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4. 1. 17. 11:11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버나드 쇼의 묘비에 쓰여져 있는 명문입니다. 애니팡2 사태를 지켜보는 제 소감을 묻는다면 딱 저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결국 모바일 게임 업계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 시장의 태생적 한계 즉 타 플랫폼에 종속되어 뛰어넘을 수 없는 보조적 역할이라는 극명한 부분을 우리나라라고 해서 예외로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죠. 어째서 다른 나라에서는 창의력 팡팡 터지는 젊은 개발자들의 등용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모바일 게임이 우리나라에서는 이모양 이 꼴이 된 걸까요?



우선 해외 모바일 게임을 봅시다. 미국이야 워낙에 많은 게임들이 나오고 있고 그만큼 제작비에 자금이 많이 유입되고 있는데다 인디 게임 시장도 많이 활성화되고 있기 때문에 독창적인 게임도 나오고 또 그 게임이 어느 정도의 시장성을 갖고 있다 하겠지만 이런 미국 시장에서도 결국 뜨는 게임들의 대표작은 무엇이냐 하면 FIFA시리즈, SIMS 시리즈, 스프링필드 (심슨가족), GTA 시리즈 등 기존 PC나 콘솔에서 이미 한끗발 날렸던 타이틀들이 많습니다. 혹은 게임로프트로 대표되는 레이싱 게임 이식이나, 인디 게임 중에서도 아머게임즈가 그간 무료로 발표했었던 킹덤러쉬 같은 플래시 기반 게임 이식작들이 있지요.



이런 현상은 옆나라 일본도 다르지 않습니다. 굳이 모바일의 범위를 닌텐도 DS까지 넓혀서 생각해본다면 거의 대부분이 과거 콘솔에서 이어지는 시리즈의 후속작이거나 이식작들입니다. 드래곤 퀘스트, 파이날 판타지, 태고의 달인, 철권 등의 기존 이식작부터 일본 내의 헬로키티나 건담 등의 검증된 인기캐릭터를 활용한 게임까지 대부분의 게임들이 이른바 '모바일 오리지널'이라는 타이틀을 갖기 힘든 작품들인것이죠. 왜 이런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모바일 게임의 태생이 '이식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바일에서 게임을 할 때 모바일의 표현 제약과 조약한 시스템 (스마트폰에 이르러 많이 나아졌다지만)으로 인해 모바일 게임에 많은 오리지널리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모바일 게임에 기대했던 것은 '아웃도어에서도 콘솔게임을 할 수 있다'라는 것이었으니까요. 스마트폰 이전의 모바일게임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스타일이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모바일 게임 나름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몬스터 헌터'나 '메이드 인 와리오'같은 게임들도 만들어졌고 그 포텐셜 만큼의 성공을 거둔 사례도 있지만 그 타이틀을 만든 회사들도 결국 그 나라 게임업계의 넓은 토양에서 자란 창의적인 인재라는 새싹이 만들어낸 것이죠. 창의적인 게임이 오롯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느끼며 자라는 환경 역시 무시하기 힘든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왜 이런 이식작들이 많냐면 결국 모바일 게임의 '최초'접근성 즉 '판매촉진정책'은 '익숙함'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해봤던 게임, 예전에 할만했던 게임 을 모바일로 즐길 수 있다라는 것 만큼 좋은 판촉정책은 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중독성이라 함은 '익숙함'이 담보되지 않으면 이끌어낼 수가 없지요. 룰을 쉽게 이해하는 게임이란 없습니다. 사전에 어딘가에서 봤을법한 룰이 있을 뿐이죠. 아무리 그 룰이 간단하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수없이 연구되고 다듬어져 유저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또 다른 간단하면서도 흥미를 끌 수 있는 룰이던지요.


국내 수많은 모바일 게임 업체들에게 고통받았던 메이드 인 와리오


미국이나 일본은 오래 전 아타리 시절부터 게임을 '직접'만들어 왔습니다. 인디게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그 다양성을 잃지 않고 말이죠.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전멸한 패키지 시장도 아직도 스팀이라는 새로운 공급 시스템으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패키지 게임 GTA5는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게임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런 환경은 모바일 게임으로 하여금 합법적으로 '배낄 수 있는' 커다란 곡창같은 역할을 해줍니다. GTA를 해본 사람이라면 굳이 새로운 게임에 대한 초기 낯가림 없이 GTA시리즈를 이식하는 것만으로도 GTA를 해본 유저층 전체를 잠재시장층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죠. 미국, 일본 모바일 게임의 성공은 결국 아주 오래 전부터 만들어온 그들만의 '백본망'이 재산이 되어 지금 그 재산이 이자를 뿔려 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오리지널 캐릭터, 게임, 애니메이션 콘텐츠가 얼마나 있습니까? 패키지 시장이 죽기 직전까지 쉐어를 확보했던 대표 타이틀이 얼마나 있나요? 미국과 일본이 포기하지 않고 패키지 게임과 플래시 게임을 계속 만들면서 재산을 쌓을 동안 우리나라 게임업계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하고'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산 게임을 대신 즐겼고 외산 게임에 익숙해졌으며 우리나라가 확보할 수 있는 '팬덤'타이틀은 점점 그 수가 적어졌고 역사에서 멀어졌습니다.


창세기전이라도 있는게 어디인지...


모바일 게임은 '익숙함'이 생명입니다. 어딘가에서 해봤던 게임이 아니면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애니팡2가 외산 게임을 그대로 배껴서 출시한 게임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른 게 없이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게임을 만들면 팔기 힘들거라 생각했던 것이 우리나라 모바일 게임 업계에서 가장 성공한 업체 중 하나라는 선데이토즈가 내린 결론입니다. 우리나라 게임업계는 모바일 게임이 싹을 틔워 커나갈 수 있는 재산이 될 패키지 게임이라는 토양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사막의 모래같은 땅과 같습니다. 여기에서 싹을 틔우려면 결국 옆동네 가서 흙이나 비료라도 훔쳐다가 심었어야 했던 거죠. 그런데 그런다고 해서 그 싹이 오래 갈까요? 사막이 기름진땅이 될까요?


수많은 고대 동식물들이 죽어서 땅 속에 매몰되어 오랜 기간 지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석유'이며 석탄입니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는 석유가 나지 않는 나라라고 하죠? 동물들이 우리나라에서 죽어서 땅속에 매몰된 양이 그만큼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은 이런 석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과거 명작 게임들이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그 석유를 정제해서 휘발유를 만들듯 모바일 게임으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석유가 나지 않지만 정유시설을 갖추고 석유를 전량 수입하고 있죠. 문제는 지금도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게임이 훗날 '석유'가 될 것을 기대하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지 않고 당장 만들어 쓸 수 있는 석유를 수입해 정유해서 휘발유를 만들어 내는 것에만 열중할 뿐입니다. 휘발유는 태우면 다시 석유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환경오염만을 남기고 그대로 사라져버리는 것도 모르고 말이죠. 



비단 게임업계 뿐만 아닙니다. 우리나라 완성차업계는 차는 국산인데 부품이나 제조 설비의 국산화는 아직도 요원한 이야기고, 세계에서 짱먹는다는 우리나라 스마트폰의 OS는 구글, 디스플레이 생산설비는 '일본'이 모든 특허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국산화를 하려고 노력은 합니다. 다만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설비의 구조를 열심히 카피해서 복제 설비를 만드는 데에 열심히이긴 하지만요.


당장의 편리함, 당장의 많은 이득만을 추구하는 사람들만 가득하면 우리나라에 영원히 석유가 쌓일 일은 없을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쌓일 것 같으면 파내서 도망가버리고, 열심히 석유를 대체할 만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면 대기업을 보호한답시고 밟아죽여버리는 대한민국에서 애니팡2와 같은 작품들이 양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사치스러운 것이겠죠. 이런 나라니까 애니팡2를 만들고, 유통을 허가했고, 사람들이 아무런 문제의식이나 거부감 없이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석유가 없고, 석유를 본 적도 없으며, 석유따위는 해외에서 수입해오거나 옆나라에서 훔쳐오면, 그걸 아무도 모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자신도 언젠가 기회만 되면 훔칠 거라고 그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바로 이 사회가 말입니다.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습니다.



결국 이젠 무덤에 들어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에요



...


내일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