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5.04.16 세월호 이제 지겹다, 돈 준다고 하는데 왜 아직도 저러나? 8
posted by RushAm 2015. 4. 16. 12:06

왜 지겨운가?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요 몇 년 사이에 제법 큰 규모로만 따져도 몇 번이나 일어났다. 그것도 굉장히 민감할 수 있는 금융권 개인정보 유출이 일어났고 일부 사람들은 그로 인해서 실제 금전적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고도화된 보이스 피싱으로 이어지고 있고 피해는 짧은 시간 내에 크게 벌어지지 않고 있지만 점진적으로 한 사람씩 일어나고 있으며 일부 연예인들이나 유명인사들마저 보이스 피싱에 휘말리면서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워낙 많은 선례가 있어서인지 혹은 너무 큰 규모라서 자신의 개인정보 유출이 얼마나 범사회적인 위기를 야기하는지 잘 모르고 있는 듯 반응이 무심하다. 이런 사건이 해외에서 일어났으면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켰을지에 대한 부분은 크게 와닿지 않으실 테니 제쳐두고서라도 이들이 무관심한 이유는 첫째로 나한테 당장 피해가 오지 않았으며 너무나도 큰 피해규모로 인해서 그 가치에 대한 판단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한 가지, 그 가치를 오롯이 의 가치로만 평가하려는 공통된 감정적 한계선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배상 결정이 나서 승소한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뒤로 수많은 개인정보 누출이 이루어지고있다.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듣보잡 로펌에 휘둘려 공동 소송을 준비한다는 뉴스가 단골로 흘러나온다. 그런데 그 공동 소송의 대상은 늘 해당 회사이며 소송 내용은 금전적 보상이다. 잘 아는 것처럼 이 소송은 한번도 속시원히 이긴 사례 없이 대다수가 패소만 거듭하고 있는데, 사실 그들은 실제 금전적으로 손해를 봤는지 아닌지를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실제 금전적으로 손해를 본 (유출로 인한 보이스 피싱 등) 사람들이 섞여 있지 않거나 섞여 있어도 그들과 피해 정도를 옆으로 나누어서 도드라지지 않고 있으며 이는 사법부조차도 그들의 금전적 피해에 대한 심정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는 증거다.

 

 

세월호가 침몰한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그때 그 사람들은 오늘도 그대로 그곳에 있다. 죽은 아이들과 사람들도, 아직 생사가 파악되지 못한 사람들도, 그리고 그 유족들도 아직 그 곳에 그대로 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세월호에 대해 심정적인 아픔을 나누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서로 소소한 공집합속 교환이 있을 지언정 큰 변화는 없이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사람들과 세월호는 이제 그만 지겹다는 사람들 말이다.

 

이건 영화의 한 장면이다.


너무 큰 사고가 일어났다. 사람들은 일가족 4명이 사망한 교통사고보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받아들이기 더 힘들어하는 것 같다. 마치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포세이돈어드벤처'처럼 영화 스크린이나 TV스크린 속에서나 벌어질 것 같은 일이 현실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그들이 말하는 지겹다라는 키워드가 숨어있다.

 

이건 영화가 아니다.


그들은 이 사건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단 한번도 현장에 가서 진짜 유가족들을 단 한번도 만나본 적도 없으며 적어도 그들을 가감없이 취재한 언론들의 보도를 한번도 접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주류 언론들이 단 한번도 이 세월호 사건을 현실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세월호 보도는 JTBC처럼 늘 팽목항에서 사람들과 만나거나 고발뉴스처럼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사이에서 함께 호흡하는 취재를 하는 것보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었고 오늘은 시체가 몇 구나 끌어올려졌으며 세월호는 얼마나 큰 배였고 이게 얼마나 참혹한비극인지에 대해서 내래이션했다. 마치 비극영화를 더 슬프게 만드는 연출처럼 그것에만 너무 열중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세월호의 비극을 정론으로 전했다

 

연합뉴스는 사상 최대의 구조작전 이라는 키워드로 보도했다. 이것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며 이루어질수도 없는 판타지적인 키워드였다. 그러나 이 키워드는 세월호 정국 초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각인된 기사 카피 중 하나였으며 이들 언론이 세월호를 얼마나 영화 속 한 장면화시키는데 열중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얼마나 현실감 없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아무리 좋은 영화도 두번 이상 보기 힘든데, 다들 영화로 인식하지 않는다면야 사람이 죽은 대형 참사에 인간으로서 그런 반응이 나올리가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에는 애석하게도 금융권에서 개인정보 유출로 자기 재산을 잃은 사람보다 금융정보가 털렸는데도 평소 늘 오던 스팸 문자 조금 늘어난 수준에서 그친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세월호 뿐만 아니라 국가의 과오 혹은 이익단체의 과오로 인해 자식을 먼저 잃은 부모보다 그렇지 않고 자식이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들에게 있어 세월호의 아픔을 진정 공유할 수 있느냐면 그거야말로 판타지가 된다. 사람은 아무리 감정을 이입해도 당사자가 되지 않는 한 그 가치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식을 낳아보지 않은 사람이, 자식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그 아픔의 크기와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이 부분에서 두 번째 가치판단의 오류가 발생한다.

 

...

 

보상금


마치 영화 같은 극적인 연출을 최우선시해왔던 주류 언론들의 세월호 보도에 대한 감상의 결과는 마치 영화 흥행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에 맞춰지는 것 같다. 감독이 얼마를 벌었느냐 배우가 얼마를 벌었느냐가 늘 천만관객 영화 후에 보도되고 그 보도에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갖게 되듯이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도 사람들의 관심은 애석하게도 이었다.




 

사람들의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감정이 있다. 우리나라는 정의 민족이라는 이야기가 벌써 옛 말이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급격하게 핵가족화가 이루어지고 전통적인 가족관이 파괴되면서 사람들은 부모의 사망에 감정적으로 슬퍼하기보다 그들이 가진 유산이 어떻게 배분되는지 그 유서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정말 짜증나게도 이 역시 보편적 미디어인 TV미디어 (드라마)의 혁혁한 성과임에 다르지 않다.

 

수많은 드라마들이 재벌 2세를 그리며 나이든 아버지가 유산을 어떻게 나누어주는지 그리고 유서에 누구의 이름이 오르는지를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코믹하게 다룬다. 아침드라마라 명명되는 막장드라마는 재산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큰어른은 사후에 얼마나 더 많은 재산을 분배해주는지에 대해 가치가 매겨지고 행여 죽기 전에 재산분배가 끝나버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고려장과 다를 바 없는 유배지 (정신병원, 노인요양원)으로 쫒겨나는 모습을 질리지도 않고 그리고 있다.

 

배우조차 예외없었다


그걸 보고 우리는 아 저런 나쁜 사람들이라고 되뇌이며 자신의 도덕성이 아직 훼손되지 않았음을 검증하는 반면 무의식중에 그런 세상이 되고 있으며 그렇게 해야 하는 세상임을 인지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일이 리얼스토리 논픽션다큐에서 드물지 않게 보이고 있으며 그렇게 잘못된 선택을 한 노인 인구의 자살률은 이제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지경이다. 사람은 죽어서 유산을 남기며 그 유산을 남기지 못하거나 혹은 적게 남기는 사람은 아무리 가족을 사랑하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어도 삶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자식들에게 배척당하는 그런 사회, 이런 사회는 사회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폭, 즉 희로애락의 파장이 매우 좁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매우 두려울수밖에 없다.

 

세월호 침몰 사건을 사람들은 아직도 영화로 인식하고 있다. 이제 그 다음은 그 영화가 얼마나 흥행했는지에 대한 돈에 관심을 갖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리고 언론은 마치 영화의 흥행 성적과 감독이 이번 영화로 얼마나 떼부지가 되었는지에 대한 자극적인 보도를 하듯 매번 세월호 유족들이 이번 사건으로 얼마나 금전적 물질적 혜택을 보게 되는지만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좁아진 감정의 폭으로 죽음보다 앞선 금전적 욕망 즉 자기 자신을 세월호에 그릇된 잣대로 투영함으로서 세월호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자식을 잃어보지 않은 그들에게 있어 세월호 유족들과 실종자들의 자식을 잃은 슬픔이 그들에게 있어 와닿을리가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도 사실 결코 있을 수 없고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사건임에 틀림이 없으니까 그들은 애써 그 공감대를 자기 자식에게 대입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이제 그만 좀 해라 라고 한다. 니 자식을 잃었다고 내 자식을 잃는다는 가상 체험까지 시키는 그들에게 분노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끔찍한 공포영화를 기피하는 사람들처럼 이 끔찍한 상상을 하고 싶지 않으니 어서 이 이야기가 뉴스에서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애써 그들의 자식 잃은 슬픔을 내가 부모 잃은 슬픔의 정도와 동일시한다. 같은 가족을 잃은 거니까 똑같을거야, 그리고 내가 느끼는 감정과 그 이상으로 얻을 수 있는 유산에 대한 욕망적 가치가 그들이라고 다르지 않을거야라고 말이다.

 

그들은 에초에 세월호 사건에 자기 자식을 대입한 적이 없다. 그런 끔찍한 일은 내 금지옥엽에게 일어난다는 상상 자체만으로 고통이니까 그런 건 아이들에게 포르노를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정서를 위해 상상하지도 공감하지도 말야아 하는 유해메체인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식잃은 부모에게 부모 잃은 본인들의 모습과 심정을 오버랩한다. 아니 물론 부모가 돌아가시면 슬프지, 그런데 그 슬픈 것도 잠깐이야, 결국은 남겨주신 유산이 엄청 크면 부모가 떠나가신 슬픔에 대해 감사하게 돼, 그 유산이 적으면 원망하게 되고- 라는 상식,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을 덤덤하게 하는 국회의원이 나오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다.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말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마치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내 수중에 떨어질 유산을 계산하듯이 세월호 유족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이 대체 얼마를 받는지를 관심있게 지켜보며 그들 나름대로 계산을 했을 것이다. 이 정도 금액 이 정도 혜택이면 뭐 그럭저럭 그런데 그것 이상으로 그들로 따지면 유산 잭팟이 터지는 수준의 큰 금액과 엄청난 혜택이 줄줄이 언론을 통해 마치 확정된것마냥 보도가 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말한다 아니 그 정도 유산을 받았으면 나라면 만족스러워서 춤이라도 출텐데 뭘 더 달라고 저러는거야? 그들에게 있어 세월호 유족들의 지금 모습은 자신들이 유산을 가지고 개싸움을 벌이는 스스로의 모습과 오버랩될 뿐이다.

 

상복을 벗을 틈이 어딨어? 출처(http://park5s56.tistory.com/63) 

 

사람들의 감정기관이 퇴화하고 있다. 사람들이 게임을 좀 더 편하게 즐기기 위해 돈을 주고 아이템을 사는 몇 안되는 나라로 꼽히는 대한민국의 게이머, 그들은 게임을 처음부터 고생고생해서 즐겁게 하는 감정을 퇴화시키고 돈으로 단시간에 마음껏 게임 속 권력을 휘두르는 재미만을 과도하게 진화시켰다. 인생도 다를 바 없다. 조금의 고생도 그로 인한 경제적 고통도 그들에게 있어 인생에서 겪고 싶지 않은 고통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돈을 써서 그 고통 없이 편하게 살며 그에 맞는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한다. 가족의 화목 속에서 오는 정겨운 대화와 쌓이는 정은 그들에게 있어 당장은 돈을 벌어서 나중에 얼마든지 벌충할 수 있는 뒤로 미루어진 가치에 불과하다. 지금 세상은 어쩌면 돈으로 뭐든지 나중에 만회할 수 있을 거라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해 있고 그렇게 금전만능주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성적 희로애락의 영역까지 침투해가고 있다.



회사는 내부고발자를 금전적으로 압박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불편을 느끼는 시스템 부분을 누군가에게 지적당하면 수천만원을 들여 그 시스템을 고치기보다 그 사람에게 돈 몇백을 주고 무마시키는 쪽을 택할 것이며 사람들은 그 돈을 받는 것에도 그 돈을 받고 그 이상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것에도 매우 익숙해져 있다. 그런 사람들이 지지하고 만들어낸 정부 그리고 그들이 그들을 지지해준 사람들의 방식대로 이 일을 처리하려는 모습은 매우 자연스러운 광경이다.

 

정부는 시스템 부분을 고치는 데에 돈을 들이는 것 (인양을 하는 데에 돈을 들이거나 책임질 사람들이 책임을 지는 데에 드는 비용) 보다 세월호 가족들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해주는 편이 싸게 먹힌다고 판단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은 단순히 그런 차원에서 만족할 수 없는 감정적 손실이 있다는 점을 정부도 그들을 지켜보는 대다수의 제 3자들도 자신들의 내적 가치관으로 그들이 돈을 거부하고 시스템을 고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시스템을 고치는 쪽을 택하면 그들이 받는 돈은 0원이 될 텐데 당장 시스템 고친다고 나한테 득이 되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왜 그들은 눈앞의 몇억을 포기하고 나한테 당장 이득도 안 되는 국가 시스템 개혁을 그렇게 요구하는건지 이해할 수가 없는거다.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은 고스란히 객나적 해석으로 치완되어 그들이 더 큰 돈을 요구하기 위한 시위로 곡해되어 머릿속에 흡수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위로금 금액이 차등 지급된다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듯하다. / 1차출처 (중앙일보) 2차출처(국민TV)


감정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당장 피부에 와닿기 직전까지 모르고 살 수 밖에 없는 세상에 와 있는 것 같다. 그들 역시 자식을 잃게 되었을 때 즈음에서야 세월호 유족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직접 겪지 않은 일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무감각해진 건가? 가족을 잃는다는 것이 언제부터 이렇게 공감대를 얻기 힘든 논제가 되었으며 그 가족을 잃은 슬픔이 언제부터 어디에서 무슨 교통기관을 타고 얼마만큼 좋은 보험을 몇 개를 들고 죽었는지가 그가 죽은 슬픔보다 훨씬 더 앞서있었는가? 감정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이 되어버린 와중에 그들에게 세월호의 아픔을 함께하자고 손을 내민다 한들 소용이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가득해진다.

 

사랑하는 감정, 그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감정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고 되돌릴 수 없다.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할 수 있다고 착각할 뿐이지 돈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수천 수만가지나 넘게 산적해있다. 세월호 희생자가족들은 그 돈으로 되돌리는 것은 고사하고 그 돈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만큼 큰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돈 욕심이 생길까? 사람의 본능적 희로애락을 정직하게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어떤 금전적인 가치로 보상받지 못한다는 것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그 후 다양한 선택지를 택했다. 물론 그 중에는 당면한 금전적 가치를 높게 평가한 사람들도 있고, 혹은 이 나라에게 아무런 기대를 걸지 못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이 나라를 떠난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지금 미디어에서 소리높여 외치고 있는 그분들은, 이 나라를 포기하지도 그 포기하는 대가로 어떤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우리가 선뜻 이해한다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수준의 상태에 계신 분들임에 틀림없다.

 

그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그분들은 이미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은 돈으로도 어떤 혜택으로도 복구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국가라는 보호장치에 의해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다. 그분들이 바라는 것은 너무 숭고하다. 우리가 지금 진짜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아프고 힘드니까, 이 아픔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겪게 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 라는 바람 그분들이 그것을 계속 정부에게 요구하는 대신 돈을 포기했기 때문에 숭고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들은 이미 모든 것을 잃어서 그분들에게 어떤 만족감도 얻을 수 없는 일에 스스로를 갈아넣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세월호 1 정부가 얼마나 변했는지,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얼마나 변했는지는 많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둘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묵념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그것보다 내 자신이 과연 그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감정적 가치에 대해 얼마나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는지, 세월호는 그 가치를 일깨워주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우리 속에 자리잡아야 한다.

 

국가는 우리의 공공재이다. 우리는 그래서 그 아픔을 다시 만들어낼 수도 있는 이 국가에게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 개인정보 소송도 치완할 수 없는 정신적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런 일이 벌어졌고 다시 일어나지 않는 대책을 국가에게 요구해야 한다. 세월호 사건도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금전적으로 그 피해를 얼마나 환산해야 하는지에 대해 뉴런을 쓸데없이 소모하지 말고 그 돈으로 치완할 수 없는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지랄맞은 풍토부터 걷어내고 돈으로 치완할 수 없고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한번씩 생각할 수 있는 세월호 사건의 날 4 16일은 그런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

 

슬픈 날이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매우 끔찍한 날이다.


그러니까 내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판단하면 마치 공포영화가 끔찍해서 보기 역겨워서 티비를 끄고 극장을 나와버리는 것으로 해결될거라는 판타지적인 망상에서 이제는 벗어나자, 그리고 마치 그 영화 같은 현실감없는 사건이 현실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심정적으로 이해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면 내 마음 속에 있는 어떤 가치관을 조금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는 돈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것도 있으며 그것을 잃은 사람에게 돈으로 보상받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돈에 찌들어 사는 우리들이 이해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가 없지만, 그것때문이라도 4 16일은 매년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우리를 변화시켜야만 한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감정적 상실이 벌어지는 일을 다시는 재현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정부에게 어떤 것을 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 그분들과 같이 아픔을 나누고 같이 슬퍼해주는 것만큼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가족분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정말 작은 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