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04. 8. 8. 01:29
SICAF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 개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과연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무얼 박람회로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조그마한 의구심이 지금은 기대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매년 관객은 눈에 띌 정도로 증가하고 있고, 언제나 흥행에 중심에 서 있는 작품들이 아닌 예술적, 감성적 작품들로 구성된 인디 상영회도 매회 매진이다. 메가박스라는 고품질 영화관에서 SICAF를 유치할 정도로 박람회 자체에 대한 인지도와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만족도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 듯 해서 흐뭇한 기분이다.

SICAF가 내세우는 대한민국 애니메이션의 우수함에 있어서 제일 선두로 내세우는 것은 신동헌 화백의 ‘홍길동’, 과, 진로소주로 대표되는 애니메이션의 시초가 일본보다 앞섰으며 당시 퀄리티로서는 일본은 게임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유난히 내세우고 있다. 에초에 원론부터 틀렸다. 1940~50년대 분명 애니메이션은 있었다. 필자도 당시를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자료를 조금만 뒤져보면 공식 메이저 작품이 아니더라도 최초의 애니메이션 작품은 ‘껄떡쇠(확실치 않음)’으로 당시 미군에서 나오는 폐 OHP 필름을 양잿물로 지워서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가 있는 뜻깊은 애니메이션이다. 일본, 미국, 유럽의 애니메이션 역사 연표를 보면 최초의 애니메이션이 무엇이었는지, 아마추어부터 잘 알려진 작품까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데에 반해, 우리나라는 아직도 잘 알려진 작품으로서 그것을 대체하려 한다. 일본은 애니메이션 축제에서 어느 누구도 ‘아톰’이 일본 최초의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924년 조선 총독부의 요청 하에 제작된 ‘우편의 여행’ 을 최초의 애니메이션으로 밝히고 있다. 물론 이것은 애니메이션 관계자들만이 기억하고 있는 전문가용 지식이며 일본인들은 대중적인 작품만을 기억하기에 아직 ‘철완 아톰’이 최초의 작품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지만, SICAF는 과연 우리나라 최초의 애니메이션이 무엇으로 기록되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출품된 작품들 중 흥행성을 생각하지 않은 인디 작품을 제외하고, 철저히 투자받고 그에 상응하는 흥행을 이루어야만 하는 영리 목적의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검정고무신’ ‘왕후 심청’ ‘망치’ ‘해적 마테오’ ‘그리스 로마 신화’ … 필자는 작품성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작품에 대한 심각한 걱정이 앞선다.
아이들을 타킷으로 잡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아이들도 엄연히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소비층이며 이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저 애니메이션들 중 그들이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몇 개나 되는냐는 것이다.

우선 검정 고무신을 보자, 1970년대 한창 유행했던 트위스트 추는 그 당시 디자인 그대로 이루어진 교복을 입고 나오는 중학생들의 모습, 시골 들마루에서 수박을 먹거나 개울에서 물장구치는 아이들, 이보다 더 ‘영등위 영감님’ 들의 비위에 잘 맞는 애니가 또 있을까? 애니를 보는 건 그 영감님들도 아니고 당신들이 주장하는 엄마 아빠 어렸을적을 두런두런 이야기해주는 어른들도 아니다. 그들이 타킷이라고 줄기차게 이야기했던 21세기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이란 말이다. 그들이 살아오면서 겪지도 않은 1970년대에 대한 트위스트와 검정 고무신의 향수를 느끼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라고 만든 것인지 한번쯤은 제작진, 혹은 영등위, 문화관광부에 묻고 싶다.

왕후 심청, 은 ‘홍길동’ 부터 시작된 조선시대 컴플랙스를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물론 사극의 인기는 한, 중, 일 공통적으로 계속되고 있고 일본만 해도 신선조가 등장하는 막부말 시기에 대해서 꾸준히 작품들이 나오고 있으니 이런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홍길동부터, 의적 임꺽정, 왕후 심청에 이르기까지 과연 무엇을 ‘창작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 있을까? 조선시대 컴플랙스에 빠져 있는 애니메이션들의 공통된 특징은 ‘원작은 원작으로서 남겨둘 수 있는 재창조의 자세’가 없다는 데에 있다. 그저 원작 소설만을 보고 어떻게든 원작 소설에 비등할 정도의 화면 재구성에만 힘쓸 뿐 어느 누구도 시나리오를 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원작 있는 작품에 무슨 시나리오고 기획이냐는 소리인데, 일본에서 제작되는 수많은 작품들이 전부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시나리오 파트가 분명 존재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에초에 창작하는 데에 있어서 ‘애니메이션은 그림’ 이라는 생각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애니메이션 시청자들은 이제 단지 ‘소설’을 ‘움직이는 그림’으로서 만족하는 단계는 훨씬 지났으며 그것도 이미 흥행으로서 흥미를 끌 단계가 한참 지난 고전중의 고전을 전혀 일말의 흥미 요소 첨가 없이 그대로 재현한 작품을 봐 줄 아량과 여유는 없어진 지 오래다.

그래도 희망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면 '망치' 정도랄까? 망치는 ‘원작’ 이 만화계에서는 고전 축으로 평가받는 10년 사이클이 이미 지난 작품이다. 따라서 애니메이션으로 응용하기에는 앞서 필자가 제시한 ‘새로운 작품’ 의 요건에 충족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제작진은 이를 깨닫고 새로운 캐릭터와 새로운 스토리 라인, 탄탄한 화면 연출과, 그레이트 에코라는 필살기를 등장시켜 새로운 시대를 사는 관객들의 요건에 충족하는 충분한 작품성을 보여주고 있다. 항간에는 ‘원작 훼손’의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전에 그 작품을 볼 사람들의 눈과 귀를 충족시키는 것이 제작자가 할 일이니만큼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은 분명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관객들로부터 얼마만큼의 흥행 성적을 거둘지는 미지수이나, 분명 작품 자체의 흥행성이 존재하는 만큼 '오세암'에 그것과는 다른 상당한 수준의 개가를 올리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기대를 갖게 만들어 주고 있다.

필자는 이번 SICAF에 참가한 작품들 중, 작품 자체로서 흥행성을 신경쓰지 않는 작품을 제외한 모든 제작자들이 한번쯤은 깊이 생각해볼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작품 제작자이기 이전에 돈을 받고 돈이 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프로이다. 애니메이션이 예술이고 게임이 예술이라는 예술론을 펼치기 이전에, 이미 돈을 받고 돈이 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한다면, 아니면 굳이 영리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이 만든 애니메이션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를 원한다면, 적어도 자신이 만드는 작품이 어떤 사람들에게 보여질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만들어야 한다. 흔히들 한국과 일본은 애니메이션 업계로서 30년의 문화적 격차가 있다고 하는데, 그러한 문화적 격차는 실력이나 작품, 시장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작품 자체로서 지나간 과거만을 추구한다면 애니메이션 자체가 이미 30년 늦은 세계를 보여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아직도 잘 알려진 원작에 의존하거나 혹은 이미 지나버린 세계를 재구성하는 안일한 생각만을 한다면 모두 규격봉투에 싸서 버려라! 당신들은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어야지 지나간 세상, 에초에 본 적이 없고 볼 가능성도 없는 세상을 그려서는 안된다. 에초에 애니메이션은 그런 생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항상 상기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자신이 만든 작품을 ‘신작’이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작품이 되려면 ‘신작’이라는 타이틀에 대해서 제작자 본인들 스스로 부담감을 가지고 작품 활동에 임해야 한다. 창작 활동은 뼈를 깎는 고통이며 그런 고통 없이 만든 작품에 대해서 열광할 사람은 없다. 그 누구라도 ‘복원작’에 대고 신작이라는 칭호를 붙이기를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데즈카 오사무는 2003년을 애니메이션에 담았고, 한국의 ‘신동헌’은 1470년을 애니메이션 화폭에 담아냈다. 이걸 극복하는 데에는 앞으로 수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는데, 아직도 1970년대, 혹은 조선시대에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시점이 멈추어서는 곤란하다. 시계가 가는 만큼,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시계도 움직였으면 한다. 움직이지 않는 시계를 봐 줄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 Rush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