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1. 5. 9. 06:34
진퇴유곡이라는 말이 있다. 이래나 저래나 죽긴 매한가지인 상황을 빗대는 말인데, 사실 나가수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김영희 PD의 야심작이었던 나가수가 기획했던 포텐셜을 채 폭발시키지 못하고 좌초될 위기에 처했던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김영희 PD는 그 오랜 기간 공들여 기획했다는 나가수를 어떤 이유여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준비한 시간의 채 10분의 1도 견디지 못한 채 떠나가버렸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왜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김영희 PD는 완벽주의자이다. 그리고 그 빈틈없이 1인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방송조직의 핵심으로 자리잡을 만큼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능력들 역시 하나같이 준 프로급 이상으로 준비했던 사람이다. 그만큼 자기 작품에 대한 고집이 대단하고 그래서 더 자기 작품에 대해 비판을 받거나 의도했던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공들인 기간이 무색할 만큼 너무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필자는 지금 김영희 PD를 비판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김영희 PD가 나가수를 기획한 의도를 생각해본다. MBC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가요'프로그램에 대한 욕심이 대단했고 어느 정도 노하우도 있었다. 문제는 언제나 '시청율'이었다. **예술무대 시리즈는 정말 수준급 아티스트들이 대거 출연하여 수준높은 공연을 안방까지 전해주었던 '좋은'프로그램이었지만 언제나 제작비 대비 시청율 부족으로 인해 자선사업과 다름없게 운영되며 주말에 가까웠던 프로그램이 주중 한가운데 수요일로, 그나마 프라임 타임에 근접했던 시간대가 점점 까마득한 심야 시간대로 밀리다가 못해 폐지되었다.


TV의 가장 큰 장점은 '무료'다 우리는 '문화'를 얻기 위한 대부분의 수단에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에 살고 있고. 그것은 가요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TV에는 음악성을 느끼기에는 한참 부족한 아이돌의 잔치가 된 음악 프로그램만이 넘쳐났고 제대로 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은 모두 유료 콘서트장에 한정되고 있다. (아이돌 음악이 제대로 된 음악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게 아니다) 물론 좋은 공연에 가치를 지불하는 지금의 시장이 문제될것은 없다. 그러나 그게 정말 (자신의 주관상)'좋은 음악'인지 아닌지를 제대로 구분하기 위한 '트라이얼'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음악이 3사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음악만 있는 게 아닌데, 점점 자라나는 세대들은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그리고 기성세대 역시 그들이 인정할 만한 음악 다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생각에 7080음악을 추억하게되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결국 제대로 음악을 하는 가수도, 그리고 제대로 음악을 하려는 가수 지망생들도, 제대로 된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음악 애호가들도 모두 죽게 되는 세상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김영희 PD가 나가수를 기획하게 된 동기 역시 이와 일치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제대로 된 음악이 나오는 환경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시청자들의 귀'를 틔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좋은 가수들이 제대로 극한까지 가창력을 끌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하지만 KBS의 금요일 심야, SBS의 평일 심야같은 시청율 사각지대에 놓여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이미 귀가 트인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귀가 트이지 않은' 사람들을 트이게 만드는 것이 나가수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귀가 트이지 않은 사람이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시간대에 방영되어야 했는데, 이미 한번 음악여행 라라라의 심야 프로그램 진입이 결국 호평 속 시청율 부진이라는 전통적 언발란스 결과를 도출한 채 실패했던 최근사례가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번 프로그램의 프라임 타임 진입은 기획의 흥망을 결정할 핵심요소였음에 틀림없었다.

시기도 괜찮았다. 때마침 그가 지분을 가지고 있을 일밤이 시청율이 바닥을 기고 있던 상황이다. 일요일 저녁,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간대였다. 그러나 문제는 시청율이다. 수요예술무대와 다를 바 없는 밋밋한 프로그램이 일요일 프라임에 살아남을 만큼 민방의 세계는 만만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영희 PD는 너무 음악만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적절히 버라이어티성을 가미하는 한편, 지금까지 '아티스트'라 불리우며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던 가수들의 지위를 일격에 떨어뜨리는 대변혁을 시도한다. '당신은 지금부터 가수지망생이 되어 관객들에게 오디션을 치루듯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지금까지는 어디까지나 그 가수를 알고, 그 가수의 노래를 들을 생각이 충만한 사람들만을 상대할 수 있는 자기중심의 라이브 무대에만 서 왔던 그들, 그래서 언제나 우러러바라보이는 것에 익숙해왔던 그들에게 주도권을 빼앗아 시청자들에게 돌려준다는 발상까지... 그의 생각으로는 이보다 완벽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그의 기획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잠재되어 있었는데 다름아닌 '포멧이 너무 완벽했다'라는 것이다. 즉 시청자들은 그런 완벽한 포멧을 받아들이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포멧에 담긴 그의 속뜻을 읽어낼 만큼은 소통하지 못했다. 사실 시청자가 PD의 의중을 반드시 읽어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 완벽한 포멧을 가감없이 받아들인 시청자들은 김영희 PD가 그 완벽한 기획을 스스로 깨버리고 재도전을 허용하는 모습에 배신감을 느꼈다. 물론 이유는 포멧이 너무 완벽했기 때문이다.

김영희 PD는 그 완벽한 포멧을 시청자들이 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출연하는 가수들이 더 많이 받아들여주기를 원했을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합법적 압박이다. 강요하지 않은 압박을 가수들이 자기 멋대로 느끼고 자기 멋대로 긴장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노렸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것은 시청자들 역시 그러한 압박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가수들이 이런 자신들의 급작스런 방송상의 신분 변화를 받아들이는데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결국 결과는 다들 잘 아시는 것처럼 나가수의 좌초로 이어지게 되고, 휴방인지 종방인지 알 수 없는 여운만을 남긴 채 한 달이 흐른다.


신정수 PD가 바통을 이어받은 뒤 가장 많이 이야기가 나온 건 나가수의 본질이 훼손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밖에도 김영희 PD혼자 다 하던 것들을 각 분야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집단제작체제로 바꾼 조직의 변화 역시 볼 수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그동안 단지 위협과 자극이 전부였던 프로그램 포멧에 재도전 없는 무조건 탈락이라는 절대적인 긴장감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초콜릿,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며 음악을 즐기던 사람들이 속속 나는 가수다에 대한 기대를 접게 되었다며 아쉬워했던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가수들이 더 좋은 무대를 보여주고 싶다는 순수성을 잃은 채 인기 위주로 흘러 순위에만 집착하게 되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필자는 이들의 의견에 대체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나가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정수 PD가 무엇보다 중점적으로 노력을 기울였던 건 '인적 쇄신'도 아니었고 '자기 입맛대로 포맷을 바꾼 것'도 아닌, 결정적으로 '나가수'가 좌초되지 않게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 했다.라고 보고 있다. 만일 여기에서 나가수가 시청자들에게 다시금 외면받으면 더 이상 이런 기획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음악계의 정파가 살아남을 미래도 없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가수 중심에서 결국 '시청자 중심'이 되었다며 나가수의 지금의 모습에 아쉬워하지만 난 신정수 PD를 비롯한 지금의 제작진들에게 정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디까지나 나가수는 살아남았고 복귀했으며 임재범을 비롯, 갖은 화제를 낳고 있고 시청율도 껑충 뛰어올랐다. 고품격 음악 프로그램을 표방하는 KBS의 심야 라인도, 그와 유사한 SBS 심야 라인도 어디에서도 해내지 못한 '정통 음악 프로그램'의 프라임 타임 안착을 지금 그들이 어떻게든 해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나가수는 여전히 훌륭한 가수가 나와서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훌륭한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그것도 10대부터 50대까지 고른 연령대가 듣고 느끼고 감동하며 즐거워할수 있는 그런 음악 프로그램이 '민방'에서 프라임 타임에 내걸리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본질은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다소 가벼울 수 있을 개그맨들의 애드립을 섞거나 무한도전틱한 편집까지 하면서까지 가능한 시청자들의 요구를 수용해 시청자들이 외면하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노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절절하다.

물론 이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가 트이신 분들이라면 평일 심야 고품격 음악 프로그램에 비해 나가수가 가지는 지금의 모습이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나가수는 수요일 심야에 하던 수요예술무대를 일요일 프라임 타임으로 옮겨오면서 가능한 장수하기 위해 일반적인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게끔 개량하면서도 이미 귀가 트이신 분들의 요구도 가능한 수용하려는 노력을 결코 게을리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일 나가수가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음악적 완성도만을 추구하고 매니아들의 요구와 입맛에 맞추다 보면 결국 이 프로그램은 다시 수요일 심야로 돌아가게된다. 그렇게 되면 일반 시청자들의 '음악을 들을 권리'는 다시 찾아오기 요원해질지도 모른다. 어떻게 얻은 프라임 타임인가, 제작 성향은 다를지언정 김영희 PD와 신정수 PD의 마음은 같다. 나가수는 어떻게든 프라임 타임에 남기고 싶다라는 것, 처음 기획했던 본질은 '일요일 저녁 프라임 타임에 방송되는 수요예술무대'가 아니었던가? 필자는 이 주제 하나만 놓고서라도 정신이 아득해질만큼 앞이 안보이는데 그들은 지금까지의 축적된 경험과 인맥을 총동원해서 여기까지 와 있다.

이제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줘야 한다. 응원의 박수도, 프로그램 잘봤다고 쳐주는 격려의 박수도 아니다. 그들에게는 또 나와달라는 '커튼 콜'의 박수가 필요하다. 하루에도 열번 이상 때려치고 싶은 기분이 들 듯한 그들에게 '다음에 한번 더 해주세요'라는 박수가 필요하다. 그것이 아마도 우리가 할 수있는 그들에 노력에 대한 최대한의 찬사가 아닐까?

posted by RushAm 2011. 5. 7. 16:13
일단 박재범이 왜 지금 시기에 뮤뱅에 나왔는지 재미있지 않은가? 타이밍 정말 기가 막히다. 2PM은 국내 활동을 잠시 쉬고 일본에 아예 넘어가있는것으로 보이고 그밖에 JYP계열 그룹들이 일제히 자취를 감추는 이 기막힌 틈새시점에 이른바 '얼리버드 복귀'를 했다. 그런 와중에도 기획사들의 철저한 동업자 정신(?)으로 라디오 및 TV에서는 철저하게 외면받았던 가운데 순수 팬덤만으로 1위에 올려버리는 일찌기 보기 힘든 사례도 탄생시켰다.


놓치고 있는 첫번째는 이같은 특수한 환경이다. 박재범의 1위에 대해 뮤직뱅크의 순위 산정 기준을 들먹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사실 뮤직뱅크의 순위 방식 중 가장 의야스러운 점이 바로 '디지털 음원'이나 '음반 판매량'이 아닌 '시청자 선호도'와 '방송 노출도'다. 음반이나 음원은 얼마든지 수치상으로 확인이 가능하지만, 이 시청자 선호도는 대체 어떻게 분석하는지 데이터도 나와있지 않다. 방송 노출도? SM의 캡숑파워로 거의 모든 TV프로그램 엔딩곡이 f(x)의 피노키오로 도배되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게 과연 '시청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인터랙티브함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을까?

놓치고 있는 두 번째가 바로 이 인터랙티브함의 문제이다. 대한민국에는 애석하게도 디지털 음원 이외에 종합적인 판매량 순위를 확인할 이렇다할 근거가 없다. 여기에 철저하게 비주류 지하돌 팬덤을 구축하고 있는 박재범 팬덤의 타의적 폐쇄성 탓에 도무지 어느 정도의 잠재적인 인기가 있었는지 일반인들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는 박재범 팬덤이 의도적으로 지하돌 활동을 원했던 게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해지는데, 이들이 '팬 활동'이 아닌 '응원'형태의 활동 방식을 추구하면서 다른 팬덤, 특히 JYP계열 팬덤과 자주 부딪혔음은 물론 방송 노출이나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것에 대해 팬 개개인의 활동만으로 미디어 노출을 이루기 어려운 장애물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즉 블로거들은 기획사들의 알력관계를 너무 얕보고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업계 내에서는 그 이상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은 게 그들인데도 말이다.

  세 번째로 놓친 부분은 바로 이들의 '구매 성향'이다. 박재범의 팬덤은 너무 오랜 기간 '지하돌'화 되어 있어 마치 찌르면 걷잡을수없이 폭발해버릴듯한 극도의 코어성이 내재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즉 지금의 박재범 팬덤은 많지 않은 인원 속에서도 구매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이른바 '무조건 산다'는 절대구매층이 다수를 이루고 있으며 이들의 경제력 역시 현재의 아이돌 팬 연령대보다 현저히 높게 형성되어 있는 탓에 충분히 뒷받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의 구매 목적 역시 지금까지의 아이돌 구매 성향과는 크게 다른 '순위'를 높이기 위한 '주식시장'의 작전 세력과 같은 치밀하고 고차원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대중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런 활동이 물론 '실제 인기'를 반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박재범 팬덤이 '실제 인기'라고 우기기 위해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도 보기는 힘들다. 그들은 단 한주만이라도 그를 1위로 끌어올려 뮤직뱅크가 결과를 무시하기 어렵게 해서 박재범을 출연시키고 박재범의 1위 수성을 발표하게 만드는 '짧고 굵은' 응원을 한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은 방송에 나오게 되어 한 번이라도 듣게 되어 아주 조금이라도 그들의 팬덤이 수가 늘어날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중요한 건 이런 활동이 '기획사'가 아닌 '팬덤'이 중심이 되어 움직여진 사례는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희귀한 사건이라는 데에 있다. 당연히 일방통행식 음악 콘텐츠 공급에 익숙해진 대중에게는 매우 생소한 시스템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에는 이런 사례가 꽤 많아서. 가요 프로그램이나 라디오에서는 전혀 들을 수 없는 (즉 일반인이라면 모르는 게 당연한) 정말 매니악한 성우들의 음반이나 지하돌 (언더그라운드 아이돌) 혹은 애니메이션 주제가들이 오리콘 주간 상위권을 확 휩쓸고 다음주에 자취를 감춰버리는 경우를 왕왕 볼 수 있다. 물론 '소수'의 팬덤이 이런 일을 저지른다. 이들은 발매일에 맞춰, 혹은 오리콘이 집계를 시작하는 날에 맞춰 1주일간 집중적으로 사재기 작전을 벌여 점수를 높인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순위는? 처음에는 100% 팬덤의 힘으로 이루어지지만 다음 싱글에는 그 당시 그 순위를 보고 한 번쯤은 그 음악을 들어본 사람들 중 그 음악을 '마음에 들어했던' 사람들이 일부 섞이게 된다. 즉 10:0이었던 팬덤과 일반 비중이 9.9:0.1 정도로 아주 미세하게 확장되는데, 이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이 좋아하고 응원하는 아티스트들을 오리콘에 노출시킴으로서 팬 스스로 '키워내는' 응원을 하게 된다.

약빨떨어졌다고 해도 국민밴드였던 스핏츠와 나카시마 미카를 즈려밟고 애니메이션 음반이 '위클리'1위, 사실 AKB도 시작은 이런 식이었고, 지금의 신한류 일본 정복도 이 범주에서 대부분 벗어나기 힘들다


 박재범은 그 팬덤의 규모에서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음주에 순위가 급락하거나 아예 방송 출연을 다시 하지 못하는 등의 결과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당연하겠지만 블로거들은 다음 주 뮤직뱅크에 그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포스팅이 양산될것이다. 박재범의 팬덤도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겠지만, 아무래도 태동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같은 팬덤 성향에서 아직 어떤 추가적인 작전을 걸게 될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당장의 여론에 대한 아쉬움에 아마도 무모하리만큼 다음 주에도 어떻게든 순위권에 안착시키려고 음반을 다시금 10장, 20장 공동구매하는 식으로 순위를 높여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박재범 팬덤의 이러한 시도가 과연 또 어떤 벽에 부딪히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우 신선한 시도라는 점은 분명하다. f(x)의 피노키오가 1위를 했다고 '국민가요'가 된 게 아닌 것처럼 이미 지금의 '순위'는 전국민적인 공신력을 얻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단지 박재범의 사례는 순위조차 '홍보 수단'이 되는 이런 상황을 대형 기획사가 아닌 '팬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졌다는 점이 특이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블로거들이 놓치고 있는 것,

이미 조직표와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이 바닥에서

'가요순위프로'의 공신력 따위는 에초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posted by RushAm 2011. 4. 24. 17:54
대한민국에서 참 태어나기 힘들고, 살아남기도 힘든 캐릭터를 지닌 노홍철, 지난 무한도전에서 보여준 '거상 노만덕' 캐릭터 당시 정말 많은 여성들에게 어필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가 특별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냥 재미있고 유쾌해서라고 한다면 설명이 부족하다. 그가 무한도전에서 참 재미있고 신기하며 보고만 있어도 유쾌해지는 캐릭터인것은 분명하지만 웃기는 것만으로 여성팬들에게 그런 절대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그렇다고 그가 얼굴이 '매우 잘생겼'거나, 여성들에게 매우 호감이 가는 얼굴인 것도 아닌 것 같다. 키도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여자들이 싫어하는 대표적인 남성들의 특징인 '큰 머리'를 가지고 있다. 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있지만 이런 스타일은 철저하게 호불호가 갈린다. 그런 그가 거리에 나타나면 여성팬들이 구름처럼 몰린다. 그가 내미는 상품을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뭉텅뭉텅 사준다. 국민 MC 유재석이 같은 미션에서 여성팬들로부터 매우 계산적인 처우를 받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비교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건 단지 그가 '연예인'이라서가 아니다. 인지도는 유재석이 더 높은데 어째서 유재석은 그런 구름같은 여성팬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을까? 단지 품절남이라서?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할 것 같다. 유재석과의 차이가 아니라 노홍철만이 가질 수 있었던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그에게 수많은 여성팬들을 안겨줬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그가 무한도전이 본격적으로 안정화되기 시작한 4년여 전 유행시킨 유행어가 하나 있다. 다름아닌 '소녀팬'이라는 단어인데, 사실 노홍철의 인기는 이 '소녀팬'이라는 단어에 거의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소녀팬'이라는 게 단어로서 계속 되뇌이거나, 가지고 싶다고 생각만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면 노홍철은 그렇게 '반 새뇌식' 팬몰이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포인트는 '소녀팬을 계속 되뇌인' 데에 있는 게 아니라 '소녀팬'이라는 단어 자체에 있다.


우리는 만 13살부터 18살까지의 여자 사람들을 흔히 뭐라고 부르는가? 열이면 아홉이 '여학생', 혹은 나이를 통한 현재 학력을 유추해 '여중생','여고생'등으로 부르곤 한다. 이미 우리는 그 단어 자체가 '아직 성장기를 겪고 있는 풋풋한 여자'를 일컫는 대명사가 되어 있다. 그들이 일과 중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끔찍할만큼 긴 것도 사실이고 학생은 공부나 해야한다며 타의적으로 학교에 처박고 학원에 처박고 처박히는 일생을 살아오고 있는 것도 틀리지 않은 현실이지만, 정작 그 '학생'이라는 표현을 그들이 '달가워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다.

그들은 '여자'이고 싶다. 꾸미고 싶고 여성스러워지고 싶다. 더 가슴이 커졌으면 좋겠고 더 다리가 날씬해졌으면 한다. 입술이 더 섹시해졌으면 좋겠고, 머리도 좀 더 길게 길러봤으면 싶다. 다시 말해 특히 '그 나이대 여자'들은 '학생'이라고 불리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성인 여자'로 취급해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우리는 철저하게 '여학생'이라고 불러왔다. 그 여학생이라는 단어가 다시는 못올 풋풋함의 상징이라는 새뇌까지 해대면서 말이다.

이승철의 '소녀시대'가 대히트를 친 건 단지 음악때문만안 아니었다. 그는 '어리다고 놀리지말아요!'라며 그들 대신 기성세대들에게 일갈해준 든든한 '오빠'였으니까...


그들을 노홍철은 처음으로 '소녀'라고 불렀다. '여학생팬, 여고생팬'이 아니라 '소녀팬'이라고 불렀다. 처음부터 그에게 소녀팬이 그렇게 많았을리는 없다. 하지만 그가 부르짓는 '소녀팬'이라는 단어는 응당 '여학생'이 아닌 진즉에 '소녀'라고 불리웠어야 할 '소녀'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제서야 깨닫는다 -그래 우리는 여학생이기 이전에 '소녀'였다고 말이다

민감한 나이대, 어른들로부터 인정받고싶어하는데에 익숙한 이 사회에서, 처음으로 자신들을 '소녀'라고 불러준 '어른'이 있었다. 그것도 그들이 대통령보다 위대하다며 동경하는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말이다. 노홍철이 정말 여기까지 계산하고 그런 말을 만들어 부르짖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가 그들을 부를 때 쓴 '소녀'라는 호칭은 '소녀'들의 가슴에 불을 아주 제대로 지핀 셈이 됐다. 노홍철은 본의아닐수도 있게 소녀팬들에게 있어서는 '자신을 처음으로 여자로 봐 준 남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소녀...라고 불렀다.


홍철은 솔직한 성격이 장점이다. 그는 결코 입바른 소리를 하지 않는 이미지를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소녀'라고 부른 그 한마디는 소녀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소녀'들에게서 '소녀'라는 호칭을 빼앗아간 우리 사회에서 그는 본의아닐수도 있게 잃어버린 '소녀'들의 '소녀'를 그들에게 되찾아주었다. 유행어가 되어 정착된 '소녀팬'이라는 단어는 음악방송 공개홀에서 동경하는 오빠를 향해 부르짓는 여자들을 더 이상 '빠순이'나 '학생팬'으로 부르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학생'은 음악방송 공개홀에서 소리지르면 안되고 공부를 해야 하지만 '소녀'는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이건 학생답지 않은 것이 아니라 소녀답다라고 표현해야 옮다. 극성팬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욕하기 전에 그들이 왜 '소녀'답지 않게 과격해질 수밖에 없었는지 먼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소녀들에게 있어서는 자신을 처음으로 여자로 봐준 사람이 되어버린 노홍철, 그는 예컨데 이를 모두 의도하고 그런 유행어를 만들어냈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그래서 그가 좋다. 이 세상에 어두운 면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밝은 쪽으로 이끌어 낼 것을 너무 의식하고 행동하다 일을 그르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는 아무 생각없이 자연스럽게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렇게 자신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걸 모르고 행동하는 사람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자연스럽게 기쁨을 주는 사람들이 이 나라엔 무척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소녀는 그냥 소녀라고 불러주면 되는 것이다
참 쉽지 않은가?
posted by RushAm 2011. 4. 22. 14:54
스마트폰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갑자기 그렇게 들어오라고 해도 안들어오던 스마트폰이 아주 봇물이 터지셨다.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아이폰은 구경조차 못해보던 이 나라가 이제 '스마트폰'이 아니면 신규 가입도, 기기 변경도 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스마트폰을 반 강제적으로 손에 쥐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활용할 것을 강요당한다.


딱 10여년 전이 그랬다. 인터넷 붐이 일었다. 그리고 PC가 마구 보급되었고 전국에 인터넷망이 마구 깔렸다. 세상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 처리하게 되었다. TV에서는 인터넷만으로 생활이 가능한지를 테스트하는 다큐멘터리가 연일 방영되었다. 관공서들과 은행, 각종 서비스 기업들은 속속 인터넷 서비스를 앞다투어 개시했다. 그렇게 이 세상은 속속 '인터넷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는 듯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이 '인터넷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으로 속속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인터넷은 '사용 수단'이지 필수 요소가 되어서는 안되는데도 말이다. 이는 인터넷 활용에 적응이 늦은 연배 있으신 분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태초부터 기계치가 있는 것처럼 컴맹, 인터넷맹이 있기 마련인데 이들은 인터넷이라는 세상의 '변혁'에 휘말려 희생을 강요당하고 말았다. '넌 이것도 못하냐'라는 지조섞인 비웃음과 함께...


왜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기까지 국민적인 저항이 별로 없었을까? 그것은 인터넷의 미디어적인 편리성 이전에 '경제성'을 내세워 보급에 속도를 붙였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우선 '공짜'였다. 모든 서비스가 공짜라는 점을 어디에서나 쉽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은 최소한 '오프라인'에서 파는 물건보다 훨씬 싸야만 했다. 안 그러면 팔리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오프라인 서비스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절차에 비해 훨씬 저렴한 '수수료'를 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왜냐하면 인터넷은 생각보다 '매우 불편'했으니까...

IT강국이라는 키워드에 취해 전 국민을 IT화시켜 마치 '젊은 엄마들의 아이자랑'마냥 세계 각료회의에서 인터넷 보급율 같은 범국민적 지표를 자랑하고 싶었던 이 나라는 그러한 수치적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국민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일원화시키기에 급급했다. IT가 잘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는 어디까지나 동등한 이용 권리를 주어야만 한다는 보편적 권리에 대한 개념은 이 나라에 없었다. 나이 든 중역들도 반 강제적으로 페이퍼레스 운동에 동참해야 했고, 그들은 이메일로 보고를 받은 다음 그것을 열지 못해 다시 프린트해서 보고를 받고 다시 그에 대한 답변을 서면으로 작성에 이메일에 옮기는 것을 부하직원에게 시키는 웃지 못할 일을 벌어야만 했다.


인터넷은 편리하지 않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다고 착각하는 이면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말이다. 인터넷 뱅킹을 예로 들어볼까? 우리는 '도장'하나로 모든 게 해결될 수 있었던 예전 송금 방식에서 'ID','패스워드','공인인증서 로그인 패스워드(영숫자혼합8자리 이상)','이체비밀번호','인터넷 이체 비밀번호 (영숫자혼합6자리 이상)'을 '직접'암기해야 한다. 여기에 보안카드 번호를 직접 '틀리지 않게 입력'해야 하는 수고도 들어간다.

다들 직접 방문하는 거리적 수고를 덜었다고 생각하는 이면에는 이런 불편함이 수반된다. 그리고 이같은 IT의 변화는 결국 국민들의 대대적인 손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터넷 쇼핑몰의 개인정보 유출, 인터넷 쇼핑몰 대형 미발송 사기사건, 그리고 최근 발생한 농협의 전산작동불능이 그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인터넷을 쓰고 싶지 않거나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을 싸잡아 우민화시키며 세상을 살아가는 선택권을 빼앗아가면서까지 우선 사지로 내던져 '알아서 살아남아라'는 식의 정책을 주창했던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국가가 있다.

컴퓨터를 못 하는 원숭이가 문제가 아니라 원숭이에게 컴퓨터를 던져 준 사람이 문제가 아닐까?


지금의 스마트폰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으며 쓰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나 막힘이 없다는 응답을 한 사람이 전체 사용자의 16.7%밖에 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 그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에서 특이점을 찾을 수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하고 잇다'라는 것, 미국이나 일본이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스마트폰'을 못쓰게 한 적도 없고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아닌 다른 것을 못쓰게'한 적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지 않을까?

십수년 전 인터넷 붐과 지금의 인터넷의 위상을 보면서 스마트폰 시대의 흐름을 본다. 이제 겨우 휴대폰으로 문자 보낼 수 있게 될만큼 '노력'했던 사람들이 스마트폰 시대로 인해 또 어떤 환경을 강요받게 될까? 이미 그에 익숙하고 배우기 쉬운 젊은 층이나 타고난 얼리어답터들이 아닌 소수일수도 혹은 다수일수도 있는 사람들을 일단 사지로 내던져 '억지로 그 흐름에 편승'할 것을 강요하고 전국민적 '타이틀'을 국가 '상표'로 이용하고자 하는 지극히 '공산주의적 사회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필자 뿐일까?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을 보면서 우리는 '가장 효율적'인 것이 가장 '경제적'일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가 농협 사태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인터넷 뱅킹이 '사람들'의 인건비를 줄이고 교통비를 줄일 수 있는 굴뚝 없는 산업 이라며 효율성을 부르짖었다. 그 끝이 농협의 끝없는 경제 논리로 인한 대형 참사라니 재미있지 않은가? 결국 우리는 그 작은 효율성을 추구한 결과 더 큰 손실을 가져오고 말았다. 그리고 거기엔 그 '효율성'과 'IT강국'이라는 포장지를 위해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생활 패턴을 시대의 흐름이라며 억지로 강요당한 것에 따른 시간적 낭비를 감수할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비효율'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효율성을 추구하다 보면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놓치게 된다. 후쿠시마 사태와 농협 사태는 이같은 공통점이 있다. 사람이 해야 할 일보다 '돈'이 우선시되었다는 것이 그것인데, 결국 피해는 '작은 효율'에 취해 '작은 비용 절감'에 현혹되었던 (전기료 절감, 수수료 절감) 일반 국민들이 모두 떠안게 되고 말았다. 이젠 이런 '작은 효율'을 추구하는 경제논리적 사고방식에 대한 지지도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쯤되면 좀 그 효율성에 발을 맞춰가지 못해 시간과 정신적인 손실을 감수하고 있는 적지 않은 사람들의 고통과 그에 따른 경제적 비효율성도 한번쯤 굽어살필때가 되지 않았는가?

효율이라는 이름 속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비효율의 희생을 수반한다는 것,
우리가 고도성장기에 취해 작금의 경제위기를 돌파하고자 하는 이면에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헌법에는 언제나 '누구나' 라는 말이 항상 들어간다.
누구나, 언제든, 무엇이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posted by RushAm 2011. 4. 13. 11:50
우선 이 글은 '카이스트'를 옹호하고자 하는 글도 아니고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고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카이스트생이 아니며 본 글에 나오는 사례들은 필자가 만난 카이스트생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것으로 지극히 주관성이 가미되어있을수 있음을 밝혀둔다.


카이스트는 원래 자살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빡센 학사일정이 있기도 하고 군 면제 혜택이나 100% 장학금 혜택 등 기존 대학들과 차별화되어있는 장점의 이면에는 그러한 장점을 소위 '개나소나'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정말 부던히도 많은 노력을 해왔던 역사가 있다. 불과 십수년전만해도 학점 내에 B가 한 번 끼어있으면 경고를 받고 그 이후 B를 한번 더 받으면 짤없이 퇴학이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평균 3.0 기준이 아니었고 징벌적 등록금 납부가 아니라 아예 퇴학이었다는 것, 당연하겠지만 이 공부밖에 모르는 학생들은 자신이 카이스트의 엘리트 라인에서 낙오되었다는 좌절감과 더불어 남학생의 경우 퇴학 즉시 군대로 끌려간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그 전설적인 '거푸집 침대'를 뒤로 하고 기숙사 옥상에서 몸을 던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게 너무 비인간적이라는 평가가 지속적으로 나오게 되어 바뀌게 된 게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퇴학 조치는 징벌적 등록금으로 한 과목이라도 B가 나오면 안되던 걸 전체 평점 3.0으로 완화시켰다. 물론 이 완화기준을 만든 계기가 반드시 '인륜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는데, 2000년 이후 이른바 카이스트 1세대들의 아들들이 과학고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에 돌입하는 연령대에 접어들면서 무작위로 뽑기보다 과학고에서의 에스컬레이션을 선호했던 부분으로 인해, 과학고의 '내신'과는 또 다른 객관적 평가를 해야만 했던 카이스트가 이들의 학력 저하를 문제 삼아 퇴학을 결정하게 될 경우 실세를 쥐고 있는 카이스트 1세대들의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웠으리라는 판단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은 파벌에 따른 눈치보기에서 나온 정책이라는게 안타깝지만 아무튼 기준은 이전에 비해 대폭 완화되었다. 이제 학생들은 '등록금'만 내면 학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남학생의 경우는 까딱 잘못하면 군대로 끌려가 인생 막장 태크탈수도있다는 똥줄타기 긴장감을 한층 덜 수 있게 되었다.

이공계 엘리트의 군입대는 곧 '시망'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 와서 자살자가 4명이나 나왔고 학생들이 이를 근거로 카이스트의 정책을 좀 더 완화해야 한다며 들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에 비해 '완화'되었기에 추가 완화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요구는 뭔가 투명성과 연관성에서 심하게 결여되어 있다. 우선 자살한 4명의 자살 동기가 4명 모두 '학업 부담' 이라고 아예 확정적으로 못을 박고 그를 빌미로 징벌적 등록금제도에 대한 부당함과 더불어 팩트에 가미되지 않았던 '영어 강의'문제까지 싸잡는가 하면 검찰은 여태 한번도 드러나지 않았던 카이스트 비리를 밝혀냈다며 연속콤보를 후려치고 있다.

영어 강의는 분명 문제다. 미친 짓임에 분명하다. 이건 개선해야 하는 게 옮지만 '지금처럼 국민적인 관심이 집중되었을 때' 터뜨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끄집어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정말 팩트가 코어에 근접했을때 밝혀내더라도 제대로 된 근거가 나오기 힘든 약자들이 지금처럼 '분위기를 타듯' 싸잡아 문제제기를 할 경우 향후 신뢰성 문제에 있어 후폭풍을 맞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살자 중 한 두명정도는 정말 확실한 관련 팩트를 제시할 만한 근거를 낼 수 있다지만 인천에서 살던 휴학생의 자살까지 끌어들여오는 건 너무 심하지 않았는가?, 관계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은 채 사건에 휘말려버린 카이스트 교수의 자살은 어떤가? 제각각 이유가 다를 수 있는 자살을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로 이용하기 위해 팩트를 싸잡아 일원화시킨 행위가 과연 그 주장에 대한 무결성에 도움이 되고 있을까?

사실 부정적인 의견만 있던 것도 아니었다.


카이스트가 내내 자살이 없다가 갑자기 올해 들어 4명이나 자살했다는 식의 보도 분위기도 그렇지만 그 자살자 4명이 정말 징벌적 등록금의 문제점에 의한 것이며 4명 모두 영어 강의에 반대하거나 수강 자체를 어려워했다는 점이 자살 동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가 지금으로서는 어디에도 없다. 그들의 주장이 부당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살이라는 팩트 하나로 자신들의 처우 개선을 주장하고 있는 카이스트의 주장이 이후 힘을 잃게 될 것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지금 기회를 잃고 싶지 않은 기분은 알겠지만 평소에 그러한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더 치밀하게 준비를 했어야 했고 향후 뒤통수를 맞지 않을 무결한 기회를 엿보았어야 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카이스트의 현행 제도는 '영어 강의'를 제외하고 현역 대학생들에게 공감을 얻기 힘든 주장들이 대부분이다. 카이스트는 '전교생 장학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카이스트는 원래 학비가 무료'가 아니라 '전교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는 학교라는 것이다. 그런 학교가 성적에 대한 잣대를 엄격하게 제공하고 그 성적에 도달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징벌적 등록금'을 내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장학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지금 카이스트생들은 성적에 도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징벌적 등록금'을 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것은 '성적이 낮은 학생에게도 장학금을 줘라'라고 주장하는 것밖에 안되는 것이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것이며 그런 주장이 동세대들에게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장학생의 자격


세상에는 '선택에 대한 책임'이 존재한다. 뮤추얼펀드가 원금손실이 벌어졌다고 증권사 찾아가 내돈 내놓으라며 멱살잡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나라에서 이 '선택적 책임'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인감도 있지만 한마디로 '니가 이것에 대한 허와 실을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타인에 의한 강요 없이 100% 자발적으로 선택한 부분은 전적으로 자기자신의 책임이다'라는 것이다. 100% 영어강의가 문제가 있다는 것, 징벌적 장학금 제도가 문제가 있다는 것 과연 그들이 '카이스트를 지원할 당시'에 몰랐을까? 그들은 그걸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카이스트를 선택했다. 그리고는 지금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근간을 책임질 엘리트들이라는 이들이 보이는 행동 치고는 너무 치졸하지 않은가?

카이스트는 원래 그런 학교다. 그리고 그런 학교여야만 한다. 학생들은 전원 장학금을 받고 있으며 다른 대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런 파격적인 제도에 걸맞은 우수한 학생들을 육성해내야 할 책임이 있고, 그에 걸맞은 우수한 학생이 되어주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학교에서 나오는 장학금은 국가 세금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처우 개선에 대한 주장을 거둔 채 닥치고 따라가라고만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고인의 의중과는 관계없이 그저 '남은 자들'의 편익을 위해 그들의 죽음을 싸잡아 이용하는 행위는 이후 행여 정말 카이스트가 학생들의 목소리를 내야만 하는 일이 생겼을 때의 발언권과 그에 대한 신뢰성을 급격히 떨어뜨린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들은 카이스트의 미래를 이야기하며 학교를 변화시키겠다고 하지만
결국은 지금의 자신들 안위를 최우선시하고 있음에 다름아니며,
이후 들어올 카이스트의 후배들을 위해 노력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현재 안위만을 생각한 나머지
오히려 카이스트에 들어올 후배들의 발언권과 신뢰도까지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그럴 자격은 없어보이는데 말이다.
posted by RushAm 2011. 4. 9. 13:49
우리는 흔히 만취한 사람이 행패를 부리면 그의 지인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다며 듣는 이야기가 '이 사람 원래는 참 좋은데 술만 마시면 이러니까 이해해요'라는 말이다. 뭐 워낙에 술에 관대한 문화다보니까 이런 말도 나오고 실제로 이런 말 들으면 용서가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결국 이 사람은 '어쩔 수 없다'라고, 즉 '술 기운'에 '원래 좋은 사람'이 '원래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힘들어졌음을 어필하고 싶어하는 것이 이 말의 핵심인데, 이 말에는 사실 상당한 모순점이 있다.


술을 마시는 경우는 거의 대부분 '자의적'이다. 물론 사회적 분위기 상 거부할 수 없는 것도 알고 사회생활하다보면 개인주의적 의견보다는 어우러짐을 중시하는 우리네 술자리 문화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술을 마신 자신'을 '자신'의 일부분이 아니라며 면책부를 주는 식의 발상은 '원래는 좋은 사람'이라는 수식어와 더불어 모순의 극을 보여준다. 원래 좋은 사람이 술을 마시면 그렇지 않게 된다는 것을 그 원래 좋은 사람이었다는 당사자는 정말 모르고 있었을까? 그렇게 민폐를 끼친 사례가 한두번일까?, 무수히 많은 사례 속에서도 그렇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은 '그 원래 좋은 사람'으로서의 이미지나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술을 마신 뒤까지 지킬 생각이 없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란 수식어는 '어떤 시간대에만 좋은 사람'도 아니고 '어떤 시간대에는 좋은 사람이 아니게 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 사람의 인생, 사람 됨됨이 전체를 평가하는 단어다. 만일 누군가가 '원래는 좋은 사람인데 술을 마시면 개가 된다'는 건 그 사람은 이미 '좋은 사람'이길 포기했다는 거다. 누구 하나 단점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단점을 장점이 반드시 커버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특히나 '생판 모르는 남'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냥 지인들에게는 그런 그의 장단점을 감당할 수 있으니까 그의 주변을 감싸고 돌 수 있다. 그러나 공공장소에서의 민폐에 대한 변명으로 저런 말을 늘어놓는 것은 상당한 에러다. 지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변명이 납득이 될 리도 없고, 이미 그 전제조건이었던 '좋은 사람'이라는 건 그 사람이 '자의적'으로 술을 마셨고 '자의적'으로 주량을 초과해서 이미 '자신이 술을 취했을때 어떤 모습인지를'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지인도 자기 자신도 충분히 알고 있는 이상 그 사람은 '생판 모르는 타인'에게는 결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술을 마셨다고 그 사람 이름이 '술'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술을 마신 당신도 당신 맞다.
운전대 잡은 당신도 당신 맞다.

그게 좋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고 해도 결국 당신을 나타내는 일부분이다.
제대로 사과하고 살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도망치며 살텐가?
posted by RushAm 2011. 4. 8. 19:31
왜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지속적으로 우기고 있을까? 왜 잊을 만하면 그런 식으로 나올까? 일본 우익은 정말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게 일본 전체의 입장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이런 질문들도 그에 대한 답변들도 거의 필요가 없다, 글 시작 전부터 못박는다. 독도는 현재 우리나라 영토다. 국제 분쟁소가 뭐라든 뭐든 그 땅이 누구 것인지 증명하는 것은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국제 재판소가 뭐라고 짖든, 영국 지도가 뭐라고 써갈기든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독도는 한국민 100% 거주 지역이다. 우리나라 최동단으로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 역사가 뭐든 신라시대에 어땠든 식민지시대때 어땠든 아무 관계가 없다. 지금 일단 거주민 비율에서 순혈계통이 뭔지 몰라도 국적상으로는 100% 한국인들이 살고 있단 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사람이 독도에 상륙하면, 여러분들이 그렇게 좋아라하시는 국제법상으로도 얼마든지 '쏴버릴 수 있다' 불법입국자들이기 때문이다. 국적도 확인 안된 황인종이 북한인인지 일본인인지 알게 뭔가?

제발 불안해하지 말자, 우리가 이미 점령해있고, 이미 살고 있는 영토를 일본이 주둥이로 따낼 수 있을 만큼 국제법이 호락호락하지도 않고 그 잘났다는 일본의 역사 근거도 국제재판소에 제소를 걸기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분쟁지역? 리앙쿠르 암스? 그렇게 열심히 표기하라고 해라, 우리나라 땅이 독도인데 어쩔거냐, 어느 나라든 국제법이 영토를 정해주는 게 아니다. 우리 땅을 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허가를 받고 써야하나? 우리 땅은 우리가 그냥 지키면 된다. 제 3자에게 검증해달라고 싹싹 빌 필요가 아무것도 없다는 거다.

왜 우리 땅을 얘들이 정하나?


일본이 지금 오랄질을 하는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지금 일본은 지진이랑 쓰나미, 원전폭발로 인한 방사능으로 지난 '60년' 자민당 정권 끄나풀이 뿌리째 뽑히기 직전이다. 응? 왜 정권교체된 자민당이 뿌리뽑히냐고? 그야 일본 최고의 끗발을 자랑하는 도쿄전력에 지난 60년동안 낙하산 인사로 은퇴한 관료들이 속속 자리잡았고 그들의 썩어문드러진 관료주의의 폐단이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흉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고 그에 따른 책임론에 의해 구속수사와 피해소송이 줄을 이을테니까, 그들을 수사하면 당연히 우익 전체 네트웍이 드러나고 낙하산 인사를 주도한 자와 낙하산을 맨 자가 모두 발각되어 그 나라의 썩어빠진 지하네트워크가 뿌리째 뽑혀나가기 일보직전이니까, 그들은 우리나라가 툭하면 북한 건드리듯 독도 핥은것 뿐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독도 핥으면 한국이 반응하니까, 자기들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대로 일본에서 사라지면 '원래 우리 영토'였던 일본의 자존심 독도가 한국에 뺏기고 센카쿠도 뺏기고 다 망한다)라고 겁을 주는 거다. 왜 우리가 남의 정치 내각 사정에까지 발을 맞춰줘야하나?

우리나라는 언제나 독도 문제에 있어서는 일본이 말한 대로 즉각즉각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일본에 대한 반감을 키운다, 정말 영향력 제로인 일본의 말 한마디한마디에 일회일비하며 정부측의 대응을 질타한다. 정말이지 이 나라의 외교부라는 놈들은 뭐 하는 짓거리인지 알 수가 없다. 지난 노무현 정권 5년동안 독도 문제에 대해 고이즈미, 후쿠다까지 뭐 하나 제대로 한 마디 나온 적이 없다. (한 마디 나왔다가 일본이 조낸 깨갱하고 들어간 적은 있나보더라) 왜냐하면 '상대를 안 해줬'으니까, 그들은 우리나라 '반응'을 안해주면 끝장이다. 그들은 국정감사 같은 자신들의 비리가 드러날 즈음 되면 국민정세를 국제로 돌리기 위해 독도를 포함해 센카쿠, 북한까지 골고루 까던 게 습관화되었는데, 그게 안돼니까 애가 탔던 거다. 당시 그같은 '무대응'정책이 무려 60년간 지속되었던 자민당정권의 교체를 알리는데 조금이나마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막판에 자위대 지위 회복 드립치다가 장렬히 산화한 아소


오랄질밖에 못하는 애들을 왜 겁내나, 걔들이 진짜 독도가 필요했으면 군사 일으켜서 독도 공격했을거다. 근데 그게 그 위대한 국제법으로 일본 전체의 군사활동을 묶어놨으니 안되는거다. 일본은 우리나라가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 한 '군사를 일으킬 수 없고' 설령 군사를 먼저 일으켰다고 해도 자신들의 영토 이상의 영토확장 작전을 펼칠수가 없다. 적어도 일본에게 있어 독도는 무슨 방법을 써도 못얻는 언터쳐블인거다. 그러니까 오랄질만 하는 거다. 독도가 그렇게 목숨걸정도로 소중했으면 국제법 어겨서 미국을 포함한 유앤 전체를 적으로 돌려가면서까지 독도를 선제공격했겠지... 그런데 그러지도 못하는 놈들을 우리가 왜 지례 겁내나? 들어보니 말빨도 논리도 그렇게 세지 않던데...국민들에게 잘도 오랄치던 주둥아리를 왜 얘들 앞에서 처다무는지 알길이 없다.

사실 일본보다 더 무서운건 우리나라를 대표한답시고 앉아있는 관료들이다. 일본 우익들은 이미 정권을 뺏겼는데, 이놈들은 아직도 정권을 쥐고 있으니, 어떻게든 우리나라의 얼굴이 되고 있기에 가만 보니 하는 짓이 하도 가관이다. 일본 오랄질 한 방에 우리땅을 '드...드리겠습니다' 모드로 지곤조기를 외치지 않나, 독도 도발 (도발이란 군사적 도발같은 충격파가 있을때나 도발이지 이건 무슨)때 그 도발에 벌벌떨면서 어떻게 해야 하니 국사를 선택과목에서 빼야하니 이지랄을 떨고 있는 대한민국 내에서 대한민국 얼굴로 전 세계에 얼굴을 들고 다니는 대한민국 국민의 대표들이 정말 무섭다. 이들이 하는 말 한마디,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그 말도 안되는 오랄질로 설득당해서 그냥 독도 주겠다는 서류에 몸소 싸인할까 두렵다. 이들에게 뭘 맡길 수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 국토를 지멋대로 줘버리는걸 너무 좋아하셔서..


우리가 할 일? 일단 얼굴부터 좀 갈자, 우리 영토를 우리거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국민 대표로 쌔웠다간 진짜 우리 영토가 우리게 아니게 될 수 있다. 이건 일본의 오랄질과는 좀 다르기 때문이다. 국제법에서도 가진 녀석들이 몸소 주시겠다는 걸 막아주시진 않으신단말이다. 어이없게도 그 정도까지 권력을 가지는 게 우리나라 대통령이라는 이름의 권력이다. 우린 이걸 정말 조심스럽게 줘야 한다. 일본 출신의 애국심이 투철하신 분에게 줬다간 진짜 일본의 몇 마디 오랄질에 나라 뺏기는 것도 꿈이 아니란거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제 그만하자. 독도 우리 땅 맞다.
역사고 지도고 지랄이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 군대가 지키고 있는데, 뭘 더 어쩌란거야?
씨발 오면 쏴버려 ... 일본이든 북한이든 허가 없이 처들어오는데 손님이고 대일관계고 그딴게 뭐야
여권이랑 허가없이 처들어오면 누구나 오랑캐잖아?

우리에게 필요한건 영국 지도 표기도 아니고 국제법도 아니고...
독도가 우리땅이 맞다는 굳은 신념과 그걸 오바스럽지 않게 당연스럽게 가르치는 굳은 신념이다.



봐, 우리 꺼 맞잖아!
posted by RushAm 2011. 3. 20. 10:31
그토록 한국의 아메리칸 아이돌을 바라며 행여 공중파가 '쇼바이벌'의 실패를 들어 다시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을까봐 걱정했던 게 불과 2년 전이다. (문제의 글을 보시려면 클릭, 공교롭게도 슈스케 1기가 막 시작한 직후였다. 당시의 정보 부족에 반성해야겠다) 그런데 바로 그 쇼바이벌로 실패한 MBC가 위대한 탄생을 들고 나올줄은 상상도 못했다. 케이블이라 제작 소재에 자유롭기 때문에 지금의 오디션 방송 붐에 얼마든지 편성할 수 있는 벤처성이 있지만 공중파는 절대 그럴 수가 없다. 워낙 편성국의 힘이 막강하기때문에 신인 PD가 시기적으로 적절한 기획을 가지고 방송을 제작하고 싶어도 그 기획안이 뜰 수 있는 시기를 잡을 수 있는 유행성을 가지기가 매우 힘들다. 대부분 그런 기획안은 유명 프로그램의 특집 기획으로 흡수되기 일쑤며 기획 자체가 장기성을 갖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고정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는 건 거의 있을 수가 없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철벽의 공중파라고 할지라도 가끔 신인 PD들이 주류로 들어올 수 있는 찬스가 있는데 바로 '정권 교체', 즉 사장이 바뀔 때다. 무한도전의 탄생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4개 기획 연합 프로그램 '토요일'의 탄생 시기가 바로 최문순 사장 초기 봄 개편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재미있는데, 당시 진정 풋내기에 불과했던 제작진들과 토요일 4개 기획 중 출연진 혹사 문제와 슬랩스틱 장르로 시대에 뒤떨어진 기획이라며 폭풍까임을 당하던 무한도전만이 살아남아 지금까지 장수할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만일 이들이 최문순 교체라는 시류를 타지 못했다면 지금 우리는 무한도전이라는 역사에 남을 만한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토요일 저녁에 만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들이 살아남은 이유는 다른 게 없었다. '토요일'을 구성했던 다른 3개 기획이 참신성에서는 앞섰지만 '명절 특집'수준의 밑천이었을 뿐 이렇다할 장기 플랜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 무한도전 제작진은 모르긴 몰라도 최소한 시즌 3까지의 탄창을 충분히 준비할 만큼 급조하지 않은 오래 준비하고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 기획을 이미 당시부터 가지고 있었을것이고, 그것이 토요일의 시청율 완패 속에 다른 PD들이 경험밑천을 드러내며 자멸한 가운데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위대한 탄생 역시 이와 맥을 같이한다. 물론 김재철 사장 취임과 동시에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김재철 사장이 눈에 가시처럼 어겼던 W(공교롭게도 최문순 사장 당시 만들어진 프로그램 중 무한도전과 함께 가장 장수한 프로그램)를 온갖 반대 속에 내린 만큼 그에 걸맞는 임팩트를 가진 프로그램이 필요했고 그것이 위대한 탄생이다. 많은 분들이 '위대한 탄생'을 마치 '슈스케'가 2기까지 대박을 낸 상황에서 W의 자리를 매울 프로그램으로 급조시킨 게 아니냐는 의혹을 보내는 분들이 많으신데, 아무리 MBC가 막장 시청율로 전락해도 오랫동안 토착화된 공중파의 보수성을 깨버리면서까지 파격인사를 단행할만큼 어리석지 않다. 위대한 탄생은 결코 급조된 프로그램이 아니며 일면 제작진의 경험부족으로 인한 운영상의 미스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것은 '경험 부족'일뿐 '기획의 급조성'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위대한 탄생은 슈스케와 전혀 닮아있지 않다.


위대한 탄생은 MBC가 공중파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아무리 PD가 신인이라 할지라도 최소 2년 이상은 '머릿 속'에 담아두고 습작을 하듯이 이리 저리 살을 붙이고 덩치를 불려나갔을 기획일 것이다. (일단 신인이라고 보기도 힘든 제작진이고) 물론 이 과정에서 슈스케가 영향을 끼쳤을 수 있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인재풀로 상대가 안되는 케이블계 기획을 따라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붙은 살의 일부에서 슈스케의 흔적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뼈대의 태생은 완전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위탄의 모델은 바로 이것 '브리티즈 갓 텔런트'라고 보고 있다. '응? 아메리칸 아이돌이 아니자나?'라고 의야해하실 분들이 계시리라 믿는다. 바로 이 점이 위탄과 슈스케의 차이를 가르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양쪽의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대한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인데, 일전 필자가 SBS 스타킹을 까면서 쓴 글의 일부분을 인용해본다.

(전략) 실제로도 아메리칸 아이돌은 유명 기획사가 아닌 TV가 대중 가수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힘을 과시했으며, 브리티즈 갓 텔런트는 자신들이 연출해낸 최고의 상품 '폴 포츠'를 통해 그들의 프로그램 콘텐츠 제작 능력이 세계적인 수준임을 내세울 수 있었다. (후략)

우선 슈스케부터 보자 그들이 롤 모델로 삼은 프로그램은 두말할필요도 없이 아메리칸 아이돌이다. 지금까지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차별화될 수 있는 전문가들의 혹평과 그들로 인해 점차 수준이 높아지는 참가자들의 면면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즉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출연자'다. 지금이라도 당장 슈스케라는 키워드로 다음뷰에 검색해보자, 우승자 허각을 비롯해, 존박, 강승윤, 김그림 등 포스팅 된 대부분의 소재가 '프로그램 자체'가 아닌 출연한 출연자들에 모아진다. 즉 슈스케는 철저하게 출연자를 띄우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는데, 물론 마지막에 각 출연자들의 뒷 배경스토리를 짜맞추며 감동을 자아내는 등 엇나간 행보를 보이기도 했지만 이는 초기 기획에서 방송분량 연장을 위한 일시적인 살붙이기였을뿐, 본질이 훼손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슈스케는 프로그램 자체보다는 철저하게 출연진들의 성공에 초점을 맞춘 아메리칸 아이돌의 형식을 택했을까? 필자가 쓴 부분을 다시 한번 인용해보자,

실제로도 아메리칸 아이돌은 유명 기획사가 아닌 TV가 대중 가수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힘을 과시했으며....

답이 나왔다. CJ 소속의 MNET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케이블 방송사에 그치고 있지 않는다는 점은 다들 잘 알고 계실 것이다. (무려 코스닥에까지 상장되어 있으니) MAMA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들은 어떻게든 방송의 힘을 빌어 이미 주류에서 한참 벗어난 연예기획사인 M.NET을 주류로 끌어올리고 싶어한다. 그런 그들에게 아메리칸 아이돌의 '유명 기획사가 아닌 TV가 대중 가수를 탄생시킨다는 힘' 은 그보다 더 매력적일수 없었을것이다. 자금력으로는 어디 내놔도 뒤떨어질리 없는 CJ가 슈스케의 장대한 기획에 돈을 마음껏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기업의 많은 관심과 의욕에 비해 정말 불쌍하리만큼 주류에서 몇 발짝 벗어나 있는 CJ의 각종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주류로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슈스케는 프로그램 그 자체보다는 '우리도 스타를 이런 식으로 발굴해서 메이저로 진출시킬 수 있다'는 힘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M.NET이 주류로 갈 수 있을 절호의 찬스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엠넷은 사실 슈스케 이전부터 오디션 이벤트에 꽤 공을 들이던 편이었다.


슈스케는 그 괴물같은 시청율 기록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프로그램이 크게 흑자를 보았다는 기사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데, 처음부터 제작비를 회수할 생각이나 방송으로서의 프로그램 본연의 가치를 띄울 생각이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스개로까지 쓰였던 코카콜라를 비롯한 몇 되지 않는 고정 스폰서가 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는데, 만일 공중파였다면 그 정도 시청율 기록으로는 즉시 삼성도 따올 수 있을 만큼의 행동력을 보였겠지만 슈스케는 그러지 않았다. 못한 게 아니라 할 필요가 없었다. 에초 프로그램으로 돈을 벌 생각이 아니었을테니까...

....

위탄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위탄은 슈스케와 에초 태생부터 다르다. 공중파는 광고 수익을 중시한다. 때문에 MBC는 철저하게 시청율에 우선한 운영을 해야만 하기에 급조된 기획이란 에초에 있을 수도 없고 있다고 할 지언정 아무리 편성이 급해도 신인의 급조된 플랜을 덜컥 방송하지는 않는다는 소리다. 항간에 떠도는 슈스케 표절, 위탄 급조설이 적어도 나는 그래서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온미디어도 아니고 주식회사 문화방송이다. 아무리 소인배로 전락했어도 왕년 양반께서 차라리 망하면 망했지 체면을 깎을 짓을 했을 리가 없고 할 수도 없다. 대기업 조직이 그 정도로 형편없었다면 김재철 사장이 재신임을 받았을리가 없다.

이 짓을 했는데도 안쫒겨났다는 건 아직 조직력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거다.


 우선 슈스케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을 살펴보자, 이들은 위대한 탄생...이라는 타이틀을 걸고는 있지만, 방송 전반적으로 '출연자'가 주가 되지 않는다. 물론 시청자의 의견보다는 보다 카리스마있는 심사위원들의 평가에 기준한다는 식으로 다소 폐쇄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서 왜 슈스케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시청자 참여 비중을 크게 두었는지를 함께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간단해지는데, 그렇다. 위탄은 사실 '이 방송을 통해 가수를 키울 생각이 별로 없다'고 보는 것이 현명하기 때문이다.

MBC는 기업이다. 기업은 절대 자신들이 득이 되지 않는 일을 하지 않는다. 잘 생각해보면 MBC는 출연자들이 미래에 잘 된다고 특별히 득이 될 게 없다. 아무리 위탄이 오랜 기간 기획한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오랜 기간 기획한 작품이 반드시 '장기 방송'이 될 거라는 이유는 없다. 즉 위탄은 급조는 아니더라도 단기 기획임에는 분명하다. 따라서 위탄이 슈스케처럼 2기를 기획하거나 하지 않는 한 출연자들의 성공은 그 방송 타이틀의 가치를 높여주기는 하겠지만 MBC 자체의 가치에는 그닥 영향이 없고 수익적 측면에서도 미비하다. MBC에서 데뷰했다고 해서 그 스타의 권리를 사실상 얼마나 가질 수 있겠으며 설령 꽤 많이 가진다고 하더라도 공룡 MBC에게 코끼리 비스킷이나 될까?

돈이 남아도는데 굳이 이 진흙탕에 들어가 무엇하리...


그런 이유로 MBC의 위탄은 아메리칸 아이돌보다는 '브리티즈 갓 텔런트'를 지향하고 있다. 즉 그곳에서 나오는 스타가 '음악적'으로 성공하기보다 '화제성'으로 성공하기를 바라며 그로 인해 자신들이 '음악계'가 아닌 '대중문화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출연자가 실제 음반을 내고 얼마나 팔았는가보다는 나온 사람들이 얼마나 '그 자체로' 화제를 뿌리며 '그 프로그램'에 나온 그대로의 이미지가 얼마나 먹혔는지를 예의 주시한다. 즉 그들은 '폭발적인 가창력의 ***'보다는 '미인대회 출신 **' 나 '독설가 심사위원의 의외의 모습',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의 혼이 담긴 멘토'등 방송 내용이나 설정에 얽힌 출연자, 특히 오디션이 참가자보다는 고정 출연자 즉 '심사위원'의 캐릭터성을 부각시키는데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프로그램 제작 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큰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슈스케는 화제를 뿌릴 당시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건 '출연자'들이었다. 누가 노래를 못했네, 누가 인성이 거지같네, 누가 왜 떨어졌는지 모르겠네 등등 주로 노래로부터 시작해서 노래로 끝났다. 그런데 위탄은 누가 외모가지고 심사하네, 누가 자상한 평가를 하네, 누가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네 등이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오디션에 누가 올라왔는지에 대한 화제성은 덜하며, 오디션 프로그램으로서는 정말 어이없게 '멘토링 시스템'이라는 (아마 우타스타의 헌터 시스템을 참조한 듯 싶은데) 것을 도입, 심사위원의 비중을 극대화하면서 '감동'이라는 키워드로 마무리짓는다. 위탄은 출연자의 가창력에 감동하고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출연자와 심사위원의 인간적인 하모니와 출연자의 '냉혹한 일면 속 자상함'에 빠져들게끔 만들어졌다.

이게 정말 오디션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 맞나?


실제로 브리티즈 갓 텔런트에 아메리칸 아이돌의 사이먼 코웰이 나오는 이유도 이와 닮아있는데, 제작진이 그가 정말 심사를 철두철미하게 하기 때문에 스카웃한 것일까라고 생각해보면 좀 아닌 것 같다. BGT는 그의 '철두철미한 심사능력'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고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충분히 과시했던 '냉혈안같은 이미지'가 필요했다. 시청자들은 사이먼 코웰이 그 곳에 앉아있기만 해도 '아 저 사람 또 독설한방 날리겠구나' 싶은 진지한 긴장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이먼 코웰 이외에도 브리틴즈 갓 텔런트의 심사위원들은 그렇게 제각각 캐릭터 롤 즉 역할적 개성이 분명하다. 누구는 매번 펑펑 울면서 시청자들을 동요시키고, 누구는 사람좋게 웃으며 용기를 북돋아주고, 그리고 사이먼 코웰은? 여전히 독설을 내뿜지만, 아메리칸 아이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던 '아 정말 어쩔 수 없구만 허허허, 내가 졌다' 식의 미소를 보이기도 한다. 시청자들은 그의 이런 모습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고 겉다리로 방청객들이 노래 시작부터 기립박수와 함성으로 노래 시작부터 무대 내내 바람을 잡게 되면 시청자들은 이 압도적인 감동의 물결에 매료될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 코웰이 달라졌어요.jpg


 당연하지만 이런 감동 키워드는 시청율을 극대화시키는 수단으로 최적화되어 제작되며 이렇게 높아진 시청율은 시시각각 광고주에게 반영되어 능동적으로 광고 수익을 증대시켜준다. 그리고 그렇게 높아진 시청율은 최근 거의 시망하다시피한 MBC예능국에 예산을 다시 배정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줄 것이다. 출연자들은....글쎄 오디션 참가자들이야 에초 MBC가 정말 가수 데뷰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거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이미 범국민적 시청율을 자랑했던 악동클럽을 한번 말아먹었던 전례가 있는 MBC가 그에 반도 안되는 시청율을 기록하고 있는 방송 출신의 가수를 메이저까지 진출시킬 수 있을까? 무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에초에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의 살림은 좀 나아질까? 애석하지만 방송을 거의 살리다시피 한 심사위원들도 이 방송에서 얻는 득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일단 이은미씨를 비롯해 기존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사람들이 속속 늘고 있다는게 문제인데, 이 방송은 철저하게 '대본'에 의해 이루어지는 '제작능력 과시용' 방송이기에 출연자들이 정말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있지 않고 있으며 대부분 그 이미지와 상반되는 쪽으로 속속 변해가는 이른바 '츤데레' 캐릭터 이미지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좀 완고한 이미지 자체로 지지를 받았던 심사위원들은 이후 이 '페이크 다큐'같은 프로그램에서 설정된 이미지를 그대로 믿는 시청자들로 인해 앞으로의 활동에 지장을 받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방송 종료 후 권리세와 동반 시망이 예상되시는 이분...


솔직히 슈스케가 아메리칸 아이돌을 벤치마킹하던 위탄이 브리틴즈를 표방하던 딱히 방송사를 지적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그걸 보는 시청자들이 아직 방송은 방송이고 설정은 설정이다라는 걸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은 채 감정을 이입하고 있다는 점인데, 아직도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은 연기자가 좀처럼 악역 이미지를 벗기가 힘들고, 한번 벗기 시작한 배우들은 그 이미지가 박혀 다른 역할을 맡기가 힘든 것도 현실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연예계와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리고 방송사는 이점을 십분 활용하여 어디까지가 설정이고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잘 분간이 안 가도록 제작하는 것이야말로 능력있는 프로그램 제작의 척도라고 굳게 믿고 오늘도 시청자들을 현실과 가상의 아슬아슬한 경계 속으로 초대한다. 물론 그에 따른 욕을 먹는 역할은 어디까지나 출연진들의 몫이 된다. 미수다때도 그랬고, 막말 방송이 그랬다, 그렇게 총알받이를 눈 앞에 세워두고 그들의 등 뒤에서 방송사는 조용히 돈을 세고 있을 것이다.

방송에 나오는 모든 것을 현실과 연결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방송에서 선한 말을 하던 악한 말을 하던, 어디까지나 방송의 성공을 위해 열심히 할 뿐
그게 그들의 본연의 모습인지 아닌지는 정말 며느리도 모른다.


TV가 이 땅에 보급된지 반세기가 넘었고
컬러 TV가 30년, HD가 시작된지 10년이 다 되가는 나라의 시청자라면
연예인을 가족처럼 아끼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일회일비하고 있다면...
이 정도는 구분해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는 것은 '상식'이 아니라 필수 덕목이 아닐까 싶다.
posted by RushAm 2011. 2. 28. 19:37
우리나라는 언제나 해외에서 좀 잘나간다 싶으면 혈통주의를 내세워 우리편으로 만들면서도 그냥 평범한 사람들은 같은 혈통임에도 철저하게 다른 사람 취급을 하는 것이 거의 일상화되어 있는 것 같다. 이충성, 추성훈,하인스워드, 김초롱까지 잘하면 내편 못하면 남의 편이라는 식의 모순된 논리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면 생각보다 매우 단순한데. 결국 이들 교포들은 거의 대부분 '언론'에 의해 띄워졌고 또다시 '언론'에 의해 사그러들었다는 것이다. 왜 이들은 몸소 지면을 할해해가면서까지 이들을 띄웠다가 떨어뜨리고 또 다시 띄울 한국계를 물색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들이 교포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온도차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여기에는 아주 치졸하고 비겁한 이유가 있었다.

재미교포와 재일교포 우린 누구를 더 의식하고 있었는가?
지난 1,2,3부를 통해서 친일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역시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 행적'과 그 행적이 결국 국민들의 흑역사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증거와 증언이라는 것을 여러차례 강조한 바 있다. 이들은 국내 정권을 직, 간접적으로 휘어잡고 친일 언론들의 지원사격을 받아가며 대한민국 여론이 겨누는 화살의 방향을 자신들이 아닌 쪽으로 바꾸는 데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대한민국 땅에서 그들은 언제까지고 무적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정말 오랜 기간 공들여 만들어왔고 그 효과는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아무리 권력이 쎄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국경 밖까지 영향력을 끼치긴 힘들다. 대한민국의 외교통상부 수준은 매년 그 바닥을 뚫고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 후진적인 수준을 보여주고 있고, 이는 다시말해 그들이 아무리 대한민국에서 철권을 휘둘러도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국적, 혹은 한국 국적이었던 사람들에게까지 자신들의 역사적 진실을 은폐할 북풍이나 일풍 같은 수단을 이용해 여론조작을 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백날 북한의 위협이 어쩌고 해도 국내 밖에 있는 사람들이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는 국제 미디어에 견줌을 당하게 되면 신빙성을 잃기 십상이었으니까...

이집트 혁명에 있어 무바라크의 언론통제가 먹히지 않았던 이유도 마찬가지...
그 중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다름아닌 '재일교포'다. 재일교포의 원류는 바로 한국전쟁 이전 일제침략기 당시 '강제이주'를 당하며 일제침략기를 몸소 겪은 세대들 중에서도 가장 고생을 많이 했다고 볼 수 있는 침략기 1세대다. 이들은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의 이주를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유는? 당연하겠지만 정권이 이미 친일파에게 장악된 상황에서, 이들이 한국에 들어올 경우 이미 반민특위를 비롯 독립유공자 입을 꿰매놓은 정국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북한 주민들이 남한에 와서 자신들의 정권이 지금까지 남한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듯이, 재일교포들의 보다 생생한 증언들은 친일파들에게 있어 그야말로 목줄기를 찌르는 칼끝과 다름없었으리라.

재일교포는 이후 이승만정권의 일풍과 더불어 그냥 '일본이 좋아서 한국을 버린 매국노'정도의 이미지로 취급당하며 대한민국 사회 본류에서 철저히 배척당한다. 이런 핍박 속에서도 그들이 한국 국적을 버리지 않았던 이유, 그리고 2세대 3세대까지 이어지면서 그들의 애국심이 이상적으로 높게 형성될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연하겠지만 재일교포 중 대부분은 일제시대 당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거나 혹은 그들을 지원했던 계층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일본에 거주하면서 일본 정부의 이후 행보와 북한의 움직임, 일본이 전쟁 물자를 대면서 이어지는 미국의 의도 등을 제 3자의 눈으로 정확히 꿸 수 있었던 입장에 있었기도 했다. 물론 이승만의 거짓 일풍, 북한의 도발 등의 원인 역시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으로 바라볼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지금도 거의 모든 북한 관련 보도는 일본 언론을 인용한다. 물론 모든 보도를 다 인용하지는 않는다.
일본에 당시 거주하고 있던 재일교포 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기십만명에 이른다. 동시기 대한민국의 인구 분포를 생각해보면 적어도 원내 의석은 확보할 만큼의 세력을 얻을 수 있는 적지 않은 인구다. 그래서 이들이 '일시'에 대한민국으로 귀국하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야만 했다. 진실을 알고 있는 계층이 만 단위가 넘어간다는 것은 정말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으니까, 물론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이들의 개별적인 입국까지 제한할 수는 없었지만, 대부분 입국 자체의 인원수를 고의적으로 제한하거나 이들이 귀국을 하더라도 사회적 활동을 하기 힘들 정도로 도의적인 '차별'이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여 이들이 원내는 물론 사회 전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들게끔 보이지 않는 손을 작동시킨다. 물론 국민적인 캠페인을 통해 이들 재일교포에 대한 '반민족적 감정'을 고취시켜왔을 것이다. 물론 추성훈과 이충성이 당했다고 하는 그 암묵적인 차별 역시 이에 의한 잔재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던 와중 매우 이례적인 사례가 생겨난다. 바로 '롯데그룹 신격호'라는 존재, 사회적 활동이 극도로 제한적이었던 당시 일본에서 벌어들인 자금력이 아무리 세다고 한 들 정부에서 대놓고 막기 시작하면 출자는 고사하고 구멍가게 하나 못내게 만드는 것이 가능했음에도 롯데는 이미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아무 무리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당시 박정희 정권의 이른바 '외회모으기'전략에 편승, 사업자금 명목으로 외화를 합법적으로 유통시킬 수 있는 창구역할을 할 기업이 필요했던 정권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부분도 큰 영향을 끼쳤지만 그가 재일교포 출신으로 한국 롯데를 설립할 수 있었던 데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그가 이미 '일본'국적을 취득한 '일본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재벌을 논할때 언제나 '깜빡'할 만큼 존재감이 미미한 '롯데', 왜 존재감이 미미할수밖에 없었는지, 혹은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정권이 매번 의도적으로 막았는지, 아니면...역시 돈이었는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른바 '재일교포'의 제한적 입국 조건은 다름아닌 '재일한국인'이 아닌 '일본 국적을 취득한 한국계 일본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에도 이어지고 있는데, 최근에는 정권 자체적인 터치가 그다지 없어 입국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손 치더라도 적어도 사회적 본류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한국 국적을 버려야만 한다. 추성훈이 유명해진 건 사실 유도협회의 석연치않은 판정이 있었던 당시가 아니라 이미 국적을 바꿔 부산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딴 직후였고, 이충성이 아직 재일교포였을 당시에 실력을 떠나 그를 주목했던 언론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풍토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게다가 이들이 '재일교포'였을 당시 이루어졌다던 교묘한 '알력'과 '차별'그리고 그러한 차별 사실이 이루어지던 당시가 아닌 그들이 이미 일본 국적으로 귀화한 일본인이 된 이후 밝혀진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일본 국적의 일본인이 아니면 사회 본류에 합류할 수 없는 이 개같은 환경이 만들어질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참정권'과 이승만 정권부터 시작된 친일파들의'일풍공작'과 깊은 연관이 있다. 사실 이들이 재일교포로서 한국에 들어올때와 일본 국적을 취득한 뒤에 한국에 돌아올 때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완전히 엇갈릴수밖에 없는데, 즉 재일교포는 말 그대로 '한핏줄'이 되지만 일본 국적을 취득한 이상 '일본인'이고 남의 나라 남의 시민이라는 여론이 팽배해지게 되며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어도 언제든지 그들에게 등을 돌릴 수 있는 여론적 약점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게 된다. 한마디로 찍소리만 내면 쏴버리겠다는 상황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같은 의미로 한순간에 애국자에서 돈벌러 온 외국인으로 전락한 추성훈
이 정도의 패널티를 감수하고 한국 사회의 본류에 합류한다고 해도 절대 합류할 수 없는 불가침영역이 생긴다. 아직 우리나라는 국내거주 외국인의 참정권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투표나 출마는 고사하고 심지어는 특정 후보에 지지를 표명하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깝다. 만일 이들이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재일교포인 채로 한국에서 활동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다면 어떨까? 당연히 한국 국적을 가진 이들은 얼마든지 투표는 물론 선거운동과 출마까지 가능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친일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가 그것이다. 겨우 백년대계를 거치며 독립운동가1세대들을 싹쓸이하는데 성공했는데 그 명맥을 해외에서 꾸준히 이어온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애국심) 세대들이 정치판에서 새 바람을 일으킬 경우 겉잡을수가 없게 된다. 겨우 잠재워놨던 친일파 색출 여론이 들끓게될것은 물론이고 이들에 의해 그간 벌여왔던 일풍과 북풍이 깡그리 거짓이었다는 것이 까발려지는데다가 이후 그들이 기댈 수 있는 일풍과 북풍을 활용할 어떤 근거도 만들 수 없는, 즉 당장의 패배는 물론이고 이후 재기를 모색할 수 있는 역전의 가능성마저 남김없이 빼앗겨버리는 최악의 사태를 각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친일파 세력은 이같은 '사회 전반적인 참여 제한'과 더불어 재일교포와 국민들과의 교류로 인해 발생되는 새로운 여론이 확산되지 못하게끔 만드는 일종의 보험을 들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그들의 '국적' 이른바 '쪽바리 이미지'다. 이미 일본 국적을 택한 사람은 대한민국 국적을 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한민국을 침략한 역사가 있는 일본 국적을 택해 일본을 위해 산다는 식의 이미지를 심는다. 그런데 이미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일풍이 먹혀들지 않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는 지금에서 쪽바리 드립으로 그들을 쥐어잡기에는 역부족일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은 또 하나의 보험을 들게 되는데...

국민 누구도 북한 출신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만큼은 막고 싶어할 것이라는 걸 친일파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친일파들은 그렇게 자신들을 '차선'이 아닌 '차악'이미지로 집권을 계속해왔으니까...
재일한국인을 포함한 일본 거주 외국인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자이니치'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일본에 살고 있는 모든 외국인을 통칭한다. 일제침략기 당시 일본에 강제이주한 재일교포들은 한반도 전국 각지에 적을 둔 사람들이었는데 바로 이 부분이 친일파가 이들의 돌발행동에 대처할 보험으로 활용될 이른바 '출신 성분'론의 기초가 된다. 다시말해 니가 진짜 남한 출신인지 북한 출신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이는 아주 포괄적인 북풍을 일으킬 재료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재일교포 출신 기업가가 정치에 참여한다고 치자 대중적인 인기도 높고 당선 가능성도 높은데다가 공약으로 '친일파의 완전 청산'을 들고 나와 여론으로 친일파 행적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게 된다면? 이미 일본에 충분히 자리잡을 여건이 되는 그를 친일파가 공격할 건덕지는 별로 없다. 이미 정보력에서 친일파가 한참 뒤지는 데다가 까발리는 쪽이 까발려지는 쪽에 비해 논리적으로 압도적 우위에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를 위한 보험이 바로 '출신 성분', 즉 그런 그를 '북한 출신'으로 몰아붙이거나 심할 경우 '북한과 내통한 조총련계'로 몰아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가 진짜 북한 출신인지 조총련과 관계가 있는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지금의 일본에서 자이니치의 구분법, 즉 남한 북한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일종의 사회적 약점을 역이용하여 공격할 수 있는 건덕지를 만드는 것이다. 성분드립이 시작되면 아무리 그가 친일파 청산을 외친다한들 그의 모든 발언은 신뢰도를 잃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북한의 공작'을 받고 '정권을 무너뜨려 북한의 침략 발판을 마련하는' 공작원의 공작으로밖에 치부되지 않게 된다. 아무리 국민들이 친일파 청산이 급해도 북한과 내통하는 인사를 정치권에 넣어줄리가 없다는 것을 지난 몇십여년간 북풍을 활용해왔던 북풍 종결자 친일파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인 것이다.

모순에는 이유가 있다. 그들이 일본 국적으로 바꾼 뒤에도 여전히 정체성은 한국에 쏠려 있는 이유, 그런 그들을 일본 국적으로 바꾸었다며 매국노라고 욕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는 모순투성이다. 어느 한 쪽이 반드시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는 한 성립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게 확실한데, 그게 과연 누구일까? 확실한 것은 자이니치는 한국에서 매국노라고 불리건 불리지 못하건 별로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지만, 그들을 그렇게 부르도록 만드는 세력은 그들을 매국노로 매도하며 사회의 주류에 합류시키지 않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득을 본다는 것 정도일까?

5부에서 계속....
posted by RushAm 2011. 2. 17. 00:14
1부에서 언급했던 친일파 시조급 인사들의 혁혁한 공로 그리고 그로 인해 일어난 사건들과 피해, 그리고 그 영향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 아니 이어질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누구보다 친일파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가 정말 우울한점이 대한민국 근대사에 대해서 친일파가 아닌 분들보다 친일파 새끼들이 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근대사에 대해서는 예전 박통시절도 아닌 이상 조금만 찾아보면 외국인의 손에 의해 보다 객관적으로 서술된 자료를 정말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친일파는 이에 대한 나름의 동기 부여가 될 만한 이유가 있다. 역사를 충분히 바닥에 붙은 먼지까지 훑을 만큼 충분히 알아야 자신들을 변호할 수 있으니까, 일본이 역사 연구에 천문학적인 돈을 쓰는 이유도, 중국이 동북공정을 위해 역사학자들을 열심히 구워삶는 이유도 다 '뭘 좀 알아야'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역사가 그냥 지나간 이야기일 뿐이라며 역사 교과서를 천대시하는 대한민국 학원계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친일파들은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사실 '일본이 나쁘다'라는 것을 주장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여기에 두 가지의 속임수가 있다는 걸 반드시 인지해야만 한다. 하나는 지난 번 글에서 밝힌 대로 친일파들은 '자신들이 친일파라는 걸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일본을 씹음으로서 '친일'이라는 단어적 의미에 대한 회피와 희석을 노리는 것이 첫번째이며 두 번째는 '역사에 드러나있는 대로 일제의 침략과 그로 인한 전 국민, 국토의 피폐화의 대한 책임이 100% 일본에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이제부터 차차 짚어보도록 하자.

이승만 대통령이 이기봉 부통령과 1954년 월드컵 예선전부터 추진했던 한일전, 그리고 정권 내내 꾸준히 주장해왔던 이른바 '반일 정신'은 그들의 친일 행적에 대해 '개과천선'의 이미지를 가져다주는 데 성공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운동가 경력에 어울리지 않은 광복 이후 친일파와의 정치적 결탁은 누구 하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었지만 (특별히 드러내지 않아도 이미 국민들 대부분이 세대가 같기 때문에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김영삼 대통령의 IMF를 기억하듯이) 의외로 4.19까지 이렇다할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이 정권을 잡은 뒤 열심히 '자신들의 반일 성향'을 어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향은 성골 친일파라고 할 수 있는 박정희 정권 말년까지 이어지는데, 이렇듯 친일파들이 독립운동가 출신 대통령을 지원사격해주면서까지'반일 행동'을 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대표팀 숙소에 삶은 계란 준 에피소드도 있었다. 사실 그렇게 유명해질만한 일화도 아니건만...


우선 앞서 언급한 대로 국민들에게 '친일파'에 대한 이미지를 하루바삐 벗어야 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아쉽게도 정이 넘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러한 거짓 개과천선을 믿어버린 채로 지지를 보내게 되는데 물론 여기에는 그들의 개과천선과 더불어 앞서 언급했던 '북한의 위협'을 언급했던 것이 주효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자신들을 구제해줄 반민특위를 해체하면서 생긴 친일파에 대한 반감을 돌리기 위한 방편, 즉 빨갱이 후보가 당선되면 이북이 다시한번 남한을 공격하게 된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정권을 정당화하며 국민들을 위협하는 양동작전을 펼쳤던 것이다. 그들의 정권이 굳이 투표 조작을 하지 않더라도 지지율이 오를 수밖에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렇듯 계속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한다는 것은 당시 미국 입장에서는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미국은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 재임 시절이었는데 1960년까지 연임하며 한국전쟁으로 벌어들인 각종 국제적인 이득 조항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내수 시장을 팽창시켜나간다. 이른바 미국의 고도성장최전성기라 불리우는 이 시대에 가뜩이나 한국전쟁 휴전협정 성과를 내세워 재선에 성공한 (미국은 어쨌든 임기 내 종전 업적을 남기는게 킹왕짱임) 아이젠하워에게 있어 틈만나면 반동이니 뭐니 북한을 자극하며 자신들의 정권을 지켜나가려는 친일파들이 달가워보일리가 없었을 것이다. 특히나 미국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할 듯한 이 시대 친미파의 교과서 이승만 대통령은 이러한 미국의 헛기침 한방에 바로 쫄아주시는데 공교롭게도 문제의 아이젠하워와 재임 기간을 같이한 이승만은 그 뒤 재임 기간 내내 북풍을 활용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된다.

소련 덕분인지는 몰라도 종전 후에는 나름 ㅎㄷㄷ한 리즈시절도 누렸던 북한..


이승만은 가뜩이나 불안한 내정을 바로잡을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북풍'이 사라지자 정치적 입지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사실 미국의 간섭을 무시하고 멋대로 북풍을 이용할수도 있었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군사력으로는 북한과 단독으로 맞서서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미국이 '나몰라라'하는 상황에서 정말 북한이 재침공이라도 하게되면 정권이고 뭐고 다 끝장나게 생겼는데 어쩌겠는가? 결국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대신할 것을 찾게 되는데 그것이 다름아닌 '일본'이다. 즉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반일 감정이 국민들 사이에서 가장 극도로 심했던 시기는 다름아닌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자신과 반대편에 서 있던 독립운동가 정치세력을 규탄하고 있었던 이승만 정권이었다는 아이러니한 역사적 사실이 존재한다.

일본을 싫어하게 만든다. 우리나라가 일제침략기를 거친 것도, 지금처럼 못살게 된 것도 다 일본 탓이다. 남북전쟁을 부추겨 중간에 무기중간도매로 엄청난 이익을 챙겨 경제부국이 된 야비한 국가다라고 일부 진실을 섞어 일본을 철저하게 호도하기 시작했다. 이는 독립운동가 세력의 '일제침략기에 대한 친일파 책임론'을 회피하고 정면으로 반박하기 위한 포석임에 다르지 않았지만 사실 이승만 정권에는 다른 믿는 구석이 있었다. 군사력으로는 북한이나 일본이나 밀리긴 마찬가지였지만, 좀 건드리면 우리를 바로 작살낼 수 있는 힘을 보유했고 그 힘이 닿는 사정거리에 있던 북한과는 달리 일본은 당시 전범국으로 발이 묶여 아무리 도발해도 우리나라를 공격해오지 않을 거라는 것, 이승만 대통령은 심지어 한국전쟁기간중에도 일본의 침략을 걱정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재임기간 내내 일본의 재침략 가능성을 제시하며 일풍을 아주 적절하게 이용해먹는다.

이승만이 무려 한국전쟁 당시부터 임기말까지 이용해먹었던 일풍의 근거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장면, 내용을 보면 이승만의 일풍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러한 일풍은 윤보선 이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에 의해 다시 '북풍'을 이용하는 쪽으로 변화되며 정말 타이밍 좋게 이승만이 사망한 직후인 1965년부터 미국의 압박에도 거의 진척이 없었던 한일협정이 재개되는 한편 침묵하던 북한이 도발을 즉시 개시하며 박정희의 재임기간 16년간 무려 29건의 진실과 거짓이 섞인 북풍 도발이 기록된다. 정계에 빨갱이 색출 작업이 재개되었음은 물론이다.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북한 도발은 윤보선과 김대중과의 대결이 시작되었던 1967~71년사이에 집중되었다.

이렇듯 거의 1,2,3공화국 대한민국의 경제부흥기 정권의 핵심을 틀어쥐며 대한민국에 뿌리를 박은 친일파와 그의 후손들은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당연하겠지만 이들은 이승만이 그랬던 것처럼 국민들이 가능한 '반일 감정'을 더 많이 가져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들은 잊을 만 하면 일제침략기를 들먹이며 종군위안부 문제를 뉴스에 올린다.(동아일보가 대표적) 그리고 가능하면 일제의 만행이 좀 더 이슈가 되기를 원한다. 물론 그들의 목적은 이승만이 그랬듯, 자신들의 차악과 개과 천선 이미지와 더불어 자신들의 친일 행적이 일제의 만행보다 더 작게 비춰지길 원하며,  그 시기의 모든 국민적 고통에 대한 책임을 일제에 전가시켜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실 부분이 있다. 바로 뉴라이트라는 조직의 존재 의미다.  뉴라이트는 일본의 우익교과서를 지지하며 위안부를 부정하는 등, 그야말로 대놓고 친일임을 과시하는 듯한 행동을 하고 있다. 이들이 친일파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인데, 이들이 지원하는 뉴라이트의 활동을 보면정말 친일파들이 국민들에게 개과천선의 이미지를 심고 있는 것이 맞느냐는 반론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뉴라이트의 주요 먹이 '역사교과서' 문제 그들은 사실 가능하면 일본의 만행에 대한 사실이 적나라하게 적힌 역사교과서가 채택되길 바란다, 사실 역사교과서가 의무교육이 되길 바라는 쪽은 친일파쪽이 더 적극적인데. 단! 가능한 만큼 일제강점기의 만행들은 대부분 일본의 책임이라고 기록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그들은 뉴라이트를 이용해 '일본 강점기를 옹호하고 변론하는' 기자회견을 몇 번이고 갖는 것이다. 이러면 국민들은 발끈해서 국사 교육에 더 신경을 쓰게 되고 가능하면 일제에 대해 더 크게 다룰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들의 친일 행각보다 일제의 악랄함이 더 크게 부각될것임은 두말할필요가 없다.


그런데 사실 뉴라이트는 모로 보나 바로 보나 친일파의 정실(?)이라고 보긴 힘든 구석이 많다 그들의 성분 상 가문 단위의 친일 전력도 별로 없고 일부 맴버를 제외하면 정말 어디에서 뭐하다 나왔는지 모를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그렇다. 의문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들이 대체 지금와서 친일을 해서 대체 무슨 이득을 볼 수 있냐는 것, 아무리 친일파가 빽이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자신들의 이미지가 나빠지면 사회생활하면서 이념이 다른 사람과 섞이기 두고두고 어렵다는 것을 각오한 이들의 무모함은 마치 자살폭탄테러에 뛰어드는 인간폭탄을 연상시키게 만든다.

이 부분에서 답이 이미 나온 셈인데. 그들은 국민들로 하여금 '일본을 싫어하게 만드는' 즉 일본을 주적으로 만들게끔 공작하는 공작원들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이들의 활동 내용, 즉 일본에 대한 생각을 환기시키는 데에 전력을 쏟는다는 것. 바로 이 코드가 일본의 극우랑 맞아떨어져. 일본의 극우들과 연합해 교과서를 만들거나 일본의 극우들의 활약에 동조함으로서 뉴라이트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의 극우 이미지가 되는데, 이로 인해서 뉴라이트가 득을 보는 것은 사실 거의 없다시피한다. 하지만 뉴라이트로 인해 일본을 주적으로 돌려 일제침략기에 대한 책임을 연신 일본으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드는 데에 성공한 댓가로 자신들에게 날아오는 친일파 청산의 화살을 피할 수 있었던 진성 친일파들은 아주 짭짤한 재미를 본다. 이들에게 있어 뉴라이트는 총알받이... 친일파들에게 자금을 받아 알바를 뛰는 소모품일 뿐인 것이다.

친일파는 종군위안부를, 일본 극우는 요코다 메구미를 주기적으로 이용해먹는다.


뉴라이트의 활동은 일본 극우와 맥을 같이한다. 일본 극우 역시 젊고 유능하며 사회적 명망이 있는 인사들을 대거 지원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이어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데, 한국에서는 뉴라이트가 그 젊고 유능하며 친일파들의 스폰서를 받는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세력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역할은 가짜 친일파가 되는 것, 가능하면 과거 친일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지금 와서 당시의 일본을 지지하는 듯한 모양새를 만들어나가는것, 그래서 다시금 일제강점기가 일어나고 당시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등의 저항이 잇따라 실패로 돌아간 원인에 대한 책임을 모두 일제에게 싸잡아 떠넘기는 것, 그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살며 권력을 쥐고 후에 있을 자신들의 후손에게 닥칠 친일파 책임론을 회피하기 위한 친일파들의 중장기 방안인 것이다.


4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