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09. 6. 1. 16:24
한국 일본에 관계없이 만화에서 나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건 대체로 자기 자신 혹은 제 3의 캐릭터로라도 작품 내에 '만화가'라는 직업이 항상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 만화가는 언제나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 마감에 치여 고생하고 잠이 부족해서 힘겨워하는데다가 박봉에 삶 역시 궁핍하기 그지없게 묘사된다. 작품 내용상에서도 이를 강조하는 에피소드들이 한두편씩은 나오곤 하며 최소한 챕터가 넘어가는 서비스 페이지 정도에 1페이지 정도의 단막 스토리라도 작가의 고충은 언제나 빠지지 않고 표현되곤 한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볼 수 있는데 한 가지는 '만화가의 힘겨움'을 독자들에게 하소연하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다름아닌 '소재고갈'이다. 일찌기 아다치 미츠루가 남긴 '소재가 막히면 전학생이 등장합니다'라는 명언처럼 작가 나름의 판단에 의거 용인이 되는 선에서 전학생이 아닌 '작가'가 등장, 그 주의 연재분을 날로 먹고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버는 것이다. 물론 '다.다.다'처럼 고정 캐릭터중에 만화가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 역시 메인 스토리의 진척이 없을 때를 대비한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웹툰 중에서 이같은 사례를 잘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정글고'의 'Q3'캐릭터를 들 수 있는데, 작가 본인을 투영하면서도 충실히 그주의 연재분을 상쇄할 만큼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지금까지의 추세와는 다르게 작가 본인을 이입시킨 캐릭터를 일종의 스트라이커로 활용하는 것이 아닌 작가 본인의 경험담이 주가 되는 전세 역전 현상을 보이고 있어서 흥미롭다. '마린블루스'처럼 '자신의 일상을 일기장처럼 투영'하는 작품들이 대 성공을 거두면서 이른바 '트루먼 쇼'의 히트공식처럼 남의 생활상을 엿보는 생활 속 즐거움과 공감대 형성 위주의 작품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생활의 달인'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C급 직업군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99% 사람은 게스트로 일상 속에서 그들을 만나지만 호스트로서 바라보는 모습에 대한 호기심이 이러한 작품들의 생명력을 연장시켜주는 힘이라고 하겠다.



복고풍 웹툰(?)
와라 편의점은 이러한 '호스트의 눈'을 잘 활용한 작품이다. 편의점에 손님으로 가 본 사람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들이 나와 만나는 최장 5분 남짓 되는 시간 이외에 남은 8시간여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호기심, 즉 내가 사는 매일은 지루하지만 다른 사람의 매일은 지루하지 않을 거라는 편견이다. 지강민 작가는 이 점에 착안 편의점 내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와 함께 편의점에서만 이루어지는 '사재점검'이나 '선입선출'등의 전문적인 작업들을 결부시켜 지적인 욕구도 다소 충족시킴과 동시에 오버스러운 액션을 활용한 '단막 4컷 툰' 방식을 사용하여 기초적이지만 그만큼 안정적인 이미지를 독자들에게 인지시키는 데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와라 편의점의 작가 지강민의 작품 성향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78화 '잔돈' 편이 바로 그것, 이 에피소드는 그림체가 갑자기 바뀌어버린 탓에 한때 블로그에 작가가 해명 글까지 올려야 했을 만큼 논란이 많았던 에피소드이기때문에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블로그를 통해 올린 해명글을 통해 이 에피소드에 대한 애착을 숨기지 않았는데, 여기에서 생각해 볼 부분이 있는데 '와라 편의점'의 개그 코드가 다분히 '복고풍, 다시 말해 예전 명랑만화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대사 흐름이나 내용 전개 방식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잔돈'편을 자세히 보면 그림채가 원래대로 복원되어서 연재되었다면 큰 논란이 없을 만큼 지금까지의 작품들과 별 차이없는 에피소드임에도 다소 의도적으로 그림채를 통해 독자들과 작가 본인의 소통을 확인해보려는 시험을 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다시말해 작가는 이러한 명랑만화 포멧에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애착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투영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겠다.


무의미한 보험
옴니버스로는 드물게 지금까지 큰 기복없이 안정적으로 (나쁘게 말하면 대 히트는 기록하지 못한) 인지도를 쌓아나가고 있는 와라 편의점이지만, 최근에는 무리하게 '역전'을 한 나머지 '소재고갈'을 피해갈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작품은 지금까지의 다른 옴니버스 작품들과는 그 문제의 격이 조금 다른데, 초반에 향후 소재고갈에 대비하여 캐릭터들의 개성을 충분히 어필하는 에피소드를 곳곳에 배치, 향후 실화 혹은 경험 위주의 스토리가 바닥이 났을 때 캐릭터들의 개성으로 충분히 2차 창작이 가능한 상태임에도 지금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기 연재에 대비한 포석을 충분히 다져왔음에도 소재 고갈이 왔다는 것은 '캐릭터'를 활용한 에피소드 창작 능력의 부족을 의미한다. 만일 와라 편의점이 '작가 본인'의 경험담만을 소재에 활용할 계획으로 기획된 작품이었다면 적정 사이클은 7~80편 정도의 에피소드 분량이 되겠지만 이미 에피소드는 100회를 넘었고 100회 특집에서 초반부터 다져온 '캐릭터성'을 과시하는 에피소드를 선보임으로서 장기 연재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확히 80회를 넘긴 시점부터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은 어딘지 모르게 예전에 보던 와라 편의점의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있게 느껴지는데, 이유는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작가가 '2차 창작'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잘 나가던 작품들이 갑자기 퀄리티가 떨어지거나 재미가 없어질 때 받는 오해가 '문화생 대리 제작 의혹'이다. 그만큼 문하생이 기존 작품을 이어서 그리면 아무리 그림채를 흉내내고 에피소드를 비슷한 감각에 맞춰 창작하더라도 독자의 눈에서는 어딘가 모르는 어색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지금의 와라 편의점에서는 마치 그런 오해를 받을 만한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지고 있다. 캐릭터는 이미 작가의 감각에 의해 제각각 개성을 갖춘 상태에서 소재만 다른 사람의 경험담을 빌려 에피소드를 제작하려 하다보니 기본적으로 주체 자체가 달라지고 예전에 작가 본인의 경험담에 맞춰 만들어진 캐릭터들과 에피소드 소재가 불협회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현재진행형
작가도 그걸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듯 100회 특집에서 '경쟁사 편의점 신캐릭터'의 등장을 예고하는 등 현실 파악에 결코 게으르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단순히 캐릭터를 늘리는 것은 독자들로부터 오는 소재들 중 '지금 보유하고 있는 캐릭터들의 개성'과 맞지 않는 경우 아무리 좋은 소재라고 하더라도 버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것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게다가 지금의 캐릭터 인지도나 개성에 대한 어필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서브 캐릭터들의 과거 에피소드와 연관된 스토리의 경우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많은 점) 신 캐릭터에 대한 어필을 위해 비중을 한쪽으로 무리하게 쏠리게 만들 경우 자칫 작품 전체의 균형이 흔들릴 우려도 존재한다.

비교적 긍정적인 것은 작가가 결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철저한 자기관리형 스타일이라는 점이다. 100회가 넘는 동안 연재 지연이나 결연 등은 한 번도 목격되지 않은 채 언제나 독자와의 약속을 지켰으며 본인 스스로 '날로 먹는다'는 표현을 쓰며 자신을 낮추는 데에 익숙해있는 만큼 앞으로 혁신적인 부분은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최소한 작품 전체가 뿌리째 흔들릴 만큼 큰 위기는 없을 것이라는 게 개인적인 진단이다. 물론 초반에 소재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컨트롤을 제대로 하지 못해 예상보다 일찍 소재 고갈에 시달리고 있지만 네이버 웹툰 작가 중에서는 몇 안되는 '관록'이 느껴지는 작가인 만큼 앞으로의 분발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림 사용을 허가해주신 지강민 작가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다음주는 임인스 작가의 '싸우자 귀신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