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0. 3. 27. 01:37
저는 굳이 따지자면 PC통신의 막차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딱 제 세대 뒤부터는 PC통신을 모르고 대부분 웹을 시작했으니까요. 당시 텔넷 프로그램을 통해서 학교 컴퓨터에서 PC통신을 접속하고 있으니 후배들이 '형 지금 해킹하는 거에요?'라고 묻던 게 생생하네요. 아무튼 이 PC통신을 기점으로 현재의 넷상에는 세대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합니다. 과거 통신에서의 낭만과 추억을 기억하는 PC통신 세대와 모든 게 갖춰진 인터넷 세대로 말이죠.


이 PC통신 세대들이 생겨난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인구가 대거 이동할 당시 PC통신의 매력을 포기하지 못하고 인터넷에 적응하지 못했던 계층이 상당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의 인터넷은 무개념에 악플 문화, 상호 비방 문화, 비뚤어진 카폐지기의 권력 남용 등 실생활의 활력소가 되기에는 너무 실생활과 닮아 버렸다고들 하는데요. 특히 이들은 PC통신을 거치지 않고 인터넷에 바로 입성한 이른바 '초딩'세대들을 혐오합니다. 네티켓을 먹는 거라며 우걱우걱 먹어버린 그들의 예의없는 행동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 충분했으니까요.

어쨌든 지금의 인터넷에는 예전 PC통신에서 느꼈던 재미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의견인데요. 이를 단순히 네트워크 세대차이라고 보기에는 지금의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이전과는 너무 다르게 (특히 한국이) 변해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트워크였기에 혹은 네트워크만이 가능했던 강력한 개성들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미 생활 필수품이 되어있고 너도 지금 인터넷으로 글 쓰고 있는 주제에 무슨 헛소리냐! 라고 하실수도 있으시겠습니다만, 일단 한 번 들어보세요.


인터넷 주로 어디에 쓰시나요?

아침에 일어나서 PC를 켜는 건 이미 당연한 일과가 되었습니다. 켜서 바로 하시는 건 보통은 웹브라우저를 로딩하시죠.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컴퓨터는 아무것도 못하는 깡통으로 인식하는 분들도 많은데요. 그만큼 첫 일과는 부팅이 아닌 웹브라우저 접속입니다. 모든 용도는 우선 여기까지의 공통점을 지닌 채 세분화됩니다. 메일을 읽는 분, 뉴스를 읽는 분, 쇼핑을 하는 분, 인터넷 뱅킹으로 돈을 보내는 분 메신저에 접속하는 분, 게임을 바로 로딩하는 분, 업무 파일을 다운로드해서 일을 시작하는 분들 등 여러 가지 쓰임새를 보이는데요.

특별히 이상하다고 트집잡으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세히 보시면 굳이 인터넷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즉 지금의 인터넷은 마치 휴대폰에 달린 손톱깎이처럼 우리가 움직이는 동선을 줄여주거나 시간적 비용적 절감을 해주는 (대체 수단)으로서의 가치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죠. 인터넷만이 가능한 게 아니라 마치 예전에 교과서에서 배우듯 '전화가 없으면 얼마나 불편할까"라는 것처럼 '인터넷이 없으면 얼마나 불편할까?'라는 식의 역할 부여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예전 PC통신과는 다르게 심히 다양한 연령대가 대거 참여하는 범국민 네트웍이 된 인터넷은 점차 현실의 그것을 닮아가고 있는데요. 모르는 사람과 벽이 없는 솔직한 교류가 가능했던 것에서 이제는 각종 사이버 범죄로 인해 점차 '아는 사람들끼리'의 제한된 네트워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초창기 네트워크에서 선보였던 ICQ나 넷미팅 등 인터넷이 처음 내세웠던 '전 세계인을 내 친구로 만들자'는 구호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됐죠. 지금은 누군가가 나를 친구로 추가하면 아는 사람이 아닌 경우 대화조차 걸지 않은 채 바로 삭제되는 것이 현실이며 국제적 교류는 이미 관심밖으로 멀어진 지 오래입니다.

사이버 범죄 탓일까?

물론 인터넷에서 지금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사이버 범죄, 매춘 등이 사람들의 열린 마음을 닫히게 만들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이런 사이버 범죄는 PC통신 시절이라고 해서 없었던 것은 아닌데요. 당시에는 이런 '사기' 행각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가 많지 않았고 간간히 뉴스에 등장하는 정도에서 사건이 더 커지지는 않았습니다. 즉 인터넷 사기나 범죄 등이 많아지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이에 흥미를 보이는'사람도 인터넷에 덩달아 늘어났기 때문이며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인터넷 자체의 정화 활동에 지나치게 무관심한 채 양적 팽창에만 전념해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를 보인다는 것은 결국 '돈'이겠지요.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은 '돈'이 되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시간 대비, 노동력 대비 결코 효율적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는 인터넷이 조금이나마 돈이 된다면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모습이 지나치리만큼 자주 보여지고 있는데요. 노력에 비해서는 정말 하찮을 정도로 푼돈입니다만, 많은 사람들은 그 금액에도 만족스러워하죠. 아 내가 '놀면서'도 돈을 벌었구나, 라고 말입니다.

여기에는 장기화되고 있는 청년 실업 문제와 더불어 부모 세대들의 몰이해로 인한 보수적 시선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있습니다. '게임'을 포함한 컴퓨터로 하는 모든 것들은 이미 '공부'에 방해가 되는, 혹은 '돈도 쌀도 나오지 않은 무생산성의 폐인짓'으로 규정하는 것이 거의 공통화되어 있죠. 이에 새뇌당한 지금의 인터넷 2,3세대들은 인터넷이 '생산성이 없다'라는 것을 뒤집을 만한 작은 것에도 집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결코 '노는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인터넷을 하면서 편하게 돈을 벌수 있는 법을 찾는 데에 집착했고 기업들은 이를 악용하여 여러 가지 병폐를 낳는 수단들을 만들어 냅니다.

블로그는 이미 돈을 받고 쓴 상품평, 이벤트 참여 포스트로 도배가 되어가고 있고 쇼핑몰의 상품평은 신뢰도가 점점 하락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나 댓글 알바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게임 업계의 성공 요인으로는 '환금성'이 '참신성'을 능가한지 오래이며 양질의 포스트를 양산하는 블로거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계약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애드센스를 달아놓습니다. 그리고 그 애드센스를 위한 포스팅 재생산, 자극적인 제목, 흥미 위주의 포스팅 남발 등 기존 언론사들의 병폐로 지적했던 것들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죠. 결국 언론사들의 기준없는 상업화를 지탄했지만 정말 아주 약간의 돈 관계가 들어가자 블로그계가 그보다 한술 더 뜨고 있는 모습은 아쉽다 못해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렇듯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댓가'를 지불받는 것에 집착한 문화는 비단 '금전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데요.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면 늘 볼 수 있는 '방명록 홍보 - 글 잘 읽었습니다. 시간나시면 제 블로그에도 들러주세요 -라든지 인기 블로거들끼리 의리 추천으로 추천수를 서로 올리기,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방문자수 집착, 트위터의 '맞팔로' 문화 (내가 너한테 아무 관심이 없지만 내가 팔로우해줬으니 너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팔로워해야한다)등 자신의 인간적 평가기준을 지나치게 인터넷 수치 평가에 의존하는 데에서 파생된 반드시 준 만큼 받아야한다는 '제 몫 챙기기'심리가 인터넷을 점점 재미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돈'이 되지 않으면, 준 만큼 나한테 되돌아 오지 않으면 '재미'도 없다는 식의 논리가 자발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하고 일원화된 흐름을 고착시키고 있죠.

자신이 쓴 시간을 인정받기 위한 것이 반드시 당장 돌아오는 금전적 혹은 인간관계적 수치평가에 기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에 집착하면 할수록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정말 헛된 시간이 될 수밖에 없는데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시간적 금전적인 부분에 지나치게 집착한 결과가 현실사회에서는 입을 닫은 채 굳은 표정으로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으로, 인터넷에서는 베타적 인간관계, 금전만능주의, 보상심리에 근거한 병폐로서 보여지고 있습니다. 현실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서 등장했던 인터넷이 점차 그 기능을 잃어가고 현실의 악랄함을 닮아가고 있는, 아니 오히려 한술 더 뜰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습니다의 기쁨을 앗아가버린 것은 기업들의 홍보메일매거진과 스팸메일이었던 것처럼 즐거움과 '돈'은 결코 일치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결과는 이루어졌을때의 기쁨이 아닌 이루어지지 않았을때의 '배신감'만이 남게 되죠. 지금의 인터넷이 보여주고 있는 현실, 그것은 마이너스 이론처럼 '당연히 얻어야 할 것을 얻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불만입니다. 이것이 플러스 이론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는 조건에서 '돈'과 '수치적 평가'를 제외하면 되는 것이죠.

블로그 방문자수를 늘리기 위해, 팔로워수를 늘리기 위해, 추천수를 늘리기 위해 '영업'을 뛸 필요 없이 자신의 글 그리고 자신의 면면만을 보고 방문해주는 방문자 그리고 추천은 영업에 의한 그것에 비해 몇 배의 가치와 기쁨을 안겨다줄 것입니다. 인터넷에서든 현실에서든 결국 인간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인간 본연의 본질적인 가치에 기인할 뿐 수치적인 데이터는 전면의 통과의례에 불과합니다. 자신이 인터넷에서 쓴 시간을 어떻게든 보상을 받고 싶다면 인터넷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요?

인터넷은 예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쓰는 사람에 따라 식도가 사람을 찌르는 범죄도구가 되는 것처럼 변한 것은 인터넷이 아니라 그것을 쓰는 사람들의 생각에 있음은 두말할필요가 없겠지요. 인터넷은 여전히 재미있고 유익하며 그 문은 여전히 활짝 열려 있습니다. 돈은 반드시 인터넷으로만 벌어야할 필요도 없고, 자신이 가진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한낱 팔로워수, 방문자수, 추천수가 아닙니다. 인터넷을 다시 재미있는 곳으로 그리고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인간적 매력을 느낄수 있는 장이 되기를 희망해보며 인터넷 그리고 인간  번외편 '인터넷이 즐겁지 않게 된 이유' 편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