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과잉 보호 및 지나치다싶을만큼 자녀 교육열이 높은 것에 비해 일본은 그 다양성에 있어서는 자식의 미래에 대해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철저하게 자식의 인생은 자식의 인생으로 내버려두는 쪽이 이들의 스타일인데요. 아이의 인생을 먼저 앞서나가 컨트롤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방식이라면 한발짝 물러나 있으면서 쓰러지면 뛰어가서 잠시 일으켜주거나 상담을 들어주는 식이 일본식입니다. 따라서 어릴때부터 신동을 만들어내기 위해 조기교육을 시키거나 하는 풍경은 '진성 일본인'이라면 좀체로 보기가 힘든데요.
아사다 마오는 이 부분에서 조금 달랐습니다. 5살 때부터 자의였든 타의였든 피겨 부츠를 신게 된 그녀는 부모의 지독한 교육열에 의해 다소 혹독한 유년기를 거치는데요. 물론 이런 조기교육시스템은 피겨 자체는 물론 일본 사회 전반에 있어 지극히 보기 드문 시스템입니다. 부모가 직접 나서서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고 컨트롤하는 문화 자체가 생소하기 때문이죠. 아무튼 이러한 부모의 적극적인 관심과 조금은 타고 났다고 볼 수 있을 운동신경으로 아사다 마오는 같은연령대의 실력을 멀찌감치 추월하며 월반행진을 이어나갑니다. 연령별 국내대회 재패는 물론 에초 스타트 지점 자체가 달랐던 마오는 이제 막 진로를 정하기 시작한 초보 티를 못벗은 동연배들이 상대가 될 턱이 없었을테니까요.
이런 쾌속행진에도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던 아사다 마오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점은 역시 세계대회였습니다.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것은 어린 나이에 국내를 재패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니까요. 때마침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피겨 선수들을 육성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던 일본은 마오의 급성장과 그에 따른 눈부신 성과에 반색합니다. 쥬니어 대회의 우승이긴 했지만 피겨 대회의 특성 상 한번 만들어진 세대에서 최강자가 된 이상 그 세대는 고스란히 황금세대가 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미셸 콴처럼 한 사람의 선수가 그 세대 자체를 꾸준히 지배한 사례는 피겨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으며 대부분 같은 세대에 태어났던 2인자들은 그들을 현역 내내 뛰어넘지 못했으니까요.
이제 초등학생 티를 겨우 벗기 시작한 그녀에게 쏟아지는 언론의 관심은 실로 엄청났습니다. 건전한 이미지에 광고 요청이 쇄도했고 그런 와중에서도 성적은 꾸준히 이어졌었죠. 당시 김연아가 등장합니다만 당시 수준으로서는 아직 마오를 넘지 못했었기에 일본이 마오에게 거는 기대는 거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피겨의 신 세대를 만들어낼 뉴에이지 세터가 등장했다고 말이죠.
그런데 이런 승승장구 속에서 김연아라는 존재가 무섭게 성장하며 추격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걸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일본에게 갑자기 얻어맞은 마지막 쥬니어 대회에서의 역전패는 정말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일본이 믿고 있던 시나리오는 향후 10년간 마오의 독무대가 될 절대강자 마오의 모습이었지 도중에 한국에게 그 행보를 발목잡히게 될 것은 계산에 없었던 일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첫 시니어 대회였던 2006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마저 김연아에게 패배하자 일본은 6년여간 마오 전담 코치였던 야마다 마치코를 대신해 미셸 콴의 전담 코치로 이름을 알린 라파엘을 전담 코치로 앉히고 피겨계의 전설로 통하는 타라소바를 음악, 안무 담당에 배정하는 등 이른바 '마오 최강자 개조'프로젝트에 착수합니다. 일본의 안좋은 풍토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겠는데요 자식을 길러낼때에는 철저하게 후견인으로서 일관하더라도 이미 아이가 성장하여 일정 수준 이상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어이의 포텐셜을 단 1포인트라도 잃지 않기 위해 직,간접적인 설레발을 통해 당사자에게 부담감을 가중시키게 되는 것이죠.
다시말해 그 선수의 미래 달성 목표를 그 선수가 정하는 게 아닌 언론과 여론이 이미 정해버리고 그에 맞춰 국가는 그 선수를 억지로라도 그 위치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갖은 지원을 퍼붓는 것입니다. 일본은 책임을 지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는 사회 풍토가 자리잡고 있어 원인이 어떻든 일단 여론이 원하는 정도까지 그 선수가 도달하지 못하면 누구든 그 책임을 져야하며 만일 지지 않기 위해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는 걸 증명해야만 합니다. 마오의 TV CM 출연 등으로 적지 않은 이득을 본 후견인들은 이미 '공공재'가 되어버린 마오가 기대치만큼 성정하지 못할 것에 대한 화살이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을 우려했던 것이죠.
이런 항생제같은 특별 과외는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듯 싶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거의 같은 시기였던 2006년 7월 김연아의 전담 코치로 영입되었던 브라이언 오서에 비해 러시아의 선진 피겨 기술을 주입시킨 마오의 기술은 다시금 시대를 압도하기 시작했으니까요, 트리플 악셀은 빠르고 날카로웠고 고난도 기술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김연아와의 차이를 확고히 합니다. 김연아는 당시 고질적인 부상에다가 새로운 코치의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피겨 방식을 아직 완전히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죠.
그런데 운명이란 참 오묘하게도 김연아의 부상이 회복되고 차츰 오서 코치와의 호흡이 맞아가는 와중 마오의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합니다. 트리플 악셀이 성공한다면 고득점은 확실하지만 성공하지 못할 경우 그냥 안뛰니만 못한 감점을 각오해야 했으니까요. 여기에 오랜 기간 말도 잘 안통하는 외국인 코치들과 거의 개인교습에 가까운 외로운 생활이 계속되자 멘탈리즘에도 서서히 문제를 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트리플 악셀 성공율이 좀체로 높아지지 않고 김연아가 무섭게 뒤를 추격하자 라이벌의 존재보다는 마오의 독주가 필요했던 일본은 라파엘 코치를 대신해 안무, 음악을 담당해 왔던 타라소바를 새로운 코치로 부임시킵니다.
당시 일본은 마오가 선진 피겨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음악과 안무를 담당하는 타라소바가 직접 담당하지 않아서 생기는 라파엘 코치와의 코드 차이에서 오는 갭이 있었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만, 이런 상황에서도 마오의 멘탈 상태를 문제삼거나 우려하는 목소리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코치 타라소바는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인데다가 자신의 경력에 대한 상당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화려한 경력에 대한 자부심과 편견이 매우 심했는데요. 이것이 두고두고 마오의 선수생활을 망가뜨리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타라소바는 코치가 된 이후에도 마오를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모습을 자주 보이지는 않았으며. 대부분의 연습 과정 밎 교육을 부코치에게 위임한 채 자신은 이전과 다름없이 음악과 안무 작성에만 열중합니다. 문제는 이 '코치'라는 직책이 타라소바에게 가져다준 마오 팀 내에서의 입지인데요. 일단 치프 코치이다 보니 다른 부코치들은 이 타라소바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고 여기에 타라소바 특유의 아름답지 못한 성격에 비뚤어진 편견까지 결부되어 자신이 정말 완벽한 곡과 안무를 만들어주었는데 그 아름다운 곡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마오와 코치진을 다그치는 것 이외에 이렇다할 가르침이나 노하우 전수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타라소바가 만드는 안무와 음악은 이전 10점 만점제가 시행되던 기술 피겨의 시대에 걸맞는 어려운 기술을 가능한 많이 구사하고 강력한 카리스마로 관중을 압도하는 무겁고 음울한 분위기의 이른바 '최강자 포스'를 내뿜는 작품들이 많았는데요. 이런 피겨 스타일은 동양인 체형의 자유분방하고 발랄한 이미지와 그에 걸맞는 피겨를 해왔던 마오에게 소화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오의 이러한 어려움은 여론의 기대감에 묻혀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죠. 이미 마오로 인해 많은 돈을 벌었던 후견인들은 이른바 '마오로 인해 얻은 지분' 즉 주가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마오에 대한 안좋은 기사나 소식들은 최대한 밖으로 세어나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은폐 관리했던 것입니다.
코치진은 코치진대로 타라소바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마오를 타라소바가 만든 안무에 맞춰 낼 수 밖에 없었는데요. 트리플 악셀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평소의 회전 속도보다 더 빠르고 점프도 훨씬 높아져야만 하는데다가 뛴 다음에 재대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근지지력, 그리고 그 뒤에 다른 점프를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의 강인한 체력이 필요했습니다. 마오는 이들에 의해 강도높은 체력훈련을 받으며 트리플 악셀의 성공력만을 높이는 데에 전념하게 되죠.
이렇게 정체되는 동안 김연아는 오서 코치가 의도한 만큼의 포텐셜을 서서히 폭발시키며 시대를 지배해나갑니다. 그러나 언제나 결정적인 그랑프리 파이널이나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마오에게 간발에 차로 밀리거나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죠. 이 당시 마오는 적어도 자신에게 걸린 기대감을 무너뜨릴 우려가 있는 큰 대회에서만큼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이 버텨내기 힘들 만큼의 무리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으며 이는 정상적인 플레이로는 도저히 김연아를 이기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마오의 몸이 남아날 리가 없었죠. 결국 부상에 신음하며 올림픽을 목전에 둔 2009 그랑프리에서 마오는 최악의 연기로 김연아에게 완패합니다. 패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경기력 역시 현저히 떨어져 있었죠. 이를 사실상 처음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 일본 국민들은 경악했습니다. 밴쿠버 올림픽을 향한 순항이 계속되고 있다고만 생각했던 일본은 마오의 드러나지 않았던 불안 요소가 일시에 폭발하자 원인조차 제대로 찾지 못한 채 허둥댔으며 언론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죠.
마오가 무너진 데에는 무리한 체력 훈련에 따른 부상이라고 알려져있긴 했습니다만 사실 부상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보다는 마오의 멘탈 문제가 가장 크지 않았나 하는데요. 마오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타라소바의 가르침에 이렇다할 반기를 들지 않은 채로 묵묵히 최선을 다 해 왔습니다. 그녀를 견디게 할 수 있었던 건 다름아닌 '타라소바'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제대로 된 학창시절을 겪었다고 보기 힘든 그녀에게 있어 정신적 성장은 또래들에 비해 지극히 느릴 수밖에 없었고 그녀에게 있어 '코치'의 존재는 절대적이었습니다. 언제나 최고라고 인정받고 칭찬받으며 그것을 위해 피겨를 해 왔던 그녀에게 있어 타라소바에게 인정받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없었을테니까요.
그런데 타라소바가 2009년 무렵부터 당뇨를 이유로 아에 연습장조차 나오지 않게 되는 일이 잦아지자 그녀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던 마오의 멘탈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나마 칭찬은 거의 나올리가 없을 성격의 타라소바였겠습니다만, 아직 심적으로 나약할 수밖에 없었던 마오에게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될 의지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녀가 무너진 시점은 타라소바가 건강을 이유로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시기와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사태가 이쯤 되자 마오를 이용해 돈을 벌었고 앞으로도 많은 돈을 벌어야 할 마오의 후견인들은 이른바 똥줄이 타기 시작하는데요. 투자한 것도 있지만 만일 마오가 이대로 무너진다면 국민적인 책임론 저항에 자신들 역시 크게 휘말릴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여기에 쇄도하던 광고 요청이 뚝 끊기고 동시에 개런티도 급락했으며 언론 역시 마오에게 서서히 등을 돌리는 등 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그야말로 파토 직전까지 몰리는데요. 이들은 정말 최후의 수단으로 이른바 항생제를 주사하듯 마오의 대외 활동을 철저하게 제한한 채 마오의 경기력 향상에 거의 모든 것을 걸게 됩니다. 반년 남은 올림픽에 거의 모든 것을 걸겠다는 심산이었죠. 물론 이 처방도 그리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그냥 계속 이 상태로 대회를 내보내서 멘탈을 망가뜨리기보다는 은둔시켜서 제대로 몸이 만들어질때까지 대회 출전을 시키지 않는 것 뿐이었고 주안점은 여전히 트리플 악셀 등 고난도의 기술을 소화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죠.
그 뒤 약 반년만에 돌아온 마오는 이전의 불안한 모습을 완전히 벗고 트리플 악셀을 실전에서도 완벽하게 소화하는 등 마침내 완성형 '병기'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만, 말 그대로 점프 뛰는 병기가 되었을 뿐 밝고 명랑한 이미지의 마오는 점차 입에서 그 특유의 밝은 미소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체형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으며 경기 스타일 역시 선이 굵은 연기를 스크립트 대로 망설임 없이 소화하는 모습을 보이며 다시금 일본 내 여론을 반전시키는 데에 성공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타라소바의 안무와 음악에는 정말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었습니다만, 그것은 마오의 안무 소화 여부를 떠난 '캐릭터 파악'부터 빗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마오의 얼굴은 턱이 거의 나오지 않고 전체적으로 얼굴선이 가는 아직 소녀 티를 벗지 못한 전형적인 일본식 여성의 캐릭터, 한마디로 '동안'이었습니다만, 그녀의 프로그램은 강인한 여전사를 연상시키는 의상과 이를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안무, 그리고 그에 걸맞는 고난도의 점프가 주를 이루었던 것이죠. 그 결과는 이번에 올림픽에서 여러분들이 지켜보신 그대로입니다.
이른바 숙명의 라이벌이라 불리는 두 명의 천재 피겨스케이터의 운명은 시니어에 데뷰한 2006년부터 2010년 밴쿠버 올림픽까지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걷게 된 것 같습니다. 김연아는 오서라는 그녀에게 더할 나위없는 파트너를 만나 그 꽃을 정말 화려하게 피워낼 수 있었던 반면 마오는 그녀를 위한 그 어떤 것도 운으로서 주어지지 못했던 결정적인 갈림길이 있었던 것이죠. 단지 운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다른 인생을 걷고 있는 그녀들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마오가 걷는 길이 평탄해보이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실력 외적인 부분까지 마녀로 치부되고 있는 아사다 마오입니다만, 그냥 선수로서는 누구보다 피겨에 대한 열정이 강하고 순수한 선수일 뿐이었죠. 너무 순수했기에 일련의 불합리한 조건 속에서도 오히려 그 속에 순응하며 타라소바 코치에게 인정받기 위해 맞지 않은 옷을 입고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내 이번 올림픽에서 폭발시켜낸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피겨의 트랜드는 타라소바의 고지식한 20세기 피겨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현대적인 '예술적 아름다움'과 '물 흐르듯 부드럽게 이어지는 연기의 자연스러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김연아는 이러한 트랜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오서라는 최고의 파트너를 만나 자연스러운 연기와 부드러운 표정으로 장내를 압도한 반면 마오의 연기는 아무런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은 짜여진 대본에 의한 그것이었고 마오 역시 패턴을 소화하는 데에 그쳤을 뿐 자연스럽게 연기에 동화되지 못했죠. 게다가 그녀의 소녀틱한 이미지를 전혀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보여주는 카리스마 연기는 화려한 불협화음을 야기하며 심판진의 마음을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일본에서는 '김연아의 심판 매수설' 이 나오고 있다고 한국에 보도되고 있는 걸로 압니다만, 실제로 신문,TV같은 메스미디어의 반응은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알려진 것과는 반대로 '김연아는 어떤 변수로도 어떻게 하지 못할 절대 범접할 수 없는 최강포스'라는 걸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죠. 이는 김연아를 재빨리 새로운 피겨계의 상품으로 만들려는 것과 동시에 아사다 마오의 패배를 정당화하려는 포석이 깔려 있습니다. 즉 마오가 못해서 진 게 아니라 김연아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졌다고 말이죠. 우리가 축구에서 브라질에 3:2로 패배했다고 한다면 아무도 선수들을 질책하지 않듯이 일본은 김연아를 지나칠 정도로 띄움으로서 마오에게 가는 타격을 줄이는 데에 열심히입니다.
마오 인터뷰를 자세히 들어보면 주목할만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제 연기는 트리플 악셀 두 번....그것뿐이었습니다' 와 '2014년 소치 올림픽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인데요. 마오 역시 올림픽이 끝난 시점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피겨가 자신에게 맞지 않았음에 대한 의사를 처음으로 표현하는 한편, 2014년부터는 자신만의 피겨를 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마오의 이번 올림픽 은메달 이상의 성적이 소치에서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급격한 성장을 보여준 한국의 곽민정과 미국의 나카스 미라이 등 유망주들이 즐비한데다가 다시 스타트 지점부터 재시작하다시피해야하는 마오에 비해 너무 멀찌감치 앞서가 있는 연아를 따라잡기에는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죠.
마오가 결코 나쁜 성적을 거둔 건 아닙니다만 일본 여론의 기대치, 즉 '목표가'에 못미친 주식이 되어버린 마오는 정말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점차 주류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의 신성들은 지금도 쑥쑥 크고 있고 어디에선가 불쑥 제 2의 마오라도 등장한다면 캐릭터가 겹치는 마오는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리게 될 것이 분명해보이니까요. 하지만 이후 어떤 성적으로 어떤 선수 인생이 되더라도 자신에게 있어 후회가 없는 선수 인생을 남길 수 있는 길을 가기를 바래봅니다. 적지 않은 재능과 피겨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충만한 선수 아사다 마오, 그녀만의 피겨 연기를 다시금 은반 위에서 볼 수 있기를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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