수입니다.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혼잡하지 않게 저마다의 정취를 즐기고 있습니다. 하나미처럼 술판을 벌이는 사람도, 취사를 하지도 않고 그냥 가만히 쉬는...지극히 슬로우라이프적인 모습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요크셔테리어 종입니다 유모차에 데리고 나온 걸 보니 이 부부도 아이 대신 강아지를 키우고 있나봅니다.


물론 이곳에 모여있는 일본인들도 우에노 공원이나 다른 공원에서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입니다. 롯폰기 인근에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만 제법 먼 곳에서 일부러 나들이를 온 가족들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무척 조용하고 무례하게 뛰어노는 아이들도 없었으며 강아지로 인해 지저분해지거나 트러블이 발생하는 일도 많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사실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주변에 폐를 끼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이곳만큼은 지극히 알려진 대로의 일본인으로 보여지게끔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오늘의 공연 스케줄표

건물 앞 공지, 공원 등 각 장소에 따라 시간대별로 오늘의 공연 내용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일주일 간격으로 변동이 있는 것 같습니다.


건물 앞 공지와는 반대로 이곳에서는 음악 공연이 이루어집니다. 물론 무대는 건물과 좀 많이 거리를 두고 있기때문에 이곳에서 음악 공연이 이루어져도 건물 내부는 물론 건물 앞에서 하는 조용한 공연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쉬는 분들을 고려해서 앰프 음량을 넘치듯 크게 하지 않고 록 공연이라도 베이스 부분을 최대한 약하게 하는 배려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공연이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이지만 확실한 것은 이들의 공연이 특별히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롯폰기의 밝은 면이라면 밝은 면일수도 있는 부분인데요. 이런 공연을 이어나가면서 빈부에 상관없이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정책적 지원과, 상업적인 부분을 철저하게 분리시킨 이같은 행사들이 공연을 보는 사람과 하는 사람 모두에게 인생에 있어 의미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미드타워 안에서 본 모습입니다.


일본 제1의마천루라인과 그에 걸맞게 도내 수위를 다투는 건물 임대료를 자랑하고 있는 롯폰기지만 이곳이 '압구정'이나 '청담동'처럼 그들만의 놀이터가 아닌 이유는 역시 그것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소외감과 우월감이 아닌 그곳을 보며 꿈을 키워 나갈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가 되어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행복은 과시가 아니라 뛰지 않고 걷기 위해 지금 뛰고 있다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이곳에서는 명품을 휘감은 재벌 2~3세 대신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누워있는 사람들과 대중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빛이 나는, 행복한 꿈을 가득 머금다 못해 철철 흘러 넘치는 문화인들만이 있을 뿐이죠.

내일은 도쿄 미드타운의 내부를 간단하게 (이미 내부는 많은 블로거들이 다루어주셨기 때문에) 소개하고 일면 연예인 지망생들의 치열한 격진지가 되고 있는 롯폰기의 냉정한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 Rush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