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09. 8. 23. 08:05
영화 '해운대'가 천만 관객 돌파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윤재균 감독의 이전 작품 성향과 더불어 갖은 논란과 사상 유래없는 폭발적인 미디어 노출 속에 이루어진 천만 관객 돌파여서 그런지 아니면 스크린 쿼터 논란 이후 실로 오랫만에 들어보는 슈퍼 밀리언 셀러의 등장이어서 그런지 이번 해운대의 천만관객 돌파 소식은 필자로서는 제법 생소하게 느껴진다. 영화계에 발을 직접 담그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영화의 무게감이라는 측면에서 (고리타분한 예술성, 작품성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천만 관객을 몰고 올 만한 작품은 아니었다는 것이 지금도 변하지 않고 머릿속에 남아 있는 일종의 찝찝함이다. 역사에 남는 천만관객이라는 코드, 그리고 역대 최대 관객 동원이라는 떡밥이 실제로 영화계를 얼마나 괴롭히고 있는 딜레마인지를 새삼 엿볼 수 있어서였을까?

역대 최다관객동원 작품 중 가장 오랫동안 그 기록을 가지고 있던 작품 중 하나였던 '친구'는 그 딜레마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주었던 작품이다. 어떻게 보면 부산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친구'가 그 위력을 전국에 알린 선구자 역할을 했던 만큼 제작 당시로서는 곽감독 본인도 실제 최종 흥행 성적이 부산의 힘에 의해 좌우 될 거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이정도까지일줄은 미처 예측하지 못했으리라, 아무튼 친구의 당시 역대최대흥행 기록은 영화계로 하여금 두 가지 딜레마를 갖게 만들었는데 그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대로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가 흥행 1위가 되었다는 불편한 진실이며 또 하나는 '부산의 힘'이라는 흥행의 판도라 상자를 건드렸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 딜레마가 영화계를 얼마나 속죄고 있었는지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크랭크인 당시 강재규 감독이 직접 밝힌 포부 '천만 관객설'처럼 영화계 내부에서도 어떻게든 저 두 가지 비정상적인 공식을 깨기 위해 내부적인 역량을 총동원해서라도 '친구'를 끌어내리고자 했던 당시 영화계의 몸부림에서 잘 보여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몇년간 스크린 쿼터 등으로 한국 영화계가 급격히 침체되며 때마침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대거 유입으로 한국 영화 점유율이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게 되자 영화계는 그동안 시도했던 갖은 영화계 부흥 해법들이 모두 실패했다는 것을 자인하고 영화계 스스로 살아남는 것을 포기한 채 그동안 봉인해두었던 몇 가지를 꺼내기 시작한다. 그 첫 번째가 유인촌 장관을 필두로 한 정계 지원 확보, 특히 현 정부에서 좌파단체라며 힐난을 받았던 PIFF의 예산이 오히려 4억 증가한 것은 주목할만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두번째는 친구 이후 영화계에서는 '작품적 자존심'을 걸고 봉인해두었던 '부산의 힘'을 이용하자는 것으로 이전 '친구'처럼 'PK출신' 감독이 영화계와 등을 돌린 채 독단적으로 제작했던 때와는 사뭇 대조적으로 제작단계부터 이해가 어려울 정도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메스미디어 노출도와 추세에 걸맞지 않는 해외 CG팀 투입 (한국의 CG제작 기술은 해외의 그것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는것이 아님에도)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많았던 관객수 집계 및 분석 기사들을 보다보면 영화계가 '해운대'에 지금의 위상과 역량을 얼마나 극한까지 쏟아부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즉 영화계는 한국 영화계의 부흥에 대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영화 자체에서 찾거나 근본적인 문제부터 수술대에 올리기보다 예전에 큰 재미를 보았던 '천만관객'코드와 영화계 내부에서도 이단화시켰던 '부산의 힘'코드까지 총동원할만큼 실로 자존심마저 버리고 일단 살리고 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고 볼 수 있는 작품 '해운대'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위험성 없는'도박은 결국 '천만 관객'을 '모으는'게 아닌 '만들어낼 수 있다는'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부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마치 '먼치킨'이나 '치트키'처럼 터부시되오면서도 결국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생각보다 큰 도시 부산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이같은 부산'만'의 코드는 PK출신들 이외에는 좀처럼 공유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생각해보면 제법 단순한 그들만의 코드 '낭만주의' 좀 더 그럴싸하게 표현하면 '르네상스 주의'가 그것이다. 독창적인 코드와 세계관을 가지고 시대의 변화를 철저하게 외면하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삶을 채워나가는 '항구도시'의 '마도로스 감성', 그들에게 있어 부산은 버릴 수 없는 그들만의 자존심인 것이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절대 부산 출신 앞에서 부산을 구설수에 올릴 수 없을 만큼 부산이라는 이름은 부산출신들에게 있어 분신과도 다름없는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애향심, 나쁘게 말하면 구시대적 지역주의의 잔재라고나 할까?

이들에게 '영화'에서 '부산'이 메인으로 등장한다는 것, 그리고 그 영화가 초반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밀리언 셀러의 가능성을 내포한 대작이라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무조건 부산 코드를 썼다고 다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닌 '최대관객기록'이나 '천만관객'같은 기록에 남을 만큼의 가능성 (작품성이 아닌)이 있는 작품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특히 영화는 부산인들에게 있어 부산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고 믿고 있는 PIFF처럼 무척 각별한 부분이니만큼 이들이 느끼는 감성은 다른 지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진지함이 있다. 해운대 역시 메스컴의 수많은 설레발로 인해 '친구'이후 빼앗겼던 자존심 '최다관객기록'이라는 타이틀을 다시 되찾아올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부풀게 만들었고 이런 희망이 지금의 천만 관객 카운트다운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 즉 부산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감히 예상하지만 '해운대'는 천만 관객을 넘어서 역대 최대관객동원 기록을 갈아치울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이유이지만 해운대가 '해운대'라는 타이틀을 달고 지금과 같은 영화가 만들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 즉 부산인들을 극한까지 자극시켰던 코드가 다름아닌 현 최대관객동원 기록을 가지고 있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괴물은 '한강'을 소재로 한 재난영화로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부산인들에게 있어 '괴물'이 특별한 이유는 우리나라최다관객동원을 한 영화가 어떤 중립적인 지역이 아닌 '서울'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결국 부산은 서울에게 질 수 밖에 없느냐는 박탈감이 알게 모르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 괴물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서울'이며 괴물의 최다관객동원 기록은 서울에게 밀려 추락한 부산의 자존심을 긁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고 이 점을 정말 뺏속까지 완벽하게 분석한 영화게는 한강에 견줄만큼의 상징성을 가진 '해운대'를 배경으로 한 블록버스터 재난영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부산인들에게 '괴물', 아니 '서울'을 똑같은 영화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기에 부산은 결코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게로서는 부산의 힘 코드뿐만 아니라 그동안 금기시해왔던 극약처방을 총동원한 만큼 해운대의 흥행 뒤에 상처뿐인 영광이 남겠지만 부산은 설령 이용당했을지언정 어떤 플라시보보다 강력한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부산 혹은 부산 출신 관객들이 천만 관객 동원에 어느정도 기여를 했는지는 확실한 통계가 잡히지 않겠지만 (영화관 문앞에서 앙케이트를 벌이지 않는 한 불가능) 지금까지 두번 세번을 봤던 관객들은 앞으로 남은 300여만 수치를 넘기기 위해 네 번 다섯 번 보는 것도 마다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해운대가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로 기록될 때까지 말이다. 그들에게는 '괴물' 아니 '서울'에게 명목상으로 승리할 수 있는 기록을 만드는 것은 작금의 경제상황과 무관한 삶의 의미에 비견될 만큼 중대사일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러나 영화계는 이번 천만 관객 동원으로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릴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자존심으로 남겨두었던 '부산의 힘', '정계 협력'등 영화계 스스로 일어서지 못한다는 증거로 남을 만한 악수를 총동원했기에 영화가 영화로 남을 수 있기 위해 싸워왔던 '사전 검열', '정치적 간섭'등으로 인해 되찾아오고 있었던 '영화적 순수성'을 그들 스스로 내던져버린 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윤재균 감독의 명성(?)으로 인해 이같은 영화계의 무덤 파기는 이미 예전과는 달리 일반 관객들에게 쉬쉬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손실은 박찬욱 감독처럼 해외 경쟁력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한국 영화계의 시게를 거꾸로 돌리는 '한국에서만 소화 가능한' 작품이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부산의 힘을 새삼 확인하고 메스컴의 활약과 정계의 서포터가 어우러진 희대의 '도련님 영화' 해운대의 천만 기록은 영화인들에게 있어 '작품 철학'을 영화인 지망생들에게는 '꿈꾸던 작품을 만들면 언젠간 인정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영화 자체'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은 이미 영화가 영화가 아니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영화계의 이번 악수가 안타까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로들의 정말 단순한 발상 '왕년 타령'이 만들어낸 비뚤어진 르네상스의 결정체 '해운대'는 결국 어느 누구도 득을 주지 못한 천만관객영화로 남게 될지도 모르겠다.