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04. 8. 25. 05:49
일본 드라마에 대한 필자의 기존 고정관념이란 실로 무서웠다. 에초에 실사라는 매체를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드라마라는 하나의 확고한 선을 그어두지 못한 채, 매체의 대세를 따라서 다분히 애니메이션 스토리 같은 이야기들을 억지로 드라마에 끼워 맞추는 지나친 환타지 지상주의를 추구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 평가를 하려 하는, 그것도 비교적 호평을 해주려고 하는 워터 보이즈를 이야기함에 있어도 별로 바뀌지 않았다.

이 녀석을 보게 된 게기도 사실 투니버스에서 정규 방영을 결정하지만 않았더라도 인연이 없을 뻔했다. 수많은 멀티채널시대에 무심코 채널을 돌리는 채널전환중독자들이 꽤 많은 이 시대에, 자신이 원하는 방송에서 오랫동안 채널이 멈추기도 정말 어려운 세상이 되었기에 필자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너무나도 좋아하는 노래가 다름아닌 대한민국 TV에서 흘러나오는 통에, 그대로, 그 곡이 끝날 때까지 채널을 고정시켰다. 福山雅治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虹(무지개), 사실 이 곡을 알게 된 게기는 아주 우연히 구입한 싱글 때문이었지만, 이것이 특정 드라마의 마무리 음악으로 쓰였다는 사실은 그때 처음 알았다. 엔딩곡이 막 끝난 후, 정신을 차린 후에야 이제 워터 보이즈 첫 방영이 막 끝난 후 엔딩곡임을 확인했고,이렇게 순전히, 엔딩곡이 마음에 들어 보게 되었는데...

절대 이 놈들이 잘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드라마도 특별히 다른 청춘 학원물 드라마와 크게 다른 점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다소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스토리에, 억지로 짜맞춘 듯한 급조된 진행,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인공과 히로인의 애정 삼각관계 등, 식상한 요소들은 고루 갖추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드라마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필자 스스로 이 드라마에 어느 누구 이상으로 과대하게 즐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필자만이 이 드라마를 특별하게 느낄 수 밖에 없었을까? 지금 막 종영하면서 매 화마다, 눈물까지 날 정도로 몰입하게 만든, 그러나 다른 사람과는 달리 평소 일본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던 필자를 열광하게 만든 워터 보이즈 드라마가 가지는 특별한 의미는 무엇일까?

어느 나라나 입시는 존재하지만 입시지옥이라는 단어는 동아시아 3개국 이외에는 특별히 그 단어가 어울리는 나라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매년 50만명가량의 새로운 고 3학생들이 수능과 입시를 치루고, 성공한 사람과 실패자로 나뉘어지는 한바탕의 배틀로얄을 치룬다. 군중 심리라는 것이 심리학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듯, 우리는 월드컵 때, 빨간 옷을 입지 않은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조소하고, 그 옷을 입지 않은 사람들 스스로도 소외감을 느꼈던 것처럼, 보이지 않은 이 사회적 공동체라는 것은 무서우리만큼 우리의 심리 깊은 곳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파고들어 자리잡고 있다.
OECD국가중 가장 많은 교사 1인당 담당 학생 수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이 우리 교육 12년동안 지속적으로 ‘개성’이라는 본능을 짓밟는다. 1등만능주의와, ‘공부’라는 공통적 목표를 향하여, 함께 그룹에 합류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끝으로, 끝으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그렇게 가르쳐왔던 선생들과 부모, 그리고 사회 그들에게 배운 대로 충실하게 또 하나의 청춘이 단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만들어진 공식대로 살아가며, 어째서 1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있는지, 그 이유조차 모른 채로 지고 마는 젊음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가장 설레이고 가슴 터질 것 같은 감동적인 순간들을 있는지조차 모른 채로 스스로 즐거운 인생이라는 가치관조차 잃은 채 누구나 같은 삶을, 복사된 종이인형처럼 살아가고 있다.

필자가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워터 보이즈의 갖가지 명장면들, 왠만한 사람들은 어째서 그 부분이 그렇게 즐겁고, 감동적일 수 있는지 의야해한다. 어째서 저들이 저토록 저런 일에 필사적인지, 마지막 공연을 하기 전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버리는 주인공이 왜 그토록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싱크로나이즈를 하고 싶어하는지를 모른다.

당신은 고등학교 때 축제라는 이벤트에 대한 추억이 있는가? 혹은 전혀 인정 받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손가락질할지도 모르는 외도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가 ‘외도’라고 표현하지만 그것을 외도라고 외치지 않고 ‘나만의 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지금도 정말 후회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는가? 필자는 정말 아무 죄도 없이 자신들의 사는 길을 선택할 기회를 금지 당한 채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잘 사는 방법의 교과서대로, 그들이 원하는 인재들만을 뽑기 위한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신나게 놀아난 우리나라의 청춘들이 정말 눈물 나게 안타깝다. 자신이 진정 어려운 학창 시절 속에서도 학교 내에서 ‘즐거움’이라는 추억을 남기지 못하고 졸업이 순도 100% ‘해방’이라는 코드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는 우리나라 학교의 모습이 너무나도 슬프다. 그래서 눈물이 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어느 누구에게라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필자는 워터 보이즈의 그들만큼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정말 특이한 일들을 학창시절 때 도전했고, 그들처럼 교감, 그리고 교장실에 처 들어가서 내가 하고싶은 것이 무언지 당당하게 이야기했으며, 결국 누구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축제 때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던 그것으로 당당하게 전교생, 그리고 방문자들에게 가장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노라고, 그리고 지금 아직 늦지 않은 젊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교장실 문은 절대 열어서는 안되는 판도라의 상자가 아니다 학생과로 끌려가는 한이 있더라도 예의를 갖추어서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에 대해서 당당하게 이야기하라, 생각 없는 교장들이 많은 세상이라서 그것이 어떻게 그들에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자신의 인생관을 부정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해볼 수 있는 경험은 인생을 후회 없이 사는 데에 있어 가장 소중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리고 용기가 있다면, 같이 할 친구가 있다면 자신의 인생, 그리고 젊음, 가치관이 아무리 남들과는 다르고,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마이너하다 하더라도 당당하게 도전하라, 단지 그것조차 시도하지 못하고 자라난 교사들을 절대 두려워하지 마라, 그걸 해보지 못한 교사들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 인생에서만큼은 당신들에게 배워야 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운이 좋았건 그대들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졌던 간에 성공의 단맛을 느꼈다면 그 순간 누구의 신경도 쓰지 말고, 누가 시키는 대로 하지 말고, 누구의 가르침도 듣지 말고 오로지 젊음이 시키는 대로 마음껏 기뻐하고, 마음껏 성취감을 즐겨라, 그 성취감에 중독된 당신은 다시금 그 성공의 맛을 보기 위해 그 맛을 모르는 사람을 당당히 제끼고 당신만의 인생을 누구보다 당당하게, 누구도 모르는 즐거움을 홀로 간직한 채로, 누구보다 제일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이 드라마가 고전이 되어서 시중에서 접하기도 쉽지 않을 때가 오겠지만 한번쯤은 보라, 당신도 이 드라마를 보고 자신도 모르는 눈물이 나온다고 해서 당신은 이 드라마가 일본에서 제작될 당시 의도된 본래의 목적, 우리나라보다 몇 배는 최악이라 말할 수 있는 일본의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고, 또 보낸 후의 사람들을 이러한 환타지로서 대리만족을 시키면서, 자신의 학창시절을 한탄하고 나이를 먹어버린 현실을 후회하며 흘리는 눈물과는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워터 보이즈의 그들과 똑 같지 않더라도 그들이 직접 교육위원회, 교장, 교감이라는 사회권력층과 싸우며 그들을 변화시키는 기쁨, 그것은 그것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단지 환타지일 뿐이지만, 그걸 실제로 도전해본 사람들에겐, 아무리 다시 봐도 지나치지 않을, 바로 살아온 젊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여담을 좀 하자면, 필자가 이 드라마를 정말 끝까지 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워터 보이즈의 드라마
주연을 맡은 5인들의 정말 훌륭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연기였다. 주인공 ‘신도 칸쿠로’의 야마다 다카유키(山田孝之)도 나름대로 어려운 ‘우유부단한 전형적인 일본형 주인공’의 역할을 잘 소화해내기도 했지만, 필자의 눈길을 끈 건 ‘타테마츠 노리오 역의 모리야마 미라이(森山未來)였다. 사실 딱 보면 그렇게 굉장히 잘 생기지도 못했고, 날카로운 눈매, 약간 건실하지 못한 인상 등 호감이 가는 부분은 조금도 없지만, 이 녀석이 일단 연기를 하기 시작하면 보는 이의 인상을 완벽하게 바꾸어놓는 신비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실제 성격이 어떤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일본인들은 이게 어렵다) 그는 최소한 이 드라마에 나올 때만큼은 그야말로 ‘타테마츠 노리오’였다.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에 갖는
애정이 남달라서 이 정도의 연기를 더 잘 해내는 연기자가 있을 수도 있고 필자가 침을 튀겨가면서 설명한 모리야마의 연기가 객관적으로 그다지 잘한 편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왠지 앞으로 더 잘해낼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둘 중 하나가 교통사고라든지 병 등으로 제 명에 못 죽는 한이 없는 한 저 모리야마 미라이라는 배우는 내가 죽을 때까지 지켜보고 인연이 닿으면 한번쯤은 만나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름 ‘미라이 (未來)’와 같이 함께 새롭게 즐겨볼 수 있는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는 이런 착각까지 하게 할 정도로 보기만해도 즐거운, 워터 보이즈의 단연 빛나는 빛이었다. 그걸 아는 일본도 그에게 일본 TV 드라마 아카데미 어워드 ‘남우조연상’을 안겨주지 않았는가? 전문가들의 눈도 역시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워터 보이즈 2가 방영되고 있다는 소식에 잠시 정신이 멍해진 뒤로 어떻게든 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필자, 어찌되었든 누구나 차마 표현할 수는 없지만 말도 안되게 기쁘고, 설레고, 추억할 수 있는 이런 기분을 정말 소중히 하고픈 순간순간들이다.
앞으로 언젠가, 또 다른 삶을 살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이런 기분을 느끼며 추억하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쁘고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며, .. 필자 스스로, 소망해본다. 언젠가는 워터 보이즈, 이들의 도전으로 남자가 싱크로를 하는 게 이상한 세상이 아닌, 여자가 싱크로를 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는 그런 세상을 만들 거라고 ... 내가 하는 일이 아무리 이상하고, 사람들이 조소해도, 끝까지 웃으며 언젠간 그들에게 내가 하는 일이 가장 멋지고 즐거운 일이었음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겠다고...

- Rush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