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0. 11. 22. 00:06
1. 해외에 있다 보면 나이가 있다보니 친구들을 사귀게 되어서 제일 많이 하게 되는 이야기는 서로의 나라에 대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룹니다. 이건 특별히 그 나라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 친구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묻는 경우가 많은데요. (물론 이국적인 차원에서의 흥미도 있긴 합니다) 저 역시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고민을 하죠. '음...사실 그대로 이야기하면 내 얼굴에 침뱉기가 될 것 같고, 돌려서 말하자니 왜곡하는 것 같고' 하지만 이 고민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습니다. 외국인 친구가 제가 대답을 하기 전에 한국 정치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기 때문이죠. 왠지 억울한 마음에 반박을 하게 됩니다. 마치 노림수에 걸린 것처럼 말이죠.

2. 현실에 긍정과 부정, 두 가지 치적이 심하게 뒤엉켜져 있을 경우, 혹은 부정이 가득하지만 내가 피할 수도 도망갈수도 없는 절대적 소속에 얽혀있을 경우 우리는 그에 대한 평가를 타인에게 맡겨지는 것에 대단히 민감해지게 됩니다. 부정이 가득하다는 것은 누구보다 그 내부에 있는 내가 제일 잘 알지만 그것을 대외적으로 이야기하자니 나 역시 더렵혀진 것으로 보이기에 꺼려지는 딜레마가 생기는 것이죠. 외국인 친구가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면 저는 오히려 한국이 그렇게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며 편들 구석 하나 없는 한국 정치를 옹호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3. 모든 기독교인이 다 그렇지는 않다. 일부 이단들의 행동을 전체로 치부하지 말라, 라는 이 유명한 글귀의 배경에는 바로 이런 딜레마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속과 전체주의 속에서 하나의 민족적 자긍심마저 생겨버린 듯한 대한민국의 기독교 그리고 그 수뇌부들의 끝없는 삽질은 기독교인들을 매번 좌절시키고 있지만 언제나 그들은 전체주의 속의 소수로서 순화되기를 원하고 있으며 이런 수뇌부들의 삽질로 인해 기독교 전체, 아니 기독교 신자로서의 자기 자신이 평가절하되지 않기를 강력하게 원합니다. 이들이 과연 기독교 내의 그 수많은 비리들을 정말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 아닐겁니다.

4. 기독교는 많이 부패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중에는 정말 부패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이들은 권력화된 현 기독교 조직에 관심이 없습니다. 스포트라이트도 받지 못합니다. 왠지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와 닮아있습니다. 부패해도 스포트라이트 받는 사람들 중에서 그나마 덜 문제있어 보이는 사람을 골라야하는 정치, 진정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인생을 바치는 사람들은 사회면 단신에 조그맣게 실리는 것이 고작인 사회와 말입니다. 기독교라고 해서 정말 아주 다른 인종과 민족들이 모여있는 곳은 아닐테지요. 한국인들이 모여 만든 한국 사회임에 지나지 않습니다. 역시 권력의 최전선에서 권력욕을 부리는 사람들은 이전투구를 하고 있고 진정 기독교를 위해 힘쓰는 사람들은 재야의 작은 교회에 모여 작은 움직임에 만족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기독교 내에서 조명받는 쪽은 그 작고 숭고한 활동보다는 권력욕을 두고 이전투구하는 몇몇들에게 집중되겠지만 말입니다.

5. 정치인들이 100이면 100 전부 부패하지는 않았을겁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겠죠. 그렇기에 우리는 외부에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속해있는 조직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관점에서 우리가 속해 있는 조직의 내부 사정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부정적으로 본다면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일부 정신나간 자들이 우연히 권력을 잡았을 뿐이다. 대다수는 선량하기 그지없다' 라고, 긍정적인 칭찬을 늘어놓는다면 왠지 내가 당하고 있는 현실이 억울해서라도 이들에게 진실을 하소연하고 싶은 생각에 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까지 마구 쏟아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6. 끝으로 한 이탈리아 출신 친구와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나 : 이탈리아의 정치 상황은 여전히 심각한가?
이탈리아 : 글쎄 관심을 끊은지 오래다. 하지만 변함이 없는 건 맞는 것 같다.

나 : 언론 통제도 심하고, 거의 독재 수준과 진배없는 부패함이 있다고 들었다.
이탈리아 : 맞는 말이다. 더 문제는 언론 장악으로 인해 그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 : 베를루스코니가 계속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배경에도 그러한 현실이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인가?
이탈리아 : 물론이다. 주변 친구들 누구도 베를루스코니를 지지한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지만 언론에서는 언제나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는다는 보도가 나온다.

...


나 : 나는 아까부터 이탈리아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만 했다.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이탈리아를 옹호하는 반박을 하지 않는가?
이탈리아 : 당신이 말한 것에 하등 잘못된 사실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특별히 이탈리아에 악의를 가진 것 같지도 않았다.

나 : 그래도 당신의 조국이 비난을 받으면 당신 역시 그 조직의 일부로서 비난을 받게 되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을것 같은데...
이탈리아 : 나는 우리 나라의 일원으로서 반드시 '좋은 말'만을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잘한 치적을 국민적으로 공유하는 특권을 누리는 것만큼 대외적으로 안좋게 평가되는 부분에 대한 책임 역시 지어야 하는 것이 국가 그리고 내가 소속된 어떤 조직이라 할지라도 그 일원인 이상 긍정과 부정 모두 들어야 할 위치에 있지 않겠는가?

나 : 그래도 이탈리아에는 모든 정치상황이 부정적일리가 없지 않은가? 그 부분에 대해서 자국을 변호할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인가?

이탈리아 : 당신은 이탈리아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걸 굳이 변호해야 할 필요성이 없다. 난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을 바꾸는 데에 외국인인 당신의 생각보다 이탈리아에 살고있는 이탈리아인의 생각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믿는다. 굳이 근거 없는 비난을 하지 않는 이상 당신에게 어떤 부차적인 설명을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탈리아 수상을 선출할 투표권'이 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RushAm 2010. 11. 13. 18:07
1. 음식물 쓰래기가 세계에 정말 보도되는지 안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정부가 음식물 쓰래기를 창피하게 느낀 것 같지만 그 자체로 뭐라고 하긴 좀 그렇다. 일단 정부가 그렇게 정했다는데 어쩌겠는가?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정부가 그렇게 느낀 것까지는 좋은데 그걸 국민들에게 시켰다. 우리는 지금 일 하라고 국민들에게 고용당해서 돈을 모아서 월급을 받고 있는 피고용인이 고용인을 부려먹는 희안한 세상에 살고 있다. 정부가 음식물 쓰래기가 G20에 안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느꼈다면 해야 할 일은 국민들에게 음식물 쓰래기 버리지 말라고 '명령'하는 게 아니라 G20기간 중 '임시 인력'을 투입해서 하루 한 번 수거를 세 번 수거로 바꾸는 것이 아니었던가?

2. G20때 교통 체증이 일어나는 것이 전 세계에 정말 한국의 이미지가 안좋게 타전되는지 어떤지는 별로 중요한게 아닌 것 같다. 정부가 G20에 교통체증이 정말 문제가 된다고 느꼈다면 경찰병력을 전부 코엑스에 박아놓고 무슨 월드컵도 아닌데 경찰 머릿수때문에 차가 못지가가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들 게 아니라 그 경찰 병력을 서울 곳곳에 배치해서 우회도로를 이용할 것을 유도하거나 교차로에서의 꼬리물기 등을 적절히 제어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행했어야 하지 않을까? 정부가 '닥치고 차 가져오지 마'라고 국민들 가택연금시키는 나라라는 이미지와 경찰 병력에 의해 도시 전체의 교통을 보다 원활하게 조절할 수 있는 교통제어 시스템, 과연 어느쪽이 세계에 타전되는 국가 이미지에 더 호의적으로 보도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일하는 대통령이라고 한다. 아침 6시에 일어나는 대통령이라고 했다. 월급도 반납했고, 경제 대통령은 CEO출신이 제격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뭐 새삼스럽지만 경제는 그렇다치고 하고 싶은 말은 그나마 내세우던 '부지런한 이미지'도 좀 구겨버려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다. 정부는 이번 G20에서 '그들의 게으름'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우리는 G20이건 뭐건 국가적 행사가 있을 때 그냥 나가서 얼굴마담하라고 뽑아준 게 아닌데, 그들은 그저 얼굴마담만 할 줄 알았을 뿐 이번 G20에서 한 게 아무것도 없다. 쓰래기를 내보내지 않은것도 차 안 몰고 나가서 가택연금을 감수한것도 국민들이었지만, 그들은 세계 외신 앞에서 자신들의 정부의 내부 영향력을 자랑스럽게 과시하며 무슨 초등학교에 투입된 방송국 카메라 앞에 선 초딩마냥 한번이라도 더 카메라에 잡히려고 야단법썩을 떠는 한심한 작태를 보였다. 게다가 자신이 찍힌 화면을 안 내보낸 국가의 매스컴을 대놓고 비난하는 모습에는 유치함까지 느껴질 지경이다.

일본은 오늘 APEC이 본격적으로 일정에 들어갔다. 회장 주변에는 최고등급 경계를 발휘하여 개미새끼 한마리 안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G20으로 치면 삼성역에 해당하는 일본 요코하마 '사쿠라기쵸'역 근처에는 오늘 APEC에 반대하는 일행들의 반대 시위가 있었다. 경찰은 적절히 그들의 행진 루드를 조절하며 시위대를 전체적으로 포위한채로 그들과 같이 행진하며 일반인들이 이들에게 접근하거나 이들이 일반인의 통행에 지장을 주는 것을 조절하고 있었다.

그리고 회장 옆에서는 이런 집회도 열렸다.
http://www.47news.jp/CN/201011/CN2010111301000260.html
APEC필요없어! 라는 게 집회 이름이다.

...

이런 짓을 하는 일본인이 무서운것일까? 아니면 우리나라가 무서운 나라인것일까?
그 좋아하는 전 세계가 우리를 어떤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지 알기는 알고 있는가?

posted by RushAm 2010. 10. 11. 02:04
저는 영어를 잘 못합니다. 주변에 영어를 하는 친구들도 있고 영어밖에 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말이죠. 지금 제가 있는 곳은 일본이고 일본에 유학을 온 이상 저는 영어를 배우기보다는 일본어를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일본에 와 있기 때문이죠. 만약 제가 영국이나 미국에 가 있었다면 그 나라의 모국어인 영어를 배우기 위해 애를 썼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제가 학생으로서 가지는 의무라기보다는 '그 나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SEOUL, SOUTH KOREA - DECEMBER 10:   South Korean students study a map of the United States as part of a scheme whereby students can achieve 'full immersion' in the English language without leaving the country, December 10, 2004 in Seoul, South Korea.  Students pass through a virtual passport control and enter a series of scenarios where they have to check into a hotel, eat with a knife and fork, and sample life in a replicated ?English home' as part of the scheme devised to broaden the range of foreign experience available to those without the means to travel abroad.  (Photo by Chung Sung-Jun/Getty Images)


일본에 유학을 온 학생들 중에는 영어권 학생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일본어를 배우려 들지 않습니다. 영어는 세계 공통어이고 이곳은 유학생들도 많이 들어오는 곳이니까 영어가 통하지 않는 직원들을 만나면 어째서 영어가 통하지 않느냐며 불평합니다. 아마 이들은 굳이 일본이 아니더라도 한국에 유학을 왔더라도 한국어를 배우려 들지 않았겠죠. 이들은 '일본'이나 '한국'을 존중하려 들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구사하는 언어가 이미 세계 공통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것이 우월하며 그것을 따를 것을 강조할 뿐입니다.

이런 제 생각이 최근 어떤 일본인과의 논쟁을 낳았습니다. 그 논쟁의 내용이 생각보다 재미있게 흘러가게 되어 소개합니다. 참고로 이 일본인은 유럽쪽에서 다수의 유학경험이 있고 영어에 능통한 편이지요. 물론 이 사람의 생각은 토론 내용에도 보실 수 있겠습니다만, 영어의 세계 공통화를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우선 이 일본인의 입장을 먼저 소개합니다.

- 영어는 이미 세계 공통어로서 자리잡고 있고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구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로서 가장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영어를 공부하는 것을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인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어느쪽이든 손해를 낳을 수밖에 없다. 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사람과 대화하며 자신의 성공 가능성을 넓힌다는 점에서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스스로의 발전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일본인은 영어를 배워야 하며 젊은 세대들부터 그 흐름이 시작되어 최종적으로는 일본어와 공용어로서의 레벨이 되지 않으면 일본의 나라 자체의 세계화적 관점의 발전 방향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

다음은 제 입장입니다.

- 영어가 세계 공통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쪽이 어느 쪽인가? 미국? 영국?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들에게 처음부터 세계는 아시아와 남미를 제외한 세계였다. 그것도 영국은 영연방과 그 영어를 방언으로서 받아들이는 독일어가 있고 그 독일어의 게르만 문화가 영향을 끼친 벨기에와 네덜란드 그리고 그 식민지였던 주변국들이 있을 뿐이다. 한 마디로 한 핏줄이고 최소 70%정도는 닮아있는 심지어는 우리나라의 제주도 사투리 정도밖에 차이가 없는 경우도 허다할 정도로 상호간의 호환도 잘 되었고 나라가 서로 붙어있는 만큼 교류도 활발할수밖에 없다. 공통어론은 사실상 유럽연합이 세계를 유럽의 중심으로 본 상황에서 영국이 유럽 패권을 장악했을 당시 주창했던 지극히 단일 국가의 이기적인 주장에 지나지 않았다고 본다. 그것이 정착된 건 미국의 급격간 경제 발전으로 인한 경제 패권과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는 지금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낸 것이지 영어가 아주 훌륭한 언어고 이미 대세로 굳어졌다고 해서 그 흐름에 마냥 동참한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

이에 대한 일본인의 반박입니다.

- 역사적인 진실은 물론 알고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역사가 아니라 지금의 상황을 말하는 거다. 동남아시아나 침략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럽의 약소국들이 어떤 역사로 인해 영어를 구사할수밖에 없었던지 간에 그들은 지금 영어를 구사하고 있고 우리는 앞으로 세계가 점점 작아지는 가운데에서 그들과 필연적으로 커뮤니티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여있다. 만일 네가 말한 대로 서로의 언어만을 고집하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개발 도상국 혹은 후진국에게 있어 기회를 앗아가는 것은 물론 지금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화된 국가에 있어서도 후퇴를 거듭하는 악수임에는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걸 국가적으로 대비하고 영어를 공용어로서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결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제 거듭된 반박입니다.

- 미국이 언제까지 세계 경제를 쥘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들도 언젠가는 1인자 패권에서 내려올것이고 그건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 자신들이 제일 잘 알고 있다. 영어 세계 공통어는 아주 오래 전부터 미국이 자신들의 세계 경제 패권을 쥐지 못했을 때를 대비한 보험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영어를 배우고 일본이 영어에 목을 매서 제일 득을 보는게 과연 대한민국과 일본일까? 결국 동양인이 아무리 영어를 잘 해봐야 처음부터 네이티브로 태어난 사람의 그것을 이기지도 못할 뿐더러 동일선상에서 경쟁을 벌인다는 건 에초 불가능하다. 동양권은 영어라는 키워드를 위해 적어도 3년간은 다른 능력을 배양할 시간을 희생하면서 영어를 배울수밖에 없다. 결국 네이티브들과는 언제나 3년을 뒤진 상태에서 경쟁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게 과연 동양인들에게 있어 더 나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미국, 그리고 미국인, 그리고 수많은 영어를 구사하는 그들이 지금의 수치적 경제가 아닌 자국민이 언제나 세계 패권을 쥘 수 있도록 만드는 보험에 굳이 동조해줘야 할 필요성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자국의 언어를 지키는 것은 그만큼 자국의 젊은이들이 언어에 투자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만을 배양하는데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국제화 시대 가장 최선의 방어책이다. 이를 애써 포기하고 싶어하는 저의가 무엇인가? 왜 애써 세계와의 경쟁에서 패널티를 기꺼이 먹으려 드는 것인가? -

여기에 대해 다시금 일본인이 반박합니다.

- 3년간의 시간적 갭은 지금 시점에서의 이야기이다. 이는 사회적 시스템이 점점 개선되면 해결될 문제다. 일본은 아직 영어 교육이 공교육으로서 본격화되지 않았지만 점점 새로운 세대들을 중심으로 본격화될 것이고 영어를 공용어로서 활용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가 되면 충분히 네이티브와의 경쟁에서도 뒤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굳이 네 생각같은 사고방식으로 시작할 수 있는 시기적 기회를 점점 늦추는 것이야말로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것인가? 공교육에서의 영어교육, 그리고 자국민의 영어수준 향상은 분명 시급한 과제이고 네가 말한 그 갭을 하루바삐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의 영어 교육 정책은 결코 잘못된 길로 가고 있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

물론 저도 다시금 반박을 합니다.

- 언어는 문화다. 그 민족의 역사이며 넓은 의미로는 존재의 의미를 지닌다. 일본인이 영어를 일본어보다 더 많이 쓰면 과연 전 세계에서 일본인을 일본인으로 봐줄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 거라고 생각하는가? 지금 영어를 쓰는 개발도상국들 사람들이 미국이나 영어권 국가로의 진출이 용이한 상황에서 그들의 모국을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일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져서 대한민국 그리고 일본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공교육에서의 영어교육 강화를 주창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두말할필요가 없다. 영어 교육에서 뒤쳐진 인재들은 언제까지고 기회를 박탈당할 것이며 영어는 점점 더 많은 기회를 얻는 마법의 열쇠로, 일본어는 점점 영어를 배우는 데에 방해만 되는 퇴물취급을 받게 될것이다. 영어교육에 있어 균등한 기회를 얻지 못한 계층이나 군소지역 지방 주민, 출신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기회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고 그 격차는 지금보다 훨씬 더 벌어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대한민국의 서울처럼 다양한 지역 출신들이 서울로 상경해서 자신의 출신지를 자랑스럽게 밝히는 지금의 모습을 볼 수도 없고, 그들이 사회의 주류로서 활약할 수 있는 사례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서울 출신, 일본의 도쿄 출신만이 성공하는 사회, 그리고 그나마도 세계 각국의 네이티브와의 정면 승부에서 언제나 크고 작은 패널티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단일집중화 세계를 만드는데 애써 동참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가? 영어 공용화 문제에 대한 한.일 양국의 신중한 자세는 결코 헛되지 않으며 오히려 지금보다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
...

논쟁이 쓸데없이 격해지려는 것을 느꼈는지 일본인은 싱긋 웃으며 이쯤해서 그만하자는 식으로 논쟁은 끝이 났습니다. 원래는 짤막하게 서로 주고받는 논쟁이 되었지만 글로 알기쉽게 적기 위해 큰 틀로 나누어서 적었음을 양해 바랍니다.

어떠신가요? 여러분은 영어를 배우시면서 정말 내가 영어를 배움으로 인해서 내가 좀 더 많은 기회를 얻고 나 같은 사람이 더 많아지면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신 적이 있으셨나요? 모처럼 생각해볼 기회가 생긴 김에 한번 다른 분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덧글을 유도하는 포스팅을 해보려 합니다.

많은 분들의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RushAm 2010. 10. 10. 13:50
네이트의 김현회 독점 컬럼을 읽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일화 천마 축구단을 처음 알게 된 건 아마 1994년 무렵이었나? 가뭄에 콩 나듯 중계해주던건 15년전이나 지금이나 놀랍게도 하등 달라지지 않았던 그때 주말 오후 2시에 중계해주던 울산 현대 호랑이 축구단과 일화 천마 축구단과의 아디다스컵 경기였다. 난 당시 K리그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던 초딩에 불과했기때문에 놀랍게도 마스코트 즉 현대의 호랑이, 와 일화의 '천마'중 누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지에 대해서 잠시 고민한 후 주저없이 호랑이가 제일 쎈 동물이라는 초딩스런 상식에 편승해서 울산의 승리를 점쳤었다. 그것은 커다란 실수였다. 지금도 난 미성년자의 토토 금지를 지지하고 있다.

Mar. 31, 2010 - Beijing, China - (100331) -- BEIJING, March 31, 2010 (Xinhua) -- Players of Seongnam Ilhwa FC celebrate after a group E match between Beijing Guoan and Seongnam Ilhwa FC of the AFC Champions League 2010 at the Workers Stadium in Beijing, capital of China, March 31, 2010. Seongnam Ilhwa FC won 1-0. (Xinhua/Li Ying.


성남은 정말 강한 팀이었다. 한 번도 제대로 망가지는 걸 본 적이 없다. 망가졌다고 해도 중위권 정도다. 사실상 팬층이 얇아서 제대로 목소리가 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도 강하다. 2002년 월드컵 직후에는 K리그판 갈락티코를 구축하고 그 선수들은 명성에 걸맞는 실력으로 리그를 한동안 초토화시키기도 했다. 어쩌다 가게 되는 경기장에 행여 성남이 원정을 오면 한숨부터 나왔다. 모처럼 경기장에 발걸음을 옮겼는데 홈팀이 지는 걸 보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성남은 그런 팀이었다. 1995년 그 전설의 챔피언결정전때 소름끼칠정도로 강했던 포항을 결국 일축시킨 뒤부터 그들의 이미지는 그 색선정에 다분히 문제가 있어보이는 머스타드색 유니폼과 더불어 공포 그 자체였다.

통일교라는 종교를 안 건 그 뒤로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 통일교가 우리에게 친숙한 맥콜 그리고 일화 천마 축구단의 모기업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알려준 사람들은 정말 정성껏 나에게 열변을 토했다. 이단 종교, 사이비 종교 지도자의 팀에 협력해서는 안된다. 물건도 사지말고 경기도 보지 말라, 아무튼 엮이지 말라는 이야기인것 같았다.

그런데 그들이 ...즉 통일교를 싫어하고 통일교가 운영하는 성남 일화 천마 축구단을 싫어하는 그들이 그걸 손수 알려주기 전까지 난 통일교의 존재도 성남 일화가 통일교 후원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전혀 알지 못했다. K리그를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게 그 전까지 7년이 되어가던 시점이었는데도 말이다. 정리하면 난 그들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까지 어딘가의 게시판에서 통일교 떡밥을 우연히 접하고 그것을 정독하지 않는 한 계속 모르고 있었을거라는거다.

맹세코 난 둔하지 않다. 내가 잘하는 것 하나 없어도 내세울수 있는 것 하나가 눈썰미다.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엄청난 페이스로 관찰하고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것까지 캐치해낸다. 성남 일화를 지켜본 지난 십수년간 성남 일화의 경기 그리고 외적인 이벤트에서 '사전 지식 없는' 일반인의 시점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이벤트나 행위, 종교적 키워드를 캐치해낸 적이 없다. 월드컵에서 카메룬 선수들이 골을 넣고 코너플랙 근처에서 하는 종교적 행위가 궁금해서 구글 번역기를 통해 아프리카 종교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도 했던 나였는데도 말이다.

통일교는 일본의 종교 문화와 많이 닮아있다고 느끼고 있다. 일본에 거점을 두고 있는 영향도 있겠지만 일본 사람들 나에게 '혈액형'이나 '생일', '나이'를 물어본 적은 있어도 종교가 뭔지를 물어보는 사람을 단 한명도 본 적이 없다. 가끔 아주 특별한 경우로 외국인을 만날 때도 있는데 미국 국적의 이슬람 종교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 홀로 라마단을 치르고 라마단이 끝난 뒤 모두와 함께 음식을 나누어먹는다. 그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는 것 이외에 자신에 가진 종교를 어필하는 일도, 포교를 하는 일도 하지 않았다. 종교는 '자신만의 것'이라는 생각은 비단 일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인생 중에 몇 번 정도는 통일교 신자를 만났을수도 있을것이다. 그런데 난 통일교를 포교받은 적이 없다. 그 정도로 통일교는 자신들의 존재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자신들의 계율이나 심지어 기도조차 교회 밖에서는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철저하게 자신들이 공유할수 있는 공간 이외에서는 상대의 어떤 부분도 침해하려 들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인생 중에 정말 수많은 기독교 신자를 만났다. 그 중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이야기 도중, 심지어는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부터 종교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기독교는 적극적으로 사회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어필하고 드러내는 데에 열심히다. 김현회기자가 언급한 '할렐루야 축구단'도 그 중 하나리라...

통일교 그리고 성남 일화 천마 축구단은 종교적인 홍보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종교적인 홍보를 애써 대신 해주려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통일교는 오히려 그분들에게 감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난 종교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앞으로도 관심이 없을 예정이지만 통일교에 대해 아주 조금이나마 그 존재 자체를 알게 해준 건 통일교도 주식회사 일화도, 성남 일화 천마 축구단도, 선문대학교도 아닌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규탄할 것을 부르짖는 기독교였다.

기독교의 이미지가 좋아지기 위해서 시급히 해야 할 이단척결대상은 통일교가 아니라 그들 속에서 과로사로 편히 잠은 에어장같은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아내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posted by RushAm 2010. 10. 2. 16:38
이해찬 1세대라는 세대가 있다. 당시 이해찬의 교육 개혁의 핵심은 이거였다. '한 가지만 잘 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 사실 이게 틀린 말이 아닌게 대학은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전공체제 교육체계의 결정판이기 때문에 수능이라는 종합고사를 봐서 학과를 배정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거지 이해찬의 저 말이 웃긴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해찬과 몇몇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찬을 비난하며 이해찬의 교육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물론 이해찬 교육 제도에 피해를 입은 이해찬 1세대들 역시 이해찬에게 반기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스스로를 '이해찬 1세대'라고 부르는데에 주저함이 없다. 당시의 분위를 회고해보면 대학은 물론이고, 기업, 학부모, 심지어 수험생까지 누구 하나 이 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왜 이런 반대 여론이 일어났는지 조금 거슬러 올라가보자, 제일 먼저 반기를 든 쪽은 대학이었다. 대학은 기본적으로 들어온 학생이 어떤 학생이 되어서 졸업하는지보다는 처음부터 어떤 학생이 들어오는지가 대학의 가치를 좌우한다고 철썩같이 믿는 집단이다. 만일 이들에게 정말이지 편리하고도 사회적인 동의가 모두 끝난 수능을 무력화시킨데다가 객관적인 수치 평가가 불가능한 이해찬 정책을 내세운다면? 대학은 스스로 자생력을 만드는데 너무나도 오랜 기간 게으름을 피워왔기 때문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채 평준화되고 말 것이다. 마치 SK가 011번호의 브랜드 가치를 주장하는 것처럼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억지로 고착화시킨 시스템을 부정당하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을테니까, 그들은 말 그대로 지금 시스템을 깨면 '아무것도 할 줄 아는게 없는 병신'이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이 반대한 이유도 이와 좀 비슷하다. 그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이 보다 더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증명이 언제나 몹시 필요한 집단이다. 그것이 대학이 되었다가 자립형 사립고가 되었다가. 심지어는 명품원어민영어유치원이 되는 것이다. 뭐든 자신들의 가치를 드높여주고 데코레이션해줄 만한 수단이 생기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그들에게 대학이라는 정점의 사회적 프리미엄을 격하시킬 (사실 멋대로 높여놓은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에 지나지 않음에도) 이해찬의 정책은 자신들의 자존심을 긁는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정부가 자금압박을 가해서 명품백제조업체의 부실경영을 바로잡기 위해 워크아웃을 거는 것과 비슷할까? 명품백을 구매한 학부모들은 정부 청사 앞에 가서 가스통을 깔 것이라는데에 500원을 건다.

여기까지는 차라리 그러려니 한다. 원래 그런 사람들은 답이 없다. 그런데 도무지 포기가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젊은이들이다. 스스로를 이해찬 1세대라고 부르며 언제나 자신들이 대학입시를 벗어나면 적어도 그 뒤의 세대들이 자신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대학입시를 치루는 것을 못마땅해하거나 스스로가 시대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그 피해를 받은 원인을 그 시대가 주류에 맞지 않는 일을 저지른 탓으로 돌리며 애써 기존의 서열 체계에 줄서기 바쁜 구역질나는 세태를 보이는 것이 그것이다. 이들의 특징은 적어도 '자신이 겪은 고생'이 다른 사람들이 겪은 고생보다 덜 하길 바라는 마이너스적인 긍정화를 시도한다는 것인데, 바로 이 부분에서 타진요의 심리를 읽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국내파'들에게 유학생들은 심히 못마땅한 존재이다. 특히 유명 대학교 타이틀을 얻은 북미,영연방계의 유학생들이 심한 편인데, 사실상 입시 제도에 있어 유학생전형이라는 지극히 편리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고 학비나, 현지 적응비용 등 만만치않은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유복한 셀레브레이트가 아닌 이상 아무리 전형이 만만해도 쉽사리 도전하기 힘들다. 에초 접근성 자체가 좋지 않다보니 해외명문학교에 대한 학교 지위나 내부 시스템을 국내 입시 사정이나 학교 서열 개념과 동일시하는 다소 '미지의 세계'적 오류를 범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문제가 된 '스탠퍼드'의 에세이 전형에 대한 타진요의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해외 대학교는 우리나라의 수능마냥 SAT 하나로 모든 게 끝장나는 시스템이 아니다. 이해찬의 정책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원론적인 부분에서 특성화 교육에 대한 전형을 풍부하게 마련하고 있고 그 전형에 대한 능력 역시 SAT과 큰 차별성을 두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우리나라처럼 실업계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을 왕따시킨다든지 하는 졸렬한 서열화를 보기는 쉽지 않은 것인데, (학생들 사이에서 인종차별은 있는 모양이지만 학교 시스템 자체에서 커트시키는 건 거의 없다는것) 처음부터 SAT를 잘 푸는 능력과 에세이를 잘 쓰는 능력의 가치를 편협하게 평가하지 않는 인식이 학교는 물론이고 학생과 사회 전반에 정착되어 있기 때문에 얻어지는 결과이다.

이해찬 정책이 한국에서 거부당했던 이유, 그리고 지금 타진요가 스탠퍼드의 에세이 전형을 인정하지 않는 것, 모두 멋대로 이 사회가 만들어낸 대학의 우상화 우열화, 프리미엄화가 만들어낸 패착인지도 모른다. 스탠퍼드대의 에세이 전형보다 아무 이유없이 타이틀에 집착에 유명 연예인 영입에 목을 매는 J모 대학이나 D모 대학이 훨씬 목적이 더럽고 치졸하지 않은가 싶은데 이 현상에 대한 비난 역시 대상은 대학이 아닌 연예인이 된다는 점, 현재 타진요의 주요 발언권의 설득력을 갖추고 있는 이른바 '스탠퍼드 물 먹은'자들의 '자신이 어렵게 들어간 프리미엄을 깎지 않기 위한' 혹은 '그렇게 어렵게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감추기 위한' 활동들이 과연 어떤 정당성과 순수성을 동반할 수 있는 것일까?

타블로는 스스로를 위해 스탠퍼드대학교를 다녔다, 타진요는 스스로를 위해 타블로를 비난한다. 개인적으로 결론은 여기에 고착된다고 생각한다. 타진요가 '전 국민의 알 권리' 같은 터무니없이 치졸한 이유나, '전 국민을 속인 전례를 깨끗이 하기 위한 사회적 도덕성 확립'같은 위선적인 이유를 부르짖고 이에 국민들은 크든 작든 이 사회의 학력 시스템의 크고작은 피해의식을 결부하여 일을 키워버린 지금의 상황, 이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 이 사회의 시스템에서 진실을 모른 채 사는 사람들 속에 유일하게 진실을 안 사람의 입을 틀어막고 납떔을 해버려야 자신의 인생을 위로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생각이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것 같다.

하버드가 한국에서 그들만의 전형을 실시한다면, 스탠퍼드가 한국 분교에서 에세이 전형을 실시한다면?, 스탠퍼드, 하버드 현지 본교 출신 유학파들이 국회 앞에서 까스통 깐다에 500원 건다.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 되지 않는 것이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지름길이건만 그들은 지금 유전학파의 논문에 너무나도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이 지금 이 사회를 살고 있고 이 사회에 아직 희망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너무나도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이 나라는 바뀌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 전혀 플러스가 되지 않음에도 단지 자신의 마이너스가 무의미해지지 않기 위한 일부 인간들의 발버둥으로 인해 바뀔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몇 번째 놓치고 있는지도 앞으로 그 기회를 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posted by RushAm 2010. 8. 8. 18:22
처음부터 뜬금없지만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해보자, 축약하면 아담과 이브가 무슨 열매가 열리는 나무 밑에서 살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이거 따먹으면 절대 안되느니라'라고 말했고 , 아담은 그걸 충분히 지켰지만 이브는 아담에게 꼬득여 따먹자고 유혹해서 결국 따먹고 이걸 위반한 죄로 하나님은 에덴에서 이 둘을 쫒아냈다는 것인데...이 이야기 생각해보면 꽤 많은 여지를 남긴다. 물론 아담이 그 금단의 열매를 지키는 역할로서 따먹은 사실 자체는 문제가 맞다. 하지만 하나님이 왜 그 금단의 열매를 '애써'만들어서 그 금단의 열매에 유혹당하기 쉬운 (다른 생명체도 많을텐데도, 아니면 그 금단의 열매에 에초 유혹당하지 않도록 처음부터 만들 수 있는 능력도 있었으면서) 인간을 그 옆에 붙였는지, 그리고 여자를 만들어서 옆에 붙이고 유혹을 해서 쫒아냈다는 것까지 잘못은 그 둘이 다 뒤집어 쓰고 금단의 열매를 대체 왜 만들었는지 모를 하나님은 일체의 해명 없이도 전혀 잘못이 없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 그렇다.


왜 갑자기 종교논쟁을 불러일으킬만한 예제로 시작할수밖에 없었냐면 지금의 대한민국 걸그룹 시장이 딱 그 판이기 때문이다. 지피베이직이 초등학생 맴버를 내세워서 화제를 모으고 미성년자 맴버들이 대거 소속된 걸그룹이 섹시컨셉으로 요염한 안무를 TV에서 소화하는게 과연 애들 정서에 좋으냐에 대한 논쟁은 차라리 양반에 속한다. 어디에서 나왔는지도 모를 '일본 연예게의 로리 문화'라는 것을 갖다대면서 우리나라도 그렇게 퇴폐적이고 쓰래기같은(응?)연예계가 되어가는 건 아닌지 우려하고 이런 변화의 흐름에서 걸그룹에 열광하는 30대 이상의 남성 팬들을 소아성애자, 변태, 심하게는 예비 미성년성범죄자의 원흉정도로 모는 행태까지 아주 가지각색이다.

이같은 반응들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른바 '책임회피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선 초등학생 맴버들이 짧은 스커트를 입고 나와서 TV를 보는 아이들이 악영향을 받는다고 하는 이면에는 '그런 걸 보고 사리판단조차 제대로 못할 만큼 아이 인성교육에 무관심했던 현재의 일부 부모세대'들이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TV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책임회피가, 일본의 로리문화가 침투했다며 한탄하는 이면에는 지금의 연예계가 이렇게 될 때까지 건전한 해결책을 모색할 시간을 흘러보낸 업계 내외적인 뒷북 행정이, 걸그룹에 열광하는 30대를 강호순의 원흉으로 지적하는 이면에는 지금의 미처돌아가는 아동성범죄 뉴스에 대한 책임을 어딘가로 전가해야만 했던 이 사회의 절박함이 있다.

애들은 굳이 걸그룹이 아니라도 뭐든 따라한다. 흉내내기는 본능적인 학습방법이기 때문이다. 그 흉내가 좋은건지 나쁜건지 가르쳐주는 건 TV가 아닌 부모의 역할임에는 두말할여지가 없다. TV가 애들에게 직접 매를 들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우선 걸 그룹이 등장한 이유를 좀 역순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정말 많은 (자칭) 연예계평론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걸그룹'에 대한 수요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폭발적으로 공급이 늘어났다고 보기에는 좀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 연예계는 예전처럼 연습생의 실력이 무르익을 때 데뷰시키는 시스템이 아닌 시장이 무르익을 때 데뷰시키는 시스템으로 변화하고 있다. 다시말해 이미 어떤 연습생의 실력이 당장 데뷰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성장해도 시장이 정체되어 있으면 데뷰를 시키지 않으며 반대로 아직 실력이 설익은 연습생을 시장이 무르익었다는 이유로 비주얼만을 내세워 시급하게 데뷰시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말 '시장'의 무르익음을 지켜본다는 측면에서 연예계가 수요를 예측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걸그룹 러시는 핵심적인 부분에서 그 맥을 달리하는데 시장이 무르익은 것 이상으로 '구매력'에 대한 확고한 판단을 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시장이 무르익었을지언정 정말 구매까지 이어질지에 대한 위험 부담은 어느 시장에서나 마찬가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가요계는 전체 시장의 파이가 급격히 위축되는 과정에서 그 구매력이 지극히 일부 계층으로 압축되어가는 틈새시장화되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는데 이 틈새 시장은 시장의 규모가 작은 대신 시장의 구매력, 즉 충성도가 높아서 상품 출시에 대한 실패 리스크, 자금 회수에 대한 부담이 한층 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절대구매층'이라는 것은 사실 우리 가요계에서 원래부터 있었던 시장도 아니었다. 항간에서 말하는 '오래 전 부터 잠재되어 있던 시장'이었다는 설명은 일부 일리가 있지만 지금만큼 가요계 전체를 주름잡을 정도로 보기는 어려웠으니까, 기본적으로 이같은 걸그룹 아이돌 시장의 이면에는 연예계 특히 음악 업계가 경제 침체로 인한 음악, 음원 수익의 저하로 인해 대박부터 쪽박까지 가능한 변수가 큰 도박을 감행하는 사업 구조부터 확실히 먹을 수 있는 소박을 쫒는 것으로 전략을 선회했으며 이를 위해 지금의 '걸그룹 틈새 시장'을 '만들었다'고 보는 편이 현명할 듯 싶다. 즉 가요계는 좋게 말하면 '살아남기'위해 나쁘게 말하면 '가요계의 정체성을 버려서가면서까지 돈을 벌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제시했으며 그 결과가 지금의 다소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걸그룹 시장이 만들어진 계기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매니악하다는 것은 극과 극이다. 확실한 구매층이 있다는 것은 모와 도, 즉 어리고 귀엽거나, 성숙하고 섹시하거나, 아니면 딸자식처럼 살살거리거나... 지금의 걸 그룹은 1인 3역을 해야만 하는 위치에 있다. 왜냐면 한 가지 역할을 하기 위해 육성에 투자하면 적자가 나니까...매니악한 시장은 말 그대로 파이가 작지만 그것이 3개 4개가 되면 그럭저럭 먹고 살 정도는 벌어먹을 수 있으니까...


이들은 이처럼 시장의 파이를 극도로 좁히는 대신 확실한 수익처를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지만 문제는 이것이 특정 기획사 하나에 의해 이루어진 전략이 아니라 대중음악계 전체가 아예 판을 뒤엎을 생각으로 움직였다는 데에 있다. 그렇기에 지금 대중가요의 공급 비율은 철저하게 스스로 좁혀놓은 시장에서 가능한 현실적인 수익을 뽑아내는 것으로 아예 그 틀 자체가 바뀌어버린 셈이 되었는데 이 판이 가져오는 문제는 틈새 시장을 공략한 게 아니라 가요계 자체가 자발적으로 가요게의 정의를 내릴 수 있는 파이 자체를 좁혀놓았기에 다른 음악 장르가 가요계에 파고들 틈새를 전혀 만들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 첫번째이고 이른바 '절대구매층'을 노려 얻은 짭짤한 수익을 다시 절대구매층을 위한 걸그룹 혹은 보이그룹 등 판매 가능한 '상품'을 만드는 데에 투자한다는 점이 두번쨰이다. 당연하겠지만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 될수록 시장은 점점 그들 스스로에 의해 좁아지고 세밀해지며 매니악화될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만든 상품 '걸그룹'을 소비하는 주체들은 왜 이들이 만든 상품에 열광하는가? 정말 그들이 딸 뻘 되는 아이들에게 성적 욕망을 느껴서일까?, 어린 아이들이 핫팬츠를 입고 나오는 코드가 정말 일본의 나이어린 아이돌 그룹 문화를 닮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쉽게도 이것은 일본을 포함한 어느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일본을 탓하든 뭘 하든지 해서 어떻게든 우리나라에 면책을 주고 싶은 마음이야 알겠지만 이 부분은 절대 그들이 말하는 (도대체 출처조차 알기 힘들) 로리문화라는 것과는 전혀 닮지도 않았을뿐더러 우리나라처럼 20세 미만의 청소년들이 가요계를 포함한 연예계 전체를 주름잡는 건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소녀 아이돌'연령대는 적게는 10대 극초반부터 많게는 20대 중반까지 다양하다. 그들 중에는 정말 10대 중반 정도의 어린 아이들만 모아서 소녀틱한 컨셉으로 유닛을 구성하기도 하고 좀 나이가 있는 맴버들을 모아서 보다 성숙한 컨셉의 곡을 소화하는 유닛을 결성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현재 나와 있는 그 어떤 10대 중반 맴버 중심의 아이돌 그룹을 살펴보더라도 이들에게 핫 팬츠나 나시티, 가슴을 강조한 옷이나 노출이 심한 옷, 찢어진 스타킹 등을 신겨서 무대에 내보내는 기획사는 단 한곳도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나올 경우 '팔리지 않기'때문이다.


일본은 시기적으로 발산해주는 매력을 철저하게 구분해서 소비한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20살 넘은 여자가 교복을 입는다고 해도 10대 중반의 소녀들이 입은 것에 상대가 되지 않는 것처럼 10대 중반의 소녀들이 아무리 섹시가 어쩌고 옷을 찢고 맨살을 보여도 20대의 갖춰진 스타일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기획사뿐만 아니라 그들을 소비하는 소비주체들도 충분히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10대 중반으로 구성된 소녀그룹이 '널 오늘밤 갖겠어, 유혹하겠어'라는 식의 가사를 담은 음악을 부르는 경우를 보는 건 정말 힘들며 당연하겠지만 부른다고 해서 팔릴 턱이 없다. 교복은 정말 소녀들이 입어야 이쁜거고 섹시한 옷은 숙녀들이 입어야 예쁜거라는 이 아주 당연한 생각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일본 연예계 로리문화'의 실체이다.


이야기를 다시 돌려서 그렇다면 한국에서 지금 벌어지는 10대 중반의 소녀 걸그룹들이 하이힐신고 짧은 옷 입고 맨살 드러내며 섹시춤 추는 걸 보고 열광하는 아저씨들은 진짜 로리콘들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내리자면 다소 조심스럽지만 NO에 가깝다. 앞서 말했지만 이들은 굳이 10대 중반이 아니더라도 노출이 심하고 섹시한 컨셉의 여가수가 나오면 충분히 소비할 의향이 있는 고정 소비층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에게 음반 업계는 더 잘 팔리기 위한 수단으로 이들 소비층에게 공급하는 상품의 연령대를 확 낮추고 그 이상의 연령대의 걸그룹 공급을 끊어버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들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나이 어린 걸그룹들의 컨셉을 20대 초반 걸그룹에서나 볼 수 있던 섹시한 컨셉으로 일원화시킨 것이다.

별로 그렇게까지 옛날 이야기도 아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다보니 고정 소비층 즉 '섹시한 여자 가수'를 소비하는 소비층의 주체는 자연스럽게 현재의 소녀 걸그룹으로 옮겨가게 되는데 여기에 기획사들은 단지 틈새시장을 공략해서 얻는 적은 수익으로는 지금의 덩치만 거대해진 회사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이 틈새를 더욱 벌리는 데에 집중한다. 여기에 투입되는 것이 이른바 '중장년층 공략'이다. 소녀시대를 비롯한 다양한 걸그룹들이 주말 프라임타임에 방영되는 버라이어티에 대거 출연하여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리더급 맴버가 일일연속극에 투입되어 매일 안방극장을 찾아오는 식으로 맴버들을 마치 '매일 보는 딸자식'같은 감정을 갖게 만드는 식인데 이게 제대로 먹힐 경우 발휘되는 구매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미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중,장년층의 구매는 음악이나 그들이 보여주는 퍼포먼스와는 전혀 별개로 '마치 내 딸이 잘 되기를 바라는 심정'처럼 그들을 위해 '돈을 써주는' (송금하는) 식의 지불 형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구 우리 딸 복스럽게도 먹네


딸같은 아이들을 보고 성적인 감정을 보이는 게 아니라 정말 딸같이 어겨서 그 딸같은 애들이 잘 되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 (그만큼 진짜 딸들이 딸같이 굴지 않았던 때문인것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그리고 원래 나이가 적건 많건 그냥 섹시한 컨셉이 나오면 좋아하는 팬들로 구성된 지금의 걸그룹 팬들을 두고 로리콘에 변태라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조금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 어디까지나 '수요'가 원래부터 있었다고 보기에는 지금의 현상이 너무 급진적이고 폭발적이기 때문이다. 걸그룹 팬 중에 '로리'컨셉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고는 말히기 힘들지만, 그들 역시 일본의 그들과 마찬가지로 '뭔가 소녀다운 걸그룹'을 보고 싶을 뿐인 팬층이 대부분일 것으로 보이며 그 수 역시 그렇게 많다고 하긴 어렵다. 다시 말해 이는 '가요계'에서 수익성을 최대치로 추구하기 위해 투자 대비 수익을 가장 극단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쪽으로 단순 일원화시켜 집적시킨 데에 따른 오해에서 비롯된 참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녀시대의 팬층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1. 나이어리고 귀여운 걸그룹을 좋아하는 팬, 2. 성숙하고 섹시한 여가수를 좋아하는 팬, 3. 딸자식같은 마음씀씀이가 드는 팬...문제는 이 세 부류의 팬이 하나의 그룹에서 100%만족은 못할지언정 적당히 타협한 만큼 원하는 부분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본의아니게 그들은 '어린데 맨살 내놓는 딸자식같은 애들을 좋아하는 변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3가지 수요를 3개의 그룹으로 소화해야 할 시장을 하나의 그룹으로 일원화하다보니 생긴 괴물이 바로 소녀시대인것이다


그러면 왜 기획사들은 10대 걸그룹, 그것도 더 어린 애들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번 지피베이직의 예 처럼 노이즈마케팅 효과를 노리는 경우도 있지만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대부분의 이유는 '계약상에서 기획사에 더 유리한 계약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조글) 섹시 컨셉이 먹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캐치한 기획사가 새로 그룹을 기획한다고 한다면 섹시컨셉에 적합한 성숙한 컨셉의 캐릭터들은 이미 20살이 넘어가 머리가 굵어지고 내 몫을 챙기는 신중함을 보이는 데에 반해 나이어린 걸그룹들은 일단 한번 장기노예로 묶어두면 그 안에서 가능한 다용도(?)로 활용해서 가능한 뽑아먹을 만큼 뽑아먹는 것이 가능한것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가장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섹시'컨셉을 위해 짧은 치마를 입고 탱크톱을 걸치고 봉춤을 추며 '오늘밤 한가해'라는 식의 노래를 읇조리고, 일일연속극에서 구박받는 며느리로 출연하기도 하며, 버라이어티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생활력을 보여줘야만 한다.

누구나 잘 팔리는 물건만 가져다 놓고 싶은 것이 장사꾼의 마음이다. 만일 음악 업계가 장사꾼이라면 그리고 스스로 장사꾼임을 자처한다면 지금의 연예계 흐름에 돌을 던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장사꾼이 아닌 '문화 업계의 발전을 돕는 첨병'으로 소개하고 있고 예술가로서 국민들의 정서 소양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떠들고 있다. 대중문화예술가라는 칭호도 빼놓지 않는다. 꿈을 파는 직업이라는 닭살돋는 표현도 가끔 더해가면서 말이다. 듣기 싫고 인정하기 싫다면 지금의 상황에서 군소리 없이 돌을 맞아도 할말이 없지 않을까? 정말 국민들의 정서 소양에 이바지하고 우리나라의 음악 수준을 지속적으로 높여가려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같은 판세를 만든 것에 대한 책임과 음악의 판까지 뒤엎어가면서까지 수익에 집착하면서 얻은 수익으로 대체 음악업계의 발전에 무엇을 해왔는지 명확히 밝히지 못한다면 날아오는 돌에 대해 억울하다며 동정을 구하는 구역질나는 행태를 보이는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을 보일 여지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posted by RushAm 2010. 7. 31. 17:02
한때 '프라이드 FC'와 'K-1'이 종합격투기업계를 평정했던 때가 있었다. 일본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 여러 국가에서 격투기 붐을 일으켰던 이 단체들은 어느 순간 이런 저런 사정에 의해 몰락하거나 사라졌는데, 그들의 몰락한 이유로는 야쿠자 개입설로 인한 지상파 광고수입 중단, 선수들의 이적 분쟁으로 몸값 거품이 심했던 점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부분은 역시 '격투기'라는 콘텐츠 포멧을 가지고 기존의 문화 콘텐츠 업계의 지분을 빼앗겠다는 시도 때문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섣달 그믐, 일본으로서는 거의 시청율의 최대치를 찍는 시즌에 당당히 도전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로 인해 생겨난 거품성 인기에 대한 판단 착오와 그에 따른 지나친 공격적 경영이 불러온 패착이라는 것이 한결같은 지적이다.
Legend Fedor Emelianenko was defeated by Fabrico Werdum in the Strikeforce Heavyweight fight in San Jose,CA on June 26, 2010.


그렇다고 일본의 양대 격투기 이벤트 단체를 일격에 몰락시킨 미국의 UFC가 격투 콘텐츠적으로 우수했느냐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격투기팬들의 한결같은 평가는 프라이드의 좁은 사각 링보다 넓은 6각형의 옥타곤에서 벌이는 경기가 박진감면에서 떨어지며 마치 지하세게를 연상케 하는 경기장 풍경은 대중화에 크나큰 걸림돌이었다. 그들이 승리한 이유는 '일본의 격투기 단체'보다 콘텐츠가 우수해서가 아닌 결국 '격투기'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인기있는 WWF를 의식해서 선수들에게 대사를 읆조리게 시킨다던지 링 한가운데에서 춤을 추게 하는 등의 퍼포먼스는 없다. 공감대는 없더라도 지극히 UFC다운 무언가를 만들려 애를 쓰고, 오로지 격투기 팬만을 위한 서비스를 고심한다. 결국 프라이드를 잃고 방황하던 '격투기 팬'들은 UFC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일본 게임업계 시장규모 밎 해외실적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게임 시장 매출액 10위권 내 일본 업체로서는 닌텐도가 유일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PS2로 일약 세계 콘솔업계를 주름잡았던 소니는 블루레이의 표준화 선정이 늦어진데에 따른 여파로 그 다음 세대의 주도권을 닌텐도에게 빼앗긴 뒤로 이렇다할 부양책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업계의 전반적인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경제산업성이 분석한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이미 3D위주의 콘텐츠를 추구하고 있는 미국에 비해 일본이 기술적인 트랜드 활용 측면에서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과, 이런 고착화를 가속화시키는 인재풀의 불균형이 그것이다.

경제산업성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게임을 비롯한 영상 콘텐츠 분야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미국 명문 콘텐츠 관련 대학으로의 국비지원 유학, 업계 내 자발적인 프로듀서 육성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 정책 등을 발표하며 프리프로듀스 인재풀에 대한 활성책을 추진하는 한편, 3D기술에 대한 자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가칭 렌더링 공장을 설립하여 업계가 공동으로 이용 가능토록 하는 등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콘텐츠 업게의 품질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정책에 대해 업계는 '업계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은 정부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신뢰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를 내면서도 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정부의 정책적 업계 부흥책의 결과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일본 게임 업계의 해외 전개 지원에 대한 근거로 '1억 3천의 인구와 오랜 시간에 걸쳐 자리잡은 게임 시장에 대한 유연성으로 인해 그동안 별다른 해외 전개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업계의 무관심 속에서도 일본의 게임은 꾸준히 해외에 알려져 왔고 국지적인 보급 속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어 왔다는 점은 일본 게임의 해외 경쟁력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례로 메이지 시대 이른바 '검은 배'로 인한 문화 교류 속에 조금씩 유럽 대륙에 전해졌던 일본의 우키요에가 유럽 역사에 영향을 끼칠 만큼 문화적인 여파를 가져왔다는 점을 들며 일본 콘텐츠의 우수성이 제대로 된 비즈니스 수단으로서 전략적인 성격을 띄게 될 경우 성공 가능성이 충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제산업성의 착각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지금까지 일본 게임 시장은 해외 시장을 그다지 주목하지 않은 채 내수 시장의 우수한 소비력을 바탕으로 성장해왔던 것은 사실이나 그 사실만으로 현재의 일본 게임 업계가 해외 트랜드와 뒤떨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해외 시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지극히 일본적인 내수성에 치우친 작품성 향상이 해외 시장에서 이른바 '밀수' 등을 활용할 필요성을 느끼게 만들 만큼 '일본적'인 문화적 가치가 구매력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인데, 즉 특별히 해외 시장을 의식하지 않고 지극히 일본식으로 일본인을 위한 게임이 해외에서도 자연스럽게 '일본의 게임'으로서 경쟁력을 갖는다는 것이 지금까지 보여준 일본의 해외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제산업성은 이러한 일본적 색깔에 대한 '고집'이 일본 게임계의 해외 경쟁력을 약화시켜왔다며 해외 시장에 맞춘 현지화 전략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면서도, 현재 가지고 있는 게임 업계의 해외 경쟁력에 대해서는 지극히 일본식으로 만들어진 콘텐츠의 성과를 들어 가능성을 논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산업성의 설명 도중 몇 번이고 반복 강조했던 나루토의 유럽 시장 성공사례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선 일본이 과연 어떤 성과를 거둘지에 대해서 예측하기에는 아직 섣부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목표로 삼고 싶어하는 미국의 게임 시장이 과연 일본처럼 해외 각지의 트랜드에 맞게 게임을 만들어 지금의 세계 최대 게임 시장인 미국 내수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일까? 영화는?, 드라마는 어떤가? 결국 가장 미국적인 것을 더 미국적으로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품질좋은 미국적인 게임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재미있고 훌륭한 게임을 만들어낸다는 아주 단순하고도 평범한 논리를 추구하고 있을 뿐이지 않은가? 대한민국은 어떤가? 온라인 게임이 게임성이 떨어지느니, 소재 표절을 밥먹듯 해대고 일본 게임같은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느니 하는 세간의 비아냥속에서도 묵묵히 가장 한국적이고 한국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만을 만들어왔고 그렇게 꾸준히 한국적인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 온 회사들만이 결국 살아남았다. 언제나 성공한 트랜드의 뒤를 쫒아 만들거나 일본 혹은 미국의 게임 모델을 인용해왔던 업체들은 어떤 정체성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거나 이렇다할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그렇다.

일본이 '일본적'인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해외 진출에 집착하게 만든 원인으로는 두말할것도 없이 장기불황에 따른 내수붕괴 때문일 것이다. 내수 붕괴에서 가장 많은 타격을 받는 업계는 여가 선용 업계라는 통설,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이 수반되는 게임업계의 타격은 영화나 음악 업계에 비해 한층 심할 것이 자명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 위기에 대한 타개책을 해외 진출에서 찾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수 시장이 위축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많은 국내의 게임 유저들은 제각각 즐기고 싶은 타이틀에 대한 신작을 기다리고 있고 적지 않은 해외의 일본 게임 유저들 역시 그들만의 취향을 충족해줄 일본산 작품들을 고대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의 작아진 시장을 넓히기 위한 타개책이 지금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새롭게 더 큰 시장에 대한 도전을 '0'부터 시작하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라이드 FC가 사라지고 K-1이 덩달아 예전의 포스를 잃어버린 지금 예전 격투기에 대한 향수를 아직 간직하고 있는 격투기 팬들이 결코 자신의 취향과 타협할 수 없는 UFC를 울며 겨자 먹기로 소비하고 있는 현실이 결코 일본 게임업계에서도 남의 일이 아니게 될수도 있다. 격투기의 인기가 수직상승하자 일본 최대의 시청율집중구간인 섣달그뭄의'대권'을 노리려 한 나머지 스포츠성을 상실한 채 쇼비즈니스를 강화하는 무리수를 두어 자멸한 격투기 단체들과 미국이라는 큰 대권을 노리려는 생각이 가득해 지금까지 쌓아왔던 2D그래픽의 노하우나 순수정통성을 모두 구닥다리로 부정하고 3D를 '이제부터' 기술적, 인력적으로 본격적으로 세공해 나가겠다는 정책이 실효성 여부를 떠나 일본 게임업계가 쌓아온 역사적 정체성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닮아있기에 더욱 그렇다. 물론 이들의 철저한 '미국 현지화'정책이 도요타를 비롯한 자동차업계의 철저한 현지화로 인한 성공사례처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문화는 상품이기 이전에 문화라는 점을, 그리고 그 문화라는 상품은 문화의 본질이 사라지게 된다면 결국 공장에서 생산되듯 영혼이 없는 물건과 다를 바 없게 된다는 것을 상기해주길 조심스럽게 바래본다.


2부에서는 닌텐도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posted by RushAm 2010. 7. 28. 22:15
카메론 디아즈가 최근 80년간 한 사람만 살도록 하는 제도인 결혼은 미친 짓이고 적어도 5년마다 한 번씩은 연애 상대를 바꾸어야 한다는 등 자신의 남성 편력을 밝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그녀의 발언은 그녀의 현재 입지만큼이나 많은 논란을 낳고 있는데요. 너무나도 해묵은 논쟁인 결혼 제도의 정통성과 정당성부분부터 남성에 대한 기준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한 정의를 내려버렸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녀의 이같은 발언은 상당히 문제가 있습니다. 그녀가 굳이 자신의 남성 편력을 언론에 밝히게 된 이유와 목적이 너무 뻔하게 드러나기 때문이죠.
Cameron Diaz arrives at the French premiere of the film Night and Day in Bordeaux, France on July 23, 2010.   UPI/David Silpa Photo via Newscom

개인적인 권리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되고 있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사람들은 오히려 현대에 오면 올 수록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주관이 점차 떨어진다는 연구 보고가 있습니다. 즉 사람이 연애 상대를 고를 때 그 상대가 자기 자신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보다 그 상대로 인해 자기 자신의 평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더 많이 신경쓴다는 것이죠. 여성들이 좋아하는 남성상이 호리호리한 미소년에서 근육질의 짐승남으로 1년에도 몇 번씩 바뀌는 이면에는 자신의 주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이성을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이른바 '사회적 명품'으로 치부하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즉 언론 혹은 그 외에 영향력을 가진 인사들의 직 간접적 발언에 의해 사회적으로 '대세'를 타고 있는 남성상을 자신의 옆에 둠으로서 현 사회 흐름에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음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DNA적으로 내제되어 있는 개성적인 이성관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죠.

이는 남성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은데요. 흔히 나이를 불문하고 남자는 '예쁘면 된다'는 남성의 이성관 속에는 정말 복잡하고 세세한 제각각의 이성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흔히 '예쁘긴 한데 내 타입은 아니다'라는 말을 많이들 하는데 사실 이 말 속에는 남성의 속내가 감추어져 있는데요. '예쁘긴 한데'는 이른바 '통속적 평가'이며 뒤에 붙은 '내 타입은 아니다'라는 말에 본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생긴 이유 역시도 보편적 이성관에 근거하는데요. 미디어 혹은 일반적으로 남성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보편적인 이상형, 즉 외모로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연예인이 그 보편적인 이성관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남성들은 이 보편적인 이상형이 가장 이상적인 미인형이라는 새뇌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주입받게 되고 결국 주관적인 평가 기준을 점점 잃어가게 되는 것이죠. 언제나 여자친구가 있다고 하면 '예쁘냐?"다음으로 듣는 질문 '연예인 중에 누구 닮았는데?'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보편적 이성관은 현대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미디어나 설득력 있는 인물의 발언으로 확대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의외로 둘 중에 이성관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인물의 발언 쪽입니다. 영향력 있는 인물을 들자면 흔히 연예인을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꼭 연예인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데요. 기본적으로 자신이 '동경'할 수 있을 만큼 롤 모델로서의 가치가 있는 인물 즉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혹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주로 영향을 끼치는 대상으로서 자리잡게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우상적인 존재로서 '인기 연예인'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만 4살 이상의 나이차이가 나는 손윗사람 (대체적으로는 학교 선배 정도) 역시 연예인 못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죠.

자 그렇다면 이들의 발언은 과연 정말 '인생 선배'혹은 '성공한 롤 모델'로서의 참고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이를 가늠하기 전에 우선 그들이 과연 내 나이때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생각해봅시다. 그들도 보다 나이가 어린 시절에는 이른바 '주관'과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던 시절이 있을 텐데요. 그들이 그 시기에 지금의 보편적인 사회적 기준에 맞춰 성공이라는 타이틀을 얻기까지 스스로 고민하고 해답을 찾았을까를 생각해보면 답은 의외로 쉽게 나옵니다. 즉 그들 역시 누군가에게 '어떤 사실'을 주입받고 자신만의 기준을 가열차게 부정당한 전력이 있다는 것이고, 지금 그것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시키고 있을 뿐인것이죠.

사회적 진실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진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세대를 거듭하며 전해지는 보편적 가치관이 사실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타고나는 개성적인 이성관을 짓밟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상당한 비극인데요. 당연하겠지만 이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고 타고난 주관을 짓눌러서 얻은 어떤 것이라도 자신에게 꼭 맞는 만족감을 가져다 줄 가능성은 희박하며, 그에 회의감이 들더라도 이미 보편적 가치관에 길들여진 이상 또 다른 보편적 가치관을 추구하는 것 이외에 스스로에게 어떤 처방도 내릴 수 없다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카메론 디아즈는 결코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녀는 보편적 가치관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자신의 주관적 기준을 한 톨도 남김없이 버렸고 그로 인해 자신은 어떤 행복도 얻지 못했다는 것을 마치 자신의 인생이 '정당했다는 듯'이 설파하고 있다는 점은 구역질이 날 지경입니다. 자신이 행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부정하기 위해 자신의 불행한 삶을 사회적 가치로 정당화하고 그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그릇된 가치관을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여론으로 고착화하려는 자세는 단지 개인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자유를 넘어 지극히 의도적이고 계산된 행동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정말 마음 깊숙히 끌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절대 놓치지 마세요. 사회에서 그 사람의 외모, 능력, 재력, 배경, 미래상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든지 신경쓰지 마시고요. 인간의 DNA는 의외로 똑똑해서 자신에게 맞는, 그래서 평생을 함께해도 될 만한 사람을 절대 그냥 지나치게 두지 않거든요. 사람을 평가할때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듣고 생각하고 그래서 뇌리에 깊이 박혀있는 연애상식, 이성을 고르는 법 같은 지극히 보잘것없는 지식은 전부 잊은 채로 보고 듣고 느끼시길 바랍니다. 이성을 고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듣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그 무언가를 잠재의식속에서 끄집어내는 것이니까요.

'결혼은 미친짓'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결혼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만, 모든 사람이 결혼해서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닌것이죠. 저 말을 굳이 수정하자면 '결혼은 때때로 미친 짓이 될 수도 있다' 정도겠네요. 5년 이상 연애해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80년동안 살아도 여전히 인생의 동반자로서 행복을 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이 현대사회에서 제대로 깨닫지 못한 전 근대적 사상을 가지고 있어서만은 아니겠지요 오히려 현대사회에 최적화되었다고 자부하는 5년 연애론자들이 제대로 깨닫지 못한 자신만의 본질적인 무언가를 더 알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불행하지 않은 사람을 넌 사실 불행한거라고 우기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답니다.

가진 자들이 누군가를 탓할 리가 없는 것처럼...
지금 행복한 사람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을 비판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카메론 디아즈는 그닥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군요.

행복하지 않은 자들의 동반자살론에 귀를 기울이는 건 이제 그만두어야하지 않을까요?
그들이 어떻게 해서든 이 사회를 자신들의 삶에 맞게끔 바꾸어나가더라도
그래서 그 보편적 가치관에 부합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괴롭게 만들더라도

결국 인생은 내가 행복하면 장땡이니까요.
posted by RushAm 2010. 7. 26. 16:39
EBS의 성차별 발언, 고은아의 일련의 술자리 사건에 대한 사과를 보면서 느낀 점은 저들이 '사과'를 하기까지 과연 그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얼마만큼의 영향을 끼쳤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EBS 수능강좌의 시청율은 5%를 넘을까 말까 하고 고은아의 술자리 말다툼 사건의 현장에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은 그보다 훨씬 적을 것임에는 틀림없는데, 어느새인가 EBS의 현직 강사는 당시 EBS를 시청한 시청자들뿐만이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사과를 해야만 했고 고은아 역시 당시 술자리에서 말다툼에 직 간접적으로 휘말린 사람들만이 아닌 전 국민에게 보내는 사과문을 작성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EBS를 당시 시청한 뒤 그 발언에 불쾌감을 느꼈던 '당시 당사자'들과 고은아의 말다툼 당시 술자리가 불쾌해졌던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다. 그 이외에는 사과를 들을 자격이 없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EBS사건도 고은아 말다툼 사건도 현장에서 본 사람들보다 당시 EBS를 시청한 사람들보다 언론 기사를 보고 역정을 낸 사람들이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사과를 요구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어쨌던 알게 되었으니 그 알게 되기까지 일을 벌인 사건의 원흉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식인데, 억지도 이런 억지가 어디있는가?

EBS 방송에서 해당 발언을 했던 강사는 분명 잘못을 했다. 잘못을 한 대상은 당시 EBS를 시청했던 '가시청층'이다. 고은아 역시 잘못한건 맞다. 말다툼을 해서 모처럼 술한잔 하며 스트레스좀 풀려던 사람들의 흥을 깬 건 맞다. 그런데 지금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상상할수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대체 그들이 왜 사과를 받아야 하는가? 그런 식으로 사과를 받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크게 내면 정작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이 제대로 된 사과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가?

공인이니까, EBS라는 방송에서 했으니까 당연히 우리도 화낼 자격도 사과받을 권리도 있다고 착각하지 말자, 당신들이 지금 그렇게 화가 나게 된 이유는 EBS에서 그 강사가 발언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발언이 단지 EBS에서 끝났어야 했을 일을 '우리 다 같이 화냅시다' 라고 낚시를 드리운 언론에 있으니까, 그리고 그 언론의 농간에 스스로 맞장을 쳐준 당신들 스스로에게 있으니까 사과를 받고 싶거든 언론에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 묻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잘못한 사람이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의 행동 혹은 발언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 당사자에게 사과를 하는 사회적 상식이 정착되어야 한다. 정작 피해 당한 당사자들보다 언론의 중간농간질에 휘둘린 사람들이 더 큰 목소리로 사과를 요구하여 사과를 해야 하는 핀트가 벗어나버리는 상황이 계속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EBS도 고은아도 피해를 당한 시청자와 당시 현장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보다 여론, 네티즌을 더 무서워해 그들이 움직이기 전까지 사과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던 이 상황이 과연 정상적일까? 그리고 이렇게 되게끔 자초한 당사자가 누군지 정작 이 사회는 제대로 알고나 있는걸까?

자격 없는 자들이 사과를 요구하지도 말고
사과를 해야 할 상황에 제대로 받아야 할 사람에게 사과를 먼저 하는 사회가 되길 바래본다.


지금 이건 정말 아니다.
posted by RushAm 2010. 7. 17. 05:50
운이 참 없었다.
태어날때도 집이 잘 안될때 태어났고,
내가 뭔가 진로를 정할때면 언제나 집에 우환이 생겼다.
운이 그냥 없으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내 경우는 불운이 아닌 악운이었다.
언제나 인생에서 세상은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기보다는 찍어누르기 바빴고
나는 그 세상에 포기하지 않고 싸워왔다.

언젠가는 운이라는 게 나에게 오겠지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악운에 오히려 익숙해져갔다.
그냥 내 운명이 이러려니 하고 생각했고..
이긴 적은 별로 없었지만
어지간해서는 세상과 싸워서 지더라도 다시 회복했다.
그리고 다시 세상에 나가서 싸웠다.

그게 내 인생이었다.
나름 내가 스스로 이 세상에서 딛고 일어설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다고 믿었다.
실제로도 꽤 강했다. 가끔 한번씩은 세상이 나한테 져줄때도 있었으니까.


나 자신도 놀랐다.
단 한번의 운...그리고 단 한번의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가 나한테 찾아왔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올 턱이 없다고 생각해서 믿지 못했지만...
그래도 믿고 싶었다. 아니 믿어야만 했다.
인생에 있어 다시 못올 기회라는 걸 누구라도 알 수 있었으니까..

인생을 후회하지 않게 됐다.
지금까지의 불행을 모두 바쳐 지금 단 하나의 행복을 얻었다면
난 엄청난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그 행복은 누가 알아주는 법도 없었지만 난 열심히 자랑했다.
많은 돈? 어마어마한 성공?
상대도 안된다.
난 지금까지의 인생의 불행을 모두 보상받고도 남을 만한 행복을 얻었다.


행복을 시기하는 사람이 있을줄은 몰랐다.
인생의 모든 불행을 걸고 단 하나의 행복을 얻었는데...
그것을 빼앗아가려는 세상이 있을줄은 몰랐다.
왜 행복의 실체도 모르는 것들이
행복의 진짜 의미를 아는 사람들에게
같이 불행해지자며 우리를 더럽히려 드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행복이 빠져나간 난 지금
진작에 거덜났어야 할 마음의 체력이 바닥나버렸다.
세상에 그토록 싸우면서도 거덜나지 않았던 내 마음이
부서지고 박살나고 녹아버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난 강해진 게 아니었다.
강하지 않았는데 마취제를 맞아가며 싸워왔던것이고
이미 몸은 만신창이, 마음은 약해질대로 약해져있었던 것 같다.
그걸 일깨워주고 치료해줬던 단 하나의 행복이...
그 행복이 사라진 지금...

마취제따위는 준비되지 않았던 난
죽음의 고통을 맛보고 있다.

이 고통의 크기가
그 행복의 가치를 말해주는 것처럼...
내 인생에 있어 그 행복은 절대적이었으며
인생에 없어서는 안될 그 무엇이었지만...

그걸 나 이외의 사람이 알아주기에는 너무 어려웠나보다
행복따윌 모르는 사람에게 더럽혀지지 않기를 바라기엔
내가 손이 닿지 않는 너무 먼 곳에 있었나보다.


하지만 믿고 있다.
그 행복이 정말 나의 것이었다면
그동안의 시련에 대한 분에 넘치는 보상으로 내려준
세상이 내게 준 단 하나의 선물이 분명하다면...

그 행복은 반드시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내 것이 분명했다면 ...주인을 찾아올 것이라고...

그리고 언젠가 그 행복의 가치를 알아줄 거라고.
그리고 그 가치만큼 행복을 되돌려줄 거라고...


난생 처음 느껴보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기도하는 심정으로 적어내려가는 이 글이...

모쪼록 내 마지막 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하루를 일년처럼 살아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