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2. 8. 21.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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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에 도전중인 취업준비생입니다. 그런데 이 회사라는 곳은 지금까지 제가 있었던 학교와는 좀 다른 것 같아요. 대학을 처음 고르고 공부를 할 때는 제가 직접 학교를 고르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하던 공부를 멈추고 다른 것을 할 수도 있었잖아요. 근데 회사를 보면 짤리지 않으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상사에게 조아리다가 인생이 끝나는 것 같아요. 싫은 소리도 함부로 못하고, 대체 회사라는 곳은 어떤 곳인건가요? 회사에 들어가면 특정 사람들에게 내 인생을 저당잡혀 살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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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회사는 한자어에요.

모일 회에 일 사짜를 써서 모여서 일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원래 의미 그대로 회사는 그냥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하는 것을 말해요. 이 단어에는 지금 학생이 지적했던 조직의 상하관계에서 일과 관계없는 불필요한 머리 조아림의 의미도 담겨있지 않고 싫은 소리를 함부로 할 수 없는 억압적인 카스트 관계도 뜻에 포함되지 않아요. 한마디로 지금의 회사라는 곳은 말만 회사지 전혀 다른 조직이 되어있다는 결론이 되죠.

 

공동체 사회에서 회사 즉 모여서 일한다는 개념은 굉장히 중요했어요. 왜냐하면 모여서 일을 하면 보다 큰 일을 같은 목적의식을 가지고 하게 되니까 가내수공업 수준의 일이 뭉쳐저 하나의 산업화를 이루게 될 수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영국 산업 혁명 이전에는 지금의 명품 잡화 브랜드들의 전신이었던 1인 회사 시스템 이른바 자영업 형태가 거의 대부분이었어요.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충분히 사회는 정상적으로 돌아갔던거죠.

 

몇백년에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의 세계적인 명품 잡화 브랜드들도 대부분 이런 작은 가내수공업에서 출발했다는 사실...

 

그런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변화가 닥치듯 벌어진 영국의 산업 혁명은 이런저런 문명의 발달에 의해서 이루어지긴 했어도, 기본적으로는 모여서 대량생산을 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가 없었던 국가적 위기에서 발로된 것이었다고 해도 무방했을거에요. 식민지는 늘어났고 원자재 물자는 늘어났는데, 이 원자재만을 판매하기에는 너무 이해타산이 맞지 않았고 이를 일종의 촉매제라고 판단한 자본가들이 사람들을 모아서 대량생산을 할 수 있는 조직 체계를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한게 현대 회사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근데 자본가에 의해서 회사가 설립되고 그 뒤에 노동자를 모으는 과정 자체, 그리고 본디 왕권주의 국가였고, 수많은 식민지를 노예처럼 거느렸던 영국이 만들어놓은 이 회사 조직의 근간이 건전했다고 보기는 어려웠어요. 공화정이 되었어도 입헌군주제의 반쪽 공화정이 된 영국 계급사회가 뿌리뽑힐리 없었죠. 당연히 자연스럽게 회사를 운영하는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지 않아요. 임금 체불이나, 질 떨어지는 음식을 배식하는 정도는 양반이고 생산 라인 천정 높이를 허리를 펼 수 없는 높이로 맞춰서 쉴 틈을 주지 않는 등의 일화까지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이에 대해서 이렇다할 토를 달 수가 없었어요. 이미 사회는 가내수공업만으로 먹힐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기때문에 이 회사에서 내가 쫒겨나게 된다면 가족을 부양할 길이 막막했던거죠.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면서 아무 기준도 없이 던져진 공화정의 첫 정치적 시험 모델에 의한 희생양들이었던 셈인데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을 가진 사람이 그 자본을 노동력으로 환산해서 노동자에게 나누어주는 역할을 하다보니 당연히 자본을 가진 사람의 카스트가 더 높게 형성될수밖에 없고, 자본을 가지지 않은 노동자들은 이에 대항할 수 없었던거에요.

 

그래서 노동자들은 불만을 가진 다른 노동자들과 모여 한 목소리를 내고 집단 행동을 하는 것으로 자본에게 맞서게 되는데 이게 지금의 노동조합, 즉 노조의 원형이에요. 당연하겠지만 자본가는 자신이 투자한 자본이 노동자들에 의해서 시간에 맞춰 더 불어나지 않으면 엄청난 손해를 보기 때문에 이들의 연합 권력과 같은 눈높이에서 협상을 할 수 밖에 없었던거죠. 노동 조합의 요구는 당연히 자본가가 돈을 버는 데에 우리의 노동력이 더 높은 가치를 평가받기를 원한다는 거에요. 임금 인상 혹은 근로시간 단축이 핵심인거죠. 우리의 노동시간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 지금 주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주던가 지금과 똑같은 돈을 줄 거면 노동시간의 가치가 더 비싸졌으니 우리는 그만큼 더 적은 시간을 일할거라는 주장을 펼치게 되요. 사실 지금 사회에서도 대부분의 노사간 협상 쟁점은 큰 틀에서 보면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인상, 이 두 가지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어요.

 

 

마치 사필귀정처럼 이 산업 혁명 속에서 엽기적인 형태로 희생당했던 영국의 노동자들은 이후 세계 최고의 퍼주기식 보상 복지 정책을 누리게 되요. 국가경제의 발전에 대한 지분 요구가 가능했고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안되었던 불가피한 과거가 있었으니까요. 그 유명한 영국병의 등장 역시 이같은 반인륜적인 지주들의 산업 혁명에 따른 댓가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치룬 어쩔 수 없는 역사였을거에요. 그런데 이 영국병이 생길만큼 복지가 나아졌다고 해서 회사 내의 전통적 계급사회의 잔재가 완전히 걷혔다고 말하기는 힘들었죠.

 

영국병 창궐로 인해 노동자와 지주 계급이 한번 뒤집힌 후에야 간신히 잡힌 양측의 평등 균형으로 모든 게 해결되었을 것 같았지만, 실상은 달랐어요. 세계 금융의 중심인 영국 은행들은 복지 리스크가 심해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는 자국 기업에 더 이상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해주지 않았고 기업은 부실해졌으며, 노동자들은 부실한 기업 속에서 제조업 노동자를 업신어기는 등의 자체적 카스트를 만들어버리고 말죠. 자본가 카스트가 몰락하고 노동자에게 권리가 돌아왔지만 노동자들이 스스로 행했던 건 결국 자기들 내에서의 차별을 통한 우월감 조성이었다는거죠. 한마디로 입헌군주제를 포기하지 않는 전통적 계급사회에서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성공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인지도 몰라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살기 좋다며 칭송받는 유럽의 복지는 끔찍한 희생에 대한 자연스러운 보상이었어요.

 

 

 

영국으로부터 비교적 이른 독립을 완성한 미국의 경우는 영국과는 문제가 조금 달랐어요. 바로 흑인이라는 존재였죠.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의 노동력은 포기할 수 없었는데, 이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해줄 생각은 에초에 없었어요. 18세기 초 진즉에 흑인 노예 해방을 단행했던 서유럽국가들과는 달리 미국은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겨우 표면적인 노예 해방이 이루어졌고 그나마 '공화정'하에서 이루어진 노예 해방 선포가 사회적 강제성을 가질 수가 없었어요. 미국의 거의 모든 산업에서의 '하찮은 일' 즉 노동자 계급은 흑인들 차지가 되어있었고 암묵적으로 공고해진 인종차별은 이들에게 제대로 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거죠. 당연히 미국의 노동운동은 흑인들의 해방운동과 권리 찾기가 될 수 밖에 없었고, 인종차별이라는 거대한 벽과 마주해야했던 어려움이 있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권리 회복이 영국처럼 원활하게 될 리가 없었어요. 에초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가 평등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팽패했죠. 이렇게 한번 떨어진 인식은 자본가들을 기고만장하게 했고 미국에서는 수많은 노동 운동과 노조가 자본가들에 의해 힘으로 탄압을 받게 되요. 노조는 폭력으로 제압당하기 일쑤였고, 법은 이를 제제할 어떤 장치도 마련하지 않은 채 의도적인 방관을 일삼았어요. 처음부터 노동자의 계급을 최하층으로 규정했으니 이들을 구제할 생각이 없던 게 당연했던거죠.

 

생동성 실험 알바 해보신 분 있나요? 그런데 이들이 맞는 건 백신이 아니라 매독균이에요.

 

그런데 미국이 금융위기와 대공황을 거치면서 와그너법이 제정되었고 노동자의 권리가 일면 상승하게 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의 질떨어지는 노동은 흑인들 차지였어요. 이게 영국이랑 다른 점은 에초 영국은 뭐가 어찌되었던 영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리기 위한 노동자의 권리 찾기에 주력했지만 미국에서의 노동자들은 에초 다른 인종이라는 어떤 넘사벽의 신분적 한계를 가지고 출발했기 때문에 권리를 찾는 것도 매우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어요. 처음부터 인종차별이라는 것은 흑인을 탄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흑인이 백인의 영역 즉 '지주'의 영역을 넘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거든요. 흑인은 노동자가 될 수 있지만 사장은 될 수 없고, 도시의 시장도, 대통령도 될 수 없도록 하는, 전혀 다른 세계를 그들끼리 살게 만들었던 게 미국의 인종차별이었어요.

 

임금 문제로 까불다간 태워죽였다네요.

 

미국이 20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마틴루터킹의 공민권과 더불어 짐크로 법이 폐지되면서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이 법으로 금지되었어요. 아니 법으로 인종차별을 허용했던 게 폐지되었다고 보는게 맞죠. 미국은 아예 흑인들의 사회적 차별을 법적으로 허용했던 나라였어요. 그런데 이게 풀렸다고 자본가들의 '그들만의 리그'만들기가 사라진것은 아니었어요. 인종차별이 사라지니까 이제는 인종 차별에 가난까지 더해 아예 가난한 계층이 자신들의 계층과 함께 사회를 구성하는 것을 제한하는 시스템을 구상하기에 이르러요. 한마디로 부자인 사람들은 계속 부자일 수 있도록, 정치와 경제가 유착관계를 벌여 서로 공존할 수 있도록 기부와 혜택을 주고 받게 된 거죠. 금융자본의 독점으로 인한 일하지 않는 자들의 부의 축적, 지금의 99%운동도 여기에서 촉발되었던 거에요.

 

 

 

 

 

왜 이렇게 장황하게 다른나라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는지 아직 잘 모르시겠다고요?

 

그건 우리나라의 회사라는 곳이 애석하게도 이처럼 전혀 다른 노동운동의 과정과 결과를 가진 영국과 미국의 가장 안좋은 부분을 따와서 합쳐놓은 형태가 되어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의 회사는 미국의 시스템을 베이스로 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에초 단일민족이라서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자본가들은 일단 노동자 계층을 만들고 그들이 절대 자본가를 넘볼 수 없는 갖가지 사회적 제한 장치를 만들어두고 있어요. 그리고 그들이 노동자로서 어떤 권리에 대한 요구를 하는 순간 자본가들은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흑인들을 탄압했던 미국의 자본가들처럼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폭력을 휘두르게 되는거죠.

 

그런데 이런 미국 시스템을 베이스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 회사가 롤 모델로 삼았던 기업들은 대부분 일본 기업들인데요. 일본은 입헌 군주제이기때문에 의미적으로 매우 닮은데다, 처음 문물을 받아들인 영국의 기업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영국의 노동자 착취와 그에 따른 보상으로 파격적인 복지 혜택을 내세운 후유증까지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고, 회사 내 자발적 계급사회 구축까지 거의 완벽한 영국식 모델을 정착시킨 나라인거죠. 그런데 이 모델을 이미 미국식 베이스로 사회 문화를 짠 한국에 짜맞추다보니 우리나라는 입헌군주제가 아닌 나라에서 회사 내 계급사회를 볼 수 있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낮은 노동자를 차별하는 미국식 노동자 차별의 잔재가 남아있으니까 계급별로 서로 차별하고 차별당하며 그것을 당연시하는 어처구니없는 회사 문화가 정착되어버리고 말아요. 여기에 그 계급사회의 위에 있는 자본가들은 그 계급사회와 철저하게 선을 긋고 계급사회와 별도의 사회를 구축하며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는 미국의 인종차별에서 촉발된 문화를 정착시키기까지 했어요.

 

 

 

아휴 더러운 비정규직 새끼들과 같은 자리에 앉기 싫어요~!

 

우리나라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가르치면서도 회사 내에서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계급화시키고 비정규직은 일용직, 파견직을 계급화시키고 차별해요. 대학생들이 벌이는 무개념 행동들 중에 학교 청소용역노동자들을 고압적으로 대하는 동영상이 간혹 화제가 되는데 바로 이런 기형적인 문화가 낳은 현상인거죠. 그렇게 차별하면서 얻은 계급의 최정점에서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게 만든 자본가들에 의해 명예퇴직을 당하거나 임금피크제로 더 이상의 계급 상승을 억제당하고 말죠. 그렇게 사회는 반복될거에요.

 

우리나라의 회사들은 미국과 영국 혹은 일본의 자본가와 노동가가 만든 회사 문화 중 자본가에게 유리한 부분만 골라서 섞은 회사 문화를 만들어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한국 회사 문화는 백약이 무효에요. 영국이나 일본은 입헌군주제라는 배경적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회사 내 계급체계를 타파할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 모델을 그대로 가져와서 적용할 수 없는 완전한 공화국 사회이고, 미국의 노동자 권리 상승 모델을 가져오기엔 에초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었기 때문에 인종차별에서 촉발되었던 그들의 사정과는 전혀 다른 상황일수밖에 없어요. 어떤 나라의 모델로도 지금의 노동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 한국 회사 문화가 만든 사회의 우울한 단면인거죠.

 

1960년데 짐크로 법이 폐지되고 노동조합의 권리가 높아지자 미국의 마피아는 이 노동조합들을 장악하며 사회에서의 영향력을 키워나갔어요. 한때 미국 정부는 마피아를 탄압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노조의 활동에는 짤없이 공권력을 투입했고 노동 운동은 인명이 죽어나갈만큼 매우 과격했었던 적도 있었어요.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가 회사 내 갈등에 대해 노동자를 억압하는 자본가들의 불법적인 행동을 사실상 방조하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지도 몰라요. 노동자는 범법자라는 인식도 아마 여기에서 촉발되었겠죠.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인데도 말이에요. 설마 그때 미국의 부패한 경찰들과 자본가들처럼 지금 정부가 자본가들에게 돈을 받고 노조 탄압을 묵인했을리는 없을거에요. 암요

 

 

...처음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회사는 모일 회, 일 사로 만들어진 단어에요 영어로는 COMPANY인데, 이것도 모여서 일한다 혹은 모인다라는 의미 이상을 담고 있지는 않아요. 모여서 일을 하는데에 처음부터 계급이 있고 가져가는 이익이 정해져 있을리는 없어요. 자본의 가치만큼 시간과 인생을 들여 쏟는 노동의 가치도 그에 버금가죠.

 

사람이 모여요. 같이 일을 하기로 해요 제각각 재능이 다르죠. 누군가는 경영을 잘하고 누군가는 힘이 세서 일을 잘하고 누군가는 언변이 좋아서 영업을 잘해요. 이 셋의 능력 중 어떤 게 비싸고 어떤게 싼 능력인지는 누구도 판단할 수 없어요. 당연히 그 셋 중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자신과 다른 두 사람의 능력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고요.

 

수익이 생기면 수익을 배분해야 해요. 당연하겠지만 처음에 돈을 만지게 되는 건 경영쪽을 잘하는 친구겠죠. 그 순간 권력이 생겨요. 이 친구는 다른 친구들에게 지금 100원의 수익을 올렸지만 사실은 10원밖에 수익을 내지 못했다고 속이거나 혹은 100원의 수익을 지금 올렸지만 회사가 조금 더 크기 위해서는 이걸 지금 당장 나누는것보다 일단 회사의 공동자산으로 해두고 나중에 더 크게 불려서 나눠갖기로 해요.

 

 

그런데 이 돈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경영을 담당하는 친구만 알게 될 수 밖에 없으니 경영을 담당하는 친구는 회사 사정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 즉 다른 친구들에게 수익이 잘 돌아가지 않는 쪽으로 꾸며내거나 혹은 서류와 법적인 절차를 통해 회사 자체의 공동 자산에 대한 소유권 지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쪽으로 바꾸기도 해요. 이렇게 되면 다른 친구들에겐 회사에서 나온 이익에 대해 내가 생각한 만큼의 돈만 주면 되지만 나는 회사가 내고 있는 수익 대부분을 먹을 수 있게 되는거죠. 다른 두 친구는 평생 경영하는 친구가 정해놓은 돈만 받으며 살게 되지만 경영하는 친구는 정말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되고, 이 부를 축적한 친구는 다른 친구들이 혹시라도 이런 불공평하고 떳떳하지 못하게 번 돈을 의심할까봐 이 돈 중 일부를 정부에게 나눠주고 이들이 내가 가진 비밀을 알지 못하게끔 하는 한편, 이 친구들이 나한테 반항을 하면 불법적인 수단을 써서 막아도 내가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게 되요. 자신이 일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이 버는 것을 정당화시키고 싶었던거에요.

 

 

...우리나라에서 회사라는 존재는 이미 모여서 일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경영을 하고 돈을 가진 사람이 일방적인 권력을 가지고 모여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평등권을 짓밟는 것이 당연하게끔 시스템을 손본데다가 다른 나라에서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삼았던 파격적인 복지 정책이나 정부 차원의 차별 금지법 신설조차도 자본으로 막는 이기주의의 극이 어디인지를 잘 보여주는 최악의 집단이에요.

 

갑이라는 단어가 유행어가 될 줄이야...

 

...우리나라의 정부라는 존재는 회사가 이런 최악의 집단이 될 때까지 방조했고, 당신의 가족 부양과 노후를 도의적으로 불안하게 만드는 정책을 많이 써가면서 기업이 당신의 가족과 노후를 볼모로 당신을 착취할 수 있도록 꾸준히 어시스트를 하고 있어요. 국민에게 서비스를 한다며 당신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자들에게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서비스 마인드로 당신을 좌절에 빠뜨리는 최악의 집단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콤비에요.

 

 

당신은 취업을 해서 회사라는 집단에 들어가는 동시에

이런 새끼들이랑 평생 싸워야만 하는거에요.

 

...

 

당신은 지금 당신의 생활을 위해서 고맙게도 돈을 주는 자선단체에 봉사를 하기 위해 입사를 하는 것이 아니에요. 당신은 당신이 가진 능력을 응당 필요로 하는 조직과 그 조직의 돈을 필요로 하는 당신 사이에서 그 능력을 두고 거래를 위한 흥정을 해야 해요. 그것이 취업이라는 작업인거죠.

 

대부분의 채용 공고에는 그들이 원하는 당신의 연봉이 쓰여져 있지 않아요. 철저하게 감추죠. 당신은 그 공고에 써 있는 '이력서에 반드시 희망 연봉 기재'라는 항목을 보고 얼마를 기재해야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서는 안되요. 왜 이 녀석들은 자기들 패는 보여줄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내 패는 먼저 보고 사기도박판 장난질을 일삼으려 하나? 이런 회사는 면접 안 봐도 뻔하다라는 당당함으로 맞서야죠

 

 

입사한 뒤에도 언제나 당신은 계약 당시 약속했던 것들이 잘 지켜지는지, 지켜지지 않았다면 어째서 제대로 지키지 않는지, 내가 계약 사항을 위반한 사실이 없는 만큼 당신들도 계약 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내 능력을 받을 권리가 없다고 분명하게 말하세요. 그들은 '인맥'이니 '이 업계는 좁다'는 식으로 자신들에게 어느 정도 봉사를 하지 않으면 업계에서 당신의 평판을 떨어뜨려 이직을 어렵게 만들거라는 협박을 일삼을거에요. 만일 그런 이유로 타사 이직을 제한하고 평판을 떨어뜨린다면 충분한 자료를 수집해서 경찰에 신고하세요. 직장내 협박 공갈로 충분히 처벌받은 사례가 있어서 고소가 쉬울 거에요. 같은 예로 직장 내 계급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정신적 폭력 행위도 충분히 처벌 판례가 있으니까 그런 느낌이 감지가 되는 즉시 권리를 찾으면 될거에요.

 

...라는 생각은 반드시 머릿속에 두고 취업을 준비하세요. 잠시 분위기에 휩쓸려서 회사 조직의 거대함에 잠시 물들어버릴지라도 나는 이 회사에 고용되어 생계에 대한 목숨이 걸린 일을 하는게 아니라 회사와 난 서로의 필요성에 의해 엮이는 관계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매사에 아쉬워함을 버리세요. 회사는 지금 필요없는 인력을 국가가 억지로 강요해서 뽑아놓고 돈 주는 게 아니라구요. 아니 설령 국가가 억지로 강요해서 뽑는다고 해도 그 강요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당신은 꼭 필요한 존재인거에요. 회사는 면접이라는 작업부터 당신의 멘탈을 통째로 갉아먹으며 너 따위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지만 니가 운이 좋아서 이 회사의 녹을 받아먹게 되었으니 고마운줄 알라는 식으로 당신이 가진 능력을 극한으로 폄훼할거에요. 절대 휘둘리시면 안되요.

 

 

 

 

 

끔찍하지만 건투를 빌게요.

 

 

 

당신의 삶에

승리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공화국 사회교과서 제 3장

- 끝 -

 

posted by RushAm 2009. 9. 25. 10:27
A씨는 취업을 목전에 둔 대학교 4학년 2학기생이다. 꽤 좋은 스팩이 되어줄 수 있는 대학교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일단 국내 재계 순위 20위권 내에 어떤 회사가 마음에 들어 그 회사의 공채에 참가하고자 한다. 그러나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천천히 살펴보니 막막해진다. 면접 3번에 서류전형, 입사시험, 구술시험, 토익, 적성검사, 인턴, 해외연수경력 인증 등등등, 입사 한 번 하는데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런데 A씨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하다. 전혀 해외에 나갈 일이 없는 전공을 가지고 있고 이번에 지원할 분야도 해외근무와는 거리가 매우 먼 직종이다. 그런데 토익점수를 내놓아야 하고 해외연수 경력이 플러스되어야한다. 문과보다는 이과에 가까운 그의 분야에서 구술시험이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결정적으로 이미 지원 분야와 전공이 일치하고 있는데 적성 검사는 왜 해야하며 수능문제같은 단순 지식형 입사시험은 왜 치르어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인턴은 몇 번 했지만 한 건 차심부름이랑 외부 매장 파견 행사, 사무실 청소가 전부였는데 이게 도움이 되는지도 아리송하다.

일부러 다소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최근 구직활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위의 사레에서 A씨가 가지는 의문 중 적어도 한 가지 정도는 겪었거나 함께 의문을 품었던 부분이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과연 이 입사 시험이 회사 업무 능력을 판단하는데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것인가? 이건 마치 종합평가시험인 수능으로 점수를 매긴 다음에 학과를 선택할 기회를 주는 역순화된 교육시스템과 별 차이가 없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교육계도 마찬가지겠지만 학력 인플레가 심화되고 기업들이 손쉽게 분별할 수 있는 '학력'이라는 요소가 제약을 받으면서 기업들이 갖는 인사 업무에 대한 부담감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휴전 이후 남아있는 유교사상에 의해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공부지상주의탓에 이미 공교육을 포함한 대학교육에서의 실무적 능력을 배양하는 능력에 대해 기업들이 신뢰를 잃은지 오래다. 그런 와중에도 기업들이 인재 선발에 있어 '학력'을 우선시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로 뿌리깊게 남아있는 '학연'이라는 악습 (회사 내부 뿐만 아닌 외부적인 협력 관계를 위해서라도 기득권층이 다수 졸업한 학교 출신을 선호할수밖에 없다)과 그로 인한 대학의 브랜드화에 따른 회사의 동반가치상승을 노린 졸부짓이 두번째다. 즉 자신들의 회사가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높은 학력 소지자들을 우선시함으로서 이유없이 벽을 높게 만들어 새뇌적인 가치선상의 기준을 높이는 것이다. 즉 우리는 기득권층이 주로 다니는 대학의 졸업생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회사니까 대한민국 1%만이 모이는 엘리트 집단이라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는 것이다. 쉽게 정리하면 기업이 대학의 연장선상이 된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학력기준이 학력인플레, 고교평준화, 각종 특차모집으로 인한 이른바 '불순분자들'의 대거 유입으로 그들이 원하는 '회사의 가치를 높여줄 만한 타이틀을 가진 인재'들만의 집합이라는 공식이 깨져버리자 기업은 고민에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기업에게 학력 기준 폐지를 대내외적으로 압박하고 있으니 이전에는 대놓고 '우리 회사는 SKY이하는 원서를 받지도 않습니다'라고 공언할 수 있었던 기회마저 박탈당해버렸다. 여기에 경기불황까지 겹쳐 청년실업이 증가함에 따라 이전 공채처럼 기업이 인재를 모셔가는 풍경은 사라진지 오래인 최근의 공채는 구직자들의 이른바 '1% 합류하기', '노아의 방주 탑승전'이라 불리는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진작에 회사 설립 당시부터 연구했어야 할 회사의 '인재상'이라는 것을 뒤늦게 부랴부랴 만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다들 좋은 말만 써놨다. '글로벌한 인재', '창의적인 인재' 등등 원하는 인재상만 따지만 다국적 기업 부럽지 않다. 그런데 뽑는 과정이 과연 이러한 인재상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회사 설립 초기부터 이미 만들어져 수십년간 깎이고 수정되며 안정되게 자리를 잡았어야 할 인재 선발 시스템이 최근 10년간의 대학 환경 급변으로 급조된데다 그 목적에 있어서도 기업들이 '새로운 환경에 걸맞는 인재'를 뽑기 위한다기보단 '지금까지 쌓아온 기업의 위상'을 깎아먹지 않는 쪽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즉 대학이 이른바 '사회적 등급'을 매기는 수단으로서 기능을 잃었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점수를 매길 수 있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이 사람이 사회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는 수치적/객관적 근거자료) 토익점수나, 사내 시험, 구술 시험 등을 다방면으로 만들어내어 단계를 세분화시키는 것이다. 즉 기업에 들어가는 단계 자체를 어렵게 만들어 기업의 위상을 높이려는 참으로 유치한 짓거리라고 할 수 있겠다.

토익 점수가 객관적인 영어 실력을 검증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기업도 잘 안다. 토익 990점짜리 뽑아놨는데 외국인 앞에서 버벅대더라 라는 걸 기업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국제경쟁력을 갖춰야한다며 토익점수상위자를 입사기준으로 삼는다. 영어 잘하는 사람이 많으면 과연 국제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되는지는 인사담당자도 구직자도 모른다. 그러면 왜 한국 사회에서 이미 무쓸모성이 검증된 토익을 줄기차게 강조하는 것일까? 사실 기업들은 구직자들의 영어 실력에 대해서 실무에서 크게 활용할 수 있다고 어기지 않는다. 왜냐 이미 재계 20위권 대기업이라면 부장급 이상 간부들의 나이가 최소 40줄에 가까워있을텐데 그들 중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미 실무결정권자들의 영어실력이 형편없는데 평사원들이 영어 실력이 좋은들 사내에서 모든 직원의 영어소통화 자체가 가능할까? 에초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조직 사회가 그렇게 간단하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조직사회를 꾸리는 당사자들이 제일 잘 알고 있다.

토익은 점수로 나타낼 수 있는 객관적 자료다. 대학들이 '우리 학교는 수능 480점 이하는 안받는다'는 식으로 대학의 서열을 스스로 결정해 사람들에게 주입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 역시 '우리 기업은 토익 900점 이상의 우수한 인재들만 모이는 초엘리트 기업이니까 그 이하는 안받는다'는 식의 영어 실력과는 별개로 토익이 주는 '점수'라는 구분법을 활용할 뿐이다. 토익이 쪽집게 강사들에 의해 만점자들이 남발되자 토익 자체의 변별력이 떨어진 게 아님에도 토플이나 텝스 등으로 입사 기준을 바꾸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토익 시험은 토플이나 텝스와는 그 역할이나 평가 방법이 다소 차이가 난다는 부분은 이들 기업들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치 치킨 레이스처럼 모이는 사람들의 사회적 레벨을 가려내기 위한 편리성으로 토익과 같은 영어시험을 이용할 뿐이다. 이게 기업 광고에는 그만이니까 '그 회사는 영어 잘 하는 사람만 들어간대'라는 소문은 결국 '그 회사는 이미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대표기업이야'라는 식으로 와전되어 인식될 것을 기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당장 교육계만 보더라도 '수능'이나 기타 시험성적을 입시에 반영하지 않는 대안학교나 사이버대학교가 현재 사회적으로 어떤 등급을 받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실상이 어떻든 일상에서는 주구장창 기업 욕을 하면서도 해외에서 그 기업의 자동차나 뉴욕 타임스퀘어에 걸린 그 기업 광고를 보면서 '기업'이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여주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결국 기업들의 이같은 입사 전형은 결국 '좋은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기능이 아니라 '회사의 대외적 인지도 레벨을 떨어뜨릴 수 있는 낮은 레벨의 지원자'를 탈락시키기 위한 역기능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공개 채용' 에서 채용이 아닌 탈락의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만큼 기업들은 IMF이후 고용없는 성장을 10년 넘게 계속해오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수출 실적을 올리며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듯 보였지만 정작 세계 정세를 이해하고 국제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인재를 뽑는 '방법'에 대한 연구에는 너무나도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구글을 비롯한 외국계 다국적 글로벌 기업의 해외 현지 면접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들은 매년 필요한 인재를 얻기 위해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진화시키고 있다. 면접에서 긴장을 풀고 자유롭게 구술할 수 있는 환경이나,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만드는 프로그램 등 무엇보다 인사 업무 자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사의 오랜 인재상에 걸맞는 채용 프로그램을 매년 새롭게 도입 갱신시키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디에도 실무에 직접 필요한 (다국적 기업이라면 영어 실력이 필요하므로 토익이 들어가는게 이상하지 않다) 최소한의 자료 이외에는 지원자에게 요구하는 부분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즉석에서 나올 수 있는 임기웅변과 창작 능력 등 이른바 현재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미래 가치, 즉 '포텐셜'을 평가하기 위한 평가 과정들이 다수를 이룬다. 오히려 이런 입사 과정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현재'가치만을 '수치'로 증명하고자 애쓰는 국내 구직자들은 낮은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국제사회에서 수출 실적을 거두면서 특정 업게에서 1,2위를 다투는 지경이 되자 해외에 있던 우수한 인재들이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지원하는 유턴 현상이 한때 붐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다. 물론 이들과 더불어 국내에서 내노라하는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인 국내파 엘리트들의 러시는 말할것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들어간 대기업의 6개월 내 조기퇴직비율이 30%를 웃돈다는 뉴스가 나온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들에게 밀려 탈락한 구직자들이라면 더욱 이상하게 생각될 것이다 '아니 저 신의 직장을 왜 마다하고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기업을 왜 나오는 걸까?'하고 말이다. 이것은 기업의 그릇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입사 기준만을 높여 기업의 인식 가치만을 높인 빛 좋은 개살구식 이미지 상승이 불러온 참극이다. 치열한 입사 과정으로 초엘리트만을 가려낼 만큼 위대한 기업에 들어갔는데 정작 들어가보니 기업 내부는 그 선발 과정에 비해 너무도 초라하고 주먹구구식이며 전 근대적이라는 것을 느낀 엘리트들은 한국의 기업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갖은 채로 해외 유수의 기업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이른바 '우수인재'의 '해외 유출'로 인한 국가경쟁력 저하의 여러가지 원인 중 가장 큰 몫을 지금의 대기업들이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이로 인해 괴로운 건 구직자들 뿐만이 아니다. 현재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과장급 이하 실무진들 역시 괴로운 건 마찬가지다. 기업이 눈만 높아서 엘리트들만을 데려오는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그들이 오랫동안 그 회사에 남아서 업무에 적응하고 도움이 되어주는 게 아닌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도 걸리지 않아 자신의 능력에 비해 회사의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는 불평과 함께 해외로 뛰쳐나가버리니 이른바 '국내파'로 회사에 뼈를 묻기 시작한 실무진들로서는 이만저만 격무에 시달리는 게 아니다. 결국 회사의 그릇을 키울 생각은 안하고 우수한 인재가 들어오면 그 이미지만으로 큰 그릇이라 어겨질 거라 믿었던 대기업들의 계속되는 오판은 결국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은 채 고용시장의 악순환만을 주도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회사의 그릇을 키워줄 수 있는 것은 잠시 머물다 언제든 떠나갈 엘리트들이 아닌 그 기업의 그릇을 인식하고 전체적인 발전을 함께 모색하려는 '그릇의 걸맞은 인재들'이라는 점을 간과한 기업의 졸부근성이 결국 회사 내부에까지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 이야기만 했는데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들은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들에게 있어 '이미 정해진 코스트' 즉 '비정규직으로서 줄 수 있는 임금의 최대치'를 이미 정해두고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는 선에서 회계를 짜고 있기 때문에 더 임금이 오를 가능성도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대우를 높여야 할 이유도 그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미래이다. 이런 걸 구직자들이 모를 리가 없는데도, 이런 대우를 해주는 회사에 자신의 청춘과 미래를 걸고 들어가줄 거라고 기대하는 건 그야말로 오판에 가깝다. 결국 이상만을 쫒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중소기업이라고 다를 바가 없으며 인재에 대한 가치판단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중소기업이라는 편견때문에 눈높이를 낮추지 않는 구직자들만을 탓하는 측면에서는 구역질이 날 정도다. 이에 대해서는 구직 당사자분들을 비롯한 다양한 분들에 의해 이미 실상이 알려진 부분이므로 깊게 다루지 않았지만 앞서 언급한것처럼 대기업에 비해 딱히 잘한 게 없다는 점에서 청년실업의 책임을 피해가기는 어렵다고 본다

기업들이여 글로벌 기업이 되고 싶은가?,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되고 싶은가? 물론 이 모든 것을 갖추는 데에 우수한 인재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수한 인재를 우물 안에 가두어둔다고 우물이 넓어질 것 같은가? 그릇의 문제다. 뭐가 원인인지 이미 굳어진 뇌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뽑아놓은 신입 사원들 중 반년 내에 회사를 떠나가는 사원들을 '은혜도 모르는 놈들'이라고 감정적으로 비난하지 말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 우물은 좁다고 느끼지 못하는 개구리에겐 한없이 넓고 풍요롭지만 이미 좁다는 것을 느낀 개구리에게는 불만이 가득한 갑갑한 공간일 뿐이니까, 허울만으로 우물이 바다가 될 수는 없다. 구직자들의 말에도, 회사를 떠나가는 엘리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에게 배울 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배워 개선에 나가야 한다. 토익점수, 대학 학점으로 회사 대외적 레벨을 만드는것보다 이쪽이 그토록 원하는 '글로벌 기업'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포함한 모든 기업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인재'에 대한 '인건비'는 코스트가 아닌 회사의 자산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어떤 기업이라도 그 성공 과정에서 '인재'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인 기업을 찾아보긴 힘들다. 기업 재무 구조를 개선시키는 것은 '인건비 축소'가 아니라 '코스트 감소'라는 것을 잊지 말자, 많은 기업들이 '코스트' 즉 허공으로 사라져 회사에 남지 않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물류비, 원료비, 세금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인재'에 대한 인건비는 다르다. 결코 허공에 날기는 공돈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월급은 회사에게 있어 '코스트'가 아니라 '누적'되는 적립식 펀드다. 많이 적립한 만큼 회사로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 줄 '투자'수단이며 '자산'이다. 이 간단한 발상의 전환만으로 수많은 세계적 기업들이 만들어져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갖가지 사례들이 이를 증명한다. 인간을 우선시하지 않는 기업은 어떤 기업이든 포텐셜이 바닥나게 되어 있다. 중소기업이여, 대기업이 되고 싶은가? 대기업이여 글로벌 다국적 기업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인재에 투자하라, 당신들이 제대로 된 가치판단에 의해 인재를 선발하기만 했다면 왠만한 펀드보다 더 좋은 수익율을 가져다줄 것임에 틀림없다.

3부에서 계속됩니다.

비정규직, 88만원 세대, 청년실신, 취업난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목차

1부 (정부) 편
2부 (기업) 편
3부 (학생) 편
4부 (일본)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