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2. 9. 6.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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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를 보면 열이 뻗쳐서 잠이 안옵니다. 아직 꼬꼬마인 여자애를 성폭행하지 않나. 잔인한 연쇄 살인범이 아직도 사형되지 않고 우리 세금으로 먹어살리고 있다는 소리를 들을 땐 빨리 그 사람들 죽여버리고 성폭행한 사람들은 능지처참했으면 하는 공격적인 마음이 드는데요. 그런데 법이라는 건 막상 사람이 사람을 죽여도 그 사람을 간단하게 그대로 되갚듯 죽이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왜 그런거죠? 당연히 당한 사람이 앙값음을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범죄자들의 인권이라는 걸 꼭 챙겨줘야 하는 세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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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자 진정하시고 ...^^;;;

 

우선 범죄란 뭔지부터 알아보도록 해요

 

범죄의 매커니즘을 살펴보도록 하죠. 동물들은 언제나 약육강식을 모토로 이 세상을 살아가요. 그런데 이 약육강식이 인간 사회에서도 변함없이 계속되다보니 발전이 없고 인적 소모가 극심했어요. 머리는 비상한데 몸이 약한 사람이 머리가 돌대가리고 힘만 쎈 사람에게 죽어나가니까 사회가 발전할 턱이 없었죠? 그런데 그렇다고 몸이 약한 인류가 몸이 강한 인류를 단독으로 설득한다는 건 있을수 없어요. 무슨 말을 해도 돌대가리들이 알아들어야 말이지..

 

아오 누가 얘 좀 설득해볼래?

 

인류도 역시 진화론에 입각해 살펴보면 몸이 약하고 머리가 좋은 인류가 살아남는데에 몸이 강한 사람의 그 어떤 부분보다 훨씬 우성인자가 있어서 몸이 강하고 무식한 사람을 지배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그 뛰어난 지능으로 법을 만들고 이를 근거로 정치라는걸 하게 되죠. 벤허 같은 기원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늙고 병들어 힘이 없는 왕이 아무이유없이 명령 하나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절대권력을 갖게 되는것을 볼 수 있어요. 동물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특별히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진화의 경쟁에서 두뇌가 우수한 인류가 살아남은데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그래서 법이라는건 의외로 역사가 굉장히 오래되었어요. 법이라는게 뭐냐, 바로 머리 좋은 사람들이 머리 나쁘고 힘만 센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만든거에요. 인간이 집단을 만들고 집단을 이끄는데에 있어 힘으로 권력을 잡은것보다 정치적 능력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켜 결집시키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고, 이는 인류의 집단이 가지는 공통된 약속이 개개인의 힘을 능가했다는 거에요.

 

어이 너, 죽어마땅하지 않나?

 

이게 어떻게 지켜질 수 있었는지가 재미있어요. 집단에서 제일 힘이 센 사람을 뺀 나머지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위해를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는걸 항상 두려워하게 되죠. 생명에 대한 위협, 그리고 살고 싶다는 욕망이 이들을 뭉치게 했고 힘이 센 사람을 집단의 힘으로 능가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들은 엄밀한 조항으로 힘이 제일 센 사람을 집단에 포함시켜 평화조약을 맺게 강요하죠. 우리는 당신 것을 뺏지 않을테니 당신도 우리 것을 뺏지 말라, 만일 이를 어길시에는 집단의 이름으로 당신을 처단하겠다. 라고... 단순하지만 이런 논리는 불과 몇백년전까지 법을 만드는데에 기본 모토로 쓰여왔어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아직도 쓰이는걸 보세요.

 

이런 걸 두려워하는게 단지 마을 단위의 집단에서 마을과 마을 단위의 전쟁, 그리고 그 마을 단위가 수백개가 모여 국가를 이루고 그 국가 내에서의 서로 빼앗고 빼앗기는 싸움, 더 크게는 국가간의 싸움까지 인류는 단지 작은 집단에서의 합의를 이루었을 뿐 약육강식의 본능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물론 희생도 컸죠. 그래서 그 희생을 막자는 공감대 역시 날로 커져가는 전쟁의 크기에 발맞춰 한발 늦지만 퍼져나가게 되요. 국가들은 점차 야만적인 무법지대에서 법을 지키고 서로의 것을 탐하지 않는 데에 익숙해지죠. 지금의 UN같은 단체 협약도 큰 틀에서 보면 이런 약육강식 본능을 억제하고, 그 힘으로 인류 발전에 집중해서 잘살아보세~ 라는 모토로 세워졌어요.

 

 

국제 연합 : 그 설립 목적은 국제법, 국제적 안보 공조, 경제 개발 협력 증진, 인권 개선으로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데 있다 - 출처 wiki

 

 

우리는 네 것을 뺏지 않으니 너도 우리 것을 뺏지 말라는 법의 기본 모토에는 이를 어겼을때에 따라붙은 징벌도 자연스럽게 스며있었어요. 함무라비 법전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다면 이 집단이 커진 고대 로마같은 시대에는 사자우리에 사람을 던지고 뜯어먹는것을 스포츠화하여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식으로 경각심을 드높였어요. 고대 중국에서는 효수한 수급 (잘린 머리)를 성벽에 걸어두어 국민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었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능지처참 같은 하드고어한 사형 장면을 불과 몇백년전까지도 국민들 앞에서 라이브로 생중계를 했었어요. 그 잘나가는 미국조차도 공개처형을 했던 역사가 고작 100년 남짓 전까지 있었던 걸 보면 굳이 특정 지역의 잔혹성을 거론하기에는 뭔가 사회 자체의 기능적인 문제를 생각해보게 되요.

 

불과 150년 전의 미국이에요. 나찌독일이 아니랍니다.

 

형벌과 사회의 잔혹성이 커지게 된 건 중세 유럽의 지나친 왕권강화주의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사회를 컨트롤하는 정치적 스킬이 매우 원시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해요. 한마디로 인류가 그 약육강식에 대한 욕망을 스스로 컨트롤하는 사회화가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거고 그 전까지는 이들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집단의 강력함을 몸소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거죠. 자신의 힘을 믿고 깝치는 것을 잠재우는 것은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요. 마치 야수를 길들여서 컨트롤하듯이 간신히 테스트스테론을 잠재우곤 했어요.

 

축구가 금지되었던적도 있어요. 왜냐하면 한경기당 수십명씩 사상자가 났었거든요.

 

 

그러다가 인류가 점점 법과 사회에 익숙해지며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다보니 처벌이 너무 강력한 게 오히려 문제가 되기 시작해요. 집단을 이끌고 그 집단의 동의에 의한 대표권력자가 이 처벌에 대한 전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어서 생긴 문제였죠. 대표자의 권력에 의해 강력한 처벌 권한이 남용되어 버린 사례가 역사에도 여럿 기록되어 있고 이에 의한 희생은 결코 인류 발전을 위한 법과는 전혀 관계없는 무모한 희생이 대부분이었어요. 이에 프랑스를 필두로 왕권의 붕괴와 공화국 설립의 대유행으로 인해 법과 권력의 균형잡기와 수위조절에 들어가기 시작하죠. 다수의 의견이 아닌 권력자의 개인 감정이 법에 발현되는 것을 막으려 했던 거에요, 제국사회시절에는 말할것도 없었고 공화정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공화정 초기에는 지나치게 제국에 억눌려있던 국민들의 지나친 자유 발현으로 인해 범죄율이 오히려 증가하는 과도기적 진통을 겪은 적도 있었죠.

 

 

마녀사냥은 집단광기가 아니라 권력자의 비즈니스였다고 하네요.

 

 

이런 옛날 이야기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언제나 인류가 집단을 구성하고 그 집단을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하는 간부들은 인류사회가 내 이익을 지키고 남의 이익을 침범하는 것을 양쪽 모두의 희생이 없는 방향으로 이끌어왓다는거에요. 왜 그랬냐면 에초에 그들을 지도자로 세우고 법이라는걸 만들고 그들에게 그 법을 집행할 특권을 주게 된 이유가 이미 인류 최초의 법령부터 '인간의 희생을 줄이자'라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죠.

 

인간의 희생을 줄인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법이라고 한다면 사실 '사람을 죽인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해결본다'라는 것은 매우 소모적이에요. 따라서 이들은 에초에 평화라는 목적을 건 이상 범인도 죽지 않고, 범인에 의해 죽을 사람도 죽지 않아야 하는 방법을 찾았어야 했어요. 너무 뜬구름잡는 이야기로 들린다고요? 진짜 처음부터 법이라는건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지금까지 그 목적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라서 말이죠.

 

 

우리는 법과 그 집행에 있어서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 있어요. 그 법을 집행하는데 국민의 뜻을 모두 물어보지 않아요. 이제서야 부랴부랴 배심원제 비슷한 흉내를 내는 수준의 나라는 더더욱 그렇고요. 법은 국민들의 생각과 전혀 다른 판결을 법이랍시고 때리는 경우가 지금도 무척 많아요. 아무리 도덕적인 기준과 상식선 밖에 벗어났다고 해도 법 상에서 정당하다면 모든게 용서받는 나라도 있어요.

 

그 반대로 그 사람의 기준에 있어 벗어나기만 한다면 이 사람이 아무리 도덕적인 기준과 상식선 안에 있더라도 얼마든지 이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서 옥살이를 시킬 수가 있어요. 그런 힘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게 엄격하게 제한된 권력을 갖는 것이 우리나라의 사법부이긴 하지만, 그또한 인간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변수가 많고 감정에 휘둘려 저지르는 실수가 적지 않아요.

 

어떤 일본인이 있어요. 4살짜리 여자아이가 살해된사건인데 조사 결과 아동성폭행살인사건에 대한 범인으로 그가 지목되었죠. 옷에 묻은 정액 DNA가 일치했고, 본인도 자백했어요. 그런데 재판에서 갑자기 무죄를 주장했어요. 경찰관의 폭행에 의한 거짓 자백이었다고 말이죠.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 증거만으로 그는 17년이나 감옥에서 썩어요. 그리고 결국 DNA감정이 잘못되었다는게 그제서야 밝혀지고 그는 17년이나 억울한 옥살이 끝에 최근 자유를 얻었어요. 이 사람은 징역형이라서 그나마 사지멀쩡하게 나왔는데, 만약 사형이나, 화학적 거세를 당했다면 어땠을까요? 이런 사건이 일본에만 있을것 같나요? 그리고 지금은 없을 것 같죠?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사형, 화학적 거세, 물리적 거세의 공통점이 있어요. 되돌릴 수 없다는 거에요. 법은 무결하지 않아요. 무결하다고 주장하는 사법부 인사가 있다면 그건 제대로 미친놈일거에요. 법은 지금 이 시간에도 엄청난 실수를 자신들도 모르게 저지르는 놈이에요. 아직도 완벽하려면 한참 멀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라가 선진국이 되면 될 수록 사법에 대한 집행은 그만큼 신중해야만 해요. 특히나 되돌릴 수 없는 사형같은 것들은 더더욱 말이에요.

 

억울한 옥살이를 하거나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하면 그 사람이 잃어버린 인생은 금전으로 보상할 수 없죠. 이건 인류가 처음 법을 만들 때 걸었던 목적 '인류에 지대한 발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의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한 것' 이라는 것에 정면으로 위배되요. 에이 누가 봐도 저 사람은 범인이 확실하니까 죽여도 되잖아. 라고 생각하실수 있어요. 물론이죠. 누가 봐도 죽어 마땅할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으로 인해 법이라는 것이 언제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력을 되찾을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지금의 법은 아직도 가야할길이 한참 먼 풋내기고 그 풋내기라는 이름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을 만큼 실수를 남발하며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잖아요.

 

 

요즘은 이런 일 안일어난다고요? 네 맞아요. 근데 곧 일어날지도 모르겠네요.

 

나라 망신까지 시킬정도면 뭐...

 

많은 사람들은 말하죠. 니가 그 범죄자에게 당해보면 그 기분을 알 거라고 니가 당해보지 않아서 그러는거라고, 그 말을 그대로 돌려드릴게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외쳐진지 벌써 20년도 넘었는데, 저 말이 고대의 유물로 매장되기는 커녕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잖아요. 그런 법에게 생사여탈권을 주면 그 칼이 나한테 안올거라는 보장이 있을까요? 역시 그 사람들도 당해보지 않으니 와닿지 않을거에요.

 

 

살인범이 늘어나면 늘어나는 족족 죽이면 된다는 식의 논리는 끊임없이 생산되는 해처리를 그냥 두고 나오는 놈들만 죽이면 된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어요.

 

 

잠깐 옛날 이야기 다시 해볼게요, 과거 법들이 강력하고 자극적이었던 이유는 앞서 설명드렸던 것처럼 정치가 지나치게 원시적이고 무식했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도 범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어요. 문제는 이후 사회가 안정화되고 국민들의 사회성이 높아져 범죄율이 떨어진뒤에도 이런 강력하고 자극적인 법 집행 관행은 정말 오랜 기간 유지되어 와요. 물론 국민들의 수준이 아직 법을 완화시킬만큼 선진화되지 않았을수도 있겠지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요.

 

 

'적어도 나는 이 법으로 인해서 죽을 일은 없을거야'

 

 

머리 좋고 힘이 약한 사람들이 모여서 힘이 세고 머리가 나쁜 사람들을 견재하기 위한 법은 결국 '만든 사람들이 자신들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당시의 잔혹하고 끔찍한 법을 만들던 사람들은 결국 자기 자신이 그 법에 걸려들지 않을 자신이 있었죠. 이미 자신들이 그런 법에서 충분히 면책을 받을 사회를 만들었었고요. 만일 자신이 그런 끔찍한 법에 희생될거란 상상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그런 법을 만들 수가 없어요.

 

만일 지금에 와서 그런 법을 만들고 주창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법에 자기 자신은 절대 희생되지 않을 거라 굳게 믿는 사람들일것이고 그 법에 자기자신들을 예외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수단을 자신들의 권력으로 만들어 스스로를 보호할 준비가 충분히 된 사람들이 틀림없어요. 그렇지 않다면 그런 이야기를 함부로 꺼낼 수 없다는거죠.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런 법을 자신있게 내뱉는 사람들을 냉정하게 주시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가 지금 피해자의 심정을 모르고 막말하듯 그들 역시 법으로 인한 희생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말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지금 우리는 돼지고기를 편하게 먹고 있지만, 누군가는 결국 돼지를 죽여야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어떤 돼지는 계속 죽임을 당해야만 하죠. 이런 일이 있는것에 우리는 관심이 없어요. 아니 관심을 둘 필요가 없죠. 우린 저 돼지처럼 죽을 일도 없고, 저 돼지를 죽이는 일을 하게 될 가능성도 없다고 굳게 믿으니까요.

 

 

 

 

...

 

주절주절 설명을 늘어놓았지만 정리는 매우 간단해요

 

법은 '어느 누구도 희생되지 않도록 만들어진' 수단이에요.

어느 한쪽을 구제하거나 어느 한쪽의 울분을 풀어주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살인범이 살인을 저지르면 그 살인범을 죽여도 살해된 사람은 살아나지 않죠.

가장 좋은 방법은 살인범이 처음부터 살인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거에요.

누가 누군가를 성폭행하면 그 성폭행범의 성기를 잘라도 성폭행당한 사람의 기억이 지워지진 않죠

가장 좋은 방법은 성폭행범이 처음부터 성폭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거에요.

 

이상론이라고요? 천만해요.

지금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상론이라고 하는 이 목적을 향해서

지금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며 법을 개정해나가고 있는걸요.

왜냐하면 법은 원래 그러기 위해서 만들어진거니까요.

그리고 정부라는 곳은 이런 이상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일하는 단체로 이미 몇천년부터 공인되어 왔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로서 존재하고 있어요.

 

이걸 못하고 법을 강력하게 집행하는 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정치가가 혹시 있나요?

만일 그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안이나 직 간접적인 해결책 없이 그것만을 주장하고 있다면

그 정치가는 이미 정치적 능력이 한심한 수준이라고 광고하는것이나 다름없다는걸 역사가 증명하고 있어요. 

 

 

우린 아직도 법의 강력함에 의존해야만 하는 정치 후진국인걸까요?

 

 

 

그리고 과거 그런 정부들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그런 정부가 국민들에게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를

기억하고 배워야 해요.

우리가 그걸 역사로 남기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법은 법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되니까요.

 

 

그리고 그런 정부를 국민이 어떻게 취급해줘야 하는지도 함께 생각해보도록 해요.

 

 

 

 

 

공화국 사회교과서 제 4장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