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1. 2. 11. 16:59
1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승만 대통령부터 시작되는 친일파들로 인한 우리나라 근현대 흑역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굴욕적 일제 전범 보상 판결에서 절정을 이룬다. 중요한 점은 광복 이후의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3년 이상 정권을 잡았던 세력 중 어느 하나 친일파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벌인 행적은 실로 화려하기 그지없어서 무려 친일파로서 '독재'까지 쌍으로 지랄을 해대는 통해 국민들은 둘 중 어느쪽부터 잡아야 할지 감을 못잡았는데, 이에 대해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이른바 '친일파 권력층'은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속삭인다.

(이봐 우리들보다 나쁜 놈들이 훨씬 더 많다구)

그 대상은 다름아닌 공산당이다. 북괴라는 단어보다 공산당이라는 단어가 주적으로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말 한마디 잘못 한 죄로 해괴한 짓을 당했지만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세상에 이름을 남긴 이승복군 덕분이리라, 아무튼 이 공산당의 존재 그리고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라 불리는 한반도 내전, 이 내전 속에서 우리는 북한이라는 주적을 얻었다. 왜 주적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북한의 수장이 저지른 일로 인해 북한 주민 전체를 적시했던 게 불과 20년전 이야기였다. 그만큼 친일파들은 적이 필요했다. 나라가 평화로우면 그동안 평화롭지 않았던 이유에 대한 지도층의 책임을 묻게 되니까... 그들이 정권을 잡고 있을 동안에는 언제나 한국은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여야만 했다. 국민들은 이미 끝난지 한참 지난 전쟁을 아직 종전이 아닌 휴전상태라는 점을 강조하는 국가 지도층 때문에 언제나 북한에 벌벌 떨어야 했다. 친일파 권력층들은 '차악'의 이미지로서 북한을 일단 막고 난 다음에 생각해보자는 식의 정치 키워드를 국민들에게 던졌고 국민들은 그에 철저하게 놀아났다.

군대가 모병제가 되면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건 누구보다 정부 본인들이 제일 잘 안다. 예산 집행을 하는 당사자들이니까, 그런데 왜 안할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공식적으로 줄어든, 혹은 줄어들 것으로 확정 발표한 군 복무 기간은 다 합쳐 10개월이 넘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3년동안 페지안을 포함해 갑자기 늘어난 복무기간이 6개월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전시작전 통제권을 돌려받기로 한 2011년인데 왜 이명박이 미국에게 전작권 받는 것을 4년 연기한걸까? 참여정부 막바지 노무현이 김정일을 만나고 국방부장관들이 활발하게 협의하던 '종전'선언 문제가 왜 갑자기 쏙 들어가고 참여정부 5년동안 아무일 없었던 서해안에 왜 두 번이나 폭격이 있었던걸까?

6.25 당시의 자료사진....이 아닌 2010년 말 연평도


그들은 모병제가 되면 안된다. 군 복무기간도 줄어들어선 곤란하다. 전작권도 미국이 계속 쥐고 있어야 한다. 당연하지만 '종전 선언'이 이루어지면 친일파들은 끝장이다!

군 복무기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국가가 이미 '이 나라는 전쟁의 위험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즉 나라가 평화로우면 내정의 비리, 그리고 과거사 청산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다. 당연히 친일파에게 그 화살이 날아올수밖에 없다. 모병제가 되면 훨씬 위험하다. 지금이야 거의 대부분의 남자, 즉 누군가의 아들이나 오빠 남동생, 가족의 일원이 '군대'라는 것을 감으로서 아직 이 나라가 군대가 필요한 나라라는 점을 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군대라는 키워드는 전국민화되었고, 언제나 시기적절하게 군 관련 가산점같은 팩트에 벗어난 정책을 쥐었다 놨다 하는 식으로 여론을 들끓게 만들어 군대에 대한 관심과 국가 위기 상황을 고취시키는 것이 가능했는데 만일 모병제가 되어 가고 싶은 사람만 가게 되면 전국민적인 키워드 '군대'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하락할 것이고, 그 다음은 뻔하지 않은가? 종전 선언은 아예 '전쟁 끝'이니 친일파들에게는 '인생 끝'이나 다름없다.

전작권 4년 연기는 좀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왜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에게 4년 더 맡아달라고 했을까? 그것도 아주 절묘한 숫자 4년... 이명박의 임기는 2013년 3월에 끝난다 . 그리고 전시작전통제권 종료 시점은 2015년 12월, 원래 환수 예정은 2011년 즉 지금 환수가 되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안된 거다. 참고로 19대 총선은 2012년, 대통령 선거도 2012년, 그리고 다음 지방선거는 2014년에 열린다. 그 다음 총선은 2016년에 열리는데 보통 추세대로라면 4월에서 5월 사이 늦봄에 열린다. 2015년 그것도 12월 끝자락까지 연기한 속사정은 바로 여기에 있다. 2011년에 전작권 환수가 되어버리면 2012년 총선 대선은 당연히 친일파에게 불리할수밖에 없다. 만일 대선에서 지고 총선에서도 패배해서 다시금 친일파들이 정권을 빼앗기게 되면 반격할 만한 근거를 만들어야만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되기까지 채 2년이 안걸렸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떻게든 야당이 껀수를 만들어 대통령을 쳐야만 한다. 전작권은 그에 대한 보험이다. 그리고 그 반격이 성공하는 정점에 2014년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이 있다. 그 뒤로는? 누가 당선되더라도 레임덕 확정적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말년이 어땠는지 생각해보자


전작권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해보자, 북한이 우리나라가 정말 짜증나고 미워서 혹은 심심해서 천안함을 치고 연평도를 포격했다고 하면 크게 오산이다. 그 이후 북한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를 보면 목적이 너무 확연히 보인다. 결국 북한은 '미국'이 목적이었지 한국을 도발해서 전쟁 분위기 고취시키고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더 심하게 말하면 북한 머릿속에 대한민국은 아웃 오브 안중이다. 우리가 북한에 쌀을 몇만톤을 줘도 미국에게 협상 한번 이끌어내는게 북한 입장으로서는 국익이 훨씬 도움이 된다. 북한은 어떻게든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야만 하는데 미국을 자극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보다 별로 없다는 것이 북한으로서는 치명적이다. 미사일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가장 가까운 미국령인 괌까지의 거리 절반에도 못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전시작전통제권, 즉 북한이 우리나라를 공격할 때 군대를 움직일 권한은 '미국'에 있다. 이 전작권덕분에 주한미군의 숫자는 언제나 고정이다. 적어도 작전에 투입될 만한 병력은 주둔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미국 입장에서는 상당히 신경쓰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이 전작권을 쥐고 있는 한 우리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곧 미국을 공격하는 것이 된다. 자국민 군대가 상당수 주둔하고 있으니까 (미군이 가지는 전작권은 60만 육군이 모두 미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북한이 우리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미국을 자극해 미국을 북한이 원하는 협상 테이블로 부를 수 있는 차임벨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친일파는? 전작권을 미국이 계속 갖게 됨으로서 북한이 우리나라를 수시로 필요에 따라 '공격'하게 만들 수 있는 명분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공격당하면? 당연히 그때마다 좀 느슨해질 뻔 한 반공 감정을 일시에 고취시킬 수 있으니까... 전작권은 미국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반대로 북한이 우리나라를 공격할 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해 존재하며 그 효과를 대선과 지방선거, 그리고 총선의 시기에 영향을 끼쳐 향후 정치전략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5년을 연장하기로 합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국 보호는 커녕 오히려 더 위험을 초래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물론 자기 밥줄이 나라의 안녕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가훈을 몇 대째 이어오고 계시는 친일파 입장에서야 그게 아니겠지만 말이다.

지난 6.2선거 직전 조중동 1면보도행태...



이 전작권으로 인해 북한의 공격이 있을까봐 늘상 벌벌떠는 존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이 북한으로부터 공격받을 것을 매우 두려워하는 나라 중 하나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북한의 군사 도발 움직임에 민감하며 일주일이 멀다하고 북한의 별 시덥잖은 동정을 보도한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일단 오키나와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사정거리가 좀 긴 미사일을 개발하면 오키나와를 폭격함으로서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낼 이벤트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첫번째이다. 사실 두 번째가 중요한데, 북한의 이같은 위협, 어찌 보면 단지 전작권이 있다는 핑게로 북한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 '남한이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예로 들어 자국의 자위대 권한을 확대할 명분을 얻는 것이 그것이다. 아직도 일본은 1%의 극우들이 사실상 미디어를 포함한 대부분의 권력을 독식하고 있는 체계가 무너지지 않고 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격상시켜 일본이 예전 다이쇼 시대의 위상을 되찾는 것이다. 그것이 굳이 세계정복 야망의 부활 같은 해석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이들 극우주의자들은 군국주의 부활로 자신들 그리고 자신을 지지하는 지지층과 후손들이 일본 땅에서 더 대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군국주의 부활? 말은 거창하게 해도 사실 밥그릇 싸움일 뿐 얘들도 별거 없다.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는 6.25때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정말 북한이 우리나라를 깡그리 먹고 싶어서 전쟁을 일으켰을까? 정말 북한을 단지 정치적 색깔이 같다는 이유로 소련이 그 많은 대량의 군사물자를 지원해준걸까? UN군중 가장 많은 수가 참전한 미군이 정말 평화유지군의 명목으로 온 걸까?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그는 임시정부에서 그 화려한 사상 덕분에 한번 탄핵당한 경력이 있고 김구 선생 암살 사건으로 민심이 땅에 떨어진데다가 반민특위가 결성되어 친일파들의 색출 작업이 본격화되는 등 자신의 대통령 자리는 물론 정치 생명까지 위협받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6.25 이후 그는 4.19가 있기까지 무려 10년여동안 대통령직을 계속할 수 있었고 그 배경에는 인혁당 사건을 통해 전 국민들에게 종전 대신 전시상태라는 공포감을 심어주어 주적 감정을 북한으로 집중시키는 가운데 반민 특위를 해체함으로서 자신에게 돌아올 칼날을 피할 수 있었다. 최근 무죄 판결을 받은 죽산 조봉암 선생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킨 사건이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죽산 조봉암 선생은 소련의 컨트롤로 북한이 남침을 기획한 것과 이승만을 앞세워 소련과의 대리전을 펼치려 했던 6.25의 진실을 잘 알고 있던 인물로 북한의 위협보다 친일파의 청산을 주장했던 독립운동가 세력의 가장 유력한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겠지만 북한의 남침을 적절히 이용해서 정치생명을 연장하고 친일파 색출을 늦추려는 이승만과 대치할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3부에서 계속...
posted by RushAm 2011. 2. 10. 18:25
지난 기성용의 세레머니로 인해 다시금 화두로 떠오른 '반일 감정'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광복이 된 지 60여년이 지난 지금, 이 반일 감정에 대한 직접적인 증언을 들을 수 있는 분들이 속속 돌아가시고 있는 지금에 와서 새삼 이 반일 감정에 대한 '원천지'에 대해 무척 알아보고 싶어졌다. 정말 이 반일 감정이라는 물건은 일제 강점기 당시 핍박을 받았던 사람들에 의해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일제의 사악함을 잊지 않고 일본을 적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 그러기에는 우리나라의 근대사에 참 석연찮은 구석이 많았다. 그런 반일 감정에 비해 당시 나라를 팔아먹었던 친일파들은 이상하리만큼 청산이 어려웠고 심지어는 친일파 출신 대통령이 10년여간 독재를 지속했으며 일본 이름까지 갖고 있는 사람이 21세기가 한참 지난 지금 대통령을 해먹고 있는 지금 상황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갔다. 그래서 한번 찾아보고 생각해본 것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광복은 '종전'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광복을 '태평양전쟁'의 종전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차세계대전'역사에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일본이 '임진왜란'때처럼 전쟁을 일으켜 우리나라를 침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가 일본에 당한 것 자체는 사실이긴 한데 전쟁에 패해서 식민지가 되었던 2차대전 당시 네덜란드나 폴란드와는 좀 다른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일본은 '조선'을 반드시 칠 필요도 없었고 군사력으로 쳐서도 안됐다. 일본의 목적은 대륙 정벌이었는데, 기본적으로는 당시 조선과 맞짱을 떠서 이길 승산도 없었고 이길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도요토미가 이순신에게 남해안에서 캐작살난 걸 아직 잊고 있지 않고 있었던데다가 그 전에 미국이랑 프랑스가 서해안에서 캐작살나는 걸 똑똑히 봤기때문에 일단 조선이랑 맞짱을 떠서 이길 자신도 없었고 이기더라도 반 이상 작살난 군대로 대륙정벌의 야망을 꿈꾸기엔 찻잔 속의 태풍이었다.
우리조상님들만랩쩔어주시던시절.jpg
그들의 전략은 우선 조선을 피 한방울 안흘리고 취하는 것에 모아졌다. 당연히 그러려면 정치 조직을 쥐어잡는 것에 집중할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주목한 쪽이 급작스럽게 10년도 아니고 3대 100년 권력을 갑자기 흥선대원군에게 빼앗긴 안동 김씨 세력이었다. 2인자로 전락한 안동 김씨는 흥선대원군 10년동안 그야말로 좃to the망했는데, 그들이 해왔던 온갖 정권비리 (벼슬을 돈으로 사고 파는) 나 나라에서 하는 고리사채업 (환곡) 제도를 속속 폐지 정비하면서 순조, 현종, 철종까지 이어지며 홍경래의 난, 임술 민란등으로 대표되는 민심 상실을 속속 회복해나가던 중이었기에 민초들의 지지율마저 높았던 흥선대원군 세력을 상대로 그들이 다시 정권의 주도권을 되찾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그들에게 생긴 서포터가 바로 일제였다. 말이 좋아 대연정이지 역사상으로는 정말 대실패에 가까웠던 흥선대원군의 '안동 김씨 며느리 들이기' 는 결국 흥선대원군의 10년 이후 정권을 잡은 명성황후에 의해 개방의 빗장이 풀리며 속속 일제를 비롯한 타국과의 교류 조약이 체결되는 것으로 뒤통수를 맞게 된다.

(사실 명성황후의 개방 정책은 그렇게까지 나쁜 게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 안동 김씨 세력이 정권을 컨트롤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흥선대원군 입장에서는 패착일수밖에 없다. 뭐 원인을 따지자면 흥선대원군 본인의 욕심 탓에 고종 즉위 이후 10년간 실권력을 휘두른 결과 고종의 정치 역량이 제대로 성장할 기회가 없어 결국 흥선대원군 이후 명성황후의 꼭두각시로 될 수밖에 없었던 것 때문이기에 뭐라 하소연할껀덕지가 없긴 하지만)

그 중 일본과의 을사조약은 부당하기 그지없는것으로 유명한데, 뭐 하나 아쉬울 게 없었던 조선에게 왜 이런 조약이 강제될수밖에 없었는지는 두말할필요없이 정권 내 핵심 세력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어놨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다수결은 아니었지만, 신하들이 허위보고를 하더라도 짬이 높고 쪽수만 많으면 대세가 되던 시절이었고, 그걸 누구보다 잘 알았던 일본이 이를 충분히 이용하기 위해 정권 핵심은 놓쳤어도 나름의 세력과 정 2품 정도의 참정권을 유지하고 있었던 안동 김시 세력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 정권을 조금씩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나갔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자신들이 정권을 되찾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 최면술사 일제의 작품이었지만, 그에 놀아나 한치 앞을 못보고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일본이든 뭐든 나라를 팔 작정을 진즉부터 했던 매국노 (당시에는 아직 권력침탈이 완료되지 않았으니 친일파까진 아니었다) 시조 늙은이들의 노망짓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왜 우리나라 첫 개항지가 부산이 아니라 강화도였는지를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지 않은가?
왜 일본이 이렇게 번거로우면서도 장기적인 방법을 택했는지는 당연히 일본이 국제 정서에 더 밝았기 때문이다. 만일 일본이 직접 조선과 전쟁을 선포하면 조선은 당연히 청나라와 연합군을 결성해 필사 저항할것임에 자명했고 청나라가 전쟁에 끼어든다는 것은 당연히 그 청나라와 인접해있는 유럽에도 소식이 전해지는 건 당연했다. 1차 대전으로 전쟁이라면 아주 치를 떨던 유럽에 전범 이미지를 주는 것은 향후 정복계획에 있어 상대국으로 하여금 일본을 필요 이상으로 '경계'하게 만들게 된다. 그리고 이미 한번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은 만국평화의회에서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할수밖에 없을 터, 그래서 그들은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조선 침탈을 어떻게든 '내전'으로 위장할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직접 침탈보다 내분을 유도하는 식의 장기전략을 취했던 것이다.

헤이그 특사의 비극을 모두 잘 배웠을 것이다. 헤이그에 파견된 특사 이상설, 이준, 이위종열사는 본회의에서 유창한 프랑스어로 일제의 부당함을 설파했지만 그에 대한 의회의 반응은 단지 '조선이 불쌍하다' 였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는 헤이그 특사의 실패 원인은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일제가 영국과 짜고 방해공작을 펼쳤다거나 미리 의회를 구워삶았다는 식의 설이 당당히 교과서에 나오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만국평화의회는 조선의 상황, 즉 일본이 연루되어 이는 아주 특수한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없었고 네이티브가 아니었던 이위종 열사가 그걸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다고도 생각하기 힘들다. 결국 이 만국평화의회는 조선의 상황을 단지 '두 가지 정치 세력이 부딪힌 정치 내분 정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었고 이는 일본이 의도했던 바와 맞아떨어진다.(누가 봐도 사실 고종과 안동 김씨의 정치권력다툼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테니, 이는 이후 일제의 비교대상으로 지목되었던 영국과 인도와의 관계가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평가받았는지를 비교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처음부터 이를 계산에 넣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헤이그 특사가 실패하고 일제의 침략을 침략으로 인정받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은 '외세에 국가를 내주면서까지 내 배때기에 기름을 끼게 만들겠다'는 친일파의 시조들이 벌인 초딩짓 때문이었음은 두말할필요가 없다.

(이는 정말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일본이 얼마나 세계정복을 치밀하게 준비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인데, 결국 이 당시 일본 편을 들었던 영국은 일본이 '설마' 4억 인구의 영국을 칠 거라고는 꿈도 못꾼 채 방심했다가 캐발렸다. 만일 일본이 처음부터 조선과의 '전쟁'으로 첫 단추를 끼웠다면 영국은 그렇게 허무하게 당할 만큼 일본을 얕보았을리가 없었을것이다. 만국평화의회에서 발언권이 한층 불리해질것임은 물론이었다.)

이런 이유로 세계사에 대한민국 침략사는 전쟁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8월 15일이 종전이 아닌 해방으로 기록되어 있다, 주권을 빼앗긴 거라고 교과서에도 나와있듯이 말이다. 본격 전쟁은 청일전쟁, 러일전쟁부터 기록되어 있는데, 청나라가 캐발린 이유는 조총 때문도 아니고 청나라가 병신이어서도 아니라 우리나라가 정말 맘먹고 상대국 침략전쟁 일으킨다고 치면 정말 잘나갈수밖는 천혜의 위치이기 때문이다. 옛 고구려의 영토를 보면 알겠지만 수도가 국내성, (즉 지금의 신의주를 기준으로 압록강 상류쪽 꼭지점 부근) 눈앞에는 압록강과 옆에는 백두산을 필두로 한 개마고원이 떡 버티고 있다. 농성에는 이민한 곳이 없다. 이 곳을 베이스로 전쟁을 일으키면 아무리 대군이라도 침략 루트는 제한적일수밖에 없고 상대국은 소모전 빼고는 딱히 답이 없게 된다.(고구려의 후손 발해민족이 옛 고구려의 그 광대한 영토를 되찾는데는 채 100년이 걸리지 않았다 신생국이 불과 1세기도 안되는 기간에 얻은 영토치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러일전쟁은 두만강 끝자락, 청일전쟁은 압록강 끝자락, 바다를 끼고 있으니 옆구리 치기도 안되니까 대군이 아무리 많아도 정체만 될 뿐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천혜의 요지를 일본이 군사로 내리누르려 했다면? 청일전쟁으로 군사력을 전부 압록강 근처까지 대치하던 와중에 가뜩이나 개김성으로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았던 조선 국민들에게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가능한 신중하게 정권을 차츰 침탈해가는 것은 물론 공포 정치를 통해 이렇다할 분란을 일으킬 것을 적절히 차단했어야 했다. 물론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은 친일파의 시조분들의 혁혁한 친일 행적 덕분임은 역사에 너무나도 잘 나와있다.


지금 우리나라가 국제재판소에서 종군위안부를 비롯한 일제의 만행에 대한 보상 판정을 받기가 힘이 든 이유도 이 전쟁의 직접적인 책임에 대한 회피를 충분히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던 각종 증거들을 일본이 속속 심어두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침략전쟁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 첫번째이고 두 번째가 국제법으로 인정될 수 있는 각종 조약 문서 때문이다. 물론 이게 가능할 수 있었던 시발점은 누차 강조하듯 '친일파 시조'분들의 절대적인 공적임에 다르지 않다. 즉 친일파들의 한치 앞을 내다보지 않으신 눈 앞의 권력욕으로 인해 벌써 3대 아니 5대가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이 한 짓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을 못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저 '옛 이야기'일 뿐이라며 애써 후손의 면책을 주장하시는 친일파의 후손분들에게 우린 무슨 말을 해야만 할까?

2부에서 계속...
posted by RushAm 2011. 2. 7. 16:38
군대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을 여성 독자분들에게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일단 하고 넘어가야 하는 이야기라 어쩔 수 없다. 남자들이 흔히 말년 제대를 앞두고 혹은 이미 전역한 군필남성들에게 '군대 개혁'이나 '군 구타 문제', '군 복무기간 단축'에 대해 물어보면 의외의 답변이 돌아온다 '개념없는 신병에게 구타는 필요악', '군 복무기간은 단축이 아니라 더 늘려야할 것', '군대는 지금보다 더 빡세져야 함' 등등 이미 자신은 그 의무에서 벗어났지만 적어도 내가 받은 고통보다는 다음 세대의 후임들의 고통이 조금 더 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자신이 겪었던 고통이 단지 (시기적으로 운이 없어서) 잘못 걸렸다는 억울함이 덜해지기 때문이란다. 자신이 몸소 겪으면서 그 문제점을 충분히 통감하고 개혁을 목청 높여 외쳤던 현역 시절은 간데없고 이미 자신은 관계없는 일이며 적어도 내가 이득은 못보더라도 손해는 보기 싫다는, (그것도 나보다 남이 더 피해를 봐야 한다는 마이너스 사고방식)이 팽배해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이렇게 된 데에는 군대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군대가 지금까지 개혁이 안 되도록 여론이 제대로 모아지지 않았던 원인에는 이같은 '나만 피해보기 싫다. 너는 나보다 더 당해야지 내가 덜 억울하다'라는 지극히 마이너스적 피해망상에서 출발했다는 것도 슬프지만 현실임에 다르지 않다.

철모에 머리 박아봤어?


대체로 지하철에서 이루어지는 이른바 '노약자석 실강이', 필자만 그런 건지 아니면 필자가 들었던 케이스가 특별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다수가 '할아버지'분들이다. 그리고 대체로 이런 할아버지들은 '젊은 남성'에게 시비를 거는 형국이 많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결국 위에서 예를 들었던 이른바 '마이너스적 피해망상'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한 번 들어보시라...

지금의 노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60세 이상, 즉 한국전쟁 이전에 출생해서 아직 '어른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경' 사상이 남아있던 한국의 경제빈곤기와 성장기를 동시에 거친 세대다. 이들의 젊은 시절은 원치 않아도 이미 사회적 분위기가 '어른은 당연히 공경해야 하는' 분위기였고 그래서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무조건 공경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지옥이라는 33개월 군 복무 시절을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그 33개월간의 구타가 만연하고 계급체계가 더욱 공고했던 당시 군대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은 절대적일수밖에 없다. 산업 혁명이라 불리는 60년대 후반 구로공단을 비롯한 각종 공업단지에서 폐병에 걸려가며 좁디좁은 기숙사 생활의 피폐함을 경험해본 그들이다. 물론 그 기숙사 문화는 33개월 군대를 겪어본 자들이 고스란히 와서 내무반과 그닥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음에 지나지 않았을것이다. 즉 그들은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도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인생선배들의 뒤치닥거리를 당연시하면서 살아왔다. 물론 그들의 희망은 사실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는데...

언젠가 나도 선배가 되어 지금 내가 하는 것과 똑같은 걸 후배들에게 시켜먹으며 편하게 지낼 수 있겠지


그런데 의외로 세상은 너무 빨리 변했다. 구로공단은 디지털단지로 변했고 자신들의 경력은 쓸 데가 없어졌으며 자신들 뒤로 '후배'가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들어와도 그들이 자신들이 당한 만큼 후배들에게 되값는다는 생각으로 대하는 후진적인 직장 문화를 젊은이들이 받아들일리 만무했다. 이들이 선배들에게 젊음을 바쳐가며 '쌓인' 걸 풀 데가 없어진 것이다. 그것도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해버려서, 자신들의 설 자리를 이 세상이 빼앗아가버린 탓에, 자신의 젊음을 보상해주지 않는 국가와 그들의 고생한 것을 인정해주려 들지 않고 공경과 존중은 잊어버린듯한 젊은이들이 마냥 야속하고 버르장머리없어보이는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세상에 무언가 요구할수 있는 지위는 아니다. 이미 지위란 지위는 다 잃어버려 설 자리가 없는 그들, 그러나 아직 젊은 시절에 대한 억울함은 다소 남아있어 그 중 일부가 지하철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쏠리는 것이다.

이들이 가진 국가에 대한 불만은 상상을 초월한다. 세상을 억지로 바꿔버려 자신들의 생존권을 빼앗아가면서 변화를 추구했다고 믿고 있다. 국가, 더 엄밀히 말하면 정치권이 이들에게 표를 얻기 위해서는 가능한 이들을 자극하지 않는 게 좋다. 그리고 이들을 법적으로 표가 나지 않는 선에서 달래야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노약자석'과 '무임승차권'이다. 그리고 노약자석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위해 지속적인 캠페인을 벌여 '고생하신 어르신들을 위해 우리가 준비했다'는 것을 열심히 표현하는 것이다. TV 미디어, 심지어는 초등학교 교과서 속에서도 나오는 이런 대대적인 캠페인 속에서는 굳이 노약자석이 아니라도 노인은 꼭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강요하는데 당연하지만 이런 무조건적인 캠페인에 '근거'따위는 없다. 근거를 붙였다간 노인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체면이 삶의 의미 그 자체가 된 그들에게 구차한 이유를 붙인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젊은 시절, 상관, 상사, 선배에게 아무 이유없는 무조건적인 공경을 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어르신이 불쌍하니까 도와줍시다. 혹은 어르신은 노약하시니까 앉게 해드립시다. 이런 식의 캠페인은 역효과를 불러올 것임에 자명할 터, 그래서 국가에서 하는 캠페인은 '닥치고 공경'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겨우 만들어준 '이거'를 노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두말할필요가 없다. 겨우 국가에서 자신들이 했던 고생을 인정해준답시고 만들어준 제도다 (사실 법적인 구속력 아무것도 없는데도) 겨우 인정받는 것 같아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 이 젊은놈의자식들은 이렇게 국가에서조차 인정해준 자신들을 *으로 본다. 당연히 화가 날수밖에 없다. 이젠 국가에서도 인정한 자신들이다. 젊은이들도 자신들을 인정해줘야 하는게 당연하다. 우리가 선배들에게, 상사에게, 상관에게 그랬던것처럼 우리가 헛기침 좀 하면 바로 하던 일 멈추고 벌떡벌떡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이 지금 젊은이들에게 씨알도 먹일리 없고, 그렇다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재판을 걸 수도 없다. 당연히 경찰권력은 이를 터치하기 힘들다. 괜히 터치해서 법적인 문제로 비화되면 판례가 생기고 이는 당연히 노인들의 노여움을 산다. 이는 곧 보수층 집결의 타격과 지지층의 표가 빠져나감을 의미한다.

이들이 주로 입에 달고 사는 말 '5공때도 이러진 않았어!', '박통이 최고야'라는 말은 정말 그 당시가 좋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 그들은 핍박의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만일 박통이 하던 그런 분위기가 계속되었다면 지금 자신들이 '어른'으로서 선배들에게 해왔던 대접을 자신들이 받으며 살 수 있는 토대가 마련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명박을 지지한다. 박정희의 향수를 그리워하며 박근혜에게 기대를 건다, 뭘 기대를 거냐하면 그것이 예전 자신들이 선배들을 봉양했던 그 시대의 '연장'을 이루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명박이 경부고속도로처럼 4대강 건축업 파고 박통흉내내며 5공의 재림을 만들어 언론탄압하는 '시늉'을 내면 이들은 흥분한다. 그리고 짝퉁 박정희 이명박이 내려오면 성골 박근혜가 자신들의 유토피아를 완성시켜줄 것으로 철썩같이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시절로 돌아가면, 자신들은 그동안 잃기만 하고 보상받지 못했던 젊음의 희생을 보상받을 일만 남아있기 때문이고 그동안 자신들을 무시했던 젊은애들이 자신들이 젊은 시절에 겪었던 것과 똑같은 고통과 설움을 당하게 될 것이므로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억울함이 덜해질테니까... 이른바 마이너스 피해망상의 극점이 무엇인지 아주 제대로 보여주는 셈이다.

즉 이걸 보고 노인들은 흥분하는 것이다. '아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그 시절의 상식이 이어지겠구나!' ...그들에게 있어 이명박은 정말 잘하고 있을수밖에 없는것이다.



애석하지만 이같은 젊은이들과 노인 사이의 갈등은 그 역사와 얽힌 사건의 깊이만큼이나 골도 깊다. 정부는 표를 위해 이들을 자극하지 않는 쪽을 택할 것이고 그래서 노약자석 문제와 무임 승차권 문제에 소극적이다. 이는 굳이 노인들의 고생을 알아줘서가 아니다. 아마 지금의 노인세대들의 비율 그리고 그들이 간접 영향을 끼친 2세대들 인구가 줄어들경우 정책은 냉혹하고 매몰차게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릴것이 분명하다. 참 안타깝지 않은가? 젊은이들과의 갈등을 만든 건 노인들이 아니라 결국 하나의 세대를 국익에 쓸모없다고 국격에 안어울린다고 그들의 인생과 삶의 터전을 깡그리 날려버리고 수치적 경제 발전을 위해 희생시킨 국가의 문제임에는 다른 말이 필요없으리라.

그들이 세상을 바로보고 제대로 된 표를 던지는 것도
무의미한 지하철 좌석에 집착하여 자신들의 버려진 젊음을 보상받으려는 것도
지금와서 변화를 바라기에는 아무래도 어렵지 않나 싶다.

지금 이 세상은
거짓말쟁이가 권력을 잡아
자신의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진실을 거짓말로 호도하고 있으니까....

그분들에게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통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니까...
posted by RushAm 2011. 1. 29. 18:39
왕의 귀환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아시안컵 출정에 나선 태극전사들이 받아든 성적표는 3위다. 51년만에 우승을 노렸던 대한민국으로서는 아쉬운 성적일수도 있다. 아시안컵 우승을 열망했던 박지성을 비롯해 많은 기대를 걸었던 팬들까지 아쉬움은 더할 나위 없다. 그런데 조금 다른 눈으로 대표팀을 바라보면 의외로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목표를 이룬 듯한, 아니 오히려 목표 이상의 무언가를 남긴 듯한 모습이다. 이번 아시안컵은 물론 '우승'에 대한 강한 열망도 좋았지만 그 이전에 경기 하나하나 의미가 없는 경기가 없었고 대회 전체적으로도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이번 대회 슬로건이었던 '왕의 귀환'을 아주 훌륭하게 완수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2007년 대한민국 대표팀은 아시안컵에서 3위의 성적을 기록한다. 그리고 2011년 같은 성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일면 성적이 같기 때문에 그때에서 전혀 진화하지 않았거나 변화를 시도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지난 3위에 대한 평가와 이번 3위에 대한 평가는 질적으로 완벽하게 다르다고 생각한다.

지난 3위 당시 주요 스쿼드를 보자.

GK 이운재
DF 강민수 김상식 오범석 김치곤
MF 김치우 염기훈 김정우 김두현 염기훈
FW 이동국 조재진 이천수 최성국

2006년 월드컵에서 해외파를 빼고 당시 가장 포스가 좋았던 선수들로 구성된 이 팀은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스쿼드가 지금 2011년 아시안컵에 비해서 미드필더와 공격진만큼은 '무척 뛰어난' 수준이었다는 사실이다. 2006년 월드컵을 경험하며 프랑스 감독에게까지 극찬을 들은 조재진, 두말이 필요없는 아시안 킬러 이동국, 여기에 두 번의 월드컵을 경험하며 이미 없어서는 안될 아시안컵 대표팀 에이스 '이천수'까지, 해외파를 안 부르며 처음부터 대회를 '베어백 쫒아내기'로 일찌감치 테마를 내정한 축구협회만 아니었다면 아마 사상 최강의 스쿼드가 탄생할수도 있었다. 그정도로 공격력, 특히 아시아권에서의 공격력 레벨은 최상급에 가까웠다.

훗 가소로운 것들...


그런데 당시 베어백은 골문을 틀어막는 전략을 짜는데, 포백을 모두 내리고 이따금 오범석과 김치우의 오버래핑만을 남겨둔 채 압박 축구가 아닌 '압박 수비'를 선보이며 무려 630분간 무실점 기록을 세우는 한편 630분간 무득점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함께 세운다. 베어백이 지극히 수비적인 감독이어서 그랬을수도 있지만 당시 스쿼드를 보면 그의 총체적 고민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한마디로 '세대교체'를 이미 한 번 실패한 대표팀을 그대로 이끈 채 성적을 내야만 했던 어려움에 직면했던 것이다.

우선 공격진을 보자 선발로 주로 나섰던 조재진, 이천수를 대신할 서브 스쿼드는 누구였을까? 아직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던 이동국과 우성용이다. 조재진, 우성용, 이동국 모두 같은 스타일의 공격수여서 교체에 별다른 변화를 주기 힘들다는 점은 논외로 치더라도 즉 이 당시에는 이들 셋을 대신할 수퍼 서브로 적합한 선수가 없었으며 이들이 혹시 부상이라도 당하면 그나마 기대하기 힘든 공격진에 암울함을 가져다줄 것이 자명했다. 이들이 과연 적극적으로 몸싸움에 임할 수 있었을까? 혹은 그렇게 지시를 받을 수 있었을까?

미들진은 어떨까? 측면 공격 이외에 중원에서 중심을 잡으며 밀어줄 수 있는 선수는 김두현과 김정우 뿐이었다. 이호는 볼란치로 적합하지만 공격 전개 능력은 무척 떨어지는 평가를 받았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염기훈이나 김치우처럼 측면을 빠르게 파고드는 스타일 이외에 그들의 속도에 맞게 패스를 연결해줄만한 선수가 '김두현'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공격 전개가 잘 안될 때, 즉 김두현과 상성이 잘 안맞는 팀을 만나거나 김두현이 지치면 교체 카드는...이호나 김정우밖에 없다는 현실, 그렇다고 중원을 빼고 측면을 보강하면 그나마 불안한 중앙이 시원하게 뚫려버린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체력을 아껴야했으며 젊은 선수들의 오버래핑과 이동국, 조재진에게 맞춰주는 단조로운 뻥축구를 택할 수 밖에 없었던것이다. 왜냐 내 발에 쥐가 나면 팀이 암울해지니까


수비진은 아예 할 말이 없다. 왜 베어백이 욕먹을 각오를 하고 한국판 카테나치오를 전개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절절하게 보여준다. 한마디로 대표팀 붙박이 상징적인 누군가가 없었다. 지금 저 당시 포백을 이루었던 선수들 중 어느 누구도 2011년 아시안컵에 승선하지 못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이런 당시 포백에 수미로 김상식이 들어간 이유를 보면 당시 수비진의 불안감과 세대교체가 얼마나 힘겨웠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 마디로 선수단 전체가 안고 있는 '세대교체 실패'가 팀의 기록 3위, 630분 연속 무득점의 공격력 저하를 '가져올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만들었던 셈이다. 만일 수비가 안정되고 미들진에 변화를 가져올 만한 서브, 그리고 좀 더 젊은 공격 옵션들이 풍부했다면 당시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당시 공격력은 결단코 2011년 대표팀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리듯 수비진의 붕괴는 미들의 실종을 야기시킬 수밖에 없었고 공격진은 전혀 패스를 이어받지 못한 채 자기진영 깊숙히 내려가야만 했기에 특유의 스피디한 공격전개를 펼치기에는 정말 좋지 않은 조건이었다. 게다가 그토록 염원했던 골키퍼의 세대교체는 아예 엄두조차 못내던 상황, 2007년 대회는 우승을 하지 못하면 그대로 실패일수밖에 없었다. 세대교체의 의미도 없었고 그렇다고 대회에 대한 이렇다할 동기부여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4강 이상이 아니면 베어백 짜르겠다고 말한 엄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이런 팀을 다른 나라 팀이 무서워할리가 없다. 당시 아시안컵 대표팀은 마치 성문을 단단히 잠그고 농성을 하는 모양세였던탓에 공격진도 특유의 날카로움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로인해 상대팀에게 마음놓고 공격당해도 상대진영의 뒷공간이 열리지 않았다. 샌드백을 무서워하는 복싱선수는 없다. 가끔 너무 세게 치다가 그 친 반동에 얻어맞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누구도 샌드백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또 무서워해서도 안됐다.



지난 일 얘기는 이쯤 하고 이제 2011년 아시안컵 스쿼드를 보자

GK 정성룡
DF 곽태휘, 황재원, 조용형, 이용래, 차두리, 이정수, 이영표, 홍정호
MF 손흥민, 구자철, 이청용, 김보경, 윤빛가람, 기성용, 박지성
FW 지동원 김신욱

일단 젊어졌다는 건 다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우선 수비진부터 짚어보자
중앙 수비자원이 정말 엄청나게 많다. 아니 아예 이영표와 차두리를 빼면 전원 중앙수비자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번 대회는 곽태휘의 퇴장과 부진도 있긴 했지만 중앙 수비진의 조합을 의외로 굉장히 자주 갈아치웠다. 경험많은 이정수를 기본적으로 고정시킨 뒤 이정수와 호흡을 맞추는 최적의 조합을 찾거나 혹은 우즈백이나 호주같은 장신 공격진을 대비해 제공권이 좋은 센터백 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느냐면 각 센터백들이 파이터형이나 제공권 장악, 안정적인 게임운영, 몸싸움에 능한, 공격전개 능력 등 제각각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기에 어떤 스타일의 팀에도 대응할 수 있는 맞춤형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유래없는 메이저 대회에서의 센터백 로테이션 시스템은 '이 선수가 없어도 된다'라는 팀 내부의 심리적 안정감을 도취시키기 위함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상대에 맞게 스쿼드를 짤 수 있는' 자원을 만들기에 아시안컵만큼 이상적인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장신과 몸싸움에서는 유럽팀 못지않은 호주, 패싱게임으로 뒷공간을 노리는데 능한 일본, 빠른 스피드와 밀리지 않는 떡대로 악명높은 이란 그리고 홈 텃세와 맞먹는 텃세와 압박을 이겨내야 했던 바레인, 다득점을 노려야만 했던 인도전 모두 버릴 게임이 하나 없는 완벽한 시험무대로 부족함이 없었다. 이기는 것은 공격에 의한 골이지만 그 골을 만들기 위한 시작은 상대로부터 수비가 공을 빼앗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조광래 감독은 가장 먼저 상대의 맥을 끊을 수 있는 수비 전술에 골몰하여 고정된 수비의 조직력과 함께 '상대 맞춤형 수비자원'을 골라내는 데에 역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금까지의 고질적인 수비불안을 달고 살았던 한국 대표팀에게는 정말 고무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는데, 특히 이정수가 없었던 대 일본전에서의 조합은 조광래감독이 의도했던 바가 아주 제대로 드러난 일전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역사상 수비진들이 이렇게 주전 자리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 베어벡감독에겐 강민수가, 허정무 감독에게는 조용형이 있었다. 지금 조광래 감독의 수비수 황태자는? 없다. 지금까지 공격과 미들에서만 이루어지던 주전 경쟁이 수비진에서 그 이상으로 불꽃튀기고 있다.

미들은 또 어떤가? 갑자기 포워드에 가있어야 할 애들이 미들에 바글바글하다. 수비형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의 경계를 없엔 탓에 스쿼드 자체는 수가 적은 편이지만 내가 내 포지션을 뱃기면 전혀 관계없는 선수의 다른 포지션을 빼앗아버리는 그야말로 먹이사슬 솥발의 형세(?)가 되고 말았다. 네가 아니면 내가 있다는 것, 수비진에서의 붙박이 경쟁과는 또 다른 경쟁, 그리고 협력을 야기했다. 게다가 기성용이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조금만 시원찮으면 느닷없이 수비수 엔트리의 홍정호와 이용래가 기성용 자리를 노리며 어슬렁거린다. 그런 기성용이 슛같은 패스를 찔러주면 이청용은 이제 혼자 뛰어들어가지 않고 손흥민과 함께 뛰어들어갈 수 있다. 이전에는 박지성의 활동량을 누구도 따라가지 못해 박지성이 휘젓고 다녔지만 이젠 구자철이 같이 호흡을 맞춰준다. 이런 호흡은 선수에게 있어 체력적인 문제를 뛰어넘는 안심감을 선사한다. 몸이 쌩쌩할땐 저 자식이 언제 내 자리를 치고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지만 그 반대로 자신이 몸이 안좋으면 스스로 '자신에 버금가는 라이벌'로서 자기 자리를 매워주는 안심감을 갖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성향의 선수가 함께 호흡을 맞춰줌으로 인해서 '내 플레이를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선수'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예전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정말 수차례 볼 수 있었던 '크로~스....아 근데 아무도 없네요'를 이번 대회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래서 이번 대표팀을 아시아의 스페인이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격진을 과감하게 포기한 것도 특징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표팀 공격진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그리고 하는 족족 욕을 먹었다. 공격수가 패스를 받아서 가능한 빨리 골을 만들어내기 위해 전방에서 기다리면 전방에서 어슬렁거리기만 한다고 욕먹고, 수비를 도우러 가거나 2선이 너무 쳐저있어서 하프라인까지 내려오다가 전방으로 날아가는 뻥패스를 놓치기라도 하면 공격수가 자기자리나 지키지 왜 뒤에서 어슬렁거리냐며 욕을 먹었던 게 우리나라 공격수들의 숙명이었다. 이렇다보니 골 결정력이 높아질수가 없다. 전방으로 들어오는 패스는 가능한 빠르고 정확하게 공격수에게 전달되어야 공격수가 그 정확한 패스를 받아서 더 정확하게 힘을 실어 골문으로 향할 수 있는데 이 말로는 한없이 쉬운 이게 지금까지 안 됐다는 거다.

조광래 감독은 이게 가능하게끔 만들기보다 아예 안하면 안되게끔 만들었다. 이름만 미드필더인 공격수들을 대거 미들로 쳐지게 만들고 공격수 (원톱) 역시 그들과 함께 뒤섞이게 만든 것이다. 이른바 제로톱 전술이라 불리는 이것은 상대에게 엄청난 혼란을 야기하는 반면 최종 화룡점정을 찍는 사람의 부담은 한층 덜해진다. 예를 들어 원톱이 반드시 정해야 하는 경기에서 원톱에게 크로스가 올라오면 원톱은 어떻게든 '내가 제일 앞에 있으니 내가 이걸 슛까지 연결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재대로 발에 맞추지 못하곤 했다. 그걸 조광래 감독은 '자신이 없으면 볼을 돌려라' 는 식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주변에 돌아보면 다들 자기보다 골을 잘 꽃을 녀석들이 주변에서 나한테 패스 달라고 으르렁대고 있는 상황이니 원톱은 볼을 받아도 당황하지 않고 한결 마음이 편해질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백날 이런 전술이 먹힐 리가 없다. 가끔 상성이 안맞는 팀도 있다. 주로 경험많은 볼란치와 센터백이 패스 흐름을 읽고 끊어버리는 식의 플레이에 익숙한 선수가 많은 팀이 그렇다. 이번 일본 대표팀이 대표적인데 이런 팀을 만나면 으르렁댈정도로 신명나던 미들의 분위기가 바로 죽어버리고 경기가 답답해진다. 이런 경우에는 다소 단조롭더라도 확실히 골을 결정지을 수 있는 전술로 수정할수밖에 없다. 그게 가능한 옵션이 '김신욱'이다. 크다는 것 그건 농구선수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물론 좋은 결과를 내진 못했지만 조광래의 이런 공격수 조합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시험무대에 오를 것이고 신기하게도 국내에는 축구 유망주들 사이에 '박지성 붐'이 일어 키가 작고 활동량이 뛰어난 유망주만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풍도여서 이런 아예 대놓고 세워버리는 장대 공격수가 정말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번 아시안컵만으로 김신욱을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장대들과는 좀 격이 다른 것 같다


이런 팀은 상대에 있어서는 공포 그 자체다. 특히 감독에게 엄청난 부담감을 준다. 그 대표적인 경기가 바로 '이란전'이다. 압신 고트비의 자신감은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니었지만 그는 '손바닥 들여다보듯 잘도 들여다보이는' 한국 대표팀에게 단 한골도 넣지 못한 채 끌려다녔다. 제대로 정착도 안된 센터백에게 번번히 막혔고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온 이용래의 커팅에 번번히 흐름이 끊겼으며 느닷없이 후보로 데려왔을 윤빛가람에게 한방을 먹었다. 몸싸움에 자신있는 이란이, 경기 흐름을 끊고 호흡을 괴롭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이란이 이번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패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아시안컵 대한민국 대표팀이 감독으로서는 정말이지 만나기 싫을 만큼 괴로운 상대였다는 것이다. 도무지 예측이 안되기 때문이다.

이는 수비진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공격진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예전에는 대한민국 상대팀들의 전술이래봐야 별거 없었다. 그냥 '이동국을 막아라'였다. 정말이었다. 진짜 이동국만 막으면 어쨌든 됐으니까, 즉 누가 골을 넣을지 대략 정해져있었다. 대략적이긴 하지만 공격도 예측이 되던 팀이었다는 것이다. 2006년 이후 골결정력 부족을 지탄하던 언론들에서 늘상 듣는 이야기가 '대표팀 득점이 공격수보다 미드필더 심지어 수비수가 더 많은 경우도 있다'였다는 것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제로톱이라고 공언을 했다. 게다가 나오는 선수들은 죄다 신인, A매치 득점 기록도 별로 없다. 다들 가슴팍에 MF라고 쓰고 '나 사실 미들이야'라고 기만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러니까 정신이 없다. 그나마 A매치 득점이 제일 높은 지동원을 좀 막다보니 구자철에게 털렸다. 중앙의 구자철을 막다보니 손흥민과 이청용이 싸대기를 쳐댄다. 떡대로 아예 들어올 루트를 막아버리니 뜬금없이 이름만 대따 긴 윤빛가람이 뒤에서 캐논을 쏴댄다. 애들 다 싸잡아 막으니까 오른쪽에서 치이면 최소한 폐차가 확실해질 듯한 덤프트럭 한 대가 밀고 들어온다...우리나라를 상대했던 감독과 코칭스텝은 아마 한국과의 경기 전 미친듯이 골머리를 앓았을거라고 생각한다.

덤프트럭의 위엄.jpg


게다가 이번 대표팀은 세대 교체에 있어서도 대단히 이상적인 방안을 제시했는데 다름아닌 '2014년까지 뛸 선수와 그렇지 않을 선수'를 정확하게 구분해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차두리와 이정수는 동갑내기 황재원은 이들보다 한 살 어리다. 이들의 나이는 각각 30,31살이고 이들이 2014년 월드컵이 되면 각각 33,34살이 된다. 수비수로는 나쁘지 않은 나이다. 즉 이들 셋을 포함해 이들 나이와 +-1,2살 정도의 나이차이가 있는 다소 애매한 노장들은 얼마든지 이들과 주전경쟁을 할 수 있고 그들이 잘만 하면 지금의 강한 세대교체 바람 속에서도 노장으로서 2014년 월드컵을 바라볼 수 있다는 아주 정확한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무조건적으로 나이 많은 선수를 은퇴시키고 장기 플랜이라며 젊은 선수들만 우겨넣었을때의 혼란을 막고 젊은 피와 노장 사이에 끼어버린 애매한 나이대의 선수들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주는 그야말로 안정성과 신선함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세대교체안을 보여준 것인데 이는 비단 수비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소 이정수보다 나이가 어리다면 얼마든지 지금의 젊은 로리로리 대한민국 대표팀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그동안 감독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눈치만 보며 그에 맞는 선수들은 눈에 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던 인재 파이의 편중성을 일거에 넓히는 파격을 암묵적으로 단행한 셈이다.

그리고 '아시안컵같은 하찮은 대회에 박지성을 부르지마!'라는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이영표와 박지성을 불렀다. 여기에서 조광래 감독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소문이더라도 이미 은퇴 의사를 몇 번이고 표명한 이영표와 박지성을 왜 '플랜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안컵에 끼워넣었을까? 앞서 설명대로라면 2014년에 데리고 갈 선수가 아니라면 차라리 넣지 않고 그들이 없을 때 메이저 대회를 어떻게 치뤄내야 하는지를 감독과 선수 스스로 깨우쳐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데 조광래 감독은 그렇지 않았다. 여기에는 박지성과 이영표의 존재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인정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들의 플레이가 이미 대표팀 자체의 상징이 될 만큼 깊숙히 침투해 있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이영표가 없으면 단지 플레이 스타일이 다른 선수일 뿐인데도 '이영표처럼 막지 않는다'며 팬들이 불안해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박지성의 플레이도 마찬가지아다. 그만큼 플레이 이상으로 존재감이 큰 이 둘을 대체하기 위해 아직 이들과 전혀 뛰어본 적이 없는 신인들의 눈과 몸 그리고 직접 맞부딪히며 배우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이들을 이번 대회를 통해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게끔 기회를 주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 둘이 각각 자신의 플레이를 이식시킬 (굳이 이식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배울) 선수를 각각 뽑는데 바로 '구자철'과 '홍정호'이다. 구자철은 말이 필요없는 성장 가능성 무한에 의외로 높은 체력까지 갖춘 복합적 테크니션으로 성장이 기대되는 선수, 홍정호는 수비수 중 가장 젊은데다 중앙, 좌, 우 심지어 볼란치까지 수비진을 아우르는 멀티플레이어이다. 이영표처럼 재빠르게 맨투맨으로 맞붙어 압박을 가중시키는 타입이라는 점, 키가 작고 날렵한 오버래핑도 기대할 수 있다는 점, 나이에 비해 매우 의젓한데다 챔피언결정전까지의 큰 경기 경험도 있는 관록형이라는 점이 이영표의 후계자로 부족함이 없다. 예전 홍명보가 은퇴할 때도 그가 없는 대표팀은 상상할 수 없었고 지금도 이영표가 없는 대표팀은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성장 가능성은 물론이고 어린 나이에 팀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침착함까지 갖춘 홍정호가 앞으로 이영표의 존재감을 어떻게 매워 나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될 정도다. 게다가 여기에 뭐든 가르치면 잘도 흡수하는 떠오르는 대세 '손흥민'까지 가세해 이번 대회를 풀로 소화하며 이들에게 배운 양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경험을 배운 손흥민이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수 있을까? 그들의 은퇴에 대한 충격을 얼마나 순화시켜 줄 수 있을지 혹은 더 뛰어넘는 존재감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벌써부터 이번 대회로 급성장한 그들의 활약상을 볼 기대감을 감추기 힘들다.


왕은 반드시 왕좌에 있어야만 왕이 아니다. 왕이라도 허수아비가 있고 왕이 아니라도 실세를 쥐며 상대국에게 강한 카리스마를 주는 것이 '왕'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메드베제프 대통령으로 바뀐 지 벌써 몇년인데 아직도 푸틴 없는 러시아는 상상할수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왕은 존재 그 자체로 공포여야 하고 강함이 느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왕의 귀환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일본이 우승하던 호주가 우승하던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한국은 어떤 선수가 무서운 팀이 아니라 이미 팀 자체가 '무서운 팀'이라는 이미지를 회복하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팀이 무섭다는 것은 '이번 아시안컵의 팀'이 무섭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저 팀은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는 미래지향적인 공포이기 때문이다. 즉 대한민국은 더 강해질 수 있고 그 강해지는 속도에 발맞춰 안정감도 갖출 수 있는 플랜도 제대로 제시하고 있는 그야말로 '빈틈없는 강함'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아 전역에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것들이 가능할 수 있었단 것은 조광래 감독 혼자만의 능력도 아니고
우연히 좋은 선수가 지금 막 쏟아져 나왔기 때문도 아니다.
조광래 감독도 좋은 전술로 장기적인 플랜을 통해 팀을 강하게 만들 미래지향적인 발상을 가지고 있고
선수들도 그런 감독을 믿고 미래의 대한민국 대표팀에 과감하게 투자하며 몸이 부서져라 뛰었다.


왕의 귀환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이번 왕의 공포정치는 당분간 계속 아시아 전체를 긴장시킬 것 같다는
기분좋은 예감이 든다.

그들의 귀환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앞으로의 더 넓은 세상에서 세상을 호령할 왕의 위엄을 기대해보며 글을 마친다.
posted by RushAm 2011. 1. 27. 15:45
그 1분도 채 안되는 찰나를 아주 잘도 봤던 모양이다. 잘 보니 정말 박지성이 허리를 잡고 말리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근데 실제로 말린 건지 아니면 정말 매국노처럼 일본에게 욕보이는 짓 하니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의도는 사실 박지성이 직접 입을 열지 않는 한 모르는 일이고 입을 연다 해도 그게 진심인지 알기 힘든 일 아닌가?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하다 박지성은 '주장'이다. 팀의 분위기를 추스르고 팀을 대표하며 팀에 어떤 '위해'가 가해지거나 '위해'가 가해질 것 같은'상황이 되면 대표로 나설 수 있는 그라운드 내의 '상관'같은 존재다. 사람들은 이 '주장'의 의미를 한쪽으로만 편중되어서 생각한 것 같다. 즉 박지성이 선배니까 철없는 후배를 가르치기 위해 끌어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말도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주장의 역할은 그것 뿐만이 아니다. 더 멀리 나가든 뭐든 상관없이 주장의 의무는 '팀의 보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1. 주장이기 때문에.

우선 그는 의사 표시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주장은 팀을 대표하는 위치다. 만일 박지성이 그런 세레머니를 했다면 그건 정말 큰일이다. 팀 전체의 의사가 반영되는 셈이 되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 축구의 간접적 의사표시가 될 수 있으니까. 세계 어떤 클럽 혹은 국가대표팀에서도 각 개인의 의사표시로서 세리머니는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주장 완장을 차고 있는 상태에서 그런 세리머니를 하는 경우는 세리에A의 일부 무솔리니 추종자들 이외에는 보기 힘들다.

다시 말해 그 당시 박지성은 말리고 싶든 싶지 않든 말렸어야 한다. 그게 주장으로서 표현하는 좌 우가 아닌 '중립적 의사표현'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박지성은 일본에서는 이미 슈퍼스타다. 박지성이 거기에서 말리는 제스쳐를 취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기성용이 일본에서 벌집이 될 수도 있었을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 말리는 것은 '주장으로서 해야 할 의무'였던 것이지 박지성의 의사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2. 주장이기 때문에 (2)

앞서 주장은 팀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가 최우선된다고 이야기했다. 박지성은 팀의 주장으로서 기성용이 이런 세레머니를 할 경우 우리나라 일부 네티즌들이 과민반응 할 것을 센츄리클럽의 관록으로 잘 알고 있었다. 폭풍까임을 당하기에는 아직 기성용은 젋다. 성장도 빠르고 앞으로 팀의 중심이 될 선수를 마음의 상처를 입어 유니폼을 벗게 되는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주장으로서 해야 할 '팀의 보호' 즉 팀을 주심이나 상대팀 선수뿐만이 아닌 '자국 네티즌'으로부터 보호하는 것도 주장의 의무였다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만일 어떤 의사 표시 즉 나는 기성용과 생각이 다른데 기성용이 철없는 짓을 해서 우리 팀 이미지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는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어야 한다. 기성용을 즉석에서 못하게 더 강하게 뜯어말렸을것이다. 카메라에 안잡히도록 무슨 수단이든 해야 했다. 그런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의사 표시를 할 수 없는 주장이라는 위치, 그리고 기본적으로 의사를 표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의사를 표시하는 게 중요했던 게 아니라 '기성용'을 아끼고 보호하는 게 의무였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그가 걱정하던 대로 됐다. 걱정한 만큼만은 아니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기성용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고 기성용은 트위터에서 맹폭을 당하고 있다. 박지성은 매국노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정한 대인배라고 할 수도 없다. 그가 대인배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장면 하나로 대인배냐 매국노냐를 판단하는것 자체가 에러라는 거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다.
그는 진정 팀 선수의 안위를 걱정하고 보호해주려 했던 '캡틴 박'으로서 책임을 다했다.
우리나라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걱정하기 이전에 자신이 이끄는 선수를 걱정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장면


뭔가 느껴지는거 없는가?
박지성은 카메라 앞쪽 시선에서 봤을 때 그의 등번호가 세계에 중계되지 않도록 했다.
그의 시선은 기성용이 아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옆모습을 보자


말리는 사람이라면 가슴을 잡고 기성용을 끌어내는 스타일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옆에서 보면 그냥 손으로 그의 앞번호를 가리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다.
그가 자꾸 움직여 등번호가 카메라에 잡히려고 하니까
그를 억지로 끌어당기는 것 정도는 보였던 것 같다.


주장은 그런 존재다.

위 사진은 그 순간 절묘하게 찍힌 사진이고 사실 박지성은 가슴쪽 두번 두드리고 금방 갔다.
즉 지금 박지성이 말린다고 매국노니 마니 하는 녀석들은 경기 안봤거나
그 장면을 유심히 보지 못해 기억을 못한 거다.

아무리 그래도 당신들이 정말 우리나라 대표팀 응원하고 박지성 팬이라면
저 사진을 보고 매국노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를 수가 있는건가?
난 저 두 사진을 보고 아무리 봐도 그런 건 생각이 안나더라
오히려 기성용을 보호해준다고 느꼈지 매국노같은 그런 생각까진 안들더라
그 장면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내가 이상한건가? 대한민국 대표팀 주장을 무조건 믿고 있던게 잘못인가?

누가 매국노인지 똑똑히 생각해보자
posted by RushAm 2011. 1. 26. 14:34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정말 많은 분들이 죽거나 다쳤다. 무려 자국 국민이 죽거나 다친 어마어마한 일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은 시금털털하게도 '다음에 또 그러면 진짜 죽어!' 였다. 이건 뭐 초등학생 싸움도 아니고 그런 협박이 먹힐리가 없다. 이런 시금털털한 대응으로 우리나라는 연평도 희생자에 대한 책임을 북한에게 물어볼 기회를 전혀 얻지 못한 채 북한 정책에서 철저히 배제되는 수모를 당한다. 뭐 하나 속시원히 말 한마디라도 제대로 해서 연평도 주민들에게 '우린 앞으로 국가가 이 정도로 철저하게 해주니까 안심하고 여기 계속 살아도 되겠구나'라는 확신을 주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건 비단 최근의 일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요구할때도, 독도 문제에 있어서도 언제나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라는 저자세를 취하며 국민들의 울화통을 터뜨리곤 했다. 아주 글로벌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었다. 당해도 뭐 하나 속시원하게 한마디 못하는 글로벌 호구, 그걸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지금은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타이틀로 자위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기성용은 젊다. 사실 일제강점기를 거쳤던 세대에 비해 최소 3세대 이상 떨어져있다. 당연하겠지만 일본인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관해서는 그다지 와닿을만한 세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기성용이 그런 세레머니를 했다. 그는 이미 셀틱에서 뛴다. 셀틱은 인종차별로 악명이 높은 클럽이다. 그가 그런 설움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그가 그걸 했다. 그런 그에게 '넌 셀틱에서 인종차별 당해도 싸'라고 말한다고? 그럴 리가...



기성용은 '라이벌'로서 일본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아무 철없는 행동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단 '인종 차별'이라는 게 말이 안된다. 기본적으로 같은 황인종끼리 인종차별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대방을 비하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일 그것이 일본을 비하하는 세레머니였다면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훨씬 더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어야 한다. 이건 '이겼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그런게 아니라, 보도 자체를 할 때 '한국은 이런 식으로 졸렬한 짓을 했는데 우리 선수들은 그걸 참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결국 이겼습니다'라고 보도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거다. 왜냐하면 이들이 그것에 대해 반응을 한다면 스스로 이미 '원숭이'라 불리우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 되니까 누워서 침뱉기가 아니던가? 기성용이 정말 여기까지 계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은 이 세레머니에 한방 먹었어도 이렇다할 말 한마디 못하는 지경이 되고 있다.

그 증거가 바로 지난 한일전에 대한 일본 TV들의 보도 행태이다. 정말 마르고 닳도록 보여주고 있는 하이라이트에서 '기성용'의 패널티킥 골은 단 한번도 재방송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일본 골만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동점골은 제대로 보여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결국 그들은 그걸 보여주면 국민들 모두 '큰 타격'을 받을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금 그 세레모니가 결국 외교문제로 비하될 것이 '두려웠던'것이다. 일본은 지금 그 세레머니 하나로 '우리나라'에게 쫄고 있다. 여태까지 기성용만큼 노골적으로 일본에게 한방 먹인 선수가 있었던가?

기성용의 한 방이 아니라, 몇 수천방을 먹여도 성에 안차는 게 우리나라 역사다. 축구는 국수주의가 아니라지만 한편으로는 자국주의에 기반하기도 한다. 폴란드 선수가 독일에서 뛰면서 자국 폴란드에 골을 넣은 뒤 침울해하는 것, 아르헨티나가 잉글랜드에게 진 뒤 락커룸에서 통곡을 하는 것 모두 자국주의에 기반한다. 즉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우리나라가 더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로 축구다. 이런 축구에서 일본에게 예의를 차리는 것은 사치다. 어느 누구도 전쟁의 직접적인 가해국에게 피해국이 예의를 차리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기회가 있을 때 가능하면 더 비웃어줄 필요가 있다. 그게 아주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원래 축구였고 한일전이었으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한일정기전을 위해 대표팀을 꾸린 이유도 '축구만큼은 일본애들을 확실히 이길 수 있습니다' 라는 자신감에서 나온 게 아니던가?


기성용 잘했다. 정말 잘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누가 뭐래든 기죽지마!
posted by RushAm 2011. 1. 19. 23:56
카라 소속사 계약 해지에 연예계 기자들이 당황하고 있다. 무리도 아닌게 지금까지 소녀시대 주구장창 파느라 공사다망하셨기에 카라에 대해서 제대로 파지를 못했으니까, 뭐가 어떻게 돌아간건지 이제서야 부랴부랴 판다한들 뭐가 나올리도 없고 당연하겠지만 관계자들이 제대로 된 인터뷰에 응할리가 없으니 기사는 무진장 쏟아지는데 뭐 하나 제대로 핵심을 짚은 기사가 나올 턱이 없잖은가, 그냥 쥐어짠다고 나오는게 기사가 아닐진데 어떻게든 뷰 카운트 높여볼라고 일단 카라라는 제목부터 달아보고 나서 추리소설을 써내려가는 식이다. 그냥 동방신기와 연결시키기에 여념이 없는 녀석들이나 심지어 우리나라 그룹인데 일본 보도를 인용하는 웃지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건 단순히 카라의 해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자들이 파는 건 지금까지 아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는 듯이 수익 분배나 계약금 문제를 가지고 물고 늘어지고 있는데, 계약금 문제가 불거질거였다면 에초에 먼저 캐치를 하는 쪽은 기자들임에는 틀림이 없음에도 이번에는 기자들이 정말 신정환에만 신경썼는지 전혀 캐치하지 못했나보다. 원래 계약금 문제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한들 은근히 연예부 기자들이 심어놓은 프락치들이 슬슬 정보를 흘리기때문에 돈 문제든 소속사와의 불화든 간에 이렇게 하루만에 갑자기 딱 틀어지는 건 있을수가 없지 않은가?

하나 더 짚고 넘어갈 부분은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룹의 리더는 단지 예전처럼 무대 가운데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야구부의 주장처럼 팀의 입장을 대변하고 대신 전달해주는 간부 역할을 한다. 즉 돈 문제가 있었다면 제일 먼저 리더가 조율해야 한다. 게다가 박규리는 부모쪽이긴 하지만 DSP수뇌부와도 연줄이 있다. 맴버들이 뭔가 부당한 처우를 당했거나 했다면 진즉에 박규리부터 움직였어야 한다. 그런데 박규리의 반응은 '서프라이즈'였다. 전혀 조짐도 없었다는 거다. 게다가 박규리는 한국에서 당일 라디오 생방을 진행하고 있었고 남은 맴버 네 명은 일본과 제각각 각지에 있다가 해당 발표 직후 귀국을 했다. 천천히 와서 박규리와 상담한 뒤에 대응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 네 명은 법무법인의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매우 서두르는 눈치가 강했다.



게다가 지금 날조되고 있는 기사들과는 달리 인터뷰 원문을 살펴보면 법무법인이 맴버 4명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리에서 '돈'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 속 키워드는 단지 공정하지 못한 계약과 '부당한 활동'을 강요했다는 것. 기자들이 마르고 닳도록 인용한 부분이 이 부분인데, 사실 법무법인이 카라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돈 이야기를 하지 않고 빙빙 돌려서 말할 수도 있겠지만 법무법인이 바보가 아닌 이상 공석에서 말한 부분이 곧바로 법정으로 이어진다는것을 생각해보면 결코 팩터에서 벗어난 발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즉 이 사건에서 돈이 반드시 관계가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메인 팩터는 아니라는 점이 된다. 기자들은 '불공정 계약'이라는 키워드에서 생각해낼 수 있는게 고작 돈 문제뿐이 없으니 이제서야 부랴부랴 일본 음반 판매 수익 배분 룰 등을 대거 싣고 있는 모양인데 읽는 사람은 답답할 뿐이다.

불공정 계약인데 돈 때문이 아니라면 답은 '계약' 그 자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인간답지 않은 처우를 받았다더나, 부당한 계약을 강요당했다는 것을 모두 종합해보면 이들이 사인을 한 계약서 자체보다는 이들이 일본을 진출할 당시 기획사와 기획사간에 이루어졌을 B2B계약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들이 일본 활동 도중 정말 '갑작스럽게' 그것도 아주 우연히 '알게 될' 만한 것이란 사실 국내에서 움직이고 있는 DSP와 관계있는 부분일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재계약이 얽히든 계약 조건이 사실과 다르던 뭐던 제일 먼저 캐치가 가능한 건 박규리일수밖에 없는데 그녀는 일이 터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일이 터진 전날 박규리가 홀로 라디오 DJ를 하고 4명은 일본 혹은 타국에 있었다. 과연 다른 곳에 남아있던 4명이 놀았을까? 아닐거다. 불과 며칠 전에 카라가 출연한 버라이어티를 본 적이 있고, 정보 프로그램들은 언제나 카라의 스폰서 행사 풍경을 취재했다. 결국 박규리의 한국 스케줄로 5명이 활동하지 못하는 상황에도 카라는 한 마디로 '막굴려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격한 스케줄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된다. 당연히 그들은 '불만'이 서서히 쌓였겠지만 그것을 제대로 억제할 수 있는 건 역시 '수익배분'에 있었을것이다. 즉 열심히 뛰는 만큼 (특히 스폰서 행사는) 돈은 많이 들어오고 그만큼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이 그들을 움직였을게 분명하다. 아건 단지 돈 그 자체만이 아닌 '동기부여'에 연결되는 문제다. 내가 한 만큼 정당한 댓가를 받는 것처럼 건전한 동기부여는 없을테니까.

지금까지 나온 기사를 종합해보면 카라는 일본 현지 소속사와 DSP 복수 소속이 아닌 DSP에 소속된 채로 현지 소속사에 임대가 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일본에서 활동을 한다고 한들 현지 기획사에서 직접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우선 현지 소속사와 DSP가 수익을 나누고 DSP는 그 나눠받은 수익금을 토대로 다시 카라 맴버에게 배분하는 형식이 된다는 것이다. 즉 DSP와의 계약이 아무리 카라에게 많은 배분이 될 수 있도록 되어있다하더라도 DSP가 현지 기획사와의 협상에서 지극히 불리한 조건이나 배분율을 수용할 경우 카라에게 돌아가는 몫은 고생한 것에 비해 훨씬 적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카라가 게키단 히토리로 인해 일본 진출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한 일본 진출에 DSP가 정말 철저하게 준비할 만한 시간이 있었냐면 그건 아니었다. DSP는 게키단 히토리가 한번 터뜨려준 기회를 최대한 살려내기 위해 일단 진출부터 하고 보자는 식으로 준비 없이 일본 진출을 서둘렀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DSP가 일본 시장에 대한 경험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한번 터저준 붐을 어떻게든 서둘러서 불을 붙이고 싶은 마음에 계약 조건에 있어 '무조건적인 수용'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소 굴욕적일 수도 있을 조건들을 감안하면서까지 일단 일본에 보내보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했을 가능성이 컸을 터, 당연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급할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일본 소속사쪽이 무조건 유리할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런 이사진급 계약을 카라 맴버들과 상의해가면서 했을 리가 없고 할 필요도 사실 없다. 회사로 따지면 일개 사원이 주주총회에 난입해 사장의 실적 발표에 토를 다는 격이 될 테니까, 기획사에 소속된 그룹은 자기 자신과 소속사와의 계약에서는 갑과 을의 절대적인 권리를 가질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회사 대 회사의 계약일 경우 이미 계약이 된 그룹은 회사의 자산으로서 활용이 되기 때문에 일체 발언은 물론 알 수 있는 권리조차 없다. (메이저 리그에서 선수 본인은 모른 채 협상이 끝나 갑자기 아침에 당연한 듯이 다른 구단으로 트레이드되어버리는 초고속 트레이드를 연상해보라)

그러나 일본에서 카라는 DSP도 일본 소속사도 예상했던 것을 훨씬 초월할 만큼 거물로 성장해갔음은 물론 앞으로 더욱 크게 성장할 가능성도 매우 높게 점쳐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렇듯 높은 주가를 달리고 있는 카라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일본 기획사도 기획사인건 마찬가지) 정말 살인적이라고 할 만큼 많은 스케줄, 특히 수익에 직결되는 행사 스케줄에 카라를 집중시켰다. 이렇듯 카라가 도가 지나칠정도로 혹사당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카라가 묵묵히 이를 수행했던 이유는 앞서 이야기했던 정당한 대우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원 소속사로서 권리를 행사했어야 할 DSP가 이러한 카라의 과다한 스케줄에 어떤 방어막도 쳐주지 않았을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DSP가 정말 잠자코 있었거나, 혹은 활동을 제한하고 싶어도 계약상 그럴 권리가 없었거나이다. 둘 중 어느쪽이든 카라가 그 사실을 알게 될 경우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는 사실일것이다. 일본 활동을 제한할 영향력이 없는 계약이었을 경우 DSP는 카라를 대신해 그들의 권리를 보호했어야 할 도의적 책임을 실수로 인해 포기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고 만일 활동을 제한시킬 권한이 있었음에도 그냥 뒀다는 것은 기획사간의 불공정한 수익 배분에 대한 책임을 카라에게 전가시켜 결국 한 번 뛸 것을 두번 뛰게 해 케파를 맞추는 지극히 악질적인 짓을 저지른 셈일 테니까 말이다. (수익배분 조건이 7:3이라고 하면 DSP는 일본쪽 7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카라를 두번 굴려 14:6을 만들어 6을 얻었다는 이야기)

단언컨데 카라가 만일 DSP가 주는 수익에 불만을 가졌다면 지금처럼 갑자기 터뜨릴 이유가 없다. 이는 법무법인을 끼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더욱 의문이 깊어진다. 즉 이들은 수익 배분이 지금까지 어떻게 되왔던 것에 대해서는 지난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부터 하는 활동에 있어 DSP의 이와 같은 해외 진출 전략 능력을 신뢰할 수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협상도 하지 않고 '계약을 해지'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DSP가 주는 돈의 액수가 아니라 앞으로 일본에서 자신들의 주가가 더욱 높아질 것을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데 그 수준에 비해 DSP의 능력이 전혀 받쳐주지 않는다면 지금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도 이같은 굴욕적인 계약은 계속될 것이며 카라는 이같은 불공정함에 대해 일본쪽 소속사에 일언반구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이어질 것이 자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돈도 돈이지만 너무 많은 혹사를 당하면서도 타지에서 어떤 권리도 갖지 못한 채로 힘들다는 말 한번 못한 채 스케줄을 이행할수밖에 없었을것이다. 그것이 자신들이 정말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가 아닌 단지 자신들 소속사 이사진들과 해외팀의 협상력 부족에서 나온 일방적인 책임 회피에 대한 댓가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떨까? 돈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힘든걸 참고 열심히 해온 것에 대한 억울함과 배신감이 먼저 들지 않을까? 그렇다고 한국에 바로 돌아가서 언론에 폭로해봤자 언론 플레이는 기획사쪽이 한 수 위인데다가 소속사를 떠난 자신들을 보호해줄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았을 것이다. 게다가 일본 활동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흐름이 이상해지면 DSP를 포함한 국내 언론이 이를 캐치하고 자신들의 의중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게 될 위험성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매우 신속해야 했으며 실드를 쳐줄 수 있는 법무법인과 이적할 수 있는 대체 기획사까지 마련하는 신속 치밀함을 보였던 것이다.

DSP는 기획사들 중에서 불공정 계약 문제가 비교적 적은 편이다. 핑클은 해체 후 대부분의 솔로 활동을 원 소속사 DSP에서 시작했는데 이런 케이스는 해체 = 계약분쟁이라는 우리나라 음악 시장에서 정말 드문 케이스에 속한다. 이효리는 DSP와의 계약에서 솔로 1집을 성공적으로 히트시킨 뒤 이적하는 과정에서 어떤 잡음도 나오지 않았으며 이는 다른 맴버들의 이적 당시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게다가 DSP는 드물게 연습생 기간이 짧은 기획사로도 유명한데 일단 데뷰를 시킨 뒤 점진적으로 성장시켜 나가는 일본의 아이돌 시스템을 벤치마킹하여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 첫 수혜자가 바로 카라였다.


옛 핑클 맴버들이 몇년만에 모여 처음 간 곳은 DSP 사장이 투병하고 있는 병실이었다는 뉴스가 얼마 전에 나왔다. 이 뉴스는 이 사건에 있어 두 가지를 시사하고 있다. DSP는 그만큼 소속사 경영진과 연예인간의 거리가 다른 기획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깝고 가족적이었다는 것과 지금 현재 그 가족적인 분위기를 이끌었던 선장이 투병중으로 공석에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사장이 없는 동안 그 경영을 대행했을 이사진들이 DSP를 정상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을까? 이런 일이 벌어지기까지 두터운 신뢰감으로 뭉쳐있던 DSP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으며 그 일을 어떻게 봉합 혹은 은폐하고 있었던 것일까? 모든 것은 그들의 입을 통해 밝혀지리라 믿는다. 개인적으로 DSP가 이번 일로 인해 보여주었던 작은 가능성이 사라지게 되는 것을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내 글이 모두 낭설로 밝혀져 욕을 바가지로 먹게 될 지언정
이런 일이 사실이 아니길 정말 진심으로 간절히 바란다.
이딴 일이 진실로 밝혀지느니 차라리 내가 악플 몇백개 처먹는게 이 업계에 훨씬 도움이 될 테니까..
posted by RushAm 2011. 1. 11. 21:12
최근 버라이어티에 과소비 논란이니 가학성 논란이니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다행이도 대부분 지상파 방송을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로 착각하는 분들의 생떼이긴 했습니다만, 이승기가 뜨거운 커피를 벌칙으로 벌컥벌컥 마신 것에 대해서는 '가학성 논란 속 이승기의 프로정신'같은 걸로 포장된 채 그 속에 숨겨진 아무 생각 없이 방송을 만드는 KBS의 무능함과 무뇌함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어 요즘 바쁜 가운데 포스팅에 손을 대게 되네요.


성우 고 장정진 씨가 기도질식으로 사망하신 뒤 KBS는 깊은 반성을 한다며 이제 버라이어티에서 위험천만한 벌칙이나 게임을 하지 않겠으며 반드시 버라리어티 방송 제작에 응급구조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겠다는 사과방송이 난 지 10년도 채 안됐습니다. 뜨거운 커피는 안전하다고 주장할지 모르겠지만. 공교롭게도 또다시 식도와 기도와 관계된 게임을 또 했다는 점에서 자유롭지 못한데요. 게다가 사람마다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만, 뜨거운 커피가 일순 식도의 기능을 마비시키거나 식도 화상으로 부어올라 기도를 짓눌러 질식하는 식의 시나리오가 절대 0%라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것이죠.

더 큰 문제는 이런 게임도 문제지만 KBS가 지난 반성에서 가장 공을 들였던 '초동 대응의 미숙'입니다. 야생 버라이어티라고 말하는 만큼 스텝진은 스튜디오에 비해 적은 편인데다가 자주 비춰주는 스텝진들 속에는 '대사로 어떻게 웃겨볼 끼있는 PD'는 있을지언정 응급처치 도구를 항시 준비하고 있는 담당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더 중요한건 만일 응급한 사고가 났을 때 응급처치 이상으로 중요한 '치료 가능한 병원으로 후송'이라는 문제가 있는데 이놈의 야생 버라이어티가 이미 산골 속 산골을 노리고 있는지라 제대로 된 병원까지는 최소 몇 시간은 걸리는 상황이다보니 에초 초동 대응이 빠를 수가 없는 상황에서 이런 짓들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죠.

반성을 어디로 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또 소중한 사람 한 명 더 잃어야 유효기간 1년짜리 반성을 할 생각인가요? KBS의 가장 나쁜 점은 '시청율이 낮아질 경우' 그 방송을 내리기보다는 가능한 '무리를 해서라도 살아남으려' 용을 쓴다는 거고 그 용이 먹힌다는 데에 있습니다. 공영방송의 한계랄까요? 1박 2일은 지금 너무 안전빵을 택한 나머지 추락에 대한 아무런 처방을 내리지 못하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만 칠 뿐인 상황에서 출연진들을 바다에 집어넣다가 뜨거운 커피를 먹이는 등의 미친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겁니다.


제가 앞으로 몸담게 될지도 모를 업계라서
더더욱 당신들이 한심하고 창피합니다.

자신들이 가능한 오래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은 죽어도 괜찮다는 초딩만 못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그걸 성과만 좋다면 좋은게 좋은거라고 용인하는 경영진들도...

이 업계에서 제발 사라져주십시오..
posted by RushAm 2011. 1. 10. 13:55
방송에서 특별 생방송으로 수재의연금을 걷는다든지 심장병 어린이를 돕는다든지 이웃돕기 성금을 걷는 풍경은 21세기에 이르러서도 과거의 유물에 머무르지 않고 올해도 계속 방송을 타고 지금도 인기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방송하는 TV 한귀퉁이에는 ARS 번호가 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전 세계에 보기 드문' 한국만의 독특한 '복지형 기부 문화'를 한국인만의 '정'을 보여주는 거라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올해는 사랑의 열매, 예전에는 사랑의 빵 ... 정말 수많은 복지단체들이 비리로 얼룩졌음에도 이러한 서민들의 작은 기부 움직임은 그리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나 방송에서는 추운 때일수록 방에 불조차 못때 떨고 있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해야 한다며 많은 사람들의 측은지심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우리나라의 전통으로 몇 십년이 지나 이미 OECD국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이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게 정말 정상적인 것일까요? 기부 방송은 언제나 좀 더 많은 기부를 한 사람의 사진을 제일 먼저 내세우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를 한 사람을 영웅으로 추대하는 등 '이 기부가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점을 역설하고 있는데 조금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기부가 '서민 복지'에 지금까지도 쓰여져야 할 만큼 이 나라의 복지 정책이 지금에 이르러서도 서민들의 기부에 손을 벌려야할만큼 정책이 형편없다는 반증이 아닐련지요?

독거노인들을 돌봐야 하고, 소년소녀 가장을 돌봐야 하는 건 국가의 역할입니다. 그걸 제대로 다 못해서 국민들에게 기부 명목으로 손을 벌리는 상황을 '당연한 듯'이 언제나처럼 예산을 짜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정말 잘 하고 있는 걸까요?

OECD국가 중 유니세프같은 국제 NGO가 경제 규모 대비 가장 고전하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인데 우리나라는 이들 국제 NGO에 기부를 하면 언제나 이런 이야기가 돌아옵니다.

'지금 우리나라 불우이웃도 다 못돕고 있는데 다른 나라 신경쓸 겨를이 있어?'

불우이웃 돕기가 잘 안되고 있어 그나마 오던 복지단체들의 지원도 끊겨 소년소녀가장,독거노인들이 한층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는 방송이 매년 나오고 있습니다. 이 방송은 의도적으로 기부를 하지 않고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은 국민들에게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라'고 강요합니다. 사실 국가 내 국민들이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는 건 국민들이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해당 지방자치단체장, 크게는 보건복지부장관과 대통령이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 할 일인데도 말입니다.

정치계가 무상급식, 무상의료, 이런게 해야 한다 안해야 한다로 의견이 갈리는 것 자체가 창피하고 부끄러운겁니다. 대통령이 골프장 운전 잘 못하는 게 부끄러운게 아니라 어째서 당신 나라는 G20을 개최하면서도 그 작은 나라에서 추위에 떠는 계층이 생기고 있는지 되묻는 해외 정상의 질문에 부끄러워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나라 내부가 아니라 더 어려운 나라를 지원할 만한 경제능력을 갖추었음에도 아직도 내부 불우이웃조차 몇십년째 나라 스스로 해결 못해 국민들에게 손을 벌리는 통해 정작 국제 NGO가 뻘쭘해지는 지금의 상황이 정말 정말 부끄러운 겁니다.

국민들이 유일하게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
연말연시에는 불우이웃에 관심을 가지면서..
투표할때는 뉴타운 이외에는 눈과 귀에 집어넣을 생각조차 안한 결과
이웃돕기 ARS에 의존하는 걸 몇십년째 아예 당연하게 복지 계획에 넣어버리는
한심한 정치가가 이 땅에 활개치가 한 바로 그 부분일 것입니다.



진정 행복한 나라는 '영웅'을 가진 나라가 아닌...
'영웅'이 필요하지 않은 나라일 테니까요.
posted by RushAm 2011. 1. 9. 03:18
이 글은 '상'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안읽으신 분들은 클릭

전편에서 소개드린 대로 일본 시장에서 보여준 동방신기의 2009년 당시 가치는 이전 보아가 보여줬던 그것과는 실로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판매량만 가지고는 보아가 더 나은 성적을 거두었겠지만 음반 시장의 침체 속에서 '살아남았다'라는 의미는 한층 그들의 위상을 독보적으로 만들어주었고 이는 단지 '한류'로 치부할 정도의 수준을 이미 뛰어넘은 상태였죠. 동방신기의 팬층은 겨울연가를 본 부모 세대를 가진 포스트 한류세대를 포괄하고 있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이들은 이미 한류 매니아로서가 아닌 동방신기의 음악, 맴버 개개인의 매력에 빠져 있었고 이는 2009년 상반기 남성 연예인 앙케이트에서 영웅재중이 1위를 하는 등 동방신기 맴버들이 아라시 맴버를 제치고 상위권을 휩쓸었다는 점이 증명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동방신기의 해체를 둘러싼 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음악계에 있어서 동방신기는 양날의 검이었죠. 일본 가요계가 침체되는 와중에 동방신기가 지금의 페이스대로라면 톱 아이돌 반열에 오른 아라시를 그대로 제껴도 이상하지 않다는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일본 가요계를 한낱 외국 가수에게 점령당한다는 것은 가뜩이나 유력인사의 자이니치 컴플랙스에 오랜 홍역을 치루었던 민족적 열등감의 표본 일본에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냥 동방신기를 처내자니 그나마 명맥을 맞아주고 있는 음반업계가 그야말로 폭삭 주저앉아버릴 수도 있다는 고민이 있었죠. 이도 저도 못하는 진퇴양난이었고 그 누구라도 쉽게 결정내리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여기에 SM의 지분 요구가 맞물리게 됩니다. SM은 사실 기대 이상으로 커진 동방신기가 지금까지의 계약 조건으로 인해 손 안대고 코풀듯 가만히 앉아서 돈을 가져다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음에 분명합니다. 한국 활동에도 그렇게 큰 돈이 들어가지 않았고 일본 활동에서 얻은 수익의 일정 부분은 앉아서 챙기는 셈이니 그걸 놔줄 리가 없었겠죠. 아이돌 주기 5년 그리고 동방신기는 그 주기를 일본 진출의 성공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로 극복해낸 신선한 케이스를 제시하며 SM을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SM은 5년 후 그들이 뜨던 말던 재계약에 있어 매우 인색한 조건을 내놓는 것이 거의 당연시되던 풍토가 만연해있었으니까요. HOT가 그랬고 신화가 그랬습니다. 당시에는 기껏해야 국내 시장에서 놀던 우리나라 아이돌 업계였으니 국내에서는 방송국 쉐어까지 조절하며 제왕으로 군림했던 SM의 견제를 당해낼 수 있을 기획사가 있을리 만무했던거죠.


하지만 동방신기의 경우는 조금 달랐던게 일단 자신들이 가진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 가치를 잘 발휘해줄 쪽이 어느 쪽인지도 확실하게 의견이 정해진 상태였습니다. (여기에서 맴버간의 의견이 갈렸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게다가 무대가 SM이 결코 강점을 보일 수가 없는 '일본'이었기에 사실상 이들이 계약 조건을 저울질할수있는 여건이 마련이 되어 있는 상태였죠.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남은 것은 사실 SM보다 AVEX쪽이 동방신기라는 타이틀을 몹시도 필요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동방신기라는 타이틀을 뺏기는 것은 물론 AVEX로서는 가장 바라지 않았던 팀의 해체와 그간 공들여 쌓아왔던 동방신기에 대한 인지도마저 반토막이 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는 것입니다. AVEX가 흔히 실드를 쳐주거나 거액을 제시해서 JYJ가 돈 때문에 SM소속사를 버렸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고 있습니다만 위에 말씀드린대로 이미 AVEX는 빚더미에다가 사실상 동방신기가 먹여살리는 모습이 되어있는 셈이었으므로 거액을 배팅할만한 여력이 되지 못합니다.

게다가 AVEX는 앞서 든 의혹이 사실일 경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일본 가요계에서 더 이상 동방신기가 동방신기인 채로 성장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방해받았다는 느낌을 감추기가 힘듭니다. 사실상 동방신기가 활동을 중지하고 JYJ로 근근히 활동한 지난해 오리콘이 발표한 2010년 통산 연간 음원 매상 랭킹을 보면 보다 더 확고해지는데요.

1위 아라시 - 197억엔
2위 동방신기 - 98억엔
3위 AKB48 - 70억엔
4위 EXILE - 60억엔

사실상 일본 내에서 동방신기라는 이름이 완전히 사라진 원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방신기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앨범, 싱글 판매 수익이 아라시의 절반에 육박하며 2위를 고수합니다. 올 한해 TV에서 수도꼭지 역할을 톡톡히 하며 한 사람당 몇천장씩 사제끼는 오덕머니 파워를 자랑한 '산 사마의'AKB48조차 이미 사라진 '죽은 제갈공명'동방신기를 이길 수 없었다는 것이죠. 게다가 이 동방신기 음반 매출은 JYJ나 시아준수의 개인 싱글을 포함하지 않은 수치인데다가 바로 해체하기 직전인 2009년 이미 아라시와 불과 몇십억 차이로 좁혔었다는 것을 감안해볼 때 올해 만일 동방신기가 해체하지 않은 채로 활동을 지속했다면 아라시가 두배 가까운 스코어로 독주를 할 수도 없었을뿐더러 심지어는 엎치락뒤치락하는 1,2위 싸움까지 예상해볼 수 있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결과로서 나타난 동방신기의 위력과 그들의 해체로 인해 아라시라는 자존심을 지켜낸 일본 가요계,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AVEX가 과연 자금적인 문제 이외에 다른 압박으로 인해 동방신기와의 제계약이나 동방신기를 원상복귀할 수가 없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다소 위험한 추측을 해봅니다. 일본이 가장 무서워할수밖에 없을 자이니치 컴플랙스, 그들의 경제가 완만한 하향세를 거두고 있는 지금 세계적인 시장을 과시했던 음반 가요계마저 한국에게 추월당할경우 정신적인 타격이 클 거라는 것을 이미 예상했던 것일까요?


이런 내홍을 겪는 와중에 SM과의 동방신기 쟁탈전 분쟁을 능동적으로 처리할만한 역량이 AVEX에게는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정말 공교롭게도 동방신기 분쟁이 일어나는 그 시기에 일본 검찰은 AVEX의 고무로 테츠야 사장을 구속 수감하였으며 동방신기 사태가 결국 팀의 분할로 일단락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무로 테츠야가 일선에 복귀하는 우연치고는 참 구리구리한 일도 일어났습니다. 선장이 없는 상황에서 SM과의 대결이 사실 그리 유리하게 진행되었을리도 없고 AVEX는 이미 5억엔 사기사건으로 인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상태여서 맘놓고 거액을 배팅할만한 능력도 있지 못했던 것이죠.

사실 지금 SM이 소녀시대를 들고 일본에서 마케팅을 할 때 쓰는 자금력을 보면 분쟁 당시 SM이 AVEX보다 자금력이 강하면 강했지 못해보이지는 않습니다. 감히 추측컨데 JYJ를 포함한 동방신기 맴버들은 AVEX보다 SM에서 더 많은 금액을 제시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이미 SM은 상장사로서 기업공개가 되어있고 예전처럼 이면 노예계약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짓기에는 사람들의 관심과 보는 눈이 너무 많아져 쉽지 않은데다가 지금 한창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소녀시대를 붙잡을때를 대비한 회사의 도덕적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동방신기에 대한 권리를 지키는데 돈을 아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저씨팬들은 주먹을 씁니다.


결론이 너무 스트레이트하게 나게 됩니다만 결과적으로 JYJ는 일본에서 지금과 같은 활동이 이루어지길 원했으며 일본 기획사와 계약했지만 종속되지 않는 자유계약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곧 일본 시장에 있어 SM의 매니지먼트를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약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SM과 AVEX 모두 이 업계에서는 큰 손인데다가(채권단 역시 AVEX가 무너지는 걸 원치 않는 한 동방신기의 제계약에 돈을 쓰는 걸 아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동방신기에 대한 가치를 양쪽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돈 몇푼 차이로 양쪽이 갈라졌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거든요. 그럼 정말 현재 동방신기에 남은 두 명은 적은 계약금으로 지금까지 키워준 의리를 생각해서 남은 것일까요? 왜 하필 한국에서는 인기의 중심에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다른 맴버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었던 창민과 윤호 두 사람만이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SM은 지금 사태에 대해 변호해줄 우군이 몹시 필요합니다. 아이돌이 상당한 권력을 쥐게 되는 연예계에서 모처럼 소녀시대를 통해 예전의 주도권을 되찾은 모습의 SM이 지금까지 논란이 되어왔던 노예계약 이미지를 어서 탈피하고 순수한 피해자로서 지지를 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동방신기가 5명인 채로 남길 원했던 건 일본 뿐만이 아니었으니까요 SM은 과정이 어찌되었던 동방신기 팬들에게는 '조용히 있던 5명을 갈라놓은 원인'으로 비추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변명을 한답시고 AVEX가 약아빠진 회사라고 주장하기엔 한국에서 AVEX에 대한 아무런 인지도가 없기에 상대로서 적합하지 못하기에 지금의 JYJ에 대한 SM내외의 수많은 사람들의 디스는 SM이 차마 일본 시장까지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지언정 지금은 소녀시대로 인해 다시 대한민국 연예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힘을 과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보아의 이런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음악을 듣고 아이돌을 보면서 문화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은 이런 복잡한 문제를 굳이 일일히 알아가면서 들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문화 산업이 비즈니스적으로 성숙하지 못했음은 물론 우리나라가 과시하던 '한국인의 정'조차 지켜내지 못한 야비하기 짝이 없는 진흙탕 싸움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문화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그때그때 좋은 음악이 나오면 되는 인스턴트 소비만이 아닌. 당장 시장성이 없더라도 내가 학창시절때 좋아했던 그룹, 가수가 20년 30년 후에도 비록 춤을 추지 못하고 그때처럼 몸이 날렵하지 않더라도 그때 그 노래를 느린 노래라도 불러주며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추억하는 기쁨도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일 것입니다.

마치며..

지난해 연말 미국 시카고에서 연말을 보낼 당시 TV에서는 미국의 연말 가요제 같은 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익숙한 가수들이 줄이어 나온 뒤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한 그룹은 다름아닌 결성된지 20년도 넘은 이미 아저씨돌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뉴 키즈 온 더 블록'이었습니다. 보는 관객들은 이 '한물간'아이돌이 보여주는 몸짓과 그때 그 당시 히트했던 '전형적인 아이돌 음악'을 들으며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벌써 4개 이상의 그룹이 세대교체를 할 동안 뉴 키즈 온 더 블록은 여전히 무대에 그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과 음악에 미국의 문화소비자들은 충분히 열광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미국이 신인 그룹이 말라버려서 과거의 그룹을 억지로 부른것일까요? 세계 최대의 음반 시장을 가지고 있으며 위클리 100위 안에 드는 게 경사가 될 만큼 하루에도 수십명의 신인들이 나왔다가 사라지는 세계 제일의 음반 시장을 가진 미국이 뭐가 아쉬워서 '퇴물'을 피날레 무대에 세웠을까요?


박용하의 죽음에 '평생 잊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며 울먹이는 일본 아주머니, 겨울연가 종영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런 활동 없이 인지도를 이어가고 있는 배용준을 좋아하는 일본 아주머니들을 보며 '아 저 분들은 참 한가하기도 하구나'라고 생각할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한번 좋아하면' 그가 '내 눈앞에서 당분간 없어지지 않고 계속 함께 해줄 수 있을' 그런 아이돌이 나와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7080가수들만이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태지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들 god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들, 아이돌 음악이지만 그 곡들 중에서도 국민가요가 되었던 명곡들이 적어도 한두곡씩은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지금의 7080세대가 되었을 때 추억할 수 있는 노래를 불러줄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 지금 7080세대들이 누리는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은 매우 슬픈 일일테니까요.

요즘 세상에는 '오래 되어도 여전히 좋은'음악이 없다고 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자자의 버스안에서, 미스터투의 하얀겨울이 지금까지도 리메이크 되고 있지만 그 곡들이 발표될 당시에는 그저 트랜디 가수들이 부르는 대중가요였을 뿐이었으니까요. 지금 나오는 음악들 중 어떤 게 레전드로 남아서 오랜 기간 사람들 귓속에 남아 그때를 추억하게 만들어줄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음악은 없습니다. 누군가에겐 하찮게 들리는 음악과 가사 한 소절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정말 큰 의미로 다가와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넣으려는 손을 멈추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음악의 가치는 그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정하는게 아니라 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정한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그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좀 더 오래 볼 귄리가 있으며 문화 소비자로서 그것을 가요계에 당당하게 요구해야만 합니다.

5년 뒤에는 사라질테니까 진심으로 좋아해봐야 나만 상처받는 그런 가요계가 아니라..
언제까지고 내 청춘을 들려줄 그런 가수들로 남아줄 것을 약속할 수 있는 가요계와...
그 약속에 부응하여 언제까지고 그들에게 지지를 보내줄 수 있는 오랜 팬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해저 이제 흠 잡을데가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 음악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별기획 4부작 '대한민국 아이돌 산업을 말한다'를 마칩니다.


4부작 기획 '대한민국 아이돌 산업을 말한다' 목차

제 1부 : 계약
제 2부 : 기획사
제 3부 : 2PM, 동방신기
제 4부 : 쟈니즈, 에이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