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5. 7. 27. 10:29

미디어 업계가 끊임없이 복고로 파고들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 복고라는 테마는 끊임없이 물이 샘솟는 그런 소재가 아니라 정말 어딜 파도 나오지 않는 가뭄에 가끔 파면 터지는 그런 소재이며 추억 이상의 롱런이 불가능하다. god의 컴백 이후 컨벤션 효과는 임팩트가 강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고, HOT의 재결합 무대는 오랫동안 시기를 조율해야만 했다. 따라서 미디어 업계에서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는 건 그만큼 사회 전반적으로 '과거 회귀'를 원할 만큼 지치고 힘겹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슬프게도 보통 이 복고는 40대 이상 경제력을 갖춘 계층의 전유물이었는데 최근엔 복고가 거의 통하지 않는 계층인 20~30대, 다시말해 복고를 생각할 필요가 없을 만큼 현실이 즐거워서 미치겠을 그런 나이대를 타겟으로 한 복고가 파생되고 있다는거다. 이 나라가 얼마나 노답으로 흐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다.



김영만 아저씨의 등장은 그 극점에 서 있다. 지금까지 2~30대 타겟의 복고라고 한다면 지금으로부터 많아봐야 10년 ~15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수준, 다시말해 가장 즐거웠던 시기를 1318 시절로 한정하여 당시 스타를 보며 열광하고 음악을 닥치는 대로 들으며 외우고 드라마를 보는 등 미디어의 홍수 속 가장 깊은 곳에 몸을 담그던 그 시절의 감수성 촉촉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던 것이 전부였다. 그에 힘입어 90s스타들의 방송복귀, 청춘나이트콘서트, 밤사, 무한도전 토토가 열풍이 이어졌고 사람들은 이미 한물가버린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해 기꺼이 가치에 대한 댓가를 지불했다.


그런데 김영만 아저씨 콘텐츠는 타겟 연령층은 동일함에도 거슬러올라가는 시간이 훨씬 더 아득하게 멀다. 최소 20살, 더 심하게는 25살을 거슬러 올라가서 미취학아동, 초등학교 저학년의 복고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찌기 복고 시장에서 이 시장은 '불량식품'열풍 같은 간헐적 소비행태로서 보여지거나 인터넷 상에서 '이거 알면 최소 80년대생' 같은 스팟성 콘텐츠로 소비된 사례는 있었지만, 당시 인물이 직접 나와서 추억팔이하는 '대담형 토크쇼'가 아닌 당시 쓰이던 콘텐츠를 그대로 재현하여 경쟁하는 그런 콘텐츠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때문에 이번 김영만 아저씨 콘텐츠는 내 입장에서 팔릴거라는 굳은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오히려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더랬다.




그런데 대박이 터졌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깊고 풍부하게 김영만 아저씨를 촉매제로한 과거로의 복고 여행에 심취하고 있으며, 그의 말 한마디에 감동하고 있다. 물론 아저씨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그들에게 적절한 감동을 이끌어낼만한 키워드 (3포세대)를 담아내면서도 25년 복고 콘텐츠와 훌륭하게 융합하고 있다는 부분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일찌기 없었던 미취학세대 복고라는 콘텐츠에 열광하고 있으며 너나할거없이 종이를 접기 시작했다. 물론 이 열풍이 얼마 가지 못할 거라는 것은 아저씨도 나도 종이를 접는 그들도 누구보다 잘 안다. 문제는 바로 이 '얼마 가지 못하는 콘텐츠의 생명력'에 있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열풍과 유행의 특성에 대해 깊이 학습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열풍에는 자기 주관보다는 열풍 그 자체에 '합류'해서 그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짧은 시간동안 최대한 그들과 많이 교류하고 싶다는 욕망이 학습되어 있다. 이젠 아무도 '허니버터칩 먹어봤어?'라고 묻지도 않고 '먹어봤다'라고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 유행이란 '휘발유'처럼 화끈하게 타오르고 금방 꺼지는 특성을 가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초반 열풍에 기꺼이 비싼 값을 지불하면서까지 열풍 초반에 탑승하기 위해 애쓴다. 그때그때 다른 공감대에 합류하기 위해 벌어지는 이 행위는 이 나라에서 더 이상 스테디셀러 콘텐츠가 나오기 힘들게끔 만들어놓았다.



사람들이 김영만 아저씨의 '재규어' 자동차를 보며 나오는 반응은 '실망'이 아니라 '우려'다, 사람들은 김영만 아저씨 콘텐츠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김영만 아저씨 콘텐츠가 혹여 이 '재규어' 논쟁으로 인해 그나마 짧은 열풍이 더 짧아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되는것이다. 자기 자신은 그에 실망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실망하고 아저씨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며 말로가 좋지 않게 될 지도 모를까봐 우려하는 마음 그 자체다.


사실 이러한 생각의 뒷면에는 더 솔직한 마음이 묻어있다. 바로 자신이 아름답게만 기억하고 있는 유년시절과 그리고 김영만 아저씨의 아름답기만 한 멘토로서의 가치를 가진 캐릭터가 손상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파생한다. 김영만 아저씨 콘텐츠가 팔리는 것은 김영만 아저씨 콘텐츠가 지금도 먹힐 만큼 강력함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 열풍을 이끌고 있는 20~30대들에게 진정 어필하고 있는 것은 김영만 아저씨의 콘텐츠도 그의 캐릭터도 아닌 그 모든 것이 만들어내고 있는 열풍 전반의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김영만 아저씨가 말한 어록들이 모아지고, 그 어록들과 걸맞는 지금까지의 행보들을 정리한 내용과 갖은 미담들, 과거 인터뷰 들이 인터넷 콘텐츠가 되어 재생산, 재소비되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스토리다. 아저씨라는 캐릭터를 주연으로 한 요즘 세상에 누구나 목말라하고 있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스토리, 그런데 이런 스토리에 재규어라는 외제 차를 탄 김영만 아저씨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 스토리를 만드는 집단적 창작주체로서 스토리에 방해가 되는 이러한 요소를 적극적으로 배척하기 시작하는것이다. 그들은 창작자면서 동시에 그들이 만든 스토리를 직접 소비하는 소비자이기 때문에 창작자적 자존심과 소비자적 관점의 몰입이 섞이면서 이와 같은 다소 어이없는 논쟁이 촉발된것으로 보인다.




이 바닥은 '이미지의 전쟁터'다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적발된 국민여동생 캐릭터가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국민영웅급 홈런타자가 약물로 적발되어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은 일면 납득이 되지 않는 모습이긴 하다. 흡연은 20세 이상만 되면 불법이 아니며, 약물은 그 자체로 규정에 따라 처벌받으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기자회견을 하고 용서를 구해야만 한다고 사람들에게 등을 떠밀린다. 그들이 지은 죄는 '내가 생각했던 캐릭터는 이렇지 않아'라는 순수한 대중의 마음을 깨뜨리고 훼손하여 충격에 빠뜨린 죄라고 봐야할까?


이 나라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순수하게 자랄 것을 강조해왔다. 남녀칠세부동석부터 시작하여 성행위가 아니라 여자의 몸이 그냥 그려지고 표현만 되어도 '더러운 생각'이라며 잡들이는 게 굳이 옛날얘기라고 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렇게 순수하게 자라 난 결과는 지금 보시는대로 '순수함에 대한 지나친 가치숭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순수하지 못한 것에 대한 극단적 터부시'는 확실히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환상이 깨졌다' 그리고 그 환상이 깨져서 내가 그 순수함을 즐기지 못하고 혹은 내가 순수하다고 자위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책임을 순수하다고 느끼게 해준 당사자에게 쏟아내고 있다. 정작 순수함을 부르짖으면서, 재규어의 가격을 쳐보는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그에 대한 책임이 다른 사람에게 있다는 전형적인 인지부조화적 혼란이 낳은 참극이다.


이 나라의 어린이들이 지금의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감성을 가지고 있는 것에 키워낸 당사자들은 만족해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이들의 모습이 우리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터부시되고 배척하는 '오덕'의 모습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는 거다. 변태스럽고 더럽게만 묘사되는 그들이 '나의 미쿠쨩은 이렇지 않다능' 라고 말하는 모습과 '김영만 아저씨가 재규어를 탈 리가 없어', '나의 ***가 남자랑 잤을리가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정신적으로 어른이 되지 못한 자들이라고 터부시했던 그들과 이쪽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걸까? 왠지 지금은 전 국민이 미처버리는 독이 든 우물물을 마셔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