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3. 10. 2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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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학교다닐때는 말이죠.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우리는 누구나 평등한 권리를 가진 자유민주주의평등국가라고 제일 처음에 배운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제가 정작 사회에 나와 살아보고 주변 친구들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도 지켜보자면 그때 배운 게 맞나 싶기도 해요. 우리는 정말 직업에 귀천이 없는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에서 살고 있는 게 맞나요? 왜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굽실거려야 하고 그 화풀이를 꼭 누군가에게 해야 하는 폭탄돌리기를 하며 살아야만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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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이 거짓말한게 그것 뿐이라고 생각하세요?


공화국 사회교과서 1장에 보시면 학교가 절대 정직한 집단이 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너무 순진하셨어요. 하기야 그때 순진하지 않으면 언제 또 순진해봅니까? 꼭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긴 하지만, 그걸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세대들의 시각에서 재해석할 여지 자체를 주지 않는다는 건 좀 우리만의 문제이긴 해요.




흔히 대통령이 국민 아래에 있고 모든 권력 국민에게서 나온다 뭐 이런 이야기가 헌법에 쓰여있잖아요. 근데 그걸 체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이고 그 사람들이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자신들의 사유재산을 챙겨먹기도 하죠. 그럼 왜 이 헌법이 존재하느냐, 명목상인거에요. 사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것 자체가 에초에 과거 봉건주의 사회와 관료주의 사회의 모델에서 전혀 발전하지 못한 모양새거든요. 당연히 시행 초반에만 반짝 컨벤션 효과를 냈었겠지만 고무줄 돌아오듯 금새 사람 사는 사회는 예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채로 회귀하고 있는 거에요. 


왜 이 사회는 평등하지 못할까요? 그리고 앞으로 정말 평등한 사회란 올 수가 있을까요? 당장은 해답을 드리지 못하겠지만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


나랏님 탓


흔히 하는 착각중에 하나가 지금의 공화정에 비해 절대왕권봉건주의 사회에서는 왕의 권력이 절대적이며 백성들은 결코 이 권력에 저항하지 못한다고 믿고 있다는 거에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에요. 봉건주의 사회는 그만큼 계급화가 명확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각 벼슬이나 왕권이 지금의 공화정제 관료들보다는 훨씬 공고하고 표면적으로는 영구집권과 세속이 가능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요. 근데 진짜 그랬을까요? 그리고 지금 공화정이 영구집권과 세속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긴 한가요? 


공화정 하에서 정권을 잡은 자들


대통령과 일개 시민이 평등하다고 교과서에서 늘 배우지만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죠? 대통령이 가진 국가 권한은 너무나도 막강해서 국가를 개인 사적 감정으로 패망시키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요. 과거 조선의 왕들이 군사를 일으킬 때 백성들 중 건장한 청년들을 차출하는 것처럼 대통령 산하 국가조직 역시 젊은이들에게 명목상으로는 '자율적'이지만 헌법상의 의무라고 못을 박아둔 채 병사를 차출하고 또 이용하는 모습은 전혀 다를바가 없잖아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서 몸 아픈사람 빼주고 부양가족 있는 사람 빼주고 그런다고요? 조선시대라고 그런 거 없었던 게 아니에요. 조선시대에는 심지어 '결혼'만 하면 애를 생산해야한다는 의무를 지기 때문에 전쟁에 차출되지 않기까지 했어요. 다친 사람이나 지병 있는 사람은 말할것도 없죠. 지금 병역 면제 기준 한번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마 면제를 받는 것이 조선시대에 비해서 과히 민주적이고 간단하지 않다는 건 징병대상자가 되어본 남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부분이에요.


지금은 민주주의라서 대통령이 뭐 잘못하면 국민들이 힘을 모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니 왕권주의보다 낫다고 보는 분들도 있어요? 근데 그게 반드시 공화정이 되고 나서야 겨우 생겨난 특권일까요? 정말 왕권주의때에는 그런 일이 없었을까요? 적어도 우리나라에 한해서는 그게 아니었어요.


조선왕조 500년 실록을 보면 우리나라 왕 중에는 종이나 조로 끝나는 사람도 있는데 드물게 '군(君)'으로 끝나는 사람도 있어요. 연산군이나 광해군이 대표적이죠. 그들이 폭군이라서 그렇게 기록되었다고 알고 있는게 일반적이에요. 그런데 이상하죠? 왕권이 절대적인 왕권주의국가에서 폭군이었다고 해서 한낱 서기관따위가 임금 역사를 그따위로 기록한다니 말이에요. 그리고 에초에 폭군이라고 평가를 한 주체가 있었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기본적으로 왕이 자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 하나 좌지우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렇게 쉬운 걸 왜 못해?


...


연산군의 기록을 보면 이런 얘기가 있어요.


- 조선 연산군은 매사냥을 경기도 청계산으로 다녔는데 매번 한강에 부교를 설치하는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고 한다. - 


매사냥이 뭐냐, 당시 동시대 유럽 귀족들의 필수 교양이라고 할 만큼 가진 자들의 평범한 취미 정도였단 말이죠. 왕이 문제가 아니라 흔히 부르는 공작 백작 남작, 우리로 말하면 고을 원님들도 흔히 즐기던 수준이었다는 거에요. 그런데 왕이 그거 좀 한다고 백성들이 무려 '원성'씩이나 냈다라는거죠. 이건 당시 왕권이 약하고 강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조선의 봉건주의가 일반적인 유럽의 봉건주의와는 그 궤를 달리했다는 이야기가 되요. 



우리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봉건주의 자체에 대해서는 유럽의 그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강한 왕권과 정복자, 지배자, 피지배자로 나뉘어지는 복잡한 유럽의 역사에서 생겨날 수 밖에 없었던 그 봉건주의 말이죠. 그런데 역사 교과서 주장대로라면 침략을 수도 없이 당하기만 했을 뿐 어디 하나 침략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순둥이 국가 대한민국의 봉건주의가 이들과 성격이 같다는 건 분명 모순일 거에요. 한마디로 지금 현대의 많은 국가들은 봉건주의에서 공화정으로 바뀌는 역사의 수순을 밟고는 있지만 그 공화정 자체의 성격이 어떤 나라에서 만들어진 획일화된 기준으로 모든 나라에 적용시키기에는 그 한계가 분명 있다는 거죠.


유럽의 봉건주의는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데. 기본적으로 지배와 피지배, 타민족과의 경쟁, 그리고 전쟁 수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몇십배에 달해요. 전쟁이 많다는 것은 무엇이냐. 그만큼 체재 전복에 대한 위협을 왕이 깊숙하게 느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며 지배와 피지배 타민족과의 경쟁이 반복된다는 것은 전혀 뜻을 같이 하고 있지 않은 민족들과 국경 속에서 합의 하에 같이 살아가야만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단일 민족이었고 삼국 시대 뒤엔 고려가 생기고 그 뒤엔 조선이 생기고 그 뒤엔 일제침략기를 거쳐서 대한민국이 생기는 사슬 구조의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많이 달랐다는 거에요. 


이런 환경에서 왕이 과연 백성들을 믿고 백성들을 위한 선정을 펼칠 수나 있을까요? 내일 당장 전쟁이 벌어져 순식간에 나라가 망할 수도 있고 외부 민족들이 공존하는 백성들 중 그들이 진정 우리 편이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불투명한데 그들을 모두 백성으로 인정하고 나라의 안정을 꾀할 틈이냐 있었겠냐는거에요. 게다가 공작, 백작, 남작 이런 단어에서 알 수 있겠지만 당시의 왕 제도는 중앙집권체계가 아니라 암묵적으로 군소 국가들이 연합해서 연방을 구성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각 지역 영주들의 권력은 그 지역 내에서는 왕에 필적했어요. 유럽 중세 소설을 보면 사실 왕이 와서 행패를 부리는 모습은 별로 없고 백작이나 남작, 후작 같은 사람들이 악역으로 많이 등장하잖아요. 그만큼 그들의 권력이 그 지역 내에서는 절대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하죠.



사정이 이런데 과연 왕이라는 존재가 온 백성을 아우르는 성군이 될 수나 있었을까요? 당연히 각 영주들보다 더 위에 있으려면 더 많은 권력과 권세를 누리지 않으면 안되었던거죠. 왕은 일반 백성들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일반 백성들은 각 지역 영주들이 사실상 그들의 왕이나 다름없었어요. 각 지역 영주는 이변이 없는 한 대물림되며 세습되었고 왕이 특별히 문제를 삼지 않는 한 세습을 트집잡을 수도 없었던거죠. 우리나라는 어땠나요? 부패한 관리가 있다는 탄원이 중앙정부로 접수되면 암행어사가 떠서 싹 쓸어버리는 장면 익숙하시죠? 유럽에서 이 장면을 보면 눈이 휘동그래질거에요. '아니 어떻게 감히 영주한테 개길수가 있지?'



우리나라는 이미 조선시대때부터 영주는 물론이고 왕조차도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면 폭군으로 기록되며 유럽에서는 남작 나부랭이도 하는 매사냥조차 백성들 눈치를 봐야하는 그런 봉건주의를 가진 나라였어요. 물론 왕권이 강력하다는 것은 이견이 없지만, 그 왕권자체의 강력함과는 별개로 백성들이 느끼는 삶의 질과 정치적 참여에 대한 권리는 유럽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는거죠. 대부분의 민란들도 결국 범국민적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한건 조선 후기의 그 악명높은 허수아비 선조 시대 안동 김씨 세력들이 득세할 때 본격적이었지 실제로 중국의 통일국가 역사에 비추어보아도 이렇게까지 반란에 대한 기록이 적은 나라가 또 없어요.


이런 백성친화적인 봉건주의 사상을 일찍부터 가지고 있던 우리나라가 왜 민주주의 국가에 이르러 이모양이 되었는지에 대해 궁금하실거에요. 그 해답은 그다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일본을 공격해야 해요.


...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뿌리를 찾기가 참 애매해요. 우리나라는 입헌군주제 국가가 아니라 대통령제 국가이기 때문에 굳이 가져오자면 미국의 민주주의를 표방해야 하죠. 그런데 미국처럼 연방제국가가 아니기때문에 단일국가의 민주주의 모델로 개량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이 개량 작업을 해야 할 시기에 딱 일제강점기가 겹치게 되요. 뼈대는 미국식 민주주의인데 속살은 일본식 민주주의라는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잘 감이 안오시겠지만 일단 들어보세요.


일본은 입헌군주제국가이므로 당연히 왕이 있어요. 따라서 일본의 민주주의 하의 정치적 최고권력자는 총리대신이 됩니다. 그런데 이 왕의 존재 자체가 일본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신'과 같은 위치에 있거든요. 일본 여행을 하다보면 신사(神社)가 있고 데라(寺)가 따로 있다는 것에 의야해보신 분들이 있으시겠지만, 일본은 그 동네, 혹은 그 지방의 큰 어르신이나 그 지방을 개척한 토호를 신으로 모시는 데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어요. 이런 문화는 중국에도 있는데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나 조자룡이 출생지역 상산 등지에서 신격화되고 참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물론 일본쪽이 훨씬 더 맹목적인 구석이 있지만요.



이런 문화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섬나라이다보니 불교 문화가 태동되기 전까지는 이렇다할 종교가 침투될 여지가 없었고 그렇다보니 토착 종교 즉 토템이 발전을 거듭하여 된 모양새가 조상신을 넘어선 그 마을, 더 넓게는 나라의 국왕을 신으로 모시는 풍토가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겠죠. 이건 사회교과서 5장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예전 이집트에서나 볼 수 있는 굉장히 원시적인 종교 문화에요. 그만큼 교류 자체가 적을 수밖에 없었던 섬나라의 폐쇄성이 만들어낸 특이점이라고 보는 게 맞을거에요.


이런 토착 종교 문화는 국가 문화를 극도의 보수성으로 옭아묶게 되요. 일본은 도요토미히데요시가 통일을 하기 전까지는 4개 국가에 수십개의 크고 작은 통치 지역으로 나뉘어져서 통치되었는데, 중앙정부가 존재했고 일왕도 계속 명맥을 잇고 있었지면 아무도 그들의 권력에 별로 관심을 보이진 않았고, 일왕 역시 각 지역 구석구석까지 자신의 힘이 닿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시대였죠. 대부분 각 통치 지역에 있는 영주 (일본으로 치면 쇼군) 들이 자신들의 통치 영역만을 얌전히 통치하면서 지냈어요. 이른바 센고쿠 다이묘 시대인데 일본의 사극 대부분은 이 시대부터 시작하고 있어요. 그만큼 일본 역사는 그 이전 역사가 제대로 갖춰진 역사라고 보기에는 너무 원시적이었다는거죠.



그렇게 다 제각각 나라를 갈라먹고 평화롭게 오랫동안 살다 보니 나라가 굉장히 오래 갔고, 각 지역별로 우리나라로 치면 '단군할아버지'급의 인물들이 한 명씩은 존재했어요. 물론 우리의 천도교처럼 하나의 종교로서 고착되었음은 물론이고요. 특징이 있다면 그들은 그 혈통을 보존해서 계속 왕으로 모셔 오고 있다는 거에요. 한마디로 한번 지도자로 모신 혈통은 계속 세습하여 지도자로 모신다는 북한의 3대 세습은 울고갈 유구한 역사의 세습문화가 일본에 정말 상상도 못할 기간동안 오래 지속되었다는 거에요. 그러다보니 죽은지 너무 오래 되어 그 위대함을 해아릴수없는 지경이 되면 그 지도자 혈통의 시조급은 이른바 '신격화'가 될 수밖에 없죠.



일본 대기업의 역사는 수백년을 아우르는 곳도 있는데 대부분 이런 명문 가문이 기업화된 곳들이 많다. 미쯔비시그룹의 마크도 원래 가문의 상징을 회사 심볼화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의 카스트는 정치계뿐만 아니라 경제계에도 이처럼 깊숙히 박혀있다.



이런 나라가 통일이 되었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상상만해도 끔찍한것이 각 지역별로 신이 있는데 그 두 지역이 싸워서 이긴 지역이 진 지역을 흡수해버리면 사실상 그 지역의 토호 혈통이 끊어진다는 건데, 이미 그 혈통이 깊숙히 신격화되어있는 국민들이 이를 가만 둘리가 있었을까요? 이미 다른 지역의 토호로 갈아탄다는 차원을 뛰어넘는 더 뼛속 깊은 트러블이 예고될 수밖에 없었어요. 일본은 그만큼 통일이 쉽지 않은 나라인거죠.


아무튼 통일은 통일임


그러던 와중에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국을 통일시키는데 성공했으니 실제 그 내부 진통은 어느정도였는지 예상이 되시나요? 물론 도요토미는 이를 타파하고 일본을 결속시키기 위해 전쟁 카드를 꺼내서 우리나라를 괴롭혔는데, 실제로 우리 나라를 먹겠다는 목적보다는 일본 각 지역, 특히 시코쿠와 큐슈 지역의 토호 세력들의 '전투력 소모'의 목적이 더 컸어요. 중앙 정부가 있는 혼슈와는 다르게 바다 건너 있는 시코쿠와 큐슈에까지 단기간에 통치력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통일빨이 다 하기 전에 그들의 전력을 소비시킬 필요성이 있었던거죠. 한마디로 그는 통일은 했지만 각 지역의 토호들을 모두 잠재웠다고 보기는 어려웠어요 여전히 도요토미는 물론이고 중앙정부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국민들이 대다수였을정도니까요. 도요토미 사후에 즉위한 도쿠가와 역시 중앙집중안정책을 취하긴 하지만 토호들의 권력을 완전히 빼앗는게 아닌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충성을 유도하는 유화책으로 평화를 이끌어내는 선에 그쳤어요. 한마디로 어느 쪽도 완전한 하나의 국가로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일본은 공화국이 되어서야 지금의 일본이라고 불릴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데, 이때 일본의 입헌군주제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한 것이 왜 기존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했는데, 새로운 왕이 탄생하지 않고 제국이 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볼 필요성이 있었는데요.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의 일본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 지역 토호 위주의 '신'을 모시는 문화를 모두 타파하고 통일된 하나의 신을 모시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은 그때까지 실질적으로 혈통만 존재할 뿐 어떤 권력도 없었던 일왕 혈통을 이용하기 시작하는데, 막부 시대에는 궁핍하여 즉위식은 커녕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했던 일개 몰락 귀족 혈통에 불과했던 일왕은 그 유구한 역사와 정통성으로 인해 일본에서 가장 오랜 가문으로 모셔지기에 충분했어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들어 일본 제국을 세운 자들은 이를 일본 전국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에는 일본 유신을 완성한 자들의 스스로의 권력다툼으로 인한 죽음을 걱정한 나머지 누구 하나 1인 권력을 쥐는 것을 원치 않았던 이유로 이들은 일왕 가문을 내세워 일왕 가문을 보호하는 내각총리 체계를 완성하게 되요. 이런 내각총리 체계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고 패전의 쓴맛을 보며 입헌군주제로 변할 지언정 그 체계는 지금까지 무너뜨리지 않고 이어오고 있죠.



일본의 초대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 일왕의 직할 통치론을 최초로 주장하며 일본의 제국화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때부터 일본의 정치인은 국민이 뽑은 봉사자가 아닌 완전한 각료, 관료, 벼슬아치가 되었으며 이는 지금의 일본 사회가 가진 신 카스트의 기본 토대가 된다



일본 제국이 일왕을 얼마나 신격화하는데 성공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모습, 일본 제국군인들은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일왕처럼 신으로 받들여 모셔질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자살폭탄공격을 기꺼이 수행했다. 그리고 일본은 놀랍게도 그 약속을 아직도 지켜나가고 있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일본 건국 이념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니까.



...


일본 이야기는 저도 많이 하기 싫으니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할 것 같군요.


왜 이렇게 싫은 얘기를 길게 했는지에 대해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일본의 전국시대부터 일본 제국, 입헌군주까지의 역사가 지금의 일본 내에 미친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에요. 일본은 그 나라 크기에 비해 각 지방이 가지고 있는 독립적인 경제권과 자치권이 다른 어느 나라에 비해 높고, 표준어 구사율이 경제규모에 비해 상당히 떨어지며, 지방분권이 어느 나라보다 잘 되어있는 나라가 되어있죠. 그들에게 있어 일왕은 단순한 왕이 아니라 일본의 신이며 그들의 통치를 받는 것은 응당 당연한것이죠. 각 지방에서 선출되는 국회의원들이 아들 손자 며느리까지 3대 세습은 우스울정도로 세습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도 전국시대부터 이어져온 토호 세력의 제왕적 봉건주의가 뼛속까지 스며 제대로 된 자발적 민주주의가 꽃필 토양 자체가 아예 생길 여지가 없는 한계가 있고, 총리대신을 국민이 아닌 각 지역 토호들이 선발하는 문화 역시 에도시대와 일본 제국을 거치면서 생긴 중앙집권화의 잔재인 것이죠. 한마디로 일본은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거에요. 그들에게 있어 민주주의란 아직도 너무 먼 이야기일 뿐이고 그것은 그들 스스로 자초한 문제에 지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토호 세력들이 공포정치를 펼친 적도 없고 왕은 일찌기 중앙집중화를 이룩해내어 중앙 임명식 봉건제를 완성시켜 지역 토착 세력이 자리잡을 여지 자체가 없었으며, 통일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의 건국과 멸망은 결국 관리들의 부패로 인해 민심이 등을 돌리면서부터 시작되었을 만큼 나라의 흥망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 백성들의 역할이 매우 컸던 나라에요. 그런데 이런 나라에서 태동된 민주주의가 지금의 이 모양이라면 답은 하나밖에 없죠. 바로 일본 탓이에요.



우리나라는 입헌군주제가 아닌데도 정치인들은 어떻게해서든 정치권력을 자식들에게 세습화하고 놀랍게도 국민들은 이를 당연하다는 듯 문제인식 없이 용인하죠. 지역 출신 대통령을 신처럼 모시는 의식이 각 지역별로 횡횡하고 있고, 중앙집중체계가 잘 이루어졌던 조선으로부터 이어진 나라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역주의가 팽배한 나라가 되고 말았어요. 민주주의 하에서의 관료들은 마치 봉건주의의 그들처럼 권위의식이 높아져만 가고 놀랍게도 그런 권위의식에 대해 마치 봉건주의 귀족들을 보듯 당연시어기는 국민들이 아직도 많아요. 심지어 이런 계급사회의 체계는 굳이 정치판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회사 내 심지어는 우리가 사는 이웃의 소득 격차에서도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를 좀 더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도 있어요. 민주주의는 국민에게서 권력이 나오는 체계인데 오히려 조선시대보다 못한 국민권력을 가지고도 지금의 민주주의 권력이 오히려 과잉이라며 스스로를 책망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아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꽃을 피워야 할 때 하필 그 뿌리를 다져야 할 때 일제강점기가 있었어요. 그들은 일제강점기 동안 일왕을 섬기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기는 이른바 제국주의 계급사회 체계를 뿌리박았어요. 해방 후 우리나라는 그 잔재를 청소하는 데 실패했고 그 계급주의의 혜택을 듬뿍 입은 자들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 초대 정권을 잡으면서 그들에게는 한없이 유리하고 행복하며 영원불멸할 수 있는 일본의 입헌군주제식 민주주의를 뿌리박는데 성공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헌법 제 1조가 존재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체감권력은 한없이 약하게 느껴지는 기형적인 나라로 지금에 와 있는 거에요.


이같은 패배의식이 남아있고 입헌군주제식 민주주의 잔재가 남아있는 한 아무리 1인 1표제, 직선제 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민주주의에 의한 정치적 결실을 얻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봐요. 토호 세력이 신을 섬기듯, 우리나라는 자기 지역 출신 정치인을 섬기고, 그가 임기를 마치고 나서도 그 권력을 계속 유지하는 영주와 같은 역할을 하는 반쪽 이하의 민주주의는 그들이 지금 당장 부패한 거와는 관계없이 우리 어르신들 세대에서부터 뿌리박혀 있는 이상 진정한 민주주의 하에서 나올 수 있는 사회체제가 확립될때까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을 정도에요.



....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언제 평등할 수 있나?


우리나라 현대사를 완전히 망가뜨렸다고 봐도 무방할 일본의 입헌군주제가 정치체계적으로 전혀 호환되지 않은 우리나라에 녹아들었다는 점이 사뭇 납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두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는 태생부터 사상까지 분명한 대척점에 있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그런데 말이죠. 사실 민주주의가 정말 봉건주의 사회와 완벽한 대척점을 지니는 정치 혁명이었다면 지금처럼 입헌군주제를 표방하는 국가가 나올 수가 없지 않겠어요? 아무리 껍데기뿐이라고 해도 공화정 혁명이 왕권이랑 호환성을 보이는 것 자체가 원론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거겠죠. 다시말해 지금의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쓴 봉건사회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양새만 다르게 한 채로 결정적 투표권을 줬다는 것 하나로 헌법 제 1조를 만들어 국민들을 착각하게 만들고 있어요. 입헌군주제냐 완전한 민주주의냐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 사상만으로 모든 국민들을 민주주의에 최적화시키도록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거에요.


일본의 근현대사를 소개해드린 부분을 읽으시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결국 뿌리깊은 봉건주의로 인해 자리잡아 있는 카스트 제도는 그 형태만 달리했을 뿐 이른바 일본식 민주주의로 그 색깔을 그대로 유지한 채 굳건히 자리잡고 있어요. 이들은 결코 낮은 카스트들을 위한 정책을 펼칠 생각이 없어요. 행여 그런 정책을 취한다고 해도 국민들은 그 부분이 자신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일 바에야 그냥 예전 영주들처럼 국민들 피나 왕창 빨아먹자는 게 일본의 관료주의 하에 놓여있는 상위 카스트들의 생각인거에요. 



일본인들은 대체로 이런 정치판에 큰 불만이 없어요. 그들은 민주주의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죠. 그들은 정치판이 내게 뭘 해줄지를 기대하기보다 그저 황국 신민으로서 내 위치에서 묵묵히 열심히 회사를 위해 나라를 위해 일왕을 위해 내 위치에서 내 역할 내 일을 열심히만 하다가 죽는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죠. 일본인들의 이런 특성은 외부에서는 우직함과 성실함으로 비추어지지만 실은 오랜 카스트에 익숙해진 뼈에 사무친 패배감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없다는 F1레이싱이 일본에서 인기가 있다는 점, 각종 헐리우드 스타들이 폭넓게 인기가 있는 이유 그들이 특별히 범세계적인 문화 소비 성향에 눈을 떴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냥 유명하니까 의무감으로 봐야 한다'라는 느낌이 강하다. 마치 유럽 여행에서 에펠탑을 반드시 봐야 하듯이 그들은 일본에 온 유명인이라면 별 관심이 없어도 콘서트의 자리를 꽉꽉 채우곤 한다




그들은 어느 정점에 다다른 연예인을 '신'이라 부른다. 그들에 대한 대우가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들이 F1경기장에 몰리고, 우리나라에선 생소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예인이 일본을 방문하면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그들이 진짜 좋아서라기보다 그들을 이미 '신'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종교적 행위와 다르지 않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이미 그렇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는데 일본의 그런 모습이 점점 보이고 있다는 거에요. 정치인을 신격화하고, 무언가 나라를 위해 직접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권력에 기가 눌려 묵묵히 살다가 죽는 것을 택하는 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자신들을 위한 정책이라곤 눈꼽만큼도 내지 않은 자들에게 표를 던지고 그들에 의해 온갖 불이익을 받아도 묵묵히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데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어요. 회사 면접에서 인격적인 조롱을 당해도, 회사 내의 봉건주의 잔재에 변화를 요구하기보다 그에 순응하는 쪽을 택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단순히 일본 탓만 할수도 있지만, 그것을 뿌리뽑을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린 책임도 분명하다는 점이 이 나라를 사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울 따름이에요. 


결국 민주주의는 그 자체만으로 결코 만능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에요. 그것이 입헌군주제에 의해 더럽혀지건 더럽혀지지 않건 결국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생각이 오염되지 않아야 본격적으로 자유로우며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토대로 제 역할을 해줄 테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무엇부터 어떻게 얼만큼 해야 하는지를 정해야 할 시기를 이미 지나쳐버린 지 오래지만 아직 늦지 않았어요.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 겠지만 말이죠.




...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릴 차례네요.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평등해질 수 없어요. 그것은 입헌군주제의 영향을 받았던 받지 않았던 그 사상은 말 그대로 법이든 뭐든 '최소한'이에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군락을 이루고 그들이 함께 세력으로서 잘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어떤 합의체가 그들이 살아온 역사와 사회적 형태를 단박에 특정 나라가 발전시키고 만들어온 이론울 바로 적용시킬 수 있을 만큼 녹록할리가 없을테니까요.


우리나라는 애석하게도 일본의 입헌군주제에 의해 오염되어 버린 민주주의를 갖고 살고 있어요. 그래서 만인이 평등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굽실거려야하고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뒷목에 힘이 들어가는 먹이사슬같은 귀천체계 공화국 카스트 제도가 자리잡고 말았죠. 우리 민족은 왕한테도 개기던 자존감이 강한 민족이라 누구한테 당하면 꼭 그 분노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누군가에게 갚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탓에 갑을관계가 생기고 또한 사회문제가 되며 직장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는 자기보다 낮은 카스트라고 생각하는 서비스업종에게 풀어내는 보기 안좋은 사회문제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있어요.



우리는 늘 직장상사보다 낮은 등급의 차를 사야만 해요. 우리 회사가 처우가 좋지 않은건 갑의 회사보다 나은 처우나 직원복지를 하면 갑의 회사가 불쾌해하기 때문이죠. 을의 회사가 더 나은 처우를 하고 싶어도 갑의 회사가 그 처우에 미치지 못하면 항상 그보다 낮은 처우를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은 전혀 민주적이지도 자유경제주의적이지도 않은 악습에 지나지 않는데도 아무도 이것을 고치려 들지 않아요. 


임대아파드 사는 주민이 자기 집 앞을 지나가는게 싫어서 바리케이트를 쳐요. 그리고 어떻게든 정말 어렵게 모으고 그 가치를 더 많이 인정받는 돈이라는 물건으로 자신의 카스트를 증명하려 애쓰죠. TV에는 더 좋은 옷, 더 좋은 음식, 더 좋은 집이 늘 부각되고 카스트를 상징하는 지표로서 광고하고 사람들은 어떻게든 가짜로라도 자신의 카스트를 돋보이게 하려 애써요. 자신의 본질적인 성격이나 내적인 아름다움은 고리타분한 선비들이나 하는 얘기로 핀잔을 듣기 일쑤에요.



돈으로 카스트를 과시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목표가 되다보니 그 밖의 가치들은 모두 하대를 당해요. 문화 공연은 그 내용보다 얼마나 제목이나 작품 자체가 돋보이고 역사가 깊느냐가 중요해요. 작품 내용을 하나도 이해를 못하면서도 그 작품을 봤다는 상징 자체에 집착하죠. 해외여행, 자동차, 명품백, 처음 들어가는 직장, 부모들의 직장 .... 지금의 민주주의 사회라 불리는 대한민국은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어요. 민주주의는 내가 주인공이고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사회인데도 말이에요.


이건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부터 직시해야 해요. 다행이 우리나라가 아직 일본보다 나은 점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그 끊임없는 개김성으로 인해 결코 독재나 봉건식 민주주의에 굴복하지 않고 나라가 큰일이 날 때마다 사람들이 힘을 합쳐 나라를 바로세워온 결과 우리 손에는 적어도 투표용지 한 장씩은 아직 골고루 갖고 있게 되었잖아요. 총리대신 하나 스스로 못 뽑는 옆나라가 결국 그 봉건주의로 파국을 맞는 걸 보면 아직 가능성이 있는 거죠.



...


자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그 권력으로 무엇을 해야만 할까요? 


다른 건 다 필요없고 이거 하나만 기억하세요



지금에 만족하는 사람은

결코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살 수 없어요.


왕족, 재벌, 현직 정치인, 셀레브레이트, 고액 재산가들...

모두 지금에 만족하고 지금의 카스트를 누리는 데 거리낌이 없어요

이들이 진정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


당신이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표를 던지세요.


만족하지 않는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더라도


단 하나라도 만족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위해 자기 인생을 바칠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표를 던지시는 것


그리고 지금의 민주주의가 뭐가 잘못되었으며

진짜 우리 몸에 맞는 우리 민족이 해왔던 우리들만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늘 생각하고 행동하고 깨달아가는 것...


저는 그것이 민주주의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화국 사회교과서 제 6장-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정말 평등한가요 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3. 4. 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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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종교가 없는데요.

요즘 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면 '개독'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의 만행들이 자주 보입니다. 다른 종교에 대한 과격행동이나 여행 금지된 국가에 가서 납치당하고, 과도한 전도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들이 대부분인데요. 왜 이들은 이렇게 광신도가 된 걸까요? 종교는 정말 실체가 있고 믿을만 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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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광신도라는 건 굳이 종교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죠? 뭔가 도가 지나친 행동을 하거나 무분별하게 특정 사실을 신봉하고 추종하는 데에도 쓰이잖아요. 그런데 그들의 행동은 종교와는 관계가 없어요. 그럼 여기에서는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되요. 과연 저 종교인이 아님에도 광신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추종하는 그것도 종교인건가? 아니면 더 포괄적으로 종교라는 것 자체가 실체가 없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 말이죠.



한마디로 말하면 종교는 실체가 없는 것을 믿는 것에 기반해요. 모든 종교는 현재 실존하지 않는 것을 책이나 유물 등의 기록을 토대로 하고 있어요. 따라서 종교는 굉장히 희미하면서도 또렷해야만 하죠. 실체가 없는 걸 믿어줄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그래서 언제나 이 종교라는 것은 '사물'이나 '서적', '음악' 등 뭔가 실체화된 것들에 상당히 집착하는 모습이 강한데요. 여기에서 힌트를 얻으셨겠지만, 결국 종교라는 것은 토템, 흔히 말하는 국지적 미신이나 우상 숭배라 불리우는 것들을 포괄할수밖에 없고 토템을 포함한다는 의미만으로 이미 종교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권력'화 되고 '정치'화 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이게 광신도들이 생기는 이유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요? 일단 한번 들어보세요.


...


종교는 왜 필요했을까요? 인류는 태초부터 먹고 살기 바빴고 이미 지금도 먹고 사는 문제에서 크게 자유로운 나라는 몇 안되는데도, 오히려 종교는 못사는 나라일수록 더 굳건한 신앙심을 보이고 있다는 아이러니함이 존재해요 그렇다면 결국 답은 인류가 '못살기 때문에' 종교가 생겨났다고 보는 편이 좋을거에요. 인류는 태초부터 지구최강생물이 아니었고, 늘 생존의 문제와 싸워야 했던 생태계의 중간 이하급 약자였거든요. 근데 인류는 태초부터 다른 포유류보다 좀 더 뛰어난 능력을 타고났어요. 바로 생존을 위해 다른 생물을 이용하는 '사육'의 능력과 무엇이든 비현실적인 것을 상상해낼 수 있는 '상상력'이 그것이에요.



그래서 초기 종교는 중하위권 수준의 열악함을 인정하고 생태계의 강자를 숭배하는 이른바 '동물'이나 채집의 대상이 되는 산이나 강 등의 자연환경에 대한 토템 형태가 될 수 밖에 없었어요. 굉장히 원시적이고 주류 종교들에게 '우상 숭배'라며 비웃음을 당하고 있지만, 사실 종교의 본질적인 부분은 주류 종교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결국 '인간'이라는 약한 존재의 한계를 인정하고 절대 강자를 숭배함으로서 자신의 신변과 인생을 구제받으려는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으니까요. 뭐 딱히 실체가 없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이 종교가 토템의 형태에서 지금의 주류 종교 형태로 진화하게 된 계기는 인류가 사냥과 채집에서 '경작'과 '사육'으로 삶의 형태가 변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에요. 자연이 주는 선물을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자연을 이용해먹기 시작하면서 삶의 문제를 좌우하는 주체가 '인간 스스로'가 되어버리니 더 이상 '맹수'나 '자연'을 숭배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는거죠. 대신 새롭게 숭배해야 할 대상이 생긴 것이 바로 '날씨'였어요.



태양이 한껏 내리쬐면 날이 가물어버리고 경작물은 말라죽어버리죠. 고스란히 한해 농사를 망치게 되면 인류는 1년간 식량난의 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비가 너무 많이 와도 강이 범람해서 농작물을 쓸어가버리죠. 태풍이라도 오는 날에는 뭐 말이 필요없을거고요. 사람들은 자신들의 식량 문제가 좌우될 '날씨'문제에 대해서는 인류가 스스로 개척하지 못할 것으로 어기고 절대적인 숭배를 하기 시작해요. 전 세계 모든 종교의 기초가 되는 이른바 '하늘'숭배의 시작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 '하늘'숭배의 문제점이 있었어요. 숭배할 대상이 없다는거에요. 하늘은 가본 사람도 없고 날씨가 왜 그렇게 변하는지, 날은 왜 갑자기 가물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홍수가 나버리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원인도 이유도 모르다보니 숭배를 한다고 해서 뭔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으니 숭배를 하면서도 뭔가 아리송하단말이죠. 바로 이때부터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서 숭배하는 형태 즉 지금의 주류 종교가 태동하기 시작해요.


태양의 신 호루스


하늘 숭배 이전의 종교 역시 강이나, 산 혹은 큰 동물들을 숭배하던 것이었기때문에 소기의 성과를 얻기보다는 자기만족에 가까운 역할을 했다면 숭배 대상이 하늘이 되고 이 하늘이 인류의 생존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도록 바뀜으로서 종교의 역할도 크게 바뀌기 시작해요. 예전에는 종교를 관장하는 제사장의 역할이 단지 어떤 숭배 대상을 자기 마음대로 정한 룰에 따라 숭배하는 것에 그쳤다면 이제는 그 숭배한 것에 대한 결과를 내야 하는 '책임론'이 대두되기 시작한거죠. 만일 제사장이 말한 대로 열심히 했는데 날씨가 안좋고 태풍이 몰아쳐서 결국 흉년이 들면 제사장은 그 책임을 져야만 했어요. 제사장은 '정성이 부족했다'는 식의 인지부조화적인 변명을 몇 차례 할 기회를 얻긴 하지만 아무런 바탕 지식이 없이 대자연을 예측하고 컨트롤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을거에요.


제사장들에게 닥친 일대 위기는 그들을 스스로 진화시켰어요. 그들 스스로 신뢰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되었을테니까요. 하늘을 공부하고 날씨를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언제 비가 내리고 언제 태풍이 몰아치며 언제 가뭄이 드는 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그것이 고스란히 문명화되기 시작하죠. 그리고 어느 정도는 예측해낼 수 있을 정도까지 발전하고 나니 어느 정도 그들의 말이 적중하기 시작하고 그들의 신뢰도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어요. 


그런데 당시 제사장들이 얻은 이 지식의 파급력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쏠쏠했다는것이, 결국 제사장의 말 대로 날씨가 예측되기 시작하면 하늘을 숭배하던 당시 종교 문화에 비추어볼 때 제사장은 '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굉장한 계급 위치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거든요. 사람들은 자신들의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린 부분인지라 제사장의 말이라면 껌뻑 죽을 수밖에 없었고, 이런 처지에 놓인 이상 제사장이 자신의 위치를 악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거죠. 제사장의 위치는 빠르게 권력화되어갔고 그들의 말은 곧 신의 전언이 되어 사람들을 컨트롤하기 시작해요. 그들에게 곡물을 비롯한 수많은 공물이 쌓이는 것은 당연했겠죠. 그렇게 쌓인 불로소득은 곧 부의 권력화를 낳게 되고 결국 제사장의 권력은 국가 통치에까지 오르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이 냥반입니다.


...


권력은 독점할 수 없어요. 필연적으로 투쟁을 낳게 되죠. 그 투쟁의 형태는 다른 나라의 침략일수도 있고 내부에서 일어나는 봉기일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 봉기를 일으키는데에 필요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기존 왕권이 이미 종교 그 자체였고 사람들이 그 종교의 교리를 따르고 있는데, 다른 나라의 침략이건 내부에서 일어나는 봉기였던 간에 결국 왕에게 도전한다는 건 '신에 대한 반항'이 될 수 밖에 없었던거에요. 아니 그렇다고 아예 규정해버리는 편이 나았죠. 적어도 왕의 입장에서는 말이에요. 이른바 '대의론'이 시작된거에요.


왕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이 종교를 더 복잡하고 숭고하게 만드는데에 최선을 다해요.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신격화하죠. 이에 왕들은 한술 더 떠서 아예 신은 없고 내가 바로 신이며 내가 죽어서까지 늬들을 통치할 것을 엄명하기까지 해요. 한번 깨진 힘의 균형은 좀처럼 회복될 조짐이 없이 계속 격차를 벌리기만 할 수 밖에 없었던거죠. 왕족들은 자신들을 보다 신격화시키기 위해 화장을 했으며 그들의 신화적 사상을 대중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소설을 집필하여 구전시키기 시작해요. 물론 이 소설 내용은 터무니없고 비과학적이었지만, 당시 대중들의 우매한 지식 수준으로는 반박하기 힘들었을거에요.



절대적인 숭배와 충성을 다짐하고 그에 굴복하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이에 대한 부당함을 설파하고 봉기를 이끌어내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겠죠. 이미 봉기는 '신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되어 버린 이상 봉기를 필요로 하는 쪽이든 침략을 하는 쪽이든 필연적으로 해야 했던 것은 '새로운 종교'의 주창이었어요. 구 종교와 신 종교의 충돌은 이렇게 침략과 침략사, 봉기와 국가 분열 등 여러 가지 역사를 낳게 되죠.


날씨를 종교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집트는 결국 나일강변의 이상기후로 인한 가뭄으로 인한 종교적 갈등으로 멸망했고 종교를 배척한 힘의 정복활동을 펼쳤던 로마 제국의 '로마 국교'정책도 결국 392년 로마 카톨릭을 국교로 개종하면서 멸망의 시작을 알렸는데요. 이 사이에 낀 인물 한 명이 있어요. 여러분들이 너무나도 잘 아시는 종교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인물이자 종교의 체계 자체를 송두리째 바꾼 인물...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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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신의 아들'이며 자신을 '신이 보낸 사람'으로 소개했어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지금까지 숭배되던 모든 교리를 비판했고, 자신이 만들어낸 새로운 교리가 옳다고 설파했어요.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행동이 종교 국가관에서는 결국 '반역' 행위였고 그를 반역자로 몰아가는데에 사회적 저항은 아무것도 없었죠. 저도 그와 같은 세대를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가 대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신도를 새로운 교리로 설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시대에서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그 시작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인류가 점차 학문에 눈을 뜨게 되면서 기존 종교가 가지고 있던 이른바 '독점적 지식'의 영역이 위협받기 시작했던 시기와 예수의 등장은 거의 정확히 맞물려요 신을 어떻게 모시느냐에 대한 문제보다 내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을 강조하는 '철학'의 발전은 그 정점이었고 이 철학은 단지 철학으로 머무르는 게 아니라 고대 과학을 수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위협적이었어요. 특히 천문학의 발전은 고대 종교에 큰 위협으로 다가오게 되죠.


그동안 그들에 의해 날씨가 조절된다고 믿었던 이집트는 공교롭게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등장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했어요. 하지만 정말 수많은 사람들에게 뿌리가 박혀 버린 종교의 색깔을 빼기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과 진통을 수반해야만 했죠. 과학적인 입증으로 종교의 허상이 발가벗겨지긴 했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항상 숭배의 대상이 필요했고, 그 뒤로는 왕권의 연립 없이 독자적인 세력으로 존치하게 되는 역사가 시작되는거에요.


그렇게 인류에게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모양새'가 상식화되어 굳어지게 된 거죠.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가 어떤 '모양'과 '철학'이 대단히 고착화되어있는것처럼 지금 보기에는 구교가 매우 비과학적이고 구태의연해보이지만 당시에는 그 철학이 지금의 종교 철학과 같은 수준으로 고착화되어 있었다는 거에요. 다시 지금 기준으로 봤을 때 지금의 종교에 대한 '관념'과 동떨어진 종교를 칭하는 '사이비'나 '이단'이라는 말로 배척하지만 정작 우리가 지금 상식화되어있는 종교 개념이 당시에는 '사이비'나 '이단'취급을 받았다는 거에요. 


한마디로 예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이단'이었죠. 그는 그동안 실체가 없었던 하늘 숭배에서 실존 인물의 숭배로 종교의 체계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만든 인물이었어요 이른바 '메시아론'은 지금도 그로 인해 만들어진 수많은 이단과 교주들이 자신들이 혹시라도 있을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하게 되는 아이러니함이 존재하게 되죠. 신약은 해석하기에 따라 예수 생존 당시 받았던 핍박이나 지금 사이비 교주들이 받는 핍박이나 다를 게 없다고 주장할 수 있으니까요.


예수의 전략은 '복고'전략이었어요. 예수는 뿌리박힌 '이집트'종교 개념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민중들 속에 잠재되어 있는 종교의 뿌리를 자극하는 식으로 설득하기 시작했어요. 이집트의 멸망과 팔레스타인지역의 로마 수복으로 이렇다할 종교를 모두 배척당했던 그들에게 있어 이런 잠재된 원론적인 부분을 설파하는 예수는 다른 말이 필요 없는 진리였던거죠. 


그런데 그가 주창하는 종교는 이미 과학으로 부정당한 '날씨'얘기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이집트의 종교가 완성되었을때에 주창되던 '사후 세계'를 좀 더 각색하는데에 초점을 맞추었죠. 한마디로 당시 과학은 물론이고 향후 어떤 과학으로도 증명하기 힘든 부분을 교리의 핵심으로 만들었던 최초의 인물이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했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문제, 이른바 '개인주의'를 교리로서 융합시킨 종교를 만든 사람이 되는 거에요. 이 두 가지가 융합하면 결국 '사후 세계를 위해 지금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것으로 귀결되는데, 결국 이 한 마디로 축약될 수 있는 논리가 많은 사람들을 지금까지도 매료시키고 있는 거죠.



이단이나 사이비라고 불리는 것을 포함해 지금까지 나오는 모든 종교는 '사후 세계'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아요. 이는 결국 종교 이외에 어떤 과학으로도 사후 세계 즉 인간의 생명에 대한 부분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죠. 마치 고대 이집트의 호루스신의 등장이 '날씨'에 대해 알지 못하는 지식을 독점하여 민중을 선동하는 식으로 종교를 이용했다면 기원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종교의 대한 철학이나 개념은 결국 인간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과학적으로 아직 증명하지 못한 사실에 대해 논하고 있는 유일한 '가설'이라는 점을 '떡밥'으로 내세우고 있는 거죠.


그래서 지금의 종교는 생명공학, 그리고 진화론과 대척점에 있을 수 밖에 없어요. 날씨의 비밀이 까발려지면서 망했던것처럼 사람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죽는지가 교리 설득의 최후의 보루일수밖에 없는 종교계는 이를 적대시하는 것이 당연할수밖에요. 종교계는 언제나 자신들의 논리가 인류의 발전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지식을 배척해오면서 살아남아왔던 것이 실존하고 있는 역사이며 지금은 그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삶과 죽음과 관련된 연구를 종교적인 이름으로 반대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존립성을 지켜나가고 있는거에요.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이제 진짜 광신도 얘기


종교 전쟁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종교 전쟁의 맥락은 무엇이었을까요? 결국 말이 '성전'이지 결국 모양새는 침략전쟁이거든요. 종교는 어느 나라에서나 그 나라의 존엄성을 가늠하는 절대적 위치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21세기가 와서도 인도에서 관광객조차 먹으면 안될 음식이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대부분의 종교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종교의 포교에 목적을 두고 있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타락한 십자군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권과 정복사업을 정당화하는 추악한 모습이 대부분이에요. 특히 이런 모습은 전혀 문명이 발전되지 않은 원주민 인디언들의 대륙을 구 대륙 사람들이 침략해서 정복할 때 주로 신격화되곤 하죠.


이따위 신화도 있어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한창 남미와 북미를 털어먹을 때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로마 교황청으로 쫄래쫄래 달려가서 '우리가 저 땅 먹었으니까 우리 영토라고 선언해줘'라고 떼를 쓴 거였어요. 로마 교황청은 어이없게도 잔혹한 학살과 문화 말살의 참혹한 정복전쟁을 거친 그들의 주장을 인정하고 그들의 식민지로 선언해주죠. 보편적이라는 의미를 가진 '카톨릭'이 정작 보편적 가치인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한 자들의 손을 들어줬다는거에요. 


그들은 식민지를 미개의 세계로부터 구원한 '메시아'라는 주장을 펼쳤어요. 누가 봐도 그 나라의 문화를 말살하고 영토를 늘리기 위한 확장 사업에 불과한 것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해서 말이죠. 사실 이는 포장 그 자체가 아니라 아직 문명을 받아들이지 못한 자들에게 정복자들인 자신을 '신'으로 포장시키기 위한 부분도 포함되요. 토템 신앙조차 가지지 못했거나 그 문명의 학술적 발전이 더딘 자들에게 카톨릭 같이 오랜 기간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오류가 수정되고 다듬어지며 새로 쓰여진 빈틈이 비교적 적은 완벽한 소설을 읽어주면 훨씬 설득이 쉬웠을 테니까요. 마치 이집트 파라오가 그랬던것처럼 정복자 그들 스스로가 신이 됨으로서 정복활동과 식민지 노예화를 손쉽게 거둘 수 있는 그들로서는 참으로 현명한 방법이었을거에요.


교황 옆에 앉은 사람은 무솔리니라는 사람이에요. 우와 교황이 상대할 정도면 참 훌륭한 사람이겠죠?


너무 먼 얘기라 잘 이해가 안간다고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역사는 얼마든지 있어요. 민족의 시조 단군 할아버지를 보세요. 탄생 신화가 환인이라는 신이 곰이 사람이 된 여자 환웅과 결혼해서 낳은 사람이 단군이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이게 진짜냐 거짓이냐는 집어치우고 왜 이런 얘기가 생겼을까요? 우리나라 대한민국 반도에는 단군 이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을까요? 아니었을거에요. 우리 할아버지는 단군보다 훨씬 더 오래 전 사람이었을수도 있어요.


단군은 외지인이었어요. 외지인은 아무래도 원주민들보다 문명도 더 앞서있었고 원주민들이 보기에 훨씬 앞선 문명을 가진 그들을 우러러볼 수 밖에 없는 위치적 한계도 있었죠. 그런데 이 원주민들이 본능적으로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한 개김성만큼은 투철했을거거든요. 뜬금없이 족장도 있고 부족 체계로 잘 돌아가고 있는 곳에 외지인 불청객이 떡 하니 와서 '이제부터 내가 늬들 지도자다'라고 선언하는 꼴을 그냥 두고 볼 바보가 있을라고요.


우와 우리는 하늘의 자손이었어!


단군이 만약 여기에서 무력으로 그들을 진압하고 점령했다면 아마 실패했거나 성공했더라도 수많은 반란에 시달려 결국 터를 잡기가 어려웠을거에요 (단군할아버지는 일단 터를 잡긴 성공했잖아요. 노래가사에도 있듯이) 사실 역사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정말 단군이 친화정책을 먼저 쓴 다음 자신을 신격화해서 스스로 왕이 되는 철학 정책을 취했는지, 강력한 문명으로 압도하여 무력으로 공포정치를 취한 다음 이를 미화시키기 위해 신화를 써서 역사를 왜곡시켰는지는 말이에요. 확실한 건 그들은 '신화'를 남겼고 그들은 '종교'를 이용해서 외지인이라는 불리한 조건에서도 한반도를 정복했고 최초의 왕으로 기록하게끔 만들었다는거에요. 참 훌륭한 사람이네요


이런 역사는 단군에서 끝나지 않아요.. 단군이 먹었던 땅은 엄밀히 말하면 요동 반도지 지금의 남한 지역은 아니거든요. 남쪽으로 가보면 그 뒤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생기죠, 삼국 시대 여기에서 시작되는 고구려의 동명왕 신화도 환인이 등장했던 단군 신화랑 크게 차이가 없이 어쨌든 하늘의 사람이 낳은 아들이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죠. 인물만 조금 바뀌어있고 그들이 활동하던 활동 무대가 요동 반도가 아니라 도읍지인 압록강을 낀 국내성 일원이라는게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죠. 과연 이런 말도 안되는 신화를 대체 왜 만들었을까요? 그냥 1대 왕이 되었다. 라고 기록하기엔 뭔가 역사적으로 앞뒤가 안맞았거나, 뭔가 감추고 싶은 역사가 있었을수도 있겠죠? 혹은 자신들을 신의 아들이라고 소개했어야 할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었던가요.


백제의 건국은 사람이 거의 없는 땅에 나라를 세운 셈이니 신화가 없어도 이상할게 없지만, 박혁거세 역시 아무런 지역 배경이 없는 외지인이었으니까 이런 신화가 필요했는지도 몰라요.


건국 신화는 결국 침략 전쟁을 미화시키기 위한 수단이에요. 콜럼버스의 달걀은 유명하지만 그가 아메리카를 정복하느라 수많은 인디언들이 학살되었다는 역사는 전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에요.


종교는 사람들을 하나로 이끌 수 있어요. 다만 그들 자체가 국가를 세우려 들지 않아요. 이집트의 교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다만 그들은 왕권과 연합하여 그들이 '왕을 임명'하는 역할을 하게 되죠. 신이 그를 왕으로 만들었으므로 국민들은 이 왕을 따르는 것으로서 신을 추앙할 수 있게 된다는 식의 논리를 설파하는 것인데 지금으로 보면 진짜 어처구니가 없어보이는 이런 의식이 국민들에게 너무나도 잘 먹혔고 그 순간 왕은 곧 '신'이 만들어주는 것이며 이 나라는 신을 위해 지켜야 하는 나라가 되는 거에요. 


그들이 전쟁터에서 싸우고 이기는 것은 왕(신)을 위한 것이요. 그들이 다른 민족에 의해 침략당하는 것은 우리의 신을 모독당하는 것이므로 신을 위해 맞서 싸워야 한다는 사상은 왕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안정적인 권력을 선사했어요. 종교는 그때부터 이미 정치화되었고 권력에 빌붙어왔으며 이를 결코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죠. 심지어 지금까지도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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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나라일수록 종교에 대한 신념이 두터운 이유는 당연하겠지만 '가난하기 때문'이에요. 가난하면 할수록 먹고 사는 문제에 더 민감해지고 그럴수록 돈을 주고 배워야 하는 지식보다는 돈을 주지 않고 배울 수 있는 지식에 더 많은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많은 종교들이 세운 미션스쿨들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죠. 왜냐, 사람은 가난하면 할수록 생명공학이니 뭐니 하는 것을 공부하는 것보다 단지 '농사' 즉 먹고 사는 문제에 더 집중할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결국 고대 이집트처럼 숭배 대상에 자신의 운명을 거는 데에 주저함이 없게 되니까요.


그들이 종교에 빠지게 되는 또 하나는 '현생'에 대한 비관이에요. 지금의 종교는 모두 '사후 세계'와 '좋은 환생'을 미끼로 걸고 있어요. 현생이 어렵고 비관적인 사람은 육체적인 자살을 선택하거나 종교에 귀의하므로서 사상적인 자살을 택하는거죠. 물론 이런 사람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일수록 압도적으로 많을 수 밖에 없고 가난한 나라에서 종교가 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거에요.



많은 나라들이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지면서 종교의 영향력은 점차 희박해지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개독이니 뭐니 하며 기독교를 배척하는 움직임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들은 그럴수록 절박해지게 되요. 우리가 이 땅에서 사라지면 안된다고, 마치 나라를 빼앗기는 듯한 위기감을 갖게 되죠. 특히 그 종교에서 충분한 지분 (나라로 치면 벼슬) 을 갖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그 위기감은 더욱 팽배해질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들은 더욱 종교를 폐쇄적이고 광신적으로 만들어 결속력을 다지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죠. 종교가 이단이면 이단일수록 사이비면 사이비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극심해져요. 


다른 의미로는 봉건주의 국가를 소망하는 자들의 욕구 충족에 이용되기도 하지만요.


결국 지금의 종교는 예수가 만들어낸 소설 '신약'에 기반을 두고 그 신약에 별 시덥잖은 메시지에 의미를 두고 그것을 해석한 자들을 지도자로 한 수많은 교파들이 서로 자신의 해석이 맞

다며 싸우고 있는 형국이거든요. 그런데 정작 그 소설은 빠르게 발전하는 생명과학에 의해 속속 거짓임이 까발려지고 있고, 사람들은 점차 먹고 살기 좋아지면서 종교에 관심이 멀어지고 있어요. 그들의 해석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한들 원전이 워낙 비과학적이고 부실한지라 정작 형체가 분명했던 종교가 점차 신기루적이고 뜬구름잡는 교리로 변질되고 있어 믿는 사람만 믿을 수 있는 억지 해석이 난무하고 있는 것도 지금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고요. 


예수님의 친구.jyp


그래서 그들은 다른 종교를 공격해요. 적어도 '종교를 믿을 가능성'만큼은 있는 자들을 자신들의 종교로 끌어들이는게 종교를 아예 안 믿는 사람들을 그들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보다 훨씬 쉽거든요.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불교에 대한 테러나 불교 비방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죠. 종교를 믿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서로 뺏고 빼앗는 와중에 신도는 점점 줄어들고 마치 졸아붙는 냄비 물마냥 최후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게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종교에요.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사람을 엄한 교리로 옭아매고 광신도를 만들어가면서까지 말이죠.


그들은 그나마도 모자랐는지 '국가적으로 종교를 잘 믿는' 국가를 골라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려고 해요. 여행 제한 국가도 아량곳하지 않고 말이죠.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들은 그렇게 해야 하며 성서에 그렇게 하라고 쓰여있다고 나와 있다며 말이에요. 또 한편으로는 특정 목사를 예수님의 친구라며 추앙하기도 하고, 특정 교주를 메시아라며 추앙하기도 해요.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범죄도 어마어마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죠.




우리는 종교를 어떻게 바라봐야할까요?


종교는 마음의 양식이에요.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요? 네 맞아요. 독서랑 똑같아요. 종교는 아주 잘 쓰여진 소설을 제각각의 시점으로 읽으며 그 소설에서 얻을 게 있는 사람들은 얻고 얻을 게 없는 사람은 얻지 않아도 되는 아주 자유로운 조직이 되어야만 해요. 왜냐하면 그냥 소설일 뿐이거든요. 누가 봐도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비현실적으로 미화하면서까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던 사람이 쓴 소설이고, 그 소설이 많은 사람들의 해석이 곁들여지면서 덧붙여지고 멋대로 수정되어가며 원전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지경까지 이른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참고하면서 읽으면 될 거에요.


그 소설에는 좋은 말이 많아요. 우리가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좋은 말들 많죠. 그런데 그 말을 해준 사람이 완벽한 사람이었으니까 그 사람을 믿는 것만으로 우리가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고 심지어 죽어서까지 잘 된다는 식의 논리로 현세계의 많은 부분을 타인에게 의존하며 심지어는 빼앗기고 당하면서까지 살 필요는 절대 없다는거에요. 그저 '책 참 잘 봤습니다, 이 책으로 전 인생에 좋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라는 의미의 기부금을 낼 수는 있지만 말이에요. 



삼국지 떡밥 나오면 별의별 해석 다 나오는 거랑 다를 게 없어요. 그 해석들이 저자별로 제각각 다른 내용을 통해 책으로 나온 게 벌써 한트럭이잖아요. 성서나 불경도 크게 다를 바 없어요. 종파 역시 그 해석이 옳다고 생각하는 모임일 뿐이고요.



...뭐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요.

여러분의 인생, 삶과 죽음은 여러분거에요.

여러분의 소중한 인생을 다른 누군가에게 바치지 마세요.



...그게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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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사회교과서 제 5장-광신도는 왜 생기나요 편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