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박재범이 왜 지금 시기에 뮤뱅에 나왔는지 재미있지 않은가? 타이밍 정말 기가 막히다. 2PM은 국내 활동을 잠시 쉬고 일본에 아예 넘어가있는것으로 보이고 그밖에 JYP계열 그룹들이 일제히 자취를 감추는 이 기막힌 틈새시점에 이른바 '얼리버드 복귀'를 했다. 그런 와중에도 기획사들의 철저한 동업자 정신(?)으로 라디오 및 TV에서는 철저하게 외면받았던 가운데 순수 팬덤만으로 1위에 올려버리는 일찌기 보기 힘든 사례도 탄생시켰다.
놓치고 있는 첫번째는 이같은 특수한 환경이다. 박재범의 1위에 대해 뮤직뱅크의 순위 산정 기준을 들먹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사실 뮤직뱅크의 순위 방식 중 가장 의야스러운 점이 바로 '디지털 음원'이나 '음반 판매량'이 아닌 '시청자 선호도'와 '방송 노출도'다. 음반이나 음원은 얼마든지 수치상으로 확인이 가능하지만, 이 시청자 선호도는 대체 어떻게 분석하는지 데이터도 나와있지 않다. 방송 노출도? SM의 캡숑파워로 거의 모든 TV프로그램 엔딩곡이 f(x)의 피노키오로 도배되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게 과연 '시청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인터랙티브함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을까?
놓치고 있는 두 번째가 바로 이 인터랙티브함의 문제이다. 대한민국에는 애석하게도 디지털 음원 이외에 종합적인 판매량 순위를 확인할 이렇다할 근거가 없다. 여기에 철저하게 비주류 지하돌 팬덤을 구축하고 있는 박재범 팬덤의 타의적 폐쇄성 탓에 도무지 어느 정도의 잠재적인 인기가 있었는지 일반인들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는 박재범 팬덤이 의도적으로 지하돌 활동을 원했던 게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해지는데, 이들이 '팬 활동'이 아닌 '응원'형태의 활동 방식을 추구하면서 다른 팬덤, 특히 JYP계열 팬덤과 자주 부딪혔음은 물론 방송 노출이나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것에 대해 팬 개개인의 활동만으로 미디어 노출을 이루기 어려운 장애물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즉 블로거들은 기획사들의 알력관계를 너무 얕보고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업계 내에서는 그 이상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은 게 그들인데도 말이다.
세 번째로 놓친 부분은 바로 이들의 '구매 성향'이다. 박재범의 팬덤은 너무 오랜 기간 '지하돌'화 되어 있어 마치 찌르면 걷잡을수없이 폭발해버릴듯한 극도의 코어성이 내재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즉 지금의 박재범 팬덤은 많지 않은 인원 속에서도 구매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이른바 '무조건 산다'는 절대구매층이 다수를 이루고 있으며 이들의 경제력 역시 현재의 아이돌 팬 연령대보다 현저히 높게 형성되어 있는 탓에 충분히 뒷받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의 구매 목적 역시 지금까지의 아이돌 구매 성향과는 크게 다른 '순위'를 높이기 위한 '주식시장'의 작전 세력과 같은 치밀하고 고차원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대중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런 활동이 물론 '실제 인기'를 반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박재범 팬덤이 '실제 인기'라고 우기기 위해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도 보기는 힘들다. 그들은 단 한주만이라도 그를 1위로 끌어올려 뮤직뱅크가 결과를 무시하기 어렵게 해서 박재범을 출연시키고 박재범의 1위 수성을 발표하게 만드는 '짧고 굵은' 응원을 한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은 방송에 나오게 되어 한 번이라도 듣게 되어 아주 조금이라도 그들의 팬덤이 수가 늘어날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중요한 건 이런 활동이 '기획사'가 아닌 '팬덤'이 중심이 되어 움직여진 사례는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희귀한 사건이라는 데에 있다. 당연히 일방통행식 음악 콘텐츠 공급에 익숙해진 대중에게는 매우 생소한 시스템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에는 이런 사례가 꽤 많아서. 가요 프로그램이나 라디오에서는 전혀 들을 수 없는 (즉 일반인이라면 모르는 게 당연한) 정말 매니악한 성우들의 음반이나 지하돌 (언더그라운드 아이돌) 혹은 애니메이션 주제가들이 오리콘 주간 상위권을 확 휩쓸고 다음주에 자취를 감춰버리는 경우를 왕왕 볼 수 있다. 물론 '소수'의 팬덤이 이런 일을 저지른다. 이들은 발매일에 맞춰, 혹은 오리콘이 집계를 시작하는 날에 맞춰 1주일간 집중적으로 사재기 작전을 벌여 점수를 높인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순위는? 처음에는 100% 팬덤의 힘으로 이루어지지만 다음 싱글에는 그 당시 그 순위를 보고 한 번쯤은 그 음악을 들어본 사람들 중 그 음악을 '마음에 들어했던' 사람들이 일부 섞이게 된다. 즉 10:0이었던 팬덤과 일반 비중이 9.9:0.1 정도로 아주 미세하게 확장되는데, 이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이 좋아하고 응원하는 아티스트들을 오리콘에 노출시킴으로서 팬 스스로 '키워내는' 응원을 하게 된다.
약빨떨어졌다고 해도 국민밴드였던 스핏츠와 나카시마 미카를 즈려밟고 애니메이션 음반이 '위클리'1위, 사실 AKB도 시작은 이런 식이었고, 지금의 신한류 일본 정복도 이 범주에서 대부분 벗어나기 힘들다
박재범은 그 팬덤의 규모에서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음주에 순위가 급락하거나 아예 방송 출연을 다시 하지 못하는 등의 결과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당연하겠지만 블로거들은 다음 주 뮤직뱅크에 그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포스팅이 양산될것이다. 박재범의 팬덤도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겠지만, 아무래도 태동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같은 팬덤 성향에서 아직 어떤 추가적인 작전을 걸게 될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당장의 여론에 대한 아쉬움에 아마도 무모하리만큼 다음 주에도 어떻게든 순위권에 안착시키려고 음반을 다시금 10장, 20장 공동구매하는 식으로 순위를 높여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박재범 팬덤의 이러한 시도가 과연 또 어떤 벽에 부딪히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우 신선한 시도라는 점은 분명하다. f(x)의 피노키오가 1위를 했다고 '국민가요'가 된 게 아닌 것처럼 이미 지금의 '순위'는 전국민적인 공신력을 얻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단지 박재범의 사례는 순위조차 '홍보 수단'이 되는 이런 상황을 대형 기획사가 아닌 '팬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졌다는 점이 특이할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참 태어나기 힘들고, 살아남기도 힘든 캐릭터를 지닌 노홍철, 지난 무한도전에서 보여준 '거상 노만덕' 캐릭터 당시 정말 많은 여성들에게 어필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가 특별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냥 재미있고 유쾌해서라고 한다면 설명이 부족하다. 그가 무한도전에서 참 재미있고 신기하며 보고만 있어도 유쾌해지는 캐릭터인것은 분명하지만 웃기는 것만으로 여성팬들에게 그런 절대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그렇다고 그가 얼굴이 '매우 잘생겼'거나, 여성들에게 매우 호감이 가는 얼굴인 것도 아닌 것 같다. 키도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여자들이 싫어하는 대표적인 남성들의 특징인 '큰 머리'를 가지고 있다. 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있지만 이런 스타일은 철저하게 호불호가 갈린다. 그런 그가 거리에 나타나면 여성팬들이 구름처럼 몰린다. 그가 내미는 상품을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뭉텅뭉텅 사준다. 국민 MC 유재석이 같은 미션에서 여성팬들로부터 매우 계산적인 처우를 받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비교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건 단지 그가 '연예인'이라서가 아니다. 인지도는 유재석이 더 높은데 어째서 유재석은 그런 구름같은 여성팬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을까? 단지 품절남이라서?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할 것 같다. 유재석과의 차이가 아니라 노홍철만이 가질 수 있었던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그에게 수많은 여성팬들을 안겨줬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그가 무한도전이 본격적으로 안정화되기 시작한 4년여 전 유행시킨 유행어가 하나 있다. 다름아닌 '소녀팬'이라는 단어인데, 사실 노홍철의 인기는 이 '소녀팬'이라는 단어에 거의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소녀팬'이라는 게 단어로서 계속 되뇌이거나, 가지고 싶다고 생각만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면 노홍철은 그렇게 '반 새뇌식' 팬몰이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포인트는 '소녀팬을 계속 되뇌인' 데에 있는 게 아니라 '소녀팬'이라는 단어 자체에 있다.
우리는 만 13살부터 18살까지의 여자 사람들을 흔히 뭐라고 부르는가? 열이면 아홉이 '여학생', 혹은 나이를 통한 현재 학력을 유추해 '여중생','여고생'등으로 부르곤 한다. 이미 우리는 그 단어 자체가 '아직 성장기를 겪고 있는 풋풋한 여자'를 일컫는 대명사가 되어 있다. 그들이 일과 중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끔찍할만큼 긴 것도 사실이고 학생은 공부나 해야한다며 타의적으로 학교에 처박고 학원에 처박고 처박히는 일생을 살아오고 있는 것도 틀리지 않은 현실이지만, 정작 그 '학생'이라는 표현을 그들이 '달가워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다.
그들은 '여자'이고 싶다. 꾸미고 싶고 여성스러워지고 싶다. 더 가슴이 커졌으면 좋겠고 더 다리가 날씬해졌으면 한다. 입술이 더 섹시해졌으면 좋겠고, 머리도 좀 더 길게 길러봤으면 싶다. 다시 말해 특히 '그 나이대 여자'들은 '학생'이라고 불리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성인 여자'로 취급해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우리는 철저하게 '여학생'이라고 불러왔다. 그 여학생이라는 단어가 다시는 못올 풋풋함의 상징이라는 새뇌까지 해대면서 말이다.
이승철의 '소녀시대'가 대히트를 친 건 단지 음악때문만안 아니었다. 그는 '어리다고 놀리지말아요!'라며 그들 대신 기성세대들에게 일갈해준 든든한 '오빠'였으니까...
그들을 노홍철은 처음으로 '소녀'라고 불렀다. '여학생팬, 여고생팬'이 아니라 '소녀팬'이라고 불렀다. 처음부터 그에게 소녀팬이 그렇게 많았을리는 없다. 하지만 그가 부르짓는 '소녀팬'이라는 단어는 응당 '여학생'이 아닌 진즉에 '소녀'라고 불리웠어야 할 '소녀'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제서야 깨닫는다 -그래 우리는 여학생이기 이전에 '소녀'였다고 말이다
민감한 나이대, 어른들로부터 인정받고싶어하는데에 익숙한 이 사회에서, 처음으로 자신들을 '소녀'라고 불러준 '어른'이 있었다. 그것도 그들이 대통령보다 위대하다며 동경하는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말이다. 노홍철이 정말 여기까지 계산하고 그런 말을 만들어 부르짖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가 그들을 부를 때 쓴 '소녀'라는 호칭은 '소녀'들의 가슴에 불을 아주 제대로 지핀 셈이 됐다. 노홍철은 본의아닐수도 있게 소녀팬들에게 있어서는 '자신을 처음으로 여자로 봐 준 남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소녀...라고 불렀다.
홍철은 솔직한 성격이 장점이다. 그는 결코 입바른 소리를 하지 않는 이미지를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소녀'라고 부른 그 한마디는 소녀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소녀'들에게서 '소녀'라는 호칭을 빼앗아간 우리 사회에서 그는 본의아닐수도 있게 잃어버린 '소녀'들의 '소녀'를 그들에게 되찾아주었다. 유행어가 되어 정착된 '소녀팬'이라는 단어는 음악방송 공개홀에서 동경하는 오빠를 향해 부르짓는 여자들을 더 이상 '빠순이'나 '학생팬'으로 부르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학생'은 음악방송 공개홀에서 소리지르면 안되고 공부를 해야 하지만 '소녀'는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이건 학생답지 않은 것이 아니라 소녀답다라고 표현해야 옮다. 극성팬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욕하기 전에 그들이 왜 '소녀'답지 않게 과격해질 수밖에 없었는지 먼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소녀들에게 있어서는 자신을 처음으로 여자로 봐준 사람이 되어버린 노홍철, 그는 예컨데 이를 모두 의도하고 그런 유행어를 만들어냈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그래서 그가 좋다. 이 세상에 어두운 면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밝은 쪽으로 이끌어 낼 것을 너무 의식하고 행동하다 일을 그르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는 아무 생각없이 자연스럽게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렇게 자신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걸 모르고 행동하는 사람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자연스럽게 기쁨을 주는 사람들이 이 나라엔 무척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갑자기 그렇게 들어오라고 해도 안들어오던 스마트폰이 아주 봇물이 터지셨다.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아이폰은 구경조차 못해보던 이 나라가 이제 '스마트폰'이 아니면 신규 가입도, 기기 변경도 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스마트폰을 반 강제적으로 손에 쥐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활용할 것을 강요당한다.
딱 10여년 전이 그랬다. 인터넷 붐이 일었다. 그리고 PC가 마구 보급되었고 전국에 인터넷망이 마구 깔렸다. 세상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 처리하게 되었다. TV에서는 인터넷만으로 생활이 가능한지를 테스트하는 다큐멘터리가 연일 방영되었다. 관공서들과 은행, 각종 서비스 기업들은 속속 인터넷 서비스를 앞다투어 개시했다. 그렇게 이 세상은 속속 '인터넷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는 듯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이 '인터넷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으로 속속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인터넷은 '사용 수단'이지 필수 요소가 되어서는 안되는데도 말이다. 이는 인터넷 활용에 적응이 늦은 연배 있으신 분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태초부터 기계치가 있는 것처럼 컴맹, 인터넷맹이 있기 마련인데 이들은 인터넷이라는 세상의 '변혁'에 휘말려 희생을 강요당하고 말았다. '넌 이것도 못하냐'라는 지조섞인 비웃음과 함께...
왜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기까지 국민적인 저항이 별로 없었을까? 그것은 인터넷의 미디어적인 편리성 이전에 '경제성'을 내세워 보급에 속도를 붙였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우선 '공짜'였다. 모든 서비스가 공짜라는 점을 어디에서나 쉽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은 최소한 '오프라인'에서 파는 물건보다 훨씬 싸야만 했다. 안 그러면 팔리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오프라인 서비스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절차에 비해 훨씬 저렴한 '수수료'를 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왜냐하면 인터넷은 생각보다 '매우 불편'했으니까...
IT강국이라는 키워드에 취해 전 국민을 IT화시켜 마치 '젊은 엄마들의 아이자랑'마냥 세계 각료회의에서 인터넷 보급율 같은 범국민적 지표를 자랑하고 싶었던 이 나라는 그러한 수치적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국민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일원화시키기에 급급했다. IT가 잘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는 어디까지나 동등한 이용 권리를 주어야만 한다는 보편적 권리에 대한 개념은 이 나라에 없었다. 나이 든 중역들도 반 강제적으로 페이퍼레스 운동에 동참해야 했고, 그들은 이메일로 보고를 받은 다음 그것을 열지 못해 다시 프린트해서 보고를 받고 다시 그에 대한 답변을 서면으로 작성에 이메일에 옮기는 것을 부하직원에게 시키는 웃지 못할 일을 벌어야만 했다.
인터넷은 편리하지 않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다고 착각하는 이면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말이다. 인터넷 뱅킹을 예로 들어볼까? 우리는 '도장'하나로 모든 게 해결될 수 있었던 예전 송금 방식에서 'ID','패스워드','공인인증서 로그인 패스워드(영숫자혼합8자리 이상)','이체비밀번호','인터넷 이체 비밀번호 (영숫자혼합6자리 이상)'을 '직접'암기해야 한다. 여기에 보안카드 번호를 직접 '틀리지 않게 입력'해야 하는 수고도 들어간다.
다들 직접 방문하는 거리적 수고를 덜었다고 생각하는 이면에는 이런 불편함이 수반된다. 그리고 이같은 IT의 변화는 결국 국민들의 대대적인 손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터넷 쇼핑몰의 개인정보 유출, 인터넷 쇼핑몰 대형 미발송 사기사건, 그리고 최근 발생한 농협의 전산작동불능이 그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인터넷을 쓰고 싶지 않거나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을 싸잡아 우민화시키며 세상을 살아가는 선택권을 빼앗아가면서까지 우선 사지로 내던져 '알아서 살아남아라'는 식의 정책을 주창했던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국가가 있다.
컴퓨터를 못 하는 원숭이가 문제가 아니라 원숭이에게 컴퓨터를 던져 준 사람이 문제가 아닐까?
지금의 스마트폰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으며 쓰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나 막힘이 없다는 응답을 한 사람이 전체 사용자의 16.7%밖에 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 그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에서 특이점을 찾을 수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하고 잇다'라는 것, 미국이나 일본이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스마트폰'을 못쓰게 한 적도 없고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아닌 다른 것을 못쓰게'한 적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지 않을까?
십수년 전 인터넷 붐과 지금의 인터넷의 위상을 보면서 스마트폰 시대의 흐름을 본다. 이제 겨우 휴대폰으로 문자 보낼 수 있게 될만큼 '노력'했던 사람들이 스마트폰 시대로 인해 또 어떤 환경을 강요받게 될까? 이미 그에 익숙하고 배우기 쉬운 젊은 층이나 타고난 얼리어답터들이 아닌 소수일수도 혹은 다수일수도 있는 사람들을 일단 사지로 내던져 '억지로 그 흐름에 편승'할 것을 강요하고 전국민적 '타이틀'을 국가 '상표'로 이용하고자 하는 지극히 '공산주의적 사회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필자 뿐일까?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을 보면서 우리는 '가장 효율적'인 것이 가장 '경제적'일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가 농협 사태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인터넷 뱅킹이 '사람들'의 인건비를 줄이고 교통비를 줄일 수 있는 굴뚝 없는 산업 이라며 효율성을 부르짖었다. 그 끝이 농협의 끝없는 경제 논리로 인한 대형 참사라니 재미있지 않은가? 결국 우리는 그 작은 효율성을 추구한 결과 더 큰 손실을 가져오고 말았다. 그리고 거기엔 그 '효율성'과 'IT강국'이라는 포장지를 위해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생활 패턴을 시대의 흐름이라며 억지로 강요당한 것에 따른 시간적 낭비를 감수할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비효율'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효율성을 추구하다 보면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놓치게 된다. 후쿠시마 사태와 농협 사태는 이같은 공통점이 있다. 사람이 해야 할 일보다 '돈'이 우선시되었다는 것이 그것인데, 결국 피해는 '작은 효율'에 취해 '작은 비용 절감'에 현혹되었던 (전기료 절감, 수수료 절감) 일반 국민들이 모두 떠안게 되고 말았다. 이젠 이런 '작은 효율'을 추구하는 경제논리적 사고방식에 대한 지지도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쯤되면 좀 그 효율성에 발을 맞춰가지 못해 시간과 정신적인 손실을 감수하고 있는 적지 않은 사람들의 고통과 그에 따른 경제적 비효율성도 한번쯤 굽어살필때가 되지 않았는가?
효율이라는 이름 속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비효율의 희생을 수반한다는 것,
우리가 고도성장기에 취해 작금의 경제위기를 돌파하고자 하는 이면에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헌법에는 언제나 '누구나' 라는 말이 항상 들어간다.
누구나, 언제든, 무엇이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우선 이 글은 '카이스트'를 옹호하고자 하는 글도 아니고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고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카이스트생이 아니며 본 글에 나오는 사례들은 필자가 만난 카이스트생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것으로 지극히 주관성이 가미되어있을수 있음을 밝혀둔다.
카이스트는 원래 자살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빡센 학사일정이 있기도 하고 군 면제 혜택이나 100% 장학금 혜택 등 기존 대학들과 차별화되어있는 장점의 이면에는 그러한 장점을 소위 '개나소나'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정말 부던히도 많은 노력을 해왔던 역사가 있다. 불과 십수년전만해도 학점 내에 B가 한 번 끼어있으면 경고를 받고 그 이후 B를 한번 더 받으면 짤없이 퇴학이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평균 3.0 기준이 아니었고 징벌적 등록금 납부가 아니라 아예 퇴학이었다는 것, 당연하겠지만 이 공부밖에 모르는 학생들은 자신이 카이스트의 엘리트 라인에서 낙오되었다는 좌절감과 더불어 남학생의 경우 퇴학 즉시 군대로 끌려간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그 전설적인 '거푸집 침대'를 뒤로 하고 기숙사 옥상에서 몸을 던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게 너무 비인간적이라는 평가가 지속적으로 나오게 되어 바뀌게 된 게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퇴학 조치는 징벌적 등록금으로 한 과목이라도 B가 나오면 안되던 걸 전체 평점 3.0으로 완화시켰다. 물론 이 완화기준을 만든 계기가 반드시 '인륜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는데, 2000년 이후 이른바 카이스트 1세대들의 아들들이 과학고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에 돌입하는 연령대에 접어들면서 무작위로 뽑기보다 과학고에서의 에스컬레이션을 선호했던 부분으로 인해, 과학고의 '내신'과는 또 다른 객관적 평가를 해야만 했던 카이스트가 이들의 학력 저하를 문제 삼아 퇴학을 결정하게 될 경우 실세를 쥐고 있는 카이스트 1세대들의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웠으리라는 판단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은 파벌에 따른 눈치보기에서 나온 정책이라는게 안타깝지만 아무튼 기준은 이전에 비해 대폭 완화되었다. 이제 학생들은 '등록금'만 내면 학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남학생의 경우는 까딱 잘못하면 군대로 끌려가 인생 막장 태크탈수도있다는 똥줄타기 긴장감을 한층 덜 수 있게 되었다.
이공계 엘리트의 군입대는 곧 '시망'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 와서 자살자가 4명이나 나왔고 학생들이 이를 근거로 카이스트의 정책을 좀 더 완화해야 한다며 들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에 비해 '완화'되었기에 추가 완화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요구는 뭔가 투명성과 연관성에서 심하게 결여되어 있다. 우선 자살한 4명의 자살 동기가 4명 모두 '학업 부담' 이라고 아예 확정적으로 못을 박고 그를 빌미로 징벌적 등록금제도에 대한 부당함과 더불어 팩트에 가미되지 않았던 '영어 강의'문제까지 싸잡는가 하면 검찰은 여태 한번도 드러나지 않았던 카이스트 비리를 밝혀냈다며 연속콤보를 후려치고 있다.
영어 강의는 분명 문제다. 미친 짓임에 분명하다. 이건 개선해야 하는 게 옮지만 '지금처럼 국민적인 관심이 집중되었을 때' 터뜨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끄집어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정말 팩트가 코어에 근접했을때 밝혀내더라도 제대로 된 근거가 나오기 힘든 약자들이 지금처럼 '분위기를 타듯' 싸잡아 문제제기를 할 경우 향후 신뢰성 문제에 있어 후폭풍을 맞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살자 중 한 두명정도는 정말 확실한 관련 팩트를 제시할 만한 근거를 낼 수 있다지만 인천에서 살던 휴학생의 자살까지 끌어들여오는 건 너무 심하지 않았는가?, 관계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은 채 사건에 휘말려버린 카이스트 교수의 자살은 어떤가? 제각각 이유가 다를 수 있는 자살을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로 이용하기 위해 팩트를 싸잡아 일원화시킨 행위가 과연 그 주장에 대한 무결성에 도움이 되고 있을까?
사실 부정적인 의견만 있던 것도 아니었다.
카이스트가 내내 자살이 없다가 갑자기 올해 들어 4명이나 자살했다는 식의 보도 분위기도 그렇지만 그 자살자 4명이 정말 징벌적 등록금의 문제점에 의한 것이며 4명 모두 영어 강의에 반대하거나 수강 자체를 어려워했다는 점이 자살 동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가 지금으로서는 어디에도 없다. 그들의 주장이 부당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살이라는 팩트 하나로 자신들의 처우 개선을 주장하고 있는 카이스트의 주장이 이후 힘을 잃게 될 것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지금 기회를 잃고 싶지 않은 기분은 알겠지만 평소에 그러한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더 치밀하게 준비를 했어야 했고 향후 뒤통수를 맞지 않을 무결한 기회를 엿보았어야 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카이스트의 현행 제도는 '영어 강의'를 제외하고 현역 대학생들에게 공감을 얻기 힘든 주장들이 대부분이다. 카이스트는 '전교생 장학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카이스트는 원래 학비가 무료'가 아니라 '전교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는 학교라는 것이다. 그런 학교가 성적에 대한 잣대를 엄격하게 제공하고 그 성적에 도달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징벌적 등록금'을 내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장학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지금 카이스트생들은 성적에 도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징벌적 등록금'을 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것은 '성적이 낮은 학생에게도 장학금을 줘라'라고 주장하는 것밖에 안되는 것이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것이며 그런 주장이 동세대들에게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장학생의 자격
세상에는 '선택에 대한 책임'이 존재한다. 뮤추얼펀드가 원금손실이 벌어졌다고 증권사 찾아가 내돈 내놓으라며 멱살잡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나라에서 이 '선택적 책임'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인감도 있지만 한마디로 '니가 이것에 대한 허와 실을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타인에 의한 강요 없이 100% 자발적으로 선택한 부분은 전적으로 자기자신의 책임이다'라는 것이다. 100% 영어강의가 문제가 있다는 것, 징벌적 장학금 제도가 문제가 있다는 것 과연 그들이 '카이스트를 지원할 당시'에 몰랐을까? 그들은 그걸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카이스트를 선택했다. 그리고는 지금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근간을 책임질 엘리트들이라는 이들이 보이는 행동 치고는 너무 치졸하지 않은가?
카이스트는 원래 그런 학교다. 그리고 그런 학교여야만 한다. 학생들은 전원 장학금을 받고 있으며 다른 대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런 파격적인 제도에 걸맞은 우수한 학생들을 육성해내야 할 책임이 있고, 그에 걸맞은 우수한 학생이 되어주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학교에서 나오는 장학금은 국가 세금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처우 개선에 대한 주장을 거둔 채 닥치고 따라가라고만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고인의 의중과는 관계없이 그저 '남은 자들'의 편익을 위해 그들의 죽음을 싸잡아 이용하는 행위는 이후 행여 정말 카이스트가 학생들의 목소리를 내야만 하는 일이 생겼을 때의 발언권과 그에 대한 신뢰성을 급격히 떨어뜨린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들은 카이스트의 미래를 이야기하며 학교를 변화시키겠다고 하지만
결국은 지금의 자신들 안위를 최우선시하고 있음에 다름아니며,
이후 들어올 카이스트의 후배들을 위해 노력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현재 안위만을 생각한 나머지
오히려 카이스트에 들어올 후배들의 발언권과 신뢰도까지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토록 한국의 아메리칸 아이돌을 바라며 행여 공중파가 '쇼바이벌'의 실패를 들어 다시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을까봐 걱정했던 게 불과 2년 전이다. (문제의 글을 보시려면 클릭, 공교롭게도 슈스케 1기가 막 시작한 직후였다. 당시의 정보 부족에 반성해야겠다) 그런데 바로 그 쇼바이벌로 실패한 MBC가 위대한 탄생을 들고 나올줄은 상상도 못했다. 케이블이라 제작 소재에 자유롭기 때문에 지금의 오디션 방송 붐에 얼마든지 편성할 수 있는 벤처성이 있지만 공중파는 절대 그럴 수가 없다. 워낙 편성국의 힘이 막강하기때문에 신인 PD가 시기적으로 적절한 기획을 가지고 방송을 제작하고 싶어도 그 기획안이 뜰 수 있는 시기를 잡을 수 있는 유행성을 가지기가 매우 힘들다. 대부분 그런 기획안은 유명 프로그램의 특집 기획으로 흡수되기 일쑤며 기획 자체가 장기성을 갖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고정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는 건 거의 있을 수가 없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철벽의 공중파라고 할지라도 가끔 신인 PD들이 주류로 들어올 수 있는 찬스가 있는데 바로 '정권 교체', 즉 사장이 바뀔 때다. 무한도전의 탄생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4개 기획 연합 프로그램 '토요일'의 탄생 시기가 바로 최문순 사장 초기 봄 개편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재미있는데, 당시 진정 풋내기에 불과했던 제작진들과 토요일 4개 기획 중 출연진 혹사 문제와 슬랩스틱 장르로 시대에 뒤떨어진 기획이라며 폭풍까임을 당하던 무한도전만이 살아남아 지금까지 장수할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만일 이들이 최문순 교체라는 시류를 타지 못했다면 지금 우리는 무한도전이라는 역사에 남을 만한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토요일 저녁에 만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들이 살아남은 이유는 다른 게 없었다. '토요일'을 구성했던 다른 3개 기획이 참신성에서는 앞섰지만 '명절 특집'수준의 밑천이었을 뿐 이렇다할 장기 플랜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 무한도전 제작진은 모르긴 몰라도 최소한 시즌 3까지의 탄창을 충분히 준비할 만큼 급조하지 않은 오래 준비하고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 기획을 이미 당시부터 가지고 있었을것이고, 그것이 토요일의 시청율 완패 속에 다른 PD들이 경험밑천을 드러내며 자멸한 가운데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위대한 탄생 역시 이와 맥을 같이한다. 물론 김재철 사장 취임과 동시에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김재철 사장이 눈에 가시처럼 어겼던 W(공교롭게도 최문순 사장 당시 만들어진 프로그램 중 무한도전과 함께 가장 장수한 프로그램)를 온갖 반대 속에 내린 만큼 그에 걸맞는 임팩트를 가진 프로그램이 필요했고 그것이 위대한 탄생이다. 많은 분들이 '위대한 탄생'을 마치 '슈스케'가 2기까지 대박을 낸 상황에서 W의 자리를 매울 프로그램으로 급조시킨 게 아니냐는 의혹을 보내는 분들이 많으신데, 아무리 MBC가 막장 시청율로 전락해도 오랫동안 토착화된 공중파의 보수성을 깨버리면서까지 파격인사를 단행할만큼 어리석지 않다. 위대한 탄생은 결코 급조된 프로그램이 아니며 일면 제작진의 경험부족으로 인한 운영상의 미스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것은 '경험 부족'일뿐 '기획의 급조성'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위대한 탄생은 슈스케와 전혀 닮아있지 않다.
위대한 탄생은 MBC가 공중파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아무리 PD가 신인이라 할지라도 최소 2년 이상은 '머릿 속'에 담아두고 습작을 하듯이 이리 저리 살을 붙이고 덩치를 불려나갔을 기획일 것이다. (일단 신인이라고 보기도 힘든 제작진이고) 물론 이 과정에서 슈스케가 영향을 끼쳤을 수 있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인재풀로 상대가 안되는 케이블계 기획을 따라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붙은 살의 일부에서 슈스케의 흔적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뼈대의 태생은 완전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위탄의 모델은 바로 이것 '브리티즈 갓 텔런트'라고 보고 있다. '응? 아메리칸 아이돌이 아니자나?'라고 의야해하실 분들이 계시리라 믿는다. 바로 이 점이 위탄과 슈스케의 차이를 가르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양쪽의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대한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인데, 일전 필자가 SBS 스타킹을 까면서 쓴 글의 일부분을 인용해본다.
(전략) 실제로도 아메리칸 아이돌은 유명 기획사가 아닌 TV가 대중 가수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힘을 과시했으며, 브리티즈 갓 텔런트는 자신들이 연출해낸 최고의 상품 '폴 포츠'를 통해 그들의 프로그램 콘텐츠 제작 능력이 세계적인 수준임을 내세울 수 있었다. (후략)
우선 슈스케부터 보자 그들이 롤 모델로 삼은 프로그램은 두말할필요도 없이 아메리칸 아이돌이다. 지금까지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차별화될 수 있는 전문가들의 혹평과 그들로 인해 점차 수준이 높아지는 참가자들의 면면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즉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출연자'다. 지금이라도 당장 슈스케라는 키워드로 다음뷰에 검색해보자, 우승자 허각을 비롯해, 존박, 강승윤, 김그림 등 포스팅 된 대부분의 소재가 '프로그램 자체'가 아닌 출연한 출연자들에 모아진다. 즉 슈스케는 철저하게 출연자를 띄우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는데, 물론 마지막에 각 출연자들의 뒷 배경스토리를 짜맞추며 감동을 자아내는 등 엇나간 행보를 보이기도 했지만 이는 초기 기획에서 방송분량 연장을 위한 일시적인 살붙이기였을뿐, 본질이 훼손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슈스케는 프로그램 자체보다는 철저하게 출연진들의 성공에 초점을 맞춘 아메리칸 아이돌의 형식을 택했을까? 필자가 쓴 부분을 다시 한번 인용해보자,
실제로도 아메리칸 아이돌은 유명 기획사가 아닌 TV가 대중 가수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힘을 과시했으며....
답이 나왔다. CJ 소속의 MNET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케이블 방송사에 그치고 있지 않는다는 점은 다들 잘 알고 계실 것이다. (무려 코스닥에까지 상장되어 있으니) MAMA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들은 어떻게든 방송의 힘을 빌어 이미 주류에서 한참 벗어난 연예기획사인 M.NET을 주류로 끌어올리고 싶어한다. 그런 그들에게 아메리칸 아이돌의 '유명 기획사가 아닌 TV가 대중 가수를 탄생시킨다는 힘' 은 그보다 더 매력적일수 없었을것이다. 자금력으로는 어디 내놔도 뒤떨어질리 없는 CJ가 슈스케의 장대한 기획에 돈을 마음껏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기업의 많은 관심과 의욕에 비해 정말 불쌍하리만큼 주류에서 몇 발짝 벗어나 있는 CJ의 각종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주류로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슈스케는 프로그램 그 자체보다는 '우리도 스타를 이런 식으로 발굴해서 메이저로 진출시킬 수 있다'는 힘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M.NET이 주류로 갈 수 있을 절호의 찬스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엠넷은 사실 슈스케 이전부터 오디션 이벤트에 꽤 공을 들이던 편이었다.
슈스케는 그 괴물같은 시청율 기록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프로그램이 크게 흑자를 보았다는 기사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데, 처음부터 제작비를 회수할 생각이나 방송으로서의 프로그램 본연의 가치를 띄울 생각이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스개로까지 쓰였던 코카콜라를 비롯한 몇 되지 않는 고정 스폰서가 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는데, 만일 공중파였다면 그 정도 시청율 기록으로는 즉시 삼성도 따올 수 있을 만큼의 행동력을 보였겠지만 슈스케는 그러지 않았다. 못한 게 아니라 할 필요가 없었다. 에초 프로그램으로 돈을 벌 생각이 아니었을테니까...
....
위탄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위탄은 슈스케와 에초 태생부터 다르다. 공중파는 광고 수익을 중시한다. 때문에 MBC는 철저하게 시청율에 우선한 운영을 해야만 하기에 급조된 기획이란 에초에 있을 수도 없고 있다고 할 지언정 아무리 편성이 급해도 신인의 급조된 플랜을 덜컥 방송하지는 않는다는 소리다. 항간에 떠도는 슈스케 표절, 위탄 급조설이 적어도 나는 그래서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온미디어도 아니고 주식회사 문화방송이다. 아무리 소인배로 전락했어도 왕년 양반께서 차라리 망하면 망했지 체면을 깎을 짓을 했을 리가 없고 할 수도 없다. 대기업 조직이 그 정도로 형편없었다면 김재철 사장이 재신임을 받았을리가 없다.
이 짓을 했는데도 안쫒겨났다는 건 아직 조직력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거다.
우선 슈스케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을 살펴보자, 이들은 위대한 탄생...이라는 타이틀을 걸고는 있지만, 방송 전반적으로 '출연자'가 주가 되지 않는다. 물론 시청자의 의견보다는 보다 카리스마있는 심사위원들의 평가에 기준한다는 식으로 다소 폐쇄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서 왜 슈스케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시청자 참여 비중을 크게 두었는지를 함께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간단해지는데, 그렇다. 위탄은 사실 '이 방송을 통해 가수를 키울 생각이 별로 없다'고 보는 것이 현명하기 때문이다.
MBC는 기업이다. 기업은 절대 자신들이 득이 되지 않는 일을 하지 않는다. 잘 생각해보면 MBC는 출연자들이 미래에 잘 된다고 특별히 득이 될 게 없다. 아무리 위탄이 오랜 기간 기획한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오랜 기간 기획한 작품이 반드시 '장기 방송'이 될 거라는 이유는 없다. 즉 위탄은 급조는 아니더라도 단기 기획임에는 분명하다. 따라서 위탄이 슈스케처럼 2기를 기획하거나 하지 않는 한 출연자들의 성공은 그 방송 타이틀의 가치를 높여주기는 하겠지만 MBC 자체의 가치에는 그닥 영향이 없고 수익적 측면에서도 미비하다. MBC에서 데뷰했다고 해서 그 스타의 권리를 사실상 얼마나 가질 수 있겠으며 설령 꽤 많이 가진다고 하더라도 공룡 MBC에게 코끼리 비스킷이나 될까?
돈이 남아도는데 굳이 이 진흙탕에 들어가 무엇하리...
그런 이유로 MBC의 위탄은 아메리칸 아이돌보다는 '브리티즈 갓 텔런트'를 지향하고 있다. 즉 그곳에서 나오는 스타가 '음악적'으로 성공하기보다 '화제성'으로 성공하기를 바라며 그로 인해 자신들이 '음악계'가 아닌 '대중문화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출연자가 실제 음반을 내고 얼마나 팔았는가보다는 나온 사람들이 얼마나 '그 자체로' 화제를 뿌리며 '그 프로그램'에 나온 그대로의 이미지가 얼마나 먹혔는지를 예의 주시한다. 즉 그들은 '폭발적인 가창력의 ***'보다는 '미인대회 출신 **' 나 '독설가 심사위원의 의외의 모습',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의 혼이 담긴 멘토'등 방송 내용이나 설정에 얽힌 출연자, 특히 오디션이 참가자보다는 고정 출연자 즉 '심사위원'의 캐릭터성을 부각시키는데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프로그램 제작 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큰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슈스케는 화제를 뿌릴 당시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건 '출연자'들이었다. 누가 노래를 못했네, 누가 인성이 거지같네, 누가 왜 떨어졌는지 모르겠네 등등 주로 노래로부터 시작해서 노래로 끝났다. 그런데 위탄은 누가 외모가지고 심사하네, 누가 자상한 평가를 하네, 누가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네 등이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오디션에 누가 올라왔는지에 대한 화제성은 덜하며, 오디션 프로그램으로서는 정말 어이없게 '멘토링 시스템'이라는 (아마 우타스타의 헌터 시스템을 참조한 듯 싶은데) 것을 도입, 심사위원의 비중을 극대화하면서 '감동'이라는 키워드로 마무리짓는다. 위탄은 출연자의 가창력에 감동하고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출연자와 심사위원의 인간적인 하모니와 출연자의 '냉혹한 일면 속 자상함'에 빠져들게끔 만들어졌다.
이게 정말 오디션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 맞나?
실제로 브리티즈 갓 텔런트에 아메리칸 아이돌의 사이먼 코웰이 나오는 이유도 이와 닮아있는데, 제작진이 그가 정말 심사를 철두철미하게 하기 때문에 스카웃한 것일까라고 생각해보면 좀 아닌 것 같다. BGT는 그의 '철두철미한 심사능력'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고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충분히 과시했던 '냉혈안같은 이미지'가 필요했다. 시청자들은 사이먼 코웰이 그 곳에 앉아있기만 해도 '아 저 사람 또 독설한방 날리겠구나' 싶은 진지한 긴장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이먼 코웰 이외에도 브리틴즈 갓 텔런트의 심사위원들은 그렇게 제각각 캐릭터 롤 즉 역할적 개성이 분명하다. 누구는 매번 펑펑 울면서 시청자들을 동요시키고, 누구는 사람좋게 웃으며 용기를 북돋아주고, 그리고 사이먼 코웰은? 여전히 독설을 내뿜지만, 아메리칸 아이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던 '아 정말 어쩔 수 없구만 허허허, 내가 졌다' 식의 미소를 보이기도 한다. 시청자들은 그의 이런 모습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고 겉다리로 방청객들이 노래 시작부터 기립박수와 함성으로 노래 시작부터 무대 내내 바람을 잡게 되면 시청자들은 이 압도적인 감동의 물결에 매료될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 코웰이 달라졌어요.jpg
당연하지만 이런 감동 키워드는 시청율을 극대화시키는 수단으로 최적화되어 제작되며 이렇게 높아진 시청율은 시시각각 광고주에게 반영되어 능동적으로 광고 수익을 증대시켜준다. 그리고 그렇게 높아진 시청율은 최근 거의 시망하다시피한 MBC예능국에 예산을 다시 배정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줄 것이다. 출연자들은....글쎄 오디션 참가자들이야 에초 MBC가 정말 가수 데뷰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거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이미 범국민적 시청율을 자랑했던 악동클럽을 한번 말아먹었던 전례가 있는 MBC가 그에 반도 안되는 시청율을 기록하고 있는 방송 출신의 가수를 메이저까지 진출시킬 수 있을까? 무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에초에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의 살림은 좀 나아질까? 애석하지만 방송을 거의 살리다시피 한 심사위원들도 이 방송에서 얻는 득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일단 이은미씨를 비롯해 기존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사람들이 속속 늘고 있다는게 문제인데, 이 방송은 철저하게 '대본'에 의해 이루어지는 '제작능력 과시용' 방송이기에 출연자들이 정말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있지 않고 있으며 대부분 그 이미지와 상반되는 쪽으로 속속 변해가는 이른바 '츤데레' 캐릭터 이미지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좀 완고한 이미지 자체로 지지를 받았던 심사위원들은 이후 이 '페이크 다큐'같은 프로그램에서 설정된 이미지를 그대로 믿는 시청자들로 인해 앞으로의 활동에 지장을 받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방송 종료 후 권리세와 동반 시망이 예상되시는 이분...
솔직히 슈스케가 아메리칸 아이돌을 벤치마킹하던 위탄이 브리틴즈를 표방하던 딱히 방송사를 지적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그걸 보는 시청자들이 아직 방송은 방송이고 설정은 설정이다라는 걸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은 채 감정을 이입하고 있다는 점인데, 아직도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은 연기자가 좀처럼 악역 이미지를 벗기가 힘들고, 한번 벗기 시작한 배우들은 그 이미지가 박혀 다른 역할을 맡기가 힘든 것도 현실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연예계와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리고 방송사는 이점을 십분 활용하여 어디까지가 설정이고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잘 분간이 안 가도록 제작하는 것이야말로 능력있는 프로그램 제작의 척도라고 굳게 믿고 오늘도 시청자들을 현실과 가상의 아슬아슬한 경계 속으로 초대한다. 물론 그에 따른 욕을 먹는 역할은 어디까지나 출연진들의 몫이 된다. 미수다때도 그랬고, 막말 방송이 그랬다, 그렇게 총알받이를 눈 앞에 세워두고 그들의 등 뒤에서 방송사는 조용히 돈을 세고 있을 것이다.
방송에 나오는 모든 것을 현실과 연결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방송에서 선한 말을 하던 악한 말을 하던, 어디까지나 방송의 성공을 위해 열심히 할 뿐
그게 그들의 본연의 모습인지 아닌지는 정말 며느리도 모른다.
TV가 이 땅에 보급된지 반세기가 넘었고
컬러 TV가 30년, HD가 시작된지 10년이 다 되가는 나라의 시청자라면
연예인을 가족처럼 아끼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일회일비하고 있다면...
이 정도는 구분해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는 것은 '상식'이 아니라 필수 덕목이 아닐까 싶다.
군대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을 여성 독자분들에게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일단 하고 넘어가야 하는 이야기라 어쩔 수 없다. 남자들이 흔히 말년 제대를 앞두고 혹은 이미 전역한 군필남성들에게 '군대 개혁'이나 '군 구타 문제', '군 복무기간 단축'에 대해 물어보면 의외의 답변이 돌아온다 '개념없는 신병에게 구타는 필요악', '군 복무기간은 단축이 아니라 더 늘려야할 것', '군대는 지금보다 더 빡세져야 함' 등등 이미 자신은 그 의무에서 벗어났지만 적어도 내가 받은 고통보다는 다음 세대의 후임들의 고통이 조금 더 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자신이 겪었던 고통이 단지 (시기적으로 운이 없어서) 잘못 걸렸다는 억울함이 덜해지기 때문이란다. 자신이 몸소 겪으면서 그 문제점을 충분히 통감하고 개혁을 목청 높여 외쳤던 현역 시절은 간데없고 이미 자신은 관계없는 일이며 적어도 내가 이득은 못보더라도 손해는 보기 싫다는, (그것도 나보다 남이 더 피해를 봐야 한다는 마이너스 사고방식)이 팽배해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이렇게 된 데에는 군대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군대가 지금까지 개혁이 안 되도록 여론이 제대로 모아지지 않았던 원인에는 이같은 '나만 피해보기 싫다. 너는 나보다 더 당해야지 내가 덜 억울하다'라는 지극히 마이너스적 피해망상에서 출발했다는 것도 슬프지만 현실임에 다르지 않다.
철모에 머리 박아봤어?
대체로 지하철에서 이루어지는 이른바 '노약자석 실강이', 필자만 그런 건지 아니면 필자가 들었던 케이스가 특별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다수가 '할아버지'분들이다. 그리고 대체로 이런 할아버지들은 '젊은 남성'에게 시비를 거는 형국이 많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결국 위에서 예를 들었던 이른바 '마이너스적 피해망상'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한 번 들어보시라...
지금의 노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60세 이상, 즉 한국전쟁 이전에 출생해서 아직 '어른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경' 사상이 남아있던 한국의 경제빈곤기와 성장기를 동시에 거친 세대다. 이들의 젊은 시절은 원치 않아도 이미 사회적 분위기가 '어른은 당연히 공경해야 하는' 분위기였고 그래서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무조건 공경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지옥이라는 33개월 군 복무 시절을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그 33개월간의 구타가 만연하고 계급체계가 더욱 공고했던 당시 군대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은 절대적일수밖에 없다. 산업 혁명이라 불리는 60년대 후반 구로공단을 비롯한 각종 공업단지에서 폐병에 걸려가며 좁디좁은 기숙사 생활의 피폐함을 경험해본 그들이다. 물론 그 기숙사 문화는 33개월 군대를 겪어본 자들이 고스란히 와서 내무반과 그닥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음에 지나지 않았을것이다. 즉 그들은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도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인생선배들의 뒤치닥거리를 당연시하면서 살아왔다. 물론 그들의 희망은 사실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는데...
언젠가 나도 선배가 되어 지금 내가 하는 것과 똑같은 걸 후배들에게 시켜먹으며 편하게 지낼 수 있겠지
그런데 의외로 세상은 너무 빨리 변했다. 구로공단은 디지털단지로 변했고 자신들의 경력은 쓸 데가 없어졌으며 자신들 뒤로 '후배'가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들어와도 그들이 자신들이 당한 만큼 후배들에게 되값는다는 생각으로 대하는 후진적인 직장 문화를 젊은이들이 받아들일리 만무했다. 이들이 선배들에게 젊음을 바쳐가며 '쌓인' 걸 풀 데가 없어진 것이다. 그것도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해버려서, 자신들의 설 자리를 이 세상이 빼앗아가버린 탓에, 자신의 젊음을 보상해주지 않는 국가와 그들의 고생한 것을 인정해주려 들지 않고 공경과 존중은 잊어버린듯한 젊은이들이 마냥 야속하고 버르장머리없어보이는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세상에 무언가 요구할수 있는 지위는 아니다. 이미 지위란 지위는 다 잃어버려 설 자리가 없는 그들, 그러나 아직 젊은 시절에 대한 억울함은 다소 남아있어 그 중 일부가 지하철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쏠리는 것이다.
이들이 가진 국가에 대한 불만은 상상을 초월한다. 세상을 억지로 바꿔버려 자신들의 생존권을 빼앗아가면서 변화를 추구했다고 믿고 있다. 국가, 더 엄밀히 말하면 정치권이 이들에게 표를 얻기 위해서는 가능한 이들을 자극하지 않는 게 좋다. 그리고 이들을 법적으로 표가 나지 않는 선에서 달래야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노약자석'과 '무임승차권'이다. 그리고 노약자석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위해 지속적인 캠페인을 벌여 '고생하신 어르신들을 위해 우리가 준비했다'는 것을 열심히 표현하는 것이다. TV 미디어, 심지어는 초등학교 교과서 속에서도 나오는 이런 대대적인 캠페인 속에서는 굳이 노약자석이 아니라도 노인은 꼭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강요하는데 당연하지만 이런 무조건적인 캠페인에 '근거'따위는 없다. 근거를 붙였다간 노인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체면이 삶의 의미 그 자체가 된 그들에게 구차한 이유를 붙인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젊은 시절, 상관, 상사, 선배에게 아무 이유없는 무조건적인 공경을 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어르신이 불쌍하니까 도와줍시다. 혹은 어르신은 노약하시니까 앉게 해드립시다. 이런 식의 캠페인은 역효과를 불러올 것임에 자명할 터, 그래서 국가에서 하는 캠페인은 '닥치고 공경'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겨우 만들어준 '이거'를 노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두말할필요가 없다. 겨우 국가에서 자신들이 했던 고생을 인정해준답시고 만들어준 제도다 (사실 법적인 구속력 아무것도 없는데도) 겨우 인정받는 것 같아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 이 젊은놈의자식들은 이렇게 국가에서조차 인정해준 자신들을 *으로 본다. 당연히 화가 날수밖에 없다. 이젠 국가에서도 인정한 자신들이다. 젊은이들도 자신들을 인정해줘야 하는게 당연하다. 우리가 선배들에게, 상사에게, 상관에게 그랬던것처럼 우리가 헛기침 좀 하면 바로 하던 일 멈추고 벌떡벌떡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이 지금 젊은이들에게 씨알도 먹일리 없고, 그렇다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재판을 걸 수도 없다. 당연히 경찰권력은 이를 터치하기 힘들다. 괜히 터치해서 법적인 문제로 비화되면 판례가 생기고 이는 당연히 노인들의 노여움을 산다. 이는 곧 보수층 집결의 타격과 지지층의 표가 빠져나감을 의미한다.
이들이 주로 입에 달고 사는 말 '5공때도 이러진 않았어!', '박통이 최고야'라는 말은 정말 그 당시가 좋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 그들은 핍박의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만일 박통이 하던 그런 분위기가 계속되었다면 지금 자신들이 '어른'으로서 선배들에게 해왔던 대접을 자신들이 받으며 살 수 있는 토대가 마련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명박을 지지한다. 박정희의 향수를 그리워하며 박근혜에게 기대를 건다, 뭘 기대를 거냐하면 그것이 예전 자신들이 선배들을 봉양했던 그 시대의 '연장'을 이루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명박이 경부고속도로처럼 4대강 건축업 파고 박통흉내내며 5공의 재림을 만들어 언론탄압하는 '시늉'을 내면 이들은 흥분한다. 그리고 짝퉁 박정희 이명박이 내려오면 성골 박근혜가 자신들의 유토피아를 완성시켜줄 것으로 철썩같이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시절로 돌아가면, 자신들은 그동안 잃기만 하고 보상받지 못했던 젊음의 희생을 보상받을 일만 남아있기 때문이고 그동안 자신들을 무시했던 젊은애들이 자신들이 젊은 시절에 겪었던 것과 똑같은 고통과 설움을 당하게 될 것이므로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억울함이 덜해질테니까... 이른바 마이너스 피해망상의 극점이 무엇인지 아주 제대로 보여주는 셈이다.
즉 이걸 보고 노인들은 흥분하는 것이다. '아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그 시절의 상식이 이어지겠구나!' ...그들에게 있어 이명박은 정말 잘하고 있을수밖에 없는것이다.
애석하지만 이같은 젊은이들과 노인 사이의 갈등은 그 역사와 얽힌 사건의 깊이만큼이나 골도 깊다. 정부는 표를 위해 이들을 자극하지 않는 쪽을 택할 것이고 그래서 노약자석 문제와 무임 승차권 문제에 소극적이다. 이는 굳이 노인들의 고생을 알아줘서가 아니다. 아마 지금의 노인세대들의 비율 그리고 그들이 간접 영향을 끼친 2세대들 인구가 줄어들경우 정책은 냉혹하고 매몰차게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릴것이 분명하다. 참 안타깝지 않은가? 젊은이들과의 갈등을 만든 건 노인들이 아니라 결국 하나의 세대를 국익에 쓸모없다고 국격에 안어울린다고 그들의 인생과 삶의 터전을 깡그리 날려버리고 수치적 경제 발전을 위해 희생시킨 국가의 문제임에는 다른 말이 필요없으리라.
그들이 세상을 바로보고 제대로 된 표를 던지는 것도
무의미한 지하철 좌석에 집착하여 자신들의 버려진 젊음을 보상받으려는 것도
지금와서 변화를 바라기에는 아무래도 어렵지 않나 싶다.
지금 이 세상은
거짓말쟁이가 권력을 잡아
자신의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진실을 거짓말로 호도하고 있으니까....
왕의 귀환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아시안컵 출정에 나선 태극전사들이 받아든 성적표는 3위다. 51년만에 우승을 노렸던 대한민국으로서는 아쉬운 성적일수도 있다. 아시안컵 우승을 열망했던 박지성을 비롯해 많은 기대를 걸었던 팬들까지 아쉬움은 더할 나위 없다. 그런데 조금 다른 눈으로 대표팀을 바라보면 의외로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목표를 이룬 듯한, 아니 오히려 목표 이상의 무언가를 남긴 듯한 모습이다. 이번 아시안컵은 물론 '우승'에 대한 강한 열망도 좋았지만 그 이전에 경기 하나하나 의미가 없는 경기가 없었고 대회 전체적으로도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이번 대회 슬로건이었던 '왕의 귀환'을 아주 훌륭하게 완수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2007년 대한민국 대표팀은 아시안컵에서 3위의 성적을 기록한다. 그리고 2011년 같은 성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일면 성적이 같기 때문에 그때에서 전혀 진화하지 않았거나 변화를 시도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지난 3위에 대한 평가와 이번 3위에 대한 평가는 질적으로 완벽하게 다르다고 생각한다.
2006년 월드컵에서 해외파를 빼고 당시 가장 포스가 좋았던 선수들로 구성된 이 팀은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스쿼드가 지금 2011년 아시안컵에 비해서 미드필더와 공격진만큼은 '무척 뛰어난' 수준이었다는 사실이다. 2006년 월드컵을 경험하며 프랑스 감독에게까지 극찬을 들은 조재진, 두말이 필요없는 아시안 킬러 이동국, 여기에 두 번의 월드컵을 경험하며 이미 없어서는 안될 아시안컵 대표팀 에이스 '이천수'까지, 해외파를 안 부르며 처음부터 대회를 '베어백 쫒아내기'로 일찌감치 테마를 내정한 축구협회만 아니었다면 아마 사상 최강의 스쿼드가 탄생할수도 있었다. 그정도로 공격력, 특히 아시아권에서의 공격력 레벨은 최상급에 가까웠다.
훗 가소로운 것들...
그런데 당시 베어백은 골문을 틀어막는 전략을 짜는데, 포백을 모두 내리고 이따금 오범석과 김치우의 오버래핑만을 남겨둔 채 압박 축구가 아닌 '압박 수비'를 선보이며 무려 630분간 무실점 기록을 세우는 한편 630분간 무득점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함께 세운다. 베어백이 지극히 수비적인 감독이어서 그랬을수도 있지만 당시 스쿼드를 보면 그의 총체적 고민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한마디로 '세대교체'를 이미 한 번 실패한 대표팀을 그대로 이끈 채 성적을 내야만 했던 어려움에 직면했던 것이다.
우선 공격진을 보자 선발로 주로 나섰던 조재진, 이천수를 대신할 서브 스쿼드는 누구였을까? 아직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던 이동국과 우성용이다. 조재진, 우성용, 이동국 모두 같은 스타일의 공격수여서 교체에 별다른 변화를 주기 힘들다는 점은 논외로 치더라도 즉 이 당시에는 이들 셋을 대신할 수퍼 서브로 적합한 선수가 없었으며 이들이 혹시 부상이라도 당하면 그나마 기대하기 힘든 공격진에 암울함을 가져다줄 것이 자명했다. 이들이 과연 적극적으로 몸싸움에 임할 수 있었을까? 혹은 그렇게 지시를 받을 수 있었을까?
미들진은 어떨까? 측면 공격 이외에 중원에서 중심을 잡으며 밀어줄 수 있는 선수는 김두현과 김정우 뿐이었다. 이호는 볼란치로 적합하지만 공격 전개 능력은 무척 떨어지는 평가를 받았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염기훈이나 김치우처럼 측면을 빠르게 파고드는 스타일 이외에 그들의 속도에 맞게 패스를 연결해줄만한 선수가 '김두현'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공격 전개가 잘 안될 때, 즉 김두현과 상성이 잘 안맞는 팀을 만나거나 김두현이 지치면 교체 카드는...이호나 김정우밖에 없다는 현실, 그렇다고 중원을 빼고 측면을 보강하면 그나마 불안한 중앙이 시원하게 뚫려버린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체력을 아껴야했으며 젊은 선수들의 오버래핑과 이동국, 조재진에게 맞춰주는 단조로운 뻥축구를 택할 수 밖에 없었던것이다. 왜냐 내 발에 쥐가 나면 팀이 암울해지니까
수비진은 아예 할 말이 없다. 왜 베어백이 욕먹을 각오를 하고 한국판 카테나치오를 전개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절절하게 보여준다. 한마디로 대표팀 붙박이 상징적인 누군가가 없었다. 지금 저 당시 포백을 이루었던 선수들 중 어느 누구도 2011년 아시안컵에 승선하지 못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이런 당시 포백에 수미로 김상식이 들어간 이유를 보면 당시 수비진의 불안감과 세대교체가 얼마나 힘겨웠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 마디로 선수단 전체가 안고 있는 '세대교체 실패'가 팀의 기록 3위, 630분 연속 무득점의 공격력 저하를 '가져올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만들었던 셈이다. 만일 수비가 안정되고 미들진에 변화를 가져올 만한 서브, 그리고 좀 더 젊은 공격 옵션들이 풍부했다면 당시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당시 공격력은 결단코 2011년 대표팀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리듯 수비진의 붕괴는 미들의 실종을 야기시킬 수밖에 없었고 공격진은 전혀 패스를 이어받지 못한 채 자기진영 깊숙히 내려가야만 했기에 특유의 스피디한 공격전개를 펼치기에는 정말 좋지 않은 조건이었다. 게다가 그토록 염원했던 골키퍼의 세대교체는 아예 엄두조차 못내던 상황, 2007년 대회는 우승을 하지 못하면 그대로 실패일수밖에 없었다. 세대교체의 의미도 없었고 그렇다고 대회에 대한 이렇다할 동기부여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4강 이상이 아니면 베어백 짜르겠다고 말한 엄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이런 팀을 다른 나라 팀이 무서워할리가 없다. 당시 아시안컵 대표팀은 마치 성문을 단단히 잠그고 농성을 하는 모양세였던탓에 공격진도 특유의 날카로움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로인해 상대팀에게 마음놓고 공격당해도 상대진영의 뒷공간이 열리지 않았다. 샌드백을 무서워하는 복싱선수는 없다. 가끔 너무 세게 치다가 그 친 반동에 얻어맞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누구도 샌드백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또 무서워해서도 안됐다.
일단 젊어졌다는 건 다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우선 수비진부터 짚어보자
중앙 수비자원이 정말 엄청나게 많다. 아니 아예 이영표와 차두리를 빼면 전원 중앙수비자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번 대회는 곽태휘의 퇴장과 부진도 있긴 했지만 중앙 수비진의 조합을 의외로 굉장히 자주 갈아치웠다. 경험많은 이정수를 기본적으로 고정시킨 뒤 이정수와 호흡을 맞추는 최적의 조합을 찾거나 혹은 우즈백이나 호주같은 장신 공격진을 대비해 제공권이 좋은 센터백 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느냐면 각 센터백들이 파이터형이나 제공권 장악, 안정적인 게임운영, 몸싸움에 능한, 공격전개 능력 등 제각각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기에 어떤 스타일의 팀에도 대응할 수 있는 맞춤형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유래없는 메이저 대회에서의 센터백 로테이션 시스템은 '이 선수가 없어도 된다'라는 팀 내부의 심리적 안정감을 도취시키기 위함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상대에 맞게 스쿼드를 짤 수 있는' 자원을 만들기에 아시안컵만큼 이상적인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장신과 몸싸움에서는 유럽팀 못지않은 호주, 패싱게임으로 뒷공간을 노리는데 능한 일본, 빠른 스피드와 밀리지 않는 떡대로 악명높은 이란 그리고 홈 텃세와 맞먹는 텃세와 압박을 이겨내야 했던 바레인, 다득점을 노려야만 했던 인도전 모두 버릴 게임이 하나 없는 완벽한 시험무대로 부족함이 없었다. 이기는 것은 공격에 의한 골이지만 그 골을 만들기 위한 시작은 상대로부터 수비가 공을 빼앗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조광래 감독은 가장 먼저 상대의 맥을 끊을 수 있는 수비 전술에 골몰하여 고정된 수비의 조직력과 함께 '상대 맞춤형 수비자원'을 골라내는 데에 역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금까지의 고질적인 수비불안을 달고 살았던 한국 대표팀에게는 정말 고무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는데, 특히 이정수가 없었던 대 일본전에서의 조합은 조광래감독이 의도했던 바가 아주 제대로 드러난 일전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역사상 수비진들이 이렇게 주전 자리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 베어벡감독에겐 강민수가, 허정무 감독에게는 조용형이 있었다. 지금 조광래 감독의 수비수 황태자는? 없다. 지금까지 공격과 미들에서만 이루어지던 주전 경쟁이 수비진에서 그 이상으로 불꽃튀기고 있다.
미들은 또 어떤가? 갑자기 포워드에 가있어야 할 애들이 미들에 바글바글하다. 수비형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의 경계를 없엔 탓에 스쿼드 자체는 수가 적은 편이지만 내가 내 포지션을 뱃기면 전혀 관계없는 선수의 다른 포지션을 빼앗아버리는 그야말로 먹이사슬 솥발의 형세(?)가 되고 말았다. 네가 아니면 내가 있다는 것, 수비진에서의 붙박이 경쟁과는 또 다른 경쟁, 그리고 협력을 야기했다. 게다가 기성용이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조금만 시원찮으면 느닷없이 수비수 엔트리의 홍정호와 이용래가 기성용 자리를 노리며 어슬렁거린다. 그런 기성용이 슛같은 패스를 찔러주면 이청용은 이제 혼자 뛰어들어가지 않고 손흥민과 함께 뛰어들어갈 수 있다. 이전에는 박지성의 활동량을 누구도 따라가지 못해 박지성이 휘젓고 다녔지만 이젠 구자철이 같이 호흡을 맞춰준다. 이런 호흡은 선수에게 있어 체력적인 문제를 뛰어넘는 안심감을 선사한다. 몸이 쌩쌩할땐 저 자식이 언제 내 자리를 치고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지만 그 반대로 자신이 몸이 안좋으면 스스로 '자신에 버금가는 라이벌'로서 자기 자리를 매워주는 안심감을 갖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성향의 선수가 함께 호흡을 맞춰줌으로 인해서 '내 플레이를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선수'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예전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정말 수차례 볼 수 있었던 '크로~스....아 근데 아무도 없네요'를 이번 대회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래서 이번 대표팀을 아시아의 스페인이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격진을 과감하게 포기한 것도 특징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표팀 공격진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그리고 하는 족족 욕을 먹었다. 공격수가 패스를 받아서 가능한 빨리 골을 만들어내기 위해 전방에서 기다리면 전방에서 어슬렁거리기만 한다고 욕먹고, 수비를 도우러 가거나 2선이 너무 쳐저있어서 하프라인까지 내려오다가 전방으로 날아가는 뻥패스를 놓치기라도 하면 공격수가 자기자리나 지키지 왜 뒤에서 어슬렁거리냐며 욕을 먹었던 게 우리나라 공격수들의 숙명이었다. 이렇다보니 골 결정력이 높아질수가 없다. 전방으로 들어오는 패스는 가능한 빠르고 정확하게 공격수에게 전달되어야 공격수가 그 정확한 패스를 받아서 더 정확하게 힘을 실어 골문으로 향할 수 있는데 이 말로는 한없이 쉬운 이게 지금까지 안 됐다는 거다.
조광래 감독은 이게 가능하게끔 만들기보다 아예 안하면 안되게끔 만들었다. 이름만 미드필더인 공격수들을 대거 미들로 쳐지게 만들고 공격수 (원톱) 역시 그들과 함께 뒤섞이게 만든 것이다. 이른바 제로톱 전술이라 불리는 이것은 상대에게 엄청난 혼란을 야기하는 반면 최종 화룡점정을 찍는 사람의 부담은 한층 덜해진다. 예를 들어 원톱이 반드시 정해야 하는 경기에서 원톱에게 크로스가 올라오면 원톱은 어떻게든 '내가 제일 앞에 있으니 내가 이걸 슛까지 연결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재대로 발에 맞추지 못하곤 했다. 그걸 조광래 감독은 '자신이 없으면 볼을 돌려라' 는 식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주변에 돌아보면 다들 자기보다 골을 잘 꽃을 녀석들이 주변에서 나한테 패스 달라고 으르렁대고 있는 상황이니 원톱은 볼을 받아도 당황하지 않고 한결 마음이 편해질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백날 이런 전술이 먹힐 리가 없다. 가끔 상성이 안맞는 팀도 있다. 주로 경험많은 볼란치와 센터백이 패스 흐름을 읽고 끊어버리는 식의 플레이에 익숙한 선수가 많은 팀이 그렇다. 이번 일본 대표팀이 대표적인데 이런 팀을 만나면 으르렁댈정도로 신명나던 미들의 분위기가 바로 죽어버리고 경기가 답답해진다. 이런 경우에는 다소 단조롭더라도 확실히 골을 결정지을 수 있는 전술로 수정할수밖에 없다. 그게 가능한 옵션이 '김신욱'이다. 크다는 것 그건 농구선수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물론 좋은 결과를 내진 못했지만 조광래의 이런 공격수 조합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시험무대에 오를 것이고 신기하게도 국내에는 축구 유망주들 사이에 '박지성 붐'이 일어 키가 작고 활동량이 뛰어난 유망주만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풍도여서 이런 아예 대놓고 세워버리는 장대 공격수가 정말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번 아시안컵만으로 김신욱을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장대들과는 좀 격이 다른 것 같다
이런 팀은 상대에 있어서는 공포 그 자체다. 특히 감독에게 엄청난 부담감을 준다. 그 대표적인 경기가 바로 '이란전'이다. 압신 고트비의 자신감은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니었지만 그는 '손바닥 들여다보듯 잘도 들여다보이는' 한국 대표팀에게 단 한골도 넣지 못한 채 끌려다녔다. 제대로 정착도 안된 센터백에게 번번히 막혔고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온 이용래의 커팅에 번번히 흐름이 끊겼으며 느닷없이 후보로 데려왔을 윤빛가람에게 한방을 먹었다. 몸싸움에 자신있는 이란이, 경기 흐름을 끊고 호흡을 괴롭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이란이 이번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패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아시안컵 대한민국 대표팀이 감독으로서는 정말이지 만나기 싫을 만큼 괴로운 상대였다는 것이다. 도무지 예측이 안되기 때문이다.
이는 수비진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공격진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예전에는 대한민국 상대팀들의 전술이래봐야 별거 없었다. 그냥 '이동국을 막아라'였다. 정말이었다. 진짜 이동국만 막으면 어쨌든 됐으니까, 즉 누가 골을 넣을지 대략 정해져있었다. 대략적이긴 하지만 공격도 예측이 되던 팀이었다는 것이다. 2006년 이후 골결정력 부족을 지탄하던 언론들에서 늘상 듣는 이야기가 '대표팀 득점이 공격수보다 미드필더 심지어 수비수가 더 많은 경우도 있다'였다는 것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제로톱이라고 공언을 했다. 게다가 나오는 선수들은 죄다 신인, A매치 득점 기록도 별로 없다. 다들 가슴팍에 MF라고 쓰고 '나 사실 미들이야'라고 기만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러니까 정신이 없다. 그나마 A매치 득점이 제일 높은 지동원을 좀 막다보니 구자철에게 털렸다. 중앙의 구자철을 막다보니 손흥민과 이청용이 싸대기를 쳐댄다. 떡대로 아예 들어올 루트를 막아버리니 뜬금없이 이름만 대따 긴 윤빛가람이 뒤에서 캐논을 쏴댄다. 애들 다 싸잡아 막으니까 오른쪽에서 치이면 최소한 폐차가 확실해질 듯한 덤프트럭 한 대가 밀고 들어온다...우리나라를 상대했던 감독과 코칭스텝은 아마 한국과의 경기 전 미친듯이 골머리를 앓았을거라고 생각한다.
덤프트럭의 위엄.jpg
게다가 이번 대표팀은 세대 교체에 있어서도 대단히 이상적인 방안을 제시했는데 다름아닌 '2014년까지 뛸 선수와 그렇지 않을 선수'를 정확하게 구분해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차두리와 이정수는 동갑내기 황재원은 이들보다 한 살 어리다. 이들의 나이는 각각 30,31살이고 이들이 2014년 월드컵이 되면 각각 33,34살이 된다. 수비수로는 나쁘지 않은 나이다. 즉 이들 셋을 포함해 이들 나이와 +-1,2살 정도의 나이차이가 있는 다소 애매한 노장들은 얼마든지 이들과 주전경쟁을 할 수 있고 그들이 잘만 하면 지금의 강한 세대교체 바람 속에서도 노장으로서 2014년 월드컵을 바라볼 수 있다는 아주 정확한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무조건적으로 나이 많은 선수를 은퇴시키고 장기 플랜이라며 젊은 선수들만 우겨넣었을때의 혼란을 막고 젊은 피와 노장 사이에 끼어버린 애매한 나이대의 선수들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주는 그야말로 안정성과 신선함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세대교체안을 보여준 것인데 이는 비단 수비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소 이정수보다 나이가 어리다면 얼마든지 지금의 젊은 로리로리 대한민국 대표팀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그동안 감독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눈치만 보며 그에 맞는 선수들은 눈에 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던 인재 파이의 편중성을 일거에 넓히는 파격을 암묵적으로 단행한 셈이다.
그리고 '아시안컵같은 하찮은 대회에 박지성을 부르지마!'라는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이영표와 박지성을 불렀다. 여기에서 조광래 감독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소문이더라도 이미 은퇴 의사를 몇 번이고 표명한 이영표와 박지성을 왜 '플랜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안컵에 끼워넣었을까? 앞서 설명대로라면 2014년에 데리고 갈 선수가 아니라면 차라리 넣지 않고 그들이 없을 때 메이저 대회를 어떻게 치뤄내야 하는지를 감독과 선수 스스로 깨우쳐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데 조광래 감독은 그렇지 않았다. 여기에는 박지성과 이영표의 존재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인정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들의 플레이가 이미 대표팀 자체의 상징이 될 만큼 깊숙히 침투해 있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이영표가 없으면 단지 플레이 스타일이 다른 선수일 뿐인데도 '이영표처럼 막지 않는다'며 팬들이 불안해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박지성의 플레이도 마찬가지아다. 그만큼 플레이 이상으로 존재감이 큰 이 둘을 대체하기 위해 아직 이들과 전혀 뛰어본 적이 없는 신인들의 눈과 몸 그리고 직접 맞부딪히며 배우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이들을 이번 대회를 통해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게끔 기회를 주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 둘이 각각 자신의 플레이를 이식시킬 (굳이 이식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배울) 선수를 각각 뽑는데 바로 '구자철'과 '홍정호'이다. 구자철은 말이 필요없는 성장 가능성 무한에 의외로 높은 체력까지 갖춘 복합적 테크니션으로 성장이 기대되는 선수, 홍정호는 수비수 중 가장 젊은데다 중앙, 좌, 우 심지어 볼란치까지 수비진을 아우르는 멀티플레이어이다. 이영표처럼 재빠르게 맨투맨으로 맞붙어 압박을 가중시키는 타입이라는 점, 키가 작고 날렵한 오버래핑도 기대할 수 있다는 점, 나이에 비해 매우 의젓한데다 챔피언결정전까지의 큰 경기 경험도 있는 관록형이라는 점이 이영표의 후계자로 부족함이 없다. 예전 홍명보가 은퇴할 때도 그가 없는 대표팀은 상상할 수 없었고 지금도 이영표가 없는 대표팀은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성장 가능성은 물론이고 어린 나이에 팀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침착함까지 갖춘 홍정호가 앞으로 이영표의 존재감을 어떻게 매워 나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될 정도다. 게다가 여기에 뭐든 가르치면 잘도 흡수하는 떠오르는 대세 '손흥민'까지 가세해 이번 대회를 풀로 소화하며 이들에게 배운 양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경험을 배운 손흥민이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수 있을까? 그들의 은퇴에 대한 충격을 얼마나 순화시켜 줄 수 있을지 혹은 더 뛰어넘는 존재감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벌써부터 이번 대회로 급성장한 그들의 활약상을 볼 기대감을 감추기 힘들다.
왕은 반드시 왕좌에 있어야만 왕이 아니다. 왕이라도 허수아비가 있고 왕이 아니라도 실세를 쥐며 상대국에게 강한 카리스마를 주는 것이 '왕'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메드베제프 대통령으로 바뀐 지 벌써 몇년인데 아직도 푸틴 없는 러시아는 상상할수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왕은 존재 그 자체로 공포여야 하고 강함이 느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왕의 귀환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일본이 우승하던 호주가 우승하던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한국은 어떤 선수가 무서운 팀이 아니라 이미 팀 자체가 '무서운 팀'이라는 이미지를 회복하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팀이 무섭다는 것은 '이번 아시안컵의 팀'이 무섭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저 팀은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는 미래지향적인 공포이기 때문이다. 즉 대한민국은 더 강해질 수 있고 그 강해지는 속도에 발맞춰 안정감도 갖출 수 있는 플랜도 제대로 제시하고 있는 그야말로 '빈틈없는 강함'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아 전역에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것들이 가능할 수 있었단 것은 조광래 감독 혼자만의 능력도 아니고
우연히 좋은 선수가 지금 막 쏟아져 나왔기 때문도 아니다.
조광래 감독도 좋은 전술로 장기적인 플랜을 통해 팀을 강하게 만들 미래지향적인 발상을 가지고 있고
선수들도 그런 감독을 믿고 미래의 대한민국 대표팀에 과감하게 투자하며 몸이 부서져라 뛰었다.
왕의 귀환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이번 왕의 공포정치는 당분간 계속 아시아 전체를 긴장시킬 것 같다는
기분좋은 예감이 든다.
그들의 귀환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앞으로의 더 넓은 세상에서 세상을 호령할 왕의 위엄을 기대해보며 글을 마친다.
그 1분도 채 안되는 찰나를 아주 잘도 봤던 모양이다. 잘 보니 정말 박지성이 허리를 잡고 말리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근데 실제로 말린 건지 아니면 정말 매국노처럼 일본에게 욕보이는 짓 하니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의도는 사실 박지성이 직접 입을 열지 않는 한 모르는 일이고 입을 연다 해도 그게 진심인지 알기 힘든 일 아닌가?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하다 박지성은 '주장'이다. 팀의 분위기를 추스르고 팀을 대표하며 팀에 어떤 '위해'가 가해지거나 '위해'가 가해질 것 같은'상황이 되면 대표로 나설 수 있는 그라운드 내의 '상관'같은 존재다. 사람들은 이 '주장'의 의미를 한쪽으로만 편중되어서 생각한 것 같다. 즉 박지성이 선배니까 철없는 후배를 가르치기 위해 끌어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말도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주장의 역할은 그것 뿐만이 아니다. 더 멀리 나가든 뭐든 상관없이 주장의 의무는 '팀의 보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1. 주장이기 때문에.
우선 그는 의사 표시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주장은 팀을 대표하는 위치다. 만일 박지성이 그런 세레머니를 했다면 그건 정말 큰일이다. 팀 전체의 의사가 반영되는 셈이 되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 축구의 간접적 의사표시가 될 수 있으니까. 세계 어떤 클럽 혹은 국가대표팀에서도 각 개인의 의사표시로서 세리머니는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주장 완장을 차고 있는 상태에서 그런 세리머니를 하는 경우는 세리에A의 일부 무솔리니 추종자들 이외에는 보기 힘들다.
다시 말해 그 당시 박지성은 말리고 싶든 싶지 않든 말렸어야 한다. 그게 주장으로서 표현하는 좌 우가 아닌 '중립적 의사표현'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박지성은 일본에서는 이미 슈퍼스타다. 박지성이 거기에서 말리는 제스쳐를 취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기성용이 일본에서 벌집이 될 수도 있었을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 말리는 것은 '주장으로서 해야 할 의무'였던 것이지 박지성의 의사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2. 주장이기 때문에 (2)
앞서 주장은 팀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가 최우선된다고 이야기했다. 박지성은 팀의 주장으로서 기성용이 이런 세레머니를 할 경우 우리나라 일부 네티즌들이 과민반응 할 것을 센츄리클럽의 관록으로 잘 알고 있었다. 폭풍까임을 당하기에는 아직 기성용은 젋다. 성장도 빠르고 앞으로 팀의 중심이 될 선수를 마음의 상처를 입어 유니폼을 벗게 되는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주장으로서 해야 할 '팀의 보호' 즉 팀을 주심이나 상대팀 선수뿐만이 아닌 '자국 네티즌'으로부터 보호하는 것도 주장의 의무였다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만일 어떤 의사 표시 즉 나는 기성용과 생각이 다른데 기성용이 철없는 짓을 해서 우리 팀 이미지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는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어야 한다. 기성용을 즉석에서 못하게 더 강하게 뜯어말렸을것이다. 카메라에 안잡히도록 무슨 수단이든 해야 했다. 그런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의사 표시를 할 수 없는 주장이라는 위치, 그리고 기본적으로 의사를 표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의사를 표시하는 게 중요했던 게 아니라 '기성용'을 아끼고 보호하는 게 의무였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그가 걱정하던 대로 됐다. 걱정한 만큼만은 아니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기성용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고 기성용은 트위터에서 맹폭을 당하고 있다. 박지성은 매국노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정한 대인배라고 할 수도 없다. 그가 대인배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장면 하나로 대인배냐 매국노냐를 판단하는것 자체가 에러라는 거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다.
그는 진정 팀 선수의 안위를 걱정하고 보호해주려 했던 '캡틴 박'으로서 책임을 다했다.
우리나라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걱정하기 이전에 자신이 이끄는 선수를 걱정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장면
뭔가 느껴지는거 없는가?
박지성은 카메라 앞쪽 시선에서 봤을 때 그의 등번호가 세계에 중계되지 않도록 했다.
그의 시선은 기성용이 아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옆모습을 보자
말리는 사람이라면 가슴을 잡고 기성용을 끌어내는 스타일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옆에서 보면 그냥 손으로 그의 앞번호를 가리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다.
그가 자꾸 움직여 등번호가 카메라에 잡히려고 하니까
그를 억지로 끌어당기는 것 정도는 보였던 것 같다.
주장은 그런 존재다.
위 사진은 그 순간 절묘하게 찍힌 사진이고 사실 박지성은 가슴쪽 두번 두드리고 금방 갔다. 즉 지금 박지성이 말린다고 매국노니 마니 하는 녀석들은 경기 안봤거나 그 장면을 유심히 보지 못해 기억을 못한 거다.
아무리 그래도 당신들이 정말 우리나라 대표팀 응원하고 박지성 팬이라면 저 사진을 보고 매국노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를 수가 있는건가? 난 저 두 사진을 보고 아무리 봐도 그런 건 생각이 안나더라
오히려 기성용을 보호해준다고 느꼈지 매국노같은 그런 생각까진 안들더라
그 장면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내가 이상한건가? 대한민국 대표팀 주장을 무조건 믿고 있던게 잘못인가?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정말 많은 분들이 죽거나 다쳤다. 무려 자국 국민이 죽거나 다친 어마어마한 일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은 시금털털하게도 '다음에 또 그러면 진짜 죽어!' 였다. 이건 뭐 초등학생 싸움도 아니고 그런 협박이 먹힐리가 없다. 이런 시금털털한 대응으로 우리나라는 연평도 희생자에 대한 책임을 북한에게 물어볼 기회를 전혀 얻지 못한 채 북한 정책에서 철저히 배제되는 수모를 당한다. 뭐 하나 속시원히 말 한마디라도 제대로 해서 연평도 주민들에게 '우린 앞으로 국가가 이 정도로 철저하게 해주니까 안심하고 여기 계속 살아도 되겠구나'라는 확신을 주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건 비단 최근의 일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요구할때도, 독도 문제에 있어서도 언제나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라는 저자세를 취하며 국민들의 울화통을 터뜨리곤 했다. 아주 글로벌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었다. 당해도 뭐 하나 속시원하게 한마디 못하는 글로벌 호구, 그걸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지금은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타이틀로 자위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기성용은 젊다. 사실 일제강점기를 거쳤던 세대에 비해 최소 3세대 이상 떨어져있다. 당연하겠지만 일본인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관해서는 그다지 와닿을만한 세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기성용이 그런 세레머니를 했다. 그는 이미 셀틱에서 뛴다. 셀틱은 인종차별로 악명이 높은 클럽이다. 그가 그런 설움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그가 그걸 했다. 그런 그에게 '넌 셀틱에서 인종차별 당해도 싸'라고 말한다고? 그럴 리가...
기성용은 '라이벌'로서 일본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아무 철없는 행동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단 '인종 차별'이라는 게 말이 안된다. 기본적으로 같은 황인종끼리 인종차별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대방을 비하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일 그것이 일본을 비하하는 세레머니였다면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훨씬 더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어야 한다. 이건 '이겼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그런게 아니라, 보도 자체를 할 때 '한국은 이런 식으로 졸렬한 짓을 했는데 우리 선수들은 그걸 참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결국 이겼습니다'라고 보도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거다. 왜냐하면 이들이 그것에 대해 반응을 한다면 스스로 이미 '원숭이'라 불리우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 되니까 누워서 침뱉기가 아니던가? 기성용이 정말 여기까지 계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은 이 세레머니에 한방 먹었어도 이렇다할 말 한마디 못하는 지경이 되고 있다.
그 증거가 바로 지난 한일전에 대한 일본 TV들의 보도 행태이다. 정말 마르고 닳도록 보여주고 있는 하이라이트에서 '기성용'의 패널티킥 골은 단 한번도 재방송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일본 골만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동점골은 제대로 보여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결국 그들은 그걸 보여주면 국민들 모두 '큰 타격'을 받을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금 그 세레모니가 결국 외교문제로 비하될 것이 '두려웠던'것이다. 일본은 지금 그 세레머니 하나로 '우리나라'에게 쫄고 있다. 여태까지 기성용만큼 노골적으로 일본에게 한방 먹인 선수가 있었던가?
기성용의 한 방이 아니라, 몇 수천방을 먹여도 성에 안차는 게 우리나라 역사다. 축구는 국수주의가 아니라지만 한편으로는 자국주의에 기반하기도 한다. 폴란드 선수가 독일에서 뛰면서 자국 폴란드에 골을 넣은 뒤 침울해하는 것, 아르헨티나가 잉글랜드에게 진 뒤 락커룸에서 통곡을 하는 것 모두 자국주의에 기반한다. 즉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우리나라가 더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로 축구다. 이런 축구에서 일본에게 예의를 차리는 것은 사치다. 어느 누구도 전쟁의 직접적인 가해국에게 피해국이 예의를 차리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기회가 있을 때 가능하면 더 비웃어줄 필요가 있다. 그게 아주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원래 축구였고 한일전이었으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한일정기전을 위해 대표팀을 꾸린 이유도 '축구만큼은 일본애들을 확실히 이길 수 있습니다' 라는 자신감에서 나온 게 아니던가?
카라 소속사 계약 해지에 연예계 기자들이 당황하고 있다. 무리도 아닌게 지금까지 소녀시대 주구장창 파느라 공사다망하셨기에 카라에 대해서 제대로 파지를 못했으니까, 뭐가 어떻게 돌아간건지 이제서야 부랴부랴 판다한들 뭐가 나올리도 없고 당연하겠지만 관계자들이 제대로 된 인터뷰에 응할리가 없으니 기사는 무진장 쏟아지는데 뭐 하나 제대로 핵심을 짚은 기사가 나올 턱이 없잖은가, 그냥 쥐어짠다고 나오는게 기사가 아닐진데 어떻게든 뷰 카운트 높여볼라고 일단 카라라는 제목부터 달아보고 나서 추리소설을 써내려가는 식이다. 그냥 동방신기와 연결시키기에 여념이 없는 녀석들이나 심지어 우리나라 그룹인데 일본 보도를 인용하는 웃지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건 단순히 카라의 해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자들이 파는 건 지금까지 아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는 듯이 수익 분배나 계약금 문제를 가지고 물고 늘어지고 있는데, 계약금 문제가 불거질거였다면 에초에 먼저 캐치를 하는 쪽은 기자들임에는 틀림이 없음에도 이번에는 기자들이 정말 신정환에만 신경썼는지 전혀 캐치하지 못했나보다. 원래 계약금 문제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한들 은근히 연예부 기자들이 심어놓은 프락치들이 슬슬 정보를 흘리기때문에 돈 문제든 소속사와의 불화든 간에 이렇게 하루만에 갑자기 딱 틀어지는 건 있을수가 없지 않은가?
하나 더 짚고 넘어갈 부분은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룹의 리더는 단지 예전처럼 무대 가운데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야구부의 주장처럼 팀의 입장을 대변하고 대신 전달해주는 간부 역할을 한다. 즉 돈 문제가 있었다면 제일 먼저 리더가 조율해야 한다. 게다가 박규리는 부모쪽이긴 하지만 DSP수뇌부와도 연줄이 있다. 맴버들이 뭔가 부당한 처우를 당했거나 했다면 진즉에 박규리부터 움직였어야 한다. 그런데 박규리의 반응은 '서프라이즈'였다. 전혀 조짐도 없었다는 거다. 게다가 박규리는 한국에서 당일 라디오 생방을 진행하고 있었고 남은 맴버 네 명은 일본과 제각각 각지에 있다가 해당 발표 직후 귀국을 했다. 천천히 와서 박규리와 상담한 뒤에 대응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 네 명은 법무법인의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매우 서두르는 눈치가 강했다.
게다가 지금 날조되고 있는 기사들과는 달리 인터뷰 원문을 살펴보면 법무법인이 맴버 4명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리에서 '돈'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 속 키워드는 단지 공정하지 못한 계약과 '부당한 활동'을 강요했다는 것. 기자들이 마르고 닳도록 인용한 부분이 이 부분인데, 사실 법무법인이 카라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돈 이야기를 하지 않고 빙빙 돌려서 말할 수도 있겠지만 법무법인이 바보가 아닌 이상 공석에서 말한 부분이 곧바로 법정으로 이어진다는것을 생각해보면 결코 팩터에서 벗어난 발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즉 이 사건에서 돈이 반드시 관계가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메인 팩터는 아니라는 점이 된다. 기자들은 '불공정 계약'이라는 키워드에서 생각해낼 수 있는게 고작 돈 문제뿐이 없으니 이제서야 부랴부랴 일본 음반 판매 수익 배분 룰 등을 대거 싣고 있는 모양인데 읽는 사람은 답답할 뿐이다.
불공정 계약인데 돈 때문이 아니라면 답은 '계약' 그 자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인간답지 않은 처우를 받았다더나, 부당한 계약을 강요당했다는 것을 모두 종합해보면 이들이 사인을 한 계약서 자체보다는 이들이 일본을 진출할 당시 기획사와 기획사간에 이루어졌을 B2B계약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들이 일본 활동 도중 정말 '갑작스럽게' 그것도 아주 우연히 '알게 될' 만한 것이란 사실 국내에서 움직이고 있는 DSP와 관계있는 부분일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재계약이 얽히든 계약 조건이 사실과 다르던 뭐던 제일 먼저 캐치가 가능한 건 박규리일수밖에 없는데 그녀는 일이 터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일이 터진 전날 박규리가 홀로 라디오 DJ를 하고 4명은 일본 혹은 타국에 있었다. 과연 다른 곳에 남아있던 4명이 놀았을까? 아닐거다. 불과 며칠 전에 카라가 출연한 버라이어티를 본 적이 있고, 정보 프로그램들은 언제나 카라의 스폰서 행사 풍경을 취재했다. 결국 박규리의 한국 스케줄로 5명이 활동하지 못하는 상황에도 카라는 한 마디로 '막굴려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격한 스케줄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된다. 당연히 그들은 '불만'이 서서히 쌓였겠지만 그것을 제대로 억제할 수 있는 건 역시 '수익배분'에 있었을것이다. 즉 열심히 뛰는 만큼 (특히 스폰서 행사는) 돈은 많이 들어오고 그만큼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이 그들을 움직였을게 분명하다. 아건 단지 돈 그 자체만이 아닌 '동기부여'에 연결되는 문제다. 내가 한 만큼 정당한 댓가를 받는 것처럼 건전한 동기부여는 없을테니까.
지금까지 나온 기사를 종합해보면 카라는 일본 현지 소속사와 DSP 복수 소속이 아닌 DSP에 소속된 채로 현지 소속사에 임대가 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일본에서 활동을 한다고 한들 현지 기획사에서 직접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우선 현지 소속사와 DSP가 수익을 나누고 DSP는 그 나눠받은 수익금을 토대로 다시 카라 맴버에게 배분하는 형식이 된다는 것이다. 즉 DSP와의 계약이 아무리 카라에게 많은 배분이 될 수 있도록 되어있다하더라도 DSP가 현지 기획사와의 협상에서 지극히 불리한 조건이나 배분율을 수용할 경우 카라에게 돌아가는 몫은 고생한 것에 비해 훨씬 적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카라가 게키단 히토리로 인해 일본 진출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한 일본 진출에 DSP가 정말 철저하게 준비할 만한 시간이 있었냐면 그건 아니었다. DSP는 게키단 히토리가 한번 터뜨려준 기회를 최대한 살려내기 위해 일단 진출부터 하고 보자는 식으로 준비 없이 일본 진출을 서둘렀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DSP가 일본 시장에 대한 경험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한번 터저준 붐을 어떻게든 서둘러서 불을 붙이고 싶은 마음에 계약 조건에 있어 '무조건적인 수용'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소 굴욕적일 수도 있을 조건들을 감안하면서까지 일단 일본에 보내보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했을 가능성이 컸을 터, 당연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급할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일본 소속사쪽이 무조건 유리할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런 이사진급 계약을 카라 맴버들과 상의해가면서 했을 리가 없고 할 필요도 사실 없다. 회사로 따지면 일개 사원이 주주총회에 난입해 사장의 실적 발표에 토를 다는 격이 될 테니까, 기획사에 소속된 그룹은 자기 자신과 소속사와의 계약에서는 갑과 을의 절대적인 권리를 가질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회사 대 회사의 계약일 경우 이미 계약이 된 그룹은 회사의 자산으로서 활용이 되기 때문에 일체 발언은 물론 알 수 있는 권리조차 없다. (메이저 리그에서 선수 본인은 모른 채 협상이 끝나 갑자기 아침에 당연한 듯이 다른 구단으로 트레이드되어버리는 초고속 트레이드를 연상해보라)
그러나 일본에서 카라는 DSP도 일본 소속사도 예상했던 것을 훨씬 초월할 만큼 거물로 성장해갔음은 물론 앞으로 더욱 크게 성장할 가능성도 매우 높게 점쳐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렇듯 높은 주가를 달리고 있는 카라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일본 기획사도 기획사인건 마찬가지) 정말 살인적이라고 할 만큼 많은 스케줄, 특히 수익에 직결되는 행사 스케줄에 카라를 집중시켰다. 이렇듯 카라가 도가 지나칠정도로 혹사당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카라가 묵묵히 이를 수행했던 이유는 앞서 이야기했던 정당한 대우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원 소속사로서 권리를 행사했어야 할 DSP가 이러한 카라의 과다한 스케줄에 어떤 방어막도 쳐주지 않았을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DSP가 정말 잠자코 있었거나, 혹은 활동을 제한하고 싶어도 계약상 그럴 권리가 없었거나이다. 둘 중 어느쪽이든 카라가 그 사실을 알게 될 경우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는 사실일것이다. 일본 활동을 제한할 영향력이 없는 계약이었을 경우 DSP는 카라를 대신해 그들의 권리를 보호했어야 할 도의적 책임을 실수로 인해 포기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고 만일 활동을 제한시킬 권한이 있었음에도 그냥 뒀다는 것은 기획사간의 불공정한 수익 배분에 대한 책임을 카라에게 전가시켜 결국 한 번 뛸 것을 두번 뛰게 해 케파를 맞추는 지극히 악질적인 짓을 저지른 셈일 테니까 말이다. (수익배분 조건이 7:3이라고 하면 DSP는 일본쪽 7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카라를 두번 굴려 14:6을 만들어 6을 얻었다는 이야기)
단언컨데 카라가 만일 DSP가 주는 수익에 불만을 가졌다면 지금처럼 갑자기 터뜨릴 이유가 없다. 이는 법무법인을 끼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더욱 의문이 깊어진다. 즉 이들은 수익 배분이 지금까지 어떻게 되왔던 것에 대해서는 지난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부터 하는 활동에 있어 DSP의 이와 같은 해외 진출 전략 능력을 신뢰할 수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협상도 하지 않고 '계약을 해지'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DSP가 주는 돈의 액수가 아니라 앞으로 일본에서 자신들의 주가가 더욱 높아질 것을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데 그 수준에 비해 DSP의 능력이 전혀 받쳐주지 않는다면 지금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도 이같은 굴욕적인 계약은 계속될 것이며 카라는 이같은 불공정함에 대해 일본쪽 소속사에 일언반구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이어질 것이 자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돈도 돈이지만 너무 많은 혹사를 당하면서도 타지에서 어떤 권리도 갖지 못한 채로 힘들다는 말 한번 못한 채 스케줄을 이행할수밖에 없었을것이다. 그것이 자신들이 정말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가 아닌 단지 자신들 소속사 이사진들과 해외팀의 협상력 부족에서 나온 일방적인 책임 회피에 대한 댓가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떨까? 돈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힘든걸 참고 열심히 해온 것에 대한 억울함과 배신감이 먼저 들지 않을까? 그렇다고 한국에 바로 돌아가서 언론에 폭로해봤자 언론 플레이는 기획사쪽이 한 수 위인데다가 소속사를 떠난 자신들을 보호해줄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았을 것이다. 게다가 일본 활동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흐름이 이상해지면 DSP를 포함한 국내 언론이 이를 캐치하고 자신들의 의중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게 될 위험성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매우 신속해야 했으며 실드를 쳐줄 수 있는 법무법인과 이적할 수 있는 대체 기획사까지 마련하는 신속 치밀함을 보였던 것이다.
DSP는 기획사들 중에서 불공정 계약 문제가 비교적 적은 편이다. 핑클은 해체 후 대부분의 솔로 활동을 원 소속사 DSP에서 시작했는데 이런 케이스는 해체 = 계약분쟁이라는 우리나라 음악 시장에서 정말 드문 케이스에 속한다. 이효리는 DSP와의 계약에서 솔로 1집을 성공적으로 히트시킨 뒤 이적하는 과정에서 어떤 잡음도 나오지 않았으며 이는 다른 맴버들의 이적 당시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게다가 DSP는 드물게 연습생 기간이 짧은 기획사로도 유명한데 일단 데뷰를 시킨 뒤 점진적으로 성장시켜 나가는 일본의 아이돌 시스템을 벤치마킹하여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 첫 수혜자가 바로 카라였다.
옛 핑클 맴버들이 몇년만에 모여 처음 간 곳은 DSP 사장이 투병하고 있는 병실이었다는 뉴스가 얼마 전에 나왔다. 이 뉴스는 이 사건에 있어 두 가지를 시사하고 있다. DSP는 그만큼 소속사 경영진과 연예인간의 거리가 다른 기획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깝고 가족적이었다는 것과 지금 현재 그 가족적인 분위기를 이끌었던 선장이 투병중으로 공석에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사장이 없는 동안 그 경영을 대행했을 이사진들이 DSP를 정상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을까? 이런 일이 벌어지기까지 두터운 신뢰감으로 뭉쳐있던 DSP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으며 그 일을 어떻게 봉합 혹은 은폐하고 있었던 것일까? 모든 것은 그들의 입을 통해 밝혀지리라 믿는다. 개인적으로 DSP가 이번 일로 인해 보여주었던 작은 가능성이 사라지게 되는 것을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내 글이 모두 낭설로 밝혀져 욕을 바가지로 먹게 될 지언정
이런 일이 사실이 아니길 정말 진심으로 간절히 바란다.
이딴 일이 진실로 밝혀지느니 차라리 내가 악플 몇백개 처먹는게 이 업계에 훨씬 도움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