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3. 10. 2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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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학교다닐때는 말이죠.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우리는 누구나 평등한 권리를 가진 자유민주주의평등국가라고 제일 처음에 배운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제가 정작 사회에 나와 살아보고 주변 친구들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도 지켜보자면 그때 배운 게 맞나 싶기도 해요. 우리는 정말 직업에 귀천이 없는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에서 살고 있는 게 맞나요? 왜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굽실거려야 하고 그 화풀이를 꼭 누군가에게 해야 하는 폭탄돌리기를 하며 살아야만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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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이 거짓말한게 그것 뿐이라고 생각하세요?


공화국 사회교과서 1장에 보시면 학교가 절대 정직한 집단이 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너무 순진하셨어요. 하기야 그때 순진하지 않으면 언제 또 순진해봅니까? 꼭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긴 하지만, 그걸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세대들의 시각에서 재해석할 여지 자체를 주지 않는다는 건 좀 우리만의 문제이긴 해요.




흔히 대통령이 국민 아래에 있고 모든 권력 국민에게서 나온다 뭐 이런 이야기가 헌법에 쓰여있잖아요. 근데 그걸 체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이고 그 사람들이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자신들의 사유재산을 챙겨먹기도 하죠. 그럼 왜 이 헌법이 존재하느냐, 명목상인거에요. 사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것 자체가 에초에 과거 봉건주의 사회와 관료주의 사회의 모델에서 전혀 발전하지 못한 모양새거든요. 당연히 시행 초반에만 반짝 컨벤션 효과를 냈었겠지만 고무줄 돌아오듯 금새 사람 사는 사회는 예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채로 회귀하고 있는 거에요. 


왜 이 사회는 평등하지 못할까요? 그리고 앞으로 정말 평등한 사회란 올 수가 있을까요? 당장은 해답을 드리지 못하겠지만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


나랏님 탓


흔히 하는 착각중에 하나가 지금의 공화정에 비해 절대왕권봉건주의 사회에서는 왕의 권력이 절대적이며 백성들은 결코 이 권력에 저항하지 못한다고 믿고 있다는 거에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에요. 봉건주의 사회는 그만큼 계급화가 명확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각 벼슬이나 왕권이 지금의 공화정제 관료들보다는 훨씬 공고하고 표면적으로는 영구집권과 세속이 가능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요. 근데 진짜 그랬을까요? 그리고 지금 공화정이 영구집권과 세속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긴 한가요? 


공화정 하에서 정권을 잡은 자들


대통령과 일개 시민이 평등하다고 교과서에서 늘 배우지만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죠? 대통령이 가진 국가 권한은 너무나도 막강해서 국가를 개인 사적 감정으로 패망시키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요. 과거 조선의 왕들이 군사를 일으킬 때 백성들 중 건장한 청년들을 차출하는 것처럼 대통령 산하 국가조직 역시 젊은이들에게 명목상으로는 '자율적'이지만 헌법상의 의무라고 못을 박아둔 채 병사를 차출하고 또 이용하는 모습은 전혀 다를바가 없잖아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서 몸 아픈사람 빼주고 부양가족 있는 사람 빼주고 그런다고요? 조선시대라고 그런 거 없었던 게 아니에요. 조선시대에는 심지어 '결혼'만 하면 애를 생산해야한다는 의무를 지기 때문에 전쟁에 차출되지 않기까지 했어요. 다친 사람이나 지병 있는 사람은 말할것도 없죠. 지금 병역 면제 기준 한번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마 면제를 받는 것이 조선시대에 비해서 과히 민주적이고 간단하지 않다는 건 징병대상자가 되어본 남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부분이에요.


지금은 민주주의라서 대통령이 뭐 잘못하면 국민들이 힘을 모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니 왕권주의보다 낫다고 보는 분들도 있어요? 근데 그게 반드시 공화정이 되고 나서야 겨우 생겨난 특권일까요? 정말 왕권주의때에는 그런 일이 없었을까요? 적어도 우리나라에 한해서는 그게 아니었어요.


조선왕조 500년 실록을 보면 우리나라 왕 중에는 종이나 조로 끝나는 사람도 있는데 드물게 '군(君)'으로 끝나는 사람도 있어요. 연산군이나 광해군이 대표적이죠. 그들이 폭군이라서 그렇게 기록되었다고 알고 있는게 일반적이에요. 그런데 이상하죠? 왕권이 절대적인 왕권주의국가에서 폭군이었다고 해서 한낱 서기관따위가 임금 역사를 그따위로 기록한다니 말이에요. 그리고 에초에 폭군이라고 평가를 한 주체가 있었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기본적으로 왕이 자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 하나 좌지우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렇게 쉬운 걸 왜 못해?


...


연산군의 기록을 보면 이런 얘기가 있어요.


- 조선 연산군은 매사냥을 경기도 청계산으로 다녔는데 매번 한강에 부교를 설치하는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고 한다. - 


매사냥이 뭐냐, 당시 동시대 유럽 귀족들의 필수 교양이라고 할 만큼 가진 자들의 평범한 취미 정도였단 말이죠. 왕이 문제가 아니라 흔히 부르는 공작 백작 남작, 우리로 말하면 고을 원님들도 흔히 즐기던 수준이었다는 거에요. 그런데 왕이 그거 좀 한다고 백성들이 무려 '원성'씩이나 냈다라는거죠. 이건 당시 왕권이 약하고 강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조선의 봉건주의가 일반적인 유럽의 봉건주의와는 그 궤를 달리했다는 이야기가 되요. 



우리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봉건주의 자체에 대해서는 유럽의 그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강한 왕권과 정복자, 지배자, 피지배자로 나뉘어지는 복잡한 유럽의 역사에서 생겨날 수 밖에 없었던 그 봉건주의 말이죠. 그런데 역사 교과서 주장대로라면 침략을 수도 없이 당하기만 했을 뿐 어디 하나 침략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순둥이 국가 대한민국의 봉건주의가 이들과 성격이 같다는 건 분명 모순일 거에요. 한마디로 지금 현대의 많은 국가들은 봉건주의에서 공화정으로 바뀌는 역사의 수순을 밟고는 있지만 그 공화정 자체의 성격이 어떤 나라에서 만들어진 획일화된 기준으로 모든 나라에 적용시키기에는 그 한계가 분명 있다는 거죠.


유럽의 봉건주의는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데. 기본적으로 지배와 피지배, 타민족과의 경쟁, 그리고 전쟁 수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몇십배에 달해요. 전쟁이 많다는 것은 무엇이냐. 그만큼 체재 전복에 대한 위협을 왕이 깊숙하게 느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며 지배와 피지배 타민족과의 경쟁이 반복된다는 것은 전혀 뜻을 같이 하고 있지 않은 민족들과 국경 속에서 합의 하에 같이 살아가야만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단일 민족이었고 삼국 시대 뒤엔 고려가 생기고 그 뒤엔 조선이 생기고 그 뒤엔 일제침략기를 거쳐서 대한민국이 생기는 사슬 구조의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많이 달랐다는 거에요. 


이런 환경에서 왕이 과연 백성들을 믿고 백성들을 위한 선정을 펼칠 수나 있을까요? 내일 당장 전쟁이 벌어져 순식간에 나라가 망할 수도 있고 외부 민족들이 공존하는 백성들 중 그들이 진정 우리 편이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불투명한데 그들을 모두 백성으로 인정하고 나라의 안정을 꾀할 틈이냐 있었겠냐는거에요. 게다가 공작, 백작, 남작 이런 단어에서 알 수 있겠지만 당시의 왕 제도는 중앙집권체계가 아니라 암묵적으로 군소 국가들이 연합해서 연방을 구성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각 지역 영주들의 권력은 그 지역 내에서는 왕에 필적했어요. 유럽 중세 소설을 보면 사실 왕이 와서 행패를 부리는 모습은 별로 없고 백작이나 남작, 후작 같은 사람들이 악역으로 많이 등장하잖아요. 그만큼 그들의 권력이 그 지역 내에서는 절대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하죠.



사정이 이런데 과연 왕이라는 존재가 온 백성을 아우르는 성군이 될 수나 있었을까요? 당연히 각 영주들보다 더 위에 있으려면 더 많은 권력과 권세를 누리지 않으면 안되었던거죠. 왕은 일반 백성들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일반 백성들은 각 지역 영주들이 사실상 그들의 왕이나 다름없었어요. 각 지역 영주는 이변이 없는 한 대물림되며 세습되었고 왕이 특별히 문제를 삼지 않는 한 세습을 트집잡을 수도 없었던거죠. 우리나라는 어땠나요? 부패한 관리가 있다는 탄원이 중앙정부로 접수되면 암행어사가 떠서 싹 쓸어버리는 장면 익숙하시죠? 유럽에서 이 장면을 보면 눈이 휘동그래질거에요. '아니 어떻게 감히 영주한테 개길수가 있지?'



우리나라는 이미 조선시대때부터 영주는 물론이고 왕조차도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면 폭군으로 기록되며 유럽에서는 남작 나부랭이도 하는 매사냥조차 백성들 눈치를 봐야하는 그런 봉건주의를 가진 나라였어요. 물론 왕권이 강력하다는 것은 이견이 없지만, 그 왕권자체의 강력함과는 별개로 백성들이 느끼는 삶의 질과 정치적 참여에 대한 권리는 유럽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는거죠. 대부분의 민란들도 결국 범국민적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한건 조선 후기의 그 악명높은 허수아비 선조 시대 안동 김씨 세력들이 득세할 때 본격적이었지 실제로 중국의 통일국가 역사에 비추어보아도 이렇게까지 반란에 대한 기록이 적은 나라가 또 없어요.


이런 백성친화적인 봉건주의 사상을 일찍부터 가지고 있던 우리나라가 왜 민주주의 국가에 이르러 이모양이 되었는지에 대해 궁금하실거에요. 그 해답은 그다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일본을 공격해야 해요.


...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뿌리를 찾기가 참 애매해요. 우리나라는 입헌군주제 국가가 아니라 대통령제 국가이기 때문에 굳이 가져오자면 미국의 민주주의를 표방해야 하죠. 그런데 미국처럼 연방제국가가 아니기때문에 단일국가의 민주주의 모델로 개량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이 개량 작업을 해야 할 시기에 딱 일제강점기가 겹치게 되요. 뼈대는 미국식 민주주의인데 속살은 일본식 민주주의라는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잘 감이 안오시겠지만 일단 들어보세요.


일본은 입헌군주제국가이므로 당연히 왕이 있어요. 따라서 일본의 민주주의 하의 정치적 최고권력자는 총리대신이 됩니다. 그런데 이 왕의 존재 자체가 일본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신'과 같은 위치에 있거든요. 일본 여행을 하다보면 신사(神社)가 있고 데라(寺)가 따로 있다는 것에 의야해보신 분들이 있으시겠지만, 일본은 그 동네, 혹은 그 지방의 큰 어르신이나 그 지방을 개척한 토호를 신으로 모시는 데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어요. 이런 문화는 중국에도 있는데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나 조자룡이 출생지역 상산 등지에서 신격화되고 참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물론 일본쪽이 훨씬 더 맹목적인 구석이 있지만요.



이런 문화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섬나라이다보니 불교 문화가 태동되기 전까지는 이렇다할 종교가 침투될 여지가 없었고 그렇다보니 토착 종교 즉 토템이 발전을 거듭하여 된 모양새가 조상신을 넘어선 그 마을, 더 넓게는 나라의 국왕을 신으로 모시는 풍토가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겠죠. 이건 사회교과서 5장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예전 이집트에서나 볼 수 있는 굉장히 원시적인 종교 문화에요. 그만큼 교류 자체가 적을 수밖에 없었던 섬나라의 폐쇄성이 만들어낸 특이점이라고 보는 게 맞을거에요.


이런 토착 종교 문화는 국가 문화를 극도의 보수성으로 옭아묶게 되요. 일본은 도요토미히데요시가 통일을 하기 전까지는 4개 국가에 수십개의 크고 작은 통치 지역으로 나뉘어져서 통치되었는데, 중앙정부가 존재했고 일왕도 계속 명맥을 잇고 있었지면 아무도 그들의 권력에 별로 관심을 보이진 않았고, 일왕 역시 각 지역 구석구석까지 자신의 힘이 닿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시대였죠. 대부분 각 통치 지역에 있는 영주 (일본으로 치면 쇼군) 들이 자신들의 통치 영역만을 얌전히 통치하면서 지냈어요. 이른바 센고쿠 다이묘 시대인데 일본의 사극 대부분은 이 시대부터 시작하고 있어요. 그만큼 일본 역사는 그 이전 역사가 제대로 갖춰진 역사라고 보기에는 너무 원시적이었다는거죠.



그렇게 다 제각각 나라를 갈라먹고 평화롭게 오랫동안 살다 보니 나라가 굉장히 오래 갔고, 각 지역별로 우리나라로 치면 '단군할아버지'급의 인물들이 한 명씩은 존재했어요. 물론 우리의 천도교처럼 하나의 종교로서 고착되었음은 물론이고요. 특징이 있다면 그들은 그 혈통을 보존해서 계속 왕으로 모셔 오고 있다는 거에요. 한마디로 한번 지도자로 모신 혈통은 계속 세습하여 지도자로 모신다는 북한의 3대 세습은 울고갈 유구한 역사의 세습문화가 일본에 정말 상상도 못할 기간동안 오래 지속되었다는 거에요. 그러다보니 죽은지 너무 오래 되어 그 위대함을 해아릴수없는 지경이 되면 그 지도자 혈통의 시조급은 이른바 '신격화'가 될 수밖에 없죠.



일본 대기업의 역사는 수백년을 아우르는 곳도 있는데 대부분 이런 명문 가문이 기업화된 곳들이 많다. 미쯔비시그룹의 마크도 원래 가문의 상징을 회사 심볼화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의 카스트는 정치계뿐만 아니라 경제계에도 이처럼 깊숙히 박혀있다.



이런 나라가 통일이 되었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상상만해도 끔찍한것이 각 지역별로 신이 있는데 그 두 지역이 싸워서 이긴 지역이 진 지역을 흡수해버리면 사실상 그 지역의 토호 혈통이 끊어진다는 건데, 이미 그 혈통이 깊숙히 신격화되어있는 국민들이 이를 가만 둘리가 있었을까요? 이미 다른 지역의 토호로 갈아탄다는 차원을 뛰어넘는 더 뼛속 깊은 트러블이 예고될 수밖에 없었어요. 일본은 그만큼 통일이 쉽지 않은 나라인거죠.


아무튼 통일은 통일임


그러던 와중에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국을 통일시키는데 성공했으니 실제 그 내부 진통은 어느정도였는지 예상이 되시나요? 물론 도요토미는 이를 타파하고 일본을 결속시키기 위해 전쟁 카드를 꺼내서 우리나라를 괴롭혔는데, 실제로 우리 나라를 먹겠다는 목적보다는 일본 각 지역, 특히 시코쿠와 큐슈 지역의 토호 세력들의 '전투력 소모'의 목적이 더 컸어요. 중앙 정부가 있는 혼슈와는 다르게 바다 건너 있는 시코쿠와 큐슈에까지 단기간에 통치력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통일빨이 다 하기 전에 그들의 전력을 소비시킬 필요성이 있었던거죠. 한마디로 그는 통일은 했지만 각 지역의 토호들을 모두 잠재웠다고 보기는 어려웠어요 여전히 도요토미는 물론이고 중앙정부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국민들이 대다수였을정도니까요. 도요토미 사후에 즉위한 도쿠가와 역시 중앙집중안정책을 취하긴 하지만 토호들의 권력을 완전히 빼앗는게 아닌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충성을 유도하는 유화책으로 평화를 이끌어내는 선에 그쳤어요. 한마디로 어느 쪽도 완전한 하나의 국가로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일본은 공화국이 되어서야 지금의 일본이라고 불릴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데, 이때 일본의 입헌군주제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한 것이 왜 기존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했는데, 새로운 왕이 탄생하지 않고 제국이 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볼 필요성이 있었는데요.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의 일본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 지역 토호 위주의 '신'을 모시는 문화를 모두 타파하고 통일된 하나의 신을 모시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은 그때까지 실질적으로 혈통만 존재할 뿐 어떤 권력도 없었던 일왕 혈통을 이용하기 시작하는데, 막부 시대에는 궁핍하여 즉위식은 커녕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했던 일개 몰락 귀족 혈통에 불과했던 일왕은 그 유구한 역사와 정통성으로 인해 일본에서 가장 오랜 가문으로 모셔지기에 충분했어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들어 일본 제국을 세운 자들은 이를 일본 전국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에는 일본 유신을 완성한 자들의 스스로의 권력다툼으로 인한 죽음을 걱정한 나머지 누구 하나 1인 권력을 쥐는 것을 원치 않았던 이유로 이들은 일왕 가문을 내세워 일왕 가문을 보호하는 내각총리 체계를 완성하게 되요. 이런 내각총리 체계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고 패전의 쓴맛을 보며 입헌군주제로 변할 지언정 그 체계는 지금까지 무너뜨리지 않고 이어오고 있죠.



일본의 초대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 일왕의 직할 통치론을 최초로 주장하며 일본의 제국화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때부터 일본의 정치인은 국민이 뽑은 봉사자가 아닌 완전한 각료, 관료, 벼슬아치가 되었으며 이는 지금의 일본 사회가 가진 신 카스트의 기본 토대가 된다



일본 제국이 일왕을 얼마나 신격화하는데 성공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모습, 일본 제국군인들은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일왕처럼 신으로 받들여 모셔질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자살폭탄공격을 기꺼이 수행했다. 그리고 일본은 놀랍게도 그 약속을 아직도 지켜나가고 있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일본 건국 이념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니까.



...


일본 이야기는 저도 많이 하기 싫으니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할 것 같군요.


왜 이렇게 싫은 얘기를 길게 했는지에 대해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일본의 전국시대부터 일본 제국, 입헌군주까지의 역사가 지금의 일본 내에 미친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에요. 일본은 그 나라 크기에 비해 각 지방이 가지고 있는 독립적인 경제권과 자치권이 다른 어느 나라에 비해 높고, 표준어 구사율이 경제규모에 비해 상당히 떨어지며, 지방분권이 어느 나라보다 잘 되어있는 나라가 되어있죠. 그들에게 있어 일왕은 단순한 왕이 아니라 일본의 신이며 그들의 통치를 받는 것은 응당 당연한것이죠. 각 지방에서 선출되는 국회의원들이 아들 손자 며느리까지 3대 세습은 우스울정도로 세습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도 전국시대부터 이어져온 토호 세력의 제왕적 봉건주의가 뼛속까지 스며 제대로 된 자발적 민주주의가 꽃필 토양 자체가 아예 생길 여지가 없는 한계가 있고, 총리대신을 국민이 아닌 각 지역 토호들이 선발하는 문화 역시 에도시대와 일본 제국을 거치면서 생긴 중앙집권화의 잔재인 것이죠. 한마디로 일본은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거에요. 그들에게 있어 민주주의란 아직도 너무 먼 이야기일 뿐이고 그것은 그들 스스로 자초한 문제에 지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토호 세력들이 공포정치를 펼친 적도 없고 왕은 일찌기 중앙집중화를 이룩해내어 중앙 임명식 봉건제를 완성시켜 지역 토착 세력이 자리잡을 여지 자체가 없었으며, 통일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의 건국과 멸망은 결국 관리들의 부패로 인해 민심이 등을 돌리면서부터 시작되었을 만큼 나라의 흥망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 백성들의 역할이 매우 컸던 나라에요. 그런데 이런 나라에서 태동된 민주주의가 지금의 이 모양이라면 답은 하나밖에 없죠. 바로 일본 탓이에요.



우리나라는 입헌군주제가 아닌데도 정치인들은 어떻게해서든 정치권력을 자식들에게 세습화하고 놀랍게도 국민들은 이를 당연하다는 듯 문제인식 없이 용인하죠. 지역 출신 대통령을 신처럼 모시는 의식이 각 지역별로 횡횡하고 있고, 중앙집중체계가 잘 이루어졌던 조선으로부터 이어진 나라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역주의가 팽배한 나라가 되고 말았어요. 민주주의 하에서의 관료들은 마치 봉건주의의 그들처럼 권위의식이 높아져만 가고 놀랍게도 그런 권위의식에 대해 마치 봉건주의 귀족들을 보듯 당연시어기는 국민들이 아직도 많아요. 심지어 이런 계급사회의 체계는 굳이 정치판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회사 내 심지어는 우리가 사는 이웃의 소득 격차에서도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를 좀 더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도 있어요. 민주주의는 국민에게서 권력이 나오는 체계인데 오히려 조선시대보다 못한 국민권력을 가지고도 지금의 민주주의 권력이 오히려 과잉이라며 스스로를 책망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아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꽃을 피워야 할 때 하필 그 뿌리를 다져야 할 때 일제강점기가 있었어요. 그들은 일제강점기 동안 일왕을 섬기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기는 이른바 제국주의 계급사회 체계를 뿌리박았어요. 해방 후 우리나라는 그 잔재를 청소하는 데 실패했고 그 계급주의의 혜택을 듬뿍 입은 자들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 초대 정권을 잡으면서 그들에게는 한없이 유리하고 행복하며 영원불멸할 수 있는 일본의 입헌군주제식 민주주의를 뿌리박는데 성공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헌법 제 1조가 존재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체감권력은 한없이 약하게 느껴지는 기형적인 나라로 지금에 와 있는 거에요.


이같은 패배의식이 남아있고 입헌군주제식 민주주의 잔재가 남아있는 한 아무리 1인 1표제, 직선제 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민주주의에 의한 정치적 결실을 얻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봐요. 토호 세력이 신을 섬기듯, 우리나라는 자기 지역 출신 정치인을 섬기고, 그가 임기를 마치고 나서도 그 권력을 계속 유지하는 영주와 같은 역할을 하는 반쪽 이하의 민주주의는 그들이 지금 당장 부패한 거와는 관계없이 우리 어르신들 세대에서부터 뿌리박혀 있는 이상 진정한 민주주의 하에서 나올 수 있는 사회체제가 확립될때까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을 정도에요.



....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언제 평등할 수 있나?


우리나라 현대사를 완전히 망가뜨렸다고 봐도 무방할 일본의 입헌군주제가 정치체계적으로 전혀 호환되지 않은 우리나라에 녹아들었다는 점이 사뭇 납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두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는 태생부터 사상까지 분명한 대척점에 있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그런데 말이죠. 사실 민주주의가 정말 봉건주의 사회와 완벽한 대척점을 지니는 정치 혁명이었다면 지금처럼 입헌군주제를 표방하는 국가가 나올 수가 없지 않겠어요? 아무리 껍데기뿐이라고 해도 공화정 혁명이 왕권이랑 호환성을 보이는 것 자체가 원론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거겠죠. 다시말해 지금의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쓴 봉건사회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양새만 다르게 한 채로 결정적 투표권을 줬다는 것 하나로 헌법 제 1조를 만들어 국민들을 착각하게 만들고 있어요. 입헌군주제냐 완전한 민주주의냐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 사상만으로 모든 국민들을 민주주의에 최적화시키도록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거에요.


일본의 근현대사를 소개해드린 부분을 읽으시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결국 뿌리깊은 봉건주의로 인해 자리잡아 있는 카스트 제도는 그 형태만 달리했을 뿐 이른바 일본식 민주주의로 그 색깔을 그대로 유지한 채 굳건히 자리잡고 있어요. 이들은 결코 낮은 카스트들을 위한 정책을 펼칠 생각이 없어요. 행여 그런 정책을 취한다고 해도 국민들은 그 부분이 자신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일 바에야 그냥 예전 영주들처럼 국민들 피나 왕창 빨아먹자는 게 일본의 관료주의 하에 놓여있는 상위 카스트들의 생각인거에요. 



일본인들은 대체로 이런 정치판에 큰 불만이 없어요. 그들은 민주주의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죠. 그들은 정치판이 내게 뭘 해줄지를 기대하기보다 그저 황국 신민으로서 내 위치에서 묵묵히 열심히 회사를 위해 나라를 위해 일왕을 위해 내 위치에서 내 역할 내 일을 열심히만 하다가 죽는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죠. 일본인들의 이런 특성은 외부에서는 우직함과 성실함으로 비추어지지만 실은 오랜 카스트에 익숙해진 뼈에 사무친 패배감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없다는 F1레이싱이 일본에서 인기가 있다는 점, 각종 헐리우드 스타들이 폭넓게 인기가 있는 이유 그들이 특별히 범세계적인 문화 소비 성향에 눈을 떴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냥 유명하니까 의무감으로 봐야 한다'라는 느낌이 강하다. 마치 유럽 여행에서 에펠탑을 반드시 봐야 하듯이 그들은 일본에 온 유명인이라면 별 관심이 없어도 콘서트의 자리를 꽉꽉 채우곤 한다




그들은 어느 정점에 다다른 연예인을 '신'이라 부른다. 그들에 대한 대우가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들이 F1경기장에 몰리고, 우리나라에선 생소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예인이 일본을 방문하면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그들이 진짜 좋아서라기보다 그들을 이미 '신'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종교적 행위와 다르지 않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이미 그렇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는데 일본의 그런 모습이 점점 보이고 있다는 거에요. 정치인을 신격화하고, 무언가 나라를 위해 직접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권력에 기가 눌려 묵묵히 살다가 죽는 것을 택하는 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자신들을 위한 정책이라곤 눈꼽만큼도 내지 않은 자들에게 표를 던지고 그들에 의해 온갖 불이익을 받아도 묵묵히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데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어요. 회사 면접에서 인격적인 조롱을 당해도, 회사 내의 봉건주의 잔재에 변화를 요구하기보다 그에 순응하는 쪽을 택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단순히 일본 탓만 할수도 있지만, 그것을 뿌리뽑을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린 책임도 분명하다는 점이 이 나라를 사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울 따름이에요. 


결국 민주주의는 그 자체만으로 결코 만능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에요. 그것이 입헌군주제에 의해 더럽혀지건 더럽혀지지 않건 결국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생각이 오염되지 않아야 본격적으로 자유로우며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토대로 제 역할을 해줄 테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무엇부터 어떻게 얼만큼 해야 하는지를 정해야 할 시기를 이미 지나쳐버린 지 오래지만 아직 늦지 않았어요.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 겠지만 말이죠.




...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릴 차례네요.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평등해질 수 없어요. 그것은 입헌군주제의 영향을 받았던 받지 않았던 그 사상은 말 그대로 법이든 뭐든 '최소한'이에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군락을 이루고 그들이 함께 세력으로서 잘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어떤 합의체가 그들이 살아온 역사와 사회적 형태를 단박에 특정 나라가 발전시키고 만들어온 이론울 바로 적용시킬 수 있을 만큼 녹록할리가 없을테니까요.


우리나라는 애석하게도 일본의 입헌군주제에 의해 오염되어 버린 민주주의를 갖고 살고 있어요. 그래서 만인이 평등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굽실거려야하고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뒷목에 힘이 들어가는 먹이사슬같은 귀천체계 공화국 카스트 제도가 자리잡고 말았죠. 우리 민족은 왕한테도 개기던 자존감이 강한 민족이라 누구한테 당하면 꼭 그 분노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누군가에게 갚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탓에 갑을관계가 생기고 또한 사회문제가 되며 직장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는 자기보다 낮은 카스트라고 생각하는 서비스업종에게 풀어내는 보기 안좋은 사회문제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있어요.



우리는 늘 직장상사보다 낮은 등급의 차를 사야만 해요. 우리 회사가 처우가 좋지 않은건 갑의 회사보다 나은 처우나 직원복지를 하면 갑의 회사가 불쾌해하기 때문이죠. 을의 회사가 더 나은 처우를 하고 싶어도 갑의 회사가 그 처우에 미치지 못하면 항상 그보다 낮은 처우를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은 전혀 민주적이지도 자유경제주의적이지도 않은 악습에 지나지 않는데도 아무도 이것을 고치려 들지 않아요. 


임대아파드 사는 주민이 자기 집 앞을 지나가는게 싫어서 바리케이트를 쳐요. 그리고 어떻게든 정말 어렵게 모으고 그 가치를 더 많이 인정받는 돈이라는 물건으로 자신의 카스트를 증명하려 애쓰죠. TV에는 더 좋은 옷, 더 좋은 음식, 더 좋은 집이 늘 부각되고 카스트를 상징하는 지표로서 광고하고 사람들은 어떻게든 가짜로라도 자신의 카스트를 돋보이게 하려 애써요. 자신의 본질적인 성격이나 내적인 아름다움은 고리타분한 선비들이나 하는 얘기로 핀잔을 듣기 일쑤에요.



돈으로 카스트를 과시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목표가 되다보니 그 밖의 가치들은 모두 하대를 당해요. 문화 공연은 그 내용보다 얼마나 제목이나 작품 자체가 돋보이고 역사가 깊느냐가 중요해요. 작품 내용을 하나도 이해를 못하면서도 그 작품을 봤다는 상징 자체에 집착하죠. 해외여행, 자동차, 명품백, 처음 들어가는 직장, 부모들의 직장 .... 지금의 민주주의 사회라 불리는 대한민국은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어요. 민주주의는 내가 주인공이고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사회인데도 말이에요.


이건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부터 직시해야 해요. 다행이 우리나라가 아직 일본보다 나은 점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그 끊임없는 개김성으로 인해 결코 독재나 봉건식 민주주의에 굴복하지 않고 나라가 큰일이 날 때마다 사람들이 힘을 합쳐 나라를 바로세워온 결과 우리 손에는 적어도 투표용지 한 장씩은 아직 골고루 갖고 있게 되었잖아요. 총리대신 하나 스스로 못 뽑는 옆나라가 결국 그 봉건주의로 파국을 맞는 걸 보면 아직 가능성이 있는 거죠.



...


자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그 권력으로 무엇을 해야만 할까요? 


다른 건 다 필요없고 이거 하나만 기억하세요



지금에 만족하는 사람은

결코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살 수 없어요.


왕족, 재벌, 현직 정치인, 셀레브레이트, 고액 재산가들...

모두 지금에 만족하고 지금의 카스트를 누리는 데 거리낌이 없어요

이들이 진정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


당신이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표를 던지세요.


만족하지 않는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더라도


단 하나라도 만족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위해 자기 인생을 바칠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표를 던지시는 것


그리고 지금의 민주주의가 뭐가 잘못되었으며

진짜 우리 몸에 맞는 우리 민족이 해왔던 우리들만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늘 생각하고 행동하고 깨달아가는 것...


저는 그것이 민주주의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화국 사회교과서 제 6장-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정말 평등한가요 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3. 10. 7. 14:59

키코사태가 터졌을때 중소기업들은 '약자'임을 내세우고 금융기관이 상품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손실이 발생했다며 대대적인 소송을 걸었으나 최근 패소했다. 하우스 푸어라는 말이 얼마 전부터 뜨기 시작하는데 말 그대로 집을 은행빚까지 내서 비싼 값에 샀는데 집값이 떨어져 금융비용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아파트 역시 팔지를 못하는 '집 가진 가난뱅이'라는 이상한 신조어다. 지난 저축은행 사태 당시에는 예금자보호 한도를 넘어선 5천만원 이상의 예금자들이 '서민을 울린다'는 키워드로 정부의 대대적인 보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번 동양증권 사태에 대한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 물론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도 있을 수도 있고 증권사직원이 설명을 누락했을수도 있다. 필자는 수많은 금융기관의 창구직원을 상대하면서 필자 이상으로 금융상품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즉석에서 전화찬스를 쓰지 않는 한) 직원을 본 적이 없다. 필자가 알면서 물어본 것이 아니라 이미 이러저러한 상품이 이러저러한 약관으로 적용되므로 이러저러하게 신청하겠습니다. 라는 의사표현이었는데 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사례였다. 때문에 금융기관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이들의 주장은 일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지금 뉴스 보도와 여론의 변화 추이는 뭔가 좀 이상하다. 아무튼 동양증권이 잘못했으며 동양증권을 감리관할하는 금융감독원의 책임도 있으니 나라가 물어내라는 식이다. 키코사태, 저축은행 사태, 최근의 하우스 푸어들의 주장들과 일치하다 어쨌든 자기잘못은 아니고 정부가 책임이 있다는 식이다 왜 이런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들의 주장이 정말 정당하기는 하나?



그들이 '설명이 제대로 못들었다' 라는 주장은 '보편적 상식'에 근거한다. 바로 필자처럼 수많은 금융기관의 창구직원을 상대해봤을 때에 비로소 알 수 있는 정보라는 것이다. 즉 알 수 있는 사람은 알 수 있고 그것에 대해서 클레임을 걸 수 있는 요건이 되지만 모르는 사람은 정보력 자체에서 밀린다는 거다. 쉽게 말하면 '설명을 제대로 못들었다' 라고 '금융회사를 고소'할 수 있을 정도의 소양을 가진 정도의 사람이 '해당금융상품의 설명을 제대로 못듣거나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고 투자할 가능성'은 그만큼 낮다는 이야기가 된다.


근데 뉴스에는 이런저런 사례가 나오고 있으니 진짜 금융기관이 설명을 못해서 그럴수도 있겠다 싶을 것이다. 그런데 뉴스를 잘 보면 '통계적' 사실을 말하지 않고 '사례적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양증권의 개인투자자 중 한 명이 실제로 '설명을 못듣고' 혹은 '적금이라고 속여서'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이 있다는 보도와 함께 동양증권의 개인투자자는 5만여명에 이른다는 통계적 사실을 덧붙인다. 언뜻 보면 5만명이 모두 이런 사례를 겪고 있는 걸로 보일 수 있도록 보도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5만명 CP투자자 전원을 '적금'으로 속이고 가입시켰단 말인가? CP에 투자할 의사를 가지고 '증권'사에 방문할 만큼 적극투자성향의 개인투자자 5만명 중 단 한명도 이런 불완전판매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 자체에 대한 클레임이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진정 불완전판매를 했던 일부 투자자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구제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일부를 이용하여 자신들을 피해자 대열에 포함시키려는 투자자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동정의 여지가 없다. 과연 그들이 CP투자까지 하면서 정말 그 위험성에 대해 모르고 투자를 했을까? 정말 5만명에게 모두 불완전 판매만을 했을까? 그리고 그 불완전판매라는 것으로 항의를 할 정도로 금융지식이 빠삭한 사람들이 과연 CP투자의 리스크를 인식하지 못한 막무가내성 투자자라고만 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이 여론을 자극하는 식으로 그들이 진정 개인투자자= 약자 라는 등식을 만들어낼 자격이나 있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질 생각이 이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떼를 쓰고 있다. 이미 각오한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지를 하고 있으니 이들에게는 최악의 사태가 와도 손실을 감수하면 그만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떼를 써 보는 거다. 어차피 져도 손해가 아닌 게임이니까, 여론만 제대로 타면 정부가 어쩌면 약간이라도 보상을 해줄거고 아예 못받는 보상에서 약간이라도 챙기니 그게 어디냐는 식으로 그들은 피해자 코스프레를 남발하고 있다.



진짜 '저축'으로 속아서 투자를 하고 정보가 부족해서 투자 원금을 날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동양증권'부도 자체를 모르고 있어야 맞지 않을까? 어떻게 투자할때는 바보였다면서 동양증권 망할 징조는 귀신같이 알아서 따지고 드는가, 심지어 아직 망하지도 않았다. 동양증권은 아직도 하락장이긴 하지만 상폐되지 않았고 금융감독원의 감사도 아직 진행중에 있다. 이런 정보는 평소에 뉴스라도 보고 적어도 그 어렵다는 뉴스 경제 용어는 척척 알아듣지 못하면 캐치할 수 없는 정보다. 과연 그들이 정말 '저축'으로 속아서 가입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거둘 수가 없다.


물론 동양증권 사태는 그룹 총수 일가의 부도덕하고 방만한 경영이 촉발시켰다. 그러나 투자 손실과 그들의 범법행위는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연결고리가 희박하다. 국가는 총수 일가를 배임으로 처벌할 권리가 있을 뿐 투자 손실이 그들의 행위에 의해 일어났다고 해서 투자 위험성까지 면책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총수는 총수대로 처벌하면 된다. 불완전 판매가 있었다면 '불완전 판매'한 사례만 골라서 처벌하면 그만이다. 그것에 편승해서 '나도 구제하라'는 식의 시위는 제발 좀 그만하자, 언제까지 진짜 피해자를 이용해 내세우며 동냥질을 할 참인가?


안되면 나랏님 탓을 하듯 하면 되는 일이 아니다.


키코때도, 저축은행 사태때도, 하우스 푸어때도 그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재벌이, 정부가 서민을 죽인다' 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서민은 정작 그 판에 낄 힘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집값이 떨어져도 집을 팔 생각을 못하는 사람들이다. 키코는 커녕 가게 임대료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서민이다. 예금자보호 5천만원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바로 당신들이 코스프레하고 있는 서민의 진짜 모습이다.


무거우면 집을 파시오.


하우스 푸어는 '집을 팔면' 된다. 9억 집이 6억이 되었고 9억 빚때문에 이자 감당하기 버겁다면 6억에 집을 팔아서 3억 빚을 갚아나가면 될 일이지 그걸 가지고 9억으로 다시 돌려놓으라며 정부에게 떼를 쓰는 사람들이 과연 약자이고 서민이며 '푸어'일까? 그리고 그들이 정말 정부를 탓할 만큼 어리석었을까? 진짜 어리석고 묵묵하게 정부에게 당하는 사람들은 정부에게 개길 줄조차 모른 채 지금도 묵묵히 세금을 뜯겨가며 노예처럼 살고 있다. 당신들의 서민 운운 코스프레짓하며 한푼이라도 더 챙기려 떼를 쓰는 모습이 역겨운 이유다.



키코, 하우스푸어, 저축은행, 동양증권 사태 모두

뉴스에 나오고 목소리를 내는 자들 중에 진짜 서민은 없다.


다 큰 어른들이면 이제 떼를 그만 쓰고 

자신의 투자 실패를 책임지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posted by RushAm 2013. 6. 25. 16:55

앞서 인터넷 그리고 인간 마지막 편에서는 젊은 극우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린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원인 분석에 치중하고 사회 베이스에 대한 문제 제기를 중점적으로 이끌어내다보니 독자분들이 요즘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이번 글은 어떤 연재글도 아닌 단편으로 일베로 대표되는 젊은 극우들이 왜 그렇게 종북을 외치고 북한을 적대시하는 극우들과 코드를 나누게 되었는지 그들을 움직이게 만든 힘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는지 짤막하게 짚어보고 넘어가보도록 해보죠.



꿀알바



젊은이들은 시작부터 너무 뒤쳐져있습니다. 이 세상은 스타트지점을 저 먼 뒤로 더 밀어내기만 할 뿐 조금이라도 보편적인 스타트지점 앞당기기 정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TV 광고에서 나오는 알바 정보 사이트 광고 타이틀이 '꿀알바'라는 타이틀이 있을 만큼 아르바이트는 이제 더 이상 젊은 시절에 모으는 배낭여행 자금의 목적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생계 그 자체를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띄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말 재미있고 경험이 될 수 있는 아르바이트보다는 몸이 힘들건 뭐하건 그저 시급이 100원이라도 더 많이 주는 곳만을 찾아 혈안이 되어있는 것이죠. 아르바이트 수요는 한정되어있는데 취업 포기자들을 비롯한 아르바이트로 먹고 사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는 공급 팽창이 멎지 않고 있으니 아르바이트 시급은 오를 리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최악의 악순환에 놓여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들을 고용하는 고용주들의 태도는 꽤나 차갑습니다. 아르바이트 생들에게 '젊을때 힘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주자'는 선배 세대의 자비를 기대하기 어려움은 물론이고 오히려 어떻게하면 자신들도 자영업자로서 힘드니까 아르바이트 비용을 더 깎고 더 오래 더 알찌게 부려먹을 까를 고민합니다. 분명 젊은이들에 비해서는 절대 가난하지 않고 분명 아르바이트 비용을 더 준다고 해도 영향이 거의 없을 대기업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지요. 그들은 최저임금을 준수했다는 미명 하에 어떻게든 젊은이들에게 돈이 가지 않도록 옭아맵니다.



그러다보니 젊은이들은 말라버린 강줄기를 보듯 돈줄이 되는 곳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그렇게 거마대학생과 인터넷 댓글에 무수히 달려있는 재택근무 홍보 알바들이 줄을 잇게 되죠.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사실 지금같은 상황 바로 직전에 있었던 이 두 가지 현상은 지금의 극우들이 어떻게 젊은이들을 이용해먹고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거든요.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거마대학생의 다단계방식과 인터넷 댓글로 퍼뜨리는 허위정보로 인한 재택알바를 합쳐놓은 것이 지금의 극우들이 취하고 있는 젊은 극우 만들기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의 결말은 결국 댓글알바를 고용하고 고용된 사람이 다시 하청고용하는 극악의 갑을관계구조였다는 것이 드러났고요. 그들은 그런 댓글을 달기 위해 극우들의 정치사상을 반드시 숙지해야 합니다. 마치 취업과 인턴쉽에 합격하기 위해 토익을 배우는데 익숙해져있던 그들이 언제나처럼 그래왔듯이 살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그렇게 배우고 댓글을 달고 많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새로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또 돈을 받아왔던 것입니다. 극우는 그렇게 목마른 자들에게 냉수 한잔을 주듯 아무도 열지 않았던 꼰대들의 지갑 중 유일하게 극우만이 젊은이들에게 돈줄을 열어주었고 꿀알바라는 이름 하에 젊은이들을 고용했으며 젊은이들은 목말라 죽어가는 자신에게 얼음물 한 잔을 제공한 극우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탓이 아냐!




극우의 사상은 매우 간단합니다. 변희재가 말하는 것을 잘 들어보면 그 속에 생각보다 쉬운 답이 있거든요. 결국 극우의 생각은 대한민국 헌법이 이북 5도를 우리나라 영토로 규정하고 있고 그 곳에 새로운 정부랍시고 또아리를 틀고 있는 3대 세습중인 김정은 일가는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헌법에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원래 우리 것이여야 했던 것을 빼앗은 그들은 나쁜새끼들이며 당연히 터부시해야 마땅하다는 거죠. 



즉 통일 자체에 대한 열망은 오히려 극우들이 더 많이 갖고 있습니다. 통일의 방식이 원래 우리 땅이었기 때문에라는 명분이 분명히 서 있다는 점이 약간의 차별성을 두고 있는 것이죠.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원래 한반도 전체였는데 3대 세습중인 김정은 일가가 불법 점유하며 대한민국 정부에 반란을 일으켰고 이것에 6.25라는 내전으로 발전했으며 미국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이 반란은 휴전으로 마무리되어 지금까지 대치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한국전쟁 내용에 대한 정리입니다.


이 코드는 단순하게 말하면


'우리 것을 빼앗은 새끼들이 나쁜거다'

'그건 원래 우리 거였다' 

'그것만 있으면 우린 이러고 살지 않는다' 


등의 키워드로 함축됩니다. 물론 이 내용들은 익히 들어보신 대로 매우 파시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농후합니다. 결국 저기에 반드시 '북한'만 대입을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저 본질적 사상에서 북한이 빠진 상태에서 사회에 대한 염세주의를 바탕으로 재구성되게 되면 문제가 복잡해지거든요.





우리 것을 빼앗은 새끼들이 나쁜거다... 결국 일베에서 지금 가장 핫한 이슈가 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베타적 여론 형성도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원래는 남성들이 사회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성들이 사회적 권리를 주장하며 사회의 절반을 치고 나왔다 근데 아무리 객관적으로 봐도 그여자들은 직장에서 일도 안하고 수다만 떨며 남자 등처먹고 칼퇴근만 하는데데 생리휴가는 꼭 월요일 금요일에만 붙어서 생기고... 등등등 뭔가 모르게 원래 우리가 누렸어야 할 것들을 빼앗고 들어오는 모양새거든요. 당연히 그들은 나쁜놈들이고 당연히 우리 것이었기 때문에 되찾는 것이 응당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성들의 모든 행동을 혐오하며 그들이 사회활동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도록 하는 여론을 지속적으로 형성합니다. 빼앗긴 우리 것을 되찾기 위해서요. 



외국인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저들이 들어와서 취업난이 심각해졌고 절대 일자리 갯수가 줄어들었다 그건 원래 우리 민족이 일군 경제 바탕위에 우리 민족만이 자연스럽게 세습받고 누려야 할 가치인데 이 나라를 세우는 데 한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은 외국인 새끼들이 와서 원래 우리 것에 지나지 않았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취직이 되지 못하고 이러고 있는 것이다. 라는 불만대입과 함께 자연스럽게 다문화 정책 반대 여론이 생기게 됩니다. 이 역시 그들이 와서 우리 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한다는 식의 '팩트'를 제시하며 파이를 키워나가게 되죠.



원래 내 것이었는데 ...



종북 문제야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친일파 DNA


일본의 극우와 우리나라의 극우가 많이 비교되는 분석을 가끔 보게 됩니다. 아마 하는 짓이 똑같아서 그렇겠지요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키워드가 일치합니다. 북한에 대한 타도적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탄압도 마찬가지거든요. 여성에 대한 혐오는 약간의 온도차가 있지만 그건 아무래도 사회적인 여성 지위 문제와 민족적 특성에 기인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본 극우들이 주장하는 키워드들은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을까요? 일본 역시 젊은 극우들을 키워내고 있고 이 극우들을 키워내는 밑바탕에는 젊은이들의 스타트지점이 기성세대들과 심각한 격차를 드러낸다는 점에 있습니다. 일본의 꼰대들은 그나마 한국의 꼰대들보다는 조금 낫지만 여전히 젊은이들을 이 나라의 미래로 챙겨주기보다는 그저 캐시카우로밖에 보지 않는 저자세를 취한다는 점도 한국 사회의 현실과 무섭도록 닮아있죠.



일본인들의 주적은 '재일 한국인'입니다. 그리고 혐한류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에 대한 베타적 태도에 기인하죠. 그들은 극우에 한정에서는 우리나라를 북한과 거의 동급으로 혐오합니다. 이런 배경이 어떻게 일본 젊은이들에게 먹혔는지 살펴보면 재미있는데요. 결국 그들 역시 이 나라의 극우들처럼 '원래 우리 것' 이었고 '그것을 빼앗은 놈들은 나쁜 놈들'이며 '그것만 있으면 우린 이러고 살지 않는다'라는 동일한 베이스를 깔고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 사회에서 자이니치는 우리나라에서의 종북 빨갱이나 다를바가 없는 취급을 받는다


그들에게 있어 한반도는 원래 '지들 것'이었습니다. 왜냐 '식민지'였고 100년 전만 해도 일본 영토였다는거죠. 그런데 우리나라가 '반란'을 일으켜서 '불법 점거'를 하고 있는거고 말이죠. 그뿐만 아니라 그 당시 넘어왔던 재일한국인들은 어땠냐 일본 굴지의 광고회사 덴쯔, 일본 제과업계의 슈퍼갑 '롯데'의 신격호, 일본 최고의 돈줄이자 지금은 이동통신업계까지 씹어먹고 있는 손정의까지 일본 산업 핵심 곳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어지간히 잘 한다 싶은 스포스 스타들은 얼마 못가 재일교포라는 커밍아웃으로 일본 국민들의 뒷통수를 후려갈기기 일쑤였던 것입니다. 원래 일본인들이 경영했어야 할 기업이었고 일본인이었어야 할 스포츠 스타 자리를 그들이 빼앗아서 지금 일본의 젊은이들이 패배자로 살 수 밖에 없다라는 것이 일본 극우들의 젊은 층 선동 방식이죠.


일본 관광객들은 우리나라를 예전 일본의 영토였다는 의미에서 방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국내선 항공료보다 더 저렴하게 한일 노선이 펼쳐져 있다. 말 그대로 공기수송에 지나지 않는 아키타 노선같은 곳들도 꾸준히 운항하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원래 '지들 영토'였다는 논리이므로 국내선 운항하듯 의무적으로 운항해야 한다는 논리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원래 지들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게 그들 입장에서는 이상할 게 없을 독도


그냥 닮은 것이 아니라 뼛속까지 닮아있군요. 원래 우리 것이었으니 그곳에 불법으로 정부를 세우고 점거하고 있는 새끼들은 나쁜 새끼들이며 그것만 있으면 우린 이러고 살지 않는다는 논리를 현 사회에 공유하고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에게 이를 이용하여 다른 쪽에 책임을 두고 그들을 공격하라고 시키는 형태까지 모든 것이 닮아있습니다. 이건 마치 극우의 본질적 바탕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들의 논리 그대로라면 일본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지 않으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우린 원래 우리 땅이었던 북한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을 정당화할수 있다면 일본 역시 독도는 고사하고 한반도 전체가 원래 지들 땅이었으니 당연히 지들 거라는 주장을 해도 반박할 거리가 없어지게 되겠죠? 


친일파의 후손들인 지금의 극우들은 자신들이 늙어가며 자신들의 사상을 이어줄 젊은이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이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그들의 사정과 극우 사상의 본질적 키워드를 절묘하게 배합하여 그들에게 먹였고 굶주린 젊은이들은 돈을 주면 뭐든 한다는 자세로 그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현실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이죠.


...





이러다가 나라 팔리겠습니다. 그려...

posted by RushAm 2013. 5. 9. 12:01

남양유업 전화 녹취록이 요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남양유업 영업팀장이 상당히 심한 수준의 욕설로 대리점 점주를 깔아뭉개는 대화내용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다음은 해당 사건에 대한 남양유업측의 사과문 전문입니다.


...


이 두 가지 자료를 두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은 저 '영업팀장'이라는 사람의 인성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미친놈임에는 확실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일을 저질렀을까요? 사람이 저 정도로 욕하면서 핏대올리고 협박하기도 상당히 쉬운 일은 아닐텐데 말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어떤 댓가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잃을 수 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었던지요. 사실 생각해보면 이 두 가지가 아닌 이상 사람이 그 정도로 정성껏(?) 욕설을 할 수 있을 리 없잖아요.


...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라고 합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해서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합리에 대한 풍자가 공감대를 얻으며 카타르시르를 주고 있다고 하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비호감 캐릭터로 꼽고 있는 '장규직'은 회사를 위해서 자신을 버리고 뭐든 회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는 캐릭터로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상사에게는 딸랑거리지만 부하직원들은 조금도 존중해주지 않는 전형적인 자기중심적 캐릭터, 이런 인물들은 실제로도 많은 미움을 사고 있는데요. 그런데...




사회에서는 그를 더 많은 연봉과 더 높은 지위로 대우해줍니다.


...


같은 드라마에서 나오는 무정한과는 다르게 왜 장규직은 상사에게만 충성하고 아랫사람을 깔아뭉개는 사람이 되었을지는 분명하죠?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처럼 이미 연봉과 더 높은 지위로 대우를 받기 위해서 사람들은 윗 사람들에게 충성합니다. 그것이 진심이든 진심이 아니든, 아랫사람들에게 어떤 욕을 먹든지 말이죠. 


그럼 이들은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여러분은 장규직과 무정한 중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그리고 어떤 사람처럼 안 될 자신이 있으신가요?




지금은 연재가 중단된 어떤 일간 만화에 나온 소재입니다.


신입사원때 도가 지나친 야근과 과도한 강제 음주 회식 등으로 상사에게 시달리던 신입사원이

10년 후 그 상사의 위치에 들어가니까 똑같은 방법으로 신입사원들을 대하고 있더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겐 고 을 로 운 가 될 고'

'내 겐 록 는 이 될 야'


...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여러분들은 이렇게 안 될 자신이 있나요?




의외로 답은 되게 간단합니다.

부하직원은 나한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잘 해줘봐야 뭐 하나 나한테 남는 게 없어요.

그러나 상사에게 잘 보이고 잘 해드리면 확실하게 내 수중에 남는 게 생깁니다. 


잘 해줬을 때 보답해주는 건 부하직원이 아니라 상사라는 겁니다. 이 사회는...


...


근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가 언제부터인가 '잘 해주는 것', '잘 대해주는 것'에 모두 댓가를 바라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아무 댓가도 바라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이야기는 애들 장난같은 얘기가 됐고

투표 때 이 나라를 위한 사람을 뽑는 사람은 내 집값을 올려줄 댓가를 바라고 뽑는 사람에게 바보취급을 당합니다.



돈과 인생을 구분짓지 못하고

인생을 돈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행동을 모두 재화가치와 맞바꾸는데에만 열심히인 사람들이 있는 한 


여러분들의 취업 후 삶은 괴롭기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살던 사람들은 결국 돈에 배신당하거든요.

허무맹랑한 소리같지만 지금 남양유업 영업팀장이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행동에 댓가를 바라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자들을 무시하며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에게만 아부했던 사람들은


미움받아도 자신이 돈만 많이 벌면 잃어버렸던 인생이 모두 만회될거라고 믿었겠지만

결국 이렇게 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원래대로 돌아오게 되어있어요.

사람은 원래 그런게 아니거든요.





특별기획 취업을 읽는 취업준비생분들이나 이미 취업을 하셨던 분들

당신의 모든 인생을 댓가성으로 만들지 마세요.


필요없는 사람들이겠죠. 돈도 안되고 도움도 안되요. 힘도 없죠.

부하직원, 하청업체 사원들 ...


필요할거에요. 당신의 승진과 연봉상승을 위해서

직장직속상사, 사장님, 갑회사 직원들...


근데 진짜 장담하는데요.

그렇게 돈을 열심히 모아도 돈으로 못사는게 분명 있어요. 진짜 

그건 되돌린다고 해도 되돌려지지도 않아요. 정말...


댓가를 바라기만 하고 살아온 인생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라고 해서

당신마저 그렇게 되지 마세요.



인간은 원래 안 그래요. 

아무리 사회가 인간적이지 않아도 

인간이 원래 안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사회가 사필귀정으로 회귀할수밖에 없어요.


남양유업 사태를 보시면 알잖아요.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그 팀장의 행동이 정당했다고 말하는 사람 

남양유업 사람 빼고는 거의 없잖아요.





알아요. 당신이 특별히 어마어마한 부귀영화를 누리려는게 아니라는거

단지 평범하게 살기에도 그런 인격포기를 요구하는 미친 인플레 사회가 되고 있다는거 알아요.


그래서 변해보자는 거에요.

인플레라는건 공급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거니까,

결국 이 나라에서 우리의 인격이 저렴한 취급을 받게 된 건 

인격을 팔아서라도 돈을 벌겠다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져서 그런거거든요.


우리가 도둑질을 하면서 돈을 벌고싶지 않다는 저항감이 있는것처럼

인생의 모든 것에 대가성을 바라는데에도 

남의 것을 아무런 대가성 없이 함부로 하는데에도

어느 정도의 저항심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진짜 댓가를 바래야 할 곳에는 확실한 댓가를 요구하셔야 해요

댓가를 바라지 말아야 할 곳에서는 인간으로 살 수 있어야 하고요.


그뿐이에요. 

물론 안하셔도 되요


세상은 다들 지금 그 반대로 살고 있잖아요.




단지 조금만 변하기를 바래요

그리고 변하지 마세요.







특별기획 '취업'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3. 5. 4. 23:12

H사는 참 독특한 회사입니다.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계열사가 정말 거의 없다시피 한 대기업이다보니 규모에서만큼은 L사에 결코 뒤지지 않음에도 존재감이 L사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H사는 하나의 그룹에서 각 사업부별로 갈기갈기 찢어진 다음에도 그 각 계열사가 초반의 어려움을 딛고 각자의 분야에서 또다시 굴지의 대기업으로 모두 성장하고 있는 희안한 기업이기도 하죠. 그래서일까요? H사는 소비자와 직접 맞닿아있는 자동차그룹의 완성차계열을 제외하고는 대기업치고 굵직한 스캔들이 적은 축에 속합니다.


그렇게 찢어진 세 개의 그룹은 각자 분야에서 시가총액 상위권을 휩쓸고 있는데요. 이들이 독립해서 모두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증거 중 하나는 대기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금산분리법 속 '금융' 계열사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금융 계열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S사의 보험사와 마찬가지로 원활한 자금운용과 슈퍼갑으로서 대규모 투자자금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지위적 우위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침인데요. 공교롭게도 세 그룹 모두 어느 정도 무르익을 시기에 모두 '증권'사 혹은 '카드, 캐피탈' 을 갖추면서 대기업으로서 자금을 이용한 전형적인 대한민국 대기업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이런 특이한 기업 형태가 굉장히 생소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모르고 있던 부분이라면 특히 주의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죠.


본사 계열





자동차 그룹 계열 (이상 2사)



중공업 그룹 계열


H사는 노사분규에 있어서도 제법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H사 자동차 계열의 경우 매번 노사 협상 그 자체가 뉴스화가 되고 있으며 이른바 '귀족노조'라 일컬어질 만큼 노사 협상의 최정상에 서 있습니다. 그만큼 노사 협상에 있어 사측을 압도할 수 있을 만큼 유연한 노사정책을 쓰고 있다는 것이죠. H사는 단순히 노사 협상에서의 유연함에서만 그치기보다 오히려 새로운 근로자 복지 정책이 정부 정책으로 발표되면 가장 먼저 앞장서서 이를 도입하고 사업장에 적용시켜 나가는 데 매우 솔선수범하는 기업 이미지를 보이고 있죠.




철저하게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것을 배제하는 대신 H사는 기업간의 B2B와 정부지원사업 참여에 열을 올립니다. 주력사업은 완성차 분야이지만 자동차그룹의 경우 철강,건설,부품,금융 그리고 중공업그룹의 조선, 정유, 종합상사 그리고 좀 햇갈리게도 본사 종가라고 할 수 있는 H그룹의 경우 북한 관련 관광 개발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습니다. 완성차 계열은 반도체 수출과 더불어 우리나라 수출의 하나의 기준이자 척도가 되고 있는 계열이며 중공업의 경우 최근 전국에 깔리고 있는 철도, 고속도로 광역교통망에서 4대강 사업 전반까지 우리나라 지방 고용의 대부분을 소화하고 있는 실정이며, H그룹의 상선과 아산 계열은 북한과의 화애 교류 무드를 만드는 등 오히려 S사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이 나라는 더 냉정히 말하자면 H사 공화국이 맞지 않나 싶을 만큼 H사는 3개 그룹과 그 계열사 모두 이 나라 깊숙한 곳에 뿌리를 박아놓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민자고속도로를 다 점하고 있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전동차를 독점 생산중


그래서 H사는 내수에 관련된 사업부가 거의 없음에도 국민 여론에 대단히 민감합니다. 완성차사업부는 어쩔 수 없이 내수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사업 구조를 가지고 있어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만, 그 외의 사업부의 기업 이미지 광고는 매우 노골적으로 이 나라는 'H사'없으면 망합니다. 우리는 좋은 기업입니다. 라는 점을 대놓고 말하기도 합니다. 내수와 맞닿지 않음에도 이렇게 이미지 광고에 돈을 많이 쓰는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죠.





S사가 꿈꾸는 것이 S공화국이라고 일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S가 제국주의적인 기업국가를 꿈꾸고 있다면 H사는 노사관계의 특수성인지 노조의 단결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기업 그 자체의 도시국가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S사의 그것과 다른 점은 이 유사국가조직은 철저하게 기업이 의도적으로 조직된 것이 아닌 다수의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네트워크라는 사실인데요. H사의 창업주 J씨때부터 이어진 노사관계의 원만함이 결부되면서 그들의 조직력은 매우 단단하고 친화적이라는 것이 업계 내외의 정설입니다.


국내 등록된 축구팀 중 H사내 조직된 축구 클럽이 절반 이상에 육박한다.


이렇듯 국가적으로도 매우 큰 도움이 되고 있고 노사 관계도 원만하며 타 대기업에 비해 노사문제라든지 근로자들의 복지, 근로조건 등에 상대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H사는 그 자체만으로 타에 모범이 될 만한 기업일 것입니다. 그러나 H사가 왜 이렇게 재벌로서 사회 환원과 국가 정책에 솔선수범하여 법을 준수하는 모습을 애써 강조하고 대외적으로 좋은 기업의 이미지를 쌓기 위해 노력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따를 수 밖에 없는데요. S사는 자신만의 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국가와 대립각을 세우고 국가의 모든 부분을 무시하며 자신들이 국가 위에 있다는 치외법권식 기업문화를 추구해서 빈축을 샀다면 오히려 H사는 국가의 모든 부분을 너무 존중했기 때문에 국가가 직 간접적으로 H사에 대한 채무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악용한다는 것이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대한민국 정부는 한미 FTA나 중국과의 무역교류에 있어서도 H사의 자동차사업부의 해외 판매 가능 여부를 최우선으로 두고 협상에 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언제나 FTA 타결은 자동차 관세 철폐가 최고의 화두이며 이를 위해 우리나라의 전통 중소기업들의 제조업, 농산물 등의 관세를 희생시켜 우리나라의 식량 주권을 지키고 있는 농부들의 가슴을 피멍투성이로 만드는데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정부는 언제나 H사의 자동차 사업부의 수출이 잘 이루어지면 결과적으로 얼마만큼 국민들에게 낙수 효과로서 경제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역설하곤 하지만 H사는 그러한 국민의 희생을 내수 호구 정책으로 되갚아 오면서 H사가 진정 국가를 위한 기업이 될 생각이 있는지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죠. 더 큰 문제는 H사에 대한 정부가 가진 일종의 부채의식과 경제 의존도가 너무 크다보니 H사의 이익이 결과적으로 경상수지 수치에 크게 영향을 끼쳐버리게 되는, 다시말해 자신들의 정권 경제 성적표를 명목상으로나마 흑자로 돌리기 위해 국민의 권익을 빼앗아 특정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꼴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완성차 사업부 뿐만이 아닙니다. 물론 H사 출신의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영향도 있다고는 합니다만 이 나라가 진행한 4대강 사업과 정권안에 벌어진 수많은 민자 도로, 철도, 항만, 제철 사업에서 H 중공업 그룹은 가장 많은 수혜를 받으며 거의 대부분의 사업을 여론화시키지 않은 채로 반 독점적 지위를 행사할 만큼의 이득을 얻기도 했으며 이전 정권의 대북 사업에서는 H 본사 그룹을 통한 금강산 관광 등 다른 기업의 공정경쟁이 가능한 자본주의 나라라는 사실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정부는 정권을 막론하고 H사에게 일감 몰아주기와 일방적 이익을 대변해주는 정책을 남발해오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H사의 업계 최고수준의 연봉과 복지 수준 때문에 H사 입사를 한번쯤은 고려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H사는 고용 자체도 적을 뿐더러 조직 자체에 있어서도 새로운 신입 사원이 조직의 요직에 오르기 매우 까다로운 편에 속합니다. 심지어는 아예 새로운 인원을 받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조직 문화를 대놓고 드러내기도 하는데요. 이런 문제는 바로 국내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H사 노조가 지금까지 자신들이 이룩해놓은 대우에 대한 '보상심리'가 지나치게 발현된 결과 자신들의 찾은 사내 노동 권리를 자신들만의 것으로 사유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인줄 알아요.jpg


물론 다른 회사 노조들에 비해 정말 많은 희생과 선구자적인 노력이 있었고 그 노력으로 인해 지금 노동 환경 개선의 선두주자적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만, 그로 인해 얻어진 것이 온전히 자신들만의 것이라고 믿고 그 권리를 전혀 피를 흘리지 않은 생판 남에게 넘기고 싶지 않다는 족벌적 세습과, 조직 내에서만 이득을 공유하려는 폐쇄적 조직 운용 등은 노조라 할지라도 그 권리가 더해지면 결국 대기업보다 더 한 수준의 이기적 조직 문화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만도 못한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만일 H사에 입사하여 온전히 녹아들기 위해서는 자기만 아는 이기적 조직 문화와 당연한 듯이 이 나라의 젖줄을 빨아먹고 성장해야만 하는 기업, 그리고 그러한 태도의 정부 정책을 지지하고 옹호해야 하는 이념적 숙제가 남게 될 것입니다. 만일 이 세 가지를 모두 동의한다고 할 지라도 쉬운 길은 아닐 테지요. H사 자체든 그 회사를 다니는 노조든지 간에 지금의 H사 그리고 H사에서 누리고 있는 국내 최고의 근무 환경은 모두 자신들이 스스로 이룩한 지분 100%의 보상받아야 마땅할 권리금이라 어기는 사람들 속에 당신은 철저한 이방인이자 그들이 이룩한 권리에 합승하려 하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뚫고 들어가기도 어렵고 들어가서도 살아남기 쉽지 않습니다. 대우가 좋은 곳은 누구나 노리고 있고 그 자리가 좋은 자리라면 있는 사람이 가능한 더 오래 앉아있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요. 이러한 조직에서 내가 아무리 잘 한다고 한들 업무 성과에 따른 승진이나 인사고과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과연 조직 내에서 그러한 행동이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내 능력을 인정하고 회사를 위해 나를 위로 올려주는 상사가 과연 그런 조직 내에 존재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그런 조직 환경에서 버텨낼 확율은 얼마나 될까요?



그들이 제시하는 고연봉은 어쩌면 이 나라에 저지르는 짓거리에 대한 면죄부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떡밥일지도 모릅니다.

...


건투를 빌겠습니다.



특별기획 '취업' - 기업 생태연구 보고서 : H사형 기업 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3. 4. 23. 06:19

원래는 마지막회로 '대행녀 그것이 궁금하다'를 하기 위해 다 써놓고 읽어보니 이건 시기상 아청법으로 인해 글을 올린 다음날부터 매일아침을 블랙빈테라피가 가능한 식사로 하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득이하게 봉인하고 대체 특집을 내걸게 됨을 양해바랍니다. 사실상의 인터넷 그리고 인간 편의 마지막회가 될 것 같습니다.




이전 연재에서 일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보았습니다만, 사실 일베 내에서의 현상을 분석하느라 가장 중요한 것을 빼먹었더군요. 그들의 선택이 결국 일베의 극우성향으로 치우칠수밖에 없는지 왜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의 논리를 막연하게 맹신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보니 아마 조금은 반쪽짜리 글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왕 마지막회답게 화끈하게 일베와 그들을 이용해먹고 있는 우리나라의 암적인 극우세력들의 속셈을 신랄하게 뒤집어까발려드려볼까 합니다. 제가 얼마만큼 몸을 사릴지는 모르겠지만 가급적이면 제 이전 글과는 다르게 사전 설명 없이 단답형으로 밀어붙일 생각입니다. 이미 서문이 길어져서 신빙성이 떨어져 보이시겠지만 일단 들어보시죠.


...


왜 젊은이들은 겪어보지도 못한 역사에 편향적 시각을 갖게 되는가?


돈이 없어서입니다.


먹고 살기 편하면 역사에 편향적 시각을 갖게 되는 게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어지니까요. 따라서 지금 극우화되고 있는 정말 많은 젊은이들은 흔히 말하는 취업이 잘 안되어서 백수로 살아가는 청년실업자들이나 돈의 전쟁이 되어버린 학원교육에서 자금부족으로 낙오된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학력에 대한 열등감과 우월감, 근거 없는 연봉 경쟁 등이 화제가 되는 분위기, 물론 대부분은 거짓(컨셉)이다


왜 이들은 우익을 택했을까요? 자신들이 겪어보지도 않은 역사를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반납한 채 극우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앵무새가 되기를 자처하는 것일까요? 1차적으로 학원교육 정책의 실패입니다. 자본이 이기는 학원교육사회에서 이미 동떨어지고 낙오된 그들의 좌절감은 고스란히 지금의 학원 교육에 대한 불신과 경멸의 화살로 날아들게 되는데요. 그런데 그들은 딱히 배운 게 없다보니 학원 교육에 피해자로서 뭐라고 반격할 만한 껀수가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익은 그들에게 한 마디를 던지죠.


'대한민국 교육은 썩었고 잘못된 것을 가르치고 있어!'


대의적으로 보면 그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근거가 문제죠. 결국 국사 교과서가 문제라는 논리를 대의명제를 통해 주장하는 것 뿐인데요. 이 불쌍한 학생들은 여기에 넘어갑니다 암튼 '대한민국 교육은 잘못되었다'는 대의명제에 '국사'도 포함된다는 지식을 주입받은 그들에게 있어 그들의 피해의식을 사회에 발현시킬 유일한 무기를 쥐어준 셈이 되기 때문이죠. 그들은 그들을 자본이라는 불공정한 방식으로 낙오시킨 학원교육을 비판할 무기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게 대의명제가 같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국사교과서'를 쥐어주는 것이 또 우익이거든요.


대한민국 교육은 잘못되었다. 

= 따라서 대한민국 국사교과서도 잘못되었다

= 선생들도 (전교조) 잘못 가르치고 있다.


뭐 이런 식의 논리는 그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팩트'와 함께 곁들여서 보기에는 완벽해보이는 논리로 학생들에게 손쉽게 주입됩니다. 그들이 이렇게 쉽게 흡수하는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필요성'때문이겠죠. 사회에 대한 불만, 특히 학원교육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데, 본질적인 부분을 알 기회가 없으니 반격하지 못하고 끙끙대다가 어쨌든 한국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명제로 공격할 명분이 생기니 그것을 이용해서 사회에 집중 포화를 가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당한 깊은 빡침을 모두 에너지화해서 말이죠.



...


자 학생은 그렇다 치고 젊은이들은 뭘까요 대학물까지 먹어서 머리 좀 굵은 사람들이 왜 극우들의 주장을 되뇌이는 오토리버스 카세트테이프화 되는 걸까요. 간단합니다. 이들도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용도가 아닙니다. 이들은 이미 성인이고 마땅히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죠.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자를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그들을 이미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있고 그들로 하여금 영혼을 팔아서라도 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 스스로를 옥죄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 놓인 젊은이들은 극우 세력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죠.



이들에게 우익들이 바라는 것은 보다 본격적입니다. 이들은 참정권이 있고 경제권이 있죠. 따라서 그들이 원하는 기업, 정치가, 세력에게 본격적으로 개미레벨의 힘을 몰아주는 것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지시하는 것은 그쪽에서 말하는 '산업화'나 '민주화'처럼 단순히 특정 커뮤니티에 간접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그 주변까지를 극우화시키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마치 다단계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들은 각종 행사에 자연스럽게 동원되며 트위터 등지에서 봇이 아닌 실제 활동하는 사람들로 여론을 형성합니다. 이들이 여론을 형성하는 결정적 무기는 취업의 어려움, 집값 상승, 여자들에 대한 베타적 태도 등이 있는데요. 이 세 가지는 젊은 층 특히 정치엔 별 관심이 없지만, 현실적으로 위의 세 가지에 대한 어려움과 불만을 내재하고 있는 계층들에게 적극적으로 파고듭니다. 그리고 극우는 여기에 소스를 하나 던지죠


'여성부 만든 정부가 누구더라?'

'집값 어느 정부때 제일 많이 올랐게?'

'늬들이 취업을 못하는 이유가 외국인 노동자 때문인건 알고 있니?'



취업난에 대한 원인을 그들 스스로에게 한정시키기 않고 누군가에게 탓을 해줄 수 있는 매개체를 쥐어줌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논란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략인것이죠. 많은 커뮤니티에서 직장 내 무개념 여성의 작태, 외국인 노동자들의 범죄 (주로 오웬춘이 이용됨) 등의 자료를 활용하며 네오파시즘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데요. 현 세태를 직시하는 시각보다는 어느 한 쪽 세력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극우들이 이렇게 해서 무슨 이득이 있냐고요? 물론 이득이 있죠. 젊은층들은 지금까지의 선거에서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피해를 본 것에 대한 반발심리를 표출해왔습니다. 그래서 야당 지지율이 항상 높게 점쳐지고 있었죠. 왜냐하면 자신들이 지금 이렇게 고생하고 힘들게 사는 것은 정론적으로 보면 분명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나 주택수급대책 들이 모두 실패하고 경기부양책마저 제대로 일궈내지 못했으니까 벌어진 일인데, 문제는 지금 여당이 계속 정권을 잡거나 도중에 레임덕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이같은 여론을 잠재워야 하거든요? 그래서 지금의 사태를 정부 탓이 아닌 외부의 세력에 의한 문제라는 점을 여론화시켜 젊은층에게 설파시키는 것입니다. 젊은층이 취업을 못하게 된 이유나 결혼이 힘들어진 이유, 집세가 비싼 이유는 모두 정부 탓임에 분명함에도 자신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 이같은 작태를 벌이는 것이죠.



만일 이들이 가난하지 않았다면, 이들이 별 무리없이 공공임대주택 제도의 혜택을 볼 수 있었다면, 그리고 이같은 분위기가 지속되어 사회적 안정이 이루어졌다면 과연 이같은 극우들의 공작이 먹히기나 했을까요? 정부의 정책 실패는 자연스럽게 여론의 반발을 가져왔을테지요. 지금 정부는 그런 자연스러운 순기능을 막아주는 이들이 너무나도 절실히 필요할겁니다. 극우 성향을 이용해서라도, 네오 파시즘을 일으켜서라도, 할 수만 있다면 구닥다리 반공이라도 총동원해서라도 말이에요. 그들도 그만큼 시대의 변화에 한계까지 맞서고 있다는 겁니다.


...


자 그럼 이쯤 해서 극우들이 이렇게 판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극우가 아닌 자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왜 이들이 극우가 아닌 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극우의 말만 듣는지, 그리고 극우는 왜 그리도 잘 증식하고 충성도가 높아지기만 하는지도 말이죠. 간단합니다. 극우는 돈을 풀고 있고 극우가 아닌 자들은 돈을 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흔히 지금 사회를 양극화 사회라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과 잘 사는 사람의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만 있고 그 중간층이 벌어가야 할 자금을 소수의 상류층이 싹쓸이한 결과가 이렇다는 거죠. 그런데 지난 부동산 버블때 돈을 좀 쥐고 있던 사람들은 죄다 부동산 버블에 크고 작은 투자를 해서 적어도 지금은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큼의 자산을 뿔려 놓은 상태입니다. 한마디로 40대 이상은 지금 그닥 돈 걱정을 하는 계층이 많지 않다는 거에요. 대부분 직장도 안정적이고, 직위도 높고 월급도 많습니다. 최근에는 정년까지 연장해준데다, 퇴직금도 챙겨받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어요. 그들은 그 자금으로 아파트를 쥐고 있고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아무것도 쥔 게 없습니다. 그들이 아파트를 쥐고 자영업에 뛰어드는 동안 아파트값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창업시장은 레드오션으로 전락했으며 정부는 친기업주의 성향으로 기업을 키웠지만 정작 기업은 그 돈으로 돈잔치만을 할 뿐 채용을 늘리겠다는 약속이나 성과만큼의 임금인상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은 늘어나고 있고 비정규직과 정규직과의 격차는 또 벌어지기만 합니다.


한마디로 젊은이들이 돈을 쥘 수가 없는 사회구조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이 만든 물건이나 젊은이들의 재능을 구매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성세대끼리만 서로 신뢰하며 돈을 주고받을 뿐입니다. 젊은이들의 재능이나 물건을 구입하는 쪽은 같은 젊은이들이지만 그들 사이에서 도는 돈은 전체 경제의 불과 10%안팎이니 재능있는 사람은 넘치는데 그들에게 돈을 지불해줄 사람은 없는 현상만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기성세대들은 그들의 재능이 극도로 헐값이 될 때까지만 기다릴 뿐 누구 하나 나서서 그들이 쥔 자본 패권의 길을 젊은이들에게 개방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번 돈의 소중함만을 생각하고 그 소중함을 공감해줄 같은 기성세대들하고만 거래할 뿐이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는 기업들이 과연 젊은이들의 신규 채용을 늘릴까요? 마치 자신들이 벼슬이라도 얻은 양 젊은이들을 압박면접이라는 이름으로 조롱하는 것으로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며 의기양양해하는 재미로 세상을 사는 딱한 사람들만 있을 뿐 어느 누구도 그 재능에 제대로 돈을 지불하기 위한 길을 터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와중에 슬쩍 자본의 통로를 젊은이들에게 터준 쪽이 바로 극우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자본에 목말라하는 젊은이들이 목마름에 무르익을때까지 기다려 왔고, 이제서야 그 시기가 왔다고 판단했던 거죠. 젊은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헐값에 내던지고 있고 아무도 그들의 재능이 값어치있다고 칭찬하지 않으니 인정받을 수 있다면 취업할 수 있다면 토익이든 뭐든 사납게 달려들 의지가 충만한 그들은 극우에게 있어 더 할 나위 없는 먹잇감입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돈과 기회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속삭입니다.


'거 면 도 고 네 회 도 일 수 어'


우왕~ 친일한 사람들은 다 잘됐네?


'미 이 를 고 는 저 을 구!'



젊은이들은 마치 토익에 달려들듯 극우가 던지는 사상에 매달립니다. 빈곤한 그들에게 유일하게 돈의 길을 터준 자들의 말을 안 들을 리가 없는거죠. 사막 한가운데 목마른 자에게 물을 건넨 사람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을까요? 결국 지금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극우화되고 있는 것은 극우들의 추악함에도 그 문제가 있지만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나라가 어떻게 병신이 되어가든 내 집값만 떨어지지 않고 내 자영업에 투자한 권리금만 회수하면 장땡이며 젊은이들은 그저 게임이나 야동만 보는 잉여새끼들이고 그들이 만드는 재능은 가치없고 가능성도 없는 쓰래기 취급을 했던 기성세대 전체에게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젊은이가 돈을 만지려면 극우외엔 방법없다


일찌기 일본의 극우는 이렇게 젊은이들을 극도의 가난에 몰아넣은 다음 극우쪽에서만 돈을 풀어 젊은이들이 극우로 가는 것만이 유일하게 돈을 만질 수 있는 길이라는 상식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네토우요라 불리는 젊은이들은 그 젊은 헐기로 극우 사상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고 그에 참가하지 않은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가난을 당연시화하기에 이릅니다. 아무런 도전도 취업도 경제활동조차도 의미가 없다는 자포자기 세대가 이미 고착화되어 일본은 온갖 경제 부흥책에도 이전과 같은 에너지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극우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꾸준히 설파하며 정권창출을 통해 나라 전체를 좀먹으며 배때기에 마블링을 치는데 여념이 없죠. 당연히 이런 나라가 망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젊은이들의 에너지가 없는 나라가 안 망하는게 이상하죠.



우리나라는 이미 일본이 보여준 위와 같은 국가 경제 기반 붕괴의 초입에 들어가려 하고 있습니다. 극우들의 사상은 결국 니가 뭘 하든 극우만 찬양해주면 된다는 식이고 그 에너지는 고스란히 극우의 정당화 즉, 지금 우리나라에서 만연하고 있는 재벌들의 경제독식, 정치가들의 매국노 행위 등이 젊은이들에 의해 저지될 여지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라의 에너지가 특정 몇몇에 의해 쪽쪽 빨리고 빈 껍데기만 남은 나라에 살게 될 우리 후손들은 어떤 에너지를 기반으로 이 나라에서 꿈을 펼쳐야 하는 것인가요? 


...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할까요?


젊은이들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게 아닙니다.

갈 수 있는 길을 당신들이 다 막았을 뿐...


그리고 잘못된 길로 갈 수 밖에 없도록 몰아세웠을 뿐

아무도 그 길로 가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말로는 스스로의 행동을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떠들던 당신들은 

단 한번도 이 나라를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당신들이 이 말에 코웃음을 치는 한 영원히...


...



공화국 연구소 - 인터넷 그리고 인간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3. 4. 11. 23:53

어느 정도 문고리 좀 식었죠? 상대가 소녀시대이다보니 쩝...


가능하면 아티스트라고 불러주셨으면 좋겠어요. / 하지만 저는 저를 아이돌이나 아티스트 어느 한 쪽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 아이돌이랑 아티스트는 다르다고 생각하니까


소녀시대가 일본 방송에서 자신들을 이제 아이돌이 아닌 아티스트로 바라바주길 원한다는 발언을 해서 한동안 화제를 낳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발언 취지는 지금 네티즌들이 오해하고 있는 그런 투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소녀시대를 비난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 우리가 아티스트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개념 정립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소식을 맞닥뜨렸을 때에 일어나는 파급력이 불과 10년 전 문희준의 발언 당시와 비교해볼때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에 경악했기 때문에 쓰게 된 글입니다.


자 우선 아티스트란 무엇일까요?


소녀시대 논란에 즈음하여 소녀시대가 아티스트다, 혹은 아티스트가 아니다라는 논쟁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키워드를 몇 가지 살펴보았습니다. 아티스트는 'art+ist' 로 만들어지는 단어인데, 한마디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대명제가 갈리는 것은 여기에서 말하는 '아트'가 과연 '창작'이나 '기술'이냐에 대한 부분으로 소녀시대 아티스트론의 찬반을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핵심 논점이었는데요.


창작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예술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하며 작곡가, 화가, 안무가 등 어떤 작품을 무에서 유로 창조하는 것을 말합니다. '표현'은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안무나 노래, 기타 다른 수단을 통해 표현하는 것을 말하죠. 소녀시대 아티스트론자들은 '피아니스트'나 '김연아', '강수진'의 예를 들며 표현도 충분히 예술의 범위에 들어가기때문에 단순히 만들어진 것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아티스트라 불리울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반면 창작론자들은 보다 원초적으로 아티스트들이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 '감각'이 표현이든 창작이든 녹아있어야 한다는 점을 내세웁니다. 따라서 만들어진 것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재현하기에만 급급한 소녀시대가 아티스트라 불리기 어렵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데요.


양비론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려 죄송합니다만, 

어느 쪽도 아티스트 논쟁에 별로 접근한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티스트는 단지 창작이나 표현 어느 한 쪽만 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며 그 것이 두 가지 수단으로 표현되지만 결국 전해지는 것은 한 가지로 취합되는 것이 예술이니까요. 설명 웃기지 않습니까? 그만큼 이 단어가 이상한 단어라는 이야기입니다. 아티스트는 직업이 아니에요. 그냥 대명제이고 칭찬의 단어일 뿐인거지요. 여러분이 제가 말한 아티스트 설명에서 들은 난잡함이 이 단어에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뭐 하나 정의되지 않는, 또한 그것이 예술이라고 말하는 앞뒤 안맞는 프랑스인의 감성이 묻어나있죠.


우선 김연아는 아티스트가 아닙니다. 강수진도 직업이 '아티스트'가 아니에요. 피아니스트도 직업은 '피아니스트'이지 그들을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김연아 해외 중계를 잘 들어보면 이런 말이 가끔 들리긴 합니다 '오오~ 정말 예술적 (artistic)이네요', 강수진의 발레도 이런 찬사를 들은 적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나 첼리스트들 역시 '예술적'이라는 찬사를 들은 적이 많다는 것이죠.


이분은 연습이랑 실전이 똑같군요 발전이 없네


위에 예를 든 3개 직업군의 모든 사람들은 '창작'을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저런 찬사를 듣죠.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그들을 '아티스트'라고 공식적으로 지칭하는 걸 들은 적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예술의 경지에 오르다'는 찬사는 받았지만 그들을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고 지칭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냥 피겨 스케이터이며 발레이나이고 피아니스트와 첼리스트일 뿐입니다. 아티스트는 직업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주목할만한 부분은 예를 들은 사람들 모두 '스스로'를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라든지 '아티스트'라 불러달라는 식의 인터뷰를 하거나 공식석상에서 그와 같은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티스트라는 단어 자체의 무게감이 엄청나게 숭고하다거나 한 것 같지도 않은 것 같은데 말이죠. 아티스트라는 말은 오히려 프랑스처럼 구분없이 매사 모든 게 예술로 치완되는 사람들을 비웃기 위한 단어라는 설까지 있을 정도이니 자칭하는 것이 어법상 얼마나 어색한지 스스로 잘 아는 사람들의 손쉬운 대처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소녀시대가 스스로 작곡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안무를 하는 데에 있어 위키백과에서 나온 아티스트의 정의대로 어느 수준 이상의 숙련이 되어 있어 일본 아이돌들의 유치찬란한 안무와는 비교당하기 싫다는 취지로 말했을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과 아티스트랑은 크게 상관이 없으며 차라리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면 아티스트라는 표현은 자충수를 둔 감이 있는데요. 대중들이 아티스트에 대한 본질적 지식을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 정도로 반감을 갖게 된다는 것은 그 단어가 가진 시건방짐 여부와는 별로 관계가 없을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족을 달 시간이군요.


자 그럼 작곡가 유영진은 아티스트인가요? 아니요 '작곡가'입니다. 어느 수준을 넘어섰다고요 어휴 그럼 '아주 뛰어난 작곡가'인 거죠. 소녀시대는 아티스트인가요? 아니요 '댄스 보컬 그룹'입니다. 군무도 아주 칼같고 노래도 잘한다고요? 그럼 '아주 뛰어난 댄스 보컬 그룹'인 거죠. 


지금 제가 그들을 폄하하는 것 같으신가요?

아니요 오히려 제가 보기엔 그들이 그들 스스로 자신들을 '아티스트'라 불러달라고 하는 게

스스로를 폄하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데요.


왜 자신들이 기껏 '특정 분야'에서 '숙련되어서' 정점에 이른 것을 평가해주길 바라면서

표현 자체는 뭉뚱그려서 '예술하는 사람'으로 평범하게 마무리지으려 드는 건지 안타까워서 그렇습니다.


왜 꼭 그 분야 최고가 되면 '클레스 체인지'를 하고 싶어하는 걸까요?

성장해서 정상에 오른 그 분야를 지칭하는 것이 부끄러운걸까요? 딴따라라고 놀릴까봐?


소개합니다! 세계 최강 '여성 댄스 보컬 아이돌'그룹 스파이스 걸스입니다.


제가 박지성이나 김연아라면 말이죠.

저는 '스포츠맨' 입니다. 라고 소개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세계 최고의 구단에서 뛰는 축구 선수'입니다. 라던지

저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피겨 스케이터'입니다 라던지...있잖아요


...


자신이 있는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그 분야 자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자신들을 인정해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최고의 아이돌이 '나는 아이돌이라고 불리는게 싫다'라니...이게 무슨



posted by RushAm 2013. 4. 10. 23:49

아름다운 동업으로 대표되던 기업에서 분사 후 제 갈길을 가는 와중에도 별로 쳐지지 않고 굳건히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고 있는 L사에 대한 이미지는 S사에 대한 경쟁심리 때문인지 언제나 2인자의 이미지가 팽배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L사를 단지 회사의 규모나 S사에 비교할만한 대상 기업만으로 치부하기에는 L사가 가진 개성이 너무나도 많기에 구직을 준비하는 분들이 L사나 L사의 기업 마인드를 모방하는 기업에 입사하는 분들이 단순 이분법만으로 입사를 결정하는 것은 조금 위험합니다. 개성이 강한 만큼 인재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운영 방침도 꽤 재미있는 편이거든요.





엔지니어들의 천국


S사와 자주 비교되는 L사의 이미지는 겹치는 사업 분야가 많다는 점 이외에도 L사가 가지고 있는 S사에 대한 피해의식이 상당히 강하게 곳곳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대표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은 단지 2인자의 컴플랙스 같은 게 아니라 뭔가 좀 억울해하는 모습이라고 해야 어울리는데요. 왜냐하면 L사는 계열사의 90%이상이 이공계 엔지니어들만을 위한 사업들을 주력으로 하고 있을 만큼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자부심이란 이들이 '기술력'이 당장 세계를 재패할 만큼 뛰어나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엔지니어로서 남의 손을 빌리거나 기술적 꼼수를 부리는 것을 매우 꺼린다는 부분을 시사합니다.


L사의 대표 계열사를 생각나는 대로 살펴보죠.


화학

전자

생활건강

생명과학

이동통신

반도체


...


물론 그밖에도 계열사는 제법 됩니다만 아무도 이들 이외의 계열사를 L사를 대표하는 계열사 중 한 곳으로 꼽지 않습니다. 물론 S사도 기술산업쪽 계열사를 주력하고 있지만 S사가 자금줄로 활용하고 있는 생활 속 밀접한 관계 '보험회사'가 현 시점에서 그룹 내에 없다는 점이나 무역 마케팅을 주력으로 하는 계열사가 없다는 점을 비추어볼때 L사는 적어도 엔지니어들에게 있어서는 무척 좋은 대우를 기대할 수 있는 그룹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실제로도 S사와 견주어볼때 당장의 임금적인 측면에서는 차이를 보이기 힘들지만 실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구 환경이나 업무 압박 강도 측면에서 훨씬 자유롭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자유로운 환경은 그만큼 독창적인 기술력을 많이 보유하게 되고 그 기술력은 고스란히 기술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때문에 그들은 S사가 부족한 기술력을 마케팅으로 매우는 것에 매우 염증을 느끼기도 하죠. 이러한 열등감은 기술력에 대한 독자적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것으로 오히려 시장이 악화가 양화를 밀어내는 형국을 매우 억울해하는 모습에서 나오는 열등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S사가 디자인 표절로 홍역을 치룰 만큼 아이폰에 급하게 대응하느라 분주할 무렵 L사는 비록 초창기 제품에서 수많은 욕을 먹으며 시행착오를 겪을 지언정 컨셉을 따오거나 비윤리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걸었습니다. 결국 아직 판매량이나 마케팅에서 뒤지고 있지만 제품에 대한 품질을 인정받을 수준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L사 엔지니어들의 우직함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만큼 경영이나 마케팅 등 실제 '만들어진 물건을 팔아야 하는' 부서나 계열사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박한 대우를 받는 그룹 내 분위기가 없지 않다는 전언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무래도 이쪽 업무에 출중한 인재가 L사를 선택할 확율이 적고 이는 고스란히 L사의 마케팅 능력 부재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L사의 경영, 마케팅 인재 부족으로 인한 소양 결핍은 단지 판매 실적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데요. 아무래도 엔지니어들의 대우가 다른 쪽 계열 대우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보니 내부 승진 역시 엔지니어 실무진쪽이 월등히 빠르고 그렇다는 것은 결국 실무적인 부분 이외에 경영 마케팅쪽의 결정권자 역시 경영 마케팅 전문 실무진이 아닌 엔지니어 출신 인재들이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이같은 흐름은 아주 뿌리깊은 부분에서부터 문제를 야기하기 시작하는데요. 바로 업계 내에서는 물론 일반 소비자들도 이미 체감하고 있는 '1차원'마케팅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짓을 하게 만드는 대기업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후진적이죠.


L사는 그 회사 규모에 걸맞지 않게 사원들을 '영업사원화'시키는 작업을 꽤 오랜 기간동안 지속해오기로 유명한데요. 이를 테면 전혀 관계없는 계열사인 화학쪽 계열사에게 이동통신 계열사의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회선 10여개 가량의 판매를 맡기고 주변 지인들에게 이를 팔게끔 하는 대기업답지 않는 네트워크 마케팅을 지금 현 시점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이는 똑같이 엔지니어 중심의 간부 체계로 운영중인 대표적인 통신회사 K사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런 마케팅 방식은 같은 경쟁사인 S사나 기타 대기업들에서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수준에서 그치는 매우 초보적이고 구태적인 마케팅 방식인데요. 심지어 임직원은 물론 협력업체들까지 전개하기도 하는데, 이같은 행태가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그로 인해서 잃을 수도 있는 회사 외적 이미지를 고려할 경험이나 지적 여유가 부족한 엔지니어 중심의 조직 체계가 불러오는 참사일수밖에 없는 것이죠.


계열사별로 실적과 목표까지 할당합니다. 물론 이 할당이 채워지지 않으면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죠. 이에 부담을 느낀 임직원들은 대부분 하청업체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문화까지 이미 정착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밑바탕에서 좋은 마케팅이 나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L사는 비단 이런 부분이 아니더라도 광고나 홍보 마케팅 측면에서 대기업답지 않은 많은 약점을 노출하고 있는데요. 가진 기술력에 비해 엔드 유저들이 피부에 와닿을 만큼 강력함이 없는 밋밋한 마케팅 능력은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면 L사가 그만큼 이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거나 혹은 노력에 비해 결정권자의 무능함으로 인해 나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반증이겠지요. 어떤 결과로든 L사의 기술력 대비 경영 마케팅 능력은 매우 미숙하며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 역시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L사의 사원들에 대한 복지 수준은 대기업다운 수준에서 살짝 부족한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만 반면 노조 설립이나 자율적인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큰 제약을 두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이는 특별히 경영진이 노조에 관대하다기보다는 노조를 먼저 휘어잡을 수 있는 장악 능력 자체, 다시 말해 결국 앞서 언급한 '경영 스킬 부족'이 여기에서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부분이 되는데요.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노조가 상당히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노사 갈등이 심각하지 않다는 이야기인데요. 이는 경영진들의 무능함으로 노조 설립이나 운영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반대급부적인 부분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엔지니어들 중심의 조직 체계에서 노조같은 사회과학적인 측면이 필요한 조직 체계에 익숙하지 못한 임직원 내부 분위기상의 한계도 존재하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한마디로 어느쪽도 치고 나가지 못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임직원들에 대한 복지 수준보다 어쩌면 더 중요할수도 있는 근무 환경 여건 개선 측면에서 L사는 여전히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24시간 3교대 근무 체계가 지금 시점에서도 이미 많은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어서 H사를 중심으로 야간 근무 자체를 폐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와중에 L사는 최근까지도 24시간 2교대 근무를 고수하다가 간신히 3교대로 바꾸는 데에 그치고 있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에 대해 크게 심각함을 느끼거나 부당함을 설파하기보다 그냥 묵묵히 일하는 이공계 엔지니어들의 워커홀릭적인 특성과 더불어 이들이 주요 요직에 승진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근무 환경 여건 개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


엔지니어로서의 삶에 가치를 두고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는 기업으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는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의 위크포인트를 기회로 어기고 L사를 바꿔보겠다는 야심찬 도전을 품고 있는 경영 마케팅 분야의 인재가 계시다면 지금은 좀 말리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바꿀 만큼의 위대한 능력을 가졌는지는 별개로 치더라도 그렇게 바꾼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 그렇게 크지 않을 거라는 점이 그러한 열정을 굳이 꺾어주길 바라게끔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정을 꾸리는 것을 꿈꾸는 사람이라면...글쎄?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매우 뛰어나야만 합니다. 엔지니어들 중심으로 짜여진 조직체계는 매우 남성적이고 여성들이 끼어들 틈바구니가 적으며 그만큼 흔히 볼 수 있는 여성들이 만들어내는 조직 문화는 없지만, 그만큼 요구되는 능력 수준이 높고 외부 조직에서 흘러들어오는 이른바 '굴러온 돌'에 대한 냉혹함도 존재합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L사에 뼈를 묻겠다는 심산으로 들어온다면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어느 정도 직위에서 L사로의 전직은 조금은 말리고 싶습니다. 물론 업계 관행처럼 가져갈 수 있는 직위는 그대로 이어갈 수 있겠지만 조직 내에서 당신의 입지는 충분히 체감할 만큼 한계가 분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L사형 기업은 개성이 강하긴 하지만 유니크하지는 않습니다. 비단 L사 뿐만 아니라 L사처럼 엔지니어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대부분 L사의 기업 문화를 닮아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 말하는 것들은 비단 L사에 입사를 바라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기전자,화학,반도체 등 엔지니어링에 올인하는 중소기업들에게도 거의 동일하게 적용될 것입니다. 물론 L사가 이정도라는 것은 L사가 지금 보여주는 것이 그 조직 체계에서 얻어낼 수 있는 복지나 업무 환경이 가장 극한까지 끌어낸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시길 바랍니다. 아마 그 이하는 있을 수 있어도 그 이상은 있을 수 없다는 점 반드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특별기획 '취업' - 기업 생태연구 보고서 : L사형 기업 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3. 4. 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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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종교가 없는데요.

요즘 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면 '개독'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의 만행들이 자주 보입니다. 다른 종교에 대한 과격행동이나 여행 금지된 국가에 가서 납치당하고, 과도한 전도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들이 대부분인데요. 왜 이들은 이렇게 광신도가 된 걸까요? 종교는 정말 실체가 있고 믿을만 한 것인가요?


<!>

 

글쎄요.


광신도라는 건 굳이 종교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죠? 뭔가 도가 지나친 행동을 하거나 무분별하게 특정 사실을 신봉하고 추종하는 데에도 쓰이잖아요. 그런데 그들의 행동은 종교와는 관계가 없어요. 그럼 여기에서는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되요. 과연 저 종교인이 아님에도 광신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추종하는 그것도 종교인건가? 아니면 더 포괄적으로 종교라는 것 자체가 실체가 없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 말이죠.



한마디로 말하면 종교는 실체가 없는 것을 믿는 것에 기반해요. 모든 종교는 현재 실존하지 않는 것을 책이나 유물 등의 기록을 토대로 하고 있어요. 따라서 종교는 굉장히 희미하면서도 또렷해야만 하죠. 실체가 없는 걸 믿어줄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그래서 언제나 이 종교라는 것은 '사물'이나 '서적', '음악' 등 뭔가 실체화된 것들에 상당히 집착하는 모습이 강한데요. 여기에서 힌트를 얻으셨겠지만, 결국 종교라는 것은 토템, 흔히 말하는 국지적 미신이나 우상 숭배라 불리우는 것들을 포괄할수밖에 없고 토템을 포함한다는 의미만으로 이미 종교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권력'화 되고 '정치'화 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이게 광신도들이 생기는 이유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요? 일단 한번 들어보세요.


...


종교는 왜 필요했을까요? 인류는 태초부터 먹고 살기 바빴고 이미 지금도 먹고 사는 문제에서 크게 자유로운 나라는 몇 안되는데도, 오히려 종교는 못사는 나라일수록 더 굳건한 신앙심을 보이고 있다는 아이러니함이 존재해요 그렇다면 결국 답은 인류가 '못살기 때문에' 종교가 생겨났다고 보는 편이 좋을거에요. 인류는 태초부터 지구최강생물이 아니었고, 늘 생존의 문제와 싸워야 했던 생태계의 중간 이하급 약자였거든요. 근데 인류는 태초부터 다른 포유류보다 좀 더 뛰어난 능력을 타고났어요. 바로 생존을 위해 다른 생물을 이용하는 '사육'의 능력과 무엇이든 비현실적인 것을 상상해낼 수 있는 '상상력'이 그것이에요.



그래서 초기 종교는 중하위권 수준의 열악함을 인정하고 생태계의 강자를 숭배하는 이른바 '동물'이나 채집의 대상이 되는 산이나 강 등의 자연환경에 대한 토템 형태가 될 수 밖에 없었어요. 굉장히 원시적이고 주류 종교들에게 '우상 숭배'라며 비웃음을 당하고 있지만, 사실 종교의 본질적인 부분은 주류 종교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결국 '인간'이라는 약한 존재의 한계를 인정하고 절대 강자를 숭배함으로서 자신의 신변과 인생을 구제받으려는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으니까요. 뭐 딱히 실체가 없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이 종교가 토템의 형태에서 지금의 주류 종교 형태로 진화하게 된 계기는 인류가 사냥과 채집에서 '경작'과 '사육'으로 삶의 형태가 변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에요. 자연이 주는 선물을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자연을 이용해먹기 시작하면서 삶의 문제를 좌우하는 주체가 '인간 스스로'가 되어버리니 더 이상 '맹수'나 '자연'을 숭배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는거죠. 대신 새롭게 숭배해야 할 대상이 생긴 것이 바로 '날씨'였어요.



태양이 한껏 내리쬐면 날이 가물어버리고 경작물은 말라죽어버리죠. 고스란히 한해 농사를 망치게 되면 인류는 1년간 식량난의 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비가 너무 많이 와도 강이 범람해서 농작물을 쓸어가버리죠. 태풍이라도 오는 날에는 뭐 말이 필요없을거고요. 사람들은 자신들의 식량 문제가 좌우될 '날씨'문제에 대해서는 인류가 스스로 개척하지 못할 것으로 어기고 절대적인 숭배를 하기 시작해요. 전 세계 모든 종교의 기초가 되는 이른바 '하늘'숭배의 시작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 '하늘'숭배의 문제점이 있었어요. 숭배할 대상이 없다는거에요. 하늘은 가본 사람도 없고 날씨가 왜 그렇게 변하는지, 날은 왜 갑자기 가물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홍수가 나버리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원인도 이유도 모르다보니 숭배를 한다고 해서 뭔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으니 숭배를 하면서도 뭔가 아리송하단말이죠. 바로 이때부터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서 숭배하는 형태 즉 지금의 주류 종교가 태동하기 시작해요.


태양의 신 호루스


하늘 숭배 이전의 종교 역시 강이나, 산 혹은 큰 동물들을 숭배하던 것이었기때문에 소기의 성과를 얻기보다는 자기만족에 가까운 역할을 했다면 숭배 대상이 하늘이 되고 이 하늘이 인류의 생존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도록 바뀜으로서 종교의 역할도 크게 바뀌기 시작해요. 예전에는 종교를 관장하는 제사장의 역할이 단지 어떤 숭배 대상을 자기 마음대로 정한 룰에 따라 숭배하는 것에 그쳤다면 이제는 그 숭배한 것에 대한 결과를 내야 하는 '책임론'이 대두되기 시작한거죠. 만일 제사장이 말한 대로 열심히 했는데 날씨가 안좋고 태풍이 몰아쳐서 결국 흉년이 들면 제사장은 그 책임을 져야만 했어요. 제사장은 '정성이 부족했다'는 식의 인지부조화적인 변명을 몇 차례 할 기회를 얻긴 하지만 아무런 바탕 지식이 없이 대자연을 예측하고 컨트롤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을거에요.


제사장들에게 닥친 일대 위기는 그들을 스스로 진화시켰어요. 그들 스스로 신뢰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되었을테니까요. 하늘을 공부하고 날씨를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언제 비가 내리고 언제 태풍이 몰아치며 언제 가뭄이 드는 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그것이 고스란히 문명화되기 시작하죠. 그리고 어느 정도는 예측해낼 수 있을 정도까지 발전하고 나니 어느 정도 그들의 말이 적중하기 시작하고 그들의 신뢰도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어요. 


그런데 당시 제사장들이 얻은 이 지식의 파급력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쏠쏠했다는것이, 결국 제사장의 말 대로 날씨가 예측되기 시작하면 하늘을 숭배하던 당시 종교 문화에 비추어볼 때 제사장은 '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굉장한 계급 위치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거든요. 사람들은 자신들의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린 부분인지라 제사장의 말이라면 껌뻑 죽을 수밖에 없었고, 이런 처지에 놓인 이상 제사장이 자신의 위치를 악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거죠. 제사장의 위치는 빠르게 권력화되어갔고 그들의 말은 곧 신의 전언이 되어 사람들을 컨트롤하기 시작해요. 그들에게 곡물을 비롯한 수많은 공물이 쌓이는 것은 당연했겠죠. 그렇게 쌓인 불로소득은 곧 부의 권력화를 낳게 되고 결국 제사장의 권력은 국가 통치에까지 오르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이 냥반입니다.


...


권력은 독점할 수 없어요. 필연적으로 투쟁을 낳게 되죠. 그 투쟁의 형태는 다른 나라의 침략일수도 있고 내부에서 일어나는 봉기일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 봉기를 일으키는데에 필요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기존 왕권이 이미 종교 그 자체였고 사람들이 그 종교의 교리를 따르고 있는데, 다른 나라의 침략이건 내부에서 일어나는 봉기였던 간에 결국 왕에게 도전한다는 건 '신에 대한 반항'이 될 수 밖에 없었던거에요. 아니 그렇다고 아예 규정해버리는 편이 나았죠. 적어도 왕의 입장에서는 말이에요. 이른바 '대의론'이 시작된거에요.


왕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이 종교를 더 복잡하고 숭고하게 만드는데에 최선을 다해요.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신격화하죠. 이에 왕들은 한술 더 떠서 아예 신은 없고 내가 바로 신이며 내가 죽어서까지 늬들을 통치할 것을 엄명하기까지 해요. 한번 깨진 힘의 균형은 좀처럼 회복될 조짐이 없이 계속 격차를 벌리기만 할 수 밖에 없었던거죠. 왕족들은 자신들을 보다 신격화시키기 위해 화장을 했으며 그들의 신화적 사상을 대중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소설을 집필하여 구전시키기 시작해요. 물론 이 소설 내용은 터무니없고 비과학적이었지만, 당시 대중들의 우매한 지식 수준으로는 반박하기 힘들었을거에요.



절대적인 숭배와 충성을 다짐하고 그에 굴복하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이에 대한 부당함을 설파하고 봉기를 이끌어내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겠죠. 이미 봉기는 '신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되어 버린 이상 봉기를 필요로 하는 쪽이든 침략을 하는 쪽이든 필연적으로 해야 했던 것은 '새로운 종교'의 주창이었어요. 구 종교와 신 종교의 충돌은 이렇게 침략과 침략사, 봉기와 국가 분열 등 여러 가지 역사를 낳게 되죠.


날씨를 종교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집트는 결국 나일강변의 이상기후로 인한 가뭄으로 인한 종교적 갈등으로 멸망했고 종교를 배척한 힘의 정복활동을 펼쳤던 로마 제국의 '로마 국교'정책도 결국 392년 로마 카톨릭을 국교로 개종하면서 멸망의 시작을 알렸는데요. 이 사이에 낀 인물 한 명이 있어요. 여러분들이 너무나도 잘 아시는 종교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인물이자 종교의 체계 자체를 송두리째 바꾼 인물... 


'예수'


...


그는 '신의 아들'이며 자신을 '신이 보낸 사람'으로 소개했어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지금까지 숭배되던 모든 교리를 비판했고, 자신이 만들어낸 새로운 교리가 옳다고 설파했어요.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행동이 종교 국가관에서는 결국 '반역' 행위였고 그를 반역자로 몰아가는데에 사회적 저항은 아무것도 없었죠. 저도 그와 같은 세대를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가 대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신도를 새로운 교리로 설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시대에서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그 시작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인류가 점차 학문에 눈을 뜨게 되면서 기존 종교가 가지고 있던 이른바 '독점적 지식'의 영역이 위협받기 시작했던 시기와 예수의 등장은 거의 정확히 맞물려요 신을 어떻게 모시느냐에 대한 문제보다 내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을 강조하는 '철학'의 발전은 그 정점이었고 이 철학은 단지 철학으로 머무르는 게 아니라 고대 과학을 수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위협적이었어요. 특히 천문학의 발전은 고대 종교에 큰 위협으로 다가오게 되죠.


그동안 그들에 의해 날씨가 조절된다고 믿었던 이집트는 공교롭게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등장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했어요. 하지만 정말 수많은 사람들에게 뿌리가 박혀 버린 종교의 색깔을 빼기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과 진통을 수반해야만 했죠. 과학적인 입증으로 종교의 허상이 발가벗겨지긴 했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항상 숭배의 대상이 필요했고, 그 뒤로는 왕권의 연립 없이 독자적인 세력으로 존치하게 되는 역사가 시작되는거에요.


그렇게 인류에게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모양새'가 상식화되어 굳어지게 된 거죠.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가 어떤 '모양'과 '철학'이 대단히 고착화되어있는것처럼 지금 보기에는 구교가 매우 비과학적이고 구태의연해보이지만 당시에는 그 철학이 지금의 종교 철학과 같은 수준으로 고착화되어 있었다는 거에요. 다시 지금 기준으로 봤을 때 지금의 종교에 대한 '관념'과 동떨어진 종교를 칭하는 '사이비'나 '이단'이라는 말로 배척하지만 정작 우리가 지금 상식화되어있는 종교 개념이 당시에는 '사이비'나 '이단'취급을 받았다는 거에요. 


한마디로 예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이단'이었죠. 그는 그동안 실체가 없었던 하늘 숭배에서 실존 인물의 숭배로 종교의 체계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만든 인물이었어요 이른바 '메시아론'은 지금도 그로 인해 만들어진 수많은 이단과 교주들이 자신들이 혹시라도 있을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하게 되는 아이러니함이 존재하게 되죠. 신약은 해석하기에 따라 예수 생존 당시 받았던 핍박이나 지금 사이비 교주들이 받는 핍박이나 다를 게 없다고 주장할 수 있으니까요.


예수의 전략은 '복고'전략이었어요. 예수는 뿌리박힌 '이집트'종교 개념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민중들 속에 잠재되어 있는 종교의 뿌리를 자극하는 식으로 설득하기 시작했어요. 이집트의 멸망과 팔레스타인지역의 로마 수복으로 이렇다할 종교를 모두 배척당했던 그들에게 있어 이런 잠재된 원론적인 부분을 설파하는 예수는 다른 말이 필요 없는 진리였던거죠. 


그런데 그가 주창하는 종교는 이미 과학으로 부정당한 '날씨'얘기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이집트의 종교가 완성되었을때에 주창되던 '사후 세계'를 좀 더 각색하는데에 초점을 맞추었죠. 한마디로 당시 과학은 물론이고 향후 어떤 과학으로도 증명하기 힘든 부분을 교리의 핵심으로 만들었던 최초의 인물이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했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문제, 이른바 '개인주의'를 교리로서 융합시킨 종교를 만든 사람이 되는 거에요. 이 두 가지가 융합하면 결국 '사후 세계를 위해 지금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것으로 귀결되는데, 결국 이 한 마디로 축약될 수 있는 논리가 많은 사람들을 지금까지도 매료시키고 있는 거죠.



이단이나 사이비라고 불리는 것을 포함해 지금까지 나오는 모든 종교는 '사후 세계'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아요. 이는 결국 종교 이외에 어떤 과학으로도 사후 세계 즉 인간의 생명에 대한 부분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죠. 마치 고대 이집트의 호루스신의 등장이 '날씨'에 대해 알지 못하는 지식을 독점하여 민중을 선동하는 식으로 종교를 이용했다면 기원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종교의 대한 철학이나 개념은 결국 인간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과학적으로 아직 증명하지 못한 사실에 대해 논하고 있는 유일한 '가설'이라는 점을 '떡밥'으로 내세우고 있는 거죠.


그래서 지금의 종교는 생명공학, 그리고 진화론과 대척점에 있을 수 밖에 없어요. 날씨의 비밀이 까발려지면서 망했던것처럼 사람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죽는지가 교리 설득의 최후의 보루일수밖에 없는 종교계는 이를 적대시하는 것이 당연할수밖에요. 종교계는 언제나 자신들의 논리가 인류의 발전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지식을 배척해오면서 살아남아왔던 것이 실존하고 있는 역사이며 지금은 그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삶과 죽음과 관련된 연구를 종교적인 이름으로 반대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존립성을 지켜나가고 있는거에요.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이제 진짜 광신도 얘기


종교 전쟁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종교 전쟁의 맥락은 무엇이었을까요? 결국 말이 '성전'이지 결국 모양새는 침략전쟁이거든요. 종교는 어느 나라에서나 그 나라의 존엄성을 가늠하는 절대적 위치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21세기가 와서도 인도에서 관광객조차 먹으면 안될 음식이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대부분의 종교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종교의 포교에 목적을 두고 있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타락한 십자군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권과 정복사업을 정당화하는 추악한 모습이 대부분이에요. 특히 이런 모습은 전혀 문명이 발전되지 않은 원주민 인디언들의 대륙을 구 대륙 사람들이 침략해서 정복할 때 주로 신격화되곤 하죠.


이따위 신화도 있어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한창 남미와 북미를 털어먹을 때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로마 교황청으로 쫄래쫄래 달려가서 '우리가 저 땅 먹었으니까 우리 영토라고 선언해줘'라고 떼를 쓴 거였어요. 로마 교황청은 어이없게도 잔혹한 학살과 문화 말살의 참혹한 정복전쟁을 거친 그들의 주장을 인정하고 그들의 식민지로 선언해주죠. 보편적이라는 의미를 가진 '카톨릭'이 정작 보편적 가치인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한 자들의 손을 들어줬다는거에요. 


그들은 식민지를 미개의 세계로부터 구원한 '메시아'라는 주장을 펼쳤어요. 누가 봐도 그 나라의 문화를 말살하고 영토를 늘리기 위한 확장 사업에 불과한 것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해서 말이죠. 사실 이는 포장 그 자체가 아니라 아직 문명을 받아들이지 못한 자들에게 정복자들인 자신을 '신'으로 포장시키기 위한 부분도 포함되요. 토템 신앙조차 가지지 못했거나 그 문명의 학술적 발전이 더딘 자들에게 카톨릭 같이 오랜 기간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오류가 수정되고 다듬어지며 새로 쓰여진 빈틈이 비교적 적은 완벽한 소설을 읽어주면 훨씬 설득이 쉬웠을 테니까요. 마치 이집트 파라오가 그랬던것처럼 정복자 그들 스스로가 신이 됨으로서 정복활동과 식민지 노예화를 손쉽게 거둘 수 있는 그들로서는 참으로 현명한 방법이었을거에요.


교황 옆에 앉은 사람은 무솔리니라는 사람이에요. 우와 교황이 상대할 정도면 참 훌륭한 사람이겠죠?


너무 먼 얘기라 잘 이해가 안간다고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역사는 얼마든지 있어요. 민족의 시조 단군 할아버지를 보세요. 탄생 신화가 환인이라는 신이 곰이 사람이 된 여자 환웅과 결혼해서 낳은 사람이 단군이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이게 진짜냐 거짓이냐는 집어치우고 왜 이런 얘기가 생겼을까요? 우리나라 대한민국 반도에는 단군 이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을까요? 아니었을거에요. 우리 할아버지는 단군보다 훨씬 더 오래 전 사람이었을수도 있어요.


단군은 외지인이었어요. 외지인은 아무래도 원주민들보다 문명도 더 앞서있었고 원주민들이 보기에 훨씬 앞선 문명을 가진 그들을 우러러볼 수 밖에 없는 위치적 한계도 있었죠. 그런데 이 원주민들이 본능적으로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한 개김성만큼은 투철했을거거든요. 뜬금없이 족장도 있고 부족 체계로 잘 돌아가고 있는 곳에 외지인 불청객이 떡 하니 와서 '이제부터 내가 늬들 지도자다'라고 선언하는 꼴을 그냥 두고 볼 바보가 있을라고요.


우와 우리는 하늘의 자손이었어!


단군이 만약 여기에서 무력으로 그들을 진압하고 점령했다면 아마 실패했거나 성공했더라도 수많은 반란에 시달려 결국 터를 잡기가 어려웠을거에요 (단군할아버지는 일단 터를 잡긴 성공했잖아요. 노래가사에도 있듯이) 사실 역사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정말 단군이 친화정책을 먼저 쓴 다음 자신을 신격화해서 스스로 왕이 되는 철학 정책을 취했는지, 강력한 문명으로 압도하여 무력으로 공포정치를 취한 다음 이를 미화시키기 위해 신화를 써서 역사를 왜곡시켰는지는 말이에요. 확실한 건 그들은 '신화'를 남겼고 그들은 '종교'를 이용해서 외지인이라는 불리한 조건에서도 한반도를 정복했고 최초의 왕으로 기록하게끔 만들었다는거에요. 참 훌륭한 사람이네요


이런 역사는 단군에서 끝나지 않아요.. 단군이 먹었던 땅은 엄밀히 말하면 요동 반도지 지금의 남한 지역은 아니거든요. 남쪽으로 가보면 그 뒤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생기죠, 삼국 시대 여기에서 시작되는 고구려의 동명왕 신화도 환인이 등장했던 단군 신화랑 크게 차이가 없이 어쨌든 하늘의 사람이 낳은 아들이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죠. 인물만 조금 바뀌어있고 그들이 활동하던 활동 무대가 요동 반도가 아니라 도읍지인 압록강을 낀 국내성 일원이라는게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죠. 과연 이런 말도 안되는 신화를 대체 왜 만들었을까요? 그냥 1대 왕이 되었다. 라고 기록하기엔 뭔가 역사적으로 앞뒤가 안맞았거나, 뭔가 감추고 싶은 역사가 있었을수도 있겠죠? 혹은 자신들을 신의 아들이라고 소개했어야 할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었던가요.


백제의 건국은 사람이 거의 없는 땅에 나라를 세운 셈이니 신화가 없어도 이상할게 없지만, 박혁거세 역시 아무런 지역 배경이 없는 외지인이었으니까 이런 신화가 필요했는지도 몰라요.


건국 신화는 결국 침략 전쟁을 미화시키기 위한 수단이에요. 콜럼버스의 달걀은 유명하지만 그가 아메리카를 정복하느라 수많은 인디언들이 학살되었다는 역사는 전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에요.


종교는 사람들을 하나로 이끌 수 있어요. 다만 그들 자체가 국가를 세우려 들지 않아요. 이집트의 교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다만 그들은 왕권과 연합하여 그들이 '왕을 임명'하는 역할을 하게 되죠. 신이 그를 왕으로 만들었으므로 국민들은 이 왕을 따르는 것으로서 신을 추앙할 수 있게 된다는 식의 논리를 설파하는 것인데 지금으로 보면 진짜 어처구니가 없어보이는 이런 의식이 국민들에게 너무나도 잘 먹혔고 그 순간 왕은 곧 '신'이 만들어주는 것이며 이 나라는 신을 위해 지켜야 하는 나라가 되는 거에요. 


그들이 전쟁터에서 싸우고 이기는 것은 왕(신)을 위한 것이요. 그들이 다른 민족에 의해 침략당하는 것은 우리의 신을 모독당하는 것이므로 신을 위해 맞서 싸워야 한다는 사상은 왕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안정적인 권력을 선사했어요. 종교는 그때부터 이미 정치화되었고 권력에 빌붙어왔으며 이를 결코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죠. 심지어 지금까지도 말이에요...





...


가난한 나라일수록 종교에 대한 신념이 두터운 이유는 당연하겠지만 '가난하기 때문'이에요. 가난하면 할수록 먹고 사는 문제에 더 민감해지고 그럴수록 돈을 주고 배워야 하는 지식보다는 돈을 주지 않고 배울 수 있는 지식에 더 많은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많은 종교들이 세운 미션스쿨들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죠. 왜냐, 사람은 가난하면 할수록 생명공학이니 뭐니 하는 것을 공부하는 것보다 단지 '농사' 즉 먹고 사는 문제에 더 집중할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결국 고대 이집트처럼 숭배 대상에 자신의 운명을 거는 데에 주저함이 없게 되니까요.


그들이 종교에 빠지게 되는 또 하나는 '현생'에 대한 비관이에요. 지금의 종교는 모두 '사후 세계'와 '좋은 환생'을 미끼로 걸고 있어요. 현생이 어렵고 비관적인 사람은 육체적인 자살을 선택하거나 종교에 귀의하므로서 사상적인 자살을 택하는거죠. 물론 이런 사람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일수록 압도적으로 많을 수 밖에 없고 가난한 나라에서 종교가 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거에요.



많은 나라들이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지면서 종교의 영향력은 점차 희박해지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개독이니 뭐니 하며 기독교를 배척하는 움직임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들은 그럴수록 절박해지게 되요. 우리가 이 땅에서 사라지면 안된다고, 마치 나라를 빼앗기는 듯한 위기감을 갖게 되죠. 특히 그 종교에서 충분한 지분 (나라로 치면 벼슬) 을 갖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그 위기감은 더욱 팽배해질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들은 더욱 종교를 폐쇄적이고 광신적으로 만들어 결속력을 다지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죠. 종교가 이단이면 이단일수록 사이비면 사이비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극심해져요. 


다른 의미로는 봉건주의 국가를 소망하는 자들의 욕구 충족에 이용되기도 하지만요.


결국 지금의 종교는 예수가 만들어낸 소설 '신약'에 기반을 두고 그 신약에 별 시덥잖은 메시지에 의미를 두고 그것을 해석한 자들을 지도자로 한 수많은 교파들이 서로 자신의 해석이 맞

다며 싸우고 있는 형국이거든요. 그런데 정작 그 소설은 빠르게 발전하는 생명과학에 의해 속속 거짓임이 까발려지고 있고, 사람들은 점차 먹고 살기 좋아지면서 종교에 관심이 멀어지고 있어요. 그들의 해석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한들 원전이 워낙 비과학적이고 부실한지라 정작 형체가 분명했던 종교가 점차 신기루적이고 뜬구름잡는 교리로 변질되고 있어 믿는 사람만 믿을 수 있는 억지 해석이 난무하고 있는 것도 지금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고요. 


예수님의 친구.jyp


그래서 그들은 다른 종교를 공격해요. 적어도 '종교를 믿을 가능성'만큼은 있는 자들을 자신들의 종교로 끌어들이는게 종교를 아예 안 믿는 사람들을 그들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보다 훨씬 쉽거든요.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불교에 대한 테러나 불교 비방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죠. 종교를 믿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서로 뺏고 빼앗는 와중에 신도는 점점 줄어들고 마치 졸아붙는 냄비 물마냥 최후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게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종교에요.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사람을 엄한 교리로 옭아매고 광신도를 만들어가면서까지 말이죠.


그들은 그나마도 모자랐는지 '국가적으로 종교를 잘 믿는' 국가를 골라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려고 해요. 여행 제한 국가도 아량곳하지 않고 말이죠.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들은 그렇게 해야 하며 성서에 그렇게 하라고 쓰여있다고 나와 있다며 말이에요. 또 한편으로는 특정 목사를 예수님의 친구라며 추앙하기도 하고, 특정 교주를 메시아라며 추앙하기도 해요.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범죄도 어마어마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죠.




우리는 종교를 어떻게 바라봐야할까요?


종교는 마음의 양식이에요.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요? 네 맞아요. 독서랑 똑같아요. 종교는 아주 잘 쓰여진 소설을 제각각의 시점으로 읽으며 그 소설에서 얻을 게 있는 사람들은 얻고 얻을 게 없는 사람은 얻지 않아도 되는 아주 자유로운 조직이 되어야만 해요. 왜냐하면 그냥 소설일 뿐이거든요. 누가 봐도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비현실적으로 미화하면서까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던 사람이 쓴 소설이고, 그 소설이 많은 사람들의 해석이 곁들여지면서 덧붙여지고 멋대로 수정되어가며 원전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지경까지 이른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참고하면서 읽으면 될 거에요.


그 소설에는 좋은 말이 많아요. 우리가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좋은 말들 많죠. 그런데 그 말을 해준 사람이 완벽한 사람이었으니까 그 사람을 믿는 것만으로 우리가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고 심지어 죽어서까지 잘 된다는 식의 논리로 현세계의 많은 부분을 타인에게 의존하며 심지어는 빼앗기고 당하면서까지 살 필요는 절대 없다는거에요. 그저 '책 참 잘 봤습니다, 이 책으로 전 인생에 좋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라는 의미의 기부금을 낼 수는 있지만 말이에요. 



삼국지 떡밥 나오면 별의별 해석 다 나오는 거랑 다를 게 없어요. 그 해석들이 저자별로 제각각 다른 내용을 통해 책으로 나온 게 벌써 한트럭이잖아요. 성서나 불경도 크게 다를 바 없어요. 종파 역시 그 해석이 옳다고 생각하는 모임일 뿐이고요.



...뭐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요.

여러분의 인생, 삶과 죽음은 여러분거에요.

여러분의 소중한 인생을 다른 누군가에게 바치지 마세요.



...그게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

 

 


공화국 사회교과서 제 5장-광신도는 왜 생기나요 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3. 1. 6. 14:34

늘 그렇습니다. 사실 원하는 대통령, 원하는 취업, 원하는 대학, 일부에서는 원하는 부모(?)까지 ... 뭔가 뜻대로 되는 게 아닌 타의적인 것에 의해 어떤 운명의 갈림길이 결정되는 상황은 언제나 좌절을 안겨다줍니다. 지난 12월 19일에 우리나라 48% 가량이 겪었던 이른바 멘붕도 아마 이런 타의적인 부분에 의한 운명의 결정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삼성중공업의 태안도 그렇고, IMF도 그렇고, 이번 투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역시 왜 그들이 저지르는 걸 늘 우리가 치워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어떻게 해서는 5년 후를 기약해야 하는데, 우리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답이 안나오니 5년 후에도 바뀌긴 할까라는 회의감이 드시는 분들도 계실거고요. 제가 무릎팍 도사까지는 안되더라도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의 이같은 다양한 생각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많이 길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1. 난 아직 젊고, 나이든 사람들이 일을 그르치는걸 지켜보는게 더이상은 naver이신 분

 

이민을 준비하시는게 좋겠습니다.

농담이 아니고 진심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젊은이들이 매우 부족합니다. 그중 노령화사회가 가속화되고있는 일본과 우리나라 그밖에 몇몇 나라들은 이미 경제활동인구가 수혜인구에 한참 못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래서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총성없는 전쟁이 있습니다. 다름아닌 '유능한 젊은 인재들의 수입 전쟁'이죠.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표면화되고 있지 않지만 일본이나 그밖에 젊은이들이 부족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많은 나라에서는 젊은 인재들에게 외국인 자격이 아닌 자국민과 동등한 자격과 의료보험 혜택, 자국민에 비해 살짝 부족하지만 연금 혜택까지 갖춰주며 젊은이들 유치에 열성적입니다. 당장 지금의 일본처럼 젊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없으면 사회 자체가 돌아가지 않을 지경에 이른 곳도 있는 실정입니다.

 

이들을 먹여살려줄 일할 젊은이들이 필요합니다.

 

같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이런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만 유일하게 그 심각성을 우습게 보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며 그중에서도 곧 이들의 수입과 세금에 의존해야 하는 5~60대 이상의 중장년 노령층입니다. 이들 중 경제적 자립이 가능한 인구는 통계 그 자체로 10% 미만이며, 대부분 노후에 국가 연금에 크고 작은 의존을 해야만 하는 인구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현재 지식 수준과 인식 수준 자체가 그 연금이 정치인들이 만들어내준다는 인식에서 머물러있을 뿐 그 돈이 결국 젊은층의 경제활동에서 만들어지지 않으면 나올 수 없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런 사실 자체를 알고 있고 자신들의 혜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결국 국가의 부실이 필연적으로 수반될 것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생애에서는 그것을 경제적으로 책임질 일이 없다는 극도의 이기주의적인 사회공동체사고방식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국가 그리고 그런 국가를 지지하고 따르는 분들에게 가장 좋은 처방은 그분들이 그렇게 싫어마지않는 무지한 젊은이들이 이 나라에 거의 남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쥐뿔도 모르는 좌파적 젊은이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니 그분들 입장에서는 이 나라가 분명 유토피아가 될 것임에 분명하겠죠. 그들과 생각을 같이 하는 일부 젊은이들만이 남고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떠나거나 혹은 뜻이 다른 자들에게 가는 정책을 거부하는 측면에서의 국민권 포기와 납세 거부가 동반된다면 정말이지 이 나라는 망국의 길이 아닌 박정희 시절의 힘과 정열을 느낄 수 있는 멋진 대한민국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분들 말씀대로 말입니다. 한번 그분들 뜻대로 100%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는지, 발목 잡히지 않고 갈때까지 가보게 두는것도 좋지 않을까요?

 

그럼 그렇게 해드리면 됩니다. 여러분들 지금 토익 공부하시는데 기업들은 이미 입사해서 중역이 된 지들도 못하는 토익점수를 신입사원보러 만들어내라고 하죠? 여러분들 정말 대단한 인재들입니다. 전공 스킬에 외국어 능력까지, 사실 해외 취업이요? 토익 700~800 요구하는거, 그거 다 해외 취업이 기업 하나를 거치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일단 직접 부딪혀보시면, 여러분들 공무원시험보는것, 토익시험준비하는것만큼의 노력만 있으면 확율적으로 그 두 가지 시험보다 문이 좁지도 않습니다.  

 

노란색을 제외한 것이 세금,

 

정 안되면 차라리 파트 타임으로라도 활동할 수 있는 단기 비자를 얻어 장기체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현지에서 엿보셔도 됩니다. 워킹홀리데이를 이용하여 일본이나 호주 등지로 나아가 현지에서 직접 장기 체류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기회로 활용하시는 것도 좋아요. 물론 그쪽 정치나 세금 문제 등도 딱히 좋다고는 볼 수 없는데요. 다만 적어도 그 나라들은 경제활동을 하는 젊은이들을 '귀하게 어기'고 경제 수급자들은 그 젊은이들에게 빨갱이니 뭐니 뭐라하지 않고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으니 적어도 세금이 아깝다는 느낌은 안들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정부, 그리고 그 정부를 지지해서 기어코 지금의 정부가 지금 이모양 이꼴대로 나아가게 만든 사람들은 당신들이 지금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눈꼽만큼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는 거, 세금을 내는 거 싫은 게 당연해요.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이민을 가셔도 좋고 아주 잠시동안 한국에 낼 세금을 내지 않는 방법으로 해외 장기 채류 및 현지 경제 활동을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느껴보세요. 당신이 얼마나 지금 나이에서 소중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보다 위에 있는 나라는 18개국 정도네요 전후 10위권 내에서 선택하시면 무방합니다.

 

...

 

2. 후일을 기약하고, 일단 5년을 좀 무사히 버텨보고 싶다는 분들

 

이분들에게는 많은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지만 정작 드릴 말씀이 많지 않겠군요.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우선 그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왜 그들이 이명박에게 그렇게 당하고 박근혜와 새누리당에게 또 지지를 보내는 50대 이상의 유권자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죠.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승산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미디어들처럼 무슨 과거에 핍박받고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상실감이 표로 표출되었다는 거지같은 후속논리를 내세우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선택은 그런 고차원적인 습성이 스며있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보시는 그대로 그들의 표를 던지는 매커니즘은 너무 단세포적이고 단순하기 때문에 그들의 습성을 경제논리나 사회과학 측면에서 분석하면 그들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순하고 무지합니다. 그들은 무슨 과거의 영광이나 박정희에 대한 향수 그런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냥 단순하고 무지한 것만은 아니고요. 살아온 세월의 경험에 의한 상식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지혜는 분명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도 안되는 상충된 지적 충돌이 결국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죠.

 

인지부조화이론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최훈 작가의 작품 '삼국전투기'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물론 이 분도 인용한 것이겠지요)

 

 

그들은 지금 정부, 그리고 앞으로의 정부, 그리고 그 정부의 모태가 되었던 과거의 정부가 얼마나 나쁜 정부였고 어떤 문제가 있었으며 경제 발전 이면에 있었던 반민주적인 행태가 어느 정도로 지독했는지 오히려 지금 젊은 세대들보다 더 많이 알고 피부로 느낀 세대들입니다. 이들이 절대 그걸 '모르거'나 '잊었'다고 보기는 힘들죠. 오히려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큰소리 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인지부조화 이론은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공포정치가 펼쳐졌던 박정희, 전두환 독재 시절에는 사실 괴담처럼 일컬어지는 코렁탕, 남산 지하실 뭐 이런 얘기는 그때 흐르는 말 그대로 '시범 케이스'였던 것이죠.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과 전국 대부분이 굴복하는 가운데 끝까지 전두환을 인정하지 않았던 광주 시민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내 목숨, 내 건강, 내 돈부터 지키자'라는 보수적 보신적인 마인드로 몸을 사렸던 세대들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느끼는 마인드입니다. 그들은 분명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당시 용기를 내지 못했거나 딸린 식구들 때문에라든지 아무튼 여러가지 이유로 그 저항에 몸을 담지 못했고 적극적으로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지켜봐야만 했고 그들로 인해 만들어진 민주화의 성과에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던 것이죠. 남들이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그 역사의 흐름에서 도망쳤다는 크고 작은 생각이 분명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그들로 하여금 들게 만든 것도 결국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이 성공을 거두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그런데 이들의 선택은 그 민주화 운동이 끝난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전두환의 최측근, 5공인사 노태우가 과반에 가까운 득표율로 당선이 된 것이 시초였죠.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보통 야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역사적 분석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 국민들이 노태우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노태우가 되지 않았을거에요. 그런데 적지 않은 표를 받았다는 말이죠.

 

그들은 5공 당시 도망쳤던 스스로를 책망하다가도 민주화 운동에 성공한 우리나라를 바라보며 그 당시 결국 민주화 운동이 성공을 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5공 때 소극적이었던 모습조차도 정당했다는 일종의 정당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어쨌든 자신들이 그렇게 소극적이었음에도 민주화 운동은 성공했기 때문이지요. 그런 한 편으로는 사실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런 자신들에게 손가락질을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나머지 결국은 5공때 소극적이었던 것은 5공이 정당했기 때문이고 결국 내 행동이 옳았다는 극도의 보수적 자기변론과 자가당착에 빠지게 됩니다. 노태우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결국 역사의 변화에 동참하지 못했던 민주화 운동 불참자들이 만들어낸 스스로의 변론을 위한 인지부조화 이론의 시작이었던 것이죠. 인간은 자신의 잘못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합리화를 한다는 이 이론이 정치계에 얼마나 큰 비극을 가져오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래 맞아 저놈들은 북한에서 사주한 폭도들임에 틀림없어 내가 참가하지 않은게 절대 잘못된게 아냐!

 

그런데 이런 흐름이 어딘가에서 멈추어야 하는데 계속 쌓여만 나갑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지지했던 자들이 특별히 자신들을 우대한 적도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들은 IMF가 오고 경상도 지역 경제 발전이 악화일로를 겪는 와중에도, 4대강으로 강이 썩어들어가고 물가가 폭등하고 빈부격차가 심화되었던 이명박 정부를 겪었음에도 결국 또 다시 새누리당을 찍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왜 찍는가를 다시 한번 이런 현상을 토대로 되짚어봐야만 합니다.

 

이들에게 이명박 정부가 부패했다며 심판하자고, 자신들을 뽑아달라는 민주당 후보를 뽑아주길 기대하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이명박 정부가 부패했다는걸 그들이 몰라서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들이 '이명박'을 뽑았다는 사실 때문인거죠. 내가 이명박을 뽑아서 나라가 이렇게 되었다.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우리 지역이 개차반이 되었다. 이걸 모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걸 아는 사람이 적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내가 이명박을 뽑았기 때문에 이명박이 아무리 못해도 이명박을 뽑은 내가 병신취급받지 않으려면 이명박이 잘한 것만 부각시켜야 하고 잘한게 없으면 잘한 것처럼 보이기라도 해야 하며 결정적으로 그 증거로서 정권교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

 

백약이 무효입니다. 우리는 이명박 시절 5년을 너무 힘들어하면서 이명박을 찍은 사람들을 너무 경멸했습니다. 그냥 나오면 후려갈기겠다는 살기등등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내 주변엔 이명박 찍은 사람 한명도 없는데'라는 유행어가 유행했습니다. 실제로 지지하면서도, 지지했으면서도 그 살기때문에 드러내지 못했던 사람들 적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이나라가 이모양 이꼴이 된 것에 대한 민주주의적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 두려워 지금의 정부를 정당화하기 위해 정권교체를 거부하는 정치적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이 성공했을 때 민주화 운동에 참가하지 못한 자신들이 부끄러워 결국 민주화 운동 이전의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기 위해 노태우를 찍던 바로 그 사람들의 업보가 쌓여 변화의 물결에 제방을 쌓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은 단순합니다. 지금 박근혜를 지지해주십시요. 지금 박근혜를 거부했던 사람들은 만일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서 삽질을 즉시 시작하게 된다면 바로 등을 돌리고 그에게 내줬던 지지를 바로 철회할 행동력있는 민주주의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사람을 지지자의 입장에서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우리나라의 소중한 재산임에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이야 속속 무혐의로 드러나고 있지만 당시 노무현이 부패했다며 그에게 뜨거운 지지를 보냈던 사람들조차 등을 돌리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그런 당신들의 능력이 지금 이 나라에 더 많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바라보세요. 그리고 박근혜를 지지했던 사람들을 탓하고 그녀가 혹 어떤 국정 운영상의 실패로 인해 나라꼴이 처참해지더라도 절대 박근혜를 지지했던 사람들을 비난하지 마세요.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반성을 타의적인 두려움으로 인해 거두고 인지부조화를 선택하도록 만들게 하지 말자는 말입니다. 그들은 무지할지언정 절대 가볍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그들이 자신의 선택에 대한 비난과 자괴감에서 도망치기 위해 또 다시 스스로를 위한 투표를 하게끔 만드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판단이 정확하다면 박근혜의 5년은 좋은 결과를 내기 힘들겠지요. 그런데 어쩌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모습은 사실 지지자의 입장이 아니면 잘 보기 힘듭니다. 분명 문재인도 100%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겠지요. 지지자의 입장에서는 그 사람의 과오가 잘 보이지 않기 마련이니까요. 그녀의 5년에 대한 보다 보편적이고 공정한 공과 비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지하지만 지혜롭기도 한 50대가 납득할만한 정권심판론이 먹힐 수 없을 것입니다. 잘한 부분은 잘했지만 안좋은 부분이 이러저러하게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걸 보완할만한 후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해야지 무조건 지난 정부는 개씨발호로잡놈의 정권이라고 매도해버린다면 그 정권에 표를 던지고 그 표를 던진 자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꾸준히 지지해왔던 유권자들은 마치 자신들에게 그 욕설이 향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더더욱 자신의 지지 성향을 꼭꼭 숨기고 표로서 자신을 변호하려 들것이기 때문입니다.

 

...

 

진정한 민주주의는 최악도 최선도 없지만

두 개의 사상이 수시로 바톤터치를 하면서

나라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시소게임을 하는...

그리고 가능하면 그 시소가 진동이 크지 않는 재미없는 시소가 되도록

어느 한쪽이 너무 급격하게 떨어져서 엉덩이가 아프게 되지 않도록...

 

어쩌면 이상론적으로 더 이상 치우침 없이 벨런스를 완벽하게 맞춰 수평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가 변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쩌면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박근혜를 지지하는 것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박근혜 지지자들에게 제대로 된 시각으로 박근혜를 바라볼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면

우리부터 박근혜를 지지자의 시점에서 제대로 보고 평가를 내리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